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쓸해서 비슷한 사람 - 양양 에세이
양양 지음 / 달 / 2014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연극은 심심했다. 그렇지? 그래서 나는 좀 미안하고 아쉬운 마음이 들었는데, 그래도 새로운 장르를 보았다며, 재미있었다고 말해줘서 다행이었어. 극장에서 나와 무엇을 먹을까 밥집을 찾아 나서며 우리는 그래도 신선한 기분이 되었던 것 같아. 낯선 동네의 낯선 공기가 주는 힘은 그런 거지. 그리고 들어간 식당에서 철판볶음에 소주와 맥주를 시켜놓고 이야길 나누었지. (...) 너는 많이 힘들다고 했어. 우울함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고 했지. (...) 나는 너에게 왜 우울하냐는 바보 같은 질문은 하지 않았어. 우리는 모두 우울할 수백 가지의 이유를 안고 살고 있으니까. 그러고 보면 날씨가 궂어서 우울하거나 사랑이 없어서 우울한 우울은 참 명쾌하고 순진해서 귀엽게 여겨지기까지 한다. 네 우울의 이유가 무엇인지 아마 너는 알고 있었을 거야. 단지 그것은 너무 많은 것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어서 하나하나에게 이름을 주고 나누어놓기도 전에 손쓸 수 없게 된, '우울'이라는 실 뭉텅이가 된 거지.

 

 

 

앞으로도 리뷰를 쓰면서 더 구체적인 에피소드를 소개하겠지만 이 사람은 참 남의 말을 잘 들어주는 것 같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이 사람은 남의 일을 해결해주려 슈퍼맨 자세를 취하지 않는다. 사회생활 해보면 알겠지만 나락에 떨어지고 있는 사람에게 이런 자세를 취해주기가 참 힘들다. 특히 나같은 선천적 오지랖퍼는 어떻게든 참견해보려 하다가 결국 내가 나자빠진다. 이걸 눈치챌 때까지 참 오랜 시간이 걸렸다.

 

최근엔 막귀가 되어 아무 노래나 듣고, 기능 갖춘 이어폰 중 가장 싸구려라는 5000원짜리 다이소 껄 끼고 다닌다. 한때는 머리칼이 망가지는 걸 감수하고 헤드셋이나 몇 만원짜리 이어폰을 구입한 적이 있다. 그러나 결국 그것들은 오래 쓰지 못했다. 내가 막 쓴다는 이유도 있지만(...) 세상의 소리를 듣지 못해 몇몇 실수들이 일어나는 때가 많아지기 때문이었다.

도리어 난 스피커같은 것들을 구입할 땐 그렇게 신경을 쓰면서 산과 바다 옆에서 살지 않는 사람들이 이상하다. 예전에 팟캐스트 방송에 출연했을 때 음악을 좋아하는 진행자들과 만났는데, 시골에서 살면 뭐가 좋냐고 물어봤다. 그래서 '걸으면서 파도소리와 새 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얘기하니 어떻게든 자신이 사는 수도권에서도 들을 수 있다고 트집을 잡으려 하더라. 음악을 듣는 데선 그렇게 깐깐한 사람들이 자연의 소리를 듣는 데에선 소홀하다니 우스웠다. 자연의 소리가 음악의 근본일 텐데. 그런 점에선 이 글쓴이와 내가 통하는 점이 있는 듯하다. 시작하는 글이 굉장히 좋았다.

 

표지에서도 그렇고 저자는 큰 창문을 굉장히 좋아하는 것 같더라. 자꾸 바깥을 들여다보는 장면이 등장한다. 나는 창문에 누가 엿볼까봐 꼭 커튼 달아놓는데 ㅋㅋ 이런 점에 대해서는 글쓴이와 내가 많이 다른 듯하다.

 

 

 

소파 바닥

 

내 발이 여기에 닿아 있는 동안, 같은 영화를 세 번도 보았고, 낄낄거리며 무한도전을 보면서 새우깡을 씹었고, 책장을 넘겼고, 접었고, 줄을 그었고, 달이 두 개다, 하고 일기장에 적었다. 그렇게 적은 밤에는 취했었다. 그러다가 기타를 튕기기도 했다. 어떤 것은 노래가 되었고, 어떤 것은 흔적없이 바람 속으로 사라졌다.

엄마를 생각했다.

엄마를 생각했으나 엄마에게 가지 못하고,

내 발은 여기에 오래 머무르며 그저 웃고 울었다.

 

 

 

양양이라는 싱어송라이터가 쓴 책이라 음악가사처럼 쓰여진 글이 종종 보인다. 시도 간혹 있는데,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아 나처럼 입으로 읊은 다음에 옮겨적는다고 하더라. 동지가 생긴 듯하여 반가웠다.

소파는 역시 소파에 기대어 방바닥에 앉기 위한 용도가 아닐까 싶다. 그나저나 시간이 지나고 나니 이제 무한도전도 추억이네. 껄끄러운 과거가 되었지만;

 

이 기차가 이렇게 오래 달리는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물론 빠른 신식 기차가 아닌 까닭이기도 했지만 그것보다 기차는 정말 많은 곳에 멈추어 섰기 때문이다. (...) 기차는 영월, 예미, 민둥산을 들렀고, 고한, 태백을 넘어 도계, 동해, 묵호까지 어떤 마을도 잊지 않고 방문했다.

 

 

 

내 생각엔 요새 KTX 둘러싼 갈등처럼 어느 한 군데에 기차 놓는다고 하니깐 관광객 모아 돈 벌려고 너도 나도 역 놓는다고 싸워서 다 놓다보니 그렇게 된 거 같은데 ㅋㅋ KTX가 빠르면 뭐하냐 역 졸라 많아질텐데. 난 이리 생각이 드는데 책은 아기자기하게 표현하는 걸 보면 주변 사람들 말대로 글쓴이가 긍정적인 성격인 건 맞는 것 같네.

 

나누어보니 이것은 사람과 사람의 일이고 내용보다는 태도의 문제이며 '나'를 바라보는 일이었다. (...) 여보세요, 하기도 전에 팡파르 소리와 함께 흘러나오는 자동응답 기계음을 받는 것보다는 훨씬 덜 허무하고 덜 쓸쓸하지 않은가.

길고 긴 세 번의 통화를 끝낼 때 상담원께서는 그 친절한 목소리로 "네, 고객님. 긴 시간 통화 나눠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저는 OO카드 OOO이었습니다. 오늘도 좋은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하시고는 또 한마디를 덧붙이셨는데 나는 그 말이 텔레마케터의 통화 매뉴얼에는 없는 것이라는 걸 안다.

"고객님, 따뜻한 겨울 보내세요."

 

 

 

내 생각에는 둘 다 보살같은 성격을 만나신 듯하다. 화자야 뭐 당연하겠지만 텔레마케터는 매뉴얼과 다른 말을 할 경우 상사에게 혼나거나 심할 땐 일자리에서 쫓겨난다고 들었는데.. 저런 용기 내기도 쉽지 않았을 듯하다.

 

곁에 커피라도 있으면 둘이 하는 모습이 아주 가관이다. 초콜릿 한 조각 먹고 아 달아, 하며 커피 한 모금 마시고, 커피 향이 입에 퍼지면 아 써, 하며 다시 초콜릿 한 조각 먹고, 아 달아, 커피 한 모금, 아 써, 초콜릿 한 조각, 아 달아, 아 써, 아 맛있어, 아 달콤해. 탁구공이 똑딱똑딱 오가듯이 주거니 받거나 잘도 노는 것이다.

 

 

 

예전에 일하는 곳 앞에 초콜릿 음료에 초콜릿 덩이들을 뿌려주고 그 다음 돈을 좀 더 추가하면 그 위에 에스프레소를 부어주는 카페가 있었다. 돈만 생기면 거기 가서 마셨는데, 가성비가 너무 맞아서 장사가 안 되었던지 언젠가부터는 돈을 추가해도 에스프레소를 부어주질 않았다. 그런 카페가 있다면 세계 어디에 있던 다시 찾아가보고 싶네. 20대 후반의 추억이 많았던 데라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