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문학이 시작되고 있다. 영상문화에 떠밀려, 아주 작은 골방으로 들어온 문학. 그러나 그 문학은 초라해 보인다기보다는 겸손해 보인다. 그 겸손은, 세계사적 전통을 통해 자신의 위치를 파악한 자가, 즉각적인 세계의 참조 사항이, 즉 존재의 당대적 외적 가치부여 방식이 더이상 밑돈을 대주지 않는 자리에서, 존재의 조건 자체로부터 자신의 존재론적 의미를 길어올린다는 의미에서, 동시에 대단한 오만이기도 하다. 이 문학은, 세계에 대고 정당성을 인준해달라고 요구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아주 고요하지만, 그러나 더이상 물러날 곳이 없다는 의미에서 격렬하다. 그 문학은 20세기를 건너뛰어 격세유전적 근원에게로 나선형 방향으로 돌아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 문학을 예고하는 한 젊은 작가가 우리 곁을 찾아왔다. 아직은, 속단일지 모르지만, 이 작가는 미국식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유력한 대안으로 보이는 프랑스적 포스트모더니즘의 기수가 될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대담자의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우리의 성정은 미국사람들보다는 이들에게 더 가깝다. 그를 찬찬히 읽는다는 것은, 자본의 음모에 휘말려 헐떡이고 있는 세기말의 한국인에게 문학적 의미 이상의 것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참고 삼아서 말한다면, 거대 담론들에 별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이 젊은 작가에게 일반적인 얘기를 묻는다는 게 의미 없다고 느껴졌으므로, 그의 작품, 특히 최근작 『시간의 지배자』를 중심으로 대담을 진행시켰다. 좋은 작가는 무엇보다 작품으로 충분히 말하는 사람이니까. 따라서 작품을 미리 읽고 이 대담을 읽는 것이 훨씬 더 이 작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는 말을 덧붙여둔다.

김정란 우선 바보 같은 질문부터 던져보기로 하죠. 왜 경영학을 그만두셨어요? HEC를 나오셨는데, HEC라면 프랑스에서 최고 수재들이 진학하는 학교 아닌가요? 빛나는 장래가 보장되어 있었을 텐데…….

바타이유 경영학을 택한 건 실수였어요. 리세(중고등학교 통합과정) 다닐 때 공부를 잘했어요. 공부 잘하는 학생들이 대개 택하는 진로 중 하나를 택했던 것뿐이죠. 왜 경영학을 공부해야 하나 하고 자신에게 질문도 던져보지 않고 열여덟 살에 경영학 에콜에 입학했어요. 그런데 시간이 조금 지나자, 내가 정말 마음 깊이 하고 싶어하는 건 이게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 겁니다. 경영학을 선택할 당시의 제 모습은 많은 프랑스 학생들의 이미지와 같아요. 어떤 일이 생길지 생각도 해보지 않고, 무슨 수단을 쓰든 직업을 얻으려고 하는 젊은이들의 이미지 말입니다.

김정란 아주 훌륭한 학생이었을 거예요.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아주 훌륭한 작가가 되었고.

바타이유 , 그건 잘 모르겠어요. (웃음)

김정란 아니오, 진심으로 드리는 말이에요. 바타이유 씨의 처녀작을 읽고 전 깜짝 놀랐습니다. 어떻게 스물두 살짜리가 이런 작품을 쓸 수 있을까, 하고 말이죠. 삶의 어떤 면모를 정확히 파악하고 쓴 작품이라는 느낌을 받았어요. 마치 나이가 지긋한 아주 지혜로운 사람이 쓴 글 같았거든요. 젊은이답게 감각이 날카로우면서도, 완벽한 자기 통제력 같은 게 느껴졌거든요. 이번 작품 『시간의 지배자』도 마찬가지였구요.

바타이유 그건 아마도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는 노인을 나레이터로 설정했기 때문에 오는 효과일지도 몰라요. 생의 경험이 없이 글을 쓴다는 것이 당연히 두렵게 느껴졌거든요. 그래서 늙은 대사를 나레이터로 선택한 거죠. 그는 자신이 잘못 살았다고, 권력과 돈을 찾아다니며 삶을 탕진했다고, 이제 내 삶은 공허 속으로 추락할 거라는 회한에 시달립니다. 그런데 이 질문은 글쓰기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죠. 왜냐하면, 이 남자가 글쓰기를 통해서 구원과 부활을 꿈꾼다는 게 명백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작품 첫머리에서 그가 여인들의 속옷과 치마들이 던져져 있는 강가를 배회하는 거예요. 썩어갈 우리의 육체를 감싸는 이 옷감들로 이제 종이가 만들어질 테니까요. 그 종이들, 책장들을 가지고 그는 자신을 구원할 거예요.

김정란, 무거운 주제군요. 글쓰기와 구원의 주제.

바타이유 그렇습니다. 하지만 전 이 작품에서 특히 죽음에 대해 썼어요.

김정란 첫번째 작품 『다다를 수 없는 나라』에서도 죽음의 주제가 나왔잖아요? 죽음이 앞뒤로 맞물려 있었죠.

바타이유 조금 달라요. 『다다를 수 없는 나라』에서 다룬 주제는 사라짐과 버림받음이죠. 예를 들면, 일곱 살에 프랑스에 온 어린 왕자 칸은 완전히 홀로 버림받고 병들어서 혼자 죽어요. 끔찍한 일이죠.

김정란 바타이유 씨에겐 그게 삶의 근본적인 조건인가요?

바타이유 그렇습니다. 전 파스칼 식으로 교육받았습니다.

김정란, 그래요. 바로 그 점 때문에 제가 바타이유 씨 작품을 특히 좋아하게 된 것 같아요. 『시간의 지배자』 끝부분에 나오는, 세 번의 비명 있잖아요? 그 장면이 특히 그랬어요. 인간의 근원적인 비참을 알리는 비명. 마르그리트 뒤라스 작품 안에도 그 비명이 나오죠. 뒤라스도 아주 파스칼적인 작가잖아요? 저 역시 마음속 깊이 파스칼적인 인간이거든요.

바타이유 가톨릭 리세를 십이 년간 다녔습니다. 프랑스에선 드문 일이죠. 사제들에게서 교육받았다는 것이 제 문학의 모든 특성, 특히 문학을 통한 구원이라는 주제를 설명하기 위해선 상당히 중요한 점인 것 같아요. 신을 믿건, 그렇지 않건 상관없이 제 주인공들은 인간의 비참이라는 문제 앞에 홀로 대면하거든요.

김정란 『시간의 지배자』를 번역하기 전에, 일간지에 난 기사들을 대충 훑어보았습니다. 인터뷰에서 밝히신 바에 따르면, 베트남 여행이 글을 쓰게 된 직접적인 동기라구요. 왜 하필 베트남인가요?

바타이유 유럽을 한 번도 떠나본 적이 없었기 때문일 거예요. 대학에서 경영자 수련과정으로 외국 트레이닝 코스가 있었거든요. 처음엔 스위스엘 갈까, 아니면 영국엘 갈까 하고 망설였죠. 그러다가 베트남을 택하게 되었는데, 스무 살짜리 젊은이들이 잘 그러듯이 어떤 도전의식 때문이었을 겁니다. 내가 잘 모르는 이국적인 나라를 택하자는 생각이 들었던 거죠. 오 개월 과정으로 베트남으로 떠났는데, 그곳에서 겪었던 고독이 내 정신에 깊이 각인되어버렸어요.

지독한 더위였어요. 그리고 말도 못하게 끈적거리구요. 식물들은 무시무시하게 울창하고요. 많이 힘들었죠. 왜냐하면 집에서 떠날 때만 해도 전화를 하거나 팩스를 보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그게 아니었어요. 돈이 별로 없었거든요. 그런데 전화 비용은 엄청나게 비싸구요. 그 누구하고도 이야길 나눌 수 없었던 거죠. 프랑스에 돌아온 뒤에, 그 고독의 경험을 글로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죠. 20세기 말에 혼자가 된다, 자, 그럼 3세기 전 어느 날인가 자신의 삶을 구원하기 위해서 베트남으로 떠났던 그 선교사들은 어떤 걸 느꼈을까. 난 그렇게 해서 태어난 내 첫번째 소설 『다다를 수 없는 나라』가 일종의 기도였다고 생각해요. 100페이지 정도 되는 짧은 책인데, 포교를 포기하고 수도사들에게 금지되어 있는 사랑을 하고 죽어가는 수녀와 수사의 이야기죠. 스무 살짜리가 그런 이야기를 쓸 수 있다고 생각한 건, 엉뚱한 생각이었죠. 그렇지만, 중요한 건 내가 버림받음과 침묵에 대해 쓰고 싶어했다는 사실이었다고 생각해요.

김정란 그러나 역사가 있잖아요? 대문자로 씌어지는 역사일지는 몰라도. 한 명의 아시아 여자로 난 이 선택에 관심이 많거든요. 작가는 왜 하필 식민주의에 의해 고통당한 나라를 선택했을까? 그 고독은 바타이유 씨에겐 개인적인 고독이지만, 제겐 베트남의 고독으로 느껴져요. 특히 고통스러워하는 나라의 고독으로요.

바타이유 제가 1992년에 이 나라에 가겠다고 결정한 건 어쩌면 역사 때문이었는지도 모르지요. 천 년간 중국인의 지배하에 있었고, 백오십 년간 프랑스인에게 식민통치를 받았고, 삼십 년간 공산주의 지배를 받은 나라였으니까요. 겉으로 보기에 사이공 같은 도시는 멀쩡해 보이죠. 아시아의 파리라고 불리기도 하잖아요? 하지만 그건 겉모습일 뿐이죠. 겉모습 아래엔 학살과 전쟁의 피가 가득 차 있어요. 그러니까 프랑스인에게 베트남을 향해 다가간다는 건 회한을 향해 다가간다는 의미예요. 베트남은 프랑스에겐 커다란 실수니까요. 난 소설 속에서 그 실수를 향해 두세 명의 수도사들을 데리고 다가갔던 거죠. 굉장한 야심이었어요. 그런데 그들은 베트남 안에서 점점 더 조국과 종교로부터 버림받게 돼요. 그리고 점점 더 자유로워지죠. 점점 더 헐벗고요.

김정란 주인공들이 현대적 삶으로부터 떠날수록 베트남의 오지로 들어가고, 오지로 들어갈수록 높은 곳으로 올라가도록 설정하셨더군요.

바타이유 그건 해방과 상승을 말하는 장치입니다. 세속의 삶으로부터 떠나서 그들은 자신의 따스하고 가벼운 육체를 발견해요. 자신들을 육체적으로 알게 되었기 때문에 그들은 죽습니다. 죽을 수 있게 된 것이지요. 겉으로 보면 이들이 불행해 보일 수도 있어요. 모든 접촉을 잃고, 사람들로부터 버림받았으니까요. 그렇지만 마지막 장면에 그들은 미소를 짓고 있죠. 그리고 그들의 모습에는 어딘가 신성한 데가 있어요. 이 책의 결말은 주인공들로서도 전혀 예상치 않은 것이었을걸요.

김정란 한국에선 선교사의 이미지가 좀 그래요. 왜냐하면, 우리는 항상 어떤 역사적 상처로부터 자유롭질 못한데, 선교사들이 많은 경우 식민정책의 첨병 노릇을 하니까…….

바타이유 제 선택은 어렵지 않았어요. 병사들은 베트남을 이해하려고 하지 않았죠. 반면에 수도사들은 경직되어 있는 선교사들, 즉 식민주의자들이 아니었어요. 그들은 부드럽고 단순한 사람들이었죠. 그들과 베트남 사람들은 서로 가까워지죠. 베트남 사람들은 개종하지 않았어요. 개종한 건 오히려 수도사들이죠. 그들은 그들의 단순한 교리가 먹히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는 포기해버려요. 그들은 자기들이 환경 때문에 신앙을 잃게 되리라곤 생각지 않았겠죠.

김정란 하지만 그들과 원주민들은 새로운 신앙 안에서 만난 것 아닌가요? 도그마가 아닌 신앙 말예요. 아니, 오히려 새로운 조건이라고 말해야 할까?

바타이유 그래요. 새로운 조건이죠. 인간성에 대한 확신이라는 조건. 처음에 그들은 별로 인간적이질 않았죠. 왕의 명을 받아서, 십자가를 들고, 제복을 입고 도착했으니까. 그들이 새로 발견한 신앙은 일종의 혼합 종교죠. 가톨릭적 바탕에 더하기 지혜, 젊음, 우주 안에서의 현존.

김정란 바타이유 씨 첫번째 소설을 읽고, 아주 소박하지만 동시에 오만한 작품이라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생의 문제, 아니면 패러독스를 해결하고 싶어한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상업성은 없겠지만, 그건 굉장한 형이상학적 야심이죠.

바타이유 사실 오만한 책이긴 하죠. 제 말은 해피엔딩으로 끝났더라면 그럴 뻔했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책은 비극으로 끝나죠.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은 겁니다.

김정란 장래가 보장된 직업을 버리고 작가가 된 것도 일종의 오만 아닌가요? 글 써서 먹고살기 힘들잖아요? 그 선택 자체가 물질주의에 대한 저항, 또는 도전 아녜요? 내가 과장하는 건가요? 바타이유 씨 책이 많이 팔릴 것 같지는 않은데…… 프랑스라고 해도 말이죠. 어쨌든 『람세스』처럼 팔리진 않을 거잖아요. (웃음)

바타이유 불행히도 아니죠. (웃음) 하지만 주제에 비하면 꽤 많이 팔렸어요. 제 책이 무척 어둡잖아요. 아까 오만과 도전이라는 말을 하셨는데, 그래요, 사실 그렇죠. 하지만 전 작은 사물들을 통해서 생의 문제를 해결해보려고 해요. 『시간의 지배자』는 무질서에 질서를 부여해서 모든 것을 유지시켜보려고 하는 한 남자에 대한 이야기예요. 무질서는 죽음이니까요. 그러니까 그건 죽음을 해결하려는 시도죠. 그런 의미에서 오만하다고 말할 수 있어요. 하지만 작은 기계장치, 여기서는 시계를 통해서 추구가 이루어져요. 『시간의 지배자』는 시간에 대한 형이상학적 소설이 아닙니다. 시간에 대해서 뭘 말할 수 있겠어요? 시계를 선택한 건, 그건 그냥 말하는 방식일 뿐이죠. 시간을 맞추는 주인공은 죽음에 대한 강박관념을 가지고 있어요. 어떤 의미에서 그는 범죄자예요. 죽음, 그의 시계에 너무나 신경을 쓴 나머지, 그는 오히려 카오스가 시테 안에 자리잡게 만들어요. 카오스는 시계를 통해서가 아니라, 강간당한 그의 딸을 통해 시테 안에 들어오죠. 왜냐하면, 강간이란 찢어진 살을 의미하는 것이고, 카오스는 살 안에 깃들여 있는 것이니까요. 헬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예요. 사랑에 대한 감각을 가진 여자, 부드럽고, 섬세한 헬렌은 책의 끝부분에서 다시 아기를 가지게 돼요. 아르투로가 떠난 지 한참 뒤인 이 년 후에 가진 아기이니까, 아르투로는 아버지일 수가 없죠. 아버지는 결국 공자그겠죠. 그렇게 부드럽고 아름다운 여자에게 공자그라는 시체를 연인으로 가지게 한다는 건, 그건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에요. 아무것도 해결하지 않고 도망쳐버린 아르투로는 그런 의미에서 범죄자입니다.

김정란 해결하지 않은 게 아니고, 해결할 수 없다고 생각하셨던 것 아닌가요?

바타이유 정확하게 보셨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소설은 오만하지만 동시에 겸손한 소설입니다. 죽음으로 끝나기 때문이에요. 나레이터 역시 죽을 사람이죠. 죽을 사람이 한 소녀의 죽음에 대해 말하는 형식을 택한 겁니다. 장소 역시 마찬가지예요. 그는 베르사이유에서 말하지만, 불 꺼진 베르사이유, 끝나버린 베르사이유, 가을의 베르사이유예요.

김정란 바타이유 씨의 소설 세 권이 모두 바로크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거든요. 그 시대에 특별히 매혹되어 있는 건가요?

바타이유 편의상 그 시대를 선택한 것이기도 해요. 『다다를 수 없는 나라』를 예로 든다면, 만일 오늘날을 배경으로 베트남에 대해서 썼다면 우스꽝스러웠을 거예요. 제가 택하는 시대는 역사 안에 있으면서 동시에 역사 밖에 있지요. 과거 시대를 택하면, 덤으로 생겨나는 효과가 있어요. 깊고 비극적인 울림이 생겨나거든요. 『시간의 지배자』도 마찬가지예요. 난 이 소설이 당대적이지 않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모든 게 똑같아요. 권력과의 관계, 남자들의 행태, 여자를 취급하는 방식. 난 이 책이 과거의 텍스트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비극적 차원은 여전히 생생하게 남아 있어요. 신하들과 공자그의 관계는 기업에서 사장과 근로자들이 맺는 관계와 똑같아요. 인간 조건의 차원은 전혀 바뀌지 않았어요.

그러나 내가 이 시대(1700~1715년경)를 택한 데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어요. 이 시기는 루이 14세 시대 말기입니다. 루이 14세의 시대는 멋진 시대였지만, 절망스러운 시대이기도 했습니다. 왕은 지치고, 왕궁을 유지하기도 힘들고, 몰래 후궁들을 계속 맞아들이고…… 그러니까 그 시대는, 제 소설에 나오는 메타포를 인용한다면, “바위에 깃들여 있는 죽음”이에요.

김정란 전 이 시대의 선택을 그렇게 해석했어요. 이 작가는 20세기의 인류가 기대고 있었던 패러다임이 부서져버린 것을 예감하고, 20세기 패러다임의 근원지로 돌아가본 거라구요. 즉 근대성 패러다임, 국가 정체성을 발생시킨 근원지지요. 근원지로 돌아가 옛날 패러다임이 발생시킨 타자들을 뒤져내는 거라고요. 그래서 궁전의 하인들을 주인공으로 택한 것 아닌가요?

바타이유 탁월한 해석이군요. 하지만 난 그렇게 깊이까지 생각했던 건 아닙니다. 내가 궁정 하인들에게 관심을 가진 건 사실이에요. 그래서 밤에 촛불을 들고 시계를 맞추러 복도를 돌아다니는 사나이의 이미지가 얻어졌죠. 난 무엇보다도 왕국의 어떤 비전을, 천국의 이면을 살펴보고 싶었어요. 밤에 일하는 사람들이 발견했을 비전, 어떤 형태, 어슬렁거리는 그림자. 낮의 사람들인 권력자들은 그걸 보지 못하죠. 그에겐 모든 것이 가려져 있어요. 낮의 베르사이유는 우월한 버전이죠. 그러나 다른 버전도 있어요. 그건 베르사이유의 일부를 이루고 있는 분지, 호수, 늪지대예요. 그건 결국 디오니소스적 통행로, 켈트적 요소들이죠. 다른 쪽에는 태양왕 루이 14세와 함께 프랑스적 질서가 자리잡고 있고요. 사물들을 질서 속에 유지시키려고 애쓰지만, 한순간 디오니소스가, 옛날의 바탕이 돌아옵니다. 그건 폭력성, 잔인함이죠. 바위 속에 숨겨진 저주처럼 말예요.

김정란 시테의 어두운 분위기가 그걸 말해주는 장치겠군요. 주인공 이름 아르투로가 재미있어요. 전형적인 유럽 이름이면서도 혼성 문화적이거든요. 귀족적인 이름인데, 어쩐지 좀 동양적으로, 타르타르적으로 느껴져요. 어떻게 정해진 거죠?

바타이유 좀 우스꽝스럽게 보이라고 그렇게 정했어요. 프랑스어로 O로 끝나는 이름은 어쩐지 좀 웃기게 들리거든요.

김정란 아더와는 연관이 없나요? 킹 아더? 그도 역시 세계의 구원자가 아닌가요?

바타이유 약간은요. 카멜롯의 아더 말예요. 그러나 프랑스에서 아르투로는 촌스런 이름이에요. 아르투로는 키가 크고, 패션감각도 없고, 말도 할 줄 몰라요. 한마디로 농부 같은 사람이죠. 아르투로는 침묵입니다. 반면에 헬렌은 말을 잘하죠.

김정란 그건 이를테면, 문학의 자질 아닌가요?

바타이유 아르투로­헬렌 부부를 통해서 내가 보이려고 했던 것은, 오히려 어떤 구어 전통 같은 것이었어요, 헬렌은 목소리이고, 아르투로는 육체지요.

김정란, 그래요! 몸이 알고 있는 언어, 남자들에게서 사장되어버린, 남자들이 어둠 속에 파묻어버린, 그러나 여자의 음성을 통해서 햇빛 속으로 불려나오는 말이란 말이군요. 이를테면 어떤 ‘잠재적 문학’ 같은 개념이겠군요!

바타이유 틀림없습니다. 정확하게 보고 계시군요.

김정란 내게는 로도이프스카가 그 언어의 상징일 거라고 생각되었어요. 그러나 바타이유 씨는 작품 말미에서 그녀를 죽여버렸죠. 그녀는 삶 안에서 생존 형식을 얻지 못해요. 난 그녀가 아직 오지 않은 말이라고 생각했어요.

바타이유 바로 그렇습니다. 그녀의 얘기는 좀 복잡합니다. 처음엔 로도이프스카를 중심으로 얘기를 해나갈 생각이었거든요. 그런데 쓰다보니까 조금 달라졌어요. 그녀에 대해선 아직 무언가 잘 쓰지 못하겠더라구요.

김정란 로도이프스카는 사랑할 줄 모르는 남자에 의해 강간당하죠. 공자그는 여자의 살만을 받아들이는 사람이니까. 공자그는 나에겐 물질주의, 또는 권력의 상징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바타이유 분명히 그렇습니다. 그는 소유에 대한 광기이죠. 그와 로도이프스카의 관계는 미묘해요. 공자그가 로도이프스카를 소유하려 했는지, 아니면 아르투로의 딸을 소유하려 했는지 분명하지 않거든요. 공자그는 로도이프스카를 소유함으로써 아르투로를 지배하려고 하는 거죠. 그러니까 로도이프스카는 일종의 전달 장치인 셈이죠. 로도이프스카를 소유한다는 건 공자그에게는 아르투로에게 누가 아르투로의 주인인가를 보여주는 방법도 되는 거죠. 아르투로는 복수하지 않고 도망가요. 떠나버리죠.

김정란 아무 데로나 가버리죠. 아니면 아무 곳도 아닌 곳으로 갔든가.

바타이유 사라진 거예요. 공자그의 태도를 ‘권력’말고, ‘권태’로 설명할 수도 있어요. 그는 여자, 문학, 도서관, 그런 식으로 계속 오락을 찾아다니죠. 결국 마지막엔 로도이프스카를 강간하죠. 그의 마지막 오락은 잔인함이죠. 그것이 강간의 동기예요. 한순간, 그는 한 여자의 육체에 물리적인 힘을 행사함으로써 진짜 힘을 소유했다고 느끼는 거죠. 중요한 건, 그녀가 자기가 파괴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는 거예요. 그것이 강간의 도착적 쾌락이죠. 그건 더 나쁜 일이에요.

김정란 『시간의 지배자』에선 시계가 중심 상징으로 나오죠. 218개의 시계가 나오는데, 그 숫자가 무슨 의미를 가지고 있나요?

바타이유 아뇨. 난 숫자를 믿지 않아요. 무엇인가 의미할 수는 있겠지요. 그러나 정말은 아무래도 상관없다고 생각해요. 난 그것이 엄청난 숫자라고 생각해요. 엄청날 뿐만 아니라, 현실적으로도 근거가 있다고 생각되는데, 베르사이유에는 약 6백 개 정도의 벽시계가 있거든요. 그러니까 2백 개 정도는 가능한 숫자죠. 재미있는 얘기가 있어요. 샤를르 캥(샤를르 5세)이 스페인의 성에서 말년을 보내고 있을 때 일인데요. 어느 날인가 꿈속에서 40개의 벽시계가 한꺼번에 울리는 꿈을 꾸고 그것을 실현해보려고 했답니다. 그런데 물리학자들이 그것이 불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는 거예요. 40개의 벽시계는 수학적으로 무한에 가깝다는 거지요.

김정란 아르투로의 태도 중에서 특히 나에게 흥미로웠던 것은, 그가 한 시간 늦게 가는 고장난 시계를 다 분해하고 난 뒤에, 고장난 것이 없다고 말하면서 “그런 거예요”라고 말하는 장면이었어요. 모순을 견디는 태도지요. 말하자면, 어떤 동양적 견딤, 똘레랑스를 알고 있는 거죠.

바타이유 그리고 동시에, 그가 나약한 존재라는 뜻입니다. 그 나약함 때문에 그는 로도이프스카를 공자그의 품에 내던지죠. 물론, 그 때문에 그가 공자그처럼 편집광적 인간이 되지 않는 것이기도 하지만. 그는 결국 운명이 굴러가는 대로 내버려두는 사람이에요.

김정란 그건 결국 『시간의 지배자』 전체를 덮고 있는 쇠의 위협에 노출되어 있는 ‘헝겊’과 ‘속옷’의 이미지로 표현되고 있지 않나요? 몸에 아주 가까운, 꼭 조이는 코사쥬, 투명한 헝겊. 아르투로가 오간디 보자기 위에 시계 부품을 늘어놓는 장면이 아주 인상적이었어요.

바타이유 그 장면에서 드러나는 건 특히 살과 시간과의 싸움이죠. 아르투로는 그래서 매일 밤 시계 부품들을 재조립하는 거지요. 하지만, 공자그는 그걸 잘 견디질 못해요. 그는 분명히 살을 택했으니까요.

김정란 아르투로는 밤의 존재지요. 그렇지만 헬렌과의 결혼에 의해서 그는 낮의 자질을 흡수하게 되잖아요? 여자의 존재에 의해서 디오니소스적인 살이 아폴로적인 살로 바뀌잖아요. 결혼 전에 문을 꽁꽁 닫고 커튼을 치고 살던 그가 결혼 후에 비로소 빛을 만나는 걸로 묘사하셨던데…….

바타이유 정확히 말해서 그렇습니다. 그러나 그냥 단순하게 생각할 수도 있어요. 서른다섯 살이나 마흔 살 먹은 독신남성이 사는 방식 말예요. 엉망으로 살죠. 여자를 얻으면 사는 게 좀 나아지니까. (웃음)

김정란 에이, 그것만은 아닌 것 같던데요. 아르투로의 아파트는 작품 안에서 중요한 상징적 역할을 하고 있던데요.

바타이유 그래요. 솔직하게 말하면 그래요. 아르투로의 아파트는 왕궁 안에서 무질서가 허용되는 유일한 공간이에요. 그 무질서를 누리기 위해서 ‘다른곳’으로 갈 필요가 없다는 거죠. 왕궁은 일종의 공식적인 장소예요. 모든 것이 조직화되어 있죠. 궁정사람들은 온갖 잡동사니들이 널려 있는 그곳에서 스스로에게 약간의 가벼움을 용인합니다. 아르투로의 아파트는 약간의 카오스예요.

김정란 포스트모던한 태도죠. 카오스를 로고스로 통제하지 않고 견디는 거죠. 그런데, 아르투로는 시계를 꼬박꼬박 맞추거든요. 그건 분명히 모던한 태도구요. 그건 바타이유 씨 작품 전반에서 읽히는 완벽한 통제력과 맞물려 있어요. 그런 특성을 어떤 평론가들은 ‘고전주의적’이라고 보고 있는 것 같구요. 그런데, 이게 아주 흥미로운 부분인데요, 바타이유 씨 작품은 그렇게 통제되어 있고, 깔끔하게 다듬어져 있는데도 어딘가 부서져 있어요. 어떤 신비한 비논리, 또는 비규정성이 안개처럼 작품을 감싸고 있거든요. 그게 뭘까? 그래서 난 이 작가가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 사이에서 어떤 오솔길을 찾아내었다”라고 썼어요.

바타이유 아주 흥미로운 해석이군요. 하지만, 그건 제가 일부러 시도한 건 아녜요. 어쨌든, 아르투로에게 포스트모던한 데가 있다는 건 인정합니다. 그가 기계만을 만지는 건 아니거든요. 그는 지성의 인간이 아니라 직관의 인간이죠. 그는 생각하지 않고 느껴요. 특히 밤의 소리, 무한의 소리를 듣죠.

김정란 그 직관적 비논리가 폭발하는 장면이 강간의 장면 아닌가요? 아까도 말했지만, 난 그 장면이 너무나 좋았어요. 어떤 아름다운 잔인함. 아주 잘 형식화된 잔인함이라고 할까? 난 로도이프스카가 지르는 세 번의 비명 소리가 그녀의 아버지의 세 번의 야간 순찰과 겹쳐진다고 생각했어요. 어쩌면 네번째의 비명은 헬렌이 가지고 있는 그 아기 아닌가요? 어때요? 그 네번째 비명은 세계와 화해할 수 있을까요? 저는 노래가 될 수 있느냐고 묻고 있는 거죠.

바타이유 아기가 나오려면 일 년은 기다려야 하니까, 일 년 뒤에나 보아야 할 것 같은데…… (웃음) 어쨌든 그 아기는 희망의 기호입니다. 모두들 다 죽은 다음에도 한줄기 빛이 남아 있을 거라는 믿음이죠. 어쩌면 로도이프스카가 너무나 비현실적인 인간으로 느껴져서 그 아기의 아버지를 공자그로 설정하게 되었는지도 모르겠어요. 강간의 장면만 해도 그래요. 전혀 현실적이지 않거든요. 그건 강간이 아녜요. 피도 살도 없어요. 내가 써놓고도 비현실적 순간처럼 느껴져요.

김정란 전 로도이프스카를 작은 프란체스코라고 불렀어요. 그녀가 짐승의 말에 가까운 말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녀의 비명은 일종의 말하기 방식 아닌가요? 응결된 말. 아니면, 말에 대한 거부로서의 말하기.

바타이유 이 비명에는 다른 뜻도 있습니다. 이건 로도이프스카가 시테에 말하는 방식이에요. 그 비명 때문에 시테 전체가 사건을 알게 되었거든요. 그리고 그 다음날 바닷가에서 아이의 시체를 발견하죠. 그런데 이상한 건, 아무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보러 잠에서 깨어나지 않았다는 사실이죠. 헬렌도, 아르투로도, 그 누구도. 밤에 일하니까 분명히 깨어 있었을 아르투로도 꼼짝하지 않았어요. 이 비명은 반향이 없는 비명입니다. 무거운 납으로 짓눌려 있어요.

김정란 원초적 살인사건 같은 거죠.

바타이유 결과가 없는 행동.

김정란 이미 저질러졌고, 그리고 그것에 대항해서 우리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건.

바타이유 , 정확해요. 그 때문에 내가 책 앞머리에 셰익스피어의 문장을 인용한 거죠. 시테는 침묵했지만, 분명히 어떤 사건이 일어났는지 알고 있었어요. 그게 바로 강간―부서진 살에 대한 비전, 그리고 그것이 어떤 위치를 가질 수 있느냐 하는 것과 연관되어 있죠. 그런데 위치가 없는 거죠. 그건 그냥 벌어진 일일 뿐이에요. 이미지죠.

김정란 모든 게 나아질 거예요. 제로부터 다시 출발하면 되죠, 뭐.

바타이유 제로보다 못한 데에서 출발해야 할지도 모르죠. (웃음)

김정란 이 정교한 글쓰기가 어떻게 가능한가요? 어떻게 작업하세요?

바타이유 처음엔 몇 개의 이미지가 있어요. 베르사이유의 오두막에서 밤에 일하는 하인이 생각났다든가 하는 식으로 어떤 합리적 요소들이 있어요. 그런데, 나머진 어떻게 씌어지는지 잘 모르겠어요.

김정란 아마 천재성이 받아쓰기를 시키나보죠?

바타이유, 설마…….

김정란 바타이유 씨의 작품은 삶에 대해 깊이 절망한 사람이 쓴 책처럼 보여요. 어떤 이유라도 있나요? 어떤 인터뷰에선가 “난 현대가 추악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한 걸 보았는데…….

바타이유 그건 제 확신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말할 때, 난 의식하고 있습니다. 부자이고, 힘세고, 과거가 찬란했던 나라 사람으로서 쉽게 하는 말일 수도 있다는 걸 말입니다. 내가 “세계는 추악한 곳이다”라고 말할 때, 그건 부자나라 국민의 예술적 시각을 말하는 것만은 아닙니다. 제 느낌은 분명해요. 난 세계가 추악하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그것이 내가 글을 쓰는 진정한 유일한 이유예요.

김정란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걸 문학의 이유로 생각하신다는 거죠?

바타이유 싸움입니다. 제 감각으론 언제나 싸움입니다.

김정란 역시 파스칼리엥다운 용어로군요. 벌써 어느 정도 성과가 있었던 싸움 아닌가요? 그렇게 젊은 나이에…….

바타이유 흥미로운 건, 세계가 추악한 곳이라면, 문학 역시 추악한 것을 사용한다는 얘기거든요. 예를 들어서 포크너는 강간에 대해서 무려 3백 페이지 가량을 쓰고 있어요. 그런데, 아름다움에 의해서, 그 추악함이 윤리적인 것으로 바뀌어버려요. 도스토예프스키도 그 비슷한 말을 했어요. 그의 말은 일종의 종교적인 언급이지만, 신의 현존 안에서든, 밖에서든, 전 아름다운 것을 찾아요.

김정란 내가 잘못 생각한 것이 아니라면, 당신 책에는 어떤 종교성에 대한 믿음이 있어요. 신도 등장하지 않고, 신의 이름도 말해지지 않지만, 분명히 어떤 존재를 찾고 있다는 것이 느껴져요.

바타이유 그렇습니다. 신은 없지만, 신이라는 목표가 없는 건 아녜요. 하지만 성공하고 있지 못한 목표죠. 언젠가 난 신을 만나게 될지도 모르죠. 내 등장인물들 중에서 그럴 수 있는 역량을 가진 사람은 헬렌뿐이에요. 사실, 신을 만날 수 있는 자질은 사랑으로부터 오는 것이거든요. 그녀만이 제대로 사랑할 줄 알죠. 사람들이 공자그에게서 용서하지 않는 것은 바로 그가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 즉, 신에 대한 비전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에요. 신에 대한 감각은 사랑을 통해 드러나거든요. 사랑에는, 그것이 아무리 괴상하고 폭력적인 것이라 하더라도, 어떤 기독교적 의미가 있어요. 자기자신만을 사랑한다는 것은 악마적인 것이죠.

김정란 이제 작품 밖으로 조금 나가볼까요? 약관 22세에 쓴 『다다를 수 없는 나라』부터 평단의 대대적인 조명을 받으셨는데, 그런 뜨거운 반응을 기대하셨나요?

바타이유 아뇨, 전혀. 하지만 칭찬이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어요. 잘 썼다고 칭찬해준다고 들뜰 이유 없어요. 결국 저 자신에게 달린 문제죠.

김정란 요샌 예술적 재능을 가진 젊은이들이 몽땅 영화판으로 몰리는 추세잖아요? 프랑스만 해도 30세 미만의 재능 있는 시네아스트들이 진을 치고 있고…….

바타이유 그래요. 괜찮은 친구들이 많죠. 하지만, 영화는 정부의 대대적인 지원을 받거든요. 그 점도 중요한 요소죠.

김정란 문학은 지원 안 해줘요?

바타이유 문학은 없어요.

김정란 어떤 작가들을 좋아하세요?

바타이유 아직 잘 모르겠어요. 계속 발견해가고 있는 중이니까. 도스토예프스키, 포크너, 클로델, 보들레르, 랭보, 라 로슈푸코, 복음서 저자들, 생종 페르스 등등.

김정란 프랑스 문단은 어때요? 간단하게 묘사해줄 수 있어요?

바타이유 베르사이유죠. 좀더 요란하거나 덜 요란한 코스츔을 입은 15명 정도의 권력자들이 중앙에 포진하고 있고, 그들을 3천 명 정도의 궁인들이 둘러싸고 있죠. 어디나 다 똑같지 않은가요?

김정란 궁녀들은 없어요? (웃음)

바타이유 물론, 다행히도, 있죠. (웃음) 재능 있는 작가들이 많아요. 뚜렷하게 두각을 나타내는 사람들은 없지만, 기다려볼 만하다고 생각해요, 지금 프랑스 문단은 1895년 상황과 비슷하거든요. 말라르메와 랭보가 사라졌지만, 벌써 지드, 클로델, 발레리, 생종 페르스 등이 대기하고 있었거든요. 사르트르, 아롱, 들뢰즈, 푸코, 사로트 등의 대가들이 지난 삼십 년 동안 모두 세상을 떠났어요. 지금 나타나지 않았다 뿐이지 어딘가 숨어 있는 작가들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영화는 정말 굉장히 힘차고 아름다운 걸 만들어내고 있거든요. 타르코프스키나 데이비드 린치의 영화들은 정말 기차요. 같은 영화는 너무나 힘차고 아름답거든요.

김정란 아주 야만적이면서도 도시적이죠. 아름다운 잔인성. 그러면서도 생에 대한 아주 구체적인 감각이 있어요.

바타이유 카프카가 그랬어요. “책이란 무엇인가? 그건 균열이다.” 읽고 나서 무언가 깨어지는 느낌을 받아야 하는데, 요즈음 책들에선 그게 안 느껴져요.

김정란 영상 문화 앞에서 문학이 너무 주눅들어 있는 건가요?

바타이유 아뇨, 꼭 그렇다고 생각 안 해요. 물량적으로 하도 밀고 들어와서 그렇지, 많은 영화들은 쓰레기들이죠. 문학은 약한 입장이긴 하지만 폭발의 핵이 될 수도 있어요. 예를 들어서 랭보의 『지옥에서 보낸 한철』은 발표 당시엔 15페이지 정도의 팜플렛 같은 책이었거든요. 그 당시엔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어요.

김정란 그땐 영화가 없었잖아요. (웃음)

바타이유 글쎄, 그런가요? 어쨌든, 기다릴 줄도 알아야죠. 그래서 편집자의 입장에서도 전 대가들보다는 젊고 이름 없는 친구들을 돌보는 쪽이죠. 그들 중에 미래의 랭보가 있을지 어떻게 알겠어요?

김정란 당신 자신은 아닌가요? 이런 게 그야말로 독­아첨인가? 문학뿐 아니라, 인문학 전체가 상업주의 앞에서 맥을 못 추는 것이 세계적 추세인 것 같아요. 프랑스는 어떤가요?

바타이유 인문학의 위기는 인문학 자체의 위기라기보다는 출판 유통의 위기죠. 책들을 도통 안 사거든요. 그나마 인문학 책을 사는 사람들마저도 영성이나 종교에 대한 책들만 사요. 파라셀즈, 프리메이슨단, 연금술 등등. 인문학이 힘을 잃고 있는 반면에 신에 대한 추구는 강력하게 나타나고 있는 거죠.

김정란 그건 인문학이 대중의 요구에 대답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요?

바타이유 그런 측면도 있겠죠. 어쨌든 이런 반응이 어떤 특별한 콘텍스트를 구성하고 있는 것만은 틀림없는 것 같아요. 하나의 콘텍스트가 끝났다는 것을 알게 해주는 일련의 현상들이 있어요. 사회학, 생태학 책들은 이미 충분히 소비되었거든요. 지금은 새로운 패러다임의 도래를 기다리고 있는 시기인 것 같아요.

김정란 기다리면서, 당신의 문학이 훗날 폭발의 핵이 되길 바랍니다. 어쨌든, 지구의 어디에선가 진지한 태도로 글을 쓴 사람이 있다는 걸 안다는 건 그 자체만으로도 즐거운 일입니다. 오랜 시간 애쓰셨습니다.

바타이유 한국의 독자들을 만나게 되어 많이 기쁩니다. 앞으로도 다시 만나게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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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4-09-06 1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건 또 언제 퍼왔을까?
저도 갖다놓을래요. 나중에 읽어봐야지...
김정란이 참 인터뷰 잘하죠?

urblue 2004-09-06 1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하긴 하는데, 좀 자기 생각을 강요하는 듯한 인상이 있어요.

로드무비 2004-09-06 14: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처럼요?^^(자기 생각을 강요...움찔...블루님한테만...)
시아일합운빈현님, 어제 폭스바겐님 방에서 저 밀어주셨죠?
이벤트 끝난 후에...나중에 보고 얼마나 웃었는지...

플레져 2004-09-07 0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아블루님, 저도 퍼갈게요. 동시에 인사 드립니다. 플레져에요.
자주 뵈면서도 뒤늦은 인사, 이해하세요 ^^
님의 페이퍼를 즐겁게 훔쳐보고 있어요. 이젠 얼굴 내밀고 볼게요. 뙤 뵈요~

urblue 2004-09-07 09: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플레져님. 님의 빨간 치마는 언제 어디서 봐도 인상적입니다. ^^ 자주 놀러오세요~
 
 전출처 : 에레혼 > Veruschka




"태초에 저 기막힌 스타이노르트라는 낙원이 있었다.
그리고 그 후 전쟁이라는 연옥과 1944년 7월 20일의 지옥과
독일 전체의 붕괴라는 또 하나의 지옥이 있었다.

그런데 그 때 그 모든 잔해들로부터 저 아연실색할 여자아이가,
그녀의 아버지가 교수형을 당할 때 천사같은 얼굴을 지녔던
겨우 다섯 살짜리 어린아이 Vera가 불쑥 모습을 나타내어
크고 또 커서 차츰차츰 Veruschka로 변해갔다.

이 세계의 가장 이름난 잡지들이 거대한 칡넝쿨같은 몸,
남녀양성을 겸한 듯한 까까머리의 그 수수께끼같은 얼굴,
기묘하고 독창적인 에로티시즘을 서로 차지하려고 경쟁을 하는 그 Veruscaka...

보들레르였다면 열렬히 사랑했을 저 열대의 독이 담긴 꽃이
마침내 피어나기 위해서는 아마도 잃어버린 모든 행복, 용기,
너그러움, 폐허, 피, 눈물이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 미셸 투르니에의 글 인용 -


Veruschka의 아버지 'Heinrich Count Ahasverus von Lehndorff'
는 독일 레지스탕스였으며 1944년 7월 20일 히틀러 암살을
시도하다 실패, 푸줏간 갈고리에 연결된 피아노줄에 매달려
교수형 당함.

그 당시 다섯살이던 Vera는 자라 그림과 디자인공부를 마친 후
미국에서 슈퍼모델로 활동. Blow up을 포함하여 몇 편의
영화에 출현. Salvador Dali, Julien Schnabel, Andy Warhol,
Francis Bacon 등과 같이 작업.




- Shaving Cream Sculptures. Salvador Dali와의 작업장면.
New York 1963 -


1970년부터 Holger Trueltzsch와의 The mimikry dress art
시리즈 (London, Paris 1970 - 1973),
Oxydationen body painting 시리즈 (Hamburg, Germany 1975 - 1981),

그리고 Sirius - da wo der Hund begraben liegt- 시리즈
(Prato, Italy 1984 - 1988) 등 공동작업으로 세계적 명성을
얻음.


:

Veruschka를 사로잡은 주제들

I. 性(성)













II. 酸化(산화)

















III. 自然(자연)



































 

베루슈카(Veruschka) – 1939~


1939년 독일 쾨니히스베르크 출생. 풀 네임은 베라 고틀리베 안나 폰 렌도르프(Vera Gottliebe Anna von Lehndorff)지만, 베루슈카(Veruschka)라는 애칭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베루슈카는 1964년부터 뉴욕에 거주하며 인기모델로 활동했다. 그의 초기 보디페인팅 작품들은 비교적 평범한 축에 속한다. 1970년대 이후 시도한 일련의 작업부터 이후 그의 작품에 일관되게 등장하는 ‘변신’ 모티브를 읽을 수 있다. 이 같은 변화에는 공동작업자로서 베루슈카의 의도를 사진으로 옮겨낸 전방위 예술가 홀거 트륄치시(Holger Trueltzsch)의 공을 빼놓을 수 없다.
진짜처럼 그린 옷으로 맨살을 덮고 마초 남성과 요부 여성의 스테레오타입을 연기한 ‘The mimikry dress art’ 연작(1970∼73)은 ‘신디 셔먼 초기사진의 보디페인팅 버전’이라 부를 만하다. 단순히 옷을 흉내낸 초기 작품에서 몸 위에 자연의 이미지를 확장시키는 과정에까지 이르면, 사람이 사물이 되고 사물이 사람이 되는 베루슈카 특유의 초현실적인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Mozambique Project’(1972), ‘Oxydationen body painting’ 연작(1975∼81) 등이 이 시기의 대표작.
근작들은 보디페인팅을 촬영한 사진이기보다 마치 색면으로 처리한 추상회화를 감상하거나 여성주의 설치미술을 보는 듯한 느낌이다. 베루슈카는 보디페인팅에 대한 얄팍한 편견을 넘어 물아일체(物我一體)의 경지를 몸소 보여주는 작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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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에레혼 > 빈센트 반 고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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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바람구두 > 비폭력주의 ― 연민의 과학

2001년 바야흐로 21세기의 첫 해를 맞이한 인류는 더 이상 '묵시록의 네 천사' - 원래는 성서의 <요한 묵시록>에 등장하는 말이지만, 1916년 이바녜스(Vincente Blasco Ibanez)의 소설에서 흰말은 전쟁, 붉은 말은 학살, 검은 말은 굶주림, 푸르스름한 말은 죽음을 상징하는 것으로 등장한다 - 를 두려워 할 필요가 없으리란 희망에 들떠 있었다. 그러나 그 희망의 21세기, 그 첫해가 미처 저물기도 전이었던 9월 11일의 미국 자본주의의 상징과도 같았던 뉴욕의 월드 트레이드 센터 쌍둥이 빌딩이 테러에 의해 붕괴되었고, 수없이 많은 민간인들이 죄 없이 희생당했다. 그로부터 우리는 21세기가 결코 20세기와 다르지 않으며 냉전이 종식된 이후에도 20세기에 미처 풀지 못했던 산더미 같은 과제들이 누적되어 있음을 뼈저리게 깨달아야 했다. 이제 그 1주년을 맞이하며 우리는 또 다른 전쟁의 염려 속에 살아가고 있다.

미국은 9.11 테러 1주년을 맞이하여 전세계가 반대하고 있는 '테러와의 전쟁'을 아프가니스탄을 넘어 이라크로 확대하려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사담 후세인을 제거하겠다는 명분 아래 시작된 '걸프전' 그리고 계속되는 미국의 이라크 경제 봉쇄 조치로 이라크에서는 오늘날 6분에 1명 꼴의 어린이가 죽어가고 있다. 그 동안 최소 75만 명에서 1백만 명이 넘는 아이들이 미국의 공습과 영양실조, 의약품 고갈로 사망했다고 한다. 이것은 이라크 정부측의 주장이 아니라 국제보건기구(WHO)가 공식적으로 밝힌 수치이다. 9.11 테러를 겪은 미국은 이슬람 근본주의를 비난한다. 물론 모든 근본주의는 인류의 화합에 있어서 가장 나쁜 대답이 될 것이다. 그러나 20세기에 자행된 인류에 대한 모든 범죄가 갖은 도덕적 명분을 들이대었던 것처럼, 미국이 신세기에 강력히 추진하고 있는 세계화란 것은 결국 미국 근본주의와 다르지 않다.

우리 인간들은 시계가 12시를 치기 시작할 때 비로소 황급히 촌각을 다투어 문제를 해결하려 드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어떤 문제들은 종이 울린 뒤에 해결하기엔 너무 늦는 경우도 있기 마련이다. 우리는 진정 무엇이 옳고 그른지 판단하기 어려운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진정 무엇이 옳고 선한 것인지 판단하려는 노력을 멈춰서는 안 될 것이다. 정의는 먼저 윽박지르기에 앞서 잘못을 시정할 수 있는 수단을 마련해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미국이 9.11 테러를 당한 진정한 이유는 무엇보다도 죽음으로 항거하는 방법 이외에는 그 어떤 수단이나 방법도 허락하지 않은 그들의 오만에 있었음을 깨우쳐야만 한다. - 바람구두

비폭력주의 ― 연민의 과학

마이클 네이글러(Michael Nagler)

  독일의 덴마크 점령통치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지하운동은 잘 조직되고 대담한 것이었다. 그들은 때때로 나치에 협력한 사람들을 처형하기도 함으로써 점령당국을 심히 곤혹스럽게 하였다. 다른 무엇보다도, 덴마크인들은 나치의 유태인정책을 가장 싫어하였다. 그 정책은 1943년 가을 어느 날 절정에 달하였는데, 독일 함대가 덴마크 거주 유태인들을 데려가기 위해서 코펜하겐 항구로 들어와 대기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독일인들 모르게 누군가가 지하조직에 이 사실을 알렸고, 밤새 7천2백 명의 유태인들 ― 사실상 덴마크 유태인들의 전부에 해당하는 ― 이 대기중인 함대의 코밑에서 중립국 스웨덴으로 빼돌려졌던 것이다. 고기잡이배들과 온갖 뜰 것들로 구성된 잡다한 소형 선단은 험한 바다 위에서 솟구치고 떠밀리면서도 이튿날 아침까지는 혼잡과 배멀미에 지친 승객들을 스웨덴으로 데려다놓는 데 성공했다.

  그런데, 이 모든 일이 수포로 돌아갈 것처럼 보였다. 스웨덴 국왕은 유태인들에게 망명을 허가해주고 싶었지만, 나치의 존재에 겁을 먹고 있었다. 아마도 국왕은 스웨덴의 중립성이 위험에 처할지도 모른다는 것에 두려움을 느꼈을 것이다.

  그러나 우연하게도 그때 덴마크의 저명한 물리학자가 스웨덴의 웁살라에서 은신하고 있었다. 그는 유태인들이 처한 딜레마에 관한 소문을 들었을 때 국왕에게 조용히 자신의 말을 전달하여, 만일 유태인들에게 망명이 허용되지 않으면 그 자신 자진해서 나치의 손에 스스로를 넘겨줄 것이라고 했다. 그 저명한 물리학자는 닐스 보어였고, 스웨덴 국왕은 즉각 유태인 난민들을 받아들였다.

  내가 보어의 이 이야기에 마음이 끌리는 것은 여기에서 그의 과학과 그의 인간적인 용기 사이에 관련이 있음을 감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보어는 양자물리학에 있어서 '코펜하겐 해석'의 배후에 있는 천재였다. 아인슈타인조차도 받아들일 수 없었던 이 해석에 따르면, 새로운 물리학의 성과는 실재의 본질에 관해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말해주며, 실재는 지극히 이상스러운 것이다. 새로운 물리학의 우주와 초시간적인 신비체험가의 우주 사이에는 매우 흥미롭고 암시적인 평행관계가 있다. 상호연관성에 대한 깊은 감각과 물질에 대한 의식의 우월성은 ― 간접적으로 ― 비폭력주의 세계관을 뒷받침하는 것이다.

  그와 대조적으로 "견고한, 덩어리진, 딱딱한, 꿰뚫을 수 없는, 움직이는 입자들"로 구성된 뉴턴의 우주는 필연적으로 지금 우리가 벗어 나오고자 애쓰는 자연과 생물들에 대한 폭력의 세계를 초래한다. 아직도 대다수 사람들의 마음과 매스 미디어의 공식적 과학이야기를 지배하고 있는 그러한 물질적 역학의 세계는 ― 물질은 제한되어 있고, 우리를 만족시키는 능력에 한계가 있으므로 ― 희소성의 세계이다. 그러한 세계관은 우리가 서로 분리되어 있다고 가르침으로써 폭력을 낳는다. "내가 너에게 해를 끼쳐도 나 자신을 포함한 보다 큰 전체는 해를 입지 않는다. 또한, 우리 모두를 위해 필요한 것이 충분히 주어질 수 없으므로 우리는 서로 투쟁할 수밖에 없다."


  아래에 있는 그림은 그 그림이 창조된 세계가 갖고 있는 중심적 모순을 아름답게 포착하고 있다. 이 그림은 1768년에 조셉 라이트라는 화가가 그린 것이다. 그때는 산업시대의 시초로 서구세계에서 땅과 인간의 오래된 연결의 전통이 결정적으로 깨어지고 있는 시기였다.
  우리를 마주보고 있는 사람은 떠돌이 과학교사인데, 그는 한 개의 진공펌프를 홀린 듯한 구경꾼들에게 보여주고 있다. 그는 펌프질을 통해 유리로 된 새장에서 공기를 빼고 있다. 그리고 새장 안에는 새 한 마리가 있다. 사람들은 새가 숨을 헐떡이는 모습을 보면서, 다시 말해 새장 안에 공기가 없어지는 것을 보면서, 새로운 기술의 힘에 감탄하고 있다.

  그러나, 이 그림의 관객으로서 우리가 달리 받는 인상은 무엇인가? 그림에서 우리의 시선을 끄는 진정한 극적 흥미는 어디에 있는가? 그것은 아이들의 모습이다. 아이들은 펌프와 공기에 대한 설명을 따라가지 않는다. 아이들이 보고 있는 것은 한 남자어른이 작은 새 한마리를 죽이고 있는 장면이다. 이 그림이 드러내는 진짜 이야기는 청중에게 주술을 걸고 있는 과학자와 당혹해하는 아이들 사이의 대조에 있고,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그러한 그들은 '다만 어린애들일 뿐'이며, 그래서 어른들에 의해 무시되고 있다는 사실에 있다.

  우리가 자연에 손상을 가할 때 우리들에게 경고가 주어지지 않는 것이 아니다. 모든 사람이 한꺼번에 민감한 마음을 잃어버린 것이 아니다. 진짜 비극은 우리가 도대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를 가슴깊이 깨닫고 있는 사람들 ― 라이트의 그림 속의 아이들과 같은 사람들 ― 을 우리들이 무시하고 있다는 데 있다.

  우리는 지금 라이트가 진공펌프의 힘을 과시하는 근대기술의 사제 ― 그럼으로써 자연에 대한 인간의 권리를 내세우는 ― 를 묘사했을 때 시작되었던 호(弧)의 다른 쪽 끝에 서있다. 근대기술 ― 기술주의라고 해도 된다 ― 은 의기양양하게 승리를 거두었다. 그러나 적어도 우리들 중 일부는 그 결과에 너무나 기막혀하고 있다. 우리가 환경에 대하여 저질러놓은 것은 1768년이나 1968년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것이었다. 우리는 어린아이들의 민감성으로써 생명을 지켜보고, 가장 계몽된 어른들의 지혜로써 생명을 보호하지 않으면 안될 절박한 상황에 처해 있다.

  과학은 지난 백년 동안 뉴턴의 '원시적 입자들'의 세계로부터 뛰쳐나왔다. 아인슈타인과 하이젠베르그와 보어의 놀라운 발견을 통하여 물리학은 이제 사물을 물질이 아니라 근원적으로 의식에 관여하는 에너지의 변화로 본다. 그 어떤 것도, 그 어떤 사람도 '우리'와 분리되어 있지 않다. 모든 것은 우리의 존재에 함께 관여하고 있다.

  나는 이러한 상호연관성에 대한 관점 ― 뜻밖에도 우리 문화의 가장 이른 신화의 세계로 거슬러 올라가는 ― 이 오늘날 비폭력주의와 에콜로지의 배후에 있는 상호연관성의 윤리에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우리가 좀더 잘 이해할 수 있었으면 한다. 우리는 아직 그러한 직관을 우리의 합리적인 마음으로 따라갈 수는 없다. 그러나 나는 과학자 보어를 자기의 동포가 위험에 직면했을 때 자신의 안전만을 생각하기를 거부한 인간 보어에게서 분리할 수 없는 근거가 거기에 있음을 느낀다.
  
1938년 여름 스웨덴으로 피신하기 직전 닐스 보어는 코펜하겐에서 열린 한 물리학자들의 국제적 모임에서 연설을 한 바 있다. 이 '양자역학의 할아버지'는 그의 유명한 상보성이론으로 일반청중에게 잘 알려져 있었다. 그 이론은 인간이 외부세계를 이해하는 데에는 내재적인 한계가 있어서 '외부에 있는' 어떠한 것이라도 그것을 묘사하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언제나 두가지 상호배제적인 모델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흔히 드는 예로서, 빛의 광자 또는 그밖의 다른 양자 실체는 입자도 파동도 아니지만, 그것을 우리가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입자나 파동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그날 이 국제물리학회의에서, 그는 자신의 그 유명한 개념을 전자문제보다도 더 큰 문제에 적용시켰다.

  우리는 진실로 다양한 인간문화들이 서로서로에게 상보적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사실, 각각의 문화는 전통적인 삶의 방식에 있어서 조화로운 균형을 대변하며, 그러한 조화를 통해서 인간 삶의 내재적 가능성이 발전하여 무한히 풍부하고 다양한 새로운 삶의 모습들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이러한 충격적인 발언에 독일대표들은 퇴장하였다. 결국, 그 독일인들은 우선적으로 나치당원들이었고, 그 다음 순서로 '과학자들'이었던 셈이다. 보어의 발언이 드러낸 세계관은 나치당원들의 가치에 완전히 적대적인 것이었다. 그것은 불관용(不寬容)이라는 나치의 교의에 대한 도전이었다. 인간적인 차이들은 우리가 존중해야 할 자연적 계획의 일부이고, 개별 민족과 공동체와 개개인들은 저마다 사물의 질서 속에서 자기의 소임을 가지고 있으며, 우리가 누구라도 하나의 전체 가족으로서 자기실현을 이루려면 서로서로를 필요로 한다는 아이디어는 파시스트들에게는 쓰디쓴 독초였다. 모든 유정물이 저 나름의 귀중한 의미와 목적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 사람은 파시스트가 될 수 없는 것이다.

  나치의 유럽점령 기도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야만적인 폭력을 쓰려는 의지에 결부하여 몇 가지의 불쾌한 문제를 함축하고 있다. 첫째는 인간존재에 대한 이미지이다. 히틀러는 이 점에 있어서 노골적이었다. 그는 어느 날 윌리엄 쉬러 ― 히틀러와 간디 두 사람 모두를 실제로 잘 알고 있던 몇 안 되는 사람 중의 한사람이었다 ― 와 점심을 함께 나누며 자기가 거둔 성공을 설명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알다시피, 사람은 저마다 가격이 있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경우엔 그 가격이 매우 낮다는 걸 알면 놀라실 겁니다."
  인간존재를 하찮게 보는 데에서 폭력이 나오고, 인간존재를 높이 보는 데에서 비폭력이 나온다. 폭력은 우리를 갈라놓는다. 비폭력은 우리들 모든 사람들 사이의 신비스러운 통일성 ― 그것은 우리들 각자의 숨겨져 있는 영광이다 ― 에 직접 호소한다.

  나치 과학자들을 쫓아냈던 닐스 보어의 발언은 1938년 당시 시대를 앞선 것이었다. 그는 파시스트의 세계관이 '획일성을 통한 분열'이라고 불릴 수 있는 질서개념에 근거하고 있음을 보았다. 파시스트들은 오직 하나의 민족과 정치질서만이 ― 그러니까, 오직 한사람만이 ― 가치있고, 진정하며, 깨끗할 뿐이고, 나머지 것들은 사람이든 물건이든 모두 열등하고 위험한 것이어서 만약 그것이 '유일한 올바른 길'에 복종하지 않으면 지배하거나 제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므로, 파시즘에 대한 해독제는 헤겔이 다양성 속의 통일성이라고 부른 아이디어였다. "인간 삶의 내재적 가능성이 스스로 발전하여"라고 한 보어의 표현을 보라. 이 표현은 나중에 또 한사람의 북유럽인인 요한 갈퉁이 이어받아 비폭력주의에 대한 오늘날 잘 알려진 정의가 되었다. 갈퉁에 의하면, 비폭력은 "각 개인 속에 내재되어 있는 잠재성의 실현"을 돕지만, 그와 반대로 폭력은 그러한 실현을 방해하는 힘이다.

  이러한 정신적 맥락에서 달라이 라마는 1993년 유엔 NGO 인권회의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만일 우리가 우리의 창조적 잠재성을 사용하는 데 방해를 받는다면 우리는 인간으로서의 기본특성의 하나를 박탈당하는 것입니다 … 우리 사회의 가장 재능있고, 헌신적이며, 창조적인 구성원들이 인권남용의 희생자가 되는 일이 너무나 흔합니다. 그런 식으로 사회의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경제적 발전은 인권침해를 통해 좌절되는 것입니다.

  나는 느낌과 개념 사이에 연결이 있다고 생각한다. 즉, 태초이래 가족과 사회와 행성을 유지시켜온 정신적 깨달음의 깊은 원천인 연민의 마음과 모든 생명을 그 다양성 속에서 받아들여야 한다는 지적 개념 사이에는 연결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생물다양성이라는 개념의 합법적 연장으로서 우리는 문화적, 개인적 다양성에 대해서도 생각해야 한다. 다양성 속의 통일성이라는 겉보기에 모순적인 이 개념은 비폭력주의와 나란히 간다. 말하자면, 그것은 연민의 신학이라고 할 수 있다.

"개별 인간의 영혼의 특성을 좀더 분명히 들여다보면 볼수록 사람들 사이의 너무나 커다란 차이에 우리는 당혹해진다? 그러나, 바로 이러한 변별성을 통해서 사람들은 하나의 목표, 즉 세계의 완전함을 향하여 각자의 고유한 재능에 따라 이바지하는 데에 모두 통일되어 있다"라고 랍비 에이브럼 이삭 쿠크가 말했다.

  인간가족은 50억 개인들을 넘어 점점 커져가고 있다. 각자는 측량할 수 없이 귀한 존재이다. 그러나 이러한 문명적인 통찰은 갈수록 희미해지고 있다. 안락사운동, 사형제도의 부활, 기괴한 인권침해의 만연, 가족의 쇠퇴, 그리고 어린아이들을 기르는 부양체계의 쇠퇴 ― 이러한 것들은 개인의 삶의 신성함을 손상시키는 것들이다.

  언제나 비폭력을 주창한 모든 사람들에게 그랬듯이 간디에게도 생명은 신성하고, 무한히 값진 것이라는 것은 자명한 명제였다. 모든 생명의 총화가 어떤 점에서는 주어진 개별 생명보다 더 귀중한 것일지라도, 또 어떤 점에서는 그렇지 않다. 어거스틴이 말한 바와 같이, "모든 것들은 똑같이 만들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좋은 것이다. 각각의 것은 좋고, 그리고 그 모든 것의 어우러짐도 매우 좋다."

  전통적인 힌두교의 신자로서 간디는 견고한 형이상학적 기초를 갖고 있었다. 그는 전통적인 금언의 하나를 즐겨 인용했다. "작은 파편 속에 우주가 있다." 양자물리학자나 신비가들, 그리고 세계의 여러 정신적 전통에서, 또 우리 모두의 좀더 성찰적인 순간에 이러한 비젼은 되풀이하여 다가온다.

  그러나 이러한 믿음은 살생을 금하는 명령 이상의 것이다. 그 믿음의 진정한 가치는 살생을 해서는 안되는 적극적인 근거를 말해주는 데 있다. 즉, 각각의 개인으로 된 작은 소우주는 전체 세계질서의 씨앗인 것이다. 우리의 몸이 DNA라는 우스울 정도로 작은 조각에 기초하고 있지만, 우리의 의식 깊은 곳에서 우리 각자는 하나의 세계를 재생시킬 수 있는 '정보' ― 믿음, 통찰 ― 를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세계가 민족적, 준민족적 증오심으로 찢겨있는 이때, 이러한 진리는 되풀이해서 기억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연민이라는 낱말은 문자 그대로 타자와 고통을 함께 하고, 느낌을 함께 한다는 뜻이다. 물론 그것은 아픈 경험이다. 그러나 우리의 인간성을 고립, 차단시켜 그 속에서 죽게 하는 것보다는 타자와 고통을 나누면서 인간성을 확장시켜나가는 것이 더 낫지 않은가?

  히브리말에서, 연민에 해당하는 말은 어머니의 자궁을 뜻하는 낱말의 복수형으로 되어있다. 연민의 감정을 갖는다는 것은 어머니가 자신의 아이에게로 향하는 것과 같이 누군가에게로 나아간다는 것이다. 달라이 라마는 "연민이야말로 이 시대의 급진주의"라고 말했다. 여기에 덧붙여, 나는 비폭력주의는 연민의 과학이라고 말하고 싶다.
<『녹색평론』, 제43호, (1998년 11-12월호)>

필자/ 캘리포니아 대학(버클리) 명예교수. 1980년대 초 평화 및 갈등연구 프로그램을 설립하여 그 이후 비폭력주의에 관해 강의해왔다. 이 글은 YES!:A Journal of Positive Futures 1998년 가을호에 실린 글을 옮긴 것이다. 비폭력은 '현실세계'의 가장자리에서 어쩌다가 한번씩 행하는 말쑥한 습관이 아니다. 비폭력은 하나의 과학, 삶의 방식, 세계관 ― 무엇보다도 하나의 문화가 되어야 한다.

녹색평론 홈페이지 - http://www.greenreview.co.kr/
<2002/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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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에레혼 > 이 길이 마음을 담았느냐?

 

어떠한 길도 하나의 길에 불과한 것이며,

너의 마음이 원치 않는다면 그 길을 버리는 것은

너에게나 다른 이에게 무례한 일이 아니다......

모든 길을 가까이, 세밀하게 보아라

네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몇 번이고 해보아라

그리고 오직 너 자신에게만 한 가지를 물어보아라

이 길이 마음을 담았느냐?

그렇다면 그 길은 좋은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그 길은 소용없는 것이다

 

카를로스 카스타네다, <Don Juan의 가르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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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4-09-03 1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이 야단치셔서 가서 인사드리고 왔어요.
좋은 데 많네요.^^

urblue 2004-09-03 1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 로드무비님, 너무 착하시잖아요. 잘 하셨어요. ^^; (이거 분위기가...)

에레혼 2004-09-04 0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두 분 다 참 착하세요 ^^ ; (뽀뽀뽀 버전 같네요) 여기 부려놓으셨군요. 뒤늦게 와서 인사 드립니다.
알라딘의 파도타기, 요즘 저의 즐거움이랍니다. 좋은 님들이 기슭마다 아름다운 서재를 하나씩 열어놓고 계시더군요.
유어블루님 방도 천천히 둘러볼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