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에도 주량이 있다면 현대시세계 시인선 43
박수서 지음 / 북인 / 2013년 10월
평점 :
절판


짜장면

 

 

 

중국집에서 물컵에 젓가락을 담그고

주방을 바라본다

후드득 튀어오르는 기름방울이

메리야스를 뚫는다

가슴에 화상을 입고 벌려진 상처에 연고를 바른다

너의 손이 아니리라

짜장을 볶는 손이 너의 손이었으면 좋겠다

당신 슬픔이 아직 버물려지기는 이른 오후,

암실에 숨은 꽃, 춘장의 역사처럼

내내 가슴에 얼룩을 남겼을 너의 손을 생각한다

 

달콤한 짜장 한 사발 후루루 말아먹고

이빨에 낀 미련까지 기꺼이 마서버린다

 

내 사랑 그렇게 달고 쓴 상처로 비벼졌으면 좋으리

 

문 밖은 비가 내리고,

양파 때문에 콧물이 들락거린다

 

남겨진 검은 면발이 배갈 같은 눈물에 퉁퉁 부운 속살을 들어낸다

 

크 짜장면에 빼갈이라니 뭘 아시는 분이네요.

이 시집을 출간한 시인 분은 내 페친이시다. 언젠가 버스정류장 종점까지 가게 되어 아이들이 할일없이 노닥거리는 애니메이션을 보며 '학교 따위 째고 놀면 좋았을 것을 왜 그리 개근상에 집착했을까'라고 쓴 댓글에 좋아요를 누르신 분이다. 내 아버지께서는 어릴 때부터 남의 집에 돈을 벌러 가신 분이셔서 일이 생활습관이 되신 분이지만, 사실 노는 걸 가장 좋아하는 분이시다. 친구들과 당구 내기를 하고, 진 사람이 맛집에서 음식을 한 턱 쏘는 걸 가장 좋아하신다. 이 시집에서도 음식과 관련된 시들이 상당히 많다. 잘 놀고 노는 걸 좋아하시는 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내 고향 포장마차

 

정주에 들어서면 정줄 일이 아니라 했다

오다가다 몇몇 사람이 멸치국물 끓는 소리에 찾아들 것 같은

시기동 내 고향 포장마차

정읍의 옛날 이름 정주, 이제 잊혀 버렸지만 여기 포장마차

아줌씨는 아직도 정주시민이다

지독하게 정주에 살며 아들딸 일구고

이제는 아들딸 살피듯 후덕하게 안주도 내어 놓는다

닭발, 멸치국수, 숙취에 최고라는 계란 프라이까지

술을 마시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의 경계를 마신다.

이곳에 오면 몇 순배 술잔이 돌아가면 모두 친구다

즉석에서 노래도 부르고 시도 짓고 간장보다 짠 음담도 날리고

무엇보다 아줌씨의 털털한 웃음이 일품 양념이다

가을이 오고 꽃이 서러워 죽겠는 날은

송형, 정형, 오형 불러 그날처럼 닭발에 소주 한 잔 해야지

아, 선머슴처럼 쾌활한 예쁜 하 선생도 불러서

멸치국물 엎을 때까지 한 잔 마셔야지

 

시집 제목처럼 술 마시는 얘기가 먹을 것만 나오면 정말 빠짐없이 나온다. 슬픔에도 주량이 있다면 다음에는 역시 펑펑 모기처럼 마셔야 겠다는 후담도 있고 ㅎㅎ 그나저나 멸치국수는 한 번 먹어보고 싶다. 남쪽에 갔을 때 멸치국수 전문식당 들러보고 싶었는데 어르신들은 멸치국수 싫어하시는 것 같더라. 뻔한 맛이라나. 난 만화책에서 처음 봐서 일본에서만 있는 음식인 줄 알았다.

박쥐 3

청춘극장을 접고 잔혹극장을 인수한 사내는 극장 인테리어로 외벽을 필름으로 꽁꽁 감고 내부 매표소를 제외하고는 모든 조명을 철거했다. 사내는 극장뿐만 아니라 통속영화 속 배신당한 호스티스처럼 전깃줄에 목을 매고 죽은 여자의 영혼과 운지버섯처럼 군락을 이루고 엉켜 있는 박쥐 떼도 함께 인수했기 때문이다. 로비에서는 영업시간 내내 즐거운 오페라가 울렸고, 관람장의 속사정을 모르는 관객들은 눈이 어둠에 적응되도록 크게 뜨고 있거나, 휴대폰 전원을 켜거나 하며 한참을 주저하다 관람석에 앉는다. 광고 한 조각 내보내지 않고 상영시간표에 딱 맞춰 영화는 시작되고 가끔씩 스크린 밖으로 흘러나오는 여자의 치맛자락이 씨나락 까먹는 소리를 낼 뿐 별다른 증후는 없다. 유쾌한 영화가 끝나고 관객이 빠져나간다. 네펜테스아텐보로이처럼 여자가 박쥐 떼를 먹어치운다.

 

 

전체적으로 시집은 밝은 분위기인데, 가끔 이렇게 뼈를 치는 듯한 사회 비판적인 시가 나오곤 한다. 60년대 공포영화에 대해서 다룬 책을 읽었을 때가 생각난다. 누가 잘못했는지는 제껴놓더라도, 피해를 입는 건 대부분 여성이더라..

원조

 

 

내가 사는 촌에도 원조가 있다.

엄마가 높은 지붕 같은 밭에서 라디오처럼 지직, 지지직거리며 밭도랑을 일굴 때

그 지집애는 원조교제를 했다.

원조는 원조 보쌈, 비빔밥이 아니다.

옆방에서 누가 세상을 통째로 삼키는 줄도 모르고

그 지집애는 방바닥을 긁으며

엄마, 엄마, 하며

 

밑동을 잘랐으리라.

 

 

 

근데 역시 이 시집도 시집이라 그런지 간혹 이렇게 난해한 시가 나오곤 한다. 세상에 대해 모르던 여자애가 빡세게 알아가는 과정을 원조라 표현한 것 같은데(요즘 표현으로는 찐이라 할 수 있을 듯.) 처량하기도 하고 좀 무섭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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