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얼마나 많은 영혼을 가졌는지 - 페르난두 페소아 시가집 대산세계문학총서 150
페르난두 페소아 지음, 김한민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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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의 제목이 강렬해서일까 한편 한편 시를 읽어가면서 나도 모르게 영혼(포르투갈어로 alma라고 쓰고 아우마라고 읽음)이란 단어에 동그라미를 쳤다. 다시 한번 읽을 때는 동그라미를 친 영혼에 번호를 매겼다. 그래서 페루난두 페소아가 페소아란 자신의 이름으로 쓴 시들을 묶은 이 시가집에 영혼이란 단어가 몇 개인지를 알게 되었다. 70개를 웃도는 이명을 가진 페소아였지만 이 시가집은 페소아가 창조해낸 이명보다 조금 더 적은 수의 영혼을 품고 있다. 영혼이란 하나의 단어로 쓰였지만 각 시들에 쓰인 영혼은 그 수만큼이나 저마다 다른 무게와 모양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 누구도 아닌 바로 페소아가 쓴 시들이니...

 

수많은 이명을 사용한 것으로 유명한 페소아의 이력을 아는 독자라면 내가 얼마나 많은 영혼을 가졌는지란 제목을 내가 얼마나 많은 이명을 가졌는지라고 오독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하지만 옮긴이의 해설에 따르면, “‘이명의 상대 개념이라 할 수 있는 본명이라는 용어를, 페소아는 본인의 이름으로 서명한 시들을 썼고 그런 시들을 모아놓은 것이 이 시가집이니, ‘영혼 = 이명이란 오독은 잘못 읽어도 한참 잘못 읽은 것이 되어버렸다. 그렇지만 수많은 이명으로 썼든 페소아란 이름으로 시를 썼든(옮긴이의 해설에 따르면 페소아는 몇몇 글에서는 페소아란 자신의 본명조차도 마치 또 한 명의 이명처럼 취급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 모든 시를 쓴 장본인은 다름 아닌 페소아이니 수많은 이명들을 페소아의 수많은 영혼과 연결 지을 수도 있지 않을까. 무식한 독자는 이렇게 또 궁시렁 궁시렁거릴 뿐...

 

페소아의 시는, 20세기의 인간에 대한 매우 복잡하고 고통스럽고 비극적이지만 동시에 명쾌하고 냉정한 분석이다. 그는 조롱하고 또 조롱당하며 고뇌하는 사람으로서 자신의 진리와 심술 속에서, 역설의 남용 속에서, 이미 아이러니하게 활용된 격언과 정반대되는 것을 아이러니하게 주장할 수 있는 능력 속에서, 20세기의 가장 혁명적인 시를 구현했다. _ 안토니오 타부키, 사람들이 가득한 트렁크중에서

 

시가집이라는 헐거운 형식으로 묶인 여러 시들에서 엿보이는 본명 페소아의 관심사는 실로 다양하다. 존재와 부재, 고정된 정체성에 대한 회의 등 그가 줄기차게 천착해온 주제들 이외에도, 시인이 자신의 민족과 역사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풍부한 문학적 상상력을 동원해 조국의 미래에 대한 비전을 창조적으로 구상해온 결실을 접할 수 있다. , 제도 권력이 되어버린 기존 종교들에 대한 회의가 깊어지면서, 오컬트와 비전(秘傳) 종교 그리고 점성술에서 의미를 구하려고 진지하게 찾아 헤맨 흔적들도 풍부하다. 그러나 그 어떤 관심 분야도, 페소아가 그 하나에만 완전히 닻을 내리게 만들지는 못했다. 페소아답게, 그는 끊임없이 이동하고 정처 없이 부유했다. 1935120일 아돌푸 카사이스 몬테이루에게 보낸 편지의 한 구절이 이 같은 생각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나는 진화하지 않는다. 나는 여행한다." _ 옮긴이의 해설 중에서

 

그렇다. 이 시들은 페소아다운 시들이다. 페소아의 시들에는 명확한 착지점이 없다. 내려앉았는가 싶으면 살짝 부는 바람에도 흔들리기 일쑤다. 마치 그네를 탄 채 시를 읽는 기분이랄까. 땅에서 한 뼘 정도 떨어진 발, 허공을 오르락내리락하며 끊임없이 움직이는 육체, 그리고 눈을 감으면 마치 새가 된 것 같은 영혼. 그래서 내가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시가 별로 아니 아예 없었는지도... 아니 어쩌면 시 자체를 온전히 이해한다는 건 애초에 불가능한 걸지도 모른다. 함축적인 언어에 담아낸 한 사람의 영혼의 떨림을 과연 누가 완벽하게 독해낼 수 있을까. 하물며 하나의 영혼도 아니고 수많은 영혼을 가진 페소아의 시를 이해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니... 그래서 이번 시가집 읽기는 실패이면서 동시에 실패가 아니라고 우겨본다. 완벽한 이해와는 거리가 멀었지만 어렴풋한 느낌은 있었으니까. 그 어렴풋함이야말로 시란 창작물을 읽어내는 핵심이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또 하나. 읽는 이의 현재 상태에 따라 밀도가 달라지는 것이 바로 시가 아닐까 싶다. 사랑은 타이밍이란 말처럼 시 역시 타이밍일지도...

 

<>

 

나의 어두운 시절에

내 안에 아무도 없을 때

삶이 얼마나 주든 갖든

모든 것이 안갯속이고 벽일 때,

 

만약 내가 내 안의 파묻힌 곳에서

한순간 이마를 들어

지고 있거나 떠 있는 태양

가득한 먼 수평선을 바라본다면,

 

나는 다시 살고, 존재하고, 알게 된다.

그리고, 나를 잊게 되는 그 바깥

그것이 비록 환상이라 할지라도,

나는 아무것도 더 원하거나 요구하지 않는다,

나는 너에게 마음을 내준다.

 

<크리스마스 2>

 

크리스마스. 시골에는 눈이 내린다.

단란한 집들 안에서는

하나의 감정이 과거의

감정들을 간직한다.

 

세상으로부터 돌아선 마음,

가족이란 어찌나 진짜인지!

나의 사색은 깊다,

그래서 내겐 향수가 있지.

 

은총으로 얼마나 하얀가,

영원히 못 가질 가정의

유리창 뒤에서 바라본

내가 모르는 풍경은!

 

혼자라는 불안에 떨면서 검사 결과를 기다리고 아파서 병원을 들락거리면서 무언가를 간절히 잡고 싶었고, 집 떠나온 후 거의 매년 혼자 크리스마스를 보냈으며, 가정을 만들지 않기로 결심한 비혼주의자로서 나는 이 두 시를 읽자마자 페소아, 당신 마음이 꼭 내 마음이오라며 시들을 마음으로 와락 안아버렸다. 진짜 가정의 모습이 어떤지 페소아는 알고 있는 것만 같고, 어두운 시절 역시 누구보다 오래 겪었을 것만 같은 페소아의 시에서 전해지는 어렴풋한 동질감이란! 이처럼 지금의 나가 감응할 수밖에 없는 시들을 만나 모서리 귀퉁이를 접어 가며 시를 읽는 시간이란 한 영혼과 마주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물론 페소아의 경우는 하나의 영혼이 아니라 여러 영혼일 수 있지만...

 

여행한다는 것

 

여행한다는 것! 이 나라 저 나라 버리고 다니는 것!

끊임없이 다른 사람이 된다는 것,

영혼에 뿌리가 없기에

오로지 보기 위해서 사는 것!

 

나 자신에게조차 속하지 않는 것!

곧장 나아가는 것, 목적 그리고

그걸 이루겠다는 열망의

부재를 좇는 것!

 

그렇게 여행하는 게 여행이지

단 여정에 대한 꿈 이상은

아무 가진 것 없이 간다.

나머지는 하늘이고 땅일 뿐

 

 

옮긴이의 해설에 따르면 페소아는 1935120일 아돌푸 카사이스 몬테이루에게 보낸 편지에서 나는 진화하지 않는다. 나는 여행한다.”라고 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런 시를 만나면 페소아란 사람이 명확히는 아니어도 어렴풋하게 어떤 사람인지가 그려진다. 이 시가집에 실린 페소아의 연보를 보면 페소아는 어머니의 재혼으로 인해 남아공의 더반에서 산 몇 년을 빼면 거의 일생을 리스본에서 지냈다. 이사를 종종 한 것으로 보이지만 그것 역시 리스본 내에서의 이사였고 여행을 갔었다는 연보는 찾아볼 수 없다. 다만 인쇄기 구입을 위해 포르투갈 동부의 포르탈레그로로 여행을 다녀왔다고는 적혀 있지만, 한 사람의 일생에 있어서 이렇게 여행을 하지 않은 사람도 드물다 할 정도로 페소아는 물리적 이동이 적은 사람이었다. 그런 페소아가 쓴 여행에 관한 시는 그래서 더욱 특별하다랄까. 나 역시 해외여행 한번 한 적 없고 서울과 고향 외에는 국내도 많이 다녀본 적 없는 여행 무능력자로서 이런 시를 만나면 여행이란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이 시가집에서 또 하나 기억에 남는 시가 있는데 바로 리마의 저녁이다. 이 제목은 벨기에의 작곡가 펠릭스 고드프루아의 동명곡이기도 한데 페소아의 가족이 남아공 더반에서 지낼 때 페소아의 어머니가 종종 피아노로 이 곡을 연주했다고 한다. 8장에 이르는 이 장편의 시는 페소아가 죽기 두 달 전에 쓴 시다. 가족들과 함께 살던 유년의 시절을 회상하며 쓴 시인데 페소아도 결국은 죽음 앞에서 가족을 떠올렸던 것일까. 부모 형제와 함께 산 시간보다 혼자 산 시간이 더 길어지고 있는 나는 리마의 저녁을 읽으면서 절로 고향집이, 엄마가 떠올랐다. 제목도 그러하거니와 시 역시 저녁을 닮은 느낌이라 실제 곡은 어떨까 싶어 찾아서 들어봤는데 곡은 의외로 씩씩하고 힘차서 좀 의아했다.

 

이 시가집에는 영혼이란 단어도 참 많이 나오지만 꿈과 영원이라는 단어도 자주 마주치게 된다. 환상이라는 단어도 종종 보인다. 모두 만질 수도 볼 수도 없는 한마디로 실체가 없는 것들이다. 너무나 크고 깊으면서도 불확실하여 쉽사리 잡아채지지 않는다. 페소아의 시가 내겐 꼭 이 단어들 같다. 크고 깊고 무엇보다 불확실해서 감히 닿았다고 말하는 것이 조심스럽다. 그러면서도 어렴풋하게 느껴지는 그 무엇이 있다. 페소아의 시에는... 영혼, 영원, , 환상이 그러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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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8-11-01 16: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중고서점에서 지금 페소아 작가의 책을
노리고 있는데 안 풀리네요 :> 좀 더
기다려야 하는 걸까요.

<불안의 책>은 한 번 도전해 보고 싶네요.

아무래도 수중에 넣기 전에 도서관을 이용
해야지 싶네요.

설해목 2018-11-01 17:01   좋아요 0 | URL
시는 호불호가 있을 수도 있지만 <불안의 책>은 제 주위 친구들은 전부 좋다고 하더라구요.
그냥 고독한 한 남자의 중얼거림같은 책이라고나 할까....
페소아처럼 중고도서를 잘 안풀리는 작가들이 더러 있는 것 같아요.
취향은 저마다 다르니까 혹시 모르니 도서관 이용 후 구입을 추천드립니다. ㅎㅎ
 
아이 러브 디스 파트
틸리 월든 지음, 이예원 옮김 / 미디어창비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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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 소녀 엘리자베스와 레이는 다른 소녀들처럼 우연한 기회로 친해지게 된다. 같이 이어폰을 나눠 낀 채 음악을 듣고 서로의 마음속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둘의 우정은 어느새 사랑으로 커져가고 남들에게는 말할 수 없는 두 사람의 관계로 인해 10대인 두 소녀의 마음은 흔들린다. 결국 레이가 엘리자베스에게 몇 곡의 음악을 메일로 보내는 것으로 두 사람의 관계는 끝난다. 하나의 이어폰으로 같이 음악을 들으며 자신들이 좋아하는 부분을 이야기하고 서로의 시간과 감각, 감정을 공유하고팠을 두 소녀는 이제 다른 공간에서 혼자 음악을 들으며 눈물을 흘린다.

 

이 그래픽노블에는 검은색과 보라색이 전부다. 파랑과 빨강이 합쳐져 만들어지는 보라색이 이 그래픽노블에 사용된 유일한 유채색이란 점은 좀 의미심장하다. 현재는 동성애를 상징하는 색으로 무지개를 사용하지만 그 이전에는 보라색을 사용했다고 한다. 두 소녀의 사랑을 하나의 색으로 표현한다면 작가는 보라색을 가장 먼저 떠올릴 수밖에 없었을 것 같다. 그리고 또 한 가지를 더 짚고 넘어간다면 인종이 다른 두 소녀의 사랑을 보라색으로 표현한 게 아닐까 싶다. 그림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두 소녀는 다른 인종이다. 동성끼리 사랑하는 것만큼이나 다른 인종의 두 소녀가 사랑하기에도 미국 시골 마을의 시선이 그리 곱지만은 않을 것이다. 전혀 반대편에 있는 파랑과 빨강이 섞여 신비하고 아름다운 보라색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작가는 인종이 다른 두 소녀의 사랑을 통해 말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 생각해본다.

 

작가는 두 소녀의 모습을 다른 배경보다 훨씬 크게 그리고 있다. 산과 들판을 베고 누운 두 소녀의 모습을 시작으로 빌딩에 기대 엎드리거나 집을 의자 삼아 앉아 있다. 두 소녀가 함께 있을 때면 세상은 모두 다 작아진다. 그녀들은 작아진 세상에는 신경쓸 필요 없이 오로지 서로에게만 집중하고 그 관계를 즐긴다. 사랑에 빠져본 사람들이라면 이 그림을 바로 이해할 것이다. 사랑에 빠져있는 동안에는 세상은 오직 두 사람이 전부이고 나머지는 그저 작은 배경에 지나지 않는 특별한 경험을 작가는 크기의 대비로 표현하고 있다. 그런가하면 두 소녀가 헤어진 이후에 나타나는 그림에는 수직을 표현하는 그림들이 눈에 띈다. 수직으로 뻗어 있는 빌딩들, 위로 길게 뻗어 있는 전신탑, 뾰족하게 치솟은 성당 혹은 교회의 건물은 두 소녀의 사랑을 방해하는 것들을 대표하는 것처럼 보인다. 넓게 펼쳐져서 다양한 것들을 포용하는 가로와는 달리 좁게 위로 뻗은 채 무언가를 나누고 가르는 세로의 이미지가 두 소녀의 결말과 묘하게 겹쳐진다.

 

영화 <비긴 어게인>을 보고 난 후 더블잭을 샀었다. 언젠가 이 잭으로 누군가와 같은 음악을 같은 공간에서 함께 듣기를 희망하며... 누군가와 음악을 함께 들으며 교감을 나누길 바라며 말이다. 이 그래픽노블은 제목만으로도 두 소녀의 마음을 잘 표현해주고 있다. 음악을 함께 들으며 서로의 취향을 공유하고 그만큼 서로에 대해 더 많이 알아가는 것. 주위 시선으로 애정표현을 잘 할 수 없었을 두 소녀가 가장 쉽게 서로의 마음을 표현하는 방법이지 않았을까 싶다. 끝나버린 관계에서 두 소녀를 가장 힘들게 하는 부분도 바로 이것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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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에 대하여 오늘의 젊은 작가 17
김혜진 지음 / 민음사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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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과 레인 나 그리고 젠, 치열하게 현재를 살아도 남편과 자식을 두었어도 젊은날 타인을 위해 최선을 다해 멋지게 살았어도 그 종착역은 크게 다르지 않은 삶을 보면서 슬프기보다는 두렵다. 아프다. 딸들 보다는 엄마인 나와 젠의 삶에 마음이 더 밟힌다. 그런 나이가 되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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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낌의 0도 - 다른 날을 여는 아홉 개의 상상력
박혜영 지음 / 돌베개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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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만나게 된 건 아룬다티 로이의 9월이여, 오라덕분이다. 로이의 글이 너무 좋아서 그녀에 관한 책들을 찾다가 9월이여, 오라의 번역자가 출간한 이 산문집에 아룬다티 로이에 관한 글이 있다기에 냉큼 데려온 것이 이 책과의 만남이다. 그리고 이 책을 다 읽고 난 지금 정말이지 이런 책을 만나서 다행이고 기쁘고 벅차고 또 한편으로는 내가 참 좁게, 편협하게 살고 있었구나 하는 반성도 하게 된다.

 

나에게 감동을 준 20세기 작가들을 통해 우리 삶을 더 좋은 삶으로 이끌고, 우리 사회를 더 평화로운 공간으로 만들며, 나아가 아름다운 자연을 더 많이 느낄 수 있도록 생태적 관점에서 주요 문제점들을 하나씩 짚어보고 싶었다. _p.7

 

생태적 관점이란 것이 과연 뭘까 싶은 마음을 갖고 한 편씩 글을 읽어나갔다. 그리고 이 책에서 소개된 저자들의 삶을 따라가다 보니 지금 우리가 왜 이렇게 불행하게 살고 있는지를 확실히 알게 되었다. 소수의 인간이 욕심을 부리기 시작하면서부터 대다수의 인간뿐만 아니라 다른 종의 동물과 식물 더 나아가 지구까지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는 것을... 나 하나만을 위하는 탐욕과 이기심으로는 더는 인류에게는 희망이 없다는 것을... 결국 우리는 문명과 개발 그리고 돈이라는 허울 좋은 덫에 걸려 발버둥칠수록 자신의 삶이 불행하고 위태로워진다는 것을... 모든 사람이 부자가 될 수는 없다는 것을... 이런 우리가 제대로 된 삶을 꾸리기 위해서는 지금이라도 땅으로 대표되는 자연으로 돌아가 모두가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법을 찾아야 한다는 것을... 인간만이 아니라 다른 생물들 그리고 생명들의 안식처인 지구와 함께 살아갈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것을... 욕심을 내려놓고 다 함께 한번뿐인 유한한 삶을 즐겁게 살다 가는 그 길을 찾아야 한다는 것을... 내 주위의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을 세심하게 들여다보고 결국 이 지구를 근거지로 살아가고 있는 모두 생명체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는 것을...

 

먼저 레이철 카슨을 통해 우리가 가고 있는 길을 반성하며 돌아보고 싶었다. 미하엘 엔데를 통해서는 그 길에서 한 번뿐인 생명의 시간이 모두 돈을 위한 시간으로 바뀌었음을, E. F. 슈마허를 통해서는 시간의 변화와 함께 노동도 삶의 기쁨에서 생존을 위한 노역으로 변질되었음을 말하고 싶었다. 웬델 베리로부터는 생태적 관점에서의 평화란 무엇인지를, 마흐무드 다르위시로부터는 약자에게 올바른 생태적 정의란 무엇인지를 말하고 싶었다. 그리고 존 버거로부터는 우리가 느끼는 감각에도 윤리가 있다는 점을, 아룬다티 로이로부터는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는 상상력의 힘을 강조하고 싶었다. 비록 20세기 작가는 아니지만 헨리 데이비드 소로로 이 책을 끝맺은 것은 우리가 저항할 때 비로소 진정한 자유인으로 살 수 있음을 결론적으로 말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_p.7~8

 

저자는 이 책에서 8명의 생태작가를 소개하고 있다. 저자에게 뿐만 아니라 나 역시 그들의 몇몇 작품을 읽어봤을 정도로 그들은 자신들의 저서를 통해 세계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끼친 작가이자 사상가이자 활동가이다. 이 책에 실린 작가들의 책을 이미 접해본 사람에게는 이 책이 그들의 사상과 삶을 되짚어 보는 계기가 될 것이고, 아직 그들의 책을 접해보지 못한 사람에게는 그들의 사상과 삶을 한 눈에 살펴보고 그들의 책을 접할 기회가 될 것이다. 나 역시 이 책을 통해 8명의 작가의 아직 읽지 못한 책들을 하나씩 읽어봐야겠다는 또 하나의 목표가 생겼다.

 

# 레이첼 카슨

 

카슨은 이렇게 말했다. “서양문명은 근대에 접어든 이후 자연자원을 착취하는 데 몰두해왔습니다. 짧은 기간이지만 이 과정을 통해 무자비하게 지구를 훼손하고 파괴를 서슴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싸워 이겨야 할 대상은 자연이 아니라 바로 우리 자신입니다. 성숙한 눈으로 자연과 우주를 바라볼 수 있도록 먼저 우리 스스로가 문제임을 깨달아야 합니다.”_p.23

 

카슨은 주어진 삶의 조건을 편리하게 바꾸려는 욕망의 근저에 본질적으로 우리 문명의 파괴성이 존재한다고 보았다. 왜냐하면 어떤 특정 생명체를 선별하여 깨끗하게 박멸할 수 있다는 생각은 근본적으로 전쟁의 논리이자 파시즘의 논리이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카슨은 살충제를 핵무기와 마찬가지로 살상제(biocide)라고 불러야 한다고 말했다. _p.26

 

인간이 신이 되려고 하는 이상 이 지구의 생명체는 종국에는 모두 죽게 될 거다. 문명이라는 악마의 탈을 뒤집어쓰고 오직 인간만이 살아가야할 가치가 있는 양 다른 종들을, 이 지구를 무차별하게 공격하다가는 언젠가는 그 이기적이고 탐욕스런 공격이 부메랑이 되어 인류를 멸망의 길로 이끌 것이다.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인류라는 종이 없었더라면 이 지구라는 행성은 얼마나 더 평화롭고 아름답고 살기 좋은 곳이었을까. 결국 지금이라도 지구라는 터전을 살아갈 수 있는 곳으로 남겨두려면 인류가 멸망하거나 아니면 우리의 탐욕과 이기심을 자제하는 방법밖에는 답이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과연 둘 중 어느 것이 더 가능할지는.... 

 

# 미하엘 엔데

 

엔데는 화폐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현대 사회의 제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확신에서, 생명체처럼 노화하여 언젠가는 사라지는 돈을 상상한 철학자 루돌프 슈타이너와 경제학자 실비오 게젤의 생각에 깊이 천착하였다. 엔데는 NHK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은 마치 암세포처럼 혼자서 무한정 증식하는 고독한 돈이 아니라 사람들 사이를 순환하다가 언젠가 자연스럽게 소멸하는 그런 새로운 화폐 개념을 생각하며 모모를 썼다고 했다. 다시 말하자면 무한 증식이 아닌 순환에 토대를 둔 새로운 경제체제를 꿈꾼 것이다. _P.56~57

 

엔데는 말한다. “사실상 우리는 점점 더 가난해질 뿐인데, 이제 우리의 내면세계는 너무나도 공허해져버려 우리 내면이 사막으로 치닫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조차 못 합니다. 나는 3차 세계대전은 이미 시작되었다고 봅니다. 단지 우리가 모를 뿐이지요.”_p.57

 

하루가 멀다 하고 뉴스를 장식하는 범죄와 죽음을 살펴보면 결국은 돈이 문제인 경우가 다반사다. 먹고살 돈이 없어서 훔치고 그러다보니 어쩌다가 사람을 죽이게 되고 역시나 살기가 막막하며 스스로 때로는 가족들이 함께 목숨을 끊는다. 그야말로 이 시대의 신은 돈이요, 조물주 위에 건물주란 말이 우스개소리로 들리지 않는다. 돈을 벌기 위해 미친 듯이 노동을 하지만 그 대가는 겨우 먹기 살 정도의 돈이고 오히려 장시간의 노동으로 인해 건강을 해치게 되어 노후는 더욱 비참하기만 하다. 실물이 없는 어마어마한 돈이 거래로 오가고 그래서 돈 있는 사람이 돈을 버는 이 구조에서 대다수의 사람은 그저 남의 배를 불려주는 소모품으로 전락하여 하나뿐인 삶을 허비해버린다. 정말이지 화폐도 수명을 다해서 증식을 하지 못하게 한다면 그런 화폐 개혁이 정말로 일어난다면 얼마나 좋을까. 몇 년 전에 엔데의 유언이라는 책을 통해서 화폐에 대한 엔데의 관심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정작 그의 대표작인 모모는 아직 읽지 못했는데 이 글을 읽고 나니 빨리 읽어보고 싶은 마음뿐이다.

 

# E. F. 슈마허

 

지금의 경제학은 전 지구적 빈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더 많은 성장이 필요하다고 주장하지만, “가난을 해결하는 방법은 대량 생산이 아니라 대중에 의한 생산이다.”라고 말한 간디와 마찬가지로 슈마허 역시 빈곤 문제가 대량 생산과 물질적 팽창으로 해결될 수 있다고 보지 않았다. 왜냐하면 가난은 작은 풍요로도 충분히 극복할 수 있고, 그 정도의 풍요는 지금까지 인류가 축적한 것으로도 이미 충분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정한 분배가 어려운 것은 생산은 경제적 문제이지만 분배는 정치적 문제이기 때문이다. 빈부 격차, 지역적 불평등, 국제적 불균형, 자원 고갈, 환경 오염 등은 모두 높은 경제성장이 아니라 더 많은 민주주의를 향한 정치적 움직임을 통해서만 해결 가능한 문제들이다. 물론 정치적 행동은 사람살이에 대한 도덕적 각성에서 시작된다. _p.77

 

슈마허는 노동을 하는 이유가 당장의 생활에 필요한 재화와 서비스를 구하는 데만 있다고 보지 않았다. 그보다는 누구나 마음에 흡족한 일을 함으로써 이 지상에서의 무상한 삶에 생기를 불어넣고, 그리하여 자유로운 영혼이 되어 다른 사람들과 함께 즐겁게 살아가는 데 있다고 보았다. 노동이란 인간이 지상의 나그네로 머물다 가는 짧은 생애 동안 자신의 삶이 하나의 아름다운 공예품이 되도록 공들이는 작업이라고 보았다. _p.82

 

가끔 머리가 복잡할 때는 TV에 나오는 예능 프로그램을 멍하니 본다. 그러면서 나도 모르게 중얼거린다. 저렇게 즐겁게 일하면서 돈도 많이 벌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물론 방송인들도 나름대로 고충이 있겠지만 일반 샐러리맨들보다야 즐겁게 일하는 건 사실이니까. 박봉은 둘째치고 범죄를 종용하는 상사 때문에 남동생이 회사를 그만두려고 한다. 데이터 수치를 거짓으로 보고하여 계약 당사자로부터 더 많은 지원금을 타내는 짓을 시키는 상사와 계속 트러블을 일으키다가 결국은 일을 그만두기로 한 모양이다. 도대체 노동이란 것이 이렇게나 사람을 밑바닥으로 몰아치는구나 싶어 퇴직을 한 아버지도, 평생 주부로 산 엄마도 그리고 15년째 일을 하고 있는 나도 우울한 상태다. 먹고 살기 위해 하는 일이 내 영혼을, 우리 가족의 화목을 갉아먹고 있다고 생각하니 그저 허무한 마음뿐이다. 슈마허의 말처럼 다 함께 즐겁게 일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내가 이 세상에서 만드는 단 하나의 아름다운 공예품이 되도록 노동을 할 수 있다는 건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지금의 내겐 노동은 가장 큰 숙제다.

 

# 웬델 베리

 

베리는 집에 머무는 법을 배우라고 한 까닭은 나무건 사람이건 친숙한 터전 없이는 평화로운 삶을 살 수 없기 때문이다. 낯선 방문객에 대한 환대는 우리의 영혼이 친숙한 세계에 둘러싸여 있을 때라야 가능하다. 이주와 탈주가 마치 정기 건강검진처럼 강요되는 지금과 같은 시대에는 어쩌면 베리처럼 농부가 되어 한곳에 오래 붙박고 사는 것이 가장 절박한 저항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베리는 집에 머무르라고 말한다. _p.100

 

블레이크는 좋은 양식이란 그물과 덫 없이 얻는 것이다라고 하였고, 베리는 보통 농부는 곡식을 키우지만 뛰어난 농부는 흙을 키운다라고 하였다. 베리는 식량은 무기다라는 불경스러운 말이 암시하듯 현대의 농산업과 무기사업은 결국 한통속이라고 비판하였다. 실제로 녹색혁명의 토대가 된 각종 제초제, 비료제, 살충제는 앞서 레이첼 카슨도 지적했듯이 독극물을 만들던 전쟁기업이 2차 세계대전 이후 찾아낸 새로운 시장이었다. _p.109

 

추석때 부모님과 차를 타고 고향 근방 이곳저곳을 다녔다. 산에서 밤도 줍고 노랗게 익은 벼들로 가득한 들판도 실컷 보았다. 정직하게 땅을 일군 농부들의 결실과 자연이 주는 넉넉함에 마음까지 평화롭던 잠시였다. 하지만 타지로 자식들을 내보낸 부모들은 자식들이 자신들처럼 고생스럽게 농사를 짓기를 원하지 않는다. 자식들이 도시에서 뿌리내려 살기를 바란다. 그리고 어느덧 대를 더하다보면 더 이상 찾을 고향집도 사라진다. 그게 지금 우리의 삶이다. 베리의 말대로 끊임없이 이주를 강요하는 사회에서 한 곳에서 오래 정착하는 것이 저항의 한 방법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도 고향에 내려가 부모님 곁에 살고 싶은데 부모님이 그걸 꺼리시니 나는 산업사회와 자본주의에 대한 저항에 앞서 부모님께 먼저 저항을 해야할 판이다. 낮에 봤던 <리틀 포레스트> 영화가 그저 꿈만 같다.

 

# 마흐무드 다르위시

 

불의가 넘치는 시대에 시는 과연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다르위시는 영국과 이스라엘의 반복된 점령으로 삶이 모두 부서져나가 이제는 한 치 앞도 알 수 없게 된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그들이 그토록 목말라하던 일상의 정의를 되찾아주었다. 바로 다름 아닌 시를 통해서 _p.123

 

시인들이 아름다운 언어로 저항의 노래를 불러주지 않는다면 약자들에게 희망이라는 행운은 찾아오지 않는다. 왜냐하면 정치가들은 혀의 말을 하지만 작가들은 심장의 말을 하기 때문이다. 존 버거가 사랑한 팔레스타인의 시인 다르위시는 이렇게 읊었다. “내 말이 밀알일 때 나는 대지가 되고, / 내 말이 분노일 때 나는 폭탄이 된다. / 내 말이 바위일 때 나는 강물이 되고, 내 말이 꿀로 변할 때 내 입은 파리 떼로 덮이게 된다.” _p.143

 

민중에게는 군인보다 정치인보다 존경하고 사랑할 수 있는 한 명의 시인을 갖는 게 더 행복한 일이라는 걸 이 시인을 통해서야 알게 되었다. 이름은 들어봤어도 읽어본 시는 제대로 없었는데 이 책을 통해서 그의 시를 조금이라도 만나보니 그가 얼마나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는지 자연을 사랑하는지 그래서 팔레스타인이 처한 현실을 얼마나 가슴 아파 했는지 절로 와 닿았다. 평생 민족과 나라를 위해 자신의 생애를 받쳐온 한 시인의 숭고한 삶을 통해 진정한 시인이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를 생각해 보게 된다.

 

# 존 버거

 

영국의 작가 존 버거는 눈을 아래로 돌려 평생을 이런 폭력에 주목하였다. 어디를 보느냐에 따라 같은 그림도 다르게 보이는 법이다. 눈을 들어 도시의 화려함과 중산층의 세련된 삶을 보는 것과 눈을 돌려 비루한 곳에서 그림자로 살아가는 빈민과 이주민들의 삶을 보는 것은 다를 수밖에 없다. 전자는 쉽게 눈에 들어오지만 후자는 보이지 않기에 보는 법을 새롭게 익혀야만 한다. _p.152

 

버거가 자연과 예술이라는 두 렌즈를 갈고닦아 명징하게 보고자 한 것은 희망과 절망이라는 두 날실과 씨실로 짜여진 현실이었다. 쳐다보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들여다보는 것은 의지가 필요하며, 이렇게 의지로 바라보게 되면 사물에 대해 어떤 관점을 갖게 된다. 아래로부터의 관점이든 위로부터의 관점이든 한 가지 관점을 견지한다는 것은 정치적인 행위이다. 버거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앞으로도 갈 수 있고 뒤로도 갈 수 있지만 양쪽을 다 편들 수는 없다.” 라고. 우리가 어느 편에 서느냐에 따라 보이는 풍광이 달라지는 것은 물론이다. 이렇듯 본다는 것은 정치적인 행위이기에 우리는 성찰해야 한다. 살면서 무엇을 보고 어떻게 볼 것인지를. _p.153

 

작년에 존 버거가 도시를 떠나 살고 있는 시골 퀸시의 삶을 다큐로 만든 <퀸시의 사계: 존 버거에 관한 네 편의 초상>을 봤다. 영화배우 틸다 스윈턴과 함께 찍은 것인데 시골 중에서도 시골인 퀸시에서 단순한 삶을 살아가는 존 버거가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버거는 사람들과 떨어진 그곳에서 오히려 세상의 이치를 더 잘 알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하루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나 자신조차 들여다볼 시간이 없는 이런 각박한 삶에서 벗어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다른 삶을 꿈꿀 수도 있을 텐데... 왜 그럴 용기가 나지 않는지... 정말이지 우리에게 필요한 건 앎이 아니라 행동이란 생각을 존 버거의 삶을 보며 다시 한번 깨닫는다.

 

# 아룬다티 로이

 

그렇다면 보이지 않는 운명의 끈을 어떻게 볼 수 있을까? 앞서 존 버거가 본다는 것이 정치적인 행위임을 설명했다면 인도 작가인 아룬다티 로이는 그물망의 가장 보이지 않는 고리에 주의를 기울인 작가라고 할 수 있다. 별이 쏟아지는 광활한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모래알처럼 미미한 자신의 존재를 되짚어본 사람이라면 운명의 불가해성과 신비로움에 대해 오로지 알 수 없다는 탄성을 질러본 적이 있을 것이다. ‘라는 한 작은 존재가 얼마나 무수한 많은 다른 존재들과 함께하고 있는지, 그 작은 저마다의 운명이 어떻게 서로 연결되어 있는지, 그리고 여전히 우리 존재의 의미는 얼마나 불확실한지, 또 존재들 간의 연결 고리는 얼마나 부서지기 쉬운지 감탄한 적이 있을 것이다. 어떤 존재건 일단 깊이 들여다보게 되면 우리와 연결된 고리를 쉽게 잘라낼 수 없다. 가령 맑은 강물을 들여다본 사람이라면 그 물 속에 시멘트를 쏟을 수 없을 것이다. 나무가 자라는 것을 두고두고 지켜본 사람이라면 그 나무를 베어내지 못할 것이다. 또 죽어가는 동물의 눈을 오래 들여다본 사람이라면 결코 덫을 놓을 수 없을 것이다. 보이지 않는 고리를 본 뒤에는 결코 다른 존재의 고통과 슬픔에 대해 눈을 감을 수 없게 된다. 로이는 바로 이처럼 보이지 않는 연약한 존재의 연결 고리들을 놀랍도록 뛰어난 마술적 상상력으로 볼 수 있게 해준 작가이다. _p.179~180

 

큰 것들에 떠밀려 어디로 가야 할지 길을 잃어버린 시대에 로이는 뛰어난 상상력으로 들려준다. 우리가 삶에서 놓친 것은 돈과 권력이 아니라 실은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천천히 기어가는 애벌레, 빗방울이 떨어지는 강물, 푸르른 창공을 날아가는 새, 별빛과 달빛, 이런 작은 것들임을. _p.197

 

본 대로 쓰고 쓴 대로 행동한다고 말했던 로이의 글은 그래서 읽고 나면 절로 공명(共鳴)하게 된다. 내가 아는 그 어떤 작가보다도 행동파인 로이의 글은 그래서 읽다보면 머리뿐만 아니라 가슴까지 뜨거워진다. 당장이라도 뭐든 해야할 것만 같은 의지가 불끈 솟아오른다. 자연을 망가뜨리고 개발만을 추구하는 인간들의 짓거리로 지구의 몸살앓이가 느껴져 무서워지기까지 한다. 세상을 세심하게 들여다보면 아픔과 불행, 슬픔과 비참이 가득한 이 시대에 로이의 말처럼 작가로 산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그렇기에 더욱 살아 있는 언어로 세상의 부조리와 불의를 널리 알려야 한다는 사명감이 작가에게는 필요하다는 걸 몸소 보여주며 실천하고 있는 로이. 그녀의 칼춤같이 예리하면서도 아름다운 글을 오래오래 읽고 싶은 마음뿐이다.

 

# 헨리 데이비드 소로

 

소로는 남부의 노예제와 문명 발전의 최대 상징인 철도 주변에 늘어선 판잣집이야말로 바로 미국이 추구한 현대적 개선때문에 생긴 결과임을 알아차렸다. 남부의 흑인 노예와 철로 변에 사는 아일랜드 사람들의 비참한 상태는 빈곤이 문명과 공존할 뿐 아니라 나아가 어느 한쪽의 빈곤이야말로 다른 한쪽의 발전에 기여함을 보여준다. 흔히 경제성장 하면 초고층 빌딩만 떠올리지만 그 마천루와 함께 존재하는 슬럼 역시 경제성장의 산물이다. _p.210

 

소로가 누린 마음의 평화와 평온함은 미래를 위해 은행에 쌓아둔 저축이 아니라 당장 오늘 누리는 자연과의 친교, 계절과의 우정, 고독과의 조우에서 나온 진정한 부덕분이었다. _p.216

 

월든이라는 작품을 통해 시대를 넘어 국경을 초월해 많은 사람들에게 소박한 삶, 자급자족하는 삶이 진정한 행복이라는 것을 몸소 보여준 사람 소로. 그러면서도 미국의 노예제를 비판하며 양심과 도덕을 국가의 법보다 더 우위에 놓으며감옥행도 마다하지 않았던 저항의 산 증인. 가난하고 외면 받는 사람들을 위하여 자신의 뜻을 펼치고 정부를 향해 저항을 꾸준히 할 수 있었던 소로의 에너지는 바로 자연에서 나온 게 아닐까 싶다. 자연이 우리에게 주는 것은 비단 식량뿐만이 아니다. 우리가 인간답게 살아가기 위해 저항할 수 있는 소중한 에너지도 함께 주고 있다. 소로를 통해 다시 한번 자연의 힘을 믿게 된다.

 

# 시적 이야기가 풍성한 아름다운 글

 

시는 잘 쓰기 어렵다. 절박한 문제의식이 없으면 감상적이 되기 쉽고, 문제의식이 넘치면 선동적이 되기 쉽다. 상상력이 무디면 상투적이 되고, 너무 과하면 공감하기 어렵다. 복잡한 현실을 뛰어난 상상력으로 직시하면서도 민중의 분노와 슬픔을 노래하는 그런 훌륭한 시인을 갖는다는 것은 어느 한 시대, 어느 한 민족의 운명을 가장 정의롭게 이끌어줄 예언자를 갖는 것과 마찬가지로 큰 힘이 된다. _p.123

 

이 책에서는 저자가 말하는 훌륭한 시인의 시들을 적절한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시인의 섬세하면서도 예리한 상상력이 아름다운 언어로 사람의 마음을 울릴 수 있다는 걸 이 책에 실린 시들이 증명해준다. 자연을 사랑하는, 인간을 사랑하는 그래서 변해가는 세상을 안타까워하고 통탄해하는 시인들의 마음이 힘들고 지친 우리를 위로해 주며 때로는 꾸짖기도 한다. 척박한 우리의 삶이 시적으로 변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이 책에서 보게 되었다. 미래에 끌려갈 것이 아니라 현재를 즐기라는 당연한 이치를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 저자가 영문학을 전공하고 영문학을 가르쳐서인가 글 곳곳에서 단어의 어원과 그 어원이 지금 어떻게 다르게 변질되었는지 하는 등의 재미난 이야기들이 넘쳐난다. 우화는 물론 그리스 신화와 여러 이야기들도 읽는 재미를 더한다. 정말이지 가까이 곁에 두고 몇 번을 곱씹어 읽을 책이다. 오래오래 내 책장에 남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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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8-09-30 23: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며칠 전에 앞쪽 얼마만큼을 읽다가, 어쩐지 ˝아직 이 책을 읽으면 안 돼˝ 하는 강력한 예감이 들어서 고이 반납했었어요..... 이 책을 다 읽으면 분명 이쪽 방향으로 또 관심사가 분산되서 이도 저도 아닌 독서판이 될 것 같은 예감?? ㅎㅎㅎ

뭔가 슬프네요. 읽게 될 것 같아서 읽지 않는다니.

설해목 2018-10-01 00:00   좋아요 0 | URL
읽으셨다면 syo님의 남은 올해 독서는 분명 생태작가들의 책으로 가득했을 거란 확신이 드네요. ㅎㅎ
저는 당분간은 이 책만 반복해서 읽으며 내면을 생태 마인드로 바꿔볼까 합니다. ^^

뒷북소녀 2018-10-01 17:48   좋아요 1 | URL
우와! 저 리뷰 읽고 바로 장바구니에 담아뒀어요. 그런데... 이 책을 읽고나면... 읽고 싶은 책들이 너무 많아질 거 같아서...syo님 덧글에 깊이 공감합니다.^^

설해목 2018-10-01 17:52   좋아요 0 | URL
뒷북소녀님아.... 우선은 요 책만 읽어도 머리와 가슴에 전해지는 어떤 전율을 느낄거라는...^^
그리고 마음에 드는 작가들부터 한 명씩 읽어나가도 좋을 듯해..^^
암튼 이 책 강추 강추!!

2018-10-04 08: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10-04 10: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느낌의 0도 - 다른 날을 여는 아홉 개의 상상력
박혜영 지음 / 돌베개 / 2018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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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가을날 단 한 권의 책만 골라 읽으라고 신이 내게 명령한다면, 나는 주저없이 이 책을 선택할 거다. 아름다운 문장들 켜켜이에 자리잡은 묵직한 울림. 저자의 글도 저자가 소개하는 생태작가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도 오래오래 가슴 속에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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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쟝쟝 2018-10-19 00: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ㅠㅠ 읽을 책 많은데 엄청 읽고 싶어지네여...

설해목 2018-10-19 09:24   좋아요 1 | URL
이 책 읽고나면 읽고 싶은 책이 더 많이 늘어날지도 몰라요. ㅋㅋ
그래도 읽어보라고 추천하고 싶은 책입니다. ^^

공쟝쟝 2018-10-19 09:55   좋아요 1 | URL
이 황홀한 독서의 감옥 ㅠ..! 머지않은 날 꼭꼭 읽어볼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