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로 만든 사람들
살바도르 플라센시아 지음, 송은주 옮김 / 이레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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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소설은 글 자체로 완전해야 한다고 믿는다.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든 한 인간의 내면을 펼쳐 보이든, 글자로 이루어진 문장들이 독자의 머리 속에서 필요한 이미지를 형성하고 의미를 부여할 수 있어야 한다. 이미 완전한 작품이라면 사진이나 그림 등 다른 시각적 보조 수단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요, 다른 수단으로 완성되어야 한다면 그 작품은 완벽하지 않은 것이다. 시의 경우에는 자간이나 배열을 바꿈으로써 시각적 효과를 노릴 수 있겠으나, 소설은 마땅히 그런 시도를 포기하고 오로지 글로 승부해야 한다는 것이 내 고정관념이다.

 

『종이로 만든 사람들』에서 살바도르 플라센시아는 종이 위에 변혁을 시도한다. 문단 배열 형태를 바꾸고, 빈 페이지를 그냥 두고, 검게 칠하고, 심지어 종이에 구멍을 내기까지 했다. 하지만 이것 때문에 이 작품을 완전히 낯설고 새롭다고 평할 수만은 없는데, 국내에서 작년에 출간된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에서 이미 이러한 시도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비어있는 페이지도 있고, 한 페이지에 단 한 문장 뿐이거나, 줄을 그어 지우고 다시 쓰거나, 빨간 펜으로 교정을 하거나, 글자가 겹치기도 한다. 몇 장의 사진도 실려 있다.) 미국에서는 두 작품 모두 2005년에 출판되었으며, 어느 작품이 먼저 나왔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두 작가가 거의 동시에 소설이라는 출판물에 대한 반역을 꾀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어쨌거나 국내에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이 먼저 소개되었고 이미 그 작품을 보았기에 『종이로 만든 사람들』이 마냥 신기하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종이 위의 형식 파괴가 소설의 내용과 보다 유기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고 해야 할까.


미안한 얘기지만,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을 읽으면서 나는 작가의 노력이 전혀 성공적이지 못하다고 생각했다. 작품이 허접스럽다는 의미는 아니다. 오히려 그런 다양한 시도들이 변혁이 아니라 사족처럼 느껴졌다. 쓸데없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도 이미 충분히 훌륭한 작품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책을 다 읽고 난 후 소설은 역시 글로 승부해야 한다는 내 고정관념은 더욱 강해졌다.

 

반면 종이로 만든 사람들』에서는 평범하지 않은 편집이 주는 효과를 느낄 수 있다.
예를 들어 EMF 단원이 토성에게 본심을 감추기 위해 쓸데없는 생각을 하는 장면에서 이 사람의 생각은 페이지 끝까지 쭉 연결되어 종이 밖으로 빠져나간다. 그걸 읽고/보고 있노라면 언제까지고 쓸데없는 생각의 목록이 이어질 것만 같다. 아마 말줄임표같은 것으로 처리했다면 이런 느낌은 들지 않았을 터이다.

또 아기 노스트라다무스나 꼬마 메르세드가 토성에 대항하기 위해 방어막을 치면 토성은 물론이고 독자들까지 검은 장막만 볼 수 있을 뿐이다. EMF 단원들, 아기 노스트라다무스, 꼬마 메르세드는 이 작품 속에서 작가(토성)가 쓰고 있는 <종이로 만든 사람들>이라는 소설의 등장인물들이다. 말하자면 액자 구성인데, 소설 속 소설의 등장인물들이 소설 속 작가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면 이 책 『종이로 만든 사람들』을 읽는 독자들조차 그들의 생각을 읽을 수 없다는 사실은 꽤 재미있는 발상이다. (방어막을 칠 수 있는 능력에 따라 검게 칠한 칸의 크기가 달라진다.) 이 작품(종이로 만든 사람들)과 그 안의 소설(<종이로 만든 사람들>)과 그 모든 걸 읽고 있는 나(바깥과 안의 동시적 독자)와의 관계를 한꺼번에 조망할 수 있는 틀을 형성하는 것이 바로 작가가 시도한 형식 파괴와 이미지 조합의 효과일 수 있겠다.
이제서야 소설이 때로 보조 수단을 활용하여 더욱 완벽한 구조와 의미를 이룰 수 있음을 인정한다.

 

종이로 만든 사람들』은 쓸쓸하고 쓸쓸하고 쓸쓸한 사랑 이야기이자 "실연의 상처로 가슴앓이 하는" 망가지기 쉬운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오리가미(종이를 접어 여러가지 모양을 만드는 예술) 외과의가 종이로 만들고 꼬마 메르세드가 이름을 붙여준 '메르세드 데 파펠('파펠'은 '종이'라고 한다.)'이 등장하여 마르케스나 보르헤스적인 분위기를 풍기기도 하지만,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는 "우리는 모두 종이로 만들어졌다고 내게 가르쳐준 리즈에게"라는 헌사(이는 아마도 소설 속 소설 <종이로 만든 사람들>의 헌사인 듯 하다.)에 담겨있다. 종이로 만들어진 사람은 날카로운 모서리 때문에 의도하지 않으면서 사랑하는 사람에게 상처를 입힌다. 쉴 새 없이 바스락거리면서 종이 조각을 상대방의 침대며 카펫이며 옷속에 떨어뜨려 놓지만, 때로 상대가 몸에 남겨놓은 흔적은 몸을 다른 종이로 갈면서 무정하게 지워버린다. 날카롭고 뻣뻣하지만 단 한 번의 충격으로도 쉽사리 찢어져버릴 수 있다.

 

사랑했던 여자가 진정한 사랑을 모를 것이라고 생각하는 남자도, 그 남자를 잊지 못하지만 받아들일 수 없는 여자도, 사랑에서 생겨나는 '쇠퇴의 역병'보다 헐리우드를 더 좋아했던 남자도, 영원한 사랑을 절대 믿지 않게 된 여자도, 다른 사랑에 눈멀어 남편과 자식을 떠난 여자도, 절대 돌아오지 않을 부인을 기다리며 잔디밭을 다듬고 또 다듬는 남자도, 떠난 사랑에 울고불고 목매는 이도, 우리 모두는 종이로 만들어진 사람들이다. 종이 심장과 종이 혈관과 종이 피부를 부여잡고 사랑을 한다. 물에 녹고 불에 타는, 무방비의 사랑을 한다. 하지만 사랑이란, 본래 그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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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ire 2007-03-23 0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모 작가가 이 책을 소개한 걸 읽고는, 아 너무 복잡한 얘기 같아서 별로 흥미를 못 느꼈는데, 블루 님의 치밀한 리뷰를 읽자니, 아 읽어보고 싶다 하는 생각이 드네요. 무엇보다 대체 어떻게 '생긴' 녀석인지 '보구' 싶어졌어요.

sandcat 2007-03-23 09: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쓴 글은 탐스러운 미인과 같아요.(..)

mong 2007-03-23 19: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오-이책 망설이며 보관함에만 담았는데
조만간 구입해야겠는걸요~

enirvana 2007-03-26 1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가막힌 리뷰네요 다양한 시각으로 읽을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했지만 또 이런 의미도 있군요 책의 내용을 다시한번 되새겨보게 되네요 좋은리뷰 감사합니다^^

urblue 2007-03-26 1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카이레님, 벌써 보셨나요? ^^ <엄청나게...>를 이미 읽으셨으니까 이 녀석 생김새가 그리 낯설지는 않으실겝니다.

샌드캣님, 잘 쓴 글 보다야 탐스러운 미인쪽이 보기도 좋고... ( '')

몽님, 저만 좋은 건 아닌가 몰라요. ^^

enirvana님, 칭찬 고맙습니다. 좋은 책이란 여러가지 의미로 읽힐 수 있는 책일 테지요. ^^
 
아파트 공화국 - 프랑스 지리학자가 본 한국의 아파트
발레리 줄레조 지음, 길혜연 옮김 / 후마니타스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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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약 통장도 적금 통장도, 물려받을 유산도 하나 없는 남자와 여자가 결혼을 했다. 재테크고 부동산이고 관심도 없고 꼭 집을 소유해야 하냐는 생각으로 속 편하게 살아왔지만, 치솟기만 하는 집값과 전월세 대란이라던 지난 가을 당장 이사할 집을 구하지 못해 생난리를 치던 친구를 보면서 앞날이 걱정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맞벌이니까 소득이야 도시근로자 가구 평균에 비해 높은 편이라지만 그 외엔 쥐뿔도 없는 이 하층 부부가 집을 가지기 위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주택 청약을 통한 아파트 분양 밖에 없어 보인다. 아파트를 싫어한다는 취향 같은 건 고려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 결국 주택 청약 통장과 적금 통장과 펀드 계좌까지 만들었다. 몇 개의 통장을 받아 들고 은행을 나서는 길에 장밋빛 전망이 아니라 우울한 한숨이 들러붙는다.

도쿄로 여행을 갔을 때 남자는 왜 아파트가 눈에 띄지 않는지 궁금해 했다. 물론 일본에도 고급 주상복합 아파트부터 대단지 아파트까지 있다고 한다. 미야베 미유키의 『이유』만 하더라도 고급 아파트와 관련한 사기 및 살인 사건을 다루고 있지 않은가. 하지만 한국에서처럼 가는 곳마다, 눈길 닿는 곳마다 아파트단지가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좁고 길쭉한 2층집과 3~4층 규모의 공동주택이 대부분이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상식, 땅덩이가 좁은 나라에서 많은 사람이 살기 위해서는 아파트가 유일한 해결책이라는 상식이 진짜 상식이라면 인구밀도 높기로 유명한 일본이야말로 아파트를 많이 지어야 하지 않을까. 지진 때문일까. 그렇다면 다른 고층 건물들과 아파트들은 어떻게 설명할까?

지난 몇 달간 이런 대화를 나누고 고민을 하던 부부의 눈에 띈 것이 이 책 『아파트 공화국』이다. 프랑스 지리학자가 한국의 아파트에 관해 썼단다. 여기 사는 우리들은 잘 인식하지 못하지만 바깥에서 보기에 한국은 ‘아파트 공화국’이라 부를 수 있을 정도로 아파트에 집착하는 이상한 나라인가보다. 

저자는 먼저 한국 아파트 단지 개발의 역사를 보고한다. 1950년대 후반 최초의 아파트가 등장한 이래 60년대까지 서울 시민들의 호응을 얻지 못했던 아파트가 70년대와 80년대의 개발 독재 시대를 거치면서 최고의 재테크 수단으로 자리 잡는 과정이 정리되어 있다. 여기서 주목할 만 한 점은 아파트가 개발 독재와 성장의 결과가 아니라 수단으로 작용했다는 사실이다. 대규모 사업으로 특정 건설업체들에게 막대한 이익을 안겨주었으며, 중·저소득층의 봉급생활자들에게 시세보다 낮은 가격으로 아파트를 분양하여 주택 소유와 자산 소득 증가라는 혜택을 줌으로써 그들을 고도 성장시대 독재체제의 옹호자로 만들 수 있었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아파트 단지는 ‘중간계급 제조 공장’처럼 보인다.”는 지적이 뼈아프다. 서글프지만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우리의 현실이다. 대다수 봉급생활자들은 일정 기간 저축으로 목돈을 마련한 후 아파트를 분양 받고 은행대출로 잔금을 메운다. 그리고는 다달이 적지 않은 이자와 원금을 짧게는 몇 년 길게는 십 수 년씩 갚아나간다. 일단 아파트를 분양 받고 나면, 체제 변화는커녕 아파트 값이 떨어지는 작은 변화도 쉽사리 받아들일 수 없는 구조다.

프랑스와 비교할 때 한국 공공주택 정책의 가장 큰 차이점은 저소득 계층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는 점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프랑스에서 국민주택이란 “저소득층이 자신의 수입 안에서 집세를 낼 수 있는 주택”을 의미하고, 공공주택 정책은 “국가가 주택 부문에 관여하여 부의 이전 및 재분배를 도모하려는 것”이다. 반면 한국의 공공주택 정책은 개인적 차원의 소유와 매매를 기본으로 한다. 그리고 “한국인들은 정부 정책에 부응해 주택 구입의 재정적 부담을 받아들였다.” 따라서 “아파트가 가격으로 평가되는 상품이 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천정부지로 오르기만 하는 집값을 잡겠다고 정부가 이런저런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한편에서는 집값이 떨어지면 경기가 침체되고 어쩌고 하는 내용의 신문 칼럼이 꾸준히 실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아파트는 과연 우리에게 유일한 대안일까. 정부가 주장하고 우리 모두가 받아들인 “땅은 좁고 사람은 많기 때문”이라는 설명은 맞지 않다고 한다. 인구밀도가 높은 벨기에나 네덜란드에 대단지 아파트가 거의 없다는 사실, 국내에서도 대단지 아파트의 인구밀도가 오히려 낮다는 사실을 예로 든다. 또 “인구밀도에 대한 수학적 정의(인구/면적의 비례)에 기초한다고 해도, 아파트단지가 가장 조밀한 주거 공간을 제공하지는 않는다는 것이 증명됐”다고 하는데, 그 내용을 자세히 설명해주지 않은 것이 아쉽다. 그럼 우리 정부가 아파트단지 건설에 온 힘을 쏟아 붓는 이유는 무엇일까. 대답은 간단하다. “도시에 관한 총체적인 통찰 없이 문제를 단기간에 해결하는 것으로 만족한다면, 아파트단지는 분명 가장 저렴하고 가장 큰 이윤을 남기는 해결책”이기 때문이다. “도시가옥을 소모품으로 취급하는 한국인 대다수의 ‘무심함’”이 정부 정책을 뒷받침하고 있기도 하다.

물론 많은 한국인들이 아파트를 선호한다. 저자가 인터뷰한 대다수의 한국인들은 아파트를 선호하는 이유로 ‘편리함’과 ‘현대성’을 꼽았다고 한다. 하지만 저자의 눈에 비친 한국 아파트의 모습은 ‘현대적’이고 ‘서구적’인 모습과는 거리가 있다.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현대식 아파트에서의 전통 공간의 ‘재구성’」이었다. 저자는 한옥과 아파트의 구조를 비교하면서 아파트 다용도실(혹은 베란다), 욕실 등에서 ‘플라스틱 슬리퍼’로 갈아 신고 움직이는 것이 한옥에서 마당이나 부엌으로 나갈 때 신을 신는 것과 유사하다고 지적한다. 또 식탁이 있는데도 따로 상을 차려서 식사를 하거나 차를 마시는 모습에 주목한다. 즉 한옥의 불편한 점으로 지적되었던 사항이 아파트에서도 완전히 고쳐진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따라서 실상 한국인들은 실제 아파트의 ‘현대성’보다 “아파트가 갖는 현대성의 이미지”에 현혹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도시의 형태에는 어떤 필연성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 도시 형태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는 전적으로 거주민 및 정부의 비전과 정책에 달려 있다. 마지막 장에서 저자는 질문을 던진다. “한국은 어떤 도시 형태와 사회구조를 발전시키기를 원하는가? 그리고 그 기초 위에서 어떤 주택정책과 주거 공간을 만들어가기를 바라는가?” 과연 우리는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을 가지고 있는가. 단기간의 저렴한 해결책으로 거주자의 생활과 개성을 무시한 똑 같은 아파트를 양산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 속에서 개성과 취향을 찾겠다고 아우성치는 이들을 위해 점점 더 호화롭고 비싼 아파트를 짓고 있는 것은 아닌가. 가진 것 없는 사람들을 아파트단지 밖으로 몰아낸 채 외면하고 무시하는 것은 아닌가. 저자의 마지막 말을 우리는 곰곰이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이것은 먼 미래가 아니라 바로 코앞에 닥친 문제이니까. 개인적으로는 소유나 재산으로서의 주택이 아니라 가족과 생활을 영위하는 주거 공간으로서의 집 한 칸을 합리적인 수준의 노력으로 장만할 수 있으면 하는 바람이다.

“대단지 아파트는 도처에서 대규모 도시문제뿐 아니라 정치적 초점들을 결집시키며, 여러 형태의 감시체제를 발전시키고 있다. 대단지의 형태는 그 자체로 사회 공간적 차별화를 낳지는 않지만, 적어도 이러한 차별화를 고착시키는 효과를 갖는다. 또한 대단지 아파트는 장기적으로 관리와 유지 문제를 더 복잡하게 만들고 필연적으로 그 비용을 더 증대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이는 도시 형태의 견고함을 취약하게 만들어 프랑스에서처럼 쇠락의 길로 접어들거나, 한국에서처럼 일상화된 재개발의 결과를 낳는다. 주택이 유행 상품처럼 취급되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별로 깊이 생각하지 않는 문제이지만, 결론적으로 말해 대단지 아파트는 서울을 오래 지속될 수 없는 하루살이 도시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25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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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팀전 2007-03-06 14: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경향신문 1면에 이 논문이 소개되어 페이퍼도 쓰고 보관함에도 넣었지만 ..다른 책에 밀려 아직 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리뷰가 너무 명료하게 정리되어 있어서 다른 분들이 리뷰를 책으로 대신할까 걱정될 정도네요.^^

urblue 2007-03-06 16: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드팀전님 페이퍼를 보고 이 책을 구입했습니다. 덕분에 재미있고 좋은 책 잘 봤어요. ^^
 
신 기생뎐
이현수 지음 / 문학동네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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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에 여자로 태어난다면 기생이 되고 싶다는 이들을 여럿 봤다. 왜 하필 기생이냐고 물을 필요도 없다. 여자들에게 유독 엄혹한 법도를 강요하던 시대임을 감안하면 별달리 대안이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왕족이나 사대부가의 규수야 먹고 사는 것은 물론 어느 정도의 학문을 익히는 것도 가능하겠으나, 그 갑갑함이 어떠할지 짐작도 가지 않는다. 양민은 좀 더 자유로울 테지만 평생 입에 풀칠할 걱정으로 애가 닳거나 강도 높은 노동을 감당해야만 할 것이다. 먹고 살기 고생스러워 자식을 노비로 팔아야 하는, 혹은 이미 노비인 부모의 딸로 태어날 수 있다는 생각은 애초에 하지도 않을 터이다. 그러니 시문서화를 익히고 풍류를 알면서도 양반의 법도에서 살짝 벗어난, 해어화(解語花) 기생이야말로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가 꿈꿀 수 있는 유일한 조선의 여성상인지도 모르겠다.

 

허나, 해어화란 말을 알아듣는 꽃이지 말을 하는 꽃은 아니다. 아무리 양반네들이 추어준들 기생은 눈요기요 노리개다. 팔도 방방곡곡 뭇 기생들은 물론이거니와 미모와 지성을 겸비하여 현재에까지 이름을 떨친 황진이 같은 천하 명기라 해도 술 따르고 웃음 파는 여인으로서의 삶이 어찌 신산하지 않았을까. (TV 드라마에서 어떻게 다뤘는지 이제서야 궁금하다.) 조선 시대라면 기생이 되고 싶다던 그 누구도 지금 기생이 되고 싶어하지는 않는다. 하고많은 길을 선택할 수 있는 현대에 기생이란 드라마에서나 볼 수 있는 그야말로 과거의 유물일 따름이다.

 

<신 기생뎐>이라는 제목을 보고, 당연히 지난 세기의 어느 때, 늦어도 70년대쯤이 배경이 아닐까 짐작했다. 21세기의 기생은 지나치게 뜬금없는 소재니까. 예상은 보기좋게 빗나갔다. 작가가 준비한 꾸러미 속에 담겨있는 건 바로 현재를 살아가는 기생과 기방의 이야기이다. 하지만 2000년대의 기생이라니, 이거 너무한 거 아니야, 하는 볼멘소리가 먼저 튀어나온다. 판타지가 아닌 다음에야 현실성을 놓친 소설이 좋은 작품일 리 만무하다. 불퉁불퉁 비죽대던 입술은 몇 페이지 넘기지 않아 쑥 들어가고, 대신 눈과 손이 게걸스레 움직인다.

 

줄과부집에서 태어나 딸의 팔자를 염려한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권번에 들게 된 소리기생 오마담도, 암팡지고 억척스러운 박색 부엌어멈 타박네도, 언니들의 꿈을 이루는 대신 아마 마지막이 될 기생의 길을 걷게 된 춤기생 미스 민도, 과묵한 더부살이 박기사와 어이없을 정도로 허술한 제비 김사장도, 무엇보다 제 각각의 사연을 가슴 속에 꾹꾹 누른 이들이 모여 벅적벅적 투덕투덕 살아가는 부용각 자체가 어찌나 생생하고 사실적인지, 군산에 내려가면 어느 모퉁이에선가 대숲을 배경으로 들어앉은 한옥과 능소화 흐드러진 담장을 발견할 수 있을 것만 같다. 그 담장 넘어 왁자지껄 술 취한 객들의 허세와 교태로운 기생들의 웃음이 와르르 흘러나오면 지나던 사람은 흠칫 놀라며 눈살을 찌푸리고 쯧쯧 혀를 찰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낮에 그곳을 다시 들러 처마 밑 마루에 죽 해바라기 하고 앉았는 기생들과 그들에게 욕 한 바가지 퍼붓고 있는 쭈그렁 부엌어멈을 본다면, 저도 모르게 연민 어린 표정을 짓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네들이 그 자리에 앉게 된 수많은 사연과 원하지 않을 때라도 꽃이 되어야 하는 삶의 고단함을 문득 이해하게 될 테니까.  

 

기생이라는, 시대에 동떨어진 듯 보이는 소재로 현실감 넘치는 작품을 써낸 작가의 솜씨가 사뭇 감탄스럽다. 필시 엄청나게 발품을 팔았을 터이다. 눈에도 입에도 착착 들붙는 맛깔나는 사투리와 순우리말은 제자리를 찾아 거침이 없고, 덕분에 책 읽는 즐거움이 한껏 늘어난다. 새해 초부터 이리 훌륭한 작품을 만났으니 올해의 책 운세는 탁 트이려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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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ire 2007-01-25 13: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당장 바구니에 넣습니다. 근데 블루 님. 혹시나 하고 여쭙는데요, 천명관의 고래랑 살짝 분위기가 유사한가요?(블루 님이 고래를 읽었으리라 함부로 단정짓고 드리는 질문입니다만..긁적.. :)

urblue 2007-01-25 14: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래랑은 좀 다릅니다. 고래는, 제가 썩 좋아하는 스타일은 아닌데, 작가가 이야기꾼으로서의 소질이 넘쳐서 '이야기'만 너무 넘친달까요. 왜 약간 남미의 환상적 리얼리즘을 흉내낸 것 같은 느낌이 들잖아요. 그에 비하면 신 기생뎐은 지극히 사실적이에요. 다큐멘터리라고 해도 믿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거기에 작가의 따뜻한 시선도 느껴지고, 인물들의 감정에도 몰입이 잘 되고.
이만하면 답이 되셨나요? ^^

chaire 2007-01-25 14: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 역시! 고래랑 다르다니 안심이 됩니다. 고래에 대한 의견은 저와 같으시네요.^^

urblue 2007-01-25 14: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행이어요. 힛힛.

내가없는 이 안 2007-01-26 09: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 방금 그림 바뀐 거 봤어요. 괜히 신기한 느낌. 올해 책운이 확 트일 것 같은 작품이라니, 저도 미루지 말고 읽어야겠는걸요. ^^

urblue 2007-01-26 1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구입한 지 꽤 오래된 책인데 여태 미루고 있었어요. 왜 진작 읽지 않았나 싶더라니까요. ^^

프레이야 2007-02-09 09: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재미나게 읽었지요. urblue님의 좋은 리뷰를 읽으니 새로운 기분이 듭니다. 참, 저도 조선시대에 태어나면 기생이 되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더랍니다.^^

urblue 2007-02-09 1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갑습니다, 배혜경님. 조선시대에 태어나셨다면 아리땁고 재능있는 기생이 되셨겠지요? ^^

반딧불,, 2007-02-11 0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블루님의 오랜만의 리뷰네요.
저도 참 좋았습니다. 편안하게 읽힌다는 장점도 있었죠.

2007-02-13 12: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달의 뒤통수
Victor Pelevin 지음 / 경남대학교출판부 / 200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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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어제밤에 이 책을 집어들었다. 빅토르 펠레빈에 대해서는 나름 기대를 가지고 있었는데, 첫 페이지를 읽기 시작하면서 벌써 기대감이 와장창 부서져버렸다.

역자 '심민자'씨는 경남대학교 국제언어문화학부에 재직중이란다. (2000년 당시) 이 책 낼 때 아마 무지 바쁘셨던 모양이다. 대학원생도 아니고 학부생들에게 '해석'해 오라는 과제를 내 주고, 그걸 그대로 책으로 만든 듯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개판인 문장을 만들 수가 있을까. 심지어 대학원생 한 명이 달라붙어 조금만 손을 봤더라도 이 정도는 아니지 싶다.

일단, 부제가 "소비에트 영웅 우주비행사들에게 받치는 글"이다.

다음 문단을 보자.

  나는 '코스모스'라는 영화관에서 멀지 않은 곳에 살고 있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역에는 금속으로 만든 우주선이 우뚝 솟아 있었는데, 그것은 마치 어떤 거대한 사랑의 언월도가 땅 속에 틀어박혀 있는 모습과 같은 티타늄 연기의 경사진 원주에 서 있었다.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나는 이 우주선과 함께 장래의 꿈인 우주 비행사의 인격체가 형성된 것이 아니라, 집에서 한 블록 떨어져 있는 어린이 놀이터에 나무로 만든 모형 비행기에서 시작되었다. 그것은 비행기라고도 말할 수 없는, 두 개의 자그마한 창문을 갖고 있는 장난감 집이었다. 보수 기간 중에 한 쌍의 날개가 그려지고 허물어진 담장의 판자로 추스려 만든 고리를 이 장난감 집에 못으로 박히자마자 녹색으로 도색되었다. 그 다음에 서너 개의 커다란 붉은 별이 그 위에 색칠되었다. 이 조그마한 장난감집 안으로 두서너 명이 들어갈 공간이 있었고 그 안에서 군대 징집소의 벽을 내려다 볼 수 있는, 아주 작은 삼각형의 문을 가진 조그마한 다락방도 있었다. 이 다락방은 우리 소꿉동무들의 묵시적인 합의에 의해 파일럿의 선실로 간주되었다. 장난감 비행기가 격추되면, 비행기 기체 안에 앉아있던 아이들이 먼저 뛰어 내렸고 이내 뒤 문쪽을 향해 포효 소리를 내뿜자 비행사가 -물론 시간이 허락한다면- 그들을 뒤따라 탈출할 수 있었다. 군대 징집소의 사무실이 보이는 밑으로부터 하늘, 구름, 땅 지면을 식별할 수 있었으며 창문을 통해 구레나룻 모양의 제비꽃들과 다 시들은 먼지 낀 선인장들도 볼 수 있었다. (13~14p)

이 문단 뿐이 아니다. 100여 페이지를 읽는 동안 거의 대부분의 문장이 이런 식이다. 내 아무리 문장보다 주제나 구성을 중시한다해도 그건 읽을 수 있는 수준일 때의 얘기다. 설마 빅토르 펠레빈이 이렇게 썼다는 건 아니겠지? 아무리 봐도, 외국어를 막 익히기 시작한 사람이 사전을 찾아 단어 하나하나의 뜻을 적어놓고 해석을 시도한 것으로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아니, 어쩌면 역자의 실제 번역 솜씨인지도 모르겠다. '머리말'에도 이상한 문장들이 들어 있으니. 그러고도 잘도 작가와 친분이 있다는 머리말을 썼다. 뛰어난 작가라고 칭찬하면서 이 따위 번역을 한다는게 미안하지도 않은가?

작가에게 이메일이라도 보내주고 싶은 심정이다. 당신의 작품이 얼마나 엉망으로 출판되었는지 아느냐고, 다시는 심씨에게 번역을 맡기지 말라고.

러시아 문학 애호가로서 역자에게도 부탁한다. 다시는 당신 이름으로 된 번역서를 보는 일이 없기를. 이런 책을 다시 봤다간 테러리스트가 될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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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wup 2006-12-06 12: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좀 세게 치셔야 할 것 같아요. 어이구. 근데 100페이지까지 읽으셨다니. 얼블루 님 인내심도 대단해요.

Mephistopheles 2006-12-06 1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눈이 튀어 나올 정도로...말인가요...(띠요요요용~~)

진/우맘 2006-12-06 1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책, 역자와 출판사의 뒤통수를 동시에 치고 싶었는데...ㅎㅎ

이분도 쫌...거시기하네요....네...^^;


urblue 2006-12-06 14: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무님, 그게 말이죠, 설정은 꽤 흥미롭거든요. 어떻게든 끝까지 읽으면서 '해독'하려고 노력중입니다. -_-

메피스토님, 제가 주먹이 좀 맵거든요. 있는 힘껏 때려주고 싶다구요.

진/우맘님, 저 책이 정상적인 출판사에서 나왔다면 당연히 편집자의 뒤통수도 무사하진 않을텐데, 경남대출판부니 뭐, 그냥 넘어갑니다. 근데 스티븐 킹은 인기작가이고 책도 여러권 나왔잖아요. 대체 저 책은 어떻길래. 참.

딸기야놀러가자 2006-12-06 1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떤 거대한 사랑의 언월도가 땅 속에 틀어박혀 있는 모습과 같은 티타늄 연기의 경사진 원주에 서 있군요. 푸하하하하하하 이런 경우는 뒤통수 정도로는 안됩니다. 출판사에 항의전화 하셔야 해요! 이딴 책들, 이딴 번역자들, 이딴 출판사들은 발을 못 붙이게끔 언월도로 싹뚝! 싹을 잘라내야 한다고 봅니다.

urblue 2006-12-06 14: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이 거의 안 팔린걸 다행으로 생각해야 할까요. -_-

마냐 2006-12-06 15: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으...출판사 다시 이름 함 더보구...고개를 내젓고 감다. 그리고...저 분을 위해서라도, 따져야하지 않나요. 자기 이름 내걸고 저리 후안무치하심 안되죠. 어으.....

chaire 2006-12-06 16: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ㅎㅎㅎ. 저는요, 제목에서 한번 뒤집어진 다음, '역자 심민자 씨는'에서 결정적으로 완전 뒤집어졌어요.^^ 번역 개판인 책 한권이 절 모처럼 이리도 웃게 하니, 그나마 다행인 거죠? 근데 바치는 글, 이 아니라 '받치는' 글이라는 거죠? ㅎㅎㅎ 그리고 독자는 열받고... 블루 님, 암튼 고생하셨어요. 토닥토닥.. :)

urblue 2006-12-06 16: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냐님, 그렇게 말씀하시니 항의 메일이라도 보내야 할까 고민하게 됩니다. 찾아보니 역자와 출판사의 메일 주소가 모두 나와있네요. 음...

카이레님, 웃으시면 안된다구욧! 그치만 뭐, 모처럼 웃으셨다고 하시니 다행이라면 다행일지도... 아직 100페이지쯤 남았거든요. 앞으로 더 고생해야해요. 흑흑.

진/우맘 2006-12-07 0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블루님> 뭐, 드림캐쳐는 딴 건 말할 것도 없고....리뷰 중에 인용하자면, '바비는 벌써 밖에 나가있는데 어떻게 바비의 발에 걸려 넘어질 수 있는지' 정도입니다. ㅎ...ㅎ...ㅎ..... 어려운 번역도 아닌데 역자가 주인공 이름을 자꾸 헷갈린다는 거!!!!!

내가없는 이 안 2006-12-07 07: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다보면 졸리겠는데요. 제목은 무척 구미 당기는데 안 읽을 수도 없고, 블루님 고생하시겠어요. ^^ 전 영화화된 소설집 한 권을 읽다가 딱 한 편 읽고 포기한 적도 있어요. 역자 이름 기억해놓고요.

urblue 2006-12-07 09: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우맘님, 그건 정말 역자랑 편집자랑 같이 뒤통수 맞아야겠네요. ㅎㅎ

이 안님, 어제 밤에 마저 다 읽는데, 졸려서 혼났어요. 마지막은 어떻게 진행되는 건지 제대로 파악도 안 되고. ㅠ.ㅜ
이상한 번역하는 사람 있으면 이름을 널리 알려주세요. 다른 사람도 안 보게 말이죠. ^^

로드무비 2006-12-16 2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 지금쯤은 결국 다 읽었겠네요?
거 무신 고집인지.=3=3=3
 
거장과 마르가리타 1
미하일 불가코프 지음, 박형규 옮김 / 문예출판사 / 2006년 8월
평점 :
절판


<거장과 마르가리타>를 읽은 것은 이번이 세 번째이다. 절판되었던 책이 재발간된다는 소식에 좋아라하며 사람들에게 권했는데, 막상 전에 두 번이나 읽은 책의 내용이 기억나지 않는 것이다. 악마가 등장하는 꽤나 유쾌하고 재미있는 작품이었다는 인상과 떠들썩했던 악마와 그의 수하들이 고독하고 음울한 태도로 말을 타고 하늘을 날아가는 마지막 장면만 떠올랐다. 이래서야 좋아하는 작품이라고 말하는 것도 부끄럽다. 생각난 김에 다시 거장과 마르가리타를, 악마를 만나기로 했다. 책을 펼쳐서 읽기 시작하자 벌써 인물들이, 그들의 대화가, 얽히고설킨 사건들이 하나하나 돌아오기 시작한다.

 

소설은, 예수는 결코 존재한 적이 없는 가상의 인물임을 역설하는 편집장과 시인의 대화로 시작한다. 그리고 그들 앞에 나타난 이상한 외국인의 문제 제기. “만일 신이 없다면, 누가 인간의 삶을 지배하며 지상의 모든 질서를 유지하는가.” 편집장은 인간 스스로가 지배한다고 대답하지만, 외국인은 내일 당장 무슨 일이 일어날지 예상할 수도 없고 언제 죽을지 알지도 못하는 인간이 어떻게 계획을 세우고 자신의 문제를 지배할 수 있을까 되묻는다.

볼란드라고 자신을 소개한 이 외국인은, 짐작하다시피, 악마다. 악마의 존재는 반대로 신의 존재 또한 긍정한다. 그러나 불가코프가 딱히 기독교나 예수를 옹호하고자 했던 것은 아닌 듯 하다. 예수아 하노츠리(예수)를 처형한 본디오 빌라도의 고통에 대해서도 상당 부분 언급되지만, 이 역시 종교적인 배경이라기보다는 양심에 어긋나는 행동으로 인한 괴로움으로 보인다. 전 사회와 사상을 통제하려고 덤벼드는 소비에트의 무모함을 비판하고, 그런 사회에서 양심에 따라 소신있게 살지 못하는 사람들의 고뇌를 표현하기 위해 신과 악마라는 초월적 존재를 끌어들였다고 봐야 할 것이다.

 

볼란드의 시끌벅적한 수하들은 모스크바의 곳곳에서 요란한 사건을 일으킨다. 편집장의 아파트는 악마의 소굴로 변하고, 검은 마술사 볼란드의 쇼가 열린 극장에서는 12시가 되면 사라져버릴 신데렐라의 드레스에 부끄러운 줄 모르고 덤벼드는 부인들과 곧 종이 조각으로 바뀔 돈을 한 장이라도 더 줍겠다고 드잡이하는 상류층 인사들의 어리석은 모습이 쇼보다 더욱 화려하게 펼쳐진다. 볼란드의 부하들은 방문하는 곳마다 사람들의 혼을 쏙 빼놓아 줄줄이 정신병원으로 보내버린다. 이 괴상하고 우스꽝스러운 일행은 얼굴을 찌푸리고 이 소동이 마뜩하지 않다는 듯, 어쩔 수 없다는 듯한 태도를 보이는데, 이런 모습은 우리의 탈춤을 연상시키는 구석이 있다. 멀쩡한 얼굴을 어그러진 탈 뒤에 감추고 양반을 맘껏 희롱하는 광대놀음이랄까. 때문에 경직된 사회와 오만한 인물들에 대한 조롱이 한층 두드러진다. 

 

불가코프는 스스로를 풍자가로 불렀다고 한다. 그가 풍자의 대상으로 삼은 것은 물론 소련 사회이다. 1920년 대 한창 활발하게 작품 활동을 벌이며 신랄한 풍자로 인기를 얻던 불가코프는 20년대 말에 이르면 결국 더 이상 출판을 할 수 없는 처지가 된다. 사회주의 사상과 혁명의 당위성을 주장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소비에트 사회에 대한 비판만 쏟아내는 그의 작품을 열성 공산주의자들이 좋아했을 리 만무다. 때문에 이 책에 등장하는 ‘거장’에게 투영된 불가코프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거장은 예수와 본디오 빌라도의 만남에 관한 소설을 썼으나, 이런 작품이 소비에트 문학계에 받아들여질 리 없다. 비평가들의 혹평에 이어 그의 거처를 빼앗으려는 음모에 휘말린 거장은 스스로 원고를 불태우고 정신병원에 들어간다. 이에 비해 글 한 줄 쓰지 않으면서 ‘문학협회’의 회원증을 얻은 사이비 문학가들은 얼마나 대단한 위세를 떨치는지. 볼란드의 부하들이 소동을 일으키고 불을 내는 한 장소로 문학협회를 선택한 것도 당연해보인다. 볼란드는 ‘원고는 절대로 불타지 않는다.’고 말하고, 그의 말대로 거장의 원고가 돌아온다. 자신의 원고도 언젠가는 세상의 빛을 보리라는 희망을 피력한 것일까. 유작이 된 <거장과 마르가리타>는 불가코프의 사후 20여 년이 지나서야 공개되었고, 20세기 러시아 문학의 가장 뛰어한 작품 중 하나로 꼽힌다.

 

이 작품에서 가장 매력적인 인물은 누가 뭐래도 마르가리타이다. 뛰어난 과학자의 아내로 멋진 아파트에서 호사스럽게 살던 마르가리타는 어느 날 길에서 만난 거장과 사랑에 빠진다. 거장이 사라지고 난 뒤 우울한 나날을 보내다 거장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에 악마의 무도회의 여주인 자리를 수락한다. 연인을 잃은 안타까움에 눈물 흘리는 가련한 여인에서 악마의 무도회의 당당한 여주인으로 변신한 마르가리타는 변화를 그대로 즐기고, 그 힘을 이용하여 거장을 공격한 평론가의 아파트를 부숴버리는 호쾌한 모습을 보여준다. 악마에게 자신을 내주었다고 해서 후회하거나 고통스러워 하지 않는, 자신의 선택을 믿는 마르가리타가 사랑스럽다.

 

이 작품은 러시아에서 TV 드라마로 만들어져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작품을 읽다 보면 장(章)으로 끊어 시리즈 드라마를 만들기에 충분해 보인다. 여러 편의 희곡을 쓰고 무대에 올려 성공을 거두었던 불가코프의 특징이 살아 있다. 거기에 풍자와 조롱으로 웃음을 선사하고 있으니 이만한 대본이 또 있을까. 사회를 통제하려는 권력이나 권위를 내세우는 인물들이 어찌 1930년대 소련에만 존재할 것인가. 오늘날 러시아나 우리나라에서 불가코프의 작품이 통할 수 있는 이유가 있다.

기꺼이 두 번 세 번 손에 잡을 수 있는 책, 내용을 되새기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새로운 재미와 의미를 발견할 수 있는 책이야말로 좋은 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책은 사람마다 다를 테지만, <거장과 마르가리타>는 내게는 틀림없이 좋은 책이다. 아마 몇 년 후에도, 문득 떠오를 때면 또 꺼내 들고 읽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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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6-10-17 14: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을까 말까하는 책입니다 ㅡㅡ;;

blowup 2006-10-17 14: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짜임이 촘촘하고, 상징이 풍부하고, 행간이 많은 책들은, 여러 번 읽어도 새롭지요.
얼블루 님의 이 리뷰, 몹시 땡기면서도 한번 보고 저걸 다 읽어낼 수 있을까, 염려스럽습니다.

2006-10-17 15: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urblue 2006-10-17 15: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물만두님, 여전히 고민하고 계신 거여요? ^^ 이 책이 나왔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너무 반가워서 재미있는 책이라고 마구 떠들었지만, 다시 읽어보니 모든 사람에게 재미있을 만한 책은 아닌 것 같더라구요. 일단 님께서 좋아하시는 추리 소설적인 요소같은 건 안 보이니까요.

나무님, 님이 말씀하시는 건, 어떨 땐, 곧이 안 들려요. 설마 님이 상징을, 행간을 못 읽으실까요? 에이, 말도 안 된다구요.

2006-10-20 17: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urblue 2006-10-20 17: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작품 좋아하신다니, 제가 더 반갑습니다. ^^

2006-11-01 12: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6-11-01 14:37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