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집의 나르시시스트 - 집, 사무실, 침실, 우리 주변에 숨어 있는 괴물 이해하기
제프리 클루거 지음, 구계원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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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초에 스마트폰에 깔려 있던 페이스북, 트위터, 인스타그램, 카카오스토리 등의 앱들을 모두 지워버렸다. 어떤 특별한 계기가 있어서 그랬던 건 아니다. 그냥 갑자기 이 모든 가상의 연결통로가 무의미하게 느껴졌고 이런 곳에서 나 자신을 드러낼수록 내가 더 초라해지는 것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던 참에 저지른? 짓이다. 아예 탈퇴를 할까도 생각해 보았지만 이런 SNS를 통해 종종 얻는 유익한 정보조차 놓치고 싶지는 않아 가끔 컴퓨터로 접속을 해서 스윽~ 한번 내용을 훑어보는 게 다이다.

 

책을 읽기 전에 먼저 이 책의 뒤표지에 실린 난 너무 멋져, 나를 바라봐, 나를 사랑해줘!” 라는 문장을 보자마자 먼저 든 생각은 각종 SNS를 내 삶에서 멀리하게 된 것이 다행이다, 였다. 저 세 문장을 보면서 동시에 떠올랐던 것이 트위터와 페이스북 그리고 인스타그램이었으니까. 누구는 SNS를 시간 낭비 시스템이라고도 하고 누구는 세계와 연결되는 창이라고도 하는데 SNS가 각자에게 어떤 의미를 주던 간에, 그 밑바탕에는 이용자의 외모, 생활방식, 인간관계 나아가 생각까지 실제보다 조금 더 그럴싸하게 포장하여 보여줄 수 있는 창구라는 데는 이의가 없을 듯하다.

 

물론 SNS의 장점도 많이 있을 테고 그런 장점으로 인해 만족감과 행복감을 맛보며 살아가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만족감이나 행복감이 타인에게 보여주는 방식으로 충족된다는 것에 대해서는 조금 생각해 볼 여지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까지 이르렀던 참에 이 책을 만나게 되었다. 이 시점에 왜 나르시시스트일까. ‘, 사무실, 침실, 우리 주변에 숨어 있는 괴물 이해하기라는 부제만 보더라도 이 책은 나르시시스트를 긍정적으로만은 바라보고 있지 않다는 걸 알 수 있다. 게다가 흔하게 마주칠 수 있는 인간유형이라는 암시까지... 혼자 살아갈 수 없는 이상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나르시시스트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고 싶다면 이 책을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그리고 자신은 어떤 인간인지를 제대로 들여다보기 위해서라도...

 

다른 모든 성격장애와 마찬가지로 나르시시즘은 일종의 연속선상에 존재하며, 한쪽 끝에는 정상적인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다른 쪽 끝에는 극단적인 나르시시스트가, 그리고 그 사이에 약간씩 정도가 다른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례가 있다. 최근에는 상당히 많은 사람의 상태가 악화되어 연방정부를 폐쇄시킬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주변 사람들에게 개인적으로 충분히 피해를 미칠 수 있는 준임상적 수준의 나르시시즘 증상을 보이고 있다.”(p.31)

 

위 내용처럼 나르시시즘 증상을 보이는 사람은 뭔가 특별하게 표가 나는 사람이 아니다. 하지만 분명 그런 성향을 가진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평범한 사람들에게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리고 다양한 위치에서 활동하고 있는, 게다가 꽤 유명하기까지한 사람들을 예로 들어 나르시시스트들의 특성을 이야기 해주고 있다. 스티브 잡스같은 거물급 기업인부터 미국의 역대 대통령들 나아가 다양한 스포츠 스타와 저스틴 비버와 같은 연예인들에 이르기까지 유명한 나르시시스트들 중에서도 여러 면에 걸쳐서 독보적인 나르시시즘을 보이고 있는 사람이 있다.

 

요즘 가장 핫?한 사람으로, 이 책에 자주 등장하는 사람이 있는데 바로 도널드 트럼프이다. 첫 장에서부터 도널드 트럼프를 치명적인 나르시시스트로 등장시킨 저자는 책의 여러 곳에서 트럼프를 불러내어 예로 적용하고 있다. ㅎㅎ 트럼프의 나르시시즘에 관한 내용은 굳이 장황하게 이야기하지 않더라도 지금의 그의 행보를 보더라도 누구나 알아챌 것이다. 그가 얼마나 심각한 나르시시스트인지를... 문제는 이런 나르시시스트가 한 나라의 수장이 되었을 때 일어날 수도 있는 비극이다.

 

진짜 위험한 이들은 권력을 손에 쥔 사람들이며, 이들은 얼마간 자신의 나르시시즘에 휩쓸려 행정부나 정당, 심지어 국가 전체를 무너뜨린다. 이렇게 되는 데는 엉성함과 방종, 정실 인사와 구제불능의 여성 편력, 또는 단순히 고약한 성질이 작용하기도 한다.”(p.272)

 

나르시시스트 지도자가 가장 먼저 다스려야 할 것은 자기 자신이며, 자신의 고통받는 자아, 망가진 자부심, 스스로의 단점을 보지 못하는 성향을 먼저 구제해야 한다. 자신을 다스릴 줄 아는 사람은 역사에 남을 위대한 인물이 될 수 있다. 그렇지 못한 사람은 역사에 도덕적인 교훈을 남기는 악인이 되고 만다.” (p.280)

 

나르시시스트의 특징 중 하나가 공감 능력 부족인데, 우리나라의 현 지도자는 미국 대통령들이 보였던 나르시시스트의 특징들과는 조금 다르게 저 공감 능력 부족이라는 특징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지 않나 혼자 조심스레 진단해 본다. 나르시시스트 지도자들이 대체적으로 보이는 카리스마도 없는 것 같고 지능이 그리 좋은 것 같지도 않고 창의적인 면도 전혀 찾아볼 수 없으며 자신의 일에 대한 자부심조차 갖지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지도자들이 대체적으로 가지고 있는 잠재적인 긍정적 나르시시스트의 성향은 거의 찾아볼 수 없고 오히려 국민들과 소통을 막는 공감 능력 부족과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추종자들의 존재라는 부정적인 요소만 가지고 있으니... 이러기도 쉽지 않을 텐데... 허 참... 이런 면에서도 보기 드문 지도자임에는 틀림없다.

 

여러 다양한 나르시시즘 이야기 중에서도 내가 특히 재미있게 읽었던 부분은 8집단의 자부심이다. 개인적인 성향으로 바라보던 나르시시즘을 개인이 아닌 집단으로 넓혀 이야기하는 것이 흥미로웠지만 무엇보다 그 집단을 지구와 인간이라는 종으로 크게 확대해서 바라보는 저자의 시각이 마음에 들었다. 책의 내용을 빌리자면 인간은 평균적으로 매년 약 100제곱킬로미터의 숲을 파괴하고 있으며, 이러한 행위는 같은 기간 동안 27천개의 종을 멸종시키는 결과를 낳으며, 이 속도라면 지구에 존재하는 870만 종을 전부 없애버리는 데 고작 325년도 걸리지 않는다.’라니...이런 글을 접할 때마다 아이를 낳지 않겠다는 내 결심은 더 단단해진다.

 

나를 최우선으로 여기고 스스로를 찬미하고자 하는 충동이 궁극적인 승리를 거두는 것은 오직 인간이라는 종이 보여주는 나르시시즘의 형태 안에서만 가능할지도 모른다. 회사 사람이든, 연인이든, 독재자든, 이들 나르시시스트는 언젠가는 힘을 잃고 사라진다. 그러나 인류라는 종 전체의 이기심을 억누를 수 있는 것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실제로 다른 모든 종을 희생시켜가면서 모든 나르시시스트가 꿈꾸는 완전한 지배를 손에 넣게 될지도 모른다. 그렇게 해서 지배하게 된 지구에 남아 있고 싶을지 아닐지는 전혀 다른 문제겠지만.” (p.330~331)

 

그리고 가장 직접적으로 피해를 볼 수 있는 연애나 직장에서의 나르시시스트들... 관련 내용들을 읽는데 과거 연애를 했던 누군가의 얼굴이 스쳐지나가지를 않나, 다리 건너 아는 친구의 직장 상사가 생각나 막 화가 나기도 하고... --;; 연애야 끝내면 되지만 내 밥줄이 달려있는 직장에서의 나르시시스트 상사라니...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결국 친구는 이 책에서 말한 해결 방법 중 하나인 사표를 던졌지만 그렇다고 그 나르시시스트 상사에게는 어떤 영향도 못 미친 듯하여 내가 다 분하다.

 

나르시시스트가 불안함을 느끼는 것은 내면에 자리잡고 있는 감정적인 공백을 메울 정도로 충분한 칭찬이나 성공을 손에 넣지 못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다른 사람들을 무시함으로써 최소한 스스로의 위상을 상대적으로나마 높이는 방식을 취하게 된다. 더 이상 스스로의 위상을 높이고 찬양받을 수 없다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주변 사람들을 깎아내리는 것밖에 남지 않는다.”(p.221)

 

브리티시컬럼비아 대학에서 2011년에 실시한 연구에서는 효과적인 인상 관리에 필요한 기본적인 자질 네 가지를 자기 홍보, 아첨, 애원, 위협으로 정의했다. 나르시시스트가 한 가지도 빠짐없이 기본적으로 보유하고 있는 능력이다.”(p.118)

 

책의 제목에서도 시사하는 바와 같이 나르시시스트는 어디에나 존재한다. 옆집 뿐 아니라 한침대를 쓸 수도 있고 매일 출근해야 하는 직장은 물론 내가 평생 살아야 하는 나라의 지도자일 수도 있다. 그리고 물론 나 역시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나르시시스트일 수 있다. 그렇다면 어찌해야 할까. 이 많은 나르시시스트들에게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저자의 답은 의외로 명쾌하다. 한마다로 어떠한 방식으로든 거리를 둘 것! 투표를 하지 않거나 무조건 추종하지 않기, 연인이라면 헤어지는 방법 등으로.. 그리고 자신에게 나르시시즘 성향이 있다면 적절히 통제할 수 있도록 그 방법을 찾을 것!

 

다양한 종류의 술이 없다면 세상 살아가는 즐거움이 하나 줄어들 테고, 마찬가지로 인간 심리에 여러 가지 요소가 없다면 허전하기 짝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양쪽 모두 휘발성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자. 부글부글 거품을 내며 생기를 띨 수도 있고, 타버리거나 델 수도 있다. 그 차이는 다른 많은 것과 마찬가지로 통제하는 방법을 아느냐에 달려 있다.” (p.392)

 

책의 마지막에는 자기애적 성격 검사문진표가 있다. 40문항에 대해 AB로 된 문장 중 어느 쪽이든 자기에게 좀 더 가깝다고 생각되는 문장을 반드시 고른 후 그것을 점수표에 의해 점수를 매기면 된다. 내 점수는....... 6.. ㅎㅎㅎ;;; ‘점수가 15 이하라면 자부심과 관련해 심리적 문제를 안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라는 데 내 자부심은 심각한 수준인 듯.... 이번 생에서는 죽었다 깨어나도 나르시시스트가 될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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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즈키 선생님 11 - 완결
다케토미 겐지 지음, 안은별 옮김 / 세미콜론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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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스즈키 선생님완결인 11권까지 모두 읽었다. 8권에서 시작한 학생회장 선거에피소드가 9권에서 그 결말을 맺고 그리고 지금까지의 모든 에피소드를 아우르는 듯한 대단원의 에피소드인 신의 딸9권에서 시작하여 11권에서 마무리되며 이 책 또한 완결이 됐다. 11권의 책을 읽고 나서 먼저 드는 생각은, 우리나라에서는 언제쯤 이런 학원물 만화가 나올 수 있을까, 아니 나오기는 할까 였다. 옆나라에는 교육의 중요성을, 교육현장의 현실을 이렇게 진지하게 생각하고 또 표현해 내는 작가가 있다는 것이 그저 나는 마냥 부러울 따름이다.

 

투표일이 며칠 남지 않아서일까. 지금까지 읽어왔던 다소 충격적인 에피소드에 비하면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학생회장 선거의 에피소드가 쉬이 잊히지 않는다. 이 에피소드에 나오는 몇몇 구절을 옮겨 적어 본다. 적으면서 생각해 본다. 과연 나는 지금까지 해온 투표들 중에서 이렇게까지 투표의 중요성을 깊게 생각하고 대표로 뽑히는 사람들에 대해 좀 더 알기 위해 진지한 고민을 해봤나 되돌아보게 된다.

 

이렇게 사회의 대표를 뽑는 중대한 투표는 반이나 동아리 활동, 친구 같은 소속에 얽매이지 말고 각자가 자기 머리로 생각하고 판단해서 선택해야 하는 거란다.” (9권 중)

 

이 선거. 학생회 간부·서기·회계·부회장그리고 학생회장. 각각 누구에게 어떤 이유로 표를 던지시겠습니까? 친구니까? 동아리 선후배니까? 멋있으니까, 예쁘니까. 그런 이유인 사람도 있을지 모르죠. 또는 그런 건 제대로 생각하지 않는 녀석들이지, 난 달라.’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많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대체 어느 정도 조사하고 숙고해야 제대로 선택했다고 말할 수 있는 건가요?” (9권 중)

 

제가 가장 분노를 느끼는 것은 그런 불성실한 투표에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은 채 참가율만을 올리려 하는. 그런 불성실한 투표자의 한 표를 진지한 투표자의 한 표와 완전히 같은 무게로 집계하는 걸 부끄러워하지 않는 선거 방식 그 자체입니다. …… 진지하게, 진심으로- 본인이 던지는 그 한 표의 무게를 깊이 인식한 다음 투표하라고 지도해야만 합니다! 그런데 학교는 그런 지도는 하지 않습니다. 왜냐? 거기까지 말하면 적당주의자들이 따라와 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기는커녕 지금 참가하고 있던 사람들까지 이탈해 버리니까투표율이 떨어집니다.” (9권 중)

 

소수파라도 노력하면 어떻게든 되는 종류의 일이라면, 저희도 쉽게 절망 따위 하지 않았을 겁니다. 그러나 선거란 완전한 다수결 아닙니까! 이 허무함을절망감을 아시겠어요! 시스템까지 가담해서 작당 적당한 투표를 점점 늘리면우리의 진지한 표의 무게는 점점 가벼워진다고요!” (9권 중)

 

4, 5년에 한번씩 돌아오는 선거철, 이때만 반짝 시민들과 눈을 맞추고는 당선된 후에는 자신이 했던 공약조차 아무런 부끄러움 없이 지키지 않는 정치인들. 그런 반복되는 속고 속이는 게임에 지친 국민들은 자신이 행사하는 한 표의 무게를 이미 잊은 지 오래다. 과연 완전한 다수결의 원칙을 고수하는 지금의 선거방식에는 문제가 없는 걸까. 진지하게 우리는 지금의 선거 시스템 자체에 대해 고민해봐야 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들게 만든 에피소드가 바로 학생회장 선거이다. 이미 작은 사회인 학교란 공동체에서 학생들에게 자신이 행사하는 한 표의 의미를, 그 무게가 어떠한 것인지를 가르친다면 그들이 어른이 되었을 때는 조금은 이 사회가 달라지지 않을까 하는 바람은 나만의 것일까.

 

4. 13. 치러질 20대 국회의원 선거는 그 어느 때 선거보다 야당 여당 할 것 없이 잡음도 많고 해프닝도 많았던 만큼, 그 결과도 궁금하지만 여야 할 것 없이 벌이고 있는 정치인들의 정치쇼 때문에 국민들 각자의 소중한 한 표가 너무 당연하게 무시된 채 또 지옥 같은 몇 년을 보내야 하는 건 아닐까 하는 두려움도 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즈키 선생님의 대단원을 마무리하는 에피소드 신의 딸은 학생들이 축제를 준비하면서 연극을 무대에 올리려는 2학년 A, 2학년 C반 그리고 연극부 세 그룹의 학생들의 준비 과정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야기이다.

 

자신을 아는 것. 그리고 그것을 컨트롤 하는 것. 무엇을 어떻게 하면 무엇이 어떻게 되는지. 자신이 어떻게 움직이면 전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이러한 모든 관계에 민감해지는 것! 그게 바로 연극에서 가장 중요한 훈련이다.” (10권 중)

 

우리는 스스로의 몸을 지키기 위해 인간관계에 있어서도 동물의 습성에서 온 여러 가지 방어 본능을 지니고 있어. 다른 사람을특히 본 적 없는 사람을 신용하지 않지. 상대에게 경계심을 갖고, 상대의 일거수일투족에 자기도 모르게 경직되면서, 때로는 무심결에 선제공격을 해 버리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그 때문에- 원래는 하지 않아도 됐을 싸움을 만들기도 하고 원래대로라면 해낼 수 있는 중대한 고도의 공동 작업을 성취하지 못한 채, 서로를 망쳐 버릴 수도 있는 거야. 연극이란 바로 그 중대한 고도의 공동 작업이라는 양식 그 자체다.” (10권 중)

 

…… 그래서 때로는 일단 의심을 완벽하게 버리는 테크닉도 필요하다고 하였어. 왜냐하면 일단 번민을 접고, 마음을 하나로 다잡아서 부딪치지 않으면 열리지 않는 문도 있으니까. 그러니까 선생님이 그러셨어. 연극에서 요구받는 번거롭고 곤란한 일은 대부분 기본적으로 실제 인생에서도 요구받고 있는 것들이라고. 실제 인생의 대부분이 연극보다 재미없는 건 보통 인생이 연극보다 따분해서가 아니라, 대부분의 실제 인생이 시시한 연극과 마찬가지로 출연자나 스태프의 연구, 노력, 열정, 탐구가 부족했거나 목표를 잘못 잡았기 때문인 걸지도 몰라.” (11권 중)

 

스즈키 선생이 학생들에게 연극을 지도하면서 연극이 어떤 것인지를 아이들 스스로가 깨달아가는 과정의 이야기와 더불어 위에서 인용한 문장에서처럼 누군가의 방어 본능에 의한 행동이 커다란 사건으로 학생들에게 부메랑처럼 날아든 이야기가 이 에피소드의 주된 내용이다. 연극이란 표현 예술의 진정한 가치와 그것을 표현해내기 위한 훈련이 실제로 학생들에게 발생한 사건과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이번 에피소드 역시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주고 있다. 게다가 아이들이 연극작품으로 올리려 하는 <반짝 이끼> <리어왕> <신의 딸>의 자체 이야기마저도 저마다의 물음을 던져주고 있다.

 

아이들은 어떤 식으로든 변해 간다. 성장을 하든 아니면 비뚤어지든 아니면 오히려 퇴행을 하든. 시간이, 주위 사람들이, 학교가 나아가 사회가 어떤 식으로든 아이들의 변화에 영향을 미친다. 그렇기에 아이들과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교사와 부모, 친구들과의 관계가 중요하지 않을 수 없고 학교라는 공동체가 큰 역할을 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다들 알고 공감마저 하는 이 사실을 그 누구도 심지어는 학생들 당사자조차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는 분위기가 만연해 있는 듯하다. 모두가 이 사회에 적응해 살아남기 위해 이미 정해진 시스템에 저마다 자신들을 맞추는 것에만 익숙하다. 그리고 그것이 이제는 당연한 목표가 되어버린 게 현실이다. 사회를 움직이는 시스템들에 대해 어떤 의심도 하면 안 되며, 의심하는 순간 나는 도태의 길을 가게 될 거라는 불안감. 그걸 떨쳐버리기에는 서로 간의 연대가 너무나 미약한 것 또한 현실이다. 이 작품을 읽고 나니 이런 문제점이 더욱 도드라져 보여, 아니 제대로 보여 슬픔마저 느껴진다.

 

11권 맨 마지막 뒤표지와 뒷날개에는 화목을 귀하게 여긴다.”(쇼토쿠 태자, 17조 헌법)라는 한 문장이 적혀 있다. 그리고 아이들이 활짝 웃는 모습으로 모두들 손을 들고 한 곳을 향해 보고 있다. 그들의 시선을 따라가 보면 책 앞표지에 스즈키 선생이 웃으며 그들을 돌아보고 있다. 친구들 간의 우애, 교사와 제자 간의 신뢰가 고스란히 담긴 표지이다. 올해 막 초등학교를 들어간 첫 조카의 12년간의 학교생활이 어떨지를 생각하며 이 표지를 보고 있는데 왜 이렇게 마음이 짠해지는지...

 

11권 마지막에 실린 작가의 후기를 읽고 나니 솔직히 작가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제대로 내가 간파해 냈는지에 대해서는 100% 자신은 없다. 그런 이유로 다시 한번 이 작품을 처음부터 끝까지 꼼꼼하게 읽으려 한다. 읽고 작가가 제기한 문제들을 내 주위 사람들과도 이야기해보고 싶다. 마지막으로 가슴 내내 생각해봐야할 문장 하나를 옮겨 적어 본다.

 

상대를 생각하지 않고 아무에게나 하나의 가치관을 들이대는 것. 문제는 거기에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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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영의 밥도둑
황석영 지음 / 교유서가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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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편화된 고독한 개인들이 오로지 자기 혼자만을 위하여 음식을 장만하고 맛없는 혼자만의 끼니를 때우며 살아가는 경우가 점점 많아진다.

 

지금 먹는 것들은 당장이 아니라 십여년 후에나 네 몸에 고스란히 영향을 줄 거라고, 그러니 귀찮더라도 밥을 해서 먹으라고, 네가 지금 이렇게 며칠씩 밤새 술 마시며 놀고 또 일할 수 있는 것도 이십년 동안 네게 좋은 음식을 해준 엄마의 밥심 때문이라고. 스무살때 부모님 품을 떠나 바쁜 생활을 핑계로 패스트푸드와 인스턴트식품으로 살고 있던 내게 한 선배가 했던 말이다. 요즘 몸 여기저기에서 크고 작은 문제들이 생길 때마다 선배의 이 말이 떠오른다. 내게는 이제 엄마의 밥심이 완전히 사라져버린 것은 아닐까 하는 두려움도 함께...

 

문득 가족들과 둘러앉아 김을 후후 불며 된장찌개를 떠먹던 단란한 밥상이 그리워졌다.

 

밥을 먹고 생긴 힘, 밥심. 타지 생활 20년 동안 내게 밥심은 단순히 밥의 힘이 아니라 어느덧 밥으로 바뀌어 있다. 커다란 냄비에 끓인 된장찌개, 김칫국 등에 다섯 숟가락이 넘나들이 하던 소박한 밥상이 많이 그리운 걸 보면... 엄마가 정성스레 만들어준 음식이 비단 내 몸뿐 아니라 마음과 영혼에까지 힘을 주고 있었구나 싶다. 그걸 깨달았을 즈음 남동생과 함께 살게 되었고 나는 어느덧 삼년차 밥순이로 나의 자리를 하나 늘려 살고 있다.

 

사람은 고생하던 시절에 늘 결핍을 느끼며 먹던 음식의 맛을 잊지 못한다.

 

서른 중반, 늦으면 늦었다 할 만한 나이에 수험생이 된 막내동생. 공부라는 고독하고 지난한 싸움을 시작한 동생에게 밥마저 혼자 먹게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 함께 살 것을 먼저 제안했던 걸 요리가 서툴던 동거 초반에는 후회도 많이 했었다. 그런 마음으로 만들었던 음식이니 그 맛이 오죽했을까마는 그래도 묵묵히 밥 한 그릇을 뚝딱 비우던 동생. 몇 년째 삶의 밋밋하고 씁쓸한 맛만을 보고 있는 동생에게 맛없는 누나 요리를 먹는 한 때가 훗날 웃으면서 이야기할 수 있는 추억이 된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지금의 나로서는... 그리고 어느 곳에 있어도 누나를 떠올릴 수 있는 음식 하나쯤 동생에게 남겨줄 수 있다면 하는 바람은 덤으로..

 

작가는 4<나그네살이>에서 타국을 떠돌면서 겪고 맛보았던 추억을 이야기 하고 있다. 아직 외국을 가보지 않았으니 나는 고향을 떠나와 여기 서울에서 오랜 나그네살이를 하고 있는 셈인가 싶다. 오랜 나그네 생활이 나란 사람을 조금은 바꿔놓았다는 걸 엄마가 택배로 보내주시는 김치며 밑반찬을 받으며 새삼 깨닫곤 한다.

 

가난으로 보잘것없는 우리집 살림살이에 나는 유난히 예민해서 반사적으로 청결에 까다로운 아이였다. 밥 먹다가 음식에서 머리카락이라도 나오면 나는 바로 수저를 놓고 집밖으로 나가버렸다. 그리고는 깔끔하지 못한 엄마를 몰래 속으로 원망하기도 했다. 그러던 내가 타지생활을 시작한 후, 엄마가 보내준 김치며 밑반찬에서 혹여 머리카락 한올이라도 발견하면 나도 모르게 코끝부터 찡해져온다. 우리 엄마는 여전하구나 하는 안도감과 이렇게라도 엄마를 만날 수 있는 날이 얼마나 남아 있을까 하는 슬픈 마음이 교차하면서...

 

5<밥도둑, 토박이음식>에서 소개되는 각 도의 토속음식들을 만나면서 내게 기억에 남는 그리고 앞으로도 기억에 남을 토박이음식은 무얼까 떠올려보니, 책에서도 소개된 곰치국과 오징어순대, 옹심이수제비도 많이 먹으며 자랐지만 여전히 엄마표 반찬에서 빠지지 않는 가자미식해가 제일 먼저 떠올랐다. 가자미식해는 원래는 함경도 음식이라는데 고향인 강원도에서도 토속음식처럼 어릴 때부터 먹었던 기억이 있다. 책을 읽다가 이 음식이 떠오른 참에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가자미식해 만드는 법을 여쭤봤다.

 

우선은 물좋은 가자미를 깨끗이 씻어 하루 정도 두어 물기를 없애고 먹기 좋은 크기로 썰어 거기에 엿기름가루와 설탕, 고춧가루 넣고 버무린다. 그리고 가자미 뼈가 무를 때까지 4~5일 정도 재워놓는다. 어느 정도 삭은 가자미에 다진 마늘과 생강, 송송 썬 파, 고슬고슬하게 지은 조밥과 흰쌀밥은 조금, 그리고 채 썰어 소금에 살짝 절인 후 물기를 꼭 짜낸 무채를 다 함께 버무린다. 이 때 설탕과 소금, 고춧가루로 나머지 간을 한다.

 

우리 삼남매가 어릴 때부터 먹고 자란 이 음식을 먹지 못할 때가 언젠가는 올 테고, 그때는 내가 이 음식을 만들어 두 동생에게 엄마를 떠올리게 할 수 있을까. 작가가 방북하였을 때 북에 계신 이모가 만들어준 노티를 먹으며 돌아가신 어머니를 떠올렸던 것처럼. 부디 그럴 수 있으면 좋겠다. 엄마의 빈자리를 잠시라도 채울 수 있는, 각자의 가족을 이루며 살지만 여전히 우리는 식구(食口)라는 것을 느끼게 해주는 누나이자 언니가 되고 싶다는 바람을 품고 마지막 책장을 덮었다.

 

책의 첫 페이지에는 작가의 사인과 함께 진정한 밥도둑은 누군가와 나눠 먹는 맛임을 다시 확인하게 됩니다.”라 문장이 적혀 있다. 그리고 표지에는 낡은 수저 한 벌이 가지런히 놓여 있다. 숟가락만으로 혹은 젓가락만으로는 밥과 국과 반찬으로 차려진 우리네 밥상의 맛을 제대로 음미할 수 없다. 숟가락과 젓가락이 모두 갖춰져야 밥상에 차려진 음식들의 제 맛을 맛볼 수 있듯이 밥상에 두 벌, 세 벌 그 이상의 수저가 놓인다면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밥도둑임을, 혼자 밥을 먹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새삼 깨달았을 것이다. 이 책을 통해서..

      

우리는 모두 맛을 잃어버렸다. 맛있는 음식에는 노동의 땀과, 나누어 먹는 즐거움의 활기, 오래 살던 땅, 죽을 때까지 언제나 함께하는 식구, 낯설고 이질적인 것과의 화해와 만남, 사랑하는 사람과 보낸 며칠,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는 궁핍과 모자람이라는 조건이 들어 있으며, 그것이 맛의 기억을 최상으로 만든다.

 

책의 말미에 실린 작가의 초판 서문을 읽다가 최근에 읽은 시중 자연스레 떠올랐던 시가 있어 여기에 옮겨본다.

 

<변혁을 위한 비빔밥>

 

밤늦게 일을 하다

가끔 혼자 한잔할 때가 있다

이때쯤이면 한참 출출해져

밥이 안주일 때가 있다

오늘은 반찬이 부실해

시금치와 묵은 김치만을 비벼 먹는데

그 맛이 꿀맛이다

, 이런 맛을 평생 몰랐구나

 

그러다 곰곰 내내 읽던

한국사회 변혁 논쟁을 떠올려본다

엔엘과 피디도 만나

이렇게 제맛 잃지 않으면서도

어우러져 단맛을 낼 수 있을까

혁명은 용광로라 했는데

우린 왜 서로 비벼져

새로운 존재로 태어나기를 두려워하는 것일까

우린 죽어도 함께 비벼질 수 없다는 건

아직 배부른 이들의 욕심일 뿐

배고픈 이들의 처지로 보면

안될 것도 없는 일

엔엘도 피디도 무엇도 모두 넣고 휘휘 비벼

진정으로 평범한 이들에게 피가 되고 뼈가 될

변혁의 비빔밥 하나

다시 만들어보면 어떤가

 

생각하니

나부터 조금은 더 허기지고

간절해져야겠다는

든든한 생각

 

송경동 시집 나는 한국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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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영의 밥도둑
황석영 지음 / 교유서가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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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에 걸쳐 한두꼭지씩 자기 전에 읽고 있는데... 어릴적 먹던 고향음식 생각나기도 하고 동거인 밥해주는 고단함을 좀 위로받는 것 같기도 하고... 이래저래 저에게는 `먹는다`는 것과 관련된 많은 생각을 해보게 되는 그런 책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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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치 - "세상까지는 몰라도 최소한 나 자신은 확실히 깨트렸다"
TBWA 주니어보드.박웅현 지음 / 루페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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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마다 살아온 사연의 색깔이 다르고 생각하는 바도 다양한 20대 친구들의 재기발랄한 발언들은 유쾌하면서도 따끔하다. 남들 앞에서 하고픈 말이 있다는 것. 그리고 발언을 한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젊음은 아름답다. 생면부지의 그들을 멀리서나마 응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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