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개 있음에 감사하오 - 개와 함께한 시간에 대하여, 아침달 댕댕이 시집
유계영 외 19명 지음 / 아침달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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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의 신

 

김소형

 

신이라면 개를

응당 사랑하겠지

천국에는 동물이 없다는 말에

흔들리던 종교 사이

 

사랑하니까 데려간 거겠지

이제는 기도하지 않겠지만

 

먼저 떠난 동물은

주인을 많이 기다린다고

 

그 말을 듣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인간은

개의 신이라면 사랑해야지

그러지 않겠냐고

 

뙤약볕에 앉아

가장 먼 은하의 개미에게

물어보던

초여름

 

 

 

나는 강아지를 키우면 안 되는 사람이다.

 

20대 때부터 어렴풋이 그걸 느꼈다. 싸돌아다니면서 겪은 수많은 모험담(?)은 그렇다 치고 계단에서 굴러 앞니까지 조금 깨진 적 있는 사람이 무슨 강아지를 챙긴단 말인가. 외로워하며 새벽 늦게까지 사람들을 만난다고 쏘다니는 내 방랑벽(?)을 고치려 보다못해 어머니는 숱하게 내가 도망다니던 소개팅은 접어두고 강아지를 사오셨다. 강아지를 두 마리나 기르던 전남친은 우리 집 강아지가 짖자마자 때렸고, 나는 '우리 집 강아지'를 때리는 건 용서할 수 없다 했고, 이후 그와 헤어졌다. 전남친의 강아지 중 한 마리에는 흉터가 있었는데, 내가 그걸 캐묻자 그는 질문을 회피하며 한 마디 했다.

"처음 키우는 강아지들에겐 누구나 이런 게 생겨. 너도 금방 이해하게 될 거야."

난 에스컬레이터를 타다가 우리 집 강아지의 발을 다치게 했다. 한 발가락에서 패드가 벗겨져 뼈가 드러났는데, 마취약에서 헤롱거리면서도 우는 나를 달래주겠다며 케이지 문을 핥으며 나가려 바둥거렸다.

내 무식함을 욕하는 사람도 있었고, 강아지를 걱정하는 마음이 있으니 괜찮다고 달래주는 사람도 있었지만, 내 마음에 지니고 있는 빚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는 듯한 사람은 없었다. 그나마 전남친이 좀 근접했다고 생각하지만, 그가 내 강아지를 때렸었단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어쩌면 모든 사람이 애완동물을 키울 자격은 없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진짜 생명을 책임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닌 것 같다. 그러나 생명으로 서로 존중한다면 부족한 환경에 부데끼고 사는 것도 나쁜 건 아닌 것 같다. 일단 내가 위로가 된다고 할까. 강아지를 사랑하기 시작하면서 인간관계도 확연히 나아졌다고 생각한다.

 

정말 우연히 이 시집을 읽다가 공원에서 달리는 차와 그 꽁무니를 죽어라 달리는 개를 보았다. 그 개는 달리면서도 자꾸 개줄을 잡은 나와 내 앞을 걷는 랑이를 뒤돌아보았다. 나는 랑이를 아마 저렇게 버리지 않겠지만, 어차피 몸에다 칩을 심어놔서 버릴 수도 없다. 누가 랑이를 주워서 동물병원에 맡기면 내 집주소와 핸드폰번호가 나온다.

언젠가 집에 가다가 차도에 두 마리 강아지를 떨구는 사람을 본 적이 있다. 그들은 산책을 나온 것처럼 신나하는 모습이었으나, 잠시 후 그 강아지들을 떨군 차는 후진하여 그들을 짓뭉개버렸다.

강아지를 도저히 키울 수도 다른 데 입양시킬 수도 없다면 동물병원에 안락사시켜달라고 맡기면 된다. 그러나 이런 짓을 하는 사람들은 돈이 아까워서 그렇게 하지 못할 것이다.

참고로 천국이란 세계관이 존재하고 동물이 천국에 갈 수 없다면 이 화자의 종교는 천주교나 기독교일 것이다. 성공회에서는 동물에게도 세례를 주니, 동물도 천국에 가는 게 가능하다.

 

사람들에게 대중적인 테마로써 시를 알리고 싶었는지 예쁜 일러스트, 그리고 시인이 개와 함께 한 사진들이 실려 있다. 그리고 프롤로그에서 밝은 내용을 썼음 좋겠다는 암시가 곳곳에 실려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위에서처럼 우울한 시들이 많았다(하기사 라이카가 나올 때부터 쎄한 느낌이 들긴 했지만.). 그러나 강아지 공장에 대한 내용 등, 강아지와 인간에 관한 근본적인 고찰이 들어있는 시도 있었다. 결국 강아지를 아프게 만드는 것은 인간인 것 같다. 이 시를 읽는 동안 우리 집 강아지 발이 아팠다. 산책갈 시간이 되었는데도 산책가지 못하는 강아지가 내 무릎에 올라와 한동안 떠나지 않은 탓에 그녀에게 이 시집을 읽어주니 좋아하는 것 같았다. 내 생각일 뿐이고 사실 우리 집 강아지 랑이는 까까를 더 원했는지도 모르겠지만.

 

이어달리기 중에서

 

민구

 

이다음에는

너의 개가 될게

 

하지만 다음 생이 있다는 건

뻔한 드라마 같은 일

 

내가 넘어져도

뒤도 안 돌아보던 네가

오늘은 옆에서 꼬리를 흔들고 있다

 

살아 있는 개처럼

긴 트랙을 전력으로 질주한 선수처럼

피곤한지 크아아아

 

하품을 하고 있다

 

 

솔직히 개한테 인간들이 저지르는 온갖 만행을 보면 저렇게 개로 태어나겠다고 당당히 말할 자신이 없다. 그냥 우리 다신 태어나지 말자ㅡㅡ;

 

이리(Eerie) 테글턴 중에서

 

원성은

 

이리는 짐승의 이름이다

영어 단어 eeire는 무시무시하다는 뜻의 형용사다

나는 두 가지 뜻이 다 마음에 들지만

냉소적인 문학가의 이름을 비틀었다는 부분이

내 작명법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든다

 

그의 이름은 빅 브라더가 될 뻔하기도 했다

그가 나를 감시하는 역할을 맡았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1984년에 태어났고 동물애호가이기 때문이다

(...)

이리 테글턴은 오늘도 무시무시하고 이리 같은

눈과 귀를 나를 향해 열어두었다

나는 그의 레종 데트르다

그의 신체기관들이 활짝 열려 있다는 것이, 내가 나를

던져지게 내버려둘 수 있다는 점이

(...)

나는 사랑을 받는 개 역할을 맡았다

연극은 계속되고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은 여기까지다

 

 

 

확실히 내가 들은 개 이름 중에서 가장 특이한 듯. 나도 랑이가 랑랑랑 짖는다 해서 랑이라 이름지었는데, 사람들이 그렇게 이름지으면 더 짖을 거 아니냐고 의아해하더라. 사람들은 자기 형편만 생각하기 때문에 얌전한 강아지 이름을 더 좋아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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