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하다 시산맥 기획시선 61
이령 지음 / 시산맥사 / 2018년 5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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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네가 나를 품는 시간, 내가 네 속으로 침윤하는 순간, 정상위를 고집하는 네가 후배위를 즐기는 나를 다독일 때, 난 나야 외치지 말라

 

식의 시간

계류의 시간

박명의 시간

우리 앞에 놓인 그 사이와 사이들,

 

그림 너머 그림자를 마셔라 그곳이 우리의 다른 이름 G스팟.

내가 네가 되는 곳, 네가 나일 수도 있는, 반구저기의 시간을 잇는 이 찰나의 멀티오르가슴.

 

 

이인휘 소설가의 페북을 보면 꽤 흥미로운 사람들이 평을 많이 쓴다. 대부분 시집이 절판되었거나 출판이 되지 않은(혹은 너무 쎄서 못한) 사람들인데, 이령이라는 사람은 시집이 도서관에 꽂혀있어서 봤다. 

 

이인휘 소설가 분이 시인들 사이에서는 유명인이라기에 기대가 되었다. 그리고 시집을 조금 넘겨보니 심야의 마스터베이션이라는 제목의 시가... 호오. 그 외 인상적인 시들이 하도 많아서 제대로 이해 못하는 수학은 슬쩍 보고 넘겼고, 다른 시들을 찬찬히 음미했다. 수학자들의 많은 후기 부탁드린다.

 

글라디올러스, 그녀

 

그녀와 내통하던 프리젤리 칵테일 바, 그 집 이름이 내려지는 통에 내 속엔 잔바람이 일고 있어요 지붕 끝에는 아라베스크 둥근 달이 고갤 내밀어 그녀의 만삭 배가 출렁이고 있구요 그녀는 커피포트를 잘도 타일러 골목 구석구석 삼부카 아니스 향길 피워 올렸죠 그때마다 나는 은비늘 햇살과 뉴에이지풍의 음표를 쏟아내는 아라베스크 둥근 지붕에 올라갔어요 그녀가 하루치의 햇살을 걷어내면 알레포 티포트 뚜껑 옆에 붙어 벌름벌름 코를 세웠죠

 

오늘도 그녀는 궁전 지붕에 올라 내려 피는 글라디올러스 꽃잎 하나씩 따고 있겠죠 언젠가 나는 밤새 밤보다 깊은 새벽길을 걸으며 그 향기에 가슴을 베었구요 그녀가 열어논 아치 창문 너머 나는 기린처럼 목을 빼고 아라비아 푸른 별을 바라봤어요

 

나는 그녀 손에 들린 화이바 커피잔, 비워도 비워도 채워지는 만삭의 잔, 나는 살면서 내려지는 이름들을 그녀에게 전하려다 점점 동글동글 모가 닳아요 

 

지금은 막걸리에 환장해 살지만 가끔씩 20대에 마신 칵테일과 연속으로 라운지 음악 틀어주던 칵테일 바의 모습이 그립다. 엔젤 키스, B-52, 김릿, 블루 스카이, 모두 지금쯤 살아 있을까. 

 

음악에 대한 시가 많이 나오는 건 아니지만 음악을 다룬 시가 특히 인상에 남는다. 이미자에 대한 시는 평범한 사랑시인데도 상당히 기억에 남는다. 익숙한 구절이 있는 걸 보면 음악 가사나 제목을 따와 시로 옮긴 것 같다. 팬이라면 한 번 찾아보는 것도 묘미일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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