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들은 자꾸 같은 질문을 받는다
리베카 솔닛 지음, 김명남 옮김 / 창비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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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한 권을 읽으면서 나를 계속해서 되돌아보고 되는 경우가 흔치는 않은데 리베카 솔닛의 글은 나를 자꾸만 되돌아보게 하고 멈추게 하고 생각하게 한다. 이 책은 물론 전작인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그리고 멀고도 가까운과 최근에 읽기 시작한 걷기의 인문학까지.. 그녀의 글은 타성에 젖어 생각하기를 멈춘 나를 자꾸만 흔들어 깨운다. 공부를 하고 싶게 만든다. 당연한 것은 없으니 늘 낯설게 새롭게 모든 것을 바라보기를 요구한다. 무엇보다 그녀의 글은 여자로서 소수자로서 부당한 것을 부당하다고, 잘못된 것을 시정하라고 대외적으로 이야기하라고 격려한다. 자포자기의 침묵으로 시들어갈 것이 아니라 용기 있게 자신의 목소리를 내라고 응원한다.

 

이 책을 약 2주간에 걸쳐 공부하듯이 읽었다. 저자가 예로 든 외국의 여성혐오 사건들을 읽으며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비슷한 류의 사건들을 메모하기도 하고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주제에 대해서는 별표 표시를 해두었으며 저자가 언급한 도서와 작가들도 따로 메모해 가며 그렇게 찬찬히 곱씹듯이 읽어갔다.

 

# 왜 그런 걸 묻죠?

 

내 인생의 목표 중 하나는 진실로 랍비처럼 문답할 줄 아는 자가 되는 것, 닫힌 질문에 열린 질문으로 답할 줄 아는 것, 내 내면에 대한 권한을 스스로 가짐으로써 다가오는 침입자에 맞서서 훌륭한 문지기가 되는 것, 최소한 왜 그런 걸 묻죠?”라고 재깍 되물을 줄 아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_ p.19

 

사무실에는 나이 지긋한 의뢰인들이 많이 찾아오신다. 자주 오시다보니 어느 정도 사적인 말들을 주고받을 정도의 사이는 되었다 싶을 때부터 나는 그들에게서 언제 결혼 하느냐.” “올해는 꼭 좋은 일이 있었으면 좋겠다.” “언제 국수 먹여 줄 거냐.” “아이는 빨리 낳아야 한다. 늦을수록 여자만 고생이다.” “마흔 넘었으면 이제는 포기할 건 포기하고 사람을 만나야 한다.” 등등의 개소리를 몇 년째 듣고 있는데도 사실 을의 입장인 나는 그들에게 제대로 된 대꾸조차 못하고 있었다. 최근에야 국수는 그냥 제가 사드릴게요.” 라거나 올해는 좀 더 좋은 직장으로 옮기고 싶긴 하네요.” 라는 대답을 하고 있긴 하지만... 이런 대답은 하고 나서도 기분이 찝찝한 거다.

 

그러다 저자의 저 글을 읽고 무릎을 쳤다. “왜 그런 걸 묻죠?”라고 되물으면 되는 것을. 웃으면서가 아니라 정색을 하면서. 당신들이 내 인생에 참견할 생각은 하지도 말라는 듯 단호하게! 하지만 귀 막고 자신의 말만 내뱉을 줄 아는 성인 남자 어른들이 과연 나의 저 반격에 말문이 닫히긴 할까. 오히려 그 이유를 장황하게 늘어놓지는 않을까 싶기마저 하다. 모든 삶의 기준을 자신의 기준으로 못 박아 버린 사람들이 자신의 기준에 어긋난 타인의 삶은 인정조차 하지 않으려는 이런 사회에서 사십대 비혼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건, 여전히 답할 가치조차 없는 질문들을 계속 받아야 하고 나아가 나에게 하자가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의심의 눈초리와 한번 들이대 봐도 되지 않을까 하는 더러운 수작질마저 감내해야 하는 게 현실이다. 그래도 반격해야 한다. 아니 그러니까 반격해야 한다. 짧고도 단호하게 그러면서 유머까지 가미되면 더 좋을 그런 말들로 자신의 가치관을 마구잡이로 들이대는 무식한 인간들에게 우아하게 반격해야 한다.

 

# 침묵의 역사는 여성의 역사에서 핵심적인 문제이다.

 

이 책 모든 챕터의 글들이 좋았지만 특히나 좋았던 글을 꼽으라면 <침묵의 짧은 역사>를 제일 먼저 꼽고 싶다. 침묵이 여자들은 어떤 처지로 내몰았으며 목소리를 낸다는 것이, 새로운 언어를 갖는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깊이 있게 파고 들어간 저자의 글은 모든 여성들이 침묵을 깨고 목소리를 갖고 밖으로 나와야 한다는 당위성에 이르게 한다. 다양한 방법들로 침묵시키는 것들에 대해 제대로 인식하고 그것들에 대해 대항해야 한다고 일깨워준다.

 

언어는 우리를 잇지만 침묵은 우리를 나누어, 말이 호소하거나 끌어낼 수 있는 도움, 연대, 그도 아니면 단순한 교감조차 잃은 처지로 내몬다. _p.36

 

자신이 직접 그 영향을 받지 않는 사람들은 인종차별, 경찰의 무자비함, 가정폭력의 충격을 보지도 느끼지도 못할 수 있으나, 이야기는 그런 사람들도 그런 곤란을 절실히 느끼도록 만듦으로써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도록 만든다. _p.39

 

누구의 목소리가 들리고 누구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느냐는 기성 체제를 규정한다. 자기자신의 크나큰 침묵을 대가로 치르고서 기성 체제를 받아들인 사람들은 사회의 중심부로 진출하는 데 비해, 들리지 않는 것을 구현하는 사람들이나 남들이 침묵을 밟고 상승하는 데 방해가 되는 것을 구현하는 사람들은 주변부로 쫓겨난다. 우리는 누구의 목소리에 가치를 부여할지를 재정의함으로써 사회와 그 가치들을 재정의한다. _p.45~.p.46

 

우리 주제가 침묵이라면, 어떤 사람들이 남들을 침묵시키는 방식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범위를 더 넓혀서 수모, 굴욕, 배제, 멸시, 비하, 협박, 그리고 사회, 경제, 문화, 법적 수단을 동원한 권력의 불평등 분배까지 아울러야 한다. _p.60

 

사회는 권력자는 힘을 가진 사람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자신들에게 불리하거나 불편하게 만드는 이야기들을 침묵시켜 왔다. 그리고 대중매체는 말할 수 있는 위치의 존재들의 말만을 세뇌하듯 사람들에게 전달하여 왔다. 언론, 대중, 여론 등을 신뢰할 수 없다는 걸 이 글을 읽으면서 다시 한번 깨달았다. 침묵시키는 다양한 방법들에 대한 글을 보면서 나를 비롯한 여성들이 어떤 식으로 교묘하게 침묵당해 왔는지를 알게 되니 최근의 상황들이 고무적이기까지 하다. 소셜미디어를 통해 수많은 여성들이 다양한 목소리를 내고 그동안 침묵당해야 했던 이야기를 더 활발하게 말할 수 있었으면 한다. 침묵에 금이 가고 이야기가 시작되는 그 순간부터 여성 그리고 소수자들의 설 자리가 생긴 것이다. 그 자리를 빼앗기지 말고 점점 넓혀가는 것, 이것이 페미니즘의 나아갈 길이라 믿는다. 사실 이 챕터에서는 인용하고 싶은 문장이 넘쳐난다. 아니 거의 대부분의 글을 다 인용하고 싶을 정도로 내게 날벼락 같은 깨우침을 준 글이다. 내 생각의 끈이 느슨해졌다 싶을 때면 이 글만 계속해서 읽어도 좋겠다 싶다.

 

# 페미니즘에는 남자가 필요하다

 

여성에 대한 폭력과 차별이 여자들 일인 것은 그저 그 일이 여자들에게 저질러지기 때문이다. 그 일을 저지르는 건 대부분 남자들이, 어쩌면 페미니즘은 줄곧 남자들 일이었어야 했는지도 모른다. _p.148

 

남자들의 합류는 대대적인 변화를 뜻한다. 그것은 페미니즘에게 특별했던 2014, 새로운 목소리와 구성원이 결합함으로써 대화가 바뀌고 몇몇 중요한 법률도 바뀌었던 해의 한 장면이었다. 과거에도 이른바 여자들 문제의 중요성에 동의하고 때로 발언까지 한 남자들은 있었지만, 그 수가 지금처럼 많거나 그 영향력이 지금처럼 큰 적은 한번도 없었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그들이 필요하다. _p.149

 

페미니즘에는 남자가 필요하다. 우선, 여자를 혐오하고 비하하는 남자들도 만일 여자에게 끔찍한 짓을 저지르거나 여자에 대해 끔찍한 말을 내뱉는 행동이 남자들 사이에서 제 지위를 높이는 게 아니라 훼손하는 문화에서 산다면, 바뀔 것이다. 바뀌려고 한다면 말이지만. _p.151

 

페미니즘에 남자가 필요하다는 건 언뜻 생각해보면 모순되는 것 같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너무나 당연한 말이다. 페미니즘이 실질적으로 여성들에게 도움이 되기 위해서는 제도와 법과 같은 현실적인 부분에서 변화가 있어야 하는데 그런 것을 쥐락펴락 하고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 남성들이다. 그들은 애초에 여성들의 목소리에는 귀 기울이기를 거부하는 권위자들이 대부분인데 이런 그들에게 일침을 놓을 수 있는, 여자들의 권리를 함께 외쳐줄 남자들의 목소리가 필요하다. 지각 있고 깨어 있는 남자들의 동참은 페미니즘을 더 현실적으로 이룰 수 있도록 해줄 것이다.

 

# 언어와 범주에 대한 고찰

 

우리는 범주를 사용하거나 사용하지 않는 기술을 익힐 수 있다는 것이다. 능란함과 융통성과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 적어도 자신이 세상과 세상에 대한 경험을 상상하고 묘사하는 방식을 스스로 또렷이 자각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주장하려는 것이다. 어느 선사가 말했듯, 너무 팽팽하지도 너무 느슨하지도 않게. 범주는 말하기에 꼭 필요하다. 특히 일반적 경향성을 논하는 정치적·사회적 말하기에 꼭 필요하다. 범주는 언어의 토대이고, 만일 언어가 범주들이라면 - , , 감옥 - 말하기란 단어들의 오케스트라를 지휘하여 무언가 정확하고 심지어 아름다운 것을 만들어내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적어도 자신의 세상을 잘 묘사하고 남들의 세상을 공정하게 묘사해주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_p.219 ~ p.220

 

언어가 추구할 가장 진실 되고 가장 중요한 목적은 세상을 또렷하게 만들어서 우리가 잘 보도록 돕는 것이다. 언어가 그와 반대로 쓰였을 때, 우리는 우리가 곤란에 처했고 어쩌면 무언가 은폐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걸 깨닫는다. _p.271

 

언어와 범주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만드는 <비둘기들이 다 날아가버린 비둘기집>이란 글 역시 자주 읽어서 체화해야할 글이다. 내가 그동안 아무런 의식 없이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범주들에 대해서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나도 모르게 경계를 짓고 구분을 지으면서 차별을 해오지는 않았는지,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지는 않았는지 나를 되돌아볼 일이다. 범주는 새고 또 어떤 범주는 변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고정불변한 것은 없다는 것을 늘 인식하며 사는 것! 또한 내가 사용하는 언어에 대해 민감해지는 것! 내가 되고 싶은 모습에 추가할 항목이다. 그것도 우선순위로...

 

# 예술이 세상을 만든다

 

바로 그 관심을 쏟는 행위야말로 감정이입, 경청, 관찰, 타인의 경험을 상상하는 것, 자기 경험의 한계에서 벗어나는 것의 토대가 되어주는 행위이다. 독서가 감정이입을 북돋는다는 주장이 요즘 인기인데, 만약 정말로 그렇다면 그것은 독서가 우리로 하여금 다른 사람이 된 느낌을 상상하도록 돕기 때문이다. 혹은 자기자신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가도록, 그래서 마음이 아픈 상태, 몸이 아픈 상태, 여섯살인 상태, 아흔여섯살인 상태, 인생에서 길을 잃은 상태가 어떤 것인지를 좀 더 잘 깨닫도록 돕기 때문이다. _p.242~p.243

 

독서란 자신의 젠더를(그리고 인종, 계급, 성적 지향, 국적, 시대, 나이, 능력을) 탐구할 뿐 아니라 더 나아가 그것을 초월하여 타인이 된 상태를 추체험하는 데 의미가 있을지도 모른다. _p.243

 

자신과 비슷한 사람들이 물건처럼 이용되고 버려지거나, 쓰레기처럼 그려지거나, 침묵하거나, 아예 안 나오거나, 무가치하게 그려지는 책을 많이 읽으면, 그 경험은 분명 우리에게 영향을 미친다. 예술은 세상을 만드니까, 예술은 중요하니까. 예술은 우리를 만드니까. 흑은 망가뜨리니까. _p.255

 

책을 좋아하고 문학을 사랑하고 예술을 믿는 독자로서 <남자들은 자꾸 내게 롤리타를 가르치려 한다>는 한문장도 놓칠 게 없는 글이다. 이 글을 통해 아무런 의심 없이 그저 고전이라는 이유로 혹은 유명한 작가와 문학작품이라는 이유로 문학을 순진하게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여온 건 아닌지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된다. 문학작품을 읽고 나면 느끼는 바는 저마다 다를 것이다. 누군가에게 감정이입을 하는가에 따라 작품에 대한 입장도 다 다를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건 여자로서 불편하고 부정적인 감정을 느꼈다면 그 이유를 분석해볼 필요는 있다는 것이다. 문학은, 예술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크고 강력하게 우리의 문화와 가치관에 영향을 주고 있다.

 

 

어쩌다보니 이 책을 읽고 바로 조남주의 소설 82년생 김지영을 읽게 되었다. 이 책 덕분에 나는 소설을 좀 더 분석적으로 읽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그리고 서점에서는 구매할 수도 없는 문단 내 성폭력 피해자들의 고발글과 그들을 지지하는 작가들의 글이 실린 참고문헌 없음을 꺼내들었다. 침묵으로 끝났을 수도 있었던 한국문단 내 성폭력에 대하여 용기를 내어 나서준 사람들이 있었기에 이런 결과물도 나오게 되었다. 사실 책을 읽고 작가를 좋아하는 독자로 오랫동안 지내오면서 중견작가들이 독자들을 성추행 하는 꼴도 보아왔고 그걸 저지시키기는커녕 놀이처럼 지켜보는 출판관계자들도 보아왔다. 한국문단 내 성폭력은 작가를 꿈꾸는 사람들과 작가뿐만 아니라 책을 좋아하는 독자들에게까지 미치고 있는 게 현실이다. 더불어 출판사 직원에게서 성희롱 상담을 받았던 적도 있다.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내게 문학을 좋아하고 글을 쓰고 싶어하는 사람이 너무 꽉 막혔다며 성추행을 시도했던 그 인간을... 10년 넘은 독자에게 그런 짓으로 배신감과 모멸감을 준 그 인간을... 아무렇지 않게 여시인과 잠을 잤다며 떠벌리던 그 인간을... 그런데 나는 왜 침묵하고 있는가. 내 앞에 놓아둔 참고문헌 없음을 난 볼 자격이 없다. 아직은... 리베카 솔닛 그녀의 글에서 용기를 얻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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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직도' 내가 제일 어렵다 - 마음의 민낯을 보여주고 싶지 않은 여자들을 위한 심리학
우르술라 누버 지음, 손희주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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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속을 답답하게 하던 비밀을 최근에 친구들에게 털어놓았다. 털어놓으려고 마음먹은 건 아니었는데 어쩌다보니 이야기하게 되었다. 하고나면 후련할 줄 알았는데 그렇지만도 않다. 아니 오히려 뭔가 마음의 짐을 하나 더 얹은 기분이다. 그런 찝찝하고 기분 나빠지는 비밀은 그냥 나 혼자 간직하고 있어야했던 게 아닐까 후회도 된다. 내 답답한 마음 좀 풀어보자고 친구들이 굳이 알 필요도 없는 사실을 알린 건 아닐까 싶은 마음에 기분이 더 가라앉아 있는 와중에 이 책을 만났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책을 먼저 봤더라면 그렇게 가십거리 이야기하듯 내 비밀을 털어놓지는 않았을 텐데... 프롤로그를 읽으면서부터 후회하는 마음이 들었다.

 

 

어쩌면 당신은 무언가 숨기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불안해하거나 가벼운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당신을 잠 못 들게 하는 그 비밀에게 말해주고 싶다. 숨어 있어도 괜찮다고, 꼭 모든 것을 투명하게 보여줘야 하는 건 아니라고, 때론 보이지 않아서 더욱 빛나는 것도 있는 법이라고. 누구에게나 비밀은 있다. 어쩌면 그 비밀 덕분에 당신이 스스로 설 수 있는 걸지도, 삶을 지킬 수 있는 걸지도 모른다. 당신의 비밀을 응원한다. _ 프롤로그

 

저자가 이 책을 통해서 말하고자 하는 건 분명하다. 자신을 위해서라도 비밀은 필요하다고. 고백하고픈 유혹이 있더라도 그 고백이 과연 즉흥적인 것인지 아닌지 자신과 그리고 그 비밀을 듣는 사람에게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깊게 생각해봐야 한다고. 거짓말이 다 나쁜 건 아니라고. 자신의 사생활은 지켜야 한다고. 때로는 고통과 상처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자신에게 마저 속이고 감추는 비밀이 있어야 한다고.

 

특히 연인이나 부부사이처럼 긴밀하고 끈끈한 관계의 사람들에게 비밀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저자는 공들여 이야기한다. 마치 한몸처럼 지내는 연인이나 부부 사이에서 비밀과 거짓말 때문에 더 고민하고 괴로워하는 쪽은 여성이라고 한다. 그 원인을 찾아보면, 우선 어릴 때부터 남아에 비해 여아의 행동은 무시당하고 소극적이며 의존적으로 양육되어 왔고 커서는 주부와 어머니의 역할이 경시되는 문화에서 사는 경우가 많고 직장에서도 남성에 비해 여성의 업적은 덜 인정되는 환경에서 살고 있으며 특히나 요즘 시대에는 여성이 해내야할 역할이 너무나 많아서 자신만의 공간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너무 많은 것을 수행하고 생각하고 처리하려다보니 여성들은 자신만을 위해 생각하고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이 없기에 우울에 취약하고 늘 고민하게 되고 이러다보니 남성에 비해 비밀과 거짓말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이른다. 그렇더라도 아니 그렇기에 더더욱 연인과 부부 사이에서 여성은 자신을 자유롭게 할 비밀이 있어야 한다. 책에서 눈에 띄는 문장들만 봐도 남녀사이에서 비밀이 관계유지에 있어 어떤 역할을 하는지 알 수 있다.

 

상대의 바닥까지 보면 매력의 한계 역시 보게 된다. 이는 상대에게 매력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환상을 저지한다. 매력을 잃은 진실은 우리에게 아무런 보상이 되지 않는다.

 

우리라는 구속에 대항해 를 보호하는 최상의 방법은 상대방이 들어올 수 없는 자유공간을 서로 허용하는 것이다.

 

 

내게 당신의 마음을 주고 싶다면

비밀로 하세요.

우리 둘의 생각을

아무도 알지 못하게요.

_ 안나 막달레나 바흐(바흐의 두 번째 아내) 음악 수첩중에서

 

우리라는 구속에 대항해 를 보호하는 최상의 방법은 상대방이 들어올 수 없는 자유공간을 서로 허용하는 것이다.

 

셰익스피어는 믿는 체하는 것은 연인 관계에서 절대적으로 진실한 것보다 더 현명한 선택이 될 수도 있다고 말한다. 상대방을 믿기 때문에 모든 것을 알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상대방의 비밀을 알게 되더라도 크게 동요하지 않는다.

 

근본적으로 상대방에 대해 알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비밀이 드러나더라도 좀더 편안한 마음으로 반응할 것이다. 이는 다시금 상대방의 비밀이 관계를 종결시키는 날카로운 도구가 되지 않도록 돕는다.

 

그리고 연인은 없지만서도 나도 모르게 밑줄을 팍팍 그었던 조언인 즉, 어떤 경우에도 다음과 같은 주제에 대해서는 상대방에게 입을 열지 말란다.

 

상대방이 이루어줄 수 없는 희망사항이 있을 때

상대방이 도와줄 수 없는 문제가 있을 때

상대방의 특정 태도 때문에 화가 나지만 상대방이 이를 고칠 수 없다는 사실을 알 때

배우자나 연인 외에 다른 사람이 등장하는 에로틱한 꿈을 꾸었을 때

상대방의 가장 친한 친구를 견딜 수 없을 때

 

그러면 여기에서 잠깐! 비밀을 말한다는 건 듣는 상대방이 반드시 존재한다는 것! 그렇다면 그 상대방은 전해들은 비밀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까? 비밀을 털어놓는 당사자처럼 들은 사람도 그 비밀을 또다시 털어놓아야하나 말아야하나에 대해 고민해야 하는 걸까? 이에 대해 저자는 강경하게 말한다. 들은 사람은 이유 불문하고 그 비밀에 대해 함구해야 한다고...

 

원래 비밀이 있었던 사람과 달리, 들어서 알게 된 사람은 비밀의 공개 여부에 대해 고민할 필요조차도 없다. 어느 누구에게도 다른 사람의 비밀을 공개할 권리는 없기 때문이다.

 

자신의 비밀을 간직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쩌면 더 중요한 건 자신에게 털어놓은 그 누군가의 비밀을 지켜주는 게 아닐까 싶다. 비밀이 상처가 되고 아픔이 되는 건 비밀을 고백한 상대방에 의해 2, 3차로 전파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너와 나를 단단하게 묶어줄 수도 있었던 비밀이 제 3자에게 전파되어 공공연해지고 그럼으로써 비밀이 아닌 가십거리로 전락해버리는 순간 비밀은 나에게 향하는 화살이 되어버리기 일쑤다. 그러니 누군가의 비밀을 들었다면 그것을 영원히 가슴에 묻거나 아예 잊어버리거나 해야 한다. 그게 비밀을 들은 사람의 도덕적 의무이다.

 

자신의 생각과 경험, 희망사항, , 근심걱정 따위는 순전히 개인에 속하며, 따라서 보호받아야 한다.

 

목표, 고민, 계획, 희망사항을 시험해볼 공간이 필요한 경우에는 이를 비밀로서 숨겨놓아야 한다. 이 공간에는 조언이나 충고, 경고라는 명목 아래 영향을 끼치려는 청중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

 

그리고 공감이 갔던 비밀이 하나 있다. 바로 나의 꿈, 계획, 목표에 관한 비밀은 누구에게 말을 한다고 해서 크게 문제가 될 게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나의 꿈, 계획, 목표를 알게 된 사람들은 그것을 순수하게 응원해주기도 하지만 관심이라는 미명아래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끼치려고 한다. 그러다보면 어느새 꿈, 계획, 목표에만 집중을 하는 게 아니라 주위의 반응에 신경을 쓰느라 에너지를 흩어버리게 된다. 그래서 고마운 친구가 있다. 서로의 꿈을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순수한 마음으로 응원하고 격려하며 함께 조금씩 계획을 이루어가는 것이 가능하다는 걸 알게 해준 친구. 이런 친구와는 비밀을 나누는 것이 오히려 꿈을 이루는데 한걸음 더 가까워지는 지름길이다. 이렇듯 비밀도 누구와 나누느냐에 따라 그 결과는 천양지차이다.

 

마지막으로 책을 읽으며 밑줄 그었던 무수히 많은 문장들 중에서 몇 개를 옮겨본다. 저자의 말이기도 하고 저자가 다른 사람의 말을 인용한 것이기도 한데 적다보니 구분 짓는 걸 깜빡해서 그냥 모두 옮겨놓으니 문장의 정확한 인용자가 누구인지 궁금하신 분은 책을 읽어보시길 바란다.

 

 

침묵하는 자는 언제든지 다시 말할 수 있지만 이미 말을 꺼낸 사람은 더 이상 침묵할 수 없다.

 

외부에 알려진 비밀은 다시는 사적인 공간으로 거두어들일 수 없다.

 

감추고 싶은 게 많다는 건, 역설적으로 지키고 싶은 소중한 것이 많다는 뜻이기도 하다.

 

우리는 자신에게조차 감추는 비밀을 통해, 감당할 수 없는 고통과 상처로부터 자기를 보호중이라고 할 수 있다.

 

비밀은 아이가 정신적으로 건강하게 발전하는 데 필요한 전제조건 중 하나다.

 

사랑스러운 거짓말이 있는 반면에 사랑스럽지 않은 진실이 있다. 야만적인 습관에 지나지 않는 솔직함이 있는 반면, 인간미를 지닌 거짓말도 있다.

 

항상 똑바로 정신차리고 있어야 하고, 입을 잘못 놀려도 안 되고, 침묵할 줄 알아야 하며, 기억력이 좋아야 하고, 무엇보다 비밀 때문에 생기는 고독을 견딜 수 있어야 한다. 비밀은 우리에게 혜택을 주기도 하지만, 모든 일이 그렇듯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는 희생과 고통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

 

비밀을 알릴 필요성이 크더라도, 비밀을 알림으로써 다른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원래 비밀이 있었던 사람과 달리, 들어서 알게 된 사람은 비밀의 공개 여부에 대해 고민할 필요조차도 없다. 어느 누구에게도 다른 사람의 비밀을 공개할 권리는 없기 때문이다.

 

비밀을 잘 다루려면 이와 관련해 혼자 글을 써보기만 해도 충분한 효과를 볼 수 있다.

 

거짓말과 비밀은 약한 자와 무력한 사람에게 동등한 기회와 권리, 자유를 제공하기 위해 존재할 수 있다. 별다른 무기가 없는 이들에게 거짓말과 비밀은 무기가 되어 삶을 지켜주고 자유에 대한 권리를 행사하게끔 해주기도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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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17-09-01 0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친구한테 자신이 하고 싶은 걸 말해도 응원해주는 사람도 있지만, 그거 하기 힘들어 하는 사람도 있어요 그런 사람은 다시는 자신이 하고 싶은 거 남한테 말하고 싶지 않겠습니다 남한테 말하지 않고 혼자 하는 것도 괜찮죠 누군가한테 말해야 지키는 사람도 있지만... 다른 사람 말을 들으면 당연히 그걸 다른 데 옮기면 안 되죠 입이 무거운 사람이 아니면 말하지 않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아주 가까운 사람이라 해도... 솔직하게 말해야 할 것, 말하지 않아야 할 것을 잘 구별해야지요

어느새 구월입니다 설해목 님한테 좋은 구월이기를 바랍니다


희선
 
덩케르크 - 세계사 최대 규모의 철수 작전
에드워드 키블 채터턴 지음, 정탄 옮김, 권성욱 감수 / 교유서가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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덩케르크의 기적’, ‘9일의 기적이라고 불리는 작전이 있었다. 그 작전의 명칭은 다이나모 작전(Operation Dynamo)(‘덩케르크 철수 작전으로 더 유명하다)으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덩케르크 지역에 있던 연합군인들을 수 백 척의 배를 통해 철수시키는 작전이었다. 이 작전이 수행된 기간은 1940. 5. 27.부터 6. 4.까지 9일 간이었다. 지구상의 수많았던 전쟁에서 온갖 작전이 있었을 테고 또 그 작전들의 운명은 실패 아니면 성공이었을 것이다. 다이나모 작전이 이렇게 주목을 받게 된 건 우선 감동적일 정도로 성공한 작전이었고 그 성공의 원인이 조금은 특별하다는 점 때문이다.

 

다이나모 작전은 복잡한 작전이 아니었다. 독일군에 의해 고립되어 있던 연합군(특히 영국군)들을 전장에서 철수시키는 것. 그 철수지로 선택된 곳이 덩케르크라는 해역이었다. 그곳에서 고립된 군인들을 배로 실어 나르는 것. 이 작전의 위대한 점은 바로 군인들을 실어 나르는 배가 대부분 영국의 상선들이었다는 점이다. 군에 속한 선박뿐만 아니라 영국민의 일상에 이용되던 여객선, 화물선, 트롤선, 유자망 어선, 예인선, 외륜선, 요트와 모터보트 등의 개인용 선박들이 이 작전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점이다.(물론 영국의 배들뿐만 아니라 연합군들의 배들 역시 이 작전에 동원되긴 했다.) 그리고 이 다양한 민간 선박들을 운행한 사람들이 군인신분이 아니라 그 배의 주인이자 그 배를 운행하는 선장 및 선원들인 즉 민간인이었다는 점이 이 작전이 위대한 가장 큰 이유라 할 것이다.

 

하늘과 해역에서 독일군의 무자비한 폭격에도 불구하고 묵묵하게 최선을 다해 군인들을 실어 나르던 용감한 국민들. 그들이 군인 신분이 아니라고 해서 총알이나 폭격이 비껴가는 건 아니었다. 그걸 알면서도 자신의 목숨을 걸고 자신이 운행하던 혹은 소유하던 배들을 직접 몰고서 전장으로 향하던 그들의 순수한 애국심. 그렇다. 덩케르크 철수 작전은 군인들이 주인공이 아니라 애국심 하나로 무조건 전장으로 달려갔던 소시민들이 그 주인공이었다. 저자는 이 책에서 바로 이 점을 강조하고 있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이 작전에 참여한 사람들 중 상선 종사가 121명이 사망했고 79명이 부상을 입었고, 민간인 지원자 중에서는 4명이 사망했고 2명이 부상당했다고 한다. 사람의 목숨이야 그 경중을 따질 수 없겠지만 125명의 희생의 무게는 남다를 수밖에 없다.

 

책은 본격적으로 덩케르크 철수 작전이 시작되기 전의 상황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리고 덩케르크 작전을 수행하기 위해서 영국이 어떤 조치를 취했는지를 보여주고 무엇보다 이 책의 백미인 선박의 종류에 따른 입장에서 철수작전을 여러 각도에서 세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그리고 그 당시에 참여했던 사람들과의 인터뷰 및 각종 자료를 통해 작전에서 군인을 구하던 사람들뿐만 아니라 구조가 된 군인 등 작전에 함께했던 사람들의 불안하면서도 간절한 심정에 대해서도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 글 중간 중간에 너무 감상적이다 싶을 정도로 격해진 저자의 견해가 조금 거슬리기도 하지만, 1, 2차 세계대전을 다 겪은 저자로서는 덩케르크 철수 작전이 얼마나 대단한 작전이었는지를, 무엇보다 무모하게 죽임을 당했을 수십만명의 군인들을 구해낸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남다르게 느꼈을 거라는 건 충분히 이해가 간다.

 

개인의 용기를 불러내는 것은 위기였고, 덩케르크는 그 두 가지로 가득했다.”_p.351

 

9일 동안의 덩케르크는 수많은 위기와 상상할 수 없는 용기로 넘쳐났다. ‘바다에 빠져 기름범벅이 되어 구조되었다가 그 배가 폭격을 당해 바다에 또다시 빠지고 그러다가 다시 구조 되는그런 기적같은 일도 일어났다. 질서정연하게 구조되기를 기다리는 수십만의 병사들, 위험을 무릅쓰고 작은 배로 군사들을 실어 나르는 민간 항해사들, 하늘에서 그들을 엄호하는 공군과 바다에서 그들을 지켜주는 해군, 좋은 날씨로 그들을 도운 신,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을 죽음직전까지 내몰았으나 진격을 중지하고 현 전선을 유지하라!’라는,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은 명령을 내린 히틀러. ‘덩케르크 철수 작전은 한마디로 위기와 용기가 만들어낸 기적의 시간이자 현장이었다.

 

영국의 조선소들이 등한시되는 비운을 또다시 겪게 해서는 안 되고, 선박이 놀고 있어서 상선과 그 종사자들이 본연의 일을 포기하고 육지에서 일거리를 찾아 배회하는 일이 또다시 벌어지게 해서는 안 되겠다. 해양 기질! 이 기질을 새로이 되살려야 한다. 무역해운을 지원하고, 선원들에겐 안정된 종신재직 생활을 보장하며, 해상 모험의 매력을 젊은이들에게 좀더 박력 있게 제시해야 한다.

그리고 만약 정부 보조금이 필요하다면, 이보다 더 보람 있게 공적자금을 사용하는 길이 또 어디 있겠는가? 영국의 지나간 역사와 다가올 미래는 해양에 좌우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 혹독한 날들을 경험한 덩케르크는 바로 이 사실을 빛나는 명료함으로 강조하고 있다.”_ p.178-179

 

저자는 말한다. 영국의 미래는 해양에 좌우될 거라고.. 지금 영국에서 필요한 건 해양 기질이며 이를 위해 정부는 노력해야 한다고.. 섬나라인 영국에서 해상국력이야말로 자국을 지키는 핵심일 것은 자명하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전적으로 전쟁을 전제로 한 교훈이 아닌가. 더 이상 덩케르크 철수 작전과 같은 일이 없는 그런 미래를 꿈꿔보면 좋을 텐데.. 참혹하고 혹독한 세계대전을 두 번이나 겪은 저자에게는 그런 밝은 미래는 어쩌면 상상 밖의 영역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베트남전과 한국전쟁을 겪은 큰아버지의 북한에 대한 강경한 태도처럼...

 

영화 <덩케르크>를 아직 보지 못했다. 바쁜 걸 끝내고 보려고 하니 어느새 상영관이 대폭 줄어 있다. 놀란 감독의 전작들을 재미있게 봤던 터라 이번 영화 역시 기대를 하며 관람객들의 평을 먼저 읽었는데 호불호가 갈리는 듯하다. 영화가 더도 말도 덜도 말고 철수 작전의 모습을 이 책만큼만 그려냈기를 바란다. 분명 이 작전은 전쟁 중에 수행된 작전이었지만 전쟁을 뛰어넘는 어떤 벅찬 감동이 전해지는 특별함이 있다. 영화 <덩케르크>는 전쟁영화가 아니라고 하는 평은 아마도 이 특별함 때문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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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17-08-24 03: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실제 있었던 일인지 모르겠지만, 적한테 둘려싸여 있는 부대 사람을 구하러 가서 많은 사람이 죽었습니다 어려운 일이었는데도 그걸 해야 했다니, 거기에서 달아나고 싶은 사람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렇게 해도 살 수 없었겠죠 민간인이 많이 구하러 갔군요 나라를 생각하는 마음도 있었겠지만 사람을 살리려는 마음이 더 크지 않았을까 싶기도 합니다

전쟁이 일어났을 때 일을 다 알지 못하지만, 아직도 잘 알려지지 않은 일이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아니 몇줄 되지 않는 글로 남은 일이 많겠습니다 역사가 지나간 일이기는 해도 새롭게 알게 되는 일도 있군요 일어난 일이라 해도 다르게 볼 수도 있습니다 저는 그런 거 잘 못하지만...


희선
 
덩케르크 - 세계사 최대 규모의 철수 작전
에드워드 키블 채터턴 지음, 정탄 옮김, 권성욱 감수 / 교유서가 / 2017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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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인 사건을 이렇게까지 치밀하게 기록할 수 있다는 것에 그저 감탄할 뿐이다. 이러한 기록물이 있기에 역사는 현재의 거울이 될 수 있는 건지도... 이 책을 읽고나면 영국의 어떤 선박이라도 달리 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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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8. 12. 영화 <프란츠>를 봤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난 독일의 한 마을에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프란츠. 이십대 초반의 독일청년. 의사 아버지와 어머니의 외동아들. 안나라는 약혼녀가 있다. 전장에서 프랑스군의 총에 맞아 전사했고, 더 이상 그가 없는 집에서 약혼녀 안나는 그의 부모와 함께 살고 있다. 어느날 그들에게 프란츠가 프랑스에 있을 때 사귄 친구라며 프랑스 청년 아드리앵이 찾아온다. 아들의 빈자리로 찾아든 아들의 친구에게 프란츠 부모는 물론 안나까지 얼었던 마음을 풀게 된다. 하지만 아드리앵은 죄책감에 시달리다 안나에게 자신이 전장에서 마주친 프란츠를 죽은 군인이었다고 고백하고 그의 가족들에게 용서를 빌러 왔다고 솔직하게 말하지만 안나는 부모님에게는 자신이 말해겠다며 아드리앵을 프랑스로 돌려보낸다. 안나는 프란츠의 부모님에게 아드리앵의 진실을 감추고 무거운 비밀을 간직한 채 회색빛 일상을 보내다가 자살까지 시도하게 된다. 자신이 아드리앵을 좋아한다는 걸 깨달은 안나는 아드리앵을 마음에 들어하는 프란츠 부모님의 응원 하에 아드리앵을 만나러 프랑스로 가게 되고 우여곡절 끝에 아드리앵의 고향집까지 가게 되어 아드리앵과 만난다. 하지만 그의 곁에는 어릴 때부터 같이 자라고 곧 결혼을 할 약혼자가 함께 살고 있다. 프란츠와 안나와 같은 연인이... 결국 안나는 아드리앵을 포기하고 돌아간다. 영화는 루브르 박물관에 걸린 마네의 <자살>이라는 그림 앞에 앉아 있는 안나의 모습으로 끝이 난다.

 

 

에두아르 마네, <자살> 혹은 <자살한 남자>

   

이 영화를 보면서 떠올랐던 영화가 있다. 영화의 시대적 배경도 같고 전장에 나간 약혼자로 인해 특별한 여정을 하는 여자가 주인공이라는 점에서 떠올랐던 영화 <인게이지먼트>. 프랑스의 작은 마을에 사는 마띨드는 어릴적에 앓은 소아마비로 인해 한쪽 다리가 불편하다. 그런 그녀에게 먼저 말을 걸어준 소꿉친구이자 약혼자인 마네끄가 전장으로 끌려간 후 군형법을 어겼다는 이유로 군법재판소에 넘겨서 사형을 선고받고 비무장 지대에 버려지다시피 했다는 소식을 전해 듣게 된다. 하지만 마띨드는 자신의 예감을 믿으며 그가 아직 살아있다고 확신하고 그를 찾아 나선다. 탐정을 고용하고 그 당시 약혼자와 함께 했던 군인들을 찾아다니며 마네끄의 생사를 쫓던 그녀는 결국 그가 살아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마띨드가 기억을 상실한 채 다른 사람의 신분으로 살아가고 있는 약혼자를 만나는 장면에서 영화는 끝난다.

 

 

두 영화는 전쟁의 끝에 희망을 찾는 여자들의 모습으로 끝이 난다. <프란츠>의 안나는 루브르 박물관에 걸린 마네의 <자살>이란 그림 앞에서 독백한다. 이 그림이 삶의 의지를 갖게 해준다고.. 사랑하는 약혼자를 잃고, 그 약혼자로 인해 알게 된 또 다른 남자 아드리앵과도 맺어지지 못한 안나가 다시 느끼게 된 삶의 의지란 무엇일까. 프란츠를 잃고 아드리앵 마저 떠나버리고 더 이상 슬픔을 견딜 수 없다면서 강물로 걸어 들어갔던 안나는 폐허가 된 곳에서도 삶은 이어져야 한다는 걸 두 번의 사랑으로 깨닫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약혼자를 잃고 그를 죽인 남자를 사랑하게 되었지만 그 남자와도 맺어질 수 없었음에도 또 다른 사랑은 찾아올 거라는 희망. 안나는 도저히 사랑할 수 없는, 사랑해서는 안 되는 아드리앵을 사랑함으로써 사랑에 대한 가능성을 본 것인지도 모른다. 삶이 계속되는 한 사랑은 어디에나 있다는 가능성 말이다.

 

<인게이지먼트>의 마띨드는 결국 기억을 잃고 신분마저 바뀌어버린 약혼자를 찾아낸다. 영화 내내 약혼자의 생존에 대해서 희망을 놓지 않던 마띨드의 모습은 사랑하는 사람을 보고싶다는 간절함이 담겨 있다. 그리고 그를 찾기 위해서 했던 적극적인 행동들은 혼란한 시대에는 여자가 오히려 더 강인할 수도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이런 모습은 자신의 애인을 죽게 만든 관련자들을 찾아다니며 죽음으로 복수를 하는 여자(마리옹 꼬디아르 분)에서도 잘 나타난다.]. 마네끄는 약혼자 마띨드를 살아서 다시 만나기 위해 적극적으로 살려고 하지 않았다. 오히려 정신줄을 놓음으로써 그저 자신 안으로 대피했을 뿐. 그런 그를 찾아낸 건 결국 마띨드의 강한 의지였다. 전쟁 후의 폐허 속에서도 희망을 놓지 않고 강한 의지로 삶을 이어가는 건 결국 여자들의 몫이었는지도 모른다. 전쟁에서 살아남은 자들을 대신해서...

 

두 영화 모두 주인공인 두 여자의 연기가 강한 인상을 남긴다. 특히 <프란츠>의 안나는 마음이 조금씩 변해가는 것을 눈빛과 작은 행동만으로도 잘 표현했다. <인게이지먼트>의 마띨드는 특유의 발랄함으로 영화에 생동감을 더해주었다. 전쟁과 사랑이라는 같은 소재 심지어 같은 시대를 배경으로 이야기 하고 있으면서도 두 영화(혹은 두 여인)이 관객에게 주는 느낌은 사뭇 다르다. 그러면서도 전해지는 감동의 무게는 비슷하다 랄까. 이런 게 영화의 힘은 아닌지 새삼 그런 생각을 해본다.

 

두 영화가 인상 깊게 남는 또 다른 이유는 영화의 색감 때문이다. <프란츠>는 흑백톤으로 흐르다가 잠깐씩 눈치 채지 못할 정도로 자연스럽게 칼러 장면으로 바뀐다. 그런가하면 <인게이지먼트>는 전체적으로 따뜻한 느낌을 주는 세피아톤의 색감을 사용하여 참혹한 전쟁 장면이 많았음에도 큰 거부감 없이 볼 수 있었다. 흑백과 세파아. 둘 다 과거라는 시간에 어울리는 색감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둘 다 과거의 색이되 두 여주인공의 모습과 심경을 대변하는 것으로 각 영화가 선택한 색감은 적절한 선택이 아니었나 싶다

 

두 영화는 전장에 사랑하는 사람을 보낸 젊은 여자가 주인공인 사랑이야기지만 1차세계대전이 배경인 만큼 전쟁에 대한 민낯을 보여주기도 한다. 프란츠의 아버지는 자신 또래들이 모인 한 모임에서 말한다. 우리의 자식은 프랑스인이 죽인 게 아니라 우리 아버지들이 죽인 거라고. 그들의 손에 무기를 쥐어주고 전장으로 내보낸 건 우리 아버지들이라고. 우리 아들들이 죽으면 저쪽 아버지들이 축배를 들고 저쪽 아들들이 죽으면 우리가 축배들 들었다고. 결국 우리 모두는 아들들의 죽음에 축배를 드는 그런 아버지일 뿐이라고... 그런가 하면 <인게이지먼트>에서 징집당한 한 남자는 동료 군인들에게 이런 말로 설득을 하려고 하지만 실패한다. 자신 같은 하층민들이 서로를 죽일 대포를 만들면 부자들이 그걸 팔아 돈을 번다고... 두 영화는 말한다. 전쟁은 그 어떤 편도 이득일 수 없다고, 결국 부자 같은 몇몇 사람들의 배만 불리는 악 중의 악이라고. 전쟁의 잔혹함을 대놓고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관객들에게 제법 강한 인상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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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부만두 2017-08-13 18: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프란츠가 그런 내용이었구나....

희선 2017-08-24 02: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영화 시대배경은 같아도 하나는 독일이고 하나는 프랑스네요 독일 사람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까 하는 걱정이 앞서는... 그렇다 해도 살아가겠죠 전쟁이 일어나면 좋은 곳은 하나도 없겠습니다 그걸 알면서도 할 때도 있지 않나 싶어요 전쟁이 일어나면 가장 밑에 사람이 힘들겠습니다 하지 않으면 안 될 테니... 그럴 때라도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싶은데 어려울지도 모르겠네요


희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