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낯선 길가에 서성이다 문학과지성 시인선 187
유진택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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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의 절망

 

아름드리 나무가 꽉찬 산속에는 희망이라고는 없다

서로 경쟁을 하듯 밑동 굵은 나무들만 커오르고

힘이 부쳐 뒤처진 단신의 나무들은 절망한다

큰 나무에 눌려 말라가는 나무들, 바람마저 거부한 채

뿌연 솔잎의 머리칼과 산전수전 겪은 주름살만 가득하다

웅웅 큰 나무들 새로 지나가는 나무들의 울음,

새들은 누런 솔잎을 흔들어대고

투구를 쓴 송충이들의 대열이 굵은 주름살을 디디며 올라간다

주름살이 간지러워 바람 한 줄기 시원하다

이놈들 등쌀에 소나무는 만신창이가 되고

간혹 헬리콥터가 농약을 뿌려 시원하게 해주지만

무리지어 올라오는 대열을 당해낼 도리가 없다

새들도 도망을 간다

송충이들의 매끄러운 털이 송홧가루와 섞여

온 하늘에 퍼진다



 


 

딱히 그렇게 좋은 시는 아닌데 디테일한게 우리 집 강아지 랑이가 생각나게 하는 푸들강아지에게라는 시이다 ㅋ 우리 집 강아지는 말티즈이다. 말티즈는 바보라던데 가끔 홈스테이하러 온 외국인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영리하다. 푸들은 꾀가 많다고 하는데 너무 많아 앞발로 문을 연다고 하니 좀 무섭다; 착하고 온순한 걸 바보라 말하는 한국의 습성도 있으니 그런 종류가 아닐까 한다.


이전 시집에서는 빵꾸난 양말을 다시 기워입는 시인이 나오지만, 이번에 읽는 시집에서는 헌 양말은 버리고 새 양말을 사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전반적으로 자연예찬적인 시집의 분위기에 비해 다소 튀는 시이다. 그러고보면 기억이 흐릿하긴 하지만 1999년도에는 무엇이든 바꿀 수 있으리라는 희망이 넘쳤다고 난 회상한다. 양말도 그렇지만 필수적인 옷들은 해질 경우 싼 것이라도 새로 사는 게 맞다. 옛날같으면 청백리가 통했을지 모르나 지금은 가난하게 살라는 말이 상당히 폭력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이 변한 게 없는 걸 보면, 부자가 부자처럼 살아야 한다는 건 정당화되었으나 가난한 사람은 가난한 사람처럼 살아야 한다는 속내의 의미는 변한 게 없나 보다. 최근 보수는 이익만 쫓으면 장땡이라는 뜻으로 변질되어버린 듯하지만 말이다.

 

결론만 말하자면 기존에 입었던 옷이 헤지면 구입하는 게 맞다. 예를 들어 체형이 변해 적당한 스커트를 입기 어렵다면 왠만하면 새것을 사는 게 좋다. 그러나 빨주노초파남색별로 스커트들을 다 맞췄는데 보라색이 없다고 산다는 건 글쎄. 본인의 자유이지만 가뜩이나 적선도 없는 유별난 사회에서 이러는 건 좀... 뭐든지 적절히.




 


 

20대 때 전남친들, 친구들에게 받은 편지를 다 버려야겠다고 시집을 읽고 다짐을 해본다.


안 그래도 괴상한 옛날 얘기 꿈까지 꿔서 기분이 뒤숭숭한데 저걸 버려야 내 잠자리가 편해질 것 같다. 친구관계 다 정리해버린 지금 저 편지덩이들은 흑역사일 뿐(...) 미련은 별로 없다. 책장 정리하다 발견했는데 흡사 버려달라고 명령하는 것 같다.



 


 

시는 대부분 패턴이 똑같다. 동물이 자연이나 자신의 식구들을 지키기 위해 무슨 행동을 한다. 이를 이해하지 못한 인간이 분노해 동물에게 폭력을 휘두르거나 휘두르려 한다. 그러나 이 시인은 비건이나 단순한 동물 애호가가 아니다. (일단 흑돼지를 먹는다.) 노을지는 대자연 속에서 '마치 죽은 듯이' 낮잠을 자는 농민도 나온다. 나는 그게 왠지 자연과 같이 붕괴되어가는 민초를 상징한다고 본다. 위의 시도 그렇지만 대다수가 교훈성이 짙다 못해 그로테스크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거기서 나는 이 시의 아름다움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새들도 언어로 소식을 전한다라는 제목에 격하게 공감하는데, 집 앞이 공사판 되기 전에는 아침에 새들끼리 격하게 지저귀는 때가 있었다. 근데 진짜 서로 '이 개1새꺄!"라고 하는 거 같은 때가 있음. 다시 말하지만 지금은 공사판이 되서 맨날 들리던 뻐꾸기조차 없는 듯. 역시 좀 더 시골로 가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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