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아침 패터슨과 아내 로라가 잠들어 있는 침대 장면에서 영화는 시작되고 끝이 난다. 알람도 없이 눈을 뜬 패터슨은 침대옆 탁자에 있는 손목시계의 시간을 확인한다. 6시 10분이던가.. 그는 손목시계를 차고 간단하게 아침을 먹은 후 일터인 버스 차고지로 향한다. 패터슨의 직업은 미국 뉴저지 주의 소도시 '패터슨'의 버스 기사이다. 그는 버스 출발 전 운전석에 앉아 떠오르는 것을 노트에 적으며 하루의 일을 시작한다. 점심시간에는 아내가 싸준 도시락을 먹으며 폭포를 바라보고 앉아 역시나 머릿속을 맴돌고 있는 것들을 노트에 옮긴다. 퇴근 후 아내와의 저녁식사 후 애완견 마빈을 데리고 산책을 가다가 단골가게인 바에 들러 맥주한잔을 하며 가게 주인과 담소를 나눈 후 집에 돌아와 다시 아내와 잠자리에 든다. 이렇듯 패터슨의 하루는 규칙적이다. 일어나서 일터에 나가고 시간 날 때마다 떠오르는 심상을 노트에 적고 퇴근해서 애완견을 산책시키고 단골바에 들러 맥주한잔을 하고 잠자리에 드는 것.  그런가하면 그의 아내 로라의 하루는 어떤가. 남편의 모닝키스를 받으며 좀더 잠을 자다가 일어나 자신의 취향인 흑백으로 집을 꾸미는 것으로 대부분을 시간을 보내다가 남편이 돌아오면 저녁을 함께 먹고 잠자리에 든다. 로라 역시 특별할 것 없는 하루하루를 보낸다.

물론 멀리서 보면 패터슨의 규칙적인 일주일에는 특별한 변화가 없어 보이지만 그 하루하루를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면 늘 작은 변화들이 있기 마련이다. 패터슨이 운전하는 버스의 승객들은 매일 다른 사람들이다. 패터슨이 저녁에 들르는 바에서 마주치는 사람과 상황도 매번 다르다. 매일 먹는 점심(도시락 통에 붙은 아내의 사진도 매일 바뀐다)과 저녁 메뉴가 다르고, 끊임없이 흑백으로 집안을 새롭게 꾸미는 로라 덕분에 집 역시 매일 조금씩 달라져 있다. 어느 날에는 버스가 고장나서 난감한 상황이 생기는가 하면 자신의 비밀노트에 시를 쓰는 소녀를 만나 그녀의 자작시를 듣기도 한다. 아내가 온라인 주문한 할리퀸 기타로 인해 기타를 치며 노래부르는 아내의 모습을 감상하기도 하고, 토요장터에서 아내의 컵케이크가 대박나서 둘이서 외식을 하고 영화를 보는 데이트를 즐기기도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패터슨이 노트에 적고 있는 시가 매일 조금씩 달라진다.

주말 저녁 패터슨과 로라가 외출을 하고 돌아와보니 늘 지하에 두던 걸 실수로 소파에 두고 갔던 노트가 갈기갈기 찢어져있다. 범인은 마빈. 혼자 보기 아까우니 늘 복사본을 만들어 놓으라고 말하던 로라의 말을 실행에 옮기기 전에 이미 노트는 복구 불가능한 상태가 되고 말았다. 이 상황에 대해 화를 내거나 속상해 하거나 하는 패터슨의 큰 감정변화를 읽을 수는 없지만 그를 위로하는 로라의 태도를 보면 패터슨이 얼마나 상심했는지를 알 수 있다. 다음날 패터슨은 혼자 '패터슨'을 산책하다가 우연히 일본 시인을 만난다. 일본 시인은 패터슨에게 당신은 시인입니까? 라고 묻지만 페터슨은 아니라고 자신은 버스 기사라고 답한다. 일본 시인은 자신이 좋아하는 윌리엄 카를로스 윌리엄스 시인이 나고 자라고 평생을 산 패터슨이란 곳이 궁금해서 이곳에 왔다고 말하며 패터슨에게 빈 노트를 한 권 선물한다. 그리고 하는 말. "때론 텅 빈 페이지가 가장 많은 가능성을 선사하죠."


다시 월요일을 시작한 패터슨은 평소처럼 빈 노트에 시를 적으며 하루의 일과를 시작할 것이다. 그렇게 시로 가득해진 비밀 노트는 복사본을 만들어 둘 테고 언젠가는 시집을 출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패터슨'시의 버스 기사일 테고 로라와 살며 어쩌면 쌍둥이를 낳아 기르는 아빠가 되어 있을 수도 있다. 삶의 큰 틀은 쉽게 바뀌지 않을 테지만 매일매일은 조금씩 다른 모습으로 늘 새로울 것이다. 찰리 채플린은 '삶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다'라고 했다. 영화 <패터슨>을 보고나니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삶은 멀리서 보면 지루하지만 가까이서 보면 늘 새롭다.' 라고...


영화는 평범하고 지루하다 느껴지는 일상을 새롭고 아름답게 만드는 비법을 알려준다. 패터슨이 시를 쓰며 자신을 둘러싼 일상을 새롭게 발견하듯, 로라가 자신의 취향을 매번 새로운 발상과 방법으로 일상에 접목하듯, 매순간을 의식하며 살 것! 내가 이 영화에서 얻는 비법은 바로 이것이다.  의식하는 방법은 저마다 다를 것이다. 시를 쓸 수도 있고 그림을 그리거나 사진을 찍을 수도 있다. 무언가를 만들 수도 있으며 악기로 연주할 수도 있다. 그 방법이 무엇이든 순간순간을 의식하게 된다면 그리고 그것을 표현하는 자신만의 방법을 찾아낸다면 삶은 더이상 지루한 전쟁터가 아니라 즐거운 놀이터일 것이다.


4년을 함께 산 동생이 이번주에 다시 고향인 삼척으로 가게 되었다. 패터슨 시보다도 더 작고 조용한 소도시인 삼척에서의 지루한 일상이 싫어서 끝끝내 가기를 꺼려했던 동생이었건만... 척박하고 냉정한 서울 생활에 학을 떼고 선택한 고향에서의 제2의 삶.. 과연 동생은 그 삶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동생에게 이 영화를 한번 보라고 말하고 싶지만 아직은 그에게 이 영화가 와닿기에는 조금 무리일 듯싶다.  부디 동생이 되도록 빨리 자신이 있는 그 곳에서 삶을 즐길 수 있기를 바랄뿐이다.

영화의 감독인 짐 자무쉬는 '이 영화의 영감을 얻는 것이 25년 전 도시 '패터슨'을 여행하면서 였다 '라고 말한다. 그리고 영화에서도 등장하는 시인 윌리엄 카를로스 윌리엄스에 대해  책 <가지 않은 길 - 미국 대표 시선>(창비, 2014)에서는 '일상 언어와 대중문화, 평범한 미국인의 삶을 중시 했으며, 말기작 '패터슨'은 미국 소도시와 보통 사람들을 다루고 있는 대표적인 미국적 서사시이다.' 라고 설명하고 있다.  영화에서 패터슨은 '시를 번역하는 것은 우비를 입고 샤워를 하는 것과 같다.' 라고 말하지만 어쩌랴. 영시를 원문 그대로 즐길 수 없는 나로서는 이 영화때문에 알게 된 시인 윌리엄 카를로스 윌리엄스의  번역된 시라도 읽을 수 있어서 다행이다 싶은 것을... <가지 않은 길>에 실린 시 중에서 한 편을 옮겨적는다.

<봄과 모든 것>

 

- 윌리엄 카롤스 윌리엄스

 

전염병동으로 가는 길가

북동쪽에서 밀려온 파랗고

얼룩덜룩한 구름의 일렁임

아래 - 차가운 바람. 그 너머

서 있거나 쓰러진 마른 잡초로 누르스름한

넓고 황량한 진흙투성이 들판

 

군데군데 물웅덩이

드문드문 키 큰 나무

 

길을 따라 쭈욱 불그스름한

자줏빛, 갈라지고, 꼿꼿한,

잔가지 뒤엉킨 덤불과 조막만한 나무들

그 밑에 시든 갈색 이파리들

잎이 다 떨어진 덩굴들 -

 

생기 없어 보이지만, 느릿느릿

멍한 봄 다가온다 -

 

모든 것은 새로운 세계로 들어선다

발가벗고, 차갑게, 들어선다는 것 외엔

아무것도 확실치 않은 채. 주위엔 온통

차갑지만 친근한 바람 -

 

오늘은 풀, 내일은

빳빳이 곱은 야생 당근 이파리

 

하나하나 뚜렷해진다 -

생기 돋는다. 명료함, 이파리의 윤곽

 

이제 삭막하지만 위엄 있는

등장 - 조용히, 깊숙한 변화가

시작되었다. 뿌리내려, 그들은

움켜잡고 깨어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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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는 빠짐없이 봤다. TV용으로 제작된 드라마까지 찾아볼 수 있는 건 모두.. 그러니 당연히 이번 신작도 망설임없이 봤다. 기존에 만들어오던 가족을 테마로 한 영화와는 거리가 있지만 "<세 번째 살인>은 보고 나면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은 작품입니다. 좋은 의미로 관객에게 멋진 배신감을 주고 싶었습니다."라는 고레에다 감독의 말처럼 적어도 내게 이 작품은 멋진 배신감을 확실히 심어주었다.


살인범 미스미는 자신이 일하던 공장 주인을 천변에서 패스너로 쳐서 죽이고 불을 질러 사체를 훼손하여 강도살인죄로 기소된 상태다. 그는 이미 경찰과 검찰에서 자신의 죄를 모두 자백한 상태에서 변호사 시게모리를 만나게 된다. 시게모리는 미스미가 자백은 했지만 어떻게든 자신의 의뢰인에게 유리하게 공판을 이끌어가보려 한다. 하지만 시게모리가 미스미를 접견할 때마다 그의 진술은 번복이 되고 그리고 피해자의 가족인 부인과 딸마저 뭔가를 숨기는 것만 같다.


미스미는 처음 그러니까 경찰과 검찰 수사에서는 자신의 살인을 인정한다며 자백했다. 왜냐하면 자백을 하면 사형만은 면하게 해주겠다고 피의자를 설득했기에..그리고 처음 만난 변호사와 접견을 했을 때조차도 같은 이유로 자신의 범행을 자백했다. 하지만 시게모리 변호사와 접견이 거듭되면서 그의 진술은 조금씩 번복이 되더니  결국은 자신은 살인을 저지르지 않았다고 주장을 한다. 그리고 피해자의 딸인 사키에 역시 미스미의 살해 동기는 강도살인이 아닌 전혀 다른 이유라고 진술을 하고 있다. 이로써 범인의 자백에 의해 단순하게 결론이 날 것같았던 살인 사건은 복잡해졌다.


자백이 범행의 유일한 증거이던 사건에서 범인이 자백한 것을 철회하고 살인을 부인한다면 처음부터 다시 사건을 조사하는 게 법을 모르는 사람이 봐도 상식적인 절차일 텐데도 결국 미스미의 살인 사건은 자백을 부인했음에도 공판이 그대로 진행되어 그에게 사형을 선고하면서 어떠한 공방도 없이 심판이 내려진다. 판사와 검사 그리고 변호사가 모여서 소송경제를 운운하며 몇 번의 눈짓을 주고받고서 내린 결론이란, 바로 한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 '사형'이었다.


영화는 끝까지 이 살인사건의 살해 동기와 그리고 진범이 누구인지를 밝히지 않았다. 공장주인을 죽인 진짜 살인범이 누구인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미스미를 '죽이려는' 범인은 누구인지 알 수 있다. 사건의 실체를 제대로 파악해야 할 검사도, 의뢰인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해야 하는 변호사도, 한 사람에게 내려지는 심판의 무게를 제대로 느끼고 가늠해야할 판사도 미스미 사건에서는 모두 직무유기였다. 불리는 이름만 다를 뿐 '법조계'란 한 배를 탄 그들에게 한 사람의 목숨은 그렇게 하찮은 거였다. 이 판결대로 미스미에게 사형이 집행된다면 그의 진범 여부와 상관없이 그는 세 번 살해당한 것이다. 검사, 변호사 그리고 판사라는 법조계에 의해!! 

살인자와 같은 범죄자는 태어날 때부터 정해지는 것인지, 변호사란 승소를 위해서라면 의뢰인에 대한 이해와 공감 그리고 믿음같은 건 가질 필요가 없는 건지, 심판도 사람이 하는 이상 오판이란 가능성을 염두에 둔다면 사형제도는 없어져야 하는지, 썩은 물과 다름없는 지금 법조계의 사람들에 의해 사람들의 목숨과 삶이 좌지우지되는 게 과연 옳은 건지...고레에다 감독의 말처럼 이 작품은 많은 이야기거리를 던져 주고 있다.

법정에서 사키에는 시게모리에게 이렇게 말한다. 이 곳에서는 아무도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고...  법정에서조차 진실을 말하지 않고 진실이 통하지 않는 시대에 과연 법을, 법조인을 믿어야 하는 걸까. 사형이 내려질 것을 알면서도 미스미는 왜 처음과는 다르게 살인을 부인한 걸까. 미스미의 진술 번복이 우리에게 던지는 의미를 곰곰 생각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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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현남 오빠에게 - 페미니즘 소설
조남주 외 지음 / 다산책방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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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마 최은영과 김이설의 단편이 주제에 맞게 쓰인 소설같다. 표제작은 읽는 내내 불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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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컴 나래바! - 놀아라, 내일이 없는 것처럼
박나래 지음 / 싱긋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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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어른>에 나온 박나래의 이야기를 들었다. 나도 모르게 눈물도 찔끔흘리며 그녀의 이야기에 빠졌었다. 삶을 이렇게 사랑하고 즐길 줄 아는 박나래, 그녀는 과연 어떤 사람일까. 희극인인 그녀도 일상인인 그녀도 궁금해지던 차에 이 책을 만났다. 게다가 내가 좋아하는 술 이야기까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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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12-21 12: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방송에서 나래바를 보면서 부러웠어요. 친한 사람들이 모여서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는 건 정말 행복한 일이에요. ^^

설해목 2017-12-21 13:14   좋아요 1 | URL
맞아요. 친한 사람들과 모일 수 있는 장소와 시간이 있다는 건 정말 큰 행복같아요. 연말이에요. cyrus님도 좋은 분들과 따뜻하고 즐거운 시간 보내셔요. ^^
 
시월의 말 1~3 세트 - 전3권 - 6부 마스터스 오브 로마 6
콜린 매컬로 지음, 강선재 외 옮김 / 교유서가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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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로써 <마스터스 오브 로마>7부까지 완결이 코앞이다. 차례차례 시리즈의 책들을 한자리에 꽂을 때마다 얼마나 뿌듯했던가. 빨리 예약구매한 이 시리즈도 도착하기를... 내 자신에게 주는 최고의 연말선물이 될 듯.. 그리고 내년 초에 마지막 시리즈가 나온다면 더 바랄게 없겠다. 굿즈도 느므 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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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nsun09 2017-12-05 20: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시리즈 완독을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