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셸 푸꼬의 유명론적 인간학







                                                               심재원(서울대)







  『광기의 역사』, 『말과 사물』, 『감시와 처벌』 그리고 『성의 역사』등으로 이어지는 미셸 푸꼬 ( 1926-1984)의 사상 대장정을 철학적 견지에서 살펴 본다면 어떤 모습으로 재구성할 수 있을까 ? 푸꼬 사상에 대한 이 원초적 질문에, 본고는 그의 사상이 서구 철학사적 전통 내에서 ‘유명론적 인간학’으로 자리 매김되어질 수 있다는 주장을 소략히 전개하고자 한다.




고고학의 이념




  『광기의 역사』에서 1971년의 「니체, 계보학, 역사」까지 푸꼬의 출간된 전저작을 일독하면, 그의 ‘고고학’이 『지식의 고고학』에 이르러 방법론으로서 칸트주의적 ‘비판적 합리주의적 기술론 description critico-rationnelle’으로 귀결하고, 그의 ‘계보학’은 「니체, 계보학, 역사」에서 방금 언급된 ‘고고학’이 응용 발전되어, 모든 사변적 세계관에 맞서는 ‘유명론적 전술 tactique nominaliste’로 전화하고 있음을 우리는 알 수 있다.

  다시 말하여, 푸꼬의 ‘고고학’은 『광기의 역사』의 1961년도 초판 서문에서 이미 언급된 뒤, 『임상 의학의 탄생』과 『말과 사물』에서는 각기 ‘의학적 시선의 ‘고고학’’과 ‘인간 과학의 ‘고고학’’이라는 부제 용어로서 등장함에도, 1966년이 되어서야 푸꼬 자신을 통한 개념 정립이 이루어지기 시작한다. 내용인 즉, ‘고고학’은 ‘주어진 시대의 문서고 archive 전체의 총체적 연구 결과의 기술’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 ‘고고학 archéologie’은 연구-기술 대상의 ‘기원 archê’을,  그 여타의 것을 가능케 하는 제일 토대적 시원 origine으로서가 아니라, 창시와 변형으로 반복 점철된 상관적 단초들로서 다루는 것이다. 또한, 이 ‘고고학’은 인간 의식을 대상으로 기존의 고고학처럼 은밀히 숨겨진 뭔가를 발굴하는 것이 아니라, 담론의 표면 자체를 매개로 하여 인간 사유를 대상으로 그 실제적 제 관계를 탐구 기술하는 것이다.  한 마디로, 푸꼬 ‘고고학’은, 시대적 문서고의 언문 덩어리들에서 우리가 받아 들이거나, 거부하거나 혹은 변형시키는 것들과 관계하는 제 역사적 조건의 분석과 기술이다. 그런데, 푸꼬 자신의 해명에 따르면, ‘고고학’을 “어떤 특정 형태의 사고를 필연화하는 역사를 가리키기 위하여”  처음으로 사용한 이는, 『독일 형이상학의 진전』에서의 칸트이다 (『말과 글』1, 1089쪽). 칸트 고고학의 이념은 이성의 원리들과, 이 원리들이 그들 사이에서 지탱하는 상관 관계들의 비판적 합리주의적 추출이다. 이러한 추출에서 기원하는 합리주의적 역사 해석은 역사 현실의 비판적 분석을 수행하는 한편, 경험적 우연의 외양을 가로 질러 선험적 제 필연성을 부상시킨다. 이러한 재구성적 역사 해석은, 이성이 역사를 통괄하고 영유하는, 특히 비판적 이성과 철학사 사이의 상관 관계를 드러내는 것을 이념으로 한다. 정녕, 귀납 명제 형태 속에서 철학은 논리적으로 필연적이지 않고, 시행 착오를 통해 필연성을 담보해내고자 한다. 그러나 이는 귀납적 필연성의 부상émergence과만 관련된 것이다. 모든 선험적 판단이 불확정적인 현실을 지양하는 것이긴 하나, 이러한 판단의 보편성의 토대는 이성 자체에서만 보장되어질 수 있다. 이처럼, 칸트에게서 합리주의적 철학은 비판주의적으로만 고려될 수 있다는 점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논리적 필연성을 고양하는 합리주의적 비판 철학은 그 자체로서 일정한 체계이며, 그러므로 일련의 뒷손질을 통해 구성되어질 수 없다. 이 철학은 자신이 드러내는 합리적 명증성 속에서 자기 이해된다. 이처럼 새로운 철학사가 부상하는데, 이는 이 지점에서 철학사에 고고학적 명료성이 도입되기 때문이다. 즉, 일련의 철학에서 토대적 원리들의 연계와 정합성을 발견하면서 진정하고 혁신적인 명제들을 찾아 내는 것이 고고학이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칸트는 고고학을 도입하는데, 이는 “철학적 철학사”, 즉 경험론적 계승사와는 다르게 합리적 비판주의적 원칙들에 따라 일련의 철학들을 자기 것으로 해낼 수 있는 역사를 그려내기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까지의 논의를 총괄컨데, 푸꼬의 고고학은 ‘문서고’의 합리적 비판주의적 분석 탐구와 역사적 기술로 총괄적으로 개념 규정될 수 있는데, 문서고는 일정 시대에 주어진 사회와 연동되어, 결정적으로 부상하였을 일군의 현실적 사태들로서뿐만 아니라, 작동하며 자기 전화하고 다른 담론들의 출현을 가능케 하는 일군의 실제적 언표로서 투사되는 일단의 담론을 가리킨다.

  이러한 담론의 고고학을 푸꼬는 『지식의 고고학』에서 사상사와 분별하며 그 용법을 제시하는데, 네 가지 원리적 분별점이 중차대한 것으로 제시된다. 첫째 용법은 본원적 담론과 이의 반복된 파생물 사이의 가치상 위계 서열을 거부하는 것인데, 이로써 고고학은, 일정 담론의 실제적 출현을 조건짓는 언표적 규칙성을 세우는 데에 주력한다. 문서고를 성격 지우는, 이 규칙성은 본원적 담론에 따라 여타 파생물에 처음 한 번에 결정적으로 주어진 것으로 간주되지 않는다. 따라서, 어떤 유일한 시원적 담론의 독창성으로부터 총괄적 파생 원리를 찾지 않고, 총체적 시대 구분을 시도하지 않는 것이 고고학에서는 중요하다. 둘째로, 제 모순은 고고학상 그 자체로서 차별적으로 기술되어야 할 항목들이다. 총괄적 일원론적 모순 전개에 고고학은 다원적 모순들의 개별적 형태, 수준 그리고 기능의 분석을 대체한다. 셋째로, 고고학은 제 담론을 비교 대조할 적에, 대상 담론들을 동시성에선 맞세우고, 시간성에선 차별 지우며, 비담론적 실천성에 특정적으로 관계 지운다. 이러한 고고학적 비교 대조는 항시 제한적이며, 제 담론의 다양성을 갖가지 형태로 그려 내기를 의도하기에, 그 효과는 승수적multiplicateur이다. 넷째 마지막으로, 전형transformation의 탐지와 관계해서는, 제 담론의 뚜렷한 공시성이 중요하다. 따라서 고고학은 시간적 연속을 정지시킨다. 그런데, 이 연속 정지의 목적은 제 담론의 시간성을 성격짓고 이를 계열화하는 제 관계를 부상시키는 것이다. 따라서, 정지되는 것은 최초의 분리할 수 없는 연쇄로서의 연속이라는 테마와 담론은 단 하나의 형태와 단 하나의 연속 수준을 갖는다는 테마이다. 이들 테마에 고고학은 다양한 형태로 포개진 연속과 특정한 연속들의 연접 양식을 둘 다 부상케 하는 분석을 대치한다. 또한, 고고학은 ‘차이’를 단순화 시키길 거부한다. 따라서, 차이의 고고학은 가능 사태들로부터 수다한 담론 수준을 구분해 내며, 변동에 대한 무차별적 준거에 제 전형의 분석을 대체하고, 반복자 (동일자, 연속자)가 어떻게 분산자의 경우와 마찬가지의 동일 조건과 규칙을 따라 실제로 형성되는지를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고려하는데, 이 경우에 단절rupture은 한정된 실제성들 사이에서 상당수의 개별적 전형에 의해 특정화되는 불연속을 의미한다. 상기된 용법을 요약컨데, 푸꼬 고고학은 개별적이기 보다는 구조 체계적 독창성을 강조하고, 일괴암적monolithique 모순보다는 차별화된 제 모순을 선호하고, 승수 생산적 비교 대조를 강조하며, 불연속의 제 전형을 우선시 하는 용법으로써, 문서고의 비판적 합리주의적 탐구와 기술의 실천적 방법이다.




계보학의 전술




  은사 이뽈리뜨Hyppolite에게 극적으로 헌정된, 「니체, 계보학, 역사」는 거의 모든 테마에 걸쳐 헤겔의 사변적 역사 철학에 맞서는 푸꼬의 선전 포고이다. 이 ‘계보학 선언’으로 푸꼬는 모든 순수 이론적 사변 철학에 맞서는, 자신의 고고-계보학적 입장을 결정적으로 취하기로 한 것으로 보인다.

  위 소론에 의거하면, 푸꼬 계보학은 방법으로서의 고고학과 상보적으로 역사에 적용되면서 내성적 방법으로서라기 보다는 논쟁적 입장으로 본격적으로 전화하기 시작한다. 이미 『담론의 질서』에서, 이 두 접근 방식은 결코 완전히 분리 가능한 것이 아니었고, 양자의 “차이는 완전히 대상이나 영역에 관한 것이 아니라, 타격점이나 투시각 혹은 경계선에 관한 것”(68쪽)이었음에도, 구심성의 고고학은 특정 담론의 형식적 영유를 중심으로 그 형성, 요구, 이전, 제약, 전환 등등의 내적 인과율을 보여주려 하는 것으로 기술되었던 한편, 원심성의 계보학은 제 담론의 외부적 실제 형성과 관계되었다. 이제 「니체, 계보학, 역사」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니체의 철학 사상을 푸꼬가 모든 순수 이론적 사변 철학에 맞서 어떻게 자신의 것으로 본격적으로 영유 해석하는지를 보여주는 ‘계보학 선언’이자 ‘반 절대 이성주의 선전 포고’이다.

  내용인 즉, 푸꼬 계보학에서는 고증주의적positiviste 박학 다식의 문서 준거적 세밀함을 요구하는 사태적 단독성 singularité들을 탐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로써 계보학은 본질적 기원을 찾는, 이상주의적이고 목적론적인 메타역사(철)학에 맞서는데, 계보학자는 사물의 본질은 어떤 실체도 없이 하나  하나씩 구성된 것이라 본다. 이러한 계보학자에게, 장엄한 본질적 기원은 모든 사물의 창시에 그 값진 가치와 본질적 의미가 있다고 말하는 사변적 형이상학의 덧새싹surpousse일 뿐이다. 사물의 단초는 하찮고 우연적이라는 의미에서 계보학적으로 ‘낮은’ 것이다. 따라서 계보학을 한다는 것은 낮은 역사적 단초들의 불확정적 놀이에 세밀한 주의를 기울인다는 것이다.

  따라서 ‘기원’보다는, ‘출처 provenance’와 ‘부상 émergence’이 계보학의 고유한 대상이다. 사실, 자발적 생성들의 내재적 발원지로서의 ‘출처’의 분석은 일괴암적 이상체 아래에서의 제 사태의 확산에 주목하는데, 이로써 우리의 존재와 인식에는 초월적 진리와 존재가 아니라 표면적 사건들이 자리 잡고 있음을 발견하면서 지나간 사태들을 이들의 고유한 우발적 분산에서 재취하고자 한다. 다른 한편, 힘 puissance의 분출로서의 ‘부상’은 국지적 출현의 단독성을 가리키는데, 이와 관계해서 목적론적 종말은 항시 현재적인 기세의 일련의 무한 연속의 한 최종 국면일 뿐이다. 부상의 분석은 따라서 힘들이 다양한 정황에서 서로 서로 반발하는 우연의 놀이를 보여준다. 이 부상의 세계는 폭력의 규칙의 세계이며, 지배의 놀이를 끊임없이 재발진시키는 것이 이 폭력의 규칙이다. 이처럼, 인류 역사는 단계별로 점진적으로 영구 평화로까지 진전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놀이의 각 규칙에 폭력을 각인해나가면서 지배에서 또다른 지배로 계속된다. 이러한 갖가지 역사적 부상은 한 의미 전체의 승계적 전개가 아니라, 수다한 정복, 이전, 반전, 대체 등등의 역사적 효과의 결과이다. 계보학은 이러한 효과들의 역사이며, 이들을 지배적 힘의 불확정적 무대에서 단독적 사태들로서 부상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이러한 출처와 부상의 실제 역사는 어떤 초월적 실체에도 의거치 않으면서, 현존재 각각의 그 역사적 온전성에 내생적 불연속을 도입한다. 이 역사적 힘은 어떤 목적지도 어떤 기계성도 없이 상호 투쟁의 우연성만을 갖고, 실제 역사는 가장 가까운 것의 형성과 변형과 관계하여 사태 각각에 그의 척도와 강도를 남기는 것이다. 이러한 역사의 계보학은 따라서 투시적 시선이며, 당파적 장치이자, 치료적 지식이다.




미시 권력과 통치성




  상기한 고고-계보학을 바탕으로 푸꼬는 1970년대에 권력의 문제 연구에  주력하는데, 그 문제 의식은 파시즘이나 스탈린주의로 굴절된 전통적 법률-경제주의적 권력관의 극복이다. 근대 사회 계약론에 뿌리를 둔, 이 경제주의 권력관의 내용은 ‘권력은 우리가 재화처럼 소유자일 수 있고, 따라서 법률적 계약 행위에 의해 이전커나 양도할 수 있는 권리이며, 이러한 계약 거래의 법률 행위를 모델로, 모든 개인이 보유하고, 정치적 주권 권력을 구성하기 위해서는, 양도가 가능한 것이 권력’이라는 것이다. (『“사회를 보호해야 한다”』, 14쪽) 그런데, 푸꼬는 비법률-경제주의적 권력 분석을 하기 위해, 니체의 계보학을 권력 이론에 적용해서, 권력을 사회 계약론의 모델 바깥에서, 법률적 주권과 국가 제도의 한정된 장의 외부에서 연구하면서, 지배의 기술과 전술로 부터 분석할 것을 제안한 것이다. 이러한 이론적 배경하에, 『감시와 처벌』에서 기율discipline로 상징되는 푸꼬의 미시적 사회 권력론이 이해되어야 한다.

  이 미시적 사회 권력론을 살펴 보면, 푸꼬는 17-18 세기 서구 사회에 기존의 법률-경제주의적 전근대적 군주 권력 장치와는 다른 권력 기제가 새로이 부상했다고 주장하는데, 이 기제가 ‘기율’이다. 이 새로운 권력 기제는 신체와 신체가 행하는 것을 우선 대상으로 하고, 신체의 노동과 동작 시간을 추출하며, 지속적 감시와 처벌을 통해 행사되는데, 물리적 강제의 미세한 분할 경계망을 조건으로 하면서, 예속된 생산력과 동시에 예속하는 강제력의 효과의 극대화를 작동 원칙으로 하고 개인화를 동반 효과로 하는 ‘전면적 사회 통제’이다. 푸꼬에 따르면 사실, 권력은 편재하는 것으로서 결코 누가 쥐거나 누구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다. 권력은 어떤 개인에게도 어떤 집단에게도 속하는 것이 아닌 것으로서, 분산, 연계, 네트워크, 상호 받침대, 잠재력 차이, 편차 등등이 있는 경우에만 있는 것이다. 미시 권력이 개인의 신체를 대상으로 상정하는 지점에서, 권력은 기율적 권력으로서 일정 정도 말단의 모세망이자 최종적 연계 양태인데,  이에 의거해서 일반적 정치 권력이 최종 수준에서 신체를 건드리고 몸짓, 행태, 습관, 언행, 태도 등에 간섭하면서 개인의 신체 자체를 표적으로 하향 집중하며 “두뇌의 무른 섬유질”에 작동, 변형, 지도 등을 하는 것이다. 이처럼 기율적 권력은 개인의 신체, 몸짓, 시간, 행태 등의 철두 철미한 총체적 장악인데, 한편으론 기율이 자기 검열의 습관이 될 때까지 감시와 처벌의 항시적 통제 절차를 함축하며, 다른 한편으론 기율의 증가와 완벽화를 시간적 척도를 따라 세밀화할 점진적이고도 등급화된 반복 수행을 통해 그 효과가 보장된다. 부연컨데, 이러한 기율 체제는 저절로 진행되도록 적용되는 것인데, 최고의 감독자도 개인화되고 대치 가능한 ‘기능’으로서 보다 방대한 체계 안에서는 기율화된 자로 나타난다. 기율적 권력은 예속된 신체들을 만들어 내고, 신체에 기능-주체를 정확하게 고정시키는 것이다. 다시 말하여, 기율은 권력 관계에서 개인을 표적, 동반자 그리고 상대자로서 구성하는 권력의 단말적 모세 형태이다. 그런데, 푸꼬의 이러한 미시 권력론은 작동 권력이 전략적 관계로서 이해되고, 그 파급 효과가 조처, 조작, 전술, 기술, 기능 등에 할당되며, 그 속에서 항시 긴장되고 활동적인 관계망을 우리가 식별해낼 것을 전제한다. 기율적 권력은 순전히 그리고 단순히 격려나 금지로서 피지배자들에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이들에게 직위를 부여하며, 이들을 통과하고 관통하며, 이들에 의거한다. 이러한 권력 관계가 수없이 많은 대결 지점과 불안정한 진원지를, 각각이 모두 세력 관계의 최소한 과도적인 갈등, 투쟁, 역전의 위험 부담을 포함하면서, 가로 지르며, “신체 동작의 섬세한 통제를 가능케 하며, 그 힘의 항상적 예속을 보장하고, 신체 동작에 온순함-유용성의 관계를 강제하는” 것이다. (『감시와 처벌』, 139쪽)

  이렇듯, 권력의 분석의 진입로가 지배 관계라는 것이 역사적으로 자명하다면, ‘어떻게 지배 관계를 분석하며, 세력 관계의 개념으로 전환시킬 것인가 ?’라는 문제 의식에서 푸꼬는 ‘정치는 다른 수단에 의해 계속되는 전쟁’이라는 담론에 주목하며 이를 『“사회를 보호해야 한다”』에서 역사적으로 고찰한 것이다.  이에 따르면, 이 담론은, 관습적으로 취해지는 철학-법률적 담론과 상당히 다른, 사회에 관한 역사-정치적 담론인 동시에, 영구적 사회 관계, 모든 권력 관계와 제도의 지울 수 없는 심층으로서의 전쟁에 관한 담론이다. 이 ‘전쟁의 담론’의 내용인 즉, ‘철학-법률적 이론과는 상반적으로, 정치 권력은 전쟁이 그쳤을 때 시작되는 것이 아니다. 전쟁은 끝나지 않는다. 전쟁이 국가의 탄생을 주재했고, 권리, 평화, 법률은 전장의 피와 진흙에서 태어난다. 법은 평화화가 아닌데, 그 아래에서 전쟁이 모든 권력 기제의 내부에서 계속 맹위를 떨치기 때문이다. 전쟁이 법, 제도, 그리고 질서의 숨은 동력이다. 따라서 우리는 서로 서로에 맞서 전쟁 상태이다, 전선이 사회 전체를 지속적으로 영원히 가로지르고, 우리 각자를 어느 한 진영에 위치시키는 것이 이 전선이다. 중립적 주체란 없다. 각자는 강제적으로 누군가의 적이다. 그리고 이 전쟁을 설명 원리로 되찾는 것으론 충분치 않고 재활성화해서, 승자가 되기 위해 준비해야만 하는 결정적 전투에까지 끌고 가야 한다’라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주권과 법의 문제에 따라서 정열되는 중립적이고 보편적인 철학-법률적인 담론에 반하여, 사회에서의 투쟁의 영구성을 해독하는 '전쟁의 담론'은 본질적으로 역사-정치적인 담론, 당파적 승리를 위해 진리가 무기로서 기능하는 담론이라는 사실에 푸꼬는 주목한 것이다.

  그래서, 권력을 논함에, 푸꼬는 일정 국가에서 국민의 복종을 보장하는 제도와 장치 전체로서, 폭력에 반하여 규칙의 형태를 띨 예속의 양상으로서도, 또한 일 구성원 혹은 한 집단이 행사하며 그 파급 효과가 사회 전체를 관통하는 일반적 지배 체계로서도 권력을 다루지 않는다. 이로 부터, 푸꼬의 권력 분석은 국가 주권, 법률 형태 혹은 단일한 총괄적 지배를 출발 조건으로 하지 않는다. 그는 권력을 “행사되는 영역에 내재하고 조직적으로 구성되는 제 세력 관계의 다양성, 부단한 투쟁과 대립을 통해 제 세력 관계를 변형, 강화, 역전시키는 놀이, 이러한 세력 관계가 연쇄나 체계를 형성하는 방식으로 서로 서로를 발견하는 지지대들, 혹은 정반대로 서로 서로를 고립시키는 제 편차와 제 모순, 제 세력 관계가 그 속에서 효과를 갖고 전반적 구도와 제도적 결정화가 국가 장치들, 법률의 정식화, 사회적 헤게모니들 속에서 구체화되는 전략들”로서 이해한다. (『성의 역사 1』, 121-2쪽) 따라서, 푸꼬는 ‘유명론’적 접근 방식을 시사하는데, ‘권력은 제도도, 구조도, 혹자에게 부여될 특정 역량도 아니며, 일정 사회에서 복합적 전략 상황에 부여되는 이름이다’. (상동, 123쪽)

  따라서, 「주체와 권력」( 1982)에서 푸꼬가 “권력이란 어떻게 행사되는가 ?”의 문제에 우선 집중하는 것은, 실체론적이고 기원론적인 질문 “권력이란 무엇인가 ? 권력은 어디서 오는가 ?” 앞에서 무한정 답보 상태일 때 우리가 일군의 상당히 복합적인 권력 현실태를 놓치진 않는가를 자문하기 때문이다. 푸꼬가 분석하는 권력의 특성은 개인이나 집단의 역량 자체가 아니라 이들 사이에서의 제 관계를 문제시 한다는 것인데, 이처럼 ‘권력’은 ‘상대자들 사이에서의 제 관계’를 가리키고 이 관계는 서로 서로 유인하고 반응하는 일군의 비상징적 ‘행위’가 염두에 두어진 것이다. 고로, 권력의 행사는 단순히 ‘상대자들 사이에서의 관계’가 아니고, “특정자들의 여타 특정자들에 대한 행위 방식” (『말과 글』2, 1054-5쪽)으로서의 그것인데, 이는 물론 영구적 제 구조에 의지하는 분산된 가능성의 장에 포함될지라도 권력은 행위로서만 현존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실, 권력 관계를 규정하는 것은 ‘타자에게 직간접적으로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이들의 고유한 가능하거나 현실적인, 미래나 현재의 행위에 작용하는 행위 방식’이다. (상동, 1055쪽) 이러한 권력 관계는 “응당히 권력 관계가 되기 위해서 자신에 불가결한 두 구성원에 연결되는데, 권력이 행사되는 타자가 끝까지 행위 주체로서 인정되고 유지되면서 가능한 반응, 반작용, 효과, 창안의 한 마당 전체가 권력 관계 앞에 열리는” 것이다. (상동) ‘인도conduite’의 푸꼬적 용법이 이러한 권력 관계의 특수성을 보다 잘 포착토록 하는데, ‘인도는 타자들을 이끄는 행위인 동시에 다소간 열린 가능성의 장에서 처신하는 방식’이다. 심층적으로 말하여, 권력은 이제 “두 적 사이의 대립이나 일자의 타자에 대한 앙가주망engagement의 차원이라기보다는 ‘통치gouvernement’의 차원”이다. (상동, 1056쪽) 이 ‘통치’의 개념은 정치 구조와 국가 경영만이 아니라, ‘개인이나 혹은 집단의 행위를 이성적으로 이끄는 방식’을 가리킨다 : “권력에 고유한 관계 양식은 따라서 폭력이나 투쟁의 측면에서도 아니고, (끽해야 이의 도구만이 될 수 있을 뿐인) 계약이나 자발적 유대의 측면에서도 아닌, 통치라는 — 전쟁적인 것도 아니며 법률적인 것도 아닌— 단독적 행위의 양식의 측면에서 찾아져야 한다.” (상동) 이런 고려하에, 푸꼬는 —혹자가 타자의 행위를 결정하려 하게끔 하면서, 이에 타자가 그의 행위가 결정되도록 내버려 두지 않으려 하거나 역으로 상대자의 행위를 결정하려 하는— 자유 행위의 전략적 놀이와 통상적으로 권력으로 불리우는 지배 상태를 구분하고, 이 양자 사이에 통치적 기술을 배치한다. 따라서 그의 권력 분석틀에는 세 가지 차원: 전략적 관계, 통치의 기술 그리고 지배 상태가 있다. 또한 통치성gouvernementalité을 매개로 한, 권력 관계의 이성성rationalité은 복합 다중적이고 다양한 형태를 가지며 가족 관계, 일정 제도 내부, 행정 경영, 지배 계급과 피지배 계급 사이 등에서 작동하는데, 흔히 이러한 통치성의 이성적 기술을 통하여 제 지배 상태가 설정되고 구현된다. 그런데, 이처럼 권력을 연구함에, 푸꼬는 정치적 권력론을 전개한 것이 아니라, 그의 문제틀이 주체의 구성과 이성성의 기술이 둘 자체 사이에서 어떻게 관계되는지를 알아보려는 것인 차원에서 이 관계의 결정 요소의 하나로서 권력 관계를 분석하려 한 것이라 말년에 회고했다. 사실, 인간은 그에게 행사되고 그가 타자에 행사하는 “일정 상당수의 권력 관계를 통해 주체로서” 구성된다. 그리고 “나는 권력 이론을 한 것이 아니라, 그 역사를 한 것”이라고까지 그는 자신의 권력론 작업을 압축 정리했다. (상동, 1269쪽)




역사 유명론의 계보학




  사학자 베인느 Veyne는 「푸꼬가 역사를 변혁한다」(1978)는 논문 서두에서 푸꼬를 “완성된 역사가, 역사의 완성”이라 극찬하며 ‘최초로 완벽한 고증주의자, 유명론자, 다원주의자 역사가’로 규정하였다. 이에 대해 푸꼬는 자신의 역사 작업에서 “나는 역사적 보편자와 역사에서 유명론적 방법을 시험해야 할 필연성에 관한 폴 베인느의 사색에 의지” (상동, 819쪽)했고, “폴 베인느가 잘 봤다: 역사적 분석을 통해 그 자체로 표명되는 유명론적 비판의 역사적 지식에 관한 제 효과가 중요하다” (상동, 853쪽)라고 호응했다. 베인느의 『역사를 어떻게 쓰는가?』(1971)에 따르면, “역사는 과학이 아니고, 과학으로 부터 기다릴 것이 많지 않으며, 역사는 설명치 않고 방법이 없다” (10쪽). 달리 말하여, “역사 설명은 어떤 원리에도, 어떤 영구적 구조에도 도움을 청할 수 없는데, 모든 개별적 사건intrigue이 자신의 단독적 인과 장치를 갖기 때문이다.” (149쪽) 과학적 설명에 맞서, “역사는 일어난 것의 단순 기술로 나타나며, ‘어떻게’ 일들이 벌어지는지를 설명할” 뿐이다. (222쪽) 이처럼, 역사는 사실적 진리만을 찾을 뿐이며, “증거 자료 documents에 의한 인식”이다 (15쪽). 이처럼, 유명론적으로, “모든 분류 개념은 잘못된 것인데, 어떤 사태도 어떤 다른 사태와 유사치 않으며”, “존재와 동일성은 추상에 의해서만 있을 뿐인데, 역사는 구체자만을 알려할 뿐이기” 때문이다. (184-5쪽) 그래서 역사에서 “항시 변화하는 진리와 항시 시대와 불일치하는 개념들 사이에서, 개념과 범주는 끊임없이 재편되고, 어떤 기정 형태도 갖지 않으며, 자신들의 대상의 현실에 맞춰 모델화되어야 한다” (190쪽). 실제, 푸꼬에 있어서, 대상은 사람들이 행하는 실천의 상관 요소일 뿐이다. 따라서, ‘푸꼬는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실천’이라 불리는 새로운 심급을 발견한 것이 아니다: 그는 사람들의 실천을 ‘실제로 있는 그대로’ 보려고 노력할 뿐이다; 그는 모든 역사가들이 말하는 것, 즉 사람들이 행하는 것 이외의 것을 말하지 않는다: 그는 단지 모호하고 고상한 용어로 말하는 것 대신에 정확하게 말하고, 첨예한 윤곽을 기술하려 할 뿐이다’ (397쪽). 그 결과, “낱말로 부터 사물을 판단하도록 권유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게, 푸꼬는 정반대로 낱말이 사물, 자연 대상, 피치자들 혹은 국가의 현존을 믿게끔 하며 우리를 속이며, 이러한 대상들은 상응하는 실천들의 상관 요소일 뿐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398쪽). 사실, 그의 고증주의적 역사 분석은 역사에 형이상학적인 실체도 본질도 없으며, 단지 일어난 제 실천의 상관 요소들만이 있다는 설정에서 출발한다. 이러한 상관자들만이 존재하기에, 그는 실천 자체가 아니라 행위, 사태 그리고 여타 상관자들을 논의 대상으로 하는데, 이는 그에게 대상 자체, 즉자, 추상 일반 등은 존재치 않기 때문이다. 푸꼬의 철학은 따라서 ‘고증주의적 유명론’이다. 또한, 베인느가 시사하듯이, 푸꼬의 역사-철학의 인식론적 근본 문제는 ‘경험 대상들의 초역사적 실재성을 부인함과 동시에, 이들이 단순 기술 대상으로서의 주관적 허구가 아닌, 객관적 설명 대상으로 남기 위해선 이들에게 합당한 객관적 실재성의 여지를 남겨야 한다는 것’이며, 궁극적으로 “푸꼬는 이 어려운 문제를 관계의 우위성의 니체 철학으로 해결하는데, 사물은 관계에 의해서만 존재하고 (…) 이 관계의 결정이 사물의 설명 자체” (413쪽)이기에, 그의 유명론은 ‘반 질료-형상설적 실체론의 ‘관계의 존재론’’이다.

  실제 『생정치biopolitique의 탄생』에서 보이듯, 그의 “통치적 실천”의 연구는 유명론적 방법 선택을 명시한 것인데, 그는 “통치적 실천을 말하거나 이에서 출발하기를 선택함에, 이는 물론 시초적이고 시원적이며 완전히 주어진 대상으로서의, 예를 들면 군주, 주권, 인민, 신민, 국가, 시민 사회와 같은 이 일정 다수의 개념들을 아주 분명한 방식으로 등한시하는 것” (4쪽)이라 말한다. 달리 말하여, ‘그 구체적 제 현상을 연역키 위한 혹은 일정 다수의 구체적 제 실천에 대한 강제적 이해 격자로서의 보편자들로부터 출발하는 대신에, 구체적 실천으로부터 출발하여 이 실천의 격자로 보편자를 걸러 내려한다’는 것이다. (상동) 주지하듯이, 유명론자 오캄은 아리스토텔레스에 의거하면서 보편자가 존재적 실체가 아니라고 주장하였다. 그런데, 이렇듯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Z, 13은 유와 종, 즉 보편자가 실제로 존재함을 분명히 부인함에도, 프레데M. Frede에 의거하면, 아리스토텔레스는 개체적 대상들만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치 않으며, 이것은 고두Goddu에 의해 설파된 오캄의 ‘개별적 자연 경험 대상만이 실체적 존재’라는 질료-형상설적 개체 존재론과 그의 존재론적 입장이 다르다는 것을 의미한다. 프레데의 논의의 일단을 요약컨데, 아리스토텔레스의 입장은 진정한 존재로서 궁극적으로 실체인 것은 형상이며, 이 형상은 자신의 동일성을 변화를 가로질러서도 유지하는 존재자의 구성 기능 역량이다. 이러한 탈 질료-형상주의의 역량적 존재 개념관과 베인느 자신의 역사 유명론의 존재론적 토대에 관한 언급 (상게서, 153쪽)은 플라톤의 『소피스테스』247d-e의 ‘뒤나미스dunamis’에 의한 존재ousia의 정의를 주목케 하는데, 이 뒤나미스는 ‘능동과 수동의 힘puissance d’agir et de pâtir ’으로 개념화될 수 있고, 이 ‘힘’의 형이상학의 전통의 궁극적 최근 담지자가 니체의 ‘힘에의 의지’ 개념과 이를 매개로 한 푸꼬의 ‘미시 권력’ 개념이다. 하이데거와 뮐러-라우터 그리고 누구보다도 니체 자신이 잘 보여 주듯이, 매 단계에 다다른 자신의 정도degré를 제어하며 행사되고 성장할 뿐이라는 힘의 구조화되고 유일한 본성을 가리키기에, 힘에의 의지는 힘의 강화와 증대인 한에서만 힘이고, 세계의 모든 동력은 힘에의 의지인데 이 힘의 본성은 모든 운동자 사이에서의 관계에서 실현된다. 이러한 힘의 통일성은 세력의 영역에서의 어떤 조직화를 의미할 뿐인데, 이러한 조직 내에서의 힘의 끓는 변전들이 한 운동자의 다수 운동자로의 분리 혹은 다수 운동자의 한 운동자로의 집중을 초래한다. 바로 이것이 힘에의 의지의 개별화individuation인데, 이러한 맥락에서 ‘개체’는 참으로 존재하기는 하나, 힘에의 의지의 재생산된 ‘개체성’으로서 각별하게 존재하는 것이다. 따라서 뒤나미스로 인해, 개체 자체는 질료-형상설적 유명론의 최후의 형이상학적 그림자로서 명목화된다. 근저에서 바라보면, 이 질료-형상의 개체는 개별적, 개별화된 혹은 개체화된 뒤나미스에 주어지는 이름일 뿐이다. 따라서 이러한 존재론적 차원에선, 오캄조차도 완전히 유명론자가 아니다. 그는 보편자 논쟁의 맥락에서 중세 아리스토텔레스주의적 형이상학의 질료-형상설적 전통을 유지하면서 보편자들을 명목화하는 데 만족했을 뿐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뒤나미스 관계의 유명론’의 관점에서, 일단의 실정적 개별자들이 “역사가 그 개별적 정황으로 인해 상당수의 변화를 가져 올 보편자들로서” 분석될 수 없음에, 이러한 실정성의 분석에서 다시 취해야 하는 것은 테마적으로 독자적인 개별성들으로서의 “제 순수 단독성singularités pures”이다. (「비판이란 무엇인가」, 50쪽). 유명론의 고고 계보학은 이제 방법론적으로 ‘어떠한 토대적 의지점, 어떠한 순수 형상으로의 도피처도 없는 순수 단독성들의 내재성의 장에서 단절, 불연속성, 단독성, 순수 기술, 부동의 도판, 무설명, 무횡단’을 재확인한다. (상동) 사실, ‘가용성acceptabilités의 제 단순 조건’에 연관되는 순수 단독성들이 의미를 가지는 한에서, “이 단독성을 효과로서 고려하는 복합적이고도 촘촘한 인과망을 세우는 것”이 중요한데, ‘여기서 단독적 실정성을 명료화하는 연관 짓기, 상호 작용과 순환 작용의 독해 그리고 혼성 과정의 증대의 고려의 필연성이 유래한다’. (상동) 요약컨데, ‘다양한 결정 요소들로 부터 단독성이 효과로서 나타나는 그 출현 조건을 재현’하는 것이 유명론적 고고 계보학에서는 중요하다.




비판주의의 인간학




  『말과 사물』(1966)에 따르면, ‘인간’은 18세기말에 서양 지식의 장에 처음으로 등장하는데, 여기서 근대 인간학의 모든 안이함이 탄생하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두 세기가 되지 않은 최근의 고안물이며 인류의 지식이 새 형태를 찾게 되자마자 사라질 것이라 푸꼬는 예측하였다. 다시 말하여, 인간의 분석학으로서의 인간학은 근대 사상에서 구성적 역할을 하였는데, 이는 경험적 종합이, ‘코기토 cogito’의 주권이 인간의 유한성에서 자신의 한계를 발견하는 지점 너머에서, 보장될 필요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를 칸트가 『논리학』에서 세 가지 질문 (무엇을 알 수 있는가 ? 무엇을 해야 하는가 ? 무엇을 희망해도 되는가 ?)을 ‘인간이란 무엇인가 ?’라는 최종 질문으로 총괄적으로 수렴하며 정식화하였다. 이 질문은 19세기 이래로 경험적인 것과 초험적인 것을 ‘혼동’하며 사상사를 완주하였는데, 바로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푸꼬는 ‘인간학적 졸음’이라 지칭하였다. 이처럼 (분석적) 인간학은 칸트 이래로 지금까지 철학 사상을 지휘 향도한 토대 규정이었을 것이나, “우리 눈 앞에선 분열되고 있는 중”이다. (352쪽) 따라서 푸꼬에겐, “인간은 인간 지식에 제출된 가장 오래되지도 않고 가장 항상적인 문제도 아니다.” (398쪽) 사실, 16세기 이래 유럽 문화를 살핀 연후, 푸꼬는 ‘‘인간’이 여기에서 최근의 고안물임과 그의 임박한 종말’을 단언하였다. 그런데, 이러한 ‘인간의 죽음’을 언급하며, 그는 “이 죽음을 우리 시대에 진행중이었던 뭔가로 제시하며 내가 틀렸다”고 자아 비판한다. (『말과 글』2, 894쪽) 자신이 두 측면을 혼동했다는 것인데, 그 첫째는 ‘인간이 자기 고유의 주체성을 변형 개입했던 경험으로서의 인간 과학에서, 그의 약속이 인간의 발견이었다면 이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으나, 종합적 문화 경험으로서의 이 과학은 인간 주체를 인식 대상으로 환원하며 새 주체성의 구성과 연관되었다’는 것이다. 두 번째 측면은 ‘역사상 인간은 지속적으로 자신의 주체성을 이전하면서 다양하고, 결코 끝이 없으며, 인간일 그 무엇으로 결코 자기 규정을 하지 않을, 일련의 무한하고 수 많은 주체성 속에서 자기 구성을 멈추지 않았다’는 것이며, ‘인간의 죽음’을 말하며 이 두 번째 측면을 말하려 했던 것이라고 푸꼬는 결론 짓는다. ‘인간’의 ‘지성사적 죽음’의 ‘주체학적 부활’로서의 인간학적 복귀를 푸꼬는 이렇게 스스로 추인한 것이다. 돌이키건대, 그는 ‘통치’라는 새 문제틀을 제시함에, ‘결코 정치 구조를 통치하는 것이 아니다. 통치 대상은 사람들, 인간들, 개인들 혹은 그 집합체들이다. 사람이 통치하는 것은 애초에 근본적으로 사람이다’라고 명시하였다. (『안전, 영토, 인구』, 126쪽) 이렇듯 ‘통치’의 문제틀을 새로운 정치-사회 분석틀로 제시함에, 『안전, 영토, 인구』와 『생정치의 탄생』곳곳에 걸쳐 푸꼬는 인간과 그 인간학적 파생 개념들 (민중, 인구, 경제의 인간homo œconomicus)과 접근 방식을 가지고 ‘통치성’의 역사 유명론적 분석 연구를 진행하였다.

  그런데, 이렇듯 역사 유명론적 기술로서, 인간학적 주제 의식을 가지고 고고-계보학을 하는 것은 푸꼬 자신이 인정하듯 칸트의 비판주의 전통에 입각한 것이다. (『말과 글』2, 1450쪽) 푸꼬는 이 전통을 제한적 자세attitude limite로서의 철학적 에토스로 성격 규정하는데,  비판은 “한계들의 비판이자 이것들에 대한 사색”이다. (「계몽이란 무엇인가 ?」, 상동, 1393쪽) 칸트의 질문이 인식의 한계에 관한 것이었다면, 푸꼬의 질문은 이를 현재화하여 “고증적 질문 : 우리에게 보편적, 필연적, 의무적으로 주어진 것들에서 무엇이 단독적이며 우연적이고 임의적 제약에 의한 것의 몫인가”로 역전하는 것이다. (상동) 즉, 푸꼬의 ‘비판’은 ‘보편적 가치를 갖는 형식적 구조의 연구가 아니라 우리를 주체로서 구성 확인토록 하는 사태들을 통한 역사적 조사’이다. 이런 의미에서, 이 비판은 칸트에서처럼 초월적이지도 않고 형이상학 정립적이지도 않은데, 그 목적성에 있어서는 계보학적이며 방법에 있어서는 고고학적이다. 다시 말하여, “우리가 생각하고 말하고 행하는 것을 동일한 정도의 역사적 사태들로 결합하는 담론을 다루려” 한다는 의미에서 고고학적이고, “우리를 우리인 것이게끔 한 우연성에서, 우리이거나 우리가 행하거나 생각한 것을 더 이상 우리이거나 우리가 행하거나 생각하지 않을 가능성을 끌어낸다”는 의미에서 계보학적이다. (상동) 이런 맥락에서, 비판은 모든 실제적 변화에 “절대적으로 불가결하다”고 푸꼬는 지적하는데, “동일한 사고 양태에 머무는 변화, 동일한 생각을 사물의 현실에 보정하는 방식일 뿐인 변화는 피상적인 변화일 뿐”이기 때문이다. (상동, 999-1000쪽) 분명, 인간이 생각하는 방식은 사회, 정치, 경제와 역사에, 그러나 또한 보편적인 범주들과 형식적 구조들에 연계되어 있음에, 사고와 사회 관계는 아주 별도의 것으로 논리학의 보편적 범주들은 사람들이 실제로 생각하는 방식을 적합하게 고려하기에 안성맞춤은 아니라는 것이다. (상동, 1597쪽) 따라서, 사회사와 사고의 형식적 분석 사이의 좁은 길인 “사고의 비판사 histoire critique de la pensée”로 푸꼬는 자신의 작업을 명명하였고, “자신의 역할은 사람들에게 그들이 역사의 한 개별적 시기에 만들어진 특정 주제들을 자명하고 진리인 것으로 취하고 있으며 이러한 부당한 자명성은 비판되고 파괴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 (상동)이라 하였다. 이로써, 철학과 역사 사이에, 역사 철학의 구성도 아니며 철학적 역사 서술도 아닌 형태의 관계가 그 모습을 드러내는데, 이는 “역사에 관한 사색”이 아니라 “역사 속의 사색”으로, ‘사고를 역사 작업으로, 또한 반면에 역사 작업을 개념적 이론적 틀의 변형으로 시험하는 것’을 의미한다. (상동, 1232쪽) 이와 같은 실천적 제 경험의 역사적 반성은 자신의 초기 기획에서 “‘경험’ 개념의 정교화의 이론적 불충분성과 이 개념의 실천과의 관계의 모호성”으로 인해 불만족스러운 것이었다고 푸꼬는 회고한다. (상동, 1398쪽) 이에, 첫째 난점은 일반적 인간론에, 둘째 문제는 사회 경제적 연구에 의거하는 철학적 인간학과 사회사 사이의 딜레마의 곡예를 하느니, “경험 제 형태의 역사성 자체를 사고”하는 것이 “철학적 인간학과 이에 기댈 수 있는 제 개념의 유명론적 환원과 사회사의 영역, 개념 그리고 방법으로부터의 탈구”라는 비판적 방식을 거쳐, “경험 제 형태의 형성, 발전, 변형이 일어날 수 있는 영역, 즉 사고사 histoire de la pensée를 오늘화”하는 작업으로서 가능케 되었다고 한다. (상동) 이 고고-계보학의 부단한 현재화 작업은 “진실과 허구의 놀이를 다양한 가능 형태들 속에서 세우고, 따라서 인간을 인식의 주체로서 구성하는 것, 규칙의 수용이나 거부를 토대 짓고 인간을 사회적 법적 주체로 구성하는 것, 자기 자신과 타인들과의 관계를 세우고 인간을 윤리적 주체로서 구성하는 것” (상동)으로서의 역사 비판주의 유명론의 인간학이다. 푸꼬는 예속되는 수동자이자 자기 주체화의 능동자로서 유명론으로 파악된 인간을 연구함에, ‘절대적이며 보편적인 실체로서의 주체는 없는 것이며, 예속적 제 실천 혹은 보다 자율적인 자기 배려에 의해 구성되는 제 관계 형태로서’ (상동, 1552, 1537-8 쪽) 주체를 파악하기에, “인간에 관해서만 이제는 철학을 할 수 있을 뿐이라면, 이러한 한도에서 모든 철학은 근저에서 인간학일 것이 아니겠는가 ? 이러한 계기에, 철학은 그 내부에 모든 인간 과학이 총체적으로 가능한 문화 형식이 된다” (『말과 글』1, 467쪽)는 자신의 철학관을 항시 견지한 것이다. 그의 철학은 이처럼 “모든 인간 과학이 자신의 토대와 자신의 가능성을 발견하는 실정성의 장” (『칸트 인간학에의 서론』, 124쪽)을 여는 것이다.

























주요 참고 문헌




Foucault, Dits et écrits I-II, « Quarto », Gallimard, 2001

        , Les mots et les choses, Gallimard, 1966

        , L’archéologie du savoir, Gallimard, 1969

        , Surveiller et punir, Gallimard, 1975

        , « Il faut défendre la société », Gallimard/Seuil, 1997

        , Histoire de la sexualité I, « tel », Gallimard, 1994

        , « Qu’est-ce que la critique », Bulletin de la société française de la philosophie, 2, 1990, Armand Colin

        , Sécurité, territoire, population, Gallimard/Seuil, 2004

        , Naissance de la biopolitique, Gallimard/Seuil, 2004

Frede, M., “Individuals in Aristotle”, Essays in Ancient Philosophy, Univ. of Minnesota Press, 1978

Goddu, “Ockham’s Philosophy of Nature” in Spade (ed.), The Cambridge Companion to Ockham, 1999

Kant, Progrès de la métaphysique en Allemagne, Œuvres philosophiques III, « Pléiade », Gallimard, 1986

Nietzsche, Œuvres philosophiques complètes I-XIV, Gallimard

Platon (tr. Robin), Sophiste, Œuvres complètes, « Pléiade », 1950

Veyne, Comment on écrit l’histoire, « Points/histoire », Seuil, 1996







http://blog.naver.com/jaiwonshim/120051659441

[출처] 미셸 푸꼬의 유명론적 인간학 |작성자 심심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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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라는 스캔들



진태원(고려대학교 민족문화원 연구교수)



 

 

 

프랑스의 철학자 자크 랑시에르(1940~)를 동시대의 다른 철학자들과 구별시켜주는 특징 중 하나는 그의 반골 기질이다. 좌파 지식인치고 고분고분한 사람은 없겠지만, 그중에서도 랑시에르는 유독 비타협적인 태도가 두드러지는 인물이다. 그는 자신의 스승이자 󰡔자본을 읽자󰡕(1965)의 공저자이기도 한 루이 알튀세르에 대한 격렬한 비판으로 독자적인 저술활동을 시작했으며, 그 뒤에도 푸코, 부르디외, 뤼시엥 페브르, 리오타르, 하버마스 같은 동시대의 대표적인 사상가들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펼치면서 자신의 사상을 가다듬었다.

하지만 랑시에르를 단순히 튀기 좋아하는 시비꾼 정도로 간주한다면, 그건 철학자 랑시에르의 이론적 위력과 중요성을 너무 과소평가하는 것이다. 오늘날 그가 서구 사상계에서 많은 주목을 받는 것은 무엇보다도 서양의 철학 고전에 대한 면밀한 해석과 다양한 분야의 문헌들에 대한 끈기 있는 천착, 사회주의 몰락 이후의 세계정세에 대한 민감한 탐색 등이 한데 어우러져 독창적인 하나의 철학적 입장으로 표현되고 있기 때문이다.

랑시에르의 철학, 특히 정치에 관한 그의 사유의 핵심은 놀라울 만큼 간명하다. 그것은 정치는 민주주의와 다르지 않고, 민주주의는 평등의 실천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이처럼 간명한, 심지어 허술해 보이는 주장이 그처럼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이유는 우선 그의 주장이 서양 사상의 근원인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비롯해 근현대 사상가들에 대한 깊은 성찰을 거쳐 숙성되어 나온 주장이기 때문이다. 특히 󰡔불화La mésentente󰡕(1995)나 󰡔정치적인 것의 가장자리에서Aux bords du politique󰡕(1998) 같은 그의 대표적인 정치철학 저작들은 고대 그리스 철학에 대한 급진적인 재해석이라는 점에서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

랑시에르 저작의 또 다른 호소력은 그것이 현실 정세에 대한 날카로운 평가에 기초를 두고 있다는 점에서 나온다. 가령 󰡔불화󰡕는 현실 사회주의의 붕괴 이후 헤게모니를 장악한 자유민주주의(“합의”의 정치)를 비판하고 새로운 진보 정치의 가능성을 사고하려는 노력의 결실이며, 이 책 역시 최근 프랑스 지식인들이 민주주의에 대해 제기한 비난들에 맞서 다시 한 번 민주주의, 곧 정치 자체의 가능성을 옹호하기 위해 씌어졌다.

그런데 민주주의를 옹호한다는 것은 그다지 신통한 발상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오늘날 민주주의보다 더 광범위하게 수용되는 정치 제도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소수의 예외를 제외한 대부분의 국가들이 민주주의를 정치적 원리로 삼고 있다는 사실에서 이런 사정이 뚜렷이 드러나거니와 또한 민주주의를 정면으로 거부하거나 그것에 대한 정치적 대안을 추구하는 사람들을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는 점에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그러니 무엇 때문에 굳이 한 권의 책을 쓰면서까지 민주주의를 옹호할 필요가 있겠는가?

하지만 민주주의가 보편적으로 수용되고 있다고 해서 그것에 대한 불만이나 비판이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이미 마르크스가 민주주의는 부르주아 계급의 권력을 은폐하기 위한 허울 좋은 도구라고 비판한 바 있으며, 그 밖의 다른 지식인들도 민주주의의 한계와 난점들을 고발해왔다. 민주주의는 “다른 모든 통치 체제를 제외한다면, 최악의 통치 체제”라는, 처칠류의 통속적인 정치적 지혜가 꽤 널리 운위되는 것 역시 이 점과 무관하지 않다. 요컨대 세간의 평가에 따르면 민주주의는 그것이 어떤 긍정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이 가장 덜 나쁜 제도이기 때문에 오늘날 대부분의 국가들의 정치적 원리로 수용되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민주주의에 대한 좀더 근본적인 고발도 생각해봄직한데, 장-클로드 밀네와 베니 레비 또는 도미니크 쉬나페 같은 저명한 프랑스 지식인들이 표출하는 민주주의에 대한 증오에서 랑시에르가 발견하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이들은 각각 상이한 분과학문의 전문가들이고 각자가 취하는 입장도 서로 다르지만, 현대 민주주의에서 문명의 위기를 발견한다는 점에서는 공통적이다. 이들에 따르면 오늘날의 민주주의는 무정부주의의 과잉(자유와 권리를 누릴 만한 자격이 없는 무리들의 방종)과 무제한적인 소비(재화, 향락 등을 무제한적으로 추구하려는 성향)라는 이중의 과잉으로 특징지을 수 있는데, 이는 곧 문명의 중심에 내재하는 “어떤 원죄, 어떤 도착(倒錯)”을 나타낸다. 따라서 민주주의는 이런저런 특수한 악의 명칭이 아니라, 우리를 타락시키는 악에 대한 유일한 명칭이라는 것이다. 랑시에르가 보기에 민주주의에 대한 이러한 증오, 이러한 고발은 그것이 매우 근본적이고 강렬하다는 그 이유 때문에 오히려 좋은 기회가 될 수도 있다. 그러한 증오의 역사적 뿌리를 더듬어보게 되면, 우리는 민주주의가 왜 처음부터 하나의 스캔들이었는지, 또 그것이 얼마나 급진적이고 단호한 이념인지 좀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랑시에르는 민주주의의 이중적인 결함 내지 악덕에 대한 이들의 증오는 사실은 단 하나의 공포에 대한 다른 표현이라고 주장한다. 그것은 바로 평등한 무리인 인민에 대한 공포이며, 그들이 구현하는 민주주의, 곧 정치 그 자체에 대한 공포다. 플라톤 이래 서양 정치사상의 지속적인 공리 중 하나는 대중 또는 인민에게는 통치 능력이 결여되어 있으며, 이 때문에 민주주의는 위험한 정체(政體), 자칫 참주정으로, 또는 현대의 용어로 하면 전체주의로 전락할지도 모르는 정체라는 점이다. 그리고 이 때문에 대부분의 국가들에서 채택되고 있는 민주주의는 인민이 스스로 통치하는 민주주의가 아니라 위험스러운 인민의 자기 통치를 가능한 한 억제하고 그것이 낳을지도 모르는 파국을 방지하기 위한 장치를 갖춘 민주주의, 곧 자유민주주의다. 유일하게 좋은 민주주의는 “민주주의적 문명의 파국을 억제하는 민주주의”(19쪽/p. 10)인 셈이다. 따라서 민주주의에 대한 증오는 사실은 “과두제적인 통치에 대한 본성적 충동”, 곧 “인민을 몰아내고, 인민과 더불어 정치를 몰아내려는 충동”(152쪽/p. 89)의 발현이며, “인민 없는 통치” 곧 “정치 없는 통치”에 대한 열망의 표현이다.

그러나 정말 민주주의는 위험한 정체인가? 이 질문에 대해 랑시에르는 단호히 그렇다고 답변한다. 하지만 이러한 긍정은 전혀 다른 근거에 기초를 두고 있다. 이 책의 가장 중요한 테제 중 하나에서 랑시에르는 다음과 같이 역설한다. “민주주의는 통치해야 할 사회도 아니고 사회에 대한 통치도 아니며, 정확히 말하면 모든 통치가 궁극적으로 기초하고 있는 이러한 통치 불가능한 것 자체다.”(97쪽/p. 57) 민주주의가 위험하다면, 그것은 민주주의가 통치의 원리나 토대란 없다는 사실, 곧 통치자와 피통치자를 선별할 수 있는 고유한 기준이나 원리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드러내기 때문이며, 통치의 원리의 부재에 기초를 둔 통치, 이러저러한 자격이나 특권을 갖지 않은 이들의 통치만이 엄밀한 의미에서 정치적이라는 사실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가 추첨제를 가장 민주주의적인 제도로 옹호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면 민주주의는, 이미 플라톤이 비판한 것처럼, 결국 통치를 무능력한 이들에게 내맡기는 결과를 낳지 않겠는가? 랑시에르는 답변한다. 민주주의 또는 추첨제 자체는 “결코 유능한 이들보다 무능한 이들을 더 선호하지 않았다.”(84-85쪽/p. 49) 추첨제의 진정한 의미는 궁극적인 판단을 인민에게, 개인들에게 맡겨둔다는 데에 있다. 따라서 민주주의나 그것의 제도적 구현으로서 추첨이 지식과 교양, 전문적인 능력을 배척한다고 미리 염려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설령 그렇다 해도 랑시에르의 사상은 현실에서 실행 가능하지 않다고 비판하는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난 2007년 프랑스 대선에서 사회당 후보였던 세골렌 루아얄은 랑시에르가 이 책에서 가장 민주주의적인 정치제도로 옹호한 추첨제를 정책 속에 반영하기도 했다. 그러니 그것이 실행 불가능하다고 야유하는 사람은 먼저 자신이 이미 얼마나 과두제적인 사고방식에 젖어 있는지 돌이켜봐야 할 것이다. 사실 랑시에르의 저서를 읽노라면 한국 사회가 얼마나 철저한 과두제 사회인지 절감하지 않을 수 없는데, 더욱 고통스러운 것은 정작 그 속에서 살아가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러한 통치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는 점이다.

따라서 랑시에르의 이 책이 갖는 최소의 의의는, 이런저런 철학자ㆍ이론가들이 미리 불가능하다고 단정한 직접 민주주의가 왜 정치의 가능성 자체와 연결되어 있는지 사고할 수 있게 해주며, 그것을 하나의 심각한 문젯거리로 받아들일 수 있게 해준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이러한 화두를 통해서만 왜 민주주의 국가에서 인민의 정치적 참여가 구조적으로 배제되어 있는지, 또 그러한 배제에 맞서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아마도 처음으로) 생각해볼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는 결코 적은 업적이라고 할 수 없다.

서평자로서 늘 꿈꾸는 소망 하나는 서평을 역자와 출판사에 대한 감사의 말로 마무리 짓는 것이다. 하지만 이 서평을 매듭짓는 평자의 마음은 감사는커녕 착잡함을 넘어 참담하기까지 하다. 읽어본 독자들이라면 알겠지만, 이 번역본은 오역을 찾는 것보다는 제대로 번역된 문장을 골라내는 것이 훨씬 빠를 정도로 수많은 오역으로 점철되어 있기 때문이다(아마도 역자는 자신이 무슨 오역을 범했는지 모를 수도 있겠다). 이런 번역본을 접하게 되면, 도대체 번역은 왜 하는가라는 가장 초보적인 질문을 묻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을 낸 출판사는 그동안에도 여러 차례 오역과 관련된 소란에 휘말린 적이 있는 곳인 만큼 더더욱 이런 질문이 불가피해진다. 이런 터무니없는 오역본을 출간하는 것은 수십 년에 걸친 치열한 고투 끝에 마침내 자신의 독자적인 사상의 길을 개척한 철학자에 대한 예의가 아님은 물론이거니와 난해함을 두려워하지 않고 적지 않은 돈을 들여 이 책을 산 독자들에 대한 윤리적인 배반일뿐더러, 역자 및 출판사의 존재론적 근거에 대한 자기 부정이 아닐 수 없다.

역자나 출판사에게 권하건대, 오역에 대한 문제제기들이 성가시고 모욕적으로 느껴진다면, 제대로 책을 번역하고 만들든가 아니면 아예 다른 일에 종사하시라. 어려운 인문사회과학 출판의 길 말고 성공과 처세에 관한 출판에 매진하는 쪽이 적어도 서로를 덜 비참하게 해줄 것이다.




출전: 󰡔황해문화󰡕 2008년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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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주의 이후 정치의 모험―현대 유럽의 정치철학



진태원



20세기 유럽 정치철학의 흐름이 마르크스주의의 다양한 변주의 역사였다면, 21세기 벽두의 유럽 정치철학은 역사적인 종언을 고한 마르크스주의 이후에 어떻게 지배에 맞서 저항할 것인가, 어떻게 사회의 변혁을 사고할 것인가라는 화두에 대한 상이한 응답의 시도들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현대 유럽정치철학은 근본적으로 포스트마르크스주의로 특징지을 수 있는데, 이는 달리 말하면 우리가 살펴볼 3명의 정치철학자들 중 누구도 더 이상 잉여가치의 착취 메커니즘을 정치적 지배의 핵심으로 간주하지 않으며, 또한 누구도 노동자 계급이라는 정치적 주체에 근거를 둔 정치적 변혁과 대안 사회의 구성 가능성을 믿지 않는다는 점을 의미한다.

그 대신 이들은 모두, 근대 정치 문명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통해 마르크스주의가 공백으로 남겨두었던 문제들이나 마르크스주의 자신을 포함한 근대 정치 문명 전체에 함축된 모순들을 해명하려고 시도하고 있다. 그것은 파시즘과 홀로코스트는 역사적 우연이 아니라 근대 정치 구조의 본질에서 필연적으로 파생된 결과라는 고발로 제시되거나(조르지오 아감벤), 정치란 평등의 원리에 대한 옹호라는 급진적인 선언으로 표현되기도 하며(자크 랑시에르), 또는 모든 정치 투쟁, 모든 권리에 대한 옹호 투쟁은 인정을 둘러싼 갈등과 다르지 않다는 규범적인 원리의 정초 시도로 나타나기도 한다(악셀 호네트).

따라서 이들의 이론적 작업은, 마르크스주의 이후에도 여전히 비판적 사회이론이 가능한지, 또 지배자들의 질서에 맞서고 그것을 변혁할 수 있는 가능성이 남아 있는지 여부를 평가해보기 위한 좋은 시금석을 제공해준다. 현실의 가장 민감한 지점, 가장 깊고 예민한 상처를 진단하고 그 뿌리를 드러내는 것, 바로 그것이야말로 정치철학이 단지 철학의 한 하위분과에 그치지 않고, 철학과 현실의 마주침, 철학과 현실의 상호침투가 발생하는 자리로서 기능할 수 있는 바탕이라면, 이들의 작업은 오늘날 정치철학이라는 이름에 값하는 매우 드문 성과들이라고 할 수 있다.



조르지오 아감벤과 호모 사케르의 묵시록


조르지오 아감벤Giorgio Agamben(1941~)은 국내에도 잘 알려진 움베르토 에코나 안토니오 네그리와 더불어 이탈리아가 배출한 현대의 대표적인 철학자 중 한 사람이다. 정치철학자로서 아감벤의 명성은 무엇보다도 󰡔호모 사케르Homo Sacer󰡕(1995)의 놀라운 성공에 힘입고 있다. 이 책에서 그는 서양 형이상학의 역사에 관한 하이데거의 관점과 발터 벤야민의 종말론적인 폭력의 비판을 밑바탕에 두고 󰡔전체주의의 기원󰡕에서 한나 아렌트가 제시한 인권 개념에 대한 비판, 푸코의 생명권력론, 칼 슈미트의 주권 개념 등을 비판적으로 전유하여 정치 공동체의 구조와 정치적 주체의 본성에 대한 매우 독창적인 주장을 제시하고 있으며, 이는 서양 근대정치철학의 규범적 기초 전체를 뒤흔드는 결과를 낳았다.

󰡔호모 사케르󰡕의 핵심 테제는 아감벤 자신이 요약하고 있듯이, 다음과 같이 세 가지 정도로 요약할 수 있다.

1) 원초적인 정치적 관계는 추방/배제ban(외부와 내부, 배제와 포함이 구분되지 않는 지대로서의 예외상태state of Exception)다.

2) 주권의 근본 활동은, 원초적인 정치적 요소이자 자연과 문화, zoē와 bios의 접합의 임계(臨界)로서 벌거벗은 생명bare life의 생산에 있다.

3) 서구의 근본적인 생명정치의 패러다임은 도시가 아니라 강제수용소에 있다.

이 세 가지 테제는 이 책 1, 2, 3부의 내용을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우선 “벌거벗은 생명”이란 벤야민이 「폭력의 비판을 위하여」에서 사용한 “blosses Leben”이라는 개념에서 빌려온 것인데, 아감벤은 이를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 및 정치학의 논의와 직접 결부시켜 서양 정치철학을 관통하는 근본 개념으로 제시하고 있다. 아감벤이 주목하는 것은 한편으로 “비오스bios”와 “조에zoē” 사이의 아리스토텔레스식 구분법인데, 전자는 인간에 고유한 생명/삶을 가리키고, 후자는 인간, 동물, 신에게 고유한 자연적 생명/삶을 가리킨다. 아감벤에 따르면, 이러한 구분은 정치적 활동의 가능성은 오직 인간에게만 존재하며, 따라서 비오스에 놓여 있다는 고대 희랍인들의 사고를 보여준다. 다른 한편으로 아리스토텔레스는 “존재자로서의 존재자on hē on”를 형이상학의 대상으로 설정함으로써 제1 철학으로의 길을 열어 놓았는데, 여기서 “존재자로서의 존재자”는 바로 “순수 존재”, 곧 “온 하플로스on haplōs”와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여러 존재자들에 공통적인 삶/생명zoē을 추출해내려는 노력과 “순수 존재”를 분리하려는 노력, 곧 정치학과 형이상학 사이에는 체계적 연관성이 존재한다는 것이 드러난다.

아감벤은 벌거벗은 생명의 최초의 법적 유래를, 고대 로마법에 나오는 “homo sacer”라는 표현에서 찾는다. 호모 사케르는 “희생물로 삼을 수는 없지만, 그를 죽인다고 해서 살인죄가 되는 것이 아닌” 사람을 말한다. 희생물로 삼을 수 없다는 것은 “sacer”가 종교적 의미에서 “성스러운”을 가리키지 않음을 의미하고(신의 법에서 배제), 그를 죽이는 게 살인죄가 되지 않는다는 것은 호모 사케르가 “정상적인 인간”의 범주에서 제외되어 있으며(인간의 법에서 제외), 그의 삶은 “비오스”가 아니라 “조에”에 해당한다는 것을 뜻한다.

아감벤이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근대에 들어서 비로소 이 “조에”, 호모 사케르가 법적ㆍ정치적으로 보편적인 의미를 획득하게 되었으며, 호모 사케르의 “벌거벗은 생명”이 정치의 핵심 목표가 되었다는 점이다. 이를 보여주기 위해 아감벤은 푸코의 생명 권력의 문제설정과 아렌트의 전체주의 비판을 결합하여 󰡔인권선언󰡕(1789)을 새롭게 해석한다.

그에 따르면 󰡔인권선언󰡕이 제 1조에서 “인간은 나면서부터 자유로우며 평등한 권리를 가진다”고 천명할 때의 “인간”은 인간주의적인 전통이 해석해온 것처럼 천부인권의 담지자가 아니라 “벌거벗은 생명”을 가리킨다. 곧 󰡔인권선언󰡕은 아무런 특질도 지니지 않는 추상적 존재로서의 인간, 벌거벗은 생명체가 정치의 대상이 되었음을 공표한 선언과 다르지 않다. 그리고 시민들이 누리는 이러저러한 정치적 권리들은 우선 그들 각자가 인간=벌거벗은 생명체로서 주권자의 통치의 대상으로 포섭된 이후에 얻게 되는 특질들의 표현에 불과하다. 푸코가 말하듯 생명권력이 근대성의 문턱을 이룬다면, 그것은 바로 이러한 의미에서다.

아감벤은 아렌트가 󰡔전체주의의 기원󰡕에서 수행한 “민족국가의 위기와 인권”의 관계에 대한 분석을 여기에 결부시킨다. 아렌트는 1차 대전 이후에 특히 유럽 지역에서 많은 사람들이 국가의 영역 바깥으로 밀려나게 된 상황에 주목하면서, 이러한 민족국가의 위기는 동시에 인권 개념의 한계를 보여준다고 지적한다. 왜냐하면 이처럼 국가의 바깥으로 밀려남으로써 이 사람들은 아무런 권리도 누리지 못하고 시시각각 생존의 위협에 직면하게 되었는데, 이는 인간주의적 전통에서 가정하고 있는 것처럼 인권 개념은 특정한 정치공동체에 선행하는 천부적인 권리를 가리키는 게 아니라는 점을 극명하게 드러내주기 때문이다. 오히려 “인간”, “벌거벗은 생명”으로서 인간은 주권적 권력에 포섭됨으로써만 비로소 인간으로 존재한다. 따라서 아감벤에게 󰡔인권선언󰡕은 근대 정치철학의 규범주의적 해석과는 정반대로 주권자의 생명권력에 대한 근본적인 예속의 선언을 의미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바로 이런 측면에서 아감벤은 나치즘이 근대 유럽의 역사, 더 나아가 서양 역사 전체의 흐름과 전혀 무관한 돌연변이적 현상이 아니라, 그 본질적인 잠재력의 표출이라고 주장한다. 이는 주권 개념에 대한 분석과 곧바로 연결되는데, 그는 주권 개념에 대한 해석에서 슈미트의 테제, 곧 “주권자는 법질서 바깥에 서 있지만, 그럼에도 이 질서에 속해 있는데, 왜냐하면 헌정이 전면적으로 중단되어야 하는지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그에게 달려 있기 때문이다”라는 테제를 준거로 삼고 있다. 그가 이처럼 슈미트의 테제에 주목하는 것은 이 테제가 나치 독일이 수행한 생명정치의 핵심을 매우 정확히 드러내준다고 보기 때문이다.

아감벤은 우선 나치 강제수용소의 법적 지위의 특이성에 주목하는데, 강제수용소는 나치 시대에 처음 설치된 게 아니라, 바이마르 공화국 시기에(사실은 그 이전부터)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 단 바이마르 공화국 시기에는 강제수용소의 설치 및 운용에 관한 사항, 또는 좀더 일반적으로는 주권자가 국민들의 기본권을 잠정 중단시키고 “예외상태Ausnahmezustand”를 선언할 수 있는 권한에 관한 사항이 헌법에 명시되어 있었던 데 비해, 나치 수용소의 경우는 헌법에 아무런 규정이 없는 가운데 강제수용소를 설치, 운용했다는 점에 차이가 있다.

아감벤에 따르면 이는 법적인 관점에서 볼 때 매우 새로운 점이다. 우선 첫째, 이처럼 명시적인 규정 없이 기본권을 정지시키고 예외상태에 돌입함으로써, 정상과 예외의 구분이 소멸하게 된다. 바이마르 헌법이 규정하는 예외상태는 정확히 헌법이라는 정상적인 법적 규범에 따라 자신의 효력을 얻게 되는 반면, 나치 법에서는 법적 규범에 대한 준거가 없이 예외상태가 성립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둘째, 이에 따라 예외상태는 실질적으로 법질서 자체가 되는데, 이 예외상태는 바로 주권자(총통)의 결정에 따라 직접 성립하기 때문에, 이제는 단지 정상과 예외의 구분이 소멸할 뿐만 아니라 법과 사실 사이의 구분도 소멸하게 된다. 하지만 아감벤이 보기에 가장 중요한 것은 이러한 나치의 특이성, “예외성”은 사실은 전혀 예외가 아니라 서양 형이상학과 정치학의 성립 이래 존재해온 잠재적 경향의 발현이라는 점이다. 앞에서 말했듯이 그는 “조에”와 “하플로스” 사이의 내적 연관성과 고대 로마법에서 homo sacer라는 존재에 주목하고 있는데, 나치가 정상화된 예외상태 속에서 설립한 강제수용소는 이를 가장 온전한 형태로 보여준다는 것이다. 곧 주권자(총통)의 권력은 기본권-인권의 “금지”와 이질적인 존재들의 “추방”의 권력이며, 이를 통해 수용소에 갇힌 사람들은 일체의 정치적 지위와 권리를 박탈당하고 한낱 몸뚱아리로 환원되어, 그를 살해한다고 해서 살인죄가 성립하지 않는 “호모 사케르”가 되는 셈이다.

더 나아가 강제수용소란 벌거벗은 생명이 정치의 대상으로 출현하는 장소들을 모두 포함하기 때문에, 이제 수용소는 나치의 유대인수용소나 소련의 정치범수용소 같은 것에 국한되는 게 아니라, 훨씬 보편적인 현상을 가리키는 개념이 된다. 예컨대 아감벤은 프랑스 공항에 설치되어 있는 난민 신청자들을 임시로 수용하는 장소 역시 일종의 수용소로 볼 수 있다고 말한다. 공식적인 법적 기관에 넘겨지기 전까지 이 사람들은 “예외상태” 속에서 어떤 법적 지위나 권리도 지니고 있지 않은 상태에서 “벌거벗은 생명체”로서 존재하기 때문이다. 또한 얼마 전에 참사를 빚은 여수의 외국인보호소 역시 이런 의미에서 아감벤이 말하는 수용소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아감벤의 작업은 서양 근대 정치철학의 가장 기본적인 규범적 토대인 인권의 원리에 대한 과감한 도전이자 서양 근대 문명의 가장 깊은 상처 중 하나인 홀로코스트에 대한 혁신적인 재해석이라는 점에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하지만 아감벤의 정치철학은 그가 원용하는 철학자들에 대한 해석의 타당성 여부를 둘러싼 논란들은 제쳐둔다 하더라도, 정치적 행위를 위한 규범적 기초의 여지를 지나치게 축소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가령 그는 법과 폭력을 구분 불가능한 것으로 제시하고 있고, 나치즘 같은 전체주의와 현대의 서구 자유주의를 본질적으로 등가적인 것으로 간주하며, 나치의 강제수용소와 현대의 난민 보호소 등을 동일시하고 있는데, 그럴 경우 과연 어떠한 정치적 행동이 가능할까, 또 어떤 정치적 목표를 추구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다.


악셀 호네트와 인정 투쟁


아감벤이 근대성(또는 더 나아가 서양 역사 전체)의 부정적인 경험에 대한 성찰에서 출발한다면, 독일 비판이론의 제 3세대 대표자로 불리는 악셀 호네트Axel Honneth(1949~)의 “인정투쟁Kamp um Anerkennung” 이론은 반대로 근대성이 이룩한 핵심적인 성과, 곧 계몽주의 이래 서양 사회가 이룩한 합리적ㆍ도덕적 진보에 대한 긍정에 뿌리를 두고 있다.

호네트의 인정투쟁 이론은 하버마스가 제안한 이론적 전회, 다시 말해 주체 중심적인 철학에서 상호주관성 철학으로의 전회에서 출발한다. 곧 이들에게 주체는 타인들과의 관계 이전에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주체들과의 관계를 통해서만 형성되며, 주체가 지닌 언어적ㆍ실천적ㆍ반성적 자율성은 상호주관적 규준들을 내면화함으로써 형성된 산물이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호네트는 하버마스의 상호주관성이 지나치게 보편적 화용론에만 의지하고 있으며, 다른 종류의 규범적 토대들을 간과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곧 주체들 사이의 상호주관적 관계는 언어적 소통을 통해서만 성립하는 것이 아니라 정서적 관계 및 구체적인 욕구들을 포함하는 주체들의 정체성의 실현 과정을 포함하고 있는데, 하버마스의 이론에는 이러한 차원에 대한 고려가 빠져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 때문에 하버마스는 구체적인 사회적 투쟁들 속에 담겨 있는 규범적 쟁점들을 충분히 해명하지 못하고 있다고 본다.

하버마스 이론의 이러한 난점 내지 공백을 보완하기 위해 지난 1990년대 이래 호네트는 헤겔 철학에서 유래한 인정투쟁 이론을 발전시켜왔으며, 이는 그가 하버마스의 이론적 그늘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정치철학자로 부상하는 데 중요한 발판을 마련해주었다. 호네트의 출발점은 개인이 자신의 정체성을 실현하는 데서나 사회가 성립하는 데서 주체들 사이의 상호 인정 관계가 핵심적이라는 데 있다. 곧 한 개인이 다른 사람들과 구별되는 그 개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갖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의 가치를 긍정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이러한 자기 긍정은 이 개인에 대한 타인의 인정을 통해서 형성되고 또 그것을 통해 지속적으로 유지ㆍ발전될 수 있다.

이를 좀더 구체적으로 해명하기 위해 그는 인정의 세 가지 차원을 구별한다. 곧 한편으로는 엄마와 아이나 연인들 간의 사랑과 상호배려에서 표현되는 정서적 차원의 인정의 관계가 있고, 또한 사회의 구성원들이 다른 성원들을 동등한 법적 주체로서 인정하고 배려하는 법적 인정의 관계가 존재하며, 분업적으로 조직된 사회 단체 내부에서 동료들에 의한 사회적 평판이라는 인정 관계가 존재한다. 이 세 가지 형태의 인정은 각각의 개인들이 하나의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주체로서의 정체성을 실현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들이다. 그리고 각각의 주체들의 정체성 형성에는 역시 독립된 주체로서의 타인들의 인정이 필요하기 때문에, 이는 또한 상호주관적인 사회화의 조건으로서도 기능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인정관계의 정치적ㆍ사회적 함의는 어떤 것인가? 호네트가 주목하는 것은 인정의 반대, 곧 무시의 경험이다. 인정이 개인의 정체성 형성 및 사회적 유대관계의 형성에서 본질적인 역할을 수행한다면, 역으로 개인이 타인들에게 무시당하는 것은 그 개인의 정체성 및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에 대한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다. 따라서 타인으로부터 자신이 기대한 만큼 또는 합당하다고 생각하는 만큼 인정받지 못하는 개인은 그에 대해 저항하게 된다.

그런데 이러한 무시가 특수한 한 개인에 대해 우발적인 방식으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집단에 대해 구조적이고 반복적으로 일어나게 되면, 이는 곧바로 사회적인 성격을 띠게 된다. 가령 식민지 주민들이 정복자들에게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인정받지 못하는 것이나, 소수 인종, 소수 종족들이 한 사회의 지배 인종, 종족들에게 멸시받고 차별받는 것, 또는 우리나라의 경우를 예로 든다면 조선족이나 동남아시아 출신의 외국인 노동자들이 차별 대우를 받고 무시당하는 것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그리고 이들이 이러한 멸시와 차별대우, 따돌림 등에 맞서 저항하고 투쟁할 때 인정투쟁은 정치적 투쟁으로서 나타나게 된다.

따라서 인정투쟁 이론은 피지배자들이 지배에 맞서 저항하게 되는 이유는 무엇이며, 왜 그것이 합당한 규범적 근거를 지니고 있는지 해명해줄 수 있으며, 역으로 어떤 사회가 정의로운 사회인지 아닌지를 평가할 수 있는 척도도 제시해줄 수 있다. 각각의 사회 성원들이 억압 없이 자유롭게 자신의 정체성을 실현할 수 있는 사회는 건강하고 정의로운 사회인 반면, 그렇게 하지 못하도록 억압하는 사회 또는 특정한 집단의 정체성을 기준으로 다른 집단의 정체성을 규정하고 강제하는 사회는 병리적이고 부당한 사회로 평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호네트의 인정투쟁 이론은 가령 영미권에서 찰스 테일러Charles Taylor나 낸시 프레이저Nancy Fraser 등이 발전시킨 “인정의 정치학”보다 좀더 규범적이고 도덕적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그의 이론은 1980년대 다문화주의와 정체성의 정치의 맥락에 따라 전개된 인정의 정치학과 달리 적절한 인정을 받으려는 인간의 욕구는 인간의 정체성 형성에 본질적이며, 따라서 이는 초역사적ㆍ초문화적인 규범적 기초라는 관점을 견지하고 있다.

호네트의 인정투쟁 이론은 하버마스의 화용론 중심의 상호주관성 모델을 인간학적으로 확장했을 뿐만 아니라, 무시당하고 억압받는 피지배자들의 부정적 경험을 자신의 비판이론의 원천으로 삼으면서 비판이론이 지닌 해방론적 함축을 잘 살리고 있다는 점에서도 주목할 만하다. 하지만 이러한 해방론적 함의에도 불구하고 정작 호네트 자신은 인정투쟁 이론이 지닌 정치철학적 측면들을 발전시키지 않은 채, 인정투쟁 이론의 규범적인 측면을 좀더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예컨대 호네트의 작업에서는 인정투쟁 이론이 사회구조 또는 사회제도들의 형성과 개조, 변혁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지 찾아보기가 어렵다. 따라서 인정투쟁 이론이 비판이론의 진정한 계승자가 되기 위해서는 정치적ㆍ사회적 차원에 대한 논의를 보완ㆍ확장할 필요가 있다.

더 나아가 호네트는, 스승인 하버마스와 마찬가지로 서양 근대 문명의 가장 어두운 측면, 곧 파시즘과 홀로코스트에 대한 적절한 이론적 해명을 결여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얼마간 맹목적이다. 한나 아렌트 이래 또는 비판이론의 대표자 중 한 사람인 아도르노 이래 현대 철학자들 중 상당수가 근대성에 내재한 도착성의 뿌리를 해명하는 것을 자신의 본질적인 과제로 삼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인정투쟁 이론이 정치철학으로서의 이론적 완결성을 갖기 위해서는 이 점은 반드시 보완되어야 할 것이다.


자크 랑시에르와 평등의 원리로서 정치


프랑스를 비롯한 서구 철학계에서 자크 랑시에르Jacques Rancière(1940~)라는 이름은 오랫동안, 스승인 알튀세르에 대한 지적 반역을 감행한 인물로 기억되어 왔다. 1965년 알튀세르와 그의 제자들이 함께 저술한 저 유명한 󰡔“자본”을 읽자Lire le Capital󰡕에 공저자의 한 사람으로 참여했다가, 1974년 󰡔알튀세르의 교훈La leçon d'Althusser󰡕이라는 자신의 첫 번째 저서에서 알튀세르의 엘리트주의를 신랄하게 비판하는 것으로 “독립선언”을 했던 만큼 이러한 평판은 얼마간 불가피한 것이었다. 하지만 랑시에르는 1980년대부터 󰡔무지한 스승Le maître ignorant󰡕(1987), 󰡔불화La mésentente󰡕(1995) 같은 독창적인 저작들을 발표하면서 알튀세르의 그늘에서 벗어나 곧바로 현대 철학의 핵심 인물로 떠올랐다.

랑시에르의 정치철학은 하나의 근본적인 통찰, 곧 정치는 평등의 원리에 기초를 두고 있다는 통찰에 대한 체계적인 탐구라고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랑시에르는 “정치la politique”와 “치안/통치la police”를 구별하면서 출발한다. 치안/통치는 한 사회를 위계적으로 조직하고 통치하는 구조 일체를 가리키며, 따라서 지배자와 피지배자, 지식인 내지 철학자와 대중 사이의 근원적인 불평등을 가정한다. 반면 정치는 모든 사람은 동등하며, 누구나 다 동등한 능력과 자질을 갖추고 있다는 것을 긍정한다. 심지어 지적인 능력에서도 모든 사람은 동등하다. 이런 의미에서 정치는 근본적으로 민주주의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반대로 철학은 한 사회의 구조와 성립 근거를 밝히고 그것을 가장 합리적으로 통치할 수 있는 원리를 해명하는 것, “치안/통치”를 확립하는 것, 곧 위계와 지배를 정당화하는 것을 자신의 과업으로 삼고 있다. 따라서 랑시에르는 “정치철학”이란 용어모순이며, 존재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는 정치와 “치안/통치”, 근원적인 평등의 원리와 근원적인 불평등의 질서 중에서 우선하는 것은 바로 정치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지배자와 피지배자 사이의 불평등을 가정하는 “치안/통치”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지배자는 피지배자들에게 지배자로서 인정을 받아야 하는데, 이는 피지배자들이 지배자를 지배자로서 인정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는 것, 지배자와 근원적으로 동등하다는 것을 전제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역설적이게도 근원적인 불평등을 전제하고 있는 “치안/통치”의 질서는 근원적인 평등의 원리를 자신의 존립의 기초로 삼고 있는 셈이다.

랑시에르는 이러한 역설적인 상황을 “잘못/왜곡tort”이라는 중의적인 개념으로 표현한다. 이것이 (도덕적으로) 잘못인 이유는 “치안/통치”의 질서는 지배-피지배 관계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만, 사실 “치안/통치”는 지배와 피지배의 구별이 근원적으로 근거가 없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평등의 원리에 근거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으로 이는 또한 “왜곡”되고 “뒤틀린” 것이기도 한데, 왜냐하면 공동체의 성원들은 모두 동등함에도 불구하고, 또 그러한 동등성 때문에 비로소 “치안/통치”가 가능함에도 불구하고, “치안/통치”의 질서는 사회 성원들에게 자원과 권한을 불균등하게 배분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치안/통치”의 질서에 대해 저항하는 것, 이를 전복시키거나 변혁하는 것은 불가능한가? 이 질문에 답변하기 위해서는 제 3의 용어, 곧 “정치적인 것le politique”이라는 용어의 의미를 이해해야 한다. 랑시에르는 정치와 “치안/통치”가 조우하는 장소, 곧 “치안/통치”의 잘못과 왜곡이 드러나는 장소를 “정치적인 것”이라고 부른다. 정치적인 것은 기존의 “치안/통치”의 질서에서 배제되어 있는, 이러한 질서 속에서 아무런 몫도 갖지 못한 자들이 자신의 몫을 주장하면서 저항할 때, 자신의 목소리를 드러내면서 “치안/통치”의 균형잡힌 질서를 뒤틀고 균열을 낼 때, 그것의 잘못을 보여줄 때 나타난다. 따라서 “정치적인 것”은 고정된 불변의 장소, 위치를 지니고 있는 것이 아니라, 몫 없는 자들이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하면서 등장할 때마다, “치안/통치”의 도덕적 잘못을 드러내고 이로써 그 존재론적 질서의 왜곡을 보여줄 때마다 형성된다. 아니 그러한 보여줌의 사건 자체가 바로 정치적인 것의 자리라고 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랑시에르에게는 “정치적 주체” 역시 어떤 객관적인 속성에 따라 (예컨대 노동자 계급인지 여부) 정의되는 것이 아니다. 아테네의 자유 빈민들(“데모이demoï”)이 민주주의의 실시를 요구하면서 나섰을 때 그들이 곧 정치적 주체였으며, 또 1871년 파리에서 노동자들이 봉기했을 때, 1968년에 학생-노동자들이 “우리 모두는 독일의 유대인들이다”라고 외치며 거리에 나섰을 때, 그들 역시 정치적 주체들이었다. 그에게 정치적 주체란 어떤 존재론적 규정에 따라 정의되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기존의 “치안-통치”의 질서에 따라 규정된 존재론적 정체성에서 벗어나 정치적 투쟁이 전개될 때 비로소 정치적 주체가 등장하는 것이다. 바로 이런 의미에서 랑시에르는 “주체화”를 “탈정체화”, “탈분류화”의 과정이라고 부른다.

이렇게 볼 때 그가 현재의 자유민주주의에 대해 비판적일 것이라는 점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실제로 랑시에르는 의회주의적인 자유민주주의를 “탈민주주의post-démocratie”라고 부른다. 곧 “치안-통치”의 “잘못/왜곡”을 드러내줄 수 있는 여지가 대부분 사라지고 정치는 다양한 사회경제적 집단들의 산술적 합의(“선거”)로 환원되는 곳, 전문가들과 정책입안자들이 통치하는 곳이 바로 현재의 자유민주주의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그가 자유민주주의(또는 근대성) 일체를 부정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아감벤이나 알랭 바디우와 달리 랑시에르는 자유민주주의 제도가 지닌 긍정적인 함의들을 인정하는데, 이는 이 제도들이 바로 과거 정치적 주체들의 투쟁의 산물이며, 그러한 투쟁을 자기 내부에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제도들 덕분에 이전에 일어났던 정치적 투쟁의 사건, 민주주의의 사건은 언젠가 다시 발생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니게 된다.

따라서 랑시에르에게 민주주의는 어떤 특정한 제도, 어떤 특정한 정치유형과 동일시될 수 있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모든 정치 제도 속에 그것을 가능하게 하고 평가할 수 있게 해주는 규범적 원리로 내재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랑시에르의 정치철학이 지닌 강점은 바로 이처럼 혁명적 전통의 유산을 보존하면서 동시에 민주주의의 규범적 측면을 함께 유지할 수 있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반면에 정치를 사회적 질서와 대립시키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정치에 관한 사고를 실재의 객관적 조건에 대한 사회과학적 탐구와 근본적으로 절연시키고 있는 것은 랑시에르의 철학이 지닌 중대한 문제점 중 하나다. 게다가 이는 민주주의적 제도들에 대한 긍정적 평가와도 얼마간 모순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러한 평가는 제도들에 대한 객관적 규정의 가능성을 전제하기 때문이다.


출전: 󰡔세계의 문학󰡕 124호, 2007년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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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민이냐 다중이냐?」(에릭 알리에즈와의 인터뷰)




■ 출처 : "Peuple ou multitudes?", Multitudes 9, mai-juin 2002
http://multitudes.samizdat.net/spip.php?article39
■ 저자 : Jacque Rancière
■ 저작권을 산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후 출판사의 요청이 있을 경우 이 게시물은 삭제될 수 있습니다.






<다중> : 『불화La Mésentente』(Galilée, 1995)에서 당신은 (정체성에 따라 자리와 몫을 결정하는) 공동체에 대한 치안적 정체화와 “공동체의 독특한 세계들”을 여는, “자리와 몫에 관한 모든 표상을 흐트러트리고”, “감각적인 것의 동질성” 등을 뒤흔드는 “부유하는 주체들”로부터 새로운 경험의 장을 만드는 정치적 주체화 사이의 갈등에 대한 분석을 제안한다. 이 갈등을 복수의 다중 對 결집된 인민(그것의 재현/대의로 환원된 인민 주권)의 구도로 표현하기는커녕, 당신은 ‘인민’에 ‘보편성의 사례들의 국지적이고 독특한 구축’이 되는 정치적 행위를 구성하는 ‘평등의 특질’이라고 스스로 이름 지은 것을 연관시킵니다. 글쓰기의 문제 말고도, 삶정치적 다중 관념 주위로 (a)반-지구화 운동의 ‘현상학적’ 묘사와 (b)자본주의 세계 질서와 단절하는 동시대적 과정에 대한 ‘존재론적’ 규정을 이으려는 오늘날의 시도들은 당신에게 어떤 생각들을 불러일으키는가?

자크 랑시에르 : 인민이냐 다중이냐? 어떤 단어나 어떤 개념이 선호할만한 것인지를 알기 전에, 그것이 무엇에 대한 개념인지를 알아야 한다. 나에게 인민이란 정치적 주체의 이름, 다시 말해 주민, 그것의 부분들 그리고 전체를 셈하는 모든 논리와 관련하여 하나의 보충이다. 그것은 인민을 부분들의 결집, 운동 중인 집단적 신체, 주권 안에 구현된 이상적 신체 등과 같은 것으로 보는 모든 생각과 관련하여 하나의 틈새를 뜻한다. 나는 인민이라는 말을 라이프치히 시위대들이 외친 “우리는 인민이다”의 뜻으로 이해한다. 그들은 분명 인민이 아니었지만 국가적 합체(incorporation)로부터 파열되는 인민의 언표행위를 실행했다. 이런 뜻에서 인민은 나에게 주체화 과정들 전체를 가리키는 유적인 이름이다. 주체화 과정들은 공통적인 것의 가시성의 형태들과 그것들이 정의하는 정체성, 귀속, 나눔 등을 계쟁에 부치는 평등의 특질의 효과를 낸다. 그 과정은 독특한, 일관되거나 일관되지 않은, ‘진지하거나’ 패러디적인 온갖 종류의 이름들을 연출할 수 있다. 이는 또한 이 과정들이 정치를 평등의 고안으로서 연출한다는 것을 뜻하는 바, 여기에서 정치는 어떤 ‘실제적’ 토대도 갖지 않으며 이 모든 계쟁의 장치들 속에서 현실화된 조건으로서만 존재한다. 나에게 인민이라는 이름이 갖는 이점은 모호함을 연출할 수 있다는 데 있다. 이런 뜻에서 정치란 결국 인민의 이름 아래 들어가는 것—[인민이란] 평등의 비일관성을 현실화함으로써 정치 집단들을 설립하는 차이화 작업이거나, 정치를 사회체의 특성들이나 공동체의 영광스러운 신체들의 환상으로 몰아가는 정체화 작업이거나다—을 현실적으로 식별하는 것이다. 정치는 항상 하나의 인민 더하기 다른 하나의 인민, 하나의 인민 對 다른 하나의 인민이다.

다중에 대한 사유는 아마도 바로 이 점을 거부한다. 몰적인 것과 그램 분자적인 것의 대립 혹은 편집증적인 것과 분열증적인 것의 대립은 분명 가리개다. 인민이 너무 몰적이라거나 일자의 환상들에 너무 사로잡혀있다는 것은 문제가 아니다. 인민은 분할의 독특한 사례들 속에서만 구성되며, 정치는 하나의 특수한 영역, 행위와 언표행위의 특정한 배치다. 다중에 대한 사유에는 부정적인 것에 대한 혐오증, ‘[어떤 것에] 반대하는’ 것으로 정의되는 정치에 대한 혐오증이 있다. 거기에는 또한 정치적이기만 한 정치, 다시 말해 평등의 특질이 가진 비일관성과 그것의 유효한 사례들의 우연적 구축 말고는 다른 어떤 것에도 기초하지 않는 정치에 대한 혐오증이 있다. 이원적 대립이 갖는 편집증적 구조에 대한 거부이기에 앞서, 다중의 입장은 어떤 분리에 의해서도 표시되지 않는 정치 행위의 주체, ‘꼬뮤니즘적’ 주체의 입장이다. 그것은 주체화 장치와 영역이 갖는 모든 특수성을 거부한다는 뜻에서 ‘꼬뮤니즘적’이다. 그것은 또한 스스로에게 작용하는 것, 존재자들을 공통으로 존재하게 만드는 것의 역량이라는 뜻에서 꼬뮤니즘적이다. 다중 개념은 인민 개념을 꼬뮤니즘적 요청에 대립시킨다. 정치는 분리된 영역이어서는 안 된다. 모든 것이 정치적이어야 한다. 다시 말해 사실상 정치는 전체의 본성, 분리되지 않는 것의 본성을 표현한다. 공동체는 공통으로 존재함, 공동체를 존재자들 일반 사이에 두는 역량의 본성 자체에만 기초해야 한다.

만일 ‘다중’이 ‘인민’으로부터 분리된다면, 그것은 평등 전제를 실체화하는 다음과 같은 존재론적 요구를 통해서이다. 스스로를 대립적으로, 반동적으로 구축하지 않기 위해서 정치는 그 자신과 다른 것을 원리와 목적으로 삼아야 한다. 정치적 주체들은 존재의 법칙 자체인 다자를 표현해야 한다. 이 점에서 다중에 대한 사유는 정치 철학의 전통에 등록된다. 그것은 정치적 예외성을 존재자들을 공동체에 두는 것의 원리로 끌고 가고 싶어 한다. 더 정확히 말하면 그러한 사유는 근대 시대 정치 철학에 고유한 메타정치 전통에 등록된다. 메타정치의 고유함이란 정치 무대의 불안정한 고안물들을 존재들을 공동체에 두는 내재적 역량의 진리에 호소하는 것이자 진정한 공동체를 이 진리의 이해되고 감각적인 유효성과 동일시하는 것이다. 메타정치의 역설이란 공통의 역량에 대한 긍정이 공동체가 원하지 않은 존재의 진리, 대문자 존재가 원하지 않은 존재의 진리와 스스로를 동일시한다는 데 있다. 근대 메타정치에 따르면, 공동체를 원하는 것은 대문자 존재의 토대 자체인 원하지 않은 것에 공동체를 부합시키길 원하는 것이다. 내가 보기에 문제는 정치를 ‘정초하는’ 것이 정치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것이기도 한 것이 아닌지를 아는 데 있다. 존재론이 행위의 양상으로 주문하는 것의 진짜 이름은 윤리다. [존재가] 원하지 않은 것을 원하기, 이는 특히 우연을 긍정하고, [전에] 그러했던 바를 선택하는 니체나 들뢰즈의 영원회귀 윤리가 부르짖는 것이다. 그것은 다자의 배치들의 ‘그리고... 그리고...’와 다른 목적들에 맞서 자신의 목적들을 추구하는 행위하는 의지들의 ‘이거나... 이거나...’를 대립시키는 생성의 윤리이다.

다자의 생성들이 다중으로 실체화되기 위해서는 다른 것이 필요하다. 대문자 존재가 긍정이라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이 긍정이 모든 부정에 내재적인 내용이어야 한다. 의지 없는 대문자 존재의 전개는 우연과 그것들의 반-실현들의 결합에 내맡겨져서는 안 되며, 내재적 목적론에 사로잡혀야 한다. ‘다중’은 공동체의 본질과 스스로를 동일시하는 과잉 존재, 바로 그 과잉을 통해 감각적 공동체의 모습으로 자신을 실현하는 데 장벽이 되는 것들을 박살내는 일을 맡는 과잉 존재의 역량을 가리키는 이름이다. 만일 정치적 주체들의 부정성이 없어져야 한다면, 긍정의 역량은 모든 지배 상태 안에 그 마지막 내용으로서 머무는 파열의 역량이자 지배의 장벽들을 부수기로 되어있는 내용이어야 한다. ‘다중’은 제국이 그것의 내용물인 내용이어야 한다.
파열을 긍정하는 이 역량, ‘의지 없는’ 것에 대한 긍정적이고 궁극적인 역량은 맑스주의 이론 내에서 하나의 이름을 받았는 바, 그것은 생산력이라 불린다. 그것은 평판이 나쁜 이름이다. ‘생산적’ 그리고 ‘생산’이란 공장과 당의 낡은 시대를 떠올리게 만들 수 있다. 그것은 동시에 ‘다중’이 표현하는 사유와 삶의 집단적 역량에 비해 환원적인 노동의 윤리를 떠올리게 만들 수 있다. <다중> 집단 내 여러 논쟁들이 바로 이 어려움을 증언해준다. 그러나 생산에 주어진 특수한 내용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생산 개념은 너무나 폭이 넓어서 생산력의 영역에 게으름과 노동 거부를 포함하여 아무거나 집어넣을 수 있다. 근본적인 점은 공통적인 것의 존재 역량을 생산으로 규정한다는 것이며, 이는 생산을 그것의 긍정적 본질에 내재하는 목적론에 사로잡히는 힘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제국』의 저자들은 “지구화의 생산적이고 창조적인 주체성들의 복수적 다중”, 그들의 “영구한 운동”, 그 주체성들이 이루는 “독특성들의 성좌들”, 체제적인 것과 반-체제적인 것 사이의 단순 대응 논리로 몰아갈 수 없는 그것들의 “혼합 및 잡종 과정”에 호소할 수 있다[1]. 다자의 잡종 과정이 준 자유는 그 개념 자체가 가져다주는 보장보다는 덜 중요하다. 생산적 배치들이 제국 자체의 현실이라는 보장, 다중의 싸움이 한 번 더 포이에르바하적 인간이 자신의 신을 만들어냈고, 그것을 충만하게 인간적인 삶을 위한 속성들로 다시 취할 수 있게 되는 방식으로 “제국 자체를 자신의 이미지의 역으로 만들었다”[2]는 보장 말이다.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의 유효성을 갖춘 체계의 진리에 대한 메타정치적 긍정이다. ‘생산적’ 이상에 대한 망설임은 그저 존재론적 생산 개념과 그것의 경험적 화신들 사이의 틈을 증언한다.

이 틈은 또한 자신의 아포리아 앞에서 ‘생산력주의자의’ 단언을 재정식화하도록 제공된 자유다. 이런 뜻에서 ‘다중’ 개념은 20세기 후반 맑스주의 이론 및 운동에 깊은 영향을 미친 ‘생산력’ 개념을 확장하는 거대한 작업 속에 등록된다. 고전 맑스주의는 생산력을 정치적 그림자들을 일소할 수 있는 참의 역량으로 만들려고 했다. 레닌주의는 이러한 비전의 파산에 대한 고백이자, 생산력이 해야 했던 작업을 하기 위해 아르케-정치적 행위를 선언하고 실천한 필연적 귀결을 보여주었다. 이 아르케-정치 자체의 파산은 맑스주의의 세 번째 시대를 야기했다. 그것은 경제적 진리와 정치적 외양을, 혁명적 결정과 경제적 숙명론을 더 이상 대립시키려 하지 않는 대신 생산력 개념 안에 이러저러하게 공통적인 것을 만드는 과정들—과학적이고 기술적인 활동들이나 창조적인 지적 활동 일반으로부터 정치적 실천으로 그리고 기존 세계 질서에 대한 온갖 형태의 저항이나 도주로—전체를 통합시키고자 했다. ‘과학이 직접적인 생산력’이라고 주장하는 수정주의 이론과 문화 혁명, 학생 혁명과 노동자주의(오뻬라이즈모)는 다중 개념이 오늘날 급진화시키려하는 이 기획의 다양한 형태들이었다. 사물의 상태를 변형시키는 온갖 형태의 활동을 생산력의 계좌, 다시 말해 내용물[제국]을 폭발시키지 않을 수 없는 내용[다중]의 논리의 계좌로 이체시키려는 기획. 이런 뜻에서 ‘모든 것은 정치적이다’라고 말하는 메타정치적 언표는 ‘모든 것은 경제적이다’라는 언표와 꼭 같으며, 결국 ‘모든 사유는 주사위를 던진다’—이것은 ‘모든 주사위 던지기는 생산력이다’로 번역될 수 있겠다—라는 아르케-정치의 언표와 같다.

따라서 다중이 우연에 맡겨두는 몫은 우연 자체와 필연의 동일시보다는 덜 중요하며, 반-생산력주의는 제국(다시 말해, 결국 자본)과 그것이 ‘사슬을 풀어주는’ 힘들의 오로지 내적인 대립 속에 다중 스스로 통합되는 것보다는 덜 중요하다. [다중에 대한 사유의] 중요한 강점이자 약점은 이 ‘제국’의 무대를 유일한 무대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다중에 대한 사유는 여전히 민족-국가에 매달려 있는 인민에 맞서 실제로 세계화된 세계의 진가를 알아보고자 한다. 그 야망은 정당하다. 그것이 세계화든 아니든 50년 전에 비해 오늘날 두 배 이상의 민족-국가가, 두 배 이상의 군사, 치안 장치 등이 있음을 잊지 않는다면 말이다. 그 야망은 정당하다. 그것이 민족-국가들의 억압적 힘의 결과로서 대거 이동하는 주민들의 현실을 ‘노마디즘’이라는 꼬리표에 바치지 않는다면 말이다. “척도의 한계들을 넘어서고 부수며”, “평소와는 다른 위상학이 그리는, 포함시킬 수 없는 은밀한 리좀들이 그리는”[3] 새로운 공간들을 만들어내는 이 유목적 운동에 대한 찬미는 일을 구하러 도시에 온 브라질 농민들과 르완다 인종청소로부터 도망쳐 나온 난민 캠프 거주자들을 망명(Exils)이라는 제목으로 한 데 묶어버린 사진이 연민의 방식으로 했던 것과 똑같은 작업을 열광적인 방식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다중의 폭발적인 역량의 증거로 제시된 유목적 운동은 결국 민족-국가의 폭력이나 그들을 파산에 빠트린 절대적 비참 때문에 쫓겨난 주민들의 운동인 것이다. ‘다중’은 그만큼 문제가 있는 모든 동일시들에 종속된 ‘인민’이다. 그래서 <다중> 7호에서 9. 11 사태는 ‘인민’이나 ‘대중’이 ‘파시즘을 욕망했다’고 강조되던 시대에 만개한 바 있는 질문들을 다시 끌고 왔다. 알라의 이름으로 쌍둥이 빌딩의 붕괴에 갈채를 보내는 아랍 군중들은 다중인가? 모든 다중은 ‘좋은’ 다중 혹은 ‘진짜’ 다중인가? 경험적 다중들에 또 다시 ‘긍정적인’ 다중의 본질이 대립된다. 정말이지 대량으로 대륙들 사이를 이동한다거나 정보과학의 속도로 달린다고 충분한 것이 아니다. 긍정성이 시위, 거부를 함께 조직하는 사람들의 일이 되는 지점이 항상 있다. 그곳은 세계의 상징적 장소일 수 있다. 그곳에서는 세계의 지배자들의 연합에 맞서 그들의 지배에 대한 다양한 거부들에 공통된 얼굴을 부여할 필요를 경험하는 시위자들이 결집한다. 그곳은 프랑스에서 일하고 하나의 신분(identité)을 가질 수 있게 해주는 증명서를 달라고 요구하는 시위자들이 단식을 하는 파리의 예배당일 수도 있다. 『제국』의 저자들은 미증유의 위상학에 대한 찬미가 사실상 “어떻게 다중의 행위들이 정치적이게 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뒤이어 나온 것임을 긍정한 첫 번째 사람들이다. 그들은 가장 고전적인 방식으로 그 질문에 답했다. 다중의 행위는 그것이 제국의 중심에 있는 억압 작업들과 직접적으로 그리고 적합한 의식을 가지고 부딪치기 시작할 때 정치적으로 될 수 있다고. 이 의식의 증언으로 주어진 첫 번째 슬로건은 프랑스 미등록 외국인(sans papiers) 운동의 요구—“모두에게 증명서를”—에서 끌어온 “전지구적 시민권”이라는 슬로건이다[4]. 우리는 정치란 먼저 포함과 배제를 나누는 선들 위에서, 귀속의 자리를 옮기는 과정에서 이루어진다는 것보다 더 나은 표현을 모르겠다. 그러나 모든 모호함은 다음에 있다. 다른 이들의 말에 따르면, [전지구적 시민권에 대한] 이 요구는 생산의 자본주의적 국제화 스스로 주장하는 법적 지위와 경제적 지위에 대한 동의를 요구하는 것이기에 비현실적이지 않다. 그러나 우리는 이 동의를 두 가지 방식으로 불일치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 동의를 자본가의 이윤이 요구하는 생산의 ‘국제화’와 착취의 조건을 보장하는 법-국가적 질서의 ‘국가주의’ 사이의 틈에 대한 정치적 전시로, 다시 말해 세계 질서가 요구하는 것이 드러내 보여주는 모순으로서 이해하거나, 아니면 그 동의를 다중을 ‘포함하는’ 제국의 전개에 내재하는 보편성의 긍정으로 이해하거나. 다중을 정치적 주체화 과정으로 생각하고 이 과정의 장소와 형태들 사이의 관계 문제를 제기하거나, 아니면 아무 것도 원하지 않는 대문자 존재의 어떤 무의식적 의지와 그 역량을 동일시할 위험을 무릅쓰고서라도 메타정치적인 방식으로 그 다중을 모든 것을 움직이는 역량의 이름 자체로 생각하거나. 다중에 대한 사유는 정치적 주체들에 대한 사유가 일반적으로 마주치는 선택지를 피할 수 없다. (양창렬 옮김)

[1] M. Hardt & A. Negri, Empire, Havard University Press, 2000, p. 60.
[2] Ibid., p. 394.
[3] Ibid., p. 397.
[4] Ibid., p. 399-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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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telos.egloos.com/1470836에서 펌.

 

민주주의는 무언가를 의미하는가? Does democracy mean something?

                                                                                                                     

자크 랑시에르 Jacques Ranciere



 나는 데리다에게 바쳐진 연속강연에의 나의 개입에 대한 예비적 언명에서부터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된다. 나는 데리다의 제자였거나 그의 사상의 전문가였던 적이 한 번도 없다. 그가 나의 교사였던 때-아주 옛날의 일이다-부터, 나에게는 그와 철학적인 문제를 논할 기회가 없었다. 따라서 내가 그에게 표현할 경의는 그의 저작에 대한 주석이 아니다. 그를 기리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90년대에 점점 그의 사고의 전경을 점하게 된 개념과 문제-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무엇이 의미되고 있는가-를 다루는 나 자신의 방법을 제시하는 것이다.


  '민주주의의 패러독스'란 무엇인가


 데리다는 <<우애의 정치학The politics of friendship>>에서, 페리클레스의 것으로 여겨지고, 플라톤의 <<메넥세노스>>에서 부연되어 있는 잘 알려진 명제-'아테나이 인의 통치는, 이름은 민주주의이지만, 현실에서는 귀족제, 즉 다수자의 찬성을 얻은 최고로 뛰어난 자의 통치이다'(*주1)-에 주석을 다는 것에 의해, 이 쟁점을 전개한다. 데리다는 이 언명의 기묘함을 지적한다.(*주2) '민주주의적' 통치라는 수사 그 자체가, 이 형태의 통치에 두 개의 대립하는 이름이 부여될 수 있음을 보여 주고 있다. 그것은 민주주의라고 불리지만, 그러나 사실상 귀족제이다. 이 '그러나'를, 이름과 사물 사이의 이 이접離接을, 우리들은 어떻게 생각할 수 있을까. 우리들은 그것을 수사修辭 상의, 또는 통치를 위한 허위라고 보거나, 이름과 '사물' 사이의 차이에 의해, 무언가 좀 더 근본적인 것이, 민주주의를 다른 어떤 형태의 통치와도 다른 무언가로 만드는 내적인 차이가 가리켜지고 있다고 상정하거나, 둘 중 하나이다. 이 물음은, 데리다에 의한 민주주의의 아포리아적 구조의 탐구와, 내가 오히려 민주주의의 패러독스라고 부르기를 선호하는 것에 대한 나 자신의 탐구에 공통의 근거를 명확하게 할 수 있는 것이다.
 내가 '민주주의의 패러독스'라는 것으로 무엇을 말하고 싶은가를 명료하게 하기 위해, 민주주의의 이름과 현실을 다루는 현대의 두 가지 논쟁에서부터 시작하기로 하자. 첫 번째 논쟁은 중동에 민주주의를 전파하기 위한 미국의 군사작전에 관한 중요한 불일치를 품고 있다. 이라크의 선거와 레바논에서 일어난 반 시리아 저항운동 직후, <<이코노미스트>> 지의 표지에 '중동에서 민주주의가 시작'이라는 말이 춤을 췄다. 민주주의의 시작에 대한 자기-만족은, 이름과 현실 사이의 차이에 대한 두 갈래의 논증구조- '.....지만, 그래도 민주주의는 시작된다' 또는  '민주주의는 시작되지만, 그러나 .....'-에 따라 정식화된 것이다.
 '.....지만, 그래도 민주주의는 시작된다'는 어떤 이상주의자들의 논의였다-그들에게 민주주의는 인민의 자기-통치이다. 이것은 민주주의를 힘에 의해 다른 민족에게 가져다 주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환언하면, 우리들은 다음과 같이 주장할 수 있다. 즉, 민주주의에 대한 실용주의적인pragmatic 견해를 취하여, 민주주의는 '인민의 권력'이라고 하는 유토피아적인 견해를 치워 버린다면, '민주주의는 시작된다'라고. 두 번째 논의는, 민주주의는 시작되지만, 그러나 민주주의를 가져다 주는 것은 법의 지배, 자유로운 선거 등을 가져다 주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라는 것이었다. 그것은 우선 혼란을, 민주주의적 생활의 혼돈을 가져다 주는 것을 의미한다. 도널드 럼스펠드가 사담이 실각한 후 일어난 약탈에 관해 말한 것처럼-우리들은 이라크 사람들에게 자유를 가져다 준 것이며, 자유라는 것은 그런 종류의 일을 행할 가능성 또한 의미하는 것이다. 
 그래도 론과 그러나 론은 요컨대 일관된 논리인 셈이다. 그 논리는 다음과 같은 것이다. 민주주의는 자기-통치의 목가 등이 아니기 때문에, 민주주의는 혼란에 다다를 수 있기 때문에, 민주주의는 초대국의 병기에 의해 외부에서 야기되는 것이 가능하며, 또 아마도 야기되지 않으면 안 된다. '초대국super power(=초권력)'은 절대적인 군사적 우위를 가진 나라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또한 민주주의에 의한 혼란을 통제할 수 있는 권력을 의미하는 것이다.
 여기서 민주주의를 넓히기 위한 군사작전을 지지하는 논의는, 우리들에게 민주주의를 전파하는 것에 대한, 지금만큼 열광적이지는 않았던 훨씬 오래된 논의를 떠올리게 한다. 실제로, 그런 논의는 30년 정도 전 삼극위원회(*일역주1)에서 행해진, 민주주의의 '위기'에 대한 두 개의 주요한 논의를 끊임 없이 바꿔 말하고 있는 것이다.
 삼극위원회에 따르면 민주주의의 몽상가들이 민주주의를 인민의 자기-통치와 동일시함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는 시작된다. 이런 몽상가들은 삼극위원회에서 비난된 '가치지향의 지식인'과 같은 종류의 등장인물이다. '가치지향의 지식인'은 '정책지향의 지식인'의 실용주의pragmatism에 대립하는 '적대적문화'를 조장하고 지도자와 권위에 도전하는 과잉의 민주주의적 활동을 촉진하고 있다고 비난받은 것이다.
 민주주의는 시작되지만, 그러나 그것과 함께 혼란도 시작된다. 바그다드에서 일어난 약탈에 대해 도날드 럼스펠드가 한 농담은 30년 전에 사무엘 헌팅턴이 행한 논의를 그대로 반복한 것처럼 들린다. 헌팅턴에 의하면 민주주의는 정부에 압력을 가해 권위의 토대를 무너뜨리고, 개인이나 집단을 자기-지배와 연결된 규율과 희생의 필요성에 저항하게 하는, 그런 요구의 증대에 다다르는 것이다. 
 민주주의를 새로운 영토로 넓히기 위한 군사작전이, 현재 '민주주의'의 이름 아래서 이해되고 있는 패러독스를 전경화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좋은 '민주주의적 통치'라고 하는 것은 좋은 정책을 위협하는 과잉을 통제할 수 있는 통치형식을 의미한다. 이 과잉은 이름 붙여질 수 있는 것으로써, 그 이름이 민주주의이다. <<민주주의의 통치능력>>(*주3) 에 기술되어 있듯이 민주주의적 통치를 위협하는 것은 민주주의적 생활 이외의 그 무엇도 아닌 것이다. 이 위협은 완전한 이중 구속double bind으로써 나타난다. 한편, 민주주의적 생활은 인민에 의한 '자기-통치'라는 이상주의적 관점의 실시를 의미한다. 그것은, 좋은 정책의 원리와 절차, 권위, 과학적 전문지식, 실용적인pragmatic 경험을 침식하는 정치활동의 과잉을 동반한다. 그 때문에, 좋은 민주주의는 정치적 과잉의 억제를 의미할 것이다. 하지만 이 정치활동의 억제는 요망과 요구를 증대시켜, 정치권위와 시민으로서의 행동의 토대를 무너뜨리는, '사적생활' 또는 '행복의 추구'에의 권력부여에 다다른다. 그 결과로서, '좋은 민주주의'란, 민주주의적 생활의 본질에 내재한 정치에의 참가와 이기적인 행동이라는 이중의 과잉을 순치할 수 있는 통치형식을 의미한다. 현대의 '민주주의의 패러독스'를 다음과 같이 기술하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즉, 사회적 그리고 정치적인 생활형식으로서의 민주주의는 통치형식으로서의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것이며, 후자에 의해 억압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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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Plato, Menexenus, 238c-238d

주2) Jacques Derrida, Polittics of Friendship (London: Verso, 1997), p93-113


일역주1) 삼극위원회: 1973년 10월에 미국, 일본, 유럽 세 지역의 민간조직으로서 발족. 상호의존의 심화라는 국제정세를 배경으로, 이해관계의 조정에 기울기 쉬운 정부간 관계를 보완하고, 더 넓은 시야에서 국제사회의 안정과 발전에 기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다. 75년에 도쿄와 교토에서 열린 연차총회에서는 중동평화 등과 함께 민주주의의 위기가 논의되었다. 본문에서 나오는 <<민주주의의 통치능력>>은 그 때 제출된 문서이며, 사무엘 헌팅턴, 미셸 크로졔, 죠지 와타누키 삼인이 각각 미국, 유럽, 일본의 민주주의 상황(정권담당자가 피치자의 요구에 얼마나 응하는 것이 가능하며, 또 피치자에게 얼만큼 정부의 권위와 정통성을 인정하게 하는 것이 가능한가)에 대해서 보고했다.


주3) Michel Crozier, Samuel P. Huntington, Joji Watanuki, The Crisis of Democracy - Trilateral Commission Task Force Report n. 8(New York: New York University Press, 1975). 
통치의 형식인가 사회 생활의 형식인가
 

 우리들이 이 패러독스의 이해에서 한 발 더 나아가야 한다면, 내가 앞서 언급했던 두 번째 논쟁을 일별하는 것이 유용할 것이다. 그것은 더 작은 불일치이지만, 우리들이 주요한 논쟁에 내기로 걸린 것과 민주주의의 패러독스의 핵심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미국의 병사들이 이라크에서 민주주의를 추진하기 시작한 바로 그 때, '중동의 민주주의'라는 문제를 굉장히 색다른 견지에서 제시하며, 최종적으로 '좋은' 민주주의와 '나쁜' 민주주의의 동명성(同名性)을 해체하는 짧은 저작이 프랑스에서 출판되었다. 쟝 클로드 밀네르(Jean-Claude Milner)의 <<민주주의적 유럽의 범죄적 경향>>이 바로 그것이다(*주1). 저자는 많은 이유에서 알려져 있었지만, 주로, 이른바 '공화주의' 정치 이론의 가장 영향력 있는 사상가로서 알려져 있었다. 이 이론에 따르면, 시민성citizenship은 전적으로 법의 보편성, 교육, 지식의 권위를 근거로 하고 있다. 그것은 온갖 형식의 다문화주의 또는 적극적차별시정조치affirmative action에 반대하고, 사회적 또는 문화적 차이가 권위와 보편성을 침식하는 것에 반대하는 것이다. 
 밀네르가 말하는 민주주의적 유럽의 '범죄'란 무엇인가? 첫째, 그것은 중동에서 평화를 추진하는 것, 즉 이스라엘-팔레스티나 분쟁의 평화적 해결을 추진하는 것에 있다. 밀네르는 이 유럽적 평화는 단 한 가지, 이스라엘의 파괴만을 의미할 수 있을 뿐이라고 논한다. 유럽의 민주주의는 팔레스티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자기 방식의 평화를 제안했다. 유럽의 민주주의적 평화는 홀로코스트의 결과였다. 민주주의적이고 평화적인 유럽, 과거의 유럽의 청산은 1945년 이후에 가능했다. 유럽은 그 시점에서, 나치가 행한 대량학살에 의해, 자신들의 꿈의 방해물이었던 사람들, 즉 유대인으로부터 해방되었던 것이다. 밀네르가 논하 듯이 '민주주의적 유럽'이란 실제로는, 정치-그 원리는 한정된 전체성에 의한 지배이다-를, 사회-그 원리는 반대로 비한정성非限定性이다-속으로 해소하는 것을 의미한다. 근대 민주주의란 이 비한정성의 법적 성취를 말하는 것이며, 이 비한정성의 법은 기술에 의해 상징됨과 더불어 그것에 의해 달성되며, 오늘날, 성별과 혈통의 법으로부터 해방되는 프로젝트에서 정점에 달한다. 따라서 근대 유럽의 민주주의는 적절한 기술의 발명에 의해, 혈통과 전승을 원리로 하는 사람들을 절멸시키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이다. 
 이 논증은 편집광적으로 보일 것이다. 하지만 이 논증은, 민주주의의 치세는 점점 더 많은 요구를 행하고, 개별주의와 공동체주의를 강조함으로써 정치적 행위성agency의 제諸 형식과 공동체 감각 그 자체의 토대를 허물어뜨리는 나르시시스틱한 '대중 개인주의'의 치세라고, 이 20년간 주장해 온 사조 전체와 획을 같이 하고 있다. 어떤 의미에서 밀네르는, 좋은 정책의 토대를 허물어뜨리는, 사회 생활에서 생겨난 필요needs, 요망, 요구의 비한정성에 대해 똑같은 지적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새로움은, 이 대립을 근본화하고radicalize, 그것을 논리적인 대립으로써 제시한다는 것이다. 그가 기술하는 것과 같은 민주주의의 이론과 계산 방법은 온갖 형식의 좋은 통치와 대립한다. 따라서, 민주주의의 과잉을 통제할 수 있을 좋은 통치는, 밀네르에 의해 더 이상 민주주의라고 불리지 않는다. 그것은 신중하면서도 인상적인 방식으로, 사목司牧통치라고 불린다. 이 표현이 가리키고 있는 것은 모세이며, 또한 일찍이 좌파 지식인 사이에서 영향력이 있었던 또 다른 책, 예전의 모택동주의 지도자 베니 레뷔Bernard-Henry Levy에 의해 쓰여진 <<사목의 살해>>(*주2)라는 책이다. 레뷔는 서양의 철학과 정치학의 전통이 억압했던 성서의 인물로서, 사목을 무대에 올린다. 그러나, '사목통치'는 무엇보다도 우선, 플라톤으로부터 차용된 관념이다. 레뷔는 플라톤이 <<정치가>>에서 검토한 목인牧人에 관한 그 자신의 사고에 충실하지 않았다고 비난한다. 하지만 실제로 문제는 더 복잡하다. 한 편으로, 플라톤은 사목통치를 세계가 신의 목인의 손에 의해 직접 인도 되었던 신화적인 과거에 위치 짓는다. 하지만 다른 한 편으로, 사목의 패러다임은 플라톤이 <<국가>>에서 조탁彫琢했던 수호자 지배라는 견해 속에서 여전히 작동하고 있다.
 내가 보기에, 사목통치를 참조하는 것에 의해, 미국이 민주주의를 전파하기 위해 행하는 작전과 프랑스에 의한 민주주의의 범죄고발에 있어서, 민주주의에 대해 현재 행해지고 있는 논의의 이론적 중핵이 명시되고 있다. 실용적인pragmatic 정책과 대립하는 인민의 자기-통치의 유토피아로서든, 공통의 법의 규율과 대립하는 개인적 욕망의 무질서한 소란으로서든, 민주주의의 이중의 과잉에 대한 현대의 논의는, 플라톤의 민주주의의 초기설정을 다시 한 번 무대에 올린다. 한 편으로, 플라톤에게 민주주의는 변경될 수 없는 쓰여진 법의 강고한 체제이다. 이 형식의 민주주의는, 치료해야 할 병이 어떤 것이든 간에 의사라면 누구라도 딱 잘라 썼을 처방전(=명령, 지시)과 닮았다. 다른 한편으로, 문자의 엄격함은 인민의 완전한 자의성을 표현하고 있으며, 환언하면, 개인이 공통의 규율에 관심을 가지는 바 없이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행위하는 무제한의 '자유'를 표현하고 있다. 플라톤의 논의가 의미하는 것은 민주주의가 정책의 원리가 아니라 좋은 정책에 저항하는 생활 양식way of life이라는 것이다. 민주주의는 혼돈에 다다른다. 더욱 근본적으로 그것은 온갖 것들이 뒤집혀 버린 생활 양식이다. <<국가>> 제 8권은 온갖 자연적 관계가 전복된 국가를 묘사하고 있다. 민주제의 도시에서, 지배자는 지배하는 대신 피지배자에게 복종하고, 아버지는 아들에게 복종하고, 연장자는 젊은이를 모방한다. 여성과 노예는 남성과 주인과 똑같이 '자유'이다. 그리고, 길 위의 당나귀 조차, '최고의 자유와 존엄을 가지고 길을 양보하지 않고, 마주쳐도 옆으로 피하지 않는 온갖 사람들과 부딪혀 버린다(*주3)'는 것이다.
 사회적인 생활 양식으로서의 민주주의와, 그것과 연결되어 있는 민주주의적 개인주의의 위험에 대한 포스트 토크빌Tocqueville 적인 논의 전체는, 거만한 당나귀에 대한 오래된 플라톤의 농담을 반복하고 있다. 이 농담의 지속적인 성공에는 뭔가 흥미를 끄는 것이 있다. 우리들은 21세기에 살고 있으며, 대국민국가, 세계시장, 강력한 기술과 같은 것들로 구성된 문맥context 속에서 살고 있는 것이고, 그것은 여성, 노예, 외국인 배제를 자신의 자유의 기초로 하는 고대의 소규모 남성 도시와는 이미 아무런 관계도 없다는 이야기를 매일 듣고 있다. 그 결론은 우리들의 '민주주의'는 고대의 민주주의적 촌락의 통치와는 아무런 관계도 없다는 것이다. 이것이 받아 들여질 수 있다면, 고대의 반-민주주의자에 의한 민주주의적 촌락의 논쟁적인 묘사가, 주식거래, 슈퍼 마켓, 온라인 경제 등으로 이루어진 우리들의 세계의 민주주의적 개인의 진짜 초상으로서 여전히 타당하다고 하는 사실을, 우리들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이 패러독스가 시사하는 것은, 민주주의적 생활의 묘사가 민주주의의 개념화를 뒷받침하는 방식은 기만일 것이라는 것이다. 누구에게도 굴하지 않는 민주주의적인 당나귀가 일으키는 소란은 더 심각한 문제를 상징한다. 달리 말하면, 민주주의의 패러독스에 관한 표준적인 언명(민주주의는 민주주의적 통치가 억압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생활형식이다)는 훨씬 근본적인 패러독스, 즉 정치 그 자체의 패러독스의 지표이다.
 민주주의는 통치의 형식도 아니고, 사회생활의 형식도 아니다, 이 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민주주의는 그와 같은 것으로서의 정치의 제도화이다. 민주주의는 패러독스로서의 정치의 제도화인 것이다. 그것이 패러독스인 것은, 정치적인 것을 제도화하는 것은, 일견, 공동체를 지배하는 권력을 무엇이 근거짓는가라는 물음에 답을 줄 것 같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는 그 물음에 대답을 주지만, 그것은 놀랄만한 대답이다. 어떠한 근거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지배권력의 근거 그 자체다, 라는 대답인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플라톤이 <<법률>> 제3권 서두에서, 일순의 섬광 속에서 우리들에게 깨닫게 하는 것이다. 그 구절은 내가 아는 한 민주주의에 관해 논의하는 데리다의 주의를 끌지 않았다. 내가 보기에 그것은 민주주의의 '아포리아' 또는 '패러독스'의 핵심을 설명하는 것에 도움이 될 것이다. 이 구절에서 플라톤은 지배하는 데 필요한 자격을 열거한다. 그는 우선 지배자와 피지배자 사이의 자연적 차이에 기초하는 여섯 개의 자격을 열거한다. 아이에 대한 부모의 권력, 연소자에 대한 연장자의, 노예에 대한 주인의, 천한 자에 대한 고귀한 자의, 더 약한 자에 대한 더 강한 자의, 무지한 사람들에 대한 교양 있는 사람들의 권력이다. 이런 자격은 사회적 위치의 명백한 배분을 포함하고 있다. 플라톤이 하고 있는 것처럼, '더 강한' 것이 정말로 무엇을 의미하는가라고 묻는 것은 가능하지만, 약함이 강함의 반대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연장이라는 것이 권력행사를 위한 충분한 자격인지 아닌지를 논쟁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그것은 부정할 수 없는 자격이다. 그것은 객관적인 차이이며, 이미 사회 속에서 작동하고 있는 권력 형식이다. 이런 자격은 지배를 위한 아르케arche로서 기능할 수 있다. 아르케는 시간적인 시작임과 동시에 이론적인 원리이다. 원리로서의 아르케는 사회적 위치와 능력의 명백한 배분을 의미하고, 이 배분은 지배자와 피지배자 사이의 권력 배분의 근거가 된다. 시작으로서의 아르케는 지배의 사실이 지배를 위한 적성 속에서 예기預期되어 있으며, 역으로 이 적성의 명증성이 그 경험적인 작용 사실에 의해 부여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통치가 성공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왜 어떤 사람들이 지배자의 입장에 있으며, 다른 사람들이 피지배자의 입장에 있는가, 그 이유를 제공하는 것인 것처럼 보인다. 최초의 여섯 개의 지배 원리는 요건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일곱 번째 원리가 있으며, 플라톤은 그것을 '제비뽑기'라고 부른다(*주4). 이것이 민주주의이며, 두개의 요건을 만족시키지 않는 체제이다. 민주주의는 역할의 선先-취取된 배분도, 권력 행사를 지배를 위한 적성에 속하게 하는 것도 아니다. '제비뽑기'는, 온갖 아르케의 부재와 같은, '자격 없는 자격'과 같은 자격의 패러독스를 제시한다. 이 '자격 없는 자격'으로부터 두 개의 다른 귀결을 이끌어 낼 수 있다. 그것이 어떤 아르케도 아니라고 결론 짓고, 그것을 통치 원리의 리스트에서 제외할 수 있다. 플라톤은 그렇게 하지 않지만, 이것을 두고 그가 민주주의에 관대하다고 비난할 수는 없다. 이것은 민주주의가 실제로 존재하고, 그 '주체', 즉 인민이 자신의 존재를 입증하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것 이상의 무언가가 있다. 아르케의 민주주의적 결여는, 적절한 아르케를 과시하는 '좋은' 자격과는 반대의 움직임을 한다. 확실히 위에 열거된 자격들은 좋은 자격들이다. 하지만 엄밀하게 말해서 그것은 무엇에게 좋은 것인가. 연장자가 연장이라는 것은, 확실히 통치를 근거지을 수가 있다. 그 정확한 이름은 장로제일 것이다. 교양있는 사람들의 지식은 통치를 근거지을 수 있으며, 그 이름은 에피스테모크라시epistemocracy 또는 테크노크라시technocracy가 될 것이다. 이런 식이다. 하지만 그 통치형식의 리스트에는 정치적인 통치가 결여되어 있을 것이다. 정치적인 통치가 무언가를 의미한다면, 그것은 무언가 그 이상의 것, 즉, 연장, 부성, 지식, 강함 등에 의한 통치에 추가되는 것이 아니면 안 된다. 그런 형식은, 가족, 부족, 학교, 일터에 이미 존재하고, 인간의 공동체의 더 광범위하고 더 복잡한 형식에 유형을 제공한다. 그리고 플라톤이 말한 것처럼, '천공'에서 도래하는 무언가 그 이상의 것이 없으면 안 된다. '천공'에서 도래하는 통치는 둘 뿐이다. 첫 번째 것은 사목통치, 즉 신의 목인이 인간의 무리를 직접 지배하고 있던 신화적 시대의 통치이다. 두 번째 것은 운에 의한 통치, 즉 제비뽑기, 즉 민주주의이다.
 얼마간 다른 방식으로 서술해 보자. 인간이 그것에 의해 지배되는 통치의 많은 유형이 있다. 출생, 부, 힘, 지식은 가장 공통적인common(=보통의) 것이다. 그러나 통치는 무언가 그 이상의 것, 지배자와 피지배자에게 공통의 대리보충적인 자격을 의미한다. 이미 신의 목인이 세계를 지배하고 있지 않다면, 자격은 이미 한 가지 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지배되는 자격도 지배하는 자격도 갖지 않는 사람들이 갖는 자격이다. 이것이 민주주의의 의미이다. '데모스demos의 권력'이란, 어떠한 아르케에 의해서도 권력을 행사하는 권한을 부여받지 않은 자의 권력을 말한다. 민주주의는 일련의 제도도 특정한 집단의 권력도 아니다. 그것은 온갖 종류의 제도, 그리고 어떠한 하나의 인민 집단의 권력을 정통화하기도 하고 그 정통성을 뺏기도 하는, 대리보충적인, 근거짓는 권력이다.


*주1 Jean-Claude Milner, Les Penchants criminels de l'Europe demomcratique (Paris: Editions verdier, 2003).

*주2 Bernard-Henry Levy, Le Meurtre du Parteur (Paris: Editions Verdier, 2004).

*주3 Plato, Republic, book VIII, 563c-d.

*주4 Plato, The Laws, Book III, 690c.

폴리스, 정치, 정치적인 것


이상이 거만한 당나귀가 불러 일으키는 불쾌의 이유이다. 좋은 정책에 방해가 되는 것은, 이른바 대중 민주주의와 개인주의에서 유래하는 요구의 과잉이 아니라, 민주주의 자신의 근거인 것이다. 정치적인 것은, 그것을 기초 지음과 동시에 그 기초를 철거하기도 하는, 대리보충적인 '인민의 권력'에 입각한다. 근거 짓는 권력과 파괴하는 권력 간의 이 합치는, 내가 보기에 민주주의의 '자기-면역auto immunity'이라는 데리다의 개념보다도 근본적인 것이다. 이 자기-면역에는 두 가지 측면이 있다. 그것은 우선, 민주주의에 내재하는 제한 없는 자기-비판, 반-민주주의적인 프로파간다에도 권력을 줄 수 있는 수용력capacity을 의미한다.  다음으로 그것은 민주주의의 적이 민주주의와 싸우기 위해 민주주의적인 자유를 이용할 때, 그 적으로부터 민주주의를 보호하기 위해 민주주의적 통치가 민주주의적인 권리를 제한 또는 허공에 매달아 버릴 가능성을 의미한다. 데리다의 관점에서는 두 경우 모두에서 민주주의는 Autos 또는 자기의 검토될 수 없는 권력에 여전히 집착하고 있다. 민주주의가 결여하고 있는 것은 타자성이다. 그것은 외부에서 도래하지 않으면 안 된다. 따라서 데리다는 코라Chora(場)의 순수한 수동성으로부터 타자 또는 신참자-그들을 포함하는 것이 '도래할 민주주의'의 지평을 정한다-에게로 실을 연결하는 것으로, 자기의 원환圓環을 파괴하는 것에 착수하는 것이다.
 나의 이론異論은 아주 단순한 것이다. 타자성은 외부에서 정치에게로 도래해서는 안 된다. 정치는 그 자신의 타자성을 가지며, 그 자신의 이질성 원리를 갖는다. 민주주의라는 것은 실로 이 원리인 것이다. 민주주의는 자기의 권력이 아니다. 반대로, 민주주의는 무언가 그와 같은 권력의 붕괴이다. 민주주의는 아르케arche의 원환성의 붕괴를 의미한다. 정치가 어찌됐든 존재하기 위해서는, 이 무질서의 원리가 전제되지 않으면 안 된다. 이 원리는 정치의 자기-근거 지음을 가로 막고, 정치를 분할의 대좌로 바꾼다. 나는 시험삼아, 폴리스police, 정치politics, 정치적인 것political이라는 세 개의 말의 이접離接관계에서 그 분할을 개념화했다.
  연장자, 더 현명한 자, 더 부유한 자 등이 있기 때문에-또는 더 정확히 하면, 그런 역할을 연기하기 때문에-타자를 지배하는 인간이 있다. 자격, 장소, 역량의 이런저런 배분에 근거하는 지배의 유형과 절차가 있다. 이것이 폴리스의 논리라고 내가 부르는 것이다. 그러나 연장자의 권력은 장로제 이상의 것이어야만 하고, 교양 있는 사람들은 무지한 사람들 뿐만 아니라 부유한 사람과 빈곤한 사람 또한 지배하지 않으면 안 된다, 무지한 사람들은 교양 있는 사람들이 그들에게 하도록 명령하는 것을 '알지' 않으면 안 된다, 병사는 병기를 스스로를 위해 사용하는 대신 지배자에게 복종하지 않으면 안 된다-만약 그렇다면, 지배자의 권력은 자기와 피지배자에게 공통의 대리보충적인 성질에 의거하지 않으면 안 된다. 권력은 정치적인 권력으로 변하지 않으면 안 된다. 
 따라서 폴리스의 논리는 다른 논리, 정치의 논리에 의해 횡단되어 있을 터이다. 정치는 자격 없는 자의 권력에 의해 모든 자격이 대리보충 되는 것을 의미한다. 지배자가 통치하는 이유는 한 인간이 타자를 지배할 어떤 충분한 이유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배의 실천은 궁극적으로 그 자신의 이유의 부재에 입각해 있다. '인민의 권력'은 그것을 정통화하면서 동시에 그 정통성을 뺏기도 하는 것이다.
 민주주의democracy에서 데모스demos란 것은, 인구, 인구의 다수파, 정치체, 하위계급low class 따위가 아니다. 그것은 지배하는 자격을 갖지 않는 자-그것은 일거에 모든 사람, 누구라도 의미한다-로 이루어진 잉여의 공동체이다. '인민의 권력'은 어떠한 집단 또는 제도의 권력과도 동일시될 수 없다. 그것은 이접의 형식에서만 존재한다. 한편으로 그것은 국가의 제도와 지배의 실천을 정통화 하면서 그 정통성을 뻇기도 하는 내적인 차이이다. 그와 같은 것이기 때문에 '인민의 권력'은 제도의 과두제적 운영에 의해 지속적으로 횡단되고, 소멸하는 차이이다. 따라서 다른 한편에서, 인민의 권력은 역할(=할당), 장소 또는 역량의 폴리스적 배분에 도전하고, 정치적인 것의 무질서한 기초를 다시 한 번 무대에 올리는 정치 주체의 행동에 의해 끊임없이 재再-제정되지 않으면 안 된다. 이 이접은 아포리아가 아니라, 부동의dissensus이다.  아포리아적인 것은 정치적인 것을 그 자신의 원리에 근거 지으려고 하는 시도이다. 하지만 기초는 찢겨진다. 민주주의는 지배의 실천이 끊임없이 덮는 균열을 계속 다시 여는 것, 부동의의 실천이다.
 민주주의는 일련의 제도에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조금 전에 나는 말했다. 동일한 법률, 동일한 헌법이 반대의 방식으로 시행되는 일도 있으며, 그것은 법률이나 헌법이 그 내부에서 틀 지어지는 공통성 감각에 의해 결정된다. 법률이나 헌법은 정치적인 것의 영역을 획정劃定하고, 정치적 행위성을, 적절한 자격을 부여 받은 일정한 행위자의 활동으로 제한하기도 한다. 또 법률이나 헌법은 같은 텍스트에서 새로운 정치적 장소, 쟁점, 행위자를 발명하는 민주주의적인 해석과 실천에 길을 비켜 주기도 한다. 차이를 만들어 내는 것은, 일련의 제도가 아니라, 감성적인 것의 다른 배분, 다른 무대 설정, 말과 말이 가리키는 사물의 종류 사이의, 또는 말과 말이 권력을 부여하는 실천 사이의, 그것과는 다른 관계인 것이다. 폴리스의 논리는 정치적인 것의 영역을 획정하는 것에 있다. 하지만 이 무대의 축소는 보통 정치적인 것의 순수함, 법의 보편성, 정치적 보편성과 사회적 개별성 사이의 구별 같은 이름 아래 실천된다. 그런 정치의 '순화'는 실제로는 그 방기放棄와 같다. 반대로 민주주의의 논리는 정치적인 것의 경계를 애매하게 하고, 이동 시키는 것에 있는 것이다. 정치적인 것의 소멸하는 조건으로서의, 모든 사람의 평등을 재-제정하는 것에 의해, 정치적인 것의 한계=경계limit를 이동시키는 것-이것이야 말로, 정치가 의미하는 것이다.

두 가지 정체성의 간극에서


 말할 것도 없이 이 실천은 도시나 국가의 통치가 단일하고 다의적일 수 없는 공동체 원리를 근거로 할 것을 원하는 자에게는 받아 들이기 어려운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민주주의의 이중 구속dobule bind, 이중성, 또는 허위에 대한 끝 없는 지탄, 플라톤에서 사무엘 헌팅턴에 이르는, 민주주의의 현실이 그 이름과 모순됨을 증명하려고 하는 지속적인 시도가 행해져 왔던 것이다. 이 지탄의 가장 잘 알려진 정식은 실질적 민주주의와 형식적 민주주의 사이의 대립에서 보여진다. 이 대립은 마르크스주의의 전통에 의해 강조되었지만, 훨씬 오랜 옛날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다. 그것은 쓰여진 법의 지배로서의 민주주의와 개인적 그리고 사회적인 생활 형식으로서의 민주주의 사이의, 플라톤의 구별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차이도 있다. 플라톤의 모델에서는 민주주의자의 개인주의적 생활은 법의 엄격함에 겉보기로 참가commitment하는 것의 진짜 내용이다. 마르크스주의 전통에서 실질적 민주주의는 민주주의의 이면, 즉 착취와 불평등의 '현실 생활'을 은폐하는 형식적인 부르주아 민주주의와 대립한다. 그러나 결론은 다르다고 하더라도 논의의 구조는 동일하다. 형식적 민주주의는 불평등한 현실에 대립하는 평등의 외관이다. 이 '현실'은 다양한 형태를 취할 것이다. 플라톤에 따르면, 그것은 쾌고快苦의 계산에 종속되는 민주주의적 개인의 전적인 쾌락이다. 마르크스에 따르면 그것은 사적소유와 사적이해의 현실일 것이다. 한나 아렌트가 한 것처럼, 정치적인 나타남의 영역의 반짝임, 빛남, 을 '단순한 소여성의 어두운 배경'에 대치하는 것에 의해 그 관계를 역으로 하는 것조차 가능하다.
 이상의 어느 경우에서든, 민주주의는 나타남(=외견)과 현실 사이의 대립이라는 필터를 통해 접근된다. 이 대립을 통해 민주주의는 묘사되고, 위장 당하고, 궁극적으로는 밀쳐내진다. 겉보기에는 대립적인 해석이 등가라는 사실의 가장 인상적인 사례는, 혁명적인 '인간과 시민의 권리'에 대한 비판 속에서 볼 수 있다. 오늘날에는, 그런 권리는 '인권'으로 발전했다. 우리들이 인권을 가지고 있는 것은, 2세기 이상에 걸쳐, 버크, 마르크스, 아렌트 처럼 다양한 저자들이 '인간과 시민의 권리'에는 무언가 그릇된 것, 즉 이중성이 있음을 가리켜 왔기 때문이다. 독립한 두 개의 주체가 있는 것은 너무 많은 것이며, 거기에는 무언가 착오가 숨어 들었을 것이다. 이런 논의가 이들 저자들에 의해 행해져 왔던 것이며, 최근에도 <<호모 사케르>>(주1) 속에서 죠르지오 아감벤에 의해 거론되고 있다. 마르크스가 기술한 것처럼, 시민의 권리라는 것은 실제로는 재산 소유자인 '인간'의 권리이다. 버크와 아렌트에 의하면 그런 권리는 우리들에게 딜레마를 제시한다. 그런 권리는, 시민의 권리이거나 인간의 권리이거나, 그 어느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권리는 비정치적인 개인의 권리이다. 이 개인은 그 자신의 어떠한 권리도 갖지 않기 때문에, 그런 권리는 어떠한 권리도 갖지 않는 자의 권리인 것이 되며, 이것은 무와 같다. 또는 인간의 권리는 시민의 권리, 즉 시민이 기존의 입헌국가에 귀속하기 때문에 소유하는 권리이다. 그런 권리는 권리를 갖는 자의 권리이며, 이것은 동어반복이다.
 이런 언설이 우리들에게 두개의 주체를 제시한다면, 그 하나는 위장용 껍데기일 것이다-이 논의의 핵심은 그런 것이다. 그것이 전제하고 있는 것은, 정치 주체는 하나이며 또한 동일하지 않으면 안 된다, 라는 것이다. '인간'과 '시민' 중 어느 것이 '진짜' 주체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정치가 신기루이던가, 정치 주체가 헌법의 텍스트가 정의하는 것과 같은 것이던가, 그 어느 것인가인 것이다. 하지만 이와 반대로 민주주의가 의미하는 것은, 하나의 주체 따위는 없다, 라는 것이다. 정치 주체는 상이한 아이덴티티 사이, 특별히 인간과 시민 사이의 간극에 존재하는 것이다. 정치적인 주체화의 과정은, 인간의 권력도 시민의 권력도 고정하지 않고, 인간과 시민 사이의 결합과 분리의 형식을 구축한다. 이 과정에서 인간과 시민은 정치적인 이름으로서 사용되는 것이며, 이 이름의 법적인 기재가 정치적인 과정의 소산인 것이다. 인간과 시민은 또, 분쟁적인 이름, 그 외연과 내포가 경합적이며, 시험 또는 검증의 공간을 여는 이름이기도 하다. 그와 같은 방식으로 인간과 시민이라는 정치적인 이름은 민주주의의 투쟁에 있어서 사용되어 왔던 것이며, 사용되는 것이 가능한 것이다. 한편에서는 시민성citizenhip이란 인간으로서-즉, 소유주와 사회적 지배층의 권력에 종속하는 사적인 개인으로서-열등하거나 우수하거나 한 사람들 사이의 평등의 지배를 의미한다. 다른 한편에서, '인간'이란 누구라도 갖는 평등한 수용력의 긍정을 의미하고, 이것은 시민성의 제한, 즉 인민의 많은 범주를 시민성의 영역에서 배제하는, 또는 다양한 문제를 시민의 범위 밖에 두는 제한과 대립한다. 인간과 시민은 함께 배제원리에 대한 포함원리의 역할, 개별적인 것에 대한 보편적인 것의 역할을 연기한다. 민주주의가 이해의 개별성에 대한 법의 보편적인 권력으로 환원될 수 없는 것은, 폴리스의 논리 그 자체가 보편적인 것은 지속적으로 개인화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보편적인 것은 항상 상연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그런 일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보편적인 것은 새롭게 분할되지 않으면 안 된다.
 나는 시험 삼아, 프랑스 혁명기의 페미니즘의 저항운동의 형식에 주석을 다는 것을 통해 이를 지적했다(주2). 여성의 활동은 가정생활의 개별성에 귀속하지만 시민성은 보편성의 영역이다, 라는 이른바 공화제 원리에 따라, 여성들은 시민의 권리를 부정당해 왔다. 개별적인 것의 영역에 있었던 결과, 여성은 보편적인 것에는 포함될 수 없었다, 라는 것이다. 여성은 여성 자신의 어떠한 의지도 갖지 않으며, 따라서 정치 주체일 수 없었다, 라는 것이다. 이 '자-명'한 언명에 대해, 올랭 드 구즈는 여성들은 단두대에 올라갈 자격을 부여 받았기 때문에, '집회'의 연단에 올라갈 자격도 똑같이 부여 받은 것이다, 라는 잘 알려진 이론異論을 제기했다. 그녀의 논증은 이른바 벌거벗은(裸形) 생의 개별성에 수반되는 보편성을 제기하는 것에 의해, 영역의 분할을 애매하게 한 것이다. 여성들은 혁명의 적으로써 죽음을 선고당해 왔으니까, 여성의 벌거벗은 생은 정치적이었다. 단두대에서, 여성들은 남성과 평등했다. 죽음의 선고의 보편성은 정치생활과 가정생활 사이의 '자-명한' 구별을 던져 버렸다. 따라서, 여성은 스스로의 권리를 '시민으로서' 긍정할 수 있었던 것이다. 여성들에 의한 권리의 긍정은, 버크 또는 아렌트의 발언에도 불구하고, 여성들은 스스로가 갖는 권리를 갖지 않으며, 스스로가 갖지 않았던 권리를 갖고 있었음을 증명했다. 한편에서, 여성들은 모든 '자유롭고 평등한' 인간에 귀속하는-권리(인권) 선언에 따르면- 권리를 빼앗겼었던 것이며, 그녀들에게 부정당했던 권리를 요구했다. 다른 한편으로, 여성들은 스스로의 항의 운동에 의해 그 정치 능력을 증명했다. 여성들은 스스로 그런 권리를 제정할 수 있기 때문에, 실제로 그런 권리를 소유하고 있다는 것을 보인 것이다.
 두 개의 아이덴티티 사이의 간극에서 주체화 형식을 창조하는 것, 보편적인 것과 개별적인 것 사이의 이중의 관계에 변화를 가함으로써 보편성의 사례를 창조하는 것, 이것이 민주주의 과정이 동반하는 것이다. 민주주의가 단순히 법의 보편성에 기초하는 것일 수만은 없는 것은, 법의 보편성은 통치행동의 논리에 의해 부단히 개인화되기 때문이다. 보편적인 것은 공적생활의 끊임없는 개인화에 저항하는 주체화의 형식과 검증의 사례에 의해 대리보충되지 않으면 안 된다.  
 개인화는 두 가지 형식을 갖는다. 그 명료한 형식은 성적, 사회적 또는 민족적인 근거에 기초하여, 인구의 어느 부분에 정치적 권리를 부정한다. 그 암묵적 형식은, 일련의 일정한 제도, 문제, 행위자, 절차에 시민성의 영역을 제한한다. 전자가 서양에서는 시대 착오적인 것처럼 보이는 것과 반대로, 후자는 현대의 중요한 문제이다. 근대화라는 부드러운 이름 또는 신-보수주의 혁명이라는 솔직한 이름이, 30년 이상에 걸쳐 노동이나 건강이나 연금과 같은 '사적 생활'의 문제를 평등한 시민성과 관련한 공공의 관심사로 바꾸는 것을 통해 공공역역을 넓혀 온 민주주의의 과정을 역전시키기 위해 이용되어 왔다. '사회' 국가 또는 '복지' 국가 개혁의 배후에서 내기에 걸린 것은, 국가가 개인에게 공적으로 제공하는 서비스나 효용과 개인이 사적으로 손에 넣지 않으면 안 되는 것 사이의 균충均衝보다도 훨씬 큰 문제이다. 노동과 건강의 조정의 배후에서 내기에 걸려 있는 것은, 공동체의 '공동성common'에 관한 이해이다. 시민성의 정치적 영역과 사적인 약속이 지배하는 사회적 영역을 나누는 선은, 누가 공적인 일에 참가할 수 있으며 누가 할 수 없는가를 결정한다.
 1995년 겨울 프랑스에서 공공운송기관의 노동자들이 행한 상당히 긴 파업 동안, 사적이고 재정적인 이해와, 공통선共通善의 정치적인 추구와 장래 세대를 배려하는 능력을 대비하는, 많은 아렌트적이고 슈트라우스적인 논의를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파업이 진행되는 사이에 점점 분명해진 것은, 파업의 주요한 목적은 특정한 인간집단과 제도가 공동체의 장래를 결정하는 배타적인 권력을 가지고 있느냐 아니냐를 결정하는 것이란 사실이다. 정치적인 것과 사회적인 것 사이의 규범적인 구별은 실제로는 공통의 문제와 장래에 대처하는 능력이 있다고 간주된 자와, 사적이고 직접적인 관심사를 넘을 수 없다고 간주된 자 사이의 구별인 것이다. 민주주의의 과정 전체는 이 경계선의 이동을 둘러싼 것이다.





주1 : Giorgio Agamben, Homo Sacer (Stanford: Stanford University Press, 1998)

주2 : Cf. Jacques Ranciere, 'Who is the Subject of the Rights of Man', 103/2 South Atlantic Quarterly, spring/summer 2004

타자성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


 나는 출발점으로 돌아가는 것을 통해 결론을 이야기하고 싶다. 거기서의 물음은, 민주주의를 그 자신에 대립시키는 패러독스를 어떻게 이해할까란 것이었다. 이름의 불확심함과 현실의 모순에 대한 계속해서 반복되는 언명으로부터 민주주의의 자기-차이에 대한 더 근본적인 해석으로, 어떻게 이행할 것인가? 데리다는 <<마르크스의 유령들>>에서, '자유 민주주의'의 자신만만한 자기-만족의 토대에 다시 균열을 여는 것을 목표로, 자유 민주주의의 역사적 성취에 대한 후쿠야마의 테제에 주석을 가하고 있다. '어떤 사람들이 자유 민주주의의 이상理想의 이름으로 새로운 복음을 설파하려 하고 있을 때-그들은, 자유 민주주의는 인간 역사의 이상으로서의 그 자신을 드디어 실현했다고 주장한다-, 외치지 않으면 안 된다. 폭력, 불평등, 배제, 기아, 따라서 경제적 압박이 세계사와 인류사 속에서 이 정도로 많은 인간 존재에 피해를 끼친 적은 없다고(주1).' 다시 균열을 열기 위해서, 데리다는 그 자신에 도달했던 또는 그 자기에 도달했던 민주주의에, 도래할 민주주의를 대립시킨다. 도래할 민주주의는 장래 도착할 일은 없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 그것은 상이한 시간 내부에서 구상된 민주주의이다. '도래할 민주주의'의 시간은, 결코 완수될 수 없지만-그리고 완수될 수 없기 때문에-지켜지지 않으면 안 되는 약속의 시간인 것이다. 도래할 민주주의는, 도래할 것에의 무한한 열림-그리고 '타자' 또는 '신참자'에의 무한의 열림-을 포함하기 때문에, 결코 '그 자신에 도달'하는 것, 그 자신을 따라잡는 것이 불가능한 민주주의이다.
 데리다는 다름 아닌 민주주의를 이른바 '자유 민주주의'와 대립시켜, 두 개의 시간성을 같은 시간 속에 놓고, 두 개의 공간을 같은 공간 속에 놓는다-나는 이 원리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두 개의 민주주의 사이의 대립이라고 불리는 것 속에 문제가 있다. 데리다는 한 편에는 통치형식으로서의 자유 민주주의를, 다른 편에는 신참자에의 무한의 열림을, 또 온갖 기대를 벗어나는 사건에의 무한한 기대를 놓는다. 내가 보기에 제도와 초월론적 지평 사이의 이 대립 속에서 소멸하는 것은, 실천으로서의 민주주의이다. 이 실천은 '타자' 또는 헤테론의 정치적 발명에 다다른다. '신참자'-누구의 것이든 평등한 권력을 제정하고, 소여所與의 공동세계 속에 공동체에 대한 새로운 언어를 구축하는 새로운 주체-를 계속해서 창조하는 정치적인 주체화의 과정이다. 헤테롤로지heterology(타자성, 이타적 논리)의 정치적인 권력을 무시하는 것은, 한 편에 '자유 민주주의'-이것은 실제로는, 자기의 법을 구현하는 과두제를 의미한다-, 다른 편에 '도래할 민주주의'-사건과 타자성에의 무조건적 열림의 시간과 공간이라 보여진다-라는 단순한 대립에 사로잡히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정치의 방기와 타자성의 실체화 형식과 같다. 민주주의적이라고 불리는 자기의 실체화의 거부가, 대칭적인 방식으로 '타자'의 실체화-이것은 현대의 윤리적 풍조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의 상징이다-에 이르는 것이다. 민주주의적 자율과 대비되는, 사건과 '타자성의 무한한 존중'의 참조는 현재의 윤리적 풍조에 있어서 빈번히 사용되는 수단이다. 그러나 이 참조는 상이한 방식으로 해석될 수 있고, 굉장히 다른 결론에 다다를 수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암네스티 인터네셔널Amnesty International의 인권에 관한 강연(주2)에서 장=프랑소와 리오타르가 제시한 '타자'의 권리 해석에 대해 생각해 보자. 리오타르에게 '타자성의 무한한 존중'이란 인간존재가 그 인질 또는 노예가 되는 '타자'-프로이트적인 사물 또는 유대의 율법으로서의-의 권력에의 복종을 의미한다. 계몽과 해방의 꿈은, 타율의 법을 부정하려 하는 유해한 의지, 전체주의와 나치에 의한 대량학살의 원인으로 보는 것이 가능할 의지가 된다. 따라서, '타자'의 권리는, 궁극적으로는, 악의 축에 대한 군사작전의 정당화에 이른다. 윤리, 타자성, 타자성의 무한한 존중은 일종의 '새로운 복음'이 되어, '자유 민주주의'의 실천과 이데올로기를 정통화한다.
 확실히 데리다는 레비나스적인 '타자'에 대한 그와 같은 해석으로부터, 윤리적 풍조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다. 리오타르와는 좋은 대조를 이루는 형태로 데리다는 윤리적인 명령을 해방의 지평과 결합시킨다. 그는 명백히 메시아적인 약속을 '법'에의 복종에 대비시키고 있다. 그러나 사건, 타자 또는 무한자에 관한 어떠한 선-취적인 동정同定도 피하려 하는 시도 속에서 그는, 탈구축, 말소선抹消線, 아포파시스apophasis의 끝없는 과정을 통과하지 않으면 안 된다. 타자성에 관한 이 윤리적 과대언명은 두 가지 문제의 어느 해석 사이에서 흔들리지 않을 수 없다. 탈구축은 궁극적으로 신의 병사에 의한 군사작전을 지탱하는 근저적인 타율의 법을 주장하던가, '타자'의 모든 선-취적 동정同定을 말소하는 무한의 임무를 강조하던가, 그 어느 것인가이다.
 데리다에 의한 개념화는 민주주의에 충분한 것을 부여하지 않음과 동시에, 너무나 많은 것을 부여하고 있다. 충분하지 않은 것은, 민주주의는 국가에 의한 '자유 민주주의'의 실천 이상의 것이기 때문이다. 너무 많은 것은, 민주주의는 '타자'에의 무한한 열림 이하의 것이기 때문이다. 타자성에의 한 가지 무한한 열림 같은 것은 없으며, 타자의 분할(=열할)parts을 기재하는 많은 방식이 있다. 나는 민주주의의 실천을 어떠한 분할도 갖지 않는 자-이것은 '배제된 자'가 아니라, 누군가 또는 누구라도를 의미한다-의 분할을 기재記載하는 것으로 개념화하려고 시도했다. 그런 기재는 '신참자'인 주체에 의해, 즉, 새로운 객체가 나타나 공통의 관심사가 되도록 하고, 새로운 목소리가 나타나고 받아 들여질 수 있도록 하는 주체에 의해 행해진다. 이 의미에서 민주주의는 타자성을 다루는 많은 방식의 하나이다. 민주주의에 의한 주체와 객체의 발명은 부서진 시간이자 해방의 단속적斷續的인 계수繼受인 특수한 시간을 창조한다. 내가 보기에 우리들은 메시아적인 시간에 호소하는 대신, 이 부서진 시간 속에서 계속 사고하고 행위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들은 우리의 입장의 이면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데리다는 '파괴'의 본성 그 자체가 내기에 걸리고, 다음과 같은 물음이 싹 트는 시기에, 또 그런 시대를 위해 말하고 있다. 즉, 국민국가의 내부에서 오래도록 연기되어 온 데모스의 형상은 코스모폴리탄적인 정치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가라는 물음이다. 국민국가의 '소멸'은 논쟁의 대상일 수 있지만, 오늘 민주주의가 코스모폴리탄적 질서를 감수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데리다의 대답은 '새로운 인터내셔널'을 촉구하는 것이다. 이 새로운 인터내셔널의 형식은 분명하지 않다. 주요한 물음은, 그것을 정치적인 관점에서 개념화할 것인가, '윤리적인' 관점에서 개념화할 것인가이다. 그것을 정치적인 방식으로 행하기 위해서는 '타자에 대한 무한한 존중'은, '사건' 또는 메시아에의 무한한 기대라는 형식 대신에 타자성을 기재하는 다수의 형식, 변경 또는 부동의不同意의 형식이라는 민주주의적인 외형을 갖지 않으면 안 된다.


주(1) Jacques derrida, Specters of Marx (New York: Routledge, 1994), p. 85
 

(주2) Jean-Francois Lyotard, 'The Other's Rights', in Stephen Shute and Susan Hurley (eds.), On Human Rights (New York: Basic Books,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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