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의 대북, 조선의 경성, 만주의 대련 신경 등지에 세워진 일본 제국 시기의 건축물과 건축가 집단, 당시의 건축 자재 생산 및 수송 등에 이르는 제반 사항들을 심도 깊게 연구 고찰한 책으로, 저자의 2008년작인 日本植民地建築論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일제 시기 건축을 다룬 국내 저작에서는 잘 나오지 않는 대만과 만주의 건축까지 섭렵할 뿐만 아니라, 건축가들의 학맥 인맥 관계 등등 '내부의 사정'을 알 수 있다.
읽다 보니 만주국에서 조선은행이 은행권도 발권하면서 꽤나 세력을 키웠던 것으로 나오고, 당연히 대련, 봉천, 장춘 등지에 지점도 세우고 했던데, 당시의 지점들은 한국은행이 중국 정부로부터 돌려받을 수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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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과 소개글을 보면 페미니스트로서의 정체성을 가진 학인이 유교/유학을 공부하면서 치열하게 고민하고 공자의 오래된 가르침이 현대에도 가치가 있음을 밝혀주고 뭐 그러면서 독자로 하여금 꼼짝없이 기존의 관념을 타파하지 않을 수 없게 해버리는 꿀잼(?)을 줄 것이라고 예상했으나 ...
대학을 자퇴한 뒤 인문학 공부 모임에서 동양철학 공부를 시작하고, 그러다가 몇 명의 친구들과 공동체를 만들어 활동하다가 접고 하는 과정을 적어나간 젊은이의 에세이 쪽에 가까웠다. 간혹 나오는 논어 구절에 대한 풀이나 공자와 제자들에 대한 시각의 날카로움은 역시 학문 공동체를 직접 만들고 그 속에서 치열하게 살았던 사람이라 가능하지 않았을까 싶다. 언젠가 저자의 체험에서 나온 통찰이 좀더 깊이 쌓인 작업물을 보고 싶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분발하지 않으면 열어주지 않고 애태우지 않으면 말해주지 않는다. 한 귀퉁이를 들어주었는데 남은 세 귀퉁이를 헤아리지 않으면 다시 일러주지 않는다."
계발(啓發)의 어원이 되는 이 문장은 교사로서 공자의 교육관을 엿볼 수 있는 문장이다. 신분 구분이 있던 시절, 공자는 파격적으로 자신을 찾아오는 사람이면 신분에 차등을 두지 않고 다 받아주었다. 오히려 그의 기준은 ‘얼마만큼 공부에 진심이냐‘에 있었다. 마음에 무언가가 가득 차 있는데, 그것을 어찌 펼치면 좋을지 모르는 제자들에게 공자는 창구를 내주었다. 이것이 계발(啓發)의 ‘계(啓)‘다. 계(啓)는 손으로 문을 열어주는 모양이라, 이 문장에서는 왕성하지만 나올 방법을 몰라 분주하기만 한 것이 밖으로 나올 수 있도록 문을 활짝 열어주는 모습을 상상하게 된다. ‘발(發)‘은 활을 당겨 쏘는 모양으로, 곧이라도 터져 나올 듯하지만 아직 미숙하여 안달 나 있기만 한 것의 활시위를 당겨주는 모습이 떠오른다. - P128

공자에게 계발이란 출세를 위한 것도, 명예나 재산을 위한 것도 아니었다. 뜻은 있지만 자기 안에 갇혀 어쩔 줄 모르는 마음이 세상으로 뻗어나갈 수 있도록, 혼자서 안달복달하던 마음이 세상과 만나며 감응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이라고 봐야 한다. 그러니까 본래 《논어》에서 쓰인 ‘계발‘의 의미는 오늘날 자기 계발의 용법과 완전히 다르다. 오늘날 자기 계발의 초점은 자기 자신을 향해 있다. 그렇게 하면 진짜 뭔가 달라질 거라고, 더 나은 내일을 살 수 있으리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교에서는 내가 하는 말과 생각을 알아차릴 수 있는 건 오직 관계를 통해서 가능하다고 말한다. 주위 의 관계 없이 혼자 꼿꼿하게 서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은 환상에 가깝다. - P129

공자의 충(忠) 역시 마찬가지다. 충(忠)과 서(恕)는 각각의 의미보다 이 둘이 서로를 필요로 하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라는 점이 중요하다. 서(恕) 없이 충(忠)은 불가능하다. 상호성을 맞이한 뒤에야, 그러니까 이로운 상황이든 불리한 상황이든 나의 마음을 상대의 입장에 위치시킬 줄 안 뒤에야 자기 진실성은 가능하다. 공자식 자기 계발은 시장이나 상품성이 아니라 주위의 사람들에게 스스로를 비추어 보는 것, 우리가 서로에게 의탁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고 그 자장에서 성찰하고 움직이는 것, 그럼으로써 스스로에게 진실되고 충실해지는 것을 의미한다.
공자식으로 말하자면 오히려 우리는 적극적으로 자기 계발을 해야 했다. 그것은 나만의 뛰어난 점을 부각해서 자랑하는 것이 아니고, 그간 내가 배워왔던 것을 부정하는 것도 아니다. 물론 시장에서 우리는 판매되어야 했지만, 팔린다고 꼭 자본주의에 최적화된 인간이 되는 것은 아니다. 성과를 내는 과정은 우리가 고립되지 않고 세상과 만나 감응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스스로에게 충실하고 서로에게 의지함으로써 자본주의에 매몰되는 대신 새로운 다른 길을 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우리가 글을 쓰고 세미나를 조직하는 과정은 서로에게 부단히 기대는 과정이기도 했다. 우리는 누군가의 글이 완성될 때까지 성심성의껏 서로의 마감을 독촉했고, 매번 안경을 고쳐 쓰며 멤버들의 글이 골격을 갖추어가는 과정과 부적절한 표현을 수정하는 과정에 동참했다. 세미나 진행을 위해서는 다른 멤버들이 함께 움직여줘야 했다. 서로 겹치지 않는 시간대를 잡기 위해 양보하고, 커리큘럼을 함께 검토하며 책을 추천하고, 세미나 규모가 커지면 함께 들어가서 공동으로 튜터 역할을 하기도 했다. - P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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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이자 국문학자인 저자가 주역을 읽으면서 서른 개의 괘에 대해 쓴 수상록. 이 분야 관련서들이 기존 주석서를 풀이하거나 괘와 효의 뜻을 풀이하는 책들이 보통인데, 국문학자의 시선으로 읽다보니 새로운 시각과 다양한 문학작품의 예화들이 등장하여 이채로웠다.

이를테면 저는 『주역』이라는 거울을 제 출구 찾기의 한 작은 도구로 사용하고 싶은 것입니다. 답답하거나 무료할 때 마음에 드는 한 구절을 읽고 제 일상을 반추해보는 것입니다. 그 방법을 간단히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육효에 대한 각각의 해석을 읽어나가면서 특별히 심금을 울리는 것이 있으면 그것을 부여잡고 은근하게 음미합니다. ‘은근하다‘라는 말은 ‘기분에 지지 않고 음미한다‘라는 뜻입니다. 육효의 형상적 연관성이나 그것들이 총체적으로 만들어내는 게슈탈트(전체 형상이 환기하는 직관적 의미나 정서)를 잡아내는 일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므로 그 일에 집착할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제 안의 움직임들을 놓치지 않도록 노력합니다. 텍스트에서 자극받아 환기되는 내 안의 움직임들 전체 속에서 하나를 찾고, 그 하나를 다시 전체로 확대해 긍정적인 에너지를 발산하는 어떤 ‘서사적 통일성‘을 찾습니다. 그 서사적 통일성이 거하는 맥락은 물론 스스로 처한 입장이며 물정과 잘 어우러져야 합니다. 그렇지 않은 것들은 모두 버립니다. 논리로 구하지 않고 직관이 할 수 있는 것을 최대한 찾아야 합니다. 만약 통일성을 외면하고 ‘한 줄‘이나 ‘한 자‘가 계속 자기를 주장하면 마지막에 그 ‘한 줄‘과 ‘한 자‘로 돌아갑니다. 그것만 거울에 비춥니다. 하나에 거합니다.

다만 ‘하나에 거할 때‘ 반드시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이 있습니다. 그 점을 망각하면 모든 것이 ‘꽝‘입니다. 어떻든 그 ‘한 줄‘이 나의 (허튼 망상이나 욕심으로 『주역』을 펼치는) 욕심과 기대와 희망을 반영한 것이라는 점입니다. 그 까닭에 교훈을 얻고자 하면 반드시 그것을 뒤집어야 합니다. 가령 ‘수뢰둔‘에서 ‘밀운불우(密雲不雨, 구름이 끼고 천둥은 치지만 비는 아직 안 온다)‘만 눈에 들어오면 그것을 "나에게도 언젠가는 기회가 온 다"라고 해석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하고 싶은 마음이 강하면 강할수록 "조만간에 큰비가(천둥 치고 번개 친 만큼) 올 터이니 단단히 대비하라"로 읽어야 합니다. 기대와 희망을 버리는 것, 바로 그것이 두 번 말할 필요가 없는 『주역』 해석의 ‘요결(要訣)‘입니다. - P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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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일본에서 출판된,

2. 도판이 많이 들어간,

3. 해당 분야를 가볍게 훑어볼 수 있는 개설서.


이런 류의 서적은 딱 집어들면 대충 감이 올 정도인데, 이 출판사에서 펴내는 시리즈의 하나로 들어갔나 보다.


한의학 분야에서 이 컨셉으로 나온 책 중에 그래도 꽤나 알차다, '교과서(내지는 부교재 정도라도)'로 그럭저럭 쓸 수 있겠다 싶은 책은 1970년대 즈음 學習研究社에서 나왔던 山田光胤, 代田文彦 등의 圖說 東洋醫學 같은 책이 대표적이라 하겠다. 이 책은 그에 비하면 아주 많이 소략한 아류작. 기혈진액의 진단 포인트로 여덟 가지 체질 경향성을 나누는 게 조금 눈여겨 볼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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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자나 2023-12-02 1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탈자 종종 나오고 … 특히 색인 … 말잇못 … 하아 …
 

















국민학생 때 서점에서 우연히 발견했던 강렬한 제목의 책, [사랑과 비즈니스에는 국경이 없더라]를 볼 때의 감동을 다시 느낄 수 있었다. 저자의 말대로 '차를 만들며 거의 동시에 공장을 세웠다는 것도, 또 자동차를 만들어 본 경험이 전혀 없는 사람들을 뽑아 훈련과 작업을 동시에 진행하며 임무를 완수했다는 것도' 그야말로 놀라울 수 밖에 없는, 될 때까지 무조건 해보던 시절의 이야기. 


   

   





이런 현대자동차의 모습에, 아라이 소장과 수행원들 사이에는 부정적인 공감대가 굳어졌고, 숙소로 돌아온 아라이 소장은 평소의 그답지 않게 무척이나 고민하는 모습이었다고 이노우에 주임이 전했다. 그날 저녁 대단한 주당인 이노우에 주임과 아라이 소장은 새벽까지 둘이서 술잔을 권커니 잣거니 하였는데, 당시 그들의 대화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았다고 한다.
"어이, 이노우에, 이놈의 회사에서 과연 엔진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자네 생각은 어떠한가?"
"글쎄요, 제대로 된 기계 가공을 해본 사람들 같아 보이지도 않고, 엔진 공장을 짓겠다는 장소는 갯벌인데 그 위에 과연 기계를 설치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설령 겨우 설치했다 한들, 지반이 흘러내릴 텐데 제대로 가공이나 할 수 있을까요?"
"허허, 참, 그러게 말이야 … 사장이 나더러 결정하라고 하니 이거 참 어쩌면 좋지?"
아라이 소장은 이미 대다수의 일행 사이에 굳어진 부정적인 시각에 수긍하면서도, 무슨 영문인지 이번엔 그답지 않게 주저하는 모습을 보이며 못내 아쉬워하더라는 것이었다. 이렇게 고민하던 다음 날, 경주를 관광하게 되었는데 이노우에는 이때 아라이 소장이 경주의 유적에서 매우 깊은 인상을 받은 것 같았다고 했다. 특히 에밀레종 앞에서 깊은 생각에 잠긴 듯, 한참을 서성거렸는데 그때 그의 얼굴은 무엇인가 결심한 듯 보였다고 했다.
그다음 날, 아라이 소장은 동행했던 모두의 앞에서 그동안 암묵적으로 동의했던 의견을 뒤엎고, 자신은 이제 현대자동차와의 기술제휴를 결심했다며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고 한다. 그의 입을 바라보고 서 있던 수행 기사들 앞에서, 그는 한국 조상들이 자기네 조상들보다 우수했으므로, 그 후손들인 한국 사람들도 잘만 가르쳐 주면, 엔진쯤은 반드시 잘 만들 수 있으리라 판단했다고 선언하더라는 것이다. 다들 눈이 휘둥그레졌지만, 그의 권위에 감히 도전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는 것이다. - P45

현대와 폭스바겐이 자본 제휴를 구체적으로 협의하기 시작한 것은 1978년 7월, 정세영 사장을 따라 본사의 기획실 간부와 내가 동행하여 볼프스부르크에 있는 폭스바겐의 본사에 찾아갔을 때였다. 현대는 당시 74년 형, 폭스바겐의 소형 전륜구동 차, 골프Golf가 맘에 들었다. 딱정벌레 모습으로 유명한 비틀Beetle의 후계 차량으로 나온 것이었다. 폭스바겐 측에선, 일본에 밀리지 않기 위해, 동양에서 일본과의 경쟁에 맞설 수 있는 가격대의 자동차를 만들 전진 기지가 필요했다. 이것이 바로 양사를 협의회장으로 이끈 동기였다.
폭스바겐엔 골프 외에도 파사드Passat와 아우디Audi라는 중형차가 있었는데, 포드에서 마크IV를 공급받지 못할 때, 후속 차로 걸맞은 모델들이었다.
또 골프보다 더 작은 차로 폴로 Polo, 더비Derby 등도 있었다. 6천 명의 인원과 2만여 평에 이르는 폭스바겐의 기술 센터를 방문해보니 여러 가지 최신형 모델의 자동차를 시험하고 있었는데, 당시 현대의 수준에서 볼 때 그들은 저 높이 까마득한 존재로서 언제 그들의 기술을 쫓아갈 수 있을는지 상상조차 힘든, 그야말로 산봉우리 같은 존재였다. 현대자동차는 폭스바겐이 가진 자동차 개발력의 뒷받침만 있다면, 일본과도 충분히 겨룰 수 있다고 생각했다. - P253

폭스바겐과 협의를 추진하던 중에도, 현대는 프랑스의 르노, 이탈리아의 란치아와의 협력 가능성에 대해 타진을 했다. 르노는 국영 회사였지만, 개인 회사인 푸조에 비하여 매우 경영이 잘되고 있었고, 전륜구동 차 개발에도 유럽에서 가장 앞선 회사였다. 그러나 기술 제공의 대가를 너무 많이 요구해, 홍정도 하지 못한 채 교섭은 결렬되었다. 란치아는 피아트의 자매 회사로 피아트의 고급 차종을 만들기도 하는, 기술 수준이 아주 높은 회사였다. 그러나 그들 회사가 당시 경영 위기에 처해 있었기 때문에 현대와 책임을 분담할 정도의 재정적인 투자를 하기는 힘들었고, 현대 또한 그들의 그런 조건은 수용키 힘들었다. 협상 시, 대부분 회사가 현대 측에 요구했던 공통점은 현대자동차의 경영 참여와 역할이었다. 그렇게 함으로써, 현대가 독자적으로 신기술 개발에 계속 투자하여 독립하게 되는 것을 억제하는 한 편, 오로지 값싸고 우수한 생산 인력을 이용하여 경쟁력 있는 차를 저렴하 게 생산함으로써, 당시 태양처럼 우뚝 솟아오르는 일본 차와 대결하게 하여 일본의 기세를 꺾어보자는 것이 그들의 주요 목적이었다. - P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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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자나 2023-04-08 14: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아하니 강명한 씨의 저작을 자식인 강태호 씨가 출판사 하나 차려서 다시 펴낸 것으로 보인다. 거창하게 말하자면 조상현창사업인 셈인데, 그러다보니 편집 등에서 뭔가 2프로 부족한 느낌. 이 정도면 펴내겠다는 출판사들 많았을텐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