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티미어스 1부 - 상 - 사마르칸트의 마법 목걸이 바티미어스 3
조나단 스트라우드 지음, 최인자 옮김 / 황금부엉이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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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리포터』 시리즈도 그렇고, 심지어 『어스시의 마법사』도 부분적으론 성장소설 내지는 교양소설의 아동물 버전입니다. 아무래도 『반지의 제왕』과는 궤를 달리한다 하겠고, 아이들이 주인공으로 나온다는 공통점에도 불구하고 『나니아 연대기』와도 사뭇 다르죠. 이런 시리즈물은 십대 초, 중반 꼬마들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모험물로, 판타지 장르의 확고한 하위 장르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비교적 목표 시장이 분명한 문학상품이랄까요.


 메인 트렌드가 일단 형성되고 나면 항상 틈새시장을 겨냥하는 아이디어 상품이 뒤를 따르는 모양입니다. 이를테면 『꿈꾸는 책들의 도시』에는 인간이라고는 나오지 않습니다. 지구상 어느 곳도 아닌 아예 다른 세계, 다른 생물의 종족들이 주인공이지요. 하지만 이 경우에도 주인공은, 인간이 아니라 용이라는 점만 빼면, 어린 소년입니다.


 아이가 주인공인 판타지가 슬슬 지겨워지던 참에 『바티미어스』를 읽게 되었습니다. 미리 말해두지만 『바티미어스』가 엄청나게 재미있다거나 독특하다는 건 아닙니다. 그리고 이 책 역시 어린 꼬마의 모험담 포맷을 따라가고 있지요. 게다가 이야기가 정교하다고 말하기도 사실 어려워요. 좀 슬렁슬렁 넘어가는 구석도 있고, 다음 편을 위한 복선일 수도 있겠지만, 흐지부지 끝나는 대목도 있어요.


 하지만 적어도 몇 가지 아이디어는 꽤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야말로 아동 모험물에 지친 독자를 위한 아이디어 상품의 미덕이랄까요. 우선 메인 주인공이 꼬마가 아닙니다. 심지어 인간도 아니지요. 이 소설의 주인공은 바티미어스라는 오천 살이 넘은 요괴입니다. 이 바티미어스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진행되어갑니다. 하긴 이 수다스러운 중년 아저씨 같은 요괴도 인간의 모습으로 변신할 때면 소년의 모습을 하긴 하지요.


 다음으로 흥미로웠던 건 바티미어스의 짝으로 나오는 나타니엘이란 꼬마 마법사입니다. 재능도 있고 정의감도 있으나 착하지만은 않은, 그리고 종종 어리석기도 한 소년이라는 설정은 그다지 새로울 게 없는 캐릭터입니다. 1권의 에피소드인 「사마르칸트의 마법 목걸이」가 끝날 즈음이면 나타니엘은 복수의 성취와 함께 제국을 구하게 되니 오히려 진부할 정도죠. 하지만 이 소년이 오히려 악당들을 닮아간다는 점은 꽤 독특합니다. 해리포터 시리즈의 경우라면 해리가 악의 힘에 슬쩍 끌리는 대목이 있다 해도 그건 좀 뻔한 눈속임 같은 구석이 있어서, 누가 봐도 악의 편으로 넘어가지 않을거란 게 분명해 보입니다. 이를테면 ‘정치적으로 올바른 인종주의 정치학’이랄까요. 아무튼 해리는 좀 불안해보이긴 해도 ‘좋은 편’으로 규정되어 있습니다. 그의 본질이 ‘나쁜 편’과 닮아 있는 면이 있다 하더라도 결국 ‘좋은 편’의 가치를 따르지요. 한데 나타니엘의 경우는 좀 더 세속적인 논리를 따르고 있습니다. 나타니엘에게는 ‘좋은 편’과 ‘나쁜 편’의 구분은 상대적이고 모호합니다. 오히려 개인이 취하는 태도랄까, 입장이 더 중요한 문제죠.


 어찌보면 『바티미어스』는 드라마 시리즈물 방영에 앞서 상황 소개와 도입부 에피소드를 보여주는 두 시간짜리 텔레비전 영화 같은 책입니다. 복선이 될 법 싶은 디테일은 너무 많은데 비해, 이야기는 그 중 일부만을 보여주고 있어요. 다른 한편으론, 딱 그만큼의 재미에는 충실합니다. 좀 덜 진부하고 어느 정도 흥미로운 아이디어를 즐길 수 있는, 요괴와 소년이 나오는, 판타지 소설(그러고 보니 이런 짝패가 나오는 일본 만화는 좀 있는 것 같습니다)의 프롤로그라 할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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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우맘 2006-09-07 08: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블루님 말씀 대로라면....한껏 바람을 잡았다는 말인데.... 바람 잡은 이후의 속편은? ^^;;;

urblue 2006-09-07 09: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부가 최근에 나오긴 했는데, 글쎄, 어떨까요? ^^;

사이 2006-09-07 1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부를 보시면 1부에서의 몇몇 복선들이 이어지고, 심화되지요. 다음주에 출간될 3부에서는 드디어 모든 비밀과 관계들이 드러납니다! 아무래도 전체 3부작의 첫 1부라서 해결되지 못한 실마리들이 좀 미진한 느낌을 주나요? 나타니엘의 변모도 놀랍고, 바티미어스의 새로운 면모도 보이고요. 개인적으로 1부보다 2부가, 2부보다 3부가 더 흥미로워졌습니다. 뒤편들도 보시고, 멋진 리뷰 부탁드려요. ^^;;;

로드무비 2006-09-07 15: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성실하고 좋은 리뷰는 이런 것이라 생각합니다.
전 판타지를 거의 안 읽어서인지 모든 것이 독특해 보이는군요.

urblue 2006-09-07 16: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랍님, 그렇군요, 2,3부를 봐야 제대로 알 수 있겠군요. 흠. 좋은 소식 고맙습니다.

로드무비님, 뭘, 성실하고 좋은 리뷰,까지... ( ..)
SF(를 보다 선호하지만)/판타지 같은 장르 문학도 꽤나 좋아합니다. 재미있는 것들이 많아요. 기회되면 도전해보시길. ^^

2006-09-07 16: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6-09-20 13: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6-09-20 13: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6-09-20 15: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느린 희망 유재현 온더로드 6
유재현 지음 / 그린비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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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에세이류를 싫어하는 이유가 독자에게 주어지는 수동적인 역할에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소설의 경우 작가가 어떤 의도를 가지고 글을 썼는가와 관계없이 한 작품은 자체로 생명력을 가지게 되고, 그로부터 어떤 의미를 추출해내느냐 하는 것은 온전히 독자에게 주어지는 몫이다. 주도권은 독자에게 있다. 반면 수필은 글쓴이의 개인적인 생각과 느낌을 독자에게 강요하는 글이며 독자는 그것을 받아들이든 받아들이지 않든 둘 중 하나를 택할 수 밖에 없다.

 

기행문 역시 수필의 범주에 들어가는 것이므로 크게 다르지 않다. 그나마 직접 가 본 곳에 관한 여행기라면 내가 본 것과 필자가 본 것이 어떻게 다른지 혹은 동일한 대상에 대한 감상이 같은지 다른지 확인하는 재미라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전혀 알지 못하는 곳을 보여주는 여행기에 대해서는 실상 뭐라 할 말이 없다. 한 나라든 한 도시든 결코 좁지 않은 여행지에서 필자가 선택한 대상과 그에 대한 감상을 일방적으로 전해 들어야 하는 나는 그것이 옳다고도 그르다고도, 혹은 안목이 좋다고도 나쁘다고도 말할 수 없다. 나는 미술관 말고 공원을 보고 싶다구요, 라고 투덜거려봐야 필자에게 전해질 리도 없는 노릇이다. 게다가 현지인이 아닌, 그저 스쳐 지나갈 뿐인 여행객의 눈에 비친 한 지역의 이미지를 나는 믿지 않는다. 그러니 박물관 기행이든 건축 기행이든 뭔가 테마가 있는 여행기 외엔 손을 대지 않는다. (책에 있어서는, 나는 꽤 까다로운 편식증과 편협함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모양이다.)

 

그럼에도 이 책을 손에 든 건, 여행지가 다름아닌 쿠바이기 때문이고, 제목이 <느린 희망>이기 때문이다. 체 게바라, 카스트로, 혁명, 수준 높은 교육/의료 서비스, 아바나,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 야구, 미사일 위기, 경제 봉쇄, 난민, 관타나모 기지. 쿠바에 관한 내 지식은 딱 요만큼에서 한 치도 더 나아가지 못한다. 언젠가 이 나라에 가 볼 날이 올지, 물론 알 수 없다. 앞으로 한 40년쯤 더 산다고 해도, 글쎄, 태평양 너머에 있는 이 섬나라가 과연 내 생에 어떤 인연을 갖고 있을까. 하지만, 아니, 그렇기에 쿠바는 야릇한 설렘을 주는 곳이다.(현지인들이 내 말을 듣는다면 헛소리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만.) 더하여, <느린 희망>이라는 제목은 저자가 쿠바를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는지를 알려준다. (자연스럽게 <슬로 푸드><희망의 밥상>이 연상된다.) 그러므로 쿠바라는 넓은 땅 안에서 그가 선택해 보여줄 것들에 대해 의심을 버릴 수 있다. 이렇게, 나는 쿠바 여행기를 만났다. (, 이래서 여행기를 읽는구나, 하는 갑작스런 깨달음이라니.)

 

어차피 기행문의 형식이란 건 없다. 여행자가 보고 싶은 걸 보고 말하고 싶은 걸 말하면 그만이다. 보통 초보 여행자들은, 관광안내책자에 소개된, 남들 다 보는 것을 보고 나서 남들 다 하는 얘기를 똑같이 하곤 한다. 그래서야 굳이 책을 만들 의미도, 읽을 재미도 없다. 유재현은 그다지 시시콜콜하지 않다. 인터넷에서 혹은 관광책자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내용들은 아예 빼버린 듯 하다. 그가 직접 찍었다는 사진 속에는 쿠바의 자연 경관, 건축물, 혁명의 추억 등이 담겨있지만, 무엇보다 많이 보이는 것은 사람들이다. 백인, 흑인, 인디오, 뮬라토, 메스티소 등등 온갖 인종들이 온갖 표정과 포즈로 존재한다. 그는 그들로부터 사는 이야기를 듣고, 보통의 여행객들이 간과하기 쉬운 현지인들의 삶을 보았다. 물론 이 정도로 그가 쿠바를 속속들이 알게 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을 터이다. 그러나 어려운 경제 여건 속에서도 낙천적으로 살아가는 쿠바인들 사이에서 느리지만 결코 사라지지는 않은 희망을 찾을 수 있을 만큼은 보았다고 해도 좋지 않을까. 여행자가 품기 쉬운 감상이나 호들갑스러운 과장 없이 소박하고 담담하게 그러한 희망을 피력한 것도 장점이랄 수 있겠다. 쿠바의 첫 여행기를 잘 만나서 다행이다. 이런 여행기라면 굳이 마다할 이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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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6-09-01 09: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피델 카스트로의 생이 얼마 안남았다고 하더군요...
이제 쿠바의 중심에 있던 인물이 생을 마감하는군요....^^

비로그인 2006-09-01 09: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에세이와 여행기를 대리체험 정도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내가 떠나기는 귀찮거나 사정이 여의치 않고(그놈의 사정이란 게 언제나 그렇지요), 대신 이유식을 먹듯 천천히.
그래서인지 내 마음과 딱 맞는 에세이스트를 찾기란, 내 마음과 딱 맞는 여행 동반자를 찾는 것만큼이나 힘들어요. 나는 흰 테이블보와 빳빳한 광목 천을 원하는데 레이스가 화려한 베르사유의 침실을 원하는 동반자를 만난다면 책 한 권의 여행이 내도록 괴로우니까요. 그런 의미에서는 이 책을 만난 것, 저도 참 다행이라 생각했더랬습니다.

blowup 2006-09-01 1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누가 떠먹여 주는 느낌. 근데 무슨 맛인지 잘 모르겠는 데서 오는 불편함. 그런 것이었나봐요. 제가 여행기를 재미없어 하는 이유가. 이국적인 장소에 혼자 도취해서는 끊임없이 스스로의 매혹을 동어반복하는 여행기가 제일 피곤해요.

urblue 2006-09-01 1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메피스토님, 그러게요. 그런데 일흔 넘은 동생에게 권력이양이라니, 역시 독재국가인가 했더랍니다.

주드님, 저는 그 대리체험의 필요성을 잘 느끼지 못하는 듯 합니다. 내가 가보거나 말거나. 실상 제가 직접 간다고 해도 남들이 전해주는만큼 잘 볼 수 있을지도 알 수 없지만 (워낙에 여행을 안 다닙니다, 제가. --;), 그럼에도 여행기는 영 땡기지를 않아요. 그래도 이 책은 괜찮았습니다만, 과연 이런 여행기를 또 만날까 싶네요. ^^

나무님, 저만 그런게 아니군요. ㅎㅎ 여행지와 현지인들을 신기하게(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바라보는게 저는 영 불편합니다. 어딜 가든 그곳에 사는 것처럼 다소 심드렁하게 보고 싶어요.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환상문학전집 14
오스카 와일드 지음, 이선주 옮김 / 황금가지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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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로불사에 대한 욕망의 근간은 두려움이다. 필멸(必滅)의 존재인 인간으로서, 빛나는 청춘의 건강한 육체가 생기를 잃고 시들어가는 것을 지켜봐야 하는 고통,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 혹은 아무것도 없을지 전연 알 수 없는 죽음 이후에 대한 공포. 하기에 불로불사에 대한 욕망은 선병질이든 감수성이든 자극에 예민한 사람들에게 더 크지 않을까 싶다. 물론 많은 사람들이 젊음을 간직할 수 있기를, 더 오래 살기를 바라겠지만 그것이 반드시 불로불사인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세월에 따라 육체가 변하는 것을 인정하고 언젠가는 죽을 운명임을 이해한다. 그러나 때로 이런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현실에 존재하기 않기에 예술로서 의의가 있다는 오스카 와일드의 말처럼 어쩌면 그것은 예술 작품 안에서만 가능한 이야기인지도 모르겠다.

 

아름다운 외모와 순수한 영혼을 가진, 20대의 문턱에서 싱그러운 향기와 매력을 발산하는 도리언 그레이. 그는 아직 순수한 시선으로 세상을 공평하게 바라본다. 그에게 불행은 바질 핼워드와 헨리 워튼을 만난 것에서 시작되었다고 해야 할까. 화가 바질은 도리언의 아름다움을 열광적으로 숭배하면서 그로부터 예술적 영감을 얻어 걸작이라고 할 만한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을 그려내고, 탐미적 한량인 헨리는 도리언의 외모를 칭송하며 아름다움만이 유일한 가치라고 속삭인다. 맑은 영혼과 예민한 감수성을 가졌기에 오히려 바질의 열정과 헨리의 도발에 쉽게 물든 도리언은 초상화를 보는 순간 자신의 아름다움을 자각하고, 청춘을 상실해야 하는 고통과 두려움을 인식한다. 도리언은 초상화를 바라보며 자기 대신 초상화가 늙어가기를, 그리하여 자신은 젊음과 아름다움을 유지할 수 있기를 기도한다.

 

초상화 속에 미묘한 변화가 일어난 걸 알아챈 날 도리언은 자신의 기도가 이루어졌음을 깨닫는다. 이제 아름다운 외모는 도리언 그레이의 본질이다. 그러나 한 인간이 평생을 살아가면서 변하는 것이 어디 외모 뿐이랴. 나이가 든다는 것은 청춘의 싱싱함과 아름다움을 잃는 대신 내면을 가꿀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다는 의미이다. 정신의 평화와 여유로움을 찾고 내면의 미를 지니게 되면 그러한 궤적은 자연스럽게 사람의 얼굴에 드러나 외모를 바꾸기도 한다. 젊음의 찬란한 빛 대신 내면의 은은한 빛이 얼굴에 드리워진다. 그러므로 40대 이후의 얼굴은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고 하지 않는가. 도리언은 변하지 않는 육체를 자신의 본질로 택함으로써, 정신과의 연결을 초상화에 내줌으로써 아름답게 늙어갈 기회를 상실한다. 늙는 것에 대한 두려움에서 벗어난 순간부터 온전한 감정과 건전한 판단은 더 이상 그의 몫이 아니다. 도덕적 악과 외모의 추를 동급으로 여기는 극단적인 심미론에 빠진 채 자신의 악행으로 점점 추악하게 일그러지는 초상화를 보면서 가벼운 죄책감과 뜨거운 희열을 동시에 느끼는 불완전하고 불운한 사람일 뿐이다. 그의 미래에 행복한 결말이 기다리고 있지 않음은 자명하다.

 

오스카 와일드에게 도덕적 교훈을 주려는 목적 따위는 애초에 없었다고 한다. 실상 아름다움과 쾌락에 관한 헨리의 억설조차 상당히 그럴 듯하게 들린다. 작가 자신이 절대 가치로서의 아름다움과 쾌락의 효용을 그대로 믿고 있는 듯하다. 그가 주장하는 예술 작품의 무용한 미(美)를 작품 전체로 옹호한다. 그러나 이 작품은 자체로 하나의 역설이다. 그토록 아름다움을 찬양하면서 결국은 그것만으로는 온전한 인간이 될 수 없음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으니 말이다. 어쨌거나 지독히 매혹적인 작품이다. 언젠가 다시 읽어야 할 텐데, 절판이라고 한다. 그때도 도서관에서 너덜너덜 다 떨어진 책을 빌려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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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6-08-28 18: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놓기만 하고 차마(?) 읽지 못하고 있는 소설인데 블루님 리뷰를 보니 시도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그 아주 예민한 사람중의 하나인데요(심지어 병적이까지 하죠..^^;;)
어쨌든 나이가 든다는 것은 결코 내면을 가꿀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다는 의미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저 체념하게 되는게 아닐까, 혹은 끊임없이 자신과 싸워나가는 건 그런 힘든 과정이 아닐까 뭐 그런 생각도요.
그리고 늙는 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라기보다 소멸에 대한 두려움이 더 강할 듯 하구요
오늘 마침 필립로스의 인터뷰를 읽었는데 그도 그런 이야기를 하더군요. (대충이긴 하나,) 어쩌면 인간에겐 어떤 생리적 작용같은 게 있어 어느 나이까진 그런 생각이나 의미를 모르고 사는 거 같다고, 그러나 어느 순간이 되면 그게 적나라하게 다가온다는 뭐 그런 이야기요. 물론 내세를 믿는 사람들은 다르지만 자긴 그런 걸 믿는 사람들도 신기하단..
쿨해 보이던 많은 늙은 이(말그대로)들이 생각외로 쿨한게 아니라 두려움에 떨고 있다는 사실은 그들도 그렇구나 하는 동병상련의 위로가 되는 게 아니라 역시 인간은, 삶이란 그렇구나 하는 쓸쓸함만을 더 확인하게 된다는 것, 그래서 사는게 더 자신이 없어진다는 것, 그리고 그게 나이들어가고 살아가는 과정이 아닐까하는 뼈아픈 자각을 자주하게 되네요..^^;;

물만두 2006-08-28 18: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어야지 하면서도 아직도 완독을 못한 책입니다. 잘 손이 안가네요 ㅡ.ㅡ

urblue 2006-08-28 2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물만두님, 초반만 넘어가시면 술술 읽힐거라 생각합니다. ^^

사야님, 님 댓글을 읽다가 '아, 그렇구나' 했습니다. 저는 내면과 외모의 연결과 상호작용같은 것만 생각했어요. 그리고 별 고민없이(회사에서 짬짬이 눈치보며 썼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지적하신 그 부분을 썼네요. 그저 일반적으로 할 수 있는 말이지요. 체념 혹은 자신과 싸워나가는 힘든 과정이라는 말씀을 듣고 보니, 그쪽이 더 맞는 말인 것 같습니다. 소멸에 대한 두려움이라는 것도 그렇구요. 이렇게 얘기하니까 필립로스의 이야기에도 자연 공감하게 되는군요. 전 아직 님이 말씀하신 것들을 깨달을 만한 나이에 이르지 못한 것 같다는 것 말이죠. 절 아는 누군가의 말대로 트라우마 같은 것과 절대 친하지 않은 강철 신경 덕분인지도 모르겠구요. ^^;
사야님은 이 책을 어떻게 받아들이실까 무척 궁금합니다. 그치만 차마 읽지 못하고 계신다면 재촉은 하지 않으렵니다. 자연스럽게 손이 가는 날이 오지 않을까요? 저는, 좀 더 나이가 들어서 다시 읽어볼게요. 그땐 뭔가 다른 걸 잡을 수 있게 될지 조금 기대도 되는군요. 고맙습니다. ^^

urblue 2006-08-29 09: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이죠? ^^

urblue 2006-08-29 1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에... 제가 한 달에 리뷰 두 개나 올리면 정말 열심히 쓰고 있는 거라구욧!
근데 그 다음 말은, 음... 이해가 잘... -_-;;

sudan 2006-08-29 1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뭘 혼자 화내고 당황하고 그러시는 거에요?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은 누군가가 페이퍼 카테고리 이름으로 쓰는 걸 봤어요. 소설인 줄은 알았지만 무슨 내용인지는 몰랐는데, 얼블루님 리뷰 읽고 나니 이제야 무슨 의미인지 알겠네요.(후후훗. 귀여운 스노드랍..)

sudan 2006-08-29 1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요즘은 비공개 댓글이 카운트에 나타나지 않나보네요! 하하하.
오랫만의 리뷰 잘 읽었어요. ^^

urblue 2006-08-29 1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은 저도 거기서 처음 봤답니다. 궁금해서 읽어볼랬더니 황금가지에서 절판이라지 뭡니까. 마포도서관에 (애인이) 가입한 기념으로 너덜너덜 다 떨어진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을 빌려 봤어요. (귀여운 스노드랍..동감.. ㅎㅎ)
비공개 댓글이 카운트에 안 나타나는 건, 글쎄 굳이 그럴 필요가 있나 싶어요. 이렇게 혼자 노는 것처럼 보이다니. -_-;
 
아시아 Volume 1, No. 1 - Summer 2006, 창간호
아시아 편집부 엮음 / 도서출판 아시아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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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 등 대륙 단위로 지역을 나누어 문화, 예술, 사회를 말하는 것은 시쳇말로 날로 먹는다라는 느낌이 강하다. 아시아라고 해도 동북과 서남 지역은 인류학적 요소부터 사회·문화적 요소까지 어디 하나 비슷한 구석이 없는데 어떻게 한 단위로 묶을 수 있을까. 아프리카 역시 지중해 연안과 중부 사막지역, 남부 지역이 완연히 다르다고 한다. 그러니 아시아의 문화, 아프리카의 예술 이라고 칭하는 것은 옳지 않아 보인다.

 

우리 입장에서 보자면 아시아로 묶인 지역들이 유럽 등 여타 지역에 비해 더 가까운 건 어쨌거나 사실이다. 그러니 조금 더 친밀감을 가진다고 해서 누가 뭐랄 것도 아니다. 유럽 애들이 공동체를 만들어 서로서로 친한 척을 하고 있는 판국에 아시아라고 해서 그러지 말란 법 없다. 아니,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가까이 지내야 한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유럽과 달리 아시아인들이 친밀해지는데 장애가 있으니, 그것은 우리들이 스스로의 눈으로 이웃을 바라보지 못한다는 점이다. 이웃에 어떤 민족이 어떤 문화와 사회를 이루어 살고 있는지 미처 파악하지 못하고 있던 사이 서구 열강은 멋대로 아시아를 쪼개서 식민지로 삼아 버렸다. 세월이 흐르고 아시아 각국의 독립이 이루어졌지만, 대다수 아시아인들은 여전히 이웃을 바라보지 못하거나, 서구의 눈으로 이웃을 보는데 익숙해져 있지 않나 싶다. 우리의 경우, 예로부터 교류가 활발했던 중국과 일본을 제외하면 직접 상대와 소통하기보다 서구라는 필터를 통하는 것을 오히려 자연스럽게 여겨왔다. 베트남, 필리핀, 사우디아라비아 등을 이해하기 위해 그들과 만나는 것이 아니라 프랑스와 미국에서 발행한 책을 찾아보는 식이다.

 

<아시아>라는 잡지는 아시아 각국의 문학과 예술, 사회를 읽어내고 그 가치를 함께 공유하고자 하는 취지를 가지고 창간되었다.(알라딘 책소개) 우리 눈에 남이 씌워놓은 선글래스를 벗어버리고 맨눈으로 상대를 직접 바라보면서 얘기를 해 보자는 말이다. 지극히 당연한 이런 노력이 이제서야 시작되었다는 게 조금 신기할 지경이다. 그러나 이미 시작되어 이렇게 한 권의 잡지로 결실을 보고 있다는 사실은 다행이기도 하다. 물론 한계는 있다. 첫 호를 한국에서 발행하면서 한글과 영어를 병기했다는 것은 결국 영어라는 서구의 언어가 아니면 공통적인 소통 수단이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셈이다. 이런 식으로 발행된 잡지가 과연 아시아의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도 읽힐 수 있을 것인지 의문의 여지가 있다. 그럼에도 <아시아>의 목적과 의미를 폄하해선 안 될 것이다. 현석 주간의 창간사 「레인보 아시아」에는 이런 모든 고민과 노력이 그대로 드러난다. 조금 감동했다.

 

잡지에 실린 다양한 글들은 아시아 각국의 사정을 단편적으로나마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소설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바오 닌(베트남)의 「물결의 비밀」도, L. 울찌툭스(몽골)의 「수족관」도, 신인 하재영의 「달팽이들」도 좋다. 특히 울찌툭스의 책이 번역된다면 기꺼이 사 볼 마음이 있다. “아시아의 작가라는 섹션에는 오다 마코토, 김지하, 모옌 등 지명도 있는 작가들의 이름이 올라 있는데, 그럴 수 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이해하면서도 좀 더 젊은 작가들을 찾았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안그래도 문예지들이 사라지고 있는 마당에 <아시아>가 꾸준히 발행될 수 있을지, 그것이 관심이자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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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lmas 2006-08-01 0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이런 잡지도 있었군요. 반갑네요. :-)

urblue 2006-08-01 08: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이런 잡지도 있는데 별로 팔린 것 같지는 않네요. ^^;

blowup 2006-08-02 0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도 이렇게 찾아 읽는 분들이 있잖아요.(끼사스 님도 리뷰를 올리셨더군요.)^^

urblue 2006-08-02 08: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 그게 말이죠, 저도 사서 읽은 게 아니라 좀 미안한 마음이에요.
 
회색 영혼
필립 클로델 지음, 이세진 옮김 / Media2.0(미디어 2.0) / 200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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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온전히 선하거나 악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쯤 이젠 상식에 속한다. 인간의 타고난 본성이 어떻다고, 그 본성을 교화하면 어떻게 된다고 옛 성인들이 뭐라 말씀하셨거나 말거나 간에 대부분의 인간은 악한 면과 선한 면을 동시에 가진다는 걸 학문이 인정하고, 수많은 소설과 영화가 보여준다. 또한 주위에서 경험적으로도 알 수 있다. 흑과 백, 동전의 앞면과 뒷면, 얼굴 위의 마스크. 이런 상황에선 이렇게, 저런 상황에선 저렇게. 딱히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상황에 대처하는 인간의 순발력은 놀랄 지경이다. 멀리서 찾을 것 없이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자. 가끔은 내 안에 이런 악한(혹은 선한?) 면이 있었나 싶어 심지어 당황하기까지 할 정도다.

 

그러니 인간의 영혼이 희거나 검은 것이 아니라 회색이라고 해도 억울할 일은 아니다. 색상표를 찾아보니 흰색과 검은색 사이에는 gainsboro부터 dark slate gray까지 몇 가지 회색이 늘어서 있다. 그러나 흑과 백의 농담을 조금만 달리하는 것으로도 무수한 서로 다른 회색을 만들어 낼 수 있다. 그 중 비교적 흰색에 가까운 쪽에 대부분 인간의 영혼이 위치하지 않을까, 그러다가 나쁜 마음이 들거나 순간적인 유혹이 생기거나 할 때 어둠이 더 짙어지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러나 필립 클로델은 좀 더 부정적인 견해를 보인다. 

 

개새끼도 성자도, 난 한 번도 본 적이 없어. 완전히 시커먼 것도 없고, 완전히 새하얀 것도 없어. 있는 건 회색뿐이야. 인간들도, 그들의 영혼도, 다 마찬가지지. 너도 회색 영혼이야. 우리 모두처럼 빼도 박도 못할 회색이지.

 

빼도 박도 못할 회색이라니. 이 말은 회색 내에서의 다양한 차이, 흰색에 가까운 밝은 회색과 검정에 가까운 어두운 회색의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 것처럼 들린다. 어차피 회색인 바에야 위선을 떨거나 위악을 부리면서 자신을 속이려 하지 말라는 것일까. <회색 영혼>을 읽고 나면 필립 클로델의 이런 주장에 동의하고 싶어진다. 아니, 부정하고 싶지만 동의할 수 밖에 없어서 몸서리가 나고 한숨이 새어 나온다.

 

사건이 일어난 것은 1917년 겨울, 전쟁이 끝나 갈 무렵 프랑스 시골 마을에서이다. 열 살이 채 되지 않은 아름다운 소녀 벨 드 주르가 살해당한 시신으로 발견된다. 경찰관인 화자가 이 사건을 회고하고 있다. 그러나 이 작품은 추리 소설이 아닐 뿐더러, 사건에 대한 이야기도 아니다. 경찰관의 기록은 사건을 중심으로 그것에 연관된 사람들의 내면을, 그들의 회색빛 영혼을 하나하나 드러내가는 과정일 뿐이다. 처음부터 탐욕과 게걸로 얼룩진 성정머리를 드러내는 미에르크 판사와 마치예프 대령 같은 인물이 있는가 하면, 혼자만의 지옥을 끌어안고 살면서도 남들 앞에서는 매력적인 웃음을 잃지 않는 젊은 아가씨가 있고, 성채에서 외로이 열정으로 스스로를 태워버리는 전직 검사 데스티나 같은 사람도 있다. 한편 화자인 경찰관 역시 비밀을 간직한 회색 영혼임에 틀림없다.

 

이 작품을 읽어나가는 것은 마치 나선형 계단을 오르는 듯한 느낌을 준다. 어스름한 계단에 처음 발을 디뎠을 때 독자는 위를 쳐다보면서 그 끝에 무엇이 있을까를 궁금해한다. 어서 올라가 확인하고 싶다. 그러나 곧, 시선은 위가 아니라 계단을 따라 이어진 벽으로 향한다. 그곳에는 위선적이고 위악적인 인간 영혼의 여러 모습이 다양한 회색의 계조로 새겨져 있다. 때때로 고개를 돌리고 싶고, 그냥 아래로 내려가고도 싶다. 하지만 계속 위로 잡아 끄는 힘을 뿌리칠 수 없다. 결국 마지막 계단에 이르렀으나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다. 벽에 새겨진 모습을 보는 것, 그리하여 인간 존재 자체가 회색일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것이 계단을 오르는 목적이었음을 그제서야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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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dan 2006-07-27 14: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땡스투 누르고 주문하자니 배송이 늦고, 서점 가서 사자니 비가 퍼붓고.

비로그인 2006-07-27 14: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속의 검은 부분을 들킬까봐 읽기 겁나는 소설인거 같군요..^^;;

urblue 2006-07-27 15: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야님, 검은 부분이 있다는 걸 알고 계시면 아무 문제 없을 것 같은데요. ^^

수단님, 비가 너무 많이 오네요. 외출 삼가라고 소방방재청에서 문자메시지를 몇 번이나 보내고 있어요. 휏휏휏휏.

로드무비 2006-07-30 1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선형 계단 비유가 참 좋네요.^^

urblue 2006-07-31 16: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 ^^;;

이매지 2006-08-05 0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맛. 블루님 마이리뷰 당선 축하드려요^^

urblue 2006-08-05 1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맛, 고맙습니다. ^^

비연 2006-08-06 0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려요^^

아영엄마 2006-08-07 23: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 리뷰 당선되신 거 이제서야 봤네요. 축하드립니다. ^^

paviana 2006-08-08 19: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축하드려요.ㅎㅎ

urblue 2006-08-09 16: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