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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실에는 벌써 몇 달째 매일(심지어 주말에도) 출근하다시피 하는 두 분 어머니가 계신다. 학습지 노동자로 일하다가 회사로부터 고소를 당해 현재 형사재판을 받고 있는 분들이시다. 몇 년 동안 일하면서 빚은 빚대로 지고 피해자 회복과 불공정하고 부당한 영업행위를 고쳐보고자 노조 활동을 한다는 것에 보복성으로 회사로부터 고소까지 당한 분들이다. 손이 가는 아이들이 여럿인데도 당장 코앞에 닥친 송사를 해결하기 위해 매일 사무실로 나와 재판 준비를 하고 계신다. 그분들의 눈물을 한두번 본 게 아니니 얼마나 힘든 시간을 보내고 계신지 짐작이 간다. 재판 준비 자체도 힘들지만 그분들을 심적으로 더 힘들게 하고 괴롭히는 건 함께 노조활동을 하던 분들이 하나둘씩 빠져나가고 같이 일했던 동료들이 회사 편에 서서 그분들을 범죄자 취급하며 손가락질하고 뒤에서 온갖 험담을 한다는 것이다. 동료들은 이 두 분을 포함하여 노조분들의 활동 덕으로 부당한 대우가 조금씩 개선이 되어가는 걸 인정은 하면서도 노조에 힘을 보태주기는커녕 노조와는 거리를 두려고 한다. 학습지 노동자 대부분이 가정이 있는 주부이다 보니(두 분이 속한 회사에는 100% 여자 노동자들뿐이다) 어쩔 수 없다고 두 분이 체념하다시피 말할 때마다 마음이 아프다. 게다가 업무 특성상 이분들은 개인사업자로 되어 있어서 회사의 관리와 영업 압박을 받으면서도 문제가 생기면 회사는 이 분들과 선을 긋는 것으로 온갖 책임을 회피하는 실정이다. 선생님이 되어 아이들을 가르치며 가계에도 보탬이 될 것 같아 시작한 학습지 교사 일이 다단계식 영업의 덫이었다는 걸 알았을 때는 이미 빚에 허덕이는 신세가 되어버렸고 이제는 범죄자로 몰리는 처지에 이른 것이다. 그저 바라는 건 두 분의 재판이 검찰에서의 수사와는 다르게 공정하게 이루어져 그 분들의 억울함이 제대로 사람들에게 알려지길 바랄뿐이다.

 

몇 달 동안 두 분의 학습지 노동자와 함께 사무실을 쓰면서 자연스레 이런 처지의 노동자들에 대한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그래서 읽은 책이 이 세 권의 책이다. 2월 동안 세 권의 책을 읽으면서 마음이 많이 무겁고 답답했다. 내가 정말 수많은 노동자들의 도움을 받으며 생활을 해나가고 있구나, 하지만 그 노동자들이 어떤 대우를 받으며 어떤 환경에서 일을 하고 있는지 전혀 관심이 없었구나, 나 역시 노동자인데 다른 일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에 대한 관심이 너무 없었구나 하는 반성하는 마음과, 왜 아직도 대다수의 노동자들이 이렇게 열악한 환경과 적은 임금에 허덕여야 하는 걸까, 자본과 권력의 지배에서 벗어나 제대로 노동의 가치를 인정받을 수는 정녕 없는 걸까, 같은 노동자들끼리 뭉치기만 해도 노동 환경을 개선할 수 있을 텐데 연대하는 것이 왜 이리 힘든 걸까 하는 안타까운 마음만 더해 갔다.

 

달빛 노동 찾기는 야간 노동자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우편집중국에서 일하는 우정실무원과, 대학에서 시설을 관리하는 노동자, 방송작가와 의사와 간호사의 일 빼고 거의 모든 일을 지원하는 병원지원직 노동자, 항공기 기내를 청소하는 노동자와 지하철이 이상 없이 운행되도록 점검하는 노동자, 고속도로를 달리며 안전을 책임지는 순찰 노동자와 공장 노동자들의 밥을 책임지는 조리원 그리고 교도소에 근무하는 교정직 공무원에 대한 이야기가 인터뷰 형식으로 실려 있다. 이들은 교대 근무라는 형식으로 밤을 저당잡힌 채 해가 지고도 휴식을 취하고 잠을 자는 대신 일을 하는 노동자들이다. 국제암연구소는 야간 노동을 2급 발암물질로 규정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간노동과 교대제 노동이 사라져가기는커녕 24시간 내내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우리나라에서는 여전히 노동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아버지가 30년 넘게 교대제 노동으로 일하셨기에 나는 어렸을 때부터 그 폐해를 몸소 느껴왔다. 아버지는 3교대를 하시면서 잠을 충분히 주무실 수 없어 늘 불면에 시달리며 신경이 날카로웠다. 그런 아버지의 식사를 챙기기 위해 어머니 역시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해 늘 시름시름 앓으셨다. 나와 동생들 역시 낮에 주무시는 아버지로 인해 조용조용하게 지내야 했고 가족 모두가 모여 무언가를 한 기억이 거의 없다. 그 여파는 퇴직을 하고도 남아 있어 두 분은 여전히 수면장애를 겪고 계시며 아버지는 이명 때문에 힘들어하신다. 아버지처럼 자야할 시간에 자지 못하는 것이 건강에 얼마나 안 좋은지 스스로 느끼면서도 먹고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야간에 일해야 하는 노동자들이 지금도 여전하다는 것에 그저 마음이 무거울 따름이다.

 

그럼 이렇게 건강을 해치면서까지 야간에 일을 하는 노동자들에 대한 대우는 괜찮은가 하면 그게 또 그렇지 않다는 게 정말 화나는 일이다. 야간 노동자들 대부분이 비정규직이거나 하청업체의 직원들이다보니 제대로 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항공기내 청소를 하는 노동자들의 경우 항공기 일정에 맞추다보니 노동환경이 정말 열악하다 못해 참담하다. 그런가 하면 제작 책임자인 PD에 의해 급여가 정해지는 막내 작가들의 경우 박봉에 온갖 허드렛일을 도맡아해야 한다. 병원에서 의사와 간호사가 하는 업무 외의 거의 모둔 업무를 지원하는 병원지원직 노동자는 병원측 사람들은 물론 환자와 보호자로부터도 수모를 당하기 일쑤다. 자신의 감정과 건강까지 저당잡힌 채 일하는 야간 노동자들에게 그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지급하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 누군가의 노동과 건강을 담보로 부를 챙기는 사람은 따로 있다는 것, 돈이 한 사람의 목숨과 건강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 이런 현실을 노동자의 생생한 증언으로 마주하고 보니 너무 속상하고 화가 난다. 도대체 이런 참담한 현실을 어떻게 해야 바꿔나갈 수 있는 것일까. 노조가 희망일 수 있다 싶지만 노동자들이 노조를 만들고 활동을 해나가는 것이 만만치 않다는 것 또한 책에서 확인한 사실이다.

 

이 책에서 내가 특히 열 받았던 이야기를 옮겨본다. 소위 배운 지식인이라는 작자들의 이중성, 민낯의 한 예가 아닌가 싶다.

 

더 참을 수 없었던 건 억대 연봉 받으며 막내의 월급 20만 원을 깎는” PD들이 언론에서는 진보적인 목소리를 내고, 소수자의 삶을 그린 프로그램을 만드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이다. 최지은 씨를 내 커피라고 부르는 프로그램 진행자는 한국에서 손꼽히는 유명한 진보 지식인이며, 함께 일하는 PD는 비정규직 노동 실태를 담은 프로그램을 만들기도 했다. “남자 지식인, PD들 대부분 노동 감수성이나 젠더 감수성이 없다며 그녀는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이러게 되면 방송에 환멸을 느낄 수밖에 없다.

비정규직 특집 취재하면서 비정규직 페이 보고 마음 아파해요. 바로 옆에 140만 원 받는 사람이 있는데…… 그러면서 출퇴근하기 힘드니까 돈 모아서 차 사래요. 얼마 받는지 뻔히 알면서 그렇게 얘기해요. 회식할 때도 엄청 비싼 데서 하거든요. 회식으로 100만 원씩 쓰면서 막내한테는 20만 원이 아까워서 그걸 깎아요. 저한테 대놓고 요새 작가들 멍청하다고 얘기해요. 돈 많이 주고 정규직 되면 인재들 많이 올 거라고 했더니 작가들 나이 들면 창의력 떨어져서 정규직 하면 안 된대요. 그러면서. 똑똑한 사람은 안 뽑을 거래요. 도망간다고.”_p.71

 

숨은 노동 찾기는 학교급식을 책임지고 있는 조리원, 알바 노동자, 장례지도사로 일하는 노동자와 콜센터 상담원, 대리운전 노동자와 요양보호사, 톨게이트 수납원과 청소 노동자, 드라마와 영화의 보조출연자와 대형마트 노동자들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달빛 노동 찾기에서도 느꼈지만 이 책에서 더 많이 와 닿았던 건 바로 노동자들의 연대, 노조의 존재가 얼마나 노동자에게 필요한 것인지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조를 만들고 노동자들이 연대하는 것이 또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알게 되었다. 점점 더 일을 외주화 하는 노동환경으로 바뀌면서 원청과 하청, 그리고 노동자 간의 관계가 한쪽으로만 불리하게 돌아가는 것이 현실이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열악한 환경과 적은 임금에 대한 책임을 원청에서는 외면하고 하청업체는 그저 노동자를 쥐어짜려고만 하는 상황에서 노동자들은 어디에다가 처우개선을 요구 하고 어떻게 대처해야할지 답답할 노릇이다. 그러면서 노동자들 스스로 노조의 필요성을 느껴 뭉치게 된 이야기는 가슴뭉클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노조를 만드는 것도 연대를 하는 것도 쉽지 않다는 것 또한 현실이다 보니 그런 이야기에는 안타까웠다. 노동자들도 저마다의 사정이 있으니 함께 노조를 이끌어가다가도 한둘씩 빠져나가고 상위 노조와도 의견이 맞지 않아 결국은 혼자 1인 시위를 하는 콜센터 상담원 봉혜영 씨의 사연은 같은 처지의 노동자끼리라도 연대하는 것이 힘들다는 걸 보여주고 있어 무척 안타까웠다. 특히 봉혜영씨는 콜센터에서 일하기 전에 학습지 교사로 일하다가 너무 힘들어서 직업을 바꿨다는 말에 더 마음이 아팠다. 학습지 교사로 살면서 얼마나 힘들었을지 이제는 알기에 그런 그녀가 또다시 불의와 부당함에 맞서 홀로 싸워야 하는 현실에 참담하기까지 하다.

 

이십대 공장에서 활동했던 노조 경험으로 보조출연자들의 노동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오십이 넘은 나이에도 기꺼이 앞장섰던 문계순 씨의 노조 활동 이야기는(그녀는 조합사무실을 구하기 위해 머리를 깎아야 하는 비구니 역을 따내 받은 출연료로 사무실을 얻었다) 그야말로 가슴 뭉클했다. 그 이야기를 읽고 나니 사무실에 나오시는 학습지 노동자 두 분에게도 이런 동지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래도 머리를 깎는 건 절대 안 된다는 자식들을 달랬다. “위원장님이 왜 머리를 깎아요?”라며 대성통곡을 하는 조합원들도 어루만졌다. 같이할 공간만 생긴다면 머리카락 자르는 것쯤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오디션장에 갔다. 비구니 역이어서 아무도 안 올 줄 알았는데 7명이나 왔다. 다행히 나이가 가장 많은 그녀가 뽑혔다. 대신 경쟁자들이 많았던 탓에 400만 원 준다고 했던 출연료가 250만 원으로 깎였다. 그게 어딘가. 기쁜 마음으로 미용실로 달려갔다. 허리춤까지 오던 머리카락이 싹둑 잘려나갔다. 그 덕에 여의도 옆 신길동에 보증금 200만 원에 월세 20만원인 집을 하나 얻었다. 전국보조출연자노조의 첫 번째 사무실이었다. 허름한 판잣집이었지만 촬영장에서 매일 멸시받던 보조출연자들이 속상한 마음을 풀어내는 해우소 역할을 톡톡히 했다. 저녁이면 일이 없는 조합원들이 모여들었다. 그녀는 양은 냄비에 쉰 김치, 두부 한 모를 넣고 꿀꿀이죽을 끓였다. 별것도 아닌 그 음식을 조합원들은 서로 먹겠다고 달려들었다. 900원짜리 소주도 참 달았다. 그렇게 마음을 나누는 그 시간이 더없이 행복했다._p.229~230

 

노동, 우리는 정말 알고 있을까? 이 책은 위의 두 책처럼 우리가 잘 모르는 노동의 세계를 이야기하고 있다. 위의 두 책이 인터뷰어가 직접 노동자를 만나 인터뷰하는 형식으로 노동 이야기를 하고 있다면, 이 책은 한겨레 기자들이 일정한 기간 동안 직접 노동자로 취업하여 몸소 겪은 일과 노동과 관련된 자료를 취재하여 쓴 후기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노동은 맞교대 제조업체의 노동자와 콜센터 상담원, 초단시간 쪼개기 노동과 배달업체의 배달기사이다. 이 직업들은 배움이 적고 굳이 숙련공이 아니어도 할 수 있는 일들이기에 취업도 쉬웠고 그만큼 이직율도 높은 일들이다. 반면 노동자들의 근무환경과 대우는 생각 이상으로 열악했고 감정, 건강과 위험을 담보 잡히는 건 당연해 보였다. 기자들이야 한 달 남짓 하다 말 일이었지만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노동자들은 이런 환경에서 쉽게 벗어날 수 없다.

 

이 책에서 알게 된 놀라운 사실이 있는데, 콜센터 상담원들의 업무를 평가한다는 이유로 상담원과 고객의 통화내용을 관리자가 청취한다는 것이다. 홈쇼핑을 주로 이용하는 나로서는 섬뜩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통화내용이 녹음된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그건 다른 문제다. 누군가가 내 통화내용을 도청하고 있다고 생각을 하니 너무 불쾌하다. 이걸 어떻게 짚고 넘어가야 하는 건가 고민이다. 상담원과 통화를 할 때마다 제3자의 도청을 언급하며 상담원에게 말하자니 괜히 상담원에게 불평하는 것 같고, 이용하는 업체에 항의글을 써야 하나.

 

이런 책들을 읽는 동안 한국 사장이 인도네시아의 노동자 4000명의 임금을 체불하고 도망갔다는 기사를 보았다. 국내 노동자들에게는 물론 이제는 해외 노동자들에게까지 악질적인 짓을 하는 사장이라니.. 기사를 보니 4000명 중 3800명이 여성이고 그들 중 상당수가 싱글맘이라는데 그런 사람들의 임금을 떼어먹었다고 한다. 기사를 보니 점심도 제공하지 않고 박봉에 노동현장도 열악해 보였다. 국내의 열악한 노동현실을 해외에 수출한 꼴인 셈이다. 정말 창피하고 화가 난다. 수출할 것이 없어 악질적인 노동관행을 해외에 수출하다니... 인간에 대한 존중, 노동에 대한 감사, 일하는 즐거움 같은 것을 느끼며 일할 수는 없는 걸까.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골고루 나눠갖기만 해도 노동자가 자신의 일에 보람을 느낄 텐데, 소수의 배를 채우기 위해 수많은 노동자가 부당한 대우를 받는 현실을, 목숨까지 위협받는 현실을 개선하는 날이 오기는 할까. 학교급식 조리원 노동자 김옥자 씨의 말에서 희망을 본다. 노동자의 연대에 대한 희망을...

 

처음으로 서울역에서 집회할 때는 비가 왔어요. 다 우비 입고 갔거든요. 여기(땅바닥)가 척척해도 여기 안 앉는다는 사람이 없어요. 다 앉아요. 깔개 하나 깔고 그 비가 오는데도 다 앉아요. 세상에 그걸 보고 놀랬대니까, 내가. 그게 다 힘일 거예요, 아마. 다 노조를 믿고 그런 힘이 나는 거 아니에요, 나 같은 사람처럼. 다녀보면 다 씩씩해요. 노조 때문에 힘이 있어. 다른 사람들한테도 그게 보여요. _ 숨은 노동 찾기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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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9-02-24 22: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희 독서모임에서도 어제 이야기를 했지만,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파이론과 트리클다운
효과로 노동자를 현혹해서도 안되겠지만 빤한
레퍼터리에 넘어 가서도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식당에 가서 자기가 어지른 것을 왜 자신이
치우지 않는 걸까요? 자기가 내는 음식값에
그 비용이 포함되어 있다는 오만함은 도대체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 저는 이해가 되지 않
습니다.
물론 서비스에 대한 정의와 범주에 대해서
도 논의가 되어야겠지만 말이죠.

만악의 근원을 노조 탓으로 돌리는 경영자들
과 보수 언론의 태도도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자신들의 경영실패 그리고 오너 리스크 등의
문제에는 눈 감고 오로지 임금이 올라 경쟁력
이 줄어들고 경제 활성화가 되지 않는다라는
빤한 거짓말은 이제 더 이상 듣고 싶지도 않구요.

곧 다가올 인구절벽이 노동의 진정한 가치에
대해 재고하게 만드는 순간이 올거라고 생각합
니다. 사람의 노동이 귀해지는 날을 기대해 봅
니다.

설해목 2019-02-25 09:14   좋아요 1 | URL
책을 읽다보니 정말 노동의 가치를 오너들은 물론 같은 노동자들은 너무 하찮게 생각하고 있었던 건 아닌지 반성하게 되더라구요. 나 역시 노동자라는 거.. 우리 모두는 노동자라는 거 그러니 서로 서로에게 조금만 배려하고 관심가져도 노동자들이 좀 더 살맛나게 일할 수 있지 않을까 싶네요.
물론 제일 시급한 건 현실적인 환경과 임금 개선이지만.... 정말 사람의 노동이 귀해지는 그날이 하루빨리 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뒷북소녀 2019-02-25 13:02   좋아요 1 | URL
과연... 사람의 노동이 귀해지는 그런 날이 올 수 있을까요?
지금도 몇몇 곳에서는 일손 구하는게 힘들지만, 그곳에서도 처우는 전혀 개선되지 않는 걸 보면...
귀해질 수 있는 날이 올까 싶어요 ㅠㅠ

레삭매냐 2019-02-25 13:19   좋아요 1 | URL
얼마 멀지 않았습니다 -

그동안 저임금으로 마구 부려 먹었지만
이제 인구 감소로 사람이 귀해지는 시절
이 곧 옵니다. 단언컨대...

2019-02-25 07: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2-25 09: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2-25 09: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2-25 09: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어쩌다보니 연말과 연시를 잇는 독서로 한 작가의 두 책을 읽게 되었다. 존 가드너의 장편소설가 되기소설의 기술이 그것인데 장편소설가 되기가 장편소설을 쓰기 위한 작가의 기질과 마음가짐 그리고 문예 창작 수업과 워크숍의 효용에 대해 장황하게 다루고 있다고 한다면 소설의 기술은 좀 더 구체적으로 소설 작법에 대해 다루고 있다. 계속해서 읽다보니 써보고 싶고 써보려니 막막하고 그래서 이런 작법이나 창작에 관한 책들 제법 많이 읽어왔는데 읽기만 하고 실천을 하지 않으니 작법서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또 이렇게 소설쓰기에 관한 그것도 장편소설 쓰기에 관한 두 권의 책을 읽어버렸다. 실천하지 않으면 이 독서 또한 무용지물이겠지만.... 심지어 단편도 아닌 장편이라니... 지금의 나라면 연필을 잡는 대신 단편소설 쓰기의 모든 것을 바로 이어 읽게 되지 않을까 싶다. --;;

 

존 가드너는 자신의 두 창작서에서 이 한 가지를 강조한다. 작가는 자신의 글로 독자가 꿀 꿈이 생생하면서 동시에 끊임없이 꾸게 해야 한다는 것. 달리 말하면 중단되지 않는 가상의 꿈을 위해 글쓰기에 정성을 다해야 한다고. 정성이라는 말로 퉁쳤지만 독자의 생생한 꿈을 중단시키지 않기 위해서는 정말 많은 노력과 각오가 필요하다는 걸 존 가드너는 예비 새내기 작가들에게 강조하고 또 강조하고 있다.

 

독학으로 깨우친 작가라면, 책을 읽고 좋은 영화들을 찾아보고, 친구들이나 직장동료들 사이에서 나오는 이야기들을 열심히 경청하면, 정교하고 독창적인 이야기꾼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방법으로는 소박한 작가, 다시 말해 민간 작가로 남을 가능성이 높다. 삶에 대한 진실성만이 아니라 영민함과 작품성으로 독자를 압도하는 대작가가 되기는 어렵다는 뜻이다. _장편소설가 되기중에서

 

아주 좋은 작가들을 비롯해 극소수 작가들만이 작품 활동으로 자기 자신과 가족이 먹고살 만큼의 돈을 버는데, 낮 동안 힘든 육체노동이나 사무직의 긴장을 견뎌내고 나서 다시 정좌하고 소설을 쓰기는 어려운 일이므로, 원하면 일 부담을 조금 줄여서 글쓰기에 시간을 할애할 수 있는 전문직에 필요한 훈련을 해두는 게 현명하다. 파트타임 변호사로 일했던 작가들도 있고(앨버트 레버위츠), 성직자를 겸했던 작가들도 있으며(프레더릭 뷰크너), 의사 일을 겸했던 작가들도 있다(워커 퍼시). 교직을 겸했던 작가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자신이 좋아하고 작가인 당신을 먹여 살려줄, 그러나 시간을 전부 바치지는 않아도 되는 직업을 찾는 게 비결임은 말할 것도 없다.” _장편소설가 되기중에서

 

장편소설가 되기에서 저 부분들을 읽고는 사실 좀 의기소침해지긴 했다. 문예창작 수업은커녕 사설 센터에서 하는 글쓰기 수업 한 번 들은 적 없고 게다가 하루 종일 격무에 시달려야 하는 직장인인 나는 결국 좋은 글을 쓸 수 없다고 말하고 있으니 말이다. 어쩌면 존 가드너는 글 쓸 조건이 갖추어지지 않은 채 쓰고 싶은 마음만 굴뚝같은 나 같은 사람들에게 현실적인 조언을 해주기 위해 이 책을 낸 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좀 충격이긴 했다. 심사를 통해 등단을 하는데도 왜 문창과 출신의 작가들이 많은지(사실 나는 이 부분에 대해 일간에서 떠도는 끼리끼리 서로에게 도움을 준다는 소문이 어느 정도 맞다고 생각했던 사람이다), 쉽지 않음에도 왜 작가들이 전업작가를 꿈꾸고 또 그렇게 하는지 어느 정도 또 이해를 하게 된 계기이기도 하다. 뭐든 배우면 -그게 창작이라 할지라도-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에 도움이 된다는 것 그리고 온전히 하고자 하는 것에 쓸 시간이 충분하면 어느 정도까지의 경지에는 오를 수 있다는 것! 글쓰기라고 다르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고나 할까. 나는 저 두 가지 조건 모두 충족하지 못하고 있으니 암담한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는 거겠지. 그리고 존 가드너는 이런 충고도 서슴지 않는다. ‘작가가 창작에 매진할 여건을 만드는 최선의 방법은 그의(또는 그녀의) 배우자에게 얹혀사는 것으로 배우자나 애인에게 기대어 사는 방법은 탁월한 생존전략이라고... 이것 역시 나에게는 불가능하다. ~~~ 참담하다. 참담해. T.T

 

작가가 허구적 꿈에 몰입하지 못하거나 언어적 충동에 융통성 있게 대처하지 못한다면 그 원인은 근본적으로 자기억제나 자기패배적인 심리 상태에 있으며, 이 문제 해소를 위해 자기 억제를 극복하기 위한 모든 전통적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자기최면, 초월명상, 음주나 흡연, 연애 등, 그러나 각고의 노력과 가끔의 성공이 따라주지 않으면 그 어느 것도 효과는 없다. _장편소설가 되기중에서

 

작가 폐색을 돌파하는 세상에서 가장 좋은 방법은 많이 쓰는 것이다. 종이에다 이 말 저 말 지껄이다 보면 갑자기 자기가 지껄이고 있는 게 흥미로운 이야기라도 되는 듯한 착각에 빠져들면서, 신비의 샘이 다시 흐르고 있다는 신호가 온다. 일기 쓰기도 때로 효과를 발휘한다. 일기에는 가장 끌리는 화제에 대한 성취 압박을 받지 않고 자연스럽게 자기 필치를 살려서 쓸 수 있다. 기죽이는 본업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효과가 있을 것이다. _장편소설가 되기중에서

 

작가가 아니니 작가 폐색이니 글쓰기의 침체기니 겪어본 적도 앞으로 겪게 될 것 같지도 않지만 그럼에도 존 가드너의 이 조언들이 마음에 들어 메모해 둔다. 하는 일에 문제가 생겼을 때는 다른 것으로 환기를 돌리던가 아니면 문제를 다른 형태로 파고 들던가. 이는 비단 글쓰기에만 해당하는 조언만은 아닐 것이다. 아무튼 장편소설가 되기에서 존 가드너는 장편소설가-그것도 진짜 소설가, 위대한 소설가-가 되는 것은 무척 고난한 길이고 특별한 각오와 뚝심이 필요하니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할 것을 선배로서 현실적인 충고를 해주고 있다.

 

그러고 보니 단편소설은 재밌었는데 장편소설은 별로였던 몇몇 작가들이 떠오른다. 존 가드너는 단편소설 쓰기와 장편소설 쓰기는 완전 다른 장르라고 말하고 있는데 그 두 장르를 모두 잘 쓰는 작가들이 드문 건 어쩌면 당연한 건지도 모르겠다. 둘 중 뭐라도 잘 쓴다는 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작가에겐 보람이지 않을까 싶다. 둘 다 잘 쓴다면 그건 작가가 정말 대단한 노력을 했다는 확실한 증거일 테고...

 

장편소설가 되기가 개론서에 가깝다면 소설의 기술은 심화학습서에 가깝다. 존 가드너의 소설을 읽은 적 없고 그런 소설가가 존재하는지 최근까지도 몰랐던 내가 이 책의 표지에 실린 존 가드너의 사진을 보고 든 첫느낌은 외골수소설가란 이미지다. 아마도 장편소설가 되기를 읽어서 그런 느낌이 더 강하게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타자기에 손을 떼지 않은 채 입을 꾹 다물고 강렬한 눈빛으로 카메라를 바라보는 모습이 소설 쓰기가 아니면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라고 온몸으로 말해주는 것만 같다.

 

소설의 기술을 다시 훑어보니 온통 밑줄이 팍팍 그어져 있다. 뭘 알고 그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나름대로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건 죄다 밑줄을 긋다 보니 책 여기저기 온통 밑줄투성이다. ㅎㅎ;;; 무릇 작법서의 효용이란 글쓰기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좋은 글을 알아보는 데도 도움이 된다는 거다. 독자인 나는 후자에 무게를 싣고 이 책을 읽어나가긴 했지만 그래도 글을 써보고 싶은 미련을 완전히 떨쳐버리지는 못해서 나중에 한 번 더 찬찬히 읽어볼 생각이다.

 

소설의 기술은 사실 소설의 이론과 용어를 잘 모른 채 그리고 인용하는 소설을 읽지 않은 상태에서 읽게 되면 이해하는 데 한계가 있는 건 사실이다. 100% 이해하며 읽기에는 전문적인 이야기들과 또 읽어보지 않은 소설들의 예시가 많아 따라가는 것이 버겁긴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밑줄을 그어가며 별표까지 해가며 읽을 수 있었던 건 소설 쓰기의 기본들을 계속해서 강조해주고 그 가르침들은 어느 정도 소설 쓰기에 관심이 있는 예비 작가 지망생 정도라면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조언들이기 때문이다. 가령 예문을 들자면 이런 것들이다.

 

구체적인 디테일이 요구되는 자리에 불충분한 디테일과 추상적인 말을 사용하는 것은 아마추어 글쓰기에서 흔한-실은 거의 보편적인-일이다. 또다른 잘못은 곧장 이미지로 뛰어들지 않는 것, 즉 관찰자적인 의식을 통해 이미지를 불필요하게 필터링하는 일이다.

 

가장 명확한 유형의 서투름, 기본 스킬 구사의 진정한 실패에는 다음과 같은 실수들, 즉 수동태의 부적절하거나 과도한 사용, 비정형 동사를 포함하는 도입 구절을 사용하는 부적절함, 화법의 변화 혹은 정신을 흩뜨리는 화법의 주기적인 사용, 문장 다양성의 결여, 문장 집중력의 결여, 불완전한 리듬, 돌발적인 라임, 불필요한 설명, 심리적 거리의 부주의한 변화 등이 포함된다.

 

설명하고자 하는 유혹은 늘 언제나 억눌러야만 한다. 훌륭한 작가는 행동과 대화를 통해 어떤 것이든 얻어낼 수가 있다. 작가는 특히나 자신의 캐릭터들의 감정에 대해 말하는 일을 피해야 하며, 혹은 적어도 말하지 말고 보여줘라는 오랜 속담에 함축되어 있는 평범한 거부를 반드시 이해하고 있어야만 한다.

 

완벽하게 집중된 이미지를 보이려면 우리에게 주어지는 신호들은 하나하나 차례차례 주어져 모든 게 매끄러운 논리와 완벽한 필연성에 따라 일어나야 한다.

 

정직한 작가는 꼴사납거나 가짜 같거나 억지스러워 보이는 것들을 절대 용납하지 않으려는 마음에, 초고가 끝나고 나면 계속해서 그것을 몇 번이고 들여다본다. 미숙하게 삽입된 디테일들은 멋진 디테일로 수정되거나 삭제되어야만 한다.

 

초보 작가가 배우는 두 번째 중요한 교훈은 소설이 구조적인 단위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이다. 소설은 단번에 써내려가는 것이 아니다. 모든 스토리는 몇몇 단위들, 즉 묘사에 해당하는 구절, 대화에 해당하는 구절, 사건(레너드가 픽업 트럭을 몰고 마을로 간다), 묘사에 해당하는 또다른 구절, 또다른 대사 등등으로 구성된다. 훌륭한 작가는 각각의 단위들을 개별적으로 다루며 차례대로 발전시켜나간다. 묘사가 완벽하다고 생각되면 그는 스토리의 그다음 단위로 넘어간다. 이런 식으로 생각하고, 단위별로 작업해나가고, 자신의 스토리가 자신에게 무엇을 요구하는지를 늘 유념하되 더 중요한 부분들로 서둘러 넘어가지 않음으로써 작가는 난청 지대와 모호한 부분이 없는 스토리, 우리가 미학적 흥미를 잃지 않게 되는 스토리를 만들어낸다.

 

특히 내가 두 눈 부릅뜨고 정신을 집중해서 읽은 부분은 제7플롯 짜기이다. 단편, 중편, 장편 나아가 플롯이 없는 소설을 포함한 또다른 종류의 소설들의 플롯을 짜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가르쳐주고 있다. 존 가드너는 지속적 흐름을 지니는 플롯을 짤 때 사용하는 세 가지 방법이 구체적으로 소설의 종류에 따라 어떻게 적용되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면 플롯을 짤 때 사용하는 세 가지 방법이라 함은 다음과 같다.

 

1) 어떤 전통적인 스토를 혹은 실제의 사건을 차용

2) 클라이맥스로부터 거슬러올라가는 방식으로 작업

3) 최초의 상황으로부터 앞으로 나아가는 방식으로 작업

 

7장에서도 존 가드너는 예비 작가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팁들을 많이 알려주고 있다. 특히 플롯 짜기에 관한 글이니 만큼 예시-하나의 스토리를 만들어-를 들어 이해도를 높여주고, 단편 중편 장편의 플롯 짜기 차이점을 비교해가며 잘 짚어주고 있기에 나 같은 초짜도 플롯이 어떻게 짜여지는지를 이해하는데 별 어려움이 없다. 소설을 쓰고자 한다면 이 부분을 반복해서 읽으면 어느 정도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장편소설의 플롯은 어떠해야 하는지를 그림으로 보여준 사진을 첨부한다.

 

 

장편의 정서적 발전은 피히테의 곡선으로 나타낼 수 있다. 상승하는 사건 b는 사실상 매끄러운 것이 아니라 점점 더 강렬해지는 일련의 클라이맥스들(장편소설의 에피소드적 리듬)을 통과하는 것으로 엄밀히 말하면 왼쪽 그림이 아니라 오른쪽 그림과 같을 것이라고 존 가드너는 말한다. 장편소설을 읽을 때 이 곡선을 떠올리며 읽으면 좀 더 소설을 재밌게 읽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마지막으로 존 가드너의 수많은 가르침과 그를 뒷받침하는 명언들 중에서 소설 쓰는 사람의 마음가짐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잘 보여 글을 소설의 기술에서 발췌해 옮겨놓는다.

 

가장 고차원적인 의미에서의 솜씨 좋은 글을 쓴다는 말은, 자신의 작품을 읽을 백 명의 독자들 중 한 명은 죽어가고 있거나 혹은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죽어가고 있다는 가정에 쓴다는 것을 뜻한다. 내 말은 모든 작가가 자신의 작품이 절망에 빠진 사람에게 읽힐 수도 있고, 혹은 그것을 읽은 사람이 죽으려는 마음을 품거나 살려는 마음을 품게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내 말은 작가들이 자신도 모르게 어떤 피해를 끼칠 수 있을지를 늘 생각해야만 하고, 피해를 끼치지 말아야 한다는 것뿐이다. 진정한 예술가는 절대 돌팔이 외과의가 되려 하지 않는다. 그가 느끼는 예술의 가치와 영예는 예술이-심지어 나쁜 예술도-힘이 세다는 확신에서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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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9-01-05 22: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지난 수요일날 회사에서 들은 최진석 교수
의 강의에 따르면 우리가 글을 읽는 것은
궁극적으로 글을 쓰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이제 그만큼 읽었으면 글을 쓸 때가 된
걸까요? ㅋㅋㅋ

맞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섯갈리네요.

책으로 글쓰기를 배운 사람의 글은 과연
어떨지 궁금하기도 합니다...

인스타에서 키스를 책으로 배운 사람
(오현경)에 대한 짤이 너무 욱겼어요.

뒷북소녀 2019-01-05 22:08   좋아요 1 | URL
키스를 책으로 배운 사람 짤이라니.ㅋ 궁금한걸요

설해목 2019-01-06 00:33   좋아요 0 | URL
최진석 교수가 한 말과 비슷한 말을 저도 어디에선가 들었던 것 같아요. 김영하 작가였나....
읽다 보면 쓰고 싶어지는 건 당연한 건지도 모르겠어요.
자신의 의지와 글쓰기에 대한 집념만 있다면 수업이든 독학이든 문제가 될 것 같지는 않은데
글쎄요. 앗... 김연수 작가가 영문학 전공이긴 하지만 독학으로 문학공부 해서 등단했다는 이야기는 예전에 듣긴 했네요. 그래서인가 김연수 작가는 꾸준히 책읽으며 공부하는 소설가인 것 같아요.

그런 짤이 있다니.... 휴일이 다 가기 전에 찾와봐야겠어요. ㅋㅋ

stella.K 2019-01-06 15:2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설해목님 저는 님께서 언제고 한번쯤은 창작교실을 다녀보시라고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사실 저도 어디를 막 찾아서 다니고 하는 스타일이 아닌데
우연찮게도 다니게 됐는데 생각 보다 아주 좋은 경험이었어요.
워크숍으로 진행되 안 쓰면 안되는 구조속에 나를 집어 넣는 거죠..
뜻을 같이하는 사람과 삶을 나누고, 정보 교환도 하는 경험도 좋았구요.
그러지 않으면 평생 못 쓰더라구요.
물론 창작 교실을 수료하면 옛날의 나로 돌아갈 수 있지만
한 번 글을 써 보고 돌아가는 거랑 한 번도 그런 곳에 발을 담가 보지 않은 거랑은
그게 좀 다르더라구요.
독자를 생각하는 건 둘째 문제고 내가 소설을 써 봤다는 이 경험이 먼저인 것 같더라구요.
그리고 선생님들은 그런 얘기하지요. 자기 본업을 가지고 있고 소설가는 부업으로 생각하라고.
가드너의 말이 맞아요.
전업작가는......미쳐야할 수 있는 거죠.ㅠㅋㅋ

카알벨루치 2019-01-06 15:30   좋아요 2 | URL
미쳐야 쓴다...아!!!

stella.K 2019-01-06 15:39   좋아요 2 | URL
ㅎㅎ 남의 얘기 엿이나 듣고 나빠요, 카알님!ㅋㅋㅋㅋ

카알벨루치 2019-01-06 15:42   좋아요 2 | URL
남의 이야길 엿들은게 아니고 들렸어요 ㅋㅋㅋㅋ쥔장없는 방에서 어지럽히고 도망가야긋다 ㅎㅎㅎ

stella.K 2019-01-06 16:03   좋아요 2 | URL
도망가야긋다.ㅎㅎㅎㅎ
어디 가욧? 이리 오세욧!ㅋㅋㅋㅋ

카알벨루치 2019-01-06 16:56   좋아요 1 | URL
무서워 안도ㅑ~ㅋ

설해목 2019-01-06 21:54   좋아요 0 | URL
그러니까요. 쓸 수밖에 없는 환경에 저를 몰아넣아야 할 것 같긴 하네요.
제 의지만으로는......--;;;;
가드너의 말에 용기를 얻기보다는 꺾이긴 했지만 그래도 뭔가 얻은 건 있는 것 같아요. ^^

설해목 2019-01-06 21:55   좋아요 1 | URL
카알님!!! 왜 이렇게 귀여우셔요. ㅋㅋㅋㅋ

카알벨루치 2019-01-06 22:48   좋아요 0 | URL
도망 멀리가서 먼말인지 안 들리요~헉헉!!! 숨차~ㅋㅋㅋㅋ

aaa 2019-03-17 2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그니까 문창과에 가거나 글쓰기 교육을 받지 않으면 수많은 팬을 거느린 작가가 되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는 말인가요? ㅠㅠ

설해목 2019-03-18 09:22   좋아요 0 | URL
전혀 불가능이나 하겠어요. 그만큼 노력이 따른다면 결과는 아무도 모르는 거겠죠.
글쓰기 수업을 배워서 좀더 빨리 터득하느냐 혼자 독하하면서 조금 느리게 터득하느냐의 문제일 것 같기도 하구요. 뭐라 제가 답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닌 것 같네요.
하지만 존 가드너나 이승우처럼 소설을 쓰면서 학생을 가르치는 작가들은 창작수업의 효능에 대하여 긍정적인 건 확실한 것 같아요.
 

오랫동안 홀어머니와 살던 막내아들과 막내딸이 있었다. 늦은 나이에 소개로 만난 두 사람은 일 년 정도의 연애 후 결혼을 했다. 두 사람의 결혼으로 양쪽의 어머니들은 혼자 사시게 되었다. 두 자식은 자신들의 아이를 포기하는 대신 양쪽 어머니들을 보살피기로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여자의 어머니는 치매 판정을 받았고 얼마 후 남자의 어머니는 뇌졸중의 후유증으로 거동이 불편한 몸이 되었다. 치매에 걸린 친어머니와 거동이 불편한 시어머니. 두 어머니와 함께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낯선 여행의 길을 담담하게 걸어가고 있는, 나의 20년지기 친구를 생각하며 이 글을 쓴다.

 

아버지에게도 그렇지만 우리에게도 이 모든 것이 처음 겪어보는 낯선 일이다. 탄생 이후 삶의 모든 단계가 그렇지만, 죽음의 과정은 그야말로 처음 걸어보는 특별한 여행길이다.”_아버지는 그렇게 작아져 간다p.28

 

나는 하나씩 배워가고 있다. 한 육체가 긴 생을 살고서 이제 죽음의 과정으로 들어가는 일은 당사자인 아버지에게만이 아니라, 곁에서 도움을 주고 있는 나에게도 철저히 첫 경험이다.”_아버지는 그렇게 작아져 간다p.31

 

미국의 정신과 의사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는 죽음에 이르는 다섯 가지 단계가 있다고 말한다. 자신이 죽는다는 것을 의심 하고 부정하는 단계(부정), -> 더 이상 죽음을 부정할 수 없을 때, 자신의 처지에 분노하고 타인을 부러워하는 단계(분노) -> 조금이라도 죽음이 연기되거나 지연되기를 바라는 단계(타협) -> 모든 것에 의욕이나 의지, 기력을 잃고 우울해하는 단계(우울) -> 자신이 죽는 것을 받아들이는 단계(수용)가 그것이다.

 

그렇다면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는 사람들에게도 어떤 단계 내지는 과정이 있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그러던 중에 우연히 세 권의 책을 비슷한 시기에 읽게 되었다. 글을 쓴다는 공통점을 가진 중년의 세 남자는 아버지의 죽어가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한 개인의 삶의 마지막 페이지를 함께 써내려 갔고, 그 기록에는 공통점이라고 부를 만한 것들이 있다.

 

병은 아버지의 뇌를 갉아먹고, 어릴 때 내가 품고 있던 아버지에 대한 이미지까지 갉아먹었다. 어린 시절 내내 아버지의 아들이라는 사실이 자랑스러웠는데 지금은 갈수록 아버지가 덜떨어진 얼간이처럼 여겨졌다.” _ 유배중인 나의 왕p.26

 

몸과 마음이 병들어 누군가의 보살핌 없이는 더 이상 인간다운 삶을 이어갈 수 없는, 나의 유일한 왕이었던 아버지의 그런 모습에, 처음에는 걱정에서 시작되어 시간이 지날수록 병수발의 고단함에 때로는 화까지 치밀다가는 점점 더 죽음으로 향해가는 초라한 그 모습에 결국에는 인간적인 동정심과 슬픔이 밀려든다.

 

 문득 이 노인들에 대한 궁금증이 밀물처럼 밀려든다. 모두들 어떤 여로를 지나 종착역 같은 이곳에 멈춘 것일까?” _ 아버지는 그렇게 작아져 간다p.176-p.177

 

병든 아버지의 모습에 어느 정도 익숙해지면 문득 내 아버지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라는 한 인간에 대한 궁금증이 생긴다. 내 아버지이기 이전에 한 여자의 남편이기 이전에 아이었던, 소년이었던, 청년이었던 아버지. 비록 아버지 스스로는 자신의 과거를 잊어가지만 이제라도 나는 삶의 마지막 페이지를 향해 가는 아버지를 대신해 한 남자의 생애 전체를 다시 받아쓰는 필경사가 된다.

 

정말이지 몸도 마음도 스스로 풍화하고 있는 것 같다. 태어나서 자신에게 주어진 긴 세월을 살았으니 이제 다 사라져야 하는 것이다. 아버지의 양복을 정리한 것은, 그 마지막 여로를 따라가는 부분적인 작별 의식이라고 생각하기로 한다.” _ 아버지는 그렇게 작아져 간다p.218

 

이제는 아버지에게 더는 쓸모없어진 물건들을 정리한다. 나의 추억과 포개지는 것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것도 있다. 낯선 아버지의 물건에서는 왠지 모를 슬픔을 느낀다. 결국 아버지를 추억하기 위해 남겨질 물건들은 많아야 한 상자 정도.. 아버지의 가장 나종에 지닐 물건을 대신 고른 나는 시간으로 그것들을 나의 것으로 품어갈 것이다.

 

오히려 아버지의 병과 기억상실 덕분에 오랜만에 다시 마음을 터놓고 친구처럼 지낼 수 있었다. 이점에서 기억상실이 내게는 유리했다. 우리 사이에 있었던 모든 갈등이 뒤로 멀찌감치 물러났다. 이런 기회는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_ 유배중인 나의 왕p.83

 

어른인 아버지의 머리를 아버지의 아들인 내가 쓰다듬고 있는 게 아닌가. 그런데 아버지가 내 아이처럼 순한 모습으로 가만히 받아들이는 것을 보고 나는 놀랐다.” _ 아버지는 그렇게 작아져 간다p.240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에서 빚었던 아버지와의 마찰. 그 어그러진 관계의 회복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흘러가던 세월. 그리고 이제 이렇게 늙고 병드신 아버지는 때로는 친구인양 때로는 자식인양 나와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 간다. 아프신 아버지는 이렇게라도 자식과의 뒤늦은 화해를 하고, 혹여 자식에게 남을지 모를 미련과 회환을 줄여주신다.

 

이 소외감은 엄연히 현실적인 것이며, 따라서 그 세계 밖의 타인들을 바라보는 마음에도 변화를 가져온다. 아주 단순화시켜서 말하자면, 이런저런 자그마한 호의에도 큰 고마움을 느끼게 되는 반면, 평소에 늘 겪어온 인간들 사이의 별것 아닌 일상적인 무관심에도 좌절하게 되는 바탕이 된다.”_ 아버지는 그렇게 작아져 간다p.76

 

아버지의 병으로 내 생활과 인간관계가 엉망이 되어가는 듯한 느낌을 받을 때면 아픈 아버지를 원망하는 마음이 절로 든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새로운 변화도 있으니 같은 고통을 나눌 수 있는 형제자매에 대한 새삼스런 고마움이 생기고 타인의 작은 친절에도 감사하는 마음이 절로 든다. 욕심은 줄어들고 작은 일에도 감사하게 된다. 그렇게 나는 겸손한 사람이 되어간다.

 

인생의 마지막 단계인 노년은 끊임없이 변해서 늘 다시 새롭게 배워야 하는 일종의 문화양식이다. 아버지가 자식들에게 더는 줄 게 없어도, 적어도 늙고 아픈 것이 어떤 것인지는 알려줄 수 있다. 좋은 쪽으로 가정하면, 이것도 아버지로서의 일이고 자식으로서의 일일 수 있다.” _ 유배중인 나의 왕p.153-p.154

 

나는 어느 날 갑자기 아프기 시작해 급격히 허물어진 아버지로 인해 죽어가는 인간의 시간을 적나라하게 겪어보았다. 나는 죽어가는 한 인간과 밀착해 보살피고 관찰하고 성찰하면서 삶과 노화와 질병과 죽음, 그리고 그에 대처하는 우리의 현실에 대해 많은 객관적 배움과 마음의 가르침을 얻었다.” _ 아버지는 그렇게 작아져 간다p.250

 

스페인에는 죽을 때까지는 그 모든 게 삶이다.’ 라는 속담이 있다고 한다. 늙어가는 것도 병드는 것도 그리하여 죽음에 이르는 그 고통의 과정 역시 삶인 것이다. 결코 아름다울 수 없는 그 과정을 통해 부모가 자식에게 남겨준 선물은, 삶과 죽음의 거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멀지 않다고, 그러니 늙고 병들고 죽어가는 것을 두려워만 하지 말고 끝까지 삶으로 받아들이라고. 그렇게 살아가면 되는 거라고. 이렇게 당신들의 전 생을 걸고 삶의 비밀을 자식들에게 선물처럼 남겨주신다.

 

마당가엔 라일락이 피고 뒷산에선 뻐꾸기가 울었다

볕이 좋아 아내는 이불 빨래를 널었다

병든 아버지를 위해 나는 수돗가에서 닭을 잡았다

더 마르기 전에 모습을 남겨두어야 한다며

아버지는 대문간 옆에 양복 상의만 갖춰 입고 마당으로 걸어나왔다

맨발에 슬리퍼를 신은 아버지는 웃고

백숙은 솥에서 저 혼자 끓고

- 하지만 백숙은 살이 녹을 때까지 더 오래 끓이는 것

나는 아버지의 얼굴 속에 5월의 라일락과 뻐꾸기 소리,

우아하게 지붕 위로 날아오르는 구름을 담고자 찰칵찰칵 셔터를 눌렀다

그리고 모여 백숙을 먹었다.

 

고영민 시, <백숙> 전문

 

몇 년 사이에 뇌출혈과 심장 이상으로 응급실에서 수술실로 중환자실에서 입원실로 오가던 아버지를 떠올린다. 고향을 떠난 자식들 대신에 발병한 아버지 곁에서 혼자 무서웠을 어머니를 떠올린다. 두 분은 점점 더 늙어 가실 테고 더 많은 병들을 몸에 담으실 테고 그럴 때마다 나는 또 휘청휘청 할 테고. 병든 부모를 위해 닭 한 마리 잡을 그 힘은, 당신들의 영정 사진을 찍을 그 정신력은 남겨두어야 할 텐데.. 그래야 할 텐데..

 

아버지가 나를 오래 쳐다본 적이 있지

돌아가시기 몇 달 전

 

나는 이상하게도 눈을 마주칠 수 없어

왜 당신의 막내아들을 처음 보는 사람처럼

쳐다보실까 생각한 적이 있지

 

눈이 그의 영혼이므로

사람은 죽을 때 두 눈을 감지

사랑을 할 때도 두 눈을 감지

독수리는 죽은 자의 두 눈을

가장 먼저 빼먹지

 

오래 쳐다본다는 것은 처음으로 보는 것

나는 발밑에 내려와 있는

햇볕을 내려다보고 있었고

그 사이 당신은 나의 무엇을 처음으로 보았나

 

눈이 그의 영혼이므로

한 사람의 눈빛은 쉽게 변하지 않지

그리고 오래 쳐다본 것들은 모두 고스란히

두 눈에 담아서 간다네

눈이 그의 영혼이므로

 

고영민 시, <눈의 사원> 전문

 

살아온 시간 따져보니 고향집에서 반, 타지에서 반을 보냈다. 당신들의 마지막 눈을 보지 못할까 당신들의 손을 맞잡지 못할까 당신들의 마지막을 함께 하지 못할까 하는 두려움이 수화기 너머 들리는 기침소리에도 불쑥 불쑥 튀어나온다. 당신들이 나를 오래 쳐다봐주기를 아주 낯설게 바라봐주기를 그래서 고스란히 나를 저세상으로 가져가주기를 자식으로서 당연한 욕심을 부려본다.

 

*************************

 

3년 전에 쓴 글이다. 산 같으시던 아버지가 뇌출혈로 심장에 문제가 있어 응급차를 두 번 타는 것을 겪으면서 그 당시 이런 책들을 읽었고 저런 감정들을 느꼈다. 그리고 3년이 더 흐르는 동안 아버지는 다시 한번 응급차를 타셨다. 지금은 후유증으로 엄마가 곁에 항상 계셔야 한다. 일시적일지 영구적일지는 아직 판단할 수 없다. 또 그사이 알게 된 친구가 아버지의 갑작스런 이상으로 휴직계를 내고 병간호를 하는 중이다. 오랜 시간 동안 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시던 아버지가 퇴임과 동시에 정신줄을 놓다시피 한 것이 친구에게는 큰 충격인 것 같다. 새벽까지 서재에서 공부하시던 아버지를 보며 자신을 채찍질하며 열심히 살아온 친구가 지금의 아버지를 보며 느끼는 괴로움을 나로서는 그저 짐작만 할 뿐이다. 연로하고 아프신 부모와 떨어져 사는 자식의 마음과 그런 부모 곁에서 매일 지켜보는 자식의 마음. 같으면서도 다를 그 마음을  헤아려 본다. 딸로서는 닿을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아들과 아버지의 관계를 생각해 보게 만드는 책들을 묶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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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8-11-18 20: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얼마 전에 저희 어머니가 ‘내가 네 평생
살 줄 아냐‘고 말씀하시는데...

정말 짠했습니다.

어려서는 정말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문제라 더더욱 그렇지 않나 싶네요.
아마도 이제 나이가 들었다는 이야기겠
지만요...

설해목 2018-11-19 00:28   좋아요 1 | URL
네... 내가 나이드는 만큼 부모님도 나이드시고 계시다는 걸 실감하는 그런 나이가 온 것 같아요.
가족을 이루지 않은 저로서는 부모님이 유일한 가족이란 생각이 들어 더 크게 휘청거리게 되는 것 같아요.
부모님을 위해서라도 좀 더 담담해질 필요가 있는데....그게 쉽지가 않네요. ^^;;
 

지난 2주 동안 좀 많이 불안하고 우울했다.

건강검진에서 재검하라는 결과가 나왔고 이후 초음파 검사를 거쳐 조직검사까지...

지난 2주간은 검사와 기다림의 시간이었다.

그리고 지난 토요일 아침 조직검사 결과를 듣고 왔다. 다행이 악성이 아닌 양성이라 간단한 시술을 해도 된다고 했다.

종양 크기로봐서는 그 시술조차 필요없고 추적관찰만 하면 되는 것 같은데.. 아무튼 그 병원의 과잉진료가 싫어서

조직검사결과지와 영상 CD를 받아 나오는 것으로 2주간의 불안을 끝냈다.

나이가 들수록 앓는 몸에 대한 불안이 점점 커질 테고 그때마다 지난 2주처럼 초조하고 불안해서 아무것도 못한다면

그게 과연 제대로 사는 것일까, 이제서야 그런 생각이 드는 거다.

친구들에게 징징거리고 결국 엄마에게까지 걱정을 끼치며 내 불안을 전파하는 한심한 꼴이라니...

혼자라는 것이, 손잡고 괜찮을 거라고 말해줄 사람이 곁에 없다는 것이  현실적인 무서움으로 다가오는 이런 경험.

솔직히 다시는 하고싶지 않다.

그렇지만 하고싶지 않아도 자연스레 찾아오는 것이 노화이고 죽음이니.. 무슨 수로 아픈 몸의 불안을 막을 수 있을까.

결국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마음가짐을 가져야한다는 걸, 다른 시선으로 나와 세상을 바라봐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몸도 마음도 좀 더 믿어주자 싶다. 내가 나를 안 믿으면 누가 날 믿어줄까 싶다.

계속 혼자일 테고 몸도 점점 쇠약해져갈 테고 무슨 일이 생길 때마다 이번처럼 불안에 사로잡혀

나를 놓아버릴 지경까지 간다면 그건 살아도 사는 게 아닐 거다.

그러니 하루하루를 잘 살자. 좀 더 웃고 감사하고 즐기자. 그런 하루들을 차곡차곡 쌓아서 미래에 닥칠 불안을 최소화하자.

이게 지옥같은 2주간을 보내고 내린 결론이다.

이렇게 불안하게 2주를 보내면서도 그래도 책이 눈에 들어오는 걸 보면 나는 천생 책과 끝까지 할 운명인가 보다.

 

 

김진영선생님의 첫 산문집이자 유고집이라고 한다.

직접 강의를 들은 적은 없고 인터넷 강의로 김진영 선생님의 강의를 몇 개 들었었다.

유명한 철학자들의 책을 가지고 하던 강의였고

무슨 말인지도 모르면서 참 열심히 필기를 하고 책을 읽었었다.

문학 강의 역시 재밌게 들었었는데 소설을 읽는 키워드를 가지고 고전들을 해석해주셨는데

책을 이렇게 깊이 읽을 수도 있구나, 내가 책을 참 허술하게 읽고 있었구나,

고전을 읽어야겠구나.. 뭐 이런 생각들을 했었던 것 같다.

올해 <애도일기>를 자기 전 종종 펼쳐보았었는데 

앞으로는 <아침의 피아노>를  더 많이 펼쳐볼지도 모르겠다.

과연 죽음을 코앞에 두고 선생님은 어떤 생각을 하셨을지....

살고 죽는 것에 대해 평생 강의하시던 분이 맞는 삶과 죽음의 경계의 모습은 어떨지.

불안한 2주 동안 제일 눈에 먼저 들어온 새 책이다.

 

 

 

올해 초쯤에 구입해 놓고 앞부분을 읽다가 접어둔 책이다.

내용이 내가 기대했던 것과 좀 다른 것 같아 읽기를 그만두었다.

아픈 몸과 살아가면서 느끼는 어떤 깨달음의 책이지 않을까 싶었는데

사실 끝까지 읽어보지 않았으니 뒷부분은 그런 내용일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저자는 암에 걸렸었고 그 병과 싸워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읽어볼 가치가 있겠다싶어 다시 읽어보려고 한다.

'어느 날 몸이 고장났다.'가 이 책의 첫 문장인데 고장난 몸을

완치하기보다는 잘 고쳐서 앞으로 아껴가며 보살펴가며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아무튼 점점 아파질 테고 그럴 때마다 삶이 크게 흔들릴 테지만

먼저 아파본 사람들의 경험과 이야기에 기대어 아픈 동안의  그리고 아프고 난 다음의 삶을

어떻게 살아갈지 진지하게 다시 생각해봐도 좋을 것 같다. 

 

 

 

이런 제목의 책은 사실 쳐다볼 생각도 하지 않았었다. 지난달까지만 해도..

그런데 막상 내가 크게 아플 수도 있구나, 그러다가 결국은 죽는 거구나 하는

두려움을 겪을 일을 경험하고 나니 저절로 이런 책에 눈이 간다.

특히나 혼자 살면서 아프고 병들면 어떻게 되는 거지 하는 생각마저 들다보니

정말 잘 죽는 것도 복 중에 복이겠구나 싶다.

지금까지는 어떻게 잘 살 것인가만 고민하고 그러기 위해서만 노력했지 정작

어떻게 하면 잘 죽을 것인가에 대해서는 생각조차 하지 않으려 했던 것 같다.

삶이란 태어난 순간부터 죽음으로 향해 가는 긴 여정이라는 걸 머리로는 이해하면서도

매순간 죽음은 까먹은 채 영원히 살 것처럼 그렇게 살아왔지 싶다.

의학이 발달해 수명도 늘어나고 아픈 몸으로 더 오래 살아가야 하는데

이쯤에서라도 잘 사는 게 아니라 잘 죽는 것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지 싶다.

불안에 떨지 않는 노화와 죽음을 준비해야지 싶다.

 

 

 

책의 제목은 이렇지만 사실 나는 이 글을 엄마에 대하여 더 나아가 늙은 여자에 대하여

라고 바꿔 읽을 정도로 내게는 딸의 삶보다는 엄마의 삶 그리고 요양보호사 엄마가 돌보는

젠이라는 치매걸린 노인의 삶에 집중하고 공감하며 읽었다.

젊은 날 아무리 멋지고 열정적이며 열심히 남을 위해 살았어도 노년이 비참한 젠의 삶.

찾아올 가족 한명없이 요양병원에서 물건보다도 못한 취급을 받는 병에 걸린 노년의 모습이

남의 일 같지 않아보인 건 비단 소설 속 엄마 뿐만은 아니었다.

엄마 역시 온 몸이 아프고 가진 재산이라곤 오래된 단독주택뿐 노년이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리고 어쩌면 남편을 만나지 못한 채 평생을 살아갈 운명인 딸의 노년 역시 어둡기만 하다.

혼자인 여자들의 노년, 그 현실적인 모습에 뭐랄까 불안을 너머 아프고 무섭기까지 했다.  

가족도 없이, 재산도 없이 여자(물론 남자도) 혼자서 행복하게 아니 그건 바라지도 않는다.

그저 인간답게 나이들어 갈 수 있도록 최소한의 안전 장치라도 마련되기를 바랄 뿐이다.

피로 맺어지진 않았지만 여성 3대가 겪는 삶이 두고두고 오래 기억에 남을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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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22 11: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10-22 14: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레삭매냐 2018-10-22 11: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르신들이 들으면 혼날 일이겠지만,
살다 보니 역시나 건강이 최고라는 생각이
드네요.

저도 다음 주에 건강검진 받으러 가야 하
는데 걱정이네요. 2년마다 돌아오는 두려움
의 시간들...

<아픈 몸을 살다>는 독서 모임 동상이 추천
했던 책인데 여적 읽을 생각도 못하고 있네요.

설해목 2018-10-22 14:07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2년마다 돌아오는 두려움.... 몰랐으면 그냥 지나갔을 수도 있었을 텐데 하는 생각도 들더라구요.
병원에 자주 갈수록 불안할 일도 많아지는 것 같기도 하구요.
<아픈 몸을 살다>는 저도 다시 읽어보려구요. 결국 우리 모두 다 저렇게 살아가게 될 거니까 말이죠. ^^;;

2018-10-22 11: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10-22 14: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10-22 12: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검사 결과가 좋게 나와서 다행이에요. 올 여름에 부모님이 종합 검진을 받았어요. 검진하고 한 달 뒤에 결과가 나왔는데 그 기간동안에 울 가족은 예전처럼 음식을 마음대로 못 먹었어요. 그 분위기 때문에 저는 자연스럽게 집에서만 금주를 해야 했어요.. ^^;;

설해목 2018-10-22 14:13   좋아요 0 | URL
네.. 정말 한시름 놓았답니다. 검사보다는 정말이지 그 결과를 기다리는 시간이 더 힘든 것 같아요.
저는 장염에 수면부족으로 살이 좀 빠지는 효과를 보긴 했네요. ㅎㅎ;;
그나저나 부모님 검진 결과는 별 이상 없으셨기를요.
본인이 아픈 것도 힘들지만 부모님 아프신 걸 지켜보는 건 더 힘든 것 같아요.

vilimoon 2018-10-22 14: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걱정 많으셨겠군요

설해목 2018-10-22 14:14   좋아요 0 | URL
네.. 원래도 쫄보인데 2주간 더 쫄아서는...^^;;
걱정 하나 덜어서 이 가을 그래도 조금은 편안한 마음으로 보낼 수 있을 것 같아요. ^^

2018-10-22 14: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10-22 15: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10-22 17: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10-23 09: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뒷북소녀 2018-10-23 13: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너무 공감되는 글입니다. 흑흑흑. 우리 오래 오래 건강하게 지내요. 볕이 좋으니까 밖으로 나가서 산책도 하시구요...

설해목 2018-10-23 13:05   좋아요 0 | URL
그러게 아프지 말자 우리~
그나저나 나는 장염인지 충수염인지 몰라 오후에 또 병원예약....ㅋㅋㅋ
올 가을은 몸이 느므 힘든 것 같아.. T.T
뒷북소녀도 미리미리 건강 잘 챙겨! ^^

공쟝쟝 2018-10-23 22: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너무 다행이예요. 아프면 아프다는 사실보다 불안함에 잡아먹히는 것 같아요. 늙어가고 아파갈텐데- 아직은 아프고 싶지 않아요. 받아들여야 겠지만요. 몸이 보내는 신호 마음이 외치는 소리에 잘 귀기울이시구 잘 먹고 푹자고 잘 쉬셔요 ^.^*

설해목 2018-10-24 15:58   좋아요 1 | URL
저는 지금 병원이랍니다. ㅎㅎ
충수염이라 어제 병원 오자마자 수술했네요.
진짜 몸이 보내는 신호에 귀를 잘 기울여겠다는 생각 많이 했네요.
공장쟝님도 몸 잘 돌보셔요. ^^
 

우리는 점액질의 두꺼운 벽 안에서 아주 평화롭게 살고 있었다. 우리의 생활은 외부로부터 완전히 차단된 조금 이상한 감금 상태이긴 하지만 우리는 결코 탈주를 꾀한다든지 외부 소식을 알고 싶어 안달하지 않았다. 우리에게 외부는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 정도로 벽 안에서 충실하고 밝게 살아가고 있었다.

그 두꺼운 벽에 손을 대 본 적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벽은 견고하게 우리를 감금하고 있었다. 그것만은 확실했다. 우리는 일종의 강제수용소에 갇힌 셈이었지만 그 점액질의 투명한 벽에 깊은 금을 내고 도망치려는 생각 따위는 결코 하지 않았다. _ <남의 다리>, 오에 겐자부로, 『오에 겐자부로』(현대문학)

 

 

어빙 고프먼의 『수용소』를 조금씩 읽고 있는데 읽다보니 오에 겐자부로의 <남의 다리>라는 단편이 떠올랐다. 바닷가 근처 고원에 지어진 척추결핵 환자 요양소의 미성년자 병동에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 이 단편은 『수용소』의 문학적인 예라고 해도 될 정도로 갇혀서 지내는 자들의 삶이 어떤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어빙 고프먼이 말하는 총체적 기관은 네 가지로 나뉘고 있는데 단편에서 나오는 결핵 요양원의 경우는 '자신들을 건사하는 데 무능하지만 공동체에 위협이 되는 - 의도하지 않았을지라도- 사람들을 돌보는 시설'에 속한다. 이밖에도 어빙 고프먼은 극빈자들은 위한 기관, 정신병원 나병 요양원, 교도소, 감호소, 포로수용소, 강제수용소는 물론 군대 막사, 선박, 기숙학교, 노동수용소, 식민지수용소와 대수도원, 수도원, 수녀원 등의 종교적 은둔처 등을 총체적 기관으로 상정하고 있다.

 

 

게다가 우리는 쾌락적인 혜택까지 입고 있었다. 그것은 우리를 담당한 간호사들이 시트나 속옷이 더러워지는 걸 우려하여 혹은 그녀들의 사소한 호기심에서 그리고 무엇보다도 지금까지의 습관에 따라 우리에게 간단한 쾌락을 안겨주었기 때문이다. 우리 중에는 가끔 낮 시간에도 간호사에게 바퀴 달린 침대식 의자를 밀게 해서 개인 병실로 돌아갔다가는 20분 정도 지난 다음 얼굴에 홍조를 띤 간호사를 거느리고 우쭐거리는 표정이 되어 돌아오는 녀석도 있었다._ 오에 겐자부로 <남의 다리> 중에서

 

중앙병원은 단순한 종류의 많은 임시변통을 암묵적으로 승인한다. 예컨대 많은 재소자는 화장실 욕조에서 직접 세탁한 개인 빨래를 라디에이터에 널어 말릴 수 있다. 이런 식으로 기관의 공식 업무인 세탁이 개인의 임의에 맡겨졌다. … 더 나아가 환자들은 이동이 금지되거나 혹은 어려운 경우가 있는데, 이들은 화장실에 가지 않아도 일을 처리할 수 있는 전략을 고안했다. _ 어빙 고프먼, 『수용소』중에서

 

 

 

한창때의 소년들의 자아나 모욕감은 상관하지 않고 자신들의 일을 줄이기 위해 혹은 자신들의 호기심을 위해 간호사들이 하는 이런 임시변통적인 수단이라는 것이 비단 소설 속에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닐 거다. 재소자들의 치료를 위해서라는 명목 아래에 재소자들에게 병원 직원들이 해야할 일을 시키는 것이 과연 올바른 것일까. 그것도 그 일에 대한 금전적인 보수도 없이 말이다. 이런 문제들을 포함하여 아무튼 『수용소』는 정말이지 갇혀 지내는 자들에 대하여(물론 그들을 가두고 있는 총체적 기관을 포함하여) 거의 모든 것들을 꼼꼼하게 짚어내고 있다. 다 읽어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한번쯤 읽어볼 만한 책이다.

 

 

 

어빙 고프먼의 『수용소』에는 '정신병 환자와 그 외 재소자들의 사회적 상황에 대한 에세이'라는 부제가 달려 있다. 그래서인지 책의 전반적인 내용에는 정신병원에 수감된 환자들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떠오른 책이 대릴 커닝엄의 『정신병동 이야기』이다. 저가 대릴 커닝엄은 자신이 정신병원에서 간호조무사로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그 기간에 쓴 일기를 만화로 그렸고 그 결과물이 바로 이 책이다. 저자는 아직까지도 정신적 질환에 대해 갖고 있는 사회적 편견을 깨고 싶어서 이 책을 내게 되었다고 말한다. 치매, 망상, 자해, 반사회적 인격장애, 정신분열, 우울증, 양극성 장애, 자살 충동에 대한 사례들을 구체적으로 이야기해주고 있는데 그 병명들을 보면 이제는 그리 낯설지가 않다. 그러면서도 이런 병들을 앓고 있는 환자들을 꺼리게 되는 편견들은 왜 쉽게 깨지지 않는 걸까. 이 병들 역시 신체의 한 부분인 뇌가 고장나서 그런 것뿐인데...

 

저 책을 읽을 무렵 같이 읽었던 책이 올리버 색스의 『환각』이다. 환각을 앓고 있는 다양한 사례를 보면서 환각이 그리 무섭기만한 질병은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그건 아마도 저자가 환각 환자들을 대하는 태도가 다른 기계적인 의사들과는 달리 인간적이었기 때문이리라. 요즘 두통이 잦고 불면증도 있고, 가위도 종종 눌리는 편이라 그에 좋다는 오일요법도 해보고 명상도 해보고 하는데... 뇌를 진짜로 쉴 수 있게 하는 방법은 없을까. 이래저래 환각, 환청은 요즘 나의 최대 고민이다.

 

정신병동에서 간호조무사로 일했던 사람의 일기가 『정신병동 이야기』라면 자신이 정신분열증을 앓으면서 쓴 일기가 바로 『니진스키 영혼의 절규』이다. 이 책에 대해서 로쟈님은 어느 강의(내가 기억하기로는 사사키 아타루의 『야전과 영원』출간 기념 강의)에서 읽을 수 없는 책의 예로 들었던 것 같다. 그날 강의의 대상 책이었던 『야전과 영원』도 끝까지 읽어내기 힘들다는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였던 것 같은데... 암튼 그래서 나는 니진스키의 일기를 읽기로 결심했고 결국 다 읽긴 읽었다. 읽긴 읽었으되 니진스키란 사람에 대해서는 하나도 기억에 남아 있지 않다. 그저 무용계의 천재이자 섬세한 영혼의 소유자도 시대를 잘못 만나면 인생의 반을 정신병원에서 보내게 되는거구나. 니진스키가 현대에 태어났더라면 그래도 역시나 불행한 최후를 맞았을까... 하는 정도...

 

 

 

 

 

이런 책들로 이어지다 보니 읽었던 소설들 중에서 정신적인 질환을 앓고 있는 주인공이 나오는 두 소설이 떠올랐다. 하나는 이탈로 스베보의 『제노의 의식』과 루이지 피란델로의 『아무도 아닌, 동시에 십만 명인 어떤 사람』이다. 그러고보니 두 작가 모두 이탈리아 작가이다. 두 작가 연대를 살펴보니 비슷한 시기에 태어났다. 그렇다는 건 그들이 겪은 이탈리아의 상황이 그들의 글에 공통적인 영향을 끼쳤다는 걸까. 또다른 공통점은 이 두 소설 모두 개정판이 나왔다는 거. 사실 나는 두 소설 모두 초판본으로 읽었다. 출판사도 다르고 번역자도 달라서 개정판으로 다시 읽어보고자 책을 사두긴 했는데 같은 책을 두 번 읽을 정도로 재미있게 읽었던 소설들이 아니라... 그런데 나는 왜 개정판들을 샀을까.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 강박증에 걸린 제노와 거울을 통해 자신의 분열된 모습을 반추하는 모스카르다의 모습은 사실 요즘 시대에도 아니 요즘 시대이기에 더 와닿을 만한 주인공들이다. 어떤 병이든 특히 그것이 정신적인 것과 관련되어 있다는 것은 그것이 결국 우리 삶의 일부이자 우리가 살아온 결과물이지 않을까. 내 정신은 지금 어디쯤을 향해 가고 있는 걸까. 문득 그런 생각을 해본다.

 

 

 

기타 정신 질환과 관련하여 인상적으로 봤던 영화들

 

1. 처음 만나는 자유

2. 셔터 아일랜드

3. 뷰티풀 마인드

4. 샤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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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8-09-29 06: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종횡무진, 그야말로 종횡무진이군요! 대단하다 ㅎㅎㅎ

설해목 2018-09-29 12:30   좋아요 0 | URL
에이.. syo님에 비하면 아직도 한참 부족한 독서랍니다! 더 분발할 거에요! ㅎㅎㅎ

syo 2018-09-29 12:35   좋아요 1 | URL
안 되는데.... 여기서 더 분발하시면 제가 부끄러워지는데....ㅎㅎㅎㅎ

설해목 2018-09-29 12:39   좋아요 1 | URL
우리 독서도 좋지만 오늘같이 좋은 날에는 잠깐 산책도 하고 이 짧은 가을 즐기자구요. ^^
오늘 날이 참 좋으네요. 즐거운 주말 보내셔요. syo님... ^.^/

레삭매냐 2018-09-29 09: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포스팅이 정말 공을 많이 들이신
티가 팍팍~ 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그리고 보니 <정신병동 이야기>는 설해목
님의 어느 포스팅을 보고서 저도 사서 읽
은 것 같아요. 그런데 리뷰로 남기지 않아
서 격이 다 가물가물하네요. 다시 읽어봐
야 하는데 책이 어디에 가 있는지 찾을 수
가 없네요.

<제노의 의식>도 나왔을 때 냉큼 사두긴
했는데 역시나 행방불방 ~

전 10월에는 레이첼 카슨을 읽어 볼까
합니다.

설해목 2018-09-29 12:32   좋아요 0 | URL
어디 행방불명인 책들이 한두 권이겠습니까? ㅋㅋㅋ
안그래도 레이첼 카슨 전집이 나와서 궁금하던 차였어요.
저는 레삭매냐님의 리뷰를 보고 선별해서 읽어볼까봐요. ^^
도저히 카슨 전집을 다 읽을 자신은 없어요. ㅋㅋ


2018-09-29 09: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9-29 12: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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