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고통 - 노동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어느 과학자의 분투기
캐런 메싱 지음, 김인아 외 옮김 / 동녘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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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공학자가 된다는 것은 노동자들이 있는 곳에서 수없이 많은 시간을 보내며 노동자의 눈으로 작업현장을 바라본다는 것을 뜻한다. 또한 인간공학자가 된다는 것은 노동자들의 행동 관찰 결과를 경영자들과 논의하기 위해 작업현장과 사무실 사이를 종횡무진 누빈다는 것을 뜻한다. 공감 격차를 관찰하기 위한 최적의 직업이라고 할 수 있다. _ p.109

 

이 책을 읽고서야 인간공학자라는 직업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우리나라에도 과연 이런 직업이 존재할까 싶어 네이버에 검색해보니 인간공학기사라는 자격증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관련 검색은 대부분 이 국가자격증을 따는 데 필요한 조건들에 대한 시험 정보였다.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 건 인간공학이란 직업은 전문적인 지식뿐만 아니라 노동자를 대하는 그들의 마음가짐과 태도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거였는데, 그런 걸 언급하는 글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인간공학기사 자격증을 취득한 그들은 과연 누구를 위해 일을 할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의 저자 캐런 메싱은 인간공학자이다. 비교적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나 자란 그녀였음에도 여성이 과학도가 되는 것이 어려운 시절에 많은 차별과 은근한 멸시를 몸소 겪으면서도 결국 과학자가 되었다. 그녀는 페미니즘이 과학과 나의 이력 사이를 연결하는 역할을 했다고 말한다. 교수도 동료도 대부분이 남자들인 분야에서 당당히 과학자가 된 그녀는 교수로 재직하던 시절 한 제련 공장에서 방사선이 방출되는 문제로 인해 노동자들과 직접 대면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후 노동자의 근무 환경을 면밀히 관찰하고 조사하여 노동자의 질병과 위험 예방을 위해 일하는 인간공학자로 살아 왔다. 이 책은 그녀가 노동자들과 직접 대면하고 그들의 일을 관찰하면서 얻은 결과물이자 무엇보다 노동자를 대하는 과학자의 태도가 과연 어떠해야 하는지를 묻게 되는 묵직함이 담긴 회고록이다.

 

캐런 메싱이 주로 관찰했던 대상은 병원이나 역사에서 청소를 하는 노동자, 오랜 시간 서 있어야 하는 은행이나 마트에서 일하는 노동자, 정해진 시간 안에 라인에서 자신이 맡은 작업을 차질 없이 완수해야 하는 제조업 노동자, 수시로 교대 근무를 해야 하는 콜센터 노동자 등 남성보다는 여성, 오랜 시간 일정한 자세로 단순 반복적인 일을 하고 무거운 물건을 수시로 옮기는 등의 버거운 육체노동을 하며 수시로 바뀌는 교대근무로 인해 생체리듬이 흩어지는 등 노동으로 인해 위험과 질병에 노출되어 있으면서도 그에 비해 저임금을 받는 비교적 하층 계급에 속하는 노동자들이었다.

 

사실 노동자들이 그런 작업환경에서 장시간 일할 경우 몸에 어떤 무리가 갈지는 조금의 관심만 있어도 누구나 알 수 있다. 그리고 실제로 노동자들은 일로 인해 육체적 고통을 호소하고 질병으로 인해 치료를 받거나 혹은 퇴사를 하고 최악의 경우 목숨을 잃는 경우도 있다. 인간공학자가 하는 일은 이런 노동현장을 관찰하고 조사하여 현 작업환경의 문제점을 발견하고 그에 대한 해결책을 제안하여 앞으로 더는 노동자들이 육체적인 고통이나 질병을 겪지 않도록 예방을 하는 것이지만, 인간공학자의 제안이 실제적으로 작업환경의 변화에까지 이르는 경우는 거의 드물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 원인으로 저자는 공감 격차를 이야기하고 있다. 저자는 인간공학이 공감 격차의 양쪽을 잇는 가교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그 공판 이후 32년간 나는 학자나 사회적 지위가 상대적으로 높은 사람들과 사회적 지위가 낮은 노동자들이 분리되는 것을 보았다. 노동자들에겐 자신의 경험을 공론화할 방법이 없었다. 이런 경험의 차이를 나는 공감 격차라고 부른다. 공감 격차는 노동·과학·사회의 모든 면에서 막대한 비용을 발생시킨다. 산재보상 여부를 결정하는 판사들이 조립 라인의 노동조건을 상상하지 못하면, 그들은 작업관련성 질환에 대한 보상 요청을 기각한다. 노동자들이 아픈 이유를 이해하지 못하는 과학자들은 노동자들의 족부 통증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결과가 도출될 수 있는 얼치기 연구를 설계하게 된다. 병원 청소노동자가 지닌 청소 업무에 대한 막대한 지식과 노력을 사업주가 모른다면 사업주들은 장비나 가구를 구입할 때 청소노동자들의 자문을 구하지 않게 된다. 결국 이는 비효율을 발생시키고 병원에서 질병을 유발할 수도 있다. _p.40

 

이 책의 주제를 한마디로 요약해본다면 바로 노동자에 대한 공감 격차를 줄이자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다. 서로 다른 직업과 위치, 입장을 가진 사람들이 공통된 문제인 노동자들의 작업환경과 질병에 대해서 이해관계를 달리하게 되는 주된 이유를 저자는 공감 격차때문이라고 말한다. 아무리 인간공학자가 노동자들의 작업환경 개선을 위해 노력하여 결과물과 해결책을 내놓아도 이를 실질적으로 반영해야할지 말아야 할지를 결정하는 사업주나 판사와 같은 높으신 양반들이 제대로 노동자들의 고통과 문제에 공감하지 못하면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이다. 노동 환경에 대해 결정권을 가진 사람들의 공감 능력 부재야말로 노동 문제 개선에 있어 가장 큰 걸림돌임을 저자는 책에서 여러 번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노동자에 대한 공감능력 부족은 인간공학자를 포함한 과학자들에게 던져진 화두이기도 하다. 과학자나 의학자는 직접 노동자를 만나서 문제점을 파악하려하기 보다는 자신이 직접 겪은 경험과 학술지에 나타난 수치를 더 신용하는 경향이 있다. 특히나 사업주의 의뢰를 받은 인간공학자의 경우 종종 노동자의 실제 상황을 사업주에게 유리하게 해석하는 경우도 있고 노동문제를 재판하는 판사들 역시 과학자들에게 사업주 쪽이냐 노동자 쪽이냐 하는 명확한 의견을 말하기를 요구한다. 100% 확실한 것이 아닌 불확실성을 전제로 탐구하는 과학이란 분야에서 일하는 과학자들은 이렇듯 명확한 입장을 강요받는 민감한 문제에 관련되는 것 자체를 꺼리게 된다고 저자는 말한다.

 

책을 읽다보면 도대체 그럼 누가 노동자들을 위해줄 수 있는 걸까 싶은 마음에 한숨이 절로 나올 지경이다. 저자와 같이 노동자들을 위해 열심히 연구하는 과학자들도 물론 있지만 결국 그들의 성과도 노동 환경 개선이라는 직접적인 것으로 이어지지 못하면 노동자는 그저 살아 있는 노동 기계 다름 아닌 것이다. 노동의 대가로 질병을 감수하고 목숨까지 받쳐야하는데도 어쩔 수 없이 일해야 하는 노동자들을 위해 미리 그런 위험을 예방하자는 것이, 그들의 질병에 대한 산재를 인정하자는 것이 그렇게나 힘든 일이어야 하는 걸까. 새삼 공감이라는 말의 무게가 달리 느껴진다.

 

며칠 전에 법원에서 삼성전기에서 일한 근로자의 백혈병에 대하여 산재를 인정하였다는 기사를 보았다. 반도체 분야에 이어 전자전기산업 분야에서 산재를 인정한 첫 케이스라고 한다. 사업주가 위험 물질에 노출될 위험성을 파악하고 노동자의 안전을 위해 안전 장비 및 시설에 조금만 더 투자했더라면 노동자가 백혈병에 걸리는 것을 막을 수 있었을 거라고 생각하면 도대체 사업주에겐 노동자란 어떤 의미일까, 새삼 그런 생각에 한없이 마음이 가라앉는다. 사업주나 노동자나 결국은 모두 생명은 하나뿐인 존재들인데, 왜 한쪽은 죽어나가고 한쪽만 배가 불러야 하는 건가... 대형 항공사에서 스튜어디스로 근무하던 승무원이 우주방사선 피폭으로 급성백혈병을 걸려 산재를 신청해놓았다는 기사도 두 달 전쯤 봤었다. 그리고 제부는 동생과 관련해 현재 공무원연금공단에 공무상 재해 신청을 해놓은 상태다. 열심히 일한 대가가 질병이나 죽음이어야 하는 노동자들에게 공감할 수 있는 저자와 같은 과학자들이 더 많아지기를, 수많은 노동자들에게 공감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기를. 그리하여 노동은 신성하다는 것을 노동자들이 스스로 느끼며 뿌듯하게 일할 수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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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27 09:2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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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27 09:2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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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는 나에게 삶에서 자신이 해야 할 바를 성취하는 인간의 능력에는 한계가 없다는 사실 나이의 한계는 물론이고 을 가르쳐주었다. 이 넓고 복잡한 세상에서 우리 한 사람한 사람의 내부에는 놀랍고도 위대한 잠재력이 자리잡고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결정적인 기회가 오지 않는 한 그 숨겨진 재능이 발휘되는 일은 거의 없다. _ <두 늙은 여자> 서문 중에서

 

나이란 것은 너무나 눈에 띄는 표지여서, 우리는 인생의 후반에 우리 몸과 정신에 일어나는 모든 일을 노화의 결과로 받아들인다. 그래서 노인들이 아주 조금이라도 별난 행동을 하면 그것에 기행 또는 노망이라는 꼬리표를 붙인다. 그들이 평생 동안 그런 행동을 해왔을지라도 말이다. 그렇게 정신을 구속하는 마인드세트를 가지고 있으면 꼭 끼는 갑옷을 입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성장과 유연성, 모험이 불가능하다. 게다가 삶의 질뿐만 아니라 그 길이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 _ <마음챙김> p.130

    

 

최근에 그 제목만으로도 나의 호기심을 자극하던 책 <두 늙은 여자>를 읽었다. 이 책을 먼저 읽은 50대 지인이 강추하기도 했고 젊은보다는 늙은이란 말에 더 민감한 내 나이도 이 책을 선택하는데 한몫 했다. 책은 비교적 얇은 편이라 펼친 그 자리에서 단숨에 다 읽어버렸다. 그리고 이 책을 읽는 동안 얼마 전에 읽은 책인 <마음챙김>이란 책이 자동반사적으로 떠올랐다. 두 책을 엮어보자면, <마음챙김>에서 말하는 이론을 고스란히 경험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 바로 <두 늙은 여자>라 하겠다. 노년과 노인, 나이듦에 대한 강력한 마인드세트로 인해 어쩔 수 없는 두려움을 꼬리표처럼 달고 있던 내게 두 책은 마음의 변화를 일으키는 계기가 되어주었다. 그래서 이렇게 내가 느낀 것을 잊지 않기 위해서라도 간단하게 글로 남겨놓으려고 몇 자 적어본다.

 

<두 늙은 여자>는 제목 그대로 두 늙은 여자의 특별한 생존에 대한 이야기이다. 알래스카 극지방의 유목민인 두 여자는 맹추위가 닥친 어느 해 식량부족으로 인해 이동을 하던 부족의 무리로부터 버림을 받는다. 단지 두 늙은 여자가 부족의 이동 속도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두 늙은 여자 칙디야크와 사는 버림받았을 당시 80세와 75세로, 추운 겨울 부족에게 버림을 받았다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두 사람은 젊은 시절 자신들의 경험과 신체적 장애까지도 극복할 강인한 정신력을 통해 살아남았고 자신들을 버린 부족민들을 도와줄 수 있었다. 그리고 죽는 날까지 부족민들로부터 사랑과 배려를 받았다. 생각건대, 두 사람이 버림받는 일 없이 계속해서 무리 속에 있었다면 그들의 최후는 이야기와는 전혀 달랐을지도 모른다.

 

# 마인드세트를 부술 기회를 갖는다는 것.

 

결과적으로 부족으로부터 버림을 받음으로써 칙디야크와 사는 죽는 날까지 행복할 수 있었다. 그녀들이 버림받는 일 없이 부족에 남아있었더라면 부족민들에게 멸시를 당하다가 비참한 최후를 맞거나 적어도 행복한 죽음을 맞지는 못했을 것이다. 두 사람에게는 죽음의 선고와도 같던 내쳐짐을 다시 한번 스스로를 구해낼 절대절명의 기회로 만들었던 건, 결국 두 사람에게 오랫동안 고정되어 있던 마인드세트를 부수는 것으로 가능했다.

 

노인들이 겪는 문제의 많은 부분이 아동기에 내면화된 부정적 고정관념의 결과일 가능성이 있다. 우리는 노화로 인한 쇠퇴중 실제로 유전자에 의해 계획된 것이 얼마나 되는지, 선입견에 기인하는 것이 얼마나 되는지 알지 못한다. 또 평온한 것이든 신나는 것이든 간에 우리가 그 가능성에 마음을 연다면 인생의 후반기에 얼마나 많은 선택이 가능할 것인지도 알지 못한다. _ <마음챙김> p.142

 

긴 세월 동안 우리는 많은 것들을 배웠어. 하지만 노년에 들어서자 우리는 삶에서 우리의 몫을 다했다고 생각했지. 그래서 더 이상 전처럼 일하기를 그만두었어. 우리의 몸은 우리의 예상보다 좀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아직 건강한데도 말이야.” _ <두 늙은 여자> p.44

 

우리는 그들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할 거야! 우리 부족에게, 그리고 죽음에게 그들이 틀렸다는 것을 말이야!” _ <두 늙은 여자> p.44-45

 

죽음이라는 절망을 삶이라는 희망으로 바꾸는 것은 결국 자신밖에는 할 수 없다는 걸 두 여인은 보여주고 있다. 노인은, 늙는다는 건 이런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갖고 있던 두 여자에게 찾아든 버려짐이라는 절망은, 그녀들 스스로를 되돌아보게 하였고 그리고 자신들이 아직까지 일할 수 있을 정도로 건강하다는 것을 자각하게 해주었다. 곰곰 생각해보면 자신을 규정 짓는 건 스스로가 아니라 타인이나 이미 제도화된 시스템, 오래된 관습일 경우가 대부분이다. 오래된 관습과 고정관념으로 인해 스스로를 규정 짓다보니 우리는 우리 안에 어떤 잠재력이 숨어 있는지 찾아볼 기회조차 갖지 않는다. 그리고 스스로를 들여다볼 기회가 왔을 때조차도 자신을 믿기보다는 외부의 잣대로 미리 단정 짓기 일쑤다. 그럼으로써 배울 기회도 성장할 기회도 심지어는 살 기회조차 놓치고 그저 대부분의 남들처럼 살아가는 게 정답이라고 여긴다. ‘내 인생은 나의 것이란 노랫말처럼, ‘사람은 스스로 믿는 대로 된다.’는 체호프의 말처럼, 나를 믿어야 그게 진정한 내 인생이 된다는 걸 보여준다. 두 늙은 여자는...

 

# 우리는 모두 늙는다.

 

두 늙은 여자는 애써 충격을 감추며 모닥불 앞에서 꿋꿋한 자세로 턱을 치켜들고 앉아있었지만, 그들의 모습은 늙고 작아 보였다. 그들은 젊은 시절 아주 늙은 사람들이 뒤에 남겨지는 모습을 본 적이 있었지만, 자신들에게 이런 운명이 닥칠거라고는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_ <두 늙은 여자> p.20

 

우리는 젊을 때 노인에 관한 질문을 받으면 자신은 영원히 늙지 않는다는 전제 아래 그 질문에 대답한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전반적인 능력 저하와 노령 간의 상관관계에 대한 마인드세트를 형성한다. 언젠가 자신이 노인이 되었음을 깨닫는 순간부터 이런 상관관계가 위협적으로 다가오고 두려워지기 시작한다. 노인이 그런 두려움을 가지고 있으면 매사에 소극적이 되고 뭔가에 새로 도전해 볼 의욕도 움츠려들기 쉽다. _ <마음챙김> p.145

 

칙디야크와 사 역시 젊은 시절에는 자신들이 늙어서 버림받을 거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하지만 노인이 된 그녀들은 결국 부족에서 내쳐졌고 그 충격은 꽤 오래 그녀들을 괴롭혔다. 부족민들이 자신들도 결국은 늙는다는 것을 자각하고 있었더라면 두 여인에 대한 처사를 달리 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지하철이나 버스 노약석에 앉은 어르신들을 보면 이런 생각이 들곤 한다. ‘저 나이를 드시기까지 어떠한 어려움들을 겪으셨을까. 나는 지금까지 살아오는 것도 이렇게 힘들었는데 저분들처럼 끝까지 잘 살아낼 수 있을까.’ 뭐 이런 마음이 드는 거다. 나 역시 늙는다는 것을 자각하며 산다는 건, 좀더 많은 사람들을 이해하고 배려할 여지가 커진다는 것일지도.

 

# 한계 짓지 말기!

 

 우리가 한 걸음 한 걸음 걸을 때마다 우리가 가려는 곳에 가까워지는 거야. 오늘 나는 몸이 좋지 않지만, 내 마음은 몸을 이길 힘을 갖고 있어. 내 마음은 우리가 여기서 쉬는 대신 앞으로 나아가기를 원해. 그게 내가 하고 싶은 일이야.” _ <두 늙은 여자> p.69

 

우리는 노년기의 발달은 거기까지, 하는 식으로 자의적인 한계선을 긋지만 그 대부분은 과학적 근거가 전혀 없다. 우리의 노년기는 삶은 다름 아닌 우리 자신이 가진 노년상과 그에 포함된 수백 가지의 작은 선입견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_ <마음챙김> p.150

 

두 책을 통해 내가 확실히 배운 점이 있다면 그건 바로 스스로를 한계 짓는 것이 얼마나 멍청한 짓인가 하는 것이다. 한계를 짓는 순간 신체는 물론 지적 능력 등 내면의 힘까지 그 한계에 갇힐 수밖에 없다는 걸 두 책을 통해 확실히 깨달았다. 타인이나 사회, 제도가 만들어진 한계에도 맞서 싸워야 하겠지만 무엇보다 스스로가 만든 한계에 자신을 가두지 말아야 한다는 걸, 그것이 새로운 나와 만나는 지름길이라는 걸 이번에 확실히 마음에 새겨두었다. 물론 실천의 문제가 남아있지만 결국 내 마음을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건 나뿐이라는 걸 잊지 말자!

 

# 세월이 주는 경험과 지혜

 

부족과 두 여인 간의 관계는 점점 더 좋아졌다. 양쪽 모두 고난을 통해 교훈을 얻었고, 그때까지 알지 못했던 사실을 깨달았다. 부족은 자신들이 강하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그들은 나약했다. 그리고 무리 가운데 가장 대책 없고 쓸모없다고 여겨졌던 두 늙은 여인이 실제로는 강한 존재라는 사실이 증명된 것이다. 이제 그들 간에는 암묵적인 이해가 자리잡았다. 부족은 그들이 충고를 구하고 새로운 것들을 배우기 위해 두 여인과의 교류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두 여인이 그렇게 오래 살아온 덕택에 자신들이 예상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지식을 갖고 있다는 것을 이제 그들은 알았다. _ <두 늙은 여자> p.153

 

모두 그들의 의견을 높이 산다. 그들 중 특히 똑똑하고 공정한 이는 크나큰 영향력을 행사한다. 몇몇 나이 든 미망인들은 가장 역할을 하는데, 가족들은 그 가장에게 철저히 순종한다. 노인들의 경험은 그 집단에 도움이 된다. 그들은 어떻게 먹을 것을 찾고 집안일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안다. 성문화되어 있지 않은 그들의 법을 다음 세대에 전수하고 그 법을 존중하게 만드는 것도 바로 그들이다. 그들은 사람들에게 모범을 보이고, 필요한 경우에는 나쁜 짓을 하는 사람을 나무라거나 심지어 벌을 주기도 한다. _ S. de Beauvoir, Old Age (London: Andre Deutsch Ltd., 1972) <마음챙김> p.140에서 재인용 (사라진 야드한 부족에서 노인들은 어떤 존재인지를 보여주는 글)

 

고향집에 며칠 머물면서 부모님께 이런 저런 이야기를 들었다. 배움도 짧고 삼척 이외에는 어디를 가보신 적도 거의 없지만 그 분들이 하시는 이야기에는 내가 미처 알지 못했던 지식과 지혜가 넘쳐났다. 대부분은 무언가를 키워내고 또 그것을 음식으로 활용하는 법 등 의식주와 관계된 것들이었다. 도시에서야 돈만 있으면 의식주는 저절로 해결이 가능하지만 만약 전쟁이나 자연재해로 인해 돈으로도 해결이 되지 않은 상황을 만나게 된다면 결국 끝까지 살아남는 건 의식주에 대한 지식이 풍부한 사람들일 것이다. 그리고 그런 지식과 지혜를 갖고 계신 분들은 대부분 의식주를 직접 해결하며 살아온 나이 많은 분들일 테고... 칙디야크와 사 역시 살아온 세월에서 얻은 산 지식과 경험으로 자신들은 물론 무너져가는 부족을 구해냈다. 허투루 나이 들지 않는다는 아버지의 말씀이 새삼 달리 가슴에 와 닿는다.

 

# 혼자가 아닌 둘 나아가...

 

자신이 포기한다면, 친구 역시 포기하리라는 것을 알 만큼은 오래 살았던 것이다. _ <두 늙은 여자> p.59

 

몸이 음식을 필요로 한다면, 마음은 친구를 필요로 하지. _ <두 늙은 여자> p.84

 

그들이 상대의 힘겨운 과거에 대해 알게 되자 서로에 대한 존중의 마음이 커져갔다. _ <두 늙은 여자> p.87

 

저들이 고통받고 있다는 걸 잊어선 안 돼. 맞아, 저들은 성급하게 우리를 죽음으로 내몰았지. 하지만 이제 우리는 저들이 틀렸다는 걸 증명했어. 만약 저들이 같은 잘못을 저지른다해도 이제는 우리 둘 다 우리가 살아남을 수 있다는 걸 알아.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많은 것을 증명했어. 이제 우리는 자존심은 잠시 내려놓고 저들이 고통받고 있다는 사실을 잘 생각해야 해. 성인들을 위해서 그러고 싶지 않다면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말이야. 당신 사랑하는 손자를 잊을 수 있어?” _ <두 늙은 여자> p.141-142

 

 

혼자가 아닌 둘이였기에 살아남을 수 있었던 칙디야크와 사. 이 두 사람의 이야기는 우정을 뛰어넘어 결국은 공동체로 살아간다는 의미를 되새김질해보게 된다. 두 사람은 살아남아서 생각할 여유를 갖게 되자 부족에게 버림받은 쓰라림으로 괴로워한다. 그리고 부족과 다시 만나게 되었을 때 처음에는 분노와 불신으로 인해 그들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지만 결국은 서로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함께 지내게 된다. 두 사람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건, 두 사람의 강한의지도 있었지만 그들을 위해 칙디야크의 딸과 손주가 남기고 간 요긴한 물건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결국 두 사람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 역시 다른 사람들의 배려와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혼자가 아닌 둘 나아가 공동체를 이룬 사람들이 서로를 배려하고 존중할 때 제대로 살아갈 수 있다는 걸 두 늙은 여자의 이야기로 새삼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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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8-08-08 22: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수년 전에 사서 읽지 못하고 있는 디 브라운
의 <나를 운디드니에 묻어주오>

그리고 사서 읽다만 장 아메리의 <늙어감
에 대하여>가 떠오르네요.

야생에서의 생존이라면, 노인장들의 지혜
를 따라갈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도시인
들은.

설해목 2018-08-09 08:59   좋아요 0 | URL
제 관심이 그래서인가 요근래 노년이나 나이듦에 대한 책들이 자주 눈에 띄더라구요.
저 두책도 찾아봐야겠습니다. ^^

AgalmA 2018-08-11 10: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버지에게 강간 당한 강력한 트라우마를 가지고 패트릭 멜로즈 시리즈를 쓴 에드워드 세인트 오빈은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트라우마는 분열을 초래하며, 기억을 억압하지는 않는다고˝ 하더군요. 기억하고 못 하고의 문제가 아니라, 표현을 제대로 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라는 거죠. 그래서 오빈은 글로 풀어낸 걸 테고요.
쓰신 리뷰의 초점처럼 어릴 적 트라우마나 주변의 제약과 한계를 내면화하지 않고 오픈해서 풀어나가는 게 지혜로운 삶의 자세라고 생각합니다.

설해목 2018-08-11 22:19   좋아요 0 | URL
맞아요. 경험한 것을 어떻게든 밖으로 표출하는 것! 그게 자신을 지키는 하나의 방법이란 생각을 해보게 되더라구요.
 
윌리엄 트레버 - 그 시절의 연인들 외 22편 현대문학 세계문학 단편선 15
윌리엄 트레버 지음, 이선혜 옮김 / 현대문학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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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버의 글은 정신없이 글 속으로 빠져들어 읽고 나서 마지막 문장을 읽고 나면, 자동적으로 다시 그 작품을 떠올리게 된다. 잔잔한 재미 속에 깃든 깊은 통찰이 돋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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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래너리 오코너 - 오르는 것은 모두 한데 모인다 외 30편 현대문학 세계문학 단편선 12
플래너리 오코너 지음, 고정아 옮김 / 현대문학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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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만의 분위기를 풍기는 글을 쓸 수 있다는 건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두번째 읽고 있는데 읽을수록 오코너란 독특한 세계에 더 다가가고 있음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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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호실로 가다 - 도리스 레싱 단편선
도리스 레싱 지음, 김승욱 옮김 / 문예출판사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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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독이라는 자유

 

도리스 레싱의 단편집 19호실로 가다중 특히나 인상적으로 읽었던 <19호실로 가다>를 읽고 나서 자연스레 떠오른 책이 바로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과 앨리스 먼로의 단편 <작업실>이었다. <작업실>은 글을 쓰고 싶어 하는 주부가 가족들에게 작업실을 갖겠다고 하면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좋은 집을 두고 굳이 작업실을 얻으려는 주인공의 의사를 가족들은 흔쾌히 받아들이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여자는 자기만의 작업실을 얻는데 성공한다. 하지만 그곳에서도 그녀는 다른 사람의 방해를 받게 된다. 결국 그녀는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을 수 있는 자신만의 공간을 갖는 데 실패한다.

 

방문이 닫혀 있고 그 방 안에 엄마가 있다는 걸 아이들이 안다고 생각해 보라. (생각해 보라고 남편에게 말했다.) 왜냐, 아이들은 그런 생각을 하는 자체도 용납하기 어려울 테니까. 여자가 허공을 응시한 채, 남편도 자식도 없는 엉뚱한 곳을 바라보는 건 자연의 섭리를 저버린 짓과 마찬가지라고 여길 테니까. 그러니 여자에게 집이란 남자와 같은 곳이 아니다. 여자는 누구들처럼 집에 들어와서 이용하고 마음대로 다시 나가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여자는 곧 집이다. 떼려야 뗄 수 없다. _ 앨리스 먼로 단편, <작업실>, 행복한 그림자의 춤()

 

<19호실로 가다>는 집으로 대변되는 여자의 삶이 어떻게 시들어가게 되는지를 보여준다. 사랑하는 남자를 만나 자신의 의지로 선택한 결혼이었고 남들이 보기에는 완벽한 가정(좋은 남편, 착한 아이들 그리고 멋진 집과 도우미까지)을 이루며 살고 있지만 수전은 어느 순간부터 자신의 삶에서 피로감을 느낀다. 아이들이 학교에 모두 진학하고 나서 자신만의 시간을 갖게 되었지만 그 시간 역시 자신을 위한 시간이 아니라 온통 집안일과 관련되어 있다. 가족들에게 이야기하여 자기만의 방을 갖게 되었지만 그곳에서도 역시 수전은 자기를 위한 시간이 아닌 가족을 위한 시간을 보내고 결국 그 방은 또다른 가족실이 되고 만다. 그 무엇도 아닌 사랑으로 돌아가고 있다고 믿었던 가정이었건만 남편의 외도 사실을 알게 되면서 수전의 마음은 한층 더 피폐해진다. 수전은 집에서 멀리 떨어진 초라한 호텔에 자신만의 공간을 만든다. 남편에게 매주 돈을 받아 그 돈으로 자신만의 공간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철저히 혼자가 되어 충전의 시간을 갖는다. 하지만 남편은 이런 그녀를 의심해 탐정을 시켜 그녀가 있는 곳을 알아내고 그녀에게 자신이 그 공간을 알고 있다고 말한다. 남편이 19호실의 존재를 알게 된 후부터 그곳은 수전만의 공간이 아니게 되고 결국 수전은 19호실에서 자살하기에 이른다.

 

수전은 하루 동안의 자유를 되돌아보았다. 외로운 미스 타운센드와는 친구가 되었고, 파크스 부인은 불만을 늘어놓았다. 그래도 수전은 정말로 혼자가 되었던 그 짧은 시간 동안의 황홀함을 기억하고 있었다. 수전은 무슨 대가를 치르더라도, 앞으로 그런 고독한 시간을 더 자주 마련하기로 결심했다. 절대적인 고독, 아무도 그녀를 모르고 신경쓰지 않는 고독이 필요했다. _<19호실로 가다> p.306

 

이 방에서 수전이 뭘 했을까?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충분히 쉬고 나면 의자에서 일어나 창가로 가서 양팔을 쭉 뻗고 미소를 지으며 밖을 내다보았다. 익명의 존재가 된 이 순간이 귀중했다. …… 그녀는 존스 부인이고 혼자였다. 그녀에게는 과거도 미래도 없었다. 오랫동안 결혼생활을 하면서 아이들을 키우고, 여러 책임들을 수행하는 내가 지금은 여기에 있어. 그녀는 생각했다. …… 그녀는 창턱에 몸을 기대고 거리를 내려다보며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사랑을 느꼈다. 모르는 사람들이었으니까. _<19호실로 가다> p.318

 

1년 전부터 나는 그 더러운 호텔 방에서 낮 시간을 전부 보냈어. 내가 행복하게 있을 수 있는 곳이야. 사실 그 방이 없으면, 나는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야._<19호실로 가다> p.328

 

침대는 독서, 생각,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있기에 가장 좋은 곳이다. 여기는 내 방이다. 여기서 나는 살아 있는 기분이 든다. 비록 모양은 형편없고, 아무리 봐도 볼품없는 것들이 있는 방이지만. _ <> p.144

 

수전은 집 밖에 자신만의 공간을 만듦으로써 온전히 수전 자신으로 있을 수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일상을 버텨내는 힘을 충전받기에 충분했다. 비록 남편에게 돈을 받아서 그곳을 지켜야 한다는 것에 대해 일종의 굴욕감을 느꼈을지는 모르겠으나 그럼에도 철저히 혼자만의 공간과 시간을 갖게 되어 수전은 익명의 존재로 다시 태어나는 기쁨을 맛보았다. 결국 그 유일한 기쁨마저 남편의 의심으로 인해 빼앗겼을 때 수전은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만약 그녀에게 여유롭게 쓸 수 있는 자신만의 돈이 있었다면 그녀는 또 다른 곳으로 거처를 옮겨 그곳에서 고독을 마음껏 누릴 수 있지 않았을까. 돈과 자기만의 방을 갖는다는 건 결혼을 한 여자에게는 불가능에 가까워보이는 건 비단 나뿐일까.

 

누군가는 그럴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아이들이 학교에 가면서부터는 수전도 자신이 하던 일을 다시 하면서 사회생활을 했다면 이런 결말이지는 않았을까 라고. 직장생활만 하게 된다면야 그럴 수도 있겠지만 아내와 엄마라는 게다가 두 명의 도우미를 고용하고 있는 한 집안의 안주인이라는 자리를 버리지 않는 한 그건 수전에게 이중의 고통으로 다가왔을 확률이 더 높다. 안과 밖에서 더 잘하고 싶어서 자신을 완전히 지워버리는 삶이, 존재하지 않는 사람인양 익명성을 보장받으며 철저히 혼자이고 싶어 한 수전에게는 최악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녀는 자신만의 공간에서 가스를 마시는 방법이 아니라 어쩌면 아주 극단적으로 자신을 내던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 돈과 직업이 주는 자유

 

그 당시의 쓰라림을 기억하건대, 고정된 수입이 사람의 기질을 엄청나게 변화시킨다는 사실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라고요. 이 세상의 어떤 무력도 나에게서 500파운드를 빼앗을 수 없습니다. 음식과 집, 의복은 이제 영원히 나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노력과 노동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증오심과 쓰라림도 끝나게 됩니다. 나는 누구도 미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아무도 나에게 해를 끼칠 수 없으니까요. 또 누구에게도 아부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가 나에게 줄 것이 없기 때문이지요. 이렇게 하여 나는 스스로 인류의 다른 절반에 대해 아주 미세하나마 새로운 태도를 취하게 되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_ 버지니아 울프, 자기만의 방(민음사)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을 읽었을 때, 나는 그녀의 주장에 전적으로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돈과 오롯이 자신만을 위한 방이 문학을 하는 여자(비단 여자에게만 해당하지는 않을 듯 하지만...)에게 어떠한 의미인지 울프는 너무 잘 알고 있었으니까. 숙모가 그녀에게 남겨준 유산이 없었다면 과연 우리는 현존하는 울프의 작품들을 온전히 만날 수 있었을까. 남편 혹은 애인이 벌어다주는 돈이 아니라 오롯이 자기 소유의 돈이 여자의 몸은 물론 마음과 생각까지 자유롭게 한다는 걸 그래서 편협하지 않은, 마음껏 사유를 펼쳐 보이는 글을 쓸 수 있다는 걸 울프는 자신의 문학적인 삶을 통해 증명했다.

 

하지만 중요한 건, 결혼한 상대에게서 돈을 받을 때는, 창녀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지 않는다는 거예요. 나는 남자를 사귈 때마다 나 자신과 논쟁을 벌여야 했어요. 내가 저 남자를 위해 해주는 일에 대해 저 남자가 얼마를 지불하면 될까? 요리와 살림과 실내장식과 조언의 대가가 얼마지? _ <남자와 남자 사이> p.229

 

맞아요. --남차가 나타나쟈마쟈 일을 그만듀면 안 돼요. 젠장, 내가 취했네. 하지만 내 말은 진심이에요……. 그래요, 모린, 첨부터 이 원칙을 셰우지 않으면 난 오까게 쉬작 안 해요. 우리가 반드시, 반듀쉬 그걸 셰워야 돼요. 일이 먼처, 아니면, 아니면, 켤국 우리가 무슌 꼴이 될지 알자나요.” _ <남자와 남자 사이> p.237

 

이봐요, 의사선생, 나처럼 장학금을 받고 대학에 온 사람들이 계층을 뛰어남을 때 고통받는 건 내가 아니라 식구들이에요. 나는 돈 덩어리거든. _ <영국 대 영국> p.171

 

저기서 함께 일하며 서로 농담을 주고받고 논쟁하는 사람들. 그래, 그는 저런 분위기를 오랫동안 맛보지 못했다. 그들은 서로의 작업을 공평하게 존중하는 마음, 자신과 서로에 대한 자신감으로 한데 묶여 있었다. 그들은 하나로 뭉쳐서 세상과 맞서고 있는 것 같았다. 그들은 세상을 경멸하고 무시하지는 않았지만, 세상을 가늠하고 이해하며 죽을 때까지 싸우려고 했다. 자신들의 신념과 그것이 상징하는 바를 존중하는 마음에서. _ <최종 후보명단에서 하나 빼기> p.25

 

<남자와 남자 사이>는 남자들의 정부로 살던 여자와 한 남자의 아내로 살다가 이혼을 하게 된 여자가 만나 나누는 이야기이다. 남자들의 정부로 살든 한 남자의 아내로 살든 그녀들은 오로지 남자들에게만 충실했으며 그 대가로 경제적으로 여유로운 삶을 살았지만 남자가 떠나버린 지금은 스스로를 돌보지 않은 것에 대해 후회한다. 그러며 다짐한다. 남자를 만나더라도 절대 일을 그만두지 말자고. <영국 대 영국>은 탄광촌이 고향인 한 청년이 대학에 가게 되면서 가족들에게 금전적으로 도움을 받으며 시험에 떨어질까봐, 직장을 제대로 잡지 못할까봐 불안해하는 이야기이다. 더불어 문화적인 충돌을 겪으며 계층의 삶을 뛰어넘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를 보여주고 있다. <최종 후보명단에서 하나 빼기>는 위대한 작가가 될 줄 알았으나 결국은 남의 글에 대해 서평을 쓰고 방송에 출연하는 일을 하는 남자가 자기의 일에 열정을 다하며 성공까지 거둔 여자를 인터뷰하게 되면서 일어난 사건을 다루고 있다. 여자는 아무리 잘나고 성공해봤자 여자라는 사고방식으로 무턱대고 여자에게 들이대는 찌질한 남자의 모습이 잘 그려져 있다.

 

울프가 말했듯이 돈은 사람의 기질과 사유에 까지 영향을 미친다. 돈이 사람을 눈치보게 하고 비이성적으로 만들기도 하며 비굴하게 행동하게 한다. 특히나 남자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하며 사는 정부나 아내에게 돈의 위력은 때로는 남자라는 존재보다도 크다. 또한 부모나 가족의 경제적 지원을 받아야 하는 학생 역시 돈으로 인해 위축되기도 한다. 그 학생의 집이 가난하다면 더더욱. 한편 스스로가 만족하지 못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은 비록 돈은 벌지언정 마음속에는 불만과 자괴감과 비뚤어진 허영심이 뒤엉켜 있다. 그리하여 자신의 일을 사랑하는 사람(특히 그 사람이 여자라면 더더욱)을 보면 망가뜨리고 싶은 욕구가 불쑥 생겨나기도 한다. 돈과 직업이 자유를 줄 수 있다는 건 자본주의의 한복판에 살고 있는 이 시대에는 진부할 정도로 당연한 말이겠지만, 여전히 자유를 누리지 못하는 사람이 많은 이 시대에 과연 어떤 해결책이 있을 수 있을까. 언제라도 문을 닫을 수 있는 작은 사무실에서 좋아하지도 않는 일을 하는 사십대 비혼 여성의 입장에서는 돈과 직업이 주는 자유가 안정적이지 않아 늘 미세한 불안에 시달리고 있는 게 현실이다.

 

# 사랑이 지나가면...

 

필립이 집에 돌아오면 하루나 이틀 동안 우리는 항상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일에 대해 불꽃을 튀기면서 싸워대. 하지만 사실은 내가 바람을 피운 필립에게 화를 내거나 아니면 그 반대의 경우라는 걸 우리 둘 다 알고 있지. 그러고는 잠자리에서 화해하는 거야.”_ <한 남자와 두 여자> p.127

 

그리고 가슴속에서 막 뽑혀 나와 피를 흘리고 있는 심장은 그리 보기 좋은 광경이 아니었다. 나는 이것을 자세히 설명할 생각이 전혀 없다. 그때 나는 경악했을 뿐만 아니라 당혹스러웠다. 그 세월 동안 내내 사랑하며 두근거리던 물건이 바로 저것이라니. 전에 내가 어떤 상상을 했더라도, 이제는 보기 싫었다. 문제는 그것을 없애는 방법을 모른다는 것이었다. _ <내가 마침내 심장을 잃은 사연> p.92

 

남자와 안정적인 생활을 하기 시작하면 왜 여자라는 성을 잃어버리는지는 하느님만 아실 거어요. _ <남자와 여자 사이> p.227

 

씁쓸함이 목구멍을 가득 채우고, 앞으로 살아가야 할 20년이 공허한 세월이 될 것 같았다. 그날 그녀가 오지 않았기 때문에 그의 인생에는 그림자가 생겼다. 그는 사랑도 기쁨도 전혀 느낄 수 없었다. 그는 앞으로 살아가야 할 세월을 정면으로 마주볼 수 없었다. 모든 것이 그녀의 잘못이었다. _ <20> p.274

 

부정이라든가 용서같은 극적인 단어를 사용할 필요는 없었다. 지성이 그런 단어들을 금지했다. 지성은 싸움, 삐치기, 분노, 속으로 침잠한 침묵, 비난, 눈물도 금지했다. 특히 눈물을 금지했다. _ <19호실로 가다> p.287

 

이 단편집에는 사랑이 지나가면 어떤 모습일지에 대한 그림들이 곳곳에 그려져 있다. 두 번의 이혼을 겪은 작가 자신의 삶에서 돌아보게 된 지점이 바로 사랑이 지나간 자리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사랑 후에 다가오는 것들을 다양한 버전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중에서도 특히 배우자의 부정에 대한 면면들을 볼 수 있는데, 소설을 읽다보면 어쩌면 부정이 마치 결혼의 한 부분이란 생각마저 들 정도이다. 결혼 혹은 여러 번의 사랑을 겪으면서 사랑에 민감한 심장을 없애고 그 자리에 현실감각에 민감한 심장을 교체해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은 씁쓸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이해되기도 한다. 사랑도 역시나 시간 앞에서는 어떻게든 변질되게 되어 있다는 것. 그러니 사랑을 에너지 삼아 작동하던 심장을 멈추거나 용도 변경하는 것이 어쩌면 자신이 살아남는 방법일지도...

 

이 소설집에 등장하는 여자들은 대부분 지적이고 교양 있는 여성들이다. 어느 정도 교육을 받았고 자신의 직업을 갖고 있다. 책을 읽고 예술을 즐길 줄 안다. 그 중 몇몇은 자신과 비슷한 수준의 남자를 만나 이상적인 가정을 이루어 살아가고 있다. 그럼에도 저마다에게는 어떤 문제들이 존재한다. 그 문제들의 이면을 들여다보면 거기에는 어김없이 남자가 있다. 옥상에서 일광욕을 즐기는 여자에게 휘파람을 불며 추파를 던지고 상사가 여직원의 어깨에 손을 두른 채 생김새로 왈가왈부하는 일상적인 폭력에서부터 일을 마치고 집까지 따라와서 강간하다시피 여자를 눕히려 하는 범죄에 해당하는 폭력도 있다. 무엇보다 오래 함께 살아온 아내의 입장과 마음을 진지하게 들여다보려 하지 않는 남편의 무심한 폭력이 내게는 가장 서늘한 폭력으로 다가왔다. 피해자와 가해자가 명백한 관계뿐 아니라 피해와 가해가 명백하게 구분되지 않는 상황에서도 여자들은 피해자에 더 가깝다. 그건 한 개인이 주는 피해에 앞서 사회적 제도나 관습, 편견 등이 주는 피해가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런 피해는 많이 배웠다고, 돈과 직업이 있다고, 안락한 가정이 있다고 피해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수전처럼 지성과 이해로 그 모든 것을 참아내려고 하다가는 결국 자신을 부정하게 되는 지경에 이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과연 여자에게 필요한 건 무엇일까. 도리스 레싱의 소설은 내게 이런 큰 질문을 던져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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