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작가는 어떻게 쓰는가 - 작가 지망생을 위한 글쓰기 수업
윌리엄 케인 지음, 김민수 옮김 / 교유서가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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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장처럼 써라>를 읽을 때만해도 잘 몰랐던, 혹은 작품을 찾기 쉽지 않았던 거장의 소설들이 그 사이 출간이 되었다. 그리고 이제 이 책으로 다시 한번 거장들의 소설과 비교하며 읽어볼 기회가 생겼다. 이 책을 읽는 모든 이가 모방을 통한 창조의 기쁨을 누릴 수 있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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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17-12-06 01: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 제목이 바뀌었군요 이 책 목록을 보니 ‘누구처럼 써라’네요 여러 작가가 어떻게 글을 썼는지 보고 싶기도 합니요 그걸 본다고 해도 그렇게 쓰기는 어렵겠지만... 자신은 자신대로 쓰는 게 좋죠 아니 처음에는 누군가를 따라할 수도 있겠네요 자신대로 쓴다고 해도 쓰다보면 자기도 모르게 누군가와 비슷하게 쓸지도...


희선
 
콜럼바인
데이브 컬런 지음, 장호연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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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연휴 동안 콜럼바인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두 권의 책을 읽었다. 두 책 모두 하나의 사건을 다루고 있다. 1999420일에 미국 콜로라도 리틀턴의 콜럼바인 고등학교에서 일어났던 총기 난사 사건이 그것이다. <콜럼바인>이 철저하게 저널리스트의 시각에서 쓰여진 비교적 객관적인 복기의 기록이라면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는 사건 가해자 중 한 명인 딜런 클레볼드의 엄마가 자신의 아들에게 일어난 일을 이해해보려 애쓰고 노력한 흔적이 고스란히 담긴 주관적인 복기의 기록이라 할 수 있다.

 

1994420일 콜럼바인 고등학교에서 총기 난사 사건이 발생했다. 그로 인해 15(13명 사살, 가해자 2명 자살)이 사망했고 24명이 부상을 입었다. 이 두 가지 팩트는 미국은 물론 전 세계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켰고, 사람들은 저마다 각자의 입장에서 아는 만큼의 정보를 가지고 이 사건을 진단하고 해부하고 결론을 내렸다. 사건과 범인에 대한 정보의 양이 늘어감에 따라 범인인 에릭과 딜런의 정체성이 드러났으며, 좀처럼 사건에 대한 결론이 내려지지 않음으로써 수많은 이해관계자들이 비교적 오랜 시간 동안 자의든 타의든 콜럼바인 사건에 묶인 채 살아가야 했다. 그리고 여전히 누군가는 죽을 때까지 이 사건에서 벗어나지 못할 지도 모른다.

 

재난 기사는 처음에는 뭐가 뭔지 혼란스럽다가 점차 명료하게 전모가 밝혀지는 것이 일반적인 이치다. 사실관계가 파악되고 모호한 면이 걷히면 정확한 그림이 잡힌다. 그리고 대중이 이를 받아들인다. 하지만 최종적으로 그려진 그림은 진실과 무관할 때도 많다. _ p. 253

 

<콜럼바인>의 저자는 자료출처에 대해란 서문격의 글에서 부디 이 책이 사건의 오해를 바로잡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라고 말하고 있다. 그렇다. 저자의 집필 의도는 분명하다. 이 책은 콜럼바인 사건의 총체적인 오해를 하나하나 낱낱이 바로잡기 위해 10년이란 시간을 들여 취재와 집필을 하여 나온 결과물이다. 그리고 그 오해의 주범은 바로 언론이었다. 여러 언론이 만들어낸 수많은 오해들을 한 명의 언론인이 끝까지 매달려 사건의 진실을 추적하여 기록한 결과물이 바로 <콜럼바인>이다.

 

사건과 사고는 크건 작건 언제 어디에서나 일어날 수 있다. 이미 발생한 사건과 사고를 초기에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따라 세상은 진실을 곧바로 알 수도 있고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나 알게 될 수도 있으며 최악으로는 끝내 알지 못할 수도 있다. <콜럼바인>은 사건의 본질이 어떻게 오염되어 전파되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더불어 그 오염된 정보로 인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어떤 고통을 받았는지도 비교적 자세하게 이야기해주고 있다.

 

가해자 2명이 모두 사망하였으므로 정확한 범행 동기는 알 수 없었다. 그리하여 콜럼바인 사건의 진실은 취재를 한 언론과 정신이 없는 목격자들에 의해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갔으며 또 그 수사를 맡은 기관의 사건에 대한 은폐시도로 인해 사건과 범인에 대한 본질은 흐려질 수밖에 없었다. 결국 가해자들이 생전에 남긴 수많은 흔적들을 제대로 분석하여 왜 콜럼바인 사건이 일어났는지를 알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진실이 드러나기까지의 그 시간 동안 사람들은 저마다의 입장에서 이 사건을 이해하거나 이용했으며 끝내 콜럼바인이 폭력과 공포, 아픔을 상징하는 관광지로까지 이용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사건 열흘 뒤에 가진 악명 높은 기자회견에서 제퍼슨 카운티 당국은 신청서의 존재를 숨겼고 자신들이 알고 있던 내용도 대담하게 거짓말했다. 에릭의 웹사이트를 찾지 못했고, 에릭이 설명한 파이프폭탄이 제작되었다는 증거가 없으며, 브라운 부부가 힉스를 만났다는 기록도 없다고 했다. 게라의 신청서를 보면 이 세 가지 주장은 모두 사실이 아니다. 경관들은 그의 신청서를 며칠 검토하고는 그냥 버려두었다. 이후 수년 동안 그들은 계속 거짓말을 했다. _p.283

 

사건의 본질을 흐린 또 하나의 주범은 이 사건을 맡은 수사기관이다. 그들은 언론보다도 더 악질이었다. 언론은 검증되지 않은 내용을 그대로 반복해서 내보냄으로써 사람들에게 오해를 불러 일으켰지만 수사기관은 아예 거짓말과 사건 은폐로 사람들을 농락했다. 가해자인 에릭에 대한 위험을 이미 알고 있었으면서도 사건이 발생하자 그들은 전혀 몰랐다고 거짓말했고 수사에 대한 정보를 공개하지 않음으로써 사람들의 불신과 의구심을 키워갔다. 그들은 어떻게 책임을 면할지 궁리하는 모임까지 만들어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기보다는 자신들의 잘못에 대한 책임을 면할 생각만으로 가득했다.

 

보안관서, 지방검찰청, 형사재판소의 윗선들은 에릭에 관해 각 기관이 내린 조처를 알지 못했다. _p.372

 

소년범을 다루는 관련 기관의 허술한 업무체계도 콜럼바인 사태의 원인이었다고 할 수 있다. 에릭에 대한 각 기관의 조처들을 서로 제대로 공유만 하였더라도 콜럼바인 사건은 막을 수 있는 범죄였다. 업무 매뉴얼이 제대로 정확하게 지켜지지 않을 경우 최악으로 어떤 일까지 발생하는지를 콜럼바인 사건은 여실히 보여준다.

게다가 엉망인 구조체계로 인해 이 사건에 출동한 요원들이 소극적으로 대응함으로써 살릴 수도 있었던 피해자를 죽게 했고 죽은 아이는 차가운 보도에 쓰러진 채로 밤새(스물여덟 시간) 방치되어야 했다. 사건에 투입된 요원들은 이렇듯 희생자들을 무심하게 취급하였고 이로 인해 희생자의 가족들에게 또 한번의 고통을 준 셈이었다.

 

그들의 관점은 어떤 면으로도 용납될 수 없었지만, 잠시 이들을 포용하고 감정을 이입할 필요가 있었다. 그들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지 않는다면, 그들이 어떻게 그 엄청난 일을 벌였는지 어찌 이해하겠는가? 이제 겨우 고등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이었다. 대체 어쩌다가 이런 길로 빠져들었을까? _ p.287

 

콜럼바인 사건의 수사에 참여한 퓨질리어 부서장(그는 심리학자이기도 하다)이 두 학생에게 가진 의문이었다. 이 의문을 통해 범행 동기의 진실이 밝혀지게 된 셈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사건으로 13명이 사망했다고 말할 때, 퓨질리어 부서장이 자살한 2명의 가해자를 포용하고 감정이입하여 그들에 대한 관심을 갖지 않았다면 이 사건에 대한 진실된 범행 동기는 어쩌면 영원히 묻혔을 수도 있다.

 

살인의 진부함을 달래는 덜 보편적인 방법이 있는데 바로 두 명이 짝을 이뤄 서로에게 자극을 주는 것이다. …… 가령 신경질적이고 변덕스러운 우울증 환자와 가학적인 사이코패스가 만났을 때 폭발적인 짝이 된다. _ p.407~p.408

 

에릭은 감정 자체가 없는 지능이 좋은 영리하고 매력적이까지한 사이코패스였고 딜런은 가슴속에는 다양한 감정과 열정이 부글부글 끓고 있지만 결코 그것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 감정기복이 심한 우울증 환자였다. 언뜻 보면 그 둘은 비슷한 면이 없어 보이지만 두 소년 모두 인간의 존재를 로봇으로 본다는 점에서는 생각이 일치했다. 둘은 자신들이 다른 사람들에 비해 좀 특별한 존재라고 생각했고, 에릭은 그 점을 즐긴 반면 딜런은 그 점을 힘들어 했다. 결국 두 소년은 그 특별함을 가장 비참한 방법으로 드러냈고 어떤 면에서는 자신들의 특별함을 많은 사람들에게 제대로 각인시킨 셈이다.

 

딜런의 엄마인 수 클리볼드는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에서 딜런의 이런 정신적 문제를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자신이 낳고 17년을 키운 딜런의 내면에 자살을 향한 열망이 그렇게 강할 거라고는 상상조차 해본 적 없다고 한다. 그리고 수는 말한다. 남들은 딜런을 괴물이라고 하지만 그렇지 않다고. 딜런은 정말 평범한 중산층 가정의 평범한 아들이었다고. 그저 자살을 생각하는 병의 증상을 가진 정신질환자일 뿐이라고. 그리고 감쪽같이 그걸 감추는 사람들을 구별해 내기란 부모나 전문가들이나 쉽지 않다고. 그리고 엄마인 자신이 딜런을 살인자로 만든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수는 말하고 있다.

 

두 권의 책은 저자들 각자의 입장에서 콜럼바인 총기 사건을 복기하고 있다. 한 명은 언론인으로서 또 한명은 가해자의 엄마로서. 두 사람 모두 콜럼바인 사건을 되짚어가며 그 사건의 의미를 찾아가는 그 오랜 시간이 편치만은 않았을 것이다. 한 사람은 객관성을 유지하기 위해 수많은 취재와 방대한 양의 자료를 읽고 분석해야 했고 또 한 사람은 가해자인 아들이 한 짓을 용서받기 위해 그리고 그 아들을 이해하기 위해 무엇보다 아들의 죽음을 통해 어떤 의미를 찾기 위해 잊고 싶은 일들을 하나하나 기억해내야만 했다.

 

이 책들이 나오기까지 두 저자는 무척 괴로운 시간을 보냈을 테지만 그 결과물이 많은 사람들에게 올바른 영향을 주었기를 바란다. 정확한 확인 없이 발 빠른 보도에만 눈이 먼 무책임한 언론과 체계적으로 일을 하기는커녕 사건파악조차 못하고 잘못을 은폐하려고만 하는 무능한 수사기관들, 그리고 총기규제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수많은 관계자들에게도 영향을 주었기를 바란다. 또한 자기 자식은 자신들이 제일 잘 안다고 생각하는 부모들에게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으니 늘 잘 살피고 적극적으로 자식들을 돌볼 것을 환기시키는 데 한몫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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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과 전쟁
아자 가트 지음, 오숙은.이재만 옮김 / 교유서가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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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작가가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글에 대한 기사를 보고서는 이 책을 꺼내들었다. 한강 작가가 말한 ‘누구를 위한 전쟁인가?‘란 의문을 이 책을 읽다보면 풀 수 있을까 싶어서... 과연 전쟁이란 무엇인가? 이 거대한 질문에 제대로 답해줄 만한 책으로 이만한 책이 또 있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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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
수 클리볼드 지음, 홍한별 옮김 / 반비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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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서 겪은 최악의 일을 나름의 방식으로 복기할 수 있었던 저자의 강한 정신력과 인내심만으로도 충분히 값진 책이다. 최악의 상황에서 모든 것을 놓아버리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어떻게든 안아보려는 저자의 삶의 태도에서 나를 되돌아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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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녀
넬리 아르캉 지음, 성귀수 옮김 / 문학동네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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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토요일에는 친구랑 홍대에 위치한 나름 유명하다는 점집엘 갔었다. 신점을 봐주는 곳이라는데 사주를 넣어서 신점을 봐준다는 것인지 아무튼 친구와 나란히 사주를 넣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듣고 나왔다. 점쟁이가 나를 보고 한 첫마디는 이거였다. “머리 길어 여자고, 안 달려 있어 여자다.” 말인즉 남자사주라고... 그리고 내가 지금 아픈 것에 대해서도 콕 짚어내는 바람에 안그래도 귀 얇은 나는 그만 점쟁이 말에 홀라당 넘어가버렸다. 친구랑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어제는 하루종일 집에서 뒹굴뒹굴하는데 자꾸 점 본 것이 생각이 나더란 말이다. 분명 좋은 소리도 조언도 들었는데 왜 기분이 처지는 걸까. 곰곰이 생각을 해봤다.

 

점은 지나간 과거보다는 앞으로의 일을 말해주는 것인데, 아마도 미래의 이야기를 듣는 것 자체가 나에겐 조금 부담스럽게 다가왔던 것 같다. 평생 바쁘게 살 팔자에, 결혼은 하지 않는 게 낫고(해봤자 이별이란다.) 끊임없이 사회생활을 해야 하며 건강에 늘 신경을 써야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니, 몸도 마음도 당장 쉬고 싶기만 한데 평생을 바쁘게 살아야 한다는 게 나름 스트레스이긴 했나보다. 어찌 보면 그렇게 나쁜 미래도 아니고 달리 생각하면 평생을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것이 오히려 좋은 사주일 수도 있는데... 몸 여기저기가 아파오는 나이이다 보니 만사가 다 부질없다는 생각을 자주하게 되는 요즘이다.

 

만물이란 쇠잔하기 마련이고, 그로 인해 모든 것이 파괴될지언정 어차피 그렇게 되어야 마땅한 일이거든, 그러니 불가능을 살아내거나 아니면 죽어버리는 게 문제일 바엔 당장 죽어버리는 게 차라리 낫지 않겠어, 불가능한 것이 목전의 현실로 인정된 마당인데, 앞으로 남은 거라곤 어긋나는 만남의 약속들로 점철된, 놀랄 것 하나 없고, 메시아도 산타클로스 할아버지도 없는 남루한 인생 그 자체뿐이겠지, 여기저기 삐걱거리는 배관들투성이인데다, 전체를 새로 칠해야 할 낡은 건물들처럼 즐비하게 늘어선 나날들 말이야.”_ p.181

 

주말 동안 겪은 롤러코스터같은 기분에는 넬리 아르캉의 <창녀>도 한몫 했다. 늙어간다는 것 나아가 결국은 죽음을 맞이한다는 것. 몇 주 동안 읽은 이 소설로 인해 나는 요 몇 주 내내 노화와 죽음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었다. 저자도 소설의 주인공도 여자이다 보니 철저히 여자의 입장에서 저 두 가지 인간의 필연적인 결과를 계속해서 생각하다보니 미래를 이야기해주는 사주풀이조차도 결국은 나이듦과 죽음이라는 미래의 마지막과 연결 지어 생각하게 되었던 거다. 어차피 늙고 죽을 거라면 이제부터라도 좀 편하게 살고 싶다. 어차피 혼자 외롭게 살 인생이라면 그냥 막 살고 싶다. 건강 따위 신경 쓰지 말고 하고픈 거 실컷 하다가 객사해도 상관없겠다. 뭐 이런 생각들...

 

스무 살의 신시아. 문학을 전공하는 대학생이자 창녀. 자신을 낳고 여성성을 잃은 채 시들어만 가는 굼벵이엄마와 종교에 심취했으나 그렇다고 도덕적으로까지 깨끗하지는 못한 아버지. 그들 사이에서 일찌감치 성(긍정적보다는 부정적인 면으로)에 대해 알아버린(아니 어쩌면 그건 창녀가 된 자신에 대한 핑계일 수도 있다.) 신시아는 특별한 이유(학비나 생활비, 병원비 같은 경제적인 이유) 없이 창녀가 되었다. 누가 봐도 한창 좋을 나이에 창녀가 되어 이미 늙음과 죽음에 대한 공포에 사로잡혀 자신에 대한 연민과 혐오로 정신분석가 앞에서 끝도 밑도 없는 자기 고백을 하고 있다.

 

소설속의 신시아에 겹쳐지는 저자 넬리 아르캉. 저자는 서른 여섯 살의 나이에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고 한다. 여러 소설을 쓰기도 했고 무엇보다 이 소설은 저자가 직접 5년 동안 매춘 경험을 통해 쓴 자전적 소설이라고 하니 신시아의 불안정한 정신세계와 저자의 자살을 떼어놓고 볼 수가 없다. 어쩌면 이 소설은 매춘을 할 수밖에 없는(물론 소설 속 신시아도 저자 자신도 최후의 일로서 매춘을 선택한 것은 아니지만..) 성노동자의 정신적인 고통과 또한 육체적인 위험에 처할 수도 있다는 점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었던 건 아닐까, 그런 생각도 해보게 된다.

   

  

<창녀>에 대한 소설 이야기를 하다가 주말에 친구가 추천해준 테드 강의를 봤다. 매춘업에 종사하는 여성이 성노동자에게 진짜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강의였다. 성을 사고파는 것. 이에 대해 말하는 건 조심스럽다. 하지만 당신도 알고 나도 알고 있지 않은가.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거래가 바로 매춘이라는 것을(소설에서 신시아는 성을 사는 모든 남자를 아버지로, 성을 파는 모든 여자를 딸로 상정해놓고 있다. 이건 어쩌면 저자가 매춘이라는 것이 핏줄의 이어짐처럼 그만큼 오래된 것이고 또 결코 사라질 수 없는 직업이라는 걸 말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 그리고 아무리 법적으로 물리적으로 막아도 어떻게든 이루어지는 것 역시 매춘이라는 것을.. 그렇다면 매춘을 합법화해서 성노동자들이 안전한 시스템 안에서 보호를 받으며 돈을 벌 수 있게 해주자는 강사의 말은 합리적으로 들린다. 성노동자의 인권을 지켜주는 것. 그래서 그들이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좀 더 안전하게 돈을 벌 수 있게 해주는 것. “우리가 원하는 것은 완전한 비범죄화와 직업으로서의 노동권입니다.” 많은 사람이 강사의 이 마지막 한마디를 오래 붙잡고 진지하게 생각해봐주면 좋겠다

 

한데, 내가 침대를 벗어나서, 어떤 요구를 벗어나서는 결코 소리지르거나 동작을 취할 줄 모르는 반면, 약간의 글들, 나의 절규로 가득한 이런 글들이라면 그들 모두를, 나아가 여자들까지 포함한 전 세계를 화들짝 놀라게 할 수 있지 않을까.” _ p.35

 

작은 사건과 고통에도 내 세상 전체가 흔들리는 것만 같은 불안감. 어쩌면 이 불안감 역시 결국은 내가 겪고 이르게 될 노화와 죽음에 대한 공포 때문일지도 모른다. 점점 존재감과 자존감이 사라져가는 삶을 견디기란 얼마나 버거운가. 신시아도 저자도 자신을 완전히 놓지 않기 위한 마지막 수단으로 글을 선택한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잡아야 하나. 일복 많은 내게 조만간 새롭게 도전할 만한 일이 들어온다는데, 겁먹지 말고 도전해도 된다고 하는데... 혼자가 아니니 할 수 있을 것 같다. 어쩌면 잘하기까지 할지도.. 불안을 이겨내는 최고의 방법은 역시나 사람인 걸까. 신시아에게 그리고 저자에게 진실된 친구 한 명만 있었더라면 그들의 미래는 달라졌을까. 달라질 나의 미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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