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치희치 문예중앙시선 37
김은주 지음 / 문예중앙 / 2015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축문 중에서

               

 

                   

껍찔이 싸고 있는 속에 있는 것이 단단할 리 만무하니


껍데기는 버리고 테를 동인 널빤지에 쓰겠나이다


올해 처음 목과를 낳은 어미나무이옵니다


까닭 없이 우물에 빠진 달을 건지려고 허공에 손을 찔러넣고


바람을 섞고 또 섞는 습성을 가졌사옵니다


이리 쓴 것을 문설주 앞 돌멩이로 눌러놓사옵니다


소리를 먹고 자라 일생 이명에 시달리는 돌이옵니다


이따금 웅 웅 웅 혼잣말로 떨리다가는 말 것이니


어여삐 굽어살펴주시옵소서


물기를 버린 달의 밤


맑은 술과 별을 함께 구워 올리니 삼가 흠향하시옵고


촛농으로 없는 입을 봉하시매


기꺼이 무덤의 시간으로 드시옵소서



 


 

페친이 드문드문 벗어진 모양, 군데군데 치이거나 미어진 모양이라고 시 제목의 뜻을 알려주었다. 처음 들어본다. 나 이래서 공부했다고 할 수 있나(...) 아무튼 시의 전체적 분위기에 정말 적합한 제목이다. 이 이름의 시에선 더욱 그렇다.


염색약이라니까 생각나는데 내가 잘 먹질 않고 머리카락에 영양가가 없어서 항상 머리칼이 갈색이거나 붉은색이었음. 그런데 학교에서 하도 의혹을 사니까 검은색으로 염색하고 등교해야 했음. 나중엔 파란색으로 염색했는데도 갈색 머리칼은 아니니까 그냥 통과시켜주더라 ㅋㅋㅋ 학교 규칙 몰까...

술빵 냄새의 시간 중에서


 


컹컹 우는 한낮의 햇빛


달래며 실업수당 받으러 가는 길


을지로 한복판 장교빌딩은 높기만 하고


햇빛을 과식하며 방울나무 즐비한 방울나무


추억은 방울방울


비오는 날과 흐린 날과 맑은 날 중 어떤 걸 제일 좋아해?


때 지은 평일의 삼삼오오들이 피워 올린 하늘


비대한 구름떼


 


젖꽃판같이 달아오른 맨홀 위를 건너


나는 보름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


술빵의 내부


부풀어 오른 공기 주머니 속에서 한잠 실컷 자고 일어나


배부르지 않을 만큼만 둥실


떠오르고 싶어 



 


 

추억은 방울방울 애니메이션은 사실 상당히 밝은 분위기인데다가 등장인물도 독신이지만 아무튼 OL인데 현실은 퇴사라니... 내가 퇴사했을 때도 생각나는데 서울에서 대학교 다닐 때 알바 그만두고 지하철 탈 때도 기억하고 있다. 그 때 빵냄새가 진동을 했지.. 지금은 그 냄새 싫어하는데 그때는 얼마나 배고팠는지.


그나저나 오래 전 을지로 장교빌딩을 갔던 분이 내 주변에 계시다고 한다. 그당시 생활이 어려웠던 옛 동료 대신 보상 받아주러 가셨다나. 결국 민보상위에 인우보증을 해주셨다고 한다. 그것도 있는 걸 보니 어지간히 사연 있는 빌딩인 듯. 이 시 나올 때부터 왠지 뜬금없이 흐름이 끊기는 분위기던데 시인도 본인이나 주변 이야기를 하신 게 아닌지. 본래 테마는 힘들지만 상콤발랄한(?) 청소년 시기였건만.

생활의 길잡이 중에서


 


삼촌, 우리 엄마에게 욕하지 마요 엄마는 하얀 봉투를 싫어해요 참 잘했어요 도장 속 어린이들이 삼촌 주먹에 질려 보라로 떨고 있잖아요 이제 곧 저녁이니 파 껍질을 벗기고 양파처럼 얌전히 계세요


(...)


무지개는 햇빛 속에서만 사니까요 삼촌 주먹이 바람을 때려눕히며 광포로 달릴 때 햇빛들은 산산이 그림자를 토해내요 햇빛 대신 그림자를 주머니에 찔러 넣고 돌아올 때마다 엄마는 하얀 봉투 속에다 표정을 부셔 넣고 울어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는 가족이다. 배우의 연기가 훌륭해서밖에 다른 이유가 없다. 그 다음 영화는 똥파리이다.


연출보단 내가 경찰이나 용역을 보는 새로운 시각을 가지게 해줘서이다. 나는 죽었다 깨도 그런 위선(?)적은 일들은 못하는 타입이다. 하지만 똥파리를 보면 남성들은 얼마나 정의롭지 못한 일을 하기 쉬운가 생각하게 된다. 술을 마시며 잊은 척 하기도 쉽고, 욕을 하면서 무식한 척을 해도 모두들 진지하게 대화를 요청하지 않는다. 일시적이지만 가난을 벗어나기도 쉽다. 요새 힘 없는 노인의 멱살을 잡은 젊은 용역의 사진이 다시 나돌기 시작한다. 나는 그 용역을 모른다. 하지만 난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욕설을 크게 내뱉으며 젊은이들의 머리에 곤봉을 내지르던 상사?를. 그들을 동정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그들은 어쩌면 나와 같을지도 모른다.

4월의 사람들


 


마빈 게이


4월 2일에 태어난 아이.


4월 1일에 죽은 남자.


모두 모여 4월을 시작하네.


사라진 가수가 들려주는 난수표의 음정을 귓속에 모으고


쏘울이라고, 싸움이라고, 권총이라고 발음하며 걸을 때


(...)


아버지들


보고 있어요? 생일축하 파티를 하러 모인 아들들. 일그러진 공기를 가득 집어삼키고 협착된 혀로 로맨틱 쏘울이라고, 그건 싸움이라고, 결국 권총이라고 발음할 때, 아버지 아버지, 모두 우리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그들이 누구이기에 우리를 심판하나요? 아들들의 노래가 물컹하게 진동할 때



 


 

이게 이유가 있는게 마빈 게이가 생일 하루 전날 아버지와 싸웠는데 아버지가 총을 쏴서 돌아가셨다네요 아버지 X시키 제정신인가?

아무튼 세월호 사건을 이렇게 표현한 것 같은데 세월호에 대한 글 중 제일 특이한 것 같다. 은근 덕력 표출한 것도 같은데 아이디어가 겁나 특이해서 올릴 가치가 있었다 생각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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