넛셸
이언 매큐언 지음, 민승남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자칭 나는 이언 매큐언 빠순이다. 국내에 출간된 책들은 모두 가지고 있고 또 읽어 왔다. 영어를 잘했다면 아마 국내에 번역 출간되지 않은 책까지 어떻게든 구해보려고 시도했을지도... 아무튼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한 애정을 듬뿍 담아 이언 매큐언를 신뢰하는 독자 중 한 사람이다. 최신작 넛셸을 읽기 전에 이 소설이 셰익스피어의 햄릿을 재해석한 작품이라는 걸 알고는 햄릿부터 읽고 이 신작을 읽는 게 이언 매큐언의 애정독자로써 취해야할 마땅한 독서자세라 생각하고 햄릿을 읽으려 했으나 결국 읽지 못한 채 이 소설을 만났다. 이것이 어찌 보면 잘못된 것이었을까. 이 소설을 읽는 동안 예전의 이언 매큐언이 아니란 생각이 자꾸 들면서 많지 않은 분량임에도 겨우겨우 읽어 내려갔다.

 

줄거리는 단순하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책소개에 다 나와 있다. 시동생과 불륜을 저지른 엄마의 뱃속에서 엄마와 삼촌이 아버지를 죽일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태아. 태아는 이 음모에 자신의 존재는 전혀 고려대상이 아님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 음모가 성공하든 실패하든 그 어떤 결과도 자신이 만족할만한 것은 아닐 거라고 생각한다. 이 엄청난 사건에 아버지, 삼촌은 물론 엄마에게서조차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지 못한다는 걸 깨달은 태아는 자신이 이 음모로부터 진짜로 아버지를 구하고 싶은 건지 아니면 그저 죄인이 될지도 모르는 엄마를 구하고 싶은 건지 아니면 자신의 아버지를 빼앗아간 삼촌에게 복수하고 싶은 건지 그것도 아니면 단지 이 세상에 던져졌을 때 자신이 가장 행복할 수 있는 상태를 만들고 싶은 건지 그저 혼란스러울 따름이다. 이렇듯 혼란스럽기만한 태아는 그래서 이 세상으로 나오기를 갈망하다가도 또 한편으로는 영원히 자궁 밖으로 나가기를 꺼려하던 건 아닐까. 이것이 태아에게 있어 사느냐 죽느냐’(to be or not to be)의 문제는 아닐는지...

 

태아는 엄마가 듣는 팟캐스트와 라디오를 통해서 세상의 이치를 배웠다. 태아가 그 좁은 통로를 통해 알게 된 세상은 어둡다. 기후변화, 전쟁, 기아, 고통, 가난, 지역분쟁, 갑부들이 지배하는 세상 등등 그리 낙관적이지 않다. 이런 세상으로 나온다한들 아름다운 세상에 나왔다고 할 만한 그런 세상은 아닌 거다. 게다가 엄마와 삼촌이 꾸민 아버지에 대한 살인 음모는 성공하든 실패하든 어느 쪽이든 태아에게 그리 밝은 미래를 보장하지 않는다. 이것을 이미 다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태아는 자기 인생을 결정할 수 없다. 살고 싶어도 죽고 싶어도 자기 뜻대로 할 수 없는 존재... 자신의 밝은 미래를 망가뜨리려는 엄마를 증오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자신을 있게 하는 유일한 존재이기에 어쩔 수 없이 사랑하고 매달릴 수밖에 무기력한 존재.. 자신이 현재는 이런 무기력한 존재밖에 안 된다는 걸 알기에 태아는 뱃속 안에서도 괴롭다. 비록 엄마가 마신 포도주를 황홀하게 음미할지라도...

 

태아는 대중 매체를 통해 알아온 온갖 지식들을 바탕으로 자신의 왕국을 넘쳐나는 자의식으로 채웠다. 그리고 넘쳐나는 자의식으로 인해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혼란스럽다. 물론 선택을 한다한들 그걸 이룰 수도 없는 처지이긴 하지만... 결국 인간이란 이 태아와 같은 존재가 아닐까. ‘to be’ ‘not to be’ 사이를 오가며 끝내 자신의 의지로 진짜 중요한 것은 결정하지 못하는 선택장애의 운명을 타고난 존재 말이다.

 

책 뒷 표지를 보니 여러 유명한 매체에서 이 소설에 대해 좋은 평을 하고 있다. 한줄평인지 추천사인지 아무튼 그들이 쓰고 있는 이 소설에 대한 평들도 이 소설만큼이나 와 닿지 않기는 마찬가지. --;; 타임스는 작은 공간에 이토록 많은 아이디어를 담는 매큐언의 기술이 돋보인다.’라고 평하고 있는데 어쩌면 이 소설에서 시도한 매큐언의 새로운 기술은 짧은 소설에 담기에는 그 기술이 역부족이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내가 아무래도 이번 소설은 제대로 이해할 만한 능력이 안 되구나 싶은 자괴감이 들 뿐이고.. 이 더운 여름밤에 나는 이런 엉터리 리뷰를 쓰고 있을 뿐이고.. 다시 읽어봐야지 싶지만 그게 언제가 될지는 나조차 모르겠고..

     


댓글(8) 먼댓글(0) 좋아요(2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7-07-09 21: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7-09 18: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잠자냥 2017-07-10 09: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작품 소개 처음 봤을 때 아이디어는 참 신선하다고 생각했는데... 전 이언 매큐언 작품이라 결국 안 읽었거든요. 하하하. 근데 쓰신 글을 보니 역시 안 읽게 될 것 같습니다. ㅎㅎ 아, 근데 설해목 님이 말씀해주신 줄거리는 재미났어요. ㅎㅎ

설해목 2017-07-10 11:55   좋아요 0 | URL
이게 <햄릿>을 재해석하였다고 하는데 파격적인 재해석인 것 같아요. 제가 기존에 좋아하던 매큐언의 글쓰기와는 많이 달라져서 사실 적응이 좀 안되긴 하더라구요. ^^;; 그래서 어제 매큐언의 초기작품인 <첫사랑, 마지막 의식>을 꺼내들고야 말았습니다. ㅎㅎ

레삭매냐 2017-07-10 16: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뭐랄까 마치 제가 좋아하는 가즈오 이시구로
작가처럼 새로운 무언가에 도전했지만 역시나
그전의 작가를 기억하는 독자에게는 배신 같은
그런 느낌.

저도 비슷한 생각이 들었어요. 이언 매큐언
선생이 연세가 드셔서 맛(탱이)가 가셨나 하는.

햄릿도 보려고 도서관에서 빌렸으나... 빌리기
만 하고 역시 읽지 못했더라는.

저희 독서모임에서 동료 분 중의 하나가 울나라
뉴스에서 하도 엽기적인 소재들이 넘실거리니
이 정도 쯤이야 하시는 말쌈에 빵~ 터졌었습니다.

설해목 2017-07-13 16:41   좋아요 0 | URL
그 독서모임 동료분의 이야기에 공감합니다. 진짜 이정도의 일이야 별거 아니라는 생각이 들정도로 세상 흉흉하긴 해요.
저는 <첫사랑, 마지막 의식>을 꺼내들었어요. 이언 매큐언 옹의 첫글이 그리워서요. ㅎㅎㅎ

희선 2017-07-14 01: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설해목 님이 쓰신 글을 보니 <햄릿>이 떠오르게 하는군요 우연히 책소개 봤을 때는 윤이형 소설 <굿바이>가 생각났습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게 바로 엄마 배 속 아기거든요 그 배 속 아기가 세상을 살아가는 게 힘들 듯하여 스스로 죽으려고 해요 거기에서는 그런 일이 일어나기도 하네요 죽으려고 한 건 엄마 배 속에서 나오려고 할 때였지만... 배 속에 아이가 생기면 안 좋은 말은 하지 않아야 한다고도 하는데 진짜 배 속 아이가 다 알아듣는 건 아닐지라도 조금은 영향을 미치겠죠

책 뒤에 쓰인 평 같은 건 거의 좋게 쓰는 듯해요 안 좋은 말은 본 적 없어요


희선

설해목 2017-07-14 11:49   좋아요 1 | URL
<넛셸>의 색다른 교훈을 말해보자면 희선님 말씀처럼 태교를 잘하자! 정도가 될듯합니다. 아이들도 엄마의 감정을 다 느낀다고 하는데...... 뱃속 아이도 이 소설의 태아처럼 모든 걸 다 듣고 느낀다는 걸 깨닫고 부모도 태교의 중요성을 알아야한다는 그런 뭐 나름의 교훈을 주는 소설이기도 하구나 싶습니다. ^^
 
어려운 여자들
록산 게이 지음, 김선형 옮김 / 사이행성 / 2017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쁜 페미니스트의 저자 록산 게이의 소설집이다. 소설을 쓰는 줄은 몰랐다. 그래서 출판사에서 제공한 저자의 소개를 다시 읽어보니 록산 게이는 다양한 글쓰기를 하고 있는 대단한 정열의 소유자인 듯하다. 이 리뷰는 이번에 출간된 소설집 어려운 여자들중에서 출판사에서 선별만 8편만 따로 선집하여 만들어 제공한 소책자본을 읽고 쓰는 것이다.

 

<언니가 가면 나도 갈래>는 한 살 차이인 자매가 어릴 때 겪은 끔직한 성적 학대로 인해 그 이후로는 한시도 떨어지지 않은 채 살아가는 이야기이다. <, 그 엄청난 무게>는 태어날 때부터 물을 몰고 다니는 여자에 관한 이야기며 <어려운 여자들>은 헤픈 여자, 불감증의 여자, 미친 여자 그리고 어머니, 죽은 처녀라는 소재에 대해 저자만의 생각을 짧게 적은 글이다. <어떻게>는 한나라는 젊은 여자가 어떻게 그런 견디기 힘든 일상에 내몰리게 되었고 또 어떻게 그곳에서 탈출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며 <유리 심장을 위하 레퀴엠>은 피와 살로 된 남자가 유리로 되어 모든 걸 훤히 보여주고 또 조심스럽게 대해야 하는 유리 아내와 살아가는 이야기이다. <나쁜 신부>는 철저히 종교적인 집안에서 자란 미키가 신부라는 신분으로 한 여자와 섹스를 즐기는 이야기라면 <나는 칼이다>는 출산이 임박하였으나 오지에 살았기에 제때 병원에 도착하지 못해 아이를 잃고 자궁까지 망가져 더 이상 아이를 갖지 못하는 부부에 관한 이야기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실린 <이방의 신들>은 백인 아버지와 흑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여자가 어릴 적 또래 남자들에게 윤간을 당한 뒤 자신을 창녀처럼 취급하다가 좋은 남자를 만나 서서히 회복되어 가는 이야기다.

 

록산 게이가 쓴 글이 어떤 소설인지는 내용을 짤막하게 정리만 해봐도 단번에 알 수 있다. 이 소설들은 여성의 상처와 아픔에 관한 이야기라는 걸... 그리고 그 상처들은 몸의 상처로 인해서 마음의 상처로까지 이어졌으며 대부분의 상처는 가까운 사람들에 의해 입게 되었다는 걸...

 

태어날 때부터 물을 몰고 다니는 여자에 대한 이야기인 <, 그 엄청난 무게>는 어쩌면 여자로 태어날 때부터 숙명적으로 안고 살아갈 그 어떤 무게를 말하고 있는 게 아닐까 싶다. 몸 안에 엄청만 물인 양수를 갖도록 운명지워진 여자들. 하지만 그러지 못하게 되었을 때 입게 되는 상처... 여자들에게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치명적일 수 있는 자궁의 상처에 대한 이야기들이 이 소설에서 내가 주목한 부분이다. 어릴 때 납치되어 6주간 성폭행을 당한 남매, 역시 어릴 때 학교 친구들에 의해 윤간을 당한 소녀, 그리고 출산할 때 의사의 잘못된 수술로 인해 아이는 물론 자궁의 대부분을 잃은 여자. 내가 여자로 태어났음을 증명하는 상징적인 신체부위를 강압과 폭력 혹은 무지에 의해 훼손당한 그녀들은 스스로를 불안한 세계로 내몰고 있는 듯하다. 아니 그럴 수밖에 없는 정신적인 상처도 함께 입었음이 분명하다. 자궁의 상처는 여자라는 정체성에도 상처를 입혔다. 그런가하면 자신의 몸을 아무에게나 허락하는 <어떻게>의 한나나 <나쁜 신부>의 리베카 역시 어디를 상처내면 가장 아플 수 있는지를 알면서 스스로에게 상처 입히고 있는 여자들이다. 때로는 그 상처로 평생 마음의 병까지 앓고 있는 여자들의 이야기는 그저 소설 속에서나 있을 법한 상상의 이야기만으로는 읽히지 않는다.

 

지금 일하는 사무실에서 성범죄 관련 사건들을 꾸준하게 봐오고 있다. 중학생 오빠가 초등학교 고학년 여동생을 성폭행한 사건, 친구의 술 취한 남자친구에게 강간을 당하려다가 미수에 그친 사건, 이혼 소송 중에 남편이 아내를 강제로 범하려던 사건, 직장 여직원을 바래다주는 택시 안에서 몸을 주물러 대던 직장상사의 성희롱 사건 등등. 그런데 이런 사건들을 접하면서 이상하게 생각된 건 성범죄를 당한 피해자의 주위 여자들의 반응이다. 친남매의 어머니는 피해자인 딸보다는 가해자인 아들만 싸고돌았다. 친구 역시 피해를 당한 여자친구보다는 자신의 남자친구 편을 들었고 부부의 시어머니 역시 당신 아들의 입장만을 이해하려 했으며, 직장의 여성들조차 말단 여직원보다는 상사였던 팀장을 위해 탄원서를 제출했다. 여자들은 피해를 입은 같은 여자의 상처를 보기 꺼려했다. 부정하고 피하려고만 했다. 그리고 피해자들은 그런 여자들로 인해 이중의 고통을 겪었다. 마치 자기의 잘못인양 부모의 눈치를 보고 친구에게 미안해하고 아이들을 볼 면목이 없다고 했으며 결국 직장을 그만두어야 했다. 세상은 여전히 자신의 몸을 지키지 못한 여자들에게 가혹하다. 남성은 물론 여성까지 곱지 않은 시선으로 피해 여성들을 바라보며 마음에 상처를 준다.

 

여자를 어렵게 만드는 건 뭘까? 근본적으로는 동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남자들이 주된 원인일 것이다. 최근 몇 권의 페미니즘 책을 읽으면서 느낀 건 남자들뿐만 아니라 여자들 또한 여자들을 어렵게 하고 있다는 거다. 어쩌면 같은 여자들끼리 주고받는 상처가 더 크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든다. 오래전부터 남성 중심으로 돌아가는 사회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건 분명 쉽지 않은 일이다. 여자들 없이는 이리 오랫동안 세대를 이어오지 못했을 거였으면서도 남자들은 여자들과 함께 제대로 살아갈 방법을 여전히 모르고 있는 듯하다. 함께 사는 법을 모르는 이기적인 남자들을 위해 어렵고 힘들더라도 여자들이 조금씩 바꿔나가야 한다. 소설을 읽고 이런 당위적인 결론을 내게 되다니.. 역시 록산 게이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7-07-07 12: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7-07 12: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레삭매냐 2017-07-10 16: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른 건 모르겠고,,,

하필이면 작가의 이름이 록샌 ‘게이‘라니요.

엉뚱하게도 역사가 피터 게이 샘이 떠올랐습니다.

설해목 2017-07-10 16:08   좋아요 0 | URL
필명은 아닌 것 같고.... 이 작가 삶이 평탄치만은 않으셨던 것 같더라구요.

 
詩누이
싱고 지음 / 창비 / 2017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요 며칠 기분이 널을 타고 있다. 아닌 감정의 널뛰기는 꽤 오래전부터였다. 하루는커녕 몇 시간 만에 하늘과 가깝던 기분이 땅바닥에 붙어버리곤 한다. 기분이 나빠지는 데는 이유가 없다. 아니 이유가 너무 많다. 그런 기분을 끌어올리는 데는 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기분의 추락에는 날개 따위 없이 급하강이다. 사십대 싱글의 마음이란 이런 걸까. 하루에도 몇 번씩 오르내리는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타는 나날들. 변화와 안정 사이에서 의미 없는 줄타기를 하며 눈을 뜨고 눈을 감는 일상에서 위로를 받는 건 점점 적어져만 간다. 위로를 얻고자 데려온 책들 사이에서 오히려 길을 헤매고 친구들과 수다를 떨고 들어온 밤이면 기분은 한없이 더 가라앉는다. 나만... 왜 나만... 뒷말을 채 잇지 못하고 울다 잠드는 날이 늘어간다.

 

이마

 

장판에 손톱으로

꾹 눌러놓은 자국 같은 게

마음이라면

거기 들어가 눕고 싶었다

 

요를 덮고

한 사흘만

조용히 앓다가

 

밥물이 알맞나

손등으로 물금을 재러

일어나서 부엌으로

 

- 신미나 시, 시집 싱고, 라고 불렀다』     

 

혼자서 조용히 앓다가 아무렇지 않게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는 시간이 한 사흘쯤이면 되는 그때로 가고 싶다. 그 때가 과거에 있든 미래에 있든 그 곳으로 훌쩍 건너가고 싶다. 그 곳에서 내 손톱으로 눌러 패인 마음의 자리에 들어앉아 온전하게 나를 위로하고 싶다. 위로받고 싶다. 시 한편으로도 좋고, 내 처지 비슷한 누군가의 솔직한 글이라도 좋다. 가끔은 그렇게 글로 위로받고 싶다. 글로밖에 위로받을 수 없는 그런 마음이 있다.

 

싱고

 

십년 넘게 기르던 개가

돌아오지 않았을 때

나는 저무는 태양 속에 있었고

목이 마른 채로 한없는 길을 걸었다

그때부터 그 기분을 싱고,라 불렀다

 

싱고는 맛도 냄새도 없지만

물이나 그림자는 아니다

싱고가 뿔 달린 고양이나

수염난 뱀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적 있지만

아무래도 그건 싱고답지 않은 일

 

싱고는 너무 작아서

잘 알아보지 못할 때가 많다.

풍선껌처럼 심드렁하게 부풀다가

픽 터져서 벽을 타고 흐물흐물 흘러내린다

싱고는 몇 번이고 죽었다 살아난다

 

아버지가 화를 내면

싱고와 나는 아궁이 앞에 앉아

막대기로 재를 파헤쳐 은박지 조각을 골라냈다

그것은 은단껌을 싸고 있던 것이다

 

불에 타지 않는 것들을 생각한다

이상하게도

 

- 신미나 시, 시집 싱고, 라고 불렀다』     

 

신미나 시인의 <싱고>라는 시를 읽고서는 나 역시 나만의 싱고는 어떤 걸까를 생각한 적이 있다. 이미 나와 늘 함께해 왔지만 싱고와 같은 이름을 붙여주지 못한 어떤 기분. 그 기분을 요근래 자주 들여다봤다. 싱고(신미나 시인)가 쓰고 그린 누이를 읽다보니 어느새 마음에서 일어나는 기분을 꼼꼼하게 살펴보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싱고는 이런 기분을 이렇게 표현했구나, 싱고도 나랑 똑같은 기분을 느끼며 살고 있구나, 싱고가 지금쯤은 다이어트에 성공 했으려나, ‘쌀가루 같은 눈이 오는 어느 겨울밤에 천천히 취할 수 있는 그런 가게에 싱고랑 나란히 앉아 술 한 잔 하고 싶다, 그건 그렇고 싱고에게 시마(詩魔)가 자주 찾아오면 좋겠다. 뭐 이런 말꼬리풍선들을 달면서 은근한 마음으로 읽었다.

 

내 기분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시, 내 일기장을 들여다보는 듯한 글, 내 생활을 그려놓은 듯한 그림들이 때로는 얼굴 마주보며 이야기하는 친구들과의 수다보다, 가족들의 말 한마디 보다 더 위로가 될 때가 있다. 생판 모르는 타인의 일상이 위로가 되는 그런 기분이 있다. 롤러코스터를 타는 요즘 내 기분을 달래주는 건 싱고의 누이2B의 웹툰 <퀴퀴한 일기>. 비슷한 또래 동성의 이야기에서 받는 성급하지 않은 위로. 그저 그들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가벼워진다. 안도하게 된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희선 2017-06-21 03:1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싱고, 맨 앞에 조금 보고 개 이름인가 했습니다 확실하게 말하기 어려운 기분인가 싶네요 저도 그런 걸 느낄 때 있군요 어떻게 하면 나아질까 생각하기도 하는데, 나아지는 방법은 없는 것 같기도 하고... 그럴 때도 있지, 할 때가 많습니다 이런 생각을 한 건 아니고 그렇게 생각하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마음을 억지로 바꾸려 하기보다 그냥 내버려둘 때도 있어야겠죠


희선

설해목 2017-06-21 08:48   좋아요 2 | URL
이름을 붙이면 낯설고 부정적인 기분도 친해질 수 있는 것같아요.
싱고 같은 이쁜 이름을 붙여주기위해서라도 제 기분을 잘 들여다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
 
법은 정치를 심판할 수 있을까? 정치의 시대
최강욱 지음 / 창비 / 2017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지금 보고 있는 드라마 <귓속말>에서 죄수복을 입은 법무법인 태백의 전 대표 최일환은 말한다. 태백의 비자금 수사는 곧 중단될 거라고. 이 사회의 모든 요직을 맡은 사람들이 다 비자금을 받은 사람들이라고. 그래. 이게 대한민국 현실이다. 끼리끼리 모여서 돈으로 법으로 대한민국을 마음대로 주무르고 있는 법조인들의 민낯. 드라마 끝나고 채널을 돌리니 뉴스가 나온다. MB4대강 사업은 세 번의 감사원 감사도 통과했고 전문가 평가도 마쳤으며 대법원 판결까지 받은 정당한 것이란다. 어이쿠나. 이게 무슨 개소리인지 쥐소리인지. 우리나라 지식인과 정치인과 법조인들이 망쳐놓은 강들만 생각하면 아주 그냥 복장이 터진다. 그 짐승들 중에서도 가장 열 받는 건 판사들. 4대강사업 집행정지 신청을 받아주지 않은 그 잡것들 때문에 결국 4대강 사업은 탄력을 받아 공사를 시행했고 그 결과가 지금의 죽어가는 강들이다. 그때 담당재판부가 내린 판결을 보면 생태계 파괴에 따른 손해는 신청인이 입는 개인적 손해가 아니라 공익상 또는 제3자가 입는 손해로 집행정지의 요건인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에 해당하지 않는다라고 했다. 진심 저렇게 생각하고 판결을 내린 거면 그 판사는 상식도 없는 수준이하인 거다. 그렇지 않다면 정권의 눈치를 본 것이거나. 그 무엇이 되었든 판결을 내린 판사들 집에 금강의 녹조며 큰빗이끼벌레들 실어 와서 퍼부어주고 싶다. 정권의 하수인들밖에 안 되는 지식인들이야말로 똥덩어리들이다. 법이라는 똥을 머리에 가득 담고는 정권의 발바닥이나 핥는 그들은 도대체 무엇으로 처벌할 수 있을까. 시험에서 좋은 점수로만 통과하면 저런 자리에 앉는 그들을 어떻게 하면 끌어내릴 수 있을까. 부패한 판사나 검사를 벌주는 방법은 진정 없는 것일까.

 

맥주도 한 잔 했겠다, 드라마와 뉴스를 연달아 보면서 열이 오를 대로 오른 건 오늘 마지막 책장을 덮은 이 책 <법은 정치를 심판할 수 있을까?> 때문이다. 최강욱 변호사가 쓴 이 책을 보고 있자니 한숨만 나오고 그래서 맥주를 홀짝이면서 드라마와 뉴스를 보게 되었고 보다보니 더 열이 받는 지경에 이르렀다. 법이 정치를 심판할 수 있을까? 아니 절대 네버 그럴 수 없다. 이건 내 생각이고 저자 또한 책 첫머리에서부터 말한다. 법이 정치를 심판할 수 없다는 게 본인의 생각이라고. 그리고 저자는 왜 법이 정치를 심판할 수 없는지 검찰조직과 법원조직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을 하며 자신의 결론을 뒷받침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검찰의 힘이 수사를 하는 데서 나오는 것으로 생각하는데, 검찰의 힘은 수사를 안 하는 것에서 나온다고 보는 게 맞습니다. 해야 하는 걸 반드시 하면 그걸 처리하는 의무기관이 되기 때문에 이른바 끗발이 생기지 않습니다. 해야 되는 걸 안 하는 데서 힘이 생기는 겁니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부작위범이 아닌가. 대한민국을, 선량한 국민을 죽이는 살인의 부작인범들. 국민들을 위해 일 열심히 하라고 나라에서 월급 줬더니 일을 안 하는 데서 자신들의 권력을 드러내는 썩을 대로 썩은 검찰의 개혁이 과연 가능할까. 이번 문재인정부에서는 모든 검사들이 근무하고 싶은 검찰의 꽃 중의 꽃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윤석열 검사를 지검장으로 임명했다. 최순실·박근혜 게이트 특검 때 우리 국민들에게 진정한 검사란 어떤 것인가를 보여주었던 윤석열 검사를 서울지검 지점장으로 임명한 문재인정부의 검찰 개혁의지가 부디 성공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그 성공의 첫 신호탄은 우병우의 구속이었으면 하는 바람뿐....

 

우리나라의 정의의 여신은 당사자의 신분과 지위를 확인해서 봐줄 사람인가 아닌가를 식별한 후에, 형식적으로 저울에 다는 척을 하다가, 손에 든 장부를 보고 나한테 뭘 갖다준 사람인지 아닌지를 확인한 다음 심판한다.”

 

씁쓸하다. 눈을 가리지 않은 우리나라 정의의 여신상에 대한 이런 해석이 가능하다는 것이..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해석에 수긍을 한다는 사실이.. 자신이 몸담고 있는 법원이 이런 오명을 쓰는 데도 판사들은 부끄럽지 않은 걸까. 소신 있는 판사도 많지만 그렇지 못한 판사들 역시 비일비재하기에 사법부에 대한 불신은 갈수록 커져만 가는 것 같다. 억울해서 검찰을 찾고 법원을 찾아 재판을 받는데 그곳에서 더 억울함을 당해야 하는 사람들의 심정을 알 리 없는 꼭대기에 앉은 사람들에게 우리가 바랄 수 있는 건 뭘까. 답답하다.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부장 내지는 서울행정법원 부장판사가 되어야 고등부장으로 승진할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했는데, 왜 그 자리가 요직이 되는지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고등부장의 징검다리에 해당하는 자리이기 때문에 우리 법원이 헌법과 양심에 따라 독립적으로 판결하는 공정한 판사들을 뽑아서 그 자리를 맡길까요? 절대 그렇지 않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그 자리가 요직인 이유는 다른 데 있습니다. 이 부서들의 공통점은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건들이 많이 간다는 것입니다.”

 

이 글에 밑줄을 그으며 4대강 사업에 대한 소송을 떠올렸는데 저자 역시 이 글 바로 다음에 그 예로 4대강 사업에 대한 소송을 이야기 하고 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 판결은 정치판결이다. 이런 정치판결을 하는 자리의 판사가 되어야 고등부장으로 승진할 가능성이 높다니... 권력이 법원을, 판사를 길들이는 방법은 이렇게나 쉽다. 그 놈의 자리가 뭐라고.... --;;

 

쌍용자동차의 파업이 온당했냐 아니냐, KTX 여승무원 해고가 정당했냐 아니냐, 4대강 사업이 절차를 지켰냐 아니냐, 이런 걸 보면 헌법이 제일 우선이고 그다음이 법률이고 마지막으로 자기 양심에 따라서 재판을 해야 되는데 자기 생각을 양심이라고 하면서 먼저 정해놓고 거기에 맞는 법률을 갖다붙이고 헌법은 쳐다보지도 않는다. 이게 대한민국 재판의 현실인 것 같다. 이걸 단순히 이 사람들의 책임으로만 물을 수 있을 것이냐. 사람의 문제냐, 제도의 문제냐, 정치 현실의 문제냐, 권력의 문제냐. 이걸 심각하게 고민하고 논의할 때가 왔다. 적폐청산은 여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굉장히 중요하다.”

 

적폐청산. 새롭게 들어선 문재인정부가 꼭 지켜야할 국민과의 약속이자 과제이다. 적폐는 뚜렷한 하나의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 만큼 그리고 단시간에 생겨난 문제가 아닌 만큼 다각적인 방면에서 적폐청산을 위한 뼈를 깎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들은 제대로 적폐가 청산되고 있는지 든든한 감시자 역할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검찰이든 법원이든 그들의 존재 이유가 그들 스스로의 안위나 권력이 아니라 국민들을 위한 것임을 다시 한번 그들이 깨닫게 해야할 것이다.

 

이 책에는 국민들이 쉽게 알 수 없는 조직인 법원과 검찰에 대한 속사정들을 속속들이 보여주고 있다. 법원조직도를 통해 보는 임용 판사들의 성적 알아내기라든가, 서열을 중시하는 법조인 사이에서 떠도는 전설같은 이야기라든가, 사위족이라는 검찰의 특이한 승진제도? 라던가 등등 읽다보면 국민들이 쳐다보기도 힘든 검찰과 법원이 어떤 식으로 돌아가는지 그 민낯을 보게 되어 씁쓸한 생각마저 들기도 한다.

 

법은 태생적으로 약자의 편에 서야 합니다. 시민의 입장에서 법이 나한테 무섭게 다가오는 게 아니라 억울하고 더럽고 치사한 꼴을 당했을 때 법이 해결해줄 거라는 믿음을 얻을 수 있어야 합니다. 법이 있어서 다행이다, 힘없는 사람에게 법이라는 무기가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날이 와야 합니다. 그리고 역사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분명한 사실은 그 역할을 절대 법률가들이 앞장서서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절대로.”

 

저자 역시 법률가이다. 그러면서도 이렇게 말하고 있다. 법의 진정한 위치와 의미를 세우는 데 법률가들은 절대 앞장서지 않을 거라고. 그러니 우리가 해야 한다. 물 흐르듯이 가는 게 법의 이치이거늘 그 이치를 거스르며 자신만의 탐욕을 채우고 있는 법률가들에게 맞설 수 있는 건 우리 스스로임을 잊지 말아야겠다. 비록 그들의 비뚤어진 권위에 맞서는 것이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격이라 해도 깨진 그 계란으로 그들의 오만한 얼굴에 얼룩이라도 만들어보자. 그렇게라도 그들이 부끄러움이란 걸 알게 만들자.


댓글(6) 먼댓글(0) 좋아요(1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cyrus 2017-05-26 16: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못된 판결 한 번으로 억울한 사람의 인생을 한 종결시킨 사건들이 많습니다. 그 판결을 내린 법조인들 중에 반성을 한 사람이 있는지 궁금해요. 제 생각에는 많이 없을 것 같습니다.

설해목 2017-05-26 17:00   좋아요 1 | URL
최승호 기자가 만든 <자백>이란 다큐를 보았는데 간첩조작사건에 연루되었던 검찰 그리고 판사들까지 몇 십년이 흘러 그들 모두 무죄로 인정이 되었건만 누구 하나 사과하는 사람이 없더군요. 정말이지 고개를 숙일 줄 모르는 그 뻣뻣함 때문에라도 그들의 목이 부러지길 바랄 뿐입니다. --;;

레삭매냐 2017-05-29 14: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무도 사과하지 않는다˝
에 방점을 찍고 싶네요.

과거의 잘못에 대해 반성하지 않는
모습이야말로, 한홍구 교수님이 표현
한 법비들의 실체가 아닐까 싶네요.

억울한 이들의 희생은 그들의 관심사
도 아닐 테니까요. 갑갑하네요 정말.

설해목 2017-05-29 23:11   좋아요 0 | URL
맞아요. 법비들..... 검찰개혁, 사법개혁.. 정말 이것들이 이루어지는 그날을 맞고 싶다는 소망이 큽니다.
배운 자들의 고개가 겸허하게 숙여지는 그날이 꼭 왔으면 좋겠어요.

transient-guest 2017-06-22 03: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몇 명을 잘라낸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닌 것 같습니다. 시간도 많이 걸릴 것이고, 교육부터 다 바뀌어야 할 것 같아요. 검/판사만 놓고 보면, 어차피 로스쿨 출신들이 넘쳐나니까 사실 죄 있는 놈들 싹 잘라내도 인력수급은 어렵지 않을 듯 합니다. 하지만, 이 유기적인 부패와 욕심의 카르텔이 전체적으로 약해지려면 많은 노력과 시간이 들어갈 겁니다.

설해목 2017-06-22 09:17   좋아요 0 | URL
맞아요. 정말이지 한두사람의 사퇴로 사법개혁이 이루어지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자리가 사람을 변하게 하는 것인지, 아니면 처음부터 이상한 사람들이 법조인이 되는 건지.. --;; 로스쿨 출신들로 법조인들은 늘어났지만 과연 그들이 제대로 된 인성을 갖춘 사람들인지는 역시나 겪어봐야 알 것 같기도 하구요. 에효~~
적폐청산... 이번 정부에서부터 그 개혁의 길을 확실히 다져나갔으면 하는 바람이 큽니다.
 
작은 몸의 철학자, 바오
나카시마 바오 지음, 권남희 옮김 / 아우름(Aurum) / 2017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초등학교 2학년인 여조카가 학교생활을 조금 힘들어하는 것 같다. 시시하고 재미없다는 말밖에는 하지 않지만 혹시나 학교에서 친구들과의 관계가 원만하지 않은 건 아닐까 걱정이 된다. 곧 다가올 어린이날에 조카가 좋아할만한 선물들을 챙겨 여동생네 집으로 갈 예정이다. 책을 좋아하지 않는 아이지만 이 책만은 꼭 읽히고 싶다는 생각에 이 책도 챙겨 넣었다. 또 한 권의 책 <아홉 살 마음 사전>과 함께... 아니 사실 이 두 권의 책은 아홉 살 조카보다도 그들의 부모인 동생과 제부에게 더 먼저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내가 느낀 걸 그들도 느꼈으면 좋겠다.

 

이 책의 저자 바오가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이 아홉 살이다. 전학 간 학교에서 왕따를 당해서 결국 등교를 거부하고 홈스쿨링을 하며 자신이 좋아하는 것, 관심 있는 것을 마음껏 배우며 공부했다. 제도 안이 아닌 제도 밖에서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를 하나하나 몸소 겪고 느끼며 배운 바오의 글은 그래서 아이들보다도 어른들의 마음을 뜨끔하게 만든다. 온갖 제도에 자신을 끼워 맞춰 오기를 십수년인 어른들에게 바오의 글은 파닥거리는 싱싱한 생선 같다. 맛보고 있으면 그래, 원래 삶이란 이런 맛이었지. 이렇게 즐겁고 행복하고 단순한 맛이었지. 절로 그런 생각이 든다. 바오처럼 단순하고 명료했던 어린 나를 다시 한번 내 삶에 데려오고 싶어진다.

 

 

고민이란 그 사람의 보물이어서,

그 사람에게서 빼앗으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현실에서 그 사람에게 필요하여 생긴 거니까요.

       

망설인다는 것은,

어느 쪽이든 좋다는 것.

    

내가 이곳에 있다.

그것만으로 행복해.

 

다른 사람에게 기댈 줄 아는 사람은

대단하지.

 

자신이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

충분하다는 거니까.

      

부러움은,

존경으로도 바뀌고,

질투로도 바뀐다.

 

존경하면 그 사람이 내 예고편이 되고,

내 것이 된다.

 

질투해도 갖지 못하는 상황은 변함없고,

내 것이 되는 것도 아니다.

      

제멋대로 말하지 말라고 하는 건

남들과 똑같이 하라는 말이나 마찬가지.

다른 사람들과 같아지면 나는 지워진다.

 

다른 아이들처럼 자라라는 게 무슨 소리람?

 

 

고민,

평소에는 고민하지 않는다는 것을 가르쳐준다.

 

기분 나쁜 일,

평소에는 기분 나쁜 일이 없다는 것을 가르쳐준다.

 

짜증나는 일,

평소에는 짜증나는 일이 없다는 것을 가르쳐준다.

 

 

 

 

 

 

 

 

이런 글들을 보고 어찌 뜨끔하지 않을 수 있을까. 이미 치우칠 대로 치우쳐진 마음에 싱싱한 번개를 맞은 기분이다. 기울어진 마음을 바로 세우라고 작은 몸의 어린 바오가 내게 말을 걸어오고 있다. 당연한 것은 하나도 없으니 매 순간을 소중히 하라고 지금만을 살라는 말을 나와 같은 어른인 명상가나 철학자가 했다면 또 그렇고 그런 말이라며 그냥 넘겨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바오이기에... 왕따라는 인생 최대의 위기를 맞고 스스로 선택한 길을 가며 몸소 깨닫고 느낀 것만을 이야기하는 작은 철학자이기에 바오의 말이 더 가슴에 와 닿는다.

 

 

 

 

 

 

 

 

 

 

 

   

그리고 함께 실린 그림들이 참 사랑스럽다.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보지 않는 바오를 꼭 빼닮은 그림들을 보고 있자니 이런 엉뚱하며 사랑스러운 상상을 할 수 있는 아이들이 더욱더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절로 하게 된다. 아이들이 상상력을 마음껏 펼칠 수 있도록 학교도 선생들도 부모들도 좀 더 느슨해졌으면 하는 바람이 생긴다.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가진 아이들을 받아줄 수 있는 어른들이 많아졌으면, 나 역시 그런 어른이기를 바라본다.

 

 

 

우리 엄마에게서 태어난 것이야말로

최고의 재능

 

아이가 없음에도 그리고 앞으로도 없을 예정임에도 바오의 글들 중 가장 감동적으로 다가 왔던 글이다. 자기의 엄마를, 부모를 전적으로 신뢰하는 아이의 저런 말을 우리 부모들이 모두 들을 수 있다면 그런 세상은 아이들도 엄마들도 살기 좋은 아름다운 세상이지 않을까.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희선 2017-05-05 01:4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얼마전에 이 책 제목을 보고 바오가 인도 아이인가 했습니다 왜 그렇게 생각했을까요 글을 보다 밑에 사진에 바(ば)라고 찍힌 도장을 보고 일본 사람인가 했습니다 다시 위로 올려서 이름을 보니 성이 일본 사람이더군요 학교에 적응하지 못했다는 말은 토토를 생각나게 했습니다 토토도 일반 학교에 잘 다니지 못하고 다른 학교에 다니는데... 거기에서는 토토가 자유롭게 뛰어놀고 공부해요 어릴 때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잘 아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저는 학교에 다니기 전에는 다니고 싶었지만 다니고 난 다음에는 다니기 싫더군요 그렇다 해도 끝까지 다녔네요 학교에서 얻을 수 있는 게 아주 없는 건 아닐 거예요

아이들이 즐겁게 자유롭게 다닐 수 있는 학교가 많아지면 좋겠습니다


희선

설해목 2017-05-06 23:11   좋아요 2 | URL
바오도 지금은 즐겁게 학교를 다닌다고 하더라구요. 어릴때 일이년정도 아이가 하고 싶은 대로 하게 지켜봐주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인생에서의 일이년.... 어릴때조차 일이년을 마음대로 보낼 수 없는 건 정말 슬픈일이 아닐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라구요. 조카들 보고 왔는데 학교보다는 더 재미난 걸 하게 해줘도 되지 않을까..... 뭐 그런 생각을 해보았네요. 물론 학교가 즐거운 게 가장 좋겠지만....^^

2017-05-11 04: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5-11 09:23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