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스트저널 이프 창간호 소장판
이프 편집부 지음 / 이프북스(IFBOOKS)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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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군 경험은 일종의 정신적 육체적 '트라우마'(외상)이기 때문에 매우 정밀한 정신 분석학적 연구나 성찰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 복학생들이 교수에 대해 '예의'가 바른 것은 후배들에게 선배 대접 받으려는 의지와 상관관계를 이룬다. 그것을 한국 사회에서는 '사람'이 되었다고 혹은 '어른'이 되었다고 표현힌다. 더불어 집단적 동질성의 문화 역시 군대에서 극단화된다. (...) 불안감 주입의 메커니즘도 큰 역할을 담당한다. (...) "군복무 동안 형성된 집단의식은 그들이 제대하는 순간 다시 사회로 환원되며 50년 동안 군대라는 조직을 거쳐 온 그들의 선배들과 조우해 거대한 집단의식을 형성한다."


 

군대에서 제일 기억에 남는건 탈모, 착모, 탈모, 착모, 탈모, 착모, 탈모, 착모, 탈모, 착모라는 분이 계신다.


훈련소에서 군사 이론 교육을 받기 위해 실내 강당에 모였을 때 조교가 수많은 훈련병들을 통제할 때 쓰는 방법이라 한다. 조교 혼자 수많은 훈련병 군중 앞 한 가운데 서서 카리스마를 뿜뿜하며 전투모를 쓰고 벗기를 반복하는 귀찮은 짓을 시키는데 그 자체가 무지 컬트적이라서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고.

 

조교가 “탈모!” 라고 외치면 다들 동시에 전투모를 벗고 “착모”라고 외치면 다시 다들 전투모를 쓴다. 원칙적으로 실내에서는 모자를 벗어야 하는데, 모자를 씌운다는 것은 “너희들은 교육 받을 준비가 되지 않았다. 그만큼 요란스럽다”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그리고 다시 모자를 벗긴다는 것은 군인으로서 교육받을 준비가 되었는지 재차 확인하는 것이다. 훈련병들의 탈모 속도가 느리거나 모자를 벗는 것 외에 잔 움직임이 조금이라도 보여서 조교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아직도 준비가 덜 되었군!” 이라는 의미로 다시 “착모”를 주문한다.

 

난 이 글을 보고 왠지 어린왕자에 나오는 신사가 생각났다. 그는 인사할 때마다 항상 모자를 벗는 의미 없는 짓을 한다. 그도 그 행동이 의미 없다는 걸 은연중에 안다. 그래도 어린왕자가 박수칠 때마다 쉴새없이 탈모와 착모를 반복하느라 탈진한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이렇게 생각했다. 그렇게 신사가 힘들어한다면, 아예 모자를 없앨 순 없는 걸까?

 

군대에 막 다녀온 사람 보면 단순히 그 사람답지 않은 게 아니라 거의 인간같지 않은 말과 행동을 보이곤 한다. 사실 그런 사람들이 인터넷에서 쏟아내는 말들은 페미니즘에 대한 찬성이건 반대이건 간에 직설적이다. 여성가족부가 페미니즘을 비판하는 유투브 방송을 차단한다 들었는데 이에 대해선 좀 아쉬운 바이다. '개인의 발언할 자유'가 차단되서 그러는 게 결코 아니다. 평소 남자들만 있는 자리에서 이들이 어떤 행동과 발언을 하거나 듣고 보고 나왔는지에 관해 생생히 겪을 수 있어 상당히 흥미가 있었다. 예전에 오타쿠 모임에서도 직업 군인을 막 때려치고 나온 인물을 본 적이 있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긴 했지만, 그의 이론에 반박할 페미니즘 이론을 정리하는 데엔 상당한 도움이 되었었고 나중에는 헤어져야 하는 게 아쉬울 정도였다.

 

여성들은 감정이 풍부해서 충동적이라 하는데, 나는 대부분의 남성도 만만치 않다고 생각한다. 특히 군대에서 막 전역한 남성을 건드렸을 때 그 분노는 매우 충동적이라고 본다. 나는 그들에게서 당사자주의의 위험성을 목격하곤 한다. 그들은 전쟁에 출전하지 않는 여성들에게 분노하며 사실상 전쟁나면 군인이 가장 살아남을 확률이 높다는 사실을 부정한다. 군인들은 여성들을 지키기 위해 언제든지 죽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전쟁이 나면 여성들은 제일 먼저 강간당할텐데 자기 남성들에게 지켜달라 애원하지 않는다며 고충을 호소한다. 이는 매우 모순이지 않은가? 강간에 대한 이야기는 곧 출산하지 않는 비혼 여성들에 대한 분노로 번지다가 곧 자신이 전쟁나서 총을 잡게 되면 일단 우리나라 여성부터 다 쏴 죽일 거라는 이야기로 끝난다. 이 정도면 대체 여성이 누구한테 공격을 받는지 알 수 없다. 아마도 북한이던 우리나라 남성이던 어쨌던 간에 남성이지 않을까?

 

그에겐 미안하지만 사실 한남에 대한 이미지를 만들때 그가 했던 행동과 발언을 많이 참조하고 있다. 신고하려고 하나하나 그의 성적 발언을 캡쳐했는데, 그게 의외의 보물이 된 셈이다. 더불어 그 옆에 있는 친구들도 은근슬쩍 성차별적인 발언을 많이 했는데, 그것들 중 인상깊었던 것들을 혼합해서 쓰기도 한다.

 

다른 사람들은 정치 얘기와 같이 군대 축구 얘기를 싫어한다. 어째서일까? 한국의 정치는 한국만의 특수한 사안으로 이뤄져 있다. 그처럼 군대도 다른 나라의 군대와는 달리, 한국의 특수한 문화같은 게 아닐까 생각한다. 실제로 군 복무를 끝내고 나온 사람들은 자기 빼고 다른 군인들이 과연 전쟁시 나라를 지킬지 모르겠다고 이야기한다. 그렇다면 어째서 진보적인 대통령이 뽑혀도 징병제를 시작하고 또한 계속 유지하는 중일까? 나는 이게 한국을 유지하는 유교 문화와 비슷하다 생각한다. 즉, 직업군인을 빼자면 군대는 한국 남자를 한국 남자로 만들어주는 특수교육같은 것이다.

 

 

 

 


 

P.S 방송하시는 분께 남길 명언이 있군요.

여성은 남성의 힘의 우위에 굴복했지만, 여성 특유의 무기를 가지고 반격했다. 그들의 주된 무기는 남성에 대한 비웃음이었다.


에리히 프롬의 격언입니다. 덕분에 웃음으로 즐겁게 하루를 시작합니다^^ 또한 이 글 남기려고 이 책을 초스피드로 읽을 수 있던 것에 대해 감사드립니다.

 


그는 이제 국가 방위의 주체이며 사회적 책임을 떠맡은 자이며 "남들(특히 여자!) 판판이 놀 때" 혼자만 죽도록 고생한 공인이다. (...) 그러나 군필자들이 부르주아고 고학력자라면 과연 '손해 보았다'는 느낌을 그랗게 강하게 투사하게 될까? 그들은 특권층의 병역 기피나 면제에 대한 분노를 '자기 계급에 대한 피해 의식'의 형태로 갖게 된다. (내가 가르치는 '지방대' 제자들이 왜 한결같이 고성, 인제, 원통 등 전방 산간 지역으로 배치되는 '이상한 현상'이 일어나는지 아는가?) (...) 군필 남성들은 군대 경험을 토대로 해서 여성이나 사회적 소수자들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느끼는 소외감, 불안증, 차별에 감정 이입하는 계기를 만들어 낼 수는 없는 걸까?




페미니즘이나 메X 여성들이 남성에 대해 피해 의식을 갖고 있다는데, 솔직히 군대 막 다녀온 남성만큼 피해 의식 쩌는 분들을 '일반인들' 사이에서 난 거의 본 적이 없다. 심지어 다 죽어가는 군 가산점 이슈에다가 댓글을 다는 분들도 캐물어보면 복학생이다. 심지어 여성의 출산을 군대에 빗대어 표현했다가 본격적으로 고령화 저출산 현상이 터지게 되어서, 괜히 비혼 여성들 탓하며 아닥을 하게 되었는데... 그렇다면 어째서 남들이 자기와 겪는 똑같은 고생을 해야 한다며 어느 지식인을 포함한 숱한 남성들이 찬동을 해대는지 모르겠다. 고통은 혼자 지고 축하할 일을 만들며 파티에 모두 같이 가는 게 사람이 해야 할 진정한 도리가 아닐지, 이들을 보면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간단히 말하자면 '쓸데없이 주둥이 나불대지 말고 1절만 하면 정상적 사회생활이 가능하다' 같은 개똥철학이랄까? 형님이 사람되고 싶다면 나가 페미니스트 되십쇼 더 이상 징징거리지 말고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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