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5장 민주화 이후의 국가

1. 민주화 이후 강력한 국가, 무력한 정부의 문제
민주주의와 국가: 민주화 이전 한국의 국가는 과대 성장 국가, 발전 국가, 강한 국가 등 권위주의 국가로 개념화되었다. 한국에서 국가의 지배는 냉전 반공주의나 발전주의 같은 이념적 기제를 통해 뒷받침되었으며, 권위주의는 한국 사회에서 매우 동질적인 지배 엘리트(관료 엘리트, 정치 엘리트, 기업 엘리트)를 형성시켰다. 그러나 이제 민주화와 더불어 국가의 이런 성격 및 구조는 변화의 압박에 직면한다. 민주화 이후 유권자의 투표는 민주 정부를 만들어내었고, 이것의 결과는 권위주의 하에서 융합되어 있던 정치 엘리트와 행정 관료 엘리트의 분리였다.

민주화와 국가의 두 수준: 국가는 두 수준에서 고찰될 수 있다. 하나는 하부구조적 수준의 국가, 대규모 공조직으로서 관료행정적 형태로 제도화된 체제이다(일반적으로 한국의 국가를 강력한 국가라 할 때는 이를 가리킴). 다른 하나는 정부적 수준에서의 국가다. 정부는 권력의 획득과 행사 과정에서 특정의 이념적, 정책적 정향을 갖는 일단의 사람들에 의해 운영되는 국가의 수준이다. 권위주의 하에서 양자는 융합되어있었으나 민주화가 되면서 이 두 수준이 분리된다.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경우, 집권 초기 이들 정부는 개혁에 대한 열망을 배경으로 집권했으나, 집권 말기에 이르러서는 대통령 리더십이 최하점에 도달한 바 있다. 집권 초 정치 엘리트는 행정 관료에 압도적 우위를 가졌으나, 점차 정치 엘리트는 국정 운영의 무능력과 미숙을 드러냈다. 민주 정부의 정치 엘리트들은 그들의 권력과 개혁 의제를 실천할 능력 사이의 커다란 격차에 직면했기에, 행정 관료 엘리트의 권력은 권위주의 시기보다 커지게 되었다.

무력한 정부와 헤게모니의 문제: 민주화 이후 과거 야당이 집권하면서 대면하게 되는 문제는 정부의 무력함이다. 김영삼, 김대중 정부 모두 차이는 있으나 무력한 정부의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그러나 헤게모니의 약함은 무력한 정부의 결정적인 요인인 것이 아니며, 이는 개혁 부진 및 정권 약화의 알리바이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국가의 거대 행정 관료 기구를 운영하는 원리로서 절차적 보편성과 개방성이 없었다는 점이다(비선 조직).

사회적 기반 없는 야당의 문제: 무력한 정부의 등장은 야당이 어떻게 집권하게 되었는가 하는 문제와 관련된다. 이는 우선 이들이 기존의 발전주의적 모델을 대체할 대안적 비전이나 민주주의 모델을 갖고 있지 않았다는 것이며, 또한 냉전 기득 세력의 이념 공세를 피하고자 그들의 대안을 보수화하려 했다는 것이다(뉴DJ플랜). 이러한 전략적 모호함의 태도로 인해 투표자의 지지와 선출된 자의 책임성 사이의 관계는 느슨하고 모호해지며, 이는 또한 집권정당의 정체성 상실로 이어진다(오도넬의 ‘위임민주주의’).

2. 무력한 정부와 관료제의 문제
관료행정 기구에 포획된 정부: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경우 민주주의에서 국가에 대한 대안적이고 구체적인 관념을 가졌던 것은 아니었으며, 기술 관료적 경영주의의 이념에 압도되었던 까닭에 국가 운영에 있어서는 앞선 권위주의 정부 사이에 차이는 별로 없었다. 민주적 국가 운영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 때 이는 과거 권위주의 하의 행정 관료 기구를 개혁하는 것을 핵심으로 하지만, 새로운 집권 엘리트들은 이를 진지하게 시도하지 않았다. 또한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 발전’은 천명만 되었지 정책적으로 구체화되지 못했다. 그러는 동안 시장효율성, 시장 근본주의가 발전주의에 이어 새로운 헤게모니로 힘을 갖기 시작했다. 민주적 발전 모델을 제시하는 데 실패한 정치 엘리트들은 점차 관료에 의존하고, 결국은 관료에 포획되는 관계로 바뀌게 되었다.

민주화와 무능한 관료 체제의 문제: 민주주의 하에서 한국의 관료는 복지부동, 무책임, 전문성 결여, 무능, 부패 등의 특성을 갖는다. 왜 그런가? 첫째, 박정희 정부 시기처럼 위로부터 주어진 국가 목표의 부재. 둘째, 중앙정보부, 안기부 등의 강권 기구의 역할이 사라짐(수평적 책임성의 기능 부재). 셋째, 단기적 정권 교체는 관료 개개인의 장기적 전망을 약화. 넷째, 정권 교체에 따른 연줄 관계의 변화로 관료적 위계 구조의 혼란. 결국 이러한 원인들은 관료 체제의 민주적 운용 패러다임 개발하지 못한 탓이다. 민주주의 하에서 관료의 부패가 권위주의 시기보다 심해진 것은 아니더라도, 또한 강조해야 할 것은 시장과 민간 부문의 부패, 상층 엘리트의 부패이다.

3. 민주화와 대통령제의 문제
무력한 정부와 강력한 대통령: 한국은 건국 이후 1987년 민주화에 이르기까지 무려 아홉 차례나 헌법을 개정했는데, 이는 정치체제의 불안정성과 낮은 수준의 민주주의 제도화를 보여주며, 한국 헌정사의 불안정은 거의 대통령에 관련된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이슈의 중요성에 비해 광범위한 토론과 논쟁이 없었다는 것이다.

대통령제는 권위주의와 친화적인가?: 민주주의 하의 대통령은 정당을 매개로, 국민들 사이에서 민주적 리더십을 구현하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 대통령은 당선되는 순간부터 물리적 환경의 변화에 압도된다(경호, 공관과 집무실, 비서실). 이는 대통령을 둘러싼 물리적 환경이 권위주의와 매우 친화적임을 보여준다.

제왕적 대통령의 문제: 제왕적 대통령을 제기하는 담론은 그러나 그 속에 내장된 보수적 파당성으로 인해 진실을 왜곡하는 측면도 있다. 제왕적 대통령을 비판하는 이들은 이러한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CEO 대통령이라는 새 패러다임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CEO 대통령 논의에는 근본적 문제, 즉 이것이 민주주의의 근본 원리(경제로부터 정치의 분리)와 상충되기 때문이다. 기업 구조는 기본적으로 권위주의적이며 효율성을 추구하는 것이지만, 국가는 한 사회의 통합 및 시민권의 원리, 공공복리 실현 등을 위한 공공조직이다. CEO 대통령 논의는 정치를 경제적 힘에 종속시키려 하는 신자유주의 내지 신보수주의 이데올로기의 산물이다. 이 이데올로기는 시장지향적이고 정치에 대해 부정적인 태도를 갖는 것이다. 더구나 애초에 제왕적 대통령 논의가 기원한 미국의 경우 이는 본래 대외 정책 이슈에 관련된 것이었으며 자유주의파의 파당적 비판을 표현한 것이었다. 반면 한국의 경우 이 논의는 권위주의 세력들이 김영삼의 ‘역사 바로 세우기’ 비판의 일환으로 제기한 것이었으며, 헤게모니를 갖지 못한 김대중 정부에 대한 거대 언론과 보수 야당의 동맹에 의해 본격적으로 나타난 것이었다. 이들은 민주주의가 발전하지 않아서 만들어진 문제의 원인을 특정 대통령, 정부의 책임으로 돌리고 있을 뿐이다.

대통령의 민주적 리더십: 대통령의 권위주의는 모든 문제의 근원이 아니라 한국 정치의 여러 문제들의 결과물이다. 대통령을 권위주의적으로 만드는 것은 투표자들에게 책임을 지지 않고 구속되지 않는 상황의 결과인 것이며 또한 정당의 허약함 때문이다. 핵심은 오히려 정당과 정당 체제를 민주적으로 발전시키는 것, 즉 정당을 사회의 갈등에 뿌리내리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앞서 본 것처럼 냉전 반공주의는 한국의 정당 체제를 이념적으로 극히 협애한 틀에 가두어 놓았다. 정치는 갈등과 이 때문에 분열된 사회를 전제로 경쟁과 타협을 통해 갈등을 민주적으로 표출하고 정당을 매개로 이를 민주적으로 해소하는 과정인데(립셋-갈등과 컨센서스가 민주주의의 필수 요소), 한국에서 갈등은 대표될 수 있는 여지가 극히 좁다. 갈등의 부재는 사회의 특정 집단이 공공의 집합적 결정 과정에서 배제되었음을 보여주며, 따라서 냉전 반공주의와 접맥된 낡은 정당 체제를 해체하고 새로운 갈등 구조에 뿌리내리도록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4. 민주화와 중앙집권화의 문제
초집중화 = 지리적 집중+엘리트의 동심원적 중첩: 민주주의를 약화시키는 중요 동인 중 하나는 중앙 집중화로, 이를 가져온 역사적 계기는 권위주의적 산업화이다. 중앙 집중화의 구조는 대규모의 정치와 경제를 지향하는 것으로, 정치에 있어서는 국가 중심적, 경제와 시장에 있어서는 재벌 중심적 구조를 강화하는 성격을 지닌다. 한국의 지역당 구조는 지역에 기반을 갖는 다원적 정치 세력 간의 경쟁이 아니라 중앙 집중화의 구조에서 엘리트 간 경쟁의 산물이다. 이는 정치 경쟁, 교육의 경쟁 등을 생사 투쟁처럼 격화시키는 이유가 된다. 그런데 민주화 이후 정부들은 집중화를 완화시키기는커녕 오히려 더 심화시켰다. 지금까지 중앙 집중화에 대한 대책은 대체로 수도권 개발 억제, 지방 분산 등이 그 대안으로 이해되었다. 그러나 사회 각 분야의 엘리트 집중도가 여전히 강하고 그 충원 구조가 동심원적 구조를 갖는 상황에서 이런 지방 분산이 초집중화를 얼마나 완화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지리적 분산 역시 시도되어야 하지만, 그보다 엘리트의 동심원적 구조를 해체하는 것이 보다 중요하다. 사회 주요 영역의 독자성을 강화하고 다원주의를 발전시키는 것은 정치 영역에 있어서는 정당들이 넓은 이념적 공간에서 경쟁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는 지금까지 정치적으로 대표되지 못한 사회집단들, 특히 노동자계급이 정치의 중요 행위자로 참여하도록 하는 것이다. 정치의 다원주의는 교육 개혁, 재벌 개혁 등 여타 영역으로 다원주의를 확산하는 시발점이 될 것이다.


6장 민주화 이후의 시장

1. 민주화와 시장의 개혁
권위주의 산업화는 어떤 시장을 만들었나: 한국의 시장은 서구의 시장과 상이한 경로로, 즉 민간 부문에서 생성, 발전한 것이 아니라 국가의 권위주의 산업화 과정에 의해 만들어졌다. 권위주의 산업화에서 형성된 시장은 강한 국가 주도성, 재벌 경제체제, 노동의 배제라는 세 가지 특성을 갖는다. 곧 경제 시장에서도 독점과 배제가 지배적 원리가 됨으로써 투명성과 공정 경쟁과 같은 시장경제의 본래적 특징이 발휘될 수 없었던 것이다. 시장에 대한 강한 개입주의 국가의 역할은 한국 사회에 관료적 권위주의를 뿌리내리게 했다. 또한 권위주의적 노동 배제는 재벌 편향적 성장 제일주의의 다른 한 축이었다. 노동자의 참여가 배제된 정책 결정의 조건에서, 정치는 결국 사회 상층 엘리트 간의 게임이 될 수밖에 없었다.

민주화의 경제적 의미: 한국의 민주화가 갖는 사회경제적 내용은 기존의 권위주의 시장구조를 개혁하는 것이다. 권위주의 정권과 재벌 간의 연합이 주도하는 시장 구조는 재벌, 중소기업 간, 지역 간, 부문 간, 계층 간 불균등성장과 동전의 양면을 이룬다. 또한 노동의 배제는 갈등을 만들어 내고, 이를 통제하기 위해 권위주의적 국가 기제를 필요로 하는 악순환도 일어난다. 이런 구조를 해체하고 정치와 경제 간의 관계를 투명하게 만드는 개혁없이는 어떤 민주개혁도 실효성을 갖지 못한다.

개혁의 두 계기: 민주화와 세계화: 권위주의 하의 시장구조가 개혁의 의제로 제기된 계기는 두 가지, 민주화와 세계화였다. 먼저 민주화가 기존의 시장구조에 변화를 요구하는 힘으로 작용한 것은 87년 6월 민주항쟁을 기점으로 한다. 현실 정치 세력이 얼마나 민주적인가의 평가 기준으로 재벌 문제와 노동문제에 대한 태도가 중요하게 고려된 것이다(노태우 정부의 업종전문화 정책, 김영삼 정부의 금융실명제). 다음으로 세계화는 80년대 초반부터 수용되어 IMF 당시 급진적으로 전개되었다. 이때의 세계화의 실제 내용은 신자유주의 또는 워싱턴 콘센서스라 불리는 특정 정책 내용의 수용이었다. 가령 IMF 이전까지 세계화는 대체로 친재벌적, 반노동적 정책 함의를 가진 것이었다면, IMF 이후 세계화는 반노동적인 동시에 반재벌적인 효과를 갖게 되었다.

2. 민주화는 권위주의 시장구조를 변화시켰는가?
재벌 개혁에 취약한 민주화: 주목할 것은 민주화 이후 재벌의 경제력 집중이 권위주의 시기보다 강화되었다는 것이다. 민주화 이후 새 정부들은 재벌 개혁을 약속했으나, 이는 집권 초기를 지나면서 구두선에 그쳤다(심지어 노무현 정부에서는 삼성과의 유착이 더 심화). 과거 권위주의 국가에 의해 통제되던 언론과 대학은 이제 재벌의 영향력에 의해 압도되고 있다.

노동 없는 민주주의: 87년 6월 이전 노동운동은 직접적인 억압 하에 있었다. 그러나 노동운동은 7~8월 노동자 대투쟁을 통해 민주화에 핵심적으로 기여했다. 당시 노조의 입지는 강했는데, 이 시기 노동운동은 고성장, 소득분배 구조의 개선, 저실업률, 노동력 부족과 구인난 등 현대사에서 가장 노동에 유리한 조건을 맞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편 김영삼 정부 시기 초기에는 노동정책에 대한 민주적 개선의 시도들이 있었다. 그러나 국가의 중립적 태도와 노조 활동의 자율성 보장은 93년 현총련 연대 파업을 계기로 과거로 후퇴했으며, 이후 개혁적 노동 정책은 반전되었다. 동시에 주류 언론과 경제계의 반격(무노동무임금, 경영권 수호)도 강화되었다. 96년의 총파업은 김영삼 정부의 노동 정책이 갖는 배제적 성격을 보여준다. 이어서 금융 위기와 더불어 강제된 IMF 개혁 패키지의 핵심은 노동시장 유연화였다. 고용불안정이 일반화되고, 소득 불평등도 심화되었다. 이러한 조건에서 노동정책은 복지정책과 연계되는 사회정책적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고, 김대중 정부 시기에 새로운 갈등 유형이 나타나게 된다. 즉 노사관계 차원보다도 노사관계의 틀에 영향을 미치는 노동정책을 둘러싼 갈등이 등장했다. 김대중 정부 역시 정부 정책은 시장경제 우선의 방향으로 기울었으며, 복지, 노동 등 사회정책은 경제정책의 하위 정책으로 간주되었다. 노사정위원회 역시 서구의 코포라티즘과는 거리가 멀었으며, 이마저도 민노총의 탈퇴로 지속되지 못했다. 요컨대 전체적으로 보면 김대중, 노무현 정부에서도 노동은 여전히 배제되었던 사회집단이었다. 과거 고도성장기에는 권위주의 정부에서라 할지라도 완전고용과 소득 증가를 내용으로 노동자를 통합하는 거시경제적 틀이 존재했다면, 금융 위기와 더불어 이 틀은 사라지고(저성장, 고실업) 노동시장 유연화는 불가피한 것이 되었다. 결국 주류 노동운동세력은 정부와 대립하게 되었고, 이에 정부의 대응은 과거 권위주의 노동정책으로 후퇴하는 것이 되었다(정치의 붕괴와 항의의 일상화). 결국 민주화 이후에도 노동정책에 있어서는 담론 수준을 넘어서는 정책 전환이 없었다고 할 수 있다.


3. IMF 세계화와 경제개혁
새로운 사회 균열로서의 세계화: 담론의 측면에서만 보면 김영삼 정부가 세계화 추진의 정점을 이루는 듯 보이지만, IMF 이전까지 한국 사회에서 세계화의 충격은 정치적 수준에서 새로운 균열을 만들지 못했다. 대체로 그 전까지 세계화는 정부와 기득 세력이 민주화와 개혁 요구를 회피하는 논리로 동원된 것이다. 그러나 IMF 이후 세계화는 달랐다. 정부는 세계화의 규범에 맞는 시장경제로의 전환을 추구했고, 재벌은 자신들이 지배하는 시장의 자율성은 허용하길 바라면서도, 기존의 특혜를 없앨 수 있는 세계화 규범의 적용에 반대했다. 노동의 경우는 노동시장 유연화를 요구하는 세계화 규범에 반대하면서 동시에 노동시장 보호 정책을 요구했다. 그러나 이러한 갈등은 분명한 정치 균열 라인으로 만들어지지 않았고, 더욱 혼란스러운 양태로 나타났다. 금융 위기 이후 균열의 축과 동맹의 양태가 더욱 분열적이고 혼란스러워진 것은 사회적 갈등이 정치적으로 동원되고 대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즉 갈등의 축과 동맹의 축을 명료하게 하며, 경쟁적 대안을 발전시켜야 할 정당의 역할이 존재하지 않았다.

왜 한국의 민주화는 실질적 개혁에 무력했나: 한국의 민주화는 강권적 권위주의 통치 종식에 있어서는 효과적이었으나 실질적 내용, 사회경제적 측면의 개혁에 있어서는 무력했다. 민주화에도 불구하고 계급 불평등은 심화되었고, 재벌은 강화되었으며 노동 배제는 지속되었다. 김영삼 정부 시기까지는 실질적 개혁을 기대하기는 어려웠을 수 있다. 그러나 김대중 정부 시기에는 재벌 개혁이 실질적인 개혁 의제가 될 수 있었다. 이들 집권 세력은 권위주의 시기 고착된 지배 엘리트 구조에서 소외된 주변부 엘리트 집단이었으며, 당시 세계화라는 외적 충격이 있었기 때문이다. 적어도 집권 초 김대중 정부는 국내 기득 세력에 대해 이전 어느 정부도 누려보지 못한 자율성을 가졌다. 당시 개혁은 두 가지 의미를 갖는데, 하나는 구조조정으로서 금융 위기에 대처할 생존 전략으로서 기존의 거시 경제 운용 모델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수동적 의미의 개혁이며, 다른 하나는 구조개혁으로서 민주주의의 틀에 맞게 경제 발전의 대안적 모델과 사회정책적 대안을 위한 개혁이다. IMF 하에서라도 민주주의에 걸맞은 시장경제체제를 창출하거나 민주주의를 통해 시장경제의 부정적 효과를 보완하려는 시도를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김대중 정부의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 발전’은 수사로 그쳐버렸다. IMF 개혁 패키지와 같은 수동적 개혁에 그친다면 김대중 정부의 존재 이유는 무엇이었는가? 구조조정을 넘어서 한국 사회 발전을 위한 장기적이고 자율적인 구조개혁을 수행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그러나 김대중 정부는 지역 정당 체제나 보수 편향적 정치 구조를 개혁하고자 하지 않았으며, 자민련과 같은 세력과 연립 정권을 유지할 뿐이었다.

개혁 실패가 남긴 것: 민주화와 세계화라는 내외적 충격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시장구조는 큰 변화가 없었다. 오히려 국가와 재벌의 힘 관계에서 국가의 일방적 우위는 사라지고 재벌은 국가에 의해 쉽게 통제되기 어렵게 되었으며, 노동 배제의 경제체제도 그대로였다. 이는 신자유주의라 할 수 있는 정치에 대한 특정 관점이 사회에 확산되도록 만들었다. 이는 민주주의에 대한 냉소적, 부정적 태도를 확산시키며, 내용적으로는 재벌 체제를 안정화하는 효과를 갖는다. 정치를 폄하하고 조롱하며 정부 기능을 부정할 경우, 민주주의의 의미를 경제에 종속시킬 경우 한국 민주주의는 무력하게 되고 만다. 보수 언론을 통해 유포되는 노동운동에 대한 인식은 여전히 권위주의적이며, 민주적 노사관계를 위한 인식상의 변화도 지체되었다. 또한 신자유주의 세계화로 인해 노동운동 내부의 연대는 약화되는 반면, 노동운동의 리더십은 아직 관념적인 급진주의에 의해 자신의 잠재력을 소진하고 있다. 만약 민주주의의 정치적 틀에 조응하는 경제에 대한 국가의 역할이 없다면 시장의 부정적 역할을 제어할 힘은 없다. 시장은 하위 체계 중 하나일 뿐이며, 이는 전 사회의 운영 원리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다. 계급 구조화의 심화, 소득 불평등 등 한국 사회의 현실은 유능한 민주주의 국가의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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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홍규 고별 강연  


고전의 학문 정신은 데이터에서 출발한다. 반면 신화에는 데이터가 없다. 소크라테스가 what it is? 라고 물을 때 it이 데이터이다. 철학은 모든 이론에 앞서서 데이터에서 출발하여, 데이터를 학문적으로 정리해보고 그것을 다시 반성해보는 작업이다. 철학적 데이터는 개별 과학적 데이터와 달리 모든 데이터의 총체이다. 대화편을 보면 플라톤에게 사람은 항상 어떤 나이이고, 이름이 누구며, 어디에서 무엇 하러 왔으며 등등 고유 명사의 입장에서 데이터가 주어지는 반면,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사람은 그냥 사람, 아리스토텔레스의 체계에 의해 추상화된 데이터로 나타난다. 이처럼 고유 명사의 극한에서 본다는 것이 플라톤의 데이터의 특색이다. 가령 플라톤에서 형상이 무엇인지 말하려면, 대화편에서 형상이라는 말을 전부 찾아내고 이를 전부 분류해서 각 대목의 의미를 밝혀야하지 형상 일반이란 의미가 없다. 구체적 문맥 속에서 그 의미를 밝혀야 하며, 그렇지 않고 그저 추상적인 형상은 플라톤에게는 없다. 그런데 플라톤에서 나타나는 전형적 특징 중 하나는 잰다는 점이다. 왜 재느냐? 데이터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 연장성 속에 들어 있기 때문이다. 반면 직접적인 것은 연장성 속에 있는 질quality이다. 만약 데이터를 재지 않는다면 모든 사물에 대한 정확한 지식은 없으며 주관적임을 면할 수 없게 된다. 사물을 정량적으로 재야하며, 잰다는 것은 또한 그것이 되풀이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재어진 것과 재어진 것 사이에는 일정한 관계가 있고 그것이 되풀이될 때 이것을 법칙이라 부를 수 있다. 희랍 당시에 이를 탐구하던 학문이 기하학(geometry 땅을 잰다는 뜻)이다. 반면 질의 경우 잴 때 문제되는 것은 정도degree이다.
데이터는 시간과 공간에서 주어진다. 시간은 운동이 있고 이때 문제되는 것은 질이다. 이른바 제1성질은 공간이 가지고 있는 질이다. 반면 공간은 항상 정지해 있는 것, 구별되는 것, 이것은 여기에 저것은 저기에 있다고 구별될 수 있는 것을 일컫는다. 질이라는 것은 각각 서로 다른 것이며 이것들이 같을 경우 양이 된다. 그런데 질이 각각 자기 동일성을 갖고 있기만 할 경우 운동은 성립하지 않는다. 운동은 질이 연결되고 묶여야 성립한다. 시간, 운동이라는 것은 질의 연속 과정이며 서로 연결되는 과정이다. 플라톤에서 데이터는 시공간 속에 있는데 만약 운동이 빠져버린다면, 질들은 모조리 이전의 연결에서 떠나 흩어지게 된다. 질들이 흩어져서 그 자체 전부 有로 되는데, 이것이 바로 분석analysis(ana위로, 되돌려서, lyô 풀어놓는다)이다. 이후 다양한 의미로 사용되었지만, 분석의 기본 의미는 풀어서 돌려준다 또는 자기 본성대로 놓는다는 뜻이다. 분석되기 이전의 운동에 있어서는 우리 인식 대상인 질이 전부 묶여져서 무엇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 즉 시간과 공간의 관계에서 운동을 빼버릴 경우, 그 속의 질은 전부 풀어져서 자신의 동일성을 찾게 된다는 것이다. 실제 있는 사물은 운동과 결합되어 있고 공간 또한 마찬가지로 유동flux 상태에 있다. 이러한 유동에서는 운동과 공간 모두 어디에서 시작하고 어디서 끝나는지 알 수 없다. 유동 속에서 운동과 공간이 뭉쳐져서 서로 분간이 안 되는 상태에서, 공간과 시간은 점점 분리되어 나가고 형상 자체에 이르면 운동은 완전히 빠지게 된다. 즉 운동이 공간 바깥으로 나가버린다. 운동이 완전히 나가서 운동과 공간이 딱 구별되어 나올 경우, 비로소 형상eidos이 나온다. 형상은 결코 움직이지 않는 것이다. 유클리드 기하학도 모든 운동을 빼는 데서 성립한다. 운동이나 시간은 우리에게 직접적으로 인식이 안 되는 것이며 학문에서 문제는 사물을 정의하는 것이다. 그리고 정의는 형상의 성격을 규정하는 것이다. 또한 문제는 모든 데이터가 동일 공간 속에 들어갈 때 그 일반적 성격을 무엇이라고 정의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이 문제는 플라톤에게 데이터는 무가 아니라는 것. 없다는 것은 데이터가 될 수 없고, 데이터는 있는데 이것이 바로 존재ousia라는 것으로 정리된다. 그런데 무와 존재 사이에는 단절이 있고 양자는 모순 관계에 있다(존재와 무는 서로 접촉contact하며 이 경계선에서 어느 쪽으로 떨어지느냐 하는 것은 순전히 우연contingency이라는 것). 학문의 원칙은 데이터를 취급할 때 모순을 회피하라는 것, 모순율이다. 즉 데이터 속에 모순이 있으나 그 모순을 회피해야 한다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항상 존재론은 원인론aitiology이며, 모든 데이터들은 차이difference를 가지고 있는데 이 차이의 원인은 무엇인지 물을 수 있다. 이는 모순이 아닌 것, 즉 존재도 아니고 무도 아닌 것이다. 학문은 모순율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헤겔처럼 존재와 무가 합쳐진 것이라는 식의 얘기는 하지 않고 존재도 무도 아닌 제3의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이때 다름의 원인은 존재도 무도 아닌 무한정자apeiron이다. 무한정자는 모순율에서처럼 단절이 없으므로 연속이 있고 무규정적indefinite인 것이다. 반대로 존재는 한정적definite이며 비연속성을 가진다. 동일성은 되풀이되는 것인 반면 차이는 모순하고 달리 차이의 정도를 극대화시키면 반대적opposite인 것이 되고 반대인 것은 또한 모순으로 간다. 그러나 차이는 반대가 아니며, 다름difference은 공존과 비공존의 양면을 지닌다. 이러한 다름이 비공존에서 나타날 때는 시간이라 하고 공존에서 나타날 때는 공간이라고 한다. 요컨대 어떤 것이 무한정자에서 나타나는 것은 항상 시간과 공간이 함께 나오며, 차이를 통해 나올 때는 항상 시간과 공간이 동시에 다 나온다.
플라톤은 이러한 형식적 존재론을 가지고 다른 사물들의 질서를 찾으려고 시도한다. 동일성과 차이 사이에는 정도 차가 있는데 이 정도의 차이를 가지고 우주의 질서를 정리하는 것(<티마이오스>)이다. 문제는 시간과 공간은 반대되는 것이어서 동시에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인데 이것이 플라톤 철학의 난점이다. 사물이 성립하려면 반드시 동시에 시간과 공간 속에서 사물의 동일성이 나와야 하지만 두 개의 동일성이 반대되기 때문에 어떤 관계를 갖고 있는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물론 경험적인 세계로 내려가서 양자가 관계를 맺으면 어느 정도 알 수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알 수 없다. 이런 까닭에 플라톤은 자신의 우주론을 우화fable, 이야기mythos라고 부른다. 반면 형상의 일반적 척도만 가지고 설명하자는 것이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상 질료form-matter theory 이론이다. 아리스토텔레스에서 운동은 움직이지 않는 것에 종속되며, 이 구도가 목적론의 전제이다. 이들의 존재론은 우주의 각 사물의 기본적인 자리매김classification을 가능하게 하고 우주 내에서 각 사물의 위치를 정의definition의 차원에서 정하려는 것이다. 정의의 차원에서 각 개별 과학이 완성될 때 존재론은 완성되며, 그래서 철학은 백과사전이 된다. 이 점에서 아리스토텔레스든 플라톤이든 철학은 all-wissen을 궁극 목적으로 하게 되는 것이다.
이를 계승하는 것이 플로티누스 학파 및 스콜라 철학이다. 서유럽의 침입 이전의 이들은 미개인으로서 스스로 데이터를 다루지 못했다. 중세 초에 철학은 학교서 가르치듯 희랍이나 로마의 학문을 가르쳤다. 스콜라 철학은 데이터를 직접 다루지 않으며 주입식(폐쇄적, 세뇌식) 성격을 지녔다. 예컨대 스콜라 철학자는 말 이빨이 몇 개냐는 질문에 아리스토텔레스 책을 보라고 답한다. 중세기 문화가 발달하고 데이터 취급 능력 및 기구들이 발달하면 스콜라 철학의 결론이 의문시된다(ex 천체의 운동). 결정적인 예가 갈릴레오의 피사의 사탑에서의 실험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물리학은 단적으로 질의 물리학이다. 존재가 운동하는 한에 있어서의 운동을 다루는 학이 바로 물리학이다. 갈릴레오의 실험과 더불어 스콜라 철학은 붕괴하며, 이런 의미에서 근대 학문의 개조자는 갈릴레오이다. 반면 데카르트의 경우 유동 이론에서 출발하여 모든 것을 회의한다. 플라톤도 유동 이론에서 출발하여 경험을 내부에서 정리해서 다시 검증해보자는 것이며, 이 점에서 데카르트는 플라톤의 후예이다. 그러나 데카르트는 의심스러운 것이 인식된다는 것이 어떻게 가능하냐는 문제를 회피하고, 결국 데이터로부터 도피한다. 본래 science는 라틴어의 scire, scientia에서 나온 말로 주관적인 견해나 생각, 자의적인 사고는 다 빼버리라는 것이며, 희랍어의 epistêmê 역시 의견doxa과 항상 대립하는 것이다. 데카르트와 반대되는 사상이 오귀스트 콩트의 사상으로서, 콩트 역시 중세기 신학과 형이상학을 비판한다. 그의 주장은 현상이나 사실fait 등 데이터로 주어진 것, 실증적positive인 것(<-> 허구적인 것)에서 출발하자는 것이다. 콩트는 갈릴레오 물리학 같은 엄격한 학을 모든 학문에 적용하자고 한다. 가령 콩트는 사회학을 사회적 물리학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콩트에게서 학문은 수학, 무기물, 유기물, 사회학 순으로 전개되며 이를 모두 종합하는 것이 철학이 된다. 이 점에서 불란서 철학에서 근대 학문의 기초를 준 것은 오귀스트 콩트가 최초이다. 콩트가 낳은 실증주의는 후에 물리학, 화학, 레비-브륄 등의 인류학, 뒤르켐의 사회학, 병리학 등으로 발전된다. 우리 내면 세계는 실증적으로 증명해야지 데카르트의 코기토 등으로는 알 수 없기 때문에 불란서 심리학에서는 병리학, 최면술, 실어증 연구 등이 발달하게 된다. 그렇다고 해서 콩트가 환원론자는 아닌데, 그는 모든 학문이 각 데이터에 따라 성질이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콩트의 실증주의와 관련하여 우연과 필연에 대한 결정론에 대한 논쟁이 등장하고 많은 메타과학이 등장한다. 그리고 이는 사유denken를 통한 현상학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불란서 철학자 대부분은 수학자이자 실증과학자였다.
베르그송은 결정론에 관한 논쟁 이전에 생명 현상과 무생물 현상에 대한 정의가 필요하다고 본다. 생물은 자신의 기능을 그 어머니인 생물에서 받는데 이것이 유전(파스퇴르 실험)이다. 이때 유전되는 것은 형질이 아니라 기능이다. 유전은 밖에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근대 물리학처럼 기계적mechanical인 원인은 항상 결과의 밖에 있으므로 유전을 설명하지 못한다. 기계론은 생명체가 갖는 물질적 부분에 있어서만 설명을 하지 생명 자체의 유전은 설명 못하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상-질료 이론 역시 형상이 밖에서 질료에 주어지는 구조이기 때문에 유전을 설명하지 못한다. 운동에 있어 운동의 존재는 일정한 성격을 갖는데, 운동이 운동 아닌 것으로 될 수 있는 측면이 바로 수동성passivity으로서 이것의 극한치가 정지이다. 운동이 일정하다는 것은 운동의 자기 동일성이고, 운동이 운동 이외의 것이 될 수 없다는 것, 운동은 항상 지속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그런데 운동이 자기 밖에서 운동의 원인을 얻으면 그것은 양화되는 것이며 언제나 수동성을 요구한다. 자기 동일성을 유지하는 운동은 그 운동을 타자로부터 받아들일 수 없기에 자기 운동자이다. 자발성spontanéité은 능동성의 근원이다. 베르그송은 물질이 엔트로피라고 일차적으로 정의한다. 베르그송은 생물과 무생물을 형이상학의 입장에서 정의하려고 하는 까닭에 플라톤으로 간다. 플라톤도 운동을 중심으로 우주를 분류한 바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물질이 엔트로피라도 어느 기간이 걸려서 변하는 것이지 그냥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물질도 어떤 의미에서는 지속하며, 따라서 물질과 생명체를 동일 차원에 놓고 다룰 수 있다는 이론이 나올 수 있다. 물질의 세계는 모든 것이 유동이고 모든 것은 변칙, 질quality 뿐이다. 물질과 달리 생명체는 反엔트로피이며 자발성과 자기 운동을 갖는다. 생명체의 자발성, 기능은 반엔트로피이며, 생명체는 언제든 변칙 속에 살고 있기 때문에 자신의 생존existence을 유지하기 위해 자신의 여러 기능을 스스로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을 가져야 한다. 현대 분자생물학에 의하면 분자가 가지고 있는 유전자는 자신의 내부에 정보를 갖고 자신의 외부에 대해 그 정보를 조절해 가면서 자기 내부의 여러 기능을 분화시켜나간다고 한다. 이와 같은 분자생물학의 생각은 발생론적genetisch 측면에서 베르그송 이론과 유사하다. 베르그송은 물질이 분화되는 측면에서 시작하여 성인이 되는 과정으로, 다시 종으로 진행한다. 다음으로 능동성activity의 문제 발생한다. 운동은 A에서 B로 가는 것, 즉 다른 것으로 변하는 것인데 어떻게 운동의 자기 동일성이 유지되는가? 즉 운동 그 자체의 과거 상태의 지금에 있어서의 보존이 문제가 된다. 이 보존이 바로 기억이며, 불란서 심리학자들은 유전도 넓은 의미에서 일종의 기억이라고 본다. <물질과 기억>이라는 책을 베르그송이 쓴 까닭이 바로 이 기억 때문인데, 생물과 물질의 차이는 바로 조절 능력과 기억에 있다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에서는 하나의 모범형ideal Typus으로서 인간(어린아이나 장애인이 아니라 정상적인 성인)이 나오지만 베르그송에서는 종에서 성인이 되어 다시 종으로 가는 모든 순환을 보지 않으면 인간이 나오지 않고, 뿐만 아니라 그것이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어떻게 연속되어 나오는가도 보아야 한다. 인간은 생명체의 하나의 생태학적 어떤 외형aspect에 불과하다. 이렇게 보면 철학도 인간 생활의 하나의 생태학적 형태일 뿐이다. 왜 새가 되고 사람이 되는가? 그 상황에서 삶을 유지하려고 조절한 결과이다. 사람 형태는 사람에게만 의미가 있지 가령 바닷속에 살면 물고기 같은 형태를 지녀야 하는 것이다. 베르그송과 더불어 철학은 본질essentia의 입장에서 실존existentia의 입장으로 간다. 실제 생물학을 볼 경우 식물만이 자기 영양 섭취 능력을 지니지 다른 모든 동물은 가지고 있지 않다. 전부 식물의 기생충이자 일종의 불구자인데 이것을 메우기 위해 여러 가지 기구가 나온다. 인간의 대상화하는 능력도 이것의 일종이다. 인간은 살기 위해 공부하고, 학교도 아니고 복잡한 도구를 만들어내는 등 아주 복잡한 존재이다. 인간이 대상화시키는 능력이나 신경 계통이 나오는 것도 식물이 갖고 있는 능력을 보충하기 위해 나온 것이다. 여기서 과거의 homo sapiens지성인의 세계가 완전히 뒤집어지며, 베르그송의 입장에서 종에서 성인이 되어 종으로 가는 전 과정을 볼 때 그 밑에 공통치를 빼면 조절 능력, 즉 무의식이 나온다. 즉 무의식이 중심이며 대상화된 인식은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다. 실증과학이 발달하지 않은 고대, 근대의 인식론과 달리 베르그송의 인식론은 단순한 사변이 아니라 동물생태학, 식물학, 분자생물학 등 데이터를 모집해서 공통치를 논해야 나오는 것이다. 동물은 대상화하는 능력이 없어도 자신의 삶을 유지할 수 있다. 가령 병아리는 알에서 막 깨어나도 먹을 것, 못 먹을 것을 본능적으로 다 알지만 사람은 그렇지 않고 무엇을 먹고 무엇을 먹으면 안 되는지 배워야 한다. 이러한 까닭에 인간 중심의 경험론이나 합리론 등 인식론은 동물의 영역까지 보자면 재고해야 한다. 또한 베르그송에서 실증과학의 문제는 가령 이런 것이다. 앞서 본 것처럼 과학은 재는 데부터 시작한다. 플라톤은 질을 재는데서, 공간에 있는 것을 재는데서 시작한다. 아리스토텔레스도 대개념, 중개념, 소개념, 보편자, 특수자 등의 범주를 통해 질을 재어 양화시킨다. 그런데 베르그송은 질은 서로 다른 것인데 이를 어떻게 재느냐고 질문한다. 그의 입장에서 볼 때 모든 운동, 과정process은 잴 수 없는 것이고 기존의 실증과학은 운동이 지나간 그림자, 스쳐간 공간을 쟀을 뿐이다. 이처럼 실제 운동이 스쳐간 공간을 측정함으로써 모든 이론이 생기는 것이고 모든 학문은 실제 있는 변치로서의 세계를 단지 스쳐갈 따름이다. 이와 관련하여 또 중요한 것은 우리의 내면적인 세계를 잴 수 없다는 것이다. 물질과 달리 생명 현상의 기본은 자발성이고, 자발성은 자기 조절하는 능력으로서 외부에서 어떤 척도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척도를 받아들이면 인과 법칙에 빠지게 되지만 생명의 자율적인 측면은 잴 수 없는 것이다. 심리 현상은 어느 한계 이상으로 잴 수 없으며 이를 재려고 하면 물질 현상처럼 수학적 공간에 넣어야 하는데 이렇게 될 경우 실제 심리현상은 죽어버리고 만다. 베르그송에서 세계는 모두 변칙뿐이며 질로 가득 찬 상황situation이다.
플라톤에서 그랬던 것처럼 모순율, 무가 아니라는 것은 모든 학문과 모든 데이터의 기본이다. 실재하는 사물은 언제나 일정한definite 것이다. 무한정적인 것과 자기동일성을 가진 것 중 존재에 가까운 것은 자기 동일성을 가진 것이다. 이 존재의 측면에서 보면 모든 것은 일정한 것이다. 일정한 것의 극한치는 고유 명사이며 이것이 양화될 경우 보통 명사가 된다. 그러나 질, 운동, 되풀이되지 않는 내용은 잴 수 없는데 이럴 경우 모든 것이 변칙이 되고 만다. 법칙이 성립하려면 운동은 양화해야만 하고, 확정되어definite 있는 질을 빼버려야 하는데 질은 베르그송이 보였듯이 양화되지 않는다. 우주는 질로 차 있으며 일정한 운동으로 가득 차 있다. 그러나 법칙은 한정적 세계에서 무한정적 세계, 양적인 세계로 자꾸 내려가야 한다. 아리스토텔레스처럼 특정한 존재가 아닌 그냥 사람 일반을 말하는 것은 그가 질을 양화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플라톤은 베르그송과 마찬가지로 순수한 질은 양화가 되지 않는다는 입장으로, 형상의 세계는 다 고유한 것이며 고유명사로서 되풀이되지 않는다고 본다. 어떤 형상이 실제로 존재하는가 하는 것은 선험적a priori으로 주어질 수는 없다. 형상, 다가 성립하려면 공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모든 것은 사건으로서, 법칙도 사건으로서 성립한다. 만약 2+3=5가 성립하는 공간을 수학적 공간이라 하면 왜 수학적 공간이 성립하는지가 우선 문제이며, 그 공간에서 2가 성립하느냐 아니냐 하는 것은 추상적 공간에 대해서는 순전한 우연이다. 우리에게는 모순율이 최고인데 이는 그것이 성립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2가 성립하거나 하지 않는 것은 결과적으로는 우연(2가 그 자체 무가 아닌 것으로서 무에 대비되어 단적으로 존재, 즉 모순율을 통해 나타나기 때문에 2라는 그 존재의 까닭을 설명할 수는 없음)이다. 또한 2는 정적static이며 보탠다는 것은 동작, 운동인데 2를 보탠다는 것은 2에 대해 밖에서 주어진 운동이다. 2에 보탠다는 운동이 주어지냐 아니냐는 2에 대해 또한 순전히 우연적이다. 추상적 법칙이란 추상적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사건이다. 따라서 어떤 영원한 법칙이 미리 선험적으로 있다는 것은 얘기할 수 없다. 이런 까닭에 학문은 데이터에서 출발하지 어떤 이론에서 출발하지 않는다. 플라톤은 자신의 대화편을 전부 구체적인 고유 명사로 썼는데, 이 점에서 베르그송은 플라톤의 한 특수한 계승자로 간주될 수 있다. 구체적 데이터는 어떤 추상적 사고도 안 들어간 데이터지만 또한 존재론적으로 실재reality이다. 항상 확정된definite 것의 극한치까지 가야하며 확정성의 극한치에서 무한정성의 극한치까지 모두 보자는 것이 플라톤의 철학이다.
이제까지의 이야기는 서양철학의 주류가 무엇이냐 하는 것에 대한 반성이다. 플라톤과 유클리드 기하학 같은 정량적인 학은 이탈리아에서 오며, 형이상학도 마찬가지로 이탈리아에서 온다(파르메니데스). 그리고 서유럽에서 불란서는 로마 문화의 맏딸로서, 희랍 철학 이후 서양 철학의 정수는 불란서로 간다. 오귀스트 콩트가 실증 과학의 배열, 분류, 분할 등을 시작하고 베르그송은 이에 대해 또 질문하고 대답한다. 결국 서양의 실증 과학에 대응할 수 있는 이론은 베르그송에서 끝난다. 요컨대 플라톤이 말한 것처럼 사물을 정리할 수 있는 것은 시간이나 공간 둘 뿐인데, 플라톤은 둘 다를 놓고, 아리스토텔레스는 공간에서 형상 이론을 놓았으며 베르그송은 이를 시간에서 정리했다. 반복한 바와 같이 서양 철학의 주류는 데이터에서, 대상화된 것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경우가 예컨대 헤겔 같은 경우이다. 헤겔은 대상화된 세계에서의 모순율을 부정하기 때문에, 모순의 변증법을 다루는 <논리학> 같은 저서는 비합리주의적이다. 그러나 헤겔의 경우 그 주어진 상황에서 대상화된 세계를 조절하는 무의식의 세계에서 성립하는 자기의 동일성의 조절 능력이 주제라고 볼 수도 있다. 결국 단순히 어떤 철학이 좋냐 아니냐 하는 식의 논의는 무의미한 것이며, 모든 철학을 그 모든 측면에서 다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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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가게재습격 2010-11-07 2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엇, 박홍규 선생님께서 고별강연을 하셨나요? 생각해보니 박홍규선생님 책은 다른 책에서만 엿보고 실제로 읽어 본 것이 없네요.--;;; 글 잘 읽고 갑니당.(소화불량으로 남아있는 <철학을 위한 선언>을 다시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바라 2010-11-07 23:48   좋아요 0 | URL
아 고별강연은 <형이상학 강의> 1권에 실린 글입니다. 강연문이 너무 압축적이라 상당히 어려운데, 위 책 후반부에 네 차례에 걸쳐서 고별강연을 검토하고 토론하는 부분도 나오죠. 박홍규 전집 중 좀 더 재미있고 쉽게(?) 읽히는 책은 <형이상학 강의> 2권이더라구요. 일관되게 데이터에 근거한 철학을 강조하고 그런 의미에서 서양 형이상학의 두 축을 플라톤과 베르그손으로 보는.. 칸트, 헤겔 같은 독일 근대철학이나 현상학 등을 암체어 철학이라고 비판하고 프랑스철학의 실증주의적 측면을 상당히 높게 평가하지요. 저는 바디우를 잘 모르지만 그가 보는 플라톤하고 어떤 차이를 보일지도 궁금하네요. 바디우는 수학 박사이기도 하다던데..(뭐 일단 플라톤 자체를 보는 게 제일 중요하겠습니다만ㅋ)

빵가게재습격 2010-11-08 13:50   좋아요 0 | URL
암체어 철학...이거 웃으면 안되는데, 웃음이 나오네요.^^ 저는... 바디우에 대해 '아예' 모릅니다. 처음에는 <사도 바울>을 뒤적도적 하다가, 이해가 안 되니 그럼...하면서 <철학을 위한 선언>을 뒤적도적....아픔이 크더군요.--; <철학을...>에는 플라톤에 대한 언급이 자주 나오는데, 위 글과 겹치는 것이 많은 것 같아요.

바라 2010-11-09 01:38   좋아요 0 | URL
사실 한국의 서양철학 수용에서 현상학 등 독일 철학이 상당히 우세했던 것을 생각해보면, 박홍규 교수 식의 관점이 상당히 소수였던 것 같습니다. 물론 데카르트, 칸트, 헤겔 등의 철학이 순전히 소설이라는 얘기는 아니고, 형이상학이라면 자고로 실증 과학과 대결해야 한다는 것이겠지요. 인식론에 대해 논하고 싶으면 데카르트처럼 난로 근처 의자에 앉아 공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박홍규 교수는 피아제 같은 발달심리학 등을 자주 언급하더라구요. 현대철학에서 형이상학이 퇴조한 까닭이 자연과학의 발달 수준을 철학자들이 흡수하기 버거워진 것하고 무관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빵가게재습격 2010-11-09 09:22   좋아요 0 | URL
넵!^^

쟁쟁 2010-11-23 2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음.. 수학 공부를 열심히 해야겠군....ㅠㅠ

바라 2010-11-24 00:06   좋아요 0 | URL
난 이미 망한 듯 ㅠ

2010-12-08 13: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2-09 01: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2-13 16: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2-16 22: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보편적 환대라는 세계시민적 규범에 부응하는 정책이나 법을, 법제도와 담론적인 의지 및 여론 형성을 통해 만들어내야 하는 것은 각 나라 국민들 자신이다. 민주주의 국민의 정체성을 정의하는 것은 입헌적 자기창조의 진행형적 과정이다. 비록 우리가, 배제되는 자가 배제와 포함의 규칙을 정하는 데 참여하지 못한다는 역설을 결코 없앨 수는 없지만, 그래도 우리는 지속적이며 다중적인 민주적 반추 과정을 통해 이런 차이를 유연하고 협상 가능한 것으로 만들 수 있다.
우리 가운데 있는 이방인과 외국인, 타자를 어떻게 대우하느냐가 도덕적 양심뿐만 아니라 자유민주주의의 정치적 반성 역량을 테스트하는 시금석이 된다. 주권국가의 정체성을 정의내리는 것 자체가 유동적이고 개방적인 과정이며 공공적 토론을 통한 논란 끝에 만들어지는 것이다. 우리와 당신, 우리와 그들을 구별하는 경계는, 종종 검증되지 않는 편견의 결과이든지, 고대에 벌어졌던 전쟁, 역사적 부정의, 그리고 단순히 행정 명령에서 비롯한 경우가 많다. 그 모든 근대 민족국가의 시작은 어떤 폭력과 부정의의 씨앗을 안고 있으며, 이 점에서는 칼 슈미트가 옳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대 자유민주주의는, 국민을 주권자로 만듦과 동시에 이런 국민주권의 정당성을 기본적 인권 원칙의 고수에서 찾는 면에서 스스로를 한계 짓는 집합체이다. ‘우리, 국민’이라는 말은 바로 그 말 자체 속에 보편적 인권에 대한 존중과 국가적으로 경계 지어진 주권적 요청이라는 입헌적 모순을 담고 있는 내재적으로 위험한 문구다. 그것이 난민인지 아니면 이주 노동자인지, 망명객인지, 탐험가인지를 불문 / 하고 외국인과 이방인의 권리는, 반대로 ‘우리, 국민’의 정체성을 정의하고 타협시키며, 묶고 풀며, 또한 윤곽 짓고 유연하게 하는 바로 그런 문지방과 경계를 규정한다. 우리는 시민권에 대한 단일한 모델 즉, 한 영토에서의 거주와 국민 전체가 다소간 밀착된 하나이기에 단일한 행정이 집행되는 것이 옳다고 보는 그런 단일한 시민권 모델이 종언을 고하는 정치적 진화의 순간에 서 있다. 이런 모델이 종언을 고한다는 것이 그렇다고 지금 우리의 제도를 이끄는 정치적 생각이나 규범적 힘이 낡아버렸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이것은 우리가 이제 새로운 유형의 정치적 시민권에 걸맞는 정치적 행위와 주체의 형식을 구상해야 함을 뜻한다. 나는 이런 새로운 정치적 추세를 ‘민주적 반추’라는 개념으로 표현하고자 한다.
민주적 반추(democratic iteration) 개념을 통해 나는 보편주의적 권리 요구와 원칙들이 법적, 정치적 제도에서 뿐 아니라 시민사회적 친교에서 경합되고, 맥락화되며, 행사되거나 취소되고, 가정되거나 정립되는 그런 공공적인 복합적 토론 과정, 숙고, 의견 교환 과정을 총칭한다. 이런 민주적 반추는 공공적인 법제기구나 사법기구, 집행기구 차원에서 ‘강하게’ 이루어질 수도 있고, 비형식적으로 시민사회적 친교와 언론 등의 ‘약한’ 공공성 속에서 이루어질 수도 있다." (208~209) 

 

"되풀이의 구조는 ... 동일성과 차이를 동시에 함축한다. 가장 '순수한' 되풀이 - 하지만 이는 결코 순수하지 않다 - 는 그 자체 안에 자신을 되풀이로 구성하는 어떤 차이의 간극을 포함한다. 어떤 요소의 되풀이 (불)가능성은 자기 자신의 동일성을 선험적으로 분할한다. 심지어 이 동일성이 다른 요소들에 대한 차이화의 관계를 통해서만 자기 자신을 규정하거나 한정할 수 있다는 점, 따라서 이는 이러한 차이의 표시를 지니고 있다는 점은 고려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렇다"
Derrida, Limited Inc, Galilee, 1990, 105쪽. <법의 힘>의 용어해설(186~7)에서 재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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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1-02 18:3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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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1-03 01:1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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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문화주의라는 말의 유행과 더불어, 관용에 관한 담론은 1980년대 중반 이후 세계적 르네상스라고 부를 만큼 성행한다. 한국 역시 90년대 중반 이후 ‘똘레랑스’ 담론의 유행을 겪은 적이 있다. 이 책에서 웬디 브라운은 오늘날 관용이 자유주의적 제국주의의 도구로 작동하고, 야만이라는 수사나 서구의 위기 담론과 결합하는 방식, 폭력을 정당화하고 선동하는 방식에 대해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관용은 평등주의나 보편주의와 같은 자유주의 담론의 대리보충으로 작용하며(“추상적 시민권과 결합된 개인주의의 경계 설정 기능이 약화되고, 동질성에 기반한 평등이 정의의 원칙으로 기능하지 못하며, 차이의 탈정치화가 국가의 차원에서든 주체의 차원에서든 완전히 성취되지도 완전히 옹호되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관용은 평등의 확장이 아니라 평등의 대리보충으로서 등장한다. 대리보충으로서 관용은 다방면에서 평등을 보충하고 대리하며, 무엇보다도 평등이 그 자신의 이름으로 ‘진정한’ 평등을 이루지 못하는 순간 개입하여, 교묘하게 평등의 불완전성을 보완한다.” 125), 차이를 존재론적인 것으로 만듦으로써, 즉 차이를 물화시키고 자연화, 본질화시킴으로써 권력과 역사에 대한 담론을 차단시킨다(“관용은, 예컨대 ‘제도화된 인종주의’ 같은 불평등의 문제를 ‘상이한 행위와 믿음’의 문제로 전환시킴으로써, 관용해야 할 차이 자체를 생산해내는 불평등과 지배 문화의 작동을 은폐한다. 관용은 차이를 본질화하고 섹슈얼리티, 인종, 종족의 문제를 물신화함으로써, 섹슈얼리티, 종족, 인종이라고 불리는 차이들을 생산해 온 역사와 권력에 대해서는 침묵한다.”89). 관용은 이렇게 정치의 문제를 개인화하고 탈역사화, 탈정치화하며, 도덕적 상대주의를 부추긴다. 문명 담론으로서 관용 담론은 애초에 서구의 종교 갈등을 조정하기 위한 기능을 가졌지만, 오늘날 관용의 최초의 의미는 희박해졌으며, 비서구 사회에 대한 폭력을 은폐하는 역할을 한다. 요컨대, 관용은 오늘날 민족적이고 초민족적인 수준에서 작동하는 통치성의 한 방식이다. 문제는 관용에 대한 거부나 불관용의 지지가 아니라, 통치성의 한 방식으로서 관용 담론의 작동 방식을 이해하고, 이것이 갖는 탈정치적이고, 제국주의적인 효과들에 대해 싸워나가는 것이다. 여기까지가 책의 요지이다.
개인적으로 흥미롭게 읽었던 장은 4장인데, 이 장은 관용 담론이 이전 시대처럼 국가와 교회의 전유물이 아닌 통치성governmentality의 한 형태로 등장함을 다룬다. 오늘날 관용은 법과 무관한 것은 아니지만, 법적인 담론은 아니며 국가 담론인 동시에 대중 담론인 것이다. 이를 논증하기 위해 브라운은 푸코의 통치성에 대한 설명에 상당한 분량을 할애하는데, 이 부분은 푸코의 통치성에 대한 유용한 설명으로도 읽힐 수도 있다. 푸코에 따르면 통치는 법의 부과의 문제가 아니라 사물의 배치 문제, 전술들tactics을 적용하고 법 자체도 전술로서 활용하는 문제인 것이다("Governmentality", in The Foucault Effect, 95). 법적이면서 비법적인 담론, 교육적, 종교적, 사회적 담론으로서 관용 담론은 근대적 통치성의 핵심인 “전체화하면서 개별화하는”omnes et singulatim 효과(사목권력 : 왕이나 지도자를 양떼를 이끄는 목자로 비유한 고대 오리엔트 사회의 사목 개념과 서구의 정치 사상의 결합에 주목, ) 역시 갖는다. 푸코가 통치성이라는 개념에 관심을 갖는 것은, 1970년대 내내 그가 주목한 일련의 주제들, 주권 개념(죽음에 대한 권리를 가지고 살게 내버려두는 권력) 비판, 국가 이론 및 정치경제학에 기반한 권력 개념의 해체, 국가와 자본의 탈중심화, 규율 및 조절, 규범 등의 권력 분석, 억압 가설을 비판하고 근대적 주체의 생산을 분석하기, 생체권력(‘삶을 만들고 죽게 내버려 두는 권력’) 분석 등을 통합하는 것이다. 통치와 합리성을 결합시킨 통치성 개념은 제도와 지식에 의한 통치와 합리성 간의 근대적 결합을 묘사하는 것으로서, ‘행위의 지도’conduct of conduct와 관련된다. 통치성은 주체들의 신체, 욕구와 능력, 욕망 등을 관리하며, 광범위한 비가시적 권력들과 다양한 과학적, 종교적, 대중적 담론을 통해 작동한다.
브라운은 푸코의 통치성 개념이 갖는 유용성을 긍정하면서도, 근대 정치 권력에서 국가가 갖는 역할을 과소평가하는 오류를 범한다고 주장한다(142). 현대 국가는 한편으로 세계화로 인한 주권의 약화와 다른 한편으로 자신이 표방해왔던 보편성의 위기로 인해 곤란에 처해 있는데, 관용 담론은 이러한 위기에 처한 국가를 강화시키고 정당화하며, 국가 폭력을 정당화하는 역할을 하기도 하는 것이다. 푸코의 말처럼 “국가의 통치화”(“Governmentality", 103)가 문제라고 해도, 국가는 여전히 정치적 정당성의 핵심 기반으로 남아있기 때문이다(142). 그러나 푸코는 제도에 종속된 이들이 제도에 부여하는 정치적 정당성의 문제에 주목하지 않았으며(푸코가 정치적 정당성의 문제를 간과한 것은 이데올로기 개념에 대한 그의 부정적 입장 때문이다. 진리의 생산은 권력의 전제 조건이며, 우리는 진리에 철저히 종속되어있다는 것이다. “Two Lectures", Power/Knowledge, 93~94. 또한 푸코는 권력을 이론화하면서 의식과 주체성의 문제를 전면에 내세우지 않으며, 이 점에서 심리학적 행동주의와 몇몇 수렴하는 부분을 갖는다) 통치성에 대한 설명에서도 정당성의 문제는 누락되어 있다(143). 명시적으로 브라운이 그렇게 한 것은 아니지만 의식, 정당성, 주체성의 문제가 푸코에서 누락되었음을 지적하면서, 그녀는 푸코에서 이데올로기의 문제가 부재함을 드러낸다.
따라서 “통치성에 대한 완전한 설명은, 주체의 생산, 조직, 동원뿐 아니라, 이러한 행위를 정당화하는 문제까지 포함하는 것이어야 한다. 국가는 정치권력의 장에서 여전히 이러한 정당화의 문제를 책임지는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144) 국가에 의한 관용 담론은 이 점에서 국가 정당성의 결핍 상황, 국가가 보편적 재현을 체현할 수 없는 현실에 대한 대응책이기도 한 것이다(144). 제1의 시민덕목으로서 관용은 수동적인 시민상을 옹호하고, 사회적 삶을 혐오를 제어할 줄 아는 고립된 개인 및 집단의 상호작용으로 축소시킨다(150). 관용은 증오를 해소하는 것이 아니라 범죄 발생을 막기 위한 미봉책이 된다. 더 나아가 관용은 “차이를 자연화/사사화함으로써 차이를 구성하는 사회적 권력에 대해서는 침묵한다. (...) 갈등을 개인화/사사화하고, 개인화와 탈연대를 지향하는 관용의 움직임은, 정치적인 것에 대한 공포를 조장”(153)한다. 이처럼 차이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관용 담론 속에서, 차이는 영구적인 것은 아닐지라도 쉽게 변하지 않는 것으로 간주되고 만다. 가령 “오늘날 대중 정치 담론 속에서, 이성애 여성은 평등의 후보자가 되는 반면, 레즈비언 여성은 관용의 대상”(130)이 되며, “국가는 평등한 대우와 평등한 보호에 대한 요구를 관용으로 대체해 버림으로써, 시민의 자유를 보장하고 그것의 평등한 향유를 위해 노력해야 하는 자신의 임무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170)
이어지는 6장에서 브라운은 문명과 야만의 구분이 관용 담론에 연루되는 방식을 탐구함으로써 관용의 자유주의, 외견상의 보편주의가 그 이면으로 갖는 제국주의적이고 식민주의적인 성격을 잘 보여준다. 어떤 문화는 관용적인 성격을 가진 것이고, 다른 문화들은 불관용적이고 근본적인 것으로 간주되는 것이 관용 담론의 속성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비자유주의 세계의 사람들은 문화에 지배되고, 자유주의 세계의 사람들은 문화를 소유한다. 이러한 담론은 개인의 도덕적 자율성 대 문화라는 대립 구도를 설정하고 자유주의없이 개인의 도덕적 자율성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245). 데카르트, 로크, 칸트, 롤즈와 하버마스에 이르기까지 자유주의적 관점에서 합리성은 문화적 장소를 초월해서 존재하며, 합리성을 문화나 주체성과 분리시킴으로써, 자유주의 담론은 개인이 자신의 사고방식을 선택할 수 있음을 주장한다(247). 이처럼 합리성과 의지를 가진 개인이라는 자유주의적 정식화는 그 자체로 합리성과 의지의 영역에서 미성숙한 반대항을 함축한다. 이러한 입장에 따르면, 관용은 자율성이라는 선을 증진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는 동시에, 역으로 자율성을 가진 개인들에 의해서만 행해지는 미덕이 된다. 관용은 “자신이 증진시키고자 하는 것을, 이미 그 전제로 삼고 있는 셈이다. 동시에 이는 비개인화된 비자유주의적 주체는, 관용을 행할 능력이 없다는 것을 의미”(250)하기도 하는 것이다. 자유주의의 참조점은 가장 주되게는 물론 칸트이지만, 브라운은 “관용적인 자유주의적 자아와 불관용적인 유기체적 타자라는 이데올로기적 대립구도”(251)를 프로이트를 통해서 살펴본다.
프로이트에 따르면, 집단적 정체성은 개인화된 정신의 반대라기보다는 성숙함으로부터의 퇴행이며 비합리적이고 위험한 것이다. 프로이트의 작업은 “성숙-개인-양심-억압-문명 대 유아스러움-원시-충동-본능-야만의 대립 구도, 즉 현대의 관용 담론에도 스며들어 있는 지극히 단순한 대립 구도”(254)에 기반해 있다. 철저히 방법론적 개인주의에 입각한 프로이트에 따르면 개인이 집단을 이루기 위해서는 인간을 하나로 묶는 추동, 에로스를 통해 개인 간의 경쟁과 원자화가 극복되어야 한다. 그런데 단순히 잡단의 유대가 구성원 상호 간의 사랑으로부터 도출될 수는 없는데, 고슴도치 콤플렉스와 같은 사랑의 양가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왜 이러한 지나친 근접성과 고립이라는 두 위험 사이의 동요가 안정적인 친밀함으로 대체되는가? 이는 집단 내부의 에로스라기보다는 우리를 리비도 차원에서 결합시켜주는 집단 외부의 지도자나 이상에서 찾을 수 있다. 집단은 집단 외부의 어떤 것에 대한 사랑과 이상화를 통해 구성원들이 서로를 동일시함으로써 형성된다는 것이다(259). 자아의 나르시시즘적 만족에서 시작된 사랑하는 대상화의 이상화는 종종 극단으로 나아가기도 하며, 이렇게 이상화된 대상이 자아이상을 대체하고 자아를 흡수함으로써 개인의 도덕적 분별력은 붕괴할 수 있다. 즉 집단은 개개인의 자아이상이 공통의 대상에 의해 대체되는 한에서, 공고하게 유지된다. 이러한 응집을 통해 집단은 공통의 나를 만들어내며, 이는 사회계약만으로는 이룰 수 없는 상태이다(이러한 공통의 나commune moi의 구성은 루소의 사회계약 모델에서도 의도되었던 것이며, 루소 역시 시민종교를 사회계약의 필수적인 보충물로 생각한다).
이와 같은 집단 구성에 관한 프로이트의 이론은 파시즘이나 민족주의를 설명하는 데에도 활용될 수 있으나, 이 이론의 전제들은 오늘날 유기체적 사회를 위험과 불관용에 등치시키는 자유주의적 설명틀, 관용 담론에도 동일하게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264). 관용 담론은 비자유주의 국가와 자유주의 국가를 나누고, 전자를 원시 상태로의 퇴행으로 간주하고 후자를 성숙한 자기 규제적 개인이 가능한 사회로 간주한다. 이는 문화에 선행하고 문화로부터 자율성을 가진 원자론적 주체를 전제하며, 개인의 자율성과 문명을 위협하는 집단 정체성을 억제하고 규제해야 한다는 입장을 함축한다. 문명 담론과 결합된 관용의 통치성은 유기체적이고 비서구적이고 비자유주의적인 타자를 제어하는 기능을 하는 것이다(268).
결론적으로, 우리가 관용 담론에 맞서 선택해야 할 대안은 물론 자유주의를 단순히 거부하는 것이 아니다. 자유주의의 문화적이고 종교적인 차원을 성찰하고, 자유주의가 자신의 타자로 삼아왔던 것들과 조우함으로써 자유주의 자체가 변환될 가능성을 개방해야 하는 것이다. 이는 도덕적 자율성과 유기체, 세속주의와 근본주의와 같은 허구적 대당을 해체하고, 자유주의의 제국주의적이고 식민주의적인 부분을 억제하여 자유주의 내에 항상 존재하는 혼종성을 의식하고 또 수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브라운은 우리로 하여금 자유주의적 관용 담론의 탈정치화를 넘어서 정치적인 것을 새롭게 실천해나갈 것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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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의 세 개념 : 해방, 변혁, 시빌리테

 

 

 

 

 

 

1. 들어가며

 정치를 사고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세 가지 변별되는 개념이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정치의 첫 번째 개념은 정치의 자율성(autonomie)이라고 불리며, 이는 해방(émancipation)이라는 형상에 대응된다. 정치의 두 번째 개념은 정치의 타율성(hétéronomie), 즉 구조적이고 정세적인 조건들에 관련된 정치로서, 이는 변혁(transformation)이라는 형상에 대응된다. 이 두 번째 개념의 아포리아로부터 세 번째 개념이 도입되는데, 이는 타율성의 타율성이다. 이 개념은 정치가 의존하는 조건들이 결코 최종심급(dernière instance)이 아님을 보여주며, 반대로 이 조건들을 결정적이게 하는 것은 조건들이 주체를 낳는 방식, 또는 조건들이 주체에 의해 경험되는 방식임을 보여준다. 주체는 자신에게 부과되거나 스스로 창조하는 동일성에 따라 행동한다. 동일성들, 소속들, 그리고 단절(rupture)의 상상적인 것(l'imaginaire)은 조건들의 조건이다. 이는 정치의 자율성과 타율성의 효과들이 설치되는 또 다른 장면/무대(scene)과도 같다. 해방이나 변혁으로 환원불가능한 하나의 정치가 이에 조응하며 나는 이것의 윤리적 지평을 시빌리테(civilité)라고 특징짓는다.  

 

 

2. 정치의 자율성 : 해방

 정치(la politique)의 자율성은 정치적인 것(le politique)의 자율성이 아니다. 정치는 내포적(intensive)이라고 할 권리의 보편성을 정치가 참조할 때, 정치가 어떻게 정의되는지를 이해하는 문제이다. 정치의 자율성은 집단(인민, 민족, 사회, 국가...)이 구성원들의 자연적이거나 초월적인 권위로의 예속화(assujetisement) 및 제약, 차별의 확립에 기초할 수 없다는 것을 표현하기 때문이다. 해방의 정치에서 가장 결정적인 언표행위 중 하나인 1789년의 「인간과 시민의 권리 선언」에서 자율성 선포의 전형적인 정식화는 평등-자유(égaliberté) 명제이다. 즉 자유 없이는 평등도 없으며 평등 없이는 자유도 없다. 평등한 자유라는 명제는 논박(elenchos)이라 불리는 논리적 형식, 어느 명제의 부정이 곧 자기 반박으로 귀착되는 논리적 형식을 갖는다. 평등한 자유는 무제약적(inconditionée)이며 이는 다음의 두 가지 결과에 의해 구체적으로 표현된다.

 먼저 정치란 우선 권리에서 자유롭고 평등한 시민들의 총체인 인민(peuple/demos)의 자기결정의 전개이다. 정치적 주체가 처해 있는 조건들이나 자유와 평등에 가해지는 제약은 그 자체로 부당한 것으로 그것의 폐지는 즉각 요구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인민을 스스로에게서, 즉 자신의 고유한 자율성으로부터 분리하는 것을 제거하는 것이 문제이다. 이는 모든 지배에 맞선 인민 자신의 민주주의 쟁취의 조건이며, 인민 자신의 책임이다. 다음으로 이 명제의 무제약적 형식은 또한 호혜성의 조항(clause de réciprocité)이라 부를 또 다른 명제를 초래한다. 이 명제는 정치에 대한 보편적 권리를 표현한다. 어떤 사람도 외적인, 일방적 결정이나 시혜에 의해 해방될 수 없고 오직 호혜적으로만, 상호 인정에 의해서만 그렇게 될 수 있다. 평등한 자유는 정의상 개인들의 권리들이지만, 이는 집단적으로 쟁취되어야 한다. 이러한 권리들의 본질은 개인들이 서로에게 부여하고 보장하는 권리라는 것이다. 정치의 자율성은, 시민권 외에는 기원도 목적도 갖지 않는 하나의 과정을 표현한다는 점에서 정치의 주체의 자율성 없이는 인식될 수 없다. 이때 정치의 주체의 자율성은 인민을 구성하는 개인들의 근본적 권리들을 서로에게 부여함과 동시에 인민이 스스로 만들어진다(se faire)는 사실을 의미한다. 즉 주체들이 서로를 위해 해방의 궁극적 원천 및 준거가 되는 한에서 정치의 자율성이 가능하다. 정치의 주체들은 보편적인 것, 즉 정의상 스스로가 그 속에 함축된 것으로 나타나는 보편적인 것의 담지자들이다. 시민이기 위해서는 조건없이(ohne Eigenschaften) 인간인 것으로 충분하다.

 그러나 이것들이 모순과 아포리아로 가득 차 있는 것도 사실이다. 특히 스스로를 대표하고 보편적인 것의 대변인(porte-parole)이 된다는 관념의 경우가 그러한데, 말(parole)이 또한 하나의 권력 관계일 때부터 그렇다. 랑시에르는 󰡔불화󰡕에서 진정한 아포리아와 변증법의 측면들 가운데 하나를 분석했다. 그는 영속적으로 치안적 논리에 대립하여 평등주의적 논리를 내세우는 바른 정치가 ‘몫이 없는 부분’(part des sans part)의 구축에 있다고 본다. 그러나 계쟁(litige)없이 민주적 정치가 없다면, 민주적 정치란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귀결될 수 있다.1) 왜냐하면 몫이 없는 자들(또는 무소유자들)은 정치(de) 주체도 될 수 없고, 정치 내의(dans) 주체도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발본적인 의미의 몫이 없는 자들은 따라서 전체일 수도 부분일 수도 없다(ni tout ni partie). 정치의 가능성의 조건인 그들[몫이 없는 자들]의 실존은 동시에 불가능성의 조건이다.

 이러한 곤란은 역사적으로 전위된다. 비-배제는 법적 사실로서 자율성의 최초의 유일한 언표행위 속에 있다기보다는, 그 언표행위가 새로운 부정을 통해 포함하게 되는 사후성(après-coup) 속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자율성은 사회의 한 부분이 정치에 대한 보편적 권리로부터 배제된 것(능동 시민과 수동 시민, 다수자와 소수자의 대립)이 명백해질 때 정치가 된다. 이러한 부분은 시민권의 가장 능동적인 대변자로 스스로를 제시하며, 자신의 해방을 일반적 해방의 기준으로 행사할 수 있는 분파, 즉 프롤레타리아들, 여성들, 유색인들, 성적 소수자들이다. 이러한 예들은 모든 해방의 역사가 이미 선언된 권리들의 향유를 위한 실제적 투쟁의 역사라는 것을 보여준다. 요컨대 시민권의 부인에 맞선 전투는 해방의 정치의 생명이다. 물론 이는 복잡성과 근본적인 양가성을 수반한다.

 먼저 평등한 자유라는 명제의 진리에 호소하는 피지배자들, 정치로부터 배제된 자들의 편에 양가성이 있다. 그들은 인민의 인민으로 스스로를 제시하거나 보편계급으로 스스로를 제시할 필요가 있다. 자율성의 정치가 자신의 편에서 부정의 부정, 즉 하나의 절대로 나타나야만 하는 것은 정치의 자율성이 우선 하나의 부정(négation)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정치와 그 주체들의 이상화는 그것들을 정초하는 이상성(idéalité)의 맞짝이다. 이러한 이상화는 지배어들(maître mots)의 지명 및 창조에 의해 표현되며, 지배어들이 갖는 상상적 포획의 힘은 그것들이 기원적으로 발본적인 부정성 및 정치적 능력(capacité politique)의 실질적인 대리(représentation)의 거부를 표현해온 만큼 더욱 커진다(인민, 프롤레타리아트, 여성, 이방인). 다음으로 이러한 양가성은 지배자들의 편에서 여전히 다른 측면을 지닌다. 모든 민주적 정치가 노예도덕을 표현한다고 설명하는 니체를 따라가 보자면, 여기서 중요한 것은 헤게모니 및 합의 제조의 메커니즘을 폭로하는 계보학이다. 마르크스가 본 것처럼 기존 질서의 지배는 그 질서가 갖는 원칙의 이데올로기적 보편화에 상당히 의존한다. 그러나 마르크스가 본 것과 달리 지배적 관념들은 피지배자들의 관념들이다. 헤게모니적 지배의 담론은 사실상의 차별로부터 권리의 평등으로 그 담론을 소환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이제 모든 항의들은 기존질서의 불의 앞에서 원칙의 동일성에 호소함으로써 정당화된다. 이 때문에 극한에서는 주어진 조건정치의 창립(institution)을 배제된 자들의 권리로 선언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이러한 양가성은 앞의 양가성과 마찬가지로 정치가 인간 해방과 시민권을 개념으로 갖는 한 사라지지 않는다.      

 

 

3. 정치의 타율성 : 변혁

 “인간은 직접적으로 이미 주어진 조건 속에서 자기 자신의 역사를 만든다”(󰡔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는 언명은 정치의 타율성 개념 또는 현세(Diesseits)의 정치가 무엇인지 보여준다. 마르크스는 정치의 자율성 개념과 타율성 개념의 양립불가능성을 보기보다는, 오히려 양자를 단일한 시나리오로 통합하려고 시도했다. 마르크스는, 민주주의야말로 모든 헌정의 진리라고 여겼으며, 프롤레타리아트야말로 자신의 해방이 전인류의 해방의 시금석이 되는 보편계급이라고 여겼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가 정치의 타율성의 발본적 관념(conception)을 해명하고 자코뱅주의의 가정들을 역전시켰다는 사실이다. 정치는 개인들과 집단들이 그 안으로 들어가는 결정된 조건들(Umständen, Bedingungen) 속에서만 또는 하에서만 존재한다. 이러한 조건들은 정치를 폐지하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 정치의 타율성의 유일한 모델이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이단점 주변에서 서로 대립하는 복수의 모델들이 있다는 것이다. 타율적인 정치라는 관념이 사라지지 않으면서, 물질적 조건들이라는 통념(notion) 자체가 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령 규율 사회, 권력의 미시물리학, 통치성 연구에 이르기까지 푸코의 주제들이 본보기가 된다.

 마르크스에서 출발하여 두 가지 예비조건을 설정해보자. 우선 마르크스가 사고한 정치의 진리는 정치의 재료를 형성하고 이것을 스스로 물질적 활동으로 구성하는 조건 및 대상에 대해 정치가 맺고 있는 관계 속에서 찾아야 한다. 이는 정치의 주체들(인민)의 자율성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며, 마르크스는 주체들의 자율성을 자신의 고유한 운동의 전제가 아닌 결과로 표현한다.2) 마르크스의 정치는 자유의 필연적 생성이라는 시각에 기입된다. 평등한 자유가 권리들을 초월적인 기원으로 돌려보내면서 권리들의 보편성을 전제한다면, 마르크스의 정치적 실천은 자유의 필연성, 인민의 자율성의 필연성을 자신의 결과로 생산하는 조건들의 내적 변혁이다. 둘째로 정치의 조건들은 역사의 토대나 경제적 구조로 특징지어진다. 마르크스는 역사의 경제적 토대를 보편화하고, 노동의 인간학을 택했다. 이러한 의미의 경제는 전형적으로 정치의 타자, 정치의 절대적 외부이다. 따라서 정치의 현실성을 사고하기 위해서는 정치와 정치의 타자를 단락(court-circuiter)시킬 필요가 있다. 정치의 현실성은 혁명적 정치로서, 경제적 모순들의 발전과 다른 것이 아니다. 정치(la politique)는 이러한 제도의 비정치적인 조건들(따라서 최종심에서 현저히 정치적인), 즉 경제적 모순들로 소급해야 한다. 마르크스주의라는 모델 위에서, 새로운 사회운동들과 관련하여 경제만큼 결정적인 외적 역사적 조건들 역시 존재한다. 가족 구조, 가부장제 구조, 성적 지배관계, 상징적 자본의 구조(부르디외) 등등.

 마르크스의 정리(théorèmes) : 첫째, 조건들이란 현실적으로 사회적 관계들(rapports sociaux)이다. 곧 조건들은 자신의 모순들 자체를 대가로 해서 규칙적으로 재생산되는(생산, 소비, 교환, 법, 문화, 이데올로기적 실천들) 관개체적 실천들의 객관적 총화(ensemble) 속에 있다. 둘째, 사회적 관계들은 경제적 관계들이다. 그러나 경제적 관계들은 그것의 편에서는 사회적 관계들이다. 정치의 사회적 조건들에 관한 모든 분석은 그 조건들이 발휘하는 구조적 인과성과 그것들이 생산하는 사회효과(effet de société)를 동시에 분명히 드러내야 한다. 마르크스의 경우 이러한 원인과 효과의 구조는 자본의 생산 및 재생산 과정과 그 동역학(dynamique)이다. 생산 수단의 사적 소유는 이 과정의 함수로서, 마르크스의 야심은 임금노동 착취 과정이라는 동일한 기초 구조가 경제적 공동체와 동시에 국가 형태의 맹아를 구성하고, 역사 전반에 걸친 두 형태 사이의 의존 관계 및 상관 관계의 맹아를 구성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셋째, 사회적 관계들(조건들)은 역사를 갖는다. 이 역사의 의미는 경제적 과정의 동역학에 의해 설명된다. 정치적 실천은 항상 이미 이 변화의 도정에 삽입되며, 사회의 자본주의적 구조는 변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정치는 조건들의 단순한 변화가 아니라, 변화 속의 변화 또는 변화의 미분3)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정치는 주체 없는 것이 아니다(주체없는 것은 역사이다). 모든 정치 개념은 각각 종별적인(spécifique) 주체 개념을 함축한다. 문제는 정치의 타율성에 연계된 주체 개념의 곤란들을 보는 것이다. 헤겔의 직접적 상속자로서 마르크스의 경우, 정치적 주체라는 관념은 즉각 모순 관념에 준거한다. 주체화(subjectivation)는 변화가 변화하는 지점에서 생산되는 집단적 개인화이다. 문제는 유일하고 동일한 현실이기 때문에, 이때 객관적 반경향의 형성과 주체화의 운동 중 무엇이 먼저냐고 묻는 것은 우스운 일이다. 마르크스는 자본의 역량(puissance)이 그것 자체가 야기하는 저항의 규모를 먹고 자랄 뿐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경향과 반경향이 서로 싸우는 모순의 운동은 끝없는 나선이며, 이는 정치의 관점에서 이 운동이 주체화와 탈주체화(désubjectivation)의 국면들을 부단히 통과한다는 의미이다. 물론 모순적 경향들의 변증법의 기초는 권력쟁취가 아니며, 오히려 자본주의적 축적에 함축되어 있는 적대적인 사회적 양식들의 갈라짐(dissociation)이다. 이것들은 자본주의적 축적 속에서 서로에게 맞서 발전한다. 한편으로 마르크스가 노동력의 실질적 포섭이라고 부른 사회화 양식이 있고, 다른 편에는 그가 ‘생산자들의 자유로운 연합’이라 부른 사회화 양식이 있다. 이 관계의 근본 요점은 그것이 하나의 갈라짐의 문제라는 것, 본질적으로 동일한 개인들을 변용(affecter)시키거나 자신에 반한 선택을 하도록 하는 양립 불가능한 실존 양식들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정치의 타율성과 인민의 자율화 사이의 연결고리가 재발견된다. 요컨대 마르크스가 이론화한 바의 정치는 구조적 조건들의 총화가 끼치는 효과들의 가변성을 묘사하면서 이러한 갖가지 실천 양태들을 연결하는 주체화의 한 도정이다.  

 이제 가장 역설적이고 또 가장 계발적인 대조, 푸코의 몇몇 이론화들과 대조해보자(권력 관계들에 입각해서 제도들을 분석할 필요가 있다. 권력관계는 행위들에 대한 행위의 한 양식이며 사회적 연계 속에 깊이 뿌리내린다. 정치적 과제는 권력관계들과 자유의 자동사적 성격 간의 갈등에 대한 분석, 가공, 문제제기이다). 그는 마르크스의 존재론에 대해 일종의 전도를 행하면서, 마찬가지로 조건들과 변혁이라는 단어에 중심적인 자리를 부여한다. 푸코의 이론화에서 흥미로운 것은 조건들과 변혁 간의 거리가 최소화되고, 서로 동시적인 것이 된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푸코는 정치에서 제도들, 거대 실체들, 거대 기계들(국가, 당, 계급)의 독점을 제거하고자 할 때에조차 그 어느 때보다도 더 정치의 지평으로서 역사와 사회에 관해 지속적으로 말한다. 사회는 서로 조건짓고 변혁하는 행위들의 복합체이다. 어떤 행위도 다른 행위의 실행의 새로운 조건들을 창조하지 않으면서 다른 행위를 변혁할 수 없으며, 어떤 행위도 다른 행위의 담지자의 자유를 변혁하지 않으면서 그것을 조건지을 수는 없다. 또한 개인들은 이러한 복합체의 모든 독특성들(singularités), 이러한 독특성들 모두에 연결된 육체들이다. 역사적 갈등은 항상 이미 권력관계들에 본래적이다.  

 푸코가 정치를 구성하는 방식은 정치의 자율성의 재구성과는 무관하다. 다소 안정된 사회적 형식들, 행위의 규범들은 구성되는 반면, 권력관계는 진정으로 구성하는 것(constituante)이다. 권력관계는 결코 하나의 의지나 의지들의 대결로서 사고되지 않는다. 이는 푸코가 육체들에 대한 준거(référence)를 개인성의 궁극적 지시대상(référent)으로 기능하도록 만드는 방식에 관련된다. 권력관계와 예속화는 지배와 예속(법의 부과)의 견지에서 해석되는 것이 아니라, 육체들을 형성하고 어떤 행위들(action)에 배치하는 물질적이고 정신적인 기술들(technologies)로 해석되는 방식에 관련된다. 정치적 행위들은 이제 전략들(stratégies)의 견지에서 사고되어야 한다. 이는 상대편 개인성의 반작용들을 예측가능하고 통제가능하도록 육체적 성향들을 변형(transformation)하는 것에 관한 일반적 도식이다. 이는 국지적이고 일시적인 형상 및 장기간 지속되는 사회적 구조에도 통합될 수 있으나 그 효력의 원리는 항상 미시정치적(micro-politique)이다.

 그런데 그는 한 가지 곤란에 이르게 된다. 결정적인 것은 저항(résistance)이라는 통념이다. 모든 권력은 저항을 전제하지만, 권력관계가 또 하나의 지배관계가 될 때 ‘자유의 자유화’가 취할 수 있는 형식은 이러한 사실로부터 명확하게 귀결되지 않는다. 여기서는 저항들의 우연적 생성에 관해 생각하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권력관계들에 관한 푸코의 분석은 역전불가능하고 절대적인 권력관계들의 비대칭성이라는 질문에 의해 어떤 한계에 부딪힌다. 무엇보다 극단적 상황들이라는 문제, 그 속에서 주체들의 개인화로서 권력의 기술들이 총괄적인(global) 하나의 적대에 자리를 양보할 뿐 아니라, 죽음의 질서 및 파괴의 질서 속에서 발휘되는 벌거벗은 힘에 자리를 양보하는 상황들의 문제가 있다. 생명만이 통치될 수 있고 훈육될 수 있지만, 여기서 제기되는 질문은 다양한 형태의 절멸(extermination)의 실천들이라는 질문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지배(domination)의 뿌리 깊은 구조들이라는 질문이 또 있다(권력관계들은 지배의 상태와는 다른 것으로, 한 개인 또는 사회집단이 권력관계들의 장을 가로막고, 이를 유동성없고 고정된 것으로 만들어 운동의 모든 역전가능성을 막는데 이를 때 우리는 지배의 상태와 대면한다. 권력관계들 속에는 필연적으로 저항의 가능성이 있다. 저항의 가능성이 없다면 권력관계들도 없다. 권력관계들이 있다면 이는 도처에 자유가 있기 때문이다. 지배의 경우들에 문제는 사실 저항이 어디에서 형성될 것인가 하는 것이다). 푸코는 권력관계들의 비대칭성이 역전이나 전위의 즉각적 가능성에 항상 준거하는 전략적 현재라는 시간을 잡아 늘리도록 강제된다. 구조들(제약, 법, 규범의 질서)이 나타났는데, 이 구조들로부터 주체는 분리되어 있고, 이 구조들은 육체의 친밀함 속에서까지 주체들이 통제할 수 없는 방식으로 권력을 고정시킨다. 이 구조들에 대해 푸코는 단지 사회운동들에 대한 고전적인 호소에 의존할 뿐이다. 푸코의 유일한 독창성은 사회운동들의 범위가 사회 속에서 형성될 수 있는 지배관계들 전체의 범위와 동연장적이고, 그 운동들은 어떤 미리 설정된 조직형태도 갖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뿐이다. 마침내 갈수록 푸코의 관심을 독점하는 것은 자기의 기술들(techniques de soi)에 대한 분석인데, 이는 또 다시 곤란의 장소이다. 저항의 관념은 자기에 대한 자기의 관계가 어떻게 변화하는가 하는 질문으로 돌아가고 이는 무한퇴행에 연루될 수 있기 때문이다.4) 이로부터 푸코는 더 이상 권력을 분석하지 않고, 개인의 자기와 그것의 생산 또는 창조의 양식(자기의 미학)을 분석하고자 한다. 이 스토아적 영감의 운동은 지배의 양태가 우리에게 의존하는 것에 의해 여전히 결정되는지를 아는 것에 가깝다.

 이러한 운동은 최종분석에서 미완성이고 열려있으며, 아포리아적이다. 이 아포리아는 자기 또는 개인성의 통념들에 관련되며, 푸코는 이를 비판적으로 가공하지 않고 단지 경험적이고 동시에 절충적인 방식으로 취했다. 그러나 가장 흥미로운 것은 푸코의 아포리아와 마르크스의 아포리아를 나란히 놓는 것이다. 이 곤란들은 대립되는 것이지만 변혁이라는 중심적 관념에 본래적인 두 곤란들이다. 마르크스는 생산의 사회적 관계들을 정치적 실천의 외적 조건들로 놓는 동시에 그 속에서 정치적 실천의 혁명적 분열과정이 발전되는 요소로 간주함으로써, 세계의 변혁(Veränderung der Welt)을 조건들의 총체를 포괄하는 유효한 변혁 전체의 궁극적 지평으로 제시한다. 세계의 변혁은 세계적 정치와 세계적인 정치적 주체의 출현을 가정한다. 이러한 통념은 모순들의 역사적 발전이라는 의미에서가 아니라 실천이성의 이율배반들에 대한 칸트적 비판이라는 의미에서 변증법적이다. 변혁 개념은 단지 우리를 무한퇴행 속에 연루시키고, 이는 세계가 실제로 세계화(지구화)된 것으로 드러날 때부터 완전히 가시적이 된다. 반대로 푸코는 자기라는 질문 및 그것의 구성에 관한 질문을 의식과 실체의 지반으로부터 육체성(corporéité)이라는 지반으로, 따라서 금욕(ascesis)이라는 지반으로 전위시키면서, 이러한 배리(paralogisme)를 다른 형태로 되풀이한다. 그가 자기에 대한 자기의 노동을 수동적인 것으로 만듦과 동시에 능동적인 것으로 만든 한에서 말이다. 이러한 이중구속의 상황은 마르크스의 것만큼이나 칸트적 의미에서 변증법적이다. 이로부터 (주기적으로 부인되는) 숙명주의와 사실상의 주의주의 간의 잠재적 진동이 유래하며, 이때 니체에 대한 준거는 중화제(correctif)의 역할을 하지 않는다.5) 물론 변혁이라는 관념의 발본적 정식화가 아포리아에 부딪힌다는 사실 때문에 변혁 관념 자체가 자격박탈이 되는 것은 아니며, 반대로 그러한 사실은 영속적 발명의 원동력이다. 이러한 관념이 진정한 불가능성에 직면하기 위해서는 또 다른 장면을 지나가야 한다.

 

 

4. 타율성의 타율성 : 시빌리테의 문제

 푸코가 정치를 후면에서 공격하는 문제들이라고 부른 것, 그것은 어떤 의미에서 가장 시급한 문제들이다. 이는 폭력(과 잔혹), 동일성(과 동일성의 정치), 합리성과 보편성의 도착적 효과들(effets pervers)에 의해 발생한다. 우선 종족 정화에 관한 페티 벤슬라마의 텍스트(이방인의 이방성은 그가 다르다거나 그가 다른 곳에서 왔다는 사실에서 비롯되지 않는다. 오히려 문제는 그가 너무 가깝고 친숙하고 자기와 분리할 수 없도록 섞여 있는 어떤 자라는 것이다. 동일성과 관련된 병으로 인한 모든 파괴는 정확히 이러한 조건에서 유래하며, 고유한 것의 재영유는 모든 정화의 슬로건이다. 이러한 증오는 적에게 승리를 거두려는 것이 아니라 마치 자신의 육체의 표상에 섞여 있는 이방의 육체와 육체의 이방성을 근절하려는 절단과 절멸의 실천이다. 그만큼 동일자와 타자는 밀접히 섞여 있다)와 들뢰즈와 가타리의 텍스트(남성은 다수적이고 생성들은 소수적이며 모든 생성은 소수자-되기이다. 다수성은 어떤 표준, 남성-어른-백인-인간 등을 뜻한다. 생성이나 과정으로서 소수와 집합이나 상태로서의 소수성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 생성 속에서 우리는 탈영토화되며, 흑인 조차 흑인이 되어야 하며, 여성들조차 여성이 되어야 한다. 파시스트가 되지 않으려면 흑인-되기 외에 다른 선택은 없다)에서 출발해보자. 첫째로 폭력의 문제와 동일성의 문제의 융합에 의해 구성되는 수수께끼의 항들을 정확히 해야 하는데, 이는 정치에서 타율성의 타율성으로 돌아가게 한다. 둘째, 동일성들의 폭력 자체를 대상으로 하는 정치를 특징짓기 위해 시빌리테라는 개념을 시험할 것이다.

 폭력을 그 극단적인 형태들, 즉 초자연주의적이고 초객관적이며 초주체적인 형태들, 지향성의 발작들 사이에서 영속적으로 진동하는 잔혹(cruauté)의 형태에서 고려해보자. 오질비는 최근 자연적인 것과 사회적인 것 사이의 경계가 말소되는 것처럼 보이는 폭력의 종별적으로 현대적인 새로운 형상들에 대한 질문을 제기했다. 그는 일회용 인간의 생산, 인간 자재 착취, 잉여 인구들을 죽도록 방치하는 절멸(전염병들, 집단학살들, 자연재해 등)의 예를 든다. 이러한 비주체성(a-subjectivité)의 환상적 압력과 함께 우리는 푸코가 이론화한 모든 권력관계의 정반대 편에 와 있다. 또한 우리는 정치에 대한 권리의 요구가 우스꽝스러운 것이 되어버린 상황에 있다. 희생자들이 자신들을 해방시키면서 인류를 해방시킬 수 있는 정치적 주체로 직접 스스로를 사고하고 제시할 수 있는 어떤 가능성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구조적 폭력은 체계의 재생산과 양립불가능한 저항들을 파괴하는, 사회적 관계들에 본래적인 억압이다. 그러나 비기능적이지만 세계경제의 계획 속에 기입되어 있는 수백만의 총체적 제거와 함께, 우리는 구조적 폭력의 한계를 넘어섰고, 구조의 재생산 전체를 초과하는 객관적 잔혹의 일상성 안으로 진입했다.

 폭력의 초객관적 형태들, "주소없는 폭력들"(오질비)의 일반화, 폭력의 초주체적 형태들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거기서 파시즘의 일상적 형태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장소, 모든 문화의 한복판에서 가능한, 증오의 이상화(idéalisation de la haine)의 증식 속에 있다. 이는 초주체적 폭력이라 불리는데, 왜냐하면 이와 같은 행위들은 의지와 목적을 갖고 행해지지만, 극한에서 그것들이 실행하는 의지란 주체가 그 도구에 불과한 하나의 사물(chose)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즉 자기 속에 있는(있다고 그가 믿는) 동일성, 타자 전체에 대해 총체적으로 배타적이고 ‘우리’와 ‘자기’ 속의 이타성의 그 모든 흔적을 제거함으로써 자기의 고유한 실현을 오만하게 명령하는 이러한 동일성 말이다. 이는 혼합이나 탈고유화(dépropriation)의 위험보다는 자신의 고유한 죽음을 선호하는 경향을 갖는다.

 이러한 각각의 극단적인 형상들에서 폭력의 비전환성(non-convertibilité)이라는 환원불가능한 사실의 표지를 볼 필요가 있다. 어떤 폭력은 억압하거나 추방할 수 없고, 역사를 만드는 수단으로 정치적으로 전환할 수도 없다는 것이다. 폭력은 따라서 동시에 정치와 역사의 재료이고 경향적으로 그 전개의 영속적인 하나의 조건이 되지만, 이는 역사성의 장 내에서 정치의 이행 및 정치의 범위 내에서 역사적 조건들의 이행의 한계를 표시한다. 이 때문에 정치의 타율성을 넘어, 해방의 정치만큼이나 변혁으로서의 정치의 구성을 다시 의문시하는 타율성의 타율성을 보아야 한다.6) 이때 극단성이나 한계들은 지정불가능하며 고정되지 않는다. 폭력의 초객관성은 지배 관계들의 자연화 속에 적어도 잠재적으로 기입되어 있고, 폭력의 초주체성은 ‘죽음 이상의 것’을 요구할 정도로 충분히 잔인하고 불가해한 정신적 권위의 제국으로 개인들을 복종시키는 지평에 기입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 한계들의 역사란 동일성 자체가 고정되거나 변형되는 방식으로부터 결코 분리될 수 없다. 여기서 다만 세 가지 정도의 테제를 제안해보자.

 첫째, 모든 동일성은 근본적으로 관개인적이다. 그것은 순수히 개인적이지도 집단적이지도 않다. 우리가 자기라고 부르는 것은 절대적으로 독특한 것으로 경험될 수 있으나, 그것은 실재적이고 상징적인 사회적 관계들의 체계에 의해 구성된다. 역으로, 집단적 동일성, 소속의 관계나 우리의 구성은 개인적인 상상적인 것들 가운데 현실 속에서 인가되는 관계의 구성일 뿐이다. 상상적인 것은 개인들이 숨쉬는 공기만큼이나 그들의 삶에 필수불가결하다. 둘째, 동일성보다는 동일화들(identifications)과 동일화의 과정들에 대해 말할 필요가 있다. 어떤 동일성도 주어지거나 단번에 획득될 수 없고(고정될 수는 있지만), 항상 불균등하고 미완성인 하나의 과정, 다소간 강력한 상징적 보증을 불러내는 위험한 구성들로부터 귀결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동일화는 타자들로부터 오며 항상 아직 타자들에 의존한다. 조건들의 조건은 자기와 타자들의 역할, 연결과 단절의 상징화가능성이 의존하는 제도들의 실존에 의해 구성된다. 셋째, 모든 동일성은 모호하다. 이 모호성은 우선 주체의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다. 즉 어떤 개인도 특유하게 하나의 유일한 동일성, 유일한 소속을 갖는 것은 아니다. 모든 개인은 불균등하게 함축적이고 불균등하게 갈등적인 복수의 동일성들을 결합한다. 그러나 일의적일 수 없는 동일성 그 자체의 관점에서도 이해할 수 있다. 즉 하나의 동일성은 그것이 무엇이든 동시에 복수의 기능을 수행하며 항상 과잉결정된다. 그것은 항상 복수의 상징적 준거들 사이에서 이행한다. 또한 이러한 의미에서 그것은 스스로에 대해 착각하고 다른 것으로 오인될 위험에 노출된 채, 항상 빗나가 있다(à coté).

 이러한 테제들은 적어도 폭력과 동일성들 간의 결합이라는 질문을 제기하게 해준다. 동일성의 견지에서 숙고할 때, 두 극단적인 상황들은 똑같이 불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즉 그 상황이 정상적인 실존과 교통이 파괴되는 자율성의 영점 상태에 상응한다는 의미에서 말이다. 이러한 상황들 중 하나는 개인성을 집괴적(massive)이고 배타적인, 하나의 유일한 일의적인 동일성으로 환원하는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 포스트모던한 어떤 유토피아뿐 아니라 시장의 유연성 요구에 순응하여 - 동일성으로 하여금 모든 역할들 사이에서 자유롭게 부유하도록 허락하는 것이다. 즉 절대적으로 한 사람이 되거나 아무 것도 되지 못한다. 그렇다면 제도들의 역할은 동일화들과 소속들의 다면성(multiplicité), 복잡성, 갈등성을 제거하지는 않으면서, 감축하는 것(réduire)이다. 제도들과 대항제도들 없는 사회란 없다. 그러나 제도들이 정치는 아니며, 제도들은 정치의 수단들 또는 결과들을 구성한다. 정치가 총체적 동일화와 부동하는(fluctuante) 동일화의 불가능한 한계들 사이에서 동일화들의 갈등을 규제하는 한에서 그러한 정치는 시빌리테라고 불린다. 시빌리테는 모든 폭력을 제거하는 정치는 아니지만, 정치(해방, 변혁)을 위한 공간을 제공하고 폭력 그 자체의 역사화를 허용하는 방식으로 동일화의 극단성들 사이를 벌려 놓는다/배제한다(écarter).

 시빌리테에 관한 몇 가지 문제들. 첫 번째 거대한 문제는 시빌리테로서의 모든 정치가 필연적으로 ‘위로부터’, 주인의 행동 및 권위에 의해서 만들어지는지, 아니면 그것이 또한 ‘아래로부터’ 개인들과 집단들의 고유한 노력과 힘들에 의해 만들어질 수 있는지 아는 것이다. 기존의 정치철학은 다중(multitude)이 본래 폭력적이기 때문에 정의 및 사회질서 확립에 있어 교육의 필요성을 주장한다. 그러나 문제는 시빌리테의 관념을 다중의 자율성이라는 관념, 즉 민주적 형태들과 화해시키려고 시도하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헤겔이 법철학에서 제안한 테마를 검토해볼 수 있다. 헤겔은 역사 속에서 폭력이 법치국가, 즉 개인들의 자유화를 목표로 구성되는 국가에 의해 예방적으로 처리된다면 전환가능하다는 변증법적 확신(“현실적인 것은 이성적이다”)을 가지고 있다. 헤겔의 관념은 동일성들과 일차적 소속들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을 집단적인 정치적 동일성이나 국가적 소속의 특수한 표현 및 매개로 재구성하기 위해 잠재적으로 파괴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는 일차적 동일성들의 차별적인 취급, 그것들의 인정의 위계화, 그리고 하나의 탈자연화를 가정한다. 다시 말해 국가 또는 상급의 공동체에 의해 미리 통제된, 따라서 그 결과가 보장되는 탈동일화 및 동일화의 동시적인 이중의 운동이 있다. 이러한 운동은 내포적 보편화의 효과를 생산하는데, 가족 공동체의 자연적 속박에서 개인성을 분리시킨다. 요컨대 개인들은 구속(adhérence)에서 가입(adhésion)으로 이행한다. 우리는 헤겔을 따라 탈동일화-동일화(영유-탈영유)의 운동이야말로 시빌리테 개념의 핵심이라 여길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헤겔주의자라고 선언할 수 없는 이유는 헤겔의 삼중적 모순 때문이다. 첫째, 헤겔은 자유화의 대가인 일차적 동일성들의 해체가 그 자체로 극단적으로 폭력적인 과정이며, 하나의 구속으로 기능할 소속의 탈통합(désincorporation) 또는 절단이라는 것을 모르거나 모르는 척 한다. 둘째, 헤겔은 보편주의적 공동체(국가)가 공화적이고 세속적일지라도 또한 하나의 공동체이어야만 한다는 것을 모르거나 모르는 척 한다. 그것은 근대에 하나의 민족적 또는 의사민족적공동체이고 그 주체들은 또한 공통의 소속을 상상하며, 상상적인 것 속에서 공유된 자신의 정치적 동일성의 실체, 즉 의제적 종족체(ethnicité fictive)을 구성한다. 둘째로 문제가 되는 것은 탈동일화의 동일화이다. 이는 야만적인 것을 경계 밖으로, 타자의 방향으로 퇴출하기 위한 필수 불가결한 매개를 구성하는데, 이는 경계 내에서의 평화와 문명의 향유와 상관적이다. 세계화가 새로운 단계를 넘어설 때 그것은 통합의 갈등의 확대재생산을 준비한다. 세계화된 공간 속에는 국가와 인륜(Sittlichkeit)의 등가물 같은 것은 없다. 셋째, 이는 헤겔이 부인했다고는 할 수 없는 것인데, 다만 그 모순의 발전을 오판한 것이다. 헤겔은 국가가 오직 자신의 타자인 경제적 과정들(시민사회)에 본래적인 부정성을 통합함으로써만 자기 고유의 보편성을 구성한다는 점을 알았다. 그러나 그러한 경제적 과정들이 윤리적 보편과 정치적 제도들에 봉사하는 주변적 기능이 되기는커녕, 추상 노동의 역량 외의 모든 능력을 분해할 수 있다는 것을 헤겔이 이해했을까? 한 쪽에서 그는 사적 소유의 자율화 운동이 빈곤의 양극화를 필연적으로 생산한다고 분명히 설명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그는 시빌리테의 조건들 자체에 대해 파괴적인 계급들의 양극화를 주변적(marginal) 현상으로 제시하기 때문이다. 헤겔이 주변에 있다고 보는 것이 현실에서는 중심에 있다고 설명하는 것은 마르크스의 몫이다.  

 이제 우리는 어떤 조건들 속에서, 어떤 한계들 속에서 국가가 시빌리테의 구성에서 역할을 할 수 있는가라고 질문을 던져야 한다. 20세기의 역사에서, 다중들은 국가가 자신들의 존엄을 인정하고 행정이나 공적 공간에 시빌리테의 규범들을 도입할 것을 강제하기 위해 연대했다. 다중은 스스로를 문명화하기 위해 국가와 국가의 제도들을 활용하는 한에서 이를 행했다. 이는 단순히 노예도덕이 아니며, 오히려 그 같은 주도권은 다중의 자율성이 충분치 않다면 결코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시빌리테의 시각에서 ‘아래’(le bas)란, 다시 말해 다중이란 무엇인가? 들뢰즈의 시각에서 다중은 소수자들이거나 또는 발본적으로 탈동일화를 모든 동일화에 대해, 규범적인(표준적인) 집단적 인정에 대해 우선시할 소수자로 되기의 과정들이다. 여기서 들뢰즈가 취한 예들(흑인, 여성, 유대인)이 유지가능한 것인지, 그 무슨 예를 취한들 그것이 유지가능한 것인지에 대한 질문은 논하지 말자. 다만 우리는 똑같은 변증화(dialectisation)가 대칭적으로 다수자라는 통념에는 적용되지 않아야만 하냐고 물을 수 있다. 들뢰즈와 가타리는 자신들의 성찰 전체를 반파시즘의 시각 속에서, 시빌리테의 정치라는 시각 속에 위치시킨다. 중요한 것은 대중들의 파시스트-되기가 불가능해지기 위해서는 개인성의 변환(transmutation)이 어떤 단계에 뿌리내려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다시 다수자적 다중들의 반파시즘과 소수자적 다중들의 반파시즘 사이에 일종의 실천이성의 이율배반이 지배한다고 시사할 수는 없는가? 각각의 관점은 상대방에 대한 논박을 통해 성장한다. 욕망의 미시정치 편에서 보면, 국가를 혁명적으로 전화시키고자 하는 대중운동들의 조직은 하나의 헤게모니 기획에, 전체주의적(totalitaire)이지는 않더라도 총체적인(totale) 이데올로기의 구성에, ‘증오의 이상화’로 귀착할 위험을 항상 지닌 표상에 매여 있다. 사회적 시민권의 거시정치의 편에서 보자면, 집단들의 모든 형성 및 변형의 탈영토화를 겨냥하는 욕망의 기계적 배치들(agencements machiniques de désir)은 사회적 연관을 자연화시키는 흐름들과 발본적 탈개인화의 흐름들, 교통·소비·통제의 거대기계의 이면에 불과한 이 흐름들과 본의 아니게, 그러나 우연히는 아니게 공명할 위험을 항상 갖는다. 탈통합은 양날의 무기이다. ‘아래로부터’ 시빌리테라는 정치적 가설은 따라서 저항들의 다수자-되기의 전략과 소수자-되기의 전략 사이에서 선택할 수 없다. 만일 이론적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면, 그것은 정세(conjoncture)의 문제이거나 정치적 기술(art)의 문제이다. 아마 그것은 또한 단적으로 예술(art)의 문제일 것인데, 시빌리테의 수단들은 언표들, 기호들, 역할들 이외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아포리아는 불가능성(impasse)과 혼동되어서는 안 된다. 재정식화하자면, 어떠한 정치의 개념도 완전하지 않다. 따라서 각각의 것들은 다른 것들을 전제한다. 변혁 없이는 해방도 시빌리테도 없으며, 해방 없이는 시빌리테도 변혁도 없다. 그러나 이러한 복잡한 전제들로부터 하나의 체계, 하나의 불변의 질서를 만들고자 하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다. 그렇게 해서는 또 하나의 정치철학을, 즉 정치(la politique)의 문제들을 정치적인 것(le politique)의 표상으로 전화시키는 도식만을 획득할 뿐이다. 위의 개념들이 정치와 관련되는 한에서 그것들은 개별적인 길 위에서만 절합될 수 있다(s'articuler). 이러한 길들은 진리처럼 필연적으로 독특하며 따라서 모델이 없다.  

 



1) “인민이라는 것이 인종이나 주민이 아닌 한에서 정치는 존재하고, 빈민들이 경제적으로 낙후된 주민의 일부가 아닌 한에서 정치는 존재하며, 프롤레타리아가 산업 노동자 집단이 아닌 등등에 한해서만 정치는 존재한다. 인민이 셈해지지 않은 것을 셈하는 특정한 형상이나 몫 없는 자들의 몫의 특정한 형상을 사회의 부분들에 대한 모든 셈에 보충으로서 기입하는 주체일 때 정치는 존재한다. 이러한 몫이 존재하느냐 아니냐가 바로 정치의 쟁점인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정치적 계쟁(litige)의 대상이다. [...] ‘부자들’과 ‘빈자들’ 사이의 싸움은 이러한 말들이 나눠질 수 있는 가능성을 위한 싸움이며, 그들이 공동체를 다른 식으로 셈하는 범주들을 설립할 수 있는 가능성을 위한 싸움이다.” 자크 랑시에르, 「정치에 대한 열 가지 테제」, 󰡔정치적인 것의 가장자리에서󰡕, 양창렬 옮김, 2008, 도서출판 길, pp. 246~247.


2) 이것이 해방의 정치와의 차이점이다. 발리바르는 정치적인 것의 자율성의 대표자로서 루소를 꼽고, 정치의 타율성의 대표자로 마르크스를 꼽는다. 양자는 전통과의 단절 및 인민의 통일성에 대한 질문에 있어서 유비될 수 있다. 그러나 인민의 봉기와 정치적 주체의 자율성에 관한 루소주의적 관념이 일종의 관념론의 쇄신이라면, 마르크스의 계급 정치는 정치의 타율성으로서 경제를 제시함으로써 유물론의 쇄신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구별된다. 에티엔 발리바르, 「스피노자, 루소, 마르크스 : 정치적인 것의 자율성에서 정치의 타율성으로」, 󰡔스피노자와 정치󰡕, 진태원 옮김, 이제이북스, 2005, pp. 230~235.


3) 발리바르는 󰡔마르크스의 철학󰡕 4장에서 마르크스의 경제주의와 진화주의에 대해 비판한다. 이는 역사적으로는 제2인터내셔널 이데올로기와 소련의 현실 사회주의로 실현되었는데, 이러한 종말목적론적이고 결정론적인 역사철학에 대해 발리바르는 마르크스의 변증법은 진보가 아닌 과정(procès)에 대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여기서 과정은 경제적 개념도 도덕적 개념도 아니다. 모순적 경향의 변증법은 단지 경향의 역전이나 반경향의 확립에 의해서 해결되거나 감축될 수 있는 것으로서, 헤겔과 반대로 모순의 화해불가능성을 주장하는 논리적이고 정치적 개념이다. “마르크스가 아주 잘 활용하고 있는 수학적 은유를 사용하여 사태를 달리 표현할 수 있다. 즉 역사의 진행 속에서 그가 관심을 갖는 것은 곡선의 일반적 형태로서 ‘적분’(intégrale)이라기보다는 ‘가속화’의 효과로서 미분, 따라서 각 계기마다 작용하고 전진의 방향을 결정하는 힘들의 관계이다.” 에티엔 발리바르, 󰡔마르크스의 철학, 마르크스의 정치󰡕, 윤소영 옮김, 문화과학사, 1995, p. 138.  


4) 푸코는 권력이 있는 곳에 늘 저항이 있다고, 특정한 행동에는 대항행동의 가능성이 항존한다고 말하지만, 그는 예속이 아닌 저항을 택하도록 하는 것, 선택의 선택의 문제 또는 자유의 자유화의 문제를 해명하지 않는다. 자유의 실천이 가능해지고 저항이 가능해지기 위해서는 자유화의 과정이 필요하지만, 이 점에서 푸코는 저항의 생성을 위한 저항, 저항을 가능하게 만드는 저항이라는 무한퇴행에 들어서게 된다. 이 문제를 도외시한 채, 그는 다만 사회운동이나 자기의 배려라는 실존의 미학에 의존할 뿐이며, 이는 결국 정치적 비관주의로 흐를 수 있다.


5) 푸코에서 권력은 모든 관계 속에서 생산되는 것이고, 권력은 지배자를 통해 작용하는 이상으로 피지배자를 통해서도 작용한다. 계급, 국가, 법 등은 단지 권력을 통합한 것에 불과하며 힘들의 관계의 전략과 관계한다. 들뢰즈에 따르면, 억압적 권력 개념에 대한 푸코의 비판은 권력에 대한 니체적 영감에 관련된다. 힘이 힘과 더불어 갖는 관계는 하나의 힘이 다른 힘들에게 영향을 주고 또 그 힘이 다른 힘들에 의해 영향을 받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힘들이 언제나 다른 힘들과의 관계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이라면, 필연적으로 어떤 외부를 가리키게 된다. 여기서는 끊임없는 힘의 생성이 존재하며, 외부의 사유는 주사위 던지기, 독특성들의 방출이 된다. 들뢰즈는 이때 힘의 이러한 영향을 주는 힘과 영향을 받는 힘 모두와 혼동되지 않는 제3의 권력을 저항이라고 부른다. 질 들뢰즈, 「미셸 푸코의 주요 개념들에 대하여」, 󰡔들뢰즈가 만든 철학사󰡕, 박정태 옮김, 이학사, 2007, pp. 446~456. 그러나 이러한 니체에 대한 의존은 푸코적인 변혁의 정치가 마주치게 되는 주의주의와 숙명주의 사이의 진동을 막지 못한다는 것이 발리바르의 의견이다.  


6) 폭력의 감축을 통해 정치의 공간 자체를 개방하려고 시도한다는 점에서, 시빌리테의 정치는 반폭력의 정치의 문제설정과 관련된다. “아마도 이는 정치의 가능성을 부단히 삭제하는 주체적-객관적 폭력의 각각의 형태를 모든 곳에서 퇴치한다는 목표를 동시에 확정하지 않고서는 어떤 정치적 실천도 더 이상 사고될 수 없음을 의미할 뿐일 것이다. 따라서 정치는 더 이상 단지 폭력의 지양(비폭력으로의 지양)으로도 그 규정적 조건들의 전화(대항폭력의 적용을 요구할 수 있는 것)로도 사고될 수 없다. 정치는 더 이상 다른 어떤 것을 위한 수단, 도구도 아니고, 더 이상 그 자체로 목적도 아니다. 오히려 정치는 그것이 그 자체 속에 담지하는 환원불가능한 이타성의 요소와의 대결이 불확실한 쟁점이다. 내가 여기서 어쨌든 가설적으로 ‘반폭력’이라고 불렀던 것은 이러한 또 다른 무한한 순환성이다.” 에티엔 발리바르, 「반폭력과 ‘인권의 정치’」, 󰡔마르크스의 철학, 마르크스의 정치󰡕, 윤소영 옮김, 1995, p. 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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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가게재습격 2010-09-21 09: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추석이라 슬쩍 들렀습니다. 잘 지내시죠? 연휴 잘 보내시라고 인사 남깁니다. 맛있는 연휴 되시길...^^

바라 2010-09-21 21:14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저야 연휴가 큰 의미는 없는데.. 그나저나 갑자기 쏟아진 폭우 때문에 걱정이네요ㅠ 추석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