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저녁이 저물 때
예니 에르펜베크 지음, 배수아 옮김 / 한길사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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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성의 일생을 겹겹이 에워싸고 있는 세계의 역사를 이렇게 간결하면서도 강렬하게 그려낼 수 있다니... 독특한 서사와 짧지만 인상적인 문장들로 더욱 집중하며 읽게 되는 매력까지! 작가의 다른 책들도 찾아 읽어보고 싶을 정도로 여러 면에서 인상적으로 남은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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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8-12-21 14: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일찌감치 사서 읽기 시작
은 했는데 미처 다 읽지 못했네요...

다시 읽어야 하나 싶네요.

한길사에서 미는 책 같습니다.

설해목 2018-12-21 14:50   좋아요 0 | URL
밀만한 책인 것같더라구요. 서사도 그렇고 이야기도 그렇고 꽤 집중해서 며칠 동안에 읽었네요.
다행히 작가의 <늙은 아이 이야기> 구입해 놓은 게 있어서 바로 이어서 읽어보려구요. ^^
 
마음을 다쳐 돌아가는 저녁
손홍규 지음 / 교유서가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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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도 좋지만 산문에서 더욱 진득하고 깊숙한 마음을 알게 되는 그런 작가라고나 할까. <다정한 편견>도 좋았는데 이번 산문집은 더 좋다. 겨울 저녁이면 때때로 생각날 그런 글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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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8-12-21 09: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손홍규 작가에 대한 잡음이 생각보다 이곳 알라딘 마을에서는 많이 알려지지 않은 듯 하네요. 손 작가가 대산대학문학상 심사위원으로 활동했을 때 자신의 제자를 대산대학문학상 수상자(성희롱 가해자)로 결정했고, 수상 발표 전에 미리 제자의 출품작을 합평하기도 했어요.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1&aid=0010530943

설해목 2018-12-20 18:05   좋아요 0 | URL
이런 일이 있었군요. 심사위원도 당선자 자체도 문제가 좀 있었나 봅니다. 신춘문예도 그렇고 공모전 심사에 있어 심사위원과 응모자들에 대한 의심은 좀체 사그라들지 않네요. 얼마전 저는 정세랑 작가가 인터뷰한 글에서 공모전에 대한 뒷이야기를 봤거든요. 손홍규 작가 글은 좋은데...이런 잡음은 좀 아쉽긴 하네요.
 
비상문 테이크아웃 10
최진영 지음, 변영근 그림 / 미메시스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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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을 먼저 읽은 친구가 내가 읽어보며 좋겠다며 선물로 책을 보내주었다. 다른 친구들이 아닌 왜 내게 이 소설을 읽어보라고 했을까 싶어 펼쳤는데... 첫 문장을 읽으니 친구의 마음을 알 것 같았다. 신우처럼 내게도 더 이상 나이를 먹지 않는 동생이 있으니까... 영원히 서른아홉 살의 모습으로 기억될 가족이 있으니까... 동생 신우를 잃은 화자처럼 나도 어떤 이유든 찾아내어 그것이 납득이 되어야만 더는 누구도 원망하지 않을 테니까...

 

짧은 한 편의 소설이라 한숨에 읽어내려 갔다. 읽는 동안에는 그냥 내가 소설을 읽고 있다는 무덤덤한 자각 정도만 들었을 뿐이다. 옥상에서 뛰어내린 신우에게도 동생이 왜 죽었는지 몰라 방황하는 형에게도 내 감정을 쉽게 교차시킬 수 없었다. 그저 작가의 문장이 예사롭지 않구나, 이 작가가 세계를, 삶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알 것 같기도 하다 정도의 감상만 들었다. 그런데 소설을 읽고 잠들려고 누운 그 밤 이후로, 형이 자살한 신우에게 품게 된 의문과 미움, 죄책감과 원망 등이 뒤섞인 소용돌이의 진동이 내 가슴에도 파문이 되어 밀려오는 게 아닌가. 동생을 저세상으로 보내고도 덤덤하게 잘 지내고 있다고 믿었는데... 그렇지 않다는 걸 알게 되었다.

 

왜 그랬을까. 우리 가족이 짐작하는 그 이유 때문이었을까. 정말로 그게 다 인걸까. 너는 신우보다도 더 가족이 많은데 신우네와는 다르게 너는 가족들과 사이도 좋았는데 그 순간에 가족들 생각은 정녕 떠오르지 않은 걸까. 왜 네가 마지막으로 통화한 사람이 가족 중 한 사람이 아니라 친구였을까. 너에게 부모는, 형제자매는, 남편은, 아이들은 아무것도 아니었던 걸까. 도대체 우리가 무얼 놓친 걸까. 너를 놓치기 전에 알아채야했던 건 뭘까. 한번 묻기 시작한 질문은 끝이 없다. 대답해줄 사람은 정작 아무 말도 할 수 없는데도... 남겨진 사람들은 서로에게 묻는 것조차 상대에게(그게 가족이라 할지라도) 상처가 될까봐 그저 각자 스스로에게 묻고 스스로가 답하며 그렇게 미련 없이 떠난 너를 조금이라도 이해해보려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자살이 어때서. 자기를 죽이는 게 뭐 어때서. 다들 조금씩은 자기를 죽이면서 살지 않나? 자기 인격과 자존심과 진심을 파괴하고 때로는 없는 사람처럼, 죽은 사람처럼, 그러지 않나? 그렇게 사는 게 죽는 것보다 끔찍할 수 있다. 그럼 죽을 수 있지. 죽는 게 뭐 이상해. 자살이라고 달라? 남을 위해 죽을 수 있다면 자기를 위해 죽을 수도 있지. 자기를 구원하는 방법이 죽음뿐인 사람도 있지. _p.48

 

신우를 미워하지 않기 위해 신우의 자살을 이해하려는 것인지도 모른다. 미워하고 싶지 않다. 욕이라도 해주고 싶다. 죽지 말았어야 했다. _p.54

 

혼자이던 언니나 동생과 달리 가족이 있기에 쓰러지신 아버지에게 바로 달려오지 못한 채 울면서 동생이 핸드폰에 적었던 글을 동생이 떠나고 나서야 보게 되었을 때 알았다. 동생은 가족에게 그것도 감사하고 걱정되는 마음조차 말로 표현하지 못하고 혼자 일기장에 적는 사람이라는 걸. 무엇이든 혼자 간직하고 삭히는 사람. 그런 동생이 남편과 아이들과 떨어져 외지로 발령이 났을 때 겪었을 고통을 우리 가족은 너무 안일하게 생각했던 건지도 모르겠다. 오죽 했으면 남에게 아쉬운 소리를 죽기보다 싫어하는 동생이 장에게 승진도 필요 없으니 아프신 시아버지와 어린 아이들의 문제가 조금 해결될 때까지 만이라도 몇 년 더 가족과 있을 수 있게 해줄 수 없겠느냐는 글을 올렸을까. 그리고 그 간청이 묵살되고, 추운 겨울날 우리나라에서 제일 춥다는 그 도시에 가서 혼자 지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부임한 직장의 사람들 텃새에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며 동생은 얼마나 춥고 외롭고 힘들었을까. 그 도시로 간 후 떠나는 그날까지 춥다고 추워서 견딜 수가 없다고 말하는 동생의 그 간절한 외침을 왜 우리 가족들은 알아채지 못했을까. 조금만 견디면 나아질 거라는 모두의 격려와 충고가 동생에겐 죽으라는 말밖에 되지 않았던 거라 생각하면 당장이라도 이 혀를 잘라버리고 싶다. 마지막 통화를 한 친구에게 나만 없어지면 다들 행복할거라던 동생의 말은 사는 내내 우리 가족의 심장에 박혀 있을 것이다. 남에게 약한 모습을 보이느니 차라리 죽음을 택한 동생의 선택을 곱씹으면서 이해하려 하면서 살아가는 게 남은 가족이 할 수 있는 전부일지도... 화나고 밉고 원망하는 마음을 흘려보내고 불쌍하고 그립고 안타까운 감정만을 남겨놓기 위해서라도 나는 더 열심히 동생의 삶을 생각하려 한다. 이해하려 한다.

 

난 정말 아는 것도 없으면서 사람들이 죽을까 봐 걱정만 한다. 걱정을 진통제처럼 소비한다. _p.64

 

별일 아니다. 어쨌든 죽는다. 부모님도 나도 죽는다. 신우는 조금 일찍 죽었을 뿐이다. _p.48

 

동생이 떠나고 우리 가족에게 남은 후유증은 많고 많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큰 후유증은 서로의 안위에 대한 지나친 걱정이다. 부모님도 나도 막내동생도 뜻밖의 시간에 가족의 전화를 받게 되면 덜컥 겁부터 난다. 이번엔 무슨 일이지? 누구에게 문제가 생긴 거지? 동생의 죽음을 알리던 통화의 충격을 다들 잊지 못한 채 후유증처럼 달고 살고 있다. 수화기 너머로 통곡하던 부모님의 울부짖는 소리를 어떻게 지워낼 수 있을까. 그날 이후로 우리 가족은 아침저녁으로 서로의 안부를 묻는다. 혹여 전화를 받지 않거나 문자메시지에 답장이 없으면 심장이 두근거려 하던 일에 집중을 하지 못할 정도다. 가족이 있는 곳에서도 죽을 수 있었는데 하물며 혼자 있는 자식들에게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른다며 부모님은 하루 종일 걱정을 달고 계신다. 사람은 당연히 죽는 거고 죽는 데는 순서가 없다는 걸 분명히 잘 알고 있는데도 죽음에 대한 공포가 죽음을 통해 더 생생해졌다. 적어도 우리 가족에겐...

 

한국은 세계적으로 자살률 1위 국가라는데 내 주변에 자살한 사람은 내 동생뿐이다. 다들 다치거나 아프거나 늙어서 죽는데 내 동생은…… _p.13

 

2년 전쯤인가 ebs 다큐프라임 <감정시대>에서 방영되었던 너무 이른 작별을 볼 때만 하더라도 자살이란 나와는 거리가 먼 죽음이었다. 아니 죽음 자체가 거리가 멀었다고 하는 게 맞겠다. 유가족이 되는 것도 남의 일처럼 생각되었는데 하물며 내가 자살 유가족이 될 줄이야...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내가 동생을 욕보이고 있는 건 아닐까 조심스럽고 죄책감이 들기도 한다. 친척들은 지금까지도 동생이 사고로 죽은 줄 알고 있다. 나 역시 처음에는 친구들에게 그렇게 동생의 죽음을 알렸다. 장례식에는 우리 가족 외에는 어떤 친척도 부르지 않았다. 그 죽음이 이해가 안 되어 사십구재도 지내지 않았다. 그저 나는 혼자 집에서 108배를 하며 동생의 명복을 빌었다.

 

너무 이른 작별다큐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벌써 10년 넘게 자살률 1위인 나라인데 그렇다면 자살 유가족도 상대적으로 많은 나라일 텐데도 유가족들은 자살에 대한 편견 때문에 죄인처럼 조용히 숨어 지내고 있다고 한다. 가족을 지켜내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자살은 오롯이 가족의 책임이라는 편견 뒤에서 온갖 감정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있는 나같은 유가족들이 얼마나 많을지... 엄마 아빠는 결혼 후 평생을 사셨던 동네를 떠나고 싶어 하신다. 친척이며 지인들 모두 사고사로 알고 있는데도 당신들의 죄책감과 절망 때문에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숨고 싶어 하신다. 그러지 말라고 남들의 이목 따위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씀드려도 아직까지는 사람들과 만나 어울리는 것이 힘드신 것 같다. 동기간을 잃은 것과 자식을 잃은 것은 그 아픔과 슬픔의 무게가 다를 테니 그런 부모님을 그저 지켜보는 수밖에...

 

징후도 없었고 유서도 남기지 않았다. 아주 사소한 메모 하나도 나오지 않았다. 남겼는데 알아보지 못하는 걸 수도 있다. 난 동생이 풀던 문제집이나 교과서를 하나도 버리지 않았고 요즘도 자주 들춰 본다. 거기 뭔가가 있을지도 모르니까. 교과서 귀퉁이에 적힌 짧은 메모라도 단서가 될 수 있으니까. 유서조차 남기지 않은 자살이라니. 고통스럽다. 살아 있는 모든 사람에게 복수하는 것만 같다. 우린 죽을 때까지 동생이 남긴 숙제를 풀어야 한다. 언젠가는 답을 알게 될까?_p.11

 

몇 해 전 학교 폭력(왕따) 문제로 자살한 고등학생의 사건을 사무실에서 맡아서 소송을 한 적이 있다. 한 명은 남학생이고 또 한 명은 여학생이었는데 두 사람 모두 남긴 유서가 없어 명확하게 가해자를 가려내고 죽은 이유와 학교폭력과의 관계를 밝히는 게 쉽지만은 않았다. 사건이 일단락된 후 변호사와 그런 말을 나눈 적이 있다. 그렇게 죽을 거면 남은 가족을 위해서라도 유서를 남길 것이지... 이유를 알지 못하는 죽음이, 이해할 수 없는 죽음이 남은 가족들에게 얼마나 큰 고통인지... 죽은 당사자들은 미처 생각 못했을 거다. 그런 생각까지 할 수 있었다면 자살하지 않았을지도... 동생 역시 유서를 남기지 않아 그저 가족들은 짐작만 할 뿐이다. 남겨질 가족에게 어떤 당부라도 해주었더라면 그 뜻을 받들어 좀 덜 죄책감을 느끼며 덜 고통스러워하며 살지 않을까 그런 부질없는 생각도 종종 한다.

 

소설과 함께 실린 변영근의 그림을 찬찬히 보았다. 그림에 쓰인 이 색감을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까. 시퍼렇게 가슴에 멍이 들었다고 할 때의 그 파랑을 떠올리면 된다고 해야 할까. 푸르죽죽하게 변해버린 마음 같다고 할 때의 그 푸름을 떠올리면 된다고 해야 할까. 입술이 파랗게 질려 덜덜 떨고 있던 동생의 마지막 모습을 떠오르게 하는 색이라고 해야 하나. 좋아하던 파랑이 이렇게 차갑고 서늘하고 어둡고 칙칙하고 아프게 느껴질 날이 올 줄 어찌 알았을까.

 

비상문이라는 제목을 곰곰이 생각해 봤다. 신우 인생에 갑작스레 어떤 재난 같은 일이 닥쳤다면 그랬다면 신우는 재난을 피하기 위해 허겁지겁 비상문을 열고 자신에게 닥친 일들을 해결해가며 삶을 이어나갔을까. 죽음을 선택하는 대신... 지하철 2호선을 타고 출퇴근 하는 동안 전철에서 사람들과 매일 부대끼며 드는 생각은, 동생도 이렇게 사람들과 몸과 몸으로 부대끼며 치열하게 살아가는 사람들 틈에서 생활했다면 그랬다면 좀 다른 선택을 하지 않았을까 하는 거다. 너에게 일어난 일은 정말이지 다른 사람들에게는 걱정거리조차 되지 않는 일이라고... 하지만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몫은 저마다 다르다는 걸 모르지 않으니 애써 부질없는 생각을 털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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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17 14: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12-18 09: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blanca 2019-08-07 07: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글을 읽어내려가다 보니 비 오는 오늘 너무 마음이 아프네요. 살면 살수록 그냥 남의 일들로만 여겼던 일들이 나의 경험이 되더라고요. 그리고 그것의 대부분은 상실인 듯합니다. 나날이 어른이 되어간다는 게 이런 건가 싶은 한숨이 늘어갑니다. 어렵게 쓰신 글 잘 읽고 갑니다. 동생분의 명복을 빕니다...

설해목 2019-08-07 09:09   좋아요 1 | URL
정말로 그런 것 같아요. 어른이 되어갈수록, 나이를 먹어갈수록 다른 어떤 경험보다 상실의 경험이 나 자신을 부쩍 철들게 하는 것 같습니다. 겪지 말았으면 좋았을 것 같은 그 경험들이 결국 저를 조금 더 자라게 하는 것 같기도 하구요.
따뜻한 글 감사합니다. blanca님... 님의 댓글 덕분에 오늘은 간만에 동생 사진을 꺼내볼 것 같습니다.
 
내가 얼마나 많은 영혼을 가졌는지 - 페르난두 페소아 시가집 대산세계문학총서 150
페르난두 페소아 지음, 김한민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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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의 제목이 강렬해서일까 한편 한편 시를 읽어가면서 나도 모르게 영혼(포르투갈어로 alma라고 쓰고 아우마라고 읽음)이란 단어에 동그라미를 쳤다. 다시 한번 읽을 때는 동그라미를 친 영혼에 번호를 매겼다. 그래서 페루난두 페소아가 페소아란 자신의 이름으로 쓴 시들을 묶은 이 시가집에 영혼이란 단어가 몇 개인지를 알게 되었다. 70개를 웃도는 이명을 가진 페소아였지만 이 시가집은 페소아가 창조해낸 이명보다 조금 더 적은 수의 영혼을 품고 있다. 영혼이란 하나의 단어로 쓰였지만 각 시들에 쓰인 영혼은 그 수만큼이나 저마다 다른 무게와 모양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 누구도 아닌 바로 페소아가 쓴 시들이니...

 

수많은 이명을 사용한 것으로 유명한 페소아의 이력을 아는 독자라면 내가 얼마나 많은 영혼을 가졌는지란 제목을 내가 얼마나 많은 이명을 가졌는지라고 오독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하지만 옮긴이의 해설에 따르면, “‘이명의 상대 개념이라 할 수 있는 본명이라는 용어를, 페소아는 본인의 이름으로 서명한 시들을 썼고 그런 시들을 모아놓은 것이 이 시가집이니, ‘영혼 = 이명이란 오독은 잘못 읽어도 한참 잘못 읽은 것이 되어버렸다. 그렇지만 수많은 이명으로 썼든 페소아란 이름으로 시를 썼든(옮긴이의 해설에 따르면 페소아는 몇몇 글에서는 페소아란 자신의 본명조차도 마치 또 한 명의 이명처럼 취급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 모든 시를 쓴 장본인은 다름 아닌 페소아이니 수많은 이명들을 페소아의 수많은 영혼과 연결 지을 수도 있지 않을까. 무식한 독자는 이렇게 또 궁시렁 궁시렁거릴 뿐...

 

페소아의 시는, 20세기의 인간에 대한 매우 복잡하고 고통스럽고 비극적이지만 동시에 명쾌하고 냉정한 분석이다. 그는 조롱하고 또 조롱당하며 고뇌하는 사람으로서 자신의 진리와 심술 속에서, 역설의 남용 속에서, 이미 아이러니하게 활용된 격언과 정반대되는 것을 아이러니하게 주장할 수 있는 능력 속에서, 20세기의 가장 혁명적인 시를 구현했다. _ 안토니오 타부키, 사람들이 가득한 트렁크중에서

 

시가집이라는 헐거운 형식으로 묶인 여러 시들에서 엿보이는 본명 페소아의 관심사는 실로 다양하다. 존재와 부재, 고정된 정체성에 대한 회의 등 그가 줄기차게 천착해온 주제들 이외에도, 시인이 자신의 민족과 역사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풍부한 문학적 상상력을 동원해 조국의 미래에 대한 비전을 창조적으로 구상해온 결실을 접할 수 있다. , 제도 권력이 되어버린 기존 종교들에 대한 회의가 깊어지면서, 오컬트와 비전(秘傳) 종교 그리고 점성술에서 의미를 구하려고 진지하게 찾아 헤맨 흔적들도 풍부하다. 그러나 그 어떤 관심 분야도, 페소아가 그 하나에만 완전히 닻을 내리게 만들지는 못했다. 페소아답게, 그는 끊임없이 이동하고 정처 없이 부유했다. 1935120일 아돌푸 카사이스 몬테이루에게 보낸 편지의 한 구절이 이 같은 생각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나는 진화하지 않는다. 나는 여행한다." _ 옮긴이의 해설 중에서

 

그렇다. 이 시들은 페소아다운 시들이다. 페소아의 시들에는 명확한 착지점이 없다. 내려앉았는가 싶으면 살짝 부는 바람에도 흔들리기 일쑤다. 마치 그네를 탄 채 시를 읽는 기분이랄까. 땅에서 한 뼘 정도 떨어진 발, 허공을 오르락내리락하며 끊임없이 움직이는 육체, 그리고 눈을 감으면 마치 새가 된 것 같은 영혼. 그래서 내가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시가 별로 아니 아예 없었는지도... 아니 어쩌면 시 자체를 온전히 이해한다는 건 애초에 불가능한 걸지도 모른다. 함축적인 언어에 담아낸 한 사람의 영혼의 떨림을 과연 누가 완벽하게 독해낼 수 있을까. 하물며 하나의 영혼도 아니고 수많은 영혼을 가진 페소아의 시를 이해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니... 그래서 이번 시가집 읽기는 실패이면서 동시에 실패가 아니라고 우겨본다. 완벽한 이해와는 거리가 멀었지만 어렴풋한 느낌은 있었으니까. 그 어렴풋함이야말로 시란 창작물을 읽어내는 핵심이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또 하나. 읽는 이의 현재 상태에 따라 밀도가 달라지는 것이 바로 시가 아닐까 싶다. 사랑은 타이밍이란 말처럼 시 역시 타이밍일지도...

 

<>

 

나의 어두운 시절에

내 안에 아무도 없을 때

삶이 얼마나 주든 갖든

모든 것이 안갯속이고 벽일 때,

 

만약 내가 내 안의 파묻힌 곳에서

한순간 이마를 들어

지고 있거나 떠 있는 태양

가득한 먼 수평선을 바라본다면,

 

나는 다시 살고, 존재하고, 알게 된다.

그리고, 나를 잊게 되는 그 바깥

그것이 비록 환상이라 할지라도,

나는 아무것도 더 원하거나 요구하지 않는다,

나는 너에게 마음을 내준다.

 

<크리스마스 2>

 

크리스마스. 시골에는 눈이 내린다.

단란한 집들 안에서는

하나의 감정이 과거의

감정들을 간직한다.

 

세상으로부터 돌아선 마음,

가족이란 어찌나 진짜인지!

나의 사색은 깊다,

그래서 내겐 향수가 있지.

 

은총으로 얼마나 하얀가,

영원히 못 가질 가정의

유리창 뒤에서 바라본

내가 모르는 풍경은!

 

혼자라는 불안에 떨면서 검사 결과를 기다리고 아파서 병원을 들락거리면서 무언가를 간절히 잡고 싶었고, 집 떠나온 후 거의 매년 혼자 크리스마스를 보냈으며, 가정을 만들지 않기로 결심한 비혼주의자로서 나는 이 두 시를 읽자마자 페소아, 당신 마음이 꼭 내 마음이오라며 시들을 마음으로 와락 안아버렸다. 진짜 가정의 모습이 어떤지 페소아는 알고 있는 것만 같고, 어두운 시절 역시 누구보다 오래 겪었을 것만 같은 페소아의 시에서 전해지는 어렴풋한 동질감이란! 이처럼 지금의 나가 감응할 수밖에 없는 시들을 만나 모서리 귀퉁이를 접어 가며 시를 읽는 시간이란 한 영혼과 마주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물론 페소아의 경우는 하나의 영혼이 아니라 여러 영혼일 수 있지만...

 

여행한다는 것

 

여행한다는 것! 이 나라 저 나라 버리고 다니는 것!

끊임없이 다른 사람이 된다는 것,

영혼에 뿌리가 없기에

오로지 보기 위해서 사는 것!

 

나 자신에게조차 속하지 않는 것!

곧장 나아가는 것, 목적 그리고

그걸 이루겠다는 열망의

부재를 좇는 것!

 

그렇게 여행하는 게 여행이지

단 여정에 대한 꿈 이상은

아무 가진 것 없이 간다.

나머지는 하늘이고 땅일 뿐

 

 

옮긴이의 해설에 따르면 페소아는 1935120일 아돌푸 카사이스 몬테이루에게 보낸 편지에서 나는 진화하지 않는다. 나는 여행한다.”라고 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런 시를 만나면 페소아란 사람이 명확히는 아니어도 어렴풋하게 어떤 사람인지가 그려진다. 이 시가집에 실린 페소아의 연보를 보면 페소아는 어머니의 재혼으로 인해 남아공의 더반에서 산 몇 년을 빼면 거의 일생을 리스본에서 지냈다. 이사를 종종 한 것으로 보이지만 그것 역시 리스본 내에서의 이사였고 여행을 갔었다는 연보는 찾아볼 수 없다. 다만 인쇄기 구입을 위해 포르투갈 동부의 포르탈레그로로 여행을 다녀왔다고는 적혀 있지만, 한 사람의 일생에 있어서 이렇게 여행을 하지 않은 사람도 드물다 할 정도로 페소아는 물리적 이동이 적은 사람이었다. 그런 페소아가 쓴 여행에 관한 시는 그래서 더욱 특별하다랄까. 나 역시 해외여행 한번 한 적 없고 서울과 고향 외에는 국내도 많이 다녀본 적 없는 여행 무능력자로서 이런 시를 만나면 여행이란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이 시가집에서 또 하나 기억에 남는 시가 있는데 바로 리마의 저녁이다. 이 제목은 벨기에의 작곡가 펠릭스 고드프루아의 동명곡이기도 한데 페소아의 가족이 남아공 더반에서 지낼 때 페소아의 어머니가 종종 피아노로 이 곡을 연주했다고 한다. 8장에 이르는 이 장편의 시는 페소아가 죽기 두 달 전에 쓴 시다. 가족들과 함께 살던 유년의 시절을 회상하며 쓴 시인데 페소아도 결국은 죽음 앞에서 가족을 떠올렸던 것일까. 부모 형제와 함께 산 시간보다 혼자 산 시간이 더 길어지고 있는 나는 리마의 저녁을 읽으면서 절로 고향집이, 엄마가 떠올랐다. 제목도 그러하거니와 시 역시 저녁을 닮은 느낌이라 실제 곡은 어떨까 싶어 찾아서 들어봤는데 곡은 의외로 씩씩하고 힘차서 좀 의아했다.

 

이 시가집에는 영혼이란 단어도 참 많이 나오지만 꿈과 영원이라는 단어도 자주 마주치게 된다. 환상이라는 단어도 종종 보인다. 모두 만질 수도 볼 수도 없는 한마디로 실체가 없는 것들이다. 너무나 크고 깊으면서도 불확실하여 쉽사리 잡아채지지 않는다. 페소아의 시가 내겐 꼭 이 단어들 같다. 크고 깊고 무엇보다 불확실해서 감히 닿았다고 말하는 것이 조심스럽다. 그러면서도 어렴풋하게 느껴지는 그 무엇이 있다. 페소아의 시에는... 영혼, 영원, , 환상이 그러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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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8-11-01 16: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중고서점에서 지금 페소아 작가의 책을
노리고 있는데 안 풀리네요 :> 좀 더
기다려야 하는 걸까요.

<불안의 책>은 한 번 도전해 보고 싶네요.

아무래도 수중에 넣기 전에 도서관을 이용
해야지 싶네요.

설해목 2018-11-01 17:01   좋아요 0 | URL
시는 호불호가 있을 수도 있지만 <불안의 책>은 제 주위 친구들은 전부 좋다고 하더라구요.
그냥 고독한 한 남자의 중얼거림같은 책이라고나 할까....
페소아처럼 중고도서를 잘 안풀리는 작가들이 더러 있는 것 같아요.
취향은 저마다 다르니까 혹시 모르니 도서관 이용 후 구입을 추천드립니다. ㅎㅎ
 
아이 러브 디스 파트
틸리 월든 지음, 이예원 옮김 / 미디어창비 / 2018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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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 소녀 엘리자베스와 레이는 다른 소녀들처럼 우연한 기회로 친해지게 된다. 같이 이어폰을 나눠 낀 채 음악을 듣고 서로의 마음속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둘의 우정은 어느새 사랑으로 커져가고 남들에게는 말할 수 없는 두 사람의 관계로 인해 10대인 두 소녀의 마음은 흔들린다. 결국 레이가 엘리자베스에게 몇 곡의 음악을 메일로 보내는 것으로 두 사람의 관계는 끝난다. 하나의 이어폰으로 같이 음악을 들으며 자신들이 좋아하는 부분을 이야기하고 서로의 시간과 감각, 감정을 공유하고팠을 두 소녀는 이제 다른 공간에서 혼자 음악을 들으며 눈물을 흘린다.

 

이 그래픽노블에는 검은색과 보라색이 전부다. 파랑과 빨강이 합쳐져 만들어지는 보라색이 이 그래픽노블에 사용된 유일한 유채색이란 점은 좀 의미심장하다. 현재는 동성애를 상징하는 색으로 무지개를 사용하지만 그 이전에는 보라색을 사용했다고 한다. 두 소녀의 사랑을 하나의 색으로 표현한다면 작가는 보라색을 가장 먼저 떠올릴 수밖에 없었을 것 같다. 그리고 또 한 가지를 더 짚고 넘어간다면 인종이 다른 두 소녀의 사랑을 보라색으로 표현한 게 아닐까 싶다. 그림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두 소녀는 다른 인종이다. 동성끼리 사랑하는 것만큼이나 다른 인종의 두 소녀가 사랑하기에도 미국 시골 마을의 시선이 그리 곱지만은 않을 것이다. 전혀 반대편에 있는 파랑과 빨강이 섞여 신비하고 아름다운 보라색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작가는 인종이 다른 두 소녀의 사랑을 통해 말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 생각해본다.

 

작가는 두 소녀의 모습을 다른 배경보다 훨씬 크게 그리고 있다. 산과 들판을 베고 누운 두 소녀의 모습을 시작으로 빌딩에 기대 엎드리거나 집을 의자 삼아 앉아 있다. 두 소녀가 함께 있을 때면 세상은 모두 다 작아진다. 그녀들은 작아진 세상에는 신경쓸 필요 없이 오로지 서로에게만 집중하고 그 관계를 즐긴다. 사랑에 빠져본 사람들이라면 이 그림을 바로 이해할 것이다. 사랑에 빠져있는 동안에는 세상은 오직 두 사람이 전부이고 나머지는 그저 작은 배경에 지나지 않는 특별한 경험을 작가는 크기의 대비로 표현하고 있다. 그런가하면 두 소녀가 헤어진 이후에 나타나는 그림에는 수직을 표현하는 그림들이 눈에 띈다. 수직으로 뻗어 있는 빌딩들, 위로 길게 뻗어 있는 전신탑, 뾰족하게 치솟은 성당 혹은 교회의 건물은 두 소녀의 사랑을 방해하는 것들을 대표하는 것처럼 보인다. 넓게 펼쳐져서 다양한 것들을 포용하는 가로와는 달리 좁게 위로 뻗은 채 무언가를 나누고 가르는 세로의 이미지가 두 소녀의 결말과 묘하게 겹쳐진다.

 

영화 <비긴 어게인>을 보고 난 후 더블잭을 샀었다. 언젠가 이 잭으로 누군가와 같은 음악을 같은 공간에서 함께 듣기를 희망하며... 누군가와 음악을 함께 들으며 교감을 나누길 바라며 말이다. 이 그래픽노블은 제목만으로도 두 소녀의 마음을 잘 표현해주고 있다. 음악을 함께 들으며 서로의 취향을 공유하고 그만큼 서로에 대해 더 많이 알아가는 것. 주위 시선으로 애정표현을 잘 할 수 없었을 두 소녀가 가장 쉽게 서로의 마음을 표현하는 방법이지 않았을까 싶다. 끝나버린 관계에서 두 소녀를 가장 힘들게 하는 부분도 바로 이것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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