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는 게 뭐라고 - 시크한 독거 작가의 죽음 철학
사노 요코 지음, 이지수 옮김 / 마음산책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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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기타카루이자와에 놀러 간 적도 있다. 숲 속의 별장지 '다이가쿠무라(1927년 호세대학의 학장 마쓰무로 이타스가 자신이 소유한 토지를 학자나 문화인 등에게 분양하여 개발한 별장지)'는 고요하고 아름다웠다. (...) "여기서 살아보면 어때?" 요코 씨가 우리에게 말했다. "파격적으로 싼 땅이 나와 있는데."

나루짱은 마음이 동요되는 듯했다. (...) 하지만 파격적으로 쌌던 까닭은 엄마와 아들이 동반 자살한 땅이기 때문이었다. 엄마는 시라이시 가요코('광기의 여배우'로 불렸던 가부키 배우)에 아들은 누쿠미즈 요이치(예능 프로그램에서 머리숱이 적어 놀림당하는 캐릭터를 가진 배우) 같았다는 말을 듣고, K가 심사숙고 끝에 땅을 포기했던 건 유감이었다.

 

 

원래 땅값이 싼 곳은 대부분 이런 사연이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IMF 때 그런 집이 많았다고 한다. 최근 부동산을 하고 있는 친구에게 이런 말을 들었는데, 심지어 글에서도 이런 이야기를 듣는다니 묘한 기분이다.

 

그 유명한 사노 요코의 작품이다. 그러나 아쉬운 점 두 가지만 밝히겠다. 아무래도 이름난 사람의 작품이라 아무도 까지 못할 테니 또 아무리 (심지어 작가 본인에게까지) 비난당해도 멘탈이 탄탄한 내가 이 책을 까고 욕먹는 거 감수해야지 어쩌겠냐.

첫째, 전교조를 깐다. 예를 들면 전교조 놈들은 사흘이라는 낱말도 모른다 그런 식이다. 일단 그들이 한자를 보통 사람들보다 더 모른다는 근거도 없지만, 한자를 모른다 하여 사는 데 지장이 없는 건 아니다. 선생님이라도 그렇다. 당장 아이들이 쓰지 않는 낱말을 언제까지 끼고 살아봐야 실용성만 없다. 요새 언론을 보면 쓸데없는 한자보단 되려 선생들에게 필요한 건 성인지라는 생각이 든다.

둘째, 의사가 철저히 페미니즘적인 인식에 대해선 사노 요코의 지식을 무시한다. 아이는 낳지 못한다면서(난 안 낳는 것이라 생각한다. 돈만 쓴다면 요새는 남자가 애를 낳는 것도 가능하다.) 집요하게 여성이 애를 키우는 건 천성이라 주장한다. 사노 요코는 살 대로 다 살아서 아쉬울 것도 없고, 게다가 의사하고 친하다 보니 그의 강한 주장에 잠자코 눌리는 기색이다. 환자에 대한 의사의 무지막지한 권력을 확인할 수 있는 장면이었다. 혹 애를 키우는 건 여성의 천성이라 주장하는 사람들은 어째서 본성을 이기고 애를 버리거나 죽이는 여성들이 많은지 쓸데없이 골머리를 썩일 이유가 없다. 애를 키우는 건 남자의 천성이 아니듯 여성의 천성도 아니기 때문이다. 여성들의 정신력이 단지 남성의 그것보다 더 강할 뿐이다.

셋째, 죽음과 죽어감이란 책을 들먹이면서 자신은 그 단계 중 아무 것에도 속하지 않는다 하는데, 그 책을 제대로 보셨는지 모르겠다. 그 책의 저자는 병원에 입원한 환자와 이야기하고 있을 뿐, 사노 요코가 말하듯이 집에서 편히 죽는 환자는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이것도 편하게 죽을 집과 펑펑 쓸 돈이 있으니 부리는 허세가 아닌가 싶다. 심지어 의사가 말하는 무사도는 졸렬하고 유치하기 이를 데 없다.

 

나는 두 번이나 이혼했기 때문에, 내가 타인을 끝까지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인 줄 알았다. 그런데 평생 사랑할 수 있었던 사람이 2주쯤 전에 나타났다. 그는 죽은 사람이었다. 죽은 지 10년 정도 지났다. 어떻게 나타났느냐 하면, 20센티미터 정도 되는 갈색 나무 상자에 담겨 조그만 사람의 형상으로 스르륵 나와서는 그 뒤로 언제든 어디서든 스르륵 스르륵 나타나는 것이다.

하지만 그가 살아있는 동안 나는 알지 못했다.

처음 보았을 때 그는 나보다 두 살 적은, 아버지 친구 아들이었고 보들보들한 아랫도리를 내놓은 채 기어 다니고 있었다. 그때부터 우리는 줄곧 친구였다. 그가 쉰다섯 살에 샌프란시스코에서 골프를 치다가 쓰러질 때까지, 가장 오랜 친구였다.

 

 

 

ㄷㄷ 얀데레?!

머리가 좋고 재능이 있으며 풍채도 근사하다. 인격도 훌륭한 것 같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라면 내가 몰래 짝사랑해도 괜찮지 않을까.

그랬더니 이스트우드의 DVD를 잔뜩 빌려준 사람이 나타났다.

하지만 외국인인걸.

남몰래 사모하려 해도 외국인인걸.  

 

 

그래도 2D를 좋아하는 것보단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나는 종일 소파에 드러누워 텔레비전이나 비디오를 볼 때 행복하다. 그러는 게 너무나도 좋아서, 아무도 없는 집에서 파트너 같은 드라마를 한창 보던 중 문득 그 행복을 느끼면 깔깔 웃음이 터질 정도다. 아아, 이러니 혼자 사는 걸 도무지 포기할 수 없다. 

 

 

ㅠㅠ 나도 이 맛에 혼자 사는 걸 좋아하는데 한 번도 혼자 살아본 적이 없네 불행하다!

꽤 오래 전에 들은 이야기다. 암에 걸려 격심한 통증에 시달리는 한 아저씨가 아플 때마다 여자의 무대라는 노래를 틀어달라고 했고, 그랬더니 3분 정도는 아픔을 잊었다고 한다.

모차르트를 들으며 아픔을 잊는 사람도 있겠지.

나니와부시를 듣는 사람도 있을지 모른다.

나는 마지막 순간에 줄리의 오늘 밤 결정할 거야를 듣고 싶다.  

 

 

줄리란 사와다 켄지를 얘기한다. 지금은 할아버지가 되셨지만 검색해보면 일본에서는 찾기 힘든 미남 중 미남이다; 비교해보면 세월의 풍파를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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