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호수동성은 환상의 돌림병 3장에도 등장. 본래는 로베르트 팔러의 개념이라고 함. 

 

 

 

 

 

 

 

 

지젝, How to read Lacan, 40~45쪽 

"이 이상한 기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널리 알려진 상호 작용(interactivity)이란 개념에 상호 수동(interpassivity)이라는 기이한 짝패를 보충할 필요가 있다. 새로운 전자 미디어의 출현으로 텍스트나 예술 작품에 대한 수동적인 소비가 불가능해졌다는 것은 오늘날 하나의 상식이다. 나는 단순히 스크린을 응시할 수만은 없다. 나는 점차 스크린과 상호 작용하며 (프로그램을 선택하는 것에서부터 가상 공동체의 논쟁에 참여하는 것이나 소위 '쌍방향 서사'의 플롯을 결정하는 데 직접 참여하는 것까지) 대화적 관계 속으로 들어간다. 뉴미디어의 민주주의적 잠재성을 찬미하는 사람들이 초점을 두는 지점이 바로 여기다. 사이버 공간이 수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타자가 연출한 스펙터클을 따르기만 하는 수동적 관람자의 역할에서 벗어나 스펙터클에 능동적으로 참여할 뿐 아니라 스펙터클의 규칙을 수립하는 데까지 나아가게 한다는 것이다.

 

이 상호 작용의 또다른 측면이 상호 수동성이다. 대상에 상호 작용하는 것의 이면은 (단지 수동적으로 쇼를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대상 자체가 나 대신 수동성을 갖는 것, 내게서 수동성을 빼앗는 것, 그래서 대상 자체가 나 대신 쇼를 즐기고 자발적인 향략의 의무에서 해방시켜주는 상황이다. 꼬박꼬박 드라마를 녹화하는 녹화 비디오 애호가들(나도 그들 중 한 명이다)이라면, 그렇게 녹화 비디오를 갖게 됨으로써 오히려 옛날의 단순한 TV 시청 때보다 실제적으로는 드라마를 보게 된다는 사실을 잘 알 것이다. TV를 시청할 시간이 거의 없기 때문에, 소중한 저녁 시간을 TV 시청에 날려버리는 대신 간편하게 녹화를 해 두고 나중에 보려고 한다(물론 그걸 볼 시간도 없다). 실제로는 필름을 안 보지만 내가 좋아하는 필름이 내 비디오 수집함에 있다는 사실은 내게 커다란 만족감을 주며 가끔씩 소박한 긴장 완화와 달콤한 무위의 예술에 몰입할 수 있게 해준다. 마치 녹화 비디오가 나를 대신해서 나를 위해 필름을 보고 있다는 듯이. 여기서 녹화 비디오는 상징적 등록의 매체로서 대타자의 역할을 한다. 오늘날 포르노그래피 역시 점차 이렇게 상호 수동적으로 작동하고 있다. X등급 영화는 더이상 그(혹은 그녀)의 은말한 자위행위를 돕는 수단이 아니다. 단지 '행위가 이뤄지는' 스크린을 응시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다른 사람들이 내 대신 즐기는 걸 관찰하는 것으로 충분한 것이다.

 

상호 수동성의 또 다른 예로, 우리는 TV에서 썰렁한 농담에 아무도 웃지 않자 농담을 한 사람이 "진짜 웃겨. 진짜 웃겨!"라며 소란스럽게 웃어대는 대략 난감한 장면을 볼 수 있다. 그 사람은 관계의 예상된 반응을 스스로 연출하는 것이다. 이 상황은 관객의 웃음소리를 녹화해서 틀어주는 경우와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나 대신 웃는 행위자(우리, 지루하고 썰렁해진 관객은 이 사람을 통해 웃는다)는 보이지 않는 인공의 공중(公衆)이라는 익명의 대타자가 아니라, 스스로를 웃기고 있는 화자 자신이다. 그의 강박적인 웃음은 다리를 휘청거릴 때나 뭔가 바보 같은 짓을 했을 때 흔히 내뱉어야겠다고 느끼는 "저런!" 같은 감탄사와 비슷하다. 이 사례가 함축하고 있는 미스터리는 내 실수를 목격한 사람이 나 대신 "저런!"이라고 말할 수도 있으며 그래도 된다는 점이다. "저런!"의 기능은 바보 같은 실수를 상징적으로 등록하는 것이다. 즉 가상의 대타자가 실수를 알아야 하는 것이다. 폐쇄적인 집단의 구성원 전체가 알고 있는 어떤 껄끄러운 일(또한 그들은 다른 사람들도 그걸 알고 있다는 걸 안다)을 그들 중 한 사람이 부주의하게 말해버릴 때 모두 깜짝 놀라게 되는 전형적이면서도 미묘한 상황을 상기해보자. 왜? 아무도 어떤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된 것이 아닌데 왜 그들 모두는 놀라게 되는가? 왜냐하면 그들은 더 이상 알지 못하는 척하지(것처럼 행동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달리 말해, 이제 대타자가 그걸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여기에 안데르센의 <벌거벗은 임금님>의 교훈이 있다. 어느 누구도 외양의 힘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가끔씩 누군가가 부주의하게 외양을 파괴할 때 외양 뒤의 사물 역시 산산조각 나는 것이다.

 

이런 상호 수동성은 헤겔의 '이성의 간지' 개념과 정반대다. 이성의 간지에서 나는 타인을 통해 활동한다. 타자가 나 대신 행동하는 동안 나는 수동적으로 뒤에서 편안히 앉아 있을 수 있다. 내가 해머로 쇳덩이를 내려치는 대신 기계가 그 일을 한다. 내가 물레방아를 돌리는 대신 물이 그 일을 한다. 내가 다루는 대상과 나 사이에 다른 자연 대상을 끼워 넣음으로써 내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 유사한 일이 인간관계의 차원에서 발생한다. 적대적인 관계에 있는 사람을 직접 공격하는 대신 그를 다른 사람과 싸우게 함으로써 나는 편안하게 둘이 서로 치고 박고 싸우다 박살 나는 걸 지켜볼 수 있다(이것이 헤겔의 절대 관념이 역사를 관통하여 지배하는 방법이다. 절대 관념은 인간의 열정들끼리 서로 투쟁해서 절대 관념을 대신하는 일을 하게 하는 동안 열정들 간의 투쟁 바깥에 남아 있다. 고대 로마가 공화국에서 제국으로 바뀐 역사적 필연성은 카이사르의 열정과 야망을 수단으로 실현된다). 반대로 상호 수동성의 경우 나는 타자를 통해 수동적이 된다. 나는 내 경험의 수동적 측면(즐김)을 타인에게 양보하는데, 그동안 나는 계속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게 된다(녹화 비디오가 내 대신 수동적으로 즐기는 동안 나는 저녁에도 계속 일을 할 수 있게 된다 나 대신 곡비가 애도를 표하는 동안 나는 죽은 자의 유산을 처리하는 일을 할 수 있다).

 

이것은 우리를 가짜 행위(false activity)란 개념으로 데려다 준다. 사람들은 뭔가를 바꾸기 위해 행동할 뿐만 아니라 어떤 일이 발생하지 않게 하기 위해, 아무것도 바꾸지 않기 위해 행동할 수도 있다. 거기에 강박신경증자의 전형적인 전략이 있다. 그는 실재적인 것이 발생하는 것을 막기 위해 죽기 살기로 행동한다. 이를테면, 어떤 폭발 직전의 긴장 상태에 있는 집단에서 강박적으로 행해지는 대화는 항상 어색한 침묵 상태를 예방하기 위해서 이루어진다. 그 침묵 상태가 참석자들에게 잠재된 긴장을 대면하도록 압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신분석 치료 중 강박신경증자는 분석가에게 끊임없이 사건 사고, 꿈, 자기 인식의 말들을 쏟아낸다. 하지만 그의 끊임없는 발화 행위는 만약 잠시라도 말을 멈춘다면 분석가가 진실로 문제되는 것을 물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지속되는 것이다. 달리 말해, 그들은 분석가를 꼼짝 못하게 하려고 말을 한다.

 

오늘날 진보 정치의 많은 부분에서 직면하는 위험은 수동성에 있는 게 아니라 유사 능동성, 즉 활동과 참여의 몰입에 있다. 국민들은 항상 개입하여 '뭔가를 하고자' 해쓰고, 학계는 끊임없이 의미없는 논쟁에 참여한다. 진정 어려운 것은 한발 물러서서 활동을 그만두는 것이다. 권력을 가진 자들은 때론 비판적인 참여를 침묵보다 선호한다. 그들은 우리를 대화에 참여시켜 우리의 불길한 수동성이 파괴되었음을 확신시킨다. 실제로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게 하기 위해 항상 활동 중에 있는 이런 상호 수동적 상황에 맞선 비판의 첫걸음은 수동성 속으로 물러나는 것, 참여를 거부하는 것이다. 이 첫걸음은 진실한 활동, 즉 좌표계 전체를 실질적으로 바꿀 그런 행위의 토대를 밝혀 준다."
 

 

Interpassivität




 

aus Wikipedia, der freien Enzyklopädie




Wechseln zu: Navigation, Suche
Interpassivität bezeichnet eine von Robert Pfaller und anderen ausgearbeitete Theorie aus dem Bereich der Kulturwissenschaft und der Psychoanalyse. Interpassivität ist die Praxis, eigene Handlungen und Empfindungen an äußere Objekte, d.h. Menschen oder Dinge zu delegieren. Die Theorie der Interpassivität bezieht sich hauptsächlich auf den Bereich der Lustempfindungen, weshalb Interpassivität auch als „delegiertes Genießen“ definiert werden kann.





Inhaltsverzeichnis

[Verbergen]






Delegiertes Genießen [Bearbeiten]



Psychologisch ist Interpassivität eine subtile Form der Flucht vor dem eigenen Genießen. Anstatt selbst zu genießen, lässt der Interpassive Andere für sich genießen. Obwohl er diese Auslagerung als Luststeigerung empfindet, flüchtet er vor seiner Lust. Pfaller grenzt die Interpassivität jedoch von der Askese ab, wenn er betont, dass Interpassivität nicht eine Verneinung des Genießens bedeutet, sondern nur seine Verschiebung auf Andere und damit eine andere Form des Genießens. Das Genießen des Anderen (der auch Lacans großer Anderer sein kann) ist gerade das, wodurch man selbst – nur eben passiv – genießt.

Hinter dem Wunsch nach Interpassivität steht die Angst, die die Konfrontation mit dem eigenen Genießen, der Jouissance im Sinne Jacques Lacans, verursacht. Das Subjekt wehrt die Verunsicherung ab, die mit intensiven Gefühlsregungen einhergeht, und begnügt sich mit der passiven, delegierten Form des Empfindens, die es vor echter Anteilnahme schützt. Die traumatische Präsenz realer Gefühle wird abgewehrt und durch die distanzierende Vermittlung durch den Anderen ersetzt. Als neurotische Stabilisierung der eigenen Identität und als Ersatzhandlung hat die Interpassivität Züge der Zwangshandlung und der Perversion im Sinne der Psychoanalyse.



Interpassivität als kulturelles Phänomen [Bearbeiten]



Interpassivität besitzt jedoch auch eine überindividuelle, soziale, kulturelle Dimension. So analysieren die Autoren in dem von Pfaller herausgegebenen Band Interpassivität. Studien über delegiertes Genießen (2000) zahlreiche sozial verbreitete Verhaltensmuster als Formen der Interpassivität, die insofern keine pathologische Abweichung von der Normalität darstellt, sondern als „normales“ Verhalten akzeptiert ist. Auch stellt die Gesellschaft selbst zahlreiche Angebote für interpassives Delegieren bereit, etwa in Form bestimmter Konsumartikel, massenmedialer Inszenierungen und Rituale (siehe Beispiele unten). Interpassivität ist ein reziproker Prozess, der eine Wechselwirkung zwischen Individuum und Gesellschaft beschreibt.



Das Subjekt, dem Glauben unterstellt wird [Bearbeiten]



Pfaller betont noch einen weiteren, ideologischen Aspekt der Interpassivität: Man glaubt als rationaler, vernünftiger Mensch nicht an den Erfolg der interpassiven Delegation, sondern geht stets von der Existenz eines fiktiven Publikums aus. Dieses Publikum, das die Funktion eines „naiven Beobachters“ der eigenen Interpassivität einnimmt, braucht realiter nicht zu existieren. Es ist, mit Lacan gesprochen, ein „Subjekt, dem Glauben unterstellt wird“. Es „glaubt“ an die Inszenierung des Interpassiven, wodurch diese erst funktionieren kann und sinnvoll wird. Diese Funktion wird dadurch ermöglicht, dass der naive Beobachter, anders etwa als das Freudsche Über-Ich, nicht die geheimen Regungen der interpassiven Person, sondern nur die täuschende Oberfläche seiner Inszenierung sieht. Pfaller unterstreicht seine These durch das Beispiel der Darstellung einer toten Person auf einer Theaterbühne. Wenn diese Person niesen muss, erfolgt üblicherweise allgemeines Gelächter. Aber warum? Sowohl die übrigen Darsteller als auch das Publikum wissen, dass die Person in Wirklichkeit nicht tot ist. Die Freude lässt sich, so Pfaller, dadurch erklären, dass durch den Fauxpas bewusst werde, dass durch die Theaterinszenierung nicht so sehr die realen Zuschauer getäuscht wurden, sondern vor allem der fiktive naive Beobachter. Dieser (dem Bereich der Magie und des Aberglaubens angehörende) Glaube ermöglicht den ästhetischen Genuss der Fiktion überhaupt erst. Gelacht wird also nicht über die eigene Ent-Täuschung, sondern über die des naiven Beobachters.



Beispiele [Bearbeiten]



 



  • Jacques Lacan sieht den Chor in der griechischen Tragödie als stellvertretende Instanz, welche die Emotionen des Zuschauers artikuliert und ihm diese abnimmt. (Vgl. Lacan, Seminar XII: Die Ethik der Psychoanalyse, S. 303 ff.)

  • Ein geläufiges Beispiel aus der Alltagskultur ist das Dosengelächter („canned laughter“) in Sitcoms, das an unserer Stelle lacht und uns so die „Mühe“ des eigenen Lachens erspart. Wir fühlen uns so befreit, als wäre das Lachen unser eigenes gewesen. (Vgl. Žižek, Liebe Dein Symptom wie Dich selbst, S. 50.)

  • Slavoj Žižek illustriert Interpassivität an Lacans Figur des „Subjekts, dem Glauben unterstellt wird“. Er erläutert dies an einem Beispiel aus der stalinistischen Diktatur: Als der hochrangige sowjetische Politiker Lawrenti Beria 1954 starb und bald darauf als Verräter und Spion geächtet wurde, gab es in der Großen Sowjetischen Enzyklopädie einen lobpreisenden Artikel über ihn. Der Verlag der Enzyklopädie schrieb deshalb alle Empfänger an und forderte sie auf, die Seiten über Beria auszuschneiden und an den Verlag zurückzuschicken. Im Austausch für die fehlenden Seiten bekamen sie einen Artikel über die Beringstraße zugeschickt. Wenn aber alle von der Fälschung wussten, da sie ja an ihr beteiligt waren, wozu oder für wen wurde sie dann noch verschleiert? „Die einzige Antwort lautet selbstverständlich: für das nichtexistente Subjekt, dem Glauben unterstellt wird“, antwortet Žižek. Dieses fiktive Subjekt, das nach Žižek grundlegender Bestandteil jeder ideologischen Identifikation ist, glaubt sozusagen an unserer Stelle. – Vgl. Žižek, Die Substitution zwischen Interaktivität und Interpassivität, in: Pfaller (Hg.), Interpassivität, S. 15.

  • Pornografie: Man sieht Anderen zu, wie sie zusammen sexuelle Lust erleben, und genießt diese fremde Lust.

  • Manchmal werden Videorecorder programmiert, um Filme aufzunehmen, die wir selbst nie ansehen werden, sondern lediglich archivieren. Das Gerät schaut den Film gewissermaßen für uns an.

  • Der Kopierer „liest“ beim Kopieren die wissenschaftlichen Artikel, die wir danach abheften und nie zu Gesicht kriegen werden.

  • Der Bibliomane interessiert sich nicht für das Lesen selbst, sondern nur für das Sammeln der Bücher, die er gerade durch ihre Konservierung im Regal nicht mehr lesen muss.

  • Kuratoren nehmen uns die Kunstbetrachtung ab.

  • Die Klageweiber ersetzen das eigene Trauern.

  • Tibetanische Gebetsmühlen ersetzen das eigene Beten.

  • Die sogenannten Claims in der Werbung und auf Produktverpackungen artikulieren das Genießen des Konsumenten, wie etwa bei Coca Cola: „Ooh! Ooh! What taste!“

  • Die Laufschriften der Künstlerin Jenny Holzer, eine davon mit dem sinnigen Titel „Protect me from what I want“, verlocken ebenfalls zur Interpassivität: Durch das Wiederholen der Texte gewinnen sie in einer des Lesens müde gewordenen Öffentlichkeit eine solche Präsenz, dass sie selbst gar nicht mehr gelesen werden müssen; sie lesen sich praktisch selbst.

  • Der von Walter Thiele erfundene „Lachsack“, der an unserer Stelle lacht.

  • In der Nostalgie genießt man das Genießen einer früheren Zeit, z.B. den Sex der siebziger Jahre in Filmen wie Larry Flynt – Die nackte Wahrheit oder Boogie Nights. – „Früher war sogar die Zukunft besser.“ (Karl Valentin)

  • Der Sport-Zuschauer erfreut sich an Leistungen anderer, und in der Kochsendung kochen andere zum Vergnügen des Zuschauers[1].


 

Siehe auch [Bearbeiten]



 



 

Literatur [Bearbeiten]



 



  • Robert Pfaller (Hg.): Interpassivität. Studien über delegiertes Genießen, Berlin/New York: Springer 2000, ISBN 321183303-X (mit Beiträgen von Slavoj Žižek, Mladen Dolar, August Ruhs u.a.)

  • Robert Pfaller: Die Illusionen der anderen. Über das Lustprinzip in der Kultur. Frankfurt a.M.: Suhrkamp 2002. ISBN 3518122797

  • Slavoj Žižek, Liebe Dein Symptom wie Dich selbst! Jacques Lacans Psychoanalyse und die Medien, Berlin: Merve 1991

  • Jacques Lacan, Seminar XII: Die Ethik der Psychoanalyse, Berlin/Weinheim: Quadriga 1996


 

Weblinks [Bearbeiten]



 



Von „http://de.wikipedia.org/wiki/Interpassivit%C3%A4t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Interview Etienne Balibar: conjectures and conjunctures, Radical Philosophy 97(September/October 1999)
옮긴이 김정한 multitude@naver.com


에티엔 발리바르 인터뷰: 추측과 정세


에티엔 발리바르는 1960년대 초반 알튀세르를 중심으로 하는 탁월한 학생 집단의 일원이었으며, 알튀세르와 함께 {자본을 읽자 Reading Capital}(1965, 1968; 영역 1970; 국역, {자본론을 읽는다}, 두레 1991)를 저술했다. 그 후 그는 프랑스의 주요 좌파 철학자로 자리잡았다. 저서로 {역사유물론 5연구 Cinq tudes du mat rialisme historique}(1974; 국역, {역사유물론 연구}, 푸른산 1989), {프롤레타리아 독재에 대하여 On the Dictatorship of the Proletariat}(1976; 영역 1977; 국역, {민주주의와 독재}, 연구사, 1988), 최근에 영어로 옮겨진 {스피노자와 정치 Spinoza and Politics}(1985; 영역 1998; 부분 국역, {알튀세르의 현재성}, 공감 1996), {인종, 민족, 계급: 모호한 동일성들 Race, Nation, Class: Ambiguous Identities}(이매뉴얼 월러스틴과 공저, 1988; 영역 1991; 부분 국역, {발전주의 비판에서 신자유주의 비판으로 - 세계체계론의 시각}, 공감 1998), {맑스의 철학 The Philosophy of Marx}(1993; 영역 1995; 국역, {마르크스의 철학 마르크스의 정치}, 문화과학 1995), 그리고 {대중, 계급, 사상: 맑스 전후의 정치와 철학 연구 Masses, Classes, Ideas: Studies on Politics and Philosophy Before and After Marx}(1994)가 있다. 유럽 정치의 보편주의와 차이를 주제로 한 새로운 논문 선집인 {정치와 그밖의 장면 Politics and the Other Scene}은 곧 Verso 출판사에서 출간될 예정이다[2002년 5월 예정].


{스피노자와 정치}에서 당신은 철학과 정치의 관계가 '서로가 서로를 포함'하는 관계라는 것을 밝혀내고자 합니다. 이것은 당신 자신의 지적 궤적으로부터 나온 것입니까?

그렇습니다, 맞아요. 그 두가지는 고등사범학교의 알튀세르를 중심으로 하는 모임 속에서 밀접하게 연결되었지만, 그 전에도 이미 얼마간 예기되었던 것입니다. 나는 1942년에 태어났고, 그래서 1950년대 후반과 6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아주 어렸습니다. 당시는 청년 지식인들----영어권의 의미에서 중간계급 middle class이 아니라 프랑스적 의미에서 중위계급 class moyen에 속하는 교육받은 사람들, 다시 말해서 가족이 공무원이거나 교사였던 사람들----이 식민 전쟁의 상황 속에서 자신의 정치적 의식과 현실 참여를 형성해갔던 시기였습니다. 나의 부모는 중등학교 교사였고, 좌파였습니다. 아버지는 수학자였습니다. 그는 알제리의 프랑스 군대가 자행한 고문에 반대하는 항의운동에 참여하고 있었는데, 공산주의자였던 한 프랑스 수학자가 알제리 사람들을 돕다가 그곳에서 죽임을 당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나는 국립중고등학교를 마친 후, 사범학교 시험을 준비하는 특수반에 들어가기 위해, 1958년에 파리에 왔습니다. 그렇게 나는 가족을 떠났습니다. 파리에서, 나는 즉시 전쟁에 반대하는 시위에 참가했고 일종의 반제국주의적 의식을 갖게 되었습니다. 1962년 전쟁이 종결되던 시기에, 나는 사범학교 학생이었는데, 당시 그곳은 정치적으로 매우 활동적이었습니다. 우리 모두는 학생 연맹의 회원이었고 지속적으로 시위와 토론에 참여했습니다. 우리 대부분은 정치집단이나 정당에 속해 있었습니다.
좌파는 내가 속했던 공산주의 계열----당시 아주 강력했습니다----그리고 좌파 사회주의, 즉 PSU----사회당에서 갈라져 나온 소수 정당이었습니다----로 분열되어 있었지만, 모두 식민 전쟁에 반대했고, 사회주의 정당도 선거에서 패배하기 전까지 함께 움직였습니다. 예를 들어, 나보다 몇 살 많았던 바디우와 테리는 그 집단에 속해 있었습니다. 우리는 격렬하게 싸웠지만, 중심 방향에서는 통합되어 있었습니다. 만일 내가 좀더 성숙했다면, 아마 공산당 청년조직에 참가하기가 훨씬 더 어려웠을 텐데, 1956년에 헝가리 사건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당시, 우리 대다수는 공산당이----온갖 오류와 실수, 의심스러운 측면에도 불구하고----가장 강력하고 훨씬 힘있는 좌파 조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공산당에 참가했습니다. 나는 1960년에 공산주의 학생연맹에 들어갔고 1961년에 당에 가입했습니다. 애초부터 그것은 내부의 토론과 논쟁에 참여한다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나는 당이, 그리고 더 일반적으로 당을 둘러싼 조직체계가 청년 지식인이 순수하게 지적인 환경 속에 감금되지 않도록 하기를 바랬습니다. 이런 요소는 이후 아주 영향력 있는 몇 년 동안 수많은 친구들과 동지들을 마오주의로 몰아갔는데, 그 사상은 이를테면 상징적으로만이 아니라 철학적으로도, 언제나 노동계급과 함께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물론 우리는 크게 상심하게 되는데, 파리 같은 곳에서 당은 부르주아적인 노동의 분할을 조심스럽게 재생산했고, 지식인들, 특히 이런저런 식으로 비판적인 지식인들을 노동계급으로부터 고립시켰기 때문입니다.
철학에 대해 말하자면, 그것은 약간 뒤늦게 다가왔습니다. 사범학교에서 시험은 다학문적인 것이었는데, 이 말은 아주 완벽한 인문학 교육을 제공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나는 지금도 그로부터 혜택을 누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문학과 고대 언어, 특히 독일어, 그리고 다른 주제들과 다를 바 없이 약간의 철학을 공부했습니다. 역사는 아주 중요했고 나는 또한 수학에도 관심을 가졌습니다. 애초에, 나는 고대 역사와 고고학 사이에서 망설였는데, 그 분야는 나와 같은 청년 인문학자들에게는 극히 이름이 높고 매력적이었습니다. 나는 문학과 고대 역사 과정을 따라가기 시작했지만, 그것들이 지독히 지루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동시에 나는 철학적 정세가 너무 재미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르트르는 때맞침 {변증법적 이성 비판 Critique of Dialectical Reason}을 출간했습니다. 메를로퐁티는 콜레주 드 프랑스에서 강의를 진행하고 있었습니다(몇 년 후에 사망했지만요). 레비스트로스의 경우 우리는 그를 항상 철학자로 간주했는데, 아주 탁월한 논문들을 출간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것이 나를 강력히 끌어당겼습니다. 나는 생각했어요, 왜 안돼? 왜 나는 안돼? 하고. 당시 사범학교의 학장이, 강의도 했습니다만, 헤겔을 프랑스에 소개했던 장 이폴리트였다는 사실을 덧붙여야겠습니다. 처음 몇 년 동안 나 자신의 철학 교육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세 사람은 이폴리트, 알튀세르, 사르트르였습니다. 사르트르의 강의는 분과를 바꾸기로 결심한 직후 처음 들었지요. 얼마 후에, 소르본에 조르주 캉길렘이 있었는데, 나보다 약간 나이가 많지만 나의 친구인 피에르 마슈레는 나를 그의 세미나로 데려갔습니다. 그러나 이폴리트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았어요, 당시 나는 헤겔을 거의 이해하지 못했지만 말입니다. 나는 그게 너무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그것은 곧 도전이기도 했습니다. 처음 몇 년 동안 나는 {순수이성 비판}과 {변증법적 이성 비판}, 칸트와 사르트르를 동시에 읽기로 결심했습니다. 이것은 성공하지 못했는데, 우리는 정치적 기선을 잡는데 시간을 모두 허비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커다란 지적인 열의를 불러일으켰습니다. 나는 선택했다고 확신했지만, 오래 동안 의문이 남았습니다. 나는 내가 진짜 철학자라고 확신하지 못했습니다. 지금은 그런 의미에서라면 아무도 철학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알튀세르는 "당신은 당신의 정체성을 확신하지 못한다, 그러나 당신은 마치 그런 것처럼 행위한다"고 항상 말하곤 했습니다. 당신은 자신이 철학자임을 확신하지 못한다, 그러나 당신은 마치 그런 것처럼 행위한다, 왜냐하면 당신의 학생들은 당신에게 그런 형상을 표상하기를 요구하기 때문이지요.


엄격한 언어의 꿈

당신은 자신의 인문학적 배경을 이야기했지만, 초기 알튀세르 시기는 강력한 반인간주의적 과학 개념에 대한 탐구가 지배적입니다. 과학에 대한 생각은 우선적으로 공산주의 전통으로부터 유래했던 것입니까, 아니면 다른 곳으로부터, 이를테면 캉킬렘으로부터 유래했던 것입니까?

두가지가 결합된 것이지요. '과학'이란 단어 자체가 상징적인 무게, 일종의 신비한 아우라를 지니고 있는데, 그것은 우리에게 그런 모든 측면들을 함께 결합시키는 꿈을 꾸도록 했습니다. 정치----노동계급 정치----의 과학적 기초라는 관념은 맑스주의 전통으로부터 물려받았지만, 우리 연구의 인문학적 측면 또한 아주 유효했습니다. 알튀세르를 중심으로 하는 거의 대부분의 청년 철학자들----랑시에르와 뒤뢰(우리 모임에서 극히 중요한 사람이었지만, 결코 아무 것도 출간하지 않았습니다), 마슈레, 바디우, 나 자신을 비롯한 다른 이들----은 인문학자였고, 좀더 엄격한 언어와 사유 방식을 꿈꾸고 있었습니다. 우리 중 일부는 논리학이나 수학 같은 학문에 특별한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나 자신도 당시 수학과 논리학을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우리는 모든 것을 한꺼번에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내가 알랭 바디우를 존경하는 한가지 이유는 아마 그가 수학의 중요한 지류----기초 부문----에서 완벽하게 현대적인 연구를 수행했던 우리 모임의 유일한 사람이기 때문일 겁니다. 그러나 그런 점에는 확실히 상대적인 것이 있습니다. 그가 다른 누구보다 더 박식한 것은 아니지요.
이것은 이른바 분석적 방법을 채택하는 '앵글로-색슨' 쪽 철학자들과 소통하기가 아주 어려운 이유를 설명해줍니다. 그것은 철학에서 과학적 이상을 갖고 있는 사람들과 단지 인문주의적이고 문학적 이상을 갖고 있는 사람들 사이의 갈등이 아닙니다. 두가지 상이한 과학 모델, 두가지 상이한 과학적 이상 사이의 갈등이지요. 그들이 아주 강경하게 경합하는 이유, 그런 오인을 불러일으키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느슨하게 말하자면, 나는 분석 맑스주의자----내 친구인 게리 코헨 같은----를 포함하는 분석 철학자들에게 우리가 염두에 둔 이른바 과학적 모델이란 것은 순수한 문학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또한 우리에게, 그들이 염두에 두는 '과학적' 모델은 중세 스콜라적인 것과 별로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우리는 공리적 이론 모델을 갖고 있습니다. 그들은 논증을 제시하는 증명 모델을 갖고 있지요. 이것은 과학에 대한 통념이 자신의 고유한 위치 외부에 적용될 수 있는 적대적인 방식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우리는 과학적 분과에서 완벽한 훈련을 획득하는 데 있어서 캉길렘의 모범을 정확히 따라가지는 못했을지라도, 당신이 외부의 시각에서 본다면, 당신이 그 분과 자체에서 훈련받지 않았다면 진지한 과학 철학이라고 할 수 없는 그런 신념을 갖고 그를 따라갔습니다. 결국, 그것은 역설적인 효과를 가져다주었습니다. 나 자신의 경우, 1960년대와 70년대, 결정론 같은 인식론적 문제를 연구하려 하고 과학적 방법을 역사적이고 정치적인 문제에 적용할 수 있는 가능성을 탐구했을 때, 나는 여전히 그 개념의 정확한 의미에서 나의 과학적 훈련을 향상시키겠다고 희망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떤 계기에----그리고 맑스주의에서의, 보다 일반적으로는 정치에서의 인식론적 패러다임의 암묵적인 포기와 아마도 동시적이었을텐데----나는 그것이 실천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내가 과학적 패러다임을 포기했다고 말할 때, 이것은 내가 정치 또는 철학이 자신의 방법과 자신의 결과에 있어서 과학적이라고 하는 관념을 폐기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내가 과학이나 과학적 이성을 지성의 소외 형태로 보는 자들의 진영에 참가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이것은 내가 과학적 사유를 경멸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나는 루카치나 프랑크푸르트 학파에 의해 대표되는, 포스트맑스주의나 포스트헤겔적 전통에 전적으로 반대합니다. 그것은 이른바 포스트모던적인 태도의 구성에 기여해왔고, 과학적 객관성이라는 관념이 인간성을 위한 방향을 오도하거나 무시한다고 제시하곤 합니다.

당신이 인식론적 패러다임을 포기한 시기는 언제입니까?

두가지 단계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알튀세르와 그의 소규모 학생 모임과 공유하는 것인데, 1968년 바로 그 전후의 시기였습니다. 다른 하나는 알튀세르와 무관했고, 훨씬 나중에 다가온 것으로, 1980년대의 일이었습니다. 첫 번째는 이른바 자기비판이었으며, 맑스주의 철학은 과학적 모델로부터, 일종의 '과학의 과학' 또는 모든 과학에 대한 과학적 비판으로서 발전될 수 없다는 것, 오히려 정치적 갈등의 모델로부터, 이른바 이론에서의 계급투쟁으로서 발전되어야 한다는 관념을 중심으로 조직되었습니다. 알튀세르는 철학에 뭔가 고유하게 다성적이거나 애매한 것이 존재한다는 관념을 항상 갖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과학적 이상과 정치적 이상을 결합시키기 때문이지요. 많은 점에서 이것은 플라톤적인 철학관입니다. 나는 이제 알튀세르가 이런 의미에서 플라톤주의자였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놀라고 있습니다. 그러나 특수한 순간에 그 우위성은 전도되었습니다. 철학이 과학이 되려고 하는 정치적 담론이라는 생각을 유지하는 대신에, 그것은 다른 방향으로 나아갔습니다. 철학은 궁극적으로 그 정치적 기능을 통해 형성되고 결정되는 이론적----과학적이라는 의미에서----담론이라는 관념으로요. 이것이 첫 번째 물결이었습니다.
나에게, 두 번째 물결은 내가 스피노자에 대해 저술하기 시작할 때, 또한 정체성들----내가 모호한 보편성이라고 부르는 것----과 관계를 맺는 새로운 정치적 쟁점에 관하여 사유하기 시작할 때 나타났습니다. 이것은 순수하거나 이상적인 과학적 철학 모델만이 아니라, 이론에서의 계급투쟁에 대한 협소하거나 편향적인 강조까지도 포기하도록 강제했습니다. 내가 계급투쟁을 신뢰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이론은 계급투쟁과 분리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나는 이제 이론과 실천의 관계가 더 복잡하고, 아마도 비틀려있다고 확신합니다. 그 때문에, 나는 '해석학'이나 심지어 단순히 '비판적 담론'과 같은 용어들을 사용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철학에는 아포리아적인 요소가 존재합니다. 철학은 추측----이론적 관점에서 볼 때, 추측과 정세----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과학적 공리 모델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당신이 공산당을 떠난 이후, 1980년대에 일어난 당신 작업의 변화를 독해하는 한 방법은 일정한 포스트 68년의 정치적 경향----크게 말하자면 자유론적 libertarian 경향----의 이론적 회복으로 보는 것입니다. 그런 경향은 PCF의 관점에서 비판받아왔지만, 지금은 좀더 이단적인 맑스주의 내에서 고유한 이론적 생명을 향유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당신이 계급투쟁을 대중 갈등의 정세적 특정화로 재배치하는 것은 수많은 사람들이 좌파 급진주의의 형태로 해석하곤 하는, 정치적 조직화의 정당 형태와 맞지 않는 방식으로 사회적 갈등의 일원적이고 이원적인 패턴들에 대해 다수성을 우선시하는 것입니다. 당신은 이런 해석을 어느 정도까지 수용합니까?

1960년대 후반과 70년대 초반에 알튀세르를 중심으로 하는 모임은 맑스주의를 새로운 방식으로 재구축하려 했고, 단선적 인과성(맑스주의적 전통에서 단선적 목적론과 구별되지 못하는 것)을 포기하면서 중층결정, 이데올로기적 구조의 자율성 등의 관념들을 도입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이런 맑스주의는 계속해서 계급투쟁을 최종심급으로 본다는 점에서 극단적으로 정통적이었고, 당신이 언급하는 자유론적 경향과는 아주 달랐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68년을 이해했던 방식을 봅시다. 프랑스에서, 적어도 68년은 문화 내부에 판돈이 걸린 특정한 정치적 쟁점이 존재한다는 관념을 제공했습니다. 그런 관념은 아주 분명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당신이라면 그로부터 몇가지 상이한 방향으로 나아갈 수도 있을 것입니다. 당신이 자유론적 관점이라고 부른 것을 채택할 수도 있고, 아니면 상부구조에 대한 맑스주의적 통념의 발전으로 이해하려고 노력할 수도 있습니다. 처음에, 이것이 우리가 했던 일입니다. 이것이 알튀세르가 [이데올로기와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에서 하려고 했던 일이었고 내가 계급투쟁 개념을 확장시킴으로써 하려고 한 일입니다. 그것은 일반적 모델이었을 뿐만 아니라, 모든 정치적이고 이론적인 다원주의를 끌어당기는 중심이라고 생각되었습니다. 이것은 오늘날 생각하는 것만큼 그렇게 어리석은 일은 아닙니다. 그것은 착취 같은 개념을 포기하지 않고, 따라서 사회적 조화나 합의와 관련하여 사회적 갈등이 부차적이라는 관념을 수용하지 않고서는 사회적 문제를 이해하는 핵심으로서 계급투쟁 모델을 상대화시키기가 극히 어렵다는 것을 입증합니다. 나는 그에 다소간 동의합니다.
두 번째로, 페미니즘 같은 다른 정치적 쟁점을 돌아볼 경우, 나는 젠더 갈등 및 사회 역사에 대한 가부장제의 중요성을 이론화하는 것이 계급투쟁 모델에 아주 많이 빚지고 있다는 인상을 받습니다. 이런 적대성은 계급투쟁 자체와는 다르지만 그만큼 보편적이고 결정적이라고, 따라서 특히 이론적으로 그와 갈등하고 있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것을 푸코와 비교해봅시다. 그는 계급투쟁 모델을 분명히 상대화시키려는 목적으로 대안적인 모델을 진보적으로 발전시켰습니다. 그것은 갈등성 agonism 모델입니다. 적대성이 아니라 갈등성----사회 집단들보다 오히려 역사적 행위자들에 집중하는 경쟁하는 세력들과 실천들의 불안정한 관계----이지요. 그러나 그에는 한계도 존재하는데, 아주 분명히, 계급투쟁의 경우와 젠더 억압의 경우 모두에 말입니다. 그 모델은 세력관계를 단번에 확립된 것으로 보는 결정론적 시각에 대립하고, 또한 언제나 저항이 존재한다는 것----그 모델의 주요 관념----그리고 이 저항이 그 자체로 균형이 생산되는 과정의 일부라는 것을 시사합니다 그것은 헤겔적이거나 맑스적이라기보다, 마키아벨리적입니다. 그러나 오랜 기성의 지배는 이런 방식을 묘사하기가 극히 어렵습니다. 갈등적 모델로 환원될 수 없는 합리적 착취의 구조가 존재하는 것이지요.


마오주의와 국제주의

아마도 우리는 마오주의의 문제를 경유하여 자유론 libertarianism의 문제에 접근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마오주의는 다른 어떤 유럽 나라보다 프랑스에서 훨씬 더 중요했던 것처럼 보입니다----마오주의의 장점의 측면이라기보다는 정치적 운동으로서, 정치적 분열을 창출하는 그 상징적 힘으로서 말입니다. 이 두가지 모두 사람들을 공산당으로부터 좀더 노동자적인 좌파 행동주의의 형태로 이동하도록 만들었고, 동시에 1970년대 동안 냉전 자유주의로 전향하는 조건을 창출하는 데 결정적이었습니다. 역사적으로, 마오주의는 두가지 아주 상이한 정치적 극단을 가리킵니다. 프랑스에서 마오주의가 그렇게 영향력이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프랑스뿐만이 아닙니다. 마오주의는 기존의 강력한 제도 공산당이 존재하는 모든 유럽 나라들에서 영향력이 있었습니다. 마오주의는 1960년대와 70년대 프랑스에서 강력했지만 벨기에, 이탈리아, 스페인에서도 어느 정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스페인의 경우는 독재가 붕괴하고 있었기 때문에 좀더 복잡하지만 말입니다. 공산당 자체가 강력했던 곳에서, 마오주의는 매력적이었습니다. 그것은 지식인, 학생, 그리고 필경 노동자에게도----물론 프랑스의 주요 마오주의 조직은 학생 조직이었지만----호소력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본래의 순수성을 지닌 공산주의 모델의 급진적 판본인 듯 보였기 때문입니다. 이상적인 공산당을 재창출하려는 마지막 시도였지요. 그로부터 마오주의는 사회적 민족국가 내부의 공산당에 내재된 일종의 수치스러움에서 벗어날 것을 제안했는데, 그곳에서 노동계급 조직은 혁명적 담론을 갖고 있지만 노동계급을 복지국가의 구조 내부로 통합하는 기능을 수행합니다. 복지국가 내부의 사회적 세력균형의 일부이지요. 프랑스 공산당의 전형적인 모순도 바로 이런 것이었습니다.
프랑스 마오주의는 전통 부르주아 문화의 규범적 형태에 반역하는 청년 지식인 운동이었습니다. 이것은 일종의 세대론, 부모가 레지스탕스였거나 1945년 이후 주요 계급투쟁에 참여했거나, 아니면 공산당에 소속했다가 그것을 포기했거나 내던져버린 그런 세대의 이야기입니다. 그들은 국제주의적 수준에서 중국이 공산주의 운동의 영속적인 위기의 해법을 표상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에 마오주의 모델에 매혹되었습니다. 나 자신도 이상적인 중국 모델, 문화혁명에 강력히 관심을 기울였는데, 그것은 우리가 중국에 투영시켰던 것이었고, 그 실재 역사는 전적으로 무시했습니다. 되돌아보면, 우리는 아주 편파적이었고 대부분 중국에서 현실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일에 관한 잘못된 정보만을 갖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이른바 문화혁명이 두가지 측면, 우리나라에서는 실질적으로 결코 통합할 수 없을 것 같은 측면들, 즉 부르주아 규범에 대한 자유론적 반역과 자본주의에 대항하는 효과적인 운동을 결합시키고 있다고 상상했습니다. 이것은 문화혁명과 홍위병에 대한 이상적인 그림으로 축약될 수 있었습니다. 포스트-니체적인 문화 반역과 맑스적인 계급투쟁의 통일을 꿈꾸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아주 수상쩍고 억압적인 조직 형태를 야기했습니다. 프랑스의 경우, 로베르 린하르 같은 사람 덕분에(그는 개인적으로 아주 비싼 대가를 치뤘습니다) 테러리즘으로까지 가지는 않았지만, 그것은 일체의 반대를 진압한다는 측면에서 공산당보다 더 나쁜 극단적인 실천이었습니다. 혹독한 모순이었지요.

그 과정에서 反베트남 운동은 어느 정도의 중요성을 갖고 있었습니까? 수많은 학생들을 마오주의로 귀의시켰던 베트남 전쟁과 관련하여 공산당의 급진주의의 결여라고 볼 수 있는 것이 있었던 것입니까?

아마 당신 말이 맞을 겁니다, 그래요. 그것은 당시 가장 끔찍한 실수 중의 하나였습니다. 프랑스에서 1960년대와 70년대 초반의 급진적인 청년 공산주의자들은 대부분 소비에트 연방이 국제적인 수준에서 보수세력으로 행위하고 있다고 (올바르게)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내 친구 이매뉴얼 월러스틴은 최근 소비에트 연방이 자본주의 세계경제의 중대한 일부인 국제적 국가체계를 안정화시키는 가장 효과적인 도구였다고 주장하기까지 합니다. 그래서 그는 전세계에 걸친 학생과 청년 노동자의 68 운동을 세계경제의 국가체계----당연히 사회주의 국가들과 공산당을 포함하는----에 대항한 반란으로 묘사합니다. 그러나 당신이 그렇게 보지 않을지라도 … 내가 기계적으로 이야기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그와 같은 정합적인 또는 체계적인 방식으로, 당시 사회주의 체계는 실제로 안정을 유지하는 보수적 요인으로 작동하고 있었습니다. 또한 그런 이유로 대개 소비에트 연방의 정치에 밀접히----정치적이고 재정적으로----의존해있던 서구 공산당도 동일한 방식으로 작동했습니다. 공산당들은 자신들이 세계의 혁명운동을 후원하고 있음을 정기적으로 선언하면서 이데올로기적 면책을 얼마간 얻어내야 했습니다.
세계의 모든 혁명 그룹들의 거대한 지지자라는 중국에 관한 이상적인 그림은 우리가 베트남 동지들과 토론하던 1970년대 초에 붕괴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학생을 비롯해서 프랑스에 수천 명이 있었으며, 사태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설명하고자 했습니다. 그 다음에는, 중국의 사건이 극히 중요했습니다. 중국이 피노체트 쿠데타를 지지했던 것입니다. 그것은 개인들을 완전히 대립적인 두가지 방향으로 몰아가는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나는 전통 공산주의에 헌신하다 친중국적 열광으로, 또한 거기에서 전혀 다른 것, 냉소주의, 종교, 냉전 자유주의 등으로 전환해갔던 내 세대 사람들을 예를 들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것은 지독히 파괴적인 효과를 갖고 있었던 것입니다. 오래 지속되지는 않았지만, 지독히 파괴적인 효과였습니다.
그러나 공산주의는 맑스나 맑스주의에 앞서 존재했던 하나의 사상이었고, 운동으로서 그리고 정합적 이론으로서 맑스주의의 종언 이후에도 아마 존재할 것입니다. 따라서 포스트-맑스적 공산주의 post-Marxian communism 같은 것이 존재할지도 모릅니다. 심지어 포스트-맑스적 공산주의는 맑스적 공산주의로부터 유산을 물려받아야만 합니다. 이미 상속받고 있는 핵심 요소 중의 하나는 국제주의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국제주의는 맑스적 사회주의----현실적으로 존재하는 사회주의----의 이야기 속의 가장 역설적인 쟁점인데, 그것은 언제나 하나의 이상으로서 염원되지만, 현실적으로는 거의 완전히 부정되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세계에서, 탈맑스주의자들 ex-Marxists은 경계선----국가 경계선, 문화적 경계선----을 가로지를 수 있는 능력과 욕망을 가진 사람들을 대표하고 또한 일종의 진보세력의 초민족적 공동체를 지향하며 작업하는 유일한 자들이 아닙니다. 프랑스 마오주의의 전통은 국제주의에 아주 깊이 헌신하고 있습니다.


철학과 이데올로기

{맑스의 철학}의 후반부 쪽에 가면 "교의 doctrine란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인상적인 글귀를 읽을 수 있습니다. 나는 이에 대해 두가지 의문을 갖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이런 정식화가 일정한 정치적 역사, 즉 교의라는 통념에 기반한 정치적 기획에 대한 반작용을 어느 정도까지 표상하는가 하는 점입니다. 두 번째는, 이런 관념에 조응하는 철학의 개념이란 무엇인가 하는 점입니다. 이것은 맑스를 '끝없는 시작'의 철학자로 보는 당신의 관념으로 연결되는 것 같습니다.

당신의 말처럼, 그 책은 {맑스의 철학}으로 출간되었습니다만, 가능하면 맑스의 '철학들' 같은 제목을 채택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맑스의 철학이란 관념은 단일한 교의 내지 통일적 철학이라는 겉포장 밑에 있는 아포리아적 방법으로 설명되어야 하기 때문인데, 그것은 맑스주의 전통에 의해 창출되었고 어쩌면 맑스 자신의 꿈이었을지도 모르지만, 완성될 수 있는 통일적인 것이란 현실적으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맑스의 운명이라는 특정한 사례와 관련되는 것인지, 아니면 좀더 일반적인 경우인지는 살펴봐야 합니다. 맑스주의의 통일성을 재구축하려는 시도들 중의 하나에 깊이 휘말려왔지만, 나는 이제 그것이 아포리아일 뿐만 아니라, 왜 상상했던 결과를 가져오지 못했는지를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단순히 알튀세르가 아팠기 때문에, 아니면 그가 정치적 헌신을 이론적 활동과 결합시키고자 했던 정세가 그가 상상했던 것처럼 극히 유리한 대신 결국 아주 힘겨웠기 때문도 아니었습니다. 본질적인 이유가 있었습니다. 나는 맑스에게 이론이란 없다, 맑스에게 철학이란 없다가 아니라, 그런 철학은 상이하고 대개 모순적인 기원들 및 개념들의 잠재적인 결합이며 여전히 그렇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나는 그것을 철학과 관련한 맑스의 한계 입장 boundary position이라고 부르는데, 이것은 부정적인 것은 아닙니다.

여하튼 그것은 당신이 모든 철학에 대해 보유했던 입장은 아닙니다. 그것은 철학 그 자체와는 무관하다는 것인가요?

좀더 완전하게 정교화시켜야 하는데, 왜냐하면 어느 쪽의 의미에서든 해석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문자 그대로 말해서 단지 맑스라는 특정한 경우에만 적용한다고 할지라도, 나는 그것을 좀더 폭넓게 적용하려는 시도에 반대하지 않습니다. 그런 경우에 우리는 진정한 철학자들----위대하든 변변찮든----은 교의의 체계를 건설하지 않는다는 관점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모든 진정한 철학자에게는 본래적으로 아포리아적인 요소가 존재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왜 철학의 역사상 그렇게 수많은 결정적인 책들이 완성되지 않는지, 완성될 수 없는지에 대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철학자들이 체계적이지 않다는 것, 그들이 체계를 건설하길 원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닙니다. 다시 말해서 철학은 철학자들이 체계를 획득하길 꿈꾸지 않는다면 존재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철학자들의 위대함은 그들이 그렇게 하는데 실패하는 방식에 놓여 있습니다. 내가 이렇게 말하면 수많은 이들이 웃을 테고, 내가 망상에 사로잡혀 있다고, 내 자신이 겪은 맑스의 경험이 내 정신을 비틀어놓았다고 말할 겁니다. 내 친구의 한 명인 알렉산드르 마트롱은 프랑스에서 가장 탁월한 스피노자 전문가인데,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은 매년 새로운 아포리아를 발견하고자 한다. 스피노자의 대중 개념은 아포리아적이다, 민주주의 개념은 아포리아적이다, 이런 식으로. 그건 미친 짓이다." 나는 어떤 철학적 교의의 잠재적인 통일성과 정합성을 생산하고 발현시키려는 목적을 갖는 입장에 대해 응수하는 사람이 있어야만 한다고 답변했습니다.

누구든 그와 같은 아포리아적 철학관의 원천에 관해 상이한 설명을 상상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글쓰기, 텍스트성과 사유의 관계에 관련되는 것입니까, 아니면 좀더 폭넓게 역사, 어쩌면 정세라는 통념에 관련되는 것입니까?

왜 우리는 오래됐지만 유용한 용어법을 고수하지 않을까요. 그것은 이데올로기와 철학의 관계에 연결됩니다. 그것은 위대한 철학자란 결코 단순하고 일관되게 자신의 이데올로기적 진영에 속하지 않는다는 사실과 관련을 맺습니다. 이것은 추상적인 원리가 아니며, 뒷받침할 증거도 존재합니다. 또한 우선적으로 주관적이거나 심리적인 요소와도 무관합니다. 위대한 철학자들이 자신의 진영에서, 주류에서 요구하는 것과 정확히 대립하는 담론을 제공하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정도는 놀라운 것입니다. 감옥에 가면서까지 군주정이나 전제정을 주장하는 플라톤뿐만이 아닙니다. 아테네의 현존하는 민주주의 개념을 귀족정과 민주주의 사이의 대립을 뛰어넘는 새로운 토대로 대체시키려 하는 아리스토텔레스만이 아닙니다. 최선의 토대는 왕의 신권이 아니라 일종의 급진적인 민주주의적 토대에서 발견되어야 한다고 영국 군주정을 납득시키려는 홉스만도 아니지요. 그보다 더 근본적인 것입니다. 그것은 모든 위대한 철학의 사후 효과입니다. 좌익 헤겔주의와 우익 헤겔주의가 존재하는 것처럼, 똑같이 좌익 맑스주의와 우익 맑스주의가 존재합니다. 모든 위대한 철학의 바로 그 핵심에는 이데올로기적 헌신과 객관적 논증의 논리 사이의 모순이 놓여 있습니다. 자의든 타의든, 철학자는 이데올로기가 봉쇄하는 쟁점을 다시 열어놓습니다. 이것은 철학자의 정치적 입장이 때때로 극단적으로 수상쩍은 이유입니다----예를 들어, 플라톤과 하이데거를 보십시오. 당신은 결코 논증의 의미를, 그것이 이바지한다고 생각되는 이데올로기적 목적으로 환원하는 데 성공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것은 또한 정세라는 통념과 관련되는 것이겠지요? 당신의 작업을 관통해서 흘러가는 연속성의 실마리는 정세라는 통념인 것처럼 보입니다. 당신은 아포리아가 사고의 정세적 성격과 사유의 본성 사이의 모순으로부터 도출된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겁니다. 당신이 이데올로기에 관한 논점을 이런 방식으로 제기할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철학과 이데올로기 사이의 모순은 언제나 정세적이라는 것이지요?

동의합니다만, 나는 여기서 내가 말하고 있는 바를 입증할만한 위치에 있지 않습니다. 그런 것들, 추측, 추정, 주관적 정당화는 철학에 관하여 글을 쓰거나 내 작업에서 철학적 통념을 사용하는 특정한 방식에 후험적인 a posteriori 것입니다. 루만의 개념으로, 이데올로기들은 복잡성-환원 기계들 complexity-reducing machines이고, 대부분의 이데올로기적 대안들의 이분법적 성격은 그런 측면에서 지독히 강력합니다. 그것은 사회과학과 인문학을 지배합니다. 그것은 온갖 기술적이고 과학적인 방법론, 그리고 실험적 지식에 대한 몰두 때문에, 사회과학은 기본적으로 이데올로기로 존재한다는 가장 강력한 지표들 중의 하나입니다. 당신은 예를 들어 개인주의와 전체주의, 아니면 행태주의와 의식의 해석학 같은 것들 가운데서 어느 하나를 선택하도록 지속적으로 재촉 받습니다. 당신이 말하는, 실천과 이론이 뒤섞이고 서로에 대해 작동하는 정세는 결코 이런 의미의 이데올로기적 대안들로 환원될 수 없습니다. 철학의 관심은 정확히 이런 방향 속에 놓여 있습니다. 대개 철학자들은 어느 한 측면을 선택합니다. 그들은 기본적으로, 예를 들어 전체주의자이기보다는 개인주의자이다, 혹은 실재론자이기보다는 명목론자이다, 이런 식이지요. 그러나 이런 입장을 일관된 태도로 정교화시키려 할 때, 그들은 대개 자신들의 초기 입장을 파괴하는 성과를 거둡니다. 이런 사례는 수없이 많습니다. 모든 철학자는 초기 철학과 그것을 파괴하는 후기 철학을 갖고 있습니다. 철학자들은 정세 속에서 그 모순을 극단까지 밀고 갑니다. 그들은 정세 속의 잠재적인 혹은 본래적인 모순에 극단적인 정식을 제시하는데, 이와 동일한 방식으로 나타나는 담론은 전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밖의 담론들은 복잡성을 환원시킬 필요성에 의해 전체적으로 제어되기 때문입니다. 그에 대한 상대물은 문학 장르처럼, 철학이란 열린 영역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종류의 글쓰기 내지 이론적 활동이 철학적인 것인지 아닌지 사전에 결정하는 질문이 존재합니다.

그것은 철학적 담론의 보편성에 어떤 효과를 발휘합니까? 전통적인 맑스주의적 철학 비판은 그것이 소외된, 추상적인 정신 노동의 관념적인 보편성임을 드러냅니다. 보편들에 대한 작업에서 당신은 보편의 종류들을 구별합니다. 실재 real, 가상 fictive, 상징 symbolic으로 말이지요. 그러나 당신은 이런 구별을 특정하게 철학적인 보편성에 관한 질문과 연결시키지 않습니다. 이에 대해 두가지 상이한 입장을 상상해볼 수 있을 겁니다. 철학이란 실재적 보편성의 영역을 열망한다----철학자들은 실재적 보편을 추구하고 있다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당신의 실천과 좀더 부합하는 것이겠지만, 오히려 철학이란 경쟁하는 보편들의 다수성을 반영한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즉시 단성성의 문제로 되돌아가게 하는데, 왜냐하면 만일 당신이 보편의 다수성에 대한 담론을 갖고 있다면, 당신이 다수성에 대한 단성적 담론을 갖고 있다는 의미를 띄기 때문이지요.

그것은 강한 반론이고, 그래서 나로 하여금 수많은 사람들이 반대하곤 했던 입장을 채택하지 않을 수 없도록 할 것 같은데, 왜냐하면 그것은 내가 앞서 언급했던 의미에서 회의주의적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아포리아적입니다. 따라서 그것은 철학이 그런 다수성 내지 모호성을 극복하는, 보편성의 단성적 요소를 표현한다고 보는 순수하게 합리적인 철학관을 갖고 있는 사람을 납득시킬 수는 없을 것입니다. 다소간 동일한 출발점에서, 동일한 영향을 받은 우리 중의 일부는 이제 이런 점에 대한 이론적 스펙트럼의 반대쪽 끝에 있음을 발견합니다. 이곳이 바로, 예를 들어 바디우와 내가 전혀 동의하지 못하는 지점이며, 비록 우리 모두 라캉에게 암시적이고 초기 비트겐슈타인에게 명시적인, 메타언어적 수준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관념 같은 것을 받아들일지라도 그렇습니다. 나는 그에 관해 절대적으로 일관적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나에게, 철학이란 담론이며, 혹은 더 적절하게, 담론의 특정한 실천으로서, 보편성의 관념이 지닌 다성성을 탐사하는 것입니다. 철학 그 자체는 보편적인 것의 모호성 속에 휩싸여 있습니다. 물론, 당신은 한 측면 내지 다른 측면이 지배적이 되는 철학들을 발견합니다. 또한 주로 우주론인 철학들이 존재합니다. 실재적인 것, 실재적인 것의 통일성과 다수성, 과정과 연계의 효과적인 측면과 잠재적인 측면 등의 문제에 몰두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존재합니다. 바디우가 적절히 지적했듯이, 나도----수많은 들뢰즈주의자들은 반대할테지만----들뢰즈에게 나타나는 그런 요소를 파헤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실재적인 것의 다수성이야말로 들뢰즈 철학의 중심이 되는 것입니다.

그의 무한히 변별화하는 차이의 존재론이 결국 경험적으로 역사에 무관심하다는 의미에서, 당신은 들뢰즈 같은 이들이 전통적 철학자에 너무 가깝다고 보십니까? 해묵은 나쁜 의미에서 그의 '철학'이 존재하는 건가요?

글쎄요, 그건 비판적 전통에 의해 승인되는 것보다는 그 용어의 고전적 의미에서 철학이라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해체적이거나 포스트모던한 철학적 실천 개념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지요. 그러나 그것은 사태가 흥미로워지는 지점인데, 왜냐하면 그것은 단지 외피, 말하자면 겉옷이기 때문입니다. 들뢰즈가 다시 사고하려고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는 개체성과 삶 내지 과정의 전-개체적 형태 사이의 관계를 다시 사고하고자 합니다. 나는 이와 관련하여 {천 개의 고원 A Thousand Plateaux}을 아주 높이 평가합니다. 물론 내가 모든 것을 이해한다고 확신하지는 못하지만요. 그것은 아마도 상상적 철학일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모든 철학에는 상상적 요소가 존재합니다. 들뢰즈는 근본적으로 은유적인 요소를 도입한 것이 아닙니다. 그렇지 않아요. 오히려 그는 아리스토텔레스에서 칸트와 헤겔에 이르는, 합리주의적인 인간주의 전통이 확립시켰던 은유들의 게임, 바로 인간 개체 그 자체는 상이한 계 界에 속한다는 관념----의식 때문이든 정치적 동물이든, 아니면 다른 무엇이기 때문이든----을 완전히 포기합니다. 이것이 바로 들뢰즈가 근본적으로 논파하는 것이지요.

당신은 파괴를 선호합니까?

그것은 형이상학과 사회적 실천의 관계를 당신이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달려있습니다. 들뢰즈는 개인이 사회적 삶 속에서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도록 하는 규칙들, 또한 다른 사람의 사유와 욕구와 욕망이 그 또는 그녀의 정체성에 끼어들지 못하도록 하는----물론 이 반대도 마찬가지지만----규칙들이 얼마나 피상적이고 부서지기 쉬운 것인지를 보여주기 때문에 극히 중요합니다. 그것들은 초개인적 과정들, 프로이트가 말하곤 했던 원초적 과정들입니다. 외디푸스적 보호에서 풀려남으로써, 그 과정들이 전면에 부각됩니다. 그것들은 내가 '대중들 the masses'이라고 부르는 것과 밀접하게 연관됩니다. 그러나 당신이 스스로 의식적 개체성과 책임성의 안전과 보호를 망각할 수 있도록 하는 상황은 극히 드물고 또한 극히 위험합니다. 그래서 당신의 질문에 답변하자면, 나는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실천에 있어서, 아니면 심지어 지적인 삶에 있어서, 일관적인 들뢰즈주의자가 되기를 원하는 것인지 확신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나는 법적, 심리적, 정치적 전통 속에 구현되어 있는 것과 같은 개인의 외관상의 자율성을 근본적으로 문제삼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일이라고 확신합니다.

많은 것이 상상적인 것을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달려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맑스에 대한 당신 책의 독특한 특색은 당신이 '이데올로기'부터 '물신성'에 이르는 맑스의 작업 내부의 발전을 상상적인 것에 관한 그의 개념의 전화에 입각해서 설명한다는 점입니다----'비실재적'이라는 상상적인 것에 관한 인식론적 통념에서 사회적인 것 자체를 구성하는 것으로서의 상상적인 것에 관한 생각으로 이동하는 것 말이죠. 이 후자의 개념이 전적으로 가장 초기의 것 이면에 남겨진 것이라면, 그것이 어떻게 비판적 관점을 제공할 수 있는지에 대해 의문이 솟아납니다. 비실재적인 것으로서의 상상적인 것에서 구성적인 것으로서의 상상적인 것으로 나아가는 일종의 게슈탈트 전환 Gestalt switch이 존재하는 것인가요? 아니면 전자가 후자의 내부에서 일정한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인가요?

나의 입장은 두 번째인데, 만일 당신이 그것을 전통적 양상의 단순한 전도로 이해하지 않는다면 말입니다. 그것은 단지 실재적인 것의 잘못된 표상이라는 상상적인 것의 그림에 도전하는 문제만이 아닙니다. 또한 실재적인 것의 부산물이라는 상상적인 것의 관념을 거부하는 문제이기도 합니다. 만일 현대 프랑스 철학이 그 입장들 사이의 대립과 갈등에도 불구하고, 공통적인 강점을 갖고 있다면, 그와 같은 실재적인 것과 상상적인 것의 이분법을 극복하려 한다는 점입니다. 마찬가지로 또 다른 이분법, 사실과 규범의 이분법을 극복하는 데도 전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이것은 변증법적 전통을 향한 프랑스 철학의 동시적인 근접성과 거리감을 설명해줍니다. 헤겔적이고 맑스적인 변증법은 이미 대부분 바로 그런 것이었습니다. 그런 종류의 형이상학적 이원론을 극복하려는 시도였지요. 헤겔이 일생에 걸쳐 사실과 규범의 대립(오늘날에도 수많은 합리주의자들이 여전히 진지한 사고 방식의 절대적 기초라고 여기는 것)에 대항하여 투쟁했던 것처럼, 맑스는 물신성에 대한 놀라운 장에서, 실재와 상상의 이분법에 도전했던 것입니다. 이 때문에 그것은 여전히 흥미를 자극합니다. 물론, 극복의 변증법적 방식은 세 번째, 대립적 측면들을 해소시키는 합 synthesis의 개념이란 관념에 물들어 있으며, 이런 점은 현대 프랑스 철학이 염두에 두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아포리아적 요소로 되돌아갑니다. 그것은 불가역적 사건들의 형태로 이루어지는, 상상적인 것의 실재적인 것으로의 변화, 실재적인 것의 상상적인 것으로의 변화이며, 이것이 결정적인 것으로 대두합니다.


스피노자와 대중 정치

독일에는, 칸트적 이율배반론 antinomianism의 다양한 형태로 되돌아가서 변증법적 논리의 비판에 대응하려는 경향이 존재해왔습니다. 당신이 속해 있는 전통에 반하여, 스피노자로의 전환과 연관되어 있던 훨씬 강력한----좀더 형이상학적으로 건설적이라는 의미에서----대응이었습니다. 스피노자는 갈등----이율배반 없는 갈등----을 이론화하는 좀더 형이상학적으로 만족스러운 방식을 제시하는 것처럼 보이며, 그로 인해 또한 그것을 정치적으로 절대화합니다. 이에 관한 당신의 관점은 무엇입니까?

대부분의 프랑스 전통----또한 내가 개인적으로 일정한 유보조건을 달고 귀기울이고 있는 방향----은 스피노자의 교훈과 니체의 교훈을 결합시켜왔으며, 이것은 스피노자 자신에게 일종의 비극적 요소를 도입하기 위한 것으로, 수많은 전통적인 스피노자 독해와는 전혀 무관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은 스피노자의 증후적 독해이며, 이런 측면에서는 우리들 사이에 미묘한 차이가 존재합니다. 최근에 미국에서 출판된 {새로운 스피노자 New Spinoza}라는 선집은 이 영역에서 작업하는 다양한 사람들 사이의 분기와 수렴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다수대중 the multitude이라는 범주를 봅시다. 나는 들뢰즈-네그리의 해석과 기본적인 요소들을 공유하는 스피노자의 다수대중 개념에 관한 해석을 발전시켜서 스피노자에서의 대중들에 대한 에세이를 썼습니다만, 그것은 결국엔 거의 정확히 정반대의 결과를 생산했습니다.
들뢰즈는 다수대중이라는 생기론적 개념을 정치 영역으로, 또한 개체성들을 다수대중과 접속시키는 하나의 상상으로 이동시키는데, 이것은 완전히 낙관적인 효과들을 생산합니다. 그것은 상상적인 것에 관한 아주 자연주의적인 시각이며, 그 속에서 삶과 사랑의 힘은 불가피하게 갈등, 적대와 파괴의 요소들을 극복합니다. 이것은 프로이트적 전통----{문명화와 그 불만 Civilization and its Discontents}----의 일정 부분 그리고 모호성이 구성되는 기본적인 상상적 과정에 관한 해석과 전적으로 대립하는 것입니다. 다른 한편에서, 나는 스피노자에서의 상상적인 것에 관한 교의가 그 정반대의 결론을 이끌어낸다는 인상을 갖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모든 합리적인 정치적 구성은 끊임없이 모호성 속에 붙들려 있는 다수대중의 역량 power을 발전시키는 방식이라는 것입니다. 유한성이란 요소가 존재합니다. 스피노자적 관점에서, 정치란 집단적 욕망이 전개될 수 있는 모순적 방향들과 관계 맺는 상상적인 것 속의 합리적인 구성입니다. 그런 요소들을 제거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다만 그 효과를 통제하는 것, 또한 가능하다면 그 내부로부터 통제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가장 어려운 문제는 대중들의 정치를 그 내부로부터 '문명화 civilizing'하는 것입니다. 맑스주의는 대중들의 혁명적 운동의 문명화를 그 내부로부터 실행시키는 것만이 아니라 이해하는 데 있어서도 완전히 실패했습니다. 찾아냈던 유일한 해법은 권위주의적인 것이었는데, 그것은 모든 진정한 혁명적 추동력을 파괴하곤 했습니다.

여기서 규범적인 차원이란 무엇입니까?

규범적인 요소가 존재하지만, 바라건대, 그것은 내재적인 것입니다. 규범적이지만, 억압적이지는 않습니다. 내가 사용하는 개념은, 나를 들뢰즈의 일부 정식들과 좀더 가까워지도록 하는 (하지만 네그리가 사용하는 것과는 다른) '가상 fiction'입니다. 우리가 처음에 이야기했던 것의 반대쪽에는 가상이란 요소가 존재합니다. 그것은 정치를 과학이 아니라, 예술 근처로 데려갑니다. 상상적인 것의 모호성을 조절하는 삶의 형태의 창안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진보운동이 역사 속에서 직면해왔던 아포리아는 보수적인 구조들----국가일수도 있고 종교일 수도 있는----이 규범적이고 권위주의적인 방법으로 그런 모호성을 조절하는 가장 강력한 장치라는 것입니다. 기존 질서에 대한 모든 도전은 집단적 운동을 우리가 앞서 이야기한 위태로운 구역으로 이끌어가는데, 그곳에서 당신은 의식적 개체성과 책임성의 안전과 보호를 망각합니다. 그것은 예를 들어, 유럽이 러시아 혁명과 파시즘의 발전 이후, 홉스봄이 '제2의 30년 전쟁'이라고 부르는 시기로 내던져진 구역입니다.

그런 내재적인 '문명화'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정치적 주체들과 제도들은 무엇입니까? 실제로, 그런 스피노자적 시각에서, 제도들이 현실적으로 다수대중에 대해 내재적일 수 있습니까? 우리는 사회적 교환의 초민족적 형태가 점차 지배하는 세계에 살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교환을 통치하는 기본적 메커니즘들과 동일한 수준에서 비권위주의적으로 대규모의 정치적 주체들을 구성할 개연성은 전보다 약해진 것 같습니다. 추정컨대, 이것은 네그리 같은 이들이 다수성의 철학적 존재론을 다수성의 자유론적 정치로 직접 해석하는 한 근거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당신의 정치적 입장이 아닙니다. 계급 정치를 대중투쟁의 정세적 특정화로 보는 당신의 생각이 여기에서 어떻게 하나의 대안으로 작동하는 것입니까?

기초적인 언급은 생략하겠습니다. 내가 지칭하는 실재적 보편의 합당한 후보는 시장, 세계 시장일 것입니다. 집단적인 정치적 주체로서 계급의 중요성에 관한 질문은 다음과 같은 또 다른 질문을 야기합니다. 계급은 주로 시장 구조 내지 국가 구조로부터 도출되는 단일체인가? 답변하기는 전혀 쉽지 않은데, 왜냐하면 상호작용하는 두가지 측면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계급은 그 두 구조가 결합하여 경쟁하는 접면에서 형성됩니다. 19세기에, 계급투쟁에 입각한 사회적 실재성의 묘사는 국가가 계급투쟁의 기초적 결정요인을 포괄한다고 주장할 수 없는 형식적 조직이라는 사실로부터 자신의 설명력과 설득력을 이끌어냈으며, 오히려 계급투쟁은 사람----상품의 순환만이 아니라 노동력으로서의 남성과 여성의 순환----을 포함하는 시장의 확대에 입각해 설명되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종말로 치닫고 있는 지금 시기에, 만일 계급이 정치적 영역에서 작용하는 실재적 세력으로 간주되어야 한다면, 계급은 우선적으로 국가 내부에 있는 세력으로서, 혹은 국가와 협상하는, 중앙집중적인 국가 자체에 대한 일종의 상대자 counterpart로서 간주되어야 합니다. 결국, 계급은 민족국가 구조에 기능적이었습니다. 계급의 정치적 주체성을 근거짓는 것은 공통 이해의 관념, 또는 사회의 일정한 응집적 대표체라는 관념만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또한 역사적 시간의 연속성을 구축하는 것이었습니다----이는 연속적 과정이라는 역사에 관한 표상과 유례없는 혹은 대격변을 일으키는 사건에 관한 예견의 결합인데, 그 속에서 정치적 주체는 역사의 진로를 역전시킬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오늘날의 상황에서, 정치적 주체들은 필연적으로 일국적 공간보다 더 큰 공간 속에 있고 동시에 과거의 계급보다 작거나 적은 포괄성과 보편성을 갖고 있습니다. 그들은 더 이상 낡은 의미의 연속성의 견지에서 표상될 수 없는 시-공간 속에 존재합니다. 아마도 정치적 주체들은 제도들보다 연약하지만, 억압하기가 더 어려울텐데, 자신들을 영속적으로 재구성하기 때문입니다. 나는 세계적 수준에서, 영속적인 방식으로, 좀더 세계주의적이고 민주주의적인 위상을 갖는 방향 속에서 제도로서의 경계를 압박할 여지가 있는 개인들과 집단들의 통일 같은 것을 건설할 가능성에 대해 극히 회의적입니다. 반면에, 나는 문제가 회피될 수는 없다고 확신합니다. 그 자체로 더 풍부하게 토론할만한 가치가 있는 단적인 예를 하나 들어보면, 이른바 공동체주의적이거나 초-공동체주의적인 주민들의 상이한 지위는 유럽의 통합이 가속화되는 만큼 더욱더 긴급한 문제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또한 그것은 아주 강렬하고 위험한 상황을 야기할 것입니다. 나는 사회적 항의가 그런 측면에서 진보적이고 건강해져야할 이유는 없다고 봅니다. 하지만 동시에, 개인적이고 집단적인 운동을 통제하는 권위주의적인 방식으로 경계로서의 제도를 특징짓는, 내가 민주주의들의 비민주적 측면이라고 부르는 것을 억제하려는 목적을 가진 민주화 운동을 기대할 수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대담자 피터 오스본 Peter Osborne
1998년 12월, 파리

댓글(3) 먼댓글(1)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해이] 2009-10-04 2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발리바르가 젊은시절 어땠는지를 알 수 있어서 정말 유익했던 인터뷰ㅎㅎ역시 공부만 했군요 그양반 ㅎ

바라 2009-10-05 23:40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저는 얼마 전에야 발견한 글인데 역시 대담글이라 읽기 좋네요. 매우 유익한 것 같습니다ㅎ

2009-10-13 12: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자신의 두 가지 <<담론>>(1750년과 1754년)에서 루소는 "문화의 야누스적 성격"(minima moralia 37), 즉 "자유의 잠재력과 억압의 현실을 항상 동시에 발전시켰던 진보의 이중성"(mm 84)을 최초로 인식했다. 루소는 "상호 무관한 기능들로 인해 인간이 분화되는 사회적으로 필연적인 현상"(mm 96)을 최초로 탄핵했으며, 그 대립물로서 잃어버린, "왜곡되지 않은 자연의 형상" (mm 59)을 환기시켰다. 이 모든 것으로써 나중에 아도르노가 (이러한 표현들은 그의 <<한줌의 도덕>>에서 차용한 것이다) 독재적 이성의 "현혹적 연관관계(Verblendungszusammenhang)"라고 부르게 될 그 어떤 것의 정곡을 찌른 것이다. 아도르노는 루소를 자신의 현대성 이론을 지지하는 증인으로 소환했을 법도 한데, <<계몽의 변증법>>에서나 <<한줌의 도덕>>에서 그를 거의 언급하지 않았다. 나의 세대에 있어 루소의 두 가지 <<담론>>에 필적할 만한 영향을 불러일으켰던 그 두 저작에서 말이다." (94쪽) 

거의 눈에 띄지 않게 진행되었던 사물화를 통한 '세계의 탈주술화'를 최초로 인식한 사람은 루소엿다. (...)  루소는 세상의 재앙의 의미에 대해 묻지 않고, 당대 사회에 있는 그 원인, 그것의 역사적 기원, 새로운 사회에서 재앙을 제거할 방도에 대해 물었던 것이다. 첫번째 <<담론>>에서 행한 자기 시대에 대한 진단에서 그는 현대세계에서 나타난 사물화를 자연과 문명의 완전한 분리로부터 설명한다. 즉, 과학과 예술이 계몽주의의 현재적 정점으로 진보함에 따라서 역설적이게도 사회적 삶의 풍속과 도덕은 더 나빠졌다는 사실로부터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두번째 <<담론>>에서는 인류사의 가설적인 시원으로 설정된 자연상태(Etat de nature)를 회고하면서 인간의 본성(Natur)에 두었던 혐의는 풀고, 사회 전체에 죄를 돌린다. 사회는 자기가 만들어낸 제도들 -  소유, 지배, 분업, 전통 - 등을 통해 현대에 사는 인간을 그의 진정한 본성에서 소외시켰으며, 그리하여 인간은 - 또다시 역설적으로 - 자기 자신의 창조물, 즉 자기 역사의 결과물을 마치 낯선 작품을 대하듯이 대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실로 획기적인 루소의 질문이 생겨나는데, 수많은 변형들을 하나로 집약해서 말하자면 다음과 같다. 현대적 세계에 사는 인간은 시민(homme civil)으로서의 분열된 실존에 직면하여 어떻게 자연인간(homme naturel)의 잃어버린 전체성을 되찾음과 아울러 자신의 행복의 기회를 다시 얻을 수 있을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해 루소는 세 가지 상이한 해결책을 모색했다. <<에밀>>(1762)에서는 사회에서 벗어난 개인들과 관련하여 자연적 교육의 프로젝트를 통해서, <<사회계약론>>에서는 일반의지에 헌신하는 주체와 관련하여 평등이 실현된 국가 헌법의 기획을 통해서, 그리고 <<누벨 엘로이즈>>에서는 다감한 소규모 집단과 관련하여 또다시 최초의 부부를 중심으로 생겨나는 사랑의 공동체를 통해서 해결책을 모색했던 것이다.  (100~101) 

 

 

 


댓글(1)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09-10-01 23: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데올로기의 숭고한 대상 발제(pp. 33~53, 국역 : 69~102쪽)

 

 

 


 



 

 

 

믿음의 객관성

이러한 관점에서 상품 물신주의commodity fetishism에 대한 마르크스의 기본 공식은 재독해의 가치가 있다. 인간 노동의 산물이 상품의 형태를 갖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 관계는 사물들 사이의 관계를 취하게 된다. 하지만 이 문제는 60~70년대에 알튀세르의 반-인간주의에 의해 폐기되었다. 알튀세르주의자들은 마르크스의 상품 물신 이론이 인격들(person)과 사물들 간의 순진하고 이데올로기적이고 인식론적 토대가 없는 대립에 기초해있다고 그것을 비난했다. 그러나 라캉적 독법은 마르크스의 이 공시에 새로운 비틀림을 줄 수 있다.

이미 보았듯이 봉건제에서의 인간 관계는 이데올로기적 믿음belief의 미신의 그물망을 통해 매개되고 신비화된 주인과 노예의 관계이다. 그러나 자본주의에서는 주체들이 중세의 종교적 미신으로부터 벗어났다고 믿으면서 합리적 공리주의자로 행동한다. 마르크스 분석의 요점은 주체 대신에 사물(상품) 자체가 믿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곧 주체들은 더 이상 믿지 않으며, 사물 자체가 그들을 위해 믿는다. 믿음은 내적이고 지식은 외적인 것이라는 통상적인 테제에 맞선 라캉의 명제는, 믿음이야말로 근본적으로 외적인 것이며, 사람들의 실생활에 구현된다는 것이다(티벳의 기도하는 물레prayer wheel의 예).

정신분석psychoanalysis은 심리학psychology이 아니라는 라캉의 기본 명제는 바로, 가장 내밀한intimate 감정들도 그 진정성이 손상되지 않은 채로 타인에게 전이되고transferred 위임될delegated 수 있다는 것이다. 가령 고전비극에서 코러스가 맡은 역할을 생각해보자. 이들은 관객들 대신 공포와 연민을 느껴준다. 보다 정확히는 관객들은 코러스를 매개로 연극이 요구하는 감정을 느끼게 된다. 또한 원시 사회에서 ‘곡하는 사람’의 예, 텔레비전 쇼에서 쓰이는 미리 녹음되어 있는 웃음의 경우를 생각해보자. 사운드 트랙에 포함된 이 웃음소리는 단순히 우리가 언제 웃을지를 알려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텔레비전에서 구현된 큰 타자the Other가 웃어야 하는 우리의 의무를 덜어주기 위해 필요하다. 바로 이러한 소타자(타인)the other의 중개 덕에 우리는 재미를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만일 믿음의 이러한 객관적인 지위를 고려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유명한 농담에 나오는 스스로를 옥수수로 생각하는 사람이 되고 말 것이다.



법은 법이다

여기에서 우리가 사회적 영역과 관련하여 끌어낼 수 있는 교훈은, 믿음은 단순히 정신 상태나 내밀한 상태가 아니라 항상 우리의 실제 사회 활동 속에 물질화될 수 있다는 점이다. 믿음은 사회 현실을 규제하는 환상을 지탱한다. 카프카의 경우, 그는 비합리적인 세계 속에서 어떤 과장되고 환상적이며 주관적으로 왜곡된 방식을 통해 현대의 관료주의와 그 속에서 개인의 운명을 표현한다고 평가된다. 이 평가는 중요한 사실을 놓치고 있는데, 이는 실제적이고 현실적인 관료제 자체의 리비도 기능을 규제하는 환상을 표현articulate(국역; 분절)하는 것이 바로 그러한 과장 자체라는 사실이다. 이른바 카프카의 우주는 사회적 현실에 대한 환상-이미지가 아니라, 사회적 현실 자체의 한복판에서 작동하고 있는 환상을 무대화(mise en scène)하는 것이다. 우리는 관료주의가 전능하지 않음을 알지만, 관료기계 앞에 우리의 실제 행동은 그것이 전능하다는 믿음에 의해 통제되어 있다.

통상적인 이데올로기 비판과 달리 정신분석적analytical 접근은 무엇보다 사회현실 자체 안에서 작동하는 이데올로기적 환상을 겨냥한다. 우리가 사회현실이라고 부르는 것은 최종층위에서 결국 윤리적인 구성물이다. 그것은 ‘마치 ~라는 듯이’as if에 의해 지탱된다. 믿음이 상실되는 순간 사회적 장의 구성물은 와해된다. 이는 알튀세르가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 개념을 발전시키기 위한 주요 참조점이었던 파스칼에 의해 이미 밝혀진 사실이다(“습관이야말로 가장 근거있고 가장 믿을만한 증거를 제공한다.”). 파스칼은 ‘정신을 무의식적으로 이끄는 자동운동’이라는 무의식에 대한 라캉적 정의를 제공하고 있다. 법이 지니고 있는 이와 같은 구조적으로 무의미한 특성으로부터, 법은 정당하고 훌륭하거나 이롭기 때문에 지켜야 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것이 법이라는 이유 하나 때문에 지켜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이러한 동어반복은 법이 지닌 권위의 악순환을 보여주는데, 법의 권위에 대한 최종적인 토대foundation는 그것의 언표과정process of enunciation에 있다.

따라서 유일하게 진정한 복종은 바로 ‘외면적인’ 복종이다. 확신에서 비롯된 복종은 이미 우리의 주체성을 통해 매개된 것이기 때문에 진정한 복종이 아니다. 이러한 전도는 외면적인 사회적 권위와의 관계를 넘어서 믿음의 내적 권위에 대한 복종에도 적용된다. 키에르케고르가 말한 바와 같이 그리스도가 훌륭한 사람이라는 이유로 그를 믿는다면 이는 끔찍한 모독이며, 반대로 오직 믿음의 행위 자체만이 그의 선함과 지혜로움을 통찰할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이다. 우리는 믿어야 할 충분히 좋은 충분히 좋은 이유를 발견했기 때문에 믿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 이미 믿고 있기 때문에 우리의 믿음을 입증해줄 이유들을 발견하는 것이다.

따라서 법에 대한 외면적인 복종은 외적 압력, 비이데올로기적인 야만적 권력에 굴복하는 것이 아니라, 명령이 이해불가능하고 이해되지 않는 한에서, 그리고 외상적이고 비합리적인 특징을 보유하고 있는 한에서 복종하는 것이다. 이 외상적이고 통합되지 않은non-integrated 특징은 법의 전체적 권위를 숨기고 있지 않으며, 오히려 법의 실정적인positive 조건 그 자체이다. 이것은 정신분석에서 말하는 초자아superego 개념의 근본적 특징이다. 초자아는 외상적으로, 무의미하게senseless 경험되는, 다시 말해서 주체의 상징적 우주 속에 통합될 수 없는 명령이다. 하지만 법이 정상적으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관습은 그것이 받아들여진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공평성 전체whole of equity이다'라는 그 외상적인 사실(라클라우, 무페가 발전시킨 개념인 바 법이 우연성contigent에 기반한다는 것)은 무의식적으로 억압되어야만 한다. 법의 의미, 정의나 진리의 토대에 대한 이데올로기적이고 상상적인 경험을 통해서 말이다.

그런데 카프카의 『심판』의 끝부분에 K와 신부가 나누는 대화의 끝부분에서도 이와 같은 공식화fornulation가 발견된다(“모든 것을 진실로서 인정해야 하는 건 아니오. 그저 필연적인 것이라고 받아들이기만 하면 되오”). 따라서 억압되는 것은 법의 모호한obscure 기원이 아니라, 법은 진실된 것으로서가 아니라 필연적인 것으로서 받아들여져야 한다는 사실이다. 사람들로 하여금 법 속에서 진리를 발견할 수 있다고 믿게 하는 필연적이고 구조적인 환영은 전이transference의 메커니즘을 나타낸다. 전이는 법의 외상적이고 비일관적이며inconsistent 어리석은 사태 이면에 진리와 의미가 있다고 가정하는 것이다. 즉 전이는 믿음의 악순환을 가리킨다. 우리가 믿어야 하는 이유는 이미 믿음이 있는 사람들에게만 설득력이 있는 것이다. 가령 파스칼의 내기wager(신에 존재에 대한 내기의 합리성)에 대한 단상을 생각해보자. 파스칼의 대답은 이러하다. “이성적인 논증은 접어두고, 그저 이데올로기적인 의식ritual에 네 자신을 맡기고, 무의미한 제스처를 반복해서 무뎌져라. 그리고 마치 네 자신이 이미 믿고 있다는 듯이 행위하라act. 그러면 믿음이 저절로 생길 것이다.” 이데올로기적 전향conversion을 얻기 위한 그러한 절차는 카톨릭에만 국한되지 않고 보편적으로 적용되는데, 가령 ‘내기’라는 주제는 마르크스주의에도 적용된다(부르주아 지성인은 부르주아적 편견에 샤로잡혀 있고 노동계급의 역사적 사명을 믿을 수 없다. 그는 우선 자신의 무력함을 인정해야 하고, 자신의 쁘띠 부르주아적인 편견과 정념을 진압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는 자신들이 마치 노동계급의 사명을 믿는다는 듯이 행동했고 당에 열성적이 되었다. 그들은 믿음에 충만한 사람이 되었다).

이러한 파스칼의 ‘관습’custom을 평범한 행동주의적 지혜(믿음의 내용은 행동에 의해 조건지워진다)와 구별시켜주는 것은 믿음 전의 믿음이 갖는 역설적인 위상이다. 관습을 따르면서 주체는 그것을 알지 못한 채로 믿는 것이다. 즉 파스칼의 관습에 대한 독해에서 행동주의자들이 놓치고 있는 점은 외재적인 관습이야말로 주체의 무의식을 지탱하는 물질적 토대라는 중요한 사실이다. 마렉 카니에우스카Marek kaniewska의 영화 <다른 나라Another country>의 공로는 ‘그것을 모른 채로 믿는 것’의 불안정한 지위를 공산주의적 전향과 관련해서 지적했다는 점이다. 이 영화는 두 캠브리지 대학생을 주인공으로 하는데, 이 둘은 각각 쥬드라는 공산주의자와 가이라는 부유한 동성애자이다. 쥬드는 가이의 매력에 반응이 없는 유일한 학생이었고, 정확히 그 이유로 인해 쥬드는 가이의 전이적 동일시transferential identification의 대상이 된다. 영화의 대단원을 보자. 숨막히는 향락에 대한 두 가지 반응은 쥬드의 포기renunciation, 즉 그의 공개적인 공산주의 선언과 가이의 극도의 쾌락주의이다. 가이의 쾌락주의는 파국을 맞게 되고 가이는 자신이 지탱할 수 없는 상황을 해소하는 열쇠가 쥬드와의 전이적 관계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는 두 가지 세부묘사에 의해 드러나는데, 첫 번째 상황은 가이가 쥬드야말로 이성애주의와 동성애에 대한 비하 등 부르주아적 편견에 사로잡혀 있다고 비난하는 것이다. 요컨대 가이는 자신의 비일관성, 자신의 결여lack를 전이시킬 주체를 잡은 것이다. 두 번째 상황에서 그는 쥬드에게 전이의 메커니즘을 폭로한다. 즉 가이는 쥬드가 마르크스를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공산주의자인 게 아니라 공산주의자이기 때문에 마르크스를 이해한다는 것이다. 즉 쥬드는 마르크스가 역사의 진리에 접근할 수 있는 지식의 담지자bearer라고 미리 전제하고 있기 때문에 마르크스를 이해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두 가지 특징 때문에 가이는 쥬드에 대한 전이로부터 쉽게 헤어날 수 있을 것 같지만, 사태는 정반대이다. 이러한 두 가지 특징은 그저 어떻게 “속지 않는 자가 길을 잃는les non-dupes errent”(라캉)지를 확인시켜 줄 뿐이다. ‘알고 있는자’인 가이는 전이에 빠져있다. 쥬드에 대한 비난은 오직 쥬드와 그의 관계가 전이적인 관계(전이가 작동하기 때문에 분석가analyst에게서 나약함과 실수를 발견하면서 즐거움을 찾는 분석주체analysand의 경우처럼)라는 배경 하에서만 의미를 돌려받는다. 가이가 전향하기 직전 극도의 긴장 속에 있음은 쥬드에 대한 그의 응수에서 잘 드러난다(“나 같은 놈에게 완전한 경솔함만큼 좋은 위장이 또 있을 것 같아?”). 이는 인간적인 차원에서만 특별히 드러나는 기만deception에 대한 라캉의 정의이다. 인간은 진실 그 자체를 이용해서 타자를 속인다. 모두가 가면 뒤에서 진실한 얼굴을 찾는 세계에서 그들이 길을 잃게 만드는 가장 좋은 방법은 진실 그 자체의 가면을 쓰는 것이다. 하지만 가면과 진실을 일치시키는 일은 불가능하다. 이 일치는 동료들과의 직접적인 접촉은 커녕 상황을 견딜 수 없이 만들고 말 것이다. 성공적인 의사소통의 필수조건sine qua non은 외관과 그 감추어진 이면 사이의 최소한의 거리이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열려진 유일한 문은 초월적인transcendent ‘다른 나라’가 존재하리라는 믿음과 공모 속으로 도피하는 것이다. 그것은 가면과 실제 얼굴 사이에 근본적인 간극gap을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알튀세르의 비판가, 카프카

따라서 상징적 기계(자동운동)의 외면성은 단순한 외면성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의 내적 인 신념이 미리 무대화되고 결정되는 장소이다. 우리는 종교적인 의례ritual의 기계에 복종하면서 이미 그것을 알지 못한 채로 믿는다. 우리 믿음은 이미 외면적인 의례 속에 물질화되어 있는 것이다. 파스칼의 신학에서 가장 전복적인 핵심은 바로 이러한 내밀한 신념과 외부적인 기계 사이의 단락short-circuit이다. 물론 알튀세르는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에 관한 이론에서 파스칼적인 기계의 가장 현대적이고 정교한 판본을 제시한다. 그러나 그 이론은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와 이데올로기적 호명interpellation 사이의 연관을 사유하는 데 성공하지 못했다는 약점을 갖는다.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는 어떻게 자신을 내면화internalize할 수 있으며 어떻게 어떤 대의cause에 대한 이데올로기적 믿음의 효과를 산출할 수 있는가? 이에 대한 대답은 국가장치들의 외부적인 기계는 그것이 오직 주체의 무의식적인 경제 속에서 외상적이고 몰상식한 명령으로 체험되는 한에서만 그 힘을 발휘한다는 것이다. 알튀세르는 그저 이데올로기의 상징적 기계를 의미meaning와 진리의 이데올로기적 체험으로 내면화시키는 이데올로기적 호명 과정에 대해서만 말할 뿐이다. 하지만 우리는 파스칼로부터 이러한 내면화는 구조적 필연성에 의해 결코 성공할 수 없음을 배울 수 있다. 거기엔 항상 무의미성과 외상적인 비합리성의 오점과 잔여가 붙어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잔여물은 주체의 이데올로기적 명령에 대한 복종을 방해하기는 커녕 오히려 그것을 가능케 하는 조건이다. 법에 무조건적 권위를 제공하는 것은 바로 이 무의미한 외상의 통합되지 않는 잉여이며, 이는 이데올로기에 고유한, 이데올로기적 향락[단어를 분절해서 보면 의미의 즐김이라는 뜻도 가진다]joui-sense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 의미 속의 쾌락enjoyment-in-sense을 지탱하고 있는 것은 바로 그러한 잉여이다.

이러한 이데올로기적 향락에 대해 카프카는 기계와 그것의 내면화 사이의 간극을 구성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줌으로써 일종의 알튀세르 비판을 미완성으로avant la lettere 전개한다고 말할 수 있다. 카프카의 비이성적인 관료제는 바로 기괴하고 몰상식하고 맹목적인 장치들, 바로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인 것이다. 어떠한 동일화, 어떠한 인정 - 어떠한 주체화- 도 발생하기 이전에 주체가 대면하게 되는 국가 장치 말이다. 카프카적 주체는 신비스런 관료적 존재자entity(법, 城)에 의해 호명된다. 이는 특이하게도 동일화/주체화 없는 호명이다. 카프카적 주체는 동일화할 만한 어떤 특징을 필사적으로 찾아 헤매는 주체로서, 그는 큰 타자the Other의 부름이 지닌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다. 이는 호명에 관한 알튀세르의 이론에서는 간과된 차원이다. 동일화, 즉 상징적인 인정recognition/오인에 사로잡히기 이전에 주체($)는 타자의 중심에 있는 욕망의 역설적인 대상-원인 a, 타자 속에 감추어져 있다고 가정된 이 비밀을 통해 타자의 덫에 걸려드는 것이 아닌가? 바로 이것이 라캉의 환상 공식($◇a)이다.

이데올로기적 환상이 현실 자체를 구조화한다는 말은 무슨 의미인가? 꿈과 현실의 대립 사이에서 환상은 현실 쪽에 위치한다는 라캉의 기본적인 테제로부터 출발하자면, 환상은 이른바 ‘현실’에 일관성을 부여하는 토대이다. 『정신분석의 네 가지 근본 개념』에 대한 세미나에서 라캉은 이를 ‘불타는 아이’에 대한 유명한 꿈을 해석하면서 발전시킨다. 이 꿈에 대한 통상적인 해석은 꿈의 기능 중 하나가 꿈꾸는 사람이 잠을 연장시킬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는 테제에 있다. 현실로부터 외부 자극(알람, 노크소리, 연기냄새 등)에 노출되면 잠자는 이는 잠을 연장하기 위해 즉석에서 그 자극적인 요소를 포함한 꿈을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그러나 라캉의 독법은 정반대이다. 주체는 현실 속으로 깨어나지 않도록 잠을 연장시킬 만한 꿈을 구성해낸다. 그러나 그가 꿈속에서 조우하게 되는 것은 바로 그의 욕망의 현실, 라캉적 의미에서 실재Real이다. 위의 경우, 아버지의 근본적인 죄의식을 함축하는 “제가 불타는 것이 보이지 않나요?”라는 비난이, 외적 현실 자체보다 끔찍한 실재에 해당한다. 그는 꿈 속에서 예고되는 그의 욕망의 실재 속으로 깨어나지 않도록, 자신의 무지를 유지할 수 있도록 잠에서 깨어나, 이른바 현실 속으로 도피한 것이다. 현실은 우리가 욕망의 실재를 은폐할 수 있도록 해주는 환상-구성물이다.

이는 이데올로기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인데, 그것은 현실 자체의 토대로서 기능하는 환상-구성물이다. 실제적이고 현실적인 사회관계들을 구성하는 환영illusion은 어떤 감당할 수 없는, 실재적인, 불가능한 중핵(라클라우, 무페에 의해 적대antagonism이라고 개념화된 것, 상징화될 수 없는 외상적인 사회 분열)을 은폐한다. 이데올로기의 기능은 현실로부터의 도피처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 자체를 어떤 외상적이고 실재적인 중핵으로부터의 도피처로 제공하는 것이다.

이 논리를 설명하기 위해 다시 『정신분석의 네 가지 근본 개념』(6장)을 참조해보자. 라캉은 장자의 그 유명한 꿈(호접지몽)을 언급한다. 장자는 스스로 나비가 되는 꿈을 꾸고 난 뒤, 내가 장자가 되는 꿈을 꾼 나비가 아니라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느냐는 질문을 던지는데, 라캉은 이 질문은 두 가지 이유에서 정당하다고 논평한다. 첫째로, 그것은 장자가 바보가 아니었다는 것을 증명해준다. 라캉은 바보를 자기 자신을 자신과 무매개적으로 동일시하는 사람이라고 정의하기 때문이다. 바보는 자기 자신과 변증법적으로 매개된 거리를 취할 수 없는 사람이다. 예컨대 자기 자신이 왕이라고 믿는 왕, 자기가 왕인 것이 자신도 속해 있는 상호주관적 관계의 네트워크에 의해 왕권이 상징적으로 위임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자신의 직접적인 속성 때문에 왕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라캉적 의미에서 바보에 해당한다. 하지만 이것이 다가 아니다. 만약 이것이 다라면 주체는 그의 내용 전체가 타인들의 상호주관적인 관계들의 상징적 네트워크에 의해 마련된 하나의 공백, 빈 자리로 환원되어버릴 것이다. 다시 말해서, 만약 이것이 전부라면 라캉의 결론은 주체의 근본적 소외일 것이다. 그러나 라캉의 후기 작업의 기본 테제는, 소외를 야기하는 상징적 네트워크인 큰 타자the big Other 바깥에서 어떤 내용들을 얻을 수 있는, 즉 일종의 실정적인 일관성을 얻을 수 있는 가능성이 주체에게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다른 가능성은 환상에 의해 제공된다: 즉 주체를 환상의 대상과 등치시키기.(국역본에서는 누락됨) 스스로 장자가 되는 꿈을 꾸는 나비라고 생각할 때 장자는 어떤 점에서는 옳다. 그는 상징적 현실에서 장자였지만, 욕망의 실재 속에서 그는 나비였다. 나비가 되는 것은 상징적 네트워크 바깥에서 그의 실정적 존재를 일관되게 유지시켜준다. 테리 길리엄의 영화 <브라질>에서 우리는 그 반향을 발견할 수 있다. 언뜻 보기에 여기에서 만나는 것은 단순한 대칭적 전도일 수 있으나, 라캉이 지적한 것처럼 이러한 대칭적 관계는 환영에 지나지 않는다. 장자는 깨어나서 자신이 나비가 된 꿈을 꾼 장자라고 생각할 수 있으나, 꿈 속에서 그가 나비일 때는 깨어났을 때, 즉 그가 스스로 장자라고 생각했을 때는 스스로에게 물을 수가 없다. 알퐁스 알리아스에서 감변무도회의 예.



현실의 토대로서의 환상

이러한 문제는 우리는 오직 꿈 속에서만 잠을 깨우는 실재에, 즉 우리의 욕망의 실재에 다가갈 수 있다는 라캉의 테제로부터 접근해야 한다. 라캉이 이른바 현실이라는 것의 최종적 토대는 환상이라고 말할 때, 이는 절대로 삶이나 현실이 한낱 꿈이거나 환영illusion이라는 의미로 이해될 수 없다. 가령 일반화된 환영의 예로 SF소설에서 모두가 로봇인 세계와 에셔의 두 손이 서로를 그리는 유명한 드로잉을 떠올려보자. 라캉의 테제는 이와 달리 환영적인 반영이라는 보편적인 유희로 환원시킬 수 없는 끝까지 존속하는 잔여물, 견고한 중핵이 항상 남아 있다는 것이다. 소박한 리얼리즘과는 달리, 라캉은 우리는 오로지 꿈을 통해서만 이 견고한 중핵인 실재에 접근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현실 자체 속에서 행위 양태를 결정하는 환상-틀fantasy-framework로의 접근은 오직 꿈 속에서만 가능하다. 가령 이데올로기를 진짜 현실을 가리는 꿈과 같은 구성물로 간주하는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이데올로기적 스펙터클을 제거하고 이데올로기적 꿈을 깨뜨리려는 시도는 허사이다. 이데올로기적 꿈의 위력을 깨뜨리는 유일한 방편은 꿈 속에서 자신을 알리는 욕망의 실재와 대면하는 것이다.

반유태주의 경우. 이른바 반유태주의적 편견을 벗어나서 유태인들을 있는 그대로 보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충분하지 않다. 우리는 유태인의 이데올로기적 형상에 어떻게 우리의 무의식적 욕망이 투자되었는지를 대면해야 한다. 객관적으로 유태인이 다른 사람들을 재정적으로 착취한다든지 소녀들을 유혹한다든지 하는 사실을 확증한다고 해도, 이것들은 반유태주의의 실제적인 뿌리와는 관련이 없다. 가령 라캉이 든 예로 병리적으로pathologically 질투심이 많은 남편에 대한 라캉의 명제를 생각해보자. 남편이 자신의 질투심을 뒷받침하기 위해 인용한 사실이 정말이더라도, 그의 질투가 병리적이고 편집증적paranoid 구성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따라서 반유태주의에 대한 제대로 된 대답은 ‘유태인은 실제로 그렇지 않다’는 게 아니라 ‘유태인에 대한 반유태적인 관념은 유태인과는 아무런 관련도 없다’는 것이다. 유태인의 이데올로기적 형상은 우리 자신의 이데올로기적 체계의 비일관성을 봉합stitch up하는 하나의 수단일 뿐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데올로기 이전의 일상생활의 수준을 고려하는 것으로는 이데올로기적 편견을 불식시킬 수 없다. 예컨대 1930년대 후반 독일의 전형적인 개인을 예로 들어보자. 반유태주의적 선전물의 홍수에서 살고 있는 그는 집에 돌아오면 선량한 이웃인 [유대인] 스턴씨를 만나 친하게 지낸다. 과연 이러한 일상의 경험은 이데올로기적 구성물로 환원될 수 없는 저항을 제시해 주고 있는가? 그렇지 않다. 이데올로기는 우리가 그것과 현실 사이에 아무런 대립도 느끼지 못할 때, 다시 말해 이데올로기가 현실 자체에 대한 우리의 일상적인 경험 양태들을 결정하는데 성공할 때에만 비로소 우리를 사로잡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위에서 예를 든 독일인의 경우, 만약 그가 훌륭한 반유태주의자라면 이러한 이데올로기적 형상과 일상적인 경험의 간극, 어긋남discrepancy 자체를 반유태주의를 위한 논증으로 돌릴 것이다. 즉 오히려 자신의 본성을 숨기는 이중성이야말로 유태인의 근본적인 습성이며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더욱 무섭다는 식으로 말이다. 이렇게 처음 보기에 모순되는 듯한 사실도 이데올로기 자체를 위한 논증으로 기능할 때 비로소 이데올로기가 정말로 성공을 거두는 것이다.



잉여가치와 잉여향락

이것이 마르크스주의와의 차이이다. 주류 마르크스주의의 관점에서 보면 이데올로기적 응시는 사회적 관계의 총체totality를 보지 못하는 부분적partial 응시이다. 이와 달리 라캉의 관점에서 이데올로기는 오히려 그것[이데올로기] 자신의 불가능성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 설정된 총체totality을 지시한다. 이는 물신주의에 대한 프로이트와 마르크스의 개념을 구별해주는 차이와 동일한데, 마르크스주의에서 물신은 사회적 관계들의 실정적 네트워크를 은폐하는 반면, 프로이트에서 물신은 상징적 네트워크가 그 주변으로 분절되는articulated 결여(거세)를 감춘다.

실재를 ‘항상 제자리로 돌아오는 것’으로 간주하는 이상, 또 하나의 중요한 차이를 연역할 수 있다. 마르크스주의의 관점에서 탁월한 이데올로기적 절차는 거짓된 영원화와/나 보편화이다. 이때 이데올로기 비판은 이러한 거짓 보편성을 폭로하고 일반적인 인간 이면에서 부르주아적 개인을, 보편적인 인간 권리 이면에서 자본주의적 착취를 가능하게 하는 형태 등을 탐색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러나 라캉의 입장에서 우리는 가장 ‘교활한’ 이데올로기적 절차를 영원화의 정반대 쪽, 즉 성급한 역사화에서 발견해야 한다. 정신분석에 대한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즘의 상투적 비판, 정신분석이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와 핵가족 삼각형의 중요한 역할을 고수하는 것은 가부장적 가족이라는 역사적 형태를 보편적 인간 조건으로 변형시킨다는 비판을 생각해보자. 하지만 오히려 가족 삼각형을 역사화하려는 시도는 가부장적 가족을 통해 예고되는 견고한 중핵을, 법의 실재를, 거세의 바위를 회피하려는 시도가 아닌가? 성급한 역사화는 우리로 하여금 다양한 역사화/상징화를 관통하여 동일한 것으로 돌아오는 실재적인 중핵을 보지 못하도록 한다. 이는 20세기 문명의 도착적perverse 이면을 가장 날카롭게 보여주는 현상인 강제수용소와 관련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이 현상을 구체적인 이미지와 결부시키고 구체적인 사회질서의 산물로 축소시키려는 시도들은 모든 사회체계 속에서 항상 동일한 외상적 중핵으로 돌아오는 우리 문명의 실재를 외면하려는 시도들인 것이다.

결국 마르크스주의는 상징화를 비켜가는 실재의 잔여물, 잉여대상을 설명하지 못했다. 이는 잉여향락이라는 라캉의 개념이 마르크스의 잉여가치라는 개념을 따른 것이라는 사실을 상기해보면 놀라운 사실이다. 잉여가치 개념이 잉여향락의 구현물인 라캉의 대상 a(objet petit a)의 논리를 예견한다는 증거는 자본론 3권에서 마르크스가 사용한 공식을 통해 제공된다. “자본의 한계는 자본 자신, 다시 말해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이다.” 이 공식은 두 가지 방식으로 읽힐 수 있다. 우선 통상의 역사적-진화론적 독법은 그것을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변증법, 내용과 형식의 변증법으로 간주한다. 이러한 패러다임은 너무 조일 정도로 자라나면 이따금씩 허물을 벗는 뱀의 은유를 대략적으로 따른다. 생산력이 발달해 생산관계의 틀이라는 사회적 외투보다 더 커지는 시기가 온다. 자본주의적 생산관계는 처음엔 생산력의 급속한 성장을 가능케 하는 것이지만 어떤 시점에서 그것의 발전을 가로막는 방해물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생산력이 자신의 틀보다 더 성장하여 새로운 사회관계의 형태를 요구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마르크스 자신은 이러한 단순한 진화론적 발상과는 거리가 멀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마르크스가 생산과정이 자본에 포섭되는 형식적 과정과 실질적 과정을 다루는 단락을 읽어보는 것으로 족한데, 형식적formal 포섭은 실질적real 포섭을 앞선다. 자본은 먼저 자신이 설립한 생산과정을 그대로 포섭하고 그 이후에야 생산과정과 생산력이 조화를 이루도록 생산력을 구현하면서 단계적으로 변화시킨다. 이렇게 보면 위에서 언급한 단순한 발상과는 대조적으로 생산관계의 형식이 생산력의 발달, 즉 내용의 발달을 추동하게 되는 것이다. 또한 우리는 자본주의적 생산관계가 생산력의 더 나은 발전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되는 시점을 어떻게 규정할 수 있는가?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경우, 생산력과 생산관계가 일치하는 때는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 바로 이런 점에서 자본주의가 이전의 다른 생산양식과 다르다. 이전의 생산양식의 경우, 우리는 사회적 생산과 재생산이 고요하게 운동하는 조화로운 시기에 관해 말할 수 있으나, 자본주의의 경우 이러한 모순, 힘/관계의 불협화음이 그 개념 자체(사회적 생산양식과 개인적, 사적 소유양식 사이의 모순)에 포함되어 있다. 요점은 자본주의를 영원히 발전하도록 추동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내재적 한계, 내적인 모순이라는 것이다. 자본주의의 정상적인 상태는 그 자신의 존재 조건들을, 자신의 한계를 영원히 혁명화하는 것이다.

잉여향락을 규정하는 것이 바로 이러한 역설이다. 이는 단순히 어떤 정상적이고 근본적인 향락에 붙은 잉여분이 아니다. 왜냐하면 향락 그 자체는 오직 잉여 속에서만 나타나며, 구조적으로 항상 '과잉'excess이기 때문이다. 만일 우리가 이 잉여분을 빼버리면 향락 자체를 잃게 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잉여가치와 욕망의 대상-원인인 잉여향락 사이의 상동관계이다. 근본적인 무능력의 외적 형태로서 - 무매개적 이행, 한계와 과잉, 결여와 잉여의 일치(국역본에서 누락) -의 과도한 힘을 통해서 자신을 해소하고 재생산하는 근본적 장애물의 위상학은 바로 라캉이 말한 근본적이고 구조적인 결여를 구현하는 잔여물인 대상 a의 위상학인 것이다. 물론 이 모든 것을 마르크스는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는 『정치경제학 비판』서문에서 통속적 진화론적 변증법의 관점으로 자본주의에서 사회주의로의 이행에 관해 기술하면서 마치 자신이 그것을 모른다는 듯이 말한다. 이러한 진술이야말로 어떻게 마르크스가 잉여 향락의 역설에 대처하지 못했는지를 감지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아닌가? 역사의 아이러니한 복수는 오늘날 이러한 진화론적 변증법에 부합하는 듯이 보이는 사회, 현실 사회주의로 나타난다.



1) 물신주의 : 일반적으로 인간의 생산물이 독립적인 실존을 갖는 것으로 되고, 알게 모르게 그 창조자로 돌아가는 것을 억압하게 되는 과정. 종교는 마르크스가 비판했던 물신주의의 첫 번째 형태이다. 그는 기본적으로 신과 같은 종교적 존재자를 인간에 의해 창조되었으나, 그들의 눈에 독립적인 형태를 갖게 된 것으로 결론짓는다. 신들은 다른 세계의 힘에 의해 창조된 것으로 나타난다. 인간의 자기소외 또는 물신주의의 가장 중요한 세속적인 근원은 상품 생산에 의해 나타난다. 상품들, 인간에 의해 창조된 상품들은 그들의 눈에 독립적이고, 연결되지 않았으며, 때로는 억압적인 형태를 갖는다. 노동과 노동의 산물 간의 관계는 전도된다. James Russell, Marx-Engels dictionary, Conn. : Greenwood Press, 1980, p. 38. 
 


2)전이übertragung는 정신분석에서 무의식적인 욕망이 어떤 형태의 대상관계 - 특히 분석적 관계 -의 틀에서, 어떤 대상에 대해 현실화되는 과정을 가리킨다. 거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현실적으로 확연히 체험되는 유아기적 원형의 반복이다. 분석가들이 별다른 수식어 없이 전이라고 부를 때, 그것은 대개 치료 과정에서의 전이를 말한다. 전통적으로 전이는 정신분석 치료의 문제가 드러나는 장소로 여겨지고 있다. 그것의 정착, 그것의 양태, 그것의 해석, 그것의 해결이 정신분석 치료의 특징을 구성하는 것이다. 장 라플랑슈. 장 베르트랑 퐁탈리스, 『정신분석 사전』, 임진수 옮김, 열린책들, 2005, p. 397. 프로이트는 처음에 전이를 억압된 기억의 회상을 방해하는 저항, 파괴되어야 하는 치료에의 장애물로 간주했으나 점차 견해를 바꾸고 긍정적인 요소를 파악했다. 라캉은 전이의 상상적 측면과 상징적 측면을 구분하고, 상징적 측면(반복)은 주체의 역사의 기표를 드러냄으로써 치료의 진전을 돕는 반면 상상적 측면(사랑과 증오)은 저항으로 작용한다고 본다. 또한 라캉은 전이를 안다고 가정된 주체 개념으로 이해한다. 분석주체가 분석가에게 투사하는 이러한 전이는 분석과정 전체의 버팀목이 된다. 딜런 에반스, 『라캉 정신분석 사전』, 김종주 옮김, 인간사랑, 1998, pp. 339~345.
 

3) 불타는 아이에 대한 꿈 ; 한 아버지가 아이가 죽은 후, 커다란 촛불들로 둘러싸여 아이의 시신이 놓인 방 옆에서 잠시 잠을 잔다. 이때 아버지는 아이가 침대 옆에서 자신의 팔을 잡고 비난조로 속삭이는 꿈을 꾼다. “아빠, 제가 불타는 것이 보이지 않나요?” 꿈에서 깨어보니 시신이 안치된 방 안에서 그곳을 지키던 노인은 잠이 들어 엎드려 있고 넘어진 촛불 옆에 아이의 수의와 한쪽 팔이 타고 있었다.  

 

4) 자본주의에서의 노동과정은 자본의 자기가치증식과정의 도구가 되는 것이다. 이것이 노동의 자본에의 형식적 포섭이다. 이전의 다양한 생산과정은 자본주의적 생산으로 전환되고, 상품소유자(노동력 소유자)의 생계는 화폐소유자(자본가)와의 계약에 의존한다. 자본가는 노동의 질과 강도의 정상적 기준을 지키도록 신경을 쓰며, 노동이 산출하는 잉여가치를 증가시키기 위해 노동시간을 가능한 한 연장하려 한다. 자본은 이미 수립된 가용한 노동과정을 인수(포섭)한다. 이 점에서 자본가의 관리 하에서의 임노동은 주인의 지배 하에서의 노예노동 및 장인의 규제 하에서의 도공의 노동과 단지 형식적으로만 차이를 지닌다. 형식적 포섭에서의 생산력이 점차 그 양적 측면에서 발전하고, 노동시간 연장을 통해 유지되던 잉여가치의 생산이 노동일투쟁에 의해 한계에 도달해서 등장하는, 특유한 자본주의적 생산방식(대규모 산업)에서는 다양한 생산행위자의 상황을 변화시킬 뿐만 아니라 실질적인 노동방식과 노동과정 전체의 현실적 성격을 혁신한다. 이것이 실질적 포섭이다. 절대적 잉여가치의 생산이 노동의 자본에의 형식적 포섭의 물질적 표현이며, 상대적 잉여가치의 생산은 실질적 포섭의 물질적 표현으로 간주될 수 있다. 절대적 잉여가치는 상대적 잉여가치에 선행한다. 이 두 형태의 잉여가치에 상응하는 것은 자본에 노동이 포섭되는 두 가지 구분되는 형태의 자본주의적 생산이다. 두 가지 포섭형태에 대한 구분은 칼 맑스, 『경제학노트』, 김호균 역, 이론과 실천, 1988, pp. 88~106에서 직접적 생산결과에 관한 제과정 참조. http://waam.net/bbs/zboard.php?id=philosophy_sem&no=48

 

5) "나는 안다. 하지만... " 이것은 바로 부인disavowal의 공식이다. 프로이트는 외상적 지각의 현실성을 깨닫는 데 대한 주체의 거부를 구성하는 방어의 특정 양식을 나타내기 위해 Verleugnung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그는 이 용어를 여성의 성기를 봄으로써 외상적 지각이 되는 거세 콤플렉스와 연결한다. 그리고 이 경험과 절편음란증은 여성의 거세에 관한 아이의 공포에 기인한다. 어머니의 팔루스가 결여되어 있음을 알게 된 절편음란광은 이러한 결여를 부인하고 팔루스의 상징적인 대체물로서 물신적 대상을 찾아낸다. 라캉은 이 작용을 억압 및 폐제와 구별하면서 부인을 성도착증 전체의 근본적인 작용으로 만든다. 딜런 에반스, 『라캉 정신분석 사전』, 김종주 옮김, 인간사랑, 1998, pp. 157~158.


 












댓글(3)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기인 2009-09-27 2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지젝 공부하시나봐요 ㅎㅎ 석사 입학하셨어요? :)

바라 2009-09-27 23:13   좋아요 0 | URL
아 공부라고 하긴 뭣하고; 읽어보고 있어요ㅎ 마침 관련 수업을 듣게 되어서요.

[해이] 2009-10-01 2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엇 좋은 발제문이네요 ㅋㅋㅋㅋ 훔쳐갑니다!
 







 

 

 

 

 

H.Bergson, 「형이상학 입문」, 『사유와 운동』 발제(국역 215~242쪽, 불어본 pp.  200~227)

















실재적 지속


 "분석analyse은 개념이나 도식로 귀착되는데, 이들은 고찰되고 있는 한 움직이지 않는 것immobile을 그 본질적 특성으로 하고 있다(200, 215)." 예컨대 내면의 심리 상태를 살펴볼 때 분석은 단순감각이라고 불리는 움직일 수 없는 요소에 도달한다. 이것이 과학이 필요로 하는 작용이다. 그러나 “정신상태는 그것이 아무리 단순하다 할지라도 매순간 변화하고 있다. 왜냐하면 기억 없는 의식, 다시 말해서 경과해버린 순간의 기억을 현재의 느낌에 첨가하지 않는 상태의 연속이란 있지 않기 때문이다. 바로 이것이 지속durée을 구성하고 있는 것이다. 내면적 지속이란 곧 과거를 현재에로 연장시켜주는 기억의 연속적인 삶이다.”(200, 216) 현재는 과거의 이미지를 포함하고 있고, 이렇게 현재 속에 과거가 존속하지 않는다면 지속은 존재하지 않으며 오직 순간성instantanéité만이 있게 된다. 우리가 분석을 통해 지속으로부터 심리상태를 훔쳐왔다는 비판과는 달리 기본적인 심리 상태는 각각 시간을 차지하고 있는 상태이다. 흔히 몇 분 혹은 몇 초라는 식으로 수량화되서 일컬어지는 한정된 시간은, 단지 동질적homogeneous인 것이라고 가정된 심리상태가 실제로는 "변화하면서 지속하는 상태"임을 알려주는 지표에 불과하며, 시간은 그 상태를 자체로 취해볼 때 “영속적인 생성devenir”(201, 216)인 것이다. 이 생성으로부터 우리는 불변적이라고 가정하는 어떤 평균적인 질을 추출하고, 그리하여 안정적이고, 따라서 도식적인 상태를 구축한다. 거기에서 생성 일반이 추출될 수 있는데, 이 생성 일반은 그 상태가 차지하고 있는 시간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추상적 시간은 그 시간 안에 위치한 상태만큼이나 부동적으로 보이며, 이 시간은 오직 “연속적인 질의 변화”(201, 217)를 통해서 흘러갈 수 있는 것이다. 이 동질적 시간이라는 가설은 단지 여러 가지 구체적인 지속들을 비교하거나, 동시성을 헤아리고, 지속의 어떤 흐름을 다른 흐름과의 관련 하에서 측정하게 해준다.


 두 가지 방법을 비교해보자. 분석이 움직이지 않는 것에 작용한다면, 직관intuition은 운동성mobilité 안에, 또는 이것과 동등한 것인 지속 안에 위치한다. 우리는 실재적인 것réel, 현실적인 것vécu, actual, 구체적인 것을 그것이 가변성 자체임을 보고서 식별reconnaît하는 반면, 요소l'élément의 식별은 그것이 불변적임을 봄으로써 이루어진다. 요소는 불변적이며, 도식이자 단순화를 통해 재구성된 것이며, 상징symbole에 지나지 않는다. 즉 요소란 흘러가는 실재에 대해 취해진 관점vue이다.(202, 217) 하지만 도식을 통해 실재적인 것을 재구성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은 오류인데, 직관에서 분석으로 옮겨갈 수는 있어도, 분석에서 직관으로 옮겨갈 수는 없기 때문이다. 예컨대 동질성에 가장 가까운 변화성, 즉 공간 내에서의 운동을 생각해보자. 이 운동의 전체 연장에 대해 우리는 가능적인 정지arrêts를 상상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위치가 무수히 많다 하더라도 이것들을 통해서 운동을 만들 수는 없다. 그것은 운동의 부분이 아니라, 운동으로부터 취해진 그만큼의 관점이나 투사, 한갓 정지라고 가정된 것들이다. 정지와는 달리 통과는 곧 운동으로서, 부동성으로서의 정지와는 아무런 공통점도 없다. 이는 우리 정신에 뿌리깊은 환상인데, “무한히 점에 점을 더해가는 사유의 운동을 통해서, 헛되이 운동체의 실재적이고 불가분적인 운동을 흉내내려 하는 것이다.”(204, 219) 이는 시詩의 의미를 그 시를 이루는 글자들의 형태 속에서 찾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정지에서 운동으로 나아가는 구성은 불가능하다. 운동하는 것의 위치는 운동의 부분이 아니기 때문이다. 운동체의 위치는 운동의 기초로 여겨지는 공간의 점들일 뿐인데, 이처럼 움직이지 않고, 텅 비어 있으며 생각할 수는 있지만, 지각되지는 않는 공간은 상징의 가치 밖에 지니지 못한다. 상징을 조작해서 실재를 만들 수는 없으며, 실용적인 면을 위해 마련하기 위한 이러한 습관은 단지 실재적인 운동의 어설픈 모방품을 줄 뿐이다. 우리의 정신은 자신이 가장 빈번하게 사용하는 관념이 가장 명확하다고 생각하는 어쩔 수 없는 경향을 지닌다. 왜 이러한 착각이 생겨나는가? 바로 우리 사유의 고질적인 습관 때문인데, 정신에게 부동성은 운동성보다 더 명확하고, 정지는 운동에 선행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바로 여기에서 고대 초기 시대 이래 운동의 문제가 야기시킨 난점들이 발생한다.1)이 난점의 발생 원인은 공간에서 운동으로, 궤도에서 비행으로, 움직이지 않는 위치에서 운동성으로 나아간다고 주장하는 일에서 기인한다. 그러나 “운동이야말로 부동성에 선행하며, 위치와 변위déplacement 사이에는 부분과 전체 사이의 관계가 성립하지 않는다.”(205, 220) 움직이지 않는 점이 움직이는 것의 운동에 대해 갖는 관계는 여러 성질의 개념들이 한 대상의 질적인 변화에 대해 갖는 관계와 같다.


 물론 실재에 대한 실용적인 지식이 문제가 되는 한에서, 분석과 개념으로의 진행은 정당하다. 그러나 형이상학은 사유의 작업에 자연적으로 나 있는 비탈길을 거슬러 올라가 그 사물 안으로 정신의 팽창dilatation을 통해서 들어가려는 노력이다. 즉 “형이상학은 제 개념에서 실재로 나아가는 노력이 아니라, 실재에서 제 개념에로 나아가는 노력”(206, 221)이다. 형이상학은 직관을 통해서 진행되어야 하며, 직관은 지속의 운동성을 그 대상으로 삼고 있다. 직관은 단일한 행위acte unique가 아니라 무한한 일련의 행위série indéfini d'actes이며, 이 행위들은 동일한 유genre에 속하지만 그 각각의 행위는 매우 특정한 종éspece에 속하며, 이 행위의 다양성은 존재의 정도degrés에 대응한다.(207, 222)


 우리가 지속을 기성의 개념을 통해 분석하려고 할 때, 지속일반에 대해 우리는 두 가지 상반된 관점, 즉 계기적인 의식 상태의 다수성multiplicité, 그 상태들을 연결하는 단일성unité을 취할 수 밖에 없다. 지속은 이 단일성과 다양성의 종합이 될 것이다. 이는 신비한 작용이다. 그러나 이 관점들의 조합을 통해서는 정도의 다양성diversité이나 형태의 잡다성variété가 드러나지 않으며, 지속에서 뉘앙스나 정도가 허용되는지 알 수 없다. 반대로 지속을 분석하려고 하는 대신, 직관의 노력을 통해 지속 안에 위치해본다면, 우리는 뚜렷이 확정된 어떤 긴장tension을 느끼게 된다. 이 긴장의 확정détermination 자체는 무수히 많은 가능한 지속들 가운데서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원하는 개수만큼의 지속을 지각하게 된다. 이 지속들을 개념으로 환원할 경우, 즉 상반되는 두 관점에서 이를 외적으로 고찰할 경우, 언제나 다자와 일자의 불가해한indéfinissable 조합에로 돌아가게 되는데 이는 지속과 다르다. 가령 한편으로 지속을 순간들의 다수성이라고 할 경우, 순간들은 단일성을 통해 실에 꿰이듯 연결되게 된다. 이때의 지속은 아무리 짧더라도 그 순간들의 개수는 무한하게 되며, 이들 각각의 순간은 자체로 지속이 아니다. 수학적 점과 점 사이에는 무한히 많은 다른 점이 있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으로 순간들을 모두 연결되는 단일성을 볼 때, 이것 역시 지속을 지닐 수 없다. 왜냐하면 가설에 의해 지속 안에 있는 변화하는 것과 참으로proprement 지속하는 것이 모두 순간의 다수성에 기인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지속이라는 주제에 대립하는 학파들의 견해를 보면, 그 견해란 다수성과 단일성이라는 개념 중 어디에 중점을 두느냐에 달려 있다. 다자의 관점에 집착하는 경우, 그들은 시간을 폭파시켜 얻은 뚜렷한 순간들을 구체적 실재로 내세우며, 다른 학파는 지속의 단일성을 구체적 실재로 내세우며, 영원한 것 안에 자리잡고 있다. 첫째 가설에 따르면 세계는 공중에 매달려서 매순간 끝나고 다시 시작해야 하며, 두 번째 가설에 의하면 추상적 영원성, 죽음의 영원성의 무한이 있게 된다. 양자는 모두 관점의 부동성이라는 성질을 띠는 사물chose이다.    


 직관의 노력은 지속의 구체적 흐름 안에 자리잡는데, 가령 주황색을 외적으로 지각하지 않고 그것과 내적으로 공감할 경우, 그것은 자신이 빨강색과 노랑색의 중간에 자리잡고 있음을 느끼며, 심지어 노랑색 밑에, 빨강색에서 노랑색까지의 연속성이 자연스레 뻗어가는 스펙트럼을 예감할 것이다. 우리 지속의 직관은 순수한 분석이 행하는 것처럼 우리를 진공에 매달아두지 않고, 지속의 연속성과 전적으로 접촉하게 해주며, 이렇게 점점 강렬해지는 노력을 통해 무한히 우리 자신을 확장dilater시키고 우리 자신을 초월하게 된다(210, 225). 지속의 연속성의 아래로 향하는 경우, 우리는 점점 분산되는éparpillée 지속으로 나아간다. 지속의 맥동palpitation은 우리의 맥동보다 빨라서 우리의 단순 감각을 분할하여 질을 양으로 희석시키는데, 이 극한에는 순수히 동질적인 것, 즉 우리가 물질성matérialité을 정의하는 순수한 반복이 있다. 지속의 연속성의 아래로 향하는 경우는 점점 더 긴장되고 좁혀지며 강도가 깊어지는 지속으로 나아가는데, 그 극한에는 영원성, 생명의 영원성이 자리하고 있다. “물질성이 지속의 분산이듯, 영속성은 전체 지속의 응결이다. 이 두 극단적인 극한 사이를 직관이 움직이고 있으며, 이 운동이 바로 형이상학이다.”(210, 226)2)





실재와 운동성


 1) 외적이면서도 우리 정신에 직접 주어진 실재donnée immédiatement가 있다.2) 이 실재는 운동성이다.3)“이미 만들어져 있는 사물choses faites이 아닌, 오직 만들어지고 있는se font 사물만이 존재한다. 항상 같은 것으로 머무르는 상태가 아닌, 오직 변화하는 상태만이 존재한다. 휴지repos란 결코 외관 이상의 것이 아니며, 오히려 상대적이다.”(211, 226) 따라서 발생하고naissant 있는 상태의 변화를 경향이라고 부른다면, 모든 실재는 경향tendance이다.3) 견고한 받침점을 구하는 우리의 정신은 일상생활에 있어서 그 주요기능으로서 상태사물을 상상해야만 한다. 때로 우리의 정신은 실재적인 것의 불가분적인 운동성에 대해 준-순간적 관점을 취함으로써 감각과 관념을 취하는데, 이런 방식으로 우리는 연속에 대해 불연속, 운동성에 대해 안정성, 변화하는 경향에 대해 고정점을 대치시킨다. 이는 상식, 언어, 실생활, 실증과학에 대해서도 필수적이다. “우리의 지성은 그 자연적인 성향에 따라 한편으로는 응고된 지각을 통해, 다른 한편으로는 안정된 개념을 통해 진행해간다.지성은 움직이지 않는 곳에서 출발하여, 운동을 부동성의 개념으로 생각할 뿐이며 또 그렇게 표현할 뿐이다.”(212, 227) 그것은 실재적인 것의 내적-형이상학적 인식을 획득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단지 실재적인 것을 이용하기 위한 것이다. 4) 형이상학에 내재한 여러 난점의 주원인은 우리가 실용적 효용을 얻기 위해 사용하는 과정을 실재적인 것에 대한 무관심한désintéressée 인식에 적용한다는 사실에 있다. 부동적인 지각소여percept나 개념과 더불어, 경향이며 운동성인 실재를 재구성하려는 노력, 고정적인 개념을 통해 실재적인 것의 운동성을 재구성하려는 노력 때문에 형이상학이 난점을 갖는 것이다. 우리는 고정 개념들을 움직이는 실재로부터 사유를 추출할 수 있으나, 그 개념들의 고정성fixité으로는 실재적인 것의 운동성을 어떻게 해서도 재구성할 수 없음을 알게 된다.(213, 228) 그러나 체계의 건설자인 독단론은 언제나 이러한 재구성을 시도하고 있다.





이른바 의식의 상대성이라는 것


 5) 그러나 독단론은 실패한다. 독단론을 비판하는 회의론, 관념론, 그리고 비판론자들의 학설이 지적했던 것은 바로 이러한 무능력이며, 이들은 모두 우리 정신이 절대를 파악할 수 있다는 것에 반대했다. 그러나 이들이 행한 의식의 상대성에 대한 증명은 원초적인 악에 물들어 있는데, 이들 역시 독단론과 마찬가지로 모든 지식은 정지된 윤곽을 지닌 개념에서 출발하여 흐르는 실재를 파악해야 한다고 가정하고 있다.6) 그러나 정신은 움직이는 실재 안에 위치하여 끊임없이 변화하는 방향을 따라 결국 실재를 직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것이다. 정신은 비상한 노력을 통해 습관적 사유와 범주들을 뒤집고 다시 만들어야 한다. 그리하여 정신은 유동적인 개념concepts fluides4)에 이르게 되며, 이 개념은 실재의 모든 굴곡을 따라가면서 사물의 내적 생명의 운동 자체를 획득할 수 있다. “철학한다는 것은 사유 작용의 습관적 방향을 역전시킨다는 것이다.”(214, 229)


7) 정신이 사용하는 방법 중 가장 강력한 탐구방법인 무한소 분석/미적분l'analyse infinitésimal도 이러한 역전에서 태어난다. 근대수학은 바로 이미 만들어진 것을 만들어지고 있는 것으로 대치시키려는 노력, 사물의 윤곽dessin의 동적인 연속성을 획득하려는 노력이다. 수학이란 크기grandeur의 과학이므로 윤곽을 다룸에 그치며, 또한 수학은 부호symbole의 발명을 통해서만 그 응용이 될 뿐이지만, 형이상학은 응용을 목표로 하지 않으므로, 직관을 부호로 전도시키지 않을 수 있고, 또 그래서도 안 된다. 실용성과 무관한 형이상학은 자신의 영역을 무한히 확장시킨다. 과학에 대해 효용성과 엄밀함rigueur, occurrence에서 뒤지는 것을 형이상학은 시야와 범위에서 만회한다(214, 230)5). 양은 언제나 발생하고 있는 상태가 지닌 질로서 양이란 질의 극한의 경우이다. 따라서 형이상학은 수학이 발생시킨 관념을 자기 것으로 해서 모든 질에게로 뻗어나가려고 하며, 실재 일반으로 확장하려 한다. 그러면서도 그것은 결코 근대 철학의 망상인 보편수학으로 나가지 않는다. 형이상학은 상징으로 번역될 수 없는 실재의 연속성, 운동성과 접촉contact함으로써 시작되며, 그것이 목표하는 바의 하나는 “질적인 미분법différenciation 및 적분법intégration을 행하는 것”이다.


 8) 그러나 우리는 이 목표를 사라지게 하고, 과학이 사용하는 방법의 기원에 대해서 과학 자체를 속일 수 있었다. 일단 획득된 직관은 반드시 우리 사유 습관에 순응하는 표현양식 및 적용양식을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확장 및 논리적 완성 작업이 수세기에 걸쳐 존속하는 반면, 방법을 발생시키는 행위는 일순간밖에 지속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러한 직관의 망각에 기인하여 철학자들, 심지어 과학자들까지도 과학적 지식의 상대성에 대해서 이야기해왔다. 이런 이유로 우리는 그렇게도 자주 과학의 논리적 도구를 과학 자체로 오인하고, 직관6)으로부터 다른 모든 것이 발생할 수 있음을 잊고 있다.기존의 개념을 통한 상징적 인식은 고정된 것에서 움직이는 것으로 나아가는 바 상대적이지만, 움직이는 것 안에 자리잡고 사물의 생명 자체를 자기 것으로 하는 직관적 인식은 그렇지 않다.이 직관은 절대absolu를 획득한다. 따라서 과학과 형이상학은 직관 안에서 결합되며, 직관적인 철학은 형이상학과 과학 간의 통일을 실현해준다. 그것은 실증과학 안에 형이상학을 건립하는 동시에, 실증 과학으로 하여금 정확히 말해서 자신의 참된 시야를 의식하고 그것이 그들이 가정하는 것보다 훨씬 우수함을 알게 해준다. 즉 직관적 철학은 형이상학에 더 많은 과학을, 과학 안에 더 많은 형이상학을 불어넣는다(216, 232).


 9) 과학은 형이상학에 뿌리박고 있다는 것은 고대철학자들의 의견이었는데, 이 생각의 오류는 변화된 것은 불변성을 표현한다는 믿음에 있다. 이러한 믿음에 따라 행위는 약화된 관조contemplation이며, 지속은 영원성의 기만적이고 동적인 상像image이며, 영혼은 이데아의 타락이라는 생각이 등장했다. 플라톤에서 플로티누스에 이르기까지의 철학은, 불변하는 것에는 움직이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이 있고, 안정적인 것에서 어떤 감소를 통해 불안정적인 것으로 나아간다는 원리에 기초한다. 반면 근대 과학의 기원은 운동성을 독립적인 실재로 수립한 것에 있는데, 실로 위대한 과학적 발견들은 순수 지속 안에서 주어진 측심추들sonde이 있었다. 그러나 바다의 심연에 내려진 추가 건져내는 유동의 실재는 지성entendement의 태양 아래서 고정되고 부동적인 개념으로 수축되고 만다. 사물의 살아있는 운동성 속에 지성은 실재적이거나 잠재적인 정거장을 표시하고, 출발하는 것과 도착하는 것에 주목한다. 이는 자연적으로 행해지는 인간의 사유에 중요한 것이다. 그러나 철학은 인간적 제약을 초월dépasser하기 위한 노력이 되어야 한다. 학자들이 직관에 직접 주어진 것과 직관 주위에서 지성이 추구하는 분석을 구분하지 않음으로써 사람들은 학문의 부호적 특징을 믿게 되어버렸다.





형이상학과 근대 과학


 형이상학과 동시에 과학의 개척자였던 근대 과학의 거장들은 왜 구체적 지속durée concrète을 알 수 없었는가? 플라톤주의로부터 용어를 빌어 표현하자면, 이데아는일종의용이한 가지성의 보장assurance de facile intelligibilité이며, 영혼은 일종의 생명의 불안inquiétude de vie이다. 그러면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한 조류가 근대철학자로 하여금 영혼을 이데아 위에 올려놓게 했다고 말할 수 있다(219, 234). 이렇게 하여 근대철학은 근대 과학과 마찬가지로, 혹은 그 이상으로 고대 사유와는 반대의 방향으로 진행해가는 경향을 지녔다. 그러나 근대 과학과 마찬가지로 근대 철학은 심오한 생명의 둘레에 기호를 늘어놓았고, 과학이 그 전개에 있어서 부호를 필요로 한다면 형이상학의 주된 존재 이유는 그 부호와의 단절rupture이라는 사실은 망각되었다. 지성은 여전히 고정화와 분할, 재구성 등의 작업을 수행했다. 지성은 그 역할이 안정적인 요소 위에 작용하는 것인데, 안정성을 관계안에서 또는 사물안에서 찾으려 한다. 관계의 개념 위에서 작용할 때 지성의 귀착점은 과학적 부호주의symbolisme이고, 사물의 개념 위에서 작용할 때 지성의 귀착점은 형이상학적부호주의이다. 어느 경우에나 배열이 지성으로부터 나타난다. 지성은 자신이 독립적이라 생각하여 자신이 실재의 심오한 직관에 빚지고 있음을 인정하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형이상학자들은 실재 밑에 깊은 굴을 파놓았고, 과학자들은 실재 위에 멋진 다리를 설치했지만, 사물의 흘러가는 운동은 이 두 예술작품을 어느 하나 건드리지 않고 지나쳐간다”(220, 235)


 칸트의 비판 역시 형이상학과 과학을 부호주의의 한계로 밀고 나가는 것이었다. 지적 직관에 대한 과학과 형이상학 간의 관계를 잘못 이해한 칸트는 과학이 상대적이고, 형이상학이 인위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지성의 독립성을 격화시키고 형이상학과 과학에 내적 무게를 부여해준 지적 직관을 제거했다. 과학은 관계를 다루면서 형상forme의 표피만을, 형이상학은 사물을 다루면서 질료matière의 표피만을 보여주었다. 그렇다면 과학이 보여주는 것은 그림틀에 끼워진 그림틀cadre에 불과하며, 형이상학이 보여주는 것은 환영fantôme을 뒤따르는 환영에 불과하다는 사실은 놀랍지 않다. 칸트의 비판 이후 우리는 과학은 극히 상대적인 인식이고 형이상학은 공허한 사변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런데 사실 칸트의 비판은 고대철학, 그리고 근대인이 빌려다 쓴 고대적 형태의 철학, 이미 만들어져 있는 유일한사물의 체계를 제공한다고 자처하는 형이상학, 그리고 제 관계의 유일한체계에 불과한 과학, 요컨대 플라톤의 이데아론이 지니는, 그리스 신전이 보여주는 건축적 단순성을 띠는 과학 및 형이상학에 타당한 것이다. 형이상학이 이전부터 우리가 소유해오던 개념들로 구성되었다고 해보자. 그때 형이상학은 순수지성의 모든 산물처럼 인위적이 될 것이다. 또한 과학이란 분석 또는 개념적 표상의 전체 작업이며, 경험은 반드시 명석한 관념을 검증하는 데만 소용되어야 한다고 해보자. 즉 미리 준비된 그물 속에 실재적인 것 전체를 가두는 유일한 관계 체계임을 자처한다고 해보자. 그때 과학은 인간 지성에 순수하게 상대적인 인식이 될 것이다. 칸트에게서는 플라톤주의의 유물인 보편수학이 과학으로 나타나며, 플라톤주의가 형이상학으로 나타난다. 칸트의 입론은 우리의 지성이 자연을 구성하며, 마치 거울에서처럼 우리가 그 자연 안에서 자신을 발견한다는 것, 바로 여기에 과학의 가능성과 형이상학의 불가능성이 있음을 보여준다. 요컨대 <순수이성비판> 전체는 만일 이데아가 사물이라면 플라톤주의는 불법적이지만 만일 이데아가 관계라면 합법적이 된다는 것, 이데아가 천상에서 지상에서 내려오면 사유와 자연의 공통 기반이 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런데 <순수이성비판>은 우리의 사유가 플라톤주의적 사유 이외의 것을 하지 못한다는 요청postulat에 근거한다. 이 플라톤주의적 사유란 모든 가능한 경험을 기존의 주형moulds 속에 부어넣는 것이다.(223, 238) 여기에 모든 문제가 걸려있는데, 만약 과학적 인식이 칸트가 바라던 바 그대로라면, 아리스토텔레스가 믿었던 것과 같은 미리 형성되어 있는 단순한 과학이 있게 된다. 사물에 내재한 이러한 논리에 따르면, 위대한 발견은 단지 미리 그어져 있는 직선을 한 점 한 점 비추어줄 뿐이다. 또 만일 형이상학적 인식이 칸트가 바라던 바 그대로라면, 그것은 정신의 상대적인 두 태도의 동등한 가능성으로 환원되고 말 것이다. 그것은 옛날부터 잠재적으로 형성되어 있던 두 해결 안에서 임의적이고 언제나 표면적으로 선택된 것으로 나타나며, 이율배반에 죽어간다. 그러나 근대과학은 이렇게 단선적인unilinear 단순성을 보여주지 않으며, 근대의 형이상학도 이렇게 환원불가능한 대립을 보여주지 않는다.


 근대과학은 단일하지도 단순하지도 않으며, 명석한 관념들에 기초한다. 개념의 명료성이란 개념을 유리하게 조작할 수 있다는 일단 획득된 보장에 지나지 않는다. 말하자면 과학은 서로 정밀하게 맞아들어가도록 미리 짜여진 개념들을 규칙적으로 맞추어가는 것이 아니다. 반면 심오하고 다산적인 관념은 한 점에 수렴하지 않는 실재의 흐름courant de réalité들과 만나는 접촉점들이다. “철학한다는 것은 직관의 노력을 통해 구체적 실재의 내부에 자리잡는 것인데, [칸트의] 비판은 이 실재에 대하여 그 외부에서 정립과 반정립이라는 두가지 상반되는 관점을 취했던 것이다.”(224, 239) 직관의 기초를 지닌 학설은 정확히 그것이 직관적인 정도에 따라 칸트의 비판을 모면한다. 형이상학이란 정립thèses 속에서 응결되어 죽어버린 것이 아니라 철학자의 내부에 살아 있는 것이라고 가정하면, 이 학설들이 바로 형이상학 전체이다. 분석을 운동 안에 자리잡게 하고 자신은 분석 뒤로 숨어버리는 단순한 행위l'acte simple는 분석 기능과는 전혀 다른 기능, 직관으로부터 발산된다. 이 능력faculté에는 전혀 신비스러운 것이 없다. 가령 문학상의 작품 구성을 생각해보면, 직관은 단순한 자료 수집을 넘어서 주제의 핵심에 일시에 자리잡는 노력, 그런 다음 스스로 도달하기만 하면 되는 충동impulsion을 가능한 한 깊숙이 추구하려는, 때때로 어렵기까지 한 노력이다. 그것은 사물이 아니라 운동에의 압박incitation이며, 이는 무한히 확장가능하지만 단순성 그 자체에 머무른다. 형이상학적 직관이란 이런 종류의 것이다. 이 경우에 문학적 구성의 각주 및 자료와 짝을 이루는 것은 실증과학에 의해서 특히 정신l'esprit에 대한 정신의 반성에 의해서 수집된 관찰 밑 경험의 총체이다. 요컨대 직관은 실재의 보다 내부적인 것과의 공감이다. 문제는 단순히 사실들을 동화시키는 것이 아니며, 미리 구상되고 미리 성숙한 관념들을 중화시켜야 한다. 오직 이렇게 해서만 알려진 사실들이 지닌 물질성이 그대로 나타난다. 지난 반세기 동안 형이상학의 부분적 퇴조는 오늘날 너무나 분화된 과학과의 접촉에 있어 철학자들이 겪는 어려움 때문이다. 하지만 형이상학적 직관은 물질적 인식connaissances matérielles을 통해 획득될 수 있으나, 그런 인식의 요약이나 종합과는 전혀 다르다. 형이상학은 경험의 일반화와généralisation de l'expérience는 전혀 공통점이 없지만 총괄적 경험l'expérience intégrale으로 정의될 수 있다.7) 


                      


      





1) 가령 베르그손이 『의식에 직접 주어진 것에 관한 시론』 2부 및 기타 여러 저작들에서 자주 다룬 제논의 역설이 대표적이다. 베르그손이 보기에 이 역설은 동적인 실재와 우리의 지성에서 성립하는 공간 표상의 차이에서 기인한다. 즉 운동이 지나간 공간적 궤적trace과 운동 그 자체(운동의 운동성)을 혼동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속을 공간 중의 신체가 갖는 운동 표상이나 감관 지각이 주는 외적 대상의 표상과 섞어버린다. 이와 같은 지속과 공간의 삼투 효과가 공간화된 시간과 동질적 시간을 낳는 것이다. 공간은 시간의 계기성이나 방향성이 제거된 상호외재적인 동시성에서 성립한다. 제논의 역설을 보면, 아킬레스의 걸음과 거북이의 걸음 각각은 불가분적인 하나의 행위act이며 공간처럼 분할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 중요하다. 베르그손은 공간은 무한히 나눌 수 있는 상호외재적인 것이라고 보지만 운동은 나누어질 수 없는 것 자체이며 지속으로서의 시간이다. 아킬레스나 거북의 각 걸음은 자신의 고유한 질적인 것으로 의식에 주어지며, 이러한 질적인 것을 나누는 것은 그 질을 본성적으로 변화시키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공간이 정지와 순간, 동시성과 동질성의 표상이라면 지속은 이질성을 계기로 갖는 운동 자체이다. 지속에서는 정지된 순간을 구분할 수 없으므로 공간 속에서 파악되는 것처럼 한 위치와 일치시킬 수 없다. 운동의 실재성은 우리의 살아있는 내적 의식 및 지속의 관련 하에서만 보아야 한다. 지성이 상정하는 부동적이고 동질적인 공간 표상에서는 결코 운동 자체를 파악할 수 없으며, 실재 자체는 우리의 직관을 통해서 인식 가능한 것이다. 베르그손에게 공간은 제작적 삶이나 행위에 관심을 둔 지성의 산물이고 모순율에 기초해서 동적 실재를 고정화시킨 표상이다.  


2) 가령 “정신의 본성은 기억이고 물질의 본성은 망각이다. 물질이 과거를 기억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물질이 과거를 끊임없이 반복하기 때문이다. 정신과 생명은 매 순간 새로운 것을 창조한다. (...) 지속의 형이상학에서 볼 때 정신과 물질은 긴장과 이완의 정도에 의해 연속적으로 변전하는 하나의 실체이고, 창조와 반복이라는 관점에 의해서는 질적 차이를 갖는 두 다른 실체로 나타난다.” 황수영, 『베르그손, 지속과 생명의 형이상학』, 이룸, 2003, p. 125.


3) 이 문장에 대한 주석에서 베르그손은 자신이 실체substance를 회피하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여러 존재의 존속persistance을 긍정한다고 말한다.(212, 227) 즉 자신의 이론은 헤라클레이토스의 학설, 즉 만물은 흐른다는 것, 존재는 곧 운동이라는 학설과 구분된다는 것이다. 모든 것이 변한다는 이러한 주장이 자기논박적이라면, 베르그손의 철학은 헤라클레이토스와 달리 운동이 존재한다는 것을 주장한다. 곧 지속은 운동하면서도 자기동일성을 잃지 않는 것이다.  


4) 유동적인 개념이란 무엇인가? 직관도 어쨌든 실재를 파악하기 위해서 개념을 경유해야만한다는 뜻인가? 직관 -> 유동적 개념 -> 실재 파악인가 아니면 직관 -> 실재 파악 -> 개념의 구성인가?


5) 그런데 베르그손은 다른 곳에서 지금까지 철학에 결여되었던 것을 정확성précision이라고 하는데(사유와 운동, p. 9) 이는 과학에서의 엄밀함과는 어떻게 다른가?


6) 이 문장에 대한 각주 7번에서 베르그손은 자신이 직관이라는 용어의 사용을 오래 망설였다고 하면서, 이를 통해 사유의 형이상학적 기능을 계획했다고 밝힌다. 직관은 기본적으로 정신을 통한 정신의 내적 인식이며, 부차적으로는 정신을 통한 물질 내의 본질적인 것에 대한 인식이다. 반면에 지성은 물질을 조작하고 그것을 인식하기 위한 것이지만 물질의 심층에 닿을 특별한 운명을 지니지 못한다는 것이다. 베르그손은 서론 2에서 직관을 또 이렇게 정의하기도 한다. “직관이란 정신, 지속, 순수변화를 획득하는 그 무엇이다. 그 참된 영역은 정신이지만 직관은 사물들 속에서, 심지어는 물질적 사물들 속에서 그것들의 정신성에의 참여를 파악하려고 한다.”(37)
    또한 베르그손은 이어지는 각주 8번에서 자신이 쓰는 과학이라는 말의 의미를 제한한다. 즉 순수지성을 통한 불활성 물질의 인식을 특히 과학적이라고 부른다(물론 생명 및 정신의 인식이 과학적이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여하튼 불활성 물질의 인식은 그 역사의 어느 결정적인 순간에 순수지속의 직관을 이용하는 정도에 따라 철학적이라 불릴 수 있다.  


7) Frédéric Worms, Le vocabulaire de Bergson, Paris : Ellipses édition Marketing, 2000, pp. 44~45에서  metaphysique 항목은 형이상학을 이렇게 정의한다 : 형이상학은 규정된 대상들에 대한 우리의 인식과 실재 사이의 간격을 극복하려는 인식이며, 그럼으로써 절대에 도달한다. 우리의 인식과 실재 사이의 간격이 극복될 수 없는 것은 세 가지 조건에 기인한다. 모든 인식은 실재적 대상을 가정하고; 우리의 인식에 의한 그 대상의 변형은 우연적이며 정확한 기준을 요구한다; 사람들은 그래서 이러한 변형을 극복할 수단과 실재의 전도된 기준을 갖는다. ‘직관’은 모든 인식이 가정하는 실재의 소여이다. 그것의 변형은 공간적 불연속에서 나타나며, 인간적 삶의 필요에 연결되어 있다. 이것의 초월은 직관의 노력에 의해서, 지속의 파악 속에 있는 기준의 잃어버린 통일성을 재확립하는 것이다.  
    베르그손의 형이상학 이론은 그 자신이 상당부분 그 입장을 변경했던 연결된 두 가지 문제를 제기한다. 그 대상과 방법에 있어서 형이상학의 외연, 그리고 동시에 과학과의 관계. 1903년(형이상학 입문)에 형이상학은 권리적으로 모든 실재(매번 독특한 방식으로, 규정된 형이상학적 대상들에 대한)를 대상으로 하며, 과학은 직관의 노력에 의해 지속에 다다르기 위해서, 그 방법을 초월해야 한다. 1907년 이후 (창조적 진화, 특히 1903년의 텍스트를 교정하는 사유와 운동 서문의 각주에서) 지성은 공간과 함께 물질의 절대적 실재에 도달하며, ‘형이상학’은 권리적으로 둘로 나누어지는데, ‘유일한’ 형이상학은 사실 ‘정신’을 돌본다. 과학과 형이상학은 더 이상 ‘직관 안에서’ 결합되지 않고, ‘경험 안에서’ 결합된다. 역설적이지만 과학과 형이상학을 구별하면서도, 사람들은 과학에 형이상학적 범위(실재로의 접근)를 제공하고 형이상학에는 과학적 차원(규정된 대상)을 제공할 것이다.
    일반적 형이상학은 없으며, 오직 독특한 실재에 기반하는 형이상학이 있을 뿐이다. 베르그손은 형이상학을 실증과학 안에서, 말하자면 “진보하고 무한하게 완성될 수 있는” 실증과학 안에서 구상했다. 메를로 퐁티에 따르면, “그는 완벽하게 세계의 형이상학적 접근을 정의했다.” 형이상학은 실재의 한가운데, 인식의 두 층위 또는 실재에 대한 두 관계, 항상 회복했거나 회복해야 할 간격, 내재적 간격 안에 있다. 그것은 각각의 실재에 대한 관계 속에서, 또 자신과의 관계 안에서 다시 회복해야 할 형이상학적 부분을 포함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