아동학과에 와보니, 아이는 낳고 싶은데 남자와 같이 살기는 싫어서 정자은행의 힘을 빌어 아이를 낳을까 고민하는 언니들이 의외로 꽤 많았다. 뭐 본인도 그런 생각을 안 한 것은 아니었지만, 누구의 것인지도 정확히 모르는 정자를 받아서 아이를 낳기는 싫었다. 대학생이 되어서 초등학교 이래 처음으로 남자를 만나고 나서야 남자에 대해 갖고 있던 내 편견이 얼마나 지독했는지를 깨달았다. 사실 나는 거의 기적적으로 지금의 남자친구를 만났다고도 할 수 있겠다. 처음 만나자마자 그의 허리까지 오는 장발에 홀딱 빠졌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나에겐 없는 그의 자유로운 성품과 도전정신을 더 좋아하지 않은가 싶다. 우리 집은 아직도 매일매일 서로 전화하고 있고, 속초와 서울의 거리차이에도 불구하고 한 달에 한 번은 얼굴을 봐야한다. 지금은 학업이 바빠서 거의 무시되고 있지만, 집안에서는 반드시 통금을 지켜야 한다. 아버지를 제외하고는 친가외가집안에 전부 장교경력이 있고, 천주교라는 하나의 종교만을 가지고 있다. (...) 심리학개론에서 이상형은 본인의 성격과 정반대인 사람을 찾게 된다고 들었는데, 그 말 그대로였다. 우리 가정이 그렇게 답답하고 꽉 막힌 가정은 아니었다고 미리 말해두고 싶다. 그러나 나는 권위와 카리스마로 집안을 묶기보다는 가급적 자유롭게 풀어놓고 싶다. 종교에서도 그렇다. 현재로서는 냉담자이긴 하지만 안정된 직장을 찾게 된다면 나는 성당을 다닐 테고, 결혼도 성당에서 하려 굳게 마음먹었다. 그러나 내 아이에겐 유아세례를 하지 않을 예정이다. 불교와 기독교에서도 종교의 좋은 요소들을 발견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게다가 어릴 때부터 많이 놀지 못한 나에 대한 보상심리라고 해야 할까, 정해진 과제를 마친 다음엔 아이들이 바깥에서 마음껏 뛰어놀도록 기르고 싶다. 물론 나와의 상의가 필요하겠지만 클럽활동에서도 마음껏 활동하게끔 해주고 싶다. 일단 아이의 성품과 학업수준과 여러 가지를 본 다음에 상담해야 가능하겠지만, 가급적 직업도 아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게끔 도와주고 싶다. 물론 대학을 가면 고연봉 직장에 취업할 기회가 생기긴 하지만, 세상엔 수 만개의 직업이 존재한다. 내 연봉, 내 지식, 모든 것을 쏟아부어서 아이의 학업에 투자하겠지만 아이에게 수많은 가능성이 있는 미래를 보여주고 싶다. 왕따 때문에 학교에 가고 싶진 않았지만, 당시엔 학교가 전부라고 생각했던 나의 스트레스와 압박감 때문에 그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다른 모든 건 제쳐두고 반드시 남편과 아이와 함께 하고 싶은 일이 있다. 바로 등산이다. 어렸을 때 난 나를 이뻐해준 고모와 같이 자주 등산을 다녔고, 산장 사람들이 준 약초들을 통해 그나마 약해서 다 쓰러져가던 몸을 추스릴 수 있었다. 유치원을 다니던 시절의 일이지만 한라봉과 지리산을 등반했던 일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일주일에 한 번, 혹은 한 달에 한 번 정도로 시간을 정해서 가족들과 자연을 보고 직접 체험함으로서 우리 가족만이 가지고 있는 특별한 추억을 가지고 싶다. 소소할지도 모르겠으나 나는 이것이 우리 가족의 비전이 되리라고 믿는다. 학업과 간호조무사 자격증에 이리저리 치이고 있지만, 봉사활동하러 자주 다닌다. 뒤늦게 사람들을 돕는 즐거움, 즉 사람을 도울 때마다 두뇌에서 흘러나오는 도파민의 마력을 깨달은 탓도 있다. 하지만 전적으로 어머니로서의 민감성을 기르기 위해서이다.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다면, 내 아이를 이해하는 데 좋은 본보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내가 변해야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도 변하고, 아이들도 모델링을 거쳐 똑같이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도와줄 수 있겠지. 

 어린 시절에 학대를 당한 사람들의 2/3는 정상적으로 자신의 아이들을 돌보고 있다. 나도 봉사활동으로 열심히 자기수련을 함으로서 그 인원들 중에 한 명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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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험을 이틀 정도 앞두고 밤을 새서 몸이 처지고 졸렸다. 무엇보다도 나에게 이것저것을 시켰던 아주머니가 그 날은 계시지 않았다. 일을 그만두셨는지 아니면 그 날 하루만 무슨 일이 있으셨던 건지... 새로 오신 아주머니에게 물어보고 싶었지만 그 분이 너무 바빠서 그럴 수도 없었다. 그 분이 자신의 일에 대해서 잘 아셨더라면 나에게 일을 시키실 수도 있었겠지만, 그 분도 모르는 것 투성이고 스스로 배우셔야 할 일이 있었으니 어쩔 수 없었으리라. 그 분이 깜박하신 일들을 대신 했지만, 아무래도 직원복이 아닌 봉사활동 옷을 입고 일해서 그런지 사람들이 계속 힐끔힐끔 쳐다봐서 힘들었다. 그 시선이 호기심이던 경계심이던 호의던 간에, 사람들의 시선이 나로서는 여전히 부담가나보다. 그러나 나는 '묵묵히' 내가 할 일들을 해냈다. 일이 바쁘다보니 대화를 해도 왠지 어색하고 피차 살갑게 대하지도 못하고... 일하는 다른 분도 계셨지만 그 분은 남자인데다 성격도 그닥 좋아보이지 않는 관계로 패스. 자연히 6층 이외의 곳으로 내려가야 할 일은 내가 아닌 다른 직원분들이 맡아서 하셨다.  

 뭐든지 몸이 아프면 손해라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는 순간이었다. 서서 일하면서도 계속 졸음이 왔다. 다행히도 그렇게 큰 실수는 하지 않았지만 세탁실에 들어가서 잠깐 졸았던 사실이 마음에 약간 캥긴다. 덕분에 지금은 피로가 많이 풀린 기분이지만, 그 시간에 환자들을 도울 수 있었을지도 모를 일인데..  

 봉사활동자 조끼를 입으러 도서관에 들어가니 성당에서 봉사활동하시는 아주머니 한 분이 매우 따뜻한 둥글레차를 주셨다. 제 시간에 병동에 도착할 수 있도록 호호 입김을 불며 열심히 속도를 내어 마셨다. 예전부터 이 병원에 주고 싶었던 청소년용 책을 기부했다. 주고 받는 행위는 부끄러울 만큼이나 가슴떨리고 벅찬 일이다. 혹시 어느 성모병원에서 <빵과 장미>라는 책을 발견하면 꼭 한 번 읽어보시길...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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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부하느라 책보느라 평소보다 좀 더 늦게 잠을 잤다. 단지 2시간 정도 잠을 줄인 것 뿐인데 반응은 금방 왔다. 결국 병에 걸렸다. 무슨 병인지까진 말할 수 없으나 그것 때문에 돈을 좀 많이 쓴 건 사실이다. 요즘 시대엔 건강을 챙겨야 하는데, 내가 내 몸에 많이 소홀한 듯 하다. 내친 김에 치과에 가서 깔끔하게 스케일링도 받았다. 단순히 이가 좀 시려서 가까운 치과에 잠깐 들렀을 뿐인데 공짜로 CT도 찍고 (나는 까맣게 몰랐지만) 잇몸에 자리잡고 있던 염증도 없앴다. 이 이야기를 듣고서 다들 몸을 조심하라고 한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저 취직하기 전 신체검사에 행여나 문제가 생길까봐 받은 진찰일 뿐이다. 육체보다 마음을 닦는 일이 중요하지 않겠는가? 물론 육체를 갈고닦는 일도 하나의 수양이 될 진 모르지만 그것만으로 우리의 이기적인 마음까지 말끔히 닦을 수는 없다. 가급적이면 자연과 우주를 위해서 일하는 게 좋지만, 아무튼 사람은 모름지기 일해야 한다.  

 학업이 진전을 보이지 못해서 걱정이지만, 봉사활동과 공부에 맛들인 나는 전혀 피로하지 않다. 물론 하루종일 컴퓨터에 앉아서 레포트와 문서를 다듬는 내 눈은 초점이 흐릿하고, 장시간 의자와 꼭 붙어있는 엉덩이는 아프고, 봉사활동으로 인해 하루종일 뛰어다녔던 다리는 욱신거린다. 그러나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이상 불만이 있을리 없다. 이후에도 일을 할 수 없다면 봉사활동을 하고 싶다. 이른바 영어유치원 선생님이자 간호조무사이자 봉사활동가가 되는 건가.. 세 마리 토끼를 잡으려 노력하는 나는 간혹 주변 사람들에게 철 안 든 아이 취급을 받곤 하지만, 난 무슨 일이 있더라도 대학도 졸업하고, 간호조무사 자격증도 딸 예정이다. 전부 다 포기하기 싫은 나의 미래이다. 물론 당장은 이 직업들 중에서 하나를 결정하게 되겠지만, 혹시 다른 직업을 선택하게 될 지 누가 알겠는가? 일단은 지식의 폭을 넓혀나가는 게 최우선이라 생각했다.

 환자 분을 모시려 대기실에서 기다리다가 깜박 졸았다. 바쁜 간호부 언니들의 독촉에 일단 수술실로 환자를 데리러 갔지만 어떻게 해야할 줄을 몰라 멀뚱히 서 있기만 하다 간신히 주변 사람들의 도움으로 환자를 병실까지 모시고 갈 수 있었다. 이렇게 실수가 좀 있었지만, 내가 할 일은 충실히 했다고 생각한다. 오늘은 저번 주의 4배 정도는 바빴고, 병실 주변을 바삐 뛰어다닐수록 나의 나태가 없어지는 것 같아 더욱 즐거웠다. 딸기주스랑 검은깨우유를 먹으니 힘이 더욱 나서 즐겁게 일했다. 다른 사람들은 아마 "봉사활동가가 저런 힘든 일까지 하나"라고 여겼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 경험치를 높이고 사람들을 돕고 싶었을 뿐, 결코 병원의 이름을 실추시키려는 의도는 아니었다. 같이 일하는 간호사분들이 이해해주셨으면 좋겠지만. 아픈 사람들을 보면 아직도 옆에서 절절매는 버릇을 고치지 못했지만, 언젠간 침착하고 차분하게 그들을 도울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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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말로 블루한 봉사활동이었다. 레포트 하느라고 밤을 샌 다음 바로 병원에 봉사활동을 하러 갔다. 그 때문에 환자와의 개인적인 약속을 지킬 수 없었고, 자는 걸 들켜서 간호사에게 꾸중을 들을 뻔했다. 간호부 아주머니가 감싸주시지 않았다면 인생 최악의 날이 될 뻔했다. 앞으로도 밤을 샐 일이 많아질텐데 요새 체력이 자꾸 저하된다. 정말 몸을 아끼지 않고 일을 하고 싶은데, 다시 그 때로 돌아간다면 정말 민첩하게 움직일 수 있을 텐데. 아직도 나는 내 몸 생각에 여념이 없는가 보다. 내가 일을 착실히 했더라면 누구도 쉬라는 말을 하지 않았을 텐데. 나는 쉬는 행위를 끔찍히 싫어한다.

 좀 더 강해져야 한다. 좀 더 많은 사람들을 가슴 속에 품고 있어야 한다. 증오와 탐욕을 버리고 싶다.  

 어쨌던 다음주에는 몸이 좀 더 회복되겠지. 그 때만을 참을성있게 기다려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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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제는 봉사활동기인데 왠지 다양한 봉사활동을 할 일이 많아지다보니 주제가 통합되지 않는 것 같아 굳이 제목을 자동입력으로 변경한다. 양해바람.  

 일명 민족의 명절이라는 추석 때라 잠시 게으름을 떨어보기도 했지만, 병원이 대체적으로 한산했던 탓도 있었다. 그런고로 별로 할 일이 없었다. 평소처럼 환자들을 X-ray 찍는 곳까지 데려다주고, 환자복을 차곡차곡 접어서 개고, 아이스백을 만들고, 이불을 만들었다. 코가 부러진 대학생 환자를 휠체어에 앉혀서 이송했는데, 할아버지라는 분이 굉장히 유머감각이 있으셔서 이야기하면서 한참 웃었다. 공부와 경제적 문제 때문에 스트레스가 쌓이는 요즘에 그렇게 웃어본 것도 오랜만이다. 본성이 나와서 잠시 간호사분들과 싸움을 할 뻔했으나, 청소하는 아줌마들이 솜씨좋게 우리의 싸움을 막아주셨다. 수술실에 침대를 넣을 공간이 없는데, 거기서 기다려봤자 뭘 어쩐다고.. 차라리 병동으로 올라가서 다른 일을 하다가 나중에 내려가는게 더 시간절약되겠다. 결국 자기네들이 갈 시간이 없어서 시키는 주제에. 이제 변명은 접어두고. 

 병원에 있는 분들과 하루종일 수다를 떨었다. 역시 남 험담하기는 재미있다(?) 주로 병원 안에서 근무하는 남자들이 성의가 없네 어쩌네 하는 이야기였지만, 내가 생각하기에도 환자 옷을 빨래방에 갔다주지도 않고 하룻동안 방치해둔 일은 좀 너무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의사같았으면 당장 짤랐지... 쯧쯧. 병원에 입원해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옷과 시트의 청결은 매우 중요하다. 병원에 있으면서 본인도 요새 어울리지 않는 깔끔을 좀 떨게 되었다고나 할까, 아무튼 병원에서는 자기자신과 타인의 청결을 챙기는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심지어 밥보다도 중요하다. 

 점심을 굶었다고 이야기하니 수간호사님이 초코우유와 토마토주스를 가져다주셨다. 그리고 수녀님이 아직 온기가 뜨끈뜨끈하게 남아있는 떡 두 개를 싸주셨다. 두고두고 먹기 위해 전부 가방에 챙겨서 집으로 가져갔다. 일하는 것도 어설픈데 항상 많이 챙겨주시니 괜시리 미안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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