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들은 자꾸 같은 질문을 받는다
리베카 솔닛 지음, 김명남 옮김 / 창비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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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한 권을 읽으면서 나를 계속해서 되돌아보고 되는 경우가 흔치는 않은데 리베카 솔닛의 글은 나를 자꾸만 되돌아보게 하고 멈추게 하고 생각하게 한다. 이 책은 물론 전작인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그리고 멀고도 가까운과 최근에 읽기 시작한 걷기의 인문학까지.. 그녀의 글은 타성에 젖어 생각하기를 멈춘 나를 자꾸만 흔들어 깨운다. 공부를 하고 싶게 만든다. 당연한 것은 없으니 늘 낯설게 새롭게 모든 것을 바라보기를 요구한다. 무엇보다 그녀의 글은 여자로서 소수자로서 부당한 것을 부당하다고, 잘못된 것을 시정하라고 대외적으로 이야기하라고 격려한다. 자포자기의 침묵으로 시들어갈 것이 아니라 용기 있게 자신의 목소리를 내라고 응원한다.

 

이 책을 약 2주간에 걸쳐 공부하듯이 읽었다. 저자가 예로 든 외국의 여성혐오 사건들을 읽으며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비슷한 류의 사건들을 메모하기도 하고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주제에 대해서는 별표 표시를 해두었으며 저자가 언급한 도서와 작가들도 따로 메모해 가며 그렇게 찬찬히 곱씹듯이 읽어갔다.

 

# 왜 그런 걸 묻죠?

 

내 인생의 목표 중 하나는 진실로 랍비처럼 문답할 줄 아는 자가 되는 것, 닫힌 질문에 열린 질문으로 답할 줄 아는 것, 내 내면에 대한 권한을 스스로 가짐으로써 다가오는 침입자에 맞서서 훌륭한 문지기가 되는 것, 최소한 왜 그런 걸 묻죠?”라고 재깍 되물을 줄 아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_ p.19

 

사무실에는 나이 지긋한 의뢰인들이 많이 찾아오신다. 자주 오시다보니 어느 정도 사적인 말들을 주고받을 정도의 사이는 되었다 싶을 때부터 나는 그들에게서 언제 결혼 하느냐.” “올해는 꼭 좋은 일이 있었으면 좋겠다.” “언제 국수 먹여 줄 거냐.” “아이는 빨리 낳아야 한다. 늦을수록 여자만 고생이다.” “마흔 넘었으면 이제는 포기할 건 포기하고 사람을 만나야 한다.” 등등의 개소리를 몇 년째 듣고 있는데도 사실 을의 입장인 나는 그들에게 제대로 된 대꾸조차 못하고 있었다. 최근에야 국수는 그냥 제가 사드릴게요.” 라거나 올해는 좀 더 좋은 직장으로 옮기고 싶긴 하네요.” 라는 대답을 하고 있긴 하지만... 이런 대답은 하고 나서도 기분이 찝찝한 거다.

 

그러다 저자의 저 글을 읽고 무릎을 쳤다. “왜 그런 걸 묻죠?”라고 되물으면 되는 것을. 웃으면서가 아니라 정색을 하면서. 당신들이 내 인생에 참견할 생각은 하지도 말라는 듯 단호하게! 하지만 귀 막고 자신의 말만 내뱉을 줄 아는 성인 남자 어른들이 과연 나의 저 반격에 말문이 닫히긴 할까. 오히려 그 이유를 장황하게 늘어놓지는 않을까 싶기마저 하다. 모든 삶의 기준을 자신의 기준으로 못 박아 버린 사람들이 자신의 기준에 어긋난 타인의 삶은 인정조차 하지 않으려는 이런 사회에서 사십대 비혼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건, 여전히 답할 가치조차 없는 질문들을 계속 받아야 하고 나아가 나에게 하자가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의심의 눈초리와 한번 들이대 봐도 되지 않을까 하는 더러운 수작질마저 감내해야 하는 게 현실이다. 그래도 반격해야 한다. 아니 그러니까 반격해야 한다. 짧고도 단호하게 그러면서 유머까지 가미되면 더 좋을 그런 말들로 자신의 가치관을 마구잡이로 들이대는 무식한 인간들에게 우아하게 반격해야 한다.

 

# 침묵의 역사는 여성의 역사에서 핵심적인 문제이다.

 

이 책 모든 챕터의 글들이 좋았지만 특히나 좋았던 글을 꼽으라면 <침묵의 짧은 역사>를 제일 먼저 꼽고 싶다. 침묵이 여자들은 어떤 처지로 내몰았으며 목소리를 낸다는 것이, 새로운 언어를 갖는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깊이 있게 파고 들어간 저자의 글은 모든 여성들이 침묵을 깨고 목소리를 갖고 밖으로 나와야 한다는 당위성에 이르게 한다. 다양한 방법들로 침묵시키는 것들에 대해 제대로 인식하고 그것들에 대해 대항해야 한다고 일깨워준다.

 

언어는 우리를 잇지만 침묵은 우리를 나누어, 말이 호소하거나 끌어낼 수 있는 도움, 연대, 그도 아니면 단순한 교감조차 잃은 처지로 내몬다. _p.36

 

자신이 직접 그 영향을 받지 않는 사람들은 인종차별, 경찰의 무자비함, 가정폭력의 충격을 보지도 느끼지도 못할 수 있으나, 이야기는 그런 사람들도 그런 곤란을 절실히 느끼도록 만듦으로써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도록 만든다. _p.39

 

누구의 목소리가 들리고 누구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느냐는 기성 체제를 규정한다. 자기자신의 크나큰 침묵을 대가로 치르고서 기성 체제를 받아들인 사람들은 사회의 중심부로 진출하는 데 비해, 들리지 않는 것을 구현하는 사람들이나 남들이 침묵을 밟고 상승하는 데 방해가 되는 것을 구현하는 사람들은 주변부로 쫓겨난다. 우리는 누구의 목소리에 가치를 부여할지를 재정의함으로써 사회와 그 가치들을 재정의한다. _p.45~.p.46

 

우리 주제가 침묵이라면, 어떤 사람들이 남들을 침묵시키는 방식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범위를 더 넓혀서 수모, 굴욕, 배제, 멸시, 비하, 협박, 그리고 사회, 경제, 문화, 법적 수단을 동원한 권력의 불평등 분배까지 아울러야 한다. _p.60

 

사회는 권력자는 힘을 가진 사람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자신들에게 불리하거나 불편하게 만드는 이야기들을 침묵시켜 왔다. 그리고 대중매체는 말할 수 있는 위치의 존재들의 말만을 세뇌하듯 사람들에게 전달하여 왔다. 언론, 대중, 여론 등을 신뢰할 수 없다는 걸 이 글을 읽으면서 다시 한번 깨달았다. 침묵시키는 다양한 방법들에 대한 글을 보면서 나를 비롯한 여성들이 어떤 식으로 교묘하게 침묵당해 왔는지를 알게 되니 최근의 상황들이 고무적이기까지 하다. 소셜미디어를 통해 수많은 여성들이 다양한 목소리를 내고 그동안 침묵당해야 했던 이야기를 더 활발하게 말할 수 있었으면 한다. 침묵에 금이 가고 이야기가 시작되는 그 순간부터 여성 그리고 소수자들의 설 자리가 생긴 것이다. 그 자리를 빼앗기지 말고 점점 넓혀가는 것, 이것이 페미니즘의 나아갈 길이라 믿는다. 사실 이 챕터에서는 인용하고 싶은 문장이 넘쳐난다. 아니 거의 대부분의 글을 다 인용하고 싶을 정도로 내게 날벼락 같은 깨우침을 준 글이다. 내 생각의 끈이 느슨해졌다 싶을 때면 이 글만 계속해서 읽어도 좋겠다 싶다.

 

# 페미니즘에는 남자가 필요하다

 

여성에 대한 폭력과 차별이 여자들 일인 것은 그저 그 일이 여자들에게 저질러지기 때문이다. 그 일을 저지르는 건 대부분 남자들이, 어쩌면 페미니즘은 줄곧 남자들 일이었어야 했는지도 모른다. _p.148

 

남자들의 합류는 대대적인 변화를 뜻한다. 그것은 페미니즘에게 특별했던 2014, 새로운 목소리와 구성원이 결합함으로써 대화가 바뀌고 몇몇 중요한 법률도 바뀌었던 해의 한 장면이었다. 과거에도 이른바 여자들 문제의 중요성에 동의하고 때로 발언까지 한 남자들은 있었지만, 그 수가 지금처럼 많거나 그 영향력이 지금처럼 큰 적은 한번도 없었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그들이 필요하다. _p.149

 

페미니즘에는 남자가 필요하다. 우선, 여자를 혐오하고 비하하는 남자들도 만일 여자에게 끔찍한 짓을 저지르거나 여자에 대해 끔찍한 말을 내뱉는 행동이 남자들 사이에서 제 지위를 높이는 게 아니라 훼손하는 문화에서 산다면, 바뀔 것이다. 바뀌려고 한다면 말이지만. _p.151

 

페미니즘에 남자가 필요하다는 건 언뜻 생각해보면 모순되는 것 같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너무나 당연한 말이다. 페미니즘이 실질적으로 여성들에게 도움이 되기 위해서는 제도와 법과 같은 현실적인 부분에서 변화가 있어야 하는데 그런 것을 쥐락펴락 하고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 남성들이다. 그들은 애초에 여성들의 목소리에는 귀 기울이기를 거부하는 권위자들이 대부분인데 이런 그들에게 일침을 놓을 수 있는, 여자들의 권리를 함께 외쳐줄 남자들의 목소리가 필요하다. 지각 있고 깨어 있는 남자들의 동참은 페미니즘을 더 현실적으로 이룰 수 있도록 해줄 것이다.

 

# 언어와 범주에 대한 고찰

 

우리는 범주를 사용하거나 사용하지 않는 기술을 익힐 수 있다는 것이다. 능란함과 융통성과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 적어도 자신이 세상과 세상에 대한 경험을 상상하고 묘사하는 방식을 스스로 또렷이 자각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주장하려는 것이다. 어느 선사가 말했듯, 너무 팽팽하지도 너무 느슨하지도 않게. 범주는 말하기에 꼭 필요하다. 특히 일반적 경향성을 논하는 정치적·사회적 말하기에 꼭 필요하다. 범주는 언어의 토대이고, 만일 언어가 범주들이라면 - , , 감옥 - 말하기란 단어들의 오케스트라를 지휘하여 무언가 정확하고 심지어 아름다운 것을 만들어내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적어도 자신의 세상을 잘 묘사하고 남들의 세상을 공정하게 묘사해주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_p.219 ~ p.220

 

언어가 추구할 가장 진실 되고 가장 중요한 목적은 세상을 또렷하게 만들어서 우리가 잘 보도록 돕는 것이다. 언어가 그와 반대로 쓰였을 때, 우리는 우리가 곤란에 처했고 어쩌면 무언가 은폐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걸 깨닫는다. _p.271

 

언어와 범주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만드는 <비둘기들이 다 날아가버린 비둘기집>이란 글 역시 자주 읽어서 체화해야할 글이다. 내가 그동안 아무런 의식 없이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범주들에 대해서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나도 모르게 경계를 짓고 구분을 지으면서 차별을 해오지는 않았는지,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지는 않았는지 나를 되돌아볼 일이다. 범주는 새고 또 어떤 범주는 변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고정불변한 것은 없다는 것을 늘 인식하며 사는 것! 또한 내가 사용하는 언어에 대해 민감해지는 것! 내가 되고 싶은 모습에 추가할 항목이다. 그것도 우선순위로...

 

# 예술이 세상을 만든다

 

바로 그 관심을 쏟는 행위야말로 감정이입, 경청, 관찰, 타인의 경험을 상상하는 것, 자기 경험의 한계에서 벗어나는 것의 토대가 되어주는 행위이다. 독서가 감정이입을 북돋는다는 주장이 요즘 인기인데, 만약 정말로 그렇다면 그것은 독서가 우리로 하여금 다른 사람이 된 느낌을 상상하도록 돕기 때문이다. 혹은 자기자신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가도록, 그래서 마음이 아픈 상태, 몸이 아픈 상태, 여섯살인 상태, 아흔여섯살인 상태, 인생에서 길을 잃은 상태가 어떤 것인지를 좀 더 잘 깨닫도록 돕기 때문이다. _p.242~p.243

 

독서란 자신의 젠더를(그리고 인종, 계급, 성적 지향, 국적, 시대, 나이, 능력을) 탐구할 뿐 아니라 더 나아가 그것을 초월하여 타인이 된 상태를 추체험하는 데 의미가 있을지도 모른다. _p.243

 

자신과 비슷한 사람들이 물건처럼 이용되고 버려지거나, 쓰레기처럼 그려지거나, 침묵하거나, 아예 안 나오거나, 무가치하게 그려지는 책을 많이 읽으면, 그 경험은 분명 우리에게 영향을 미친다. 예술은 세상을 만드니까, 예술은 중요하니까. 예술은 우리를 만드니까. 흑은 망가뜨리니까. _p.255

 

책을 좋아하고 문학을 사랑하고 예술을 믿는 독자로서 <남자들은 자꾸 내게 롤리타를 가르치려 한다>는 한문장도 놓칠 게 없는 글이다. 이 글을 통해 아무런 의심 없이 그저 고전이라는 이유로 혹은 유명한 작가와 문학작품이라는 이유로 문학을 순진하게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여온 건 아닌지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된다. 문학작품을 읽고 나면 느끼는 바는 저마다 다를 것이다. 누군가에게 감정이입을 하는가에 따라 작품에 대한 입장도 다 다를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건 여자로서 불편하고 부정적인 감정을 느꼈다면 그 이유를 분석해볼 필요는 있다는 것이다. 문학은, 예술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크고 강력하게 우리의 문화와 가치관에 영향을 주고 있다.

 

 

어쩌다보니 이 책을 읽고 바로 조남주의 소설 82년생 김지영을 읽게 되었다. 이 책 덕분에 나는 소설을 좀 더 분석적으로 읽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그리고 서점에서는 구매할 수도 없는 문단 내 성폭력 피해자들의 고발글과 그들을 지지하는 작가들의 글이 실린 참고문헌 없음을 꺼내들었다. 침묵으로 끝났을 수도 있었던 한국문단 내 성폭력에 대하여 용기를 내어 나서준 사람들이 있었기에 이런 결과물도 나오게 되었다. 사실 책을 읽고 작가를 좋아하는 독자로 오랫동안 지내오면서 중견작가들이 독자들을 성추행 하는 꼴도 보아왔고 그걸 저지시키기는커녕 놀이처럼 지켜보는 출판관계자들도 보아왔다. 한국문단 내 성폭력은 작가를 꿈꾸는 사람들과 작가뿐만 아니라 책을 좋아하는 독자들에게까지 미치고 있는 게 현실이다. 더불어 출판사 직원에게서 성희롱 상담을 받았던 적도 있다.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내게 문학을 좋아하고 글을 쓰고 싶어하는 사람이 너무 꽉 막혔다며 성추행을 시도했던 그 인간을... 10년 넘은 독자에게 그런 짓으로 배신감과 모멸감을 준 그 인간을... 아무렇지 않게 여시인과 잠을 잤다며 떠벌리던 그 인간을... 그런데 나는 왜 침묵하고 있는가. 내 앞에 놓아둔 참고문헌 없음을 난 볼 자격이 없다. 아직은... 리베카 솔닛 그녀의 글에서 용기를 얻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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