덩케르크 - 세계사 최대 규모의 철수 작전
에드워드 키블 채터턴 지음, 정탄 옮김, 권성욱 감수 / 교유서가 / 2017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역사적인 사건을 이렇게까지 치밀하게 기록할 수 있다는 것에 그저 감탄할 뿐이다. 이러한 기록물이 있기에 역사는 현재의 거울이 될 수 있는 건지도... 이 책을 읽고나면 영국의 어떤 선박이라도 달리 보일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7. 8. 12. 영화 <프란츠>를 봤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난 독일의 한 마을에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프란츠. 이십대 초반의 독일청년. 의사 아버지와 어머니의 외동아들. 안나라는 약혼녀가 있다. 전장에서 프랑스군의 총에 맞아 전사했고, 더 이상 그가 없는 집에서 약혼녀 안나는 그의 부모와 함께 살고 있다. 어느날 그들에게 프란츠가 프랑스에 있을 때 사귄 친구라며 프랑스 청년 아드리앵이 찾아온다. 아들의 빈자리로 찾아든 아들의 친구에게 프란츠 부모는 물론 안나까지 얼었던 마음을 풀게 된다. 하지만 아드리앵은 죄책감에 시달리다 안나에게 자신이 전장에서 마주친 프란츠를 죽은 군인이었다고 고백하고 그의 가족들에게 용서를 빌러 왔다고 솔직하게 말하지만 안나는 부모님에게는 자신이 말해겠다며 아드리앵을 프랑스로 돌려보낸다. 안나는 프란츠의 부모님에게 아드리앵의 진실을 감추고 무거운 비밀을 간직한 채 회색빛 일상을 보내다가 자살까지 시도하게 된다. 자신이 아드리앵을 좋아한다는 걸 깨달은 안나는 아드리앵을 마음에 들어하는 프란츠 부모님의 응원 하에 아드리앵을 만나러 프랑스로 가게 되고 우여곡절 끝에 아드리앵의 고향집까지 가게 되어 아드리앵과 만난다. 하지만 그의 곁에는 어릴 때부터 같이 자라고 곧 결혼을 할 약혼자가 함께 살고 있다. 프란츠와 안나와 같은 연인이... 결국 안나는 아드리앵을 포기하고 돌아간다. 영화는 루브르 박물관에 걸린 마네의 <자살>이라는 그림 앞에 앉아 있는 안나의 모습으로 끝이 난다.

 

 

에두아르 마네, <자살> 혹은 <자살한 남자>

   

이 영화를 보면서 떠올랐던 영화가 있다. 영화의 시대적 배경도 같고 전장에 나간 약혼자로 인해 특별한 여정을 하는 여자가 주인공이라는 점에서 떠올랐던 영화 <인게이지먼트>. 프랑스의 작은 마을에 사는 마띨드는 어릴적에 앓은 소아마비로 인해 한쪽 다리가 불편하다. 그런 그녀에게 먼저 말을 걸어준 소꿉친구이자 약혼자인 마네끄가 전장으로 끌려간 후 군형법을 어겼다는 이유로 군법재판소에 넘겨서 사형을 선고받고 비무장 지대에 버려지다시피 했다는 소식을 전해 듣게 된다. 하지만 마띨드는 자신의 예감을 믿으며 그가 아직 살아있다고 확신하고 그를 찾아 나선다. 탐정을 고용하고 그 당시 약혼자와 함께 했던 군인들을 찾아다니며 마네끄의 생사를 쫓던 그녀는 결국 그가 살아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마띨드가 기억을 상실한 채 다른 사람의 신분으로 살아가고 있는 약혼자를 만나는 장면에서 영화는 끝난다.

 

 

두 영화는 전쟁의 끝에 희망을 찾는 여자들의 모습으로 끝이 난다. <프란츠>의 안나는 루브르 박물관에 걸린 마네의 <자살>이란 그림 앞에서 독백한다. 이 그림이 삶의 의지를 갖게 해준다고.. 사랑하는 약혼자를 잃고, 그 약혼자로 인해 알게 된 또 다른 남자 아드리앵과도 맺어지지 못한 안나가 다시 느끼게 된 삶의 의지란 무엇일까. 프란츠를 잃고 아드리앵 마저 떠나버리고 더 이상 슬픔을 견딜 수 없다면서 강물로 걸어 들어갔던 안나는 폐허가 된 곳에서도 삶은 이어져야 한다는 걸 두 번의 사랑으로 깨닫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약혼자를 잃고 그를 죽인 남자를 사랑하게 되었지만 그 남자와도 맺어질 수 없었음에도 또 다른 사랑은 찾아올 거라는 희망. 안나는 도저히 사랑할 수 없는, 사랑해서는 안 되는 아드리앵을 사랑함으로써 사랑에 대한 가능성을 본 것인지도 모른다. 삶이 계속되는 한 사랑은 어디에나 있다는 가능성 말이다.

 

<인게이지먼트>의 마띨드는 결국 기억을 잃고 신분마저 바뀌어버린 약혼자를 찾아낸다. 영화 내내 약혼자의 생존에 대해서 희망을 놓지 않던 마띨드의 모습은 사랑하는 사람을 보고싶다는 간절함이 담겨 있다. 그리고 그를 찾기 위해서 했던 적극적인 행동들은 혼란한 시대에는 여자가 오히려 더 강인할 수도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이런 모습은 자신의 애인을 죽게 만든 관련자들을 찾아다니며 죽음으로 복수를 하는 여자(마리옹 꼬디아르 분)에서도 잘 나타난다.]. 마네끄는 약혼자 마띨드를 살아서 다시 만나기 위해 적극적으로 살려고 하지 않았다. 오히려 정신줄을 놓음으로써 그저 자신 안으로 대피했을 뿐. 그런 그를 찾아낸 건 결국 마띨드의 강한 의지였다. 전쟁 후의 폐허 속에서도 희망을 놓지 않고 강한 의지로 삶을 이어가는 건 결국 여자들의 몫이었는지도 모른다. 전쟁에서 살아남은 자들을 대신해서...

 

두 영화 모두 주인공인 두 여자의 연기가 강한 인상을 남긴다. 특히 <프란츠>의 안나는 마음이 조금씩 변해가는 것을 눈빛과 작은 행동만으로도 잘 표현했다. <인게이지먼트>의 마띨드는 특유의 발랄함으로 영화에 생동감을 더해주었다. 전쟁과 사랑이라는 같은 소재 심지어 같은 시대를 배경으로 이야기 하고 있으면서도 두 영화(혹은 두 여인)이 관객에게 주는 느낌은 사뭇 다르다. 그러면서도 전해지는 감동의 무게는 비슷하다 랄까. 이런 게 영화의 힘은 아닌지 새삼 그런 생각을 해본다.

 

두 영화가 인상 깊게 남는 또 다른 이유는 영화의 색감 때문이다. <프란츠>는 흑백톤으로 흐르다가 잠깐씩 눈치 채지 못할 정도로 자연스럽게 칼러 장면으로 바뀐다. 그런가하면 <인게이지먼트>는 전체적으로 따뜻한 느낌을 주는 세피아톤의 색감을 사용하여 참혹한 전쟁 장면이 많았음에도 큰 거부감 없이 볼 수 있었다. 흑백과 세파아. 둘 다 과거라는 시간에 어울리는 색감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둘 다 과거의 색이되 두 여주인공의 모습과 심경을 대변하는 것으로 각 영화가 선택한 색감은 적절한 선택이 아니었나 싶다

 

두 영화는 전장에 사랑하는 사람을 보낸 젊은 여자가 주인공인 사랑이야기지만 1차세계대전이 배경인 만큼 전쟁에 대한 민낯을 보여주기도 한다. 프란츠의 아버지는 자신 또래들이 모인 한 모임에서 말한다. 우리의 자식은 프랑스인이 죽인 게 아니라 우리 아버지들이 죽인 거라고. 그들의 손에 무기를 쥐어주고 전장으로 내보낸 건 우리 아버지들이라고. 우리 아들들이 죽으면 저쪽 아버지들이 축배를 들고 저쪽 아들들이 죽으면 우리가 축배들 들었다고. 결국 우리 모두는 아들들의 죽음에 축배를 드는 그런 아버지일 뿐이라고... 그런가 하면 <인게이지먼트>에서 징집당한 한 남자는 동료 군인들에게 이런 말로 설득을 하려고 하지만 실패한다. 자신 같은 하층민들이 서로를 죽일 대포를 만들면 부자들이 그걸 팔아 돈을 번다고... 두 영화는 말한다. 전쟁은 그 어떤 편도 이득일 수 없다고, 결국 부자 같은 몇몇 사람들의 배만 불리는 악 중의 악이라고. 전쟁의 잔혹함을 대놓고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관객들에게 제법 강한 인상을 남긴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유부만두 2017-08-13 18: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프란츠가 그런 내용이었구나....

희선 2017-08-24 02: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영화 시대배경은 같아도 하나는 독일이고 하나는 프랑스네요 독일 사람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까 하는 걱정이 앞서는... 그렇다 해도 살아가겠죠 전쟁이 일어나면 좋은 곳은 하나도 없겠습니다 그걸 알면서도 할 때도 있지 않나 싶어요 전쟁이 일어나면 가장 밑에 사람이 힘들겠습니다 하지 않으면 안 될 테니... 그럴 때라도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싶은데 어려울지도 모르겠네요


희선
 
넛셸
이언 매큐언 지음, 민승남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자칭 나는 이언 매큐언 빠순이다. 국내에 출간된 책들은 모두 가지고 있고 또 읽어 왔다. 영어를 잘했다면 아마 국내에 번역 출간되지 않은 책까지 어떻게든 구해보려고 시도했을지도... 아무튼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한 애정을 듬뿍 담아 이언 매큐언를 신뢰하는 독자 중 한 사람이다. 최신작 넛셸을 읽기 전에 이 소설이 셰익스피어의 햄릿을 재해석한 작품이라는 걸 알고는 햄릿부터 읽고 이 신작을 읽는 게 이언 매큐언의 애정독자로써 취해야할 마땅한 독서자세라 생각하고 햄릿을 읽으려 했으나 결국 읽지 못한 채 이 소설을 만났다. 이것이 어찌 보면 잘못된 것이었을까. 이 소설을 읽는 동안 예전의 이언 매큐언이 아니란 생각이 자꾸 들면서 많지 않은 분량임에도 겨우겨우 읽어 내려갔다.

 

줄거리는 단순하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책소개에 다 나와 있다. 시동생과 불륜을 저지른 엄마의 뱃속에서 엄마와 삼촌이 아버지를 죽일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태아. 태아는 이 음모에 자신의 존재는 전혀 고려대상이 아님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 음모가 성공하든 실패하든 그 어떤 결과도 자신이 만족할만한 것은 아닐 거라고 생각한다. 이 엄청난 사건에 아버지, 삼촌은 물론 엄마에게서조차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지 못한다는 걸 깨달은 태아는 자신이 이 음모로부터 진짜로 아버지를 구하고 싶은 건지 아니면 그저 죄인이 될지도 모르는 엄마를 구하고 싶은 건지 아니면 자신의 아버지를 빼앗아간 삼촌에게 복수하고 싶은 건지 그것도 아니면 단지 이 세상에 던져졌을 때 자신이 가장 행복할 수 있는 상태를 만들고 싶은 건지 그저 혼란스러울 따름이다. 이렇듯 혼란스럽기만한 태아는 그래서 이 세상으로 나오기를 갈망하다가도 또 한편으로는 영원히 자궁 밖으로 나가기를 꺼려하던 건 아닐까. 이것이 태아에게 있어 사느냐 죽느냐’(to be or not to be)의 문제는 아닐는지...

 

태아는 엄마가 듣는 팟캐스트와 라디오를 통해서 세상의 이치를 배웠다. 태아가 그 좁은 통로를 통해 알게 된 세상은 어둡다. 기후변화, 전쟁, 기아, 고통, 가난, 지역분쟁, 갑부들이 지배하는 세상 등등 그리 낙관적이지 않다. 이런 세상으로 나온다한들 아름다운 세상에 나왔다고 할 만한 그런 세상은 아닌 거다. 게다가 엄마와 삼촌이 꾸민 아버지에 대한 살인 음모는 성공하든 실패하든 어느 쪽이든 태아에게 그리 밝은 미래를 보장하지 않는다. 이것을 이미 다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태아는 자기 인생을 결정할 수 없다. 살고 싶어도 죽고 싶어도 자기 뜻대로 할 수 없는 존재... 자신의 밝은 미래를 망가뜨리려는 엄마를 증오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자신을 있게 하는 유일한 존재이기에 어쩔 수 없이 사랑하고 매달릴 수밖에 무기력한 존재.. 자신이 현재는 이런 무기력한 존재밖에 안 된다는 걸 알기에 태아는 뱃속 안에서도 괴롭다. 비록 엄마가 마신 포도주를 황홀하게 음미할지라도...

 

태아는 대중 매체를 통해 알아온 온갖 지식들을 바탕으로 자신의 왕국을 넘쳐나는 자의식으로 채웠다. 그리고 넘쳐나는 자의식으로 인해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혼란스럽다. 물론 선택을 한다한들 그걸 이룰 수도 없는 처지이긴 하지만... 결국 인간이란 이 태아와 같은 존재가 아닐까. ‘to be’ ‘not to be’ 사이를 오가며 끝내 자신의 의지로 진짜 중요한 것은 결정하지 못하는 선택장애의 운명을 타고난 존재 말이다.

 

책 뒷 표지를 보니 여러 유명한 매체에서 이 소설에 대해 좋은 평을 하고 있다. 한줄평인지 추천사인지 아무튼 그들이 쓰고 있는 이 소설에 대한 평들도 이 소설만큼이나 와 닿지 않기는 마찬가지. --;; 타임스는 작은 공간에 이토록 많은 아이디어를 담는 매큐언의 기술이 돋보인다.’라고 평하고 있는데 어쩌면 이 소설에서 시도한 매큐언의 새로운 기술은 짧은 소설에 담기에는 그 기술이 역부족이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내가 아무래도 이번 소설은 제대로 이해할 만한 능력이 안 되구나 싶은 자괴감이 들 뿐이고.. 이 더운 여름밤에 나는 이런 엉터리 리뷰를 쓰고 있을 뿐이고.. 다시 읽어봐야지 싶지만 그게 언제가 될지는 나조차 모르겠고..

     


댓글(8) 먼댓글(0) 좋아요(2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7-07-09 21: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7-09 18: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잠자냥 2017-07-10 09: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작품 소개 처음 봤을 때 아이디어는 참 신선하다고 생각했는데... 전 이언 매큐언 작품이라 결국 안 읽었거든요. 하하하. 근데 쓰신 글을 보니 역시 안 읽게 될 것 같습니다. ㅎㅎ 아, 근데 설해목 님이 말씀해주신 줄거리는 재미났어요. ㅎㅎ

설해목 2017-07-10 11:55   좋아요 0 | URL
이게 <햄릿>을 재해석하였다고 하는데 파격적인 재해석인 것 같아요. 제가 기존에 좋아하던 매큐언의 글쓰기와는 많이 달라져서 사실 적응이 좀 안되긴 하더라구요. ^^;; 그래서 어제 매큐언의 초기작품인 <첫사랑, 마지막 의식>을 꺼내들고야 말았습니다. ㅎㅎ

레삭매냐 2017-07-10 16: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뭐랄까 마치 제가 좋아하는 가즈오 이시구로
작가처럼 새로운 무언가에 도전했지만 역시나
그전의 작가를 기억하는 독자에게는 배신 같은
그런 느낌.

저도 비슷한 생각이 들었어요. 이언 매큐언
선생이 연세가 드셔서 맛(탱이)가 가셨나 하는.

햄릿도 보려고 도서관에서 빌렸으나... 빌리기
만 하고 역시 읽지 못했더라는.

저희 독서모임에서 동료 분 중의 하나가 울나라
뉴스에서 하도 엽기적인 소재들이 넘실거리니
이 정도 쯤이야 하시는 말쌈에 빵~ 터졌었습니다.

설해목 2017-07-13 16:41   좋아요 0 | URL
그 독서모임 동료분의 이야기에 공감합니다. 진짜 이정도의 일이야 별거 아니라는 생각이 들정도로 세상 흉흉하긴 해요.
저는 <첫사랑, 마지막 의식>을 꺼내들었어요. 이언 매큐언 옹의 첫글이 그리워서요. ㅎㅎㅎ

희선 2017-07-14 01: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설해목 님이 쓰신 글을 보니 <햄릿>이 떠오르게 하는군요 우연히 책소개 봤을 때는 윤이형 소설 <굿바이>가 생각났습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게 바로 엄마 배 속 아기거든요 그 배 속 아기가 세상을 살아가는 게 힘들 듯하여 스스로 죽으려고 해요 거기에서는 그런 일이 일어나기도 하네요 죽으려고 한 건 엄마 배 속에서 나오려고 할 때였지만... 배 속에 아이가 생기면 안 좋은 말은 하지 않아야 한다고도 하는데 진짜 배 속 아이가 다 알아듣는 건 아닐지라도 조금은 영향을 미치겠죠

책 뒤에 쓰인 평 같은 건 거의 좋게 쓰는 듯해요 안 좋은 말은 본 적 없어요


희선

설해목 2017-07-14 11:49   좋아요 1 | URL
<넛셸>의 색다른 교훈을 말해보자면 희선님 말씀처럼 태교를 잘하자! 정도가 될듯합니다. 아이들도 엄마의 감정을 다 느낀다고 하는데...... 뱃속 아이도 이 소설의 태아처럼 모든 걸 다 듣고 느낀다는 걸 깨닫고 부모도 태교의 중요성을 알아야한다는 그런 뭐 나름의 교훈을 주는 소설이기도 하구나 싶습니다. ^^
 
어려운 여자들
록산 게이 지음, 김선형 옮김 / 사이행성 / 2017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쁜 페미니스트의 저자 록산 게이의 소설집이다. 소설을 쓰는 줄은 몰랐다. 그래서 출판사에서 제공한 저자의 소개를 다시 읽어보니 록산 게이는 다양한 글쓰기를 하고 있는 대단한 정열의 소유자인 듯하다. 이 리뷰는 이번에 출간된 소설집 어려운 여자들중에서 출판사에서 선별만 8편만 따로 선집하여 만들어 제공한 소책자본을 읽고 쓰는 것이다.

 

<언니가 가면 나도 갈래>는 한 살 차이인 자매가 어릴 때 겪은 끔직한 성적 학대로 인해 그 이후로는 한시도 떨어지지 않은 채 살아가는 이야기이다. <, 그 엄청난 무게>는 태어날 때부터 물을 몰고 다니는 여자에 관한 이야기며 <어려운 여자들>은 헤픈 여자, 불감증의 여자, 미친 여자 그리고 어머니, 죽은 처녀라는 소재에 대해 저자만의 생각을 짧게 적은 글이다. <어떻게>는 한나라는 젊은 여자가 어떻게 그런 견디기 힘든 일상에 내몰리게 되었고 또 어떻게 그곳에서 탈출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며 <유리 심장을 위하 레퀴엠>은 피와 살로 된 남자가 유리로 되어 모든 걸 훤히 보여주고 또 조심스럽게 대해야 하는 유리 아내와 살아가는 이야기이다. <나쁜 신부>는 철저히 종교적인 집안에서 자란 미키가 신부라는 신분으로 한 여자와 섹스를 즐기는 이야기라면 <나는 칼이다>는 출산이 임박하였으나 오지에 살았기에 제때 병원에 도착하지 못해 아이를 잃고 자궁까지 망가져 더 이상 아이를 갖지 못하는 부부에 관한 이야기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실린 <이방의 신들>은 백인 아버지와 흑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여자가 어릴 적 또래 남자들에게 윤간을 당한 뒤 자신을 창녀처럼 취급하다가 좋은 남자를 만나 서서히 회복되어 가는 이야기다.

 

록산 게이가 쓴 글이 어떤 소설인지는 내용을 짤막하게 정리만 해봐도 단번에 알 수 있다. 이 소설들은 여성의 상처와 아픔에 관한 이야기라는 걸... 그리고 그 상처들은 몸의 상처로 인해서 마음의 상처로까지 이어졌으며 대부분의 상처는 가까운 사람들에 의해 입게 되었다는 걸...

 

태어날 때부터 물을 몰고 다니는 여자에 대한 이야기인 <, 그 엄청난 무게>는 어쩌면 여자로 태어날 때부터 숙명적으로 안고 살아갈 그 어떤 무게를 말하고 있는 게 아닐까 싶다. 몸 안에 엄청만 물인 양수를 갖도록 운명지워진 여자들. 하지만 그러지 못하게 되었을 때 입게 되는 상처... 여자들에게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치명적일 수 있는 자궁의 상처에 대한 이야기들이 이 소설에서 내가 주목한 부분이다. 어릴 때 납치되어 6주간 성폭행을 당한 남매, 역시 어릴 때 학교 친구들에 의해 윤간을 당한 소녀, 그리고 출산할 때 의사의 잘못된 수술로 인해 아이는 물론 자궁의 대부분을 잃은 여자. 내가 여자로 태어났음을 증명하는 상징적인 신체부위를 강압과 폭력 혹은 무지에 의해 훼손당한 그녀들은 스스로를 불안한 세계로 내몰고 있는 듯하다. 아니 그럴 수밖에 없는 정신적인 상처도 함께 입었음이 분명하다. 자궁의 상처는 여자라는 정체성에도 상처를 입혔다. 그런가하면 자신의 몸을 아무에게나 허락하는 <어떻게>의 한나나 <나쁜 신부>의 리베카 역시 어디를 상처내면 가장 아플 수 있는지를 알면서 스스로에게 상처 입히고 있는 여자들이다. 때로는 그 상처로 평생 마음의 병까지 앓고 있는 여자들의 이야기는 그저 소설 속에서나 있을 법한 상상의 이야기만으로는 읽히지 않는다.

 

지금 일하는 사무실에서 성범죄 관련 사건들을 꾸준하게 봐오고 있다. 중학생 오빠가 초등학교 고학년 여동생을 성폭행한 사건, 친구의 술 취한 남자친구에게 강간을 당하려다가 미수에 그친 사건, 이혼 소송 중에 남편이 아내를 강제로 범하려던 사건, 직장 여직원을 바래다주는 택시 안에서 몸을 주물러 대던 직장상사의 성희롱 사건 등등. 그런데 이런 사건들을 접하면서 이상하게 생각된 건 성범죄를 당한 피해자의 주위 여자들의 반응이다. 친남매의 어머니는 피해자인 딸보다는 가해자인 아들만 싸고돌았다. 친구 역시 피해를 당한 여자친구보다는 자신의 남자친구 편을 들었고 부부의 시어머니 역시 당신 아들의 입장만을 이해하려 했으며, 직장의 여성들조차 말단 여직원보다는 상사였던 팀장을 위해 탄원서를 제출했다. 여자들은 피해를 입은 같은 여자의 상처를 보기 꺼려했다. 부정하고 피하려고만 했다. 그리고 피해자들은 그런 여자들로 인해 이중의 고통을 겪었다. 마치 자기의 잘못인양 부모의 눈치를 보고 친구에게 미안해하고 아이들을 볼 면목이 없다고 했으며 결국 직장을 그만두어야 했다. 세상은 여전히 자신의 몸을 지키지 못한 여자들에게 가혹하다. 남성은 물론 여성까지 곱지 않은 시선으로 피해 여성들을 바라보며 마음에 상처를 준다.

 

여자를 어렵게 만드는 건 뭘까? 근본적으로는 동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남자들이 주된 원인일 것이다. 최근 몇 권의 페미니즘 책을 읽으면서 느낀 건 남자들뿐만 아니라 여자들 또한 여자들을 어렵게 하고 있다는 거다. 어쩌면 같은 여자들끼리 주고받는 상처가 더 크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든다. 오래전부터 남성 중심으로 돌아가는 사회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건 분명 쉽지 않은 일이다. 여자들 없이는 이리 오랫동안 세대를 이어오지 못했을 거였으면서도 남자들은 여자들과 함께 제대로 살아갈 방법을 여전히 모르고 있는 듯하다. 함께 사는 법을 모르는 이기적인 남자들을 위해 어렵고 힘들더라도 여자들이 조금씩 바꿔나가야 한다. 소설을 읽고 이런 당위적인 결론을 내게 되다니.. 역시 록산 게이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7-07-07 12: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7-07 12: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레삭매냐 2017-07-10 16: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른 건 모르겠고,,,

하필이면 작가의 이름이 록샌 ‘게이‘라니요.

엉뚱하게도 역사가 피터 게이 샘이 떠올랐습니다.

설해목 2017-07-10 16:08   좋아요 0 | URL
필명은 아닌 것 같고.... 이 작가 삶이 평탄치만은 않으셨던 것 같더라구요.

 
詩누이
싱고 지음 / 창비 / 2017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요 며칠 기분이 널을 타고 있다. 아닌 감정의 널뛰기는 꽤 오래전부터였다. 하루는커녕 몇 시간 만에 하늘과 가깝던 기분이 땅바닥에 붙어버리곤 한다. 기분이 나빠지는 데는 이유가 없다. 아니 이유가 너무 많다. 그런 기분을 끌어올리는 데는 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기분의 추락에는 날개 따위 없이 급하강이다. 사십대 싱글의 마음이란 이런 걸까. 하루에도 몇 번씩 오르내리는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타는 나날들. 변화와 안정 사이에서 의미 없는 줄타기를 하며 눈을 뜨고 눈을 감는 일상에서 위로를 받는 건 점점 적어져만 간다. 위로를 얻고자 데려온 책들 사이에서 오히려 길을 헤매고 친구들과 수다를 떨고 들어온 밤이면 기분은 한없이 더 가라앉는다. 나만... 왜 나만... 뒷말을 채 잇지 못하고 울다 잠드는 날이 늘어간다.

 

이마

 

장판에 손톱으로

꾹 눌러놓은 자국 같은 게

마음이라면

거기 들어가 눕고 싶었다

 

요를 덮고

한 사흘만

조용히 앓다가

 

밥물이 알맞나

손등으로 물금을 재러

일어나서 부엌으로

 

- 신미나 시, 시집 싱고, 라고 불렀다』     

 

혼자서 조용히 앓다가 아무렇지 않게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는 시간이 한 사흘쯤이면 되는 그때로 가고 싶다. 그 때가 과거에 있든 미래에 있든 그 곳으로 훌쩍 건너가고 싶다. 그 곳에서 내 손톱으로 눌러 패인 마음의 자리에 들어앉아 온전하게 나를 위로하고 싶다. 위로받고 싶다. 시 한편으로도 좋고, 내 처지 비슷한 누군가의 솔직한 글이라도 좋다. 가끔은 그렇게 글로 위로받고 싶다. 글로밖에 위로받을 수 없는 그런 마음이 있다.

 

싱고

 

십년 넘게 기르던 개가

돌아오지 않았을 때

나는 저무는 태양 속에 있었고

목이 마른 채로 한없는 길을 걸었다

그때부터 그 기분을 싱고,라 불렀다

 

싱고는 맛도 냄새도 없지만

물이나 그림자는 아니다

싱고가 뿔 달린 고양이나

수염난 뱀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적 있지만

아무래도 그건 싱고답지 않은 일

 

싱고는 너무 작아서

잘 알아보지 못할 때가 많다.

풍선껌처럼 심드렁하게 부풀다가

픽 터져서 벽을 타고 흐물흐물 흘러내린다

싱고는 몇 번이고 죽었다 살아난다

 

아버지가 화를 내면

싱고와 나는 아궁이 앞에 앉아

막대기로 재를 파헤쳐 은박지 조각을 골라냈다

그것은 은단껌을 싸고 있던 것이다

 

불에 타지 않는 것들을 생각한다

이상하게도

 

- 신미나 시, 시집 싱고, 라고 불렀다』     

 

신미나 시인의 <싱고>라는 시를 읽고서는 나 역시 나만의 싱고는 어떤 걸까를 생각한 적이 있다. 이미 나와 늘 함께해 왔지만 싱고와 같은 이름을 붙여주지 못한 어떤 기분. 그 기분을 요근래 자주 들여다봤다. 싱고(신미나 시인)가 쓰고 그린 누이를 읽다보니 어느새 마음에서 일어나는 기분을 꼼꼼하게 살펴보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싱고는 이런 기분을 이렇게 표현했구나, 싱고도 나랑 똑같은 기분을 느끼며 살고 있구나, 싱고가 지금쯤은 다이어트에 성공 했으려나, ‘쌀가루 같은 눈이 오는 어느 겨울밤에 천천히 취할 수 있는 그런 가게에 싱고랑 나란히 앉아 술 한 잔 하고 싶다, 그건 그렇고 싱고에게 시마(詩魔)가 자주 찾아오면 좋겠다. 뭐 이런 말꼬리풍선들을 달면서 은근한 마음으로 읽었다.

 

내 기분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시, 내 일기장을 들여다보는 듯한 글, 내 생활을 그려놓은 듯한 그림들이 때로는 얼굴 마주보며 이야기하는 친구들과의 수다보다, 가족들의 말 한마디 보다 더 위로가 될 때가 있다. 생판 모르는 타인의 일상이 위로가 되는 그런 기분이 있다. 롤러코스터를 타는 요즘 내 기분을 달래주는 건 싱고의 누이2B의 웹툰 <퀴퀴한 일기>. 비슷한 또래 동성의 이야기에서 받는 성급하지 않은 위로. 그저 그들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가벼워진다. 안도하게 된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희선 2017-06-21 03:1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싱고, 맨 앞에 조금 보고 개 이름인가 했습니다 확실하게 말하기 어려운 기분인가 싶네요 저도 그런 걸 느낄 때 있군요 어떻게 하면 나아질까 생각하기도 하는데, 나아지는 방법은 없는 것 같기도 하고... 그럴 때도 있지, 할 때가 많습니다 이런 생각을 한 건 아니고 그렇게 생각하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마음을 억지로 바꾸려 하기보다 그냥 내버려둘 때도 있어야겠죠


희선

설해목 2017-06-21 08:48   좋아요 2 | URL
이름을 붙이면 낯설고 부정적인 기분도 친해질 수 있는 것같아요.
싱고 같은 이쁜 이름을 붙여주기위해서라도 제 기분을 잘 들여다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