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장소, 환대 현대의 지성 159
김현경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5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해마다 수만 건의 성폭력이 발생하고, 보고되지 않은 성폭력은 이보다 많으며, 가해자의 상당수는 남편, 애인, 아버지 등 보호자를 자처하는 사람들이라는, 더욱 어두운 진실 역시 언급되어야 한다. 성폭력은 모욕의 한 형식이다. 모욕이 대개 그렇듯이 성폭력에도 가르침이 담겨 있다. 몸의 올바른 사용법에 대한, 네 몸이 누구에게 속하는가에 대한, 네가 있을 곳이 어디인가에 대한......


 


 

아무래도 마지막의 가정주부에 관한 글은 논란이 있을 것 같다. 확실히 내 어머니는 저자 어머니처럼 냉장고를 들어 옮기며 청소하셨지만 할머니는 자식이 다섯 있어도 깔끔하게 청소한다거나 밥을 잘 짓는다거나 하진 않으셨다 한다. (그러나 친족을 포함한 주위 사람들에게 비난을 받기는 한다.) 또한 일과 주부를 동시에 경험하신 분들은 되려 가정주부가 되어 일이 줄어드니 좋다는 분도 계셨다.


이 책은 사회학이지만 소설 이야기가 꽤 많이 나온다는 편에 유의하자. 혹시라도 자신이 본 적 없는 소설을 해석하거나 하는 책이 싫다면 이 책은 보지 않는 게 좋을 듯하다. 그러나 대부분의 소설 스토리는 친절하게 설명해주기 때문에, 옛날옛적 이야기 듣는다 치고 읽어도 무난하리라 생각한다. 아니면 직접 찾아서 봐도 될 것 같다. 꽤 영양가 있는 문학작품들을 소개하는 편이니 말이다. 일단 무지 재밌다. 실제로 너무 집중해서 읽어서 그런가, 돌려주는 걸 잊어버려서 연체되었다 ㄷㄷ (그것도 다른 작은도서관에 책 반납하다 알게 됨.) 오늘은 꼭 돌려줘야지.

 

낙태에 대해서 공부하는 중인데, 이 책이 많은 도움을 주었다. 현재 읽고 있는 사람 장소 환대라는 책에서 태아를 생명으로 취급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나온다.

보통 사람들이 강간으로 인한 낙태는 허가한다. 태아보다 강간당한 여성의 생명을 중요시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냥 으레 여성의 불행을 막기 위한 조치이기 때문에 살인죄가 성립되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강간이 아닌 낙태에 대해서는 생명을 죽인다고 욕한다. 이런 차별적인 행동으로 보건대 낙태에 대한 관점 차이는 종교가 만든 것이다. 따라서 강간으로 인한 낙태가 살인죄로 처벌받지 않는 한 모든 낙태는 생명을 죽이는 게 아니라 한다. 꽤나 인상깊은 구절이었다.

 

그리고 강간낙태가 죄악이라고 일부 종교인들이 주장한다는데, 그러면 강간당한 여성은 죄악이 있단 말과 다를 게 뭐란 말인가. 확실히 옛날에 내가 성추행 당하고 강간 직전까지 갔을 때 어머니가 이렇게 꾸짖으신 적이 있다. 왜 쉬마렵다고 혼자 화장실에 가서 이런 봉변을 당했냐고. 그러나 그 당시 나는 초등학생이었고 대상은 아버지와 친한 어느 성인 아저씨였다. 그리고 당한 장소는 성당이었다. 보통 아무도 당할거라 생각하지 않는 장소요 아무도 범할거라 생각하지 않는 인간이었다. 강간은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일어날 수 있는 사안이고, 임신가능성이 있는 여성에겐 아주 치명적이다. 이에 대해 자세히 보고 싶다면 나는 짧은 치마를 입지 않았다라는 책 참조.

 

현대 사회에서 모욕은 여전히 중요한 공적 의제이다. 사회운동의 역사를 슬쩍 훑어보기만 해도 이 점을 확인할 수 있다. 민권운동에서 게이-레즈비언운동에 이르기까지, 모든 정체성투쟁의 핵심에는 모욕에 대한 저항이 있었다. (...) 사회학은 모욕을 개념이 아니라 현상으로만, 즉 인종차별이나 성폭력의 장면들을 구성하는 요소로만 다룬다. 현상은 분명히 존재하지만, 개념이 그것을 포섭할 수 없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모욕을 모욕이라고 느끼지 못하는 것 자체가 문제라 본다. 인간 인생 어찌될지 모른다. 그저 그렇게 살다가 갑자기 자신이 동성애 취향이라는 걸 깨닫게 될지도 모른다. 또한 언제 자신이 성폭력을 당해 모욕감을 느끼게 될지 짐작할 수 없다. 자신이 절대 그렇게 되지 않을거라 굳게 믿고 약자를 모욕한다는 건 바보들이나 하는 짓이다.

 

학교는 겉으로는 존중을 이야기하면서 실제로는 경멸을 가르친다. 공부 못하는 아이들을 모욕하고, 가난한 아이들을 투명인간 취급하며, 힘센 어른은 힘없는 아이들을 막 대해도 된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면서 말이다. 그래서 겉치레로 하는 말과 진짜 메시지를 구별할 만큼 영리해진 아이들은 자기보다 못한 아이를 경멸함으로써 학교의 가르침을 실천한다. 마치 어른들이 입 밖에 내고 싶어 하지 않는 사회의 진실을 아이들이 연극의 형식으로 보여주는 것 같다.



 


 

내가 학교에서 겪은 사태에 대한 훌륭한 요약같다. 내 경우는 그에 더해 어머니가 자신이 겪는 모든 모욕을 전부 내 탓으로 돌려 그것까지 떠맡아야 했지만... 아무튼 이렇게 글을 잘 쓰고 싶다는 마음이 들게 만드는 구절이 또 추가됨 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