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저 낮은 중국

 가끔 중국발 뉴스를 들으면 심히 황당할 때가 있다. 우리나라에서라면 원산지를 속인다거나 싸구려를 고급으로 포장한다거나 좋지 않은 재료를 사용한다거나 하는 정도일텐데, 중국에서는 가짜 분유라든가 가짜 양주라든가, 먹으면 사람이 죽는 걸 버젓이 유통시키고 있으니 말이다. 급격한 자본주의의 유입 때문인지 다른 이유가 있는건지 좀 궁금했더랬다.
 이 책은 시인 출신의 라오웨이가 쓴 [중국저층방담록]이라는 인터뷰집의 일부를 번역한 것이다. 그야말로 중국 하류계층의 생생한 목소리가 담겨있다. 1부의 인신매매범이나 신신인류라고 불리는 젊은 층은 확실히 자본주의의 폐해를 그대로 드러내는 듯 보이지만, 2,3부를 보면 실상 문화혁명 때부터 쌓인 갈등이 현재에까지 이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18. 핑거포스트 1, 2

 이미 여러 사람이 언급한 거니까 '우상'의 문제나 엇갈리는 진술과 해석에 관한 건 빼고, 가장 눈에 띄는 건 사라 블런디를 대하는 네 사람의 태도랄까. 잭 프레스콧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앤소니 우드까지, 누구 하나 사라 블런디를 인간으로 혹은 여자로 제대로 대접하지 않는다. 오만하고 탐욕스럽고 이기적이고 나약한 군상들.
 실제 인물과 가상 인물을 역사적 사실 속에 치밀하게 배치한 흥미로운 작품.

 

 19. 안인희의 북유럽 신화

 내가 기대한 건 북유럽 신화 그 자체인데, 이 책은 신화와 해설과 글쓴이의 개인적 감상까지 뒤섞여있다. 그러니까, 해설자의 말이 많은 건 별로 내 취향이 아니라고. 어쨌거나 그래서 쉽게 읽히기는 하는데, 물론 그게 원래의 기획 의도겠지.

 

 

 20. 종이로 만든 사람들

 결코 재미있게 빨리 읽을 수 있는 작품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손을 놓을 수도 없는, 흡인력 있는 소설. 이런 저런 편집의 효과를 십분 느낄 수 있지만, 본질은 사랑에 관한 이야기. 알싸하고 서글프다.

 

 

 21. 바덴바덴에서의 여름

 소설인지 수기인지 혹은 전기인지 구분이 어렵다. 도스토예프스키를 좋아한다면 그의 성질을 이해하기 위해 읽어볼 만하다. 한여름, 습도 높고 열기 가득한 공기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듯한 느낌.   

 

 

 

 22. 알래스카, 바람같은 이야기

 고등학생 때 우연히 본 사진 한 장에 매혹되어 알래스카의 자연과 사람을 사진에 담으며 평생을 보낸 호시노 미치오의 에세이. 알래스카에서 야영 중 곰의 습격으로 목숨을 잃었다 하니, 그에게는 나쁘지 않은 죽음이었을까.
 글도 사진도 전혀 멋부리지 않았다. 단순한 방문객 또는 관광객이 아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23. 부서진 미래

 비정규직으로 불안한 삶을 살고 있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인터뷰.
 이건, [저 낮은 중국]처럼 남의 이야기라고 할 수도 없고, 그저 답답할 뿐이다. 비정규직의 실상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끔찍하더라.

 

 

 소라닌 1, 2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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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쟈 2007-04-09 22: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낮은 중국>과 <부서진 미래>가 눈길을 끄네요...
 

 8. 미완의 시대

 새 책을 교환받았는데, 오자와 비문이 다 교정되었는지는 모르겠다. 20세기 전반을 아우르는 홉스봄 개인과 세계의 역사가 재미없는 것은 아니지만 700쪽에 육박하는 책을 다시 읽게 되지는 않을 테니까. 
 


 

 9. 마왕

 별 기대 없었는데 의외로 재밌다. 작가는 파시즘에 대해 얘기하려 했던 건 아니라고 말하지만 소재며 내용이며 파시즘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형 안도의 이야기는 흥미진진 그 자체라 새로운 발견이라며 뻐져들었지만, 동생 준야의 이야기로 넘어가면 이상하다. 초점을 잃어버리고 우왕좌왕한다. 그러니까, 파시즘을 얘기하고 싶은 게 아니라는 말이 나름대로는 이해가 되지만 "마왕"이 준야와 연결되는 것은 뜬금없다. 좀 더 작정을 하고 쓰던지 아니면 확실하게 다른 내용을 선택했어야 했다.



 10. 사신 치바

 내친김에 [사신 치바]까지.
 리뷰를 보면 [마왕]보다는 [사신 치바]의 평이 더 낫다. 근데 난 왜 이 작품의 설정이 뻔하게 느껴지는지. 음악을 좋아하고 일을 할 때면 항상 비가 내려 맑은 하늘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사신 치바가 인간을 만나는 얘기. 다른 존재의 낯선 시선으로 인간을 바라보는 건 여태 많지 않았나, 사신은 아니더라도. 거기서 별로 벗어나지 못한다.
 이제 일본 소설이 지겹다. 아직 안 읽은 몇 권이 있는데 당분간은 그냥 모셔둬야지. 

 

 11. 아파트 공화국

 이런 책은 내부에서 먼저 나왔어야 하지 않나 싶다. 저자가 외국인이기 때문에 한국의 아파트 열풍을 보다 쉽게 인지할 수 있었다고 말할 수도 있을 테지만, 적어도 학자라면 이런 사회 현상에 주목해야 하는 거 아닌가. 한국 학자들이 게으른 건 아닌지.


 

 12. 비단

 어느 분은 이 소설을 읽고 '바람'을 떠올리셨고 또 어느 분은 '신기루'를 말씀하셨다. 그 느낌 그대로다. 보일 듯 말 듯, 잡힐 듯 말 듯. 그들의 사랑은 아지랑이처럼 내 눈을 어지럽히고 사라진 반면, 내 가슴 속에는 안타까움이 묵직하게 남는다.
 건조하고 짧은 문장 사이로 넓게 퍼지는 감정과 의미의 파장은 내가 열렬히 좋아하는 [다다를 수 없는 나라]를 떠오르게 한다.

 

 13. 희망의 인문학

 전반 '이론'에 관한 부분이 흥미진진했다. 저자의 주장에 고개를 끄덕여가며 열심히 밑줄을 그었다. 그런데 읽으면 읽을수록 '인문학이 가난을 타파하는데 정말 도움이 될까'하는 의문이 더 강해진다. 믿지 못하겠다가 아니라, 더 많은 일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라고 해야 하나.


 

 14. 생사불명 야샤르

 읽다보면 짜증난다. 이렇게 답답할 수가! 그것도 아지즈 네신이 바란 바일지도 모르겠다. 웃기다가 짜증나고 또 웃기고. 참 내. 
 야샤르가 결국 '카라캅르 니자미'씨가 필요없게 된 지경에 이르면, 이거야말로 해피 엔딩이 아니라 풍자의 극치다. 씁쓸하고 씁쓸해서 그저 헛웃음만 나온다. 우리나라의 상황이 별다를 바 없다는 것도 헛웃음을 일으키는 한 원인이기도 하고.

 

 15. 메콩의 슬픈 그림자, 인도차이나

 모님의 앙코르 기행 페이퍼를 보고 부러워 부러워를 연발하고 있었는데 이 책은 거기에 한술 더 뜬다. 가고 싶어, 가고 싶어!
 최근작 [느린 희망]보다는 사진이 적고 말이 많다. 좀 지겨운 부분도 없잖아 있지만 기본적으로 유재현이라는 사람의 시선은 믿을만 하다는 생각을 다시 한다.
 이 책을 끝낸 게 지난 일요일인데 그 날 밤 마침 TV에서 똔레삽 호수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방영했다. 거대한 똔레삽 호수 주변에서 풍부한 어족 자원으로 그냥저냥 먹고 살 수 있었던 가난한 캄보디아인들은 이제 태국과 베트남의 거대 자본의 힘에 밀려 생계 유지도 어려워지는 판이라고 한다. 그런데 외국 자본의 거대 기업들은 남아도는 물고기를 말려 동물용 사료로 만들고, 그러고도 남는 죽은 물고기를 호수 한쪽에 그냥 버리고 있다. 캄보디아 정부가 이런 사태를 조장하고 수수방관하는 동안 고생하는 건 역시 없는 사람들 뿐이지. 전세계 어디든 변하지 않는 진실이랄까.


 16. 캐비닛

 한참 재미있게 읽다가 끝부분에서 기분이 확 상했다. 그런 식의 잔혹함을 원체 좋아하지 않는 데다가, 대체 어떻게 마무리지을 것인지 감이 안 잡혔기 때문.
 마지막 장을 덮고 '이게 뭐야' 이러다가, 첫 장을 떠올리니 그다지 나쁜 결말이 아닌 것도 같다. 하지만 부족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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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7-03-01 1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책 많이 읽으셨네요. 메콩의 슬픈 그림자, 보관함에 담아갑니다.^^
따뜻한 하루 보내세요^^

urblue 2007-03-01 1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메콩의 슬픈 그림자, 좋은 책입니다. 오늘 하루 즐겁게 보내시길. ^^

nada 2007-03-01 1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알차게 읽으셨군요. 전 블루님 덕분에 눈과 피의 나라, 아주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메콩의 슬픈 그림자는 읽고 나서 마음 정리 안 될까 봐 못 읽겠어요..^^;;

BRINY 2007-03-01 1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그 똔레삽 호수 다룬 다큐멘터리 봤어요. 다녀와서 보니까 더 생생했던 그 장면들.

아영엄마 2007-03-01 14: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도 님처럼 캐비닛, 한참 재미있게 읽다가 결말 부분에서 뭐 이래.. 싶더군요. -.-

mong 2007-03-01 2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단 마음에 드셨군요~!
마지막책 보관함에 담고 갑니다~

urblue 2007-03-02 0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꽃양배추님, 눈과 피의 나라 재밌게 읽으셨다니 저도 기쁩니다. 메콩의 슬픈 그림자는, 그래도 보시는게 어떨까요? ^^

BRINY님, 여행기 올리신 거 잘 봤습니다. 올 연말 쯤 저도 가볼 계획이에요.

아영엄마님, 결말이 좀 그렇죠? 막 벌려놓고 수습 잘 안되는 상황이랄까.

몽님, 다다를 수 없는 나라 보셨나요? 그 책도 좋아하실 듯 한데. ^^

chaire 2007-03-02 1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1, 13번 얘기 특히 공감해요. 강모 선생님도 이렇게 말했던데, "우리 학자들은 아파트 연구하기 보다는 아파트 사는 일에 신경을 쓰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 말에도 대략 동감..

urblue 2007-03-02 1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그렇군요, 아파트 사는 일에 신경을 쓰면 문제점 같은 건 잘 안 보이겠군요. -_-

mong 2007-03-03 09: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다를수 없는 나라....적었어요~
참 담은 책은 마지막이 아니고 15번이더군요 ㅎㅎㅎ

urblue 2007-03-04 15: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 줄 알았습니다. 마지막은 제가 님한테 땡스투 했는걸요. ㅎㅎ
 

 

 

 

 

 

얼마 전 1인 출판사에서 발간한 두꺼운 인문학 책을 오자 30여 개 때문에 재발행한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사실 그 정도 오자야 용인못할 수준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옛날에는 오자랑 비문이랑 일일이 찾아서 출판사에 팩스 보내는 짓을 곧잘 해놓고, 이제 귀찮아서 안하게 되니까 그냥 넘어갈 수 있다고 얘기한다. ㅎㅎ) 불량품을 수거하고 리콜하는 것은 반가운 일이 분명하지만 형편이 어려운 1인 출판사에서 사무실 보증금까지 빼가며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의문이었던 것.

하지만 대형 출판사라면 얘기가 다르다. (뭐, 이 정도 차별은 해도 되지 않을까.) 오류가 있으면 얼마가 들든 다시 찍어야지.

<미완의 시대>를 읽다가 8~11장의 후주가 통째로 빠져 있는 걸 발견하고 알라딘 고객센터에 문의를 넣었다. 페이지는 제대로 찍혀 있으므로 설마 내가 받은 책만 잘못 인쇄된 건 아닐테지만 확인 차원에서. 역시나, 모든 책이 잘못된게 맞단다. 그리고 출판사에서 재발행에 들어갔다는 소식도 알려주었다. 현재는 "일시품절"로 뜬다.

근데, 후주 빠진 것 외에 본문 주도 잘못 달린 게 있고 뒤로 갈수록 오자도 많은데, 이거 다 수정되는 게 맞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긴다. 간혹 개정판이라고 나왔는데도 이전의 오류를 거의 수정하지 않은 경우도 없지 않으니까. 개정판이 나오면 제대로 고쳤는지 확인 작업 들어가 볼까?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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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냐 2007-02-09 1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그야말로 '미완의 시대'군여.

paviana 2007-02-09 14: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구두님께 선수를 빼았겼네요.ㅋㅋ
새책 받으시면 염가에 방출하시라고 찌르려고 했더니요.
그럼요 민음사에서 그러면 당근 안 되지요.
1인 출판사에서도 안 그러는데..근데 그 출판사는 그렇게까지 안해도 될듯했는데요..

urblue 2007-02-09 14: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람구두님, 뭡니까, 선물하라고??? -_-;

마냐님, '미완의 시대' 맞습니다. ㅎㅎㅎ

urblue 2007-02-09 14: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파비님, 새책 받아서 방출하라구요? ㅋㅋㅋ 지금 보고 있는 책에는 제가 밑줄 쭉쭉 그어놓은데다 오래 붙들고 있어서 손때가 많이 탔고, 새책이 온다면 신랑이 또 그럴 것 같은데요. ㅎㅎㅎ

chaire 2007-02-10 1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1인 출판사 얘기는, 뭐 그렇게까지 하나 싶은 게 대견하다기보다는, 안쓰러웠어요...^^ 그나저나 민음사, 긴장해야겠는걸요?
 

지난 해엔 책 읽는 게 별로 재미가 없어서 게으름을 피웠다. 소설도 지겹기만해서, 올해를 어떻게 시작할까 궁리하다 고른 건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열흘 동안 겨우 200여 페이지 보다가 집어던졌다. 가벼운 읽을거리를 찾으니 역시 소설이다. 

 

  

 1. 걸

 처음 두 개의 단편을 읽고 나서, 이 아저씨 모든 여자들이 그저 girl이길 바라는 게 아닐까, 의심이 모락모락 피어 올랐다. 세 번째 단편은 제목이 아예 이다. 이 아저씨는 여자들이 로 살아가고 싶어한다고, 나이를 먹는다는 단순한 이유로 그러한 바람을 억누를 필요가 없다고, 여자들의 입장을 이해하고 옹호하는 듯이 얘기한다. 하지만 말이야, 아무리 생각해도 음흉해 보이는걸. 자신을 아름답게 가꾸고 삶을 즐기면서 젊게 사는 당당한 이 되라고 부추기는 건 다테마에고 실은 외모에 좀 더 신경 쓰고 타인들에게 부드럽게 대하는 나긋나긋한 여자를 보고 싶다는 게 혼네인 것 같단 말이지. 아니면 말고.

 

 

 2. 삼월은 붉은 구렁을

 처음 접한 온다 리쿠의 작품 <네버랜드>가 시시해서 다른 걸 볼까 말까 잠깐 고민하다 골랐다.

 재미도 있고 잘 된 작품이기도 한데, 왜 뭔가 허전한 느낌이 드는 걸까. 예전 같으면 이 작품에서 파생되었다는 <흑과 다의 환상>이나 <보리의 바다에 가라앉는 열매>, <여섯 번째 사요코> 같은 책들을 줄줄이 사들였을 텐데, 어째 그다지 내키지 않는다. 온다 리쿠는, 다시 어떤 기회가 생기면 보게 될까.

 

 

 

 3.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흥미진진하게 읽었고, 여러 가지 생각할 거리들도 많았는데, 정리는 잘 안 된다. 이런 책을 읽으면 저자와 논쟁하고 싶은 생각이 드는 게 아니라 그저 한발 빼고 으음, 그래? 정도의 반응밖에 안 나온다. 이런 태도가 아렌트가 주장한 악의 평범성의 바탕일지도 모른다.

 한길사는 교정, 교열을 제대로 안 보나. 번역이 좋은지 나쁜지는 알 수 없으나, 최소한 문장의 조사 정도는 제대로 써 줘야 하지 않을까. 조금이라도 이상한 문장이 나오면 턱턱 걸려서 그냥 넘어갈 수 없으니, 내가 지나치게 까탈을 부리는 건지.  

 

 

 

 4. 신 기생뎐

 최근 본 한국소설(몇 권 되지도 않지만.) 중 가장 빼어난 작품. 마냥 가벼워지려고 하지 않는 점도 마음에 들고, 각각의 인물들에 대한 작가의 따스한 시선도 좋고, 인물들의 감정에 몰입도 잘 되고, 맛깔나는 사투리와 순우리말 구사도 재미있다. 모처럼 사전 찾아가며 흐뭇해서 읽었다.

 

 

 

 

 

 5. 데이 워치

 <나이트 워치>를 워낙 재미있게 읽어서 도대체 다음 편은 언제 나오냐고 목 빼고 기다리고 있었다. 신간 소식 보자마자 바로 주문, 그 날로 시작해 금방 다 읽어버렸다.

 제목은 <데이 워치>로 어둠의 세력인 주간경비대가 주인공이어야 하지만, 아무래도 작가는 빛의 세력 편이 아닐까. 빛과 어둠은 선과 악이 아니라 각자의 본성과 가치에 기반하여 인간 세계와 관계맺는 방식이라고 하면서도, 주간경비대가 더 나쁘게 보인단 말이지. 마지막 장을 덮고 나면, 야간경비대가 주인공 같잖아.

 그나저나 <더스크 워치>는 2008년에야 나온다는데. 아우, 좀 더 빨리 내주면 안될까요오~?

 

 

 6. 눈과 피의 나라 러시아 미술

 그러고보면 내가 알고 있는 많은(?) 화가들 중에 러시아 사람은 샤갈과 칸딘스키 정도였던가.

 브루벨의 그림에 홀딱 반했다. 이 책의 표지로 쓰인 <백조 공주>를 서재 이미지로 삼다.

 러시아. 언제쯤 가 볼 수 있을까. 트레티야코프 미술관도 에르미타쥬도 가고 싶어 죽겠다.

 

 

 

 

 7. 톰 존스

 무려 1400여 페이지. 서평단 신청 괜히 했나 싶었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 보니 의외로 재밌다. 술술 넘어가는 정도가 아니라 부분부분 박장대소하고 있다. 이 달 말까지 끝냈으면 하는 바람이 있지만, 이제 겨우 200페이지 넘어간 참이라, 글쎄.

 

 

 

 

 

올해는 부지런히 읽어볼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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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da 2007-01-26 14: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다들 좋다는 온다 리쿠, 심지어 알라딘 편집팀에서 무더기로 추켜세운 그 온다 리쿠가 별 감흥이 없던 걸요... 6번이 심히 끌립니다. 푸른색이 시리도록 눈부셔요.^^

mong 2007-01-26 14: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옷 톰존스 그렇단 말이죠?
2권도 얼렁 사 놓고 시작해야겠네요!

nada 2007-01-26 14: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여간 몽님의 두꺼운 책 밝힘증(?)은 알아줘야 해욤 =3=3 (근데 저도 박장대소라는 말에 솔깃~)

urblue 2007-01-26 15: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꽃양배추님, 전 일본 소설이 좀 시들해진건지, 기대했던 <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도 재미가 없더라구요. 온다 리쿠도 그렇고, 저 <걸>도 그렇고. 야마모토 후미오 여사의 신간들도 안 땡겨요. -_-
이주헌씨 책은 처음인데, 재미있던걸요. 저자 말대로 맛뵈기밖에 될 수 없다는게 아쉽습니다. 몇 권으로 나눠 내도 좋을텐데 말이죠.
톰 존스도 재미있습니다. ^^

몽님, 1권만 사셨나보네요. 얼른 시작하세요. ^^
두꺼운 책 밝힘증이 있으셨군요. 전 너무 두꺼운 책은 저자에 대한 신뢰가 없으면 시작을 못 하겠더라구요. <젠틀 매드니스>는 수면제로 썼잖아요. -_-;;
 

 

 

 

 

 

 

 

 

 

 

내가 제일 잘 하는 스포츠는 단연 핑퐁이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건, 탁구가 내 평생 가장 오래 배운 운동이기 때문이다. 수영 및 에어로빅 5개월, 단전 호흡 5개월, 집에서 요가 2개월에 비하면, 2년은 얼마나 긴 시간인지. 

 

아빠는 고등학교 탁구부 선수셨다. 소년체전인지 전국체전인지에 도 대표로 참가한 적도 있다는데, 선수로 뛰진 못했고 후보였단다. 초등학교 4학년, 학교에 탁구부가 생기자 아버지는 내게 가입을 종용하셨다. (뭐 확실한 기억은 아니다만, 그런 이유가 아니라면 내가 굳이 탁구를 배울 필요가 있었을까. 어쩌면 학교에서 아버지나 작은아버지한테 부탁을 했는지도 모른다. 코치가 작은아버지 친구였다. --^ )

 

탁구부는 야구부, 축구부 등과 마찬가지로 버젓한 학교 대표였고, 고작 대여섯 명의 선수들은 나름 혹독한 훈련을 해야 했다. 갓 열 살을 넘긴 조그만 여자아이들에게 눈 쌓인 운동장을 10바퀴씩 뛰는 건, 분명 쉬운 일은 아니었다. (어, 이제 생각해보니, 왜 여학생들뿐이었을까.) 아무튼, 그렇게 5학년 말까지 2년 동안 나는 체력 훈련을 했고, 탁구를 배웠고, 근처의 다른 학교 선수들과 시합을 했다.

 

, 쇼트, 푸쉬, 커트, 스매쉬 등등 기술을 배우는 건 나름 재미있는 일이었다. 처음에 죽어라 팔 흔드는 연습만 했던 것에 비하면 말이다. (스포츠는 몸으로 익혀야 하는 거니까, 일정하게 팔을 흔드는 연습을 아주 오래 시킨다.) 손바닥만한 라켓으로 조그만 공을 맞추는 데에 그렇게나 많은 기술의 종류가 있다. 그냥 쳐 넘기고, 끊고, 회전을 주고, 기타 등등 공이 원하는 방향으로 정확하게 날아가거나, 손목을 잠깐 꺾는 것만으로 스핀을 먹고 다른 방향으로 휘는 걸 하나하나 확인하는 건 자못 감격스럽기도 하다.

 

그러나 내가 가장 좋아했던 것은 랠리였다. 랠리란 양쪽에서 공을 계속 주고받는 것이다. (간혹 유명 선수들의 경기를 보면 엄청나게 긴 랠리가 나올 때가 있다.) 그 조그만 공이 라켓에 맞고, 건너편 테이블에 튕기고, 상대방의 라켓을 거쳐 내 앞으로 날아들고, 그걸 다시 쳐내는 것, 그렇게 상대방과 번갈아 움직이고 리듬을 이어가는 것이 재미있고 신기했다고나 할까. (그러나 박민규의 <핑퐁>에 등장하는, 하루 넘게 이어지는 무시무시한 랠리라면 절대 사양이다.) 이러니 선수로서 잘 해낼 턱이 있나. 이기겠다는 투지는 부족하지, 기술은 시원찮지, 그나마 촌구석 초등학교 탁구니까 때로 이기기도 하고 지기도 하는 평범한 선수가 될 수 있었을 것이다.

 

다시 라켓을 잡은 건 대학 때다. 우연한 기회에 동아리 사람들이 탁구를 좀 친다는 걸 알게 되어서 다 같이 우르르 탁구장으로 몰려갔다. (요즘 탁구장 찾기 정말 어렵다. 흑흑.) 처음의 어색함도 잠시, 그 옛날 열심히 팔을 휘둘렀던 보람일까, 금세 감각이 살아났다. 뭐 회전써브라든가 드라이브라든가 백스매쉬라든가 하는 걸 전혀 구사할 수 없었다는 사실은 그냥 묻어두기로 하자. 이후로 한동안 탁구는 동아리 내에서 인기 스포츠였다. 그런데 여기서 성격이 드러난다. 대개는 어느 정도 몸을 풀고 나면 시합을 하자고 달려든다. 당구처럼 내기를 하는 것도 아닌데 굳이 시합이어야 재미가 있다는 거다.

 

시합은 상대를 이기기 위해 한다. 스핀이 잔뜩 들어간 어려운 써브를 (넣을 수 있다면) 넣고, 강공을 먹이고, 상대가 움직일 수 없는 빈틈을 찌르고, 페이크 동작으로 속여서, 어떻게든 상대방이 공을 받아넘길 수 없게 만들어야 한다. 랠리는 물론 바람직하지 않다. 이런 경기가, 나는 싫었다. 다행히 선배 한 명과 죽이 맞았다. 그 선배도 시합을 무진장 싫어해서, 우리는 틈날 때마다 오로지 '탁구'를 즐겼다. 둘이 치면서도 회전써브도 넣어보고, 스매쉬도 날린다. 그러나 그것은 기본적으로 우리가 그런 기술을 구사할 수 있는지 없는지 확인하는 수준이지, 상대를 공격해서 포인트를 따기 위함은 아니다. 순수하게 몸의 움직임을 즐긴다고나 할까.

 

한 6~7년 쯤 전에 다시 잠깐 탁구를 즐긴 적이 있었으나 그 이후로는 탁구장도 같이 칠 사람도 찾을 수가 없어 라켓 한 번 잡아보지 못한 상태다. 이제는 동작을 기억하고 있는 것과는 별개로 몸이 제대로 움직여주지 않겠지. 탁구공을 뻔히 보고도 쫓아가지 못하지 않을까 싶다. 흑흑.

 

갑자기 나의 탁구가 생각난 것은, 최근 읽은 두 가지의 <핑퐁>(박민규와 마츠모토 타이요) 때문이다. 박민규 쪽은 너무 나갔다 싶고, 마츠모토 타이요는, 뭐랄까, (이렇게 말하면 상당히 웃기겠지만)주인공 스마일에게 묘한 동질감을 느낀달까. 스마일은 연습은 물론이거니와 경기에서도 전력으로 임하지 않는다. 상대방을 고려하다보니 의식/무의식적으로 져주는 타입이다. 그런 그에게 승부욕을 불어넣으려는 코치는 최선을 다하는 것이 스포츠정신이라고 말한다. 탁구에 엄청난 재능이 있지만 단순한 운동 이상의 의미를 두지 않는 스마일에게 스포츠정신이 필요할까. 남들은 못가지는 재능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꼭 그걸 써먹어야할까. 그건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선택이란 말이다. (내 경우엔 절대로 '선택'이 될 수는 없다는 거, 잘 안다. 그러니까 만화 속의 다른 사람들이 열받는 거겠지. 그래서, 어쩌란 말이냐.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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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dan 2006-11-17 14: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마일에게 동질감' 부분은 상당히 웃긴건 사실인데, 이해는 해요. 저는 위인전 읽으면서도 주인공한테 동질감을 느끼곤 했거든요. ㅎㅎ

urblue 2006-11-17 14: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하. 위인전 읽으면서 동질감이라니, 범생이 스타일이셨나봐. 저랑 똑같잖아요. -_-;;

2006-11-17 17: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6-11-18 14: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urblue 2006-11-19 17: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네, 말씀 들었는데, 인사도 못 드렸네요. 또마님이 여자친구랑 같이 온 것 같지 않아 혼자였나 싶었는데, 나중에 말씀해주시더라구요, 님과 함께였다구.
언제 자리가 되면 뵙고 차근히 이야기 나누면 좋겠네요.
고맙습니다. ^^

2006-11-20 16:20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