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 먼저 모더니티에 대한 전형적인 보편주의는 계몽주의에 뿌리를 둔 맑스주의, 베버 등으로 대표된다. 이들은 도구적 이성과 과학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있는 경우에 속한다. 이데올로기 개념은 봉건주의 및 전통 귀족주의에 대한 초기 부르주아 투쟁과 관련해서 태어났다. 형이상학, 종교, 미신 등은 이데올로기적 형태라고 공격당했으며, 계몽주의 철학자들은 이성에 대한 반테제로서 이데올로기와 투쟁한다. 즉 이성의 담지자는 진보라는 것이다. 가령 맑스에게서 이데올로기는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을 은폐함으로써 자본주의 사회 재생산에 기여하는 왜곡된 의식이다. 맑스에게 이데올로기 비판의 단초를 제공한 것은 종교이다. 종교는 하나의 전도inversion이다. 인간 정신이 만들어낸 피조물은 신이 되고, 신의 관념을 만들어낸 인간 존재는 피조물이 되기 때문이다. 맑스의 헤겔 비판에도 전도라는 동일한 메커니즘이 관여되며, 자본주의 생산양식에 대한 분석에서도 생산의 내적 관계들의 영역과 현상으로서 시장의 영역을 구별한다. 세계에 대한 전도된 의식은 억압과 모순을 은폐하고 재생산한다. 따라서 생산 과정과 잉여가치의 착취는 자유, 평등, 공정한 임금 등의 이데올로기적 표현들의 근원지인 시장의 기능에 의해 은폐된다.(32)

그런데 역사와 이론은 어떻게 연관을 맺는가? 가령 헤겔이 프랑스혁명을 관념화시킨 입장이라면 낭만적 역사주의의 반동, 비합리주의는 프랑스혁명에 대한 반발로서 나타난 것이다. 루카치는 비합리주의가 주요한 사회 위기들과 관계있는 국제적 현상이라는 테제를 유지했다(이성의 파괴). 라라인은 도구적 이성이 근대에 보급되었으며, 발전에 대한 보편주의적 주장에 대한 비합리적 반동이 심각한 국제적인 자본주의 위기의 순간에 자본주의를 유지하기 위한 이데올로기의 역할을 했다고 본다.(39~40) 비합리주의는 위기 자체를 모더니티와 이성 일반에 대한 비난으로 대체해버리며, 자본주의의 보다 특수한 모순을 은폐하는 원인이 된다. 또한 이들은 차이와 불연속성에 대한 강조 속에서 타자 속의 인간다움의 요소를 불분명하게 만들고, 자신의 입장에 대한 정당화를 거부하는 형태로 나타난다.

라라인은 인종주의를 예로 들어, 세이, 맬서스, 제임스 밀, 리카도 등의 식민주의와 헤겔, 맑스, 엥겔스 등 이른바 보편주의자들이 라틴아메리카나 아시아에 대해 갖고 있던 유럽중심주의적 편견을 분석한다. 반면 에드워드 사이드가 지적한 바와 같이 흄, 로크의 경험주의와 인종주의 간의 밀접한 연관도 흥미롭다(오리엔탈리즘). 주관적 이성에 대한 강조는 인종주의와 노예제를 정당화할 수 있으며, 보편적인 인권에 대한 구성을 무효화시킬 수 있다. 이처럼 도구적 이성에 대한 공격은 역사주의적이고 상대주의적인 관점, 각 문화의 차이와 특수성을 강조하는 관점과 밀접하게 관련한다. 역사주의의 차이에 대한 지나친 강조는 역설적으로 타자를 위협적인 것으로 구성할 수 있는데, 이는 게르만 문화를 옹호한 헤르더에게서 전형적으로 드러난다. 셸링의 철학은 프랑스혁명에 대한 반동으로 나타난 비합리주의 중 하나로서, 앎이 근본적으로 이성적 개념이 아닌 지적 직관, 특히 예술을 통해 획득된다고 보는데, 그 역시도 동일한 인종주의에 빠지고 만다.

따라서 요지는 총체적 동일성이나 총체적 차이 모두 동등한 타자의 구성을 결코 보장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합리주의 이론이 자민족중심주의, 총체주의, 보편주의, 초역사주의의 위험이 있다면, 역사주의 이론은 인종적 특수주의, 본질주의, 상대주의, 비합리주의의 위험을 갖는다(72).


2장 : 비합리주의는 이성에 대한 부르주아의 낙관적인 믿음과 진보 및 해방을 믿는 새로운 사회주의적 세계관에 대한 대응이었다. 이는 의지의 우월성을 강조한 쇼펜하우어 철학, 힘에의 의지를 강조한 니체의 철학, 파레토의 사회학 등에서 나타난다. 니체는 의식, 이성, 과학, 진리에 대한 폭넓은 비판을 전개한다. 이성은 힘에의 의지의 하인일 뿐이며, 니체의 관점주의는 이후 만하임의 지식사회학으로 전해진다. 의식은 오류와 기만의 원천이며, 진리는 반박될 수 없는 오류이다(즐거운 지식 11, 265절). 현대 과학은 금욕적 이상과 필연적 동맹을 맺으며, 니체에게 예술은 삶을 가능하게 하는 위대한 수단이다.(권력에의 의지 853절) 물론 니체는 이데올로기라는 용어를 매우 드물게 사용하지만(위의 책 351절), 니체의 이데올로기론은 주인의 도덕과 노예의 도덕의 비교에서 잘 드러나는데, 노예도덕에서 적은 악으로, 노예 자신의 허약성은 덕으로, 지배 본능은 악으로 위조된다. 노예의 상상적 복수, 양심의 가책 등은 니체가 이데올로기를 극복해야 할 것으로 주장하게 만드는 것이지만,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 노예도덕이 강자의 승리를 지키는데 도움을 주는 한에서 또 이데올로기를 승인하는 것으로 본다. 즉 니체는 이데올로기가 지배자를 속이는 한에서 이데올로기에 비판적이며, 이데올로기가 피지배자를 속일 때는 그것을 인정한다(99). 라라인은 모든 철학이 오류인 것은 아니며, 니체는 오직 실용주의와 총체적 상대주의로 나갈뿐이라고 주장한다. 그 귀족적인 이데올로기 이론은 자기 논박적일 뿐이라는 것이다. 특히 주인 도덕 등 니체가 옹호하는 것이 생물학적 요소(102)에 의해 지지되고 있는 귀족적 관념이며, 노예, 병약자, 이방인 등은 금발의 야수를 위한 먹이일 뿐이라고 본다.(도덕의 계보 1부 12절) 이러한 니체의 이성 비판은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에게 또한 영향을 미치며, 이후 하버마스는 기술적 합리성을 지나치게 이데올로기와 지배로 환원하려는 이들의 기획을 비판하며, 모더니티의 합리적 내용을 정당하게 평가하지 않았다고 비판한다.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는 해석과 동화의 복잡한 과정을 무시하고, 문화 산업의 권력에 대한 과도평가의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125).


3장 : 구조주의는 역사주의, 인간주의적 맑스주의, 비판 이론에 대한 강력한 비판으로 나타났다. 알튀세르는 바슐라르와 스피노자의 입장, 진리는 자신의 척도라는 입장을 수용하면서, 과학의 타당성은 입증될 필요가 없고, 단지 과학의 타당성을 인정한다. 이성의 우월성을 정당화하기 위해 이성의 사용을 거부하는 것은 알튀세르주의자와 포스트모더니스트 사이의 접점 중 하나이다(129). 알튀세르는 생산관계의 재생산 문제를 제기하면서, 이것이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에 의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이데올로기는 개인들을 호명하고, 주체들이 자신의 존재 조건을 상상의 형태로 재현하도록 한다. 과학은 이데올로기와 대립하는 것이며(맑스를 위하여), 노동계급은 부르주아 이데올로기로부터 자신을 해방시킬 수 없고, 과학이라는 외적인 도움을 필요로 하게 된다. 알튀세르는 여기서 레닌주의와 부정적 이데올로기 개념을 조화시키는데, 여기서 중요한 이율배반이 발견된다. 첫째로 이데올로기를 사회를 포괄하는(comprehensive, 136쪽의 역자는 이를 ‘이해하는’으로 옮겼으나 부적절해 보인다) 심급으로 보는 동시에 과학의 적대자로 보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가? 둘째로 이데올로기에 대한 비판은 어떻게 가능하며, 과학은 어디에서 벗어나는가? 그들은 어떻게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가? 알튀세르는 곤란한 선택에 직면하게 되는데, 사회를 과학을 소유한 자들과 그렇지 못한 자들로 나누어야 하거나, 지배 이데올로기가 필연적으로 지배한다는 이론으로 파악되어야 하는 것이다(136~7). 1976년 강력한 비판 이후 그는 자기 비판을 시도하는 것으로 보인다(자기 비판의 에세이). 호명 개념은 유지되지만 이제 프롤레타리아 이데올로기, 개인을 체제에 대항하는 투쟁적 주체로 호명하는 이데올로기가 가능하다. 과학과 이데올로기 간의 대립은 사라지지만 알튀세르는 결국 레닌주의의 울타리로 돌아오며, 노동자의 자생적 의식과 과학 사이의 분리를 결합시키는 유기적 지식인를 논함으로써 그람시를 인용한다. 그러나 이러한 방향 전환에도 불구하고, 알튀세르의 이론에서는 이데올로기가 주체를 외부와 대면하게 하는 담론으로 이해되며, 결국 주체는 보조자일 뿐이게 된다(140). 그에게 역사는 주체없는 과정이며, 이러한 주체에 대한 공격과 담론의 우선성에 대한 강조는 이후 포스트구조주의의 기본 전제가 된다. 사회적 총체의 통일성에 대한 알튀세르의 이해는 동일성이 아닌 차이의 논리에 토대를 두고 있다는 것이다. 알튀세르의 이데올로기론은 하나의 복합적 시도로서, 모호성이나 이율배반은 결국 그 자신의 이론의 해체를 불러오게 된다. 알튀세르의 광범위한 영향력, 특히 영미권에서의 수용은 주로 그의 초기 접근에 국한되지만, 하여튼 그의 광범위한 영향력은 놀라운 지적인 힘을 증언해준다. 고들리에, 테레, 듀프레, 레이, 풀란차스, 라클라우, 무페, 홀, 마슈레, 이글턴, 섬너, 메팜, 힌데스, 허스트, 크리스테바, 보드리, 솔레르스, 코와드, 엘레스, 아들람, 페쇠 등등. 이들 수용은 1. 부정적 이데올로기 개념과 계급 중심성 같은 맑스주의의 기본 전제를 고수하는 경우(풀란차스, 고들리에, 메팜, 페쇠), 2. 그람시주의에 기원을 둔 중간적 경향과 호명으로서 이데올로기에 초점을 맞추는 경우(라클라우, 무페, 홀), 3. 담론을 모든 사회적, 정치적 삶의 구성원리로 확립하고 맑스주의 자체를 해체하려는 경우(코워드, 엘리스, 아드람, 허스트, 힌데스) 등으로 구분된다.


4장 : 포스트구조주의와 포스트모너니즘의 저자들은 알튀세르가 보여준 반결정론적이고 반환원론적인 전망 및 정통 맑스주의에 대한 비판에 깊은 영향을 받았다. 이들은 담론 중심성, 진리에 대한 상대주의적 불신, 주체의 담론적 구성 등의 원리를 공유한다. 라라인은 포스트구조주의를 푸코, 힌데스, 허스트, 라클라우, 무페 등에게, 포스트모더니즘을 리오타르와 보드리야르 등에게 사용한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이데올로기 비판을 이데올로기 종말로 대체해버린다. 푸코는 구조주의와 맑스주의의 총체화하는 합리성을 비판하면서 불연속과 분산, 차이를 강조한다. 이데올로기/과학, 지식/권력의 대립항을 넘어서는 권력이라는 문제틀이 제시되는 것이다. 권력은 곳곳에 편재하고 있으며, 이는 획득되거나 소유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체 내부로부터 행사된다. 권력의 모세관적인 수준, 권력의 미시 관계들이라는 개념은 이러한 사태를 포착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데올로기 개념에 있어서 푸코는, 니체의 영향에 의해 권력과 지식의 불가분성을 주장하면서, 지식, 과학, 진리 같은 개념들을 비판한다. 그는 과학과 이데올로기의 대립을 거부하면서 담론의 인식론적 타당성과 관련된 문제들을 과소평가한다(198). 그는 또한 이데올로기 개념을 비판하면서, 권력이 의식에 미치는 영향보다는 신체에 미치는 효과에 대해 탐구해야 된다고 본다. 그러나 푸코 자신이 이데올로기를 비판하는 반면 그 자신의 논의가 이미 일종의 이데올로기 비판을 시사하고 있다는 점은 문제적이다(203). 허스트와 힌데스의 경우도 알튀세르에서 출발했으나, 인식론 전반에 대한 공격에 착수한다. 특권화된 개념은 없으며, 결정이라는 개념도 부당한 것으로 거부되고, 정치적 실천에서는 어떠한 지식도 없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인식론 비판은 상대주의와 독단주의로 빠지는 것으로 보인다. 담론들은 서로 공약불가능하게 되며, 이들은 어떠한 합리적 토론도 불가능해진다. 결국 허스트와 힌데스가 담론의 특권성을 부정할 때, 그들의 주장 역시 가능할 수 없는 자기 모순의 덫에 빠지게 된다(210). 라클라우는 최근 무페와 공동 작업하게 되면서, 이질성과 차이의 논리, 다원성과 비결정성을 그 슬로건으로 삼는다. 맑스주의는 과정과 주체라는 두 관점에서 볼 때 본질주의적이고 환원주의적이며, 이와는 달리 급진적이고 다양한 사회운동은 민주주의적 혁명의 한 계기를 구성한다. 그러나 사회주의와 급진 민주주의가 등치될 수는 없으며, 이들은 사회와 역사를 합리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가능성마저 포기하려 한다. 포스트모더니즘을 대표하는 리오타르와 보드리야르 역시 마찬가지로 이데올로기 비판을 거부하지만, 뒷문으로는 다시 이데올로기 비판을 도입한다(253). 이러한 이데올로기 비판은 하버마스의 말처럼 총체화된 것이고 자기 소모적인 것, 자기 자신의 토대를 공격하는 것이다(현대성의 철학적 담론). 포스트 모더니즘은 역설적이게도 신자유주의와 아주 잘 공존하고 있다.


5장 : 하버마스에게서는 1981년까지 이데올로기 개념이 보존되는데, 그러나 이후 의사소통 행위이론을 발표하면서, 이성의 개념화 및 의식철학의 대체에서 의사소통을 끌어들이고,이데올로기 개념은 포기된다. 먼저 하버마스의 초기 입장을 보면, 그는 우선 모더니티에 의해 야기된 도구적 이성에 대한 비판을 아도르노, 호르크하이머 등으로부터 수용하고, 또한 마르쿠제의 견해에 나타나는 과학기술의 새로운 이데올로기적 역할을 수용한다. 그는 오늘날의 사회에서 이데올로기는 19세기 자유주의의 시장경제 및 단순 교환원리에 더 이상 기반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실제적인 정치 쟁점들을 탈정치화하는 일종의 기술관료적 의식은 권력의 정당화 문제를 마치 전문가에게만 맡겨진 기술적 결정의 문제인 양 되어버리고 만 것이다. 이러한 이데올로기는 기술과 과학에서 유래하며, 기술과 과학은 융합되고 점점 조작되고 있다(이성적 사회를 향하여). 그러나 다른 한편 하버마스는 마르쿠제가 기술적 합리성의 이데올로기적 본성을 진보적 생산력과 적절히 조화시킬 수 없었다고 주장한다. 과학은 도구적 관심들과의 연관 속에서 이데올로기로 기능한다. 물론 하버마스는 과학과 기술을 정치적으로 중립적인 것으로 보고 있지만, 분명한 것은 도구적 관심들이 후기 자본주의에서 지배적인 것이 되었으며, 실천적이고 의사소통적인 관심들의 영역을 감소시켰다는 사실이다. 하버마스에 따르면, 이데올로기의 문제는 인식과 관심 간의 관계에서 발생한다. 그는 관심을 세 가지 유형으로 구분하는데, 경험과학과 상응하는 기술적 혹은 도구적 유형, 역사 과학에 상응하는 실천적 또는 의사소통적 유형, 비판이론과 관련된 해방의 유형이 그것이다. 그는 맑스주의가 도구적 관심과 소통적 관심 사이의 구별을 소홀히 했으며, 역사 진화의 설명에서 소통적 관심을 도구적 관심으로 환원시켰다고 비판한다. 비판이론의 부정적 이성 개념이나 맑스주의의 긍정적 이성 개념 모두 전통적인 주체철학에서 유래하는 환원주의의 형태이다. 이는 주체가 개인으로서 객관적 세계와 관계맺는 것이 아니라 항상 집단적으로 관계맺는다는 사실을 간과한다. 그는 보편적 화용론의 관점(263쪽에서는 pragmatics를 실용학으로 번역했다)에서 의사소통을 분석하고자 하며, 담론의 보편타당성의 기초를 재구성하려고 시도한다. 모든 담화 행위에는 합의에 이르고자 하는 노력이 은연 중에 깔려 있다는 것이다. 모든 담화 행위는 이해 가능한 타당성 요구(264쪽에는 이행이라고 오기되어있다)에 대한 상호 간의 승인을 포함하기에, 비강제적인 합의의 열망을 자신의 목적으로 갖는다. 이렇게 실제 담화에서 우리는 이상적 담화 상황을 불가피하게 가정하게 된다. 그리고 하버마스는 이처럼 폭력, 검열, 억압 때문에 진정한 합의를 도출할 수 없는 상황을 이데올로기라고 부른다. 이데올로기는 체계적으로 왜곡된 의사소통으로 파악되는 것이다. 이 때 이데올로기의 문제는 합리화에 관한 프로이트의 관점과 유사하다. 이데올로기의 원형은 신경증적 불안이며, 이데올로기 비판에 관한 하버마스의 모델은 프로이트 정신분석적인 것이다. 비판 이론가에게는 자기 반성을 통해 사이비 의사소통의 원인을 폭로하기 위한 사회적 수준이 필요하며, 정신분석가와 마찬가지로 반사실적인 이상적 상황과 왜곡되지 않은 의사소통을 요구하기 때문이다(267). 또한 이데올로기 비판의 규범적 토대는 바로 언어구조 속에 있다. 이러한 점에서 루카치와 하버마스의 유사성은 분명한데, 인간이 적절한 지식을 가지고 가설적으로 존재하는 구조와 실제 존재하는 구조들에 대해 비교할 수 있다면, 루카치는 계급의식이 그 기준을 제공하고 하버마스는 이상적 담화 상황이 그것을 담당한다.

문제는 이때 이데올로기가 추상적이고 비역사적으로 귀속된 당위에서 비판된다는 점이다. 해방의 가능성을 드러내주는 언어적 구조라는 규제적 모델은 너무 추상적이어서 구체적인 판단의 기준을 제공할 수 없다. 맑스의 비판이 역사적 분석에서 도출된 구체적인 것이라면, 하버마스의 비판은 추상적이고 비역사적이며, 보편적이고 불변하는 구조로부터 도출된다(271). 이데올로기 비판과 정신분석 비판 사이의 유사성 역시, 신경증이라는 개인적 수준으로부터 계급권력과 계급지배라는 사회적 수준으로의 이행이 갖는 어려움 때문에 곤란한 것으로 드러난다. 개인의 정신분석적 치료를 정치적 행위를 위한 모델로 가정하는 것은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장 큰 문제점은 하버마스가 이데올로기의 토대를 이루는 물질적 이해관계와 계급적대에 대해 어떤 명백한 언급도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273).

하버마스는 의사소통 행위이론 이후로 이데올로기 개념을 포기한다. 이데올로기는 19세기의 총체화하는 체계들에 국한되어야 하며, 발전된 현대 사회에서는 이데올로기가 기능적 등가물에 의해 대체되었다는 것이다. 이 기능적 등가물은 총체화하는 의식 형태의 형성을 방해하고 일상의식을 파편화시킨다. 하버마스는 기존의 이성 비판이 이성을 도구적 이성으로만 일면적으로 파악해왔다고 본다. 니체, 아도르노, 호르크하이머,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의 경우처럼 말이다. 그의 가장 중요한 기여는 도구적 이성을 넘어선 의사소통적 합리성에 관한 생각이다. 합목적적 행위, 성공 지향적 행위, 도구적 행위와는 달리 의사소통적 행위는 이해에 도달하려는 행위이다. 물론 이 구분은 의심스러운데, 이해에 이르고자 하는 노력과 이기적 계산이 꼭 대립된다고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구분은 정도의 문제이다(286). 그리고 의사소통적 합리성은 이해 가능성, 명제적 진리, 진실성 등의 타당성 요구를 포함하는데, 과연 그러한 상호주관적 합의가 진리의 척도가 될 수 있는가? 벨머는 하버마스가 이성의 운명이 합리성의 근본적 척도가 존재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믿는 실수를 범하고 있다고 본다. 이성은 합리성과 진리의 근본적 척도 없이도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2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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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이] 2009-08-21 0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르헤 라라인 책이 나왔었네요. 전혀 몰랐는데 좋은정보 ㄳ

바라 2009-08-21 02:07   좋아요 0 | URL
뭘요ㅎ 어서 여유가 나서 세미나 이런 것도 좀 하고 그랬으면 좋겠어요ㅠ
 

김석수, <칸트와 아렌트> 요약과 재구성, 추기. 


 


 


아렌트에게 철학은 기본적으로 정치철학이며, 우리는 사적 영역인 가계oikos로부터 벗어나 공적 영역인 폴리스에서 의견을 주고받으며 살아가야 하는 정치적 동물이다(토마스 아퀴나스에 의해 번역된 바 사회적 동물이 아니라). 그녀는 이데아를 향한 관조적 삶을 추구한 플라톤을 비판하며, 정치 속의 철학을 실현하기 위해 사유하고 판단하는 철학으로부터 등을 돌린 마르크스도 비판한다. 아렌트는 또한 정치가 예술과 관련되어야 한다고 본다. 인간의 지상에서의 삶의 조건이 복수성과 현상성을 기반으로 한다면, 각자의 특수성을 인정하면서도 함께 출연할 공연의 장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 공연의 장은 진리episteme를 강요하는 곳이 아니라, 의견doxa를 통해 다수의 인간들이 함께하는 장이어야 한다. 인간은 행위와 발언을 통해 자신을 드러내고 자신의 정체를 현시함으로써 자신의 세계에 출현한다. 그녀는 고대의 아리스토텔레스의 실천지phronesis와 칸트의 반성적 판단력을 종합하는 한편, 공동체감에 입각한 보편성을 추구한다. 전통 철학에서 철학과 죽음은 연계되지만, 아렌트는 탄생성natality를 강조한다. 아렌트의 박사 논문이었던 아우구스티누스의 사랑개념Der Liebebegriff bei Augustin 역시 현상의 세계를 고통과 눈물의 골짜기로 규정하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입장을 비판한다. 현상의 부정은 세계소외를 창출하고, 이는 무세계를 초래한다. 이 세상에서 탄생하여 행위하고 사유하는 인간, 아렌트는 현상성appearing과 복수성plurality를 인간의 삶의 조건으로 자리매김한다. 모든 존재는 드러냄, 현상에 의하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간주된다. 하이데거의 연인으로도 유명했던 아렌트는 불멸의 피안, 목적의 나라, 예지계, 영원한 존재 같은 개념을 기각한다. 사람은 오직 사람들 사이에 존재하며, 그렇지 않으면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근대 이후 생명의 유지 활동에 참여하는 노동의 압도적인 우위와 마르크스에게서도 여전했던 생산 중심의 패러다임은 세계소외를 야기해왔다. 활동적 삶이라는 용어는 근대 초기까지 불안정이라는 부정적 함의를 늘 지녀왔지만, 아렌트는 독자성을 가진 다양한 인간들men을 획일적인 인간이나 인류로 귀속시키려는 제작poiesis의 정치를 거부하고, 복수성과 현상성에 기반하여 상호주관성을 인정하는 실천praxis의 정치학을 구축하고자 한다. 활동적 삶vita activa은 노동, 작업, 행위로 구분되며, 관조적 삶vita contemplativa은 사유, 의지, 판단으로 구분된다. 아렌트는 노동과 작업은 행위(act는 어원적으로 archein, prattein, agere, agerere에서 유래하며, 이들은 모두 함께함이라는 뜻을 지닌다)로 수렴되어야 하며, 사유와 의지는 판단으로 수렴되어야 함을 강조하며, 행위와 판단의 조화를 주장한다. 연대기적으로 볼 때, 1950년대에 아렌트는 전자의 삶을 강조했다면, 1970년대에는 후자의 삶을 강조했다.

아렌트의 독특함은 하버마스와 포스트구조주의의 사이에 위치하는 것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아렌트가 차지하는 이러한 이론적 지형은 곧 니체와 칸트 사이에 위치한 독특한 이론적 입지점으로 소급한다. 가령 인간은 공간적으로는 인간들 사이에 존재하며, 시간적으로는 과거와 미래의 틈새에 존재한다. 이 이야기로서의 판단이 전개되는 틈새는 진리가 강제되는 장이 아니라 서로 자기를 드러내는 의견의 장이다. 또한 현상, 특수성, 복수성을 중시하고, 진리를 비판하고 가상과 외관, 경연agon을 중시한다는 점은 분명히 아렌트가 니체와 접근하는 부분이다. 니체가 생성의 무죄Unschuld des Werdens를 주장한 것과 마찬가지로 또한 공적 영역인 현상 세계에서 자신을 드러냄은 긍정된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아렌트는 니체가 행위를 힘에의 의지의 표현으로 환원함으로써 칸트의 공통감을 약화시키고 니체적인 미학은 심의적deliberative인 관점을 배제시킬 수 있다는 점을 비판한다. 그렇다면 칸트의 경우는 어떠한가?

칸트의 판단력은 한 주체의 이론 이성과 실천 이성을 매개하기위해, 법칙이 자연에 적용되는 길을 모색하는 것이라고 일컬어진다. 칸트는 이미 특수적인 것을 보편적인 법칙 아래 포섭하는 규정적 판단력과, 특수적인 것들 속에서 보편적인 것을 발견하는 능력으로서 반성적 판단력을 구분한 바 있다. 반성적 판단력은 자연의 합목적성에 관계하며, 특히 대상의 형식과 인식 능력의 일치로 느껴지는 주관적 합목적성에 관계한다. 이는 이론적, 실천적 관심을 벗어나 느낌의 보편타당성을 추구하는 미감적 판단력, 확장된 사유방식, 공통감에 근거하는 것이다. 칸트에게 합목적성은 이미 목적 없는 합목적성인데, 칸트에게 판단력은 또한 사회적 차원의 도덕적 관심으로 향해 있는 것이다. 인간의 아름다움은 홀로 있을 때는 아무 의미가 없으며, 이성과 상상력 간의 부조화가 중시되는 숭고미에서 이러한 도덕적 차원은 더욱 잘 드러난다. 숭고는 감성적 형식을 넘어서 이성의 이념들에 관계하고, 예지적 존재들, 영혼, 신 등으로 향하게 되기 때문에 숭고 감정은 이미 도덕으로 향한다. 칸트의 미적 판단력은 목적 판단력을 거쳐 예지계로 나아가는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칸트의 판단력은 사유와 존재를 등치시켜온 형이상학의 역사를 해체하고 근대적 합리성을 비판하는 철학적 사유들에 많은 자양분을 제공해왔다. 미감적 판단력, 숭고 등을 나름의 방식으로 전유한 리오타르, 데리다, 들뢰즈가 바로 그들이며, 아렌트 역시 칸트의 반성적 판단력을 적극적으로 수용한다. 특히 아렌트는 기존의 관조적 삶과 활동적 삶 사이의 부조리를 평가하는 과정에서 판단 개념에 집중한다. 칸트의 취미 판단은 인간의 현상성과 복수성을 잘 드러낼 수 있는 판단의 형태로 분석되는데, 이 판단력은 특수성과 보편성을 매개하며, 아렌트는 이러한 판단력을 통해 서로 의견을 말하면서(아렌트는 사유가 동반되는 말하기인 speaking과 그냥 내뱉는 말하기 talking을 구분한다) 행위하는 인간들 사이의 공동체감을 마련하고자 한다. 행위act가 판단을 동반하지 않은 채로 성급하게 이루어지면 독단적인 behavior로 바뀔 수 있다. 이러한 독선을 막기 위해 아렌트는 칸트의 무관심성, 목적 없는 합목적성 등의 개념을 적극 수용하며, 아집을 벗어난 심성의 확장, ‘넓혀가는 마음’을 수용한다. 판단이 없는 사회를 바보스러운 사회라고 보는 아렌트는 타자와 일정한 거리를 두면서도 가까이 갈 수 있는 자유로운 상상력을 중시한다. 판단은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행해지는 것으로, 칸트가 규정한 바, 인간이라는 호칭을 요구하는 자에게 언제나 기대할 수 있는 최소한의 것으로서의 공통감과 관계한다. 판단을 통해 인간은 타인들과 소통하고, 호소하고 간청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의견 나눔을 거쳐 동료의 입장으로 자신의 생각을 넓혀감으로써 정서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공통감, 자신의 독특한 생각을 모두에게 대표성을 지닌 범례적 타당성은 아렌트에게 매우 중요한 것이 된다. 물론 칸트의 경우 미적 판단력은 목적 판단력을 향해 있고, 취미는 숭고를 거쳐 도덕으로 향한다는 점, 미감적 보편성이 선험적인 공통 감각에 기반을 둔다는 점, 원초적 계약이라는 이념에 근거한다는 점에서 아렌트에 의해 비판된다. 그녀는 칸트의 선험성을 아리스토텔레스적인 실천지를 통해 실제적인 대화 속에 터전잡아야 한다고 보며, 칸트의 선험적 공통 감각을 공동체적 공통 감각community sense으로 전환시키고자 한다. 이는 선험성과 후험성을 동시에 지니며, 이러한 판단은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상황 속에서 다른 사람과의 의견 교류를 통해 교정된다는 점에서 칸트적 판단과 구별된다.

앞서 니체와 아렌트의 차이, 칸트와 아렌트의 차이만큼이나, 하버마스와 아렌트의 차이도 특기할 만하다. 공론장에서의 자유로운 토론과 의사 형성, 상호주관성을 중시한다는 점에서 하버마스와 아렌트는 가까워지지만, 아렌트의 경우 이는 의사소통적 합리성이 아닌 공통 감각에 근거를 두면서, 반드시 합의나 동의를 목표로 하지 않고 특수성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하버마스와 갈라진다. 또한 아렌트의 의견은, 인지적 명제나 과학적 타당성이 아닌 다른 사람의 동의와 간청, 호소를 통한 공감과 정서적 동의를 구하기 때문에, 그 현실적 실효에는 많은 의문이 제기된다. 가령 하버마스는 아렌트가 현실 공동체 안의 욕망 투쟁의 현장, 경제의 영역을 합리성 담론을 통해 탐구하지 못하고 순수하게 미적인 차원에서 접근하는 것은 문제라고 비판한다. 권력에는 아렌트와 하버마스가 공히 강조하는의사소통적인 영역 외에도 수단적 권력, 행정권력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또한 진리에 대한 지나친 부정의식은 자칫 비인지주의, 주관주의나 미학주의에 빠질 수 있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실제로 아렌트의 공론장은 콘서트 방식으로 진행되며, 그녀는 철학자가 아니라 역사가, 시인의 입장에서 이야기들에 집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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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철학 수고>> 中 <헤겔의 변증법과 철학 일반에 대한 비판> 요약 (pp. 182~217)


마르크스는 헤겔 변증법에 대한 비판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당시 독일의 슈트라우스나 브루노 바우어 등은 헤겔의 논리학에 완전히 사로잡혀 있다. 포이어바흐는 헤겔 변증법에 대해 최초로 “진지하고 비판적인 태도”를 지닌 유일한 인물이었다. 그의 업적은 1. 철학을 인간 본질 소외의 또 다른 형식이자 현존 방식으로 파악했다는 점 2. 인간의 사회적 관계를 이론의 근본 원리로 삼음으로써 진정한 유물론과 실재적 학문을 정초했다는 점 3. 부정의 부정에 대해 자기 자신에 근거하는 긍정적인 것을 대치시켰다는 점으로 요약된다.

포이어바흐의 설명에 따르면, 헤겔 변증법은 실체의 소외, 즉 절대적이고 고정된 추상, 통속적으로 표현하자면 종교와 신학에서 출발한다. 둘째로, 헤겔은 “무한자를 지양하고 현실적인 것, 감각적인 것, 실재적인 것, 유한한 것, 특수한 것을 정립”한다. 즉 철학은 종교와 신학의 지양이다. 셋째로, 헤겔은 긍정적인 것을 다시 지양해서 추상, 무한자를 회복하며, 이로써 종교와 신학을 회복한다.

마르크스는 헤겔이 부정의 부정을 파악함으로써, “역사의 운동에서 추상적이고 논리적이며 사변적인 표현을 찾아냈을 뿐이며, 따라서 이러한 역사는 아직, 하나의 전제된 주체로서 인간의 현실적 역사가 아니라 인간의 산출 행위, 인간의 발생사일 뿐”이라고 적는다. 마르크스는 무엇보다도 “헤겔 철학의 진정한 탄생지요 비밀”인 헤겔의 <정신현상학>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말한다. 또한 <엔치클로페디> 전체 역시 철학적 정신의 확대된 본질, 자기 대상화에 불과하다. 논리학은 정신의 화폐이며, 헤겔의 사유는 외화된, 자연과 현실적 인간을 도외시한 추상적 사유이다.

헤겔의 이중의 오류는 다음과 같다. 첫째로, 헤겔이 부, 국가권력 등을 인간적 본질에서 소외된 존재로 파악했을 때, 그것은 사상의 존재이다. 외화의 역사, 외화의 폐기 전체는 단지 추상적 사유, 논리적, 사변적 사유의 생산의 역사이다. 그러므로 낯선 대상들이 된 인간의 본질적 힘들을 획득하는 것은 의식 속에서, 순수 사유 속에서, 추상 속에서 일어나는 자기화일 따름이다. 헤겔에서 감각, 종교, 국가 권력 등은 정신적 존재로 나타나며, 정신만이 인간의 진정한 본질이고 정신의 진정한 형식은 논리적 사변적 정신이 된다. 따라서 “존재, 대상이 사상적 존재로서 대상이듯이, 주체는 항상 의식 또는 자기의식이며, 또는 오히려 대상은 추상적 의식과 다를 바 없는 것으로, 인간은 자기의식과 다를 바 없는 것으로 나타나고, 등장하는 소외의 다양한 형태들은 의식과 자기의식의 다양한 형태들일 뿐이다.”

물론 헤겔의 성취 역시 존재한다. 그의 <정신현상학>의 위대함은 인간의 자기산출을 하나의 과정으로 파악하고, 노동의 본질을 파악하고 있었다는 점에 있다. 헤겔은 근대 국민경제학자들의 입장에 서 있는데, 그는 노동을 인간의 본질, 자기를 확증하는 인간의 본질로 파악한다. 하지만 단지 노동의 긍정적인 측면만을 볼 뿐, 소외 등의 부정적인 측면을 보지는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노동은 인간의 외화 속에서 대자적으로 되는 것이지만, 헤겔이 인정하는 유일한 노동은 정신적, 추상적 노동이다.

하여튼 <정신현상학>의 마지막 장인 ‘절대지’의 핵심은 의식의 대상이 자기의식에 불과하다는 것, 또는 대상은 단지 대상화된 자기의식일 뿐이라는 것이다. 인간은 그저 비대상적인 유심론적 존재로 간주된다. 자기의식은 인간적 자연, 인간의 눈 등의 하나의 질이지 인간적 자연이 자기의식의 하나의 질은 아니다. 헤겔에서 인간 본질이나 인간은 자기의식으로 가눚되는 까닭에, 인간적 본질의 모든 소외는 그저 자기의식의 소외일 뿐이게 된다. 그리고 자기의 본질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 인간은 대상적 본질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 자기의식일 뿐이다. 의식이 대상을 극복하는 것은 다음과 같이 이루어진다. 의식에 대해 대상 자체는 소멸되어 가는 것으로 드러나며(대상이 자기에게 귀환), 자기의식의 외화가 物性을 정립하며(물성은 외화된 자기의식과 같다. 자기의식은 오로지 추상적인 물만을 정립할 뿐 결코 현실적인 물을 정립할 수 없다), 이러한 외화는 부정적인 의미뿐만 아니라 긍정적인 의미도 가지고, 즉자적으로뿐만 아니라 의식자체에 대해서도 긍정적 의미를 지닌다. 결국 의식은 외화와 대상성을 지양하고 자기에게 복귀한다는, 따라서 자신의 타자 존재 자체 안에서 자기 자신으로 머물러 있다는 계기도 있다.

그런데 의식이 존재하는 방식이 바로 知로서, 지는 의식의 유일한 대상적 행태이다. 헤겔은 의식이 대상을 의식 자체의 자기 외화라고 앎에 의해 정립한다고 본다. 의식은 외화와 대상성을 지양해서 자신에게 복귀하며, 그에 따라 자신의 타자 존재 자체 안에 자기 자신으로 머물러 있다는 계기가 들어있다. 이 같은 설명에 사변의 모든 환상이 집약되어 있다. 이것이 헤겔의 거짓 실증주의이며, 여기에 겉보기만의 비판주의의 뿌리가 있다. 사실 헤겔에서 부정과 보존, 긍정이 결합된 지양이 독특한 구실을 한다. 예컨대, 헤겔 법철학에서 지양된 사법은 도덕이고, 지양된 도덕은 가족이고, 지양된 가족은 시민사회이고, 지양된 시민사회는 국가이고, 지양된 국가는 세계사이다. 헤겔 논리학에서는 이것이 질, 양, 척도, 본질, 현상, 현실성, 개념, 객관성, 절대적 이념, 자연, 주관적 정신, 인륜적 객관정신, 예술, 종교, 절대지 등으로 전개된다. 결국 헤겔이 철학으로 지양시킨 것은 현실적 종교, 국가, 자연이 아니고 교의학, 법률학, 국가학, 자연과학에 불과하다.

헤겔의 변증법은 하나의 담당자, 하나의 주체를 가져야 하는데, 이 주체는 성과로서 비로소 생성된다. 자신을 절대적 자기의식으로 아는 주체는 신, 절대적 정신이다. 이런 까닭에 주어와 술어는 절대적으로 전도된 관계, 신비적인 주체-객체, 객체를 포괄하는 주체성, 하나의 과정으로서 절대적 주체가 된다. 변증법은 인간의 자기 산출 또는 자기 대상화 행위를 형식적이고 추상적으로 파악한다. 헤겔에서 소외된 대상, 인간의 소외된 본질적 현실은 의식일 뿐이고 소외의 사상일 뿐이며, 외화의 지양도 마찬가지로 내용없는 추상에 대한 추상적이고 내용 없는 지양, 부정의 부정일 뿐이다. 이때 내용으로 충만하고 살아있고 감각적이고 구체적인 자기 대상화 활동은 단순한 추상, 절대적 부정성으로 전락한다. 그러므로 논리학 전체는 추상적 자유가 그 자체로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 절대적 이념은 그 자체로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 자연이야말로 어떤 것이라는 것에 대한 증명이다. 추상적으로 파악되고 인간에게 분리되어 자체로 고정된 자연은 인간에게 아무 것도 아니다. 헤겔에서 자연은 이념의 타자 존재의 형식일 따름인데, 이는 추상적 사유가 본질이므로 이 사유에 외적인 것은 본질 상 외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자연의 이러한 외면성은 사유에 대한 자연의 대립, 자연의 결함으로 파악되며, 추상과 구별되는 자연은 결함있는 존재이다. 자연은 추상적 사유자를 위해 자신을 지양해야만 한다. 절대자는 정신이다.

그러나 물질론적 역사관을 가진 마르크스가 보기에 인간은 “견고하게 잘 다져진 대지에 서서 모든 자연적 힘들을 호흡하는, 현실적이고 육체적인 인간”이다. 자연주의만이 세계사의 행위를 개념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인간은 직접적으로 자연 존재이고, 자연적 힘, 생명력을 갖춘 활동적 자연 존재이다. 인간은 자연적, 육체적, 감각적, 대상적 존재로서 시달리고 제약되고 한계지어진 존재로서, 그의 충동의 대상들이 그의 밖에 독립된 대상으로 존재한다. 즉 “대상적, 자연적, 감각적이라는 것, 그리고 대상과 자연과 감각을 자기 바깥에 가진다는 것, 또한 자신이 제3자에 대해 대상과 자연과 감각이라는 것은 다 같은 것이다.” 자기 바깥에 자신의 자연을 가지고 있지 않은 존재는 결코 자연적 존재가 아니며, 가령 비대상적 존재는 비존재이다. 그런 존재는 유일한 존재, 그 바깥에 어떤 존재도 없는 고독한 존재이다. 내가 어떤 대상을 갖자마자 이 대상은 나를 대상으로 삼지만, 비대상적 존재는 비현실적, 비감각적, 추상의 존재이다. 이에 반해 대상적, 감각적 존재로서 인간은 시달리는 존재이며, 열정적 존재이다. 또한 인간은 한갓 자연 존재일 뿐만 아니라 인간적인 자연 존재이다. 즉 대자적으로 존재하는 존재, 유적 존재이다. 모든 자연적인 것과 마찬가지로 인간도 자신의 생성 행위, 역사를 갖지만, 인간에게 역사란 의식된 역사이며, 생서 행위로서 역사는 의식적으로 자신을 지양하는 생성 행위로서, 역사는 인간의 진정한 자연사이다. 신의 지양으로서 무신론은 이론적 인간주의의 생성이고, 사유재산의 지양으로서 공산주의는 실천적 인간주의이며, 양자 모두 종교와 사유재산의 지양을 통해 자기 자신과 매개된 인간주의가 된다. 무신론, 공산주의는 결코 도피나 추상이 아니며 현실적인 것으로서 인간 본질의 현실적 생성이자 현실적으로 인간에 대해서 생성된 실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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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rpe126 2011-10-23 19: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잘 보고 갑니다~!!

담탱 2017-10-15 08: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감사합니다!!
 

 


『사회계약론』2부 6장~12장 ‘법과 인민’ 요약




6장 법에 관하여

사회계약에 의해 정치체에 존재와 생명을 부여했다면, 입법législation은 이 조직에 활동과 의지를 부여한다. 정치체를 형성시키고 결합되게 하는 최초 행위는 그것을 보존하기 위한 것은 아무것도 규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모든 정의는 신으로부터 나오고, 신만이 원천이다. 하지만 우리는 지고한 신으로부터 정의를 받을 수만은 없기에 아마도 이성에서만 나오는 보편적인 정의가 있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 정의가 사람들 사이에서 인정되려면 상호적이어야 한다. 이 정의의 법은 상벌이 없으므로 인간들 사이에서는 효력을 발휘할 수 없기에 권리를 의무와 결합시키고 정의를 그 대상에 이르도록 하기 위해서 약속conventions과 법loix이 필요하다.

일반의지는 개별적인 대상을 상대로 하지 않는다. 개별적인 대상이 국가 안에 있다면 이러한 관계가 존속하는 한 전체는 더 이상 없으며 다만 크기가 다른 두 부분이 있을 뿐이다. 인민 전체가 인민 전체가 대상으로 법을 제정할 때 인민은 오직 자기 하나만을 고려한다. 이때 생기는 관계는 전체 대상과 전체 대상의 대비일 뿐, 전체가 분할되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법이 적용되는 대상도 법을 제정하는 의지와 마찬가지로 일반적이 된다. 바로 이와 같은 행위가 법이다. 또한 법의 대상이 항상 일반적이라는 것은 법은 인민을 한 조직체로 또 행위를 추상적인 것으로 간주할 뿐 결코 개인으로, 행위를 개별적인 것으로 고려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개인적 대상에 관한 모든 기능은 입법권에 속하지 않는다. 법이란 일반의지의 행동이므로 법을 제정하는 일이 누구의 권한인지, 군주가 법을 초월하는지, 법이 불공정한지, 우리가 어떻게 자유로우면서 법에 복종할 수 있는지를 물을 필요도 없다. 법은 우리 자신의 의지의 기록이다.

또한 법은 의지의 보편성과 대상의 보편성을 결합시키고 있다. 만약 주권자의 명령이라 해도 그것이 개별적 대상을 상대로 한 것이라면 이는 법이 아니라 행정명령이며 행정기관의 행위가 된다. 정부형태가 어떤 것이든 법에 의해 통치됨으로써 공공의 것이 우위에 서는 모든 국가는 공화국république(res publica)이라 불린다. 사실 법은 정확히 사회적 결합의 조건일 뿐이다. 따라서 법에 복종하는 인민이 법의 제정자가 되어야 마땅하다. 연합하여 결사하는 자들만이 그 구성체 조건을 결정할 권리를 가질 수 있다. 그런데 이 조건을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 무엇이 자신에게 유익한지, 무엇을 바라는지도 모르는 눈먼 다중multitude이라면, 어떻게 해서 다중이 입법 체계와 같은 중대하고도 어려운 일을 집행할 수 있는가? 사실 일반의지는 항상 옳은 것이지만 그것을 인도하는 판단은 늘 현명하지는 않다. 개인은 이익을 잘 알아보지만 그것을 포기해버리는 반면 공중은 이익을 원하지만 그것을 알아보는 못한다. 양편을 모두 지도할 필요가 있다. 입법자의 존재가 요구되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이다.



7장 입법자에 관하여

국가에 가장 적합한 사회규칙을 발견하려면, 인간의 모든 정념passions을 다 알고 있으면서 자신은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그리고 인간의 본성과는 아무 관련이 없으되 그것을 꿰뚫어 알고 있는 그런 우월한 지성이 필요하다. 인간들에게 법을 제정해주기 위해서는 신들과 같은 지성이 있어야 할 것이다. 사실 군주는 입법자가 제정한 모형을 따르기만 하면 된다. 입법자는 기계를 창안해내는 기계공이고 군주는 이 기계를 조립하여 가동시키는 사람에 불과하다. 가령 몽테스키외는 “사회가 태어날 때는 공화국의 통치자들이 제도institution를 만들어내지만 그 후부터는 제도가 통치자를 만들어낸다.”고 말한다.

한 국인에게 제도를 만들어주려는 사람은 말하자면 인간의 자연적 상태를 개조하는 위치에 있음을 느껴야 한다. 그는 자체로는 하나의 완전하고 고립된 전체인 개인을 보다 큰 전체의 한 부분으로 변화시켜 자연으로부터 받은 독립적이고 육체적인 존재를 부분적이고 정신적인 morale존재로 바꾸어 놓아야 한다. 즉 인간에게서 그 본래의 힘을 제거하고 타인의 도움없이는 사용할 수 없는 그런 힘을 부여해야 한다. 그 결과 각 시민이 다른 모든 사람들의 도움없이는 아무런 가치도 없고 또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면, 그리고 전체에 의해 얻어진 힘이 모든 개인들의 자연적 힘의 총화와 같거나 그 이상이 되면, 입법은 이제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완벽성에 도달하게 된다.

입법자는 국가에서 어느 모로 보나 비상한 인물이다. 이는 행정직도 아니고 주권도 아니다. 이 직무는 국가를 조직constitue하는 것이지만 국가의 구조/헌법constitution 속에 편입되지는 않는다. 이는 인간의 세계와는 전혀 공통되는 것이 없는 특별하고 우월한 기능이다. 사람을 지배하는 자는 법을 지배해서는 안되고, 법을 지배하는 자는 사람을 지배해서는 안 된다. 예컨대 리쿠르구스가 그의 조국에 법을 만들어 주었을 때 가장 먼저 한 일은 왕위를 포기한 일이었고, 대부분 그리스 도시에서는 법의 제정을 외국인에게 의뢰하는 것이 관례였다. 근대 이탈리아 공화국, 제네바 공화국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므로 법을 편찬하는 사람은 결코 입법권을 갖지 않으며 또 가져서도 안 된다. 그리고 인민 자신도 자신의 양도불가능한 권리를 내어줄 수는 없다.

우리는 입법작업에서 양립불가능한 것 같은 두 가지 사실을 동시에 발견한다. 입법은 인간의 능력을 넘어서는 작업이라는 것과 그 작업을 행하기 위해서라면 어떤 권한도 없는 권위자가 요구된다는 것이다. 또한 다른 어려움은 이것이다. 대중의 언어로는 표현할 수 없는 생각들이 너무나 많고 각 개인은 눈앞에 개인적 이익과 일치하는 정부의 계획 외에는 아무 것도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제도의 결과로 얻어져야 할 사회정신이 그 제도/입법institution의 동기가 되어야 하고, 사람들은 법이 제정되기 이전에 이미 법이 규정하는 이상적 인간이 되어야 할 것이다.

입법자는 힘도 논리도 사용할 수 없으므로, 이 둘이 아닌 다른 질서의 권위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 이런 사정으로 인해 어느 시대나 국가의 시조들은 하늘의 도움에 의존해야 했다. 입법자는 일반 대중이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숭고한 국가의 존재 이유를 신들의 결정에 위임함으로써, 인간의 지혜로는 움직일 수 없는 사람들을 신의 권위를 빌어 이끌어가는 것이다. 이 경우 입법자의 위대한 정신이야말로 그의 사명을 실증해줄 참된 기적이다. 헛된 위세는 일시적 유대를 만들고 오직 뛰어난 지혜만이 영구적인 유대를 만든다. 모세의 계율이나 마호메트의 법전 등이 그 예이다. 정치와 종교는 공동의 목적을 갖는 것이 아니다. 다만 국가가 생겨날 때 하나가 다른 것의 도구로 쓰이는 것이다.




8장 인민에 관하여(1)

현명한 입법자instituteur는 법을 만들기 전에 그 법의 대상이 될 인민이 그것을 받들기에 적합한가를 살핀다.(플라톤, 크레타섬의 예) 사람들은 유년기에 온순한 것처럼 인민들도 나이가 들어가면서 점차 완고해진다. 일단 버릇coutumes이 자리잡고 편견이 뿌리를 내리면 이를 개혁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고도 부질없는 일이다. 물론 국가의 역사에 있어서도 개인에게서처럼 과거의 기억을 앗아가는 혁명이 가하는 격동기가 없는 것은 아니나, 이는 매우 예외적인 경우이다. 왜냐하면 인민은 야만이었을 동안에는 자신을 자유롭게 만들 수 있지만 시민의 활력이 소모되었을 때는 그렇게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때 소요가 인민을 파괴할 수는 있으되 혁명이 재건할 수는 없다. 인간과 마찬가지로 인민의 경우에도 성숙기가 있는만큼 이 시기가 오기를 기다려 그들로 하여금 법을 따르도록 해야 한다.



9장 인민에 관하여(2)

국토는 너무 커도 안 되고 너무 작아도 안 된다. 모든 정치체에도 지나쳐서는 안 되는 힘의 최대가 있어서 그것이 커지다 보면 오히려 그 힘이 약해질 수 있다. 사회적 유대도 그 범위가 확대되면 확대될수록 더욱 약화되며, 소국은 일반적으로 대국보다 더 강하다.

첫째로, 거리가 멀수록 행정관리는 힘들어지며 행정의 계층이 늘어남에 따라 그 비용도 늘어난다. 과중한 지출부담은 백성들을 계속 허덕이게 만들며 비상시에 대처할 예비비는 거의 남지 않게 된다. 둘째로, 정부는 법을 지키게 하고 반란을 방지하는 힘과 신속성이 감퇴하며, 인민은 통치자들이나 조국, 동포들에 대해서 애정이 줄어들게 마련이다. 행정관리들이 국가를 다스리게 되면서 멀리 덜떨어져있는 관리들은 중앙 정부의 권위에서 벗어나게 된다. 요컨대 국가 조직의 규모가 지나치게 비대하면 국가는 쇠약해진다. 또한 모든 인민은 일종의 원심력을 가지고 있어서 그 힘에 의해 끊임없이 상호 적대적으로 작용하고 제 자신을키워가려는 경향이 있다. 이는 데카르트의 와동설tourbillons과도 같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국가를 확대할 이유도 있고 또 축소할 이유도 있다. 이 크고 작은 비율 중 국가의 보존에 가장 유리한 것을 찾아내야 한다. 일반적으로 확대의 이유는 단순히 대외적이고 상대적이므로 대내적이고 절대적인 축소의 이유에 종속되어야 한다. 가장 먼저 추구해야 할 것은 건전하고 강력한 국가 조직이며 광대한 국토가 제공하는 자원보다는 좋은 정부에서 생겨나는 활력에 더 기대를 걸어야 한다.



10자 인민에 관하여(3)

정치체의 크기는 두 가지 방법으로 측정될 수 있다. 하나는 영토의 넓이에 의해서이고 다른 하나는 주민의 수에 의해서이다. 토지가 주민을 부양하기에 충분해야 하고 또 토지가 부양할 수 있을만큼의 주민이 있을 때 적당한 비율이 생겨난다. 토지가 지나치게 넓으면 그것을 지키기 힘들고 경작은 미흡해지며 생산은 과잉상태가 된다. 토지가 지나치게 좁으면 국가는 이웃 국가들에 의존하게 된다. 그 형편이 교역이나 전쟁 중 하나를 선택할 수 밖에 없는 인민은 그 자체로 허약하다. 일정한 수의 인민이 가질 수 있는 힘의 최대치는 바로 이 비율에 의해 구해진다. 이 고정된 비율을 숫자로 표현할 수는 없다. 이는 토질, 비옥도, 기후, 주민의 기질, 출산 능력 등의 차이가 있으며 특별한 경우(산악지방, 해안지대 등)가 있기 때문이다.

국민에게 법을 제정해주는 데는 또 하나의 조건, 인민이 풍요와 평화를 누려야 한다는 조건이 있다. 국가가 형성되는 시기는 가장 약하고 파괴되기 쉬운 순간이며 이런 위기 상황에서 전쟁이나 기근이나 폭동이 일어나면 국가는 전복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떤 인민이 입법의 대상으로 적합한가? 같은 뿌리와 이해관계 혹은 약속의 일치에 의해 결합되어 살면서 아직 법의 속박을 맛보지 않은 인민, 관습coutume이나 미신에 깊이 빠져 있지 않은 인민, 부유하지도 가난하지도 않고 스스로 충족할 수 있는 인민 등이다. 입법 작업에서는 수립해야 할 일보다 파괴할 일이 더 어렵다. 이는 자연의 단순성과 사회의 요구를 결합시키기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훌륭하게 구성된 국가는 매우 드물다.



11장 입법의 여러 체계에 관하여

모든 입법체계의 목적이 되어야 할 만인의 최대의 행복은 정확히 자유와 평등이라는 두 개의 주요한 대상으로 귀착한다. 자유가 필요한 것은 모든 개별적 종속dependance particuliere은 그만큼 국가라는 정치체의 힘을 약화시키기 때문이고, 평등이 필요한 것은 평등없이 자유가 존속할 수 없기 때문이다.

평등에 관해 말하자면 이는 권력과 부의 정도가 모든 사람에게 절대적으로 균등하다는 것이 아니다. 권력은 폭력이 될만큼 강대해서도 안 되고 단지 지위나 법에 의해서만 행사되어야 하며, 부는 어떤 시민도 다른 사람을 매수할 수 있을만큼 풍족해도 안 되고 또 자신을 팔아야 할만큼 가난해서도 안 된다. 강자의 편에서는 재산과 세력의 절제가, 약자의 편에서는 탐욕과 선망의 절제가 있어야 한다. 국가가 안정을 가지려면 공공의 이익을 위해서는 공히 위험한 부자도 거지도 없도록 해야 한다. 물론 이러한 평등은 실제로는 불가능한 관념적 공상이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바로 사물의 힘이 항상 평등을 파괴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만큼 입법의 힘은 그것을 유지하는 방향으로 나가야한다. 그리고 모든 훌륭한 제도의 일반적인 목표는 각 국가마다 지역적 여건과 주민들의 성격에 따라 수정되어야 할 것이다. 국가를 위해 최선의 것이 될 제도의 특이한 체계를 각 인민에게 설정해주어야 한다. 국가의 구조가 진실로 확고하고 지속적인 것이 되는 것은 모든 것들이 일치됨으로써 자연적 관계와 법이 항상 같은 문제에 대해 힘을 합치고, 법이 자연적 관계를 보장하면서도 나아가 그것을 교정하는 것으로 그칠 때이다.



12장 법의 분류

첫째로 조직체 전체가 그 자신에 대해 행하는 작용, 전체의 전체에 대한 관계 또는 주권자의 국가에 대한 관계를 규정하는 법은 정치법loix politique 또는 근본법이라고 불린다. 물론 이때 인민은 어떤 경우에도, 설령 최선의 것이라 해도 법을 바꿀 권리를 가지고 있다. 루소는 이 책에서의 서술을 이 법에 관해서만 제한한다.

두 번째로 구성원 상호 간의 관계 또는 전체 조직체와의 관계이다. 전자의 경우는 최소의 관계이어야 하고 후자의 경우는 최대의 관계이어야 한다. 그리하여 이 관계로 각 구성원은 모든 구성원에 대해 완전히 독립적인 관계가 되고, 국가에 대해서는 극도의 종속적인 관계가 되도록 해야 한다. 국가의 힘만이 구성원들의 자유를 보장해주기 때문이다. 민법loix civiles은 바로 이 두 번째 관계에서 태어난다.

세 번째 관계로서 인간과 법의 관계, 즉 형에 대한 불복종의 관계를 고려할 수 있다. 이 관계는 형법loix criminelles을 수립하게 되는 원인으로서 이는 다른 법률의 준수를 위한 징벌 규정이다.

네 번째로 가장 중요한 법이 추가된다. 이는 인민의 마음속에 들어있는 것으로, 사실상 국가의 진정한 구조를 이룬다. 이 법은 인민을 그 제도의 정신 가운데 보존하고 부지불식간에 권위의 힘을 습관habitude의 힘으로 대치하는 것이다. 이는 풍습moeurs, 관습coutumes 특히 여론opinion에 대해서인데, 이는 정치가들에게 잘 알려져있지 않은 부분이지만 다른 모든 부분의 성공은 여기에 달려있다. 풍습이야말로 형성에는 보다 긴 시간이 걸리지만 여타의 법을 확고히 지탱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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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마르크스주의의 위기에서 일반화로


맑스주의 위기의 원인. 1956년 흐루시초프의 스탈린 비판이 한 계기(개인숭배와 사회주의적 합법성 침해). 스탈린 비판에 국제공산주의 운동 분열. 중․소 논쟁. 신좌파의 출현. 신좌파 중 비판적 마르크스주의 등장(서구 마르크스주의 또는 유로 코뮤니즘). 70년대 말 “마침내 마르크스주의에 위기가”(알튀세르). 위기가 곧 쇄신의 기회가 될 수 있을 것.


전후 남한에서 마르크스주의의 소멸 : 1945~1953년. 해방정국과 한국전쟁 시기. 공개적인 계급투쟁의 시기. 60년 419의거. 61년 516쿠데타 64년 인혁당 사건(최초로 남한에서 맑스주의 부활 계기). 평화공존론 채택 이후 대체로 북한의 지도 아래 당조직 건설 시도. 68년 통혁당. 74년 인혁당재건위. 79년 남민전 사건. 70년대는 전태일 열사의 분신 이후 지식인 운동이 아닌 자생적인 노동자운동으로서 민주노조운동 등장. 청계피복노조와 YH노조로 계승.


1980년대 맑스주의의 본격적 전개 : 79년 부마항쟁. 80년 광주항쟁. 이의 배경으로서 박정희 시대는 수출지향적 산업화. 당시 아시아나 라틴아메리카와는 달리 외자에 의존. 정치군사적으로는 미국에 종속되어 있고 경제적으로는 일본의 후배지였기 때문에 이러한 특수한 발전주의가 도입된 것. 외자의존적, 수출지향적 산업화와 동시에 재벌중심적 중화학공업 추진. 79년은 박정희 정부의 발전주의의 최대위기. 이윤율의 급락(고정자본의 규모 거대화 때문)과 외채위기-중화학공업에 따른 무역수지의 적자, 외채누적과 3고(환율,달러가치,유가) 현상. 발전주의의 수정시도로서 경제안정화종합시책-박정희 정부의 신자유주의적 경제정책으로의 이행, 물가안정과 구조조정(정리해고, 임금삭감)의 시도. 이는 금융화를 바탕으로 함. 70년대부터 미국경제에서 진행되는 은행 중심의 금융화. 80년대부터 주식시장의 금융화. 이러한 금융화는 물가 상승과 이에 따른 이자의 실질가치 감소를 가져오므로 물가 안정이 중요해짐. 그런데 이자율 상승은 은행에는 유리하나 주식시장에는 불리해서 레이건 후기부터 이자율 상대적 하락. 이자율 인하는 주식시장과 더부어 부동산시장의 부양. 투기 조장. 부마항쟁은 신자유주의적 정책개혁에 대한 최초의 투쟁. 79년 YH 노조의 투쟁. 투쟁 진압 방식에 대한 집권세력 내부의 갈등. 10.26과 12.12. 신군부가 신자유주의정책 계승. 광주항쟁도 부마항쟁 계승. 신군부는 경제안정화종합정책 체계화. 중화학공업을 수출산업으로 전환시킴(자동차, 조선, 석유화학, 기계, 철강). 신군부와 유사한 사례는 칠레의 피노체트 정부.


80년대 마르크스주의 부활. 85년 구로동맹파업(전후 최초로 노동자운동과 지식인운동이 결합되는 사건). 직후 서노련(서울노동운동연합) 결성. 87년 인민노련(인천민주노동자연맹) 결성. 창비에서 한국사회성격논쟁 전개. 당시 종속자본주의론의 민족경제론 비판. 박현채는 이를 신식민지국가독점자본주의론으로 체계화(독점 강화, 종속 심화). 87년 6.10 시민항쟁. 7~9월 노동자대투쟁. 87년 시민항쟁의 결과로 직선제 쟁취. 비판적 지지와 후보 단일화 논쟁, 이는 NL(주사)로 계승. 민중후보론은 PD(레닌이즘)로 체계화.


90년대 마르크스주의의 위기. 소련 붕괴 정세. 알튀세르의 77년 강연. 위기에 대한 세가지 대응-구좌파의 정당관료(위기 부정), 기층활동가(침묵), 신좌파는 위기를 인식하고 자기 비판 통한 쇄신 시도. 92년 대선과 문민정부의 등장. 그 배경으로 86~88년 사이의 단군 이래 최대의 호황. 3저 호황. 이병천 등의 중진국론(독점강화, 종속완화)이 등장했으나 사실 3저 호황은 남한경제가 신자유주의적으로 재편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일시적 현상. 문민화는 민주항쟁을 통한 민주화가 아니라 일부 진보적 지배엘리트와 보수적 지배엘리트의 협상에 불과.(3당합당). 문민정부는 신자유주의 통치성 확립 위한 메커니즘.

87년 이후 운동진영의 변화. 인민노련의 주류화. 최장집, 백낙청 등으로 대표되는 CD(시민민주)나 GD(일반민주) 등장. 경실련이나 참여연대 같은 시민운동단체 등장. 95년 전노협 해체와 민주노총의 건설(노동자운동 자체의 주류화). 사회운동적 노조주의의 퇴조와 코포러티즘적 실리주의적 노조 지향. 산별노조 건설의 노력. 트로츠키주의의 특징은 교조주의와 종파주의. 노동자의 힘, 국제사회주의 또는 다함께.


97년 대선과 김대중 정부. 97년 위기. 외환위기 동반. 95년 전후 달러가치의 상승. 미국 신경제와 정보통신기술의 주목. OECD 가입. 남한경제 이윤율의 하락. 97년의 위기는 재벌체제와 금융세계화 등장. 김대중 정부는 김영삼 정부와 마찬가지로 신군부 계승한 것. 김영삼이 자유주의에 가깝다면 김대중은 인민주의에 가까움. 김대중정부의 인민주의적 기만: 주식투기, 신용카드남발, 아파트분양가 자율화 통한 부동산투기 등을 통한 IMF 조기졸업. 2000년 남북정상회담. 그러나 햇볕정책의 원본인 포용정책은 이미 95년 미 국방부가 만든 대중국 정책. 인민주의적 기만은 정치 실종의 위험. 97년 민주노총의 위기. 노사정 합의의 수용. 민주노총 건설, 민노당 창당은 남한 노동자운동이 영국, 미국화되는 것. 민노당 창당과 네그리주의의 대두. 네그리주의는 급진주의 또는 아나키즘. 반경제학


2002년 대선과 노무현. 인민주의적 정치. 텔레비전과 인터넷을 통한 정치의 이미지화, 미디어화. 감정을 동원함(노무현의 상록수). 원한ressentiment의 정치. 노무현은 베를루스코니 정부와 유사. 탄핵, 수도이전, 4대 개혁입법.

민주노총의 아킬레스건으로서 비정규직 문제. 남한페미니즘의 주류화. 여성부 신설. 페미니즘의 본질은 가족을 약호시키는 것. 성매매방지법의 문제.


현실과 과학, 서울사회과학연구소, 이론, 과천연구실 생략.


마르크스주의의 일반화. 1. <자본>의 내재적 한계 : 알튀세르의 초기 작업 reading capital. 자본을 경제학 비판 또는 역사과학으로 해석. 자본의 난점으로서 논리와 역사의 관계. 이탈리아 오페라이스모의 판지에리와 트론티의 이론적 기여: 자본에 의한 노동의 포섭 개념 강조. 네그리는 이를 자본에 의한 사회적 포섭으로 확대 해석. 푸코의 규율사회와 들뢰즈의 통제사회 개념과 친화적인 것. 자본에 의한 노동의 포섭 개념 강조는 발리바르에도 친화적, 그러나 발리바르는 경제법칙론을 부정하지 않음. 발리바르는 자본의 추상화와 노동의 구체성. 브뤼노프는 <자본>이 특수상품으로서 화폐, 노동력에 대한 이론이라고 해석. 경제법칙론의 관점에서 역사적 자본주의 분석을 시도하는 것이 뒤메닐. 뒤메닐은 아리기에 의해 보충되어야 함. 발리바르/브뤼노프/뒤메닐/아리기 결합의 시도(과천연구실이 주장하는 그로스만적 계보). 2. 자본의 공백 극복 시도. 국가와 정당에 관한 이론, 정치학이 없다는 주장.

알튀세르의 맑스주의는 프로이트-마르크스주의. 발리바르는 스피노자-마르크스주의(물론 이 부분은 논란의 여지가 있다-나의 첨가). 발리바르는 들뢰즈나 네그리와는 달리 보다 스피노자를 구조주의적으로 해석. 철학적 인간학과 인권의 정치라는 맥락에서 이데올로기 비판하려는 시도. 레닌의 억압적 국가장치론. 그람시의 헤게모니론은 국가권력론. 알튀세르의 <이데올로기와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 가족과 학교에 대한 분석. 자본과 국가 형태에 적합한 이데올로기로서 민족형태(발리바르). 학교는 민족의 언어적 동일성을 재생산, 가족은 종족적 동일성을 재생산.


역사적 마르크스주의 생략


*트로츠키주의.(역사적 마르크스주의 2장 일부 요약)

트로츠키와 스탈린

윤소영은 레닌주의와 볼세비키주의(트로츠키주의와 스탈린주의가 공유하는 이념)을 구분. 스탈린은 전시공산주의를 복원할 뿐 아니라 극단화(pt독재의 소멸). 트로츠키는 이후 소련사회를 관료제적으로 변질된 노동자국가로 규정. 그러나 트로츠키도 스탈린처럼 사회주의의 본질을 전일화된 국유화라고 생각함. 륄레도 소련사회를 비판하며 <볼세비키주의에 대한 테제>에서 평의회 맑스주의의 기본 입장을 제시. 소련에서는 소비에트가 소멸했으므로 국가자본주의만 존재한다는 것. 또 륄레는 국가자본주의 경향론을 최초로 제시(힐퍼딩과 부하린은 국가자본주의 단계론을 제시)


트로츠키주의의 분열

1930년대말에 평의회 맑스주의는 볼세비키의 공격으로 소멸하고 트로츠키주의가 다양하게 분열됨. 남한 내에도 노동자의 힘, 다함께 등등. 이단파인 리치나 샤흐트만은 현대자본주의의 특징을 관료제 혁명으로 규정. 정통파인 캐넌-만델 그룹은 제4인터내셔널을 계승. 샤흐트만 그룹 내에 이단파인 존슨-포레스트 그룹 출현. 이는 카스토리아디스와 르포르(사회주의인가 야만인가)그룹이나 이탈리아의 오페라이스모에 영향을 미치나 점차 아나키즘화. 또다른 이단파는 클리프 그룹(국제사회주의 그룹)이며 캘리니코스, 정성진 등. 클리프 그룹은 부하린의 국가자본주의론 및 제국주의론을 수용. 상품-화폐와 임노동없는 국가자본주의를 주장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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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 2009-02-02 0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개정판이 나왔다는데 얼마나 수정되었는지는 모르겠다. 만오천원에서 만팔천원으로 올랐다는데 뒤에 더 붙은 내용에 뭐 balmas님과 에로이카님이 언급되었다고 하는데 들리는 바에 따르면 역시 별 내용은 없다는 소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