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의 그림자 그림자의 바다 십이국기 1
오노 후유미 지음, 추지나 옮김 / 엘릭시르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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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내 최애는 여주 요코도 아니고 심지어 인간도 아닌 저 가장 왼쪽에 있는 생쥐다. 십이국기 아는 사람들도 대다수 라크슌이 최애라며 맞장구치는 편. 왜인지는 초반만 버티면 알게 된다. 라크슌 같은 남친 있음 당장 결혼한다 제길 동물이던 반수던 상관없다(응?)

확실히 이 세계와 원래 살고 있던 세계에서의 실종은 요코에게 최악인 것 같다. 썸타고 있는 줄 알았던 남자는 사실 왕따였던 친구와 애인 사이였다. 자신을 보좌해줄 줄 알았던 케이키는 혼수 상태다. 해객에게 의지해보려 했지만 어중간하게 이세계 말을 하는 데다가 얼굴까지 바뀌어버려 신용을 얻을 수 없었다. 그러나 요코가 급격하게 성격이 변해버린 이유는 돌아갈 곳마저 봉쇄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꼰대 아버지, 무력한 어머니, 호시탐탐 자기를 깔볼 기회만 노리던 학급 친구들의 진정한 모습을 그녀는 자신의 죽음과 같은 실종을 통해 직접 목격할 수 있었다. 결국 친구들과도 헤어지게 되고 난민처럼 되어버린 그녀는 이세계에서 살아가려 노력한다. 자신을 반성하는 것도 결국 이세계에서 왕이 될 자질이 있는지 곰곰이 생각해보는 단계에 지나지 않는다. 그녀는 결국 자신과 비슷한 상황에 처했던 해객을 만나 그의 도움을 받고 이세계에 적응하는 데에 성공한다. 그러나 어디에라도 자신이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 한 군데라도 있었더라면 이렇게 마음이 메마르진 않았을 텐데하는 안타까움이 남는다. 떠나가는 친구를 붙들고 우는 요코의 모습엔 아직 자신이 두고온 일본에 대한 정이 남아 있었다. 그러나 하느님도 믿지 못할 세상은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여기라고 해서 다를 바 없지 않은가.

웬만한 사람들은 여러 개의 가면을 갖고 속임수를 쓰면서 살아간다고들 하지만, 나는 사실 가면이라는 표현에 회의적이다. 사람마다 내 말에 대한 반응도 다르고, 나 역시 특정한 성격의 사람에 대해서는 태도가 변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상대의 성별이나 이데올로기에 따라 나는 각기 다른 태도를 취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홍카콜라를 좋아하는 어떤 사람이 나보다 힘과 권력이 있고, 내가 반드시 그를 만나야 하는 상황이라면, 내 입장에서는 홍카콜라의 정치적 견해에 대한 언급은 아마 최대한 피할 거고 그의 개그 실력에 동조하며 재미있는 사람이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 홍카콜라를 극단적으로 싫어하지만 나를 너무 좋아하는 다른 누군가가, 내가 홍카콜라의 개그코드를 칭찬하는 모습을 목격한다면 "씨발놈, 알고보니 완전 개새끼였네?" 하게 될 수도 있는거고 다 그런거다.

"어? 나한테는 매우 좋은 사람인데..."

"그럴 리가! 그 새낀 완전 미친새끼야!"

"걔 말이 없고 조용하지 않아?"

"뭔 소리야? 걔 존나 말 많던데?"

"그래? 나한텐 한 마디도 안하던..."

실제로 누군가에 대한 평가가 이토록 극과 극으로 갈릴 때를 종종 목격한다. 밀란 쿤데라의 <정체성>은 자신의 진짜 모습에 의문을 가지거나 다른 '가면'을 쓰고 있는 상대에게 혼란을 느끼면서 뻘짓을 저지르는 한 커플을 보여주는데, 지금은 SNS가 워낙 발달해서 우연히 온라인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이 수십, 수백 명이 된 시점이라, 그에 대응할 수 있을 만큼의 다른 면모(가면)들을 아주 많이 가진 사람들이 많이 나타날 것이라 예상한다. 즉, 앞으로 사람들은 소설이나 십이국기 같은 애니메이션에 나온 이야기들보다 훨씬 더 기상천외하고 납득하기 어려운 뻘짓들을 더 많이 하면서 살아가게 될 것으로 보인다. 단순히 옛날처럼 내가 태어난 곳은 우리 집이 아닐지도 몰라, 우리 부모는 사실 계모였을지도 몰라, 그런 차원이 아닌 것이다. 상황은 훨씬 더 복잡하고, 어쩌면 현대인이 난민보다 더 비참해지는 상황이 올지도 모른다. 이는 2기에서 좀 더 자세히 나오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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