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에서 발행하는 월간 사회운동에서 펌. 

 

 

백승욱, 『자본주의 역사 강의』, 그린비(2006)


정 희 찬 | 회원


세계체계 분석으로 본 자본주의의 기원과 미래

21세기 첫번째 10년의 중반을 넘어선 지금 두드러지는 것은 돌이킬 수 없는 자본주의의 위기다. 외채상환을 빌미로 강제된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실업과 빈곤 속에서 점증하는 대중적 분노와 원한의 정치, 만성화된 종족간․인종간 갈등과 내전 등은 남반부 대부분의 지역에서 대부분의 인구를 생존의 벼랑 끝으로 몰아가고 있다. 케인즈주의적 사회-복지국가 모델의 폐기와 금융시장 부양을 위한 정책적 지원이라는 중심부 국가에서의 신자유주의 반혁명은 극소수 금융자산자들에 의한 부의 독점을 조장하고 있다. 또한 2003년 미․영 연합군의 이라크 침공을 계기로 본격화된 미국의 예방전쟁․선제공격이라는 독트린은 오히려 더 큰 폭력과 무질서의 혼란을 야기하며 미국의 무능력을 노출하고 있다. 『자본주의 역사강의』(백승욱, 그린비, 2006)는 바로 이러한 정세 속에서 “세계체계 분석과 역사적 자본주의라는 시각”을 택하면서 “우리가 통념으로 가지고 있었던 많은 사고들을 재검토”(p.8)하고자 한다.

세계체계 분석(world-system analysis)에 들어가기에 앞서 제기되는 것은 남한에서 1980년대 사회성격논쟁의 한계와 기존 사회주의관이 현시점에서 지니는 난점이다. 사회성격논쟁의 경우, 신식민지국가독점자본주의론이 기반을 두고있는 레닌의 제국주의론이 20세기 이후 새롭게 나타난 미국 자본주의 변화를 포괄하고 있지 못하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즉 19세기 말 이후 영국 자본주의 모델이 위기에 처하면서 그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독일의 국가독점자본주의 모델, 즉 금융과 산업자본 카르텔 등 수평적 통합을 통해 결합한 국가 주도적 자본주의가 등장한다. 한편 이와 경합하는 다른 자본주의 모델, 즉 법인기업을 중심으로 수직적 통합을 통해 거래비용을 내부화하는 미국의 자본주의가 동시에 출현했던 것인데 레닌의 제국주의론에는 결국 승리한 미국 자본주의가 반영되지 못했던 것이다.

또한 현실사회주의 국가에 대한 평가의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국유화를 내세우며 결국 소비에트나 평의회 등 대중운동을 부차화 내지 억압하게 된 역사적 경험이나 최근 중국의 급격한 자본주의 발전을 살펴보면,  16~17세기 영국과 프랑스가 네덜란드를 따라잡기 위해서 구사한 일종의 중상주의적 전략과 현실사회주의 국가들의 노선이 매우 다르기는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 효과의 차원에서 보자면 굳이 다르다고 볼 수만은 없다는 것이다.1) 왜냐하면 중상주의란 자국의 생산구조를 고도화하여 세계경제에 더 나은 조건으로 편입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데, 중국이나 소련의 사회주의는 결국 반주변부로 진입하기 위한 전략의 일환으로 종결된 것이며, 따라서 사회주의 국가들을 자본주의 역사의 ‘외부’로 치부할 수만은 없는 것이다. 세계체계 분석은 이처럼 20세기 새로운 자본주의의 등장을 둘러싸고 혼란을 노정 했던 마르크스주의 분석을 보완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러한 세계체계 분석이 정립되기까지는 브로델(F. Braudel), 폴라니(K. Polany), 월러스틴(I. Wallerstein), 아리기(G. Arrighi)의 기여를 우회할 수 없다.


세계체계 분석의 전사: 브로델과 폴라니

세계체계 분석은 다른 누구보다 브로델의 연구성과를 상당 부분 계승한다. 브로델은 주저 『물질문명과 자본주의』(국역: 까치, 1997)에서 자본주의를 장기지속의 시간대에 위치 짓고, 삼층도식의 최상층에 자리잡은 독점의 영역으로 파악한다.

장기지속은 “구조의 시간”, 즉 “구조가 지속되는 시간”으로서, ‘먼지’에 불과한 사건의 단기 시간대 및 지속기간이 너무 길어 시간의 의미가 사라지는 초장기지속과 구분된다. 『물질문명과 자본주의』에서 다루는 시간대는 바로 이 장기지속의 시간대이며, 장기지속은 다시 복수의 콩종크튀르(conjoncture)와 맞물려 복합적인 시간대를 형성한다. 브로델에게 장기지속의 시간대는 13세기 북부 이탈리아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와 더불어 브로델은 자본주의를 삼층도식으로 파악하는데 1층은 물질문명, 2층은 시장경제, 3층은 자본주의가 자리잡고 있다. 여기서 독특한 점은 시장경제와 자본주의를 상호 대립적인 관계로 파악한다는 것이다. 시장경제는 투명한 완전경쟁시장으로서 C-M-C'의 원리, 즉 자본이 축적되지 않는 교환의 영역이다. 자본주의는 바로 경쟁을 배제하고 독점을 통해 이윤을 축적하는데, 레닌이 경쟁의 상부구조로서 독점을 언급했듯이 자본주의는 처음부터 독점의 영역이었다는 것이다. 가장 대표적인 독점의 사례는 원거리 무역을 독점한 유럽의 대상인인데, 바로 이들이 초기 자본주의 역사의 주역들이다. 독점을 향한 경쟁은 반드시 국가의 지원을 조건으로 하고 있으며 그 공간적 범위는 세계시장으로 확대된다. 브로델의 자본주의관은 국가 없는 독점(자본주의)의 불가능성, 세계경제(world-economy)로서의 자본주의의에 대한 이해, 자본운동의 범위로서 생산 뿐 아니라 금융과 유통의 영역을 강조했다는 점에서 독창적인 함의를 지닌다. 하지만 브로델에게 자본주의가 생산의 영역에 자리잡고, 상부구조에 자리잡게 된 19세기 이후에 나타나는 변화에 대한 분석은 공백으로 남는다. 이와 관련하여 시장경제의 자기조정적 변화와 이에 대한 사회의 ‘자기보호’ 기제의 작동을 분석하는 폴라니의 작업이 주목된다.

19세기 영국이 자본주의를 선도하게 되면서 나타나는 주된 특징은 자본이 생산의 영역으로 진출했다는 것, 즉 자본에 의한 노동의 포섭이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19세기는 유럽에 한정된 자본주의 세계경제가 비로소 전지구적으로 확산된 시기이기도 하다.2) 폴라니의 『거대한 변환』(국역: 민음사, 1997)이 다루는 것이 바로 19세기 자본주의의 변화에 대한 분석이다. 폴라니의 분석은 자기조정적 시장경제의 모순에서 시작된다. 19세기 말 영국 헤게모니가 위기에 처하자 그동안 헤게모니를 지탱해왔던 금본위제는 내부로부터 사회를 붕괴시키는 기제로 작동한다. 금 1온스당 1파운드라는 가치를 유지하고 파운드를 국제적인 건전화폐로 유지하기 위해 인플레이션을 유발할 수 있는 인위적인 경기부양책은 불가능한데, 이러한 금본위제를 정당화한 것이 이른바 자기조정적 시장경제의 이데올로기였다. 자기조정적 시장경제에 대한 신앙은 전국시장의 형성과 동시적인 과정이다. 전국시장은 16~17세기 네덜란드를 따라잡기 위한 영국과 프랑스의 중상주의적 국가전략에 의해 추동되는데, 전국시장이 형성되려면 국가간섭과 더불어 값싼 생필품의 대량공급을 뒷받침하는 생산의 문제가 해결되어야 한다. 이로부터 자본의 생산영역으로의 진출이 시작되며 그 과정에서 토지, 노동력, 화폐 등의 허구적 상품이 등장한다. 바로 이 허구적 상품이 등장하는 과정에서 사회의 자기보호 기제가 작동하는데(이중운동) 그 대표적인 것이 초기에 농촌 공동체를 수호하고 빈곤과 기아의 위험으로부터 노동자를 구제하려는 스핀햄랜드법이다. 그러나 이는 보조금에 의존하는 빈민을 창출했을 뿐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이후 등장한 신구빈법은 빈민들에게 극악한 구빈원 생활과 공장노동 사이의 양자택일을 강요하면서 ‘기아의 규율’을 통해 오히려 노동력의 상품화를 촉진하였다. 또한 경제의 파국을 막기 위해 중앙은행이 등장하지만 이 역시 19세기 말 점차 괴리되어 가는 자유무역과 금본위제의 안정에는 실패한다.

그 결과 20세기 자기조정적 시장경제에 대한 사회의 자기보호 기제는 파시즘, 사회주의, 뉴딜이라는 세 가지 형태로 등장한다. 시장경제의 위기에 대한 사회의 자기보호는 사회주의처럼 급진적 대안의 형태일 수도 있고 파시즘과 같이 반동적인 형태로 나타날 수도 있는 것이다. 이처럼 이중운동, 즉 자기조정적 시장경제에 대한 사회의 자기보호 기제의 작동이라는 분석틀은 노동력의 상품화과정에서 국가의 억압적 역할을 조명하고, 전지구적 차원에서 19세기 및 20세기로 넘어가는 과정 중 나타나는 전반적인 변화를 파악하는 데는 긍정적인 기여를 할 수 있다.


월러스틴과 아리기의 세계체계 분석

1970년대 등장한 세계체계 분석은 앞선 시기부터 제기된 지적운동의 연장선상에 자리잡고 있다. 세계체계 분석의 이론적 계기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대표적인 것이 종속이론과 자본주의 이행논쟁이다.

종속이론은 제3세계의 저발전과 후진성을 근대화의 ‘과소’가 아니라 자본주의 세계경제의 불균등 발전의 결과로 파악하고 핵심적으로 ‘종속’이라는 문제를 제기한다. 이로부터 중심과 주변이라는 용어가 등장하는데, 종속이론은 점차 근대화된 사회와 그렇지 않은 사회를 비교하는 요소론으로 경도되면서 국가중심적 사고로 회귀한다. 종속이론의 또 다른 판본인 생산양식 접합론에서는 제3세계를 자본주의 생산양식과 전(前)자본주의 생산양식의 접합이라는 틀로 분석하는데 여기서 자본주의 생산양식은 서구 자본주의와 동일시되고 근대화론의 기본 발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된다. 하지만 중심과 주변의 자본주의 발전이 상이한 경로로 분기한다는 종속이론의 문제의식는 이후 세계체계 분석을 통해 심화․발전된다.

돕(M. Dobb)과 스위지(P. Sweezy) 사이에 벌어진 자본주의 이행논쟁은 봉건제에서 자본주의로의 이행에 대한 역사적 경험이 자본주의에서 사회주의/공산주의로의 이행에도 적용될 수 있음을 함축하고 있기 때문에 이론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중요한 논쟁이다. 봉건제에서 자본주의로의 이행의 원동력을 둘러싼 돕과 스위지의 논쟁은 ‘내인론’과 ‘외인론’이라는 구도를 형성한다. 돕은 영국을 분석하면서 농민층의 분해와 여기서 비롯된 부르주아 계급의 형성에서 이행의 동인을 참고자 하였고(내재적 발전론), 스위지는 전 유럽을 분석하면서 북유럽과 여타 유럽을 잇는 원거리 무역에서 나타나는 독점을 중시한다. 스위지는 여전히 자본주의를 19세기 근대 공업체계로 규정한다는 점에서 불충분한 측면이 있었지만 일국적 차원에서 생산양식의 교체가 일어난다는 돕의 논지를 비판한다는 점에서 세계체계론의 문제의식과 친화적이다.

월러스틴과 아리기는 일국적 차원에서 자본주의의 역사를 분석하는 기존의 지배적인 인식을 비판하며 세계체계로서 자본주의의 역사적 전재과정을 추적하기 시작한다. 둘 사이에는 근대세계체계로서 역사적 자본주의라는 문제설정 속에서 중요한 쟁점이 자리잡고 있으며 특히 아리기의 작업은 미국 헤게모니하의 현대자본주의를 분석하는 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1) 자본주의 기원: 16세기 농업 자본주의 vs 13세기 상업 자본주의

자본주의의 기원과 팽창을 분석하면서 월러스틴은 자본주의에 대한 기존의 진화적이고 목적론적인 해석을 비판한다. 일단 자본주의 등장에 대한 월러스틴의 설명은 “정세론”이다. 즉 근대자본주의의 기원은 필연적인 것이 아니라, 영주제의 위기․국가의 위기․교회의 위기․몽골의 몰락이라는 정세적 조건 속에서 자본주의가 세계체계로 성장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시장경제를 정치적․이데올로기적으로 억압하던 영주․국가․교회가 위기에 처하면서 자본주의의 거점이 성장하기 시작했으며 이 흐름을 장악할 만큼 강한 집단이 아직 형성되지 않은 권력의 공백 상황에서 세계 각지를 정복해가던 몽골의 돌연한 유럽정복 중단이 유럽에서 자본주의 등장을 가능케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리기가 보기에 자본주의 출현에 대한 월러스틴의 ‘정세론’은 단지 조건에 불과할 뿐이며 자본주의의 메커니즘 속에서 해명되지 않기 때문에 불충분하다. 아리기는 또한 월러스틴이 자본주의 기원을 16세기로 설정하는 것을 비판하며 이는 농업 내부의 기축적 분업에 의한 분화에 초점을 맞춘 나머지 장소만 바뀌었을 뿐 돕이 영국을 대상으로 ‘내재적 발전’을 도출했던 것과 다르지 않다고 지적한다. 아리기는 자본주의 등장을 경쟁과 혁신이라는 틀로 설명한다. 여기서 자본주의 기원은 13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데 동방과의 원거리 무역을 통해 자본을 축적한 이탈리아의 도시국가들이, 당시 치열하게 벌어지던 국가들 간의 경합에서 금융자본을 지원하고 비로소 북부 이탈리아와 북부 유럽의 세계경제가 유럽의 세계경제로 통합되면서 자본주의 역사가 시작된다.


2) 근대세계체계의 구조: 중심-주변의 기축적 분업구조 vs 체계적 축적순환으로서 헤게모니 순환

『근대세계체계론』(국역: 까치, 2000)에 나타나는 월러스틴의 세계체계 분석에서 핵심적인 것은 중심과 주변을 가르는 기축적 분업(axial division of labor) 구조다. 이러한 분업구조 속에서 노동력은 임노동자나 노예 등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고, 인종주의와 성차별구조에 따른 위계구조가 중첩되면서 세계 노동계급 내부에 성적․인종적 분할을 각인한다. 또한 국가간체계는 이 기축적 분업의 구조 속에서 제도화되며 영토주의적 논리에 따라 팽창하는 세계제국의 등장을 봉쇄함으로써 자본축적을 보호한다. 기축적 분업구조 속에서 재생산되는 계급적 불평등, 중심-주변의 불평등에도 불구하고 근대세계체계가 재생산될 수 있었던 것은 세계체계를 합리화하는 지배이데올로기로서 자유주의 덕분이다.

1789년 프랑스혁명의 의의에 대해 월러스틴은 귀족과 부르주아의 계급투쟁으로 파악하거나 봉건제에서 자본주의로 넘어가는 계기로서 이해해왔던 기존의 이해방식을 부인하고 20세기까지 서로 수렴․경합해왔던 세 가지 근대정치이데올로기(보수주의․자유주의․사회주의/급진주의)의 발생이라는 관점에서 설명한다. 자유주의는 기회의 평등을 내세우며 능력주의/성과주의(meritocracy)를 통해 불평등한 위계구조가 부정되지 않도록 기능한다. 또한 전문가에 의한 점진적인 개혁, 즉 엘리트에 의해 통제되는 국가를 통해 이루어지는 진보를 선호함으로써 보수주의의 반동을 제어하는 한편 도시 프롤레타리아, 식민지 인민 등의 ‘위험계급’에 대한 포섭을 시도한다. 그 포섭의 기제는 국내적으로는 보통선거권과 민족동일성을 바탕으로 한 사회복지국가, 국제적으로는 민족자결권의 수용과 발전주의다. 이 포섭의 기제가 강력한 흡인력을 발휘했고 자유주의 이외의 이데올로기, 특히 사회주의마저 수렴될 정도였다.

반체계운동이 처한 모순은 다름 아닌 정당형태를 매개로 국가권력을 장악한 이후 혁명이 중단되었다는 것이며, 이에 대한 불만이 유럽의 사민주의 국가들, 동유럽의 사회주의 국가들, 제3세계 신생독립국 등 전 세계에서 동시에 터져나온 것이 1968년이다. 1968년 기존의 반체계운동에 대한 공격이 가장 격렬하게 이루어진 것은 중국의 문화대혁명이었으며 이조차도 인민해방군의 무력진압과 지식인에 대한 공격이라는 비극적인 형태로 막을 내린다.3) 월러스틴의 반체계운동에 대한 분석은 현실사회주의의 역사와 한계를 지나치게 단순화한 측면이 있지만 기존 반체계운동의 실패에 대한 평가와 반성이라는 차원에서 가벼이 여길 수 없는 문제제기이기도 하다.

아리기는 주저 『장기 20세기』4)에서, ‘체계적 축적순환’을 중심으로 헤게모니 순환의 역사를 설명한다. 아리기는 콩종크튀르를 콘드라티에프 곡선을 통해 설명하는 브로델과 월러스틴을 비판하며, 콘드라티에프 곡선은 장기적 가격변동의 경험적 산물일 뿐 그 자체로 이론적 함의는 없으며 자본의 이윤과 가격의 등락이 일치하는 것만은 아니기 때문에 근대세계체계 설명의 유용한 도구가 되기에는 한계적이라고 지적한다. 또한 아리기는 중심-주변의 구도를 배제하고 국가를 매개로 한 거대 자본들 사이의 헤게모니를 향한 경쟁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러한 아리기의 시도는 계급분석의 결여, 정치경제학 문제의식의 부재라는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중심-주변이라는 구도를 중심으로 모든 정세를 체계 전체의 문제로 환원하는 월러스틴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시도로 볼 수도 있다.

주저의 제목 “장기 20세기”에서도 드러나듯이 아리기의 세계체계분석에서 분석의 주된 대상은 20세기 자본주의다. 이러한 점에서 아리기의 작업은 1840년대 이후 근대세계체계 이후 분석이 중단된 월러스틴에 비해 현대자본주의 분석이 훨씬 정교할 뿐 아니라 19세기 말 수정주의 논쟁 이후 마르크스주의 역사에서 끊임없이 반복되어 온 자본주의 위기를 둘러싼 논쟁들의 한계를 보완한다.5)

아리기의 작업은 체계적 축적순환과 국가간체계의 모순적 결합으로서 역사적 자본주의를 설명한다는 점에서 특징적이다. 헤게모니 국가는 전지구적인 체계적 축적순환을 선도하는데 수익성과 이윤율의 하락에 따라 자본주의 세계체계는 새로운 헤게모니 국가가 선도하는 새로운 체계적 축적순환으로 대체된다. 역사적으로 네덜란드, 영국, 미국은 세계헤게모니로서 체계적 축적순환을 선도하였던 국가들인데 이들은 각각 보호비용의 내부화(internalization), 생산비용의 내부화, 거래비용의 내부화를 통해 ‘조직혁명’을 달성하고 상대적 우위를 차지함으로써 세계적 축적구조를 혁신하게 된다. 하지만 축적체계의 세계적 확장을 위해서는 반드시 국가간체계라는 매개를 거쳐야한다. 국가간체계는 세계적 축적의 안정적 지속을 위한 상부구조로 볼 수 있는데 일례로 영국의 경우에는 영토제국주의 열강 사이의 국가간체계, 미국의 경우에는 냉전으로 표상 되는 국가간체계의 수립이 세계헤게모니로 부상하는 데 관건적이다. 세계헤게모니를 효율성의 상대적 우위로 규정하는 월러스틴과 달리 아리기의 세계헤게모니는 다른 국가들에게 ‘발전의 길’을 제시하고 이를 따르게 하는 능력, 즉 보편성의 이상이라는 점에서 체계 전반을 재구성하는 지도력을 의미한다. 각각의 체계적 축적순환은 세계경제에서 투자와 고용의 영역에서 확대가 일어나는 실물적(물질적) 팽창국면과 이윤율이 하락하는 가운데 실믈적 팽창이 중단되고 급속한 금융화가 진행되고 기존의 세계헤게모니가 쇠퇴하면서 새로운 헤게모니 국가를 둘러싼 국가간 경쟁이 이루어지는 금융적 팽창 국면으로 구성된다. 금융적 팽창국면은 벨 에포크(belle époque: 불어로 ‘좋은 시절’이라는 의미) 시기로서 고도금융이 성장하면서 실물적 팽창의 중단에 따른 징후적 위기(signal crisis)를 극복하고 이윤율을 회복하지만, 이는 일시적인 것으로서 기존의 축적순환과 국가간체계가 붕괴하는 최종적 위기(terminal crisis), 즉 체계의 카오스가 발생한다. 새로운 축적양식이 등장하지 않는다면 이는 세계체계 자체의 붕괴로 이어질 수도 있다.


20세기 자본주의의 성립과 위기: 미국 헤게모니의 등장과 금융세계화

1차 세계대전과 2차 세계대전(사실상의 ‘30년 전쟁’)을 통해 미국은 헤게모니 국가의 지위를 놓고 경쟁하던 독일을 물리치고 새로운 헤게모니 국가로서 새로운 체계적 축적순환을 이끌어가게 된다. 지정학적으로 유럽대륙과 떨어진 해양국가라는 점, 유럽 열강들과의 충돌을 야기하는 외부의 식민지 개척이 아니라 프런티어(frontier)라는 사고방식 속에서 내부의 식민지 개척을 추진할 수 있었던 점, 라틴 아메리카를 배후지로 둔 점 등은 독일에 비해 미국이 지닌 이점이었다.

미국 자본주의 내적 특징은 이종산업의 통합, 즉 연관 부문의 수직적 통합을 통한 법인기업(corporation)이다. 법인자본주의의 등장으로 미국 자본주의는 거래비용을 내부화함으로써 수익성을 제고할 수 있게 되었을 뿐 아니라 자본회전 속도의 가속화, 대량생산과 대량유통의 결합에 따른 규모의 경제 출현, 소유자와 경영자의 분리에 따른 전문경영인의 등장과 노동과정을 통제하는 테일러주의와 포드주의, 즉 노동에 대한 실질적 포섭 등의 변화를 겪게 된다. 법인기업은 식민지의 독립 이후에도 투자의 자유를 바탕으로, 적극적인 해외진출을 모색하면서 시장을 개척할 수 있었다. 미국이 헤게모니 국가로서 자신의 위상을 정립하고 전후 세계 자본주의 질서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해결해야 했던 것이, 첫째 1929년 대공황의 교훈으로서 고도금융에 대한 통제, 둘째 복지국가와 소비주의6)를 매개로 한 노동계급의 체계 내 포섭, 셋째 발전주의를 매개로 한 제3세계 민족해방운동/국가의 포섭이라는 문제였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 관건적인 것은 미국의 능력의 부족이 아니라 의지의 부족이었다고 할 수 있을 텐데, 새로운 세계질서의 수립에서 미국의 적극적이고 주도적인 역할에 대한 정치적인 합의가 아직 충분치 않았기 때문이다. 한국전쟁을 계기로 본격화된 ‘냉전의 발명’은 미국을 따라잡으려는 국가들이 두 진영으로 나뉘어 사회주의적 발전주의와 자본주의적 발전주의로 경합하는 국가간체계로 정착된다. 그러나 1967/73년부터 미국 헤게모니는 정점에 도달하고 금융적 팽창국면이 시작되는데 오늘날 금융세계화가 전개되는 것이다.

베트남전쟁을 기점으로 쌍둥이 적자(무역적자와 재정적자)에 시달리던 미국에 의해 금-달러 가치를 고정하던 브레턴우즈 체제가 1960년대 말과 1970년대 초에 걸쳐 무너지고, 이후 변동환율제 시행, 자본이동 자유화, 공공채무의 증권화 등의 조치가 뒤따른다. 이로부터 금융화 국면이 시작된다. 그런데 20세기 말 금융화는 영국 헤게모니가 몰락하던 19세기 말 금융화와는 몇 가지 점에서 차이가 있다. 첫째 국채시장이 팽창하면서 세계 대부분의 국가가 채무상태에 놓여 채권자(기관투자자)로부터 정책적 자율성을 갖기 어렵다는 점, 둘째 노동에 대한 포섭이라는 정치사회적 조건으로 인해 자본주의 위기의 양상이 인플레이션으로 나타난다는 점, 셋째, 자본과 군사력이 미국으로 집중된다는 점, 넷째, 외향적이지 않는 미국경제의 특성상 제3세계에서 배제된 지역(제4세계)이 늘어난다는 것, 다섯째 과거의 민족해방운동이나 사회주의운동에 비견될만한 조직화된 (대중적) 저항이 부재하다는 점, 여섯째 동아시아의 비중이 커지면서 헤게모니의 지위를 넘보고 있다는 점 등이 그것이다.

무엇보다 외양적으로는 헤게모니의 쇠퇴라고 생각되지 않을 만큼 자본과 군사력이 미국으로 집중된다는 점이 주목된다. 미국은 엄청난 재정적자와 무역수지 적자에도 불구하고 안정적인 경제를 유지하고 있는데, 이는 외부로부터의 엄청난 자본이 유입되어 부족분을 상쇄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은 이라크전쟁 비용의 증가, 외국인의 미국 내 자산보유, 달러에 대한 동아시아 국가들, 특히 중국의 발언권 증가, 경상수지 적자 등의 요인으로 인해 굉장히 불투명하다. 또한 국가간체계를 유리하게 재편하려는 미국의 정치․군사적 전략은 오히려 이라크에서 볼 수 있듯이 상황을 더욱 악화시켜 ‘제국’의 지배를 불안정하게 할 뿐이라는 점에서 자본주의 미래, 자본주의의 생존 가능성에 대한 의문은 어느 때보다 더욱 증폭되고 있다.


앞으로의 쟁점

『자본주의 역사강의』는 세계체계 분석을 통해 앞서 언급한 것말고도 상당히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마지막으로 그 중에서 몇 가지 눈에 띠는 쟁점을 간단히 정리하고 글을 마치고자 한다.


1) 동아시아 자본주의

세계체계 분석에서 동아시아는 다른 지역과 구분되는 매우 독특한 함의를 지닌다. 동아시아는 유럽연합(EU)과는 달리 여전히 100여 년 전에 존재했던 두 개의 거대한 세력이 대랍하고 있으며, 1950년대 이후 냉전 시대 현실사회주의 국가들과 최전선에서 대립하고 있는 지정학적 조건으로 인해 아프리카나 라틴 아메리카와는 달리 일본의 부흥과 신흥공업경제(NIEs)의 고도성장으로 나타나는 발전국가의 모델이 등장했으며, 1980년대 이후에는 사회주의권이 세계경제에 편입되어 성장하면서 일본의 다층적 하청구도가 동아시아 전역으로 확대되고 있다. 특히 냉전 시기 동아시아의 지정학적 조건은 남미가 “경제의 과잉”이라고 한다면 “정치의 과잉”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데, 탈냉전 시기에도 한반도를 둘러싼 미국과 북한의 갈등은 미국과 중국, 미국과 일본, 중국과 일본의 상호 관계와 맞물리며 복잡한 대립과 협력의 계선을 만들어 내고 있다. 우리의 입장에서 보자면 이러한 동아시의 지정학적 조건은, 특히 최근 북한 핵실험에 대한 운동진영의 이른바 ‘용인론’과 관련하여, 한반도를 둘러싼 역내 국가들간의 복잡한 함수 관계와 구분되는(혹은 단절하는) 사회운동의 역할은 무엇이며, 활동영역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제기한다.

아리기는 중국의 부상을 염두에 두고, 금융중심지인 제노바가 제국적 팽창의 군사적 중심인 이베리아 제국과 결합했던 역사적 경험이 반복될 것인가 하는 질문을 제기하는데, 본서에 언급된 대로 양자 사이에 융합(fusion)이 아니라 분기(fission)가 일어날 가능성도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미국이 동아시아를 중요한 전략적 거점으로 판단하여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확보․한국과 일본의 이라크 파병단행․일본의 평화헌법 개정 지지 등 한미동맹 및 미일동맹을 전지구적 차원으로 확대하려는 시도를 보이고 그에 비례하여 각 지역의 반전평화 운동의 대응이 거세지는 만큼 융합이든 분기이든 그 과정은 상당한 갈등과 진통을 수반할 수밖에 없다. 또한 자본주의의 구조적 위기 국면에서 동아시아 자본주의 역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지적할 필요가 있다. 시간이 흐르면서 생산과 금융의 중심이 동아시아로 이동하고 있다지만 이를 과연 새로운 체계적 축적순환이라고 볼 수 있는지는 확실치 않기 때문이다.7) 오히려 한국의 주식시장이 초민족적 자본에 의해 좌우된다는 점에서 드러나듯이 상당히 취약한 토대 위에 자리잡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8)


2) 자기비판된 사회구성체론의 복권과 노동자운동의 전망

저자는 곳곳에서 사회구성체론의 복권을 언급한다. 이는 한국 사회성격 논쟁으로부터 강의를 시작하는 것이나(pp.20~28), 세계체계 분석이 자본의 재생산과 관련된다면 사회구성체론은 지배관계의 재생산, 노동의 구체성이라는 차원에서 연관성이 있다는 지적(pp.40~3), 그리고 아리기의 세계체계 분석을 다루는 부분에서 사회구성체론의 복권 필요성을 제기하는 데서도 드러나고 있다(pp258~64). 여기서 저자가 언급하는 사회구성체는 자기비판된 것으로서 반드시 기존의 민족국가를 단위로 하는 것이 아니라 더 큰 단위일 수도 있고 더 작은 단위일 수도 있다. 어쨌든 그것은 세계경제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자본의 재생산과는 달리 더 낮은 단위에서 이루어지는 이데올로기의 재생산을 가리키며 그 기본단위는 매우 달라질 수 있다. 이데올로기의 재생산은 알튀세르도 지적했듯이9) 자본주의 생산양식에서 결정적인 노동력의 재생산과 직결되는 문제다.

관련하여 본서에서는 근대적 주체의 생성이라는 차원에서 폴라니의 문제의식이 강조되고 있다. 그에 따르면 근대적 노동자의 재생산에서 발생한 단절점은 ‘기아의 규율’을 통한 작업장으로의 강제동원이 이루어지는 가운데 근대 자유주의 국가에서의 파편화된 정치적 주체가 형성되는 과정에 다름 아니었다. 노동자들은 근대 이후 보통선거권을 획득하기는 했지만 사회로부터 고립되고 원자화된 개인에 불과하며 그 자체로는 역설적으로 아무런 정치적 의사를 형성할 수 없는 존재들로 전락한다. 이처럼 노동의 상품화는 사회로부터 뿌리뽑힌/탈구된(disembedded) 노동자를 구성하는데 이는 상품화 초기스핀햄랜드법이나 신구빈원법에서 드러나듯이 전반적인 삶의 파괴과정이다. 그러나 이에 대응하는 스미스적 기획은 시장에서 발생하는 적대를 분배의 문제로 협소하게 인식하며, 그 결과 노동자운동에서 노동조합의 결성은 오히려 노동력의 상품화를 촉진하는 방향에서 임금인상을 목표로 하게 된다. 이후에도 운동의 주류적 흐름은 임금제도를 철폐하는 운동의 방향으로 전개되지 않았다. 또한 20세기 들어 대표적 산업인 자동차 산업의 경우 작업장에 기반한 교섭력이 커지면서 19세기 공동체의 여러 조직들을 매개로 발휘되었던 연대와 연합적 힘을 대체하고 오히려 노동자운동이 사회로부터 격리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20세기 후반 마르크스주의 위기와 금융세계화의 영향으로 작업장 교섭력에 기반한 조직노동자운동이 약화되고 기존의 조직으로 포괄되지 않는 여러 비정규적 형태의 노동력이 출현하면서 19세기 연합적 힘에 기반한 노동자운동의 전통이 복원될 필요성이 제기된다.

마지막으로 덧붙이자면 자기비판된 사회구성체론의 문제의식은 무엇보다 국제주의의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조건들에 대한 탐색이라는 맥락 속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이데올로기적 주체의 재생산과 대응양상은 저자의 지적처럼 단지 세계경제로 환원할 수 없는 국지적 차별성, 즉 정세의 차별성을 지니고 있다. 중요한 것은 바로 이 차별성 속에서 지난 1세기 동안 세계혁명을 꿈꾸던 혁명가들에게 강력한 양심으로 남아있으면서 결국 무기력하게 좌초한 국제주의의 재개를 위한 조건을 보다 구체적으로 분석하고 사고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10) 19세기 연합적 힘에 기반한 노동자운동을 20세기의 노동자운동과 비교하면 무엇보다 전자가 민족주의가 대중화되기 이전의 시기, 즉 마르크스가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고 호기롭게 외치면서 전유럽적 차원의 인터내셔널을 결성하던 시기였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20세기 자유주의 이데올로기가 세계의 반체계운동을 포섭하는 매개가 민족국가였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오늘날 국제주의라는 쟁점은 운동이 기존의 반체계운동의 한계를 넘어서는 데 매우 핵심적인 지위를 부여받을 수 있다.

더군다나 노동자운동의 주류가 의존해왔던 사회복지국가와 (반)주변부의 발전주의는 신자유주의적으로 변모하거나 한계에 봉착해 있다. 이러한 정세적 조건에서 노동자운동의 국가주의적․민족주의적 경향은 자칫 미국의 AFL-CIO가 중국의 WTO 가입을 반대하면서 보였던 국수주의적이거나 인종주의적 논리로 빠질 수 있을 뿐 아니라 세계화에 대한 불만이 세계 각지에서 종교적․종족적 이데올로기에 의해 정당화되는 극단적인 저항폭력의 형태로 수렴될 가능성이 존재한다. 요컨대 1세기 전 “사회주의인가, 야만인가”라는 질문이 오늘날 “국제주의인가, 야만인가”라는 질문으로 되돌아오고 있는 것이다.


1) 이러한 세계체계 분석의 사회주의 평가를 마르크스주의 내에서 이루어진 국가자본주의 논쟁의 맥락에서 독해하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소련을 둘러싼 국가자본주의 논쟁에 대해서는 윤소영, 『마르크스의 경제학 비판과 소련 사회주의』, 공감, 2002 참조.


2) 홉스봄(E. Hobsbawm)은 『자본의 시대』(국역: 김동택, 한길사, 1997)에서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팽창과 자유주의 및 부르주아의 성장을 분석하면서 1848~75년 사이 시기를 ‘자본의 시대’로 명명한다.


3) 당과 국가를 관통하는 대중노선의 모순, 즉 스탈린주의를 극한적으로 작동시킴으로써 역설적으로 스탈린주의의 한계를 실천한 마르크스주의자로서 마오에 대해서는 에티엔 발리바르, 「마오 : 스탈린주의의 내재적 비판?」; 윤소영 편역, 『맑스주의의 역사』, 민맥, 1992 참조.


4) Giovanni Arrighi, The Long Twentieth Century - Money, Power and the Origins of Our Times, Verso, 1994.


5) 이와 관련하여 박상현, 「자본주의 구조적 위기와 서구 마르크스주의 위기이론」; 김석진 외, 『자본주의의 위기와 역사적 마르크스주의』, 공감, 2001. 김숙경, 「마르크스주의 위기이론과 이윤율의 경제학」; 같은 책 참조.


6) 19세기 말 20세기 초 미국 노동운동의 급진적인 노동시간 단축운동은 뉴딜과 2차대전을 거치면서 ‘더 많은 임금, 더 많은 소비’를 획득하는 것으로 귀결되면서 결국 체계 내로 포섭된다. 관련하여 안정옥, 「소비적 근대성과 사회적 권리 : 미국 헤게모니의 사회적 기원과 한계」; 백승욱 외, 『미국의 세기는 끝났는가? - 세계체계 분석으로 본 미국 헤게모니의 역사』, 그린비, 2005 참조.


7) ‘체계적 카오스’를 지난 500년 간 유지된 자본주의 체계 전반의 위기라는 맥락에서 사용하는 월러스틴은 일본 및 동아시아가 미국 이후 세계 헤게모니로 등장할지 여부에 대해 부정적이다. 동이사아 자본주의의 미래 역시 현재 자본주의  구조적 위기와 무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매뉴얼 월러스틴, 「동아시아의 부상, 21세기의 세계체계」 및 「이른바 아시아의 위기 - 장기지속 내의 지정학」, 『우리가 아는 세계의 종언 - 21세기를 위한 사회과학』(백승욱 옮김, 창작과비평사, 2001) 참조.


8) 2004년 12월 현재 외국인 투자자들은 한국 주식시장의 42%를 차지하고 있으며 수익률도 상당히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국제투자대조표에서 드러나는 바, 지분성 직접투자와 증권투자를 포함하면 한국의 순국제투자는 2004년 말 903억 달러 적자(GDP 대비 13.3%)로서 이는 자본이 탈에 의한 경제위기가 상존함을 의미한다. 박하순, 「신자유주의적 금융세계화와 한국경제의 전망, 그리고 불안정노동」; 박하순․장귀연 외, 『신자유주의에 맞서는 노동운동 - 불안정노동 철폐를 위하여』, 도서출판 사회운동, 2005.


9) 루이 알튀세르, 「이데올로기와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국역: 『아미앵에서의 주장』, 솔, 2000)


10) 이와 관련하여 앞서 소개했던 세계체계 분석에서 동아시아 자본주의의 이례적인 발전과정에 대한 분석이 지니는 의의는 크다고 할 수 있다. 본서에서는 「8강 동아시아와 세계체계」에서 그 내용을 소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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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와 기독교

중세 교회는 봉건 지배체제의 일부였습니다. 교회는 엄청난 땅을 소유했고 평민들에게서 세금을 걷고 사법권의 상당 부분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교회는 이렇게 설교했습니다. “하느님이 준 권력인 국왕과 하느님의 대리인인 교회에 복종해야 한다” “현실은 죄로 물든 고통스러운 것이며 인생의 진정한 목적은 천국에 가는 것이다.”

그럴싸한 말이지만, 이 설교에 따르면 모든 현실적 욕망(부도덕한 탐욕뿐 아니라 인간 해방의 욕망 같은 정당한 것까지 포함한)은 사악하고 부질없는 것입니다. 교회는, 그 자체로 봉건체제의 지배이데올로기였습니다. 성직자와 귀족을 제외한 전체 인구의 95%가 넘는 사람들이 그런 신앙의 사슬에 묶여 수입의 8할 이상을 귀족과 교회에 바치며 평생 죽도록 일만 했습니다. 죽어서 천국에 가기 위해서 말입니다. 그러나 현실적 욕망을 사악한 것이라 설교하는 교회는 현실적 욕망에 가장 충실했습니다. 토지와 돈에 대한 교회의 탐욕은 그야말로 끝이 없었고 평민들의 불만도 점점 높아갔습니다.

상공업이 발달하고 도시가 생기면서 상황이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중세 사회는 성직자와 귀족이 제3신분인 평민들을 착취하는 사회였지만 평민들 가운데 일부가 새로운 중간계급을 이루기 시작했습니다. 이른바 부르주아가 출현한 것입니다. 부르주아들은 한편으로 저술가, 의사, 교사, 변호사, 판사들이었고 다른 한편으로 상인, 제조업자, 은행가들이었습니다. 부르주아는 무능한 귀족과 타락한 교회와 대결하기 시작했습니다. 부르주아들은 경제에서 자유방임, 사회적으론 ‘이성의 지배’를 표방하며 성장했고 자신들에게 마지막 남은 제약, ‘신분’을 해결합니다. 그게 바로 시민혁명입니다.

시민혁명은 프랑스 혁명, 영국혁명, 이렇게 일컬어지는 사건이지만 봉건사회가 부르주아에 의해 점령되는 수백 년에 걸친 과정이기도 합니다. 종교개혁은 그런 과정의 제1막입니다. 흔히 종교개혁을 타락한 교회에 대한 정당한 저항이라고 하지만 그것은 종교개혁의 의미를 기독교라는 카테고리 안에서만 보는 것입니다. 종교개혁은 부르주아가 봉건 지배체제로서 교회를 자신들의 체제로 변화시키는 사건이었습니다. 종교개혁을 통해 교회는 달라졌지만, 교회가 지배체제의 이데올로기라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봉건시대의 교회는 부를 더러운 것이라 설교했지만 종교개혁가들은 부는 하느님의 축복이라 설교했습니다. 칼빈은 최초의 기업정신을 만듭니다. “사업으로 얻는 소득이 토지 소유로 얻는 소득보다 많아서는 안 되는 이유가 뭔가? 상인의 이윤이 그 자신의 근면과 성실에서 오는 게 아니라면 대체 어디에서 온단 말인가?”

막스 베버는 칼빈이 말한 근면과 성실, 그리고 금욕으로 요약되는 이른바 ‘프로테스탄트 정신’이 자본주의를 만들었다고 했습니다. 돈을 축적하는 일은 죄가 아니라 하느님이 축복하는 선한 일이 되었기 때문에 자본주의적 축적이 가능했다는 것입니다. 반면에 맑스주의는 생산력이 발달하고 자본주의 생산관계가 만들어지면서 그에 조응하는 정신적인 가치들이 생겨났다고 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프로테스탄트 정신이 어떻게 생겨났는가가 아니라 그 정신이 현재 우리에게 무엇인가, 입니다. 프로테스탄트 정신이 봉건사회에 대한 저항으로서 갖는 개혁적이고 진보적인 의미보다는 그 정신을 담은 자본주의 사회가 어떤 사회인가가 더 중요합니다.

부의 축적은 칼빈이 말한 대로 여전히 근면과 성실, 그리고 금욕으로 이루어지고 있는가? 물론 성공한 자본가들은 자신이 정당하게 부자가 되었다는 걸 강조하기 위해 그런 선전들을 많이 합니다. 우리는 김우중 씨의 안경다리가 20년 된 것이라느니 정주영 씨가 근검절약이 몸에 밴 사람이라느니 하는 이야기들을 수도 없이 듣습니다. 그들이 ‘안경다리’가 아닌 개인 용도에 상상하기 어려운 돈을 쓰기도 한다는 점에서 그들의 근검절약은 그들의 호사 취미일 뿐입니다. 그러나 좀 더 본질적인 문제는 그들의 부가 근검절약으로 축적된 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평생 모은 돈을 대학게 기부하는 김밥 할머니가 아닙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가가 부를 축적하는 원리는 어디까지나 노동자의 잉여 노동입니다. 즉 노동자의 100원어치 노동을 60원에 사 40원을 먹는 데서 나오는 것입니다.

교회가 사회적 불평등에 참여하는 전통적인 방법은 이른바 자선입니다. 미국의 자본가들은 자선 사업에 기부함으로써 사회적 영웅 대접을 받습니다. 그러나 자선은 두 가지 문제를 갖습니다. 하나는 그 대상이 되는 사람들을 ‘불쌍한 인간’으로 만드는 것인데 이것은 전혀 신앙적이지 않습니다. 둘째는 자선이 가난의 부당함과 가난을 만드는 사회적 모순을 은폐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든 어떤 노동이든 사람이 일주일에 40시간 이상 노동을 하면 먹고 살 수 있고 얼마간의 인간적인 여가를 즐길 수 있어야 합니다. 문제는 아주 많은 사람들이 그렇지가 못하다는 것이고 우리는 그런 불공정한 상태를 고쳐내야 합니다. 자선은 바로 그것을 값싼 눈물과 감동으로 차단합니다.

우리는 워낙 반공주의 경향이 강한 나라에서 살다보니 흔히 자본주의는 다 같은 줄 알지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이를테면 미국은 우리보다는 나은데 유럽은 또 미국과 전혀 다릅니다. 우리 기준으로 보면 유럽 나라들은 사회주의 사회에 가깝습니다. 근래 미국의 제국주의적인 정책에 열심히 따른다고 비난을 받는 영국만 보더라도 의료와 교육이 전액 무료입니다. 독일이나 프랑스의 사회복지는 말할 것도 없고 북유럽 쪽의 사회복지는 서유럽보다 더 높은 수준입니다. 몇 해 전에 노키아의 부회장이 오토바이를 타고 가다가 과속으로 걸려서 범칙금으로 1억 3천만원을 냈다는 이야기는 잘 아실 겁니다. 그런데 작년 말엔 같은 핀란드의 27살짜리 부자가 자동차 과속으로 2억 5천만원을 냈습니다. 우리는 이건희가 과속을 하건 40대 무주택 가장인 김 아무개가 과속을 하건 똑같이 3만원을 내는 걸 공정하다고 생각하지요.

그런데 유럽에서 기독교는 뚜렷하게 쇠락하고 있습니다. 현대 신학의 중심지라는 독일의 교회는 노인들만 몇몇 앉아서 예배를 봅니다. 반면에 미국이나 한국처럼 자본주의적 모순이 좀 더 노골적인 나라에선 교회가 차고 넘치지요. 이것은 현재 기독교의 정신이 자본주의적 모순이 좀 더 노골적인 사회에 부응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기독교 정신이 인류의 미래에 전혀 전망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유럽 사회의 사회복지는 본디 자본주의적인 개념이 아닙니다. 그 사회들은 러시아보다 더 먼저 사회주의 나라가 될 뻔 했고 그걸 막기 위해 사회주의자들과 타협을 했던 것입니다. 물론 사회주의는 유물론을 기초로 하고 유물론자들은 대개 하느님의 존재에 관심이 없습니다. 그런데 하느님을 부인하는 사람들이 하느님을 떠받드는 사람들보다 훨씬 더 사람답게 살고 있는 것입니다. 기독교인들은 부끄러워해야 합니다.

기독교의 본래 정신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기독교의 본래 정신은 프로테스탄트 정신도 종교개혁의 정신도 아닌 예수의 정신입니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받아들이는 건 기독교인에게 당연하고 아름다운 일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예수만 강조하여 예수가 우리에게 가르친 삶의 방식을 외면하는 건 종교체제로서 기독교나 교회에 사로잡혀 예수를 다시 한번 팔아먹는 행위라는 것을 되새겨야 합니다. 예수는 단 한 번도 새로운 종교를 만들려고 한 적이 없습니다. 예수는 단지 어떻게 사는 게 사랍답게 사는 것이고 하느님을 섬기는 삶인지 몸소 보여주었습니다. 교회는 그런 삶을 실천하고 전하기 위한 조직입니다.

기독교 정신의 가장 위대한 지점은 ‘하느님 앞에서 모든 사람이 형제자매’라는 것입니다. 백인이든 흑인이든 여성이든 남성이든 어른이든 아이든 부자든 가난뱅이든 배운 사람이든 못 배운 사람이든, 심지어 기독교인이든 불교신자든 이슬람교도든 모든 사람은 하느님 앞에서 형제자매입니다. 예수는 바로 그 사실을 몸소 보여줌으로써 유대인의 신으로 여겨지던 하느님이 온 인류의 신임을 가르쳐주었습니다. ‘하느님 앞에서 모든 사람이 형제자매’라는 건 참 무서운 이야기입니다. 그 정신은 어떤 형태의 차별이나 착취도 불가능하게 합니다. 사회주의가 분배의 공정함을 목표로 한다면 기독교 정신은 분배의 공정함을 이룬 다음에도 남는 ‘내 형제에 대한 염려’입니다.

기독교인에게 남보다 더 좋은 것을 입고 먹는 일은 바로 헐벗고 가난한 내 형제에 대한 배신입니다. 8억이 넘는 사람들이 굶주림에 허덕이고 그 가운데 3억이 어린 아이들입니다. 기독교인은 바로 지금 자기마치 3억 명의 제 새끼가 굶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오늘은 어떤 맛있는 걸 먹을까 찾아다니고 돈을 들여가며 비만을 치료하고 지역마다 음식 쓰레기를 맡지 않겠다고 싸웁니다. 이역만리 어느 곳에 부당하게 고통 받는 사람이 단 한명이라도 있다면 기독교인은 편하게 잠을 이룰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바로 ‘내 형제’인 것입니다. 우리는 바로 이 사실에서 기독교가 사회주의를 훌쩍 뛰어넘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회주의는 공정한 분배체제를 만들 수는 있었지만 사람들에게 그런 마음을 키워내는 데는 실패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그것을 할 수 있습니다. 아니 그런 마음에서 출발합니다. 교회는 그런 마음을 키우고 실현하는 공동체입니다.

예수는 지난 2천년 동안 단 한 번도 제대로 이해받지 못했습니다. 그 중요한 원인은 예수의 정신이 너무나 현대적이었다는 것입니다. 예수의 정신엔 사회주의, 여성주의, 생태주의, 아동인권을 비롯한 인류가 현대에 들어서야 깨달은 여러 소중한 정신들이 이미 들어 있습니다. 이를테면 예수의 일행엔 언제나 여성들이 여럿 포함되어 있습니다. 인류 역사의 어떤 현인이나 종교 창시자도 여자를 일행에 포함시킨 일이 없습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여자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는 2천년 전에 여자들과 동행했고 여자 가운데서도 가장 천한 성매매 여성과 인격적으로 교우했습니다. 예수의 그런 행동이 사람들을 얼마나 당혹스럽게 만들었을지 사회에 얼마나 큰 충격을 주었을지 잘 생각해보십시오. 오늘 기독교인은 과연 어떤 행동으로 사회에 당혹감과 충격을 주고 있습니까?

기독교는 예수의 정신을 되찾아야 합니다. 이기심과 사적 소유를 기반으로 한, 땀 흘려 같이 일하고도 남보다 수천 수만배의 돈을 벌어들이는 사람이 찬미되는, 계급적 착취와 제국주의적 착취가 공공연한, 사랑이나 존경까지도 돈으로 매매되는 자본주의는 기독교인에게 말 그대로 악마의 사회체제입니다. 이른바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진행되면서 자본주의는 초기 자본주의의 야만으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80년대 말 자본주의의 강력한 경쟁자이던 동구 사회주의들이 몰락하면서 더 빠르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지금 인류를 나락으로 떨어트리고 있습니다. 빈부격차는 급속하게 벌어지고 이윤을 차지하기 위해선 공공연한 침략전쟁도 불사합니다. 그런데 교회는 그런 현실에 대응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대응하기는커녕 오히려 그에 부응하고 있습니다. 그런 현상이 가장 강한 교회가 바로 한국의 교회입니다. 한국 교회가 이렇게 된 배경은 흔히 미국식 근본주의 기독교, 말하자면 지금 부시 일당이 믿는 그런 기독교가 들어왔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맞는 얘기지만 보다 더 결정적인 배경은 세계 교회사에서 유례가 없다는 이른바 ‘한국교회의 놀라운 부흥사’와 관련이 있습니다. 한국교회의 놀라운 부흥은 주로 박정희 개발 파시즘 기간 동안의 일입니다. 물론 그건 시간상의 우연한 일치가 아닙니다. 한국교회는 개발 독재의 가장 충직한 선전선동 장치였습니다.

“믿으면 받는다” 라는 한국 교회의 설교는 “하면 된다” 라는 개발 독재의 구호와 일치했습니다. 한국 교회의 무조건적 반공주의는 민주주의적 의견을 빨갱이로 몰아붙이는 독재의 의도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습니다. 또한 교회는 사람들의 자연스런 저항의식을 배설하게 하는 공간이었습니다. 관제 행사가 아니라면 여럿이 모이는 일조차 불편하던 시절, 교회는 사람들이 마음껏 소리치고 교제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었습니다. 특히 파시즘이라는 사회적 억압에다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는 식의 전근대적 가부장제에 시달리던 여성들에게 교회는 그야말로 해방의 공간이었습니다. 게다가 믿으면 남편도 자식도 잘된다는데 당시 여성들에게 그보다 더한 가치가 어디 있겠습니까. ‘아줌마’들은 교회 부흥의 돌격대가 되었습니다.

‘한국 교회의 놀라운 부흥사’는 그렇게 씌어졌고 오늘 한국 교회는 세계에서 가장 저급한 신앙관을 자랑하게 되었습니다. 90년대 이후 우리 사회는 파시즘이 물러나고 민주화와 개혁이 진행되었지만 파시즘이 있던 자리를 대신 자본이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자본의 지배는 파시즘의 지배처럼 폭력이나 억압을 통한 게 아니라 사람들에게 자본의 달콤한 욕망을 심어주어 스스로 복종하게 하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서 돈이면 뭐든 다 된다는 생각을 심어주어서 사람들이 돈 앞에 무릎 꿇게 만드는 것이지요. 인간적이고 품위 있는 세상에 관심을 갖기 보다는 부동산과 통장 잔고에 집착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교회는 새로운 지배자에게도 ‘준비된’ 선전선동 장치입니다.

제가 한국 교회를 욕하고 있지만 한국 교회에는 예수의 삶을 본받으려는 세계 교회사에 중요하게 기록될 만한 소중한 실천들도 존재했습니다. 70년대와 80년대 초에 모든 사회운동의 중심에 진보적인 교회가 있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런 정신을 갖는 교회는 이제 거의 없습니다. 이젠 거의 모든 교회가 하느님 대신에 돈을 섬깁니다. 오늘 대개의 한국교회는 교회가 아니라 교회를 가장한 상점들일 뿐입니다. 그 살벌하던 파시즘 시절에도 살아있는 교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젠 거의 없습니다. 파시즘보다 ‘자본의 신’이 기독교인에게 더 무서운 적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자본주의 사회는 예수가 살던 2천년 전 유대사회처럼 단순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차별과 착취는 언뜻 알아보기 어려운 복잡한 구조로 되어있고, 신문이나 방송 같은 주류 미디어와 여론을 가장한 온갖 이데올로기 공작, 특히 지배체제의 손바닥 안에서 놀아나는 네티즌의 활약은 그 복잡한 구조를 한 번 더 덮어 버립니다. 깊고 뜨거운 신앙심이나 영적 신령함이 그 구조를 자동으로 보여주진 않습니다. 자본주의를 들여다볼 수 없다면 예수의 삶을 실천할 방법도 없습니다. 오늘 기독교인에게 자본주의에 대해 공부하는 일은 성경 공부만큼이나 중요합니다. 부동산이나 주식 같은 공부를 말하는 게 아니라 이놈의 자본주의가 대체 사람들의 피를 어떻게 빨아먹고 있는가, 우리의 신앙을 어떻게 파괴하고 있는가를 공부하는 것입니다.

기독교인은 예수가 정치적 박해를 받았다는 사실, 예수가 당대 지배체제와 대결했다는 사실에 정직해야 합니다. 그 대결의 방식에서 나타나는 비폭력성만을 편의적으로 발췌하여 예수의 급진성을 모호하게 만들어선 안 됩니다. 교회가 다 돈을 섬기게 되었다고 말했는데 돈 대신에 다른 걸 섬기는 교회도 있습니다. 바로 ‘내 마음’을 섬기는 교회입니다. 그런 교회의 목사님과 신도들은 다 온화하고 도사들 같습니다. 수염 이렇게 기르고 개량한복 입고 조용히 앉아서 “부시나 라덴이나 똑같다” 말합니다. 그들은 예수 흉내를 내지만, 그 폭력의 현실과 내 형제의 고통을 ‘초월’하고 있다는 점에서 역시 예수를 팔아먹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예수가 단 한 번도 현실을 떠나거나 초월한 어떤 가치를 말한 적이 없다는 것을 되새겨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가 이 천박한 자본주의 세상에 살았다면 어떻게 했을까 늘 고민해야 합니다. (평신도 아카데미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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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님 홈피서 펌. 나중에 한가해지면 읽어봐야겠다;;;

 

월간 <사회운동> 11월호에서 퍼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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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시민권의 철학은 가능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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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티엔 발리바르 | <번역>장진범 | 정책편집부장



[역주: 지난 호까지 연재한 『책 속의 책』 페미니즘 기획을 마치고, 이번 호부터 정치 비판 및 정치 이념에 관한 새로운 기획을 시작한다. 1991년 현실 사회주의가 최종적으로 몰락하면서, 지난 150여 년 동안 노동자운동을 비롯한 사회운동들의 가장 강력한 이념이었던 마르크스주의 역시 청산의 대상으로 전락한다. 마르크스주의 이념에 대한 회의는 이념 일반에 대한 회의로 이어졌고, 자본주의의 틀을 받아들이는 한에서 실용주의적 개혁을 추진하는 것 이외의 모든 발본적 모색은 '거대담론'에 대한 시대착오적 집착으로 억압되었다.
하지만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 및 그에 맞서는 사회운동의 (재)출현은 정치 이념 문제를 긴급한 의제로 올려 놓는다. 이는 두 가지 의미에서다. 한 편으로 신자유주의와 세계화는 근대의 지배적 정치 형태를 근거 짓는 이념이었던 자유주의와 민족주의의 모순이 낳은 결과다. 따라서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맞서기 위해서는 그 원인 중 하나로서 기존 이념을 반성하고 변혁하기 위한 모색이 당면한 과제 중 하나로 나선다. 다른 한 편으로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다면적으로 벌어지는 대중 투쟁들을 더욱 확산시켜야 할 뿐 아니라, 이들을 새로운 대안 세력으로 묶어 내는 과제가 제기된다. 이는 정치 이념의 문제를 돌파하지 않고서는 결코 해결될 수 없는 문제다. 우리가 정치 비판 및 정치 이념의 문제로 돌아올 수밖에 없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이번 호에서는 그 시작으로 프랑스 마르크스주의 철학자 에티엔 발리바르의 「인간 시민권(Human Civic Rights)1)의 철학은 가능한가? 평등한 자유에 관한 새로운 반성」을 싣는다. 이 글은 근대 정치 이념의 시초가 되는 평등과 자유, 인권과 시민권의 관계에 관한 그의 기왕의 논의를 정교화하는 한편, 민주적 헌법을 기초 짓는 핵심 원리로 각각 기본권과 인민 주권을 특권화하는 지배적 논쟁 지형에 개입하여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이는 직접적으로 유럽 헌법 조약을 둘러싼 논쟁을 겨냥한 것으로, 실제로 발리바르는 이 글 이후 유럽 헌법 조약의 문제점 및 새로운 헌법이 담아야 하는 핵심 원리를 적극적으로 발언한다(유럽 헌법 조약 당시 발리바르의 입장에 관한 소개로는, 강국, 「유럽헌법조약 부결과 정치이념 논쟁」, 월간 『사회운동』 2005. 7/8월호(통권 56호)를 참고하라.). 뿐만 아니라 이 글에서 발리바르는 근대 정치의 가장 중요한 제도적 쟁점인 '소유'와 '공동체' 문제가 항상 이율배반적인 것으로 나타난 까닭은 각각을 정당화하기 위해 사용되었던 인간학 그의 표현을 따르자면 '개인'의 인간학과 '주체'의 인간학 의 이율배반에 있음을 밝히면서 이러한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배제를 배제하는' '정치적 인간학'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이 같은 주장은 앞으로 정치 이념에 관한 논의를 해 감에 있어 매우 중요한 준거점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우리의 생각이다.]



1)역주 여기서 '시민(적)'이라고 새긴 'civic'은 통상 '공민(적)'이라고 번역하는데, 현재 한국어 용법에서 '공민권'이라는 말이 너무 낯설기 때문에 부득이하게 이렇게 번역했다. 최근 발리바르는 예컨대 'civil disobedience'(시민 불복종)이라는 말을 'civic disobedience'라고 바꾸어 부른 바 있고, 'civic right'라는 표현 역시 각주 2에서 보듯 토론회 제목으로 제시된 'civil right'라는 표현과 선을 긋기 위해 제시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현재 'civil'이라는 단어가 국가/시민사회, 집단/개인, 공/사 등의 이분법을 받아들인 채 후자의 영역에 국한되어 사용되는 것을 비판하기 위해서인 것 같다. 즉 발리바르가 'civil right'가 아니라 'civic right'라는 표현을 통해 제기하는 것은, 시민권이 이미 구성된 체계의 일부인 시민사회 안에서 주어진 권리를 향유하는 권리가 아니라, 말 그대로 새로운 체계를 (탈)구성하여 새로운 권리를 (탈)구성하는 권리라는 점이다. 이렇듯 발리바르의 '시민권' 개념이 기존의 시민권 개념에 대한 비판을 함축하고 있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본문으로




인간 시민권(Human Civic Rights)의 철학은 가능한가? 평등한 자유에 관한 새로운 반성

나는 여기서 평등한 자유(아이쿠아 리베르타스, aequa libertas)라는 통념에 관한 "새로운 반성들"을 제시하고 싶은데, 이 통념은 고대(키케로)부터 존 롤스와 아마르티아 센의 작업을 둘러싸고 벌어진 당대 논쟁들에 이르는 공화주의 정치 전통 전체에 걸쳐 존속해 왔으며, 나는 이전의 연구에서 이 통념을 평등한 자유(equaliberty, galibert , igualibertad, Gleiche Freiheit, or Gleichheit/Freheit 등)라는 압축된 혼성어 형태로 제시한 바 있다.2) 이 반성들을 통해 정치 철학의 고전적 문제 곧 시민권(rights of the citizen)의 민주적 정초(定礎, foundation)를 토론하는 데 기여하려는 것이 나의 의도다. 철학에서 정초는 원리 특히 구성(構成, constitutive) 원리의 해명을 뜻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시민권" 자체가 입헌(入憲, constitutional) 질서의 핵심이자 목표를 이룬다 성문적이든 불문적이든, 형상적이든 질료적이든, 규범적이든 구조적이든 고 상정할 때 여기서 문제는, 우리 역사에 깊이 뿌리박힌 철학적-정치적 언어유희를 따라 말하자면, 헌법의 구성(constitution of constitution) 같은 것이다(하지만 언어마다 외양은 다양하다: 프랑스어로는 constitution de la constitution이지만, 독일어로는 Konstitution der Verfassung이다.). 여기서 나는 이 구성의 구성을 '해체'(deconstruction, 탈-구축)의 정신에 따라 다루고 싶은데, 이는 파괴라거나 순전한 자격박탈이 아니라 탈-구축(Ab-bau)3), 전제에 대한 비판적 분석으로 이해해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해체는 문제적인 요소들과 부정적, 이율배반적 또는 아포리아적 측면들을 끌어냄으로써, 개작이나 전위 심지어 역전(나는 결론 부분에서 이런 제안을 하고 싶은데, 이는 한나 아렌트의 일부 고찰에서 나름대로 영감을 얻은 것이다.)의 필연성을 이해할 수 있게 해 준다.4)
우리가 다루고 있는 문제를 파악하기 위해서 내가 간략히(그리고 희망컨대 논란의 소지가 없는 방식으로) 상기하고 싶은 것은, 본질적으로 민주주의적인 근대 시민권(citizenship)에 내재한 철학 혁명을 구성하는 것은 무엇이며, 그것이 왜 원리상의 난점을 제기하는가 하는 점이다. 근대 시민권, 곧 고전주의 시기에 시작하여 17~19세기의 인민 봉기와 헌법 개혁을 통해 이루어진 정치 변혁에 의해 전진적으로 설립되었으며, 무한한 과제를 구성한다고 널리 인정받는 근대 시민권을, 고대, 중세, 그리고 르네상스의 시민권과 구별 짓는 것은 사실 민주주의 원리의 발명이 아니다. 아리스토텔레스와 키케로가 이미 말했듯, 폴리테이아(polliteia, 정치체)나 키비타스(civitas, 도시국가)의 원리는 본질적으로 민주주의적인 이우스 코뮤니스(ius communis, 공동의 법)와 콘센수스 포풀리(consensus populi, 인민의 동의)에 준거했다. 근대 시민권을 뚜렷하게 특징짓는 것은, 적어도 권리상 또는 원리상으로 본다면, 시민 지위의 보편화다. 즉 시민 지위는 특권이기를 멈추고 대신 정치에 대한 보편적 권리, 보편적 접근의 견지에서 파악되기에 이른다. 정치적 권리에 대한 권리(아렌트가 말했듯 "권리를 가질 권리")일 뿐만 아니라, 실질적인 정치 참여에 대한 권리가 바로 그것이다.5)
우리 근대인에게는 이론의 여지가 없는, 하지만 또한 동시에 불편한, 근대성의 유산을 대표하는 이러한 관점에서 쟁점이 되는 것은 우선 외연적(extensive) 보편성이다. 즉 세계정치적(cosmopolitical) 지평이 그것으로, 다양한 민족적, 연방적 시민권들, 또는 좀더 정확히 말하자면 민족적 시민권과 국제법의 절합이 상이한 정도로 이러한 지평에 근접하고 있다. 하지만 내가 내포적(intensive) 보편성이라 부르려는 것이 훨씬 중요한데, 이는 공통의 인간성, 헤겔이나 포이어바흐 식으로 말하면 가퉁스베젠(Gattungswesen) 또는 "유적(類的) 존재"인 특성 없는 인간 고유성(properties)을 결여한 인간이라고까지 말할 수는 없겠지만 을 정치 참여의 지주 또는 "주체/기체"(基體, subject)로 제시한다. 이 내포적 보편성은 조건이나 지위, 본성을 이유로 한 시민권의 부인을 금지하고, 배제를 배제한다. 우리는 보편성의 개념화에 본래적인 이 부정성 또는 "부정의 부정"의 요소에 주목해야 한다.
근대적 시민권은 이상적으로(또는 이렇게 말하길 원한다면, 규범적으로) 인간성이라는 술어와 시민성이라는 술어의 동연성(同延性, coextensivity), 두 관점의 상호성, 등식을 설립한다. 유명한 철학 정식을 빌려 말하자면, 호모 시베 키비스(Homo sive Civis, 인간 즉 시민)다. 정치적 근대성을 기초 지었으며 우리의 헌법 전문 대부분에서 그 흔적이 발견되는 위대한 선언들에, 진술적이면서 동시에 수행적으로 표현되어 있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내가 다른 학자들을 따라 다른 곳에서 논증한 것처럼 이들 선언의 핵심 골자는, 이보다 시기적으로 앞서고 영미권의 입헌 전통에서 유사한 위치를 차지하는 『권리 장전』과 마찬가지로, 평등한 자유(equal liberty) 또는 "평등 자유"(equaliberty) 명제로 구성되어 있음이 밝혀진다.6) 이 명제는 특유의 이중 부정 또는 동시 부정 형태로, 평등은 자유 없이 불가능하고 자유 역시 평등 없이 불가능하다는 점, 따라서 자유와 평등은 상호 함축 관계에 있다고 정립한다. 그리하여 이 명제는 유적(類的) 인간과 시민권을 원리상 동치로 만들며, 이는 "인간의 권리"와 "시민의 권리"의 법적 일치(adequation)를 함축한다. 따라서 이는 근대에 전형적인 보편주의적 관점에 따라 헌법을 민주적으로 구성하는 원리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난점은 어디에서 비롯하는가? 집요하고 해결 불가능하기 십상인 난점, 민주적 보편주의를 포기하거나 와해시키는 방향으로 가서는 안 되며, 민주적 보편주의의 구성에 대한 비판을 발전시키는 방향으로 인도해야 할 그 난점은 어디서 나오는가? 내가 볼 때 이러한 난점을 낳는 이유들의 원천 또는 집합을 최소한 세 가지 정도는 제시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나는 민주주의적 헌정을 구성하는 명제 자체를 재고하거나 재정식화할 수 있게 해 주는 방식으로 이것들을 소묘해보고 싶다.
첫째(여기서 나는 물론 독창성을 주장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 이 난점들은 민주주의적인 권리 구성/헌정(democratic constitution of rights)이라는 관념을 이중적으로 해석하는 데서 나오는데, 이는 기본권(게랄트 슈트르츠(Gerald Stourzh)의 주저 제목에서 환기된 기본권 민주주의(Grundrechtsdemokratie))라는 통념과 인민 주권 또는 입법적이고 입헌적인 "일반 의지"라는 통념 사이의 경합에서 표현된다.7)
둘째 나는 이 측면이 사실 첫 번째 측면과 무관하지 않을뿐더러, 추상적으로 규범적인 관점과 역사적·정치적으로 구체적인 관점 간의 대립보다 훨씬 더 만족스러운 해석을 제공해 줄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 싶다 난점은 보편주의적 정초가 준거하는 인간 개념이 근본적으로 다의적인 개념이라는 사실에서 온다. 우리는 우주론적(cosmological)이거나 신학적인(또는 우주신학적인) 관점을 인간학적인 관점으로 바꾸는 역사적 대체 이는 근대성을 고유하게 특징짓는 대체다 의 결과 과거 신이나 세계로 형상화되던 최종적 준거점의 지위를 차지하게 된 인간이라는 용어가 두 가지 대립된 의미작용 또는 이해방식으로 즉시 분할된다는 "형이상학적 사실"을 상기함으로써 이를 표현할 수 있다. 공동체적 인간은 소유자로서의 인간과 동일하지 않으며, 내가 도입하고 싶은 용어법에 따르자면 "주체"로서의 인간은 "개인"으로서의 인간과 동일하지 않다. 비록 양자 모두 유적이며, 둘 다 시민과 일치하고 시민의 권리 구성을 내부로부터 결정하게 되어 있지만, 그렇다고 양자가 동일한 것은 아니다. 현실에서 이 이중성은 정치를 실질적으로 민주화하려는 또는 평등한 자유를 제도적으로 실현하려는, 항상 갈등적인 시도와 절차들 안에서 한 시도 그치지 않고 작동해 왔다.
셋째, 마지막으로 난점은 "정초"는 그 관념만이 아니라 과정 자체가 본질적이고 돌이킬 수 없이 이율배반적이라는 사실, 즉 자기 자신과 모순을 빚고 그 자신이 설립하는 원리를 부정할 수밖에 없다는 데서 온다. 여기서 나는 얼마간 구성/입헌 권력(constituent power)이라는 통념의 고전적 이율배반을 염두에 두고 있는데, 잘 알려진 것처럼 그 신학적 뿌리는 법이나 질서를 설립하는 궁극적 지점이 또한 필연적으로 모든 질서와 적법성이 해소되는 지점, 법질서의 보편성에 관한 예외 지점이자 그 법적 제약에 관한 해방의 지점 역시 표상하게 만든다는 데 있다(이 문제에 관해서는 후술하겠다). 하지만 내가 또한 염두에 두고 있는 점은 보편화 자체가 배제, 또는 심지어 내적 배제 절차와 분리할 수 없어 보이는 것 같다는 점이다. 이는 원리를 실현하는 데서 겪게 되는 우연한 난점들이나 역사적 상황에 따른 원리들의 단순한 경험적 제한 내지 특수화 같은 것들과는 사뭇 다른 것을 표상한다. 이는 구성/입헌이나 [헌법의] 재정초라는 관념 그 자체를 내부로부터 변용한다.
여기서 우리가 반드시 제기해야 하는 질문은 명백히 역설적인 것으로서, 이는 보편성 자체에 고유한 "유한성"의 종류는 무엇인지, "민주주의" 또는 "시민권"이라는 정치적 이름을 지닌 해방 과정의 무한한 또는 미완적 성격에 고유한 "유한성"은 무엇인지 하는 질문이다. 내가 방금 환기시킨 각각의 점들을 도식적이고 부분적으로나마 다시 살펴보기로 하자. 이 세 가지 경우에서 내 목표는 우리가 지도 원리로 삼는 권리의 민주적 구성/입헌이라는 관념에 본래적인 아포리아적 요소들을 각각 다른 관점에서 강조하는 것이 될 것이다.
내가 환기시킨 첫 번째 난점은, 모두 알다시피 정치적·철학적 담론과 분리할 수 없는 메타법적인 담론 안에서, 민주적 구성/입헌 질서의 지속적인 "정초"가 어떻게 가능한지, 따라서 그러한 질서에 대한 보증이 어떻게 제공될 수 있는지 그려볼 수 있는 두 가지 전망[기본권의 관점 대 인민 주권의 관점] 사이의 긴장과 관련된다.
여기 있는 여러분 모두가 잘 알고 있는 역사적 이유 때문에 이 난점은 1945년 이후 독일의 상황에서 특히 뚜렷하고 명료한 형태로 정식화되었다. 또한 우리는 그것이 제기하는 문제가 오늘날 각별한 함의를 지닌다는 점 역시 알고 있는데, 왜냐하면 권력과 공적 권위에 관한 입헌적 전망, 가능하다면 민주주의적인 구성/입헌의 전망을 탈(post)민족적이거나 상위(supra)민족적 공간, 특히 유럽 공간으로 확장하는 문제를 우리가 직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실을 말하자면 이 두 측면(외연적 측면 상위민족체로의 이행 과 내포적 측면 공적 권력들의 민주화)은 분리할 수 없다.
나는 두 명의 동시대 독일 저자들에게서 몇 가지 정식화를 빌려올 생각인데, 그 중 한 명은 철학자 위르겐 하버마스(Jurgen Habermas)고, 다른 한 명은 법학자 에른스트-볼프강 뵈켄회르데(Ernst-Wolfgang B ckenf rde)로, 이들은 이러한 난점을 서로 다른 방식으로 해결하지만, 적어도 내 생각에는, 상당히 비슷한 용어로 이러한 난점을 제기하고 있다.
최근작인 『사실성과 타당성』의 핵심 장에서 하버마스는, 정치 질서를 내적으로 규제하는 "권리 체계"는 두 방향 중 하나로 "재구성"될 수 있다고 제안한다. 그는 "실정법이라는 수단에 따라 자신들의 공동의 삶을 규제"8)할 것을 합법적으로 지향하는 시민들 사이의 상호 인정 과정 안에서 작동하는 [권리 체계의 두 방향 사이의] "내적 긴장"에 관해 이야기하면서, 이 "양가적인 법적 타당성(validity)"을 한 편으로는 루소주의적인, 다른 한 편으로는 칸트주의적인 계보에 따라서 (이 점이 중요하다) 자율(성)의 원리를 이해하는 두 가지 서로 다른 방식에 철학적으로 준거 짓는다(여기서 논쟁을 벌일 수는 없지만, 사실 이는 하버마스에게는 루소와 칸트의 담론이 서로에 대해 단순히 외재적이지 않음을 의미한다). 권리 체계의 토대에 관한, 따라서 법적 측면, 도덕적 측면(주체적인 자기결정과 주체성들 사이의 상호 인정이라는 관념과 연결되어 있는)과 고유하게 정치적 측면 간의 내적 관계에 관한 하버마스의 논의 전체는 그가 관점들 사이의 "암묵적인 경합" 관계라고 부르는 것 쪽으로 나아가는 경향이 있는데, 여기서 두 가지 경합하는 관점은 입헌 질서가 기본권(Grundrechte)으로 간주되는 인권에 기초한다고 보는 관점과, 인민 주권 원리에 기초한다고 보는 관점이다.9) 하버마스는 이 두 가지 관점이 "근대 법을 정당화할 수 있는 유일한 관념들"이라고 본다.10) 과연 이 두 관점은 그것을 수단으로 합의, 또는 하버마스의 인상적인 정식화를 따르자면 "일인칭 복수"(us, nous, wir)11) - 이는 자기결정이나 권리들의 상호 인정이라는 실질적 과정에 의해 전제된다 - 를 생산함과 동시에 그것에 규범을 주거나 조절할 수 있는 유일한 두 가지 관념이다.
하지만 이 두 가지 관념은 보완적이기보다는 경합적인데, 특히 민주주의에 관한 "자유주의적"이고 "시민 공화주의적"(civic republican) 개념화 사이에서 되풀이되는 토론이 잘 보여주거니와, 이 두 관념은 각각 도식적으로 칸트주의적 표상(비록 나 자신은 로크주의적 요소를 강조해두고 싶지만)과 루소주의적 표상으로 귀속될 수 있다. 전자는 주관적 권리들12) 사이의 상호성과 합의, 또는 이러한 상호성의 본질적 내용을 이루는 평등한 자유를 규범의 보편성 위에 기초 짓는 경향이 있는데, 이러한 보편 규범은, 고유한 의미의 정치-법률 질서의 "상류"(upstream)에서, 즉 개인들이 이상적으로 서로서로를 대체할 수 있고 따라서 견해의 차이나 이해의 갈등을 중화할 수 있는 도덕적 영역에서 발견되어야 한다. 후자는 보통 "일반 의지"라 불리는 평등주의적 규범을 구체적(하버마스는 이를 "실존적"이라고까지 부른다.13))인 정치 행위 안에 통합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 정치 행위는 개인들의 사회화를 실현한다. 즉 개인들을 역사적 사회의 제도들 안에 통합시키는데, 이 때 국가의 강제력을 동원하거나 동원하지 않으면서, 개인에게 다시 한 번 적어도 이상적으로는 일반적인 공적 이해 안에서 사적이고 특수한 이해를 초월하도록 강제하기까지 한다.
주지하듯이 하버마스가 이 딜레마 그에 따르면 이는 근대 입헌 전통 전체와 동연적이다 에 대한 답변으로 제시하는 해법은 초월론적 형태를 취하는데, 여기서 그는 도덕화나 정치화의 방향으로 옮겨가지 않으면서도 정확히 권리 구성/입헌의 수준에 머무를 수 있게 해 주는 제 3의 통념을 도입한다. 하버마스는 이 용어가 "의사소통"(communicational) 영역 또는 "의사소통 행위의 영역"에서 발견된다고 보는데, 여기서는 "상호 이해를 지향하는 언어 사용의 발화수반적(illocutionary)인 구속력이 이성과 의지를 화합시키는 데 봉사하며," 이는 "합리적 담론의 참여자로서 공동의 법주체들은 논란이 되는 규범이 그것에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있는 모든 이들의 합의에 부합하는지, 또는 부합할 수 있는지 여부를 검토할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14) 따라서 평등한 자유는 단순히 강제되거나 또는 준칙화되지 않으며, 그것을 자신의 주권성의 표현으로 보는 어떤 정치체(body politic)에 의해 도구화되지도 않는다. 우리는 자연히 이러한 "해법"이 실제로는 순환적이지 않은가 하는 의문을 가질 만한데, 왜냐하면 의사소통 절차는 사실 상호 인정이나 "합의"의 원천이라기보다는 효과인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우리는 하버마스의 해법이 실제로는 인민 주권이나 집단의 자율성이라는 견지에서 [법·정치 체계] 정초를 바라보는 공화주의적이고 루소주의적인 전망보다는, 기본권이나 개별적인 권리 보장의 보편화의 견지에서 정초를 보는 칸트주의적인 도덕적 전망에 훨씬 가깝다는 느낌을 가지게 된다.
에른스트-볼프강 뵈켄회르데가 제시하는 관점에서는 사태가 사뭇 달라지고, 실천적 목적 면에서 본다면 정반대가 된다.15) 여기서 자세하게 논의할 수 없는 것이 유감스럽지만, 뵈켄회르데가 민주주의 전통에 본래적인(사실은 그 전통에 고유하게 속하는) "구성/입헌 권력"이라는 관념의 난점들과 기본권(Grundrechte) 또는 개인의 근본적 자유의 즉각적 타당성이라는 관념이 제기하는 문제들을 차례로 검토한다는 점을 상기시켜두고 싶다(기본권의 즉각적 타당성이라는 관념은, 인민 주권의 표현이 약소자들을 말살하거나 심지어 배제하게 되는 근대성의 보편주의와 합리주의에게는 치명적인 점이지만 가능성을 설명하고 그에 맞서기 위해 탈(脫)전체주의 헌법들이 다시 한 번 크게 힘주어 강조했던 점이다).
구성/입헌 권력이 완전한 의미를 갖는 것은 오직 그것이 주권을 기초 지음에 있어, 직접적인 정치 참여를 통해, 특히 해방적 봉기의 고유하게 구성적/입헌적인 순간에 능동적으로 구성되는, 집합적 전체로 간주되는 "인민" 뿐만 아니라, 뵈켄회르데가 미조직 인민이라고 부르는 이들, 권리 보장 및 헌법적 통제 체계로 온전히 통합되지 못한 채, 또는 이렇게 말하는 편이 더 낫다면 (예컨대 보통 선거권의 행사에서 볼 수 있듯이) 헌정의 단순한 한 기관으로 변형되지 못한 채 항상 그 아래에 머물러 있는 이들까지 자신의 토대로 삼는 한에서다.
다른 한 편, 기본권의 즉각적 타당성이라는 관념은 모든 시민들 사이에서 이 권리들을 분배한다는 관념, 그리고 이 분배의 실질적 실현이라는 관념과 분리할 수 없어 보인다. 나 자신은 이 후자의 관념 안에서 평등한 자유라는 관념의 강력한 표현을 읽고 싶다. 이제 이 분배라는 문제가 가동시키는 것은, 정치적 권리를 사회적 권리와 동일시하는 경향 뵈켄회르데는 이 양자 사이의 일치라는 질문이 불가피하게 제기될 것임을 인정하면서도 이 같은 경향을 명시적으로 거부한다 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기본권에 대한 규범적 개념화가 제도에 관한 또는 가치론에 관한 이론이나 개념화를 향해 나아가게 만드는 통제할 수 없는 운동(말하자면 "전방으로의 탈출(fuite en avant)"16)이다. 뵈켄회르데는 이 과정을 "기능적 민주주의"(functional democracy)라고 부르는데, 여기서 권리 및 의무의 분배를 지배하는 것은 추상적 규범이 아니라 기본적으로 정치적인 과정으로서 민주주의적 과정 자체다.17)
결국 뵈켄회르데가 두 가지 정초 그 역시 두 가지가 존재함을 인정한다 간 반정립의 초월을 파악하는 방식은 하버마스와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거니와, 이는 그가 도덕적 차원에 비해 정치적 차원을 강조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이 정치적 차원을 인민의 구성/입헌 권력의 자기 규제 또는 자기 제한 과정으로 파악한다. 이 때문에 그는 "권력"(또는 "에너지"18)의 단계에서 규범(norm)과 정상성(normativity)의 단계로 이동할 수 있는데, 이는 정확히 그가 구성/입헌 권력 행사의 규칙 또는 조건에 관한 자신의 정의 안에 (그리고 그 행사 안에) "기본권"의 견지에서 정식화된 처방과 보장을 통합하는 한에서이며, 이는 최종 분석에서 보편주의적인 문화 전통에서 유래한다.19) 따라서 우리는 여기서 다시 두 가지 원리 사이의 균형의 탐색, 또는 (인민적) 구성/입헌 권력이라는 민주주의적 관념과 "기본권"이라는 (전자와는 약간 다른 의미를 지닌) 민주주의적 관념 간의 상호 한정에 대해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상호 한정에서 구성/입헌 권력 또는 인민 주권이라는 관념은 우선권을 보유하면서 결정적인 역할을 계속하는데, 이는 시민권의 민족적 성격20), 즉 시민권과 인류 사이의 차이에 관한 그의 고찰에서 특히 잘 나타난다. 그에 따르면 이러한 차이는, 추상적 개인주의나 세계시민주의에서 정식화될 수 있는 것처럼, 자신들이 선택한 권위에 통치 받고 그 권위의 통제 아래 있겠다는 요구의 단순한 담지자로서 개인들 다수(multitude)로 인민이 해체되지 않고, "인민"이나 더 나아가 "미조직" [인민이] 계속 정치적 주체로 남아 소속의 공동체를 이루기 위해서는 실제로 반드시 존속해야 한다.
내가 널리 알려진 이러한 입장들을 자세히 설명한 것은 이중의 가설을 제시하기 위해서다. 한 편으로, 고유하게 법적인 수준에서는 민주적 질서 또는 내가 평등한 자유라 부른 것을 일의적으로 정초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설사 평등한 자유가 의심의 여지없이 법적인 개념 내지 관념, 하나의 "권리 형태"라고 할지라도 그렇다. 하지만 어떤 의미에서 이는 조금도 놀라운 사실은 아닌데, 왜냐하면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바로 법질서가 자신을 정초할 수 있을 만한 "형이상학적 점"을 지정할 수 있는 가능성이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모든 자기정초는 내부로부터 불가피하게 타자성의 출현, 권리의 본질적인 불순성을 초래하거니와, 이는 반드시 도덕적이거나 역사-정치적인 기원에 따라 뒷받침되어야 하며, 양자 모두 어느 정도 불가피하게 이상화된다. 우리가 민주주의 질서를 고찰하고 있다고 해서 난점이 사라지지는 않으며, 오히려 이는 이러한 난점을 순수한 형태로 제시하여 그것과의 대결을 피할 수 없게 만든다. 이런 의미에서 뵈켄회르데처럼 "구성/입헌 권력"은 한계 개념이라고 말해야 할 뿐만 아니라, "기본권" 역시 어느 모로 보나 한계 개념이며, 따라서 항상 규정된 내용과 공식화를 찾아내야 한다고 말해야 옳을 것이다. 이 같은 한계들의 한계는 바로 이 두 가지 전망들의 합치 내지 일치다. 하지만 다른 한 편으로, 원리의 문제로 간주될 경우 이러한 일치는 엄밀히 말해 획득할 수 없는 것이라면, 또는 무한한 탐색의 대상이라면, 귀결 문제로 간주된다면, 이는 즉각 주어진 것으로, 곧 평등한 자유 그 자체로 나타난다. 평등한 자유는 서로에 대한 배제 없는 인민 주권과 자율성에 대한 요구와 다르지 않으며, 이는 그것이 보편적 상호성의 원리 또는 규칙에 따라 생겨난다는 것을 함의한다.21) 평등한 자유가 요구하는 것은 정치 참여와 의사 결정에 대한 개인들의 기본권의 실현이며, 구체적으로 본다면 여기에는 바로 표현과 양심의 자유라는 권리, 법적 보장만이 아니라 심지어 교육과 직업적 지위에 대한 "사회적 권리"도 포함된다. 이런 의미에서 평등한 자유는 이중 구속의 이름이다. 평등한 자유는 해방의 관념 또는 민주주의 관념의 서로 다른 표현[곧 인민 주권과 개인의 기본권] 사이에서 선택하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것의 이름일 뿐만 아니라, 개인과 공동체 간의 정치적 연결을 해체시키지 않고서는 개인과 공동체 양자 사이에서 선택하는 것을 부당하게 만드는 것의 이름이기도 하다. 그것은 인류의 지평 내부에서 정립(되고 선언)된 원리들의 보편성과 동시에 "인민 주권"으로 설립된 결정의 자율성을 지칭한다.
내가 예고했던 마지막 두 가지 점에 관해서는 훨씬 소략하게, 심지어 전보를 치듯이 논해야만 할 상황이라서, 개략적인 정식화로 논의를 국한하도록 하겠다.
첫째(이것이 나의 두 번째 테제였다), 나는 이 두 가지 "정초적" 담론들의 감축할 수 없는 이원성과 근대적인 "인간" 문제의 역사 전체와 동연적인 철학적 이원성을 관련지어 볼 수 있다고 믿는다. 최소한 우리는 두 가지 이원성을 활용하여 서로를 해명하려고 시도해 볼 수 있다. 각각의 담론들, 또는 차라리 민주주의 담론의 두 측면인 "자유주의적"이고 "공화주의적"인 측면, 또는 원한다면 "개인주의적"이고 "공동체주의적"인 측면은, 어떤 의미에서 자신의 고유한 인간학을 함축한다. 다시 루소가, 그리고 칸트보다는 로크가 여기서 준거점의 역할을 할 수 있으며, 로크는 문제의 기원에, 루소는 문제의 이행점에 각각 자리 잡고 있다. 한 편에는 주체의 인간학 쪽으로의 경향이 있는데, 그 지평은 공동체를 "간주관성"으로 구성하는 것이며, 그 중심 문제는 루소의 작업에서 눈부실 정도로 분명한 것처럼 법에 대한 관계의 문제로서, 이는 뗄 수 없이 개인적이면서 집단적이고, "특수"하면서도 "일반"적인 문제다. 만일 모든 "세속화"에도 불구하고 주권이라는 신학 정치적 개념의 지울 수 없는 흔적이 근대 인간학의 한 복판에 남아 있다면, 이는 정치의 내재성 안에 법의 초월성을 통합하려는 처음 보기에는 불가능해 보이는 기획, 또는 [근대적] "주체"가 그 자신은 복종에서 면제되어 있는 외적이고 절대적이며 숭고한 권위22)에 종속된 수브옉투스(subjectus, 신민)나 수브디투스(subditus, 예속자)이길 그치고 그/녀 자신의 입법자이자 자기 자신의 구성/입헌적 권위가 되게 만든다는 기획 안에 근본 물음이 놓여 있기 때문이다. 알다시피 루소는 권리의 공동체 또는 일반 의지를 평등주의적이고 절대적으로 상호적인 방식으로 구성함으로써 이 딜레마를 해결하려 했다. 이제 시민은 더 이상,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에서 그랬던 것처럼, "통치"와 "복종" 사이에서 양자택일하는 것이 아니라23), 항상 동시에 통치하면서 복종하거니와, 민주적인 법 개념이 시민을 그/녀 자신에 대한 구성적인 "이중적 관계"에 위치 짓는 방식에 따라 "수직성의 감축"이 초래된다.24) 다른 한 편에는 개인의 인간학, 또는 좀더 정확히 말하자면, 동작주(動作主, agent)와 작인(作人, agency)에 관한 "개인주의적" 인간학 쪽으로의 경향이 존재한다. 개인의 자율성을 정초하려면 자신의 행동에 대한 책임, 책임성(accountability)을 동시에 정초하는 것이 필요하다. 로크, 그리고 그를 따르는 모든 전통이 이를 결정적인 방식으로 성취할 수 있었던 것은, "자기에 대한 배려"와 "보존"과 같이 오이케이오시스(oikeiosis)25)가 지닌 오래된 관념을 쇄신함으로써 "개인적 소유"(property in one's person)(훗날 자기 소유로 "번역된")라는 근대적 관념을 창출하고자 했기 때문이다.26) 로크가 창시한 인간학적 문제설정은 집단적이고 공동체적인 차원을 무시하지 않지만 분명 그것을 이차적인 것으로 간주하며, 이를 본질적으로 "교류"(commerce)의 견지에서, 개인들의 자율적 사업과 이익에 기초를 둔 교환과 교통의 사회적 유대로 개념화한다.
마지막으로 (이것이 나의 세 번째 질문이었다), 이 두 가지 인간학적 정초 각각이 "정초" 자체의 이율배반이나 아포리아라고 불러야 할 것을 그 자신 안에서 재생산하는 것은 아닌지 물어볼 만하다. 나는 그렇다고 생각하며, 민주주의적 구성/입헌의 부정적 차원이라는 질문을 돌파함으로써 이를 증명할 수 있다고 믿는다. 이 같은 부정적 차원 중 하나가 "저항권"이나 "봉기에 대한 권리" 같은 한계 개념의 "필연적 불가능성"으로 대변되는데, 이는 어떤 의미에서 법적인 국가 질서 그 자체 내부에 이 질서 자체의 폐지 또는 예외의 순간을 기입한 것이다. 현 시점에서 훨씬 중요한 연구 대상은 아마 인권 보편주의의 본질적으로 정치적인 함의를 정의하는 모든 절차에 본래적인 배제 형태(시민권에서의 배제, 심지어 "인간의 조건" 그 자체에서의 배제)일 것이다. 이와 같은 것이 루소에게는 "자유를 강제하기"27)라는 관념을 통해 나타나는데, 이는 분명 특정한 사회체의 정상성을 부과한다. 로크에게는 범죄자를 인류 바깥으로 배제하여 그를 시민권과 입법 권력에서 배제하려는 것이 유사한 역할을 한다. 그들의 인간 본성, 즉 그들의 인격을 저버리거나 상실하는 자들은 그리하여 그들 자신의 행위에 따라 노예 신분이나 공공의 적의 지위라는 운명에 처하게 된다.28)
아렌트가 - 『인간의 조건』보다는 『전체주의의 기원』에서 - 제시한, "인간"과 "시민"의 역사적·이론적 관계의 역전에 기초한 권리의 무제한이라는 전망, 어떻게 인간이 시민권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시민권이 인간을 만드는지를 설명함으로써 정초라는 관념을 해소시키고, 평등한 자유(또는 역사에 의해 "내던져진" 모든 곳에서의 "정치에 대한 보편적 권리")의 문제설정을 배제된 자의 포함이라는 문제설정 또는 배제의 배제라는 문제설정과 본래적으로 결합시키는 전망이 우리가 볼 때 극히 많은 면에서 결정적이고 불가피한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2) 이 소론은 원래 2002년 6월 베를린의 마르크 블로흐 센터에서 "Droits de l'homme, Civil Rights, Grundrechte"[인권, 시민적 권리, 기본권]이라는 이름으로 개최된 학회 토론회에서 발표됐다. [발리바르가 평등한 자유라는 용어를 도입한 것에 관해서는, tienne Balibar, "'Rights of Man' and "Rights of the Citizen,'" in Masses, Classes, Ideas: Studies on Politics and Philosophy before and after Marx, trans. James Swenson (New York: Routledge, 1994), 39~59 [국역: 발리바르 외, 『인권의 정치와 성적 차이』, 공감, 2003]를 보라.] 본문으로

3) [역주] Abbau는 독일어로 "해체, 철거, 해고" 등을 의미하는 단어이며, 분철하면 Ab-bau, 곧 "탈-구축"을 가리킨다. 하이데거는 서양 형이상학을 해체, 재구성하는 자신의 작업을 지칭하기 위해 이런 의미로 이 단어를 사용하기도 했다. 이런 측면에서 데리다가 사용한 "d construction"이라는 단어와 종종 비교되기도 한다.본문으로

4) [역주] 여기서 발리바르는 'foundation'(定礎, 주춧돌을 놓다), 'constitution'(構成, 얽어 이루다), 'constitutive'(入憲, 헌법을 세우다), 'construction'(構築, 얽어 쌓다) 등의 단어가 모두 '건축'의 뉘앙스를 갖고 있다는 점을 체계적으로 활용한다. 예컨대 '헌법의 기초'를 논한다면, 헌법 자체가 법 질서를 기초짓는 법이라는 점에서, '기초짓는 것을 기초짓는 것'이 된다. 이 언어 유희를 통해 발리바르는 근원적 기초가 되는 원리(原理, 근원 이치)를 이론적으로 규명하려는 시도는 필연적으로 무한퇴행에 빠질 수밖에 없으며, 따라서 전혀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는 점을 재치있게 표현하고 있다.본문으로

5) Hannah Arendt, Imperialism, book 2 in The Origins of Totalitarianism, 2nd ed. (San Diego: Harcourt, 1968), 294를 보라.본문으로

6) [역주] 발리바르, 앞의 책 참고.본문으로

7) Gerald Stourzh, Wege zur Grundrechtsdemokratie: Studien zur Begriffs- und Institutionengeschichte des liberalen Verfassungsstaates (Vienna: B hlau Verlag, 1989)를 보라.본문으로

8) Jurgen Habermas, Between Facts and Norms: Contributions to a Discourse Theory of Law and Democracy, trans. William Rehg (Cambridge: The MIT Press, 1996), 82 [국역: 나남, 2000]를 보라.본문으로

9) 위의 책, 94.본문으로

10) 위의 책, 99.본문으로

11) 위의 책, 97. 이는 Phenomenology of Spirit 4장 [국역: 한길사, 2005] 초입에 등장하는 헤겔의 놀라운 정식화를 떠오르게 한다. "'나', 곧 '우리', 그리고 '우리' 곧 '나'"[Ich, das Wir, und Wir, das Ich ist](G. W. F. Hegel, Phenomenology of Spirit, trans. A. V. Miller [Oxford: Clarendon Press, 1977], 110). 역주 "us, nous, wir"은 각각 영어, 불어, 독어의 일인칭 복수 표현이다. 본문으로

12) [역주] "주관적 권리subjective rights"란 객관적인 법체계와 구분하여 법적 주체들이 지니고 있는 권리들을 가리킨다. 때로는 정치적, 공적 권리와 구분되는 사적 개인들의 권리를 가리킬 때도 있다. 본문으로

13) Habermas, 앞의 책, 102. 본문으로

14) 위의 책, 103~4. 본문으로

15) Ernst-Wolfgang B ckenf rde, Le Droit, l'Etat et la constitution democratique: Essais de theorie juridique, politique et constitutionnelle, ed. Olivier Jouanjan (Paris: Bruylant L. G. D. J., 2000)을 보라. 본문으로

16) '전방으로의 탈출(fuite en avant)'은 "위험하지만 필요하다고 판단된 (정치적, 경제적) 과정을 가속화시킴"을 뜻하며, 심리학에서는 "두려워하는 위험 속으로 스스로를 내던지도록 내모는 무의식적 메커니즘"을 지칭한다. 본문으로

17) 위의 책, 268. 본문으로

18) 위의 책, 214. 본문으로

19) 위의 책, 222. 본문으로

20) 위의 책, 284~85. 본문으로

21) 프랑스 주권주의 전통이 평등의 이름으로 보여 준 "기본권"에 대한 경멸을 한탄할 때 게랄드 슈투르츠가 이의로 제기한 점이 바로 이것이다. 본문으로

22) [역주] "그 자신은 복종에서 면제되어 있는 외적이고 절대적이며 숭고한 권위"는 근대 이전까지, 심지어 루소 이전까지 통용되던 주권 개념의 의미였다. 본문으로

23) Aristotle, The Politics and the Constitution of Athens, ed. Stephen Everson, trans. Benjamin Jowett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96), 1277b. 본문으로

24) Jean-Jacques Rousseau, Of the Social Contract, book 1, chapter 7 in The Social Contract and Other Later Political Writings, ed. and trans. Victor Gourevitch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97), 51 [국역: 서울대학교 출판부, 2002]. tienne Balibar, "Apories rousseauistes: Subjectivit , Communaut , Propri t ," Les Cahiers philosophiques de Strasbourg 13 (Spring 2002): 13~36을 보라. 본문으로

25) [역주] "oikeiosis"는 "보존", "동일성", "전유" 등으로 번역될 수 있는 희랍어로, 근대의 "economy" 개념의 어원을 이룬다. 본문으로

26) 자기 소유라는 표현은 로버트 노직이 Anarchy, State, and Utopia (New York: Basic Books, 1974) [국역: 문학과지성사, 1997]에서 도입했고, 그 후 G. A. 코헨이 Self-ownership, Freedom, and Equality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95)에서 채택했다. 반면 "소유적 개인주의"에 관한 토론을 개시한 작업인 The Political Theory of Possessive Individualism: Hobbes to Locke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1962) [국역: 박영사, 2002]에서, C. B. 맥퍼슨은 로크의 본래 용어법을 보존한다: "개인적 소유", "개인의 소유자." 본문으로

27) Rousseau, Of the Social Contract, book 1, chapter 7 를 보라. "따라서 사회계약은 유명무실한 형식이 되지 않기 위해서, 일반 의지에 복종하기를 거부하는 자는 누구를 막론하고 전 단체에 의해 그것을 따르도록 강요되어야 한다는 약속을 암암리에 내포하고 있다. 우선 이 약속이 있어야만 다른 약속들도 효력을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개인이 자유롭게 되도록 강요한다는 것 외에 다른 의미가 없다." 본문으로

28) Second Treatise on Civil Government 4장(22~24절)에서 로크는 노예제를 정당화하는데 이는 기본적인 인권으로서 "자기 소유"와 모순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여기서 기준이 되는 것은 노예의 종별적 "본성"이 아니라 범죄적 행실이다. "실로 자신의 과실로, 죽어 마땅한 어떤 행위로 자신 자신의 삶을 박탈하는 것. 그 자에게서 생명을 박탈한 자는 (그 자를 자신의 권력 아래 두고 있을 때) 그 자의 생명을 앗아가는 것을 미룰 수 있고, 그 자가 자신에게 봉사하도록 이용할 수도 있거니와, 이런 행위는 그 자에게 아무런 해도 입히지 않는 것이다."(John Locke, Two Treatises of Government, ed. Peter Laslett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88], 284 [국역: 까치글방, 1996]).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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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Ritournelle > {자발적 가난과 코뮨}

자발적 가난, 코뮨의 현재를 살아가기
가난과 자본주의
2006년 10월 31일 (화) 02:28:40 채희철 kikibar@naver.com

[연세대 대학원신문 / 채희철 자유기고가]

“공통적인 것은 가난과 사랑의 창조적 관계로부터 탄생할 때에 활력을 띠며, 주체적 규정을 받는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공통적인 것의 욕망을 양성하기 위해서는 가난해야 하거나 아니면 스스로를 가난하게 만들어야 한다. -안토니오 네그리”

‘자발적 가난’은 ‘성장을 멈추어라’는 무성장론과 함께 짝을 이루는, 경제제일주의로 치닫고 있는 현대 자본주의에 대항하는 생태주의적 삶-담론이다. 경제적 무성장론이 자본제적 생산과정과 방식에 대한 문제제기라면, 자발적 가난은 자본제적 소비과정과 그 방식에 대한 문제제기다.

삶에 대한 불안을 먹고사는 자본

   
   
 
이 체제는 우리 경제가 보다 세계화되면 고용은 안정될 것이라거나, 불안정 노동과 저임금 그리고 고강도의 노동을 감수하지 않으면 세계화에 뒤쳐져 결국 경쟁에서 패배하게 될 것이라는 막연한 불안과 막연한 기대를 우리의 몸과 뇌에 주입하고 있다. ‘결핍’되어 있으니 그것을 보상받거나 채우라는 체제의 명령 앞에 누구랄 것도 없이 복종하게끔 한다. 욕망의 기능은 결핍을 채우는 것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다시금 욕망을 하게끔 하는 것에 그 목적이 있다는 라캉의 언명은 정확하게 바로 자본체제의 무의식이다. 삶은 이 결핍(생산과 소비 모두에서)을 보상받으려는 자본제적 원환운동으로 전환되고야 만다.

비비안느 포레스테는 『경제적 공포』에서 자본주의는 경제제일주의를 조장하고 사람들의 마음속에 경제적 공포를 심어놓음으로써 삶을 통제하는 체제라고 말한다. ‘성장이 있으면 고용이 있을 것’이라는 신화는 사실이 아니며(실제로 ‘고용 없는 성장’이 가능한 현실이 문제가 되고 있다), 모두가 완전고용의 시대가 오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신화를 믿는 척 한다. 가난한 사람들은 사회적 주체가 아니라 염려와 불안 그리고 공포의 대상으로 전락한다. 사람들은 그 공포에서 벗어나기 위해 보험을 들며, 그래서 자본주의에 물을 대는 보험 산업은 날이 갈수록 번창한다. 불안한 영혼은 자본에 물을 댄다. 그렇기에 체제의 무의식을 폭로하고 원환의 고리를 깨뜨리는 것, 그것이 자발적 가난이다.

가난한 사람들은 누구인가?

   
   
 
가난한 사람들이 처음 역사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대체로 12세기경이다. 물론 그 이전에도 가난은 있었지만 그 가난은 특화되지 않는 가난이었다. 12세기의 가난은 십자군 전쟁, 도시의 성장과 상업과 수공업의 발전, 분열되어있던 왕국들의 통합과 국가의 성립, 유럽전역을 휩쓴 대량의 이주자들과 더불어 탄생했다. 이때 가난의 문제는 농민도 아니고, 상인도 아니고, 귀족도 아닌 특정하게 ‘가난한 사람들’이라는 존재의 문제로 등장하게 되었다. 도시의 성문은 통치의 안과 밖을 구분하는 공간적 배치였으며, 이에 따라 가난은 직접적으로 체제의 바깥영역으로 가시화되고 구획되었다. 말하자면 12세기는 중세시대에 불어 닥친 세계화였던 셈이다. 그리고 의미심장하게도 이 시기에 프란치스코 공동체와 도미니코 수도회로 대표되는 ‘자발적 가난’이라는 ‘무소유’와 ‘공유’운동이 전개되었다. “가난은 모든 덕의 여왕이다(St. Francesco d’assisi).”

물론 오늘날의 가난은 도시 외곽이나 제3세계만의 문제가 아니며, 가난한 사람들이 통치체제의 바깥에 머물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이론 및 정치이론에서 가난한 사람들이 주목받은 사례는 극히 드물다. 통상적으로 가난한 사람들은 산업예비군으로 개념화되거나 도시빈민이라는 주변적 이름을 가지며 ‘비생산적’인 존재로 규정된다. 어떻게 표현되든 그 주체성은 체제의 부덕한 잔여물(잉여인간)로 전락한다. 특히 가난한 사람들 중에서도 가장 부덕하고 체제를 위협하는 이들은 도둑, 거지, 부랑자, 매춘부, 건달, 광인들이었다.

피에르 파졸리니는 『폭력적인 삶』에서 전통적 노동계급이 아니라, 바로 이 가난한 사람들에게서 보다 더 전복적이고 혁명적 주체성을 발견하고자 했다. 왜냐하면 노동계급은 지배계급과 닮은꼴의 욕망을 지녔기 때문이다. 가난한 사람들은 훨씬 더 벌거벗은 삶의 원초적 폭력에 노출돼 있지만, 화폐와 임금노동을 매개로 한 지배체제와의 공모로부터 더 멀리 벗어나 있다. 즉, 가난한 사람들은 지배체제로부터 탈주할 수 있는 잠재성과 가능성을 노동계급보다 더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아마도 이러한 생각의 단초를 더욱 밀어붙여 정치이론화한 것이 이탈리아의 자율주의일 것이다. 그들의 ‘노동거부’전략은 가난한 사람들의 주체성과 맞닿아있는 것이며 전통적(혹은 근대적) 노동계급과 주변적 주체성간의 탈구축적 연대를 표현하고 있다. 이러한 탈구축적 연대 그 자체가 새롭게 탄생할 탈근대적 프롤레타리아트인 것이며, 그 이름은 (네그리에 따르면)‘사회적 노동자’에서 ‘다중’으로 변화해왔다. 안토니오 네그리와 마이클 하트는 『제국』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코뮤니즘적인 전투성의 미래 삶을 조명해 줄지도 모를 고대 전설로,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의 전설이 있다. 그의 작업을 생각해보라. 다중의 빈곤을 고발하기 위해서 그는 그러한 공통 조건을 채택했고, 거기에서 새로운 사회의 존재론적 힘을 발견했다.”

미래의 코뮨이 아니라, 코뮨의 현재를 살기

   
   
 
자발적 가난은 과연 대안적 삶의 전망을 열어갈 수 있는 것인가? 체제에 의한 훈육을 거부하고 모든 존재와 자연과 더불어 즐거운 삶을 제시하는 음유시인으로서의 존재는 가능한가?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무성장과 자발적 가난을 일종의 삶의 퇴행적 반동으로, 그리고 결핍의 집단적 게토로 삶을 이끌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무성장과 자발적 가난을 말하는 사람들의 어떤 편향과 관계되어 있다. 생태적이고 자율적 삶에 대한 전망들이 중농적 상상력에 갇혀 있거나, 이반 일리치처럼 자족적 생산(생계유지적 생산)과 기계시스템이나 작업도구의 제한이라는 원시적 상상력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생산을 위한 생산’을 거부하고 무성장과 자발적 가난을 받아들이면서도 그것을 욕망의 억제나 생산의 제한으로 받아들이는 전망을 거부하는 생각은 펠릭스 가타리에게서 찾아볼 수 있다. 가타리는 “자치라는 전망, 자신의 신체, 자신의 감각·감수성·성애의 재전유라는 전망은 어떤 종류의 정치적, 경제적, 생산적인 제한도 가져오지 않는다.”(『욕망과 혁명』)고 말한다. 무성장과 자발적 가난을 자족이나 퇴행과 동일시하는 것에서 벗어나 자율적 생산, 대항생산의 다양성으로 인식해야 한다. 자발적 가난은 ‘필요’를 축소하거나 금욕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필요의 화폐적 가치에 맞서 필요의 공유를 확대하고, 필요에 대한 경제적 독재에 맞서 욕망적 필요의 다양성을 증진하는 것이다.  

 

http://www.kyosu.net/news/articleView.html?idxno=1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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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인과 대중의 경계들
전국학생연대회의 강연을 위한 노트 (2005년 여름)

최원 (시카고 로욜라 대학, 철학과)


{자본1} 32장에서 맑스는 공산주의적인 소유를 집단적 소유가 아닌 생산수단들의 공유에 기반한 개인적 소유라고 규정한다.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으로부터 나오는 전유(appropriation)의 자본주의적 양식은 자본주의적 사적 소유를 생산한다. 이것이 재산 소유자의 노동 위에 기초하는 것으로서의 개인적 사적 소유(individual private property)의 첫 번째 부정이다. 그러나 자본주의적 생산은 자연적 과정의 냉혹함과 함께 그 자신의 부정을 낳는다. 이것이 부정의 부정이다. 이 부정의 부정은 사적 소유를 재수립하지는 않지만 그것은 진정 자본주의 시대가 달성한 것, 즉 협동(co-operation) 및 토지와 노동 그 자체에 의해서 생산된 생산수단의 공유를 기초로 개인적 소유(individual property)를 수립한다.

경우에 따라 여기서 맑스가 말하는 개인적 소유란 단지 소비물품을 개인적으로 소비할 것을 의미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어쨌든 맑스는 협동 및 생산수단의 공유를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다른 한 편으로는 맑스가 일종의 주식회사와 같은 형태를 사고함으로써 생산수단은 공동으로 점유하지만 그 생산물들은 개인적으로 배당을 받게 된다는 식으로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다. 송태경씨가 예전에 이런 입장을 취했었는데, 이도 결국은 유사한 이야기인 셈이다. 결국 소비물품들의 소비는 개인적으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맑스를 일종의 바보로 만드는 말이다. 소비물품의 소비가 개인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어찌보면 너무나 당연한 말이라서 거의 동어반복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런 동어반복적인 말을 자본의 결론이라고 볼 수 있는 32장의 마지막 부분에 배치해 놨다고 믿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더 나아가서, 왜 맑스는 그렇다면 생산수단의 공유에 기초한 사적 소유라고 말하지 않고 개인적 소유라고 말하는 것일까? 사적 소유와 개인적 소유의 차이란 무엇인가? 따라서 맑스를 맑스답게 대접하고 맑스의 결론을 결론답게 대접하기 위해서, 맑스가 자본 1권을 통해서 발전시킨 논의들과의 연관 속에서 ‘개인적 소유’로서의 공산주의라는 말을 재고해야할 것이다.
맑스는 32장 앞부분에서 사적 소유를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사적 소유는 사회적, 집단적 소유의 안티-테제로서 오직 노동수단과 노동의 외적 조건이 사적 개인에게 속한 곳에서만 존재한다.” 하지만 곧바로 그는 기본적으로 사적 소유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는데, 하나는 노동자를 위한 사적 소유이고, 또 하나는 비-노동자를 위한 사적 소유이다. 후자는 소수의 자본가들의 손에 생산수단들이 사회적으로 집중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하고, 전자는 생산수단들이 개인 노동자들 사이에 흩어져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맑스는 후자는 “소규모 산업의 기반이고, 노동자 자신의 자유로운 개인성의 필요조건”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맑스가 공산주의 소유를 전자본주의적인 소규모 생산의 “사적 개인적 소유”의 부정의 부정으로서 “개인적 소유”라고 주장하는 한에서, 진정한 질문은 어떻게 공산주의적 소유가 자본주의에 의해 파괴되었던 “개인성” 그 자체를 복원할 수 있게 되는가가 된다. 따라서 또한 중요한 것은 {자본}에서 맑스는 자본주의에 의한 개인성의 파괴를 어떻게 사고하고 있는가를 살펴보는 것이 될 것이다.

이를 생각해 보는데에는, “기계와 대규모 산업”이라고 제목이 붙어있는 {자본}의 15장에 있는 “공장”에 관한 절에 나와 있는 논의가 크게 도움이 된다. 맑스는 거기에서 두 가지 상이한 종류의 생산성을 구별한다. 어떻게 자본주의에서 기계가 노동자를 특화된 기계의 일부로 변형시키기 위해서 활용되어지는가를 논하면서, 맑스는 이렇게 말한다. “여기서도 다른 곳에서처럼 우리는 생산의 사회적 과정의 발전에 힘입어 증가된 생산성과 그러한 발전을 자본가들이 착취함으로써 증가된 생산성을 구별해야만 한다.” 따라서 맑스는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개인 노동자를 기계의 일부로 환원하고 그의 개인성을 소비함으로써 달성되는 생산성이 있다면, 다른 한 편 개인 노동자의 개인성 그 자체의 실현을 통해서, 그리고 그가 가지고 있는 노동의 자기 확장능력에 대한 온전한 승인을 함으로써 달성되는 생산성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다시 두 가지 종류의 생산성에 대한 이러한 구별은 소규모 산업 노동의 성격과 대규모 산업 노동의 성격의 구별과 함께 가는 것이다. 맑스는 계속해서 이렇게 말한다. “수공업과 매뉴팩쳐에서는 노동자가 도구를 사용하지만, 공장에서는 기계가 노동자를 사용한다. 전자의 경우에는 노동도구의 운동이 그로부터 연원하지만, 후자의 경우에 그는 기계의 운동을 따라가야만 한다. 매뉴팩쳐에서는 노동자들이 살아있는 메커니즘의 부분들이다. 공장에서는 노동자들에게서 독립적인 생기 없는 메커니즘이 있고, 노동자는 그것의 살아있는 부속물로 거기에 통합된다.”
이렇게 놓고 보면, 앞서 마르크스가 논한 전자본주의적인 소규모 생산에서 발견할 수 있는 개인성이란 바로 도구와 기계 사이의 차이에 관련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노동자의 개인성을 파괴하는 노동자와 기계간의 이러한 관계의 전도는 반드시 직접적인 노동과정 내에서 발생하는 하나의 “독점”에 핵심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즉, 자본가와 관리자 계급에 의한 지적 능력(혹은 노동의 지적 측면)의 독점 말이다. 따라서 우리는 노동자의 개인성의 파괴라는 것은 일차적으로 그의 지적 능력의 파괴에 기인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바로 이러한 이유로해서, 맑스는 두 가지 다른 종류의 생산성이 있다고 말한 직후에, 공장 그 자체에서 제도화되는 노동의 지적 분할을 깊이있게 논한다.
맑스는 이렇게 말한다. “핵심적인 분할은 기계에서 실제로 일하도록 고용된 노동자들과 단지 기계를 돌보는 노동자들 사이에 있다. 이러한 두 계급들에 추가로, 수적으로만 보면 미미한 집단이 있는데, 이들의 직업은 전체 기계를 관리하고 때로 그것을 수리하는데, 이들은 엔지니어, 미케닉스, [공정들의] 결합자로 이루어져 있다. 이들은 과학적으로 교육되어졌고 기술적으로 수공업에서 훈련된 노동자들의 상층 계급이다.” 나중에 맑스는 {자본}의 잃어버린 6장이라고 부르는, “직접적 생산과정의 결과들”이라는 부록에서 이러한 지식의 기계로의 축적 내지 기입과 이를 담당하는 위계질서의 수립을 공장내 전제정 내지 노동과정 내의 자본가 권력의 수립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볼 것이다.
이렇게 봤을 때, 맑스가 결론적으로 제시한 공산주의적 소유로서의 개인적 소유라는 것이 궁극적으로 노동자들의 지적 능력들의 회복과 발전에 핵심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다음과 같은 점을 생각케 하는데, 계급투쟁의 기반에는 이러한 지적 분할이 끊임없이 작동하고 있으므로, 집단 내지 실체로서의 부르주아 계급을 사라지게 한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곧바로 계급투쟁의 종말을 의미할 수는 없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집단적 실체로서의 부르주아 계급이라는 것은 이러한 지식노동/육체노동 분할이 지속적으로 작동하고 있는 한은 지속적으로 다시 나타날 것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적어도 계급적대가 무엇보다도 노동과정 그 자체의 구조의 문제인 한에서 말이다.

발리바르는 다음과 같이 공산주의 개념을 정의한 바 있다.

어찌됐든 이런 조건들 속에서 노동자투쟁의 지평은 다음과 같은 3중의 의미에서, 곧 노동자들(또는 더 정확히 말하자면 노동자들로서 시민들)의 정치권력, 정치투쟁에 의한 노동형태의 전화, 노동력의 확장능력의 정치적 승인에 의한 ‘통치’ 형태의 전화(이와 반대로 노동력의 확장능력을 억압하는 생산력주의에 반대하여) 라는 3중의 의미에서 오직 노동의 정치로서만 정식화될 수 있다(이것이 공산주의 개념, 또는 공산주의로의 경향 개념의 가장 정확한 의미이다). (“맑스의 계급정치 사상, {역사유물론의 전화}, 240쪽)

여기서 노동력의 확장능력을 억압하는 생산력주의라는 것이 바로 자본주의적인 생산성 개념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보자. 반대로 노동력의 확장능력의 승인이라는 것은 지적 차이의 전진적인 극복을 통한 공산주의 사회에서의 개인성의 복원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보자. 혁명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혁명을 단순히 권력의 장악이라는 측면에서만 본다면, 공산주의는 단지 위의 정의 가운데 첫 번째 측면에서만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현존 사회주의의 역사에서 볼 수 있듯이, 두 번째와 세 번째 측면을 수행하지 못한다면 결국 혁명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간략하게 지식노동/육체노동의 분할 문제가 마르크스주의 내에서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를 살펴보자.


1. 마르크스에서 지적 차이의 문제, 지식노동과 육체노동의 분할이라는 문제가 계급문제와 결부되어 중심적으로 제기되었던 것은 {독일 이데올로기}에서다. 육체적이며 지적인 생산성이 각각의 개인들에게서 통일되어 있는 상태로서 이는 이후에도 {자본1}에서 마르크스가 교육에 관해서 말하는 동안 “전인”내지 “총체적 인간”이라는 표현을 통해 등장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독일 이데올로기}가 마르크스 생전에 출판된 바가 없다는 점을 잊고 있다. 과학의 직접적 생산력으로의 전화에 대해 언급하는 강요의 귀절들도 몇 가지 암시를 제외하면 마찬가지다.

마르크스의 곤란 두 가지.

1) 노동 그 자체(사회적 착취로서 뿐 아니라 자연적 제약으로서)로부터의 해방인가, 아니면 노동의 변형/전화 내지 변모인가 (고타강령비판: 노동이 인간의 제 1의 욕구가 됨). 노동계급의 노동에 대한 태도의 근원적 양면성이 있음(노동을 혐오의 대상으로 봄 vs 노동을 자신의 개인성 확인, 자아실현의 수단으로 보면서 그렇게 전화시키려고 함.).

2)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노동자 운동 내부에서의 지위와 관련된 곤란. 혁명적 이론의 지성과 노동자적 실천들 간의 관계를 분석한다는 것이 곤란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지식노동과 육체노동의 분할 문제는 그 중심적인 지위를 상실하고 전화되고, {자본론}에서 정확해지지만 제한된 구체적 분석들의 대상이 됨(산업노동의 사회학의 구성과 테일러주의의 비판을 예상).

2. 제 2, 3 인터. 이 문제는 정치의 지반에서 불연속적으로 다시 출현. 로자에서 판네쿠크에 이르는 평의회 공산주의 등이 이 경우에 해당하고, 특히 레닌도 같은 경우에 해당함. 자생성 개념(지식인들의 자생성, 노동자들의 자생성)의 거부를 통해 그가 사고하려고 했던 것은 지적 차이의 영속화나 지적 위계의 창조가 아니라, 대중들과 지식인들의 융합의 문제설정이면서 동시에 그렇게 전화된 노동대중들에 의한 권력장악 및 권력행사가 문제다....“요리사들이 국가를 통치하게 되면” 지배를 위한 “특수한 기계”로서의 “고유한 의미에서의 국가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국가와 혁명}) 그의 반성은 국가의 관료화와 혁명당의 국가화에 대한 예방책으로서의 대중적 “문화혁명”의 강령에서 절정에 이름({좌익소아병}). 그런데 많은 실험과 토론 등은 스탈린 시대로 넘어가면서 질식되어 버렸음.

마오의 문화혁명: 지노/육노 분할 문제를 마르크스주의적 문제설정의 중심으로 되돌려 놓게 되는 계기--정통파를 전복시키고 그 계급 개념을 다시 가공함으로써(프롤레타리아트 부르주아 구분 자체를 생산수단 내지 사적 소유의 수단 여부로 보려는 공산당 내 실권파 관료세력들에 대해서 개인의 의식 내지 계급적 입장을 통해서 재규정하려는 방식으로 움직임--후자와 같이 사고했을 때, 과거의 피지배계급은 혁명이후 지배계급으로, 과거의 지배계급의 자녀들은 피지배계급으로 나타나게 됨....홍위병 내지 조반파 내에서 이 문제를 둘러싼 싸움들이 진행되었음). 소련의 기술자, 지식인, 간부의 자본주의적 양성방식 비판....문화혁명이 테일러주의/포드주의의 노동조직양식의 일반적 위기와 일치,.....문화대혁명의 60년대 세계적인 확산 지식인 청년대중의 이데올로기적 반역을 키워냄....실현되지는 못했지만(특히 마이스너에 따르면 베틀렘의 문화혁명에 대한 평가는 과장되어 있음), 자신의 효과로서 여러가지 공과가 있었음. 노동의 인간학, 노동과정 및 국가장치 분석에서 이론적 문제들의 출현/재정식화를 촉진했음

3. 이렇게 문화혁명을 계기로 노동분할과 계급분할 간의 최초의 관계는 다시 중심적이 되었지만, 그 관계는 변증법화되어 이 두 개념 사이의 단순한 동일성은 없고 필연적 접합만이 있게 되었다. 즉 이 두 개념은 복잡하게 접합된다.

1) 지노/육노의 경계 자체가 전위됨...어떤 노동도 순수한 육체노동과 순수한 지식노동은 없다. 육체노동과 지식노동의 분할 및 대립은 계급사회에서 일어나지만 이는 절대적일 수 없고 그 내용이 고정될 수 없다(전위된다). “인간황소” “파편화된 노동”의 인간기계(테일러) .... 지식의 기계화(컴퓨터 등의 등장)에 의해 포위되어 있음. 즉 지노/육노 경계가 소멸하지는 않지만 전위되어, “상호교환가능한 노동자들”과 “개인화/전문화된 노동자” 사이의 경계로 되는 경향이 있음.

2) 테크놀로지: 자본주의에만 고유한 것이다. 탈숙련화와 과잉숙련화(연구원 노동자)를 야기함. 상대적 잉여가치 생산. 생산력주의. 지식노동을 생산수단 자체에 편입시키는 방식을 취함. 지적 노동을 육체 노동에 대립시키고 육노를 탈가치화/통제하려고 함. .... 아까 이야기했듯이 계급분할과 지적분할이 밀접한 관련을 맺기 때문에,

3) 맑스가 말하는 생산적 노동/비생산적 노동(경제학자들한테 빌려온 개념)....물질성에 대한 제한된 철학적 이해만을 가지고 있었음. 그런데 국가의 역사는 한편으로는 낡은 유기적 지식인들을 없애고 다른 한편으로 새로운 지식인들을 출현시키며, 대중의 교육양식 및 포섭 양식을 수정하려는 정치혁명들을 통한 이러한 분리/분할의 계속과 재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또 다른 지식인의 상(지배 이데올로기 관련).

근대의 대중적 학교교육과정: 생산의 위계들의 재생산과 정치적 능력들의 재생산을 정확하게 결합시킨다. 이런 식으로 그것은 사회적 적대와 불평등들을 일반화하는 기술적으로 형식화된 하나의 망과 동시에 통일화의 형식을 구성하는데, 자본주의 사회만큼이나 현존 사회주의 국가에서도 계급적 차이가 영속화된다.

그러므로 혁명(의 효과)에 대해 우리는 양면적 자세를 갖게 된다. 하지만 동시에 이는 혁명이 목표가 아니라, 혁명속에서 어떤 목표들을 이룰 것인가, 또 혁명에는 어떤 장애들이 있는가(혁명의 유한성)를 구체적으로 사고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점을 가르쳐 준다. 마오주의자들이 “우리에겐 반역할 이유가 있다”(마오)고 썼는데, 이를 본 기앙코티는 그 밑에 이렇게 썼다. “그러나 인식하라”(스피노자).

어쨌든 근대의 대중적 학교교육과정, 혹은 단적으로 학교라는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가 그러한 생산의 위계와 정치능력들의 위계를 재생산/변화시키는 근본적인 지점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들 내에서의 지식인들의 활동을 우리가 분석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람시: 권력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 기능의 결합에 의해서 작동한다. 강제와 동의, 물리적 제약과 지능, 공권력과 지식인의 장치들. 폭력과 헤게모니. 지식인은 바로 헤게모니 편에 있다고 생각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지식인들이 폭력에 가담하고 있다는 것을 은폐하는 알리바이가 될 수 있다. 반면, 알튀세르는 이것의 장치적 성격을 강조함으로써 분석을 연장했음(그람시보다 더 도구적이지만 덜 기능주의적임).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들과 억압적 국가장치가 근본적으로 완전히 분리될 수 없다는 점을 보여줬다. 이것의 가장 중요한 지점이 파스칼적 테제(무릎꿇고 기도를 해야 믿는다)를 취한다는 점인데, 이 점에 관해서 지젝은 자신의 이론적 혼란으로 인해서 알튀세를 잘못 읽고 비판함.

헤게모니
<논리적 계열>
총체적 이데올로기(헤게모니는 무엇인가를 설명할 것). 다원주의. 견해들, 차이들의 양립가능성 및 교통가능성의 공간의 구축. 따라서 이는 전체주의가 아니다. 하지만 거기에는 전체주의로 나아갈 수 있는 가능성이 또한 각인되어 있다.

즉, 법은 법이다. 신은 신이다. 권력의 동어반복적 테제. 스타니슬라스 브레통. 알튀세르(나는 나다). ----> 나중에 이에 관한 대안이 무엇일 수 있는가를 이야기해보겠다.

하지만 이러한 진리의 이러한 동어반복적인 성격은 동시에 반대방향으로 읽는 것도 가능하다. 예컨대 신(초월적, 초역사적, 추상적)으로부터 왕(역사적 권위, 구체적 인격)이 권력을 부여받았다고 말했을 때, 또 다른 개인 또 다른 세력이 그러한 신으로부터이 권력을 자신이 받았다고 말함으로써 기존의 왕(권위)에 도전할 수 있게 된다는 점. 또 다른 원칙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동일한 원칙에 호소함으로써, 동일한 원칙을 원용함으로써 역사적 권위와 구체적 인격들에게 도전할 수 있다는 것.

<인간학적 계열>
지배 이데올로기 내지 헤게모니라는 것은 일종의 허구인데, 실제적인 허구이며, 위로부터의 가치의 강제가 아니라 아래로부터의 가치들(평민들과 대중들의 것인)의 반송이다. 지배 이데올로기는 피지배자들의 상상의 특수한 보편화. 일차적 소속으로부터 개인의 해방과 이차적 소속의 구성. 지식인들의 출현, 전문화된 지적 기능의 발생을 요구하는 것이 바로 이러한 거리화인데, 이것은 시민들의 지성이라는 공통지성을 구성하기 위해 그 기능을 제도화할 뿐이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이는 영속적으로 폭력의 경계에 위치한다는 점, 또는 개인적 해방 또는 보편적인 것에 대한 개인의 교육에 대한 상관물로서 그것이 내포하는 규준화적 제약이 얼마간의 폭력, 의무교육의 역사에서 보는 바와 같은 육체, 언어, 정신의 훈육을 함의한다는 점에도 주목하자. ..... (정상성의 공간을 만들어 내기...그것으로의 통합)


관련해서 읽어볼만한 발리바르의 글의 일부("폭력: 이상성과 잔혹" 중 학교교육관련에 관한 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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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어떤 글에서 피에르 부르디외(Pierre Bourdieu)는 토마스 베른하르트(Thomas Bernhard)의 소설 『옛 거장들(Maîtres anciens)』로부터 어떤 구절을 인용하는데, 거기에서 국가교육과 국가폭력은 그렇게 동일한 것으로 나타난다.

학교는 국가의 학교이고, 그곳에서 젊은이들은 국가의 피조물, 즉 국가의 앞잡이에 불과한 자로 만들어진다. 내가 학교에 들어갔을 때, 나는 국가에 들어갔던 것이며, 국가가 사람들을 파괴하므로, 나는 사람들을 파괴하는 권력조직(établissement)에 들어갔던 것이다. (…) 국가는 그 밖의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나를 강제로 자기 안으로 들여보냈으며, 나를 자기(즉 국가)에게 순종하게 만들었고,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나를 국가화된 인간, 규율화되고 등록되어 있으며, 훈련되어 학위를 받은, 타락하고 사기 저하된 사람으로 만들었다. 사람들을 볼 때, 우리는 그들에게서 국가화된 사람들, 국가의 노예들만을 볼뿐이다. 일생동안, 국가에 봉사하고, 그러므로 일생동안, 반-자연(contre-nature)에 봉사하는 사람들을 말이다…

사실 기초적인 교육의 과정이란 모두 내가 도입부에서 언급했던 “헤게모니”의 구조 내로 개인들을 통합(intégrer)하는 방식이다. 그것은 단지 주체들을 정상화(normalisation)하는 일 뿐 아니라, 사회의 가치들과 이상들을 전파함으로써 주체들의 개인성을 조작(fabrication)해내는 일로 이루어져 있다. 지적인 수단들에 의해 작동할지라도, 이는 고전적인 경험주의와 자유주의의 살가운 상상처럼, 순수한 견습(apprentissage)과정, “백지상태(table rase)”에 쓰여지는 역량, 지식, 관념 따위의 습득이 전혀 아니다. 그것은 정반대로, 존재하는 개인성의 해체(déconstruction)이며, 새로운 개인성의 구축임에 틀림없다.
감히 다음과 같은 표현을 시도해보자. 이는 정신의 재통합(remembrement)이나 재주조가 일어날 수 있도록 만드는 분해(démembrement, 사지(四肢)의 절단)임에 틀림없다(정신이 또한 하나의 “육체”처럼 존재할 수 있는 것은 정확히 그것이 분해되고 재통합되는 한에서인 것이다).
이를 종교적인 언어로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모든 교육은 “개종(conversion)”이다. 이는 우리로 하여금, “사람들을 강제로 들어오게 하라”(compelle eos intrare)는 성 누가(Luc)와 성 어거스틴(Augustin,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말(이 말은 군사적으로 응용되어 왔지만, 우리는 그것이 본질적으로 정신적인 의미를 갖는다는 것을 안다)로부터 근대의 의무교육 및 그것의 위기(그것이 “권위주의적”인 형태이든 아니면 “자유주의적”인 형태이든 간에)에 이르기까지 긴 역사를 참조하게끔 한다. 게다가 “자유주의적”인 형태들이 현실적으로는 가장 폭력적인 경우도 있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어린아이 자신이 스스로의 외과의사, 수리자(mécanicien), 형(刑)집행자가 될 것을 요구하면서 분해와 재통합의 짐을 어린아이 자신에게 떠넘기기 때문이다. 다시 여기서 우리는, 폭력과 이상성으로 이루어진 Gewalt의 변증법 내에, 인지되건 인지되지 않건, 항상 잔혹의 심연 위에 유예된 채로 남아 있다가 잔혹 쪽으로 돌아설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질문을 제기해야 한다. 그리고 앞서 부르디외를 인용한 바 있으므로, 다음과 같이 제안하기로 하자. 즉, 교육적 성공이라는 측면에서 봤을 때 가장 “유리(avantageuse)”하다고 그가 묘사했던 상황, 즉 학교가 요구하는 “사전-지식”을 가족이 암묵적으로 [입학 전에 아이들에게] 갖추어 주는 부르주아 “상속자들”의 상황마저도 전적으로 가장 모호한 것일 수 있다고 말이다. 이러한 상황은 아마도 사회적으로 유리한 상황일 테지만, 초자아(surmoi)의 잔인함(férocité)과 각자 자신이 [내적으로 혼자] 행하는 협상들에 있어서까지 그러한 상황이 역시 잘 “보호(protégée)”되는지는 확실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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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발리바르에 따르면, 논리적 계열에서건 인간학적 계열에서건 항상적으로 지식이 권력과 맺는 관계가 항상 이중적이라는 점을 볼 수 있다. 즉 정상화에 기여하는 힘이 동일하게 정상성을 공격하고 해체하는 데 기여한다. .... 이는 권력의 신성화와 권력의 비판이라는 전통적인 지식인들의 두 가지 역할을 설명해주기도 하지만 동시에 이것이 동일한 과정의 갈라짐(혹은 다시 만남)이라는 문제라는 점에서(권력/폭력...게발트) 그 두 가지가 궁극적으로 분리될 수 있는 것인지를 의문시 해야한다.

칸트, 그람시. 모든 인간은 철학자다.
전문화된 지식인의 기능을 대중의 지성과 재결합시키는 교육의 벡터를 역전시킬 필요가 있다. 대중들의 지식의 의지(이는 매우 양가적이다: 인종주의의 문제)에 입각하여 인민을 교육시킨다는 민주주의 사회의 역설이 재발견되며, 이러한 역설은 또 다시 민주사회의 현실적/관념적 봉기적 기초의 지울수 없는 흔적 때문이다.

발언권의 문제. 저항에서 봉기로 나아가는 변증법. 말할 수 없는 폭력에 대해 말하기. 침묵의 덮개를 파괴하는 발언행위. 안티고네의 봉기 행위. 근대에는 노동자들, 식민지/탈식민지 인민들, 여성들이 그렇게 했음. 말할 수 없는 폭력에 대해 말하기, 볼수 없고, 말할 수 없는 폭력에 이름을 붙이고 그렇게 함으로써 보이게 만든다(‘구경거리’로 만드는 것이 아니다).

이는 기본적으로 하이데거적인 의미에서의 포이에시스의 문제인데, 랑시에르는 정치를 이러한 미학적인 과정이라고 사고한다. 랑시에르 자신은 부인할 수 있지만, 여기서 지식인들의 역할이 매우 중요할 수 있다. 스피박과의 쟁점에 대해서--스피박은 표상이나 재현보다는 정치적 대표라는 문제를 제기하고 대표로서의 지식인들이 타자의 침묵을 읽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

헤겔이 여기서 다시 도움이 되는데, 발언권을 가지고 있지 않은 자들의 말이 집약적으로 보편주의적인 것은 바로 그것이 부정의 부정을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보편성은 주어진 규준이 아니라 쟁취된, 강제된 규준이다. 아리스토텔레스, 칸트, 하버마스는 이점에서 잘못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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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원주의 문제. ---> 투쟁의 다원주의. 지식, 예술, 경제활동 등에 있어서 다양한 이해관계들의 조직화. .... 동일성으로 환원되지 않는.... 동일성을 긍정하는 것이라기 보다는 보편주의를 실현하는 것으로 사고해야 함.

그러나 동시에, 대중들의 사고할 수 있는 능력 그 자체를 고양시키는 것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지 이미 만들어진 지식들의 일종의 햄버거 버전을 대중들에게 공급하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이는 기본적으로 과거의 학술운동 등의 폐해를 반복해선 안되며, 다양한 사상적 입장들, 맑스를 넘어서, 심지어 알튀세르와 발리바르의 논의도 넘어서, 다른 사상가들의 것으로 나아가야 한다.

또 한가지...지적 재산권 관련해서 예전에 이야기한 것이 있었는데, 도서관 운동. 출판 운동. 지식인들의 지적 작업들, 교육과정 자체에 개입하려는 움직임 등이 동시적으로 서로를 고양시켜 나가지 않는다면 힘들 것이다.


마지막으로 공부를 하려고 하는 분들께. 어떻게 공부할 것인가? 발리바르의 글을 읽으면서, 또 알튀세르의 글을 읽으면서 주요한 참조문헌들, 특히 원전들을 읽어보고 발리바르가 말하는 것이 거기 정말 나와있나 확인해 보고 그러는 것이 공부법. 이를 위해선 외국어 공부할 필요가 있음. 적어도 영어공부를 해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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