캣콜링 - 제37회 김수영 문학상 수상 시집 민음의 시 253
이소호 지음 / 민음사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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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워 있는 경진 중에서

 

왜 너만 좋아?

바보야 네가 처음이라 모르나 본데

사랑한다는 말은 말로 하는 게 아냐

행동으로 보여 줄게

나는 하룻밤에 다섯 번도 사랑할 수 있어

 

대답 대신 경진이는 자기 주둥이를 다잡고

왼손으로 지문을 오른손으로 대화를

썼다 짝짝이 속옷이 벌린 다리보다 부끄러웠던 그날을

썼다

좆도 모르면서 큰 구멍만 탓하던 그날을

내 것이 얇고 가는 줄도 모르던 나를 기리던 그날을, 썼다



 


 

왜 갑자기 맥주 마시러 나가는 밤중에 복어국이란 시가 그렇게 생각나는지 모르겠다. 난 낙태 해봤냐는 소리까지만 들었는데 여긴 자궁에 혹까지 나온다; 아니 왜 자궁에 혹 난게 더럽냐 ㅠㅠ 난 안 났지만 내 예전 친구였던 언니가 이거 때문에 애 낳기 힘들다 했던데 그러지 마라 안 그래도 얼마나 서럽겠니 ㅠㅠㅠ 어머니가 한 살 연상인 이모가 학창시절 자길 젓가락으로 찔러 죽이려 해서 만나기 싫다고 말씀했던 게 떠오른다.


띄어쓰기 하나도 안 해도 말을 알아듣는 전형적 예시 오빠는 그런 여자가 좋더라는 꽤 페미니즘 같이 보인다. 그런데 이런 시 보면 사촌이 땅 산 것처럼 배가 아프다. 나도 이런 말 똑같이 들었는데 말이다. 그렇지만 이런 류의 시는 마치 콜럼버스의 달걀같은 것이라 먼저 쓰는 사람이 임자이니 말이다.

 

많은 분들이 언젠가 글 쓰려고 필사하는 거냐 묻는다. 근데 난 남자들이 되도 않는 이야기하는 걸 블로그나 페북에 그대로 베껴 쓸 때가 가장 재밌었다. 난 시인이 이런 시를 쓰는 게 왠지 이해가 될 것도 같다. 그러나 소시민인 난 내가 들은 섹드립 중 인상적인 구절을 쓰고 이거 내가 들은 얘기야, 라고 하는 게 더 즐겁더라.

 

같이 산다는 건 가끔 그 사람을 죽이고 싶을 때가 있다는 거 같다. 이거 나만 그런가? 말 그대로 속옷도 같이 쓰는 가족인데 일본 화이트리스트에 사태 파악 못하고 '조금 더 참자'라고 하면 나는 참질 못하겠다. 어차피 내가 말해도 소용없으니 한참 나중에 사건이 끝난 후 썰을 풀겠지만. 집이 아무리 넓어도 비좁다 느낄 수밖에 없는 이유가 가족이란 존재인 것 같다.

 

혜화 중에서

 

나는 나 같은 너에 대해 말한다 당신이 파 놓은 구멍마다 들어가 보는 고양이처럼 너라는 나에 대해 말한다

(...)

나는 당신으로부터 있다

 

나는 네 침대에 놓인 긴 머리카락보다 말이 없다 말을 뒤집어 우리는 뒷면을 응시한다 하루의 뒷면, 칫솔의 뒷면, 크렌베리 빵의 뒷면, 미키마우스 티셔츠의 뒷면, 그리고 섬의 뒷면 당신은 잘린 손톱처럼 외롭다 섬, 섬 나는 스위치를 내리고 불 꺼진 등대를 생각한다



 

점차 살아가면서 거짓말은 못 하겠구나, 하는 결론을 내렸지만 그래도 숨길 건 숨겨야 되겠구나, 라고 판정을 내리게 된다. 물론 나는 괜찮아도 남이 보기에 역겨워 보이는 상태도 있을 것이다. 그런 건 어떻게 정리해야 하나 혹은 어떻게 보듬고 가야 하나, 생각하게 된다. 아무래도 난 다시 사람들을 만나게 될 것 같지만, 예전과는 다른 시도를 할 것이다.

 

망상 해수욕장 중에서

 

그는 고무 튜브라서, 나는 불어도 불어도 부풀지 않는 튜브라서 우리는 가라앉지도 못했다.

 

우린 알록달록한 거대한 우산 아래 누워 햇빛을 피했다. 그가 쓰레기를 모아 기타를 퉁기며 쓰레기만도 못한 노래를 부르는 동안 나는 여전히 주둥이부터 꽂힌 빈 병처럼 그렇게 널브러져 있었다. 해변이란 모래알들이 알알이 모여 영원히 하나가 되지 못하는 곳.



 


 

변명 같지만 정말 발 인대가 늘어나 평소의 두 배로 퉁퉁 불어서 해수욕장 근처에 사는데도 해수욕장을 가지 못했다. 도서관에 책 읽고 공부하러 간답시고 책을 10권씩 넣어 이고지고 다닌 탓이 큰 것 같다. 나는 녹색당 때문에 그런지 일단 해수욕장에 가면 이제 쓰레기만 보이는 탓에 해수욕장을 가도 근처만 맴돌지 바닷가엔 들어가지 않는다. 이왕 여행가는 거 썬크림 잔뜩 바르고 쓰레기랑 같이 해수욕을 하는 것도 어찌 보면 청춘의 일환이겠다. 망상 해수욕장 꽤 괜찮다. 내 기억으로는 바다 외 주변에 거의 아무것도 볼 게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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