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듀어런스 - 어니스트 섀클턴의 위대한 실패, 보급판
캐롤라인 알렉산더 지음, 김세중 옮김 / 뜨인돌 /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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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지 탐험 영웅시대의 마지막 모험, 남극대륙 횡단 계획을 위해 인듀어런스(Endurance)호에 탑승한 27명의 선원들과 대장 어니스트 섀클턴. 1914년 8월 1일, 전쟁이 막 시작된 가운데 런던을 출발한 인듀어런스 호의 승무원들은 자신들의 앞날을 기다리고 있는 거대한 운명을 알 수 없었다.

(클릭해서 사진 크게 보세요.)

부빙에 막혀 움직일 수 없게 된 인듀어런스 호. 선원들이 얼음을 깨는 장면.
"자정까지 모두 얼음을 깼다. 도저히 물길을 만들 수 없어 할 수 없이 작업을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헐리의 일기)

사진작가 프랭크 헐리는 이 탐험을 처음부터 끝까지 필름에 담았다. 죽음의 고비에서 살아난 사람들의 기록도 훌륭하지만 그의 사진이 주는 감동이 더 크다.

얼음을 헤치고 나가는 인듀어런스 호. 위슬리는 이 사진에 "젊음을 자랑하는 인듀어런스 호"라는 제목을 붙였다.

얼음에 포위된 인듀어런스 호.
1월 24일 밤, 앞쪽에 물길이 나타났다. "오늘 오전 9시에 모든 돛을 올리고 증기를 최대로 하여 넓은 바다가 나오기를 희망하며 전속력으로 달렸지만 결국 실패했다." (오들리의 일기)

기울어진 인듀어런스 호
"갑자기 좌측 얼음이 깨지고 거대한 얼음 조각이 좌현 빌지 아래에서 쏟아져 올라왔다. 몇 초 사이에 배는 좌측으로 30도 정도 기울었다." (섀클턴, <남극>)

인듀어런스 호의 침몰
"지난 12개월 동안 우리의 집이었던 배에 끔찍한 재난이 닥쳤다. ...... 우리는 집을 잃었고 얼음 위에 남았다." (헐리의 일기)

1915년 10월 27일, 약 10개월간 부빙에 갇혀 표류하던 인듀어런스 호가 드디어는 침몰하고 만다.

침몰한 배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부빙 위에 세운 오션 캠프.
"우리가 거대한 얼음 위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다. 고작 2m 두께의 얼음이, 2천 패덤(1패덤은 1.83m)이나 되는 바다와 우리 사이를 막고 바람과 조류에 밀려 떠돌고 있다. 그 목적지는 하늘만이 알 것이다." (헐리의 일기)

6m짜리 보트 세 개에 28명이 나눠 타고 육지를 찾아 항해. 남극 반도 끝자락의 무인도 엘리펀트 섬에 상륙. 3일 반 만의 첫 식사. 497일 만에 처음으로 육지를 밟다.

엘리펀트 섬을 떠나는 제임스 커드 호.
섀클턴과 두 명의 대원이 구조 요청을 위해 떠난다.

엘리펀트 섬의 오두막
마츤과 그린스트리트는 남은 배 두척으로 오두막을 만들자고 했다. 이것은 더 이상 배를 쓰지 않겠다는 결정. 섀클턴 일행이 실패하면 이들에게도 희망은 없다.

엘리펀트 섬에 고립된 사람들
헐리는 1916년 5월 10일에 이 단체 사진을 찍었다. "가장 지저분한 모습을 찍은 사진." (헐리의 일기)

구조
"8월 30일-수요일-기적의 날." (헐리의 일기)

잡아 먹은 펭귄과 물개만 3,000여 마리. 2년을 남극에서 버티고, 단 한명의 대원도 잃지 않은 채 무사히 귀환한 인듀어런스 호의 탐험대.

평대원을 배려하고 희망을 버리지 않고 끈기가 있다는 어니스트 섀클턴의 리더쉽은 잘 모르겠다. 죽을 위험에 처한 이들의 생존 투쟁을 따라가는 것이 아주 힘겹지는 않다는 것이 좀 신기하다. 섀클턴을 비롯한 대부분의 대원들이 상당히 낙천적인 데다가 강인한 사람들이어서 그런가 보다. 무엇보다 프랭크 헐리의 사진을 보는 것만으로도 만족할 수 있다. 별 다섯 줄 만한 재밌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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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 2005-06-13 2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아~ 사진이 굉장히 멋지군요..! 사진 위주의 책인가요?

urblue 2005-06-13 2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진이 많이 실려 있지요. 사진만 봐도 좋습니다. ^^

2005-06-14 00: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사흘만 볼 수 있다면 - 헬렌 켈러 자서전
헬렌 켈러 지음, 이창식.박에스더 옮김 / 산해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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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는 소녀. 야만스럽게 생활하던 아이가 훌륭한 선생님을 만나 드디어 사람처럼 살게 되고 글을 배우게 되는 과정은 너무나 유명하다. 그러나 1880년에 태어나 1968년에 죽은 헬렌 켈러에 대해 알려진 것은 장애를 극복해가는 어린 시절에 국한되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간혹 그의 뒷얘기가 나올 때조차 장애인의 복지를 위해 평생을 바쳤다거나 문필가로 활약했다는 정도로 소개될 뿐이다. 그야말로 인간 승리의 대명사라 있는 헬렌 켈러의 나머지 생애가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이유는 바로 그가 사회주의자였다는 사실 때문이다.


자신과 같은 처지의 장애인에게서 시작한 그의 관심은 점차 억압받고 차별받는 소수자(유색인종, 여성, 빈민 )에게로 확장된다. 그리고 사회주의에 심취하여 되어 러시아 혁명을 찬양했으며, 활동가로서 평생을 보낸다. FBI 요주의 인물이 것은 물론이거니와 그를 미화하여 기적의 인간으로 조명했던 주류 언론은 장애로 인해 그의 상황 인식이 불완전하다는 식으로 매도하기도 한다. (제임스 W. 오웬, <선생님이 가르쳐 거짓말> 참조)

 



책은 헬렌 켈러가 50대에 에세이 <사흘만 있다면 Three Days to See> 첫번째 자서전 <내가 살아온 이야기 The Story of My Life> 함께 묶은 것이다. <내가 살아온 이야기> 1902, 대학 2학년 잡지에 연재하기 위해 쓰기 시작해서 1903년에 단행본으로 묶여 나왔다. 20 초반에 자서전을 쓴다는 것이 보통 사람들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일이겠지만, 일반인들이 상상도 없는 특별한 삶을 살아온 그에게는 자신의 삶을 정리하고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일이 하등 이상할 없어 보인다.

 

설리반 선생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언어를 익히게 헬렌 켈러는 책을 좋아하는 소녀가 되었다. 책을 통해 인류가 이루어낸 문명을 이해했고, 그것을 자신만의 생각으로 표현할 알게 된다. 영어뿐만 아니라 독일어, 프랑스어, 라틴어, 수학, 과학까지 배웠으며, 본인의 실력으로 하버드 부속 여대인 래드클리프 대학에 당당하게 합격한다. 다른 사람과 비교할 없는 엄청난 노력이 뒤따랐음은 물론이다. 보지도 듣지도 못하는 상태에서 타인의 입모양과 성대의 울림, 혀의 움직임을 손으로 만져서 말하기를 배우는 그녀의 모습은 그야말로 감동적이다.

 

사실 같은 처지에서 글과 말을 배운 헬렌 켈러가 처음은 아니다. 이미 선례가 있었기에 헬렌에게도 같은 시도를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하필 다른 사람이 아닌 그가 유명해졌을까. 설리반 선생과의 아름다운 우정, 대학 진학도 이유일 테고, 그의 , 특히 자서전이 매우 훌륭했던 것이 다른 이유가 아닐까 짐작해본다.

 

책에서는 헬렌 켈러의 감수성이 얼마나 예민한지, 사고력과 표현력이 얼만큼 뛰어난지를 있다. 어린 시절 펌프가에서 이라는 단어를 인식하는 장면은 영화로 유명해졌지만, 실은 그의 자체가 모습을 정확하고 생기있게 묘사하고 있다. 이런 표현을 보자. 학문의 길에 들어서며 우리는 고독과 책과 상상력, 우리가 소중히 여기는 즐거움들을 몽땅 솔향기 더욱 짙게 하는 산들바람 부는 솔숲에 두고 와야 하는 모양이다.” 대학에서 배우는데 과부하가 걸려 생각하고 즐길 없음을 이토록 재치 있게 푸념하다니.

 

쏟아지는 햇살, 빗줄기, 나뭇잎의 속삭임, 부드러운 바람, 나이애가라 폭포 대자연에 감동하고, 조각품의 아름다움을 느끼고, 연극을 통해 표현되는 예술성을 이해하고, 지식의 가치와 참된 목적을 아는 그를 어찌 단순히 장애인이라고 부를 있을까. ‘아름다운 나라 만든 이민자들의 박해 행위에 부끄러워하고, 사회로부터 소외된 빈민의 아픔을 함께 느끼며 대중의 각성을 촉구하는 그가 우리와 다른 점이 무엇일까.

헬렌 켈러의 삶을 들여다보면서 스스로를 부끄러워하거나 반성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다만 그가 없고 들을 없던 것을 모두 누릴 있는데도 그러지 않거나 혹은 못하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 일이다. 세상만사 어느 하나 놀랍지 않은 것이 없다. 비록 어둠과 침묵 속에서 만난 것이라 할지라도 분명 그러하다. 어떤 처지에 있게 되더라도 나는 이에 만족하는 법을 배운다.” 세상만사 놀라운 것들을 느껴보자.

이도 저도 아니라면, 그저 아름다운 사람을 만났고 좋은 글을 봤다는 것으로 만족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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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리오 2005-06-08 2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멋집니다...

날개 2005-06-08 23: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진 리뷰입니다.. 추천하고 가요~

urblue 2005-06-09 09: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천해주신 분들 감사. ^^
 
돈키호테
미겔 데 세르반테스 지음, 박철 옮김 / 시공사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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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들고 다니는 걸 본 친구는 돈키호테와 햄릿을 비교하는 것이 영국인들의 음모라고 주장했다. 돈키호테 쪽이 훨씬 매력적이고 생생한 인물이므로 비교 자체가 안 된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들을 땐 그저 웃고 말았지만 책을 다 읽은 지금은 수긍한다. 물론 이것은 영국인들의 음모가 아니라 투르게네프의 구분이라지만 말이다. (이반 투르게네프는 '햄릿과 돈키호테'라는 에세이에서 사색과 회의에 몰두하는 사색형 인간 햄릿과, 자신의 이상을 향해 무모하지만 용기 있게 나아가는 행동형 인간 돈키호테로 인간의 대표적 성향을 이분했다.─알라딘 책 소개)

 

돈키호테가 무모한 인간인가. 글쎄. 돈키호테는 사실 상당히 지적이고 논리적인 사람이다. 책을 많이 읽고, 재치 있으며, 언변이 뛰어나고, 마을의 농부들로부터 신뢰와 존경을 받는 시골 귀족이다. 그러던 그가 기사도 소설에 몰두하면서 상상의 세계로 빠져든다. 돈키호테라는 이름을 짓고, 동네 아낙을 둘시네아 델 토보소 공주로 바꾸어 연인으로 삼고, 소설 속의 기사들이 그러했듯이 업적과 명성을 쌓기 위해 편력을 하기로 결심한다. 결심한 순간 모든 일은 이미 결정된 것이며 그대로 진행할 뿐이다. 그에게는 거칠 것이 없다. 그런 점에서 돈키호테는 확실히 행동형 인간이다. 그러나 사색이 결합된 행동파이며, 자신의 의식 속에 하나의 세계를 건설할 능력이 있고, 남들의 비난과 조롱 따위에 아랑곳하지 않는 뚝심이 있다. 나는 그가 미쳤다거나 무모하다기보다는 스스로 만들고 걸어 들어간 자신의 세계에서 남들의 현실 세계로 돌아오기를 거부하는 의지의 인간이라고 본다. (게다가 의지란 건 때로 꺾이기도 하고 살짝 굽히기도 할 수 있다는 걸 돈키호테는 잘 알고 있다.) 세속의 상식을 떠나 자기만의 가치와 이상을 따르는 돈키호테의 이단자적인 모습은, 요즘 세상에서도 가끔 만날 수 있는 특이한 삶을 사는 사람들의 원조 격이라고 할 수 있다. 누군가에게 돈키호테 같다고 한다면 그건 비아냥거림이 아니라 칭찬이어야 마땅하다. 

 

다른 식의 구분은 돈키호테를 이상주의자로, 돈키호테의 종자인 산초를 현실주의자로 나눈다. 물론 산초가 돈과 먹을 걸 좋아하고 영지를 받으려는 욕심에 돈키호테의 종자 노릇을 한다는 건 틀림없다. 그러나 돈키호테의 허황한 말을 곧이곧대로 믿고 따라 나선 사람을 현실주의자라고 할 수 있을까. 배운 것 없고 무지한 시골 촌부라서 그렇다고? 그보다는, 산초 역시 머리는 이상을 향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 적절하다. 다만 땅에 붙어 있는 발과 엉덩이가 더 묵직할 따름이다. 하여 이 둘을 한 인간의 양면이라고 본다면,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두둥실 떠오르지도 바닥에 붙어버리지도 않는 일정한 균형을 유지하는 상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어쨌거나 이 만담 같은 콤비의 좌충우돌 편력기는 꽤나 유쾌 상쾌하다. 기사로서의 신조를 갈파하다가도 상황이 어려워지면 은근슬쩍 발을 빼거나 자기를 합리화하는 돈키호테와 꽁알꽁알 투정 많고 겁 많고 그러면서도 우직한 산초를 보고 있자면 웃지 않을 수가 없다. 17세기의 소설에서 이처럼 활동적이고 특징적이고 성격 있는 인물들을 만날 수 있다는 건 확실히 놀랍다.

 

세르반테스가 이 소설을 발표했을 때 그의 나이 58세였다. 이전에 그는 에스파냐군에 입대하여 저 유명한 레판토 해전에 참전하였으며, 해적의 습격을 받고 알제리에서 5년간 노예생활을 했다. 38세부터 소설과 희곡을 쓰기 시작했지만 전혀 성공하지 못했기에 문학의 길을 버리고 세금징수원으로 살아가기도 했다. 이러한 그의 경험은 <돈키호테>에 자연스레 녹아 들어 있다. 돈키호테와 산초의 모험 외에도 그들이 만나는 다양한 사람들의 절절한 사연이 소개되는데 이것들은 각각 하나의 단편 소설로 봐도 무방하다. 하나같이 아름답고 빼어난 남녀가 등장하는데다 사랑에 죽고 못살고 여자에게 정숙함을 요구하는 등 뭐 이런저런 한계를 보이긴 하지만, 흥미를 반감시킬 정도까지는 아니다. 돈키호테의 광태에 지겨워질 무렵이면 이 이야기들이 하나씩 등장하기 때문에 오히려 꾸준히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700페이지가 넘는 이 책은 <돈키호테>의 1부만 번역한 것이라고 한다. 2부도 빨리 완역되기를 희망한다. 우리의 기사 돈키호테가 겪은 모험의 전말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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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 2005-06-03 18: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돈키호테를 오해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드는 리뷰군요.. 잘 읽었습니다..^^

로드무비 2005-06-03 18: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저는 산초형 인간!ㅎㅎ
리뷰 빨리도 올리셨네요.^^

물만두 2005-06-03 18: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천만^^

미완성 2005-06-03 19: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서관에 신청해야겠어요 헤헤.
요즈음 스페인 문학에 푹 빠져계신 겁니까~ 흠..시공사 책만 아니면 더 좋았을텐데..
이건 좀 다른 얘긴데요.
전 스페인이란 나라, 예전에 참 동경했었는데..라틴아메리카 역사 공부 잠깐하고나서는 그냥 스페인이란 단어만 들어도 으스스해요. 심각한 편견이겠지요? ;;;;

urblue 2005-06-03 2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과님, 저도 시공사라 떫떠름했습니다. 라틴 아메리카에서의 수탈 문제라면 사실 스페인만의 문제는 아니지요. 게다가 당시 스페인 국왕과 정부 관리들이 상당히 멍청하여, 라틴 아메리카에서 수탈한 자원들은 대개 영국으로 흘러들었답니다.

물만두님, 감사. ^^

로드무비님, 미 투! ㅋㅋ

날개님, 돈키호테하면 풍차에 달려드는 장면만 떠올랐었거든요. 그런데 책 읽고 생각이 바뀌었지요. ^^

하이드 2005-06-03 2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헤럴드 블룸의 '교양인의 책읽기' 에서도 돈키호테 vs. 셰익스피어더라구요. 그 책 읽을때 돈키호테 다시 읽어야지 생각했는데, 세르반테스의 책만 실컷 샀습니다.

urblue 2005-06-03 2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무래도 동시대 작가니까 그렇겠지요?
엥, 그런데 세르반테스 vs. 셰익스피어 / 돈키호테 vs. 햄릿 아니구요? ^^a
 
삽 한자루 달랑 들고 건달농부의 농사 일기 1
장진영 지음 / 행복한만화가게 / 2004년 6월
절판


지겨운 전세살이 청산과 퇴행성관절염으로 고생하시는 어머니와 나쁜 공기 때문에 병원에 들락거리는 아이들을 위해, 그리고 생활비를 줄이기 위해 강화도로 이사가기로 마음먹었다는 만화가 장진영씨. 그가 자리잡은 곳은 '풍부한 느낌'이 나는 강화도 남쪽이다.

직접 흙벽돌을 찍고 돈 안드는 방법을 연구해서 지은 집. '우리들의 고향을 만든 것이다.'

'삽 한자루 들고 농사짓겠데야' '풀약도 안치고 잡초 잡겠대' '그나마 심은 참깨도 구멍을 안 뚫어줘 타 버렸대야'

농사의 ㄴ도 모르고 무작정 덤벼들었다는 저자. 수십년씩 농사지은 동네 어른들 보기 부끄러웠을 법도 하다.

'농사란게 사람 뜻 만으로 되는게 아녜요. 하늘이 돕고 땅이 도와야 되는게지.'
하늘, 땅, 사람. 책으로만 달달 외웠던 전통사상의 핵심구절이 삶속에 녹아 나이드신 한 농민의 입에서 술술 풀어진다.
언제 하늘을 제대로 쳐다봤는가 하늘의 뜻을 생각이나 했었나 늘 사람의 이익만을 생각하고 이기려 싸우고 부대끼고 괴로와하고 오만에 찼던 인생 아닌가? 그날밤 늦도록 잠이 오질 않았다.

이런 식의 깨달음을 얻을 날이 있을까. 지금처럼 사는 한 책으로 아는 것외에 다른 수가 없을 것이다.

저자는 '나'와 '그'로 자아분열을 일으킨다. 만화가로서 창작에 몰두해야한다는 '나'와 쌀농사 지어 굶을 걱정도 없는데 뭐가 문제냐는 '그'. 뭐 결국 '그'의 승리 아니겠어. 뭔가 이루겠다고 아둥바둥 사는 거, 나도 싫다.

동네 두엄더미 위에 핀 채송화 한 송이. '그런 길도 있구나 그렇게 살 수도 있구나'

다른 길이 있다는 걸 알아도 막상 그 길로 들어서는 건 다른 문제다.

제목 : 작은 입 작은 꽃
작은 꽃은 작으면서도 많이많이 햇빛을 먹는다 돼지처럼 먹는다
가루처럼 오는 햇빛을 쉬지 않고 먹는다 작은 꽃은 작은 입으로
엄~청나게 먹는다

작은 꽃 보고 시적 감흥에 젖어 있는 아이 앞에서 냉이회 먹을 생각에 냉큼 냉이를 뽑아버리는 무심한 아버지.

간판도 없지만 아이들은 다 아는 문방구. 코코아 캔디, 뽀또, 맥주사탕, 쫄쫄이가 돈 백원 든 꼬마손님을 기다리는 곳.

동네에 이사 온 출판사 직원들이 마신 술병. 아, 출판사 사람들은 술만 먹고 사나.

청둥오리를 풀어놓고 지은 무농약 쌀을 걷어들이는 손길이 바쁜데, 한 사람은 쌀 백 가마를 파는 꿈을 꿔 놓고 시무룩이다. 만화에 전화 번호까지 등장하는 걸 보면 직접 팔기도 하는 모양.

눈 쌓인 길을 걷고 걸어 친구집에 찾아가면, 연락도 없이 찾아온 친구들을 반갑게 맞이하고, 따끈한 국물과 술 한잔에 겨울밤이 깊어간단다.

언젠가 시골에 가서 농사 짓고 살 수 있을까. 친구들은 내게 체력이 부족해 안된다고 말한다. 좀 뜬금없는 감상이지만, 농사를 짓든 다른 일을 하든 튼튼해야 한다. 건강하게 사는 장진영씨 가족의 모습이 보기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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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5-06-01 1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지군요!!!

urblue 2005-06-01 1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편집하다보니 사진이 너무 작아져버렸네요. 에휴..-_- 그림이 멋져요.

▶◀소굼 2005-06-01 1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확실히..튼튼하지 못하면 못해요. 경운기도 못부리고 있는 저를 보면;;

urblue 2005-06-01 13: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경운기...음...뒷자리에 타 보기만...^^;

로드무비 2005-06-01 1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님도 드디어 포토리뷰의 세계로!
요즘 내 리뷰 반응이 썰렁해서 포토리뷰만 들입다 올릴까봐요.^^

urblue 2005-06-01 15: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님 리뷰에 대한 반응이 왜 썰렁해요? 아유, 욕심도 많으셔~ =3=3
 
바람의 그림자 1 잊힌 책들의 묘지 4부작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 지음, 정동섭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5년 3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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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 동안 소설에 눈길도 주지 않았다. 본시 책 속에서, 특히 소설 속에서 세상을 배워왔지만, 최근의 내 관심은 한 개인의 상상에서 비롯된 세계가 아니라 바로 내 옆의 사람들, 그들과 함께 살고 있는 이 세계 자체다. 따라서 이 세계의 실상을 알려주는 사회과학 계통의 책들만을 읽게 된다.

 

누군가는 이 소설을 소개하면서 보르헤스와 미하일 엔데를 언급했고, 소개글에서는 스페인 작가의 작품으로는 드물게 초대형 베스트셀러가 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궁금했지만, 또 다시 광고에 속는 건 아닌가 싶어 참았다. 읽는 동안 재미있더라도 읽은 후 남는 게 없다면 요즘 보고 있는, 책상 위에 위태롭게 쌓여 있는 책더미를 줄이는데 집중하는 편이 낫다. 그러나 결국 내 인내심의 바닥은 아주 얕다는 것이 드러나고 말았다.

 

마지막 페이지를 덮자 암전(暗轉). 잠깐의 공백 혹은 단절에 이어 머리 속에 떠오른 건 단 한 문장이었다. “이런 게 소설이었어!”

 

소설은 작가가 상상해낸 허구의 인물과 사건을 통해 우리 삶의 단면 혹은 여러 층위들을 보여주고, 그로부터 인생의 의미와 진실을 깨닫게 해 준다. 내 기준으로 좋은 소설이란 이런 것들을 독자에게 강요하지 않으면서 은근히 드러내고, 읽는 동안 시간 가는 줄 모르는 재미를 보장하며, 읽고 난 후에는 긴 여운과 아우라를 남기는 작품이다. <바람의 그림자>는 내 기준에 완벽히 부합하는 진짜 소설이다.

 

모든 사건은 어느 새벽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찾게 된 ‘잊혀진 책들의 묘지’에서 시작된다. 다니엘이 고른 책은 하필 이제는 단 한 권 밖에 남지 않은 훌리안 카락스의 <바람의 그림자>였고, 다니엘이 책에 완전히 빠져들어 작가와 작가의 다른 책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훌리안 카락스를 둘러싼 사건의 실체에 접근해간다. 한편으로는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의 바르셀로나를 배경으로 한 훌리안 카락스의 이야기가 펼쳐지고, 다른 한편으로는 20세기 중반의 바로셀로나에서 소년으로 청년으로 성장해가는 다니엘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인생 유전이라 하던가. 한 사람의 일생은 그 사람만의 유일하고 특별한 사건이기도 하지만 앞선 세대의 삶이 녹아 들어 있는 역사의 일부이기도 하다. 거대한 시간의 흐름 속에서 개인은 존재의 보편성과 다양성을 모두 드러낸다. 그러하기에, 다니엘의 성장 과정에서 훌리안의 모습을, 나아가 나의 모습을 보게 된다.

 

책을 좋아하는 소년이 주변 사람들과 다양한 형태의 우정을 쌓아가고, 첫사랑에 가슴 아파하며, 세상의 부조리함 혹은 야만스러움과 부닥뜨리고, 시대의 변화를 지켜보면서, 진정한 사랑을 찾아가는 이야기, 라고 요약해 놓고 보니, 역시 다른 소설들이 보여주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그러나 작가의 능력은 이런 일반적인 주제나 소재를 어떻게 버무려놓느냐에 있을 것이다. 사폰의 솜씨는 탁월하다. 다양한 등장 인물들의 성격이 세세하게 살아나고, 여러 사건들은 순환적 구조로 매끄럽게 이어진다. 읽다 보면 짐작할 수 있는 통속적인 내용과 해피 엔딩조차 소설의 흐름과 몰입을 방해하지 않는다.

 

게다가 책과 독서, 글쓰기에 대한 작가의 애정이 곳곳에 드러난다. 다니엘은 <바람의 그림자>를 처음 보고서 ‘그 책이 수년 동안이나, 어쩌면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그곳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을 거라고 확신’한다. 첫사랑 못지않게 가슴 떨리는 만남이다. 내게도 이런 만남이 있었을 것이다. 흘러버린 시간의 저편에서 언젠가 나 역시 내게 그토록 많은 흔적을 남긴 ‘진정으로 마음을 열어준 첫번째 책’을 가졌을 것이다. 그리하여 오늘의 내가 존재한다.

 

훌리안은 ‘이야기란 작가가 다른 방법으로는 할 수 없는 것들을 이야기하기 위해 자기 자신에게 쓰는 편지’라고 말한다. 다니엘이 훌리안의 책을 보고 훌리안에게 관심을 가지게 되었듯, 나는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이라는 작가에게 호감을 느낀다. 이 사람은 어떤 비밀을 가지고 있길래 이런 매혹적인 소설을 썼을까. 훌리안과 다니엘의 삶과 사랑에 비친 사폰의 그림자를 본다. 

 

‘만일 내가 아주 우연히 저 무한한 묘지 사이에 있는 이름 모를 단 한 권의 책에서 온 우주를 발견했다면, 더 많은 수만 권의 책들이 알려지지 않고 영원히 잊혀진 채 남아 있을 거라는 생각을 피할 수 없었다.’ 어찌 소설 읽기를 그만둘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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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dan 2005-05-15 13: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컴백이군요. 반가워요.

krinein 2005-05-15 15: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설은 본디 이야기.
좋은 이야기는 놀이와 같고 주술과도 같아
때로 치유의 능력을 때로는 놀람의 매혹을 보여주겠지요.
그리고 무엇보다 타자/바깥과의 소통을 통해 세계를 만들어 가는 힘일 터입니다.
책-세계 만들기로서의 소설읽기랄까요. 좋은 텍스트란 무언가 써넣을 수 있는
여백을 가지고 있는 텍스트, 따라서 독자로 하여금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낼 수 있게 하는 텍스트일테니까요.
하지만 무엇보다 먼저 소설 읽기란 말/글들에 대한 사랑이며,
따라서 글읽기의 즐거움으로서의 소설읽기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읽을 책이 남아 있는 삶이란 아직 살만한 것이라고나 할까요.
***
이상 감상에 대한 감상이었습니다^^;;

갈대 2005-05-15 18: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라딘 고객들이 소설에는 별점이 짠 편인데, 이 책은 평가가 아주 좋네요. 오랜만에 뽐뿌 받고 추천 때리고 갑니다^^

urblue 2005-05-15 18: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갈대님, 고맙습니다. 알라딘 고객들이 별점에 짠 편인가요? 저야 기본 세 개부터 시작하니까 웬만하면 네 개는 그냥 줍니다만. ^^; 그래도 이 소설은 좋습니다.

크리네인님, 제목 바꿨습니다. ^^

수단님, 이 책을 읽고 났더니 다시 소설이 무지하게 땡기고 있습니다. 쌓인 책들 먼저 읽어줘야 하는데 말이죠. 아아~ urblue abc로 분열해서 한꺼번에 여러권 읽어버리면 좋겠어요.

krinein 2005-05-15 19: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제목이었다면 저는 제임스 미치너의 소설 얘기로 댓글을 달려 했었습니다만^^
흐음, 그리고 이경우는 a, b, c로 분열하는게 아니라 분신술이 아닐까요? '비기-소설 한번에 세권 읽기' 같은.. ^^;

urblue 2005-05-15 19: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설 한번에 세권 읽기가 아니구요, 사회과학, 소설, 만화 이렇게 세 분야를 나눠서 보는거죠. ㅎㅎ

바람돌이 2005-05-15 2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보고 싶어서 우리동네 도서관에 신청해놨는데 아직도 안사주네요. 님의 글을 보니 더 읽고싶어지는에 언제쯤이나 올까요?
소설을 좋아하긴 하지만 아무래도 다른 전공책이나 사회과학서적들에 늘 밀려서 도서관을 이용한다는....

starrysky 2005-05-16 0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 그래도 이 책 추천해준 친구가 있었는데 urblue님 리뷰 읽고 나니까 당장 사야겠다는 확신!!이 드네요. 잘 읽었습니다. ^-^

urblue 2005-05-16 1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람돌이님, 좋으시겠네요, 동네 도서관을 이용할 수 있다니. 집 근처에 도서관이 있긴 한데, 한번도 가보지 않아서 책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겠군요. 게을러서 책을 사보는 것 같습니다.

스타리님, 앗, 확신!!까지요? 그러다가 재미없어도 저 원망하시면 아니됩니다. ^^;;

로드무비 2005-05-16 2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고보니 이 책 산 지가 언젠데......
그렇게 재밌단 말이죠?
블루님, 요즘은 저도 책이 술술 읽혀요.
님도 독서의 재미에 흠뻑 빠지신 듯...... 리뷰가 유창하네요.^^

urblue 2005-05-16 2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보시느라고 서재에 뜸하신건가요? 님 댓글 안 보이면 허전하다구요. 힝..

로드무비 2005-05-16 23: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헹=3=3

히피드림~ 2005-05-31 17: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동시에 두 방향으로 진행되는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읽기는 어제 읽었는데 댓글은 지금다네요.(로그인하기가 귀찮아서리^^)
두권짜리라 보관함에만 두고 장바구니에 넣기는 망설였는데
꼭 봐야겠네요.^^;;

urblue 2005-06-01 09: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무진장 망설이다 결국 친구들에게 사달라고 졸라서 얻었답니다. ^^

[그장소] 2015-01-27 1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다리라.만날 것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