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가난한 비 푸른사상 시선 27
박석준 지음 / 푸른사상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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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과 밤 중에서

 

알고 싶은 사람은 가 버렸고, 그들이 언젠가 남겨 놓은 술잔엔 눈에 보이는 지금의 사람만 새겨져 있다.

 

사랑은 가고 옛날은 남는 것! 이런 노래 구절 하나만으로도 절규하던 시절이 있었다.

 

시간의 잔상이었다, 알고 싶지 않은 사람들 속에 섞여 있으면서.

(...)

파스토랄! 그건 어디에 있는가? 빈센트! 그의 그림에는 비가 내리지 않는다. 블루 벌룬, 그건 가난한 빗속에 떠 있을 수 없다.

 

그렇게 생을 잃어간다. 밤과 술이 빗속에 있던 날에.

 

 

젊은이들은 이제 스스로를 위로하고 힐링할 힘마저 잃었는지, 이제 점점 자신을 힐책하는 듯한 구절이 나오기 시작한다. 그러나 가난의 비만큼 사람을 작아지게 하는 게 없다고 시인은 단언한다. 시에서는 밤이 오거나 눈 혹은 비가 내리는 배경이 등장한다. 그러나 시인은 자신의 마음이 밤이고, 눈 혹은 비가 한창 내리는 중인지 바깥의 상황을 인식하지 못하는 듯하다. 시인은 눈과 비를 그대로 맞으며 거리를 다닌다. 이 시를 독백처럼 중얼거리는 시인의 어깨가 눈에 그려지는 것 같다.

 

읽고 싶은 시집이 많았지만 일단 이 책부터 집었다. 그보다 오래 전부터 페친에게 보겠다 약속했고 직접 사서 사진까지 찍어 올렸는데 아무리 책을 묵혀두는 나일지라도 도저히 이 이상 내버려둘수는 없었다(...) 어머니는 이 책을 잠시 읽어보고서는 "야, 이런 시는 나도 쓰겠다(허언은 아닌게 어머니가 시를 써서 카카오스토리에 올린 걸 어느 등단한 시인이 자기 시인마냥 자랑스럽게 베껴 올린 적이 있었고 어머니는 그 후로 절필을 선언하셨다. 자신이 그딴 부류와 동류가 되긴 싫다나.)"라고 하신 적이 있는데 그 정도로 쉬운 시이다. 요즘엔 쉬운 시라고 말하는 게 인기의 기준이 되니까. 그만큼 일상에 근접한 시라는 얘기도 될 것이다.

 

시인이지만 또한 미술 선생님이기도 한지 시 안에 그림이 들어가 있다. 하나하나 검색해서 보는 걸 추천하는데, 선택된 그림에서까지도 화자의 비애가 잘 드러나있기 때문이다. 그러고보니 선생님은 선생님으로서의 보람, 아이들의 귀여움을 쓰는 게 보통이 아니었나. 시간강사 선생님의 가난에 대해 액면 그대로 적나라하게 쓰여진 글을 읽는 건 처음인 것 같다. 개인적으론 글이 가식적이지 않고 솔직해서 좋았다 ㅎ.

 

시인의 말

 

시간을 전제로 하는 삶에는 바탕이 되는 공간이 있어야 하는데, 내가 주로 살아왔고, 지금도 살아가고 있는 공간은 자본주의 사회의 도시들이다.

 

도시에서 도시로 들어가는 길을 따라 내가 출퇴근하는

쓸쓸한 체제

말들이 여러 곳에 흩어져 있다.

트위터, 페이스북, 블로그, 카페, 핸드폰,

시.......

말들은 사람을 부르고 말 밖에서 사람이 버려진다.

"말이 빠진 곳, 아무것이 없으면 어떠리"라고 어느 시인은 표현하였지만.

 

돈이 알 수 없이 굴러다니고 있는 도시들과, 그것들 사이에 자리해 있는 여러 움직임들이 나와 마주하고 있는 세계의 실재라면 나는 우선 그런 세계에 관한 것들을 써야만 할 것이다. 말을 알아간다는 것이 고달프지만.

말로 표현해야 할 사정을 말로 표현하지 못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말로 표현하여 사정이 제대로 인식되고 새로워진다면 좋겠는데.......

말은 요구와 충당으로 그 형태가 드러난다. 내가 표현한 말이 나와 마주하고 있는 세계에서 시로 남을지 무엇이 될지 알 수 없지만.

 

 

마지막 출근투쟁처럼 시위와 관련된 절절한 시와 긴장감 넘치고 공포스러운 내용의 시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평론이 극찬하는 것도 그런 종류의 시인 듯하다. 그렇지만 나는 드문드문 나오는 사랑시가 그렇게 재밌더라 ㅎㅎ 여자의 마음이 자신을 보고 흔들렸다는 섣부른 판단까지도 흥미진진했다.

 

한 소년 중에서

 

내비게이션에 찍힌 수만리, 중학교 졸업 후

36년 만에 만나게 된 친구가, 우연히

TV에서 알게 된 서로의 옛 친구가 산다는 곳

찾아가자고 오늘 낮 서둘렀지. 친구 차로 출발했어.

 

세 시 반 산속 마을의 길 위로 어디서 본 듯한

얼굴이 나타나더군. 구렛나룻의 얼굴은

내 기억이 담고 있는 얼굴이었어. 이 민박집 주인은

나를 보며 '입술이 파랬던 아이'를 말했지.

 

그 집에선 개가 짖었고, 닭들이 사람을 피해

구구구 하며 움직였지. 사가지고 간 닭튀김과

민박집 주인이 담가둔 동동주가 너무 잘 어울렸지.

자넨 그림에다가 보라색을 먼저 칠했지. 나는

녹색 잉크만 썼고. 집에 그것밖에 없었으니까.

40년이나 멈춰진 소년 시절을 셋은 그림처럼 그렸지.

 

 

일반화를 하면 안 되지만, 남자들은 여자들보다 비교적 친구를 오래 사귀는 것 같다. 어디 산다는 걸 아는 것만으로 바로 만나러 가고.

40년만에 친구를 만나면 어떤 기분일까 궁금해진다. 난 친구도 적고, 무엇보다 아직 그만큼 살아보지도 않았지만.

지난날

ㅡ2008년

 

피카소 소리도 듣지 못했을 텐데....... 열 살 된 아들이 그린 그림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ㅡ나갈길이없다.) 피카소 같았다. 2008년의 종이 위엔 컴퓨터 게임의 캐릭터들이 만화로 재생되어 있을 뿐 길은 없었다.

 

2007년 여름, 고양이 밥을 마당에 내놓은 사람은 모성을 잃은 늙은 어머니였다. 수염을 빳빳이 세운 동네 큰 고양이가 어머니의 작은 고양이를 힘으로 내쫓고는 밥을 빼앗아 먹었다.

 

열 살 된 꼬마는 아홉 살 때 아빠를 졸라 치즈피자를 저 혼자 먹었다, 아빠는 꼬마의 다운된 컴퓨터 게임을 재생시키려고 컴퓨터를 수리 중인데. ㅡ저리 가, 망할 것! 큰 고양이를 쫓는 어머니의 소리가 컴퓨터를 파고들었다.

 

어머니의 소리를 알아들었는지 큰 고양이는 갈 길을 찾아 나갔다. 2008년 봄 50대인 나는 병실에 와 있었다. 뇌일혈로 말없는 어머니를 나의 난시는 잘 알아볼 수가 없었다. (ㅡ나갈길이없다.) 어머니 뇌리에는 이 말만 맴돌고 있는 것 같았다.

 

 

다른 시에서도 그렇지만, 화자는 의식하지 않는 척하면서 은근히 어머니를 작중에 많이 배치하는 모습을 보인다. 돈을 많이 벌어 효도를 해드리지 못한다는 부담감이 그만큼 크기 때문인지, 아님 어머니의 심정을 헤아려 작품에 담으려 하는 건지..

 내가 확인한 건 불과 문이다 중에서

 

"강정마을에서 돌아왔어요."

핸드폰 통화와 부딪치는 소리

때문에 눈을 돌리니

청년이 지나가고 있다.

그의 이어폰에서 엠피스리 노랫소리가

빠져나오고 있다.

제주도의 소리, 엠피스리? 난 수억을 벌 수 없다.

밤, 불을 켜 놓은 것들.

술집, 음식점 유리문 안에 사람들이 앉아 있다.

사람들은 불빛 아래서, 불빛 뒤에서

말을 할 테지. '구럼비의 노래를 들어라'

사람들이 모여 있는

토크쇼 밖으로 빠져나왔다.

닫힌 것, 갇힌 것을 열어라,

터져 뻗은 길에서 생각했다.

 

 

 

구럼비가 다 파괴된 뒤에야 나는 강정마을에 갔다. 아무 식당에나 들어가 같이 온 일행과 흑돼지 오겹살 같은 걸 시켜먹었다. 자리는 공사판에서 온 듯한 사람들로 거의 꽉 차 있었다. 공사가 한창인 곳을 돌아보다 온 듯한 청년이 식당 주인이 부모님인지 한창 큰소리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식당 주인은 손님들의 눈치를 보며 그의 이야기를 가로막으려 애를 쓰고 있었다. 맥락을 보면 구럼비 이야기를 하려는 듯했다. 이후로 제주도 얘기가 나오면 그 청년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 궁금해진다.

그러나 나는 제주도가 눈에 익을 만치 다녀올 만큼의 돈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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