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처럼 문학 읽기 - 작가는 굳이 말하지 않고, 독자는 달리 알 길이 없던 문학 속 숨은 의미 찾기
토마스 포스터 지음, 손영민.박영원 옮김 / 이루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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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고났으니 나는 분명 전과는 다른 독자가 되었다고 믿고싶다! 재독 삼독을 해서라도 충분히 책의 내용을 소화하고나서 소설 읽는 재미를 더 늘려가고 싶은 욕심이 왕창 생겨버렸다! 저자의 다른 저작 <교수처럼 소설 읽기>도 번역되어 나오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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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별에서의 이별 - 장례지도사가 본 삶의 마지막 순간들
양수진 지음 / 싱긋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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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초 매서운 겨울의 한가운데서 한 달 간격으로 같은 장례식장에 두 번을 다녀왔다. 한 번은 상주가 된 동생을 보러 한 번은 내가 상주가 되어서... 상복을 입고 시아버지를 저 건너 세계로 배웅하던 동생과는 다르게 나는 상복조차 입지 못한 채 동생을 하늘나라로 배웅해야했다. 그나마 사람들이 모여 웃기도 하고 안부도 나누던 1월의 장례와는 다르게 2월의 장례는 무슨 정신으로 치렀는지 모르겠다. 예정된 죽음과 예고 없는 죽음은 이렇듯 남겨진 사람들에게 전혀 다른 마지막을 안겨주었다.

 

2년 전 자매 같던 언니가 세상을 떠났을 때 그리고 올해 초 자매인 동생이 하늘나라로 갔을 때 수의를 입은 채 반듯하게 누워있던 그들의 마지막 모습이 너무나 생소하여 쉬이 잊히지가 않는다. 왜 다른 누구도 아닌 착하디착한 그녀들이 그런 낯선 모습을 한 채 이렇게나 빨리 갑작스럽게 우리와 헤어져야했는지를 계속해서 스스로에게 묻고 또 묻게 된다. 이 별에서의 두 사람과의 이별은 내게 제대로 살아야한다는 다짐을 하게 하다가도 사는 거 참 별거 없다는 생각에 하루라도 빨리 그녀들이 있는 저 별로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몇 번이나 눈물을 훔쳤는지 모르겠다. 내게 가장 가깝던 그래서 누구보다 많이 의지했던 두 사람을 멀리 보내야했던 그때의 시간들이 떠올라 그리고 여전히 아물지 못한 채 피폐해져 있는 남겨진 이들의 생활이 고스란히 느껴져 책장을 넘기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다. 책을 읽다가도 그녀들이 너무 보고 싶어 핸드폰에 저장된 두 사람의 사진들을 한없이 바라보곤 했다. 기척도 없이 갑작스럽게 들이닥친 죽음이 안겨준 충격을 흡수하기엔 나는 아직 죽음이 낯설고 두렵다. 되도록 가까이 하고 싶지 않고 피할 수만 있다면 피하고 싶다. 다시는 사랑하는 사람을 어떤 예고도 없이 잃고 싶지 않다.

 

인생이 아름답다는 말은 세상의 단면만 보고 섣불리 내뱉은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눈부시도록 아름다운 생의 곳곳에는 지옥의 틈새가 도사리고 있음을……. 원치 않아도 모든 생명은 죽음의 우연성이 느닷없이 자신을 범할 때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음을 인정해야 했다.”_p29

 

떠난 사람도, 남아 있는 사람도 모두 슬프다. 죽음이라는 불확실한 확실성은 인간을 겸손하게도 만들지만, 때로는 비참함에 몸부림치게 한다. 삶과 죽음의 길은 왜 이렇게 논리와 상식의 저편에 있는 것인가.”_p.42

 

이런 돌연한 상실감에 맞딱뜨릴 때면 죽음의 공포가 입과 코로 들어와 폐 속 깊이 똬리를 틀고 나조차 없애버리지 않을까 무섭다. 죽음은 이미 삶의 순간순간마다 다가와 있는 가능성이다. 벗어나고 싶어도 인간의 힘으론 어쩔 수 없다.”_p.47

 

저자가 장례지도사라는 직업을 통해 그동안 보아온 수많은 죽음과 그와 관련된 사연들이 하나같이 귀한 이야기가 되어 여전히 죽음을 두려워하는 나를 다독여주었다. 아픈 몸으로 혼자 살던 주인의 곁을 떠나지 않고 끝내 그 곁에서 생을 마감한 개 이야기며, 병을 앓던 젊은 아가씨가 자신만의 멋진 장례식을 준비해서 남은 사람들에게 잊지 못할 경험을 선사해준 이야기며, 한겨울날 고독사를 해서 온 몸이 구더기로 뒤덮여야 했던 남일 같지 않던 이야기며, 모녀 단둘이 살던 딸이 고인이 된 어머니의 유골을 보석으로 만들어 집에 모셔놓게 된 이야기며, 시한부선고를 받고도 군에 간 자식을 위해 꿋꿋하게 버텨온 아버지가 장례업체에 전화를 걸어온 사연이며 저자가 들려주는 다양한 사연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들이 어느새 내 마음을 어루만져주고 있었다. 누구에게나 한 번은 반드시 오는 죽음이니 눈 감을 때 후회가 남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사랑하라고 자신도, 타인도, 삶 자체를...

 

내가 장례지도사로서 성숙해지는 과정은 무언가를 얻어 채워가는 더하기가 아니라, 자존심과 거만함을 버리는 빼기였다. …… 무언가를 배워가는 과정에서 듣는 훈계와 질책은 스스로 행동에 옮기지 않으면 번민이 되지만, 그것을 새기고 받아들이고 반응을 하면 마음속으로 공명을 하게 된다.”_p.157

 

감은 씨앗을 심으면 처음부터 감나무로 자라는 것이 아니고 먼저 고욤나무로 자라난다. 그 나무가 3년에서 5년이 지났을 때 감나무 가지를 잘라 접을 붙여야 이듬해부터 감이 열린다. 마찬가지로 사람도 태어났다고 저절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칼로 생가지를 째서 접을 붙이는 것만큼의 고통이 따라야 비로소 사람이 된다는 뜻이다. 그 고통은 성장통일 수도 있고, 사랑일 수도 있고, 무언가를 배우면서 겪는 아픔일 수도 있다. 나 또한 지금보다 더 배우고 깨우친다면 그야말로 어엿한 어른이 될 수 있을까.”_p.224-225

 

살면서 많은 장례식장을 다닌 건 아니다. 그래서인지 젊은 여성 장례지도사를 본 적이 한 번도 없다. 먼저 보낸 두 사람을 입관해주는 사람이 이 책의 저자였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런 생각이 책을 읽는 내내 들었다. 내가 알기로 두 사람 모두 남들에게 몸을 드러내놓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던 터라 그들에게 수의를 입혀주는 사람이 여자였으면 그나마 그녀들이 덜 부끄러워했을 텐데 하는 생각이 자꾸 드는 거다. 비단 저자가 여성 장례지도사여서만이 아니라 자신의 직업을 대하는 그녀의 태도가 진지하고 성실하며 어떤 진심이 느껴졌기에 더욱 그런 생각이 드는가보다.

 

이십대에 가진 첫 직장이, 또래라고는 찾아보기 힘들고 제3자는 둘째 치고 가족조차 꺼리며 일정한 출퇴근 시간도 없이 몸이 축날 수밖에 없는 직업임에도 금세 도망쳐버리지 않고 맡은 일에서 직업으로서의 사명감을 찾을 수 있었던 건 저자의 마음가짐 때문이었을 거다. 직업의 많은 요소들이 자신을 벽으로 몰아붙였음에도 그럴수록 피하거나 포기하기는커녕 자신과 직업을 진지하게 바라보고 고민한 흔적을 글 여기저기에서 볼 수 있어서 괜히 내가 다 부끄러웠다. 10년 넘게 똑같은 일을 해오면서 툭하면 감정의 바닥을 드러내 보이기 일쑤고 새로운 것을 배우려는 호기심보다는 익숙하지 않은 것에 불만을 먼저 터뜨리기 바쁜 요즘의 나를 새삼 되돌아보게 되었다. 자신의 직업에서 계속해서 무언가를 배워가려는 긍정적인 저자의 모습에 나도 다시 한번 스스로를 바꿔보자 라는 다짐을 하게 된다.

 

장례를 치르는 3일간은 한 가정 안에 들어가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단지 장소가 집에서 장례식장으로 옮겨졌을 뿐이다. 함께 지내다보면 집에서 하는 언행들이 고스란히 드러난다.”_p.236

 

삶과 죽음은 다르지 않다. 둘 중 하나를 떼어놓을 수도 없다. 생을 풍요롭게 채워가자면 죽음을 회피하고 삶을 욕망하기만 하는 것으론 부족하다. 도심에 장례식장 하나가 들어서려면 오랜 기간 인근 주민들의 거센 민원을 견뎌내야 한다. ‘우리 아이 통학로에 시체실이 웬 말이냐.’, ‘지역주민 행복권 말살하는 장례식장 폐쇄하라.’ 등의 펼침막이 내걸린다.”_p.229-230

 

책에는 죽음과 장례라는 의례에 대한 다양한 에피소드들이 나온다. 죽음과 동시에 치러지는 장례식이니만큼 상주나 조문객들이 정신이 없어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에 대해서 관찰자로서 들려주는 이야기가 있는가 하면 혐오시설인 장례식장에 대한 문제 제기나 점점 늘어가고 있는 일인가구와 고독사와 같은 현실적인 이야기도 있다. 잘 몰랐던 장례 절차에 대한 지식을 얻을 수 있는가 하면 어떤 상주가 되어야 할지 곰곰 생각해보게도 된다. 그야말로 저자는 죽음과 관련된 거의 모든 이야기를 조곤조곤 들려준다. 때로는 담담하게 때로는 감정에 복받쳐.. 늘 죽음과 함께 하기에 오히려 삶을 열렬히 사랑하며 살고 있는 그녀의 이야기를 많은 사람들이 들어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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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pe&joy 2018-06-28 01: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아, 글을 읽는 나에게까지 슬픔이 전해지네요. 슬픔이 가라앉을 때까지 이 책이 잠시나마 위로가 되어주었으면 좋겠어요.
고맙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설해목 2018-06-28 11:39   좋아요 1 | URL
네.. 책을 읽으면서 죽음이 그리 멀리 있지 않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되어 조금 위안이 되었다고 할까요.
여러모로 제게는 많은 걸 느끼게 해주는 책이었습니다.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

2018-06-28 09: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6-28 11: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6-28 22: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6-29 09: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레삭매냐 2018-07-11 10: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원샷 원킬이십니다 :>

장례지도사라 처음 들어보는 직업인 것 같습니다.

그러고 보니 책으로 곡쟁이라는 직업도 처음 읽
었던 것 같습니다.

예전에 미국 교포 분에 집에서 상을 당하셔서
조문을 하러 갔었는데, 미쿡인 며느리가 아이고~
아이고~ 곡하는 장면이 그렇게 이상하게 느껴지더
라구요.

설해목 2018-07-11 10:57   좋아요 0 | URL
곡쟁이라는 직업이 있네요. 정말로.. 세상 참 별의별 직업이...ㅎㅎ
예전으로 말하면 장의사가 하던 일을 지금은 장례지도사란 분들이 하고 계시더라구요.
장례의 처음부터 끝까지를 다 챙겨주는 직업이 장례지도사란 직업이란 걸 저도 이 책으로 알게되었어요.

장례 의식도 나라마다 다르니 그 나라 예법을 따르는 미쿡 며느리를 상상하니 이쁜 사람이겠다, 싶어요. ^^

그렇게혜윰 2018-08-02 12: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랬군요 언니. 그랬군요.
굳이 같을 필요가 없음에도 우린 같은 경험을 갖고 있네요. 전 장례식이 싫어요....어떤 표정을 지어야할지 모르겠어요. 어떤 표정으로 앉아있었는지도 모르겠어요...겁쟁인가봐요.

설해목 2018-08-02 13:22   좋아요 1 | URL
장례식은 내게도 참 어려운 자리야.. 지 할아버지 장례식에 갔던 울 조카가 그러더라구. 어른눈물공포증이 생겼다고.. 어른들이 울고 그러는 걸 보는 게 그 아이한테는 공포였나봐... 근데 어른인 나도 그러네..

그나저나 잘 지내고 있는거지? 방학이라 조금 한가해졌으려나.. 허긴 집에 애가 둘이니 한가하기도 힘들겠다. ^^;;
무더운 여름 가족들과 건강하게 잘 지내~ ^^
 
이 별에서의 이별 - 장례지도사가 본 삶의 마지막 순간들
양수진 지음 / 싱긋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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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대부분이, 내가 하는 일이 늘 죽음과 맞닿아 있다면 나는 견뎌낼 수 있을까. 혹여라도 죽음을 그로 인한 슬픔을 당연시하는 감정 없는 사람이 되지는 않을까. 젊은 여성 장례지도사가 쓴 이 책을 읽으면서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이 묵직하다. 더불어 직업적 사명감이란 것도 곰곰이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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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28 12: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6-28 13: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지금 여기의 페미니즘×민주주의
정희진 외 지음 / 교유서가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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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 챕터마다 밑줄이 가득이다. 페미니즘 현상에 대한 다양한 시각을 접할 수 있었고, 특히 문재인 정부와 페미니즘과의 관계를 좀더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는 계기가 되어 유익했다. 강의록이라 시간 날 때마다 두고두고 읽어볼 수 있는 점 또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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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해도 혼나지 않는 꿈이었다 시요일
강성은 외 지음, 시요일 엮음 / 미디어창비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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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청년으로 떠났다가 중년으로 오셨네.

: (여자가 운영하는 가게를 둘러본다.)

: 뭘 그렇게 봐

: 여길 왜 못왔나. 한 시간 반이면 오는 델 이십 년 가까이 왜 못왔나.

      마음에 걸리는 게 있어서 못 온 것같애.

: 이젠 걸리는 게 없니?

: (묵묵부답)

: 나 니 마음에 걸려라, 걸려라 하는 심정으로 괴롭게 살아왔는데,

      나 이제 무슨 짓을 해도 니 마음에 안 걸리는 거네.

: (묵묵부답)

: 그럼, 나 이제 무슨 낙으로 사니?

: 행복하게, 편안하게

 

지금 TV에서 나오는 드라마의 한 장면이다. 중년의 스님이 꽃 한다발을 들고 영업준비중인 여자의 가게로 들어와 여자와 어색하게 마주 앉았다. 띄엄 띄엄 보던 드라마라 저 두 남녀의 관계를 정확히는 알지 못한다. 그저 대강 짐작하기로는 남자는 젊은 시절에 이유도 없이 여자를 떠나 출가하였고 여자는 그런 남자를 애타게 찾아다니며 여태껏 기다린 듯하다. 청년이 중년이 된, 그 긴 시간 동안 서로를 잊지 못하고 그렇게 마음에 걸린 채 살아온 두 사람의 대화가 담담하여 오히려 눈물이 핑 돈다.

 

작별인사를 하지 않는 것은 발설하지 않은 문장으로

너와 내가 오래오래 묶여 있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잊혀진 줄도 모른 채로 잊혀지지 않기 위함이다

 

작별인사조차 없이 떠난 남자였기에 여자는 끝내 이별하지 못하고 오랜 시간 동안 사랑을 묶어둔 채 기다렸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남자도 이별의 말을 발설하지 않음으로써 인연의 끈을 놓고 싶지 않았는지도...

 

그토록 오래 서 있었던 뼈와 살

비로소 아프기 시작하고

가만, 가만, 가만히

금이 간 갈비뼈를 혼자 쓰다듬는 저녁

 

청년이 중년이 될 동안 속세를 등진 채 살아온 남자와 술집을 하며 속세의 한가운데서 살아온 여자 중 누가 더 아팠을까. 완전히 잊지도 잊히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다른 이와 함께 하지도 못한 채 보낸 세월의 무게가 이 만남으로 그들을 더 아프게 할까 아니면 완전히 자유롭게 할까. 남자의 행복하게 편안하게 살라는 그 말이 여자에게는 지난했던 사랑의 족쇄를 푸는 열쇠이자 또다른 아픔을 가두는 자물쇠가 될 것만 같다.

 

당신과 함께라면 내가, 자꾸 내가 좋아지던 시절이 있었네

 

여자가 남자를 20년 가까이 잊지 못한 건 저런 시절이 있었기 때문일 거다. 타인으로 인해 내가 나를 좋아할 수 있던 그런 시절이... 내가 가장 잘 알기에 도저히 좋아할 수 없던 나를 좋아하게 만들어준 마법 같은 사람. 그런 사람이 말없이 사라졌을 때 여자는 알았을 거다. 앞으로 다시는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리라는 것을...

 

지독한 배신밖에는 때로 사랑 지킬 방법이 없고

 

그런데 승복을 입고 말간 얼굴을 하고 있는 저 남자를 보고 있자니 어쩌면 그런 지독한 배신이 그 여자와의 사랑을 지키는 방법이라 믿지 않았을까 싶다. 세상을 등지고 싶을 정도로 자신을 괴롭히는 그 무엇에 잠식당한 채 험한 꼴로 살다가 여자에게 상처를 주느니 차라리 훌쩍 떠나와서 온전한 사람으로 살아가는 게 자신의 사랑을 지키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믿었던 게 아닐까. 남자는...

 

여태 오지 않는 것들은 결국 오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언제나 그대로인 기다림으로

우리는 이렇게 살겠지

 

두 사람의 만남은 결국 이별인 건가 아닌 건가. 저 장면만으로는 알 도리가 없다. 이별이든 아니든 두 남녀는 평생 서로의 존재를 느끼며 살아갈 것 같다. 함께 하지 않아도 서로의 기척을 알아챌 수 있는 인연. 어떤 인연은 생을 마치고서야 끊어지기도 하니까. 그러므로 생을 마치기 전까지는 내내 기다림이 삶이기도 한 인연도 있으니까.

 

또 한 해가 갈 것 같은 시월쯤이면

문득 나는 눈시울이 붉어지네

사랑했던가 아팠던가

  

  

그리고 간신히 아무도 그립지 않을 무렵

 

매년 시월이 되면 사랑과 아픔의 중간쯤인 가슴 저밈을 느끼며, 그렇게 중년에서 장년을 거쳐 노년으로 접어들 때쯤이면 완전히 잊지는 못하더라도 더는 그립지 않은 그런 날이 올 테지. 그렇게 사랑이 저물어 가는 거겠지. 두 남녀만의 유일무이한 사랑의 생애가 마지막으로 접어들 테지. 그리고 눈을 감으면...

 

당신 나 잊고 나도 당신 잊고

 

2.

 

이별에 관한 시들을 묶었다는 이 시집의 제목을 봤을 때 이 시대 청춘들에게 사랑이 어떤 의미인지를 너무 명확하게 짚어낸 것 같아 가슴이 아릿했다.

 

사랑해도 혼나지 않는 꿈이었다

 

총체적 가난에 허덕이는 젊은이들에게 사치와 동급이 되어버린 '사랑'을 한다는 건 자신에게 스스로 매질을 하는 거나 마찬가지인 현실이 아니던가. 꿈에서조차 초라한 현실을 벗어나지 못하는 악몽을 꾸는 청춘들에게 사랑해도 혼나지 않는 꿈이야 말로 최고의 꿈이 아닐까.

 

당신은 사는 것이 바닥으로 내려가는 것과 비슷하다고 했다.

내게는 그 바닥을 받쳐줄 사랑이 부족했다.

 

오르려 오르려 해도 바닥을 벗어나지 못하는 나날 속에서 어떤 이가 그 바닥을 받쳐주겠다 선듯 나설 수 있을까. 함께 동반 추락하는 것이 자명한 현실 속으로 사랑만을 믿고 번지점프할 청춘이 과연 몇이나 될까.

 

기약을 모르는 우리의 다음이

자꾸만 당신에게로 나를 데리고 갔지

 

그래도 용기 내어 사랑을 선택하였건만, 가난한 연인들은 사랑에서 비롯된 많은 것들을 기약 없는 다음으로 넘겨버려야 하고, 그 붕 뜬 기다림을 붙잡고 점점 옅어져가는 사랑을 잡으려하는 게 이 시대 청춘들의 자화상은 아닐는지. 이제 더는 청춘이랄 수 없는 내 자화상 역시 이와 비슷한 모습으로 그려져 가고 있다.

 

사랑이 힘이 되지 않던 시절

길고 어두운 복도

우리를 찢고 나온 슬픈 광대들이

난간에서 떨어지고, 떨어져 살점으로 흩어지는 동안

그러나 너는 이상하게

내가 손을 넣고 살며시 기댄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청춘들은 기댈 사람을 찾고 싶다. 이 험하고 어둡고 희망이 보이지 않는 터널같은 시간을 손잡고 함께 걸어가 줄 사랑을 만나고 싶다. 비록 그 사랑이 힘이 되지는 않더라도 쓰러질 것 같은 서로를 지탱해주는 버팀목은 되어주리라 믿으면서...

 

아무도 사랑하지 못해 아프기보다

열렬히 사랑하다 버림받게 되기를

 

가혹한 현실이 아무리 청춘들에게서 사랑을 떼어놓으려고 해도 적어도 사랑만큼은 현실에 굴복하지 않기를... 현실과 타협하지 않기를... 사랑하다가 피 흘리고 상처받을지언정 현실이 무서워 사랑을 포기하거나 피하지는 않기를... 사랑이라는 본능을 외면하지 않기를...

 

네가 잊혀진다는 게 하도 이상하여,

내 기억 속에 네가 희미해진다는 게 이렇게 신기하여,

 

 

너를 까맣게 잊고도 이렇게 하루가 직접적인 현실이 되었다.

 

끝날 것 않지 않던 청춘의 터널을 지나와 앞으로만 달려가다가 뒤돌아보니 어두운 터널을 함께 걸어준 당신을 잊고 살았다는 걸 문득 깨닫는 날이 오겠지. 잊고 살았던 게 신기할 정도로 아픈 추억이 된 그 사랑으로 지금의 현실에 발 딛고 살 수 있었다며 당신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중얼거릴지도 모를 일이지.

 

3.

 

영영 보지 못한다는 걸 실감하고 있는 요즘이다. 시도 때도 가리지 않고 문득 차오르는 눈물을 어찌해야할지 몰라 난감한 날들의 연속이다. 꿈에서조차 나타나 주지 않는 것이 미워 미친년처럼 허공을 향해 욕을 해댈 때도 있다.

 

그대를 지나서 비로소

그대를 생각하듯이.

 

놓치고 나서야 알게 되는 사랑. 영영 보지 못한다는 걸 실감하게 되고나서야 밀려오는 그리움.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흘러야 슬픔 없이 그대를 떠올릴 수 있을까. 무슨 짓을 해야 그대를 다시 한번 볼 수 있을까. 더 이상 나이 들지 않는 사진 속 그대를 바라보며 나는 속절없이 늙어간다.

 

죽을 만큼 아팠다는 것은

죽지 않고 살아남았다는 것

 

그대를 다시는 볼 수 없다는 것이 죽을 만큼 아프다. 아직은 그리움이 아픔 그 자체다. ‘아팠다고 말할 수 있을 때, 그때쯤이면 나는 다시 예전처럼 살아가고 있을까. 죽어서나 만날 수 있는 그대를 죽을 만큼 아파하면서 그리워하다 이 생이 아닌 저 생에서 꼭 한번은 다시 만나자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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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8-05-25 21: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life goes on that way...

설해목 2018-05-25 22:44   좋아요 0 | URL
그럼요. 산 사람은 살아야죠. ~
더 잘 살려구요. 모두를 위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