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는 여자는 괴물과 함께 잠을 잔다
김은주 지음 / 봄알람 / 2017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며느리의 스냅 사진들 중에서

 

에이드리언 리치

 

생각하는 여자는 괴물과 함께 잠을 잔다.

그녀는 자신을 물고 있는 부리가 된다. 그리고

용수철 뚜껑 같은 자연은, 시간과 도덕을 담고

아직 쿨렁쿨렁한 그 납작한 트렁크에

이 모든 것을 채운다. 곰팡이 핀 오렌지 빛 꽃

여성용 약품들, 납작 누른 여우 머리와 난초꽃 장식 밑으로

흉측하게 튀어나온 보디세아의 젖가슴.

 

잘생긴 여자 두 명이, 도도하고, 날카롭고, 미묘하게,

논쟁을 벌이고 있다.

 

 

도서관이 열려 있었을 때 아무 책이나 철학과 관련된 도서를 보려고 도서관에서 철학 코너를 뒤지고 있었는데 인상깊은 제목이 보였다. 마치 노랫말 같아서 내용도 안 보고 대뜸 집었는데 펼쳐보니 평소 읽고 싶었던 에이드리언 리치의 시 일부가 적혀 있어서 기뻤다. 이렇게 아무렇게나 책을 집어도 정답일 때는 꽤 드물다.

 

일부 급진적인 여성모임에서 여성을 억압하는 말이 많은 책은 보지 말자는 이야기가 있었다. 그런 부류 중 가장 심한 게 철학 계열이라 생각한다. 철학 좋아한다는 사람들과 여럿 만났지만, 자신이 페미니스트라 생각하는 사람조차 진정 여성의 마음을 이해하는 남성은 드물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들은 철학책을 읽어야 한다. 그 책을 비판적인 시선으로 읽어내면서 깔 건 까고 수용할 건 수용해야 여성으로서의 지식이 향상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일부 급진적인 여성모임까지 포함해서, 이제 여성주의 작작 좀 받아들이자. 아직도 여성 철학자 없다 주장하고 지만 철학자 하겠다는 모 씨가 아직 책을 출판하는 시대이긴 하지만, 언제까지 시대에 뒤처질 거냐 한남들아. 오늘 어떤 분이 논문을 소개해줬는데 서문에 남자들이 군대 가는 동안 여성은 취업해 승진의 기반을 쌓으니 결혼 전에는 성별 상관없이 임금 받는 양이 쌤쌤이라는 데서 실소했다. 그게 과연 군대 때문이냐? 니네들이 커뮤에다가 쓸데없는 글 쓰고 게임 회사에다가 고급 소파 하나 장만할 만한 돈 바치느라 시간을 바친 게 아니라?

 

간간히 유명한 영화와 빗대어 철학을 알기 쉽게 설명해주는 게 이 책의 좋은 점이다 ㅎ 한편 시몬 베유가 강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는데, 이는 내 의견과도 일치한다. 예를 들어 영화 그래비티처럼 자식이 죽어서 그 슬픔으로 우주를 떠돈다 해도 그 자식은 살아 돌아오지 않는걸.

 

1964년 1월 독일의 한 텔레비전 시사 프로그램은 아렌트를 초청했고, 진행자는 곧바로 아렌트가 대단히 '남성적인 직업을 가졌다'는 것, 즉 철학자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프로그램 진행자는 아렌트에게, 세상의 인정을 받고 많은 존경을 받는 그도 여자라는 이유 때문에 자신이 학계에서 수행하는 역할을 독특한 것으로 인식하는지 묻는다. 아렌트는 이에 자신의 전공을 정치 이론이라고 대답한다.

 

 

이건 진행자가 무례하네. 철학자가 어떻게 남성적인 직업이야? 이래놓고서 가르치려 드는 남자에게 한남이나 미소지니라고 하면 '딱히 한남이라서 그런 게 아니라 저 v일부v에 속하는 남자가 무례한 겁니다'라고 댓글테러하지. 진행자는 '남성적'인 육체 노가다나 뛰었으면 좋겠다 ㅋㅋ

 

 

꿈에서 날 가장 많이 속썩이던 전남친의 와이프랑 애까지 돌봐주는 꿈을 꿨다가 새벽 3시에 깼다(...) 지금은 기분이 개떡같지만 꿈꿨을 때 나는 기분이 좋았고 헌신적이었다. 이놈의 노예근성;

로자와 레오 요기헤스에 관한 글을 봤기 때문인 것 같다. 그 둘의 연애사 때문에 로자는 평전에서도 비난받고 아렌트가 변호해주지 않았으면 그냥 '남자들로 인해 신세 망친 여자'로만 남을 뻔했다고. 한남들은 꽃뱀이 많다고들 하지만 그래도 일반적인 경우 연애를 손실로 따질 때 가장 손해 많이 보는 건 여자인 듯하다. 실제로 철학자에 관한 책들 꽤 보고 있는데도 이 책을 보지 않았음 평전에서 로자가 매도되었다는 사실을 몰랐을테고.

그나저나 이 책에서도 아이히만에 대한 유태인의 강압적인 체포에 대해 비난했다고 쓰여져 있네 ㅋ 독서모임에서 그게 아니라고 끝까지 주장한 선생과 싸운 적이 있어서. 게다가 그 분은 나에게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책을 직접 빌려주셨다는데.. 안 읽었으면서 읽었다고 하는 것 같다. 한 번만 읽어도 금방 유태인 까는 구절이 보이는데 ㅋ 아직도 그 책 벽돌로 쓰시는지 궁금하다.

버틀러는 계속 자신의 욕망에 관해 질문한다. 내 욕망은 틀린 것인가? 나는 여자의 옷을 입어야 하고, 여자답게 말해야 하며, 남자와만 데이트해야 하는가? 나는 생물학적 여성의 신체적 특징을 드러내는 옷을 입어야 하는가? 성적 욕망의 방향은 어디로 향해야 하는가? 내가 사람들의 눈을 피해 몰래 게이 클럽에 다니는 것은 잘못된 일인가?

 

 

부녀자로서 바람직합니다 음? (사실 퀴어축제 따라다니고 여러 커플들을 접하면서 부녀자로서의 환상은 거의 깨진 상태이지만.)

 

어린 시절부터 꽤 조숙했던 버틀러의 꿈은 철학자 또는 극장에서 공연하는 광대였다. 철학적 논의로 세계적 학자가 된 그의 현재를 보면 그 꿈은 지금에 와서 어쩌면 이루어진 것인지도 모른다.

버틀러는 유년기부터 10대 시절까지 유대인으로서 교육받았다. 히브리어를 배웠으며, 열네 살에 유대 회당에서 개최한 윤리 특별 강좌에 참석해 처음으로 철학 교육을 받았다. 철학을 배우기 시작했을 당시 버틀러는 무엇을 공부하고 싶은지 자신에게 물었고 이때 온몸이 열기에 휩싸인 듯 몹시 흥분했었다고 회고한다.

 

 

한나 아렌트도 그렇지만 이 분도 저런 걸 이해하신다니 ㄷㄷ 둘 다 천재인 건지 아님 유대인 교육의 힘인지.

 

'개인이 피켓들고 시위해봤자 사회는 바뀌지 않는다'는 동생의 말에 '야 1인 시위도 있어'라고 반박했지만, 책의 구절대로 한다면 '개인이 만일 규범과 다르고, 그 규범에 자신이 선천적으로 맞지 않는다면 그 규범을 바꾸려 노력하면 되는 거야'라고 반박하는 게 더 조리있지 않았을까 싶다. 물론 이것도 동생이 생떼를 써대면 어쩔 수 없이 실패하겠지만. 스피박의 발언도 가슴에 와닿는다. 깨달음이란 전혀 새로운 것을 알게 되며 이전의 아집에서 벗어나는 것이란 내용이라던가, 평이한 책이란 속임수가 내제되었단 걸 의미한다던가. 작은 책인데도 여러모로 얻는 교훈이 많다. 버틀러가 레즈비언이었단 것도 처음 알았다(...) 이건 철학을 다루는 사람들이라면 제일 먼저 알려주었어야 할 사실 아닌가?

크리스테바는 구조의 완결성과 자족성에서 벗어난, 역동적 의미 생산에 대한 탐구를 상호텍스트성이라는 개념으로 발전시켰다. (...) 문학 작품을 비롯한 모든 문헌은 한 작가의 생산물이라기보다는 그 외부에 존재하는 여타 문헌들과 미디어 자료, 언어 구조와의 상호작용으로 생산된다. 상호텍스트성은 문학 작품 안에 다른 문학 작품을 거론하거나, 문헌에 영화, 노래, 미디어의 글이나 프로그램, 사회적 사건이나 맥락 등을 거론하는 형태로 이뤄진다.

 

 

크리스테바에 대해 쓴 글 보니 오랜만에 내가 전에 푹 빠졌던 바흐친 나오더라 반가웠다 ㅎ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