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 함무라비
문유석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로펌과 법률사무소에서 사무원으로 일한지 15년이 다 되어간다. 로펌에서 일할 때는 비서팀이라 페이퍼컴퍼니 등기업무나 기업합병 자료 만들기 같은 일을 주로 했었다. 그리고 지금 일하는 변호사 2명이 있는 사무실로 옮긴 이후로는 거의 송무 업무다. 의뢰인들이 주로 개인이다보니 별의별 사건을 다 보게 된다. 5년 정도 일했는데 초등학교 여동생을 성폭행한 친오빠 사건, 술 취한 아가씨 윤간한 남학생들 사건, 일명 군대 내 계간 사건(이건 직접적으로 맡은 사건은 아니지만), 학교폭력으로 살던 아파트에서 투신하여 죽은 고등학생 사건, 대안학교에서 만난 친구가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칼로 찌른 중학생 살인미수 사건 등은 종결이 되었어도 잘 잊혀지지가 않는다. 그 외에도 벌써 10년 넘게 똑같은 사건이 반복되고 있는 영업사원들과 회사 간의 손해배상 및 횡령 사건도 참 씁쓸한 사건으로 남아 있다.

 

몇 년 전부터 전자소송이 실행되어 법원에 갈 일은 자주는 없지만 그래도 일반인들에 비하면 법원, 검찰, 경찰서 등을 자주 방문하는 직장인이긴 하다. 보통의 사람들은 법원, 검찰, 경찰서는 물론 변호사사무실에 가는 것도 꺼려진다고 한다. 그것도 그런 것이 이런 곳들에 가게 된다는 것은 자신에게 안 좋은 문제가 생겼다 걸 의미하니까. 신년운세에 송사에 휘말릴 일만 없다 하여도 운수대통이라 할 만큼 경제적으로도 심적으로도 많은 타격을 주는 게 송사니 사실 이쪽 계통에서 밥벌이를 하고 있기는 하지만 나조차도 살아가는 동안 어떤 송사에도 휘말리고 싶지 않은 게 본심이다.

 

남들에게 잘 하지도 않는 직장이야기를 이렇게 주절주절이 하게 된 건 바로 이 책 <미스 함무라비> 때문이다. 판사들 중에서도 요즘 가장 핫한?! 현직판사인 문유석 판사의 일명 법정 활극을 그린 픽션이다. 소설 같기도 하고 에세이 같기도 하고 그런데 책에 나오는 사건 사례들을 보면 비실명처리된 판례 같기도 하고... 암튼 이쪽 일을 하다 보니 나름 재밌게 푹 빠져서 읽을 수 있었다.

 

책은 서울중앙지법 44부 합의부 재판부에서 근무하는 세 명의 판사를 중심으로 다양한 사건들을 보여주고 있다. 등장하는 사건들이라는 것이 이미 실제로 이슈화 되었던 실사건들과 유사한 옷을 입거나 일반 시민들이 법원이나 검찰에 갖고 있는 인식을 보여주는 케이스들이어서 제법 몰입하여 읽었던 것 같다. 중간 중간 저자가 말해주는 판사들의 일상? 혹은 실상?에 관한 논픽션도 재밌기는 하였으나 저자가 현직판사이다 보니 조금은 판사들을 두둔하는 거 아닌가 싶은 삐뚤한 마음이 좀 든 것도 사실이다.

 

올곧고 성실하고 착실한 판사들이 아마도 대부분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두개의 문>이라는 용산 참사에 관한 다큐를 보고는 판사에 대한 좋은 이미지를 거둔지 오래다. 게다가 최근에 본 <자백>이란 다큐도 한몫했다. 정치검찰은 당연하고 정치법원 역시 내게는 상식이다. 게다가 이쪽 일 하면서 정말 어이없는 판사들도 봤기에 판사에 대한 이미지는 더욱 별로이다.

 

이런 일이 있었다. 재산이 좀 있는 사업가가 이혼을 하는데 재산다툼으로 서로가 꽤 많은 양의 증거자료들을 낸 사건에서 결국 당사자가 합의서를 쓰고 그것으로 조정을 신청해서 조정으로 끝난 사건이다. 문제는 이혼 당사자가 쓴 합의서를 기초로 법원에서 쓴 조정조서에서 원고와 피고가 바뀌었다는 것이다. 정말 한심한 실수가 아닐 수 없다. 그 동안에 낸 소장이며 서면들만 읽어 봤어도 결코 원,피고를 바꿀 수 없을 것인데 어떻게 저런 실수를 하는지... 그래서 책에서 판사들이 꼼꼼하게 기록을 읽는다는 저자의 말에 나도 모르게 콧방귀가 나온 건 안비밀. 그리고 조정조서를 경정하는 과정에서도 이를 감추려는 재판부의 의도가 다분히 보였던 것을 생각하면 법원이란 조직은 실수에 민감한 만큼 실수를 한 경우에는 그걸 덮을 수 있는 한 덮으려고 하는 습성이 있는 곳이란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또 한 번은 피고들이 다수인 사건에서 원고와 피고들 간의 화해권고결정에 대해 한 피고는 이의신청을 하지 않아 확정이 되었음에도 재판부에서는 버젓이 피고인들 모두에 대해서 판결을 내렸던 적이 있다. 소송종료선언을 하지 않고 판결을 내려놓고는 이런 사유로 항소를 한 변호사에게 항소를 취하하라고 개인적으로 전화를 하지 않나 변호사가 하지 않겠다고 하니 당사자에게 직접 전화하여 협박 비슷한 짓을 하지 않나. 정말이지 법원 조직은 실수를 제대로 인정하고 사과하는 조직이 아니라는 걸 새삼 깨달았던 사건이다!

 

저자의 말처럼 판사도 사람이니 실수할 수 있다. 하지만 실수를 했으면 실수를 인정하고 사과를 해야 한다는 건 초등학생도 아는 상식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최고의 지식인 집단인 법원의 몇몇 판사들은 자신들의 실수를 감추려고만 한다. 사실 몇몇 판사라고는 했지만 과연 위와 같은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하였을 때 제대로 당사자들에게 실수를 인정하고 사과를 하는 판사가 몇 명이나 될까.

 

그리고 책에서 재미있게 읽었던 전관예우에 관한 이야기. 대부분의 사람은 그 존재를 믿어 의심치 않는데 정작 판사들은 그런 일 없다고 딱 잘라 말하는 아이러니함. 최근에 일명 대법원 도장값으로 2천만원을 줬다가 날린 사람을 직접 봤기에 나는 전관예우가 있다고 다시 한 번 믿어 의심치 않는다. 심리불속행만은 피하고 싶어 대법관 출신의 변호사가 있는 대형로펌에 큰돈 주고 의뢰를 하였다가 결국 심리불속행으로 사건이 끝나버려서 허무해하던 의뢰인. 그리고 그걸 알선한 사람이 사무장 브로커도 아닌 변호사였다는 거. 따로 잘 부탁한다고 알선 변호사에게 밥사줘 용돈줘... ! 대법관 출신 변호사가 일명 도장값으로 큰돈을 받았다는 건 자신이 판사로 있을 때 그런 적이 있다는 반증이니까. 정말이지 그 로펌과 변호사 이름의 실명을 거론하고 싶지만 꾹꾹 참는다. 나는 지금 픽션에 대한 리뷰를 쓰는 중이니까. --;; 그런데 어디 그 로펌뿐이랴... 우리나라 대형로펌들은 다 저모양일 텐데... 괜히 대형로펌이겠냐고..

 

이게 지금 내가 리뷰를 쓰는 건지 법원 조직에 대한 성토를 하는 건지... 점점 헛갈린다. 아무튼 내 머릿속에 있던 이런 이야기들을 끄집어내고 싶을 만큼 <미스 함무라비>는 재밌다는 거다. 책에 등장하는 박차오름, 임바른, 한세상 같은 판사가 법원을 꽉꽉 채운다면 법원도 다시 신뢰를 얻을 날이 멀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말이다. 이제는 사법고시도 폐지되고 로스쿨을 통해 법조인들이 채워지는 만큼 과연 서민들의 억울함을 성심껏 들어주고 이해하려는 판사들이 몇이나 될까. 현대판 음서제라고까지 하는 로스쿨제도, 졸업하기까지 큰 돈이 든다는 공부. 과연 큰 돈 들여 공부한 사람들이 바라는 건 뭘까. 현직 판사인 저자가 박차오름, 임바른, 한세상 같은 판사를 주인공으로 하여 이런 법정활극 소설을 쓴 이유는 어쩌면 법원에 이런 판사들이 대부분이어서가 아니라 이런 판사로 다들 일하고 싶기는 하나 그렇지 못한 현실을 알기에 이렇게 소설로라도 이상적인 판사들을 독자들에게 혹은 국민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적어도 저자 자신은 주인공 판사들처럼 일하고 싶어하는 혹은 일하고 있는 현직 판사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저자의 이야기 중 크게 공감한 부분은 있다. 박차오름판사처럼 처음 판사를 할 때는 모든 당사자들의 일이 자기일만 같아서 온마음을 다해 일에 매진하게 된다. 하지만 이런 사건들이 일상다반사가 되면 마음이 무뎌지는 건 어쩔 수가 없다. 고작 변호사의 사무 보조를 하는 나조차도 학교폭력으로 자살한 아이들의 부모들을 처음에는 울면서 대하고 통화할 때마다 이야기 다 들어드리고 위로하고 했었는데 5년쯤 일하다보니 어느새 내가 사무적인 인간이 되어 있더란 말이다. 그리고 그런 내 자신 때문에 괴롭다가도 그런 괴로움도 점점 옅어져가는 게 느껴질 때면 정말이지 이쪽 일 이제 그만해야 하는 거 아닌가 싶기도 하다. 친구들에게 농담반 진담반으로 나는 점점 심장이 굳어가. 하루에 0.001그램씩...’ 라고 말하곤 하는데... 정말 회복불가능할 정도로 심장이 돌이 되기 전에 나는 나를 좀 바꿀 필요가 있다 싶긴 하다. 그렇다고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한세상판사처럼 사직서를 던질 수도 없고. 에휴... 오늘도 한숨 여러 번 쉰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요즘은 한 영화를 보면 여러 영화들이 그물에 걸린 고기들마냥 줄줄이 걸려든다. 얼마전에 봤던 <라라랜드>를 보고서도 그렇고 오늘 <나, 다니엘 블레이크> 영화 역시 보고 나오는데 그동안에 봤던 여러 영화들이 말풍선처럼 내 머릿속 여기저기에 떠올랐다. 같은 그물에 걸린 영화들은 이런 영화들이다. <죽여주는 여자> <스틸 라이프>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그리고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 이 다섯 영화를 묶는 하나의 주제는 뭘까를 생각해봤다. 노년, 고독사, 가난 그리고 이 모두를 포괄하는 인간의 존엄이라는 가치. 그랬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에서 다니엘이 말했던 수치심과 자존심을 잃으면 다 잃은 거라던 그 말처럼 다른 영화들에서도 수치심과 자존심은 지켜지지 않는 것들이었고,  그것을 지키지 못한 이유는 결국 가난때문이었다. 그리고 평생을 성실하게 일하는 사람들임에도 가난하게 살 수밖에 없는 사회의 잘못된 시스템. 국가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가난한 국민들이 원하는 인간적 존중이 이 영화들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이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에서 다니엘은 심장병으로 인해 일을 할 수 없는 처지에 놓인 후, 질병 수당을 받으려 하지만 심사를 받기까지의 복잡한 절차로 인해 결국 다니엘은 국가로부터 어떤 도움도 받지 못한 채 죽음을 맞는다. <죽여주는 여자>의 소영은 일명 박카스 할매로 노인들에게 자신의 몸을 팔아 하라하루 살아가는 노년을 보낸다. 그러다가 자신의 손님들이던 딱한 노인들의 소원을 외면하지 못해 세 명의 노인을 하늘나라로 보내주고 그 댓가로 자신은 감옥살이를 하던 중 죽음을 맞는다.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의 마츠코는 교사였으나 제자의 잘못을 덮어주려다 학교를 그만두게 된 후 집을 나와 이리 저리 제 살길을 찾아 살아가다가 결국 자포자기 하고 혼자 쓸쓸하게 죽어간다. 위 주인공들처럼 가족 한 명 없이 혼자서 죽음을 맞은 사람들의 죽음을 처리해주는 공무원이 등장하는 <스틸 라이프>의 그 역시 혼자 쓸쓸한 삶을 살아가다가 행복을 조금씩 알아가던 순간에 죽음을 맞는다. 쓸쓸하고 고단한 삶이 어떤 것인지를 알기에 그들은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을 도와준다. 국가가 외면하는 국민들은 그렇게 서로서로에게 도움을 주고받으며 살아가지만 가난한 사람들끼리의 연대에는 한계가 있다. 오히려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수남과 비슷한 처지의 서민들은 자신이 남들보다 조금 더 잘 살기 위해 이웃들에게 위해를 가하기까기 한다. 가난이 가난을 착취하는 셈이다.

 

왜 성실히 살아가는데도 우리는 계속 가난해야하는 걸까. 우리의 성실은 이 나라의 발전에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하는 건가. 그래서 국가가 외면해도 되는 국민들인가 우리는. 나이들어가는 것이 공포로 다가오는 이 시대에 <죽여주는 여자>의 재우가 되뇌던 '어떻게 죽어야 잘 죽는 건지..'란 말이 십자가처럼 와 닿는건 비단 나뿐일까. 나름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아왔는데 왜 나이듦과 죽음은 이렇게 공포로 다가와야 하는가. 어차피 저런 노년이고 저런 마지막이라면 지금부터라도 좀 하고싶은 대로 살아도 되는 건 아닐까. 보장되지 않는 미래를 위해 현재를 저당잡혀 현재마저 즐거움을 잃은 채 살아간다면 도대체 우리는 언제 마음껏 웃으며 삶을 누릴 수 있을까. 영화 내내 무뚝뚝한 표정이나  씁쓸한 웃음을 짓던 <죽여주는 여자>의 소영의 얼굴이 자꾸만 떠오른다.

 

 다른 건 모르겠고 제대로 효도 한적 없는 부모님께 제일 큰 불효만은 하지 말자 그 마음 하나로 버티면서 이 삶을 살 수는 있을 것 같다. 아니 어떻게든 그것만은 지킬 것이다. 그렇지만 나를 잡을 수도 있는 다른 끈은 더이상 만들지 말아야 겠다는 생각 또한 더 강해진다. 밝음을 꿈꾸려면 최소한의 빛은 있어야 하는 법인데 그 최소한의 빛을 지켜줄 국가는 오히려 그 빛을 앗아가 버리는 존재가 되었다. 스스로 밝은 미래를 지키기에 우리 대다수의 빛은 얼마나 위태로운가. 크리스마스 이브에 별 생각을 다 한다. 아침부터 내내 눈물바람인 올해의 성탄절은 어여 지나가 버려라. 2016년의 크리스마스 하나도 즐겁지 않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임모르텔 2019-02-21 23: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왜 성실히 살아가는데도 우리는 계속 가난해야하는 걸까. 우리의 성실은 이 나라의 발전에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하는 건가. 그래서 국가가 외면해도 되는 국민들인가 우리는.

...

저도 늘 사유하는 이상한 인류사회 구조시스템에 대한 의문입니다.
세계정보 탐구와 연구 사유끝에 ....... 이젠 조금 알죠! 다만 문제의 해결책이 암담할 뿐...

설해목 2019-02-22 09:16   좋아요 0 | URL
많이 갖고 힘이 있는 사람들에게 인간의 존엄성을 가르친다는 건 불가능해보이기도 하고....--;;
요즘 ‘노동‘에 관한 책들을 주욱 읽고 있는데 정말 답답한 마음뿐이네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니엘처럼 싸워가야겠죠! 스스로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서말이죠.~
 
제5도살장 (반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50
커트 보니것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예전에 읽었던 구판을 찾지 못해 애만 태우다가 이렇게 정영목 선생님 번역으로 새롭게 만나니 더욱 반갑습니다. 정말 꼭 다시 읽어보고 싶었던 소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6. 12. 11. 아침 조조로 <라라랜드>를 봤다. 이런 로맨스 영화를 이른 아침에 가서 보면 연인들을 피할 수 있지 않을까 하였으나 그건 그저 오산이었을 뿐. 나는 양 옆으로 커플들을 두고 사이좋게 나란히 5명이 앉아서 이 영화를 봤다. --;; 영화 보는 내내 냠냠 쩝쩝 속닥속닥거리는 소리에 신경이 곤두서서일까 밝고 사랑스럽고 볼거리와 들을 음악이 가득한 뮤지컬 영화이었음에도 극장을 나오는 내 마음은 그리 좋지만은 않았으니 이 글을 쓰면서 왜 그런 마음으로 극장을 나왔는지에 대해 생각을 정리 해보고자 의자에 앉았다.


정통 재즈에 푹 빠진 재즈 피아니스트 세바스찬과 여배우였던 이모로 인해 어릴 때부터 배우를 꿈꾸던 미아. 꿈에 대한 열정은 가득했으나 자신들이 추구하는 꿈을 이루는 방법을 잘 몰라 거리를 헤매던 그들은 서로의 열정을 알아보고 금세 사랑에 빠진다. 서로의 꿈을 응원해주며 매 계절을 함께 보내는 두 사람이지만 돈이라는 현실 앞에 세바스찬이 먼저 자신의 꿈을 접고 현실쪽으로 발을 내딛고 바빠진 그의 응원없이 혼자 자신의 꿈을 위해 일인극을 준비하던 미아는 참담한 현실 앞에서 주저 앉고 고향으로 돌아가 버린다. 미아에게 찾아온 또한번의 기회를 찾아주기 위해 세바스찬은 미아를 데리러 그녀의 고향으로 찾아오고 미아는 결국 세바스찬의 도움으로 자신의 인생을 바꿔줄 오디션을 보게 된다.


오디션을 보고 나온 미아와 세바스찬이 벤치에 마주 앉아서 나눈 대화.

세바스찬 : 그냥 흘러가는 대로 가보자

미아 : 당신을 영원히 사랑할 거야.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본 오디션의 결과를 기다리는 미아를 응원하게 위해 세바스찬이 건넸을 저 대사는 결국 세바스찬의 미래를 말해주는 저주의 마법이 되었다. 자신의 꿈과 열정을 지지하고 응원해주던 세바스찬을 영원히 사랑할 거라고 말하던 미아는 어느새 꿈을 이루어 유명한 배우가 되었고 그녀 곁에는 다른 남자와 그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 그리고 훌륭한 보금자리가 있다.


왜 그녀는 자신의 꿈과 열정 그 모든 것을 사랑해주던 세바스찬이 아닌 다른 사람과 미래를 만들었을까. 어쩌면 세바스찬의 저 한마디에 답이 있을 수도 있겠다 싶다. 배우가 되고 인기가 많아지고 더 바빠지고 그런 그녀를 세바스찬은 처음처럼 열심히 응원하며 지지했겠지만 결국 멀어진 물리적 거리만큼 마음도 멀어졌을 거다. 세바스찬은 그녀를 조용히 응원하는 것이, 그녀의 화려한 시간이 흘러가는 대로 내버려 두는 것이 그녀를 위하는 걸 거라는 생각에 자신의 사랑에는 적극적일 수 없었을 테고 그러다보니 미아는 가까이에서 자신을 챙겨주는 다른 남자가 자신도 모르게 마음에 들어왔을 거다. 뻔하고 뼌한 스토리지만 가장 현실적이기도 한 연인들의 관계...  


5년이 지난 어느날 남편과 저녁식사를 하고 우연히 들리게 된 클럽에서 미아는 '셉'이라는 이름을 보게 된다. 예전 세바스찬이 훗날 운영하게 될 가게 이름이라며 자신이 직접 만들어줬던 로고. 그리고 그곳에서 정통 재즈 음악을 연주할 수 있는 무대를 갖춘 클럽의 사장이 된 세바스찬을 만나게 된다. 미아를 발견한 세바스찬은 그녀를 처음 봤을 때 연주했던 그 곡을 연주하고 두 사람은 묘한 감정이 담긴 몇 분의 눈맞춤을 나누고 헤어진다.


내가 보기에 이 영화의 압권은 세바스찬이 클럽에서 다시 만난 미아를 위해 연주하는 음악이 흐르던 동안 '만약에 일어났을지도 모를 세바스찬과 미아의 또 다른 삶'이 펼쳐지던 그 몇 분이 아닌가 싶다. 처음 만난 두 사람이 첫눈에 반해 알콩달콩 사랑을 키워나가며 각자의 꿈을 이루고 가정을 이루어 아이를 낳고 행복하게 살았을지도 모를 또 하나의 삶을 주마등처럼 보여주는 그 몇 분...   


이 '만약에...'라 부를만한 장면은 순전히 세바스찬의 입장에서 그려질 수밖에 없는 장면이다. 그저 흘러가는 대로 내버려두는 것이 배우가 된 미아를 위한 것이라고 생각했을 세바스찬. 그래서 최선을 다해 그녀를 사랑했다기 보다는 최선을 다해 그녀를 응원만 했을 그. 영화에서는 생략된 5년의 시간은 세바스찬에게 미련을 남겨줄만한 충분한 시간이었을 것이다. 사랑하는 미아를 잡기 위해 최선을 다하지 못한 자신에 대한 미련말이다.


그런데 만약에 미아의 직업이 배우가 아니었다면? 문득 이런 생각을 해보게 된다. 직업이 배우였기에 미아를 마음만 먹으면 tv에서든 영화에서든 언제든 볼 수 있기에 세바스찬은 어쩌면 최선을 다해 그녀를 잡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헤어졌어도 그녀를 어디서든 볼 수 있기에... 그녀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알 수 있기에... 그같은 미련의 끈이 남았기에 5년 후의 그의 곁에는 아직 연인이 없는지도 모른다.(물론 영화에서는 연인이 있는지 없는지에 대한 어떤 힌트도 없지만.... 분위기상 세바스찬은 여전히 혼자임이 느껴진다.) 그리고 어쩌면 미아가 배우로 있는 한 세바스찬의 그 미련은 영영 계속될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니까 내가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영~~ 기분이 찝찝한 이유는 이거다. 첫사랑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남자에 대한 짜증말이다. 이 나이쯤 되면 나는 누군가의 첫사랑이 되기에는 하늘에 별따기 보다도 어려울 거다. 그렇다면 내가 만나는 남자는 당연히 첫사랑은 겪어봤을 사람일텐데... 그 사람이 세바스찬처럼 첫사랑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해 온갖 SNS를 통해 그녀의 뒤를 여전히 쫓고 있다면 그 얼마나 슬픈 일인가.  최선을 다해 사랑하지 못해 맺어지지 못한 사람이라면 사람을 놓침과 동시에 감정도 놓아버려야 하지 않을까. 그게 바로 세바스찬과 미아의 차이이고 놓친 첫사랑에 대한 남자와 여자의 태도의 차이일지도....


<라라랜드>를 보고나서 줄줄이 떠올랐던 영화들이 있다. 첫사랑을 못 잊어 첫사랑의 이름과 같은 이름을 가진 여자를 만나 결혼하고 가정을 이루었음에도 다시 재회한 첫사랑에 흔들리던, 내가 보기에 최악인 남자를 보여주던 <카페 소사이어티>, 첫눈에 반해 열정적으로 사랑하고 함께 살기로 하지만 끝내 현실이란 벽에 부딪혀 서로를 미워하게 되는 로맨스 이후의 초라한 현실을 보여주던 <블루 발렌타인>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이미 단란한 가정을 이루며 살아가던 어느날, 갑자기 찾아든 또 다른 사랑으로 인해 갈등하던 부부들의 모습이 인상적이던 <우리도 사랑일까>와 <카페 드 플로르> 그리고 이 영화들이 보여주는 모든 것을 아우른다고 할 수 있는 영화 <레볼루셔너리 로드>까지...


이 영화들을 한 줄로 요약하자면 이렇다.

"시작은 마법같았으나 끝은 초라한 현실, 그게 바로 사랑"


그러니 내 결론은

"영원하지도 않을 사랑에 목 매느라 감정 낭비, 시간 낭비 하지 말고 지금 내가 하고 싶은 것들에 마음을 쏟자."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임모르텔 2019-02-21 23: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착각이 동해야 사랑하는 것 같습니다.
착각의 기간!!

설해목 2019-02-22 09:13   좋아요 0 | URL
맞아요. 착각과 콩깎지의 마법이 발휘해야 사랑도 시작되는 것 같긴해요. ^^
 
소주 클럽
팀 피츠 지음, 정미현 옮김 / 루페 / 2016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소설이 왜 읽고 싶어 졌을까. 요즘같이 아무것도 읽기 싫은 시절에... 일주일이 멀다하고 소주를 마시는 요즘이다 보니 자연스레 <소주 클럽>이란 제목에 끌렸고 또 하나는 저자가 외국인이라는 사실이 내 관심을 끌었다. 외국인이 맛본 소주는 어떤 맛일까. 사실 별 기대 없이 읽기 시작했다가 점점 빠져들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소주까지 찾아가면서... 아니 사실은 고구마 막걸리가 더 마시고 싶긴 했지만...

 

비범한 세 부자의 찌질하다 싶은 인생 이야기가 소주와 바다와 어우러진 한 집안의 사연 많은 사정이 내 집안 사정이 아니어서 다행이다 싶은 막장이라면 막장이랄 수도 있는 가족이야기다. 이걸 거제도 토박이 작가가 쓴 소설이 아니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걸쭉한 핏줄이야기다. 아무리 작가가 한국 여인과 결혼을 하고 남도에 처가댁이 있고 한국에서 몇 년을 살았다지만 이렇게 한국의 가족이야기를 맛깔나게 쓸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푹 빠져서 읽었다.

 

사실 나는 아버지를 꽤 알고 있었다. 알코올중독자에다 오입쟁이에다 형편없는 아비. 하지만 마음속 저 깊은 곳에는 알고자 하는 단순한 욕망 비슷한 것을 묻어놓고 있는 사람. 아버지는 자기가 잘하는 분야에 대해선 아무것도 몰랐다. 자신이 특출한 능력을 발휘하는 모든 분야에 무지했다.” (p.224)

 

타고난 어부인 아버지는 두 아들이 자신처럼 어부가 되지 않은 것을 견딜 수 없는 남자다. 두 아들은 그저 또다른 분야에서 탁월한 사람들이었건만 아버지는가 원한 것은 두 아들이 자신과 같은 어부가 되는 것뿐이었다. 그리하여 축구에서 천부적 재능을 보였던 큰아들을 기어이 바다로 데리고 가서 끝내 다리를 못 쓰게 만들고, 글쓰기에 재주를 보이는 둘째 아들 역시 협박하다시피 해서 바다로 데리고 나간다. 아들들에게 저마다의 타고난 재능을 물러주었건만 그 아비란 사람은 자신이 가진 재능 외의 다른 재능을 인정하지 못하는 그런 빡빡한 남자였다.

 

아버지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탄 배에서 다리를 다쳐 축구선수의 꿈을 접어야 했던 큰아들과의 갈등, 글을 쓰는 것이 직업이라는 것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기에 좁혀질 수 없는 둘째 아들과의 거리감. 그리고 외국인과 결혼한 성형중독의 막내딸과 그 사위.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묶이기에는 너무나 서먹서먹한 관계의 그들이 부모의 이혼이라는 문제로 며칠간 함께 지내며 겪어내는 일상은 한국 가족 특유의 끈끈함과 미련함, 지독함과 안쓰러움이 골고루 버무려져 대한민국표 비빔밥 가족을 잘 보여주고 있다.

 

작가가 외국사람이라는 점 때문에 소설을 읽으며 내가 놀랐던 부분들이 있는데, 한국의 가족 정서를 잘 표현한 것에 놀랐고 한국어만이 지닌 어감을 살려낸 맛깔난 문장에 또 한 번 놀랐으며 그리고 토속 음식이랄 수 있는 만두나 막걸리 등의 음식을 먹음직스럽게 표현한 것에 입이 딱 벌어졌다. 무엇보다 한국 현대사에 대한 남다른 통찰력에 다시 한 번 놀랐다. 한국의 민주화 과정에 대한 비판적 관점, 위안부와 독도를 중심으로 한 일본과의 문제에 대한 작가의 시각은 좀 특별한?! 애정이 담겨 있다랄까. 이런 문장이 이 같은 느낌을 뒷받침해 주는듯.

 

나에게 정작 중요한 문제는 우리나라, 특히나 한국처럼 작은 나라 바깥에서 출판을 하니까 작가로서 누릴 수 있는 특권이 크다는 사실이다. 나는 실제로 일어난 일이냐, 꾸며낸 일이냐 물어대는 사람들로부터 벗어나 내가 원하는 걸 쓸 수 있었다. 인간의 마음, 인간의 조건을 얼마나 진실되게 그려냈느냐보다는 한국을 어떤 나라로 그려냈느냐를 가지고 호들갑을 떨고 타박을 하는 한국 언론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민족주의나 민족애의 부담에서 벗어나 쓸 수 있었다. 다시 말해 제대로 글을 쓸 수 있었다. 햇볕정책을 비판해도 되고 일본에 맞서는 입장을 비판해도 되고 직관력을 활용하지 않고 전통에 집착하는 우리의 태도를 비판해도 된다. 빌어먹을 온갖 상황에 대한 문자 규정에 얽매이지 않아도 된다는 말씀. 나의 마음도 정신도 자유로이 노닐었다.” (p.268~269)

 

소주를 20년 가까이 마셔오면서 사실 소주에 관한 이야기를 참 많이 들었는데 이런 음모론이랄까? 소주와 학생운동의 상관관계에 대해서는 사실 이 작가에게서 처음 들어봤다. 그 문장을 옮기면 이렇다.

 

시중에 나온 새 소주가 나는 싫다. 아스파탐과 화학물질 범벅이다. 우리나라의 위대한 전통 하나가 엉망진창이 되었다. 한국에서 술을 마신다는 건 이제 자기혐오의 자해행위가 되고 말았다. 예전에는 음주가 흥청대는 놀이와 저항, 가무와 섹스의 촉매제 역할을 했지만 어느새 음주는 천치가 되는 지름길로 전락했다. 소주를 마시면 몸도 마음도 돌로 변한다. 뇌의 실행 기능을 정지시키는 데 소주 한두 잔만 한 게 없다. 나는 한 가지 묻고 싶다. 1996년 연세대 사태 이후 격렬한 학생 운동이 갑자기 주춤한 것과 소주에 인공감료가 첨가된 것은 과연 우연일까? 우연이 아닐 것이다.” (p.90)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주인공의 직업이 소설가여서인가 소설 중간 중간에는 문학에 대한 이야기가 감칠맛나게 곁들여져 있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인 조지 오웰이나 레이몬드 카버, 플래너리 오코너의 이름을 만났을 땐 이 찌질한 양반이 멋져보이기까지 했다. 그리고 이런 문장을 만났을 때는 존경하는 마음마저도 살짝...

 

문학의 기능은 많아.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기능이 있지. 삶을 이해하고 우리 각자가 지닌 자기만의 악몽에 대처하는 기능이 있지. 역사의 기능도 있다네. 역사가들은 거짓을 말하고 기만할 수도 있지만(일본의 경우처럼) 문학을 거짓말을 못해. 소설이 인간적 기준에서 진실하지 않다면 그건 거짓말이고 프로파간다라네. 내 독자들은 내 작품에 공감하기 때문에 반응을 하는 걸세.” (p.257)

 

책을 덮고 나서 내가 제일 먼저 한 일은 포털사이트에서 고구마 막걸리는 검색하는 거였다. 소설에서만 나오는 줄 알았던 고구마 막걸리는 진짜로 있었다. 하지만 인터넷으로 구입할 수는 없었다. 위장을 달래준다는 고구마 막걸리... 시도 때도 없이 마시고 싶어지는 고구마 막걸리.. ~~~ 나는 <소주 클럽>을 읽고 나서 고구마 막걸리가 먹고 싶어 며칠째 끙끙 앓고 있다. --;; 누가 나한테 고구마 막걸리 좀 사주소.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