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둥이 할아버지의 노래 b판시선 23
김준태 지음 / 비(도서출판b)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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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정을 넘어서, 새벽에 쓴 시

ㅡ말은 신이다!A Word is the God!

 

시가 세상을 바꾸거나 변화시킬 수 있을까

히틀러 때 베르톨트 브레히트도 실토했는데

시가 세상을 바꾸거나 구할 수도 없다는 것

 

시인들이여! 그러나 바로 그러함 때문에

발 동동 구르며 시를 변화시키는 것이 세상

발을 동동 구르며 세상을 바꾸려는 것이 시!

 

말, 언어, 로고스가 하느님이요 부처님이기 때문일까

보라, 들으라, 갓 태어난 아가들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하늘의 말씀을! 새들의 날개가 실어 나르는 노래를!!

 

그럼, 시가 세상을 바꾸거나 변화시킬 수 있다

발 동동 구르며 시를 변화시키는 것이 세상이라면

발 동동 구르며 세상을 바꾸는 것이 로고스, 시! 

 

 


 


 

이 시집엔 그 유명한 Requiem, 세월호 중에서 4번 다시라기가 들어있다. 하지만 Requiem, 세월호는 역시 전편을 읽어야 참맛이다. 인터넷에서만 이 시를 접한 사람들은 전체를 꼭 읽어야 한다. 다시라기만 읽기엔 스토리가 있어서 끊는 맛이 개운치가 않다. 이전에도 접한 적이 있는데 포스팅은 하지 않은 것 같아 일단 올려본다. 브람스의 레퀴엠과도 연결되어 있는지라 이 시를 접해본 사람들은 필히 이 시집을 구해서 읽어봐야 한다. 장편시를 특히 잘 쓰시는 시인 같다.




백두여, 통일의 빛나는 눈동자여란 시는 다 좋은데 왜 은장도가 나오는지 모르겠다. 우리나라의 가장 악습은 남자한테 강간당할 위기에 처했는데 그 남자를 죽이기는 커녕 여자한테 자살하라 강조하는 바로 그 것이다. 그리고 화자가 할머니 젖꼭지를 빠는 장면은 꼭 필요한가? 민족을 위해 희생하라고 여성에게만 강요하는 것 같은데 난 그렇게는 못하겠다. 반역사는 모르겠으나 나 자신을 지키기 위해선 날 강간하려는 남성이 민족주의자라도 자지에 압정 꽂고 반민족을 부르짖겠다. 솔직히 이런 시가 6.15 선언 제1주년 기념 민족통일대축전에서 낭송되었다는 게 부끄럽다. 거기 참석했던 여성들은 어느 정도의 수치심을 견디며 앉아 있었을까.

 

브람스의 레퀴엠 중에서

 

김정환 시인과 나는 폭설을 뒤집어쓴 만큼 술에 취해 있었다. 그런데도 말똥말똥, 맨 정신이었다. "전두환이란 놈이 블랙리스트 명단을 만들어놓고 기습작전을 하듯이......" "그래, 싹쓸이 해버리겠다는 말이지. 캄보디아 킬링필드처럼!" (...) 마포의 허름한 카페에서 록가수 전인권의 생음악을 들으며 베트남의 정글 같은 밤 속으로 깊숙이 빠져 들어갔다. (...) 카라얀보다는 오토 클렘페러의 연주를 즐겨 듣는다는 김정환, 나는 그가 듣는 아침 음악이 '레퀴엠'이라는 사실에 머리를 좌우로 흔들었다. 휠체어를 타고 지휘봉을 잡은 클렘페러와 한국의 시인 그의 아픔은 그렇듯 만나고 있는 것일까.

 



 


 

김정환 시인은 세월호와 관련된, 아니 정권을 비판한 시인들에 대한 블랙리스트가 다시 쓰여졌다는 말을 들었을 때 무슨 생각이 들었을까. 이 시는 또한 시집의 초반부에 나오는 베트남에 관련한 시와 겹쳐진다. 역사는 이 시집에 나오는 시처럼 짧고 굵게 연결되며 겹쳐진다. 짤은 2018 도쿄 휠체어 펜싱 경기에 실제 공식으로 등장한 마스코트 캐릭터이다.

 

노래, 정선 가는 길 중에서

ㅡ강기희 친구에게

 

10.27 법난 시절 총 들고 들어온

군인들을 향해 온 산천 쩌렁쩌렁 울린

월정사 탄허스님의 정정한 모습도

저 강원도 오대산 나무들에게서 보리라

"네 이놈들, 총 들고 법당 들어오려거든

불알만 차고 들어오는 게 절 법도이니라"

추상같은 목소리 물소리로 들으면서

내 산 첩첩 원주하고도 정선에 닿으리라



 

탄허 스님 말로만 들어봤는데 그런 말을 했다니 굉장한 의외인 듯하다. 아니 근데 비구니들은 어쩌라고 불알이란 말을...

 

사람 몸 향기에 밀려

 

타이베이 '녹도'라는 섬에 가서 보았네

한때는 백색테러 수용소로 악명이 높은 섬 녹도

그곳에서 지금도 터져 나오는 비명소리 들었네

사람을 잡아다 발가벗긴 몸뚱이에 꿀물을 발라

병정개미떼들이 기어 다니게 한 기막힌 고문도

아픔이여 마침내는 자라투스트라 초인도 총칼도

녹슬어서 사라진다는 것, 사람 몸 향기에 밀려서

저 태평양 깊은 파도 속으로 떠내려간다는 것을

아 그러나 시간이 흐른 다음에야 그런다는 것을

나 타이베이 남쪽 섬 녹도에 가서 알았네.

.



 


 

초인엔 의외로 부정적 관점을 지니신 건가. 니체 책을 읽고 나서 보니 생각보다 니체에 대해 비판적인 사람들 많더라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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