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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습관 복잡한 반성 : 90년대 학생운동의 성찰과 전망 - 컬리지언총서 1
이후 외 / 이후 / 1998년 5월
절판


대학사회라는 기반과 학생운동 자체의 괴리는 학생 대중들에 대한 정서적 유대의 강화를 통해 해결될 수 있는 것으로 사고되었다. 지식의 문제, 교육의 문제 등은 이제 무의식적으로도 운동의 사정권 안에서 사라지게 되었다... 사실 이는 대중의 지식인화가 아니라 지식인-대중의 분담관계를 전제한 뒤 그 안에서 둘의 유대를 추구한 NL 주류 사상의 심층의 문제점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이었다.-62쪽

의식화의 처음에는 역시 대학사회 본래의 긴장점에서 출발하지만 (학회) 이후의 활동가 의식화의 과정은 학생회 활동으로, 그리고 사실상 정파 중앙에 의해 내리먹여지는 협소한 정치투쟁 및 대중사업에의 참여 등으로 채워졌다. 일단 활동가가 되고 난 뒤에 활동가 자신이 경험하는 운동이란 결국 일정하게 고착된 관료적 실천이 대부분이었다. 시위에서의 대중동원 여부가 관건이었고 총학생회 선거에서 자기 정파가 승리하는 것이 1년 활동의 목표였다. -63쪽

학생 대중들에 대한 정서적이고 이해중심적인 접근과 활동가들의 과잉 정치주의의 이분법적 세계는 신세대 현상에 대한 최악의 접근의 가능성을 그대로 실현시켰다. 학생 대중들과의 접촉면에서는 신세대들의 소비문화 흡수에 유착하는 문화주의적 접근이 취해지면서, 다른 한편으로 그에 의해 감소되는 학생운동의 급진성은 활동가 이념의 폐쇄성으로 치환, 해결되었다. -66쪽

단, 적어도 학생운동 출신이라면 이 사회에 중심적 모순을 해결하는데 자기가 하고 있는 실천영역이 어떠한 관계를 맺고 있는가, 어떤 역할을 하고 있다만, 분명히 하고, 그것만 분명하다면 할 일은 얼마든지 많다.-308쪽

여전히 학생운동을 고민하는 친구들의 고민이 너무 추상화되어 있다. 90년대 중반 이후로 계속 '말의 성찬'이지 않나 싶다. 다양한 얘기들이 많은데, 담론의 부재를 얘기하면서 담론 과잉이라는 극단적 평가가 있을 만큼, 학생운동이 지나치게 담론의 영역 안에만 있다. 물론 그 자체를 못 세우기 때문에 그렇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학생운동의 특성이라는 것이 실사구시가 안되는 점이기도 하다. 머리 속에서 정리가 되어야 실천이 되는 나름의 특성이 있긴 하지만, 문제에 실천적으로 접근하는 태도가 아쉽다.-319쪽

운동적 기득권에서 빨리 벗어났으면 좋겠다. 거칠게 표현해서 80년대 화려했던 학생운동의 전성기에 대한 미련, 그것을 여전히 학생운동은 그러하다든지, 혹은 80년대 학생운동을 재현해야 한다는 강박관념, 선배들은 과거 영웅적인 투쟁을 했는데 우리는 왜 못하냐, 그런 강박관념에서 빨리 벗어나라. -3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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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인 2007-03-10 1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퍼갑니다. :)

천재뮤지션 2007-05-07 2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습복반. 그날이 오면에는 2권 밖에 없어서 2권 밖에 못 샀는데.
그대는 어디서 1권을 얻게 되었누? ㅋ

바라 2007-05-08 07: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좀 큰 서점에서도 2권뿐이더군.. 난 낙성대의 헌 책방에서 봤다
 
혼돈을 향하여 한걸음
최인석 / 창비 / 199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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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인석은「안에서 바깥에서」에서 이렇게 말한다.
"짧은 다리와 긴 다리로 절룩거리며, 기우뚱거리며, 절망과 희망 사이, 지금-여기와 언젠가 저기 사이를 시계추처럼 왕복할 것이다."  이것만큼이나 그의 소설 세계를 잘 설명해줄 수 있는 말을 찾을 수 있을까. 그는 현실에 대한 부정적 상상력과 동시에 현실 그 이상의 무엇, 유토피아에 대한 강렬한 지향성을 보여준다. 현실의 추악한 모습, 고개돌리고만 싶은 끔찍한 비인간성. 그것은 현실에 대한 치밀한 묘사와 분석에서 비롯되는 것이기에 사실적이고, 독자들에게 일상적인 현실 그 이면의 근본적으로 자리잡고 있는 악을 보여줌으로써 사회의 핵심을 문제삼는다는 점에서 리얼리즘적이다.
 그는 여러 작품들에서 알레고리적 형상화를 사용하는데, "내 영혼의 우물"이나 "세상의 다리 밑"같은 단편에서는 각각 감옥과 군대가 현실의 축도, 온갖 모략과 폭력과 고통, 상처가 끓어오르는 복마전의 공간으로써 그려진다. 「혼돈을 향하여 한걸음 더」에 수록된 작품에서도 삼청교육대(노래에 관하여), 고아원(평화의 집)이 역시 하나의 알레고리로 읽힌다. "심해에서"같은 작품은 이러한 알레고리 수법에 있어 절정에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여기서 작가는 대담하게도 이 세계 자체를 심해로 규정한다. 등장인물 동화와 선영의 대화는 이 세계가 바로 심해이며 먹이가 부족하기에 서로 잡아먹고, 너무나 높은 수압과 적은 빛에 적응하기 위해 시력은 퇴화하고 폭력에는 익숙해진 인간들은 곧 심해어임을 보여준다. 매음굴에서 탈출하려는 중학생 선영은 결국 심해에서 벗어날 길을 모른다. 그러나 끝까지 작가는 결코 섣부르고 과장된 희망의 제스처를 보여주지 않는다. 절망과 폭력이 끔찍이도 반복되고 재생산되는 세상, 등장인물들이 거기서 탈출하려 해도 탈출할 수 없는 원환구조가-대부분의 작품들에서 인물들은 결국에 가서 좌절의 정서 또는 실질적 파멸에 이른다- 바로 작가가 파악하는 세상의 본질인 것이다. "심해에서"에 등장하는 담임선생의 말을 빌리면 "이 골목만 심해인 것이 아니라" "이 세계 자체가 심해"이며 "어차피 사람이란 심해에서 짐승처럼 사는 수 밖에 없다"는 섬뜩한 말이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
 그러나 세계에 대한 절망적 인식과 비관적 스케치가 단지 불편함을 위한 데카당한 과장이나 개인의 내면성 속에 침잠하는 그럴듯한 미학주의(이런 말을 붙일 수 있다면)에서 멈추지는 않는다. 안온한 일상의 이면, 이 지독한 현실을 외면하는 나태는 그 약한 고리가 끄집어올려지면서 조금씩 그 고유한 균열을 의식하게 된다. 작가는 탐욕과 야만, 폭력과 광기로 가득찬 현실을 집요하게 독자에게 들이대며, 이러한 불편함은 단순한 사실적 재현너머의 유토피아적 상상력으로 이행하도록 강요한다. 현실에 대한 치열한 부정적 사유의 크기만큼 "세계는 죽음이라고 말하는 행위는 죽음이 아니"므로 그것은 현실의 또 다른 가능성에 대한 희구가 되기 때문이다. 그가 보기에 삶에 대한 단순한 생존본능만큼이나 유토피아에 대한 꿈은 하나의 존재조건으로 필연적인 것이다. (인간들은 살아간다. 또 인간들은 생각한다.)
 여기서 또한번 발휘되는 최인석의 미덕이란 세상의 밖으로서의, 다시 말해 초월적 외부로서 존재하는 유토피아를 부정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현실의 부정성을 인식하는 것은 현실의 밖, 인간으로서는 가닿을 수 없는 부질없는 피안을 상상하기 위해서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유토피아가 말 그대로 불가능함을 고백하는 일과 같은 것으로 일종의 '노예의 도덕'의 시작이다. 우리의 초월은 '내재적 초월'이어야 하며 문단 초반에 인용한 최인석의 말처럼 언젠가-저기는 (심히 기우뚱댈지라도) 지금-여기에서 시작해야 한다.  그래서 현실과의 두려운 대면, 그리고 '적합한 인식'은 유토피아로 가기 위한, 현실을 보다 인간적인 것으로 전화시키기 위한 첫 걸음이다. 유토피아적 가치로서 자유라는 것이 인간이 맺고 있는 사회적, 제도적, 문화적, 자연적 연관과 분리될 수 없음을 상기시키며 현실의 가혹한 중립성이 우리 삶의 기본 조건이라고 역설하며 사람 이상의 이념이란 없다고 말하는 작가는 '인간애'를 절망의 악무한적 회로에서 탈출할 수 있는 '숨은 길' 로 제시한다. 심해를 헤쳐나가기 위해서는 스스로 발광기관을 만들어 내고 시력을 회복시켜 심해어들 사이의 연대와 교통을 회복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이 점은 중요한데, 작가는「숨은 길」에서 노동운동과 지식인의 문제를 다루면서 자생성과 외부로부터의 규율 양 편향을 모두 물리치고 있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지식인들의 비민주성과 변절을 보여주는 김정자, 그리고 노동자에서 조직폭력배로 변한 '나'의 모순은 누구도 예외가 될 수 없는, 모든 관계에 있어 항상적인 압력으로 작용하는 폭력이라는 질료에 대한 반성,  그리고 복합적이고 다면적인 인간의 모습들, 그 자체로는 완전히 선하거나 악하지 않은 다종다양한 인간 조건과 윤리적 책임을 인식하도록 이끈다. 더 나아가 폭력 일반에 대한 경향적 폐지로서 반폭력의 문제들을 마주하게 되는 독자들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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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its 2006-12-31 2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최인석, 오랜만에 만나는 반가운 이름인데 생각해보니 읽은 건 하나도 없네요.
바라님 덕분에 그가 어떤 글을 쓰는 사람인지 새삼 들여다봤어요.
리뷰를 빌어 바라님이 바라는 이야기를 하신 건 아닌가 싶기도 하구요. ^^
새해 좋은 일 많이 생기시길 바랍니다!
 
미래는 오래 지속된다
루이 알튀세르 지음, 권은미 옮김 / 돌베개 / 1993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미래는 오래 지속된다. 권은미 옮김, 돌베게, 1993

(괄호 속 숫자는 쪽수이고 강조는 원문, [] 표시는 인용자가 한 것.)

 

오랜만에 누군가의 자서전을 읽고 싶어졌다. 가능한 독서목록에서, 그저 딱딱하고 지루하게 느껴지는 온갖 철학자들의 사변도 아니고, 언젠가부터 좀처럼 잘 읽히지 않는 문학 작품들을 제하고 나니 떠오른 것이 자서전이라는 장르이다. 그러고 보니 언젠가 들었던 “소설의 이해”라는 교양 과목에서 가르쳤던 교수의 주장도 결국 모든 소설 역시 자서전이라는 큰 틀에서 해석될 수 있다는 얘기였던 것 같다.(그때의 교재가 <꽃을 잃고 나는 쓴다>라는 한국단편소설을 엮은 책이었다.) 그래서 동네 도서관의 전기 코너에서 얼쩡거리다가 결국 잡은 책이 <미래는 오래 지속된다>이다. 프랑스의 철학자가 쓴 자서전이라니, 철학책도 잡히지 않고, 그렇다고 문학에 몰두하지도 못하는 그런 와중에 꽤 그럴 듯한 절충이지 않은가? 라고 위로하면서.

 

 그럼 알튀세르는 어떤 사람이었나?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그는 한 사람의 철학자였고, 또한 마르크스주의자였다. (페리 앤더슨 같은 사람은 그를 서구 마르크스주의의 계보라기보다는 소련의 전통에 위치시키기도 한다는데, 그는 아마 맑스주의 역사상 누구보다도 ‘비교조적인’ 맑스주의자였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는 사르트르가 했던 것처럼 맑스주의를 우리 시대의 넘어설 수 없는 철학이라고 한번도 생각하지 않았다고 쓴다. 마키아벨리, 스피노자를 우회하는 이론은 그야말로 Dia-Mat 즉, 변증법적 유물론이라는 끔찍한 철학을 넘어서, 오히려 맑스주의의 공백과 한계를 가장 극단까지 몰고 간 노력으로 보아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그는 62세 되던 해에 자기 아내를 정신착란 상태에서 교살했으며, 그 이후 프랑스에서 그 이름은 엄청난 스캔들의 대상이 되었고, 그 이론까지도 금기시되었다.(언뜻 들은 얘기로는 이러한 분위기 때문에 그의 제자 발리바르는 프랑스에서 국가박사학위를 받지 못하고 네덜란드에서 학위를 받았다고 한다) 그 이력을 잠시만 보아도 왠만한 소설 주인공 뺨치는 굴곡 많은 인생일 거라는 생각이 드는데, 역시 책의 첫 번째 장은 바로 자신이 아내 엘렌느를 죽였던 바로 그 날의 기억을 기록하는 데에 할애된다. 그리고 그는 법원으로부터 면소판결(형법에서 구분하는 바처럼 정신착란 또는 강제에 의해 행위를 저지른 경우 범인의 무책임 상태를 이유로)을 받는데, 이로 인해 그는 ‘죽은 목숨’(lebenstodt), 즉 “죽지도 살아있지도 않고 아직 매장되지는 않았으나, 광기를 지적하기에 매우 적절한 푸코의 표현대로 ‘저술이 없는’ 자”이자 실종자가 되고 만다. 그렇다면 이 철학자, 역시 정신분석에 관한 여러 글들을 남겼던 이 인물에게는 어떤 어린 시절이 있었을까.


 역시 가족 얘기를 해야만 한다. 모계 쪽의 베르제 일가와 부계 쪽의 알튀세르 일가는 알제리의 어느 삼림 지방에서 서로 알게 된다. 베르제 일가에는 알튀세르의 어머니가 될 뤼시엔느와 여동생 줄리에트가 있고, 알튀세르 일가에는 역시 아버지가 될 맏아들 샤를르와 루이가 있었다. 뤼시엔느는 조용하고 공부를 좋아하는 루이와 함께 어울려 사랑에 빠지게 되고, 집안에서는 뤼시엔느와 루이를 약혼시켰다. 그러다가 1차 대전에 각각 포병대와 공군으로 징집된 이들 형제 중 루이가 전사한다. 그리고 아버지 샤를르는  뤼시엔느에게 자신이 루이의 자리를 대신하겠다며 청혼한다. 결혼 생활은 순탄치 않았고, 이는 후에 알튀세르에게 “상처처럼 피 흘리며 수난받는 어머니라는 이미지를 사후에 형성했다고 한다.(49) 그녀를 그녀의 수난과 남편으로부터 구해야 한다는 강박에 어린 알튀세르는 끊임없이 시달려야 했던 것이다. 게다가 그의 이름은 바로 그녀가 사랑했던 원래의 인물 ‘루이’로 지어졌던 것이다. 그는 자신이 이 이름을 무척 혐오했다고 밝히는데 그 이름 Louis는 동일한 발음의 oui(‘예’라는 긍정의 표현)를 연상시키며, 그것은 바로 자신의 욕망이 아니라 어머니의 욕망에 대한 oui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또한 이 이름은 lui(그 남자라는 표현)라는 익명의 제삼자를 암시하기도 하며, 물론 그의 어머니가 사랑했던 죽은 삼촌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고유한 인격이 박탈당했음을 느끼게 된다.

 

 이후에는 어린 시절에 관한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이 쭉 서술된다. 사업 수완은 좋았지만 매우 엄격하고, 아들에게 모호한 태도를 취하는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 그리고 말뚝과 쇠꼬챙이에 찔려 서서히 죽어가는 것에 관한 그의 ‘환상들’, 자살에 대한 갑작스런 충동, 영원한 아이나 다름없던 어머니. 누이동생과 어머니에 대한 너무나도 무거운 책임감... 특히 어머니에 관한 이야기에 강조점이 주어진다. “어머니가 지닌 병적인 공포는 내 육체와 자유를 지배했고 억눌렀다....아이들과 그토록 어울리고 싶어했던 나에게...모든 것은 금지되어 있었다”(64) 그리고 청소년기에 그는 쟈끄(jacques)라는 이름을 가졌으면 하고 꿈꿨다고 말한다. 이 ㅈ 발음은 jet(정자의 사출)을 연상시켰으며, 깊은 아 발음은 ‘아버지의 이름’인 샤를르의 아와 같으며, 끄는 끄(queue 꼬리라는 뜻으로 남성의 성기를 의미하기도 함)를 의미하고, 외할아버지가 들려준 농민봉기의 이름도 쟈끄리였기 때문이다. 이렇게 그는 죽은 자의 이름(67)을 갖게 되었고, 어떤 ‘아버지의 이름’을 갖기를 원했던 것 같다.(이런 점은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그 자신 역시 남성적인 ‘힘’을 원했던 니체와 닮은 점이 아닐까? 문외한이라서 드는 생각일지도 모르지만 실제로 알튀세르의 후기의 생각들은 명시적으로 준거하지는 않지만 어떤 니체적 영감과 깊은 관련을 갖는 듯한 인상을 받게 된다) 그리하여 그를 둘러싼 양면성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그는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사랑해주길 바라며, 어머니를 유혹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한다. “나는 어머니의 욕망을 실현시킴으로써 어머니를 유혹해야 했다.”(69) 그리고 그가 간절히 원한 것 또한 “죽음의 영역 안이나 죽음의 환상 속에서 살지 않고 나 자신으로 살아가려는 욕망”이었다.(가령 나중에 그는 어떤 명철한 여자친구로부터 이런 말을 듣게 된다. “내가 당신에게서 좋아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당신이 어떡해서든 스스로를 파괴하길 원한다는 거예요.”) 그는 자기 분석을 통해서 다음과 같이 결론내린다.

“진정으로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삶에서 단지 하나의 인위적 존재였고, 아무것도 아닌 존재였으며, 또 내가 그들을 유혹함으로써 사랑하고자 했고 또 동시에 그들의 사랑을 받고자 한 사람들, 그로부터 차용한 인위적 수단과 사기라는 우회적 방법을 통해서만 사랑을 하고 사랑을 받을 수 있는 하나의 죽은 자였다.”(105) “나는 과장의 의지, 말하자면 편집증적인 의지와 자멸적인 의지가 하나의 동일한 의지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113)


 이어서 고등사범을 다니기 이전의 학교 생활이 다루어진다. 신체가 입을 상처에 대한 두려움과 함께 몸의 여러 근육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는 능력에 대한 회고, 그리고 역시 그 근육을 다루는 것의 일종으로 외국어에 대한 재능, 친밀하게 지냈던 친구와 자신이 동일시했던 선생님 이야기 등등. 그리고 그는 당시의 카톨릭학생운동의 기억을 떠올리며 “정결과 육체노동, 그리고 침묵에 바쳐진 수도승들의 삶”을 동경했으며, 그럼으로써 익명성 속으로 사라지길 바랬다고 쓴다. 10장에서는 포로 생활의 일화들이 나오는데, 이러한 바람은 이 생활 가운데서 어느 정도는 채워졌던 것으로 보인다. “나는 이런 노동을 하는 것이 무척 마음 편했으며 농부들인 내 동료들과 우애를 나누며 함께 지내는 것이 특히 행복했다.”(118) 그는 포로 생활들을 통해 “인위적 술수 및 기만적 술책”이 그것을 사용하는 자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알고 죄의식을 다스리는 경우, 즉 그가 자유로울 경우 그것은 이로운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 후에 알튀세르가 정신분석을 통해 알게 된 것을 깨달았다고 술회한다. “프로이트의 발견을 상당히 앞지른 유일한 인물, 즉 마키아벨리가 규정지었던 규칙들에 나는 다가갔던 것이다.”(120) 또한 그 경험은 가족, 그에 말에 따르면 “모든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 중 가장 끔직하고 가장 지독하며 가장 고통스러운 그 가족”(121)의 세계로부터 떨어짐으로써 느끼는 행복을 가르쳐주었다. 로베르 포새르와 그람시, 레닌 이후 확립된 ‘기계’로서의 국가(그렇기 때문에 국가‘장치’이다. 아다시피 기계의 가장 큰 특징은 ‘자동성’이다)의 관념. 이 가족이라는 장치는 무엇을 하는가. 바로 “어린아이에게 그가 사는 사회에서 통용되는 모든 높은 가치들, 즉 절대적인 모든 권력에 대한, 그리고 무엇보다도 국가에 대한 절대적 존경심을 불어넣”는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알튀세르 말마따나 인류의 3대 나르시스트적 상처(갈릴레이의 상처, 다윈의 상처, 무의식의 상처) 이후 더 치명적인 네 번째 상처는 성스러움, 권력과 종교의 장소 자체인 가족이 된다. 물론 교훈만 있었던 생활은 아니었다. 그는 여기서 “언제나 [모든 종류의] 예비품을 마련해 두고자 하는 강박관념...모든 지출은 깎아 내리고 반면에 저축에 저축을 더해 가는 그 강박관념”(123)을 추가로 얻게 된다. 아마 그의 생애 내내 계속되었고, 또한 혼자 있지 않기 위해 친구들, 심지어 여자들도 예비하게 된 습관이 여기서 나오게 된 것이다. 아마 글을 쓰던 당시에는 자신이 예전과 다름을 느끼고 의식한 것으로 보이며, 이는 다음과 같은 언급에서 잘 드러난다.

“지금 나는 지출과 위험이 없는, 즉 돌발사건이 없는 삶이란 없다는 사실, 그리고 그 돌발사건과 지출(매매되는 것이 아니라 무상의 지출: 그것은 공산주의에 대해 내릴 수 있는 유일한 정의다)은 삶 전체의 일부분을 이룰 뿐만 아니라 삶의 그 궁극적 진리에서, 그리고 하이데거가 너무나 잘 표현했듯이 삶이라는 그 ‘사건’Ereignis에서, 즉 삶의 출현과 그 귀결에 있어서 삶 그 자체라는 사실을 이제는 확실한 근거를 갖고 내가 깨닫게 된 것 같다.”(124) 하나의 재미있는 에피소드도 있는데, 바로 포로생활의 탈출을 위한 방법에 관한 것이다.(여기서 어떤 이들은 김기덕의 영화 <빈집>을 떠올릴 지도 모른다) 이를테면 포로가 탈출한 것을 확인하면 독일군은 상당히 넓은 지역의 군대와 헌병대에 경보를 울려 거의 확실하게 체포에 성공했기에 그가 생각한 탈출 방법은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우선 자신이 수용소에서 사라져버려 탈출했다고 믿게 한 다음, 3~4주의 경계태세 후에 진짜로 탈출하는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탈출이 아니라 사라지는 것, 즉 숨어버리는 것 그 안에 머무르면서 탈출하는 방법을 떠올린 것이었다. 그는 의미심장하게도 후에 랑시에르가 <알튀세르의 교훈>같은 책에서 그가 공산당에 계속 남아있는 일을 비판한 예를 들면서 랑시에르가 이 일을 알았더라면 여러 생각을 했으리라고 말한다.


 그는 입학하고 수용소 생활로 인해 6년만에 다시 고등사범에 들어가게 된다. 이후에 그는 거의 평생동안 고등사범에서 머물게 되는데 그는 이 곳을 “어머니의 품과 같은 진짜 둥지”(187)라고 표현하는데, 거기서 그는 철학에 관한 작업을 지속함과 동시에 엘렌느와 첫 만남을 갖게 되었던 것이다. 그녀는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고, 알튀세르를 만날 당시에 이미 뛰어난 공산당의 투사였다. 엘렌느는 특별히 이론적으로 정통하지 않았지만 정치적 경험에 관해서라면 매우 뛰어났고(지나가는 길에 잠시 라캉이 등장하는데, 그는 언젠가 엘렌느에게 “당신은 매우 훌륭한 정신분석가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 경험들은 알튀세르에게 현실세계에 들어갈 수 있도록 해주었다. 하지만 엘렌느의 관계는 흔히 이야기하는 바처럼 ‘평탄한’ 것은 아니었으며,(그는 엘렌느의 묵인 아래 계속해서 다른 여자들을 유혹하기도 했다) 당시 그의 우울증과 과대망상증은 점점 깊어가고 있었다. 자신이 완전히 무능하지 않나 하는 두려움(가령 <마르크스를 위하여>와 <자본을 읽자>를 출간한 뒤에 찾아왔던 심각한 우울증)과, 전능을 갖고자 하는 욕망인 과대망상증이 동시에 존재한 것이다.(그가 지적하듯이 스피노자와 프로이트가 강조한 정서의 양가성은 이러한 현실에 대한 이론적 확인이다) 알튀세르의 기벽과 잦은 정신적 어려움에 대한 엘렌느의 고통에 관해서는 다음의 통렬한 구절을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나는 진심으로, 너무나 자랑스럽게, 그리고 내 모든 것을 아낌없이 바쳐 엘렌느를 사랑했다. 하지만 그 폐쇄된 고독에서 진정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녀가 침대에서건 어디서건 뭐든지 얘기 좀 해요! 라고 내게 되풀이할 때 그녀의 고통에 답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얘기 좀 하라는 것은 곧 자신이 고독하게 혼자 버려진 채 영원히 끔찍하고 고약한 여자가 되지는 않을까 하는 지독한 고통에서 벗어나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달라는 것이었다.

내게 뭐든지 얘기 좀 하라는 것, 그 말이 단순히 내게 모든 것을 달라는 것일 때, 즉 존재할 수 있는 기회를 달라, 당신의 시선과 삶 속에서 진정으로 존재하지 못하는 이 불안을 막아낼 만한 것을 달라, 우리 사랑이 그저 지나가는 한순간일 뿐 온전한 사랑을 이루기에는 이미 이 손상된 이 사랑으로는 부족하리라는 그 불안을 막아낼 만한 것을 달라는 의미일 때, 이 고통에 찬 요구에 이 세상 그 누구도 대답할 수 없을 것이다.”(160)


 그 다음 얘기들은 많은 사람들에게 흥미로울텐데, 그의 철학에 관한 이력, 당시에 철학자들에 대해서 언급하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우선 다시 복귀한 학업에서 알튀세르는 바슐라르의 지도 하에 헤겔에서의 내용 개념에 대한 논문으로 학위를 취득한다. 이어지는 대목에서는 철학에 관한 자신의 독서를 솔직하게 고백하는 모습이 나온다.

“철학 서적에 대한 나의 지식은 오히려 한정되어 있었다. 나는 데카르트와 말레브랑슈는 잘 알고 있었으나, 스피노자는 조금 알고 있었을 뿐이며, 아리스토텔레스, 소피스트들, 그리고 스토아 철학자들은 전혀 몰랐다. 또한 플라톤과 파스칼은 상당히 잘 알고 있었으나, 칸트는 전혀, 헤겔은 약간, 그리고 마르크스는 몇몇 부분만을 상세히 읽었을 뿐이다.”(190)

그는 많은 부분을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것을 들음으로써 배웠다고 말한다.(히로나카 헤이스케의 <학문의 즐거움>에 나오는 표현대로라면 耳學이 될 것이다) 그는 또한 그것을 하나의 시추작업에 비유한다.(이 비유를 따온 책도 있다. 문성원의 <철학의 시추>) 그러나 아마 이러한 언급에서의 ‘약간’, ‘조금’의 의미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긴 힘들 것이다. 가령 그는 당시 프랑스에 헤겔을 알린 알렉산드르 코제브(라캉 역시 이 헤겔 세미나에 참석했으며 그에 대해서 지대한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억측일지도 모르지만 그렇다면 지젝의 헤겔 이해 역시 코제브의 헤겔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볼 수 있을런지?)의 글을 모두 읽어 보았으며 그가 헤겔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인물임을 금방 깨닫게 되었다고 일축한다. 대신 <정신현상학>을 번역한 장 이폴리트를 높이 평가한다. 좀 길지만 알튀세르의 말을 그대로 옮겨놓으면 이러하다.

“그[코제브]에게 있어서 모든 것은 죽음에 이르는 투쟁과 역사의 종말을 중심으로 돌아갔는데, 그 역사에 대해 그는 어이없게도 관료적 의미를 부여하고 있었다. 역사, 즉 계급투쟁의 역사는 끝났으나 역사는 계속 진행되는데 단지 거기서는 일상적인 사물의 관리(administration)(생-시몽 만세!)밖에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는 분명 철학자로서의 자기 욕망과 고위 관료라는 직업적 조건[코제브는 재무부 고위직을 맡고 있던 러시아 출신 망명자였다]을 결합시키는 방법이었을 것이다. 헤겔에 대한 프랑스인들의 완벽한 무지는 차치하더라도 어떻게 해서 코제브가 이 정도로 자신의 청중들, 즉 라캉과 바타이유, 크노 및 다른 수많은 이들을 현혹시킬 수 있었는지 나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헤겔 자신의 책을 읽어보는 것으로 충분하다.”(202)

또한 당시에 활동했던 다른 프랑스 철학자들에 대한 그의 평가가 이어지는데, 이를테면 사르트르는 헤겔, 마르크스, 프로이트, 후설, 하이데거 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철학소설가”일뿐이고, 사르트르와 더불어 프랑스에 현상학을 소개한(여기서 레비나스의 몫이 빠져있다는 것은 이채로운데) 메를로 퐁티는 그와는 전혀 다른 깊이를 지닌 철학자였지만, 결국 유심론이라는 프랑스적 전통을 극복하지 못했다고 서술된다. “메를로는 진짜 위대한 철학자로, 데리다라는 거인이 나오기 전 프랑스의 마지막 철학자였으나, 헤겔이나 마르크스에 대해서는 전혀 밝혀주는 바가 없었다.”(204) 아마 이 현상학자들, 또한 현상학적 마르크스주의자들(인간주의적 맑스주의자들)이 평가절하된 것은 알튀세르의 맑스주의가 구조주의와 뗄 수 없는 긴밀한 관계를 갖고 있으며, 이론적 반인간주의(그리고 그것이 동반하는 실천적 인간주의)의 태도를 취하고 있음을 이해한다면 그리 이해가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다. 그리고 당시의 강단철학자들의 이름도 언급된다. 라베송, 베르그송, 르키에, 그리고 최근에 페르디낭 알키에, 마르시알 게루 등 숱한 유심론적 주석가들. 요컨대, <맑스를 위하여>의 서문에서 그가 쓴 것처럼 철학에서도 정치에서도 스승은 없었다는 것이다. 물론 그 중에는 그의 친구 자크 마르탱을 통해 알게된 두명의 사상가 쟝 카바이예스, 조르주 캉길렘 같은 비범한 인물도 있었지만 말이다.

다소 산발적인 서술이 계속되지만 흥미있는 에피소드는 “편지는 언제나 제자리에 도착한다”라는 라캉의 테제에 대한 알튀세르의 반대에 관한 얘기다. 즉 그는 “편지는 제자리에 도착하지 않을 수도 있다”라는 유물론적 테제를 제시하는데 이 이야기를 들은 라캉은 족히 10분간 생각에 잠겼다고 한다. 그리고 라캉은 “알튀세르는 이론가이지 실천가가 아니”라고 답했다고 하는데, 그것을 알튀세르는 시인한다. 그에 따르면 정신분석은 마르크스주의의 제일원리와 마찬가지로 ‘실천’ 그 자체이기 때문에 분석 과정에서 어떠한 미세한 효과들일지라도 무의식과의 관련 하에서 목적지에 도착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다만 그는 라캉도 옳았지만 자신도 옳았다고 덧붙인다. 그 논쟁은 서로 우열을 가릴 수 없는 것으로 자신은 철학적 입장에서, 그리고 라캉은 정신분석학적 입장에서 발언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곳은 사실 그가 좀더 설명해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대목인데, 철학과 정신분석 간의 쟁점에 관한 어떤 것을 암시하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사실 정신분석에 관한 한 알튀세르의 태도는 미묘하다. 본인이 오랜 시간 정신분석을 받았으며, 라캉 등의 이론에도 많은 관심을 보였지만 피분석자(요즘 식으로 말하면 분석주체, 이 책에서는 역전이가 반대-전위로 번역되어 있는 것 같다)의 한 사람으로서 정신분석에 관한 비판적인 태도가 책 여기저기에서 나타난다. 그의 유고집 중 <정신분석 논집>이 번역된다면 그 사정을 파악하기 용이하겠지만 이는 국역된 알튀세르의 글들에서도 나타나는 것이다. 가령 ‘프로이트와 라캉’의 논문(<아미엥서의 주장>에 수록)에서의 정신분석에 관한 긍정적 태도와는 달리 ‘마르크스와 프로이트에 대하여’나 ‘프로이트 박사의 발견’ 같은 논문(<알튀세르와 라캉>에 수록)에서는 정신분석, 특히 라캉에 관한 강한 비판적 태도를 보인다. 사실 이것에 관해 다루기 위해서는 훨씬 더 많은 이야기들이 필요할 것인데, 아마 <이데올로기의 숭고한 대상>에서 지젝이 말한 것처럼 하버마스-푸코의 모더니티 논쟁의 배후에는 훨씬 더 심오한 논쟁, 바로 알튀세르와 라캉의 논쟁이 도사리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나중에라도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을런지? (관심있는 독자들은 좀 시간이 지나긴 했지만 진태원씨와 홍준기씨의 논쟁들(<라깡의 재탄생>과 <철학사상> 16집에 수록)을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진태원씨의 논문은 연작 논문이므로 조만간 ‘알튀세르의 유령들2를 만나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철학에 관한 자신의 입장과 정치에 관한 입장들이 전개된다. 육체에 대한 열광(그가 각각 이론적, 실천적 측면에서 그것을 찾은 것은 바로 스피노자-“누구도 아직 신체의 역량이 어느 정도인지 규정하지 못했다”-와 맑스였다)을 통한 맑스주의에의 입문, 철학을 뒤흔들어놓고 배후에서 공격하는 것으로서 기원, 목적, 진리보다 더욱 근본적인 ‘실천’이라는 범주, 그리고 자신이 근 30년간 보존해오고 있는 사유 즉 마주침의 유물론에 관한 간략한 설명, 공산당의 많은 과오들과 광범위한 대중운동에 관한 희망-그 유명한 의지에 대한 지성의 우위, 지성에 대한 대중운동의 우위의 정식으로 요약되는-등등. (사실 굉장히 중요한 이야기들이고, 내가 당장 쓸 역량도 되지 않아 여기서 다루기는 어렵고 만약 가능하다면 다른 기회를 빌려야 할 것 같다. 이 부분은 그의 다른 책 <철학에 대하여>의 내용과 상당히 겹치기에, 가능하면 <철학과 맑스주의> 등과 읽으면 우발성의 유물론에 대한 스케치를 대략적으로 알 수 있을 것이다) 자서전의 막바지에 가면 다시 엘렌느에 관한 회상으로 돌아간다. 거기에는 셀 수 없이 많은 우발적인 사건이 있었고, 그로 인한 ‘과잉결정’이 존재했다. 며칠 전부터 급격히 심해진 그의 우울증, 상태의 악화 때문에 그를 다른 병원으로 옮기려 했으나 엘렌느가 그것을 만류한 점, 몇 주간 계속되었던 이 부부의 두문불출, 엘렌느가 계속해서 자살 충동을 내비쳤으며 알튀세르에게 자신을 죽여달라고 했던 점,... 어느 날 침대 위에서 엘렌느의 목을 마사지하고 있던 도중 그는 불현듯 그녀의 몸이 뻣뻣하게 굳어져 있음을 알아차렸다. 어쩌면 그가 그녀의 자살을 도왔던 것일까? 아니면 평생을 정신병에 시달렸던 그의 불안, 여성에 관한 두려움-이런 표현이 감히 적절할지 모르겠으나- 탓이었을까? 아니 일단 그것이 교살이기는 했을까? 어떤 의사의 말처럼 목에는 급소가 많기에, 어쩌면 교살이 아니라 마사지 도중의 사고였을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경계해야 할 것은 송기형 교수가 쓴 한국어판 해설에서처럼 그의 생애를 단순히 하나의 스캔들로 바라본다거나, 잡담의 대상으로 삼는 태도, 그리고 발리바르가 말한 것처럼 알튀세르의 책들은 읽어보지도 않고 단지 자서전의 단편적인 사실들로 그를 이해하려는 태도이다. 그렇지 않아도 당시 프랑스 국내외의 언론들은 그 엄청난 사건 이후 온갖 선정적인 보도를 통해 그를 아내를 죽인 미치광이 공산주의자 철학자로 매장한 일이 있다. 거기에는 이미 철학=광기, 공산주의=범죄 등의 등식이 있었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알튀세르는 이 자서전을 하나의 자기 해명으로서 내놓는다. 물론 이것은 구차한 자기변명의 차원은 아니다. (“자기변명을 하지 않는 것, 그것이 내가 아는 유물론에 대한 유일한 정의이다.”) 이 책은 자신의 고통받은 삶에 대한 드문 고백이며, 하나의 비극적 문학작품일 것이고, 현대를 가로지르는 온갖 역사적 정세에 대한 비평이자 자신이 몸담았던 그 격렬한 운동과 철학에 대한 애도이자 해체, 희망의 표현이다.

글쎄, 그렇다고 해도 죽은지는 15년이 지났고 그가 사고했던 맑스주의는 한물 간 것처럼 보이고, 그가 밥벌이했던 철학, 이론에서의 계급 투쟁이자 과학에 대해서는 정치를, 정치에 대해서는 과학을 표상했던 바로 그 '철학' 역시 마찬가지로 찬밥 신세로 보이는 때에 알튀세르가 도대체 무슨 의미란 말인가? 내용을 갖춰 답하긴 이른 것 같아도 그의 유령이 여전히 배회하고 있고, 자본주의는 신자유주의라는 피칠갑을 한 모습으로 마지막을 재촉하고 있는 현실은 그에 대한 그야말로 공정한 애도와 극복으로서의 계승을 요구한다. 여러가지 좌익적 운동의 난립과 유행 속에서 알튀세르주의는 수상쩍게 억압된 것, 하나의 증상. 계속해서 회귀하는 어떤 것으로 남는다. 하나의 대중운동이라는 영원히 낡지 않는 표상으로서. 이 유령은 우리에게 무언가 말을 걸고 있다. 그렇다. “미래는 오래 지속된다.”(l'avenir dure longtemp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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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인 2007-02-15 2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천하고 퍼갑니다. 벌써 쓰신지 꽤 되셨네요^^ 방선생님 수업 들으셨나보네요
점점 문학이 아니라 철학을 전공할 껄 그랬나 라는 생각이 드는데, 박사학위를 받은 선배들은 '철학에 '너무' 빠지지 마라'라고 하는데, 철학에 '너무' 빠지지 않는게 어떻게 가능할지 모르겠네요. 어쨌든 저는 '이론의 우회'가 아니라 '전공의 우회'를 하게 될지 모른다는 생각을 요즘 하고 있습니다. :) 여튼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바라님은 철학 전공이시죠?

바라 2007-02-16 0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예리하신 기인님. 방선생님 수업들은 것도 맞고 철학 전공인 것도 맞추셨습니다. 그런데 둘다 매우 부실해서; 과는 한 학기밖에 안 다녔고, 그 수업은 한 세번 출석한 것 같군요;; 부끄럽기 짝이 없습니다. 별로 좋은 글도 아니고 늘 그렇듯 멋모르고 쓴 글이라 거듭 부끄럽군요. 입대전 여름방학 때 읽은 책이었는데, 보잘 것 없는 리뷰가 그 책을 읽기 싫어지게만 하지 않는다면 그나마 다행인데요...
 
법의 힘 우리 시대의 고전 16
자크 데리다 지음, 진태원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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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법에서 정의로-해체와 정의의 가능성 읽기(괄호 안은 쪽수)

법은 흔히 민주주의의 초석으로 평가된다. 흔히 법의 이념이라고 일컬어지는 정의가 법과 맺는 관계는 무엇인가? 이 때 자연법과 실정법, 정의와 법, 불문법과 성문법이라는 이항 대립은 사람들이 흔히 법에 대해 갖는 쉬운 통념을 밑에서부터 뒷받침한다. 이 때 법 또는 정의가 해체의 주제가 된다는 것은 이 대립관계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관한 ‘差移적 오염’ 을 살펴보는 일이 될 것이다. 데리다는 우선 관용어의 문제를 언급한다. 우선 그는 청중들에게 영어로 말해야 하는 ‘의무’ 그리고 고유어의 문제에서부터 시작한다.(이 글은 원래 강연문인데, 모국어가 아닌 영어로 청중에게 자신의 말을 전달하는 상황과 관련한 addresse의 타동사적 용법의 문제는 이후에도 다시 제기된다.) 가령 그는 불어에는 없고 영어에는 있는 표현을 언급한다. 우선 법의 집행을 뜻하는 to en‘force’ the law라는 표현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힘없는 법은 없다는 것, 강제성은 법에 결코 보충적이거나 부차적, 외재적이지 않다는 사실이 지적된다. 또한 독어 gewalt가 한편으로는 폭력, 다른 한편으로 적법한 권력과 권위를 동시에 의미하기도 한다는 점이 지적되면서 문제는 더욱 더 복잡해진다. 그렇다면 이러한 법의 힘과 대개는 부당한 것으로 간주되는 폭력을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 분명 어느 순간에인가 권위를 설립했을 것이고, 이전의 어떤 적법성에 의해서도 권위를 부여받을 수 없었을, 다시 말해 최초의 설립의 순간에는 합법적이지도 비합법적이지도 않고 정당하지도 않고 부당하지도 않은 기원적 폭력 그리고 법과 힘의 뒤얽힘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 것일까?

다음부터는 좀더 본격적으로 정의와 힘, 법의 힘의 문제가 다루어진다. 법이 단순히 일체의 폭력과 각종의 물리적, 상징적 힘과 동떨어진 한갓 초월적 관념이 아닌 이상 법은 언제나 실제적인 설립과 정초, 해석적이고 동시에 수행적인 정당화에 의존한다. 그러므로 법의 강제력, 법의 힘의 시제는 언제나 ‘전미래적’이다. (“태초에 힘이 존재했던 게 될 것이다.” 이처럼 힘은 존재했던 것이 아니라 미래완료의 형식으로, 즉 사후적으로 정당화된다.) 데리다가 덧붙이는 파스칼로부터의 인용을 따라가보자.
“정의, 힘-정당한 것이 지속되는 것이 정당하며, 가장 강한 것이 지속되는 것은 필연적이다.” “힘없는 정의는 무기력하다. 정의 없는 힘은 전제적이다....따라서 정의와 힘을 결합해야 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정당한 것이 강해지거나 강한 것이 정당해져야 한다.”(26~27)

뒤이어지는 몽테뉴의 단편은 법적 권위의 토대가 갖는 맹목적인 자기지시성, 그 심연을 보여준다. 그에 따르면 우리는 법이 정당하기 때문이 아니라 권위를 갖기 때문에 복종한다. 그 권위의 유일한 토대는 단지 사람들이 믿고 있다는 사실 자체에 있다.(믿음의 생산과 재생산이라는 토픽, 어떤 AIE적인 유사성)
“모든 것이 시간과 더불어 변천한다. 관습이 모든 공정성을 만들어내는데, 이는 오직 그것이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이유에 의해서다. 이것이 그 권위의 신비한 토대다. 권위를 그 기원에까지 더듬어 올라가는 자는 그것을 파멸시키게 된다.”(28)

이에 따르면 법적 이데올로기 비판은 법의 힘이 갖는 설립의 계기가 그 시초에서 (동질적이고 텅 빈 역사에 구멍을 내고 절단하는) 사건적 성질을 갖는다는 점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이는 선행하는 토대나 정의도 반박하거나 취소할 수 없는 수행적, 해석적 ‘폭력’과 분리될 수 없다. 곧 어떠한 담론도 이 ‘창설적’인 언어활동에 대한 메타언어적 역할을 할 수 없다.

또한 (앞에서 제기된 바, adresse의 문제와 관련해) 정의를 위해서는 빠뜨릴 수 없는 것은 전달내용과 주소의 정확성이다. 그렇지만 이 전달/주소는 언제나 독특한 것인데 반해, 법으로서의 정의는 항상 규칙 및 규범의 일반성과 관계한다. 이 두 가지 환원불가능한 특유한 두 가지 요구들 속에서 정의의 행위는 이 둘을 어떻게 조화시킬 수 있을까? (게다가 ‘메타언어는 없다’라는 테제에 보태어, 그리고 손쉬운 목적론에 반대하여 ‘편지는 제자리에 도착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테제의 추가)데리다는 애초에 다루고자 했던 주제보다 훨씬 더 나아간다. 유사성, 동일성을 넘는 진정한 보편성의 문제. 일반-특수의 쌍이 아닌 보편-독특의 쌍의 문제로.
“어떤 공동체의 성원들 모두가 전체적으로 동일한 고유어를 공유하지 못할 때, 어떤 불의의 폭력은 이미 시작된 것이다.”(40) “국법을 강제하기 위한 정초적 폭력 중 하나는 국가에 의해 재편된 민족적 또는 종족적 소수자에게 언어를 강제하는 것이다.”(46)

이 때 하버마스 식의 의사소통적 합리성이 제시하는 패러다임이 과연 상호주관적 주체 간의 자유롭고 평등한 관계를 보증하는가라는 문제가 제기된다. 그러나 폭력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 이상적 담화 상황은 사실상 불가능할 것이다. 언제나 일반성에 포섭되지 않는 단독성, 타자성이 존재하며 그런 한에서 그 고유어는 늘 독특한 것으로 남기 때문이다. 지금 데리다의 상황(외국어로 자신을 전달해야 하는 의무)에서도 단적으로 드러나듯이 타자의 언어를 경유한 정의의 가능성은 아포리아적인 경험을 요구한다. 고진 식으로 말하자면 언어의 문제만큼 주체의 문제 또한 가르치기-배우기, 팔기-사기에서 보이는 것고 같은 같은 비대칭성의 문제를 피할 수 없는 것이다.
“인간 종 가운데에는 주체들로 인정받지 못하고 동물 취급을 받고 있는 많은 ‘주체들’이 존재해왔으며, 지금도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41)

궁극적인 토대 위에 정초해 있지 않은 법의 해체 가능성, 그리고 정의의 해체 불가능성은 어떤 불균형, 스스로를 초과하는 고뇌의 경험을 개시한다. 단순히 제도의 밖으로 도주하는 무정부주의와 제도 내의 자유주의는 어쩌면 너무나 완고한 동전의 양면이 될지도 모른다. 차라리 제도 내의 변혁은 씨빌리테적인 방식을, 그러나 제도의 틀을 영속적으로 넘어서는 제도화의 규율을 겨냥해야 한다. 정세 속의 과잉결정의 방식은 또한 법과 정의 간의 다면적 관계에서도 적용되는 것이다.
“법은 정의의 이름으로 실행된다고 주장하고, 정의는 작동되어야 하는 법 안에 자기 자신을 설립할 것을 요구받고 있다. 해체는 항상 이 양자 사이에 놓여 있으며, 이 사이에서 자신을 전위시킨다.”(48)
뒤이어 세 가지의 아포리아적 사례들이 제시된다.

1. 규칙의 판단중지: 데리다는 법의 집행하는 판사의 결정을 예로 든다. 이른바 창설적 판단은 기존의 법에 일치하면서도 단순한 기계적 순응이나 칸트 식의 규정적 판단에 그치지 않아야 한다.
“요컨대 어떤 결정이 정당하고 책임감 있기 위해서는 이러한 판단은 자신의 고유한 순간에 규칙적이면서도 규칙이 없어야 하며, 법을 보존하면서도, 매 경우마다 법을 재발명하고 재정당화하기 위해, 적어도 그 법의 원칙에 대한 새롭고 자유로운 재긍정과 확증 속에서 이를 재발명할 수 있기 위해 법에 대해 충분히 파괴적이거나 판단 중지적이어야 한다. 매 경우가 각각 다른 것인 만큼, 각각의 결정은 상이할 뿐만 아니라, 기존의 법전화된 어떤 규칙도 절대적으로 보증할 수 없고 보증해서도 안 되는, 절대적으로 특유한 해석을 요구한다.”(50)

2. 결정 불가능한 것의 유령: 그러므로 이제 결정은 ‘현전적으로’ 또는 ‘충만하게’ 정당하지 않다. 이렇게 모든 결정에 유령같이 붙어 따라다니는 결정 불가능성은 무한한 정의의 이념, 그리고 환원 불가능한 타자와 ‘책임’을 통해서 관계맺는다.
“결정 불가능한 것은 계산 가능한 것과 규칙의 질서에 낯설고 이질적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과 규칙을 고려하면서 불가능한 결정에 스스로를 맡겨야 하는-우리는 이 해야 함(devoir)으로부터 말해야 한다-것의 경험이다.”(52)

3. 지식의 지평을 차단하는 긴급성: 이렇게 기존의 규칙에 판단중지를 해야 하는 순간에도, 결정 불가능한 사태의 망설임에도 불구하고 그 결정은 언제나 이미 긴급한 것으로 남아 있다. 모든 역사에는 언제나, 때로는 무한하게 작을지라도, 역사의 흐름을 절단하는 사건의 가능성을 내포하기 때문이다.
“결정의 순간은 정당해야만 하는 이 순간 자체는 항상 긴급하고 촉박한 유한한 순간으로 남아 있어야 한다...이는 하나의 광기이다. 하나의 광기인 이유는 이러한 결정이 과잉 능동적이면서도 또한 수동적이기 때문이다.”(56)

그러므로 해체론적 망설임은 단순히 두 가지 대당을 무너뜨리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미리 결정되어진 목적론적 유토피아를 기다리지 않는다. 해체의 정치, 해체의 정의는 언제나 단호한 선택이자 개입, 행동을 요구한다.
“정의의 이러한 긴급함과 본질적인 촉박함 때문에, 정의는 기다림(규제적이거나 메시아적인)의 지평을 갖지 않는다. 하지만 바로 이 때문에 그것은 아마도 하나의 장래avenir, 정확하게 말하면, 미래futur와 엄격하게 구분되어야 하는 하나의 도래-하기를 갖게 될 것이다.”(58)

그렇게 해서 정의는 역사의 구성적 주체의 편에서는 포착되기 쉽지 않은 것이 된다. 그것은 차라리 주체없는 과정 또는 구성되는 주체의 역사의 편에 서 있다. 근시近視지만 끈기있는 ‘두더지’(다니엘 벤사이드)의 저항은 정의를 도래하게 한다.
“절대적 타자성의 경험으로서 정의는 현전 불가능하지만, 이는 사건의 기회이며 역사의 조건이다. 이는 분명...역사가 문제될 때, 역사라는 이 단어로 자신들이 말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고 믿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인식될 수 없는 하나의 역사다."(59)

이처럼 법에서 정의로 가는 길은 끝이 없다. 도단道斷으로서의 아포리아는 행동의 포기가 아니다. 다시 한번 말하자면, 그것은 차라리 숱한 에움길을 요구한다. 또한 이 과정은 국가와 제도와 이데올로기를 관통하는 것이어야 한다.
"정의가 법과 계산을 이처럼 초과하고, 현전 불가능한 것이 규정가능한 것을 이처럼 범람한다고 해서 이를 제도나 국가 내부에서, 제도들이나 국가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법적 정치적 투쟁을 회피하기 위한 알리바이로 삼을 수는 없으며, 그래서도 안 된다.”(59)
“정치화-비록 결코 총체적일 수 없으며, 총체적이어서도 안 되지만-는 끝이 없는 것이다....곧 정치화에서 각각의 진전은 이전에 계산되거나 한정되었던 정치의 토대 자체를 재고찰하고, 따라서 재해석하도록 강제한다.”(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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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노자와 정치
에티엔 발리바르 지음, 진태원 옮김 / 이제이북스 / 2005년 5월
구판절판


히브리 국가는 내부의 적대가 화해 불가능하게 악화되지 않은 동안은 극도의 시련을 딛고 재구성될 수 있었다. 내부의 적대가 광란으로 타락했을 때 그것은 몰락했다. 그러나 이 내부의 적대는 어디서 유래하는가? 제도들이 경쟁적인 야심을 촉발하는 권력들을 병립시키고, 권리와 부의 불평등을 허락할 뿐만 아니라 영구적으로 고정된 어떤 삶의 유형-이는 [그 고정성 때문에] 인간의 욕망을 결코 만족시킬 수 없다-과 정의 및 시민적 복종을 동일화하는 한에서, 이는 무엇보다도 제도들 자체로부터 유래한다. 이런 의미에서 제도들은 항상 양가적이다. 곧 어떤 조건에서 제도들은 자신들의 내적 취약성을 교정하지만, 또 어떤 조건에서는 인민과 국가를 폭력 속으로 밀어 넣는다....제도들이 타락하는 것과, 인민이 자신의 올바른 이익을 지각하지 못하는 "난폭한 대중"으로 전환되는 것은 동일한 과정의 두 측면이다-65쪽

권리라는 통념은 오직 어떤 현행성에, 따라서 어떤 활동성에만 상응한다는 점을 알아두자. 그리하여 "인간들은 권리상 자유롭고 평등하게 태어나며, 그렇게 존재한다"는 식의 정식은 여기서는 아무 의미도 가지지 못할 것이다. 인간들은 실제로는, 그들을 평등하게 해 줄 어떤 역량 관계(어떤 유형의 국가)가 개입하지 않는 한 불평등한 역량들을 지니고 있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일반화해서 말하면, 인정되고 행사될 수 있는, 또는 반대로 그렇지 못할 수 있는 행위 능력으로서의 "이론상의" 권리라는 관념은 부조리나 신비화에 불과하다...권리의 통념은 처음부터 의무라는 통념과 관련하여 정의되지 않는다. 더욱이 권리가 표현하는 역량은 시초에는 "반대항"이나 "상관자"를 가지지 않는다. 하지만 역량은 필연적으로 사실적 한계들을 가진다.-93쪽

연속 생산의 원리는 인간 개인들 및 정치 체제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두 가지 경우에 실존은 자연적 생산으로서만이 아니라, 개체들의 구성소들 및 이 구성소들을 연결하는 역량의 재생산으로 사고되며, 이러한 재생산은 개체가 외부 세력들("운세")에 저항할 수 있게 해준다...사실 고립된 개인들은 오랫동안 자신들을 보존할 수 없는데 반해, 국가는 잘 구성되기만 한다면, 자신의 고유한 힘들로써 지속할 수 있는 것이다...따라서 개인들이 자신들의 고유한 이익을 추구하는 가운데 국가의 보존을 원하게 만들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국가가 자신을 보존하기 위해서는 개인들에게 시민적 복종의 기본 조건인 안전을 제공함으로써 개인들을 보존해 주어야 한다.-100쪽

단지 양적인 의미(시민들의 "거대한 숫자")만이 아니라 질적인 의미(거대한 숫자의 개인들의 집합적 행동)에서의 다중 그 자체는 국가의 분석을 규정하는 개념이 된다...다중의 역량은 화합의 역량일 뿐 아니라 불화의 역량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제 다중의 적대에 대한 균형과 중화, 상대적인 "중립화"의 문제는 더는 단순한 "통치"의 관점이 아니라 다중의 "정념들/수동성들"이라는 요소에 따라 제기된다. 다중을 통치하게 해 줄 지주는 다중 바깥에서 발견할 수 없으며, 이는 홉스가 상상한 형태[리바이어선]의 경우도 마찬가지다-105쪽

우리가 서술한 내용은, 모든 유한자에게 고유한 악덕들을 평민들에게만 한정시키는 사람들에게는 조롱을 받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들은 다음과 같이 말하곤 한다. 우중에게는 아무런 분별력도 없으며, 우중은 공포를 느끼지 않으면 사람들을 공포에 떨게 만든다. 그들은 지배되는 경우에는 비굴하지만 지배할 경우에는 거만을 떨며, 그들은 일체의 진리 및 판단과 무관한 존재들이다 등등. 그러나 모든 사람들은 하나의 공통적인 본성을 가지고 있다. 권력과 교육이 우리에게 환상을 만들어 내는 것 뿐이다...마지막으로 우중이 일체의 진리 및 판단과 무관한 존재라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닌데, 왜냐하면 국가의 주요 업무들은 그들 모르게 수행되며, 그들은 그들로부터 은폐시키는 게 절대 불가능한 몇 가지 사실로부터 그러한 업무들을 파악해 내야 하기 때문이다. 사실 자신의 판단을 중지하는 것은 비범한 노력을 요구하는 덕목이다. 따라서 시민들에게 그릇된 판단과 잘못된 해석을 하지 말도록 요구하면서도 모든 것을 시민들 모르게 수행하려고 하는 것은 어리석음의 극치이다.-106쪽

스피노자가 사고하는 결정 메커니즘들은 이중적인 목표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 한편으로 "국가 장치"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을 정치 권력의 진정한 담지자로 구성하는 것이다. 각 정체의 "주권자"는 상이한 양상에 따라 이러한 장치의 기능적 통일성과 동일화되는 경향이 있다. 다른 한편으로 이러한 장치 자체의 "민주화" 과정에 참여하는 것이다.-112쪽

"동류同類"-우리 자신을 그와 동일시할 수 있고, 우리가 "이타주의적인" 감정을 느낄 수 있는 다른 개인, 종교에서는 이를 "이웃들"이라 부르고 정치에서는 "동료 시민"이라 부른다-는, 이미 주어져 있는 존재라는 의미에서 자연적으로 실존하는 게 아니다. 반대로 이는 스피노자가 "정서적 모방"이라 부르는, 그리고 개인들의 상호 인정 속에서만이 아니라 개인적 정념들의 불안정한 집합체로서의 "다중"의 형성에서도 작용하는 상상적인 동일시/정체화 과정에 의해서도 구성된다. 사람들은 비록 "동일한 본성"을 지니고 있긴 하지만 "동류"는 아닌 것이다! 사람들은 동류로 생성된다. 그리고 동일시/정체화를 촉발하는 것은 "외부 원인", 곧 정서적 대상으로서의 타자의 이미지다. 그러나 이 이미지는 지극히 양가적이다. 곧 이것은 매력적이면서 혐오스럽고, 안심시키면서도 위협한다. -130쪽

우리가 명령의 주체를 이런 의미에서 자유롭다고 상상하게 되면, 우리는 우리의 복종에서 생겨나는 선과 악에 대한 책임을 그에게만 돌리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타자의 자유에 대한 상상은 [다른] 인간들에 대한 복종의 양가적인 효과를 배가시킨다. 그리고 이는 또한 왜 갖아 안정된 국가는 모든 시민이 통치자들을 "전능한 자들"로 생각하지 않고, (제도의 형태 자체 및 특히 제도의 기능 때문에) 그들의 결정이 실제로 일반적 필연성에 따라 규정된다고 믿을 만한 충분한 이유를 지니고 있는 국가인지 설명해 준다-137쪽

만약 우리가 신을 필연적인 것으로, 곧 비인격적인 자연 전체로 인식한다면, 신의 "분노"에 대한 모든 공포는 사라질 것이다. 우리가 신에 대해 지니는 사랑은 <윤리학> 5부가 "신의 지적 사랑"이라 부르는 것, 곧 사실상 인식이자 인식의 욕망인 것이 된다.(5부 정리 20, 22~23) 이렇게 되면 우리는 신을 명령의 주체로 지각하지 않게 된다. 그리고 그에 상응하여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허구적인 상상에 따라 자유로운 주체들이나 자신들의 창조주에 복종하고 불복종하는 피조물들로 생각하지 않고, 우리에게 가장 유용한, 따라서 가장 필수적인 자연적 존재들로 사랑할 수 있게 된다. 역설적이게도 바로 이것이 우리와 다른 사람들을 정념에 대한 의존으로부터 최대한 해방시켜 준다. 스피노자가 우정이라고 부르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4부 정리 70~73)

[1]신을 필연적인 존재로 인식하고, [2] 상호 유용성 때문에 사람들을 사랑하고 우정을 추구하라는 이 두 가지 관념은 직접적인 윤리적 함의를 지닌다...이러한 관계는, 사랑과 이성이 공포와 미신을 지배하게 됨으로써 복종이 자신의 효과들 속으로 경향적으로 소멸하는 관계다
-138쪽

각자는 다른 사람들의 역량을 활용하면서 자신의 역량을 최대한 발전시키기 시작하며, 따라서 객관적인 연대를 생산하기 시작한다. 어떤 개인도 다른 개인들과 엄밀하게 "유사하지"는 않으며 각자는 자신의 고유한 "기질"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다중은 교환들(재화의 교환은 그 일면에 불과한, 넓은 의미의 교환)의 동의어, 그리고 환원 불가능한 독특성들 사이의 자유로운 교통의 동의어가 된다...이는 사실은 자신들의 고유한 집합적 "기질"을 변화시키기 위한 개인들의 (미리 지정될 수 없는 목적 없는) 노력과 일치한다. 여기서 만약 우리가 정치체의 "보존"이라는 스피노자의 통념을 한 가지 의미, 곧 보수적인 의미(!)로 해석한다면 이는 명백한 오류다.....국가와 종교, 도덕이 제도화하는 복종 그 자체(및 그것에 상응하는 "법"에 대한 표상과 함께)는 불변의 기정사실이 아니라, 진행 중인 이행의 축이다. 좀더 정확히(왜냐하면 어떠한 진보도 보증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말하면, 이것은 교통 양식 자체의 변혁을 결정적인 계기로 삼고 있는 어떤 실천의 쟁점-어떤 투쟁의 쟁점이라고 할 수도 있을까?-이다....사실 가장 효과적인 교통 형태는 합리적 인식에 따라 실현되는 형태다. 정념들 자체는 나쁜 것이지만(슬픔의 원천인 명예욕, 야심, 굴종) 정서들을 서로 투쟁시키고 대중을 규율하기 위해서는 정념들에 의존해야 하는데, 왜냐하면 개별적 이성 자체로는 너무 취약하기 때문이다.(<윤리학> 4부 정리 55, 58) 그러나 인식은 교통의 지속적인 완전화[개선] 과정이다. 그것은 모든 사람의 역량을 증대시킨다. -142쪽

곧 만약 어떤 사람도 결코 혼자서 사고하지 않는다면, 실질적으로 인식한다는 것은-참된 관념의 보유자들이 어떤 개인들이든 간에-점점 덜 혼자서 사고한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게다가 모든 개인은 다른 관념들과 연결될 수 있는 적어도 "하나의 참된 관념"(이 관념이 자유와 행위 역량의 동일화의 맹아를 포함하고 있는 유용성에 대한 관념일 뿐이긴 하지만)을 가지고 있다.(<윤리학> 2부 정리 43, 47)... 사회적 삶이 교통 활동이기 때문에, 인식은 이중적으로, 곧 그 조건들 및 결과들에 의해 실천적이다. 만약 우리가 스피노자와 함께 교통은 무지와 지식, 미신과 이데올로기적 적대의 관계들-여기에는 인간 욕망이 투여되어 있다-에 따라 구조화되며, 이 관계들은 신체들의 활동 자체를 표현함을 인정한다면(그리고 우리가 그것을 인정하는 한에서), 우리는 또한 스피노자와 함께 인식은 하나의 실천이며, 인식(철학)을 위한 투쟁은 하나의 정치적 실천임을 인정해야 한다....이로써 우리는 왜 스피노자식 민주주의의 본질적 측면은 처음부터 교통의 자유인지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우리는 또한 "정치적 신체"[정치체]이론은 왜 단순한 권력의 물리학도 아니고, 대중들의 복종의 심리학도, 법질서를 형식화하기 위한 수단도 아니며, 가능한 최대 다수가 가능한 최대한을 인식하기(<윤리학> 5부 정리 5~10)을 구호로 내건 집합적 해방의 전략에 대한 탐구인지 이해할 수 있게 된다-14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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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뮤지션 2007-05-07 2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곧 만약 어떤 사람도 결코 혼자서 사고하지 않는다면, 실질적으로 인식한다는 것은-참된 관념의 보유자들이 어떤 개인들이든 간에-점점 덜 혼자서 사고한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 그대도 이 부분을 읽으면서 무릎을 탁 쳤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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