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이거 볼 일은 한참 나중이겠지만... 

 

1. 서양철학 분야

(서양고대철학)
1. The presocratic philosophers : a critical history with a selection of texts /S. Kirk, J. E. Raven and M. Schonfield, 2nd ed., 1983(Cambridge: University Press).
2. Plato, Phaedo
3. Plato, Republic
4. Plato, Theaetetus
5. Aristotle, Nichomachean Ethics
6. Aristotle, Metaphysics, Book 4, 7, 12.
7. Aristotle, Physics, Book 1-4.
8. Aristotle, De Anima
9. The Hellenistic Philosophers, Vol. 1, (ed.) A. A. Long & D. N. Sedley, CUP 1987

(인식론)
1. R. Descartes, Meditationes
2. D. Hume, A Treatise of Human Nature, Book I
3. I. Kant, Kritik der reinen Vernunft(처음부터 A 292=B349까지, A705=B733에서 끝까지)
4. E. Husserl, Ideen, Bd. I.
5. E. Gettier, "Is Justified True Belief Knowledge?"
A. Goldman, "A Causal Theory of Knowing"
E. Sosa, "The Raft and the Pyramid"
L. BonJour, The Structure of Empirical Knowledge, 2장과 5장
W. Quine, "Epistemology Naturalized"
J. Kim, "What is Naturalized Epistemology?"

(형이상학 및 존재론)
1. W. Leibniz, Monadologie
2. W. F. Hegel, Phänomenologie des Geistes, Vernunft 장까지
3. Heidegger, Sein und Zeit
4. Bergson, L'Ḗvolution créatrice
5. W. Quine, "On What There Is", in: J. Kim and E. Sosa (ed.), Metaphysics: An Anthology (Blackwell 1999)
A. Plantinga, "Modalities: Basic Concepts and Distinctions", in: J. Kim and E. Sosa (ed.), Metaphysics: An Anthology (Blackwell 1999)
D. Davidson, "Causal Relations", in: J. Kim and E. Sosa (ed.), Metaphysics: An Anthology (Blackwell 1999)
D. Lewis, "Causation", in: J. Kim and E. Sosa (ed.), Metaphysics: An Anthology (Blackwell 1999)
H. Putnam, "The Nature of Mental States", in: Ned Block (ed.), Readings in Philosophy of Psychology (Methuen 1980)
D. Davidson, "Mental Events", in: Ned Block (ed.), Readings in Philosophy of Psychology (Methuen 1980)

(윤리학)
1. I. Kant, Kritik der praktischen Vernunft
2. J. S. Mill, Utilitarianism,
On Liberty
3. J. Rawls, A Theory of Justice
4. Sellars & Hospers (eds.), Readings in Ethical Theory
5. Beauchamp & Walters (eds.), Contemporary Issues in Bio-Ethics

(사회철학)
1. Th. Hobbes, Leviathan 1, 2부
2. J. Locke, Second Treatise of Civil Government
3. Hegel, Grundlinien der Philosophie des Rechts
4. K. Marx, Die Deutsche Ideologie, Feuerbach 부분
5. H. G. Gadamer, Wahrheit und Methode, II부(Ausweitung der Wahrheitsfrage auf das Verstehen in den Geisteswissenschaften)
6. J. Habermas, Theorie des kommunikativen Handelns, 3, 4, 6, 8장

(논리 및 언어철학)
[서지 정보가 제공되어 있지 않은 논문들은 모두 A.P. Martinich (ed.), The Philosophy of Language, 5th ed. (Oxford 2007)에 수록되어 있음.]
1. G. Frege, Die Grundlagen der Arithmetik, trans. by J. L. Austin as The Foundations of Arithmetic, 2nd ed. (Northwestern University Press 1980)
2. L. Wittgenstein, Tractatus Logico-Philosophicus, trans. by D. Pears and B. McGuinness, 2nd. ed. (Routledge 2001)
3. G. Frege, "Funktion und Begriff", trans. by P. Geach as "Function and Concept", rep. in The Frege Reader, ed. by Michael Beaney (Blackwell 1997)
C. Hempel, "Empiricist Criteria of Cognitive Significance: Problems and Changes"
W. Quine, "Two Dogmas of Empiricism"
A. Tarski, "The Semantic Conception of Truth and the Foundations of Semantics"
D. Davidson, "Truth and Meaning" H. Grice, "Meaning"
4. G. Frege, "Über Sinn und Bedeutung", trans. by M. Black as "On Sense and Reference", rep. in Readings in the Philosophy of Language, ed. by P. Ludlow (MIT 1997)
B. Russell, "On Denoting"
P. Strawson, "On Referring"
K. Donnellan, "Reference and Definite Descriptions"
S. Kripke, Naming and Necessity, Lectures I and II (Harvard University Press 1980)
H. Putnam, "Meaning and Reference"
5. J. Austin, "Performative Utterances"
H. Grice, "Logic and Conversation"
W. Quine, "Quantifiers and Propositional Attitudes"
S. Kripke, "A Puzzle about Belief"
W. Quine, "Translation and Meaning"
D. Davidson, "Radical Interpretation", rep. in Inquiries into Truth and Interpretation 2nd ed. (Oxford 2001)

(과학철학)
1. Curd, M. & Cover, J. (eds.)(1998), Philosophy of Science: The Central Issues, Norton, Chapter 4.
Popper, K., Logic of Scientific Discovery, Hutchinson, Chapters I-II, Chapter IV(§§19-22), Chapter V, Chapter VI(§§31-36).
Kuhn, T., The Structure of Scientific Revolutions, 2nd ed., University of Chicago Press, Chapters III, IV, IX, X.
Feyerabend, P., Against Method, Verso, Introduction-Chapter 5.
2. Curd, M. & Cover, J. (eds.)(1998), Philosophy of Science: The Central Issues, Norton, Chapter 2.
Kuhn, T., The Structure of Scientific Revolutions, 2nd ed.,University of Chicago Press.
3. Curd, M. & Cover, J. (eds.)(1998), Philosophy of Science: The Central Issues, Norton, Chapter 6.
van Fraassen, B., The Scientific Image, Clarendon Press, Chapter5.
Salmon, W., Scientific Explanation and the Causal Structure of the World, Princeton University Press, pp. 24-47, 124-147,158-183, 267-279.
4. Curd, M. & Cover, J. (eds.)(1998), Philosophy of Science: The Central Issues, Norton, Chapters 7 & 8.
Kuhn, T., The Structure of Scientific Revolutions, 2nd ed., University of Chicago Press, Chapters IX-XIII.
Kuhn, T., "Commensurability, Comparability, Communicability", in PSA 1982, Vol. 2, pp. 669-688.
5. Curd, M. & Cover, J. (eds.)(1998), Philosophy of Science: The Central Issues, Norton, Chapters 3 & 9.


2. 동양철학 분야

(인도 및 불교철학)
1. 길희성, 「인도철학사」
2. D. Kalupahana, A History of Buddhist Philosophy: Continuities and Discontinuities
3. 심재룡, 「중국불교철학사」
4. 박종홍, 「한국사상사」(불교편)

(중국철학)
1. 송영배, 「제자백가의 사상」
2. 任繼愈 主編, 「中國哲學發展史」(秦漢)
3. 陳來, 「宋明理學」
4. 李澤厚, 「中國近代思想史論」

(한국철학)
1. 박종홍, 「한국사상사 논고」(유학편)
2. 한국철학회, 「한국철학사」(상, 중, 하)

(동양철학고전)
1. 元曉, 「大乘起信論疏記會本」
2. 司馬遷, 「사기열전」
3. 朱熹, 「사서집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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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우 임의적이고 잡다한 인용들. 예전 노트에서 인터넷에서 기타 등등

그러나 이런 조각들을 연애편지에 써 먹을 수는 없겠지


"사랑이란 선한 것을 영원히 소유하려고 한다면 불사(不死)라는 것이 자연히 선과 함께 욕구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은 필연적으로 불사를 바라게 되는 것입니다."(플라톤,『향연』, 최현 옮김, 범우문고, 1987, 88쪽)

"만일 어떤 자가 어떤 사람으로부터 사랑받는다고 표상하며, 더욱이 자기는 사랑받을 아무런 원인도 부여하지 않았다고 믿는다면 (이것은 제 3부의 정리 15의 보충과 정리 16에 의하여 가능하다) 그는 도리어 그 사람을 사랑할 것이다."(스피노자,『에티카』제 3부 정리 41)

“사랑의 감정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항상 당신으로부터 도망가는 사람으로부터, 막상 당신은 도망가지 못하는 것이다”(알렝 핑켈크로트, 『사랑의 지혜』, 권유현 옮김, 동문선, 1998, 57쪽)

"사랑이란 곧 모순을 낳는 것이면서 동시에 모순을 해소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렇듯 모순을 지양, 해소한다는 점에서 사랑은 곧 인륜적 결합을 뜻하는 것이 된다."(헤겔,『법철학』, 임석진 역, 지식산업사, 1989, 278쪽)

"자신을 한 여자에 대한 사랑 속으로 시화(詩化)시키는 것은 입신(入神)의 경지"(키에르케고르, 『유혹자의 일기』, 임규정·연희원 옮김, 한길사, 2001, 170쪽)


“사랑에 관한 진리는 타자가 당신 안에 있는 당신 자신보다 더한 어떤 것을 위해 당신을 사랑해야 만 한다는 것이다......우리는 타자 속에서 그/녀 자신이 아니라 그/녀가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을 본다. 이것이 사랑의 바로 그 조건이다. 히스테리적 주체의 자리는 언제나 커튼 뒤에 무엇이 있는 지를 추측해야만 하는 자리이다. 그리고 바로 그 때문에 통상 그와 같은 주체는 - 사랑을 전적으로 단념함으로써- 결국 아무것도 갖지 못한다.”(레나타 살레클, 『사랑과 증오의 도착들』, 이성민 옮김, 도서출판b, 2003, 53쪽)'

“당신의 파트너가 무엇을 할 것인지를 알고 있다는 것은 사랑에 대한 증거가 아닙니다.' 라고 말한다. 그리하여 사랑은 오로지 우리가 분열된 주체이기 때문에, 즉 오로지 우리가 서로의 존재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하지 때문에 꽃필 수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불가능성이 부착되지 않은 사랑이란 없는 것이다. 또한 사랑 속에서 우리는, 종국에 가서 '그것은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다' 는 것을 인정해야만 한다. 수세기동안 사람들이 그것에 의미를 부여하려는, 즉 그것의 결여를 메우려는 시도 속에서 최고의 예술 작품을 창조해온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위의 책, 279-280쪽)

"사랑하기의 달콤함은 사랑스럽도록 유의함을 중단시킨다."(미란 보조비치, 『암흑지점』, 이성민 옮김, 2004, 81쪽)

"사랑하기는 언제나, '우스꽝스러운 대상', 땀흘리고, 코골고, 방귀뀌고, 이상한 버릇들을 가진 한 대상과 함께 있는 자신을 발견함을 뜻한다.... 이 틈 또는 어긋남을 지각함을, 그리고 그것에 대해 웃을 수 있음이라기보다는 그것에 대해 웃으려는 억누를 수 없는 충동을 뜻한다."(알렌카 주판치치, 『정오의 그림자』, 조창호 옮김, 도서출판b, 2005, 259쪽)



"우리가 '진정한 사랑'과 조우할 때, 이는 우리가 평생을 기다려 온 것이기라도 한 것처럼, 어떤 신비스러운 방식으로 우리의 이전의 삶 전체가 이 조우로 이끌리게 된 것이기라도 한 것처럼 보인다. . . . '사랑'이란 실재의 무의미한 외적 우연성이 '내부화'되고, 상징화되고, 의미를 부여받게 되는 . . . 순수하게 형식적인 전환 행위에 대한 이름들 가운데 하나다." (S. Zizek, The Indivisible Remainder,  p. 94.)


“불가능한 것은 진정 일어난다, 사랑과 같은 ”기적“(혹은 정치 혁명: 레닌이 1921년에 말했듯이 ”몇 가지 면에서 혁명은 기적이다.“)은 진정 일어난다.”(슬라보예 지젝, 『믿음에 대하여』, 최생열 옮김, 동문선, 2003, 91쪽)



"사랑은 상상적 층위에서 발생하는, 그리고 상징적인 것의 틀림없는 정복을, 자아이상의 기능의 일종의 무화, 교란을 유발하는 현상이다."(Jacques Lacan, The Seminar of Jacques Lacan. Book I, New York: Norton, 1991, p. 142.)

"사랑이란, 하나(통일적 원리)의 지배의 균열 하에서, 비록 그 하나(통일적 원리)의 형상을 지속시키면서라도, 둘이 생각되는 장소라는 것이다. 우리는 라깡이 양성(兩性)의 둘로부터 일종의 논리적 연역을 전개시켰음을 알고 있다. 양성의 둘이란 주체의 여자 '부분'과 남자 '부분'이며, 여자를 '부분부정(pas-toute)'으로 정의하고 남성적 극을 손상된 전체(Tout)의 벡터로 정의하기 위한, 부정과 양화기호들(量化記號들, quantific-ateurs)을 조합하는 배분이다. 사랑이란, 그 자체가 비(非)관계와 탈(脫)결합의 요소 속에 존재하는 이 역설적 둘의 실재성이다. 사랑이란 그러한 둘에의 '접근'이다. 만남의 사건-그 '갑작스러움'을 플라톤은 힘주어 강조한다-으로부터 기원하는 사랑은, 이 둘이 이미 하나의 법칙에 대한 돌이킬 수 없는 초과를 구성하는 것에 대한 무한한 또는 완성될 수 없는 경험의 피륙을 짠다. 나의 언어로 말한다면, 사랑이란, 지식으로부터 당연히 벗어나는, 특히 서로 사랑하고 있는 자들의 지식으로부터 벗어나는 진리인 성차(性差)에 대한 진리를 이름 없는 또는 산출적인 배수성(倍數性)으로 도래시키는 것이다. 사랑이란 만남의 사건에의 충실성 속에서의, 둘에 대한 진리의 생산이다."(알랭 바디우,『철학을 위한 선언』, 이종영 옮김, 백의, 1995, 105-6쪽)

 

"나는 사랑하고 있는 걸까?- 그래, 기다리고 있으니까." 그 사람, 그 사람은 결코 기다리지 않는다. 때로 나는 기다리지 않는 그 사람의 역할을 해보고 싶어 다른 일 때문에 바빠 늦게 도착하려고 애써본다. 그러나 이 내기에서 나는 항상 패자이다. 무슨 일을 하던간에 나는 항상 시간이 있으며 정확하며 일찍 도착하기조차 한다. 사랑하는 사람의 숙명적인 정체는 기다리는 사람, 바로 그것이다. 부재에는 항상 그 사람의 부재만이 존재한다. 떠나는 것은 그 사람이고 남아 있는 것은 나 자신이다. 그 사람은 끊임없는 출발, 여행의 상태에 있다. 그의 천직은 철새 사라지는 자이다. 그런데 사랑하고 있는 나, 나의 천직은 그 반대로 칩거자, 그 사람의 처분만을 기다리며 자리에서 꼼짝않고 미결 상태로 앉아 있는, 마치 역 한구석에 내팽개쳐진 수화물마냥 아무도 찾으러 오지 않는 그런 사람이다. 사랑의 부재는 일방통행이다. 그것은 남아 있는 사람으로부터 말해질 수 있는 것이지 떠나는 사람으로 부터 말해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항상 현존하는 나의 끊임없이 부재하는 너 앞에서만 성립된다. 그러므로 부재를 말한다는 것은 곧 주체의 자리와 그 사람의 자리가 교환될 수 없음을 단번에 상정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사랑하는 것만큼 사랑받지 못한다는 것을"

(-롤랑 바르트, 사랑의 단상 中-)


"충족된 연인은 글을 쓸 필요도, 전달하거나 재생할 필요도 없다.....그 사람을 위해 글을 쓰지 않으며, 내가 쓰려고 하는 것이 결코 사랑하는 사람의 사랑을 받게 하지 않으며, 글쓰기는 그 어떤 것도 보상하거나 승화하지 않으며, 글쓰기는 당신이 없는 바로 그곳에 있다는 것을 아는 것, 이것이 곧 글쓰기의 시작이다." (바르트, 사랑의 단상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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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로이카 2008-11-25 04: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연애 편지에 쓸 수는 없겠지만, 연애를 하는 사람이나 실연의 아픔에 시달리고 있는 사람들에게 조언해 줄 때는 아주 쓸 모가 많겠네요. 잘 봤습니다.

비로그인 2008-11-25 2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로이카 님 말씀에 저도 동감.^^

바라 2008-11-26 0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보셨다니 다행이네요ㅎ 개인적으로는 알렝 핑켈크로트나 롤랑 바르트의 말이 공감이 갑니다...
 



Alexander Miller, Philosophy of language, Mcgill-Queen's UP, 2007, p. 141~148

 

콰인은 번역 불확정성(Indeterminacy of Translation) 논제를 주장한다. 어떤 언어 L2를 언어 L1으로 번역할 때, 어떤 번역편람(translation manual, 번역 대상언어 L2의 각 문장을 번역하는 언어 L1의 각 문장과 1대 1 대응시킨 리스트를 제공해주는 편람)이 올바른지에 대한 객관적인 사실은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어떤 언어 L2를 언어 L1으로 번역할 때, 번역과 관련된 모든 가능한 증거들과 들어맞으면서도 서로 양립 불가능한 번역편람(translation manual) T1과 T2, T3 등을 구성하는 것이 원리적으로 가능하다. 언어적 표현의 의미는 규약에 의해 수립되는데, 규약은 규약을 준수하거나 준수하지 않는 화자들의 행동에 의해서만 존재한다. 번역 불확정성 논제는 행동에 관한 가능한 사실들의 총체는 서로 전혀 다른, 양립불가능한 번역편람을 구성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행동에 관한 사실은 주어진 상황에서 어떤 번역편람을 올바른지를 결정하기에 충분하지 못하다. 이는 상충하는 번역편람 중 옳은 것을 알 수 없다는 인식론적 주장이 아니라 그것을 결정해줄 수 있는 사실자체가 없다는 존재론적 주장이다. 콰인의 번역 불확정성 논제는 같은 의미라는 개념, 의미 개념 자체에 대한 객관적 사실이 없다는 점에서 의미회의주의를 함축하게 된다. 여기서 콰인은 일종의 행동주의적 전제에 호소하고 있다.(크립키는 행동주의적 전제에 근거하지 않은 의미회의주의를 보여준다)

예컨대 원초적 번역(radical translation)의 상황, 즉 언어학자가 이제까지 전혀 알려져 있지 않은 어느 부족의 언어를 번역하려고 하는 상황을 상정해보자. 이 언어학자가 증거로 채택할 수 있는 것은 그 부족 원주민의 행동(behavior, 의미론적, 지향적 용어들을 사용하지 않고 기술되는 얇은thin 개념으로서의 행동)뿐이며 이때 번역 편람의 옳음 여부를 결정해주는 것은 화자들의 행동 밖에 없다. 원초적 번역자의 과제는 원주민 언어의 문장들의 자극의미(문장 S에 대해 동의 또는 반대를 촉구하는 감각자극)와 관련된 모든 사실들이 주어졌을 때, 이 문장들에 대해서 원초적 번역자의 언어로의 적절한 번역을 제공해주는 번역 편람을 구성하는 것이다. 이 번역의 첫째 단계는 원주민 언어에서 동의나 반대를 나타내는 표현을 찾는 것이다.

"Gavagai" 시나리오를 생각해보라. 원주민이 자신의 근처에 토끼가 있을 때마다 "Yo, gavagai"라는 표현에 동의하고 토끼가 없으면 같은 표현에 대해 반대한다고 가정하자. 이 경우 원주민의 표현 "Yo, gavagai"와 우리말 "토끼가 있다"는 같은 자극의미를 가질 것이라고 생각될 수 있다. 그런데 원주민 언어의 표현 "Yo, gavagai"에 대해 "토끼가 있다"라는 번역을 선택하지 않고 "토끼의 분리되지 않은 부분(undetached rabbit part)이 있다"라는 번역을 선택하면 어떤가? 콰인은 토끼가 있을 경우 그리고 오직 그 경우에만(if and only if) 토끼의 분리되지 않은 부분이 있을 것이기 때문에, 문장 (1)과 (2)는 정확히 같은 자극의미를 갖고 있다. 이때 번역의 올바름을 결정짓는 유일한 가능한 증거는 자극의미 뿐이므로, "Yo, gavagai""토끼가 있다"로도, "토끼의 분리되지 않은 부분이 있다"로도 번역될 수 있다. (1)과 (2)중 어느 문장이 원주민 언어 표현 "Yo, gavagai"의 올바른 번역인지를 결정할 수 있는 사실은 없다. 동일한 방식으로 "Yo, gavagai""4차원 토끼-전체의 시간 편린(time slice of a four dimensional rabbit-whole)이 있다.""토끼임의 예화(instantiation of rabbithood)가 있다."로 번역하는 것도 정당화된다는 결론이 귀결된다. 이 중 어느 번역을 선택할 것인가는 유용성, 단순함, 자연스러움과 같은 순전히 실용주의적 고려에 의해 결정되며, 어떤 사실에 근거해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이에 대해 "Yo, gavagai" 이외에 원주민 언어의 다른 표현들을 고려한다면 자극의미에만 근거해서도 위 번역 중 어느 것이 옳은 번역인지를 결정할 수 있다는 반론이 가능하다. 예컨대 원주민 근처에 있는 토끼의 꼬리와 코를 각각 가리키면서 "Si hit gavagai emas sa hat gavagai?" ("이 gavagai가 저 gavagai와 같은가?")라고 질문하는 경우, 만일 원주민이 동의한다면, "gavagai""토끼의 분리되지 않은 부분"으로 번역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역시 콰인의 재반박이 가능한데, 위의 반론은 원주민 언어 표현 "emas""같은 토끼"로 번역하고 있다. 그러나 "emas""같은 토끼의 분리되지 않은 부분"으로 번역한다고 하자. 그러면 "gavagai""토끼의 분리되지 않은 부분"으로 번역할 때, 문장 "Si hit gavagai emas sa hat gavagai?""토끼의 분리되지 않은 이 부분은 토끼의 분리되지 않은 저 부분과 같은 토끼의 분리되지 않은 부분인가?"로 번역된다. 이렇게 번역될 경우는 원주민이 동의한다고 하더라도 "gavagai""토끼의 분리되지 않은 부분"으로 번역될 수 있을 것이다.

콰인의 번역 불확정성 논제는 과학철학에서는 이론 미결정성(Underdeterminantion of theory) 논제로 이어진다. 물리 이론은 가능한 모든 관찰 증거에 의해서도 미결정적이다. 다시 말해서, 가능한 모든 관찰 증거들과 들어맞으면서도 서로 양립불가능한 물리 이론 T1과 T2를 구성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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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 알튀세르, 「루소: 사회계약(불일치)」,『마키아벨리의 고독』, 김석민 역, 새길, 1992, pp.120~176.

계약; 두 PP 간의 교환 행위.

 

PP1(개인) -----> <-----PP2(공동체)

(전면적 양도)    ‘교환’           (?)


불일치1: PP2는 계약에 앞서 미리 존재하지 않는다. 사회계약은 가능한 계약을 위해 PP2를 구성하는 행위이다. 전면적 양도는 일정한 교환이 가능하기 위한 선험적 조건이다.


불일치2: 전면적 양도와 교환 사이의 불일치. 인민은 자연상태에서의 소외aliénation를 극복하기 위해 전면적 양도aliénation를 행한다. 이때 허구적인 계약이 유리한 교환을 생산한다.("각자는 자신을 전체에 양도함으로써 결국 아무에게도 양도하지 않는다...결국 사람은 자기가 상실한 모든 것과 동일한 대가를 얻게 되고 자기가 소유하는 것을 보존하기에 더욱 큰 힘을 얻는다")

불일치3: 특수이해와 일반이해의 불일치. 특수의지는 일반의지의 본질인 동시에 일반의지의 장애물(<제네바 초고>)로, 루소는 이 둘 모두의 존재를 인정한다. 이러한 모순은 루소가 고립된 각 개인의 특수이해와 사회집단의 특수이해를 동일하게 부르고 있기 때문에 발생한다. 전자는 긍정되지만 후자(당파)는 부정된다. 그러나 완전한 특수이해나 일반이해는 모두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한 하나의 신화에 불과하다.


불일치4: 이데올로기에서의 전방 비약, 혹은 경제에서의 후방 비약(퇴행). 루소는 일반의지는 인민의 계몽을 강조하는 동시에 인민과 일반의지 사이에는 어떠한 매개집단도 개입되지 않아야 함을 필요로 한다고 주장한다.(“상황을 잘 아는 인민이 토의할 때 시민 상호간에 어떤 사전 협의도 없는 경우에는 언제나 많은 수의 사소한 의견 차를 통해 일반의지가 얻어질 것이다.”) 그리고 이어서  하나의 원환이 등장한다. 계급 문제를 해결하기위한 독립적 소생산자, 수공업적 생산이라는 불가능한 퇴행적 해결책(경제에서의 후방 비약)과 이를 해결하기 위한 도덕적 설교, 이데올로기(이데올로기에서의 전방 비약)

 

*루소, <사회계약론>, 이환 역, 서울대학교출판부에서 peuple이 국민으로 번역되어 있으며 volonté générale이 전체의사로 번역되어 있다. 동서문화사의 최석기 역에서는 이 두 개념이 각각 인민과 일반의지로 제대로 옮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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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 2008-11-01 14: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la différence entre la volonté de tous et la volonté générale; celle-ci ne regarde qu'à l'intérêt commun, l'autre regarde à l'intérêt privée, et n'est qu'une somme de volontés particulières..." 전체의지와 일반의지는 다르다: 후자가 공동이익만을 추구하는 (반면), 전자는 사적이익을 추구하는 단순한 개별의지의 총합일 뿐이다. (사회계약론, 제2부,제3장,2번째 문단)

서울대출판사 본은 이 문단도 분명 번역을 했을텐데, 과연 어떻게 했을지 궁금하군요.
알튀세르의 말씀들이 어려우니, 퍼가서 곰곰 씹어볼께요(앞의 진태원-랑시에르 건도 함께).
<사회계약론>의 가장 잘 된 번역본(은 없을테고)말고, 가장 애용되는 번역본이 무엇인지 혹시 아시면 좀 알려 주실래요.

바라 2008-11-03 0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abs님, 잘 말씀해주신 것처럼 위에서 전체의지와 일반의지를 구분하는 대목 때문에 더더욱 전체 의사라는 역어가 부적절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환 역 보니까 "모든 사람의 의사와 전체 의사 사이에는 많은 차이가 있다. 후자는 오로지 공익에만 유의하는 반면 전자는 사리를 염두에 두며 개별적 의사들의 총화일 뿐이다"(40쪽)고 되어 있네요. 사실 general이 왜 전체적이라 번역되는지도 잘 모르겠지만요;;
그리고 알튀세르의 글은 직접 읽어보시는 게 좋을 거 같아요. 저도 그냥 읽으면서 메모한 거친 요약이라 좀.. 몇몇 부분은 제대로 이해했는지 자신도 없구요.
<사회계약론>은 저도 예전에 이환 역으로 샀었는데 요새 보니까 동서문화사에서 <인간불평등기원론>이랑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이 함께 묶인 최석기 역본이 나왔더라구요. 세 권 묶인 거 치고는 가격도 싸고;;(9800원) 번역도 좀 더 나은 듯 해서 저는 새로 샀는데.. 저도 잘 몰라 조심스럽지만 두 책 다 불문학자들의 번역이고 해서 성에 안 차실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영역은 케임브리지 출판사에서 나온 Victor Gourevitch 편집본을 많이 보는 거 같은데 생각해보니 불어를 하신다면 굳이 필요없을 거 같기도 하네요ㅎㅎ
 

한나 아렌트, <정치의 약속>, 김선욱 옮김, 푸른숲 

1장 소크라테스 요약


철학과 정치의 관계는 플라톤과 소크라테스의 차이에서 잘 드러날 수 있다. 역사적으로 철학과 정치 사이의 간극은 소크라테스의 죽음으로 인해 폴리스에 절망한 플라톤이 설득의 타당성을 의심함에서 시작된다. 플라톤에게 설득의 타당성에 대한 의심과 의견에 대한 비난은 연관되어 있다. 그가 보기에 설득은 다수에 대한 것으로, 진리가 아닌 의견에서 오는 것이다. 플라톤은 인간사의 영역에 이데아라는 초월적 기준을 도입하고 설득이 아닌 변증술을 내세우면서, 좋음의 이데아를 볼 수 있는 철학자가 도시의 통치자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다시 말해 설득을 통한 일시적인 좋음이 아닌 영원한 진리가 도시를 지배해야한다는 ‘진리의 폭정’을 기획하는 것이다.

그러나 진리와 의견의 대립은 ‘無知의 知’를 말한 소크라테스의 가르침에 어긋나는 것이다. 실제로 소크라테스는 가멸적 인간에게 지혜가 가능한 것인지 의심했다. 소크라테스에게 의견은 사람들이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를 보여줄 수 있는 공적 공간인 정치영역과 관계한다. 소크라테스는 시민들을 철학적 진리로 계몽시키는 것이 아니라 시민들 각자의 도크사를 개선시키기를, 즉 ‘등에’로서의 철학자가 되기를 원했다. 가멸적 인간에게 절대적 진리는 단지 드러남을 통해서 제한될 뿐이지만, 의견은 단순한 환상이나 억견이 아니라 항상 일정한 진리성을 지닌 것이다. 따라서 한 사람이 가진 의견의 진리를 다른 사람에게 드러내는 소통의 과정이 중요해진다. 이때 인간은 복수로 존재할 뿐 아니라 자신 속에도 복수성의 지표를 갖고 있기에, 소크라테스는 자기 자신과의 일치, 즉 무모순성을 요구한다. 한편 인간의 말하는 능력과 인간의 복수성 역시 서로 조응하는 것이다. 로고스라는 말에서 드러나듯이, 인간은 바로 말을 통해 생각을 드러내는 이성적 동물이자 복수의 인간들과 의견을 나누는 정치적 동물이다. 그리스의 경쟁적 정신을 극복하기 위해, 폴리스는 이와 같은 정치적 우정의 과정을 통해 공동체의 유대를 만들어낸다.

그러나 소크라테스의 기획은 실패했고, 철학과 정치의 갈등은 결국 철학의 패배로 끝났다. 소크라테스적 성찰의 상실과 더불어 철학자가 정치와 거리를 두는 시대가 개시되었고, 사유와 행위의 분리라는 귀결이 생겨났다. 플라톤이 고안해낸 몸과 영혼의 갈등 역시 이러한 사유와 행위의 분리의 연장선상에 있으며 철학으로써 정치를 지배하려는 시도에서 비롯한다. 가령 플라톤이 드는 동굴의 우화는 진리를 본 철학자와 동굴의 우매한 시민들을 다룬다. 그러나 이 우화에서는 정치적으로 인간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두 표현인 말과 행위가 완전히 빠져있기에, 동굴 거주자들은 오직 벽면을 보는 일 밖에 하지 않는다. 여기서 플라톤은 왜 철학자는 진리의 세계인 동굴 밖으로 나가자고 동료 시민들을 설득할 수 없는지 설명하고 있지 않다. 이 비유는 철학은 의견의 형성과는 거리가 먼 말없는 경이라는 감정에서 시작하고 말없음으로 끝난다는 것을 전제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철학자의 궁극적인 경험이 말없음이 될 때, 그는 말하기가 인간의 최고 능력이 되는 정치 영역 외부에 위치하게 된다. 이 말없는 경이 속에서 철학자는 자신의 단수성 위에 자신을 수립하며 인간 조건의 복수성을 파괴하게 되는 것이다. 마키아벨리, 홉스, 마르크스 등의 정치철학도 역시 이러한 전통의 연장선상에 있다. 오늘날 철학과 정치의 관계는 다시 모색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 도래할 새로운 정치철학은 모든 인간사가 벌어지는 근거인 인간의 복수성을 경이의 대상으로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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