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까지 희미하게
정미경 지음 / 창비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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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여동생이 좀 아프다. 10년 동안 워킹맘으로 열심히 살아오던 동생이 자신과 관련된 모든 것에 대해 불안해한다. 심지어 자신조차도. 무엇이 동생을 이렇게 만들었을까. 지난 주말 동생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알게 되었다. 동생을 이렇게 만든 원인을...

 

공은 무언가를 끊임없이 좇으며 살아왔다. 자잘한 가지를 다 쳐내고 보면 그 무언가는 명료했다. 인정과 안정. 그 단순한 것이 공에겐 쉽지 않았다.”_p.25 <>

 

인정과 안정, 동생 역시 이 둘에 절실히 목을 매며 살아왔고 공이 그랬듯 동생에게도 쉽지 않았나보다. 승진하면서 새롭게 맡게 된 일은 익숙지 않아 버거웠고 가족들과 떨어져 지내야 하는 상황까지 겹쳐 몸과 마음이 망신창이가 된 동생은 직장인으로서도 엄마로서도 아내로서도 며느리로서도 제대로 인정을 받지 못하는 것 같다고, 그동안 쌓아왔던 안정이 한순간에 무너지는 것 같다고...

 

공은 자신의 욕망에 전력으로 매달림으로써 불안을 유예하는 쪽이었다. 금희의 방식은 반대였다. 미리 내려놓음으로써 불안의 싹수를 자르는 식이었다.”_p.36 <>

 

공처럼 최선을 다해 욕망에 매달리지도 그렇다고 금희처럼 아예 모든 것을 내려놓지도 못한 채 희망과 절망 사이를 하루에도 몇 십 번씩 오가는 동생을 보는 건 안쓰러움을 넘어 괴롭다. 최선을 다해 살아왔으면서도 불안에 좀 먹히고 있는 동생이 끝내 인정과 안정을 찾지 못한 채 불안에 완전히 먹힐까봐 두렵다. 뭐 그리 대단하게 살기를 바라는 것도 아니면서 삶의 작은 균열에 마치 세상이 멸망이라도 하는 듯 정신줄을 놓아버리려는 건지...

 

제 몸 안에는 불안이라는 장기가 하나 더 있어요. 평소엔 의식할 수 없어요. 근데, 오늘은 색채를 띠는 게 또렷이 느껴져요. 왜 과일도 익을수록 색깔이 진해지잖아요.”_p.61. <엄마, 나는 바보예요>

 

그래, 어쩌면 불안이라는 장기는 누구나 다 가지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동생도 나도 공도 금희도 중산층으로 살아간다고 믿고 있는 정신과 의사 조 역시. 불안이 색채를 또렷하게 띠는 그 날이야 저마다 다르겠지만 불안 없이 사는 사람이 현대 사회에 존재하기나 할까. 불안을 조장해서 불안을 상품으로까지 만드는 시대에 불안이라는 장기가 하나쯤 더 달리는 건 현대인의 당연한 체질 변화일지도. 다만 누구는 체질 변화를 자연스레 받아들이고 그에 빨리 순응하는가 하면 또 누군가는 그렇지 못해 결국 몸과 마음이 병들기도 하고. 사는 게 다 그런 거다.

 

우리를 괴롭히는 대부분의 질병들은 알고 보면 우리가 만들어놓은 여러 가지 시스템에 우리 몸과 영혼이 미처 적응하지 못해서 생기는 부적응의 결과죠.”_p.62 <엄마, 나는 바보예요>

 

동생을 괴롭히는 질병은 쉬이 나을 것 같지 않다. 직장을 휴직함으로써 인정과 안정에서 튕겨져 나왔다고 믿고 있는 동생은 자신을 삶의 부적응자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아무리 괜찮다고 말을 하고 모든 게 불안하기만 한 나에 비하면 너에게 닥친 이 일쯤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조목조목 따져 설명을 해도 자신이 믿는 인정과 안정에 속하지 못하면 안 되는가보다. 사는 게 뭐라고...

 

오줌 누고 미워하고 노래하고 사랑하는 것, 그것들을 빼면 삶에서 뭐가 남을까.”_p.188 <장마>

 

정말 사는 거 별거 없는데... 잘 먹고 잘 싸고 잘 자고, 울다가 웃기도 하고, 노래하고 춤 추며 사랑하다 미워하기도 하면서 그렇게 수많은 것들과 만나고 헤어지기를 수시로 반복하는 게 삶인데. 영원히 움켜잡을 수 있는 건 애초에 없다는 걸 깨닫는 것만으로도 한결 가볍게 살아질 텐데. 동생에게 그저 이 단순한 삶의 이치를 전하고 싶었는데 잘 전해지지 않은 것 같다. 어쩌면 나조차 머리로 이해하는 것과는 별개로 불안해하며 살고 있기에 동생에게 제대로 된 확신을 주지 못했는지도 모르겠다. 그 확신을 심어줄 수 있는 사람은 결국 동생 곁에 늘 함께하는 남편과 가족들인데 그들의 동생에 대한 사랑이 극복이 아닌 인정이기를...

 

2.

 

사랑, 사랑하는 사이라면 다름이란 극복하는 게 아니라 인정해야 하는 게 아닌가.”_p.125 <목 놓아 우네>

 

공통점보다는 차이점에 민감해지는 게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처음에는 닮은 모습에 금세 친해졌다가도 조금씩 알게 되는 나와 다른 모습에 신경을 곤두세우는 게 인간관계의 본질인지도. 그 많은 인간관계에서도 최고로 치는 사랑, 그 사랑에서조차 다름을 인정이 아닌 극복해야할 대상으로 바라보는 남녀 사이를 사랑이 아니면 무어라 불러야 할까.

 

세상에는 사랑이라는 단어에 꼭 들어맞는 관계는 없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_p.126 <목 놓아 우네>

 

없을지도 모른다 정말로. 내가 맺어왔던 관계들을 돌아봐도 나는 그것들을 사랑이라 부르지 않는다. 매번 다른 모습으로 마주하게 되는 관계에서 무얼 사랑이라 부를 수 있는가 말이다. ‘당신은 사랑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나요?’ 어느 향수 광고에서 마주친 이 질문을 며칠 동안 붙들고 있다. 사랑이 뭔지 모르겠는데 도대체 무얼 할 수 있을까. 떠오르는 지난 날이 목 놓아 울고 싶을 정도로 그리우면 그게 사랑인 걸까. 지금의 관계가 흩어져 버릴까봐 불안해 잠 못 이루면 그게 사랑인 걸까. 정말 모르겠다. 무얼 사랑이라 하는지...

 

액정 속의 그는, 보고 싶은데 보지 못하는 안타까움이 어떤 것인지 알게 해주었다. 잠들기 전 외로운 욕정을 혼자 해결하는 순간에도 이 느낌은 여전해서 가슴으로 느끼는 오르가슴이 어떤 것인지 알게 해주었다.”_p.153 <목 놓아 우네>

 

어떤 고통의 감각을 고스란히 표현할 수 있는 단어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심을 고통스럽게 했다. 한가지 사실만 빼곤 그에게 놀랍도록 솔직하게 자신을 드러냈다고 생각했으나 진짜 자신은 그에게 말했던 것들과 말하지 못했던 것들 사이에 있다는 생각을 내내 하고 지냈다. _p.158 <목 놓아 우네>

 

사랑은 잘 모르겠지만 심의 이 심정은 고스란히 내 것인 것만 같다. 자신을 놀랍도록 솔직하게 다 드러냈음에도 막상 현실의 나는 거기에 없다. 가짜를 내세우고 나서야 진짜를 보여줄 수밖에 없는 자신을 생각하면 목 놓아 울고 싶어진다. 어차피 보지 못할 관계라는 걸 알면서도 설레고 그립다가 끝이 올까봐 두렵다. 이런 관계를 일컫는 단어는 뭘까. 언젠가는 그 단어를 찾아낼 수 있을까.

 

누군가와 헤어지고 나서야, 전화를 끊고 나서야, 들어줄 사람이 없을 때에야 속에 갇혀 있던 말들이 터져나와 저를 아프게 찔러댔다.”_p.169 <장마>

 

왜 매번 한 템포씩 느려서 내가 나를 아프게 하는지... 관계 속에 있을 때는 상대만을 생각하느라 상대에 집중하느라 정작 나를 잊고 있다가 상대가 사라지고 나서야 나를 돌아보며 하게 되는 말들. 받아줄 사람 없어 결국 되돌아와 나를 아프게 찔러대는 메아리들.

 

지나온 삶에서 우연히 다가온 따뜻하고 빛나는 시간들은 언제나 너무 짧았고 그 뒤에 스미는 한기는 한층 견디기 어려웠다. 그랬다 해도, 지금 이 순간의 따뜻함을 하찮게 여기고 싶지 않다.”_p.189 <장마>

 

관계의 끝에 혼자 남아 자신이 퍼붓는 말에 스스로 상처입고 그 상처가 어쩌면 평생을 뒤따른다 해도 그래도 관계 속에 있는 그 순간은 놓치고 싶지 않은 마음. 그 마음이 있는 한 사람들과의 관계는 계속 될 테고 쌓이는 경험으로 요령껏 자신을 잘 붙들며 살 테지. 그런 게 인생이지 싶다.

 

3.

 

그거야 시적 허용이죠. 옆에 있었다면 언제나처럼 또 멀고 뜬금없는 소리를 했겠지. 새벽까지 희미하게 떠 있던 달만큼이나.”_p.122 <새벽까지 희미하게>

 

내 인생에도 시적 허용이라 할 수 있는 그런 특별한 경험이 기다리고 있을까. 시적 허용이라 말할 수 있는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꿈꿔본다. 문득 옆을 보았을 때 새벽까지 희미하게 떠 있는 달을 함께 바라보고 있는 그런 사람을 만나기를 기대해본다. 아직 닿지 못한 관계를 설레며 상상해보는 것. 그게 또 인생이지 싶다.

 

 

나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 정미경 작가의 마지막인 문장들을 옮겨 적은 후 읽기를 반복하다가 지금 내게 의미 있는 것들을 문장들 사이사이에 밀어 넣었다. 삶을 꿰뚫는 통찰력 있는 정미경 작가의 문장에 기대어 지금의 내 마음을 다듬어보고 싶었는데 결국은 거칠고 서툰 마음만 드러낸 꼴이 되고 말았다. 그렇더라도 정미경 작가의 문장을 천천히 곱씹을 수 있어서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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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8-02-06 15: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프랑스식 세탁소>의 어느 단편에 등장한
자기 살(생선회)을 뼈에 얹고 있는 생선에 대한
부분을 다른 책에서 비슷하게 다룬 것을 보고
정말 깜짝 놀란 적이 있었습니다. 생각하는 게
참으로 비슷하구나 하고 말이죠.

이제 고인이 되신 지도 어느새 1년이나 되었다고
하네요...

설해목 2018-02-06 16:03   좋아요 0 | URL
네..... 시간 참 빠르다 싶어요. 벌써 1년이라니...
작가님 마지막 단편집이라 그런지 책장이 쉬이 안넘아가더라구요.
손가락에 밟히는 문장은 예외없이 마음에도 밟히구요.
아직 정미경 작가님 책을 다 읽지는 못했는데 한권씩 찬찬히 만나보려고 합니다. ^^

프레이야freyja-고마워영화 2018-03-09 17: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당선 축하합니다. 여동생 어서 건강 좋아지길 바래요.
정미경 작가는 저도 무척 좋아한 작가입니다.
이 책과 ‘당신의 아주 먼 섬‘을 최근에 읽고 만감이 교차하더군요.
좋은 리뷰 잘 읽었습니다.

2018-03-09 17: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3-09 17: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3-09 17: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1. 잠자는 동안에 깨어 있을 때와 마찬가지로 여러 가지 사물을 보고 듣는 정신 현상.

2. 실현하고 싶은 희망이나 이상.

3. 실현될 가능성이 아주 적거나 전혀 없는 헛된 기대나 생각.

 

에 관한 사전적 의미는 이렇게 3가지 정도다(네이버사전). 이 영화 제목인 <우리는 같은 꿈을 꾼다>에서 은 위 세 가지 의미를 다 포함한다고 할 수 있다. 도축장에서 관리직으로 일하는 엔드레와 도축된 고기의 등급을 매기는 검사원으로 일하게 된 신입 마리어의 첫 만남은 그리 인상적일 게 없다. 어느날 도축장에서 교미가루가 분실되는 사건이 발생하여 범인을 알아내기 위해 전직원을 상대로 상담이 이루어지면서 엔드레와 마리어는 자신들이 같은 꿈을 꾼다는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된다. 영화의 시작 장면에서 나오던 눈 덮인 숲속에서 수사슴과 암사슴이 바로 엔드레와 마리어였던 것. 두 사람은 같은 꿈을 꾼다는 사실을 알고 난 후부터 서로에 대해 궁금해지고 좀 더 가까워지고 싶어 한다.

 

가까워지고 싶어 하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마리어는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사람들과의 소통을 어려워하는 여자이고 엔드레는 자신의 한쪽 팔을 쓰지 못하는 것처럼 심장 일부가 굳어버린 듯한 남자다. 그런 두 사람이 단지 같은 꿈을 꾼다는 이유로 서로에게 호감을 갖지만 가까워지기엔 현실적인 한계가 있다. 마리어는 엔드레의 감정을 읽지 못할 뿐 아니라 그와의 스킨십마저 두려워한다. 엔드레는 이런 마리어에게 더 다가가기를 포기한다. 엔드레의 변해버린 태도로 인해 그에게 다가가기 위해 노력하던 마리어는 남자와의 만남 그리고 사랑이 자신에게는 실현될 가능성이 아주 적거나 전혀 없는 헛된 기대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결국 마리어는 자살을 시도한다. 하지만 엔드레에게서 온 전화와 그의 고백으로 인해 자살은 해프닝으로 마무리 되었고 두 사람은 꿈뿐만 아니라 몸을 공유하는 사이가 된다.

 

삶보다는 죽음을 더 가깝게 마주하는 일터에서 생기있기란 얼마나 힘이 드는 일인가. 살아 숨 쉬던 소가 한순간에 죽음을 맞아 식품으로 변해버리는, 피비린내가 늘 진동하는 도축장이란 삭막한 곳에서 일하는 엔드레와 마리어에게 매일매일은 그저 주어지기에 살아야할 시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지 않았을까. 그런 일상에도 불구하고 아니 그런 일상이었기에 실현하고 싶은 희망 혹은 이상이 바로 꿈으로 나타났던 것일지도... 붉은 피가 아닌 하얀 눈으로 덮인 숲에서 수사슴과 암사슴이 되어 다정하게 서로를 바라보고 함께 숲을 거니는 꿈으로... 그리고 두 사람의 몸이 하나가 된 밤에 그들은 꿈을 꾸지 않았다. 결국 그렇게 꿈은 현실이 되었다.

 

처음 이 영화의 제목만 봤을 때는 같은 꿈을 꾼다는 것을 같은 곳을, 같은 미래를 바라본다.’는 의미로 받아들였다. 그래서 지레짐작으로 생각과 가치관 및 바라는 미래상이 비슷한 남녀의 사랑이야기 정도이겠거니 했다. 하지만 영화는 진짜로 똑같은 꿈을 꾸는 남녀의 이야기였고 곰곰 생각해보니 감독은 같은 꿈을 꾼다는 설정으로 정신적으로 완벽한 교감을 나누는 남녀를 이야기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싶다. 더 나아가 마음의 교류만으로는 부족하여 몸까지 하나가 되었을 때에야 더 이상 꿈을 꾸지 않게 된 두 사람을 통해 영화의 원제에서 알 수 있듯이(원제: on body and soul) ‘진정한 사랑은 몸과 마음 모두가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진부하다 못해 고리타분한 사랑의 속성을 진지하게 보여주고 싶었던 게 아닐까.

  

 

 

영화에 나온 노래이다. Laura Marling<What He Wrote>

 

Forgive me, Hera, I cannot stay.
He cut out my tongue,
there is nothing to say.

Love me, oh Lord,
he threw me away.
He laughed at my sins,
in his arms I must stay.

He wrote,
I am broke,
please send for me.
But I am broken too,
and spoken for,
do not tempt me.

Her skin is white,
and I'm light as the sun,
so holy light shines on the things you have done.
So I asked him how he became this man,
how did he learn to hold fruit in his hands,
and where is the lamb that gave you your name,
he had to leave though I begged him to stay

Left me alone when I needed the light,
fell to my knees and I wept for my life.
If he had of stayed you might understand,
If he had of stayed you never would have taken my hand.

He wrote,
oh love, please send for me,
but I am broken too,
and spoken for,
do not tempt me.
And where is the lamb that gave you your name,
He had to leave though I begged him to stay.

Begged him to stay in my cold wooden grip,
begged him to stay by the light of this ship.
Me fighting him, fighting like fighting dawn,
and the waves came and stole him and took him to war.

He wrote,
I'm broke,
please send for me.
But I'm broken too,
and spoken for,
do not tempt me.

Forgive me here, I cannot stay,
cut out my tongue,
there is nothing to save.
Love me, oh Lord, he threw me away,
he laughed at my sins,
in his arms I must say.

We write,
that's alright,
I miss his smell.
We speak when spoken to,
and that suits us well

That suits us well.
That suits me 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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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아침 패터슨과 아내 로라가 잠들어 있는 침대 장면에서 영화는 시작되고 끝이 난다. 알람도 없이 눈을 뜬 패터슨은 침대옆 탁자에 있는 손목시계의 시간을 확인한다. 6시 10분이던가.. 그는 손목시계를 차고 간단하게 아침을 먹은 후 일터인 버스 차고지로 향한다. 패터슨의 직업은 미국 뉴저지 주의 소도시 '패터슨'의 버스 기사이다. 그는 버스 출발 전 운전석에 앉아 떠오르는 것을 노트에 적으며 하루의 일을 시작한다. 점심시간에는 아내가 싸준 도시락을 먹으며 폭포를 바라보고 앉아 역시나 머릿속을 맴돌고 있는 것들을 노트에 옮긴다. 퇴근 후 아내와의 저녁식사 후 애완견 마빈을 데리고 산책을 가다가 단골가게인 바에 들러 맥주한잔을 하며 가게 주인과 담소를 나눈 후 집에 돌아와 다시 아내와 잠자리에 든다. 이렇듯 패터슨의 하루는 규칙적이다. 일어나서 일터에 나가고 시간 날 때마다 떠오르는 심상을 노트에 적고 퇴근해서 애완견을 산책시키고 단골바에 들러 맥주한잔을 하고 잠자리에 드는 것.  그런가하면 그의 아내 로라의 하루는 어떤가. 남편의 모닝키스를 받으며 좀더 잠을 자다가 일어나 자신의 취향인 흑백으로 집을 꾸미는 것으로 대부분을 시간을 보내다가 남편이 돌아오면 저녁을 함께 먹고 잠자리에 든다. 로라 역시 특별할 것 없는 하루하루를 보낸다.

물론 멀리서 보면 패터슨의 규칙적인 일주일에는 특별한 변화가 없어 보이지만 그 하루하루를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면 늘 작은 변화들이 있기 마련이다. 패터슨이 운전하는 버스의 승객들은 매일 다른 사람들이다. 패터슨이 저녁에 들르는 바에서 마주치는 사람과 상황도 매번 다르다. 매일 먹는 점심(도시락 통에 붙은 아내의 사진도 매일 바뀐다)과 저녁 메뉴가 다르고, 끊임없이 흑백으로 집안을 새롭게 꾸미는 로라 덕분에 집 역시 매일 조금씩 달라져 있다. 어느 날에는 버스가 고장나서 난감한 상황이 생기는가 하면 자신의 비밀노트에 시를 쓰는 소녀를 만나 그녀의 자작시를 듣기도 한다. 아내가 온라인 주문한 할리퀸 기타로 인해 기타를 치며 노래부르는 아내의 모습을 감상하기도 하고, 토요장터에서 아내의 컵케이크가 대박나서 둘이서 외식을 하고 영화를 보는 데이트를 즐기기도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패터슨이 노트에 적고 있는 시가 매일 조금씩 달라진다.

주말 저녁 패터슨과 로라가 외출을 하고 돌아와보니 늘 지하에 두던 걸 실수로 소파에 두고 갔던 노트가 갈기갈기 찢어져있다. 범인은 마빈. 혼자 보기 아까우니 늘 복사본을 만들어 놓으라고 말하던 로라의 말을 실행에 옮기기 전에 이미 노트는 복구 불가능한 상태가 되고 말았다. 이 상황에 대해 화를 내거나 속상해 하거나 하는 패터슨의 큰 감정변화를 읽을 수는 없지만 그를 위로하는 로라의 태도를 보면 패터슨이 얼마나 상심했는지를 알 수 있다. 다음날 패터슨은 혼자 '패터슨'을 산책하다가 우연히 일본 시인을 만난다. 일본 시인은 패터슨에게 당신은 시인입니까? 라고 묻지만 페터슨은 아니라고 자신은 버스 기사라고 답한다. 일본 시인은 자신이 좋아하는 윌리엄 카를로스 윌리엄스 시인이 나고 자라고 평생을 산 패터슨이란 곳이 궁금해서 이곳에 왔다고 말하며 패터슨에게 빈 노트를 한 권 선물한다. 그리고 하는 말. "때론 텅 빈 페이지가 가장 많은 가능성을 선사하죠."


다시 월요일을 시작한 패터슨은 평소처럼 빈 노트에 시를 적으며 하루의 일과를 시작할 것이다. 그렇게 시로 가득해진 비밀 노트는 복사본을 만들어 둘 테고 언젠가는 시집을 출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패터슨'시의 버스 기사일 테고 로라와 살며 어쩌면 쌍둥이를 낳아 기르는 아빠가 되어 있을 수도 있다. 삶의 큰 틀은 쉽게 바뀌지 않을 테지만 매일매일은 조금씩 다른 모습으로 늘 새로울 것이다. 찰리 채플린은 '삶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다'라고 했다. 영화 <패터슨>을 보고나니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삶은 멀리서 보면 지루하지만 가까이서 보면 늘 새롭다.' 라고...


영화는 평범하고 지루하다 느껴지는 일상을 새롭고 아름답게 만드는 비법을 알려준다. 패터슨이 시를 쓰며 자신을 둘러싼 일상을 새롭게 발견하듯, 로라가 자신의 취향을 매번 새로운 발상과 방법으로 일상에 접목하듯, 매순간을 의식하며 살 것! 내가 이 영화에서 얻는 비법은 바로 이것이다.  의식하는 방법은 저마다 다를 것이다. 시를 쓸 수도 있고 그림을 그리거나 사진을 찍을 수도 있다. 무언가를 만들 수도 있으며 악기로 연주할 수도 있다. 그 방법이 무엇이든 순간순간을 의식하게 된다면 그리고 그것을 표현하는 자신만의 방법을 찾아낸다면 삶은 더이상 지루한 전쟁터가 아니라 즐거운 놀이터일 것이다.


4년을 함께 산 동생이 이번주에 다시 고향인 삼척으로 가게 되었다. 패터슨 시보다도 더 작고 조용한 소도시인 삼척에서의 지루한 일상이 싫어서 끝끝내 가기를 꺼려했던 동생이었건만... 척박하고 냉정한 서울 생활에 학을 떼고 선택한 고향에서의 제2의 삶.. 과연 동생은 그 삶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동생에게 이 영화를 한번 보라고 말하고 싶지만 아직은 그에게 이 영화가 와닿기에는 조금 무리일 듯싶다.  부디 동생이 되도록 빨리 자신이 있는 그 곳에서 삶을 즐길 수 있기를 바랄뿐이다.

영화의 감독인 짐 자무쉬는 '이 영화의 영감을 얻는 것이 25년 전 도시 '패터슨'을 여행하면서 였다 '라고 말한다. 그리고 영화에서도 등장하는 시인 윌리엄 카를로스 윌리엄스에 대해  책 <가지 않은 길 - 미국 대표 시선>(창비, 2014)에서는 '일상 언어와 대중문화, 평범한 미국인의 삶을 중시 했으며, 말기작 '패터슨'은 미국 소도시와 보통 사람들을 다루고 있는 대표적인 미국적 서사시이다.' 라고 설명하고 있다.  영화에서 패터슨은 '시를 번역하는 것은 우비를 입고 샤워를 하는 것과 같다.' 라고 말하지만 어쩌랴. 영시를 원문 그대로 즐길 수 없는 나로서는 이 영화때문에 알게 된 시인 윌리엄 카를로스 윌리엄스의  번역된 시라도 읽을 수 있어서 다행이다 싶은 것을... <가지 않은 길>에 실린 시 중에서 한 편을 옮겨적는다.

<봄과 모든 것>

 

- 윌리엄 카롤스 윌리엄스

 

전염병동으로 가는 길가

북동쪽에서 밀려온 파랗고

얼룩덜룩한 구름의 일렁임

아래 - 차가운 바람. 그 너머

서 있거나 쓰러진 마른 잡초로 누르스름한

넓고 황량한 진흙투성이 들판

 

군데군데 물웅덩이

드문드문 키 큰 나무

 

길을 따라 쭈욱 불그스름한

자줏빛, 갈라지고, 꼿꼿한,

잔가지 뒤엉킨 덤불과 조막만한 나무들

그 밑에 시든 갈색 이파리들

잎이 다 떨어진 덩굴들 -

 

생기 없어 보이지만, 느릿느릿

멍한 봄 다가온다 -

 

모든 것은 새로운 세계로 들어선다

발가벗고, 차갑게, 들어선다는 것 외엔

아무것도 확실치 않은 채. 주위엔 온통

차갑지만 친근한 바람 -

 

오늘은 풀, 내일은

빳빳이 곱은 야생 당근 이파리

 

하나하나 뚜렷해진다 -

생기 돋는다. 명료함, 이파리의 윤곽

 

이제 삭막하지만 위엄 있는

등장 - 조용히, 깊숙한 변화가

시작되었다. 뿌리내려, 그들은

움켜잡고 깨어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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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는 빠짐없이 봤다. TV용으로 제작된 드라마까지 찾아볼 수 있는 건 모두.. 그러니 당연히 이번 신작도 망설임없이 봤다. 기존에 만들어오던 가족을 테마로 한 영화와는 거리가 있지만 "<세 번째 살인>은 보고 나면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은 작품입니다. 좋은 의미로 관객에게 멋진 배신감을 주고 싶었습니다."라는 고레에다 감독의 말처럼 적어도 내게 이 작품은 멋진 배신감을 확실히 심어주었다.


살인범 미스미는 자신이 일하던 공장 주인을 천변에서 패스너로 쳐서 죽이고 불을 질러 사체를 훼손하여 강도살인죄로 기소된 상태다. 그는 이미 경찰과 검찰에서 자신의 죄를 모두 자백한 상태에서 변호사 시게모리를 만나게 된다. 시게모리는 미스미가 자백은 했지만 어떻게든 자신의 의뢰인에게 유리하게 공판을 이끌어가보려 한다. 하지만 시게모리가 미스미를 접견할 때마다 그의 진술은 번복이 되고 그리고 피해자의 가족인 부인과 딸마저 뭔가를 숨기는 것만 같다.


미스미는 처음 그러니까 경찰과 검찰 수사에서는 자신의 살인을 인정한다며 자백했다. 왜냐하면 자백을 하면 사형만은 면하게 해주겠다고 피의자를 설득했기에..그리고 처음 만난 변호사와 접견을 했을 때조차도 같은 이유로 자신의 범행을 자백했다. 하지만 시게모리 변호사와 접견이 거듭되면서 그의 진술은 조금씩 번복이 되더니  결국은 자신은 살인을 저지르지 않았다고 주장을 한다. 그리고 피해자의 딸인 사키에 역시 미스미의 살해 동기는 강도살인이 아닌 전혀 다른 이유라고 진술을 하고 있다. 이로써 범인의 자백에 의해 단순하게 결론이 날 것같았던 살인 사건은 복잡해졌다.


자백이 범행의 유일한 증거이던 사건에서 범인이 자백한 것을 철회하고 살인을 부인한다면 처음부터 다시 사건을 조사하는 게 법을 모르는 사람이 봐도 상식적인 절차일 텐데도 결국 미스미의 살인 사건은 자백을 부인했음에도 공판이 그대로 진행되어 그에게 사형을 선고하면서 어떠한 공방도 없이 심판이 내려진다. 판사와 검사 그리고 변호사가 모여서 소송경제를 운운하며 몇 번의 눈짓을 주고받고서 내린 결론이란, 바로 한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 '사형'이었다.


영화는 끝까지 이 살인사건의 살해 동기와 그리고 진범이 누구인지를 밝히지 않았다. 공장주인을 죽인 진짜 살인범이 누구인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미스미를 '죽이려는' 범인은 누구인지 알 수 있다. 사건의 실체를 제대로 파악해야 할 검사도, 의뢰인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해야 하는 변호사도, 한 사람에게 내려지는 심판의 무게를 제대로 느끼고 가늠해야할 판사도 미스미 사건에서는 모두 직무유기였다. 불리는 이름만 다를 뿐 '법조계'란 한 배를 탄 그들에게 한 사람의 목숨은 그렇게 하찮은 거였다. 이 판결대로 미스미에게 사형이 집행된다면 그의 진범 여부와 상관없이 그는 세 번 살해당한 것이다. 검사, 변호사 그리고 판사라는 법조계에 의해!! 

살인자와 같은 범죄자는 태어날 때부터 정해지는 것인지, 변호사란 승소를 위해서라면 의뢰인에 대한 이해와 공감 그리고 믿음같은 건 가질 필요가 없는 건지, 심판도 사람이 하는 이상 오판이란 가능성을 염두에 둔다면 사형제도는 없어져야 하는지, 썩은 물과 다름없는 지금 법조계의 사람들에 의해 사람들의 목숨과 삶이 좌지우지되는 게 과연 옳은 건지...고레에다 감독의 말처럼 이 작품은 많은 이야기거리를 던져 주고 있다.

법정에서 사키에는 시게모리에게 이렇게 말한다. 이 곳에서는 아무도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고...  법정에서조차 진실을 말하지 않고 진실이 통하지 않는 시대에 과연 법을, 법조인을 믿어야 하는 걸까. 사형이 내려질 것을 알면서도 미스미는 왜 처음과는 다르게 살인을 부인한 걸까. 미스미의 진술 번복이 우리에게 던지는 의미를 곰곰 생각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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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현남 오빠에게 - 페미니즘 소설
조남주 외 지음 / 다산책방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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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마 최은영과 김이설의 단편이 주제에 맞게 쓰인 소설같다. 표제작은 읽는 내내 불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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