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우 임의적이고 잡다한 인용들. 예전 노트에서 인터넷에서 기타 등등

그러나 이런 조각들을 연애편지에 써 먹을 수는 없겠지


"사랑이란 선한 것을 영원히 소유하려고 한다면 불사(不死)라는 것이 자연히 선과 함께 욕구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은 필연적으로 불사를 바라게 되는 것입니다."(플라톤,『향연』, 최현 옮김, 범우문고, 1987, 88쪽)

"만일 어떤 자가 어떤 사람으로부터 사랑받는다고 표상하며, 더욱이 자기는 사랑받을 아무런 원인도 부여하지 않았다고 믿는다면 (이것은 제 3부의 정리 15의 보충과 정리 16에 의하여 가능하다) 그는 도리어 그 사람을 사랑할 것이다."(스피노자,『에티카』제 3부 정리 41)

“사랑의 감정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항상 당신으로부터 도망가는 사람으로부터, 막상 당신은 도망가지 못하는 것이다”(알렝 핑켈크로트, 『사랑의 지혜』, 권유현 옮김, 동문선, 1998, 57쪽)

"사랑이란 곧 모순을 낳는 것이면서 동시에 모순을 해소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렇듯 모순을 지양, 해소한다는 점에서 사랑은 곧 인륜적 결합을 뜻하는 것이 된다."(헤겔,『법철학』, 임석진 역, 지식산업사, 1989, 278쪽)

"자신을 한 여자에 대한 사랑 속으로 시화(詩化)시키는 것은 입신(入神)의 경지"(키에르케고르, 『유혹자의 일기』, 임규정·연희원 옮김, 한길사, 2001, 170쪽)


“사랑에 관한 진리는 타자가 당신 안에 있는 당신 자신보다 더한 어떤 것을 위해 당신을 사랑해야 만 한다는 것이다......우리는 타자 속에서 그/녀 자신이 아니라 그/녀가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을 본다. 이것이 사랑의 바로 그 조건이다. 히스테리적 주체의 자리는 언제나 커튼 뒤에 무엇이 있는 지를 추측해야만 하는 자리이다. 그리고 바로 그 때문에 통상 그와 같은 주체는 - 사랑을 전적으로 단념함으로써- 결국 아무것도 갖지 못한다.”(레나타 살레클, 『사랑과 증오의 도착들』, 이성민 옮김, 도서출판b, 2003, 53쪽)'

“당신의 파트너가 무엇을 할 것인지를 알고 있다는 것은 사랑에 대한 증거가 아닙니다.' 라고 말한다. 그리하여 사랑은 오로지 우리가 분열된 주체이기 때문에, 즉 오로지 우리가 서로의 존재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하지 때문에 꽃필 수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불가능성이 부착되지 않은 사랑이란 없는 것이다. 또한 사랑 속에서 우리는, 종국에 가서 '그것은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다' 는 것을 인정해야만 한다. 수세기동안 사람들이 그것에 의미를 부여하려는, 즉 그것의 결여를 메우려는 시도 속에서 최고의 예술 작품을 창조해온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위의 책, 279-280쪽)

"사랑하기의 달콤함은 사랑스럽도록 유의함을 중단시킨다."(미란 보조비치, 『암흑지점』, 이성민 옮김, 2004, 81쪽)

"사랑하기는 언제나, '우스꽝스러운 대상', 땀흘리고, 코골고, 방귀뀌고, 이상한 버릇들을 가진 한 대상과 함께 있는 자신을 발견함을 뜻한다.... 이 틈 또는 어긋남을 지각함을, 그리고 그것에 대해 웃을 수 있음이라기보다는 그것에 대해 웃으려는 억누를 수 없는 충동을 뜻한다."(알렌카 주판치치, 『정오의 그림자』, 조창호 옮김, 도서출판b, 2005, 259쪽)



"우리가 '진정한 사랑'과 조우할 때, 이는 우리가 평생을 기다려 온 것이기라도 한 것처럼, 어떤 신비스러운 방식으로 우리의 이전의 삶 전체가 이 조우로 이끌리게 된 것이기라도 한 것처럼 보인다. . . . '사랑'이란 실재의 무의미한 외적 우연성이 '내부화'되고, 상징화되고, 의미를 부여받게 되는 . . . 순수하게 형식적인 전환 행위에 대한 이름들 가운데 하나다." (S. Zizek, The Indivisible Remainder,  p. 94.)


“불가능한 것은 진정 일어난다, 사랑과 같은 ”기적“(혹은 정치 혁명: 레닌이 1921년에 말했듯이 ”몇 가지 면에서 혁명은 기적이다.“)은 진정 일어난다.”(슬라보예 지젝, 『믿음에 대하여』, 최생열 옮김, 동문선, 2003, 91쪽)



"사랑은 상상적 층위에서 발생하는, 그리고 상징적인 것의 틀림없는 정복을, 자아이상의 기능의 일종의 무화, 교란을 유발하는 현상이다."(Jacques Lacan, The Seminar of Jacques Lacan. Book I, New York: Norton, 1991, p. 142.)

"사랑이란, 하나(통일적 원리)의 지배의 균열 하에서, 비록 그 하나(통일적 원리)의 형상을 지속시키면서라도, 둘이 생각되는 장소라는 것이다. 우리는 라깡이 양성(兩性)의 둘로부터 일종의 논리적 연역을 전개시켰음을 알고 있다. 양성의 둘이란 주체의 여자 '부분'과 남자 '부분'이며, 여자를 '부분부정(pas-toute)'으로 정의하고 남성적 극을 손상된 전체(Tout)의 벡터로 정의하기 위한, 부정과 양화기호들(量化記號들, quantific-ateurs)을 조합하는 배분이다. 사랑이란, 그 자체가 비(非)관계와 탈(脫)결합의 요소 속에 존재하는 이 역설적 둘의 실재성이다. 사랑이란 그러한 둘에의 '접근'이다. 만남의 사건-그 '갑작스러움'을 플라톤은 힘주어 강조한다-으로부터 기원하는 사랑은, 이 둘이 이미 하나의 법칙에 대한 돌이킬 수 없는 초과를 구성하는 것에 대한 무한한 또는 완성될 수 없는 경험의 피륙을 짠다. 나의 언어로 말한다면, 사랑이란, 지식으로부터 당연히 벗어나는, 특히 서로 사랑하고 있는 자들의 지식으로부터 벗어나는 진리인 성차(性差)에 대한 진리를 이름 없는 또는 산출적인 배수성(倍數性)으로 도래시키는 것이다. 사랑이란 만남의 사건에의 충실성 속에서의, 둘에 대한 진리의 생산이다."(알랭 바디우,『철학을 위한 선언』, 이종영 옮김, 백의, 1995, 105-6쪽)

 

"나는 사랑하고 있는 걸까?- 그래, 기다리고 있으니까." 그 사람, 그 사람은 결코 기다리지 않는다. 때로 나는 기다리지 않는 그 사람의 역할을 해보고 싶어 다른 일 때문에 바빠 늦게 도착하려고 애써본다. 그러나 이 내기에서 나는 항상 패자이다. 무슨 일을 하던간에 나는 항상 시간이 있으며 정확하며 일찍 도착하기조차 한다. 사랑하는 사람의 숙명적인 정체는 기다리는 사람, 바로 그것이다. 부재에는 항상 그 사람의 부재만이 존재한다. 떠나는 것은 그 사람이고 남아 있는 것은 나 자신이다. 그 사람은 끊임없는 출발, 여행의 상태에 있다. 그의 천직은 철새 사라지는 자이다. 그런데 사랑하고 있는 나, 나의 천직은 그 반대로 칩거자, 그 사람의 처분만을 기다리며 자리에서 꼼짝않고 미결 상태로 앉아 있는, 마치 역 한구석에 내팽개쳐진 수화물마냥 아무도 찾으러 오지 않는 그런 사람이다. 사랑의 부재는 일방통행이다. 그것은 남아 있는 사람으로부터 말해질 수 있는 것이지 떠나는 사람으로 부터 말해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항상 현존하는 나의 끊임없이 부재하는 너 앞에서만 성립된다. 그러므로 부재를 말한다는 것은 곧 주체의 자리와 그 사람의 자리가 교환될 수 없음을 단번에 상정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사랑하는 것만큼 사랑받지 못한다는 것을"

(-롤랑 바르트, 사랑의 단상 中-)


"충족된 연인은 글을 쓸 필요도, 전달하거나 재생할 필요도 없다.....그 사람을 위해 글을 쓰지 않으며, 내가 쓰려고 하는 것이 결코 사랑하는 사람의 사랑을 받게 하지 않으며, 글쓰기는 그 어떤 것도 보상하거나 승화하지 않으며, 글쓰기는 당신이 없는 바로 그곳에 있다는 것을 아는 것, 이것이 곧 글쓰기의 시작이다." (바르트, 사랑의 단상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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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로이카 2008-11-25 04: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연애 편지에 쓸 수는 없겠지만, 연애를 하는 사람이나 실연의 아픔에 시달리고 있는 사람들에게 조언해 줄 때는 아주 쓸 모가 많겠네요. 잘 봤습니다.

비로그인 2008-11-25 2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로이카 님 말씀에 저도 동감.^^

바라 2008-11-26 0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보셨다니 다행이네요ㅎ 개인적으로는 알렝 핑켈크로트나 롤랑 바르트의 말이 공감이 갑니다...
 

  "강남 아줌마와 현대차 조합원, 뭐가 다릅니까?"
  [길에서 책읽기] <청계, 내 청춘>
 
  2008-11-13 오전 7:44:49

11월 13일, 사랑과 평화의 날
  
  다시 11월 13일입니다. 옅은 잿빛 구름이 하늘을 덮고 있던 1970년 11월 13일. 그날을 겪었던 사람들은 해마다 11월 13일만 돌아오면 가슴이 찢어지는 산고를 겪습니다. 무고한 생명을 살리기 위해 한 방울의 이슬이 되었던 어느 청년 노동자의 생생한 절규가 아직도 귓전을 후려치기 때문입니다.
  
  전태일은 그저 단순한 항의나 분노의 표현으로 자신의 몸을 불태운 것이 아닙니다. 그는 노동하는 이웃이 단순한 기계가 아니라 온전한 사람이라고, 노동자는 노예가 아니라 스스로 사람임을 선언해야 사람다운 사람이 된다고 소리쳤습니다. 그는 평화시장의 나이 어린 노동자들이 시들어 가는 것을 그냥 방관하고 있는 것은 자신의 목숨을 시들게 하는 것과 같다고 여겼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몸과 마음을 던져 자신의 몸과 마음인 평화시장의 어린 노동자들 곁으로 갔습니다. 사랑과 진리의 책을 쓰는 대신 사랑과 평화의 공동체를 꿈꾸며 횃불을 들었습니다.
  
  전태일의 헌신과 투쟁은 바로 사랑의 극한이었습니다. 진심에서 우러나온 절절한 사랑과 평화의 정신이 있었기에, 사랑의 결실인 수많은 전태일들이 1970년대 내내 가슴을 찢고 태어났습니다. 전태일로 다시 태어난 수를 헤아릴 수 없는 생명체들이 전태일이라는 모태신앙을 바탕으로 자신의 목숨을 던져 노동운동에 뛰어 들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도 눈 맑고 귀 밝은 깨닫고 실천하는 자 전태일들이 사람을 사람으로 바로 세우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전국 방방골골에서 자신의 몸과 마음을 던지고 있습니다.
  
  이처럼 11월 13일은 단순히 어떤 청년 노동자의 항의 분신을 기념하는 날이 아닙니다. 11월 13일은 다름 아닌 사랑과 평화의 날입니다. 사랑을 확인하고 우리가 사람임을 선언하는 날입니다.
  
  전태일 이후 비로소 한국 노동운동은 반공 정신 병동이었던 박정희 독재 체제의 철벽을 뚫고 그 푸르른 잎을 피울 수 있었습니다. 한국전쟁 이후 빨갱이 운동으로 금기시되었던 노동운동이 비로소 개화할 수 있었습니다.
  
  전태일이 분신의 십자가를 메고 산화한 지 1년 뒤인 1971년 11월 22일 우여곡절 끝에 조합원 516명의 가입원서를 받아 연합노조 청계피복지부가 결성되었습니다. 이로써 파란만장한 청계피복노동조합의 투쟁과 1970년대 민주노조운동의 서막이 올랐습니다.
  
  이어서 1972년 5월에는 인천에 있는 동일방직에서 최초의 여성지부장 탄생과 함께 기존의 어용 노조가 민주노조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8월에는 서울의 한국모방(원풍모방) 지부가, 1973년에는 콘트롤데이타지부가, 1974년에는 반도상사 지부가, 1975년에는 YH무역 지부가 신규 민주노조로 속속 결성되었습니다.
  
  1970년대 민주노조운동은 오늘날과 같이 수많은 노동조합이 참여하는 총파업을 벌이거나 수십만이 모이는 집회를 개최한다거나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민주노조라고 부를 수 있는 노동조합의 숫자는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을 만큼 소수에 불과했습니다. 그럼에도 70년대 민주노조운동을 한국 노동운동의 원형이라고 평가하는 것은 그 운동의 질과 내용이 대단히 풍부하고 창의력 있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사망 선고 직전의 한국 노동조합운동
  

전태일은 1970년 11월 13일 스스로 '불꽃'이 돼 위대한 역사를 만들어냈다. 마석 모란공원의 묘. ⓒ프레시안

  그런데 오늘날 38번째 생일을 맞이하는 한국 노동운동은 겉으로는 번듯한 양복을 입고 얼굴은 멀쩡한 듯 보이기도 합니다만, 그러나 참으로 삭막하고 처참하기만 합니다. 또다시 1970년 그 시절의 전태일처럼 외롭고 쓸쓸하고 고독하게 결단을 요구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1970년대부터 시작된 민주노동운동이 여름날의 나뭇잎처럼 푸르기만 해야 하는데, 실상은 암세포가 전신에 퍼져 사망 선고를 받기 직전의 환자로 전락해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 금속노조 현대차지부 대의원대회에서는 비정규직에게 노조 문호를 개방하는 규칙 개정안이 예상대로 부결되고 말았습니다. 규칙 개정을 위해서는 대의원 3분의 2 찬성이 필요한데, 찬성표는 절반도 넘지 않았습니다. 영구 임대 아파트 사이에 바리케이드를 치고 차량통행조차 막거나 아예 임대 아파트가 들어서지 못하도록 시위하는 강남의 일반 아파트 주민들과 하나도 다를 바 없는 행위였습니다. 이들이 어찌 자신은 점심을 굶으면서 도시락을 싸오지 못한 시다들에게 차비를 털어 풀빵을 사주었던 전태일 앞에 설 수 있는지 참으로 민망하기만 합니다.
  
  어쩌다 한국 노동운동이 이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었습니까.
  
  우리는 이 시점에서 진실로 겸허하게 근본에서부터 다시 한국 노동운동을 성찰할 필요가 있습니다. 왜 노동운동을 하며, 노동운동의 궁극 목표가 무엇인지 곰곰이 다시 따져보아야 합니다. 임금이 오르기만 하면 노동자의 해방이 실현되는 것인지 되물어야 합니다. 너무나 자주 들어 이제는 아무런 감흥조차 나지 않는 상투어, 노동자가 해방되는 세상이란 도대체 어떤 세상인지 진지한 재검토가 필요합니다. 한마디로 한국 노동운동은 전태일 앞에서 재탄생해야 하며, 불가피하게 비정규직을 중심으로 다시 일어서야 합니다.
  
  우리는 늘 근본과 원형으로 다시 돌아가고자 하는 '처음처럼'의 비판의식을 갖고 있어야 건강함을 잃지 않게 됩니다. 한국 노동운동의 에너지 재충전은 전태일과 1970년대 민주노조운동의 역동성과 활기, 그리고 초발심으로 되돌아가야 합니다. 농촌에서 올라와 그야말로 '자유로운' 노동자로 홀로 공장에 내팽개쳐졌던 노동자들이 노동 공동체를 형성하는 순간 역사는 바뀐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 몇 천 명에 지나지 않았던 노동자들이 강한 인간관계와 연대로서 뭉치는 것을 넘어서 공동체를 조직하는 순간 철벽처럼 거대한 박정희 군사독재정권의 권력과 맞설 수 있을 정도의 힘을 갖게 된다는 사실을 다시 학습해야 합니다.
  
  1970년대 민주노동조합은 사람과 사람의 진정한 결합이야말로 그 어떤 총칼과 권력 자원의 힘보다 강하다는 사실을 새삼 각성하게 해 줍니다. 1970년대 민주노조운동에 몸담았던 수많은 노동자들이 그 이후 노동운동의 주역으로 활동했을 뿐만 아니라 오늘날까지도 생활 속의 민주주의 운동과 지역자치운동, 여성운동과 소수자 인권운동 등 우리 사회 각 분야에서 의미 있는 삶을 살고 있는 사실에서 알 수 있듯 1970년대 민주노조운동은 깊은 강물처럼 저류로서 흐르고 있는 현재 진행형의 공동체 사회운동이기도 했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은 다름 아니라 바로 이같은 1970년대 민주노조의 전태일 정신과 그 공동체입니다.
  
  노동운동의 재탄생, 공동체 노동운동
  
  잘 알려져 있다시피 자본주의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사람들의 공동체를 해체해야만 가능한 제도였습니다. 노동조합은 이처럼 해체된 공동체 성원들인 모래알같은 노동자들이 다시 새롭게 만든 공동체였습니다. 노동조합은 자본주의의 착취와 억압에 맞서는 노동자들의 조직이었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사회를 열어가는 공동체운동의 씨앗이기도 했습니다.
  
  1970년대 민주노동운동을 관통하고 있던 가장 주요한 노동운동 이념은 그 근본 바탕이 공동체 이념이었습니다. 노동조합은 새로운 인간관계의 마당이자 새로운 공동체였습니다.
  
  청계 노동자들과 동일방직 노동자들이 이구동성으로 증언하고 있는 것처럼 노동조합의 소모임은 그 어떤 거창한 이념 학습의 조직이 아니었습니다. 그냥 일상의 희로애락을 함께 하고, 자신이 하나의 살아 있는 인격체로서 인정을 하고 인정을 받는 기초 공동체였습니다. 그에 바탕을 둔 노동조합이 노동자들의 가장 중요한 공동체로 발돋움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대부분의 1970년대 민주노조 조합원들이 가장 강하게 기억하고 있는 것은 이같은 공동체 정서입니다. 1987년 이후 울산의 현대 노동자들이 경험한 것도 이같은 노동공동체였습니다. 산업선교회와 가톨릭청년노동자회에 노동자들이 그렇게 몰려들었던 것도 이처럼 소모임이라는 새로운 인간관계, 새로운 공동체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자본은 절대로 단순하거나 무력하지 않습니다. 자본은 국가도 무력화시킬 만큼 엄청나고도 막강한 힘을 행사하는 리바이어던(Leviathan)으로 변신해 있습니다. 자본은 끊임없이 노동자 조직을, 새로운 공동체의 싹을 무자비하게 잘라버립니다. 지구상의 모든 공동체는 이미 해체되었거나 해체되어가고 있는 중입니다.
  
  그런 자본에 대항해서 새로운 공동체를 형성하는 작업은 사실 고통스럽고 지난한 일임에 틀림없습니다. 1970년대 민주노조의 노동자들은 그런 지난한 일을 처음부터 너무나 큰 기쁨과 각성으로 가득 차서 시작했습니다. 공동체 속에서 노동자는 비로소 사람다운 대접을 받을 수 있었고 사람다운 삶이 무엇인지 스스로 터득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노동공동체가 퇴색되거나 사라져버린 서구의 노동조합은 그야말로 노동운동의 무덤일 뿐입니다. 노동조합이 새로운 공동체로서 자유로운 인간들의 상호부조 사회로 바꾸는 근거지 역할을 수행하지 못한다면, 노동자들이 자신의 삶을 자유롭게 누리고 또 평등과 사회정의가 확립되는 새로운 사회의 맹아가 되지 못한다면, 사회구조를 배우고 사회를 바꾸기 위한 학교가 되지 못한다면, 그 노동조합과 노동자들은 결국 노예의 노동조합과 노예노동자일 뿐입니다. 초기 노동조합의 공동체운동 이상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 수많은 서구의 노동조합은 그저 운동경기 팀처럼 하나의 사업체, 눈앞의 임금과 노동조건만 챙기는 이익단체일 뿐입니다. 그리고 한국의 노동조합도 어느새 그런 노예의 노동조합으로 변질되어 가고 있는 중입니다.
  
  1970년대 중앙정보부 제2국은 노동청과 경찰, 행정부서와 사용주까지 배후에서 조정하고 심지어는 고문까지 자행하며 민주노조의 활동을 정권 차원의 문제로 다루고 있었습니다. 중앙정보부는 한국노총 위원장과 사무총장뿐만 아니라 각 산별 위원장까지 사실상 하수인으로 삼아 노동자들의 움직임을 일일보고 형식으로 보고받았습니다. 산별노조 위원장급은 중앙정보부로부터 한 달에 3~4000원의 기밀비를 별도로 지급받았습니다(당시 쌀 한 가마는 2000원 정도였습니다). 중정 요원은 한국노총의 각종 회의와 산별노조 회의에도 참석하여 주요 문건과 성명서 등을 사전에 검토하였고 위원장 선거에도 개입하여 중정과 밀착 관계에 있는 하수인들이 당선되게끔 조작하기도 하였습니다.
  
  지금 이명박 정부가 역사를 거꾸로 돌리고 있습니다. 한국노총은 다시 1970년대의 어용 한국노총으로 복귀하고 있습니다.
  
  전태일, 새로운 공동체 노동운동의 오래된 미래
  
▲ <청계, 내 청춘>(안재성 지음, 돌베개 펴냄, 2007). ⓒ프레시안

  이 시점에서 우리는 전태일이 오늘의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가슴에 손을 얹고 다시 성찰해야 합니다. 한국의 노동운동뿐만이 아니라 민주화운동, 시민사회운동도 어느새 사랑의 정신과 공동체 정신을 잃고 말았다는 사실을 다시 깨달아야 합니다.
  
  역사가 우리의 삶을 성찰하게 하고 자신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거울이라면 우리는 전태일과 1970년대 민주노조운동의 거울을 다시 꺼내 들어야 할 때에 이르렀습니다. 한국 노동조합이 노동운동 조직으로서 거듭나려면 무엇보다도 전태일과 1970년대 민주노조운동을 다시 배우지 않으면 안 됩니다. 1970년대 민주노조가 그렇게 당연히 실천했던 공동체 운동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노동자들의 새로운 인간관계와 새로운 모임으로서 노동조합이 재정립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노동조합이 협동조합을 비롯해 공제조합 등등 다양한 노동자 조직의 산실이 되어야 합니다. "자본은 노동의 하인이 되어야 한다"는 신념 아래 펼쳤던 협동조합운동과 노동조합운동은 형제의 운동입니다.
  
  1970년대 민주노조운동은 한 사람의 노동노예를 자유인으로 변혁시켰던 인간해방의 운동이었습니다. 억압과 착취의 인간관계를 사랑과 평화의 평등한 인간관계로 바꾸는 사회해방의 운동이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공동체가 해체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우애와 협동의 새로운 공동체를 형성했던 공동체 운동이었습니다.
  
  1970년대 민주노동조합의 역사를 다시 소환해야 할 가장 중요한 지점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소모임에서부터 시작해서 노동 공동체를 스스로 만들어 나갔던 전태일과 1970년대 민주노조의 역사는 우리가 다시 그 씨앗을 뿌려야 할 가장 중요한 역사의 자산입니다.
  
  전태일과 1970년대 민주노동조합이 오늘의 노동운동, 나아가 개인의 삶과 이 사회에 던지는 의미는 무엇이겠습니까. 오늘에 던지는 절절한 호소문은 무엇이겠습니까.
  
  비정규직의 깊고 깊은 한숨과 절망의 외침이 가슴을 찢는 오늘날 한국 노동운동은 다시 옷깃을 여미고 새롭게 태어나야 합니다. 전태일과 1970년대 민주노조는 한국 노동운동이 앞으로 반드시 지향해야만 하는 공동체운동의 오래된 미래입니다.
   
 
 
 

박승옥/전태일기념사업회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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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로이카 2008-11-14 04: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라님, 오랜만입니다.

아.. 11월 13일이었군요.
저는 박승옥 선생의 글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이 글은 꽤 절절하게 잘 쓰셨네요. 하지만 정규직 노동자들을 강남 아줌마에 비교해 욕하는 이런 방식은 참 받아들이기 힘드네요. 술먹고 하는 푸념이라면 모르겠지만요.. 왜 노동자들에게는 강남 아줌마들이 갖고 있는 욕망이 부정되어야 하나요? 해방의 주체가 되고자 하지 않는 이들에게 그 짐을 씌우려고 하는 것도 폭력 아닐까 싶습니다. 딴지는 절대 아닙니다. ^^ 건강하세요.

바라 2008-11-15 2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에로이카님? 저도 뒤늦게야 11월 13일을 생각해내고는 퍼왔습니다. 저도 강남 아줌마 비유 부분이 편하게 읽히지 않았었는데요. 아마 답답함에서 나오는 이야기겠지요.. 날이 참 추운데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Alexander Miller, Philosophy of language, Mcgill-Queen's UP, 2007, p. 141~148

 

콰인은 번역 불확정성(Indeterminacy of Translation) 논제를 주장한다. 어떤 언어 L2를 언어 L1으로 번역할 때, 어떤 번역편람(translation manual, 번역 대상언어 L2의 각 문장을 번역하는 언어 L1의 각 문장과 1대 1 대응시킨 리스트를 제공해주는 편람)이 올바른지에 대한 객관적인 사실은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어떤 언어 L2를 언어 L1으로 번역할 때, 번역과 관련된 모든 가능한 증거들과 들어맞으면서도 서로 양립 불가능한 번역편람(translation manual) T1과 T2, T3 등을 구성하는 것이 원리적으로 가능하다. 언어적 표현의 의미는 규약에 의해 수립되는데, 규약은 규약을 준수하거나 준수하지 않는 화자들의 행동에 의해서만 존재한다. 번역 불확정성 논제는 행동에 관한 가능한 사실들의 총체는 서로 전혀 다른, 양립불가능한 번역편람을 구성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행동에 관한 사실은 주어진 상황에서 어떤 번역편람을 올바른지를 결정하기에 충분하지 못하다. 이는 상충하는 번역편람 중 옳은 것을 알 수 없다는 인식론적 주장이 아니라 그것을 결정해줄 수 있는 사실자체가 없다는 존재론적 주장이다. 콰인의 번역 불확정성 논제는 같은 의미라는 개념, 의미 개념 자체에 대한 객관적 사실이 없다는 점에서 의미회의주의를 함축하게 된다. 여기서 콰인은 일종의 행동주의적 전제에 호소하고 있다.(크립키는 행동주의적 전제에 근거하지 않은 의미회의주의를 보여준다)

예컨대 원초적 번역(radical translation)의 상황, 즉 언어학자가 이제까지 전혀 알려져 있지 않은 어느 부족의 언어를 번역하려고 하는 상황을 상정해보자. 이 언어학자가 증거로 채택할 수 있는 것은 그 부족 원주민의 행동(behavior, 의미론적, 지향적 용어들을 사용하지 않고 기술되는 얇은thin 개념으로서의 행동)뿐이며 이때 번역 편람의 옳음 여부를 결정해주는 것은 화자들의 행동 밖에 없다. 원초적 번역자의 과제는 원주민 언어의 문장들의 자극의미(문장 S에 대해 동의 또는 반대를 촉구하는 감각자극)와 관련된 모든 사실들이 주어졌을 때, 이 문장들에 대해서 원초적 번역자의 언어로의 적절한 번역을 제공해주는 번역 편람을 구성하는 것이다. 이 번역의 첫째 단계는 원주민 언어에서 동의나 반대를 나타내는 표현을 찾는 것이다.

"Gavagai" 시나리오를 생각해보라. 원주민이 자신의 근처에 토끼가 있을 때마다 "Yo, gavagai"라는 표현에 동의하고 토끼가 없으면 같은 표현에 대해 반대한다고 가정하자. 이 경우 원주민의 표현 "Yo, gavagai"와 우리말 "토끼가 있다"는 같은 자극의미를 가질 것이라고 생각될 수 있다. 그런데 원주민 언어의 표현 "Yo, gavagai"에 대해 "토끼가 있다"라는 번역을 선택하지 않고 "토끼의 분리되지 않은 부분(undetached rabbit part)이 있다"라는 번역을 선택하면 어떤가? 콰인은 토끼가 있을 경우 그리고 오직 그 경우에만(if and only if) 토끼의 분리되지 않은 부분이 있을 것이기 때문에, 문장 (1)과 (2)는 정확히 같은 자극의미를 갖고 있다. 이때 번역의 올바름을 결정짓는 유일한 가능한 증거는 자극의미 뿐이므로, "Yo, gavagai""토끼가 있다"로도, "토끼의 분리되지 않은 부분이 있다"로도 번역될 수 있다. (1)과 (2)중 어느 문장이 원주민 언어 표현 "Yo, gavagai"의 올바른 번역인지를 결정할 수 있는 사실은 없다. 동일한 방식으로 "Yo, gavagai""4차원 토끼-전체의 시간 편린(time slice of a four dimensional rabbit-whole)이 있다.""토끼임의 예화(instantiation of rabbithood)가 있다."로 번역하는 것도 정당화된다는 결론이 귀결된다. 이 중 어느 번역을 선택할 것인가는 유용성, 단순함, 자연스러움과 같은 순전히 실용주의적 고려에 의해 결정되며, 어떤 사실에 근거해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이에 대해 "Yo, gavagai" 이외에 원주민 언어의 다른 표현들을 고려한다면 자극의미에만 근거해서도 위 번역 중 어느 것이 옳은 번역인지를 결정할 수 있다는 반론이 가능하다. 예컨대 원주민 근처에 있는 토끼의 꼬리와 코를 각각 가리키면서 "Si hit gavagai emas sa hat gavagai?" ("이 gavagai가 저 gavagai와 같은가?")라고 질문하는 경우, 만일 원주민이 동의한다면, "gavagai""토끼의 분리되지 않은 부분"으로 번역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역시 콰인의 재반박이 가능한데, 위의 반론은 원주민 언어 표현 "emas""같은 토끼"로 번역하고 있다. 그러나 "emas""같은 토끼의 분리되지 않은 부분"으로 번역한다고 하자. 그러면 "gavagai""토끼의 분리되지 않은 부분"으로 번역할 때, 문장 "Si hit gavagai emas sa hat gavagai?""토끼의 분리되지 않은 이 부분은 토끼의 분리되지 않은 저 부분과 같은 토끼의 분리되지 않은 부분인가?"로 번역된다. 이렇게 번역될 경우는 원주민이 동의한다고 하더라도 "gavagai""토끼의 분리되지 않은 부분"으로 번역될 수 있을 것이다.

콰인의 번역 불확정성 논제는 과학철학에서는 이론 미결정성(Underdeterminantion of theory) 논제로 이어진다. 물리 이론은 가능한 모든 관찰 증거에 의해서도 미결정적이다. 다시 말해서, 가능한 모든 관찰 증거들과 들어맞으면서도 서로 양립불가능한 물리 이론 T1과 T2를 구성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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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 알튀세르, 「루소: 사회계약(불일치)」,『마키아벨리의 고독』, 김석민 역, 새길, 1992, pp.120~176.

계약; 두 PP 간의 교환 행위.

 

PP1(개인) -----> <-----PP2(공동체)

(전면적 양도)    ‘교환’           (?)


불일치1: PP2는 계약에 앞서 미리 존재하지 않는다. 사회계약은 가능한 계약을 위해 PP2를 구성하는 행위이다. 전면적 양도는 일정한 교환이 가능하기 위한 선험적 조건이다.


불일치2: 전면적 양도와 교환 사이의 불일치. 인민은 자연상태에서의 소외aliénation를 극복하기 위해 전면적 양도aliénation를 행한다. 이때 허구적인 계약이 유리한 교환을 생산한다.("각자는 자신을 전체에 양도함으로써 결국 아무에게도 양도하지 않는다...결국 사람은 자기가 상실한 모든 것과 동일한 대가를 얻게 되고 자기가 소유하는 것을 보존하기에 더욱 큰 힘을 얻는다")

불일치3: 특수이해와 일반이해의 불일치. 특수의지는 일반의지의 본질인 동시에 일반의지의 장애물(<제네바 초고>)로, 루소는 이 둘 모두의 존재를 인정한다. 이러한 모순은 루소가 고립된 각 개인의 특수이해와 사회집단의 특수이해를 동일하게 부르고 있기 때문에 발생한다. 전자는 긍정되지만 후자(당파)는 부정된다. 그러나 완전한 특수이해나 일반이해는 모두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한 하나의 신화에 불과하다.


불일치4: 이데올로기에서의 전방 비약, 혹은 경제에서의 후방 비약(퇴행). 루소는 일반의지는 인민의 계몽을 강조하는 동시에 인민과 일반의지 사이에는 어떠한 매개집단도 개입되지 않아야 함을 필요로 한다고 주장한다.(“상황을 잘 아는 인민이 토의할 때 시민 상호간에 어떤 사전 협의도 없는 경우에는 언제나 많은 수의 사소한 의견 차를 통해 일반의지가 얻어질 것이다.”) 그리고 이어서  하나의 원환이 등장한다. 계급 문제를 해결하기위한 독립적 소생산자, 수공업적 생산이라는 불가능한 퇴행적 해결책(경제에서의 후방 비약)과 이를 해결하기 위한 도덕적 설교, 이데올로기(이데올로기에서의 전방 비약)

 

*루소, <사회계약론>, 이환 역, 서울대학교출판부에서 peuple이 국민으로 번역되어 있으며 volonté générale이 전체의사로 번역되어 있다. 동서문화사의 최석기 역에서는 이 두 개념이 각각 인민과 일반의지로 제대로 옮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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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 2008-11-01 14: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la différence entre la volonté de tous et la volonté générale; celle-ci ne regarde qu'à l'intérêt commun, l'autre regarde à l'intérêt privée, et n'est qu'une somme de volontés particulières..." 전체의지와 일반의지는 다르다: 후자가 공동이익만을 추구하는 (반면), 전자는 사적이익을 추구하는 단순한 개별의지의 총합일 뿐이다. (사회계약론, 제2부,제3장,2번째 문단)

서울대출판사 본은 이 문단도 분명 번역을 했을텐데, 과연 어떻게 했을지 궁금하군요.
알튀세르의 말씀들이 어려우니, 퍼가서 곰곰 씹어볼께요(앞의 진태원-랑시에르 건도 함께).
<사회계약론>의 가장 잘 된 번역본(은 없을테고)말고, 가장 애용되는 번역본이 무엇인지 혹시 아시면 좀 알려 주실래요.

바라 2008-11-03 0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abs님, 잘 말씀해주신 것처럼 위에서 전체의지와 일반의지를 구분하는 대목 때문에 더더욱 전체 의사라는 역어가 부적절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환 역 보니까 "모든 사람의 의사와 전체 의사 사이에는 많은 차이가 있다. 후자는 오로지 공익에만 유의하는 반면 전자는 사리를 염두에 두며 개별적 의사들의 총화일 뿐이다"(40쪽)고 되어 있네요. 사실 general이 왜 전체적이라 번역되는지도 잘 모르겠지만요;;
그리고 알튀세르의 글은 직접 읽어보시는 게 좋을 거 같아요. 저도 그냥 읽으면서 메모한 거친 요약이라 좀.. 몇몇 부분은 제대로 이해했는지 자신도 없구요.
<사회계약론>은 저도 예전에 이환 역으로 샀었는데 요새 보니까 동서문화사에서 <인간불평등기원론>이랑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이 함께 묶인 최석기 역본이 나왔더라구요. 세 권 묶인 거 치고는 가격도 싸고;;(9800원) 번역도 좀 더 나은 듯 해서 저는 새로 샀는데.. 저도 잘 몰라 조심스럽지만 두 책 다 불문학자들의 번역이고 해서 성에 안 차실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영역은 케임브리지 출판사에서 나온 Victor Gourevitch 편집본을 많이 보는 거 같은데 생각해보니 불어를 하신다면 굳이 필요없을 거 같기도 하네요ㅎㅎ
 

한나 아렌트, <정치의 약속>, 김선욱 옮김, 푸른숲 

1장 소크라테스 요약


철학과 정치의 관계는 플라톤과 소크라테스의 차이에서 잘 드러날 수 있다. 역사적으로 철학과 정치 사이의 간극은 소크라테스의 죽음으로 인해 폴리스에 절망한 플라톤이 설득의 타당성을 의심함에서 시작된다. 플라톤에게 설득의 타당성에 대한 의심과 의견에 대한 비난은 연관되어 있다. 그가 보기에 설득은 다수에 대한 것으로, 진리가 아닌 의견에서 오는 것이다. 플라톤은 인간사의 영역에 이데아라는 초월적 기준을 도입하고 설득이 아닌 변증술을 내세우면서, 좋음의 이데아를 볼 수 있는 철학자가 도시의 통치자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다시 말해 설득을 통한 일시적인 좋음이 아닌 영원한 진리가 도시를 지배해야한다는 ‘진리의 폭정’을 기획하는 것이다.

그러나 진리와 의견의 대립은 ‘無知의 知’를 말한 소크라테스의 가르침에 어긋나는 것이다. 실제로 소크라테스는 가멸적 인간에게 지혜가 가능한 것인지 의심했다. 소크라테스에게 의견은 사람들이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를 보여줄 수 있는 공적 공간인 정치영역과 관계한다. 소크라테스는 시민들을 철학적 진리로 계몽시키는 것이 아니라 시민들 각자의 도크사를 개선시키기를, 즉 ‘등에’로서의 철학자가 되기를 원했다. 가멸적 인간에게 절대적 진리는 단지 드러남을 통해서 제한될 뿐이지만, 의견은 단순한 환상이나 억견이 아니라 항상 일정한 진리성을 지닌 것이다. 따라서 한 사람이 가진 의견의 진리를 다른 사람에게 드러내는 소통의 과정이 중요해진다. 이때 인간은 복수로 존재할 뿐 아니라 자신 속에도 복수성의 지표를 갖고 있기에, 소크라테스는 자기 자신과의 일치, 즉 무모순성을 요구한다. 한편 인간의 말하는 능력과 인간의 복수성 역시 서로 조응하는 것이다. 로고스라는 말에서 드러나듯이, 인간은 바로 말을 통해 생각을 드러내는 이성적 동물이자 복수의 인간들과 의견을 나누는 정치적 동물이다. 그리스의 경쟁적 정신을 극복하기 위해, 폴리스는 이와 같은 정치적 우정의 과정을 통해 공동체의 유대를 만들어낸다.

그러나 소크라테스의 기획은 실패했고, 철학과 정치의 갈등은 결국 철학의 패배로 끝났다. 소크라테스적 성찰의 상실과 더불어 철학자가 정치와 거리를 두는 시대가 개시되었고, 사유와 행위의 분리라는 귀결이 생겨났다. 플라톤이 고안해낸 몸과 영혼의 갈등 역시 이러한 사유와 행위의 분리의 연장선상에 있으며 철학으로써 정치를 지배하려는 시도에서 비롯한다. 가령 플라톤이 드는 동굴의 우화는 진리를 본 철학자와 동굴의 우매한 시민들을 다룬다. 그러나 이 우화에서는 정치적으로 인간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두 표현인 말과 행위가 완전히 빠져있기에, 동굴 거주자들은 오직 벽면을 보는 일 밖에 하지 않는다. 여기서 플라톤은 왜 철학자는 진리의 세계인 동굴 밖으로 나가자고 동료 시민들을 설득할 수 없는지 설명하고 있지 않다. 이 비유는 철학은 의견의 형성과는 거리가 먼 말없는 경이라는 감정에서 시작하고 말없음으로 끝난다는 것을 전제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철학자의 궁극적인 경험이 말없음이 될 때, 그는 말하기가 인간의 최고 능력이 되는 정치 영역 외부에 위치하게 된다. 이 말없는 경이 속에서 철학자는 자신의 단수성 위에 자신을 수립하며 인간 조건의 복수성을 파괴하게 되는 것이다. 마키아벨리, 홉스, 마르크스 등의 정치철학도 역시 이러한 전통의 연장선상에 있다. 오늘날 철학과 정치의 관계는 다시 모색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 도래할 새로운 정치철학은 모든 인간사가 벌어지는 근거인 인간의 복수성을 경이의 대상으로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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