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자히르
파울로 코엘료 지음, 최정수 옮김 / 문학동네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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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이 재미있기 위해선 가지 조건이 있다. 기발한 상상력으로 세상과는 다른 새로운 세계를 펼쳐 보여주든지, 흥미진진한 사건 전개로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들든지, 등장 인물들의 심리가 섬세하게 묘사되어 감정이입이 이루어지게 하든지, 아름답거나 독특한 문체로 자신만의 스타일을 만들든지 하는 것들이다. 이런 조건들을 전부 갖추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이중 하나만 만족스러워도 엄청난 재미를 느낄 있다. 거기다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감동을 준다면 소설은 좋은 작품이 것이다.

 

작품 <오 자히르>의 주인공은 프랑스에서 성공한 작가다. 노래 가사를 써서 다른 일을 필요가 없을 만큼의 돈을 벌었고, 부인 에스테르의 질책과 격려에 힘입어 그토록 바라던 글을 있게 되었으며, 그의 책들은 거의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에스테르는 아름다울 아니라 현명하고 사려 깊으며, 기자로서 명성을 거두고 있는, 역시 대단히 뛰어난 여자다. 게다가 둘은 서로 사랑하고 있다. 그런데 어느날 에스테르가 아무런 말없이 사라진다. 남편은 이유를 없고, 부인은 이제 남편에게 자히르, 집착의 대상이 된다. 작가는 부인이 사라진 이유를 납득하기 위해 과거를 돌이켜본다.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언제부터 부인과의 사이가 어긋나기 시작했는지 반추하면서 부인이 말했던 사랑의 본질에 접근해간다. 부인과 함께 사라졌다고 짐작한 청년 미하일과 작가의 새로운 애인 마리가 과정에 도움을 준다. 결국 작가는 사랑을 깨닫고 부인과 재회한다.

 

배경이 현대의 프랑스고, 주인공들은 소위 잘난 엘리트들이다. 새로운 세계관 같은 애초에 찾아볼 없다. 물론 작가가 그런 염두에 두었으리라고 생각하지도 않지만 말이다. 어느날 갑자기 사라진 부인과 부인에게서 자유로워지지 못하는 남편이란 설정도 진부하기 이를 없다. 부인은 남편과 대화하기를 원하는데 남편은 그걸 모르고, 그래서 부인이 집을 나가고, 뒤늦게 사태의 본질을 깨닫고 반성한 남편이 부인을 찾아가 재결합한다, 라니. <사랑과 결혼>이나 <아침 마당>같은 TV 프로그램, 여성지 상담 코너의 단골 소재 아닌가. 흥미진진한 전개 같은 기대하는 쪽이 이상하다. 오히려 얼마 미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결혼 전날 스스로 납치 당했다고 신고했던 철없는 예비신부 쪽이 소설의 소재로 신선하겠다.

 

에스테르가 집을 나갔는지, 작가가 어떻게 자히르에서 벗어날 있었는지 모르겠다. 에스테르가 말하는 사랑, 미하일이 세계에 전파하겠다는 사랑, 작가가 마침내 깨달은 사랑, 사랑사랑사랑을 나는 이해할 수도 공감할 수도 없다. 인물들에게 감정이입은커녕 작가가 얘기하고 싶은지도 파악이 된다. 사랑이 그렇게 어려운 거였나. 혹은 2년의 공백과 지구 바퀴의 거리로 해결이 가능할 만큼 쉬운 건가. 사랑과 자유를 찾아 떠나는 구도의 여정이라지만, 카자흐스탄의 스텝이라는 배경은 오리엔탈리즘의 혐의가 다분하다.

 

작가와 독자 간에도 궁합이 있다. 남들이 아무리 칭찬을 해도 나로서는 읽을 없거나 읽더라도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작가도 있고, 별로 주목받지 못하지만 내게는 최고인 작가도 있다. 어차피 세상에는 무수히 많은 작가들과 책들이 있는데, 맞지 않는다고 생각되면 굳이 애써 읽을 필요가 있을까. <연금술사> 보고 나서 코엘료와는 인연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어찌 기회가 닿아 다시 < 자히르> 손에 들어왔다. 하지만 그와의 인연은 여기까지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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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5-07-22 2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기까지가 끝인가보오죠... 근데 전 아직 두권 더 있어요 ㅠ.ㅠ

urblue 2005-07-22 2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냥 안 읽으시면 어떨까요? ^^;

물만두 2005-07-22 2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로드무비 2005-07-25 1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이 작가 책 안 땡겨서 한 권도 안 샀다오.
허리는 괜찮아지셨소?
휴가는?

니나 2005-11-26 12: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히라노 게이치로의 '장송' 리뷰를 읽고 들어왔는데요, 파울로 쿄엘료 작품은 개인적인 생각으로 '오, 자히르'는 못 읽었지만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와 '악마와 미스프랭'은 좋습니다. 아무래도 '11분' 이래로 작품의 밀도가 떨어지는 듯합니다. 아쉽습니다. 사서 읽지는 않으시더라도 빌려 읽어 볼만합니다.

urblue 2005-11-28 09: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니나님, '베로니카'와 '악마와 미스프랭'은 읽고 싶었는데, 순서가 잘못 되었습니다. '연금술사'와 '오, 자히르'를 보고났더니 다른 작품은 읽고 싶은 생각이 없어져버렸군요.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추천하는 작가인데, 한 번 더 읽어봐야 하나 싶기도 하구요. 말씀하시는대로, '빌려' 읽어보도록 하지요. 감사. ^^
 
약소국 그랜드 펜윅의 뉴욕 침공기 그랜드 펜윅 시리즈 1
레너드 위벌리 지음, 박중서 옮김 / 뜨인돌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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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그랜드 펜윅 공국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물론 없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랜드 펜윅 공국이 우리나라에 알려질 기회는 거의, 전혀 없었으니까 말이다. 그랜드 펜윅 공국은 프랑스 남부와 알프스 북부의 경계에 위치한, 길이 8km 폭 5km(강서구 정도의 크기다)의 작은 독립국이다. 14세기에 건국된 이래 대개 자급자족의 경제를 유지해왔으며, 세계 최고의 와인을 소량 생산해 수출하는 것으로 일부 필요한 물품을 충당해왔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불과 수십 년 만에 인구가 4,000명에서 무려 6,000명으로 급증하여 자급자족은커녕 와인 수출로도 먹고 살 수가 없게 된 것이다. 이에 23세의 젊은 군주 글로리아나 12세와 10명으로 구성된 의회는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고심한다.

 

이럴 때 가장 손쉽게 생각할 수 있는 방법은 당연히 차관을 도입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작은 나라에 누가, 뭘 보고 차관을 제공하겠는가. 이들은 공산당을 만들기로 한다. 공산당의 위협으로부터 나라를 구해야 한다는 명분이 있으면 세계 최고의 부자 나라 미국은 두말 않고 돈을 빌려줄 테니까. 그렇지만 이 나라 사람들은 누구도 공산당이 되고 싶어하지 않는다. 다른 방법은? 전쟁이다! 미국이란 나라는 그랜드 펜윅 사람들이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행동한다. 전쟁이 끝난 후에 패전국에게 막대한 원조를 제공하여 패전국이 경제/군사적으로 재기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도대체 그런 짓을 왜? 글쎄, 이러저러한 이유가 있다지만, 어쨌거나 차관만 받으면 그만이다. 자, 이제 그랜드 펜윅 공국은 미국에 선전포고를 하고 뉴욕으로 쳐들어간다. 물론 전쟁에 져서 원조를 받기 위함이다. 바야흐로 약소국 그랜드 펜윅의 뉴욕 침공기가 시작된다.

 

이 책, <약소국 그랜드 펜윅의 뉴욕 침공기>가 발표된 것은 1953년이다. 1945년 B-29 폭격기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뜨린 새로운 폭탄의 가공할 위력에 전 세계가 경악한 이후, 일부에서는 동일한 힘을 갖기 위해 애쓰고 일부에서는 인류의 파멸을 막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일어나고 있던 때이다. 핵실험 금지 논의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기 시작한 것은 1954년부터였고, 불완전하나마 핵확산 금지 조약이 체결된 것은 1969년이다. 언론인 출신의 레너드 위벌리는 전례 없이 강력한 신무기와 관련해 세계 각국이 어떤 행보를 취할지 감을 잡았을 것이다. 소설에는 그의 통찰력과 핵은 폐기되어야 한다는 바람이 유머러스하게 녹아 들어 있다.

 

미국의 알 수 없는 대외정책, 생각없는 혹은 제 앞길 챙기기 바쁜 정치인들, 서로를 불신하며 각자의 입장만 고집하는 강대국들, 그리고 14세기의 전통을 그대로 유지하며 살아가는 그랜드 펜윅 사람들의 순진함이 절묘하게 어우러져 웃음을 자아낸다. 확실히 국제 정치란 일반인들이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비상식/몰상식의 세계다.

 

그럼에도 레너드 위벌리는 전반적으로 상당히 낙관적인 관점을 드러낸다. 세계의 작은 20개국이 강대국을 감시하여 세계 평화를 이룰 수 있다는 그랜드 펜윅의 주장이나, 대의명분과 명예를 중시하고 합리적인 판단을 내리는 강대국 지도자들의 모습이 그러하다. 그가 지나친 희망을 피력하고 있다기보다는, 뭐랄까, 50년대는 그런 시각이 가능한 시대가 아니었을까 싶다. 미국도 소련도, 설마 공멸의 길을 택하기야 하겠냐는, 이성을 기대할 수 있었던 시대. 지금에 와서야 그의 희망이 순진하다고 밖에는 말할 수 없지만 말이다.

 

아무튼 깜찍하고 유쾌한 소설이다. 마음에 안 드는 것이 있다면, 작은 20개국에 이스라엘이 포함된 반면 아시아와 아프리카 국가는 단 하나도 없다는 사실. 아일랜드 출신으로 미국에서 기자 생활을 한 저자의 한계랄까. 뭐 반둥회의가 열리기도 전이긴 하다. 더운 여름 한나절 시원하게 보내기에 적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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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냐 2005-07-01 23: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것참...깜찍하고도, 예리한 작품이로군여. 오호호.

플레져 2005-07-02 0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것참... 소설이란 말인가요, 요거이? 너무나 이상적인 희망을 품고 있군요. 약소국 20개국이 힘을 합쳐 강대국을 감시하면 정말 좋을텐데... 흐흐...

2005-07-02 09: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happyant 2005-07-05 16: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깜찍한 설정이네요. 재밌겠어요. 읽어봐야겠습니다.^^

urblue 2005-07-05 16: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을 보면서, 부시라면 절대로 저렇게 반응하지 않겠지, 라는 생각을 했지요. 깜찍하고 이상적으로만 느껴지는게 아쉽기도 합니다.

돌바람 2005-08-12 0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라가 각 도시별로 다 찢어지면 재밌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는데. 호남국/경남국/인천국...LA국/파리국/부에노스아이레스국/히로시마국...

urblue 2005-08-12 09: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며칠 전 읽은 클라스트르의 <국가에 대항하는 사회>에 보면, 국가라는 폭력적 권위가 발생하는 것을 저지하려면 사회의 단위가 작아야 한다고 합니다. 각 도시별로 나라가 이루어지면, 현재와 같은 폭력적 정권의 가능성은 그만큼 더 줄어들 수 있을까요. 아무튼, 조그만 나라들로 지구가 꽉 차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긴 합니다.
 
열강의 소용돌이에서 살아남기 - 박노자, 허동현의 지상격론
박노자, 허동현 지음 / 푸른역사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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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강의 소용돌이에서 살아남기>는 출판사에 의해 기획된 일종의 대담집이다. 아마 <우리역사 최전선>의 속편으로 기획한 것일 텐데, 전체적으로 대담집이라기 보다는 서한집이 오히려 그럴듯한 표현일 것 같다. 출판사가 먼저 특정한 주제에 대해 간단히 발제와 질의를 하면 저자들이 각각 편지형식으로 의견을 밝힌다. 여기다가 출판사가 몇 가지 추가질문을 보내 답글을 받는다. 말 그대로 “지상격론”. 하지만 좀 번거롭다. 이건 아무래도 박노자 선생이 노르웨이에 있는 탓이지 싶다. 그래선가. 몇몇 부분에서는 생동감의 득보다 어긋남의 실이 크다. 얼굴을 마주한 자리였다면 논쟁이 좀더 분명했을 것이다.

 

책의 구조는 비교적 단순하다.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아마 ‘구한말 조선 지식인과 정치 엘리트의 미국, 러시아, 중국, 일본에 대한 인식의 의의와 한계를 검토하여 그 현재적 교훈을 끌어내 보자’ 정도일 것이다. 이에 따라 책의 목차도 조선인의 미국관(“무지와 선망이 대미 맹종을 불렀다”는 박노자의 비판에 대해 허동현은 “개화파의 대미의존은 불가피한 현실적 선택이었다”고 반론한다), 조선인의 러시아관(정보부재의 구한말 엘리트가 러시아를 과대평가했다는 박노자의 비판에 허동현은 러시아는 나름대로 강국이었으며 당시 구한말 엘리트의 대응 또한 나름대로 타당한 계책이었다고 답한다), 조선인의 중국관(우리가 “모방적 오리엔탈리즘”의 시각에서 중국을 과소평가하고 있다는 박노자의 비판에 대해 허동현은 박노자가 중국의 패권주의적 성격을 과소평가한 것이라고 응수한다), 조선인의 일본관(박노자는 한국 ‘민족’이라는 ‘상상된 공동체’는 일본의 식민지 지배를 받은 공통의 경험과 관련되어 있으며, 근대화의 부정적인 측면 또한 일본의 영향이 컸음을 지적한 데 대해 허동현은 이러한 해석은 일종의 식민지 근대화론 일 수 있으며, 우리 나름의 주체적 근대화 기획이 존재했음을 강조한다. 예전 창비에서 주장한 것처럼 ‘근대완성과 근대극복의 이중과제’를 가지고 있다는 식이다)으로 이루어져 있다.

 

책을 읽다 보니 몇 해전 주간조선 지면을 통해 소개된 하영선 교수의 기획기사가 떠올랐다. 구한말 조선의 대응을 소개하면서 오늘날 한국이 처한 상황이 이와 같으니 일종의 신 부국강병이라 할만한 국가발전 프로젝트가 필요하다는 식의 주장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아울러 외국자본의 성격을 두고 벌어진 ‘개화와 척사의 딜레마’ 논쟁이며, 한미관계를 중심으로 제기되는 ‘동맹과 자주의 딜레마’ 논쟁 따위가 어른거린다. 그렇다고 역사가 반복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필요한 것은 현재의 입장에서 교훈을 얻는 것일 테다. 구한말 온건개화파와 급진개화파의 대립을 이해하려면 현상 이면의 복합성에 대한 인식이 필요한 것처럼, 오늘의 현실에 대한 이해 또한 몇 가지 수사로 분석을 대체할 수는 없을 것이니 말이다.

 

과연 책 자체의 무게보다 책이 던지는 질문이 훨씬 묵직하다. 내용이 만만치 않은데다가 단순히 과거의 역사로 그치는 것도 아니니 더 공부해 보라고 권하고 있는 책이랄까. 내용과 구성에 조금씩 아쉬움은 남지만, 책이 다른 책을 부르는 권유와 유혹의 미덕이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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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5-06-30 14: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날짜 맞춰 리뷰 쓰려고 이 책 대강 훑었는데......
재밌습디다.
껄렁한 페이퍼 올릴 시간은 있어도 리뷰 쓸 시간은 없네요.
아무렇게나 써버릴까?ㅎㅎ

urblue 2005-06-30 14: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밌긴한데, 리뷰 쓰려고 보면 또 별로 말할 게 없더라구요.

urblue 2005-06-30 15: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클리오 2005-06-30 16: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숙제 안한 사람 여기 다 모여있군요... 저도 숙제로다가... ^^;;

urblue 2005-06-30 16: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제 공짜 책 신청하지 말까 봐요. 숙제하기 너~무 싫어요. 그치만...과연..?

sudan 2005-06-30 22: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공부하는 게 너무 싫어요. 역사라니. 다들 이런걸 공부하시는 건가요? 흑.

urblue 2005-06-30 2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뭐 말이 공부지 진짜 공부겠어요?
학교다닐 때야 제법 좋아라했던 것도 같지만, 실은 저도 공부를 더 하기는 싫습니다.
이 책, 제법 재밌어요. 국사 시간에 나왔던 김옥균이니 윤치호니 하는 이름들이 무지 새롭게 느껴지죠.

sudan 2005-06-30 2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옥균, 윤치호는 새롭다기 보다 낯설어요. 흑흑.

urblue 2005-06-30 2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읽어 보실래요? 원하시면 책 드릴게.

sudan 2005-06-30 2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우. 고맙지만, 벌려놓은 책도 수습이 안돼요. 서재 이미지 상큼한데요?(너무 늦나.)

urblue 2005-06-30 2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벌려놓은 책 수습 안 되는거야 어제 오늘 일도 아닐텐데 뭘 그래요.
전 그래도 준다는 책은 절대 마다하지 않는데. ㅎㅎ
나중에라도 기회되면.
이미지 바꾼지가 언젠데!
 
카스테라
박민규 지음 / 문학동네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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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을, 나는, 20% 부족하다고 느꼈다. 신선한 소재, 거침없는 유머, 통쾌한 주제의식은 확실히 장점이었지만, 진부한 전개에 전체 구성은 빈약했다. 2%, 가 아니라 무려 20% 부족할 때는 더 이상의 기대를 할 수 없게 마련이다. 그러나 박민규의 경우엔, 그렇다고 그냥 잊어버리기에도 아쉬운, 뭔가가 있었다. 어딘가 자신이 말한, 치기 어려운 공은 치지 않고 잡기 어려운 공은 잡지 않는다는 삼미의 플레이를 연상케 했다고나 할까. 좀 더 잘 쓸 수 있는데 어영부영 끝내버린 것 같은 허전함을 풍겼다. 그래서 내가 준 별점은 세 개 반이었다.

 

신작 단편집 <카스테라>는 망설임 없이 별 네 개를 준다.

 

일단 제목부터 먹고 들어간다. 「고마워, 과연 너구리야」, 「그렇습니까? 기린입니다」, 「몰라 몰라, 개복치라니」, 「아, 하세요 펠리컨」 등등. 이건 무슨 동물 시리즈인가? 한국 소설에 이런 발랄한 제목이 등장했던 적이 있던가. 유쾌한 상상력과 남다른 표현력의 산물이랄 수 밖에 없는, 신선하고 깜찍한 제목들이다. (이 책을 읽고 나서 몰라, 고마워 라는 말을 하게 되면 자연히 개복치너구리가 후렴구처럼 따라붙는다.)

 

발랄한 제목과 달리 소설 속에는, 하나같이 가진 것 없이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직장에 재빨리 적응하지 못하고 도태된 팀장과 어떻게든 취직해 보겠다고 애쓰는 인턴 사원(고마워, 과연 너구리야), 미안하다 말하는 가냘픈 표정의 아버지와 일찍부터 자신만의 산수를 깨달아 돈벌이에 나선 고등학생(그렇습니까? 기린입니다), 사업이 망해 혹은 취직을 못해 원래 이런 걸 할  사람이 아닌데 이러고 사는 사장과 아르바이트생(아, 하세요 펠리컨), 학생운동 전력의 농촌 운동가(코리언 스텐더즈), 갑자기 집도 절도 없이 세상으로 떠밀린 대학생(갑을고시원 체류기). 소재로만 보자면 갑갑하고 암울하고 이야기가 쏟아져 나올 것 같다.

 

그러나 그들의, 아니 우리의 버거운 삶을, 박민규는 판타지로 엮어 낸다. 인턴 사원 앞에 갑자기 존재를 드러낸 너구리, 양복을 입고 지하철을 기다리는 기린, 하늘을 나는 오리배, 비행접시와 대왕오징어의 습격이라니, 현실에 느닷없이 섞여 드는 이런 판타지는 상당히 엉뚱하다. 그럼에도 생경하지만은 않은 것은, 우리의 삶이란 게, 특히 이 시대 한국에서 갑자기 직장을 잃거나 가족이 앓아 눕거나 사기를 당해 거리로 내몰릴 위험에 노출된 채 살아간다는 게 판타지와 다를 바 없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한편 판타지는, 특유의 경쾌한 입심과 더불어 현실의 무게를 어느 정도 덜어주는 유머를 제공한다. 전작에서 아등바등 살지 않아도 괜찮지 않겠냐고 제안했던 작가는, 이제는 삶에 지친 사람들에게 그래도 웃어볼 것을 권하는 듯 하다.

 

「고마워, 과연 너구리야」, 「그렇습니까? 기린입니다」, 「아, 하세요 펠리컨」 세 편이 마음에 든다. 재기 발랄한 문장과 엉뚱한 전개에 웃으면서도 가슴 한 구석이 짠한 것이, 작가가 선사하는 유머와 페이소스를 동시에 느낄 수 있다. 삐딱함과 독특한 문장으로만 튀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삶에 대한 애정이 드러나는 글을 쓰는 작가 박민규가 반갑다.  

 

아쉬운 점(별 다섯이 아니라 넷인 이유)이라면, 비슷한 설정이 계속 반복되다 보니 뒤로 갈수록 지겨워진다는 것이다. 2% 부족하다. 그러니까, 박민규는 여전히 진행형인, 좀 더 좋아질 수 있는 작가라는 의미 되겠다. 한국 작가를 거의 읽지 않고 있지만, 박민규 만큼은 앞으로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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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05-06-28 2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삼미슈퍼스타즈를 20% 부족하다는 분께서 2%만 부족하다고 하시니..
정말 기대되는군요.
저는 삼미슈퍼스타즈도 어찌나 재미있게 읽었던지 별 5개 주고도 모자라는 기분이었는데요. 음~~ 카스테라 꼭 읽어야겠네요.

mira95 2005-06-28 2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읽으려고 사놓기만 하고 아직 못 읽고 있지요. <갑을고시원체류기>는 다른 단편집에서 읽었지만.. 저도 엄청 기대하고 있답니다..

Phantomlady 2005-06-29 0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카스테라' 리뷰 하루라도 안 읽고 지나가는 날이 없는 거 같아요.. ㅎㅎ
그런데 나는 왜 아직도 못 읽 ;;;

urblue 2005-06-29 16: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람돌이님, 그러니까 그게, 일종의 수사적 표현이기도 한지라, 딱 2%만 부족하다는 건 아니구요, 뭐랄까, 조금 더 부족하기는 하지만 어쨌거나 그렇게 표현할 수도 있겠다, 뭐 이런 의미입니다. 무슨 소리냐구요? 그게, 또.. ('' ) ( ..)

미라님, 갑을고시원 체류기는 별로 재미없던데요, 저는. 다른 것들이 훨씬 재밌습니다. ^^

눈사탕(이라고 어느 분이 그러셨대요.^^)님, 요즘 카스테라가 인기죠? ^^ 그런데 왜 아직도 못/안 읽으셨을까? ㅎㅎ

내가없는 이 안 2005-06-29 19: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블루님, 그렇죠? 비슷한 설정이 되풀이되는 듯해서 저도 조금 아쉬웠어요. 그런데 님은 리뷰를 읽고 당장 책을 읽게 하는 묘한 힘을 넣으시는 것 같아요. 로알드 달의 맛도 님 리뷰에 탄력받고 휘몰아치듯 읽어버렸거든요. ^^

urblue 2005-06-30 09: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안님, 맛을 보셨으면 곧 리뷰도 볼 수 있겠네요? 제 리뷰를 좋게 봐 주시니 고맙습니다만, 전 님 리뷰가 더 좋아요. ^^

로드무비 2005-06-30 1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카스테라는 꾹 참고 안 살랍니다.
나중에 나중에 한입 얻어 먹어야지.^^

urblue 2005-06-30 1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지 마세요. 저자 사인본으로 빌려드릴게요. ㅋㅋ

로드무비 2005-06-30 12: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말이 나오길 기다렸수.^^
 

로알드 달 지음, 정영목 옮김 / 강 / 2005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알라딘의 Lets Look 기능은, 그림책 이외에는 거의 이용하지 않는다. 모니터로 책을 읽는 것에 영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봐봐야 집중도 되지 않고 살지 말지를 판단하는데 도움도 되지 않는다. 신간 소개를 보다가 어쩐 일인지 <맛>의 Lets Look을 누르고 표지부터 훑어보기 시작했다. 성석제가 로알드 달을 철두철미한 프로라 했다 하고, 강아지 두 마리를 끌어안고 찍은 달의 사진과 프로필이 있다. 뭐 그냥 평범한 아저씨네, 흠.

 

첫번째 작품 <목사의 기쁨>을 잠깐 보기로 한다. 그런데, 어, 어... 이거, 그만 둘 수가 없다. 목사를 사칭하며 시골 사람들에게서 고가구를 헐값에 사들이는 능구렁이 보기스씨를, 그의 낡은 스테이션 왜건 뒷좌석에 몰래 자리잡고 앉아, 팔짱을 끼고 눈을 가늘게 뜬 채, 호기심 반 감시 반의 시선으로 지켜 보는 심정이랄까. 아, 저 능란한 거짓말, 아니 흥정 솜씨를 보라지, 선량해 보이는 얼굴에 수완까지 좋으니, 타고난 장사꾼이로군.

 

책을 받자마자 <목사의 기쁨>의 뒷부분을 펼쳐 들었다. 보기스씨가 선명하게 살아난다.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아니 넘기기도 전에 벌써 다음 장의 내용이 궁금하다. 이렇게 조바심을 내며 마음이 앞서가는 독서를 한 게 얼마 만인지. 드디어 보기스씨의 거래가 성사되고, 흠, 훌륭한 흥정이었어, 슬며시 입꼬리가 올라가던 중에, 갑자기 엉뚱하게 흘러가는 이야기에 눈을 치켜 뜬다. 순간, 뒤통수에 찌릿 전기가 일더니 푸하하 웃음이 터진다.

 

이 책에 실린 열 편의 작품들은, 하나같이 흡인력이 대단하다. 단순한 줄거리에 치밀한 구성과 긴장감 유발이라는, 단편 소설 본래의 미덕을 그대로 맛볼 수 있다. 그 짧은 분량 안에서도 등장 인물들의 성격이 세세히 살아나고, 호기심을 일으키는 사건이 일어나고, 예상치 못한 혹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어도 절대 김빠지지 않는 반전까지 등장한다. 읽는 중에 다음 페이지를 궁금하게 만드는 이야기 솜씨야 말할 것도 없고, 마지막의 반전이야말로 이 작품들의 진정한 매력이다. 재미있다. 놀랍다.

 

이 사람은, 로알드 달이라는 이 작가는, 진짜 타고난 이야기꾼이다! 혹은 소설 속 등장 인물들처럼 뛰어난 재능과 사기꾼 기질을 함께 지니고 있을 게다. 평범하고 사람좋아 보이는 달의 미소 띤 얼굴 뒤에 순진한 시골 사람들을 후려먹는 보기스씨(목사의 기쁨)나 예술적인 경지로 포도주를 감별해 내는 프랏(맛), 마찬가지 예술적 경지로 여자를 홀리는 오스왈드(손님)의 능청스러움과 짓궂음이 숨어 있을지도. 어쩌면 남편에게 순종적인 여자들(하늘로 가는 길, 도살장으로 끌려 가는 어린 양)처럼 위험할 수도 있다. 이런 사람에게 그냥 덤볐다가는 빅스비 부인(빅스비 부인과 대령의 외투)이나 드리올리(피부)처럼 어처구니 없는 일을 당하게 될지 모른다.

 

하지만, 그래도 좋다. 이만한 재미라면, 그 정도쯤 대수랴. 손가락은 내 놓지 못하더라도 기쁘게 사기당할 준비는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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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져 2005-06-24 2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작가에게 당하는 사기야 얼마든지~ ^^ 심하게 땡깁니다. 언넝 읽어야지!!
한표~ ^^

마냐 2005-06-24 2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핫...블루님이 이토록 쎄게 뽐뿌하시다니...일단 땡스투, 보관함, 추천.....그후는 저도 모름다. ㅋㅋ

내가없는 이 안 2005-06-25 0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사놓은 책인데요, 아직 읽기 전이에요. 이 사람 동화는 몇 편 읽어서 그 사기꾼 농후한 기질을 좀 압니다. ^^ 얼마나 부러운 기질인지. 돈 뜯어내는 게 아니라면 얼마든지. 아니 소설도 독자의 돈을 뜯어내기는 하는가요? ^^ 얼른 읽어야겠군요!

로드무비 2005-06-25 08: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흡인력이 대단한 리뷰네요.
나도 빨랑 읽고 싶은데......

urblue 2005-06-25 2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 얼른 읽으세요들. 진짜 재밌습니다. ^^

날개 2005-07-06 18: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주의 마이리뷰 축하드려요~~!^^*

urblue 2005-07-06 2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날개님, 고맙습니다. ^^

미완성 2005-07-06 2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흐, 리뷰 당선 축하드림다-! 눈먼 돈도 버셨겠다, 이번 주에는 서재 이름을 '안 심심한 서재'로 바꾸어보심이 어떨랑가요?

아영엄마 2005-07-07 0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urblue님~ 이제서야 리뷰당선작을 보고 축하드리러 왔어요~. 추카추카! ^^

perky 2005-07-07 0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 이제야 봤어요.리뷰 당선 축하드려요. ^^

urblue 2005-07-07 09: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차우차우님, 아영엄마님, 사과님, 감사합니다. ^^
사과님, 이번 주에는 리뷰도 페이퍼도 쓴 게 없어서 '심심한 서재'가 맞는데요. ㅎㅎ

울보 2005-07-08 2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제야 보았습니다,
축하드려요,,,저도 정말 재미있게 읽은 책입니다,,

urblue 2005-07-09 1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 울보님 쓰신 리뷰도 보았답니다. ^^

실비 2005-07-10 2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이리뷰 당선 축하드려요^^ 글을 잘쓰시네요~

urblue 2005-07-11 09: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실비님, 반갑고 또 고맙습니다. ^^

마태우스 2005-07-12 0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뜸한 블루님, 이주의 리뷰 축하드립니다. 님의 알라딘 복귀를 재촉하는 리뷰 당선이 아닐까 싶네요. 지금 보니까 님의 리뷰가 추천을 휩쓸고 있네요. 이 책도 그렇고 요 아래 책은 9개, 그다음 4개, 심지어 10개.......멋지십니다 블루님. 축하드려요.

urblue 2005-07-12 0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핫핫 ;; 감사합니다.
때때로 게으름을 피워야 사는 맛도 있는 거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