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고 가난한 뉴욕 예술가들의 초상

     
뮤지컬 영화 <렌트>

노조수연 기자
2007-01-29 20:50:50


영역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것이 더 이상 낯선 풍경이 아니듯, 장르간 이동 역시 새로운 소재 발굴과 비슷한 우려먹기에 지친 우리에게 흥미롭고도 익숙한 풍경이다. ‘원작’의 아우라가 새로운 장르로 이식되어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재미와 감동, 교훈 그리고 문화적 소비자를 불러낼 때 이것이야말로 대단한 재창조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러나 각색-번역의 작업은 갈채 받는 원작에 손대야 할 때 큰 부담을 지고 시작할 수밖에 없다. 뮤지컬 <렌트>의 열혈 팬이었던 감독 크리스 콜럼버스가 이 인기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영화화하기로 결정했을 때에도 그러했으리라.

렌트 헤드(rent head)라 불리는 광적인 팬덤 중 한 사람이었던 크리스 콜럼버스는 일찍이 <나홀로 집에>,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 <해리 포터와 비밀의 방> 등 주로 ‘아동 취향’ 영화를 연출한 바 있다. 감독이 누구든지, 뮤지컬 팬들은 그들이 숭배하는 작품이 영화로 옮겨질 때 종종 다른 각색에서 벌어지는 재앙처럼 원작의 깊이가 훼손될까 우려했을 것이다.

그러나 콜럼버스 감독은 그의 신상(神像)에 크게 망치질을 하지 않은 채, 뼈대와 재질을 거의 그대로 살려놓았다. 심지어 출연한 주요 등장인물 8명 중 조앤과 미미 역을 제외한 6명은 오리지널 브로드웨이 캐스팅 출신이다. 거기에 더하여 영화 <렌트>는 제한적인 무대에서 표현할 수 없는 뉴욕이라는 공간을 영화라는 매체의 특징으로 한껏 확장하여 스크린에 화려하게 펼쳐보였다.

비록 ‘원작 뮤지컬을 단지 스크린에 옮긴 것에 지나지 않다’는 비판이 뒤따르기도 했지만 연출자로서는 그 역시 존경하는 원작자에 대한 경의였을 것이며, 실제로 브로드웨이에서 오리지널 캐스팅 공연을 보지 못한 전세계 <렌트> 팬의 갈증을 달래주는 최고의 선물이기도 한 것이다.

“Season's of love”라는 노래의 무대 위 합창으로 영화는 시작된다. 영화의 배경 1989년 12월 24일. 다큐멘터리 독립영화감독 마크(앤서니 랩)와 록 가수이자 송라이터인 로저(아담 파스칼)는 뉴욕 이스트 빌리지의 한 다락방을 같이 쓰는 가난한 예술가다. 먹을 것도, 불을 지필 것도 없이 상당히 비참한 크리스마스 이브를 보내게 된 이들은 청천벽력으로 밀린 집세(rent)를 내라는 독촉을 받게 된다.

‘애비뉴 A의 공공의 적’이 된 옛 친구 베니(타이 디그스)는 집세를 영구 면제해주겠다는 약속을 철회했지만, 만일 로저와 마크가 건물철거에 반대하는 공연을 개최하는 모린(이디나 멘젤)을 저지한다면 갚지 않아도 된다고 한다. 물론, 이들은 거절한다.

로저와 마크의 친구이자 MIT에서 철학을 강의하는 콜린스(제스 마틴)는 한밤중 뉴욕의 골목에서 강도들에게 얻어맞고 길거리에 쓰러져 신음하다 ‘북치는 소년’ 엔젤(윌슨 저메인 헤르디아)을 만나 구조된다. 한편 아래층에 사는 댄서 미미(로자리오 도슨)는 로저와 가까워지려 노력하지만, 여자친구의 자살과 에이즈로 인한 절망, 그리고 죽기 전 완성해야 할 하나의 노래를 찾지 못한 조바심으로 가득한 로저의 굳게 닫힌 마음을 여는데 힘겨움을 느낀다.

마크는 자신을 차버리고 변호사 조앤(트레이시 토마스)을 새로운 연인으로 택한 매력적인 공연예술가 모린의 부탁으로 그녀의 공연장 세팅을 돕기 위해 찾아간다. 그곳에서 마주친 건 모린이 아닌 그녀의 연인 조앤. 마크와 조앤은 서로 불쾌감을 숨기지 않으면서도 모린이라는 공통분모에 대해 이야기하며 함께 ‘탱고 모린’을 춤춘다. 이 장면은 영화 <렌트>에 있어서 가장 영화적이면서도 스펙터클이 살아난 장면이며, 질투심과 의구심에 괴로워하면서도 끌릴 수밖에 없는 매혹적인 존재에 대한 심적 갈등을 잘 나타내고 있다.

건물주의 방해공작에도 불구하고 공연을 훌륭하게 이끌어 사람들의 호응을 얻은 모린을 축하하기 위해 친구들은 다같이 레스토랑에 모인다. 이들에게 “보헤미안은 죽었어!”라고 선언하는 베니를 향해 일갈하는 예술가들, 보헤미안들의 합창인 “La Vie Boheme”은 뮤지컬과 영화의 백미라 할 수 있겠다. 다만 가사의 묘미를 살릴 수 없는 자막번역이나 단어의 문화적 내연에 대한 무지는 이 작품의 이해와 재미에 현저히 걸림돌이 될 것이다.

예컨대 “La Vie Boheme”에 나오는 일련의 명사들, ‘손하임, 손탁, 케이지, 커닝햄, 파블로 네루다, 구로사와, 8BC’등의 단어는 보헤미안의 자유로움이나 예술성을 보여줄 뿐 아니라 그 자체로 운율-라임을 맞추는 일종의 장치다. 관객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지만 ‘소설가, 무용가, 민중시인, 영화거장, 록그룹…’ 식으로 자막이 제시되면 노래의 묘미를 제대로 살리지 못하게 되므로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렌트>를 더욱 재미있게 보기 위해서는 약간의 학습도 필요한 것이다.

베니와의 관계를 의심한 로저는 미미와 헤어지고 뉴욕을 떠나 산타페로 간다. 이미 에이즈로 친한 친구인 엔젤을 떠나보낸 후였다. 생계를 위해 추구하던 작품세계를 버리고 방송국에 취직한 마크 역시 방황한다. “La vie Boheme”으로 맺는 1막이 등장 인물들 간의 만남과 사랑, 추구하는 길에 대한 신념, 구체제에의 저항으로 구성되어 있다면, 2막은 이별과 인물간의 갈등과 화해로 이루어져 있다. 각자 방황하던 이들은 다시 돌아오고 그러기까지 1년의 세월이 흐른다. 1년이 걸려 이들이 깨달은 사실은, 그들은 결코 혼자가 아니며 지금 이 순간뿐 다른 날은 없다는(no day but today) 것이다.

<렌트>는 푸치니의 오페라 <라 보엠>을 원작으로 하긴 했지만 많은 부분이 비교된다. 19세기 파리의 가난한 예술가들은 20세기 뉴욕의 역시 가난한 예술가들로, <라 보엠>에서 주인공이 앓던 결핵은 <렌트>에 와서 에이즈와 약물중독으로 치환됐다.

물론 가장 큰 차이점은 눈에 보이는 결말부일 것이다. 그러나 <렌트>에 등장하는 다양한 인물군(레즈비언, 게이, 크로스드레서, 흑인, 백인, HIV보균자, 약물중독자 등)에 대한 묘사가, 더욱 이 시대의 보엠을 잘 묘사하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또한 마크가 전쟁의 반대말은 평화가 아니라 창조라 주장하는 부분에서, 이 사회의 전형적 질서와 권태 역시 그들의 적일 수 있다는 공감대가 만들어진다.

여러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느낄 수 있는 것은 시대를 불문하고 존재하는 자유로운 영혼들의 치열한 삶이다. 그들은 배고픔과 추위에 떨고 질병에 신음하지만, 추구하는 예술세계에 대한 애정과 갈망을 숨기지 않으며 기존 체제의 모순과 관습에 타협하려 하지 않는다. 그들의 현실은 비루하지만 정신은 그러하지 않다.

그것이 보헤미안의 삶이라는 건가?
Viva, La vie Bohe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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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크자키 전영혁은 늘 음악을 수집한다. 그리고 수집한 음악을 매일 밤 풀어놓는다. 음악은 전파를 타고 흘러가 고픈 이들의 마음에 양식으로 쌓인다. 알고 보니 그가 모으는 것은 음악만이 아니었다. 그는 학교가 일찍 파하는 시험기간을 기다려 하루에 3편씩 영화를 보던 학생이었고, 영화를 실컷 볼 심산으로 대학 졸업 뒤 태창영화사 수입부에 들어간 사람이었다. 창간 11주년을 맞은 <씨네21>은 그가 꼽는 영화음악에 대해 들을 수 있겠냐고 청했다. 얼마 전 <전영혁의 음악세계> 방송 20주년을 맞은 그는, 기념행사며 인터뷰며 여러 가지로 분주함에도 흔쾌히 응해주었다.

“요즘 영화는 <룩 앳 미>와 <코러스> 정도뿐이네요.” “요즘 것은 다른 사람들도 많이 하니까 의미가 없을 것 같았어요. 옛날영화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좋은 정보가 될 수 있을 것도 같고요. 이렇게 좋은 영화들을 못 보고 죽으면 얼마나 억울해요. <베로니카의 이중생활>, 앙겔로풀로스 영화들, <흑인 오르페> 이런 건 꼭 봐야 해요. 너무 슬프고 감동적인 영화예요.” 조용히 얘기를 시작한 그는 영화음악보다 외려 영화 얘기를 더 많이 하는 듯도 싶었다. “그래야 책 보는 사람이 판도 사고 영화도 볼 거잖아요. 궁극적으로 영화를 봐야 해요. 판만 들으면 안 돼. 그래서 영화도 좋고 음악도 좋은 영화를 골랐어요.” 그렇게 그는 자신이 수집한 ‘음악이 좋은 영화’ 20편을 풀어놓았다.

 

 

우아하고 감상적인 프랑스영화의 O.S.T

삶을 풍요롭게 하는 선율

<베로니카의 이중생활> La Double Vie De Veronique
1991년/ 감독 크지슈토프 키에슬로프스키/ 음악 즈비그뉴 프라이즈너

아카데미 작품, 음악, 여우주연, 촬영, 각본 이렇게 5개 부문은 수상했어야 마땅한 영화다. 폴란드 감독이 만든 프랑스영화라고 상을 안 준 거다, 미국 사람들이. 우선 음악이 너무 좋고, 내가 개인적으로 세상에서 가장 예쁜 여자라고 생각하는 이렌느 야곱이 나왔다. 영상도 아름다웠다. 크지슈토프 키에슬로프스키 감독만이 만들 수 있는 영화다. 요즘에는 이상한 영화를 다 컬트라고 하는데, 이런 영화가 진짜 컬트라고 생각한다. 비현실적인 주제로 철학을 담은 영화가 진짜 컬트다.

우리가 몰라서 그렇지 세상에는 나하고 똑같은 이름에 똑같은 외모에 성격이 똑같은 사람이 있을 수 있다. 이 영화의 압권은 폴란드의 베로니카가 노래하다가 탁 쓰러져서 죽는 장면인데, 그때 프랑스의 베로니크는 이를 닦고 있다. 근데 갑자기 막 아파오는 거다. 아무 이유도 없이 너무 슬픈 거다. 자기의 분신이 죽었으니까. 그런 착상으로 영화를 만들 수 있다는 게 너무 좋았다.

음악 역시 너무 좋다. 슬프고 아름답고. 키에슬로프스키 영화의 음악은 항상 즈비그뉴 프라이즈너가 만들었다. 그런 훌륭한 영화음악가가 있었기 때문에 영상과 음악이 완벽하게 조화를 이룬다. 재미난 것은 반 부덴 메이어라는 네덜란드 작곡가의 존재인데, 영화 속에 그의 음악이라며 너무 좋은 곡이 나온다. 내가 음악은 많이 안다고 생각했는데 처음 듣는 사람이었다. 이 사람이 누군지 어서 알아내서 음반을 모조리 수집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한다 하는 음대 교수들에게 물어봤지만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더라. 클래식 백과사전에서 찾았는데 거기에도 없었다. 거기는 한곡만 남기고 죽은 사람들도 다 나오는데. 이 천재들이 만들어낸 가공의 인물이다. 반 부덴 메이어는 결국 프라이즈너 자신인 거다. 이 사람 <레드>에도 나온다. 잠깐 등장한 이렌느 야곱이 레코드 가게에 들어가서 반 부덴 메이어 음반을 찾다가 나가는 장면이다. 아무튼 굉장히 고생했다. 이 사람이 천재 콤비가 지어낸 가상의 존재라는 걸 알기까지.

 

<세상의 모든 아침> Tous les matins du monde
1991년/ 감독 알랭 코르노/ 음악 조르디 사발

알랭 코르노 연출, 제라르 드 파르디외의 호연, 조르디 사발의 음악이 삼위일체를 이룬 고전음악영화의 걸작이다. 비올라 다 감바는 첼로의 모태인 악기인데, 그 연주가의 얘기다. 재밌다. 제라르 드 파르디외는 후진 영화에도 많이 출연했지만 이 영화에서는 연기도 잘하고, 영화 못지않게 음악도 좋다. 조르디 사발은 고음악의 일인자다. 이 사람이 처음부터 끝까지 음악을 너무 아름답게 만들었다. 몽세라 피구에라스가 노래도 했는데, 조르디 사발의 아내다. 우리는 흔히 조르디 사발 사단이라 그런다. 아들, 딸, 뭐 다 같이 하거든. 전에 LG아트센터에서 공연했다(조르디 사발의 아내, 아들, 딸이 멤버를 이룬 고음악 전문 실내악 앙상블 ‘에스페리옹21’은 지난해 3월 내한했었다).

 

<룩 앳 미> Comme Une Image
2004년/ 감독 아녜스 자우이/ 음악 필립 롱비

프랑스판 ‘삼순이’. 최근 본 영화 중에 너무 좋았던 영화다. 여주인공을 보고 처음엔 ‘너무너무 못생겼다’ 했는데 끝으로 가니 나 역시 그녀가 좋아지더라. 뚱뚱하고 못생겼지만, 섬세하고 순수하고 아주 예민한 성격을 가졌다는, 그런 심리묘사가 잘돼 있다. <타인의 취향>의 명장 아녜스 자우이의 섬세한 심리묘사와 배우들의 연기력이 돋보인다. 백미는 단연 음악이다. 슈베르트의 명곡 <음악에>가 여러 버전으로 담겨 있는데 라스트신의 합창이 가장 감동적이다. 슈베르트가 이미 오래전에 알려준 거다. 음악은 종교 이상의 가치를 가졌고, 사람의 생명도 구할 수 있다고.

 

 

 

<코러스> Les Choristes
2004년/ 감독 크리스토퍼 파라티에/ 음악 브뤼노 클레

크리스토퍼 파라티에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브뤼노 클레가 음악을 맡아 2004년 프랑스 최고 흥행을 기록했다. 휴지처럼 버려진 아이들을 최고의 소년합창단으로 만들어낸 선생님의 이야기가 아름다운 음악과 함께 감동을 안긴다. 그러나 단순한 음악영화로 보면 안 된다. <코러스>는 현재 우리들의 문제- 빈부 격차, 버려지는 아이들, 추락한 교권- 을 어떻게 할 것인가 묻는다. 국회의원들에게 보여줘야 하는 영화고, 촌지받는 선생님들을 다 모아서 보여줘야 하는 영화다. 한국이 경제대국으로 성장했다는데, 고아 수출국 1위다. 아이 버린 사람들에게도 보여줘야 한다. 그리고 학생 입장가! 아이와 어른 모두 볼 수 있는 영화다.

 

 

 

오늘날 월드뮤직의 모태가 된 O.S.T

그리스가 낳은 천재적 음악가들

<Music For Films>
테오 앙겔로풀로스 영화의 영화음악 모음집/ 음악 엘레니 카리인드루

키에슬로프스키와 앙겔로풀로스, 이 두 감독을 제일 좋아한다. 이 사람들 영화는 다 봤다. 지난번 씨네큐브에서 (앙겔로풀로스의) 전작 시리즈를 할 때도 가서 하루에 하나씩, 다 봤다. 상업성이라곤 없이 예술성을 추구하는 위대한 감독들이다. <왕의 남자> 이런 거 보는 사람들은 막 짜증낼 수도 있다. 왜 이런 영화들을 좋다고 그랬는지. 한 3차원쯤에서 영화를 만들고 있는 것 같다. 영화 속에 철학이 담겨 있고, 장면 하나를 딱 떼어내면 훌륭한 그림이 된다. 영상작가인 거다. 대사는 거의 시고. 최근작 <흐느끼는 초원>도 너무 감동적이었다. 아들과 남편을 전쟁터에서 잃은 미망인의 이야기다. <태극기 휘날리며>와 배경은 같다. 한국과 그리스는 비슷한 데가 많으니까. 외침도 많이 받았고, 이데올로기의 희생양이 됐고. 마지막 장면에서 여자주인공이 아들과 남편 시신 앞에서 비명을 한마디 콱 지르면서 끝나는데 소름이 막 돋는다. 너무 감동적이고 슬퍼서. 그런 게 영화 만드는 기술인 것 같다. 한국영화 보면 배우들이 미리 다 울어버리지 않나. 그래서야 관객이 울 시간이 없다. 앙겔로풀로스에게는 엘레나 카라인드루가 있다. 그리스의 천재적인 영화음악가다. 여성의 슬프고 섬세한 음악이 영화 속의 슬픔을 극대화한다. 이 여자가 없었으면 앙겔로풀로스가 오늘날의 지위를 차지하지 못했을 거다. 음악이 반은 해준 거다. 이 앨범은 숙명의 짝인 이들 콤비의 영화음악 모음이다. <안개 속의 풍경>의 주제곡 <아다지오>를 비롯해서 <비키퍼> <시테라 섬으로의 여행> 등에서 나온 카라인드루의 곡들이 들어 있다. <엘리제 포 로자>는 그녀가 직접 노래한 유일한 곡이다.

 

<흑인 오르페> Orfeu Do Camaval
1959년/ 감독 마르셀 카뮈/ 음악 루이즈 본파,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

그리스 신화 오르페우스와 유리다스 이야기를 모티브로, 프랑스 감독 마르셀 카뮈가 브라질에 가서 만든 영화다. 영화를 못 봤어도, 주제곡 <카니발의 아침>은 들으면 다 안다. 이 영화를 통해 세계적 스탠더드가 된 음악이다. 루이스 본파,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이 함께 음악을 했다. 낙천적이고, 카니발을 하고, 음악이 너무 좋은 나라 브라질을 세계에 알렸다. 보사노바, 삼바, 오늘날 워낙 유명하지 않나. 이 영화를 보고 스탄 게츠 같은 사람들이 브라질 음악을 알게 됐고, 근래 <댄서의 순정>까지 브라질 음악이 나오게 된 셈이다.

 

<희랍인 조르바> Zorba The Greek
1964년/ 감독 마이클 카코야니스/ 음악 미키스 데오도라키스

음악으로 보자면 <희랍인 조르바>도 굉장히 히트했다. 세계의 유명 밴드들은 한번씩 다 리메이크했던 곡이니까. 명곡이 된 거다. <흑인 오르페>가 브라질 음악을 세계에 알렸다면, <희랍인 조르바>는 그리스 음악을 알렸다. 데오도라키스라는 그리스 국민음악가의 힘과 명배우 앤서니 퀸이 콤비네이션을 이뤄서 오늘날 월드뮤직 부흥의 모태를 이뤘다. 그리스라는 나라가 세계 문명의 발상지이자 철학의 나라임을 유감없이 보여주는 영화다. 데오도라키스의 제자인 코스타스 파파도폴로스가 신들린 듯한 부주키(기타처럼 생긴 그리스 악기) 연주를 들려준다.

 

<페드라> Phaedra
1962년/ 감독 줄스 다신/ 음악 미키스 데오도라키스

<흑인 오르페>와 마찬가지로 그리스 신화를 모티브로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그렸다. 여주인공 멜리나 메르쿠리는 가수이자 배우로 그리스의 국민스타다. 남자주인공은 <싸이코>의 앤서니 퍼킨스가 맡았다. 연상의 여자와 연하의 남자의 대비, 이루어질 수 없는 슬픈 사랑이 좋았다. 역시 데오도라키스가 음악을 담당했는데 <희랍인 조르바> O.S.T와 함께 그의 양대 역작으로 불린다. <페드라 사랑의 테마>는 멜리나 메르쿠리가 직접 노래했다. 내용은 ‘옛날 그리스 신화에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 있었는데…’ 이런 것이다. 비극의 끝이 곧 오리라는 것을 암시한다. 라스트신은 앤서니 퍼킨스가 자동차를 타고 자살하는 장면이다. 앤서니 퍼킨스가 카오디오를 맥시멈으로 올려놓고 바흐 음악을 들으면서 ‘굿바이 존 세바스천’ 이렇게 비명을 지른다. 차가 굴러떨어진다. O.S.T에 음악, 목소리, 차 부서지는 소리가 생생하게 들어 있다. 영화 본 사람은 당시 소름끼쳤던 장면이 생생하게 떠오를 거고 안 본 사람은 영화가 보고 싶어질 거다.

 

 

쓸쓸한 러브스토리로 유명해진 O.S.T

세상 끝의 슬픔 그리고 고독

<부베의 연인> La Ragazza di Bube
1963년/ 감독 루이지 코멘체니 / 음악 카를로 루스티첼리

대학 다닐 때 ‘BB냐 CC냐’ 하는 말이 있었다. 브리지트 바르도와 클라우디아 카르디날레, 둘 중 누구를 좋아하느냐는 거다. 그럴 정도로 이 두 여자가 세상 뭇 남자를 사로잡았는데 나는 CC의 팬이었다. CC는 청순가련형이고 BB는 막 벗는 스타일이라 CC의 팬이 7 대 3 정도로 적었다. 나는 BB 좋아하는 애들과는 안 놀았다. 대개 불량학생들이고 공부도 못했거든. 많은 사람들이 예술과 외설의 차이를 얘기하는데, 꼭 필요한 부분에 알몸으로 나오는 건 예술이다. 금방 목욕했는데 5분 뒤에 목욕을 또 하면 그게 외설이다. 브리지트 바르도는 목욕을 자주 했다. 그래서 싫었다. 클라우디아 카르디날레는 딱 한번만 한다. 그래서 좋았다. 사춘기 때 내 마음을 사로잡은, 청초한 클라우디아 카르디날레의 모습이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부베의 연인>은 이 청초한 여인의 순애보다. 조지 차키리스라고, 당시 유명했던 배우가 부베 역을 맡았다. 부베는 말하자면 운동권 학생이다. 계속 데모하고 반정부 투쟁하고 피해다니면서 클라우디아 카르디날레를 항상 외롭게 한다. 그런데 이 여자가 예쁘니까 아까 말한 BB 좋아하는 애들이 들러붙어서 ‘부베는 가망없는 애다. 언젠가는 사형당할 수도 있다’면서 유혹한다. 다른 여자 같았으면 스스로 그 남자를 버렸을 텐데 그녀는 안 넘어간다. 정말 좋은 여자인 거다. 클라우디아 카르디날레가 매번 감옥으로 면회를 가는데, 기차를 타고 부베를 만나러 갈 때 기뻐하는 그 청순가련한 표정. 그 뒤로 이탈리아 음악가 카를로 루스티첼리의 주제곡이 쫙 깔린다. 이 음악이 청초한 순애보를 한층 업그레이드시킨다.

 

<미드나잇 카우보이> Midnight Cowboy
1969년/ 감독 존 슐레진저/ 음악 존 배리

지금은 죽고 없는, 존 슐레진저 감독의 명작이다. 배우 존 보이트를 세상에 알린 영화기도 하다. 영화의 압권은 더스틴 호프먼이다. 절름발이 노숙자를 연기했는데, 신들린 듯한 최고의 연기를 보여준다. 더스틴 호프먼은 이 영화에서 연기상을 못 받았다. <빠삐용>에서도 상을 못 받았다. 이런 영화에서 상을 안 주고 <투씨> 같은 후진 영화에서 상을 주다니, 아카데미의 권위를 다시 한번 의심할 수밖에 없다. 제목을 두고 ‘카우보이가 밤에 뭐 다닐 일 있냐’ 하는 우스갯소리도 하고 그랬는데, 어떤 소외된 청년, 우리나라로 치자면 어둠의 자식, 그런 뜻이다. 도시의 어둠과 자본주의의 실패를 보여주는 영화. 하모니카의 제왕 투스 틸레망의 연주도 들어 있고 주제곡은 해리 닐슨이 불렀다. 전체 음악 스코어는 007 시리즈의 존 배리가 담당했다. 음악도 좋고, 영화는 더 좋고. 보지 않은 사람에겐 꼭 추천하고 싶다.

 

<파리 텍사스> Paris, Texas
1984년/ 감독 빔 벤더스/ 음악 라이 쿠더

빔 벤더스는 영화감독 중에서 손꼽히는 음악광이다. 그 파트너가 또 라이 쿠더인 거고. 좋은 감독 옆에는 항상 이렇게 훌륭한 음악감독이 있다. 그들의 앙상블이 절묘한 빛을 발한다. 빔 벤더스가 방황하는 여인 나스타샤 킨스키를 아름답게 찍어냈고, 라이 쿠더의 처절한 슬라이드 기타가 채찍처럼 발목에 감긴다. 요부 스타일로 많이 나오는데다 삼류영화에 많이 나와서 나스타샤 킨스키를 좋아하지 않았는데 이 영화가 생각을 바꿔놓았다. 감독들이 장사하려고 그동안 너무 거지 같은 영화에 출연시켜서 그렇지, 이 여자가 너무 아름다운 여자구나 하고 생각했다. 주제곡과 <Cancion Mixteca>를 추천한다.

 

 

<라스베가스를 떠나며> Leaving Las Vegas
1995년/ 감독 마이클 피기스/ 음악 마이클 피기스

알코올 중독자와 창녀의 이야기를 너무 아름답게 승화시켰다. 이 영화가 없었으면 니콜라스 케이지도 없다. 엘리자베스 슈도 그 못지않게 잘된 캐스팅이다. 나스타샤 킨스키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이 영화 때문에 엘리자베스 슈를 좋아하게 됐다. 나는 나만 좋아해주는 여자가 좋지 창녀는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데 세상에 이렇게 아름다운 창녀가 있을 수 있나 싶더라. 재즈 뮤지션이기도 한 마이클 피기스 감독 자신이 음악까지 담당했다. 주제곡 <My One & Only Love>를 비롯한 <Angel Eyes> <It’s A Lonesome Old Town> 같은 곡들은 스팅이 불렀다.

 

 

 

록 마니아라면 필히 들어야 할 O.S.T

벽을 깨부수는 저항의 외침

<헤어> Hair
1979년/ 감독 밀로스 포먼/ 음악 맥 더모트

밀로스 포먼의 3대 명작 중 하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마데우스>를 알고, 마니아들은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도 알고 있지만 <헤어>는 모르는 사람이 많다. ‘헤어’는 히피들의 긴 머리를 지칭한다. 베트남전의 희생양이 된 미국 젊은이들의 이야기를 담은 반전영화인데, 군사정권 때 수입돼 국내개봉이 금지됐다. 체코 출신 밀로스 포먼은 내가 보기에 영화감독 중에서 음악을 제일 많이 아는 사람이다. <아마데우스>에서는 모차르트를 완벽하게 묘사했고 <헤어>는 사이키델릭 록 음악으로 채워져 있다. 클래식부터 록을 다 꿰뚫고 있는 거다.

존 새비지가 주인공인데, 오클라호마 농부의 아들, 그러니까 촌놈이다. 별달리 할 일도 없고 취직도 안 돼서 베트남전에 지원한다. 군대 가기 전, 그가 한 무리의 히피를 만나서 놀러다니고 대마초도 피우고 하는 장면이 몽환적으로 그려져 있다. 존 새비지가 입대한 뒤 여자친구가 그를 만나러 온다. 공식적인 면회는 안 되는 상황이다. 그들이 만날 수 있게 히피 친구가 존 새비지 대신 훈련소에서 잠깐 자리를 채워준다. 그런데 갑자기 베트남으로 가는 수송 비행기가 오는 거다. 조마조마한 마음에 보는 이는 손에 땀을 쥐고, 결국 친구가 어이없이 전쟁터에 끌려간다. 라스트신이 압권이다. 다른 감독 같았으면 장황하게 전쟁장면을 보여줬을 텐데, 밀로스 포먼은 한마디 설명없이 바로 무덤을 비춘다. 벌써 죽어서 묻힌 거다. 사람들이 <Let the Sunshine In>을 합창한다. 아무도 울지 않지만 보는 사람은 눈물이 난다. 왜 죄없는 젊은이들을 데려다 죽였냐고.

 

<토미> Tommy
1975년/ 감독 켄 러셀/ 음악 더 후

더 후는 비틀스에 버금가는 영국 록 그룹이다. <토미>는 더 후가 만든 록오페라를 영화로 만든 것이다.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소년 토미의 시점에서 인간 군상의 추악함을 고발한다. 순수한 마음을 가진 토미는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아도 그런 추악함을 더 잘 볼 수 있다. 토미가 성장하여 산 정상에 올라 만세를 부르는 장면으로 영화는 끝난다. 더 후의 리드 보컬 로저 달트리가 토미로 분했다. 감독 켄 러셀은 원래 촬영감독 출신이라 영상이 너무 멋지다. 화면이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 연결되는데 신기해서 눈을 뗄 수가 없다. 록 그룹이 직접 만든 음악이니 음악 자체는 말할 것 없이 좋다. 숨은 스타 찾는 재미도 있다. 엘튼 존, 에릭 클랩턴, 키스문 같은 유명한 카메오들이 등장한다. 에릭 클랩턴은 사이비 교주로, 엘튼 존은 핀볼 위저드로 나온다.

 

<핑크 플로이드의 벽> Pink Floyd: The Wall
1982년/ 감독 앨런 파커/ 음악 핑크 플로이드

박찬욱이 타란티노에게 영향을 받았다고 하는데 앨런 파커에게 더 영향을 받은 것 같다. 타란티노도 앨런 파커에게 영향을 받은 거고. 엽기적인 영화는 이 사람이 최고다. <핑크 플로이드의 벽>은 프로그레시브 록 그룹 핑크 플로이드의 컨셉 앨범 <The Wall>을 통째로 영화화한 것이다. <토미>와 마찬가지로 썩어가는 인간 군상을 그렸고 그것을 하나의 벽으로 생각했다. 가장 쇼킹한 장면은 학교를 소시지 공장으로 표현한 부분. 교복을 입은 아이들이 기계 위에서 뚝 떨어지면 소시지가 되어 나온다. 음악이 사람을 죽였다 살렸다 한다. 너무 슬펐다가 너무 격정적이었다가. 록 뮤지션인 주인공 핑크를 연기한 밥 겔도프는 실제로도 가수다. <Dark Side of the Moon>과 <The Wall>로 많은 이들을 그들의 음악에 빠지게 만든 핑크 플로이드의 이름을 더 널리 알린 영화이기도 하다.

 

<올모스트 훼이모스> Almost Famous
2000년/ 감독 카메론 크로/ 음악 Various Artists

카메론 크로 역시 음악을 좋아하는 감독이다. 음악영화 마니아들 사이에서 회자되는 영화지만, 국내 개봉이 안 돼서 못 본 사람들이 많다. 비디오나 DVD로 볼 수 밖에 없는데, 대여점에서도 구하기가 어려워 마니아들끼리 서로 돌려보고 그랬다. 밴드 따라다니는 그루피들과 어린 록 칼럼니스트의 이야기니까 음악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재밌을 수밖에 없는 영화다. 하루종일 음악 얘기하고 공연하고. 영화에서 그루피들이 LP판을 죽 넘기면 유명한 레코드들이 많이 지나가는데, 그런 거 보는 재미도 컸다. ‘저 판은 나도 있는 건데’ 하면서.

 

 

 

 

 

불안과 긴장을 배가시키는 O.S.T

신경쇠약 직전의 음악

<사형대의 엘리베이터> Frantic, Ascenseur Pour L’echafaud
1958년/ 감독 루이 말/ 음악 마일스 데이비스

좀 잘난 척하는 사람들은 ‘루이 말’ 하면 다 안다. 프랑스영화의 교과서 격으로 생각되는 감독이니까. 이 사람 역시 음악을 굉장히 많이 알았다. <사형대의 엘리베이터>는 그의 대표작인데 그는 이 영화를 만들면서 프랑스의 훌륭한 재즈 뮤지션을 다 놔두고 파격적으로 마일스 데이비스에게 음악을 맡겼다. 지금이야 마일스 데이비스를 모르는 사람이 없지만, 1958년이니 마일스 데이비스가 청년이었던 시절이고 아직 세계적으로 유명해지기 전이다. 그의 재능을 알아볼 만큼 루이 말은 음악에 조예가 깊었다.

젊은 남자와 사랑에 빠진 여주인공은 남편을 살해하고 그 죽음을 자살로 가장하려 한다. 연인은 치밀한 계획을 세우지만 의도하지 않은 사건이 일어나 상황을 긴박하게 몰아간다. 남자는 애인의 남편을 살해하고 도망치다 엘리베이터에 갇히고, 여주인공은 그를 찾아 밤거리를 헤맨다. 그들의 차를 훔쳐탄 또 다른 커플은 우발적으로 살인을 저지른다. 잔 모로가 여주인공 역을 맡아 긴박감 넘치는 연기를 펼쳤다. 지금은 할머니가 됐지만 좋은 영화에 많이 출연한 프랑스 배우다. 그리고 마일스 데이비스의 음악이 영화의 완성도를 높인다. 오싹오싹하게 느껴지는 그의 트럼펫 소리가 들려오면 보는 이는 더 으스스하고 공포스러운 기분을 맛본다. 루이 말이 노린 것이 바로 그 점이다. 마일스 데이비스의 연주는 그 자체로도 훌륭해서 영화 마니아들뿐 아니라 음악 마니아들도 영화를 보게 만들었으니, 두 마리 토끼를 잡은 셈이다.

 

<웨스턴> C’Era Una Volta Il West
1968년/ 감독 세르지오 레오네/ 음악 엔니오 모리코네

세르지오 레오네는 마카로니 웨스턴의 창시자다. 이 이탈리아 감독은 존 웨인만 알고 있던 사람들에게 이런 스타일의 서부영화도 만들 수도 있다는 걸 보여줬다. 예를 들면 결투장면을 클로즈업해 보여주는 것이 굉장히 인상적이다. 미국 서부영화들은 롱숏으로 누가 먼저 쏘나 하고 한 화면에 다 담아버리는데, 레오네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얼굴을 풀숏으로 탁 잡아, 보는 이에게 더 큰 긴장을 안긴다. <웨스턴>은 그의 황금기 작품. 헨리 폰다, 찰스 브론슨이 냉정한 총잡이로 출연했다. CC, 클라우디아 카르디날레도 나온다. 무관의 제왕 엔니오 모리코네의 음악이 영화의 백미다. 그는 레오네가 <황야의 무법자>를 만들 때부터 함께해왔지만 그중에서도 <웨스턴>의 음악이 가장 아름답다. 특히 에다라는 여성 보컬이 노래하는 <Finale>는 몹시 슬프고 처절하다.

 

<트윈픽스> Twin Peaks: Fire Walk with Me
1992년/ 감독 데이비드 린치/ 음악 안젤로 바달라멘티

컬트영화를 좋아하는 이들에게 데이비드 린치는 두말 필요없는 사람이다. 개인적으로는 데이비드 린치 영화 중에서 <엘리펀트 맨>을 가장 좋아한다. 이 감독은 최근 이상한 영화만 만들고 있지만, 이미 그렇게 좋은 영화를 옛날에 만들었으니 용서할 수 있다. <블루 벨벳> <광란의 사랑> <로스트 하이웨이> <멀홀랜드 드라이브> 등의 영화에서 린치와 줄곧 함께해온 안젤로 바달라멘티의 음악이 공포감을 배가시킨다. 줄리 크루즈라는 여가수가 부른 <Nightingale> <Into the Night> <Falling>, 이 세곡은 영화의 몽환적인 분위기와 잘 맞는다. 노래도 아름답고, 창법이 독특해 사람을 빨아들이는 듯하다.

 

 

<미드나잇 익스프레스> Midnight Express
1978년/ 감독 앨런 파커/ 음악 조르지오 모르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앨런 파커의 대표작. 그가 아니고서는 만들 수 없는 영화다. 터키 여행 끝에 얼마 안 되는 마약을 반출하려다 종신형을 받고 터키 감옥에 갇힌 윌리엄 헤이즈의 이야기로, 지옥 같은 감옥에서의 사건과 그의 극적인 탈출이 긴장을 놓지 못하게 한다. 조르지오 모르더의 신시사이저 음악이 불안을 더한다. 그의 음악은 영화 이상으로 히트해서 O.S.T도 많이 팔렸다. 판에 주제곡의 보컬 버전도 실려 있고. 지어낸 이야기라면 별거 아닐지 몰라도, 실제 일어난 일이라 생각하고 보면 너무 충격적이다. 더 재밌고. 당시 아직 감독 데뷔 전이던 올리버 스톤이 이 영화의 각본을 써서 아카데미 각색상을 받았다.

 

 

<출처 : 씨네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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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아트시네마에서 장 뤽 고다르 특별전을 한다는 얘기는 언젠가 들었는데

오늘이 마지막날인데다가 때마침 외출 시간이 맞어서 '즐거운 지식'을 보게 되었다.

원제는 Le Gai Savoir/Joyful Wisdom/Die froehliche Wissenschaft .

예전에 청하판으로 나온 니체의 책을 읽은 기억을 더듬어 보았으나 사실 니체랑은 별 상관없었다-_-;;

사이트에 실린 영화소개를 옮겨보면 이렇다

<에밀 루소와 파트리샤 루뭄바는 소리와 이미지의 관계, 그것들이 대중에게 끼치는 영향을 분석한다. 소리와 이미지 분석은 자연스럽게 텔레비전과 영화, 언론과 정치에 대한 토론으로 이어진다. 텔레비전에서 제작을 의뢰했으나 1968년 5월을 겪은 후 방영을 거부당한 이 영화는 <중국 여인>과 함께 ‘지가 베르토프 집단’ 영화의 모태가 된다.>


지가 베르토프 집단이라... 1968년 5월 혁명을 겪은 고다르가  당시 유력한 학생운동 지도자와 함께

만든 영화집단의 이름이란다.  이 집단은 혁명 영화의 생산과 제작, 배급을 선언하며 자본에 대항하는

급진적 영화 만들기를 모색했다 하는데, 과연 온갖 이미지(와 그 위의 문자들)와 소리가 정말

전위적으로 난무하는 가운데 맑스-레닌, 마오, 문화혁명 등의 말들을 심심치 않게 접할 수 있다.

영화는 시종일관 에밀 루소라는 남자와 파트리시아 루뭄바라는 여자가 계속 온갖 종류의 이미지와

소리들과 함께 대화를 나누면서 진행된다.  혁명의 열기가 아직 식지 않았을 그 무렵의 시위 구호가

아무런 이미지없는 화면에서 소리만으로 울려퍼지거나 아무런 관련이 없어보이는 단어들을 연속해서

들려주기도 하고, 아무 소리없이 제3세계의 참상을 다룬 사진들, 마오의 초상, 또는 만화의 한 컷,

데리다나 기 드보르의 책 표지(스펙타클의 사회) 등등이 휙휙 지나가기도 한다.

초반에 사물과 현상 그리고 그 둘의 내적 관계로서의 이미지 어쩌구 하는 얘기가 나오다가 이미지와

소리 간의 관계, 그 각각의 특성들, 그리고 막간의 인터뷰 등을 통해 언뜻 흥미있는 생각거리를

던져주기도 하는데, 무분별하고 무질서해보이는 나열과 병치 속에  의미와 비의미의 경계는 아슬아슬하다.

일단 영화가 워낙 정신없이 훌훌 지나가서 제대로 보지 못한 것이 아쉽다. 자막 따라가기도 벅차서

막상 영상에 관심을 많이 못 쏟기도 했고...  확실히 느리고 완만한 성찰의 여지보다는 이미지와 음향의

즉각적인 물질성이 영화에서는 주도적으로 나타난 듯 하다.

정신없이 90여분을 보고 난뒤 든 첫생각은 아..  영화를 이렇게 찍을 수도 있구나 하는 멍한 생각 정도.

왜 근데 제목이 즐거운 지식인가? 에밀 루소라는 다소 작위적인;; 이름이 뒤로 들여오는 계몽의 뉘앙스,

또는 그들이 이야기하는 문화혁명의 토대(대학을 학생에게! 아니 대학을 노동자에게!),

아님 이미지와 소리들을 모으기/그것들을 비평하기/이미지와 소리의 두어가지 모델을 설정하기

라는 순서로 이어지는 그들의 (영화)학교와 관련되기 때문일까?

그건 그렇고 그 뒤에 다시 상업영화로 복귀한 고다르가 영화와 혁명 사이에서 생각했던 것은 뭐였을까?

기술복제시대 속에서 사진이나 영화를 혁명적 역량의 매개가 될 수 있다고 본 벤야민 같은 사람이

있는가하면 비슷한 시대에 극장에 앉아서 똑같은 영화를 보고있는 대중들을 보고 도롱뇽 같다고

무시한 아도르노도 있었으니...  상식과 관습을 깨부순 이미지-소리의 극단적 실험과 자본주의(및 자본

주의적 배급망)에 대한 거부 속에서 그가 본 것은 과연 무엇일지...

뜬금없게도  "우리는 제로(0)에서 시작해야 한다"는 등장인물의 대사, "빗자루로 쓸지 않으면

먼지는 스스로 없어지지 않는다"라는 말은 왠지 기억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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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자씨가 여성관객에게 어필하는 것

     
영화 <친절한 금자씨>

김윤은미 기자
2005-08-01 21:03:50


<기사를 보고 영화를 보면 재미가 덜할 수 있습니다. -편집자 주>


개봉 전부터 관객들의 호기심을 사로잡더니, 개봉 후에도 수많은 평들이 쏟아지고 있는 영화 <친절한 금자씨>. 이 영화는 대작에 기대하기 쉬운 기승전결로 꽉 짜인 플롯을 피하고 인물들의 소개장면과 에피소드 나열로 사건을 이어나간다. 블랙코미디적인 유머와 정확한 비유를 사용해 만든 장면과 에피소드가 이 영화가 갖춘 미덕인 듯싶다. 영화는 복수를 하는 금자씨와 그녀 주위인물들의 면면을 다면체처럼 잘게 부수어서 조합함으로써 상당한 여운을 남긴다.

관객의 몰입 방해하며 복수 정당화

<친절한 금자씨>의 전반부는 가볍고 경쾌하다. 어린이 유괴 및 살인사건으로 감옥에서 13년을 살아온 금자씨는 출옥 후 백선생에 대한 복수를 하기 위해 감옥에서 알게 된 여자동료들을 찾아간다. 방북으로 유명한 임수경씨의 조언을 얻었다고도 하는데, 감옥의 여성 인물들은 상당한 관찰력을 바탕으로 하여 만들어졌다. 남편과 동반으로 은행 강도를 저지르다 감옥에 들어온 여자, 불륜을 저지른 남편과 상대 여자를 죽여서 고기를 먹어버렸다는 여자, 출옥 후 감옥에서 배운 기술을 이용해 남자의 목을 들고 있는 여자 조각을 주문 제작하는 여자도 있다. 그녀는 고운 목소리로 “여자 손님들이 좋아해”라고 말한다.

<올드보이>에 비해 <친절한 금자씨>는 여성관객에게 어필하는 면들을 상당히 많이 가지고 있다. 여성들이 독하게 마음을 먹고 합심해서 금자씨의 복수를 돕는다는 설정도 그러하다. 자칫 지나치게 잔인하다는 느낌을 줄 수 있는 면면들임에도, 어이없을 정도로 진지한 나레이션과 빠른 전개, 코믹한 설정들이 영화에 깊이 몰입할 수 없도록 방해한다.

특히 금자 역을 맡은 이영애의 하얗고 맑은 얼굴과 천사 같은 미소는, 생과 사를 넘나드는 심각한 장면에서 느닷없이 등장해 상당히 큰 효과를 발휘한다. 금자씨의 얼굴에서 빛이 나오도록 하는 화면 처리나, 신장을 기증하는 상황에서 자신이 들은 대로 웃으면서 욕을 지껄이는 장면 등이 그것이다. 감옥에서 동료를 성적으로 착취하는, ‘마녀’라 불리는 여자에게 착한 얼굴로 밥을 먹이면서 락스를 뿌려대는 장면은 압권이다.

심각한 상황에서도 웃지 않을 수 없게 만들지만, 웃음의 말미에 씁쓸함을 집어넣는 블랙코미디를 운용하는 캐릭터. 금자씨의 캐릭터는 새로운 여성 캐릭터를 원한 관객이라면 환영할 만한 매력적인 구석이 있다. 출옥 후 착하게 살라고 말하는 목사가 내미는 두부를 “너나 잘하세요”하며 무표정하게 엎어버리는 장면이나, 연하의 남성과 성관계를 가진 후 담배를 피우는 장면 등은 관습적인 이미지들을 패러디 해 웃음을 전달하면서도 그 자체로 멋지다.

영화에서 복수가 진행되는 후반부는 전반부의 경쾌함에서 돌변해 심각하게 진행된다. ‘여성’과 ‘복수극’의 조합에서 특별한 화학작용을 기대하는 관객이라면 만족할 듯싶다. 여성복수극은 자칫 여성이 복수 임무를 대행하는 수준에 머무를 수 있는데 <친절한 금자씨>는 그렇지 않다.

복수의 대상 백선생의 캐릭터는 일반적인 ‘마초 아저씨’다. 어렵게 자신을 찾아온 금자씨에게 백선생은 목욕한 후 가슴 털을 그대로 드러낸 채 문을 열어준다. 그는 밥을 먹다가 식탁에 부인을 눕히고 섹스를 한 후 다시 밥을 먹는 동물적인 인간이자, 죽기 직전의 상황에서도 “모든 인간은 완벽하지 않아요”하고 서슴없이 변명할 줄 아는 인간이다. 위악적이다 싶을 정도로 선명한 백선생의 면모는, 여성의 경험에서 종합되는 남성의 불쾌한 면모들이 조합된 듯하다.

복수의 윤리보단 현실의 부조리 드러내

‘복수 3부작’이라는 박찬욱 감독의 표명, 영화 곳곳에서 ‘속죄’를 외치는 이영애의 대사 등으로 인해 복수의 윤리학 등 철학적인 수준에서 영화를 읽어내려는 시도들이 많다. 하지만 이 영화가 플롯 상에서 던지는 속죄에 대한 고민은 그다지 깊지 않다. 우선 금자씨는 매우 손쉽게 자신의 복수를 달성한다. ‘악인’ 백선생은 관객들에게 윤리적 고민을 던져주기에는 고민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악하다. 금자씨의 정의감이나 백선생의 악함은 관객에게 고뇌를 던져주기보다는 순간적인 충격을 전달하는 장치에 가깝다.

백선생을 처벌하는 방식에 대해서는 애거사 크리스티의 <오리엔탈 특급 살인사건>을 떠올릴 수 있다. 소설에서는 어린애를 유괴해서 돈을 뜯고 다녔던 악인 카세티를, 피해자의 부모와 친지들이 공동으로 살해한다. 카세티는 악인인 데다가 경찰에 넘겨도 처벌 받기 어려운 상황이다. 카세티에게 복수한 이들은 교양 있고 선량한 시민들이자 버젓하게 사회적 위치를 갖춘 인물들이다. 이들의 복수는 소설 속에서 정당한 것으로 인정된다.

<친절한 금자씨>에서의 복수는 그보다 한 발 더 나아간 수위에서 정당성을 확보하려 한다. 백선생을 경찰에 넘길 수도 있었지만 이들은 법에 대한 환멸과 증오심 때문에 자신들이 직접 처리하기로 결정한다. 그러나 이들의 복수는 정의감보다는 삶의 부조리함이 느껴지는 페이소스를 풍긴다. 억지로 돈을 벌어서 자식을 백선생의 영어학원에 보냈다며 한 여자가 억울함을 호소하자, 또 다른 여자가 조용하게 “그런 사연 없는 부모가 어디 있나”라고 대답하는 장면이 그 예다.

감옥 속 여성 캐릭터들처럼, 사람들의 삶에서 관찰되는 현실의 부조리한 측면들이 이 복수의 면면에도 붙어있다. 그래서 복수가 끝나고 나서도 사람들의 표정은 그다지 후련하지 않다. 이들이 생각해 낸 것은 백선생의 돈을 빨리 나누어달라고 계좌를 적어주는 것인데, 그 순간 천사가 지나가는 듯 엄숙한 침묵이 흐른다. 마치 악에 대한 복수, 자식에 대한 사랑 같은 숭고함과, 복수에 대한 책임 회피 같은 비루함이 삶 속에 공존하고 있다고 말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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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 2006-12-26 16: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박찬욱의 영화를 보다 보면 이 사람이 너무 장난기를 주체 못 하는거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특히 친절한 금자씨가 그랬는데...
 
 전출처 : waits > [레디앙]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공산당도 외면한 낭만적 마르크스주의자

 

공산당도 외면한 낭만적 마르크스주의자
[세계의 사회주의자-23]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1988년 제60회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는 영화 <마지막 황제>로 감독상을 수상했다. <마지막 황제>는 이탈리아인인 그가 활동무대를 할리우드로 옮기고 영어로 제작한 첫 번째 영화였다. 그리고 그는 엘리아 카잔 이후 30여년 만에 아카데미상을 수상한 마르크스주의자 영화감독이었다.

1941년에 태어난 베르톨루치는 유명한 시인이었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15살 때부터 시를 쓰기 시작했다. 20대를 시작할 무렵에는 이미 작가로 이름을 알려졌다. 또한 아버지를 통해 파올로 파졸리니를 알게 됐고 1961년에는 파졸리니의 조감독으로 영화계에 발을 들여놓았다. 이듬해에는 자신이 감독한 첫 작품 <냉혹한 사신>을 발표하면서 영화작가의 인생을 시작했다.

   
 

그러나 영화감독으로서 그의 이름을 사람들에게 각인 시킨 작품은 두 번째로 제작한 <혁명전야>였다. 1964년에 공개된 이 작품을 통해 베르톨루치는 자신이 낭만적인 마르크스주의자임을 공표했다.

동시에 소부르주아 계급 출신이라는 신분과 사상의 불일치에서 오는 불안감을 노출했다. 이는 이후 오랫동안 그의 영화에서 반복된 주제이기도 하다.

이탈리아 마르크스주의 영화작가의 계보

베르톨루치는 이탈리아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혁명의 열정으로 충만했던 1968년에 이탈리아공산당PCI에 입당했다. 앞서 이야기한 파졸리니 뿐만 아니라 루키오 비스콘티처럼 ‘네오리알리스모’로 대변되는 이탈리아 영화계는 좌익의 영향이 강한 영역이었다. 그러나 베르톨루치는 이탈리아의 선배들만큼이나 이웃 프랑스의 좌익 영화작가 장 뤽 고다르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 영화뿐만이 아니었다. 그는 고다르처럼 당시 급진적인 청년들을 사로잡던 마오주의를 수용했다.

공산당에 입당한 베르톨루치는 정치적인 영화를 만드는데 그치지 않고 영화와 정치를 직접 결합시키기 위해 고민했다. 1971년 베르톨루치는 공산당계 노총인 이탈리아노동자총연합CGIL에 소속된 보건 노동자들의 도움을 받아 16밀리 흑백 카메라를 숨긴 채 로마의 공공병원에 잠입했다.

기독교민주당 시정부가 운영하는 공공의료시설의 열악한 환경과 의료실태를 몰래 촬영하기 위해서였다. 결국 30분 만에 들통이나 병원에서 쫓겨났지만 이 30분짜리 필름으로 베르톨루치는 <가난한 사람은 빨리 죽는다>는 미니 다큐멘터리 영화를 제작했다.

이 영화는 그해 로마 시의회 선거를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선거운동 중 공산당원들은 거리에서 즉석으로 영화를 상영했다. 이 영화는 그의 공식 작품목록에 기재되지 않았다.

이 시기에 제작된 두 편의 영화 <거미의 전략>과 <순응주의자>는 파시즘의 문제를 정면에서 다루었다. 각각 1970년과 1971년에 제작된 이 두 영화는 편집을 비롯해 영화 전반에 걸쳐 68년 혁명의 들뜬 분위기가 물씬 배어있는 작품이다.

   
  ▲ 영화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 포스터
 

이어서 공개된 영화가 그의 이름을 세계에 알리면서 동시에 수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킨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였다. 말론 브란도라는 대배우의 출연과 함께 적나라한 성적묘사는 이탈리아 국내뿐만 아니라 수많은 나라에서 상영허가여부를 놓고 논쟁이 벌어지게 만들었다. 우여곡절 끝에 스크린에 걸린 나라들에서도 대부분 검열당국의 가위질을 피할 수 없었다.

심지어 본국인 이탈리아에서는 상영은 고사하고 검열당국이 존재하는 모든 필름사본을 폐기할 것을 명령했다. 또한 법원은 베르톨루치의 공민권을 5년간 정지시키고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상영금지조치는 1986년까지 지속됐다. 이탈리아는 1970년에 이르러서야 이혼이 합법화될 만큼 가톨릭의 사회적 영향이 강한 나라다.

이때의 경험을 놓고 베르톨루치는 “나는 어떠한 형태의 검열에도 반대한다. 이는 내 인생에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주제다”라고 말했다. 그는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로 아카데미 감독상 후보에 올랐다.

할리우드는 논란에도 불구하고 그의 연출과 작품을 지지하는 듯이 보였다. 그러나 도덕이라는 이름의 검열과 싸워야 했던 그에게 이번에는 자본과 정치라는 다른 이름의 검열이 기다리고 있었다.

검열에 맞선 오래된 투쟁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에 이어 1976년 공개된 <1900년>은 여러 가지 의미에서 대작이었다. 일단 영화의 시공간은 1900년에서 시작해 이탈리아 북부가 파시스트들에게서 해방되는 1945년까지 계속된다. 그리고 이후의 이야기를 생략한 채 영화의 두 주인공이 노인이 되어 죽는 현재(70년대 후반)까지 이어진다.

이탈리아의 현대사를 관통하는 대하드라마인 만큼 등장인물의 수도 엄청났다. 배역도 로버트 드니로, 제라르 드빠르디유, 버트 랭카스터, 도널드 서덜랜드 등 미국과 유럽의 쟁쟁한 스타들로 채워졌다.

이 장대한 이야기의 촬영을 마치고 베르톨루치가 편집한 필름은 상영시간이 5시간 18분이었다. 도저히 극장에서 상영할 수 없다고 판단한 제작자는 임의로 3시간짜리 편집본을 제작했다. 제작자에 의해 영화가 훼손되는 것을 막기 위해 베르톨루치는 4시간 50분짜리 편집본을 만들어 대항했다.

결국 법원의 중재로 4시간 15분짜리 편집본을 만들기로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미국배급을 맡은 파라마운트가 4시간 15분도 너무 길다며 배급포기를 선언했다.

   
 ▲ 영화 <1900년> 포스터
 

영화가 깐느에서 공개되고 호평을 받자 미국 내에서도 개봉에 대한 요구가 커졌다. 우여곡절 끝에 파라마운트는 영화를 배급했지만 홍보를 거의 하지 않는 등 의도적으로 흥행실패를 유도했다. 평론가들은 “파라마운트가 <1900년>의 미국 개봉을 막기 위해 개봉했다”고 분석했다. 베르톨루치는 90년대 들어 5시간짜리 감독 편집판을 복원했다.

<1900년>의 고난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이 영화는 같은 날 지주의 아들로 태어난 알프레도와 소작농의 아들로 태어난 올모, 두 친구를 통해 이탈리아 현대사를 되돌아보는 시도였다.

올모는 공산주의자로 반파시스트 빨치산이 되고, 알프레도는 신분과 상황에 밀려 파시즘을 돕게 된다. 그리고 그들 사이에는 농장 관리인 출신이며 자발적인 파시스트인 아틸라가 있다. 마치 조정래의 '태백산맥'을 연상시키는 이야기 구조다.

베르톨루치는 이 영화를 이탈리아 공산당에 바쳤다. 그러나 영화의 마지막, 1945년까지 파시스트에 의해 점령돼 있던 이탈리아 북부가 해방되던 날 산에서 내려온 빨치산들이 파시스트의 앞잡이들을 체포해 인민재판을 여는 장면이 문제가 됐다. 그것도 다름 아닌 공산당에 의해서 말이다.

공산당은 1945년 당시 당은 인민재판을 지시한 적이 없으며 또한 실제로 재판이 일어나지도 않았다고 주장했다. 또한 공산당은 반파시즘 투쟁을 통해 지배계급을 전복할 의사가 전혀 없었다며 영화를 부정했다. 공산당 계열의 출판물들은 무시에 가까울 정도로 영화에 대해 침묵했다.

70년대 후반 이탈리아공산당은 독자적인 집권노력을 포기하고 기민당과의 대연정을 성사시킨다는 이른바 ‘역사적 타협’을 추진하고 있었다. 아무리 노력을 해도 선거에서 공산당이 다수파가 되지 못하는 현실과 설사 성공한다하더라도 칠레처럼 쿠데타가 일어날 것이라는 전망에서 나온 노선전환이었다. 그런 사정 속에서 부르주아의 심기를 건드리는 영화가 달갑지 않았던 것이다. 공산당 우파의 지도자였던 조르지오 아멘돌라는 공개적으로 <1900년>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선언했다.

이에 대해 베르톨루치는 “당신들은 1945년에 지배계급을 심판할 힘도 없었고, 30년이 지난 지금에는 영화 속에서 처단 장면을 보는 것조차 두려워한다”고 비판했다. 이 사건이 계기가 됐는지 그는 1978년 무렵 탈당했다. 베르톨루치는 후에 공산당뿐만 아니라 부패와 냉소주의가 만연한 이탈리아 자체를 참을 수 없었다고 고백했다.

과거를 부정하는 공산당에 실망

<1900년>으로부터 10년 뒤 베르톨루치는 중국으로 날아갔다. 중국 당국이 할리우드 자본에 자금성 촬영을 허용한 것은 그의 마오주의 배경과 인맥 덕분이라는 이야기가 나도는 가운데 <마지막 황제>는 <1900년>보다 더 큰 규모로 제작됐다. 당시에는 영화 속에서 묘사된 중국혁명, 문화혁명 등을 통해 여전히 베르톨루치가 정치적인 주제를 다루고 있다는 분석이 주를 이뤘다. 그러나 이미 그의 시선은 동양적 신비주의에 경도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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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황제>이후 그의 영화 경력은 종종 오리엔탈리즘이라는 비판을 들을 정도였다. 티벳불교를 다룬 <리틀 부다>에 이르러서는 그가 마르크스주의를 버리고 불교에 귀의했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였다. 확실히 그의 시선이 60~70년대의 영화들과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은 영화 외의 부분에서도 드러났다. 지난 2004년 한 인터뷰에서 그는 “나는 영화에 메시지를 담아 전달하지 않는다. 그건 우체국의 역할이다”고 밝혔다.

90년대 후반, 새로운 천년을 앞두고 베르톨루치는 두가지 계획에 대해 자주 언급했다. 1945년으로 이야기가 끝난 <1900년>의 후속편을 찍고 싶다는 것과 그에 앞서 68년을 다룬 영화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그는 “요즘 젊은이들은 68년의 아이들이야말로 자신들의 부모 세대임에도 그때 무슨 일이 있었고, 우리가 어떤 희망을 품고 있었는지 너무 모른다. 요즘 아이들과 함께 영화를 통해 이상과 반항의 68년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소망을 자주 내비쳤다.

아마도 지난 2003년 개봉한 <몽상가들>이 바로 ‘68년으로 돌아가기’에 해당하는 작품이었을 것이다. <몽상가들>을 완성하고 나서 그는 60년대를 이렇게 회상했다. “젊은 우리들은 그 시절 미래에 대해 확신했고 희망을 이해하고 있었다. 그랬기에 우리는 세상을 꿈꾸고 또 바꿀 수 있었다. 요즘 젊은이들에게 빠진 것이 이런 상상력이다.”

이 영화를 통해 베르톨루치는 오랜 우회 끝에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에서 다룬 주제와 장소(파리)로 돌아왔다. 이제 그에게 남은 다른 반쪽의 계획은 1945년 이후 이탈리아의 현대사, 특히 60년대 격동하는 이탈리아에 관한 영화다. 그리고 그 영화는 무엇보다도, 감독 자신의 이야기가 될 것이다.

2006년 12월 11일 (월) 13:27:08

장석원 객원기자 badiera@redian.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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