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시작한 폴 오스터의 <브루클린 풍자극>은 올해의 146번째 책.
그림동화책이랑 만화책은 제외. 몇 권이나 되는지 모르겠다.

2004년 내가 읽은 책은 70여 권이었고, 그것은 내 생애, 1년간 읽은 책으로 가장 많은 수였다.
하여 올해 목표를 100권으로 잡았던 것.
목표 한참 초과다.
이렇게 많은 책을 읽는 날이 올 줄 몰랐다!

올해는 양뿐 아니라 질적으로도 양서를 많이 보았다고 할 수 있는데,
이제 베스트를 뽑자고 덤비니,
이 책 저 책들이 자기를 잊지 말라고 아우성이다.

일단 베스트 10.
읽은 순서대로 나열.


 거꾸로 된 세상의 학교

 갈레아노의 독설과 유머 감각에 제법 킬킬거리다가도, 그 내용의 심각함 때문에 씁쓸함과 분노를 함께 느꼈다. 세계화 관련 책들을 열댓권 읽은 듯 한데, 그 중 비교적 쉽게 읽고 이해할 수 있는 책.
 <수탈된 대지>는 내용은 비할 바 없이 훌륭했으나 개판인 번역 때문에 장장 2주간 고생하며 읽었다. 아마 올해 가장 오래 읽은 책이 아닌지.

 

 경제성장이 안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

 발전과 성장과 풍요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 계기.
 현재와 같은 경제성장을 추구할 때 발생하는 환경적, 이데올로기적인 문제 제기.

 

 

 미국의 엔진, 전쟁과 시장

 그들 스스로는 부정하고 있으나 어째서 미국이 '제국', 그것도 역사상 가장 위험한 제국인지를 설명. '미국'에 대해 이 한권으로 종합할 수 있다. 



 

 

 올해 가장 재미있게 읽은 소설 중 하나.
 이 주의 리뷰로 뽑혀 50,000원을 받기도 함.
 그러나 뒤에 읽은 <찰리와 초콜릿 공장>, <세계 챔피언> 등 로알드 달 아저씨의 다른 책들은 실망스러운 편. 기대가 너무 컸나.


 유랑가족

 아직도 이런 글을 쓰는 작가가 있다는 데서 희망을 본다.
 내가 확실히 소설을 좋아한다는게, 공선옥의 <사는 게 거짓말 같을 때>를 최근 읽었는데, 구체적인 사안을 직접적으로 다루고 있지만 저 소설만큼의 감흥은 없었다는 사실. 


 

 당신 인생의 이야기

 아아, 이런 SF소설이라니. 
 8편의 작품 중 어느 하나 함량 미달이 없다. 굉장하다,라고 감탄하는 수밖에. 

 


 총,균,쇠

 재러드 다이아몬드의 훌륭한 점은, 방대하면서도 꼼꼼한 연구와 그것들을 이야기처럼 풀어내며 자신의 주장으로 접근해간다는 데 있는 것 같다.
 유라시아와 유라시아에서 아메리카로 건너간 백인종이 현재와 같은 정치/사회/경제적인 발전을 이루고 있는 원인을 농경이 시작되던 8,00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설명한다. 지역적 차이는 인종의 문제가 아니라 자연적 자원의 문제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다.
 <문명의 붕괴>도 올해의 베스트로 꼽을만하다. 역사상 환경을 파괴한 문명은 모두 붕괴했음을, 역시 방대한 자료로 보여준다.


 노래하던 새들도 지금은 사라지고

 인간성에 대해 이만큼 얘기할 수 있을까. 
 복제 기술을 개발하기에 앞서 이런 정도의 고민과 논의는 있어야 할 것이다.

 


 고릴라 이스마엘

 한마디로 충격.
 이건 정말 많은 사람들이 읽어봐야 한다.


 


 대담

 최재천과 도정일이라는, 생물학과 인문학을 대표하는 학자들이 만나 '인간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하는 문제에 대해 다양하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훌륭한 대담의 모범.

 

 

열 권을 꼽긴 했으되 그냥 빼버리기엔 아까운 책들도 많다.
좋은 책들을 너무 많이 봤다고 스스로 놀라고 있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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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5-12-31 0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저 놀랍습니다..^^
제가 저기서 읽고 감동했던 책은 무서록 딱 하나 있네요..^^;;
이런 슬픈 상황임에도 인사는 해야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urblue 2005-12-31 0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야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구요~
그런 일로 슬픈 상황이라고 하심 됩니까. ^^;

blowup 2005-12-31 0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박수. 존경. 다짐.
어떻게 칭찬해드려야 좋아하시려나.
대단해요.

이매지 2005-12-31 0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총균쇠를 반쯤 읽다가 반납해서 아쉬움이 남는데, 다시 잡고 읽어봐야겠어요.
나름대로 재미는 있었는데 두께에 압도당했었거든요 ^-^;;

urblue 2005-12-31 0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무님, 쑥스럽습니다. 감사하구요. ^^

이매지님, 쫌 두껍죠. ㅎㅎ 문명의 붕괴는 더 두껍더군요. 그치만 두 권 다 재미있게 읽었어요. 다시 한번 도전해 보심이...

라주미힌 2005-12-31 0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책들만 골라내셨네요.. 저도 참고해야겠습니다. ㅎㅎㅎ

mira95 2005-12-31 0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블루님이 읽으신 책들은 너무 어려울 것 같아요.. 저는 거의 소설 위주로 읽었는데.. 암튼 전 올해의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습니다. 50권이었는데... 내년에는 기필코..

비로그인 2005-12-31 09: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부럽군요. 정말 다양한 책들을 읽었네요. 05년 마지막 날 잘 보내시고, 새해 건강하시고 소원성취하세요.

urblue 2006-01-01 13: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벽별님, 책을 200권도 넘게 보신 분이 그런 말씀 하시면...음...우린 취향이 많이 다른가봐요? ^^;

엔도님, 작년부터 100권을 못 넘겼다 하심은, 그 전에는 계속 넘겼다는 말씀이신거죠? 전 100권 넘긴게 올해가 처음입니다. 에구.
책이 한 해에도 수만권씩 쏟아져 나오는데, 겹치지 않을 확률이 더 높은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새해에는 책도 좀 읽으시고, 글도 많이 쓰시기를.

사라진님, 새해 아침, 아니 낮입니다. 님도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새해에는 좀 더 여유있는 삶을 누리시길.

미라님, 올해에는 기필코! ^^

라주미힌님, 넵. 님 좋은 책 많이 보시는 거 제가 압니다. ㅎㅎ

水巖 2006-01-01 14: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urblue님, 지난 해에 책 많이 읽으셨군요. 나보다 30권이나 더 읽으신것 같군요. 새해에도 복 많이 받으시고, 좋은 책 많이 읽으세요.

로드무비 2006-01-01 17: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블루님, 소프트한 책은 제가 사고, 어렵고 비싼 책은 블루님이 사고
새해에도 역할 분담 합시다.
건강하시고, 허리도 아프지 마시고 유쾌하고 알찬 한 해가 되기를......^^

2006-01-01 17: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sudan 2006-01-01 19: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얼블루님과 로드무비님 사이에 오고가는 모종의 뭔가가 뭘까 늘 궁금했었는데.
소프트한 책은 로드무비님이, 어렵고 비싼(!) 책은 얼블루님이. 그런거였구나. -_-

urblue 2006-01-01 19: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암님, 수암님께서도 책을 많이 읽으셨군요. ^^

로드무비님, 네에~ 알겠습니다. 어려운 건 잘 모르겠고, 비싼 책은 뭐, 제가 사도록 하지요. ㅎㅎ

수단님, 그런 거였는지 저도 지금 알았답니다. ^^;
 

 

 

 

 

서평단으로 뽑혀 받은 책입니다.

그치만, 자랑안할 수가 없어요.

내용도 훌륭해서, 금방 리뷰 쓸 생각이지만, 그 전에 그림 좀 보여드리고 싶어서 사진 올립니다.

 

예쁜 집이지요?
이 집에서 엄마와 아빠가 아이를 기다립니다.
사진으로는 잘 안 보이시겠지만, 여기 그림은 전부 종이를 자르고 오려서 붙인거랍니다.

엄마와 아이가 처음으로 손을 잡는 순간이에요.
실은, 엄마 손의 손금이며 반지, 오동통한 아가 손의 실루엣에 더 감탄했더랍니다.

아이가 아빠와 꽃밭에서 놀고 있네요.
저 아이가, 고슴도치 아이입니다.
그래도 귀여운 아이지요.



으악, 너무 귀엽지 않아요?

제가 최근에 그림책을 엄청 좋아하고 있습니다만, 올해 본 것 중에서도 손꼽히게 좋은 책입니다.
리뷰 쓰러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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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05-12-23 16: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시가 점점 줄어드나봐요. 부럽습니다

플레져 2005-12-23 18: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아직 안올라왔군요. 몇 시간째 쓰는중이어요? ㅎㅎㅎ

urblue 2005-12-23 19: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늘바람님, 역시 감각 있으셔요. ^^

플레져님, 헉. 실은 리뷰 안 쓰고 놀았어요. 엥..

내가없는 이 안 2005-12-23 2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블루님, 반가워서 달려왔어요. 그런데 이 책 서평단 자격으로 받으셨어요? 아, 부럽다. 며칠 전에 잠깐 인터넷서점서 들춰봤는데 내용도 감동적일 것 같던데요. 저 다음에 올 때 꼭 리뷰 써놓으셔야 해요.

2005-12-24 13: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sandcat 2005-12-24 18: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악, 할 것까지야..-_-
(제 보기엔 '마빈'과의 귀여움인 것 같아요.)
우선 보관함에 넣고는 보겠습니다만...

urblue 2005-12-24 2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샌드캣님, 저게 다 종이로 오려붙인 거거든요. 사진으로는 안 보여서 안타깝네요. 마빈과 아닙니다. 흑흑.

이안님, 넵, 다음에 오실 때까지 리뷰 다 써 놓을게요. ^^
 

밀린 독서 일기, 또 한꺼번에 왕창 정리하기.

 도구라, 최구라 라고 한다던가. 확실히 말발이 장난 아니다.
 인문학자와 생물학자가 만나서 나누는 대화는, 생각보다 어려운 얘기는 아니다. 최재천 교수는 인문학적 소양이 상당한 듯하고, 도정일 교수 역시 생물학에 관한 지식이 해박하므로, 이들의 대화를 따라가면 재미있고 쉽게 이해가 가능하다. 
 '유전자와 문화, 복제와 윤리, 창조와 진화, DNA와 영혼, 육체와 정신, 신화와 과학, 인간과 동물, 아름다움과 과학, 암컷과 수컷, 섹스.젠더.섹슈얼리티, 종교와 진화, 사회생물학과 정신분석학'으로 이어지는 다양한 논의의 종착점은 '인간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가 되겠다.
도정일 교수는 다양성, 다수성, 다원성의 '두터운 세계'를 주장한다. 대립적이고 모순적인 것들까지 모두 공존할 수 있는 관용과 존중의 세계다. 최재천 교수가 말하는 '호모 심비우스' 역시 다른 인간, 다른 생물과의 공존, 공생을 도모하는 인간형이다. 서로 다른 주장을 펼치는 듯하던 두 사람/두 학문은 이렇게 접점을 만든다.
무려 4년에 걸쳐 벌인 10차례의 대담과 4차례 인터뷰를 엮었다고 하는데, 출판사의 기획에 박수를 보내는 바이다. 대담집이라고는 박노자, 허동현 교수의 책 두 권 말고는 기억나는 것도 없는데, 그 두 권의 경우 메일로 주고받다보니 생생한 토론이 이루어지지 않고 대충 마무리되어 아쉬웠다. 이 책은 훌륭한 대담의 모범을 보여주는 듯하다. 글이 아니라 말로 이만큼 토론이 가능하다니, 하여간 대단한 사람들이다.
 

 페터 빅셀은, 언제부터 읽어야지 하면서도 정작 구입하지 않던 작가다. 오랜만에 숨어있는 책방에 들렀다가 눈에 띄어 얼른 빼들었다. 단돈 1,500원. 
 장편(掌篇)소설은 해학이 살아있어야 읽는 재미가 있다. 간간히 피식피식 웃어가며 제법 재미나게 봤는데, 2부에 들어가면 작품 말미에 '아름다운 자연과 문명이 상충되는 이야기' 어쩌구 하는 식으로 해설을 달아놔서 상상하고 생각하는 재미를 앗아가버렸다. 
 좀 더 일찍 알았으면 좋았을 작가.

 

 영화로 이미 본 내용을 확인.
 영화와 어떤 차이가 있는지, 어떤 표현이 어떻게 영상화되었는지 확인한 것을 제외하면 그다지 재미는 없었음.






 고색창연한 세계의 이야기. 
 헤인 시리즈의 <어둠의 왼손>이나 <빼앗긴 자들> 만큼은 재미있지 않다. 어쨌거나 <유배 행성>과 <환영의 도시>까지 모두 볼 참.





 몇 년 전에 봤는데 내용은 전혀 기억에 없고 별로 재미없었다는 느낌만 남아있었다. 도대체, 어째서 재미가 없었다고 생각한거지. 흥미진진하구만.
 히라노 게이치로, 앞으로도 쭈욱 팬으로 있겠다. 얼른 얼른 새 책 써라.
 문학동네는 제발 제때 책 좀 내라. <장송>처럼 몇 년씩 기다리게 하지 말고.




 <맛>만큼의 재미는 주지 않는다. 벌써 로알드 달에 물린 것인가.
 제대로 사기도 치지 못하는 어리숙한 사기꾼이 등장하는 [클로드의 개] 연작은 재미있지만, 다른 작품들은 그냥 그렇다.
 '로열 젤리' 같은 작품은, 뭐랄까, 지식의 부족이랄 수 밖에. -_-




 퇴근 후 하루에 한 편씩 읽었다.
 시작은 좋았으되 결론은 별루. 지나친 기독교 알레고리가 불편하다.
 이 담에 아이를 키우게 되면, 이 책은 못 읽게 하겠다. 다 클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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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春) 2005-12-16 2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좀 무식한 탓도 있겠지만, <대담> 정말 밑줄 그을 부분이 많더군요. 계속 놀라면서 깊이 공감했어요.

urblue 2005-12-16 2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포스트잇을 붙이려다가, 다닥다닥이 될 것 같아서 포기하고 그냥 읽었습니다. ^^;
좋은 책이지요?

바람돌이 2005-12-16 2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담 지금 사놓고 읽고 싶어서 근질근질하는 책입니다. 근데 요즘 워낙에 바빠서리 책읽을 시간이 별로 안나네요. 근데 블루님이 불을 지르시는구만요. 저도 나니아연대기는 합본호 사서 봤는데 님과 마찬가지로 우리집 아이들에게는 지녀석들이 많이 커서 스스로 찾아 읽는거 아니면 안보여줄겁니다. 그럼 이 두꺼운 책은 안보이게 어디다 치워놔야겠는데 확 방출이나 해버릴까요? ^^

urblue 2005-12-17 09: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람돌이님, 대담은 재미있지만 워낙 두껍기도 해서 읽는데 시간이 좀 걸리더군요. 한가해지시면 보시는게 좋을 듯 합니다. ^^
나니아연대기에 대해 공감하시는군요. 저는 차마 방출할 생각까지는 못했는데, 안 보이게 치우려면 역시 방출이 방법일까요. ㅋㅋ

2005-12-17 10: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드무비 2005-12-17 1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상은 책상이다 보니까 반갑네요.
예전에 읽었던 책인데.
나니아 언젠가 방출할 거면 저를 주세요. 김칫국.^^

2005-12-17 11: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우리'는 누구인가?

국민 정체성의 일상적 표현인 '우리 나라 사람'은 과연 뭘 의미하는 것일까? '우리'는 실체인가? 그것은 남한 인구 전부의 공통적 이익을 발견할 수 없다면 존재할 수 없는 허구적 인식이다. 그러한 허구가 '우리'라고 하는 내면화된 집단적 상징에 의해 가려지고, 사람들은 실제로 관념적인 '우리'를 통하여 자기 이익을 규정하는 경향이 있다. '개인'은 '우리' 혹은 '국민'과 무매개적으로 동일시된다. 그것은 따라서 매우 이데올로기적 개념이다. 물론 남한에서만 통용되는 화폐가 있고 남한의 국가가 '국민'들에게 요구하는 세금, 징병, 여권 발급과 법 집행의 권리를 독점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 안에 살고 있는 '국민'은 다른 나라의 '국민'들과 비교하여 어느 정도 동질적인 이해관계를 가지게 된다. 그러나 '우리'라는 개념은 주변부 혹은 반주변부의 불평등한 체제하에서 혜택을 받는 계층이 중심부와 이해관계를 같이할 가능성, 동일 국적자 혹은 동일 민족적 주체 간의 비동질성의 현실(즉 '같은' 국민이라도 '지옥과 천당'의 차이를 안고 있다는 당연한 사실)을 아예 거부하고 있다. '우리'는 권력과 자원의 불평등한 분배를 강제하는 메커니즘 속에서 허구일 수밖에 없다. 그것은 항상 소수의 특권적 이익을 포장하는 이데올로기적 개념이거나 아니면 다수의 자의적 판단과 횡포를 정당화하는 도구다. '우리 국민' 문화 속에서 기만당한 다수는 소수에 저항할 수 있는 문화적 기반을 박탈당하거나, 혹은 다수가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소수의 권리와 존엄성을 짓밟아버리게 된다.

 

상상의 공동체, 민족주의와 발전의 환상, 국민으로부터의 탈퇴를 연이어 읽고 있다. 요즘 같은 때에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책들이다.
어제 저녁과 오늘 아침 '속보'라며 뜨고 있는, 진달래와 무궁화를 뿌리는 웃고 있는 얼굴들과 병상에 누운 초췌한 얼굴이 실린 사진, 각종 미담 퍼뜨리기 내지 홍보 · 격려 차원의 글들을 보고 있자니, 기가 차서 할 말이 없다.
김동춘 교수가 자신의 책 <전쟁과 사회>를 50만명에게 읽히면 우리 사회가 조금은 달라질 것이라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얘기했다던데, <전쟁과 사회>나 <국민으로부터의 탈퇴> 같은 책들을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읽힐 방법은 없을까.
<국민으로부터의 탈퇴>는 올해 6월쯤인가 구입했는데, 2004년 2월 초판 1쇄다. 한 1,000부는 팔렸으려나.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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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5-12-07 16: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이 의미심장합니다.
이 책도 읽고 싶은데요?^^

갈대 2005-12-07 17: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위험한 상상이긴 하지만, 대학생들을 의무적으로 어떤 공간에 채워넣고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같은 책 몇 권을 10번씩 필사하게 한 후에(다시 말해 머리에 박히게 한 후에) 내보내는 상상을 했더랬죠.

urblue 2005-12-07 17: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님, 알겠습니다. ^^

갈대님, 위험한 상상이긴 하지만...^^

blowup 2005-12-07 18: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아침에 그 사진 보고 좀 아찔했어요. 못 볼 걸 본 느낌이랄까.

happyant 2005-12-08 1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갈대님 상상 너무 공감입니다.ㅋ

urblue 2005-12-08 1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무님, 요즘 못 볼 걸 너무 많이 보고 있는 것 같습니다. -_-

개미님, 살짝 공감만 하세요. ㅎㅎ
그치만 권혁범 교수의 경험에 따르면, 자신이 수업 중에 권한 책을 학생들이 잘못 이해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하더군요. 읽고 나서도 엉뚱한 방향으로 나간다면, 그땐 어째야 할까요. ㅠ,ㅜ
 

 마르께스 할아버지!
 아흔살 생일 선물로 처녀를 자기에게 선물하겠다는 발상이나, 수백명 여자와 잤지만 사랑 한번 하지 않고 있다가 그 생일 선물 처녀에게 비로소 사랑을 느꼈다는 설정이나, '진정한 사랑을 하는 경이를 맛보지 않고 죽을 생각은 하지 마세요.'라는 경구나,
모조리 뻔하다구요.
 차라리 <콜레라 시대의 사랑>의 일견 멍청해보이는, 사랑이라고 불러도 괜찮을까 싶은 집요함이 더 낫다구요.  

 

 똑같이 절판이었다가 재출간 된 책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과 <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 야구>의 소식을 들었을 때 <스밀라...>는 사려고 했지만 <...일본 야구>는 별로 사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더랬는데, 책에 대한 내 감각은 비교적 정확하다는 것을 확인.
 95년에 처음으로 출판되었으니 당연히 일부 독자들에게 열렬한 환영을 받았을 터. 아무튼 '포스트 모던'의 시대였으니까.
 이 작가는 틀림없이 살짝 맛이 간 사람일거야, 라는 생각.
 발랄하고 재미있지만, 한번 읽으면 그걸로 끝.

 

 나름대로의 장점은 있지만, 2005년에 읽기에는 힘이 조금 달린다고 해야할까. 

 

 

 

                                
 사진같기도 한, 묘하게 사실적이면서도 몽환적인 그림은 훌륭한데, 스토리는, 이게이게 무슨 소리야~

 

 

 

 그래픽 노블 시리즈 중 가장 마음에 드는 작품. 
 스토리도 그림도 훌륭하다.

 

 

 

 깍두기님의 리뷰를 보고 어제 오후 인터넷을 찾아 보다가, 처음에는 웃음 참느라, 나중에는 흐르는 눈물, 콧물 닦느라 곤욕스러웠다.
 나 참, 18살 여고생도 아니고, 사무실에서 만화 보다가 눈물이 흐르면 어쩌자는 것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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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기 2005-11-18 1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짤막하지만 핵심을 찌르는 리뷰, 재미있게 잘 읽었어요.
잉칼은 재밌게 봤지만 제가 좋아하는 스타일은 아니었고,
흑란은 봤다는 사실만 기억날 뿐이네요.
마술사의 아내, 꼬이고 뒤틀린 감각이 재밌었어요.
'기울어진 아이' 만일 안 보셨다면 한번 읽어보세요. :)

로드무비 2005-11-18 1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강도영 씨 만화는 안 사고 인터넷으로 볼 수 있나요? 전부?
거기 주소 좀 가르쳐주세요. 저도 눈물콧물 한 번 짜보게...

urblue 2005-11-18 1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딸기잼아줌마님, 기울어진 아이도 가지고 있어요. 그것도 좋았습니다. ^^

로드무비님, 강도영씨가 인터넷으로 연재하던 거잖아요. 홈페이지에 갔더니 연재했던 곳에 링크를 걸어두었더라구요.
http://cartoon.media.daum.net/list/group2/kangpool/cartoonlist.do?mn=20882&pg=3


blowup 2005-11-18 1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 야구>처럼 한때 아방가르드했던 소설을 철 지나 읽으면, 김 빠진 소다수 마시는 것 같아요. 저도 재미나게 읽고 추천.

urblue 2005-11-18 14: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namu님, 그거에요, 김 빠진 소다수! 그냥 들쩍지근하기만 한. ㅎㅎ

깍두기 2005-11-18 16: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람을 느낍니다^^

urblue 2005-11-18 17: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넵, 보람 느끼셔도 됩니다. 님 아니었음 그거 볼 생각도 안 했을테니까요. ^^

sudan 2005-11-18 2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95년도에 [.. 일본야구]를 읽은 저하고는 확실히 감상이 다르시네요. 전 아주 좋았었는데. 언젠가 다시 한번 읽어야겠다 생각하고 있는데, 읽지 말아야 할려나.
참, 전 강풀의 순정만화보다는 공포만화(아파트)가 더 재미있더라구요.

urblue 2005-11-21 1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ndo님, (안녕하세요 ^^) 킬킬거리면서 꽤 재밌게 보긴 했는데, '마음이 일렁거렸다'고까지 할 정도는 아니군요. 그게 뭐 시대에 뒤쳐졌다기보다 받아들이는 사람의 문제겠죠. ^^a

sudan님, 님은 다시 읽어보시는 게 나을 것 같군요. ㅎㅎ
강풀은, 순정만화 본 게 처음이에요. 이름은 계속 들었지만 어쩐지 안 보게 되더라구요. 이제 다 찾아 봐 볼까~ 했는데, 실은 공포물도 엽기물도 싫어해요.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