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당 서정주 전집 1 : 시 - 화사집.귀촉도.저정주시선.신라초.동천.서정주문학전집 미당 서정주 전집 1
서정주 지음 / 은행나무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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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두 살 중에서

ㅡ전태일

 

어쩌라 너는 스물두 살에 멈추어 섰고

나는 쉰하고도 여덟 해를 더 걸었으나

내가 얻은 것은 평발이 된 맨발이다

나는 아직도 스물두 살을 맴돌고 있고

너는 아직도 더 먼 거리를 걷고 있을 터

느닷없이 타오르던 한 송이 불꽃

하늘로 걸어 올라가 겨울밤을 비추는 별이 된 너와

그 별을 추운 눈으로 바라보는 중늙은이



 


 

이 시인 시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시는 스물두 살ㅡ전태일인데 아는 척하면 빨갱이 될 거 같아 여태 공개 안 했었다. 뭐 지금은 보여주어도 될 만한 시대이니까. 애니메이션이나 판타지 문학에서 많이 나오지 이미 인간에서 벗어난 탓에 영원히 나이를 먹지 않는 분과 이미 나이를 상당히 먹은 화자... 그런 구도가 생각났다. 시대가 아무리 흘러가도 호감도에 영향을 받지 않을 것 같은 좋은 시다.


생각하는 사람을 주변에서 불편해하는지 생각하는 사람이 불편해하는 건지 생각해봤는데 금방 둘 다인 것 같다는 결론이 나왔다. 삶은 전쟁이고 피곤하다. 특히 진지한 사람들일수록 더한 면이 있다. 그래도 어떡하나, 최대한 아닌 척하며 살아야지. 그러나 시인은 채찍을 휘두르며 계속 생각하는 삶을 종용한다. 그래서 시집은 굉장히 열혈적인 면이 있다.

 

불후의 명곡


 


세월 이기는 사람 보지 못했다


어느 사람은 늙어 갔고


어느 사람은 낡아 갔다


 


늙지도 않고


낡지 않을 수 없으나


높은 나뭇가지에 매달려


그저 잘 익어 갈 수는 있을 듯


 


문득 한 소절 바람이 지나가기를 기다려


늙음과 낡음이 몸을 섞어


물컹 뒷맛으로 남는 일


 


독이 오른 가슴에서 쏴아쏴아 술 익는 수리


석류 기어이 터지고 말 때 들리는


시월의 시린 저 발자국 소리



 


 

나이가 들수록 그에 어울리는 몸가짐, 마음가짐, 옷차림을 갖추어야 하는 것 같다. 하지만 중요한 건 꼰대가 되지 않는 게 아니라, 그에 더 나아가 성숙한 모습을 보이는 데 있다. 남을 비난하거나 자학하지 않고, 한 마디 한 마디의 말이 군더더기 없는 게 바로 불후의 명곡 아닐까. 그러나 살다보니... 그렇게 되기란 퍽 어려운 일인 듯하다. 그나저나 나는 뱃살 튜브부터 처치해야 하는데 그게 불후네요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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