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면의 힘 민음의 시 223
서동욱 지음 / 민음사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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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 밥

모이 먹는 시계는

안에 양계장을 차리고 있다

용두를 돌려 모이를 부수자.

공장의 회전 톱은

야채를 자르고

갈은 벌레를 공급한다

꼬끼오가 시계의 상징이 된 건

이 양계 사업 덕분이다

시계의 살해가 있었는가?

분명 톱니 틈에 낀 인골의 소리였다

사료분쇄기에 사람을 밀어 넣다니!

팔목을 꼭 붙들고 있는 비밀의 도살장

양계업은 위장이다

연필처럼 깎인 무수한 두개골이

기차를 놓친 표정으로 벙쪄 있다


 



개념과 명제는 물론이며 감정의 표현 방식에 있어서도, 우리에게 밀어닥치는 것은 우리를 초과해 있다. 시만큼이나 훨씬 인상적인 글귀였다.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벽이 뚫리는 것이 그렇게 인간에게 있어 중요하고 소중한 일인가?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저 벽에서 안전히 보호받으면서 사는 하루하루가 귀중한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아무튼 이제 현대시는 옛날의 시와 다르다는 의견이 많다. 벽을 파괴함으로서 시는 시인을 제외한 문인들에게서 많은 공격을 받고 있다. 그러나 시는 자유롭게 되었다.


시가 어딘가 친숙하다 싶어서 광고 같은 시인가 했는데 센다이의 수상 대학을 읽으니 어딘가 일본어로 된 가사같기도 하다. 묘하네.

아무튼 한국 시치고는 제법 건조하고 깔끔한 맛이 있다. 그렇다고 짧은 시가 있는 건 아니지만, 그럭저럭 마음에 든다. (지금 생각해보니 세계음치라고 일본 단가 짓는 사람 호무라 히로시 많이 닮은 것 같다. 작법이나 스타일이나. 혹시 해서 얘기하는데 그렇다고 내가 표절 얘기한 건 아님;)


전체적으로는 자신을 철학덕후인 듯 소개하면서, 과학으로 향해 돌진하는 현재 철학의 태세를 절묘하게 비판하고 있다. 물이 인간의 감정인데, 오랫동안 그 감정이 철학의 빛으로 인해 말라붙어 있어서 세상이 과자처럼 바스락거리고, 그 소리가 무섭다고 하니 말이다. 전체적으로 시집의 세계관이 탄탄하다. 시집으로 나올 걸 의도하고 짰다면 음.. 무서울 정도로 예리하고 치밀한 시인이라 하겠다.

 

이별의 복기 중에서


1

잃어버린 동전처럼

구석을 점유하고 있으면 안 된다

줄 서 있는 식판들처럼 게 껍질 부딪치는 소리를 내며

어디론가 이동해야지

자신을 망가진 피규어처럼 애지중지해 보자

가령 볼펜의 스프링 같은 귀중한 부속은 우리에겐 감기약

추워서 훌쩍거리는 건 아녜요 그래도

망가진 피규어를 겨우 지탱하는 이쑤시개 또는

감기약, 우리는 쏟아지는 새우깡처럼

저녁의 바람 속에 있고

스프링이 사라져 해는 매달아 놓은 껌만 지익 늘어나

결국 미지근한 강가에 떨어져 익는 게 한 마리

이런 저녁엔 동전을 움직여 볼 힘이 없습니다


2

(...) 정신의 불은 검은 구멍

준법은 맥주

그리고 꽤액


 


 

시인은 항상 맨 끝에 술을 적어놓더라. 왠지 끄트머리에 중요한 문장을 적어 놓는 걸 좋아하는 분 같았다. 나랑 취향이 맞았다.

 

​음 오랜만의 야짤인데, 페친과 블로그의 반응이 두렵다. 저는 그저 맥주와 꽤액이라길래 제가 에반게리온 내 밀어주는 커플 신지X아스카 커플과 이 장면이 생각나서 올립니다. 가릴 거 다 가려서 아주 아쉽다거나 저 빌어먹을 맥주캔 좀 정리했음 좋겠다거나 빨대를 왜 맥주캔에 꽂는 거냐아 하는 생각은 요만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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