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별 - 2018 제12회 김유정문학상 수상작품집
한강 외 지음 / 은행나무 / 2018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레고르 잠자는 갑충처럼 변하는 것이 아니라 갑충이 되며, 스토리는 그 시점부터 현실적으로 전개된다. 초현실주의 소설에서 작가는 자신의 스토리를 마치 마음이 꿈을 만들어내듯 전개하며 심리적 사건들의 시퀀스를 통째로 바꾸어 놓는다. 이 모든 방식들에서 스토리의 플롯을 짠다는 것은 본질적으로 작품을 리얼하게 만드는 플롯을 짜는 것이다. 작가는 우리가 스토리를 클라이맥스까지 따라가기 위해 (그 방식 내에서) 알아야 할 모든 것들을 극적으로 보여준다. 그는 그저 그것들에 대해 말해주는 대신, 클라이맥스에 대한 우리의 믿음에 결정적으로 작용하는 모든 것들을 극화한다. _ 존 가드너, <소설의 기술> 중에서..

 

 

삶과 죽음이라는 샴쌍둥이

 

어느 겨울날 저녁 천변에 있는 야외 벤치에서 잠시 졸다 깨어보니 눈사람이 된 여성이 이 단편의 주인공이다. 소설은 카프카의 <변신>처럼 한 여성이 눈사람으로 변했다는 것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여성은 변한 자신에 놀랄 법도 하지만 히스테리적으로 반응하는 대신 이미 되어 있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정류장으로 걸어간다. 여성은 눈사람이 된 몸이 작은 실수에도 위험에 처할 수 있다는 건 직감적으로 알지만 오히려 마음은 차분하다. 그 차분함은 어디에서 오늘 걸까. '이게 혹시 마지막인가. 그녀는 문득 의문했고, 살아오는 동안 두어 차례 같은 의문을 가졌던 순간을 기억했다. 그때마다 짐작이 비껴가곤 했는데, 기어이 오늘인가.' 이 문장에서 답을 찾을 수도 있겠다. 여성은 어린 나이에 미혼모가 되어 힘들고 바쁘게 살아오면서 한편 미래를 위해 장·단기의 계획을 세우면서도 죽음을 완전히 잊고 살지는 못했을 것이다. 마지막일지 모른다고 의문했던 한두 번의 경험 사이사이에 그림자처럼 달라붙어 있던 죽음을-이십대 미혼모로 살아가는 것 자체가 사실은 인간다운 인간으로 살아가는 걸 어렵게하는 사회적 죽음을 포함하여- 희미하게나마 계속해서 느끼며 살았기에 여성은 눈사람으로 변했어도 차분함을 유지할 수 있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여성은 왜 자신에게 일어난 어떤 사건들에서 마지막이라는 의문을 갖게 되었을까. 삶에 더 무게를 두고 살았더라면 그런 순간이 닥쳤을 때 마지막이라기보다는 그저 좀 어렵게 넘겨야할 큰 고비로 여겼을 수도 있을 텐데. 그건 여성의 집안 내력을 살펴봐야 할 것 같다. 삼남매의 둘째였던 여성은 감수성이 예민하던 나이에 집안의 장남인 고등학생 오빠가 학교폭력으로 자살을 한 경험을 겪었다. 이후 남은 두 자식 대신 죽은 하나의 자식을 그리워하며 평생을 살아가는 부모를 지켜보며 여성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늘 죽음의 그림자에서 벗어날 수 없었을 것이다. 여성에게 삶과 죽음은 하나씩 떼어내서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샴쌍둥이 같이 늘 함께 하는 것이다.

 

예고된 죽음이 주는 안도

 

'언제가 끝인지만 알 수 있다면. 잠이 오지 않는 밤 식탁 앞에 앉아 수첩을 펼쳐놓고 어깨와 목 사이 딱딱한 근육을 주무르며 그녀는 생각하곤 했다. 그것만 안다면 미래를 준비하는 이 모든 일이 쉬워질 텐데. 착오 없이 분명해질 텐데. 깨끗해질 텐데.'

 

영화 <이웃집에 신이 산다>에는 이런 장면이 나온다. 신인 아버지의 행태에 질려버린 딸은 인간들에게 남은 수명이 얼마인지를 문자로 전송한다. 자신이 언제 죽을지를 알게 된 사람들의 반응은 다양했다. 정말로 죽지 않는지를 실험하기 위해 위험한 짓을 하고, 성전환 수술을 하고 불륜을 저지르고 고릴라와 결혼을 하기도 한다. 영화상에서의 남은 수명을 알게 된 인간들의 반응은 좀 극단적이다. 영화를 보면서 죽을 날을 알게 되면 지금 당장 나는 무얼 할 건지 스스로에게 물었고, 그 대답은 그때나 지금이나 영화 속 인물들 보다는 <작별>의 여성에 더 가깝다. 여성은 자신이 언제 죽을지를 안다 해도 지금 당장은 정해진 수명까지의 미래를 분명하게, 깨끗하게 계획하길 원한다. 의식주의 해결이 분명하게 확정되었다기보다는 언제 어떤 상황에 놓일지 모를 불안에 노출되어 있는 사람들에겐 뭐 하나라도 분명한 것이 있기를 바라는 건 당연하다. 게다가 나 혼자만이 아닌 자식이 있는 상황이라면 더더욱...

 

작별 의식

 

여성은 자신이 이 밤을 넘기지 못하고 사라질 거라고 직감하고 자신만의 이별을 준비한다. 죽은 장남만을 붙들고 살고 있는 부모에게 전화를 걸어 일상의 대화를 하고 짧은 통화를 마친다. 거리가 멀어진 남동생에게는 차마 전하지도 못할 속마음을 털어놓는다. 자신에게 사랑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준 남자에게는 평소와 다름없는 모습을 보이며 마지막 입맞춤을 한다. 그리고 곧 고등학생이 되는 아들과는 끝말잇기를 하며 평범한 작별의식을 치른다. 여성은 죽음을 직감하고 사라져가는 중에도 감정의 변화가 거의 없다. 체념한 듯도 하고 득도한 듯도 하다. 눈사람으로 변한 여성에 대한 아들과 연인의 반응도 격렬하지 않다. 눈사람이 된 당사자인 여성의 차분한 모습에 대한 거울반사 같은 반응이다. 죽음을 앞두고 하는 작별 의식은 보통은 살아남은 자들의 격한 반응으로 주객전도되기 쉬운데 소설에서의 작별 의식은 오롯이 죽음을 맞는 여성이 그것을 이끌어가고 있다. 이럴 수 있는 것 역시 여성이 살면서도 늘 죽음을 염두에 두었기 때문은 아닐까. 막상 닥친 의아스런 죽음에도 감정이 동요되지 않을 정도로...

 

악몽과의 작별

 

소설에는 사실 좀 뜬금없다 싶은 장면이 있는데 바로 여성이 자신이 꾸는 악몽에 대해 이야기하는 장면이다. 문밖에서 열린 문틈으로 살림살이를 돌아보면서 자신을 괴롭히던 악몽을 떠올린다. 여성은 뉴스에 관한 악몽을 자주 꾸었다. 뉴스에서 나오는 끔찍한 사건들이 꿈으로 나타나 그녀를 괴롭히는가 하면 개인적인 악몽들 역시 그녀를 두려움에 떨게 하는 것들이다. 꿈이 현실의 마음상태를 반영하는 것이라면, 여성은 언제 닥칠지 모를 위험한 상황에 대한 불안을-목숨에 대한 직접적인 위험은 물론 자연재해나 경제적인 불안과 자식에 대한 걱정을 포함한 총체적인 불안- 늘 끌어안은 채 살아오고 있었다고 할 것이다. 이 악몽 장면을 통해 내가 느낀 건 여성은 자신이 죽게 되면 이 악몽에서도 그리고 악몽 같은 현실에서도 벗어날 수 있다는 사실에 내심 안도하는 것 같다.

 

고통이 없다면 두려움도 없지

 

눈사람이 된 여성은 닥친 죽음에도 불구하고 타인에게는 물론 자신에게조차 두려움을 보이지 않는다. 죽음의 방식이 너무 어이없기도 하고 무엇보다 죽음에 당연히 수반되어야 할 몸의 고통이 없기 때문이다. 고통이 없으니 눈으로 된 몸이 녹아 죽는 그 순간까지도 여성은 두려움 없이 자신의 죽음을 직시할 수 있다. 품위 있게 죽는 것이 가능할 수 있다면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건 역시 고통의 부재이지 않을까 싶다. 고통의 사촌쯤 되는 고단한 한평생을 살았으니 죽는 그 순간만이라도 고통 없이 맞을 수 있다면... 소설을 읽고 나서 나도 마지막 순간에는 눈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댓글(7) 먼댓글(0) 좋아요(2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카알벨루치 2019-01-06 23: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눈사람이라...한강의 책을 또 읽어봐야하나...ㅎ

설해목 2019-01-06 23:38   좋아요 1 | URL
저도 사람들 리뷰가 좋아 궁금해서 읽었는데 역시 한강이다 했네요. ^^

카알벨루치 2019-01-07 00:51   좋아요 1 | URL
작품이 한 강입니다 그쵸? 읽어야할책이 한~강입니다! 잼없나? 굿밤하소서

뒷북소녀 2019-01-07 12: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언니! 리뷰를 이렇게 잘 쓰시면 어떻게 해요?
저 분명 읽었는데, 읽었는데... 저도요...
다시 읽어봐야 할 것 같아요...ㅠㅠ
그리고... <이웃집에 신이 산다> 저 영화 궁금해서 찾아봤더니... 19금이네요...
혹시 너무 잔인해서 19금은 아닌거죠? 문란해서 19금인가요?
영화까지 관심이 솔솔 생겨버렸어요.

제 마지막을 알게 된다면... 그때도 저는 책을 읽고 있을까요?
이 소설을 읽으면서 저는 그런 생각을 했드랬죠.

건강한 한 주 보내소서^^

설해목 2019-01-07 19:42   좋아요 1 | URL
소설이 느므 좋으니 할 말이 많아서 주절주절거려봤다네..^^
내용이 조금 파격적이라 영화가 19금인 것 같애...ㅋㅋ
나 역시 마지막을 알아도 그냥 매일 하던 것처럼 책을 볼 것 같아...
뒷북소녀도 즐겁고 따뜻한 한 주 보내길~~ ^^

레삭매냐 2019-01-08 11:0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랑은 한강 작가가 맞지 않다고 막
깔라고 그랬는데...

다른 분들이 워낙 좋다고 하시니 바로
깨갱입니다 ㅋㅋ

설해목 2019-01-08 12:02   좋아요 0 | URL
제 주위 남자들은 다 비슷한 반응이더라구요. 한강 작가의 작품에 대해서요..
각자의 취향이라고 해두죠.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