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년 5 - 1931-1935 만주침공과 새로운 무장투쟁 (박시백의 일제강점기 역사만화) 35년 시리즈 5
박시백 지음 / 비아북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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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유는 농민으로 변장해 양주로 가서 아지트를 마련하고 이관술과 함께 출판 활동을 이어가기로 했다. 적기를 제작, 베포하는 방식으로 조직사업을 벌여가기로 한 것. 그러나 베포자들이 체포되기 시작했다. (...) 조선총독부 기관지인 경성일보는 호외를 발행해 '집요 흉악의 조선공산당 마침내 괴멸하다'라는 표제 아래 그의 검거를 보도했다.

 

위키에서는 김일성에 대한 자료가 제각각이다. 일본어로 대강 읽어보면 중국공산당에 입당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 책에서도 그렇게 쓰여 있다. 다음엔 중국에 나온 김일성에 대한 기록을 찾아볼 계획이다. 아무리 일본이 북한에 대한 관심이 많다고 해도 그렇지 바로 붙어있는데다 옛날엔 우리나라였던 곳의 수장에 대해서도 똑바로 기록을 못한다니 한탄스러운 일이다.

그리고 북한이 친일파를 다 숙청한 건 아니다. 예를 들어 어떤 친일파 여배우는 북한에서 천수를 누리다 가셨고, 또 다른 친일파는 박헌영 남로당 종파 사건에 연루되어 처형당하셨다고 한다. (여기서 인상적인 게 유용희라는 분인데, 그 난리통 속에서 박헌영이 남로당으로 통합할 때 너무 독재적! 이라며 미리 빠져나가 월북해서 70세까지 장수하셨다 한다. 이런 게 바로 어딜 가도 살아남는다는 사람 아닌가? 존경스럽다.) 실제로 북한 당과 군 고위인사에는 일본군에서 종사했던 인물등 친일행적이 있는 인물들이 다수 있었다. 단지 반대파 숙청할때 주로 사용했던 명분이 친일파였었고, 이게 NL들에 의해서 "북한은 남한과 달리 친일파들을 모조리 숙청했다!" 라는 식으로 홍보된 것이다.

 

아무튼 일본은 이 시기쯤 되면 한국은 그냥 다 먹었다 생각했는지 만주를 정말 소중히 여기는 모습을 보인다. 임진왜란 때 중국으로 진출하지 못한 한이라도 있었는지..

그나저나 세계최종전쟁론을 주장한 사람이 이시와라 간지라니 크. 한자로 뭐라 하는지는 몰라도 이름부터 벌써 남다르네. 최종병기그녀란 만화 이름도 막 이런데서 유래했다던가?

 

김우진 1897~1926

대학 시절 일본에서 극예술협회를 만들었으며 졸업 후에도 고향에서 시, 희곡 창작, 평론에 몰두해 48편의 시와 5편의 희곡, 20여 편의 평론을 썼다. 이후 소프라노 윤심덕과 함께 도피하다가 현해탄에서 자살했다. 

 

아니 이거 도약이 너무 심하지 않습니까;; 뭘 어떻게 하다가 갑자기 이렇게 생을 끝내는 건데. 궁금해서 찾아보니 역시 김우진은 유부남이었고(...) 연애를 하지 말라는 건 아니지만 그럴거면 애초에 결혼을 하지 말아야 하는 것 아닌가.

김일환 1901~1934

독립운동가. 본명은 김용석, 강원도 양양군 출신이다. (...) 대성촌에서 교사 생활을 하는 한편 1930년 5월 허룽현과 옌지현(연길현) 일대에서 일어난 반제반봉건운동에 참가하던 중 중국공산당에 입당하고 허룽현위원회 서기가 됐다. 1933년 11월 친일 주구 자치단체인 민생단원 혐의를 받아 서기직을 박탈당한 이후에도 계속 활동했으나 1934년 같은 혐의로 중국공산당에 체포돼 11월에 열린 대중 재판에서 사형선고를 받았다. 대중들의 변호로 석방되나 석방 직후 중국인 동료들에 의해 비밀리에 살해됐다. 

 

양양군 중에 유독 이름난 사람들이 많더라. 그런데 뭔가 이력이 길게 쓰여진 사람은 친일파고(...) 그래서 이 분이 굉장히 이질적이다. 그러나 또 생애는 굉장히 짧아서 안타깝고. 그런데 나도 30대 되면 죽어야지 생각했었는데 어떻게 또 살아있네. 그래서 이렇게 짧게 살고 간 사람들 보면 부럽긴 하다. 비록 누명쓸 뻔하긴 했지만. 의혹이 있다지만 서기직에서 짤려도 계속 공산당 활동을 했다고 하니 진심으로 일하고 싶던 거 아니었을까 싶네.

손목인 1913~1999

대중음악 작곡가. 경상남도 진주 출신으로 1932년, 도쿄제국음악학교에 피아노 전공으로 입학했고, 1933년 귀국해 오케레코드사에서 대중가요 작곡을 시작했다. 이후 다시 도쿄고등음악학원에 편입하고, 귀국해서는 오케레코드사와 콜럼비아레코드사에서 타향, 목포의 눈물, 돈도 싫소 사랑도 싫소 등 다수의 가요를 작곡했다. 1937년 이후 일제의 침략전쟁을 미화하는 가요를 작곡하는 한편, 1944년 2월 매일신보가 조직한 매신산업전사위문격려대의 대원으로도 활동했다.   

 

내가 저 노래들에 대해 잘 몰라서 뭐라고 말은 못하겠네. 아무튼 저 초창기 가곡들 이후의 트롯트를 작곡한 사람들 중 몇몇은 친일파라는 사실만 알고 있다. EBS에도 보도했지만 결국 뉴트로의 흐름을 막지 못했지. 아무튼 트롯트 그만 틀었음 좋겠다. 좀 지겨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서 나오는 가곡들에 대해선데.. 일단 한 번 듣는게 낫다. 아직 10대들도 할머니에게서 이 노래 들으려나? 모르겠다. 일단 이정표의 경성살롱이란 앨범이 저 당시의 핵심적인 곡들은 다 연주하고 불렀으니 참조.

https://youtu.be/AvE8aq4eg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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